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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발 불법 쓰레기로 폭발 직전 필리핀…대사관 앞 대규모 시위도

    한국발 불법 쓰레기로 폭발 직전 필리핀…대사관 앞 대규모 시위도

    필리핀 현지가 ‘반한 감정’으로 들끓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해 필리핀에 몰래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가 그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이런 종류의 ‘국제 망신’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이번 사태는 지난 14일 필리핀 현지 언론이 ‘한국의 한 재활용 업체가 지난 7월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를 필리핀에 무단으로 버렸다’고 보도한 게 시작이었다. 실제로 필리핀 세관당국은 지난 10일부터 29일째 한국발 쓰레기 6500t을 민다나오 소재 미사미스오리엔탈 터미널에 압류 보관하고 있다. 쓰레기를 필리핀으로 몰래 들여온 해당 기업은 등록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쓰레기를 거짓 신고해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업은 해당 컨테이너를 플라스틱 조각이라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일회용 기저귀와 폐 전자제품 등 쓰레기 더미로 드러났다. 또 한국인 지분이 40%인 해당 기업은 재활용품 수입업자로 등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필리핀 환경단체들은 세계 최대 쓰레기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쓰레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중단한 후 한국의 쓰레기가 동남아시아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필리핀에 수출한 플라스틱 폐기물량은 지난해 4398톤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필리핀 수출량은 1만1588톤으로 이미 2017년 한 해 수출량의 2.6배를 넘어섰다. 반대로 대중국 수출량은 올해 1~9월 9379톤으로 2017년 수출량의 8% 수준으로 줄었다. 자국내에 한국에서 버려진 쓰레기가 대거 들어오자 필리핀 환경단체는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14일 ‘플라스틱 감당 안되는 한국, 처리 책임은 다른 나라에 넘겨’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해 한국의 쓰레기 떠넘기기 행태를 비판했고, 현지 필리핀 환경운동단체 에코웨이스트연합 등은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앞에 모여들어 이 같은 행태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필리핀 환경단체들은 28일에는 장소를 옮겨 마닐라 소재 필리핀 관세청 앞에서 한국 플라스틱 쓰레기의 조속환 반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빠른우편, 한국으로 반송”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날 에코웨이스트연합은 관세청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발 불법 플라스틱 쓰레기 반환을 최우선 업무로 삼아 신속하게 처리할 것 ▲적법한 수입통관절차 없이 한국발 쓰레기 반입을 승인한 관세청 담당자의 책임을 묻고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 ▲한국발 불법 플라스틱 쓰레기 수출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수입업자를 처벌할 것을 주장했다. 필리핀 현지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활동가는 “필리핀 관세청이 문제의 시급성을 인지하고 미사미스 오리엔털 터미널에 버려져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한국으로 조속히 되돌려보내야 한다“며 “한국발 불법 쓰레기가 성탄절 이전에 필리핀을 떠나기를 바라고 늦어도 올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필리핀에 불법으로 폐기물을 수출해 현지에서 문제를 일으킨 국내 업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로 해당 폐기물을 조속히 반입토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지난 21일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생산을 근본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김미경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플라스틱 캠페인 팀장은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2015년 기준 132kg 로 플라스틱 생산시설을 보유한 63개국 중 3위로서, 정부가 재활용같은 일시적 방편을 넘어서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이는 근본적인 제도를 실행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고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생닭 다리 빨아먹는 에브라, 어빙과 더불어 ‘추수감사절 디스’

