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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트리천국’

    부산 ‘트리천국’

    ‘양치는 목자 트리, 에덴의 동산 트리, 스키 타는 산타 트리, 루돌프 사슴 트리….’ 올 겨울에 부산 시내가 온통 화려하고 환상적인 불빛으로 장식된다. 또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문화공연 등이 펼쳐져 방문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봄꽃축제나 해변문화제, 영화제 등 계절별 축제와 달리 마땅한 볼거리가 없는 겨울철에, 부산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트리 축제를 여는 것이다. 부산트리문화축제위원회는 다음달 1일부터 내년 1월3일까지 중구 광복동, 영도구 75광장과 고신대, 서구 송도해수욕장 등지에서 제1회 ‘부산트리문화제’를 연다고 12일 밝혔다. 부산역 광장과 부산시청 분수광장 등에도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대형 트리가 설치된다. ▲광복로 일대(광복동 입구∼창선치안센터)에는 공중 트리와 함께 에덴동산, 아기 예수의 탄생, 양치는 목자, 종려나무, 동방 박사, 포도원 이야기 등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20개의 테마존이 조성된다. ▲광복로 미화당 입구의 중앙무대 주변에는 디지털 트리가 화려하게 불을 밝힌다. ▲부산역~광복동(트리문화축제)~행복영도(희망의 빛축제)~고신대학(트리축제)~송도해변(성탄트리축제)으로 이어지는 ‘트리 관광코스’도 개발된다. 이건재 축제조직위원장은 “첫 트리문화제의 주제를 ‘온누리에 사랑의 빛을’으로 정했다.”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뜻과 함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산 도심상권을 부활시키자는 의미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축제기간인 한 달 내내 광복동 일대에서는 연극, 마술공연, 캐럴 대회 등 다양한 관람·체험 행사가 열린다. 총 1000만원의 상금과 부상을 준비한 거리공연에는 누구나 참여해 숨은 기량을 겨룰 수 있다. ‘사랑의 쌀’과 ‘사랑의 차’ 나눔행사도 함께 진행된다. 영도구 고신대에서는 캠퍼스 전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캠퍼스 안에 40여개 존을 설치, 1000만개 이상의 꼬마전구로 장식된 ‘산타와 루돌프’ 등 수백 개의 트리가 학교 안을 가득 채운다. 고신대 측은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외국인 고학생을 돕기 위한 자선바자와 크리스마스 콘서트, 야외 먹을거리 등 문화행사도 마련한다. 영도구는 동삼동 75광장과 봉래교차로 교통섬, 영선윗교차로 등에서 ‘희망의 빛축제’를 연다. 서구도 송도해수욕장 해변 일대에서 첫 트리 문화제를 열기 위한 준비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김익태 광복로 상인연합회 회장은 “이번 축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져 상권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인들도 적극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선덕여왕’ 된 ‘걸프렌즈’, 기발한 패러디 ‘코믹’

    ‘선덕여왕’ 된 ‘걸프렌즈’, 기발한 패러디 ‘코믹’

    MBC ‘선덕여왕’ 패러디한 유쾌한 섹시 코미디 ‘걸프렌즈’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9일 공개된 ‘걸프렌즈’의 티저 예고편은 각각 덕만, 미실, 천명으로 분한 강혜정, 한채영, 허이재가 유신으로 분한 배수빈의 처소에 들기 위해 뜨거운 난상 토론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깜찍함을 무기로 절대권력 진(한채영 분)에게 도전하는 송이(강혜정 분)와 섹시함으로 무장한 진(한채영 분) 그리고 그런 언니들을 우습게 보는 어린 보라(허이재 분)는 비장의 해결책으로 화투 대결을 펼친다. 자신의 침소로 들 여인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배수빈은 끝나지 않을 그녀들의 회의에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돌아오는 12월을 기약하기에 이른다. 특히 ‘걸프렌즈’ 티저예고편은 ‘선덕여왕’의 주옥같은 명대사를 ‘걸프렌즈’만의 코믹한 매력으로 각색해 눈길을 끈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쌍둥이를 낳으면 성골남자의 씨가 마른다)은 ‘성탄도래 성골남진’(크리스마스에 괜찮은 남자들을 만나기 힘들다는 한탄)으로 바뀐 것이 한 예. 사극에서 주로 진지한 역할을 맡았던 배수빈이 선보이는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 재치만점의 4자 성어들과 코믹한 해설이 돋보이는 ‘걸프렌즈’ 티저 예고편은 맥스무비에 공개된 지 이틀 만에 인기 동영상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재치 있는 아이디어와 코믹함을 앞세워 제작된 기발한 티저 예고편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걸프렌즈’는 오는 12월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 = 영화사아람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선덕여왕’ 된 강혜정·한채영 “병이 절로 생겨”

    ‘선덕여왕’ 된 강혜정·한채영 “병이 절로 생겨”

