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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입양인도 우리민족”

    “해외입양인도 우리민족”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10월. 역대 외교부 대사 출신들이 차지해 오던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에 학자 출신의 재야 인사가 내정됐다. 재외한인학회 회장,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 등 ‘필드’의 재외동포 관련 단체를 이끌고 ‘재외동포학’을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광규(75) 서울대 명예교수. 상대국(해외 동포의 대부분이 상대국 국민)을 고려해야 하는 정부 차원의 재외동포 정책과 시민 단체의 재외동포 지원은 기본 접근법이 다르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왔고, 역발상의 발전이 있을 것이란 기대도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이사장 3년 임기 내내 재외동포 정책을 둘러싸고 외교부·법무부 등 정부 부처와 재단의 불협화음은 이어졌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인류학자의 시각에서, 재외동포 전문가로서 역사의 아픔 속에 세계로 흩어진 우리 동포들을 보듬어내는 일들을 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24일 서울 서초동 외교센터 6층 재외동포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지난 3년의 소회를 들어봤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자면. -지난여름 국제결혼으로 해외에 나간 분들을 서울로 초청, 조국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입양아의 경우 지난 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후, 외교부를 방문해 해외로 나간 우리의 입양아 문제를 강조한 이후 정부가 신경을 쓰면서 상당한 인식의 개선과 고국 방문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입양아들보다 더 힘들었다고 할 수 있는 국제결혼한 우리 동포들 특히 한국전쟁 시기 미군병사와 결혼한 이른바 ‘GI신부’들의 경우는 인식이 그대로다. 이들 중에 누가 개인 영달을 위해 외국인과 결혼하고 한국을 떠났겠나. 모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남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미군 병사들과 결혼했다. 영어를 하고 외국 사람과 이야기하는 게 국제화가 아니다. 이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외국인 남편, 그 자녀들을 우리 민족으로 감싸 안아야 그게 국제화다. 지난해 국제결혼한 여성들을 초청했는데 응어리진 감정들을 토해내는 것을 보았다. 행사를 열려는데 “뭐가 자랑스러워 이들을 초청하느냐.”는 반대도 극심했다. 올해 미식 프로축구 하인스 워드 선수 모자 열풍을 계기로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살고 있는 국제결혼자들의 결혼 배경이나 학력, 배우자의 인종 등 겉면을 모두 걷어내고 한마음으로 포용하라고 계몽하고 설득해 왔다. 올 가을에도 2차 대회를 할 계획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재단내 동포들에 대한 연구작업이 태부족해 강화했으면 했는데 잘 안 됐다. 또 해외의 동포 단체에 그동안 추석이나 체육회 등 1회성 행사에 지원해준 돈을 목돈으로 돌릴 테니, 유대인들의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수익성을 담보한 동포센터 설립을 해보라는 쪽으로 유도했다. 하지만 한인 단체간 갈등 반목이 생기고, 소송까지 이어지면서 그 계획이 무산지경이 돼 안타깝다. 지난해 미국내 한인 세탁업협회 인사들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이 대표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은 알다시피 식료품점, 세탁소, 미용용품 조달이다. 한국에선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미국 사회에서 그들의 실제 힘은 막강하고, 조국에 대한 애정 또한 누구 못지않다. 세탁업협회 대표들이 방한해 국제적인 대기업을 방문, 자신들의 세탁물 덮개에 기업 로고를 붙이겠다고 선의의 제의를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적이 있다. ▶재외동포청 설립 등을 둘러싸고 정부와 대립·갈등을 겪었는데. -해외동포 지원이라는 재단의 정체성 측면에서 보면 정부와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나는 외교정책은 천문학이고, 동포문제는 기상학이라고 본다. 모두 하늘을 쳐다보는 학문이지만 외교는 은하계 태양계를 보고, 재단은 비가 오는지, 날이 맑은지를 본다. 충효의 문제로도 나는 설명한다. 효를 선택하다 보면 충과 배치될 때도 있고 충을 선택하다 보면 효와 배치된다. 외교부는 충을 선택하고 재단은 효를 선택한다. 외교부는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등 우리 교민이 살고 있는 상대국과의 입장 때문에 교민청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고 우리는 동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선 이 체제론 어렵다는 논리를 폈지만 잘 안됐다. 정말 동포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자면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회에서 동포청 또는 대통령 직속의 재외동포위원회를 설치 하자는 안을 냈는데, 나는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원한다고 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영화] 성숙한 코믹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천하장사와 섹스심벌 마돈나는 무엇을 위해 의기투합할 수 있었을까. 지극히 토속적인 캐릭터와 지극히 세계적인 캐릭터가 제목에서 언어조합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제작 싸이더스FNH, 반짝반짝·31일 개봉)는 뚜껑을 열어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그 ‘진맛’을 상상할 수가 없다. 결론부터 간추리자면 낯설어서 더 역설적인 제목만큼이나 영화는 비상한 뚝심이 돋보인다. 여자가 되고 싶은 가난한 고교생이 끊임없이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야기라면 영화의 비범함을 감잡을 수 있을까. 상식적이지 않은 주인공 캐릭터가 대단히 일상적인 공간(고등학교)에서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게 조근조근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그 점에서 영화는 과잉유머와 신파에 기댄 ‘그렇고 그런’ 코미디 범주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누려도 좋겠다. 몰래 치마를 입어보거나 빨간 립스틱을 발라보는 주인공 동구(류덕환)는 겉보기엔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생. 엄마(이상아)가 가출해버린 집은 아버지(김윤석)의 술주정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산뜻함과는 거리가 먼 수도권 도시(인천)의 변두리 마을이 배경이지만, 영화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담담한 유머감각으로 풀어가는 재주를 부린다. 일본어 선생님(초난강)을 좋아하면서 여자가 되려는 동구의 마음은 더욱 바빠지고,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상금이 걸린 교내 씨름부에 들어간다. “무엇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을 뿐”이라며 울먹이는 범상찮은 주인공에게 관객이 점차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건 이 영화만의 특별한 요령이다. 공감하기엔 한계가 많은 주변적 소재임에도, 차분히 이야기를 살붙여가는 성숙한 화법이 코믹영화의 외연을 넓혔다. 주인공에게 있어 ‘여자되기’는 어쩌면 희망이 차단된 답답한 현실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현실의 냉대에 자포자기한 아버지의 캐릭터를 통해 노동자와 실업문제 등 묵직한 사회적 함의까지 두루 껴안았다. 기교 부리지 않은 수수한 화면, 심심할 만큼 절제된 음향효과 등이 데뷔감독들(이해영·이해준)의 배짱을 말해주는 듯하다.15세 이상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레즈비언 성전환이 더 어려운 이유

    레즈비언 성전환이 더 어려운 이유

    게이가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되는 경우는 더러 보지만 레즈비언이 남성으로 되는 일은 왜 드물게 나타날까. 레즈비언의 성전환이 더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미국의 드라마 ‘더 엘 워드’에서 한 레즈비언이 수술과 호르몬 요법으로 남성이 되자 레즈비언 사회가 술렁거렸다. 블로그와 웹사이트에선 다음 시즌에 그를 제거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과다복용으로 처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올라왔다. 직원들의 성전환 의료비까지 대주는 ‘동성애자의 천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레즈비언의 성전환은 동성애 정치학의 심각한 주제다. 몇몇 레즈비언은 동료가 수염을 기르고 목소리를 굵게 하는 등 남성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자신의 젠더(사회학적 성)에 대한 반역으로 보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심리학자 켄 주커 교수는 “남성으로의 전환은 팀을 배반하고 억압자 계급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33세의 한 레즈비언은 얼마 전 파트너 ‘샤론’이 남자 ‘셰인’이 됐다는 이유로 7년 동거를 끝냈다. 그는 “나는 여자를 사랑하는 레즈비언”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남성의 성전환은 1952년 ‘조지’가 수술로 ‘크리스틴’이 되면서 이후 반세기 동안 비교적 보편화됐다. 그러나 여성의 성전환은 불과 10년 전 얘기다. 남자로 살기를 택한 한 네브래스카 여성의 피살을 다룬 1999년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감정적 기폭제가 됐다. 남성 전환 수술이 외과적으로 더 정교한 기법을 요구하는 것도 한 이유다. 남성 1만 1000명당 1명, 여성 3만명당 1명이 트랜스젠더라는 유럽의 10년 전 통계에 따르면 미국엔 1만 3000명의 ‘남→여’,5000명의 ‘여→남’ 전환자가 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단체는 수만∼10만명까지 추산하고 있다.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규정하지만 돈이 없어 아직 수술을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으로 전환할 경우 생식기 수술이 비싸고 위험해 미루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으로 성을 바꾸는 여성이 느는 추세다. 드라마에서처럼 직장을 얻기 위해 남성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마이클 브라운슈타인 박사는 “지난 몇 년간 1000건 이상의 남성 전환 수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와 같은 ‘여→남’ 전환 전문의가 미국에 수십명 있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서울광장] 전시 작통권과 정계 개편/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전시 작통권과 정계 개편/이목희 논설위원