    생닭 다리 빨아먹는 에브라, 어빙과 더불어 ‘추수감사절 디스’

    박지성의 맨유 시절 절친으로 가끔 엉뚱한 행동을 했던 파트리스 에브라가 이번에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축하한다며 괴상망측한 동영상을 올렸다. 11월 넷째주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인데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웨스트햄 수비수로 활약했던 에브라는 21일(이하 현지시간) 생닭의 다리를 빨아 먹다가 나중에 자신의 손가락을 빠는 동영상을 올렸다. 하룻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대다수는 역겹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자신의 행동이 “약간 추잡스럽고도 추잡스러웠다”고 표현하며 사과하는 글을 올렸다. 이어 “몇몇은 재미있다고 하고, 몇몇은 괴이하다고 하고, 몇몇은 역겹다고 한다. 신께 감사하게도 우리는 모두 다르다”며 “응 그래, 너무 나갔다. 닭다리를 빨 때 손가락까지 빤 것은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살모넬라에나 감염됐으면 하고 바라더라고 농담을 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이 균은 설사와 고열, 욕지기, 복통 등의 식중독을 일으키는 균 가운데 하나다.한편 미국프로농구(NBA)는 추수감사절을 온전히 가족과 보내라고 모든 경기가 열리지 않는데 보스턴 셀틱스의 카이리 어빙은 21일 뉴욕 닉스와의 홈 경기를 109-117로 패한 뒤 한 기자가 “즐거운 추수감사절 보내라”고 인사하자 “난 그런 휴일은 기념하지 않는다. Fxxx 추수감사절”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다음날 트위터에 “경기가 끝난 뒤 절망감에 휩싸인 상황에서 한 말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프로답지 못했다”며 “추수감사절과 이를 기념하는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난 언제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라고 덧붙였다. 그는 NBC 스포츠 보스턴과의 인터뷰를 통해선 자신이 아메리칸 원주민 혈통이기 때문에 이런 이슈가 불거졌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스탠딩록 시우 부족 출신이다. 그 영향으로 그는 과거 몇년 동안 자신의 목 뒤에 부족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등 자신의 혈통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8월 라코타 명명 기념식에 참석해 ‘작은 산’이란 인디언식 이름을 받기도 했다. 어빙은 지난해 성탄절 때도 “휴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15개월과 480㎞ 시공간 뛰어넘어 만난 반려견과 노부부

    15개월과 480㎞ 시공간 뛰어넘어 만난 반려견과 노부부

    지난해 8월 영국 런던 자택의 정원에서 도둑 맞은 견공이 1년이 훨씬 지나 주인과 감격적으로 재회했다. 11살 먹은 견공 키아라가 발견된 곳은 런던에서 480㎞ 떨어진 방고르란 도시였다.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두 마리 떠돌이 견공이 배회하다 피터 다니엘의 집에 들어왔는데 키아라의 목에 달린 마이크로칩을 확인하니 주안과 앙트와넷 미노 부부의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니엘은 “주인이었던 여자분과 통화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더군요. 6~7시간 만에 오셨어요”라고 말하며 키아라가 마치 자기 집인 듯 들어와 이렇게 인연이 닿게 됐다며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12일 미노 부부가 도착한 조금 뒤 눈물바다가 됐다며 “반려견들은 완전한 가족 구성원”이라고 말했다. 키아라가 사라진 뒤 미노 부부는 포스터 500장을 찍어 돌리고 현상금을 내거는가 하면 유기견 단체나 위원회 등을 전전했다. 1년이 흐르자 허튼 제보 같은 것도 들어오지 않아 모든 희망을 버렸다. 앙트와넷은 키아라가 험한 일을 겪거나 죽었다는 환각을 1년 넘게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남편 주안은 집에 있었으면서도 키아라가 끌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단다. 키아라는 런던 집에 돌아오기 전 각별한 보살핌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오랜 떠돌이 생활 때문에 런던 집에 돌아가면 혼란을 겪을 수 있어서다. 새로 코트도 맞춰야 하고 이발을 해 기생충 등을 잡아야 하고, 건강 진단도 받고 예방접종도 해야 한다. 다니엘은 키아라와 우연히 만나고 미노 부부가 그처럼 행복해 하는 것을 보고 키아라와 함께 떠돌던 견공 ‘잭 러셀’을 당분간 돌보다 입양을 원하는 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입양할 계획이다. 그는 주말의 일이 “성탄절의 기적”이라고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레스터 구단주 “인터뷰 마다하고 누굴 돕는 데만 열심이었던”