    배우 강혜정, 한채영, 허이재, 배수빈이 각각 MBC ‘선덕여왕’의 덕만, 미실, 천명, 유신으로 변신했다. 영화 ‘걸프렌즈’의 주연을 맡은 이들은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MBC 용인문화동산 세트장에서 ‘선덕여왕’을 패러디한 티저 예고편을 촬영했다. 이들은 ‘선덕여왕’에서 권력다툼을 벌이는 인물간의 갈등을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세 여자가 우정을 나누게 되는 과정을 그린 ‘걸프렌즈’와 접목시켜 표현해냈다. 이날 촬영 콘셉트는 궁궐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화백회의 원탁에 둘러앉은 세 사람이 대낮부터 열띤 공방을 벌인다는 설정이었다. 세 여자는 극중 배수빈의 처소에 들기 위해 각기 ‘깜찍 송이’(강혜정 분), ‘섹시 세진’(한채영 분), ‘처녀 보라’(허이재 분)라고 씌여진 패를 손에 쥐고 코믹한 신경전을 연출했다. 가장 무거운 가체를 얹은 한채영은 “드라마를 보며 미실의 스타일이 멋있어 좋아했다.”며 “체감으로 40kg 정도 되나보다. 내 등뼈로 받치고 있다. 강혜정과 허이재가 오늘 만큼 부러웠던 적은 없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강혜정 역시 “병이 절로 생기는 것 같다. 고현정 선배는 매일 이러고 살 것”이라고 너스레레를 떤 뒤 “드라마가 워낙 인기가 있어 패러디한 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티저 예고편은 성탄절 영화 개봉에 앞서 11월 초 일반에 공개된다. 사진 = 영화사아람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총기 구입 열풍 미국인들 이젠 “총알이 없어요”

    미국의 탄환 제조업체들이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공장을 돌리고 있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AP통신이 23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사격장 업자들이나 총기 거래업자,탄환 제조업자들은 역사적으로 이처럼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는 공급 능력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특히 권총에 장전되는 탄환의 경우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가 새로운 총기 소유를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일제히 사재기에 나서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오바마 정부 안에서 이런 움직임이 구체화되지 않고 있고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달 국립공원에서의 총기 휴대를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본사가 있는 ‘레밍턴 암스 컴퍼니’의 알 루소 대변인은 “야근을 밥먹듯이 하지만 수요를 못 대고 있다.“며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하는 조를 투입해 4교대로 가야 할 것 같다.이 바닥에서 30년 몸담았는데 이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총기 판매는 1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 늘기 시작해 취임 초기 몇달 동안 계속 늘어났다.연방수사국(FBI)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610만정의 총기가 새로 판매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6%가 치솟은 수치다.  특히 타격을 받는 이들은 사격을 스포츠로 즐기는 이들이다.국립사격스포츠연맹의 래리 킨 수석 부회장은 “탄환 없는 총은 종이 한 장만큼 하잘 것 없다.”고 말했다.사격선수들의 총알 부족은 연초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사용량 폭주 때문에 경찰들이 탄환 부족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와는 판이한 상황이다.  미국총기협회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보통 한 해에 70억발의 탄환을 구입하는데 지난해 갑자기 90억발로 뛰어올랐다.  뉴올리언스 외곽의 테리타운에서 ‘그레트나 건 워크스’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제이슨 그레고리(37)는 몇달 동안 개인무기고를 짓고 있는데 25정의 총기에 장전할 총알을 최소 1000발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그는 “’오바마 효과’라고 할 수 있다.”며 “민주당만 집권하면 으레 있는 일이다.클린턴과 오바마(집권기에)는 총기 통제를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며 총알 단속이 첫 조치가 될 것이다.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총알을) 재여놓으려고 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직까지 오바마 정부도,의회도 명백하게 총기 반대 깃발을 들지는 않고 있다.오바마 대통령은 수정헌법 수정 2조를 존중하지만 총기 관련 법률에 대한 “상식”을 지키고 싶다고 천명했다.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총기 부족 현상이 빚어지자 월마트에서는 고객 한 명이 구입할 수 있는 총알 양을 제한하고 있다.점포마다 다르고 총기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한 상자나 50발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리펀에 있는 ‘반우드 암스’의 영업 매니저 달라스 제트는 총알 부족 현상이 많이 수그러들었다면서도 45구경에 들어가는 총알은 여전히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그는 “이 분야에서 32년,이 회사에서 10년 있었지만 이런 현상은 없었다.”며 “성탄 시즌을 앞뒤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봄여름까지 이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플로리다주 탬파의 유통업자인 빅 그레치니우는 “한달에 총알 한 상자(500~1000발)를 구하면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쇼핑중독 할머니 죽음을 맞다…옷과 용품 밑에서

    쇼핑중독 할머니 죽음을 맞다…옷과 용품 밑에서

    지난 1월 영국의 쇼핑광 조앤 커네인(Joan Cunnane·당시 77)이 자신의 방갈로 안에서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런데 경찰과 함께 시신을 발견한 남자친구 로이 모란이 최근 스탁포트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그녀가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집안에는 온갖 쇼핑 물품으로 가득 들어차있었고 그동안 사들인 옷과 용품들이 시신을 뒤덮고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호주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이 30일 전했다.  그는 맨체스터 근처 히튼 머지에 있는 그녀의 방갈로를 다섯 차례나 방문한 끝에 주검을 찾아낼 수 있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은 지난해 성탄절 점심을 들면서였다.그는 나흘 뒤 그녀의 집을 처음 찾았는데 옆문이 벙긋 열려 있었지만 온갖 물품들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잔뜩 쌓여있어 집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두 차례나 더 찾았지만 역시 그녀의 인기척을 확인할 수 없었던 모란은 1월6일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함께 네 번째로 그녀의 집을 찾았을 때에도 엄청나게 많은 개인 물품과 서류들 때문에 집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다음날 온갖 장비를 동원한 경찰은 물품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는 길고 지루한 작업 끝에 침실에서 눈 감은 그녀의 주검을 발견했다.  사인은 폐렴과 암이 겹쳐진 것으로 추정됐고 그녀가 쓰러진 위로 다른 물품들이 쏟아져내린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이들 옷과 물품이 곧바로 사망의 원인이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모란에 따르면 그녀의 쇼핑 집착이 시작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평소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청년들이 집안에 들어와 분탕질을 친 다음부터였다.청년들은 어떤 때는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렸다.그러자 그녀는 한동안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밤 늦게야 돌아오는 등 이 문제로 골치를 앓아왔다.그러고는 집안 구석구석을 쇼핑 물품으로 채우기 시작한 것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그녀가 이렇듯 쇼핑에 집착했다는 사실은 모란처럼 아주 친한 친구 외에는 알지 못했다.그녀는 방문객들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았다.  결국 쇼핑 물품으로 둘러싸인 성 안에서 홀로 고립된 채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이 외로운 영혼을 위한 추모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내가 못하는 것도 잘 하도록 격려해 주셨죠”