    한나라당 고위인사에게 물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그렇게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작통권은 언제라도 돌려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대통령이 하면 괜찮지만 노 대통령은 안 된다고 했다. 작통권은 단발성 이슈가 아니라고 한나라당 인사는 강조했다. 북한과 연대를 강화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노 대통령이 친북(親北)·반미(反美)를 표명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인사는 노 대통령을 친북·반미로 규정했다. 작통권 환수에 퇴임 후의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여야간에 안 싸워도 될 일로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정체성이 혼란스럽고 서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미국과 거리를 둔 뒤 북한을 일방적으로 이롭게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의 여야 간에는 그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에 오해를 풀기 어렵다. 지금 대권주자들의 행보를 보면 다음 정권에서도 비정상이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하다. 한나라당 주자들은 진보표까지 잠식하기 위해 개혁적인 것처럼 움직인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뉴딜정책을 내세워 보수층을 공략하고 있다. 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보수와 진보를 마구 넘나든다. 정체성의 일대 혼란이다.‘속마음 따로, 겉마음 따로’라고 비쳐진다. 오해와 의심, 갈등의 혼란상이 계속된다. 표때문에 유연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두 가지에 대해서는 솔직해지자.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 대북 햇볕정책과 채찍정책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미국의 힘을 빌려 중국과 일본의 한반도 패권다툼을 견제해야 한다는 견해는 일리가 있다. 미국·일본의 영향력을 줄이고 중국·러시아와 친해지는 것이 통일과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 역시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할지 대권주자들은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정치권 물밑에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커지고 있다. 당선만을 위한 이합집산이 대세다. 또 지역분할 구도로 나아갈 조짐이 나타난다. 득표에 유리한 연대 역시 막을 길은 없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한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느냐, 미국과의 관계를 어느 수준으로 가져갈 것인가에는 의기투합한 뒤 합치는 게 바람직하다. 뉴라이트, 뉴레프트 등의 단체들은 합종연횡의 타당성과 후보의 이념스펙트럼 검증에 들어가야 한다. 상대편을 비난하며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는 작업이다. 대권주자와 여러 정파들의 이합집산이 옳은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북 정책과 대미 인식이 다른 정파가 손을 잡으면 ‘속임수’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적극 알려 지지도를 떨어뜨려야 한다. 특정 대권주자가 이 부분에서 오락가락하면 ‘비겁자, 기회주의자’의 낙인을 과감하게 찍어야 한다. 명망있는 몇몇 전문가들이 후보 성향 및 연대 검증을 위한 단체를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럽다. 백화점식으로 따져서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두 가지 질문에 똑 부러진 대답을 듣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당신은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려 합니까?”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과의 유대에 더 중점을 두실 생각입니까?”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월드이슈] 차별받는 이민 2·3세 ‘자생적 테러범’으로