    레스터 구단주 “인터뷰 마다하고 누굴 돕는 데만 열심이었던”

    2016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창단 후 처음 우승했을 때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 레스터 시티 구단주는 로열 레스터 인퍼머리(서민 진료소)에 100만 파운드(약 14억 6000만원)를 기부하겠다고 공표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27일(이하 현지시간) 헬리콥터 참사로 세상을 뜬 스리바다나프라바 구단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헬리콥터가 참변을 당하는 순간을 목격한 이언 스트링거 BBC 기자는 “돈 많고 성공한 억만장자였으며 검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기도 했다”고 고인을 돌아봤다. 하지만 생전에 인터뷰를 극구 마다하고 사생활을 오롯이 즐겨 개인적 면모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고인은 태국 관광산업이 최근 20~30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한 과실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했다. 면세점 체인인 킹파워 인터내셔널을 창업해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늘 독점과 특혜 시비로 눈총과 질시를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16년 레스터가 동화처럼 우승하며 그의 프로필과 이미지가 완전 달라졌다고 조너선 헤드 BBC 기자는 짚었다. 그의 면세점은 1989년에 창업해 고속 성장을 했다는 점만 알려져 있을 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중국계 혈통인 그는 네 자녀를 뒀는데 모두 킹파워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에 따르면 중국계 가족 경영의 전형이라고 했다. 헤드는 “그는 인터뷰를 하지 않아 그렇게 레스터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도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레스터의 홈 경기를 관전한 뒤 런던 집과 버크셔주 별장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말들을 돌봤다. 또 좋은 와인을 감별하는 것과 도박, 말들을 사랑했다. 영국 왕실 사람들과 폴로를 즐기는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다. 태국 왕실과도 긴밀해 국내 경제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이들이 응당 지역사회에 많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며 많은 자선 활동에 동참했다. 지난 7년 동안 왕실의 자선 활동에 가장 많은 동참을 한 인물이 스리바다나프라바 구단주였다. 태국 불교 사원에서 경기 전 선수들과 팀의 행운을 빌기도 했고 승려를 모셔와 라커룸 안에서 축원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스트링거 기자는 레스터 구단만 10년 넘게 출입했는데 구단주가 자신의 생일 때면 케이크를 모두에 나눠주고 서포터들에게 음료나 원정 여행 경비, 아침식사, 스카프 등을 ‘쏘는’ 것을 숱하게 봤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열흘 안쪽에 레스터 시의회는 1억 파운드(약 1460억원)를 들여 훈련 구장을 짓도록 승인했는데 구단주는 이런 식으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구단에 해주는 일을 매우 즐거워 했다. 서포터 클럽 회장인 클리프 지네타는 “구단주 가족은 레스터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다. 그들은 이 도시를 세계지도에서도 알아볼 만한 도시로 키웠다. 수백만 파운드를 구단에 투자했고 병원, 어린이 시설에도 많은 돈을 썼다. 성탄절이면 파이와 음료까지 공짜로, 그들은 늘 그런 식이었다”고 말했다.구단주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는데 2016년 우승 직후 아들 아이야왓트가 댄 론 BBC 기자와 한 것이 예외적이었다. 아이야왓트는 “기적이라고요. 그렇죠. 영감을 불어넣었고 사람들이 얘기하게 만들었어요. 우리는 스포츠의 기준을 새로 설정하고 세상 전체에 영감을 불어넣었어요. 스포츠만이 아니라 인생이 그런 것이지요. 레스터를 삶의 잣대로 삼는다면 사람들은 싸우고 해보려 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는 이루겠지요. 모든 이는 그런 일을 할만한 권리를 갖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이 도시를 위해 기적이지요. 선수들을 위한 기적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열심히 일해 이만한 위치에 이르렀어요. 운만으로는 안될 일”이라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푸른 눈의 예수들…빛고을엔 ‘희생의 꽃’이 핀다, 형형색색 고물들…양림동 펭귄마을엔 보물이 산다

    푸른 눈의 예수들…빛고을엔 ‘희생의 꽃’이 핀다, 형형색색 고물들…양림동 펭귄마을엔 보물이 산다