    “내가 못하는 것도 잘 하도록 격려해 주셨죠”

    “저희 아버지, 최고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사진 왼쪽·53)의 성공 뒤에는 그의 최고의 멘토인 아버지 빌 게이츠 서(오른쪽·83)가 있었다. 두 사람은 현재 275억달러(약 35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자선기구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회장이다. 작년 6월 MS에서 물러난 빌 게이츠와 1998년 시애틀의 유명 법률회사 프레스톤 게이츠&엘리스에서 물러난 아버지. 이젠 부자가 함께 어깨를 겯고 역사상 최대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제2의 인생’을 바치고 있다. CNN머니는 21일(현지시간) 수십년 간 서로 동지애 어린 조언을 나눠온 이 ‘특별한 부자’를 조명했다.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하며 생각 나눠 빌 게이츠는 아버지가 건넨 최고의 조언으로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하도록 격려해 준 일”을 꼽았다. “부모님들은 제가 어렸을 때 밖에 나가서 수영, 축구, 풋볼을 하도록 했어요. 그땐 왜 그러는지 몰랐어요. 부모님은 제가 편한 일만 고집하는 대신, 잘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는 걸 깨닫게 하고 리더십을 키우게 하려는 것이었죠. 정말 환상적인 조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요일 가족 만찬의 중요성과 성탄절에 같은 잠옷을 입는 것 등 가족의 전통을 일구는 데 애썼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가르침을 높이 샀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고 저녁식사를 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전통은 정말 큰 차이를 만들어 냈어요.” 여느 아버지와 아들처럼 불편한 순간도 있었다. 빌 게이츠 자신도 “내가 키우기 편한 아이는 아니었다.”고 자인했다. 하고 싶은 일은 고집을 세워서라도 기필코 해야 하는 천성 때문이었다. 아들은 특히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겠다던 자신의 결정에 아버지가 흔쾌히 찬성해준 일을 잊지 못했다.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고 사정을 알아 보고는 ‘그래, 네가 가서 해볼 만한 일이구나.’하셨죠. 부모님들은 진실로 제 편이셨어요.” 아버지의 믿음은 그가 명문 하버드대를 그만둘 때도 이어졌다. ●자식의 품위 떨어뜨리지 않도록 노력 아버지 게이츠는 화목한 가정을 이뤄온 비결을 귀띔했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서 연 ‘부모교육’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강조한 게 자식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죠. 자녀와의 관계에서 이 말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다면 정말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어요. 나는 내 아들의 열렬한 팬입니다. 아들은 훌륭한 시민인 동시에 탁월한 사업가예요.”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노원 소각장 다이옥신 배출 줄어

    노원 소각장 다이옥신 배출 줄어

    다이옥신 배출 등으로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던 서울 노원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이 시설 개선공사를 통해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시설로 탈바꿈했다. 서울시는 노원구 상계동 노원자원회수시설에 134억원을 들여 소각용량을 늘리고 오염물질을 줄이는 친환경 성능개선 시설공사를 오는 30일 끝마친다고 21일 밝혔다. 이 시설은 1997년 준공 당시부터 다이옥신 등 오염물질 배출로 10여년간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오던 곳이다. 서울 동북권 지역의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염물질 배출 저감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한때 다른 자치구의 쓰레기 반입이 중단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성능개선공사에 착수했다. 서울시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포항공대 환경연구소, 환경관리공단 환경분석연구소 등 공인 시험연구소의 조사 결과 이곳의 다이옥신 등 29개 오염물질 배출량이 모두 법적 허용치 이하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던 다이옥신의 경우 시설 내에 백필터와 활성탄주입설비 등을 설치해 배출량이 법적 허용기준의 20분의1 이하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무촉매 탈질장치(SNCR)와 선택적촉매 탈질장치(SCR)를 만들어 대기오염의 주범인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을 크게 줄였으며, 분진제거 장치와 보일러 커튼월도 신설해 소각로 용량도 13.6% 늘렸다. 여기에 비산재이송장치 및 폐수처리시설도 개선해 자원회수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고 시는 덧붙였다. 서울시는 여기에 시설 공사 과정에서 시 최초로 주민 명예감독관제를 시행, 사업 계획 단계부터 주민들과의 협의내용을 공사에 반영하는 ‘열린 시정’을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주민 협의를 거쳐 현재 노원·도봉·강북·중랑구 일대에 국한된 노원자원회수시설의 쓰레기 처리지역을 동대문구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인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자원회수시설은 주민 건강 및 복지와 직결돼 있는 만큼 앞으로도 주민들과의 성실하고 투명한 협의를 거쳐 주민친화적 시설로 만들어 가겠다.”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튀는 먹을거리 숨은 특허경쟁