    |파리 함혜리특파원|지난 10일 적발된 항공기 연쇄 테러 음모는 겉으로는 유럽 사회에 동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민 2세들이 ‘자생적 테러리스트’로의 변신을 꿈꾸며 끔찍한 계획을 모의했다는 점에서 지구촌의 공포를 더욱 키웠다.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축구 문화를 즐기는 것처럼 비치지만, 실제로 이들은 유럽 문화에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공격 같은 ‘순교의 길’을 걷고자 했다는 것이 영국 경찰이나 미국 국토안보부 등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 음모 용의자들이 실제로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지, 이들과 알카에다를 섣불리 연결지으려는 데 정치적 저의가 깔린 것은 아닌지, 이들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실제로 테러를 저지르기 직전 단계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물론 이들이 출현할 수밖에 없는 유럽과 미주 대륙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바꿔야만 이들을 근절할 수 있다는 반성과 교훈은 논란과는 별도의 몫으로 남는다. ●테러리스트는 이웃에 있다 런던 동부 외곽에 있는 퀸즈로드 104번지. 이슬람 모스크 맞은편의 허름한 벽돌집 앞을 경찰관 2명이 지키고 서 있다. 파키스탄인들이 드나드는 미장원 바로 옆의 이 집에서 런던발 항공기 폭파 음모의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인 의과대학생 와히드 자만(22) 가족이 살고 있다. 와히드의 친구인 아민은 “어릴 때부터 줄곧 알고 지냈지만 그는 성실하고 조용하며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이라며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네 식품점 주인도 그에 대해 “정치에 별로 관심 없으며 다른 젊은이들을 잘 도와주던 착한 무슬림 청년’이라고 말했다. 와히드처럼 평범한 겉모습의 이들 자생적 테러리스트와 알카에다를 연결짓는 고리는 이들이 대부분 파키스탄계 이민 2세들이며 파키스탄으로부터 테러 실행 자금을 전달받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용의자 일부는 지난해 7·7 런던테러 실행범인 시디크 칸, 세자드 탄위르와 비슷한 시기에 파키스탄 종교학교 ‘마드라스’에 다닌 것으로 영국 경찰은 보고 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이번 음모를 사전 분쇄하는 데 공이 큰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당국은 자신들이 직접 검거한 7명 중 이번 음모의 주동자격인 라시드 라우프(27)와 마티우 라만(29)이 알카에다 고위직과 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라우프는 2004년 4월 영국 버밍엄에서 숙부가 피살된 사건 직후 출국했으며, 파키스탄에서 인터넷을 통해 영국의 동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고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영국 경찰은 테러범들을 급습한 현장에서 자살 공격을 다짐하는 ‘순교 테이프’를 발견했으며, 이같은 방식은 9·11과 비슷한 알카에다 특유의 방식이라고 밝혔다. 미국 CNN은 16일 이번 테러 음모의 실행 자금으로 지난해 파키스탄 지진 구호자금이 지원된 흔적이 발견됐다는 수사당국의 전언을 전하고 있다. ●종교적 극단과 정부에 대한 증오의 결합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라임 알라프 연구원은 “영국의 다문화 모델이 이제 이민 가정의 자녀에게도 정착됐음을 보여준다.”며 “모두 영국식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사회 적응도 훌륭하게 하고 있던 젊은이들이 영국을 왜 공격하는지가 큰 의문을 남긴다.”고 지적했다. 영국에서 자생적 테러가 고착화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이민 2,3세들이 느끼는 차별과 사회에서의 소외감을 들 수 있다. 런던 동부의 무슬림 거주지역인 월섬스토에 사는 이브라임은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곳에서 학교에 다녔고 영어도 완벽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완전히 영국 사회에 동화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내 무슬림 청년의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같은 또래의 영국 젊은이 실업률이 2.8%인데 비하면 매우 높다. 파키스탄 이민자들의 극단에 가까운 종교적 보수성과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좇는 영국 정부에 대한 증오심도 자생적 테러를 부추기고 있다. 파키스탄이나 카슈미르 출신 무슬림들의 경우, 여자들이 집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사원에도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 젊은이들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부시 행정부와 공동전선을 구축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혹은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점에 적개심을 품고 있다. 지난해 런던 7·7 테러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160만명의 영국내 무슬림 가운데 20%는 자폭 공격을 가하는 범인들의 심경에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선 70%가 테러에 관한 정보를 경찰에 제공할 용의가 있지만,18%는 영국이란 나라에 대해 어떤 충성심도 갖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슬람 학교의 한 교사는 “부모 세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영국에 이민와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것을 추구한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통해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접하면서 그들처럼 적(미국과 영국)을 상대하면 안된다고 결심한다.”고 말했다. ●알카에다와 성급한 연결은 잘못 그러나 알카에다와 이들을 연결짓는 데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알카에다를 아프가니스탄에서 분쇄하기 전의 조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나아가 알카에다가 이미 국제적인 규모의 테러를 조직할 수 있는 힘을 잃고 사회운동의 ‘두뇌´로 전환했다는 분석으로 나아간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테러조직을 이해하며’라는 저서를 낸 마크 세이지먼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슬람식 사회운동에 뛰어들고 있으며 알카에다는 다만 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역시 CIA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한 적이 있는 마이클 슈어는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훈련이나 자금 모집을 통해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계가 지휘나 통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분석이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과소평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보당국 관계자는 “우리는 알카에다가 지휘계통을 갖춘 조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그러나 지휘도 없고 통제도 없는 맹목적인 모방자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논리다. lotus@seoul.co.kr ■ 인터넷서 모의·폭탄제조법까지 익혀 ▶자생(homegrown) 테러란. -2001년 미국의 쌍둥이 빌딩 등을 폭파한 9·11 테러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의해 일어났다면 자생 테러는 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사람이 국제조직과 연계하거나 영향을 받아 자국민을 상대로 공격을 자행하는 경우다.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와 지난해 런던 7·7 테러 등이 대표적이다. ▶활동 특징은. -인터넷 등으로 원활하게 정보를 주고받는다. 인터넷은 국제 정세를 배우고 폭탄 제조법까지 습득하는 총체적 학습장이다. 이들의 방에선 자살폭탄 ‘순교자’의 비디오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지난 6월 사전에 적발된 캐나다 테러처럼 토론토 교외에 군사훈련 캠프를 차리기도 하지만 외국에서 훈련을 받고 오는 경우도 많다. 파키스탄 이슬람 학교 ‘마드라스’가 원리주의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누가 테러리스트가 되나. -어려서 이민을 왔거나 태어난 이민 2세들이 정체성 위기를 겪다가 국내·외의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접촉,‘지하드(성전) 세대’가 된다. 일부는 유복한 가정의 자녀들로, 캐나다 테러의 경우 중산층 10대가 5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이웃들은 이들이 원래 평범했다고 증언한다. 마드리드 테러의 한 가담자는 프로축구팀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었고 거사일 직전에도 데이비드 베컴으로부터 사인을 받아낼 정도로 이슬람 원리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축구와 음주, 돈벌이를 싫어한다. ▶이들은 왜 테러에 가담하나. -전문가들은 무슬림 이민사회의 높은 실업률 등 ‘통합 실패’를 꼽는다.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앵그리 영 무슬림’을 낳고 있다. 영국에선 ‘파키, 파키’라며 연거푸 말하는 것은 파키스탄 등 아시아계 이민자를 경멸하는 뜻이다. 여기에 미국과 영국 등의 편향된 중동 정책이 기름을 붓는다. 이라크 전쟁은 테러 분쇄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바로 그 전쟁 때문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다시 과격 조직에 가담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국제조직과의 연계는. -알카에다는 더이상 단순한 테러조직이 아니다.1979년 옛 소련의 아프간 침공시 오사마 빈 라덴이 만든 알카에다는 이제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신 반미·반이스라엘·반서구·반세계화 등을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운동 ‘카에디즘’이 더 무섭게 번지고 있다. 알카에다의 직접 지휘를 받지 않고도 카에디즘을 신봉하며 그들의 수법을 따라한다. ▶자생 테러의 심각성은 어디에. -미국과 그 우방국은 9·11 이후 테러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자생 테러는 도처에서 터지고 있다. 나라 안에서 싹트는 ‘적’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기는 더 어렵다. 시민들의 공포감은 그만큼 더 커지고 이질적 사회집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따돌림도 자라난다. 서구의 무슬림 사회는 또다른 테러의 피해 집단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상대적으로 감시 소홀한 여성 가담늘어 ‘테러리스트들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10일 영국에서 적발된 항공기 연쇄 테러 용의자 24명 가운데 3명의 여성과 어엿한 직업을 가진 중년 남성, 대학 교육까지 마친 청년이 포함돼 있어 이들이 어느 순간 테러리스트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6일 지적했다. 이들은 극단주의자로 분류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테러리스트로 쓰임새가 넓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특히 여성이 테러에 관련된 것은 “우리들이 테러리스트에 대해 가졌던 기존 관념을 모두 내던지는 것”이라고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싱크탱크 란드 법인의 정책 분석가 파르하나 알리는 말했다. 런던 동부 월섬스토에서 체포된 코사르 알리(23)는 생후 8개월된 사내 아기를 둔 어머니였다. 영국은행은 지난주 그녀의 은행 계좌를 동결했다. 그녀는 남편 아메드 압둘라 알리와 함께 구금됐다. 이들 부부는 액체 폭탄을 젖병에 넣어 기내에 들어가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란드 법인의 알리는 “최소한 3명의 여성 자살폭탄 테러범이 이라크에 있다.”면서 “지난해 11월 미군 호송대에 자폭공격을 가했던 벨기에 여성은 최초의 서양인 여성으로 성전이란 이름 아래 테러를 감행했다.”고 말했다. 알리는 “여성도 남성처럼 분노하고 환멸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은 권력 기관의 감시를 덜 받기 때문에 테러리스트 집단에게 “훌륭한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슬림 극단주의 집단에서 여성들은 보조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강조했다. 지도자로 활동하기보다는 자금을 운반하거나 급사로 일하며 무기를 나르는 일 등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정보기관 요원들은 이번에 검거된 여성들이 항공기 테러 음모를 꾸민 조직의 일원일 것이라고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 기술(IT)과 같은 보조 업무에 얼마든지 여성들이 일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기가 자폭 공격에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거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공항 보안요원들은 승객들이 갖고 오는 젖병에 폭발성 물질이 들어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맛보아야만 하는 시대가 됐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대담 “나쁜 관행 바로잡기 사회공동체의 용기 필요”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대담 “나쁜 관행 바로잡기 사회공동체의 용기 필요”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논문 파문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그릇된 관행에 대해 짚어보는 ‘잘못된 관행 이젠 깨자’ 기획시리즈가 지난 1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서울신문은 서울대 박효종(국민윤리교육과) 교수, 아주대 강명구(행정학) 교수와 함께 우리 사회의 관행들을 종합적으로 짚어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담은 지난 3일 서울신문 사회부 박현갑 차장의 사회로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회 관행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인데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좋지 않은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 ●강명구 교수 관행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전부터 하던 습관을 따라하는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풍습, 규범, 전통, 상식, 묵인, 자율 등이 있지요. 반면 웹스터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주어진 상황에서 흔히 하던 대로 행동하는 것’‘오랫동안 행해져서 거의 법률화된 것’이라고 뜻풀이가 돼 있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전관예우, 기부, 자원봉사, 급행료, 촌지·떡값, 성 상납, 낙하산 인사 등 법률보다 관행이 우리의 삶을 규제하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관행이라고 하면 ‘불법은 아니지만 용인되는 것’‘통용되는 행위이지만 외부에 알려지면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등 우선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효종 교수 관행은 영어로 ‘컨벤션(convention)’이라고 합니다. 라틴어가 어원인데 ‘함께 온다.’, 즉 협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다 보면 관행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관행은 누가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 많습니다. 좋은 관행과 좋지 않은 관행을 나누는 기준은 효율성과 정의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풍습 속에서도 씨받이는 정의성에서 인정받을 수 없고, 조상을 모시는 일도 호화분묘를 만들면 효율성에서 지탄을 받게 됩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관행이 문제되는 이유는 행위자 본인이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효율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관행에 대해서는 문제 삼아야 합니다. 관행은 의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법으로도 규제하기 어렵습니다. 일례로 음력설을 쇠지 말라고 강제적으로 조정을 시도했던 것이나 허례허식이라고 결혼식장에서 음식을 제공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법으로 규제하려고 해도 불가능했지 않습니까. 관행이 가지고 있는 힘의 논리 근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나쁜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온정주의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강 교수 온정주의 때문에 잘못된 관행이 퍼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관행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법률로 제한할 수 없는 영역을 관행이 대신하는 기능, 그리고 기득권 수호의 기능입니다. 두번째 기능이 외부로 드러났을 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데 내부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자칫 부패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능적 측면에서 온정주의가 영향을 많이 끼치기는 하지만 온정주의가 반드시 관행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박 교수 맞는 말씀입니다. 관행을 잘 표현하는 속담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말인데 과연 관행이 누이와 매부 외의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일까요.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효율적인 관행을 법제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연고주의는 일정한 틀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관행입니다. 모교 출신을 교수로 임용하는 관행은 교수나 학교에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의 이익을 봤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관점에서 정당화되지 못하는 관행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반성과 자기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 ‘나는 관행대로 해도 공직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식의 이중적인 잣대가 국민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강 교수 이중성은 확실히 있습니다. 관행이라는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집권층에 대해서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불신이 근저에 있기 때문에 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게 되지요. 여기에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지도층의 도덕성에 대한 기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박 교수 높은 권력이나 권위를 차지한 사람들은 뭔가 다를 걸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데서 온 실망감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요. 그간 지도층들이 이에 걸맞은 역할 모델을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고위 공직자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공직자가 되면 어떤 희생을 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명예만 앞세우니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사회 우리 사회의 이른바 ‘국민정서법’이 나쁜 관행을 더 조장하는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강 교수 관행은 법에 추가로 여유분을 주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보편성의 입장에서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줄 수 없지만 관행적으로, 국민 심정적으로 그렇게 해왔던 것이죠. 그러나 이번 김 전 부총리와 관련해서는 문제가 다릅니다. 논문 베끼기는 절대로 학계의 관행이 아닙니다. 김 전 부총리는 자기가 말한 관행과 학계에서 통용되는 관행간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국민정서라는 것이 일반적 국민들의 정서라기보다는 사건에 대한 단기간의 여론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얼마나 성숙된 여론으로 발전시키느냐, 또 어떻게 보편화시키느냐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겠지요. ●박 교수 여론에는 확고한 정의감과 도덕성이 담길 때도 있지만 감정이나 정서가 더 강하게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여론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다가 자기와 맞지 않으면 매를 들이대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다원주의 사회에서 형성되는 여론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존 방식입니다. 여론이 늘 올바르진 않지만 최선의 판단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집권층은 일반 국민들과 의견을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다만 여론을 형성하는 국민이 더 나은 판단력을 갖추고 감성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문제 제기는 계속돼야 합니다. ●강 교수 여론 형성과정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희망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학습효과가 뛰어납니다. 냄비근성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자기 정화기능이 활발해졌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뛰어나게 됐습니다. ●박 교수 한국사회의 여론이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좀더 정교화하고 관용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사회 좋은 관행은 이어가고, 나쁜 관행은 끊어버리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힘써야 할 부분들이 참 많을 듯한데요. ●강 교수 우선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고발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합니다. 내부비리를 고발했다가는 ‘왕따´가 되는 사회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두번째는 내부 민주화 문제입니다. 관행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율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부조리에 대해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자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박 교수 나쁜 관행은 악순환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바뀔 때 좋은 관행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순환의 고리는 매우 단단해서 지도층이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습니다. 일반인의 노력은 큰 빛이 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흔히 하는 말로 ‘더 나은 사회(Better Life)’라는 게 있습니다. 후손들이 현재보다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말합니다. 우리는 나쁜 관행 속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우리 후손들에게는 나쁜 유산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의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특권적 관행을 고치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 왔던 게 사실 아니었습니까. ●사회 지도층의 각성을 말씀하셨지만 막상 그런 일이 내게 닥치면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강 교수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가운데 “열정이 너를 사악하게 하지만 이해관계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문제는 상치된 이해관계를 어떻게 공동체 정신으로 바꾸느냐, 이걸 어떻게 제도화하느냐입니다. ●박 교수 나쁜 관행을 깨기 위해 이해관계가 바뀔 때 사회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자기 동기화나 자기 이익이 반드시 연결돼야 관행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제도화에 앞서 이에 대한 가치의 공유도 교육을 통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강 교수 유신시대 때 생긴 시민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이를 저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그 정도의 판단능력은 있다고 봅니다. 외국에서 초등학교를 보내보면 줄서기, 친구돕기, 길건너기 같은 걸 먼저 가르칩니다. 경쟁을 뒷받침하는 시민교육이 없으면 사회는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지금 광주에선] 미리 본 ‘06 비엔날레