    20세기 초, 광주 양림동에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발을 디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만 해도 낯선 이국땅을 밟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겠지요. 태어나 자란 고향을 뒤로하고 남의 나라에 오는 것, 말도 안 통하는 땅에서 배곯고 병든 이들과 함께하는 것, 머나먼 타지에서 눈을 감는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 매 순간순간이 크나큰 결심이고 용기이자 헌신이 아니었을까요. 미국과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양림동 언덕배기 땅을 사들여 집을 짓고 교회와 병원을 세웠습니다. 3·1운동을 하는 신자들을 돕고, 한센병 환자의 손을 잡았으며, 남루한 이들을 보살폈습니다. 오늘날 그들이 지은 건물은 번듯한 근대 문화재가 되고, 이방인 선교사들의 행적은 아름다운 역사가 됐습니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의 조붓한 골목길에는 100여 년 전 양림동에 살았던 이들의 삶이 고여 있습니다.1904년 12월 25일 광주 양림동에 있는 유진 벨 선교사 사택에서 성탄절을 기념하는 예배가 열렸다. 전라남도 지역에 울려 퍼진 첫 기도문, 첫 찬송가였다. 1900년대 초 양림동에 온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 유진 벨과 클레멘트 C 오웬은 성탄절 예배를 시작으로 작은 동네에 터를 잡고 기독교를 전파한다. 생소한 종교를 믿는 이방인들이 읍성 내에 자리잡기는 어려웠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곳이 양림동, 병들어 죽은 이들의 시신을 내다 버리는 풍장터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가진 게 없던 시절, 마을에는 병들고 배곯는 이들이 지천이었다. 이국의 선교사들은 복음을 가르치기에 앞서 복음을 실천한다. 자신의 개인 재산을 털고 본국의 후원금을 그러모아 양림산 자락 땅을 사들인 뒤 학교와 병원, 교회를 지은 것이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을 둘러보는 4.5㎞의 골목길은 양림동에 머무른 작은 예수들의 행적을 뒤따르는 길이다.●좁은 골목 사이로 오웬기념각과 광주 최초의 양림교회 양림동역사문화마을에 깃든 기독교 역사를 음미하려면 양림오거리 아래 오웬기념각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좋다. 바로 옆에 광주 최초의 교회인 양림교회가 있으며, 수피아여학교, 우일선선교사사택, 호남신학대 선교사 묘원 순으로 동선이 잘 연결된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바지런히 누벼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걷다 보면 만나는 서양식 건축물은 선교사 이름이 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네덜란드 식으로 회벽돌을 쌓았다’, ‘원형 창과 첨두아치 형상의 창문을 조화롭게 배치했다’는 안내문 설명을 읽기에 앞서 이곳에 얽힌 선교사들의 삶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양림동은 그저 오래된 동네요, 사택은 고색창연한 서양식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양림동에 거주한 선교사들은 어떤 이들이었을까. 한국인만큼 한국을 사랑했던 이들은 한국 이름으로 살았다. 유진 벨은 ‘배유지’, 로버트 M 윌슨은 ‘우일선’, 클레멘트 C 오웬은 ‘오원’ 또는 ‘오기원’, 엘리자베스 셰핑은 ‘서서평’으로 불렸다. 1895년 한국에 온 배유지 선교사는 수피아여학교를 세웠다. 여자여서 배움이 어렵던 시절, 여학생들은 근대식 학교에서 교육의 권리를 보장받았고, 민족의 앞날을 고민해 행동으로 옮겼다. 광주 지역 3·1운동 만세시위를 주도해 1000여 명의 군중을 이끌었고, 교복을 찢어 태극기를 만들었고,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우일선 선교사는 제중원 원장으로 의료 선교에 앞장섰다. 워싱턴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촉망받는 의료인은 광주한센병원, 여수 애양원을 여는 등 한센병 환자를 향한 사랑이 극진했다. 서서평 선교사는 1934년 풍토병과 영양실조로 죽으며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는 데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나같이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의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삶이었다. ●배유지 선교사 만든 수피아여학교, 아치형 창문·회벽의 조화 의료 봉사를 하던 오원 선교사는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뜬다. 한국에 온 지 5년 만이었다. 오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 오웬을 기념해 세운 건물이 오웬기념각이다. 요즘 용어를 빌리자면 복합문화공간이랄까. 예배는 물론, 수많은 강연, 음악회, 무용과 연극 공연이 열린 공간이다. 