    특허 기술을 활용한 먹을거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경쟁 제품과 차별화 전략을 펴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분석된다. 소주·커피 등 기호품뿐 아니라 김치·쌀·막걸리 등 전통식품에서도 특허 기술이 빛을 발하고 있다. 한성식품은 낮은 염도로 브로콜리를 절여 만든 샐러드 개념의 ‘브로콜리 김치’ 특허를 최근 받았다고 14일 밝혔다. 이 회사는 이밖에 미니롤보쌈 김치·미역 김치·깻잎 양배추말이 김치·건블록 김치 등 20종의 제조방법 특허를 보유했다. 한국식품연구원이 전남 무안군의 지원을 받아 14개월 동안 연구해 개발한 ‘절당미’를 생산하는 혈당강하쌀 제조방법도 특허를 획득했다. 혈당질환자를 위한 기능성 쌀로, 일반인이 잡곡과 혼합해 먹어도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류 업계도 특허 기술을 앞세운 차별화 전략을 편다. 진로 소주 ‘J’는 천연 대나무숯 여과기능을 높이는 활성탄소 필터 정제기술로, 롯데주류BG의 ‘처음처럼’은 알칼리 환원공법으로 특허를 획득했다. 국순당은 샴페인 발효 방식을 접목한 특허기술을 활용, 효모의 활성을 조절하고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시켜 유통기한을 한 달까지 늘린 생막걸리를 출시했다. 커피와 요구르트도 특허 경쟁에서 빠지지 않는다. 매일유업은 ‘카페라떼 에스프레소&젤’을 만들 때 에스프레소를 까페라떼 안에서 순간 겔화 시키는 BGP공법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 남양유업의 ‘떠먹는 불가리스’도 기존 발효 공법과 달리 장기저온발효기술로 부드러운 맛을 강화, 특허를 받았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삼성전자, 국내 최저소음의 1석3조 청소기 출시

    삼성전자가 2009년형 청소기 신모델 9종을 선보였다.  이 진공청소기는 삼성 고유의 저소음 설계를 기존보다 발전시켜 전화 통화나 TV 시청을 하면서도 청소가 가능하도록 소음의 수치를 사이클론 방식에서 국내 최저 수준인 58데시벨(dB)까지 낮췄다.  특히 이 신제품은 새로운 먼지통 설계로 흡입력까지 끌어올려 소비자들의 감성과 사용 편의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도록 했으며,청소시 배출되는 공기를 내보낼 때 정화해 주는 필터 시스템을 강화했다.  먼지통 뚜껑을 화산 분출구 모양으로 설계한 ‘볼케이노 사이클론’은 진공청소기 내부에서 진공을 발생시켜 먼지와 공기를 함께 빨아들인 이후 청소기 먼지통 상부에서 최대 9개의 크고 작은 회오리가 한번 더 생겨 빨아들인 먼지와 공기를 확실하게 분리한다.  볼케이노 사이클론은 진공청소기를 초기에 사용했을 때의 높은 흡입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한편 청소기 내부의 필터가 먼지로 인해 막히는 것을 방지한다.  또 먼지통 모양을 변화시키면서 기존대비 20% 정도 먼지통 내부 공간이 확보돼 청소를 자주해야하는 소비자의 불편함을 덜었다.  이 신제품은 곰팡이, 바이러스, 세균이 침투하기 힘든 벌집모양으로 미세먼지 집진, 탈취, 향균, 제균에 도움을 주는 헤파 13필터, 활성탄 필터,제올라이트, 은나노 코팅의 허니컴 4중 필터를 채용했다.  박종환 삼성전자 키친솔루션사업팀 상무는 “2009년 더욱 강력해진 사이클론과 최저소음 기술을 구현한 신제품으로 청소기 시장을 압도적으로 이끌어 가겠다.”고 말했다.  출고가는 20만~36만원선이다.한편 삼성전자는 청소한 시간과 면적 등 청소상황에 대해 알려 주는 음성안내 기능을 탑재한 60만원대 로봇청소기 신모델도 동시에 출시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물은 미래다] 분말활성탄처리→혼화→응집→침전→여과→소독

    ■ 흙탕물이 수돗물 되기까지 충북 청주시에 있는 청주정수장은 전국의 여느 정수장에는 없는 별(★) 다섯 개가 있다. 전세계 수질기준으로 통용되는 미국수도협회(AWWA)에서 ‘정수장 운영관리 프로그램 시범 운영 및 최고 수질’ 분야의 인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고 수질 인증(★★★★★)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에서도 처음이다. 세계최고 수준의 수질을 유지,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청주정수장은 대청댐이 취수원으로 매일 생활용수 13만㎥와 공업용수 6만 1000㎥를 정수하고 있다. 정수된 물은 청주시, 청원군, 충남 연기군 등 주민 46만명에게 공급된다. 수돗물 정수는 일반적으로 분말활성탄처리-혼화-응집-침전-여과-소독의 일반적인 과정을 거친다. 분말활성탄을 물에 타 유기물을 제거한 뒤, 불순물을 눈에 보일 정도의 알갱이로 모은다(혼화·응집). 그 다음 3~4시간 물을 가만히 두면 알갱이가 바닥에 가라앉고(침전), 남은 물을 모래 등을 통해 걸러 내면(여과) 정수는 끝난다. 여기에 염소 등 소독제를 타는데 수도관을 타고 배달되는 동안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가정의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었을 때는 염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청주정수장 김영도 운영처장은 “정수되기 전 원수의 수질은 날씨, 주변환경, 토질에 따라 차이가 크다. 청주정수장은 표준 정수처리 공정을 거치고 있지만, 원수가 심하게 오염될 경우 고도처리를 거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청주정수장에만 있는 또 하나의 자랑은 ‘병물공장’이다. 정수된 물을 병에 담아 식음용으로 공급하는 것인데 판매는 하지 않는다. 올 초 강원 태백 지역 물가뭄이 심했을 때 수공의 병물이 지역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에만 770만병이 공급됐다. 병물 생산공장 신재형 과장은 “경남 밀양에도 생산공장을 지어 올 6월쯤에는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에 병물 공급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병물생산공장은 100평 남짓으로 규모는 작은 편이다. 2개 생산라인에서 분당 150병, 하루 최고 4만 5000병을 생산할 수 있다. 청주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천리포수목원 39년만에 일반 개방