    [지금 광주에선] 미리 본 ‘06 비엔날레

    25일 광주시 북구 중외공원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오는 9월8일부터 11월11일까지 열리는 ‘2006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40일 남짓 앞두고 전시실마다 공사 인부들이 오가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전시장 시설과 파티션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일부 작품은 반입이 시작됐다. 올해로 여섯번째 맞는 행사이다. 행사가 거듭될수록 유명작가와 비평가 등이 수많은 문화적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비엔날레가 세계 미술계로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비엔날레는 ‘광주’라는 도시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미술분야의 수준도 한단계 높아졌다. 지방자치단체가 유치한 첫 대규모 국제행사가 성공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열풍 변주곡 울린다 개막일인 9월8일 광주에선 ‘열풍 변주곡’(Fever Variations)이 울려퍼진다. 대회의 주제인 ‘열풍 변주곡’은 아시아의 새로운 변화에너지, 아시아권의 문화적 다양성이 열풍처럼 전세계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광주가 전세계·아시아권의 구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행사에는 32개국 108명이 참여,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전시는 2개 부문의 본전시와 후원전, 제3섹터-시민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본전시 # 첫장:‘뿌리를 찾아서’는 ‘아시아 이야기 펼치다’를 주제로 정했다. 새롭게 변화하는 아시아의 정체성을 축으로 현대 미술문화 속에 표출된 ‘아시아 정신’의 뿌리를 추적한다. 그렇다고 ‘아시아인들만의 잔치’나 ‘아시아의 가치’를 선전하기 위한 캠페인이 돼서는 안된다는 전제로 출발한다.19∼20세기와 달리 요즘 서구의 신진 작가들은 서양미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동양사상’ ‘동양정신’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동·서양 미술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각을 해체하는 새로운 시도가 선보인다. ‘신화와 환상’ ‘자연과 몸’ ‘정신의 흔적’ ‘역사와 기억’ ‘현재 속의 과거(가제)’ 등 5개 부문으로 구성된다. # 마지막장:‘길을 찾아서’의 주제는 ‘세계 도시 다시 그리다’이다.50명의 다국적 작가들이 협동프로젝트를 사전에 진행한 뒤 그 과정과 결과를 전시한다.‘도시네트워크전’으로 이름 붙여진 이 전시는 도시의 하드웨어보다는 공동체, 주민들의 행위와 관계 등 휴먼웨어에 초점을 맞춘다. 아시아∼중동∼북미 국가는 ‘로컬간의 만남’을, 베를린∼파리∼암스테르담∼코펜하겐∼빌니우스는 ‘이민자 수용과정’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엘알토 등 남미는 ‘반헤게모니적 논리’를 각각 주제로 작업한다. ●후원전 동아시아 색채를 주제로 열린다. 동아시아 미술의 뿌리인 전통미술에 대한 조명을 통해 각국 문화와 미감에 대한 동질성과 차별성에 대한 이해의 장을 마련한다. 동양적 세계관을 상징화한 오방색의 민속미술 전시를 통해 비엔날레의 대중적 확산을 시도한다. 한·중·일을 비롯, 인도, 베트남, 티베트, 몽골 등의 회화류와 공예·도예·민속미술 작품 등이 전시된다. ●제3섹터-시민프로그램(140만의 불꽃) 비엔날레 전시와 일반대중을 연결시키고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유도하는 행사이다. 지역의 신진작가 발굴과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마당이다. 열린 비엔날레(축제·이벤트), 미술오케스트라(공모전) 등 다채로운 이벤트로 구성됐다. 이밖에 아시아미술포럼,CAA콘퍼런스, 비엔날레 열린토론회 등의 학술행사도 이어진다. ●작가들의 작품경향 참여자들은 아시아의 정서와 특징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군이다. 슈카르트 그룹(퍼포먼스·영상·세르비아)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퍼포먼스 작품에 주력해왔다. 마이클 주(설치·미국)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을 대표해 참가한 낯익은 작가다. 과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의 역사,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표현한다. 그의 ‘Bodhi Obfuscatus’는 뉴욕의 ‘2005년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역작. 간다라불상의 머리에 섬유광학 조명과 소형 폐쇄회로 카메라들을 설치한 뒤 후광을 통해 불상 표면을 탐구한다. 제니퍼 티(설치·네덜란드)는 사진과 텍스트, 비디오를 통합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의 다양성을 작품에 담아낸다. 국내 작가인 송상희(설치)씨는 삿포로 홋카이도도립 근대미술관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전 등 국제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는 작가다.‘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서 시작해 사회 안의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들을 탐구한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곽선경(드로잉)씨는 뉴욕드로잉 센터, 퀸스뮤지엄 등에서 열린 여러 단체전에 참가한 경력을 가졌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비엔날레 성과와 의미 광주 비엔날레는 지난 1995년 온 국민에게 ‘문화적 충격’을 선사하며 돛을 올렸다.10여년의 세월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유일한 국제 미술축제로 자리잡았다. 물론 지역경제에도 커다란 플러스 영향을 미쳤다. 광주전남발전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첫 행사의 생산유발 효과는 2288억원, 소득유발 효과 251억원, 고용유발 효과는 6104명으로 집계됐다. 그 이후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행사 때마다 비슷한 효과가 날 것으로 추정된다. 또 국제규모의 행사는 중앙에서만 개최한다는 관행을 깨버렸다. 세계문화예술축제를 건국 이후 처음으로 지방도시에서 열어 지방행정의 세계화를 앞당겼다는 무형의 소득도 만만치 않다. 비엔날레는 ‘문화중심도시 육성’이란 국책사업의 유치로 이어졌다. 광주시는 비엔날레의 노하우와 관련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정부도 이를 수용,2004∼2023년 모두 2조 257억원을 투입, 문화중심도시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중 핵심시설의 하나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오는 2010년이면 옛 전남도청 자리에 문을 연다. 홍진태 광주시 문화정책실장은 “요즘은 ‘문화’란 개념이 발굴, 보존, 계승하는 차원을 넘어 경제적 부가가치까지 포함하고 있다.”며 “문화를 ‘돈이 되는’ 산업으로 만들기 위해 비엔날레와 아시아문화전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한갑수 이사장 인터뷰 “2006 광주 비엔날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전시와 홍보 등 각 분야별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 열리는 제6회 행사를 준비중인 한갑수 광주 비엔날레 이사장은 25일 “그동안 비엔날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인이 미술을 통해 만나는 ‘지구촌 축제’로 꾸려가겠다.”고 밝혔다.“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강조한 한 이사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의 역량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행사의 주제처럼 ‘아시아성’을 세계로 확대하고, 이를 토대로 광주를 ‘아시아 문화허브’로 육성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비엔날레의 지속적인 발전방안에 대해 “‘잘 먹고 잘 사는 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며 “비엔날레라는 국제문화행사의 지역내 파생효과 창출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특히 비엔날레를, 국책사업으로 추진중인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도 긴밀히 연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비엔날레가 가져다준 경제적, 교육적, 사회통합적 효과 등 긍정적 측면을 널리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작품의 ‘난해성’을 의식한 듯 “미술작품의 감상은 ‘이해’가 아니라 ‘느낌’인데, 우리가 너무 인지적·주지주의적 선입견에 사로잡히다 보니 그렇게 생각된다.”며 “그냥 편안하게 작품 자체를 즐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송두율칼럼] 認定의 정치