수피아여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예배당은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 홀, 선교사들이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던 곳이다. 학교를 세운 배유지 선교사를 기리는 뜻에서 ‘배유지 기념 예배당’이라고도 한다. 아치형 창문과 회벽이 어우러져 고아한 아름다움이 풍긴다. 건축물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호랑가시나무를 지나면 나타나는 2층 건물, 윌슨 선교사 사택이다. 우일선 선교사가 살던 집이자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로 소개되는 곳이다. 미국 영화에서 볼 법한 ‘잘생긴’ 주택은 회색 벽돌을 네덜란드 식으로 쌓아 올리고 내부는 회반죽을 칠했다. 외관만큼 집에 서린 사연도 아름답다. 이곳은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이자 광주 최초로 고아원 사역을 시작한 장소다. 마당 한편에는 은단풍 나무가 있다. 우일선 선교사가 고향에서 종자를 가져와 심은 것이란다. 은단풍은 자신과 고향을 이어주는 끈이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벗이었으리라. 누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열거하지 않더라도 어떤 죽음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윌슨 선교사 사택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호남신학대 언덕에 아담한 묘원이 있다. 배유지와 오원 선교사를 포함해 양림동과 호남을 기점으로 활동한 22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원이다. 본명과 한국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비석 앞에는 방금이라도 누가 다녀간 듯 싱그러운 꽃다발이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이 건넨 안부 인사다. 선교사들은 눈을 감은 후에도 고국이 아닌 양림동에 묻혔다.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은 까만 눈의 사람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한껏 안아줄 수 있는 양림동 언덕배기에.출발점이었던 오웬기념각 근처에 마을의 또 다른 명소, 펭귄마을이 있다. 양림 커뮤니티센터 뒤편의 골목길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옛날 주택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은 색색의 폐품으로 가득하다. 목록 한번 다양하다. 멈춰버린 시계, 고물 자전거, 이 빠진 그릇, 녹슨 실로폰, 줄 나간 바이올린….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것들, 효용이 중요한 세상에서 제 기능을 다한 것들이 여기서는 귀한 취급을 받는다. 사람들 카메라에 쉴 새 없이 담기는 예술 작품, 정크아트가 된 것이다. 펭귄마을의 시작은 화재가 나 방치돼 있던 빈집에서 가져온 고물이었다. 김동균 촌장을 주축으로 마을 주민들은 맥주 병뚜껑으로 물고기 몸통을, 깨진 장독대 뚜껑으로 펭귄 팔을 만들어가며 길거리 미술관을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고물은 쓸모없다 여긴 것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고 속삭인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처럼 노년의 지혜가 담긴 글귀, 라면땅부터 뽀빠이까지 불량식품 가게에서의 소소한 군것질도 놓치기 아까운 즐거움이다. 버드나무가 울창해 ‘버들 양’(楊)에 ‘수풀 림’(林), ‘양림’(楊林)이란 이름이 붙은 양림동은 젊은이들에겐 놀 거리 많은 핫플레이스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골목에 세련된 레스토랑과 한옥 카페가 들어섰다. 양림동은 변화에 유연한 동네다. 풍장터에서 기독교 문화를 꽃피운 마을은 어르신의 손때 묻은 작품과 젊은이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양림동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다.●예향의 도시 축소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향의 고장,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광주. 이 도시의 예술적인 면면이 궁금하다면 양림동역사문화마을 맞은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향하면 된다. 2015년에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 문화예술 전반을 아카이빙하고 전시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최후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서 역사적 의미도 깊다. 부지는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총 5개 시설로 나뉜다. 재밌는 점은 건축의 특이성이다. 구 전남도청 본관, 별관, 경찰청 본관을 활용한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하면 모두 지하에 들어서 있어 거대한 지하세계 같다. 그렇다고 어두침침하거나 습한 기운은 없다. 건물 지붕에 설치된 70여 개 채광정 덕이다. 