    천리포수목원 39년만에 일반 개방

    국내 최초 민간수목원으로 가장 많은 종류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는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이 1일부터 일반에 처음 개방된다. 천리포수목원은 회원에 한해 개방하던 수목원을 창립기념일(7월14일)과 설날·추석·성탄절 등 공휴일을 제외하고 사계절 내내 일반인에게 개방한다고 31일 밝혔다. 개방지역은 본원 일대로 제한된다. 4~10월 개방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동계는 오후 4시)다. 입장료는 여름철 평일 7000원, 주말 8000원이다. 겨울철은 5000원으로 동일하다. 수목원 관계자는 “기름 유출 피해를 본 태안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일반인에게 자연과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개방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수목원은 한국에 귀화한 고 민병갈(미국명 칼 페리스 밀러·1921~2002)씨가 1970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만들었다. 그는 미 군정 때인 1945년 통역관으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뒤 제대 후인 47년 한국을 다시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천리포해수욕장 인근인 이곳에 정착했다. 62만㎡에 조성된 해발 120m의 수목원에는 국내외 1만 5000여종의 나무와 꽃이 자라고 있다. 목련만 400종에 이른다. 1997년에는 이곳에서 세계목련학회가 열렸다. ‘귀신 쫓는 나무’로 알려진 호랑가시나무 등 희귀 식물도 많아 이 수목원은 일찌감치 ‘나무와 꽃의 보고(寶庫)’로 자리잡았다. 독신으로 살면서 50년간 사재를 털어 수목원을 가꿔온 고인은 1979년 이름을 ‘민병갈’로 바꾸고 한국에 귀화했다. 그의 묘도 이 수목원에 있다. 국제수목학회는 2000년 아시아 최초로 이곳을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했고, 산림청은 2005년 3월 민씨를 ‘숲의 명예전당’ 헌정 대상자로 선정했다. 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아버지!”…22년 생이별한 부자, 한 직장서 만나

    20년 이상 생이별을 했던 브라질의 부자가 한 회사에서 근무하다 만난 기막힌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10일(이하 현지시간) 브라질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한 직장에서 근무하다 우연히 부자 관계를 확인한 사람은 브라질 남부 포르토 알레그레의 한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루시엔 레이스(54)와 루시엔 리마(22). 브라질에선 흔하지 않은 이름(루시엔)을 가진 두 사람은 지난해 우연히 이름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다 루시엔 리마가 루시엔 레이스의 아들인 것을 확인했다. 아버지 루시엔 레이스는 “흔치 않은 이름이라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는가?” 라고 물었는데 “어머니가 그 이름을 택했다.”는 대답을 듣고 호기심이 커져 계속 대화를 나누다보니 22년 전 이별한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아들 루시엔 리마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나를 가졌을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만나 헤어졌다고 설명해 주셨다.”면서 “아버지가 나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고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들 루시엔 리마가 어머니의 사진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면서 분명하게 확인됐다.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의 핏줄을 잉태한 여성이었다고 루시엔 레이스가 확인한 것이다. 루시엔 리마는 “아버지라는 것이 확실히 드러났고, 믿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미 지난해 성탄절을 함께 보내는 등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루시엔 레이스는 “20년 이상 이별해 있어 아기 때 안아주지도 못했고 걸음마도 가르쳐주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아버지로써 역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이명박 대통령 추도사

    오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큰 기둥이셨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 주신 큰 어른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려고 합니다. 추기경님의 선종을 온 국민과 함께 깊이 애도합니다. 작년 성탄절 날 저희 부부가 찾아뵙고 여러 말씀을 나눌 수 있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습니다. 힘들어 찾아뵐 때마다 기도해 주시고 용기와 격려를 불어넣어 주신 추기경님의 숨결을 지금도 느낄 수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가톨릭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하셨습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소외된 노동자들 편에서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고 행동하셨고, 민주화시대에는 국민의 편에서 권위주의에 맞서 정권의 압박을 온몸으로 막아내셨습니다. ‘네 편 아니면 내 편’이라는 이분법이 팽배한 요즘에는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것을 가르치셨고, 그러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이 오만해지거나 부패할 때에는 준엄히 꾸짖으셨고, 시류에 휩쓸려 흔들릴 때에는 가야 할 바른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소중한 분을 데려가시면서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추기경님이 남기고 간 뜻을 받들어 서로 사랑합시다. 추기경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추기경 떠난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의 운구차가 장지로 떠난 20일 정오 명동성당은 5일만에 휑뎅그렁한 회색 콘크리트 바닥을 드러냈다. 썰물처럼 조문객이 빠져나간 그곳에는 김 추기경을 보낸 안타까움이 남아 있었다. “털장갑 만들다가 이제서야 왔는데 벌써 가셨다니요….”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이기수(56)씨는 오후 2시 텅빈 성당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겨울 대목이라 도저히 시간을 못 내다가 겨우 왔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이씨와 부인 김말연(54)씨는 도통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어려운 이웃을 제 일처럼 돕는 추기경의 모습에 감동받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우리도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왔다.”며 이씨는 눈물을 훔쳤다. 뇌성마비 2급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권순욱(35·서울 방화동)씨는 바리케이드와 인파에 막혀 운구차량을 따라갈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차가 떠난 방향으로 손만 흔들 뿐이었다. 5년 전부터 성탄절이면 명동성당에 와서 생전에 세 번 김 추기경을 뵈었다는 권씨는 “먼 발치였지만 추기경님은 정말 온화하신 분이셨다.”고 했다. 장례미사에 참석하지 못했어도 추기경을 향한 안타까움과 존경은 다름이 없었다. 김 추기경과 인연을 맺고 노숙인 보호 활동을 해온 사랑의 나눔회는 인파가 몰리는 곳에 단체가 움직이기 힘들어 미사 참석을 포기했다. 하지만 회원들은 이날 함께 모여 TV중계로 장례미사를 참관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낮은 곳 임하신 추기경님 따라 바보 되렵니다”