    [송두율칼럼] 認定의 정치

    북핵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잠깐 잠잠해지더니 이란의 핵 문제가 시끄러워졌다. 이번에는 북의 미사일 실험발사, 이어서 중동전으로 확산될 기미까지 보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분쟁으로 인해 지구촌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부시행정부에 의하여 이른바 ‘악의 축’으로서 또 ‘폭정의 전초기지’에 속하는 나라로서 취급받고 있는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나, 이스라엘을 늘 테러로서 위협하는 나라 아닌 나라로 여겨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유엔이나 G8정상회의가 제시하는 해법에 따라 해결될 것으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엔이나 G8이 기존의 국가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평한 해법을 결코 내놓을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란과 북의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의 이해, 그리고 이와 대치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그것은 과거 냉전시기의 갈등구조의 재생은 아니지만 냉전종식으로부터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인 상황이 빚어내고 있는 불확실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국제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세계의 모든 영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필연적이 아니면서 동시에 임의적이지도 않는, 그래서 “항상 전혀 달리 될 수도 있다.”는 이른바 우연성(偶然性)은 리차드 로티(R. Rorty)의 실용주의철학이나 니클라스 루만(N. Luhmann)의 사회학적인 ‘체제이론’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다. 또 우리의 체험이나 행위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항상 타자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타인에게 기대하듯이 타인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기대하는 이른바 ‘이중적(二重的) 우연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타자가 어떤 행위를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을 넘어 타자의 기대자체를 또 내가 기대하게 된다. “네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준다면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다.”는 기대구조의 끊임없는 사슬은 한편으로는 실망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생활세계에 과도한 긴장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같은 기대구조가 담고있는 항시(恒時)적인 실망과 긴장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규범들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이중적 우연성’의 문제는 현재 이란의 핵 문제나 북의 핵 문제와 미사일발사 문제에서도, 또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쟁의 해결을 위한 유엔이나 G8의 결정이나 권고와 같은 규범들이 그러면 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인도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발사는 문제되지 않고 북의 미사일 실험발사는 문제가 되고, 팔레스타인의 테러가 현재의 중동위기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과 이와 정반대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분쟁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맞서고 있는 상황 속에서 도출된 규범들이 정의나 중립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강대국의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 관용, 공평성, 중립성과 같은 규범의 전통적인 내용이 현재와 같이 복잡하고 다원화된 세계사회를 위해서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인정(認定)의 정치철학으로써 보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다문화속에서 개인과 집단의 자기정체성이 자주 불인정이나 오해로 인해 훼손되고 이것이 종종 억압형식으로서 작용한다는 뜻에서 인정의 현재적 의의를 특별히 강조하는 캐나다의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Ch. Taylor)의 이론을 국제정치적 갈등해소에 원용한 이러한 견해는 상호인정을 단순히 필요로 한다는 당위성보다 상호인정을 추구하는 노력이 좌절될 수 있는 위기적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더 강조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치는 위에서 지적한 “네가 먼저”라는 식의 ‘이중적 우연성’이 안고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도 없고, 어떤 사회나 국가의 정체성을 오늘날의 세계사회적 관계체계에 걸맞게 개발시킬 수도 없다.
  • [Book Review] 너무나 우쭐한 영국인 자화상

    ‘근대 서구문명의 어머니’. 사람들은 흔히 영국이라는 나라를 이렇게 인식한다. 일찌감치 근대국가를 이룩한 영국은 많은 분야에서 서구문명을 선도하고 가꾸어왔다. 정치적으론 의회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탄생시켰고, 경제적으론 산업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 사회를 열었으며, 사회적으론 복지국가의 실험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문화적으론 ‘셰익스피어의 나라’라는 한 마디로 충분할 만큼 찬란한 문학과 예술의 금자탑을 쌓았다. 유라시아 대륙 끝자락에 붙어 있는 섬나라. 우리는 이 작지만 큰 나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국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우리 주위엔 여전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같은 나라인데 왜 축구경기를 할 때는 각각 나오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잉글랜드 바로 옆에 있는 아일랜드가 아직도 영국의 식민지인 ‘슬픈 아일랜드’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가 쓴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기파랑 펴냄)은 영국인들의 국민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논의되고 재구성됐는가를 살핀 책이다. 저자의 전작 ‘영국사:보수와 개혁의 드라마’(1997)가 영국의 정치·사회·경제에 치중한 정통 역사서라면, 이번 책은 영국인의 문화에 초점을 맞춘 문화교양서다. 책은 환경, 몸, 신화, 정신 등 네 개의 범주로 나눠 영국적인 것(Britishness)의 본질을 밝힌다. “신은 영국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국인의 자부심과 자기 확신은 하늘을 찌른다. 그것은 때로 ‘너무나 영국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영국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단면이다.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며 내성적 성향과 겸양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영국인. 그들의 심성은 종종 기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미국 사람들이 돈을 벌 때 영국인들은 날씨와 씨름한다는 말도 있듯, 날씨는 무엇보다 영국인의 국민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저자는 “차갑지만 아주 춥지는 않은 기후, 따뜻하지만 너무 덥지는 않은 날씨, 비가 자주 오지만 넘쳐흐를 정도는 아닌 강수량 등 영국의 날씨가 영국인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인 ‘중용’을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후보다 더욱 확실하게 잉글랜드적인 이미지를 지닌 상징은 풍경이다. 영국인들에게 풍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국가적 가치관의 표징이다. 영국 사람들만큼 풍경을 소중한 유산으로 여기는 민족도 드물다.‘전원적인 잉글랜드’라는 이상은 영국인들에겐 영원히 변치 않는 향수로 작용한다.20세기 전반 두 차례나 총리를 지낸 스탠리 볼드윈은 “잉글랜드는 시골이고 시골이야말로 잉글랜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영국은 근대 스포츠를 탄생시킨 나라다. 축구, 럭비, 크리켓, 골프, 테니스, 경마 등 인기 스포츠들은 거의 다 영국인들에 의해 발명되거나 체계를 갖췄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영국의 경우 ‘스포츠가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사회통합의 역할을 한다.’는 명제가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의 스포츠는 상위개념인 영국(Britain)과 하위개념인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문화가 때론 부딪치고 때론 화합하면서 빚어내는 복잡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場)이다. 스포츠는 연합왕국 내 하위집단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한편,‘켈트 변두리’ 지역에선 문화적 민족주의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저자는 영국에서 축구가 노동계급의 스포츠이고 럭비가 중간 계급의 스포츠라면, 크리켓은 보편적인 스포츠이자 ‘국민적 게임’으로서 잉글랜드와 동일시되고 있음을 밝힌다. 제국주의 시대를 주도한 영국은 영광의 역사 못지 않게 추악한 이면의 역사를 지닌 ‘야누스 국가’다. 미개한 인종을 문명화하는 것은 ‘백인의 책임’이란 미명 아래 제국주의적 침탈을 일삼은 야만의 역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선 자랑스러운 얼굴만 보인다. 일그러진 자화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쉬운 대목이다.2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시론] 도난 문화재 회수 성과 거두려면/ 최정필 세종대 대학원장 국제박물관 협의회 한국위원장

    [시론] 도난 문화재 회수 성과 거두려면/ 최정필 세종대 대학원장 국제박물관 협의회 한국위원장

    유형유산(유물과 유적)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역사의 징표이다.. 따라서 한번 창조된 이후에는 유적지를 비롯한 원래의 문화공간에 영구 보전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불가피할 경우에는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은 도굴과 절도행위로 말미암아 밀거래를 통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물의를 빚고 있는 불교문화재가 대표적 예다. 전남과 경남지역 사찰소유의 문화재가 도난당한 뒤 한 사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유물을 돌려 달라는 사찰 측의 요구를 박물관이 거부했다는 점이다. 즉, 박물관은 이를 적법하게 구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앞으로 문제해결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박물관 협의회(ICOM)의 윤리강령에 의하면 비록 박물관이 적법하게 구입한 문화재라도 후에 법적으로 신고가 된 도난품으로 밝혀질 경우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유물수집에 대한 문제점은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 저명한 박물관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 소장유물들은 현대 박물관의 윤리강령에서 본다면 대부분이 불법으로 수집된 것이다. 근대 박물관의 초석이 된 왕실과 부호들의 유물수집은 호고주의(好古主義)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후, 제국주의 열강세력이 대두되면서 식민지역의 유물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여 오늘날 세계 유명 박물관과 개인소장품이 되었다.20세기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출현으로 유물은 바로 금전과 직결되어 자산의 축적은 물론, 생계수단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공립박물관을 제외한 다른 박물관과 개인소장품의 수집은 아직도 박물관 종사자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오늘날 문화재의 범죄에는 도굴·절도 그리고 모조품제작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범죄행위는 밀거래를 통해 범죄자의 목적달성이 이루어진다. 특히 전문 학자들이 가장 우려를 표시하는 것이 유적지에서 행해지는 도굴과 절도 행위이다. 사찰을 비롯한 유적지에 노출되어 있는 유물을 훔쳐서 밀거래를 통해 수장가의 수중으로 넘기기 때문에 행정당국과 문화재관계 인사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절도행위의 경우 예방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유네스코와 국제박물관협의회는 유물의 밀거래를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반출과 반입은 물론 수장가의 명의변경을 금지하는 협약을 1995년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국제세관협의회 및 인터폴과 의정서를 체결하여 밀거래 방지를 막으려 하고 있다. 물론 밀거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난품의 체계적인 사진과 목록작성이 필수적이다. 작성된 도난품목록은 박물관과 수집가, 그리고 골동품 시장에 즉시 배포되어야 한다. 수년전에 유명한 이라크 국립박물관의 집단 유물강탈사건이 발생하자 국제전문가들이 참가하여 강탈당한 유물의 목록을 만들어 세계도처에 알렸다. 이로써 유물을 회수하는데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도난당한 유물의 적색목록을 작성하여 미리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배포했다면, 이번 사건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도난 유물에 대한 소유권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유적지 또는 사찰에서 도난당한 문화재들이 원위치로 돌아올 때 민족의 역사적 징표가 바로잡히게 된다. 최정필 세종대 대학원장 국제박물관 협의회 한국위원장
  • “관공서 서류 뗄때 설움 없어졌다”