채광정은 낮에는 햇볕을 지하 깊숙이까지 받아들이고 밤에는 은은한 불빛을 뿜어낸다. 총면적 16만 1000㎡. 우리나라 문화 공간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보니 여행자는 입구에 들어선 순간 어디를 둘러봐야 할지 당황하기 십상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은 여행자에게 넓은 부지는 때로 부담이므로. 광주에 흐르는 예술의 향기를 맡고 싶되 1시간 남짓밖에 시간이 없다면 문화정보원 라이브러리파크로 향하자. 전시 규모가 아담해 가벼운 마음으로 휘이 둘러볼 수 있다.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극장을 하나로 묶은 라이브러리파크는 무료 전시를 자주 연다. 문화창조원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자 기획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다. 6개 복합관에는 아시아를 주제로 국내외 이름난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올라간다. 문화생활을 한 뒤 가을볕에 몸을 바짝 말리고 싶다면 문화창조원 뒤편 하늘마당이 제격이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은 전시만큼 인상적이다.●무등산 품에 안고 달리는 모노레일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에게 집 앞 공원 같은 산, 지산유원지 모노레일은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는 이름이다. 지산유원지 앞마당으로 소풍을 갔다, 리프트를 타고 무등산을 올랐다, 엄마 손 꼭 붙잡고 모노레일을 탔다…. 지산유원지 모노레일에 얽힌 추억은 1980~90년대 이곳을 찾은 어린이의 수만큼 각양각색일 것이다.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선로를 달리던 모노레일은 운영업체 부도 등으로 운행이 중단됐다가 11년 만인 2016년부터 운행을 재개했다. 모노레일을 타러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무등산 등산로를 따라 산길을 오르는 방법과 745m 길이의 리프트를 타는 방법. 빨갛고 노란 철제 리프트는 1990년대 광주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이다. 타임머신은 시속 5㎞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리프트가 두 발을 대신하고 시간은 넉넉하니 가족, 연인, 친구는 번다한 일상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모노레일은 탑승역인 빛고을역과 종착점인 팔각정 아래를 25분 동안 왕복한다. 끼이익, 모노레일에서 이따금 섬뜩한 소리가 난다. 선로가 하나라 약간의 덜컹거림도 피할 수 없다. “아빠, 여기서 떨어져도 죽진 않겠죠?” “이거 누가 타자 그랬어! 무섭잖아!”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스릴은 없지만 옛날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짜릿함에 여기저기서 즐거움 섞인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모노레일 밑으로 나무들의 초록색 정수리가 빼곡하다. 종착점인 팔각정은 무등산 향로봉 기슭에 자리해 광주 도심이 한눈에 담긴다. 드넓은 광주가 아담해지는 순간, 빛고을의 따사로운 볕이 내리쬐는 순간, 마음이 쉰다. 글 이수린(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62)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오산IC를 타고 논산천안고속도로 천안분기점을 지나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서광주IC에서 서광주 쪽으로 들어선 뒤 중외공원 입구에서 ‘무등산, 시청’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양동시장에서 ‘남광주교차로, 양동시장’ 방면으로 들어서 천변좌로를 따라 2㎞가량 이동하면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이다. →맛집 충장로에 있는 1960백선청원모밀(268-1960)은 6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메밀 집이다. 역사만큼 음식 맛이 깊어 2011 미슐랭 그린가이드 한국 편에 이름을 올렸다. 가다랑어포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는 여타 메밀 집과 다르게 멸칫국물로 육수를 내 시원하다. 영미오리탕(527-0248)은 ‘백종원의 3대천왕’에 나온 뒤 사람들로 더욱 북적인다. 들깻물에 미나리와 오리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들깨오리탕이 유명하다. 푸짐한 남도 밥상이 당긴다면 금다연(374-1000)이 어떨까. 친환경 식재료를 써서 호박죽, 전, 회까지 한 상 가득 거하게 차려낸다. →잘 곳 양림동역사문화마을 주변에 게스트하우스가 여럿 있다. 호남신학대 부근의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682-0976)는 옛 선교사의 사택을 리모델링했다. 고즈넉한 적벽돌 집의 2층 테라스에서는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지산유원지 내에 자리한 호텔무등파크(226-0011)는 골프연습장, 온천사우나, 볼링장 등 부대시설이 다양하다.