    “낮은 곳 임하신 추기경님 따라 바보 되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존중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한 이유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고 싶어한 유명인사는 많았지만 정작 김 추기경이 만나려고 했던 사람은 다른 데 있었다. 철거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사형수 등 사회에서 소외된 ‘어린 양’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것도 항상 우선순위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벗이었던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이들의 소회는 남다르다. ●철거민 김진홍(63·서울 도봉구)씨 “1987년 서울 상계동에서 강제철거를 당했다. 추기경님이 직접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 주시겠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조합 사람들이 그날 밤 미사 드릴 마당을 포클레인으로 파버렸다. 다음날 오전 도착한 추기경님은 ‘이대로 미사를 드리자.’고 하셨다. ‘가난한 철거민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급박하고 고달프다.’며 눈물을 보이시고는 우리를 불러 직접 발을 씻겨 주셨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노숙인 보호 활동가 서정기(62)씨 “경기 화성 바오로의 집에서 일하고 있다. 김 추기경은 1990년 크리스마스 이래 4년 동안 성탄 미사를 직접 집전해 주셨다. 그때 주변에 있는 노숙인들이 겨울에 많이 얼어 죽었다. 우리가 무료 급식소를 만들고 싶어 많이 노력했는데 추기경님이 당시 서울시장인 고건 전 국무총리에게 말씀해 주셔서 급식소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추기경님이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믿고 있다. 하늘에서도 우리들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 주실 거다.” ●택시기사 이계천(64·서울 도봉구)씨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취지에서 1984년 택시기사들이 ‘가톨릭 운전기사 사도회’를 만들었다. 장애인을 위해 차량봉사도 하고, 집수리와 도배 봉사를 주로 했다. 그해 김 추기경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다. ‘훌륭한 일을 한다.’면서 우리에게 ‘핸들 잡는 예수’라는 별명도 지어 주셨다. 1998년 내 아버지가 돌아 가시기 전 추기경님이 직접 찾아 와서 기도를 해 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운명을 맞는다. 아버님은 고통없이 지금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 계실 것’이라는 얘기가 큰 위로가 됐다. ” ●지체장애자 김덕임(79·경기 파주)씨 “나는 1991년부터 ‘애덕의 집’이라는 지체장애인을 위한 시설에 살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지능이 낮아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굼뜨다. 우리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추기경님은 1981년 이 시설이 생긴 이후부터 계속 방문해 주셨다. 맛있는 음식도 싸 오시고 우리와 스스럼없이 농담도 하셨다. 2005년에는 우리가 보고 싶다고 파주 근처까지 왔다가 도저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차를 돌리신 적도 있다. 지금도 매달 후원금을 주신다. ‘항상 착하게 살아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항상 새기며 살고 있다.” 최재헌 박성국기자 goseoul@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 다툼·갈등의 세상 묵묵히 품어 내-김지길 목사 김수환 추기경은 그저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 속의 친구처럼, 때로는 듬직한 동지처럼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1923년생이고 김 추기경은 1922년생이니 나이도 비슷했고, 비록 교파는 달랐어도 신을 섬긴다는 입장에서도 그러했다. 게다가 민주화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을 헤쳐온 연대 의식도 컸을 것이다. 참 말없고 묵묵한 분이었다.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늘 남의 이야기를 듣는 축이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이도, 기대에 못미침을 불평하는 이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도 모두 한 품에 넉넉히 안아냈다. 그날도 그랬다. 그날 나는 명동성당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과 마주 앉았다. 아마도 1986년 남짓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개신교도 천주교도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운동을 펴나가던 상황이었다. 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으로서 김 추기경을 만나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자고 제안했다. 당시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몇 차례씩 성명서를 내며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을 때였지만 각자의 영역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단결과 연대가 절실했다. 우리의 힘과 목소리를 더욱 키우기 위해 같은 목소리를, 같이 담아서 내보자는 취지로 명동성당을 찾은 것이고 김 추기경에게 이같이 제안한 것이었다. 이날 김 추기경은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화한 표정으로 긍정의 미소를 보내며 공동성명을 함께 내자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공동성명을 내지는 못했다. 비슷한 목소리로 각자 성명서를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당시 추기경 비서실에서 공동 성명의 형식을 반대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화가 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이미 김 추기경에게 충분히 마음이 전달됐고, 김 추기경의 마음을 전달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그이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1987년 6월 들불처럼 번졌던 뜨거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도, 투쟁의 방향을 고민하는 회의석상에서도 김 추기경은 없었다. 여기저기 나다니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어른의 역할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이자 동지로서 늘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TV를 통해 선종 소식을 들었다. ‘아, 먼저 갔구나.’하는 생각이 맨먼저 들었다.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편안하게 갔으니 다행스럽다. 다툼과 갈등, 미움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몸으로 보여줬던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가 새삼 다시 울려퍼질 수 있게 된 점도 다행스럽다. 참 존경스러운 분을 이제는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돼 울적하다.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 만나게 되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 KNCC 회장> ● 낮은 곳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유시춘 작가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과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가위눌려 지내던 이 척박한 우리 현대사의 한가운데 늘 계셨다. 부끄러운 ‘유신’왕정 시대에 민주공화국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 자유와 권리가, 그 아름다운 헌법의 가치가 한낱 휴지처럼 구겨박혔을 때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들은 ‘진리와 양심을 외면하고 거역하는 집권자의 죄악’을 직시하고자 분연히 일어났다. 그때부터 명동은 민주 회복과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이땅의 가장 낮은 곳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들의 등대이자 구난처가 되었다. 