    성전환자와 성적 소수자 단체들은 22일 대법원 결정을 환영했다. 지난 2002년 인천지법 결정을 통해 여자 호적을 갖게 된 성전환자 가수 하리수씨는 “대법원 결정은 당연한 일”이라며 기뻐했다. 하씨는 “연예인이 되기 전에는 동사무소에서 서류 하나 떼러 갈 때도 주민등록번호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과 대면해야 했다.”면서 “그게 싫어서 서류 뗄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법적 성별을 바꾼 뒤 하씨는 서류를 뗄 때는 물론 공항 출입국심사대를 지날 때에도 당당함을 유지한다. 그는 “주민등록번호가 바뀌면 인터넷 사이트에서 여성 아바타를 받을 수도 있다.”면서 “성전환자들은 이런 작은 일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덧붙였다.하씨는 그러나 “법적 성별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민과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충동이나 장난으로 성별 변경 요구를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성정체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은 3만명가량으로 추산되며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수술을 받은 사람은 훨씬 적다.국내에서 성전환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D대학병원 외과의사는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7명의 수술을 직접 했다고 밝혔다. 관련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성전환자성별변경 공동연대 최현숙 대표는 “성전환자들이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숫자를 파악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이 단체와 민주노동당은 9월에 성전환자 성별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례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특례법안은 대법원 결정과 달리 성전환 수술을 호적정정 필요조건으로 규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는 “어떤 사람을 성전환자로 볼 것인지에 대해 의학계와 성전환자 본인, 사회적인 인식 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말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주목되는 대법의 성전환자 인정 판결

    대법원이 어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성전환자(트랜스젠더)의 성(性)별 정정 신청을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 사회질서 유지를 내세우며 취해 오던 보수적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50대 신청인은 호적이 남성으로 바뀌게 됐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소수자 인권보호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 성에 대한 인식을 성염색체 구성에 따른 생물학적 성뿐만아니라 사회통념적인 성으로까지 범위를 넓혔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 전통 등으로 인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선 성전환증(症)은 의학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하나의 질병으로 인정해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성전환증자는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점차 늘어나고 있다. 판단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만 최대 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대법원은 이런 안팎의 현실을 인정, 성전환 수술을 받아 사회통념상 바뀐 성으로 인식되는 것이 명백하다면 성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공공복리나 질서에 반하지 않으면 전환된 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사회통념을 앞서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성전환증자와 함께 살아갈 만큼 성숙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더 이상 그들에게 무조건 참고 지낼 것을 강요하는 것도 공평하지 않다.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 나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우선 의학적으로 성전환자를 판별할 수 있는 명쾌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이번 판결로 사회적 다수가 혼란을 겪지 않도록 민·형법, 병역법 등 관련법도 손질해야 한다.
  • 미리 본 한국국제경제학회 15~16일 한·미 FTA 세미나

    미리 본 한국국제경제학회 15~16일 한·미 FTA 세미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지난 5∼9일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협상에 이어 다음달 10일 2차 협상이 시작되는데도 여전히 ‘기회’와 ‘독(毒)’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한국국제경제학회는 15,1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개방화의 경제적 파장과 경제정책’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13일 미리 공개한 기조연설과 주제발표 등을 통해 득실을 재점검해 본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한·미 FTA 기대효과와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1990년대 7.7%에서 2000년대 5.2%로 떨어진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높이려면 지식기반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하기 쉬운 환경과 적극적인 개방을 통한 ‘시장 확대’가 필요하며, 한·미 FTA가 이같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대외개방과 대내 개혁에 진전이 있었지만 개방과 개혁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돼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개방의 이익을 영위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방 그 자체가 경제발전을 보장해 주지는 않으며, 준비가 안 된 개방은 큰 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대내적 개혁과 미래의 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효과 불투명하고 국민적 합의 없어 저항에 직면할 것” 윤석원 중앙대 산업과학대학장은 ‘한·미 FTA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발표에서 “아무리 긍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 해도 이득보다는 손실이 많은 FTA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먼저 FTA로 대미(對美) 수출이 증대할 것이라는 논리에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1.5%인 점을 감안하면 효과는 미미하고 관세가 일시에 없어진다고 해도 자동차의 경우 1년에 대당 10만원 정도 싸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국내 생산성과 성장 잠재력이 확충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미국의 경제·사회시스템이 우리사회에 맞는 선진화 시스템이 아니며 그대로 적용될 경우 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의 갈등 구조가 고착화돼 우리의 정체성과 전통이 상실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민적 공감대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한·미 FTA를 추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스크린쿼터 축소 등 4대 현안도 미리 들어줄 이유가 없었으며 오히려 협상 의제로 설정해야 했다고 반박했다. ●“국내 산업의 구조조정과 법률의 정비가 선행돼야” 김세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조연설에서 “국내 산업구조 전망이 확실하지 않고는 FTA 협상이 효율적으로 전개될 수 없다.”면서 “이 경우 정부는 수세적인 입장에 놓이고 국내에서는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취약한 농업 부문은 가장 중요한 현안인데도 협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농업정책이 준비됐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부문도 대외개방 이전에 국내 개방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며, 그동안 중단됐던 구조조정과 경제 개혁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개방에 따른 대내외적 위험과 갈등의 조정방안’이라는 논문을 통해 “한·미 FTA는 그동안 잠복했던 기득권 세력의 규제 완화 요구가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제도간 충돌이나 법집행 체계의 미비에 따른 혼란과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면 개방의 충격은 대내적 위험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영세화와 제조업의 양극화 추세를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기에 미리 법 집행의 엄정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데스크시각] 지자체장 서번트리더십 실천을/박선화 지방자치뉴스부장

    지방선거 잔치가 끝났다. 다음달 첫발을 내디딜 민선4기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해 유권자인 주민과 당선자, 정치권과 정부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선거결과만큼이나 극명하게 엇갈린 지방자치 무대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역 주민이 아낌없이 분출해 낸 주권의 힘을 지방권력이 여하히 흡수해 낼까 의구심이 드는 까닭이다. 기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소재는 중앙정치와 여당 및 정부에 대해 쏟아낸 불만의 폭발에 있었다. 그렇다고 지방정부가 이를 비켜갈 수는 없다. 차기 지방정부야말로 정부와 여당 덕분에 한나라당이 독식하는 반사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견 지자체 4기 집행부는 외양면에서 한나라당의 일사불란한 정책집행이 가능한 모양새를 갖췄다. 자연 정부와 여당이 보인 일방통행식 독선과 오만의 함정에 빠지는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도 커진 셈이다. 그러한 우려를 불식하는 일은 선거에 참패한 정부 및 여당의 실패학을 되새겨 이를 사전에 경계하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여당의 선거패배 원인은 정책적 무능과 다중적 혼란, 잦은 실언, 돌려막기식 인사로 요약하고 싶다. 우선적으로 자치단체장은 정책 결정과정에서의 합리성과 반응성을 보다 높여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및 조세정책은 그 정당성과 투명성에 있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들의 이견조율 과정이 일방적이었으며, 그에 대한 수요자들의 반응은 정반대여서 이번 선거결과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작금 발표된 저출산 대책의 경우도 재계가 사전 의견수렴이 없었다며 섭섭해하는 모습이다. 좋은 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는 데 보약으로 삼을 만하다. 이는 정책집행에 있어 사전적 갈등해소가 성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방정부의 정책결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라서 크고작은 지방정부의 정책도 갈등해소 모델을 적용해 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와 근거자료는 적확한지. 이해당사자들이 납득하는지, 재원은 있는지, 협상규범을 지키는지, 그리고 독선적 정책을 대체할 대안은 충분한지 따위를 따져야 할 것이다. 국민 없이 정치 없듯, 주민 없이 단체장도 없는 것이다. 둘째, 다중적 의미를 지닌 정체성의 혼란은 상대적으로 지방정부의 부담이 적다. 참여정부는 이념적 혼란과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공동체의식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에 선출된 230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은 한나라당 소속 단체장들이 거의 장악했다. 기초단체장의 무려 67%가 같은 색깔이자 광역의원의 76%, 기초의원의 56%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자체의 행정은 보다 구체성을 띠어 이같은 정치적 잣대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 대신 이웃 지자체간 공동이익을 위해 풀어야 할 님비현상에 대한 정책적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특히 중앙정부와의 충돌시 정치적 해결보다는 행정논리로 풀어가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 민심이반에 정서적 악영향을 끼친 정부와 여당 지도자들의 실언과 끼리끼리식 인사는 자치단체장이 되새겨야 할 리더십 항목이다. 지방자치 12년이 됐지만 가장 미흡한 대목으로 단체장의 자질부족을 꼽는 어느 전문가의 지적에 필자도 동의한다. 이번 단체장은 정치바람 탓에 어느 때보다 이같은 경향이 농후하다. 기존의 공천과정과 선거운동은 물론 공약의 실천과 후속인사에서 단체장들은 리더십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시대상황은 더더욱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책을 조율, 추진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행정의 수요자인 주민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의 요건을 갖추길 권하고 싶다. 특히 서번트의 뜻을 음미할 만하다. 즉 스칼라십, 이그잼플, 리스폰서빌리티, 비전, 액티튜드, 뉴, 팀워크로 풀이된다. 주민을 받들고 솔선수범하는 것을 단체장의 으뜸 덕목으로 삼을 일이다. 박선화 지방자치뉴스부장 pshnoq@seoul.co.kr
  • 청소년 눈높이서 본 동성애