  •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강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유골… 낙동강 전투 참혹함 잊지 못해”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정대연 인터뷰 일시 1997년 8월 4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정대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 실종된 인천 학생들 나(정대연)는 인천 화도진 고개 넘어 화수동 111번지 쌍 우물 앞 배급소 집 외아들로 태어나 창영국교를 졸업하고, 인천동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서대문에 있는 감리교 신학대학교 2학년 때 6·25 사변이 터졌다. 인천을 점령한 북한괴뢰군들은 인천 지역에서 중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인민의용군에 입대시켰는데, 강제로 끌려간 중학생들은 그 후 모두 실종이 되었다. 9·15 인천수복과 인천학도의용대의 창설 UN군의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수복이 되어서, 고려대 2학년생 이계송을 대장으로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를 조직하여 치안 유지, 피난민 안내 등 호국(護國)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때 나는 인천학도의용대의 부연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50년 늦은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우리 국군과 UN군은 후퇴하게 되어, 또다시 인천이 적화(赤化)가 되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우리들은 걱정만 하고 있었다.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 남하 1950년 12월 초 국방부 정훈국 인천파견대에서는 인천 지역의 중학생들도 남쪽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제일은행 인천지점 건너편에 있었던 경기도 병사구 사령부(현재 병무청) 소속 국민방위군 소위가 선두에서 인천학도의용대 3000명 대원을 이끌고 경상남도 통영의 국민방위군 수용소(통영충렬국교)를 향하여 우리들은 걸어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1950년 12월 24일 대전역 도착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하여 처음 1박을 한 곳은 안양이었다. 우리들은 1950년 12월 20일 수원에 도착하여 수원역에 안내판을 만들어 성탄절 날까지 대전으로 오라고 알렸다. 1950년 12월 24일 인천학도의용대 본대는 대전에 도착하여 성탄절을 대전역에서 맞았다. 1950년 12월 29일 마산 도착 대구를 지나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논밭에 버려진 수많은 얼거나 굶어 죽은 국민방위군 시체를 보면서 그 머나먼 남쪽 끝까지 모진 고생을 하면서 내려온 우리들은 부패한 국민방위군의 제3수용소(통영충열국교)에 어린 대원들을 입소시킬 수 없어서 마산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통영으로 남하하는 것을 정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참모회의를 신마산역 중앙여관에서 하여, 대구 육군본부를 찾아가서 담판 짓기로 하였다.대구 육군본부에서 황헌친 인사국장 만남 이계송 대장과 나는 걸어서 대구를 가게 되었다. 낙동강에 도착했을 때는 생전에 잊지 못할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강변에 많은 유골이 널려있는 것이 낙동강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 주는 끔찍한 장면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계송 대장과 나는 육군본부 인사국장 황헌친(黃憲親) 준장을 만나서 우리가 육군본부에 찾아오게 된 동기를 인사국장에게 설명하고 인천학도의용대의 진로에 대한 각서를 받았다. 황헌친 준장이 만들어준 각서 내용 ①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의 이동함에 있어 차량이나 선박을 이용할 수 있는 차량·선박 징발권(徵發權)을 준다. ②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1951년 1월 10일까지 입소하고, 포병사관학교에 응시할 기회를 준다.中 4~6학년생들이 먼저 해병으로 자원입대 이계송 대장과 나는 다시 걸어서 낙동강을 건너 인천학도의용대원들이 수용돼 있는 마산 임시 거처에 와서 보니까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마산에서 가까운 진해 해병교육대 신병으로 중학교 4~6학년생들 600여명이 자원입대했고, 인천에서 같이 출발한 국민방위군 소위가 나머지 중학교 1~3학년 대원들을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경남 통영출열국교)로 데리고 갔다. 