그러다가 ‘폭도’의 누명을 쓴 채 거처할 곳 없이 황량한 거리를 배회하던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과 그 가족들이 처음으로 기댄 곳도 김 추기경이었다. 8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압정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캠퍼스마다 성난 물결이 넘치고 감옥이 양심수들로 그득했을 때, 우리는 명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민주화의 들불로 타오르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집회와 농성은 명동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명동의 어르신인 당신의 허락을 얻지 않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계셨으므로 그곳은 바로 우리의 ‘진지’라고 지레 믿었다. 1986년 찌는 듯한 어느 더운 날에 우리는 ‘부천서 성고문사건 규탄연대집회’의 장소를 구하기 위해 김 추기경을 찾았다. 그때 동석한 한 야당 지도자를 향해 김 추기경께서는 ‘국민이 선출해 주었으면 국회에서 잘해야지.’하시며 마뜩잖아하셨다. 우리는 그 말씀조차도 암묵적 동의와 격려로 알고 집회를 강행했고 그곳은 수라장이 되었다. 하여, 드디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그 ‘명동농성’이 있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명동은 김 추기경이 있어 어두운 시대의 지친 영혼들이 쉴 수 있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고 절절한 소망을 외치던 그 수많은 수녀님과 신부님들의 행진을 우리 역사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의 견고한 벽을 뚫고 중생의 번뇌로 출렁이는 사바세계로 현현한 순간이었다. 그때 교회는 진실로 화려하고 장중한 교회건물로부터 그리고 성탄절마다 소리내는 자선냄비로부터 해방되어 이땅의 고난 속에서 스스로 거듭난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이 땅의 모든 양심, 고해에 허덕이며 내일에의 꿈을 잃지 않은 고달픈 중생들에게 이제 김수환 추기경은 영원한 ‘이데아’요, ‘역사’요, ‘대중의 의지를 대표하는 위인’이었다. 우리 시대는 아직 위인을 부르고 있다. 빈자의 절규는 하늘을 찌르는데 권력은 자꾸 뒷걸음치려 한다. 바라건대 부디 생전처럼 높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고 ‘아무 곳에나 잘자라는 앉은뱅이 민들레로 돋아/ 타는 마음으로 이 땅을 지켜보다/ 꽃 다하면 풀씨로 산천 떠돌며’ 이 땅을 굽어 살피시기를. <전 국가인권위원>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어록으로 본 발자취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1987년 1월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질주범으로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그 범인을 용서한다는데 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까? (1993년 평화방송·평화신문 새해 특별대담) ●그럼 사는 길은 제가 볼 때는 자기를 여는 겁니다. 그것만이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되고요. 그래서 북한이 정말 필요한 건 지금 미국이라든지 일본하고 수교를 하는 거라고 봅니다.(1994년 평화방송 신년대담에서 북한 핵문제 청산과 개방, 북한과 미국·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이야기하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1996년 평화방송 신년 특별대담 중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세계 앞에 한국이, 한국 사람들이 고개를 들 수 없는 아주 부끄러운 일이에요. (한참을 우심) 하느님이, 평소에 느꼈지만 하느님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 너무 좋은 머리를 주셨어요. 그런데 그 좋은 머리를 좋게 쓰지 않고 그렇게 했으니…(2005년 12월 평화방송 성탄 특별대담에서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언급하며)
  •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 안의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긴 ‘큰 횃불’로 인정받는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던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를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였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양심의 울림과 행동을 끈질기게 이어갔던 투사였다. ●박정희 독재정권 비판 시국 메시지 김수환 추기경이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삼도직물 사건부터. 당시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을 놓고 추기경은 주교단 공동성명을 통해 교회가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정당함을 전격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 차원에서 낸 최초의 성명서로 기록된다.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와 인권에 개입하기 시작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과 유신헌법 선포, 긴급조치 등 독재와 부정부패가 극성일 무렵 성탄절 미사를 통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고 나선 것은 유명하다. 당시 KBS를 통해 방송된 미사 강론에서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인가.”라고 비판했으니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1971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시절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는 공동사목교서를 발표한 데에 이어 이듬해 ‘평화의 날’을 맞아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선포, “불의와 부정부패, 부조리, 인권탄압, 독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일인독재체제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그 유명한 시국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그 이듬해인 1972년 8월이었다. “인권과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선 정치적 민주화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을 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정치”를 거듭 촉구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이다.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1974년 구속된 사건은 유신체제하 독재정부와 천주교회의 대립 차원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마다 추기경은 “우리 민족이 처한 아픔이자 교회의 아픔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직선제 주장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1979년 유신 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국가권력과의 대립을 거듭해야만 했다. 1976년 명동 3·1절 기도회, 1978년의 전주교구 7·18기도회 등에서 사제들이 잇달아 구속되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와중에서 모든 신자들에게 ‘광주를 위한 특별기도’를 요청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 부산의 미 문화원 사건, KBS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언론통제 등 군부독재에서 빚어진 사회문제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1986년 군사정권에 개헌실시를 촉구한 데 이어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를 비판,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장했다. 그 끝에 나온 6·29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실시는 결국 문민정부를 등장시킨 큰 발판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선종] 낮은 자의 삶 실천한 시대의 성자