    ‘청소년의 시각에서 성(性)을 바라본다.’ 지상파TV들이 주말마다 방송하는 시청자 프로그램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성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지만 지상파에서 이같은 프로그램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성교육 전문가의 특강 정도가 있었지만 청소년들은 아직도 성 관련 정보에 목말라한다. 캐이블·위성채널 Mnet이 3개월째 방송하고 있는 청소년 성교육 프로그램 ‘성교육닷컴’(매주 금요일 오후 6시)은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고민하는 성 관련 이슈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끈다. 청소년들이 직접 출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전문가들의 시각을 곁들여 청소년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다루기 시작한 ‘청소년의 동성애’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동성애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담았다. 영화 등에서 은유적으로 다룬 동성애와 달리, 청소년 주인공 한 명이 동성애자 역할을 맡아 그들에게 가해지는 학교 폭력 실태 등도 보여준다. 또 프로그램 사이트(www.sungkyo6.com)에 올려진 댓글을 통해 청소년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혼란 등을 들여다보면서 동성애에 대한 투표와 토론, 인식조사도 벌였다. 이와 함께 학생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현장의 시각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함께 보여준다. 성의학 전문의 강동우 박사는 “‘동성애 현상’과 달리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며 교정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종연 PD는 “동성애를 문제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다뤄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인정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은 ‘성경험’‘콘돔’‘가슴크기’‘스킨십’‘데이트강간’ 등 청소년들이 실제 고민하는 이슈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올바른 상식, 대처방안 등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앞으로는 성에 대한 이슈와 함께 사랑·우정·입시 등 다양한 고민들도 청소년의 시각으로 다룰 예정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정권 심판론’ 표심 싹쓸이

    2년전 총선 당시 탄핵바람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뼈아픈 역풍으로 되돌아왔다. 전통적으로 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방선거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집권 여당의 유례없는 몰락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굳이 정치공학적 전망에 기대지 않더라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피할 수 없는 명제로 떠오를 정도다. ●먹혀든 ‘정권 심판론’ 여당 참패의 원인 진단은 종적·횡적으로 다양할 수 있다. 민주당의 분당으로 인한 호남표의 분산, 지지부진한 남북관계, 최근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는 국민의 보수성향화, 불안한 경제지표, 탄핵사태 이후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했던 여당에 대한 여론의 견제 심리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권 심판론’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참여정부의 오만과 독선, 때로는 무능과 미숙함이 유권자들을 실망시키는 수준을 넘어 등을 돌리게 할 정도라는 것이다. 반대파를 포용하지 못하는 독단적인 개혁 지상주의, 여권내 386 참모들의 비현실적 아마추어리즘, 입으로는 분배와 서민을 외치면서도, 몸은 신자유주의에 맡기는 이념과 정책의 모호성, 노동문제나 복지 정책에서의 일관성있는 정체성 부재, 정치꼼수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정략적 태도 등이 집권 여당을 냉혹한 심판대에 세웠다는 해석이다. 여권 내부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참패 원인을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악재나 정치적 함수관계가 아니라 ‘근본’의 실종에서 찾아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당이 교훈을 살릴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의 자체 진단에서도 이같은 인식이 드러난다. 우리당은 지난 25일 대국민 호소문에서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국민이 우리를 버린다는 냉엄한 현실”,“여론이 차가운 적이 된 것은 우리당의 잘못”이라는 표현으로 ‘뒤늦게’ 자성했다. 여권 관계자는 “진정성은 있지만 묵직함이 없는 대통령,‘나홀로’ 잘난 체하는 ‘탄돌이’(탄핵사태로 배지를 손쉽게 단 여당의원)에게 염증을 느껴온 여론이 이번 선거를 정점으로 분출된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의 분석도 다르지 않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한나라당 강풍의 출발점은 정권 심판론”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민생을 돌보지 않는 참여정부 3년의 ‘중간평가’로 몰고간 전략이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선거전 종반에 터진 박근혜 대표의 피습에 따른 부동층의 동정표 유발과 지지층의 결집 심화 효과도 막판 굳히기에 한몫했다는 자평이다.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의 표현대로 “여당의 살길은 ‘처음처럼’ 중도개혁 노선과 남북관계 발전에 매진하는 것밖에 없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현실 정치와 정책으로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집권여당의 몰락은 ‘지금부터 시작’일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박찬구 박지연기자 ckpark@seoul.co.kr
  • ‘민주통합·親盧신당’ 與분화 위기

    ‘민주통합·親盧신당’ 與분화 위기

    ‘5·31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이 요동칠 기세다. 열린우리당은 ‘참패 책임론’이 ‘정계 개편론’과 맞물리면서 빅뱅 가능성에 노출된 상황이다. 승기를 잡은 한나라당 역시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도부와 소장파, 주요 대선주자 사이의 ‘기싸움’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여야 모두 ‘정계개편 쓰나미’에 휘말릴 공산이 적지 않다. ●대연합론과 동서 통합론의 격돌 열린우리당 내부는 “현재의 여당 체제로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김두관 최고위원 등 친노(親盧) 그룹을 중심으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경우 극심한 내홍에 빠질 가능성이 상존한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개혁세력 대연합’이 뇌관이다. 정 의장은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호남 등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을 노리는 ‘대연합론’ 추진 의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영남권에 기반을 둔 친노 세력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힘든 상황이다. 친노세력들은 호남에 국한시키는 ‘서부 벨트구축 전략’이 지역주의 구도극복에 한계가 있고, 개혁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연장선상에서 ‘동서 연합론’의 독자 노선을 모색할 경우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제3후보 앞세운 신당창당 가능성 서울시장 강금실 후보나 경기도지사 진대제 후보 등 참신한 인물군들을 대거 수혈하는 ‘새판짜기’ 시나리오도 흘러나온다. 정치권에선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이윈컴(정치컨설팅회사) 김능구 대표는 “노 대통령이 민심을 받아들인다는 명분으로 제3의 후보를 앞세워 이번 지방선거에 나선 강금실·진대제 후보 등의 친위세력과 함께 탈당, 신당 창당의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친노세력의 동서 연합론이 향후 한나라당내 일부 ‘진보세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정치권 빅뱅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또다른 배경이다. ●고건의 중도세력 대연합론 변수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전남·광주가 정치적 기반인 민주당의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고건 전 총리의 ‘몸값’ 역시 높아진 상황이다. 선거 기간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주장해 온 민주당은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고 전 총리와의 ‘연합’을 고리로 열린우리당을 향한 파상적인 공세 가능성이 크다. 고 전 총리는 특정 정파에 편입되기보다 ‘중도실용세력 대연합론’을 앞세워 정계개편의 ‘주역’이 되길 원한다.‘범국민 운동조직’을 모색할 경우 열린우리당·민주당 등 일부 세력의 합세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의 ‘정치 지형’도 간단치는 않다. 이번 선거의 최대 수혜자가 박근혜 대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피습사건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예비 대선주자 지지도 1위에 올라섰고 당내 위상도 수직 상승했다. 박 대표가 대표직을 그만두는 6월 중순과 이명박 서울시장·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임기가 끝나는 6월 말 이후 3자간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오일만 황장석기자 oilman@seoul.co.kr
  • 日초등교 “性정체성 찾을때까지”

    잘못된 성(性)으로 태어났다고 믿는 소년(7)을 일본 효고현의 한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으로 등록시켜 줬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4월 학교에 입학한 직후 이 소년은 성 정체성 장애라고 진단받았다. 학교측은 소년의 이름을 여학생 명단에 올리고 여학생 체육관, 화장실을 쓰도록 허락했다. 학교 수영장에서는 여자 수영복을 입는다. 학교와 소년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소년의 이름은 남성과 여성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측은 다른 학부모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학교측은 “우리는 학생이 건강한 방식으로 자라고 있다는 데 안심하고 있다.”며 “아직 다른 학부모나 소년의 부모로부터 항의는 없었으며, 소년이 사춘기에 이르면 결정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특이한 급우는 이지메를 당하고, 틀에 맞지 않는 학생은 용납하지 않는 일본 공교육 제도 하에서 이 학교의 결정은 놀라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무사시노 병원의 정신과의사 가쓰키 하리마는 “소년을 여학생으로 등록시킨 것은 적절했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문제가 복잡해질 것”이라며 “예를 들어 소년이 나이가 들면서 정체성 혼란이 사라져 남성이 되고 싶어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30] 그대는 ‘변태상사’

    ‘천사 같은 상사 열 명보다는 악마 같은 부하 한 명이 낫다.’는 말이 있다. 직장에서 상사랑 잘 지내기가 쉽지 않음을 빗댄 표현이지만 실제로 상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특히 수많은 사람 중에 유독 내게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정은 심각하다. 직장 내 ‘변태’ 상사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2030 직장인들의 하소연을 들어봤다. 회사원 A(27·여)씨는 먼저 다니던 직장에서 ‘콤플렉스 덩어리’ 상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만년 과장 한 사람이 명문대 출신의 A씨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A씨의 일이 많은 날에는 “일 끝난 사람들은 일찍 들어갑시다.”라고 하더니 일이 없어 일찍 퇴근해도 되겠다 싶은 날에는 “오늘 전원 야근입니다. 저녁 먹으러 갑시다.”라고 해 속을 뒤집어놨다. 말끝마다 “많이 배웠다는 게….”라고 토를 달았고 자유복장을 하는 토요일에 똑같이 청바지를 입고 와도 A씨에게만 “청바지를 입으니 더 작아 보인다.”며 인신공격을 해댔다. 영자신문사에 다녔던 B(30·여)씨도 콤플렉스가 심한 40대 중반 부장만 보면 ‘목을 졸라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업무 특성상 영어 능력이 필수지만 부장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교정을 본 기사가 오타 투성이에다 비문이어서 이중삼중으로 일처리를 해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부서내 6명 중 5명이 외국인이라 만만하게 말 통하는 사람이 B씨밖에 없었기 때문일까. 멀쩡한 기사를 몇번이고 다시 써오라는 건 기본이었고 유독 B씨에게만 복사와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결국 B씨는 3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원 C(27·여)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과장 때문에 전전긍긍한다.30대 중반인 과장은 사장 등 고위 간부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거의 미친 사람이 된다. 책상 위 물건들을 던지는 것은 물론 자기 뺨을 때리는 자해까지 한다. 때로는 혼자서 알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서류 결재 때는 ‘마귀할멈’으로 변한다. 는 “과장에게 결재 받으러 가는 길이 마치 사형수가 돼 형장으로 가는 ‘그린마일’을 밟는 기분”이라면서 “더 미운건 이른바 ‘빽’ 좋다는 그 과장에 빌붙어 아부하는 동료들”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에 다니는 D(28)씨는 과잉충성으로 부하 직원들을 괴롭히면서 아첨만 하는 상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체는 계속 굽실거리고 다리로는 연신 페달(부하직원)을 밟아대는 이른바 ‘자전거’ 형이다. 초고속 승진으로 40대 초반에 임원이 된 상무는 공휴일마다 회사를 위해서라며 출근을 강요한다. 특히 사장 앞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 구역질이 날 정도란다. 회식자리에서 특정 후배에게만 술을 먹이고 자기는 먹지 않는 이상한 상사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E(32)씨는 회식 때마다 바로 윗 기수 선배 때문에 힘이 든다. 선배는 E씨보다 나이가 한살 어리지만 늘 술자리에서 E씨를 옆에 앉히고 술을 권한다. 자기가 마시고 주는 것도 아니고 E씨가 다 마실 때를 기다려 잔에 계속 따라주는 식이다.E씨가 마시지 않고 있으면 옆에서 채근하기도 한다. 다른 후배들은 놔두고 유독 E씨에게만 술을 권한다.E씨는 “팀 안에서 그 선배보다 나이 많은 후배가 나뿐이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희롱으로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원조 변태’들도 여전하다. 영화 홍보회사에 다니는 6년차 직장인 F(25·여)씨는 직속 과장이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해오면 소름이 돋는다. 친절하고 다정다감해 직장에서 ‘젠틀맨’으로 소문난 과장이지만 F씨에겐 악몽같은 존재다. 과장은 “오늘 ○○씨 정말 예쁘게 하고 왔네”라며 직접 타 온 커피를 건네는 것과 동시에 슬쩍 손을 만진다. 함께 걸으며 어깨에 은근히 손을 올린다든가 허리를 슬쩍 감싸기도 한다. 참고 참았던 F씨는 최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이러면 성희롱으로 고발하겠다.”고 대놓고 말했다. 이후 과장은 그런 행동을 멈췄지만 최근에는 다른 여직원에게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김기용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변태상사 극복기 이미영(가명·29·여)씨는 매년 경쟁률이 치솟고 있는 공무원 시험에 2년 전에 합격했다. 이씨는 대학 때부터 교수들 사이에서 똑똑하기로 소문이 났었고 얼굴까지 예뻐 인기가 많았다. 이씨는 처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때엔 나름대로 포부가 컸지만 지금은 이상한 직장 상사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 상사는 매번 이씨만 지목해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 하루에도 몇번씩 그런다. 특히 이씨가 아침에 일찍 출근하면 상사는 출근하자마자 모닝 커피를 주문했다. 먼저 있던 상사는 손님이 오더라도 자기가 직접 음료수를 대접했고 여직원들에게 커피 심부름 따위는 시키지 않았다. 평소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하루를 시작했던 이씨는 상사의 모닝 커피 주문을 피하기 위해 요새 정시 출근을 고집하고 있다. 이씨는 상사에게 커피를 만들어 바쳐야 하는 모멸감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반 직장인들이 평소 접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며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회계사 황모(30)씨는 직장 선배가운데 “이 놈, 저 놈”수준의 표현을 예사로 쓰는 선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황씨 역시 결국 ‘회피 방법’을 선택했다. 최고 명문대라는 학교 나와서 어렵다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수재인 황씨는 나이 서른을 먹고서도 욕에 가까운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황씨는 결국 사적인 자리나 공적인 자리에서 선배에게 말을 걸지 않고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외면하는 작전이다. 이러다가 선배의 눈 밖에 나더라도 황씨는 별 걱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이모(27·여)씨는 사내에서 ‘남자 여우’로 소문난 사수에게 찍혀 1년 동안 고생했다. 결재서류의 문구 하나까지 트집잡는 통에 상사가 ‘이○○씨’라고 부르기만 해도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후배들은 골수까지 빨아 먹으면서 선배들에게는 알랑거리는 모습을 보니 남자가 여우짓을 하면 여자와는 비교할 것도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이씨는 참다 못해 종교에 의지하기로 했다. 상사가 히스테리를 부릴 때마다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달려가 “내가 제발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저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무릎꿇고 기도를 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기도하면서 상사를 저주했는데 그랬더니 잔소리가 점점 더 심해지더라. 그래서 차라리 용서하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금방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고 싱글벙글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만화같은 예술 속의 미국

    만화같은 예술 속의 미국

    팝아트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꽃을 활짝 피웠다. 팝아트에 적합한 일상적 상업문화속 소재들은 냉소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방식을 선호했던 유럽 미술계보다는 감각적 시각언어를 중시한 미국사회에 훨씬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팝아티스트들 중에서도 특히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존 웨슬리, 로버트 크럼은 매스미디어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만화의 형식과 기법을 빌려 특유의 ‘미국다운’ 표현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힌 작가들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세 작가의 작품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American Funnies’전은 이들 세 작가의 대표작들을 통해 미국 사회와 문화의 기류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31일까지. 리히텐슈타인은 만화가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명성을 얻고 미술사적 논의의 중심에 선 것은 저급예술로 치부되는 만화와 고급예술 사이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는 디즈니 만화에 열광한 그의 아들로부터 ‘아빠는 왜 이 만화처럼 잘 그릴 수 없는거야.’란 말을 듣고,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말풍선, 망점, 강력한 원색 등 만화에서 볼 수 있는 표현적 요소를 중시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적 삶, 미국의 역사, 미국의 대중문화속 일상적인 것들에 예술의 옷을 입힌다. 이번 전시에선 ‘Interior with Ajax’(1997),‘The Conversation’(1977),‘Surrealist’(1988) 등 평면회화와 입체 작품들을 선보인다. 존 웨슬리는 극히 사적인 주제를 만화적 표현기법을 차용하여 익살맞게 표현한 작가다. 웨슬리는 선형적이고 모듈화되지 않은 색채를 차용하여 발전시킨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기법에 재치있는 유머와 개성을 덧붙여 미국인의 정서와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웨슬리는 미국인의 정서·심리 표현 그는 팝문화의 직설적인 시각언어를 이용해 그 이미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원형들을 묘사해 왔다. 하지만 정체성, 인종, 그리고 특히 에로티시즘 등작품속 주제들은 상당히 진지하게 읽히는 게 특징이다.‘3Hessian Ensigns Crossing the Delaware with a Load of Pokr’ 등 평면회화 19점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로버트 크럼은 1960년대 말 등장한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부로 불렸던 작가다. 이미 5살때 ‘벅스버니’를 보면서 처음으로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그는 마약, 반전사상과 녹색사상, 섹스와 동성애 등 히피문화로 대변되는 1960년대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냉소적, 퇴폐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솔직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냈다.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02)734-6111.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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