    한국 천주교의 최고 성직자라는 명성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살며 우리의 곁을 지켰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다. 용기있는 발언으로, 때로는 ‘무거운 침묵’을 지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 온 시대의 양심이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를 품고 시대의 메신저로서 사회적 지침을 제시해온 그는 단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 정의와 진리에 바탕을 둔 인간성 회복에 앞장선 휴머니스트였다. 병인박해로 순교한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독실한 천주교 신앙을 이어온 아버지 김영석과 어머니 서중하 슬하의 5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옹기점과 농업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부모 아래서 유아세례를 받아 자랐지만 원래 사제가 될 생각은 없었다. 남달리 자식에게 열정을 가진 모친은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사제가 되기를 권했지만 정작 소년 김수환은 썩 내켜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들처럼 처자를 거느리며 평범한 세상을 살아갈 요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친의 권유를 따라 결국 형(동한)과 함께 성직의 길을 택했다. 보통학교 5년 과정을 졸업하고 1933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한 게 성직자 인생의 첫걸음. 서울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입학했으며 1941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그해 4월 일본 유학을 떠났다. 조지(上智)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사제의 길을 놓고 망설임이 적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나라 잃은 민족적 현실에의 고민이었다. 조지대학의 게페르트 신부가 “정치가가 될 것이냐, 신부가 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민족이 저를 부른다면 정치가라도 되겠다.”고 대답했던 것을 보면 당시 갈등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성직보다 항일 독립투쟁에 더 마음을 두던 중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44년 학병에 징집되어 섬에 끌려갔다. 강제로 일본 국가를 부를 때마다 서러움이 사무쳐 미군에 투항할 생각으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듬해 전쟁이 끝나 조지대에 복학, 1946년 12월 부산항에 도착했고 곧바로 서울의 성신대학에 편입해 4년 뒤인 1951년 9월15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남의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던 학병 시절 체험한 전쟁속 인간의 잔학상은 사제로서 “목숨 바쳐 지킬 가치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경북 안동 본당에서 사목을 시작해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비서, 해성병원 원장을 거쳐 1955년 6월 경북 김천본당 주임 겸 성의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전임됐고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신학·사회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1년 8개월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1966년 44세의 김 신부가 마산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교구장에 임명돼 주교 성성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가졌을 때 택한 사목표어가 바로 그 유명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이다. 이 표어는 평생 소외받고 어두운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몸과 마음을 둔 채 어길 수 없었던 큰 나침반이었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했을 때의 취임인사도 바로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로 이어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짐대로 봉사하는 교회,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상에 초점을 맞춰 살면서 민중들에 대한 관심과 부조리한 정치사회 현실을 향한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아 교회 안팎에서 ‘인권 옹호자’의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상계동과 목동의 철거민 주거지를 직접 방문했고 성탄 전야 미사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집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 기구로 설립해 놓았다. 그 때문에 서울대교구의 복지 시설은 200여 개로 크게 늘었다.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가 사임한 다음해인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품, 이후 30년 재임기간 중 서울대교구에서 6명의 주교를 탄생케 했고 48개이던 본당이 200여개로 늘어나는 교세확장도 일궜다. 한국 천주교사상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된 것은 서울대교구장 착좌 이듬해. 나이 47세로, 전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 추기경이 됐던 그는 2차례에 걸쳐 총 12년동안 한국 주교회의 의장을 맡은 것을 비롯, 아시아주교회의 연합회(FABC)를 출범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실에의 냉정한 처신을 비켜나지 않으면서도 늘상 이웃집 아저씨, 할아버지 같은 살가운 정과 웃음을 달고 살았던 김 추기경. 그는 떠날 때도 정확히 알고 지킨 인물이었다. 75세가 되던 1997년 교회법 제401조에 따라 로마 교황청에 서울대교구장 사임 의사를 단호히 밝혔다. 교황청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거듭 사임의사를 밝힌 끝에 마침내 이듬해인 1998년 5월29일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에서 물러났다. 목자 생활 47년 만이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부산지역 수돗물 한층 맑아진다

    부산지역 수돗물이 2012년부터 과산화수소를 첨가한 고급정수공정 도입으로 한층 더 맑고 깨끗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현재 오존과 활성탄을 투입해 상수 원수를 정수하는 고도정수처리시스템에 과산화수소를 첨가하는 고급정수공정을 도입하기로 했다.이에 따라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내년부터 매리와 화명 등 정수장에 과산화수소 저장탱크, 투입펌프, 배관 등 시설 설치공사에 들어가 시설설비가 완료되는 2012년부터 고급정수공정으로 수돗물을 정수해 부산시민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다.과산화수소(H₂0₂)는 물 분자에 산소가 하나 더 붙은 구조로 기존의 정수약품인 오존과 함께 투입하면 정수효과가 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자체 실험결과, 오존 2으로만 정수할 경우 오염물질 제거효과는 23%에 그쳤으나 오존 1과 과산화수소 0.35을 섞어 정수하면 오염물질 제거 효과가 60%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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