中 1~3학년생들 부산 육군 제2훈련소 입소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우리 대원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이 계송 연대장과 나는 마산에서 출발하여 통영을 향하여 배를 타고 가서, 통영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인 충렬국민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 대원들이 마산에서 통영으로 가게 된 경위는 인천에서부터 우리와 같이 행동했던 국민방위군 인솔 소위가 자기가 받은 명령대로 2000명이 넘는 대원들을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에 입소시킨 것이었다. 육군본부에서 받은 징발증(徵發證)을 수용소 소장에게 보여주고, 우리들은 모두 배에 나누어 타고 통영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였다. 1951년 1월 10일 인천학도의용대원 1500여명은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입소하였으며 훈련병이 된 이 날부터 인천학도의용대의 조직은 사라지게 되었다. 1951년 2월 1일 육군통신학교 입교 부산육군 제2훈련소를 마치고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간 날이 1951년 2월 1일이다. 우리가 지휘관 옆에서 조금 안전하게 근무하는 통신병이 된 데에는 인천상업중학교 물리 교사 출신의 부산육군통신학교 신봉순 교육대장님 덕분이었다. 신봉순 교육대장님은 1951년 2월 1일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중 500명을 부산육군통신학교에 입교시켰으며, 오갈 데 없었던 여학생 120명의 숙식을 해결해 주고, 다시 인천으로 여학생들이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신 인천학도의용대의 영원한 스승이시다. “반드시 살아서 고향에서 꼭 다시 만나자” 부산육군통신학교에서 통신교육을 마친 나는 인천에서부터 부산까지 같이 걸어와서 함께 자원입대한 고향 후배들에게 반드시 살아서 인천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울면서 헤어졌다. 처음에는 육군 제8사단으로 배치받았다. 다음에 나는 육군본부 내의 통신부분을 담당하는 561부대로 가게 되었다. 그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서, 1953년 3월 9일 군에서 명예제대하였다.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 1997년 6월 25일 자 인천일보에서 6·25 특집(特輯) ‘전쟁터 이슬로 사라진 학창시절’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내 가슴에 와닿는 것은 나하고 같이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했던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이경종(인천상업중학교 3학년때 자원입대)의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이 우리 인천학도의용대의 6·25 참전역사 찾기를 시작했다는 기사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또한 나의 기억을 글로 남기게 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이경종규원 2부자(父子)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편찬 사업이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참전기 14회를 마치며 23살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정대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님은 육군 중위로 장교 현지임관 제의도 거절하고, 중학생 동생들과 사병으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습니다. 많은 인천의 중학생들을 위기에서 구했지만,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나 섭섭해하지 않았던 인천의 훌륭한 형입니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정 대 연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 1951년 10월 5일 강원도 향로봉전투에서의 정대연(가운데). 1928년 9월 3일 인천 화수동 출생 1949년 2월 15일 인천동산중학교 졸업 1950년 6월 25일 서울감리신학대학 2학년 1950년 9월 25일 인천학도의용대 부연대장으로 추대 1951년 1월 10일 통신병으로 입대(군번 0246202) 1953년 3월 9일 의병 제대
  • [SSEN이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신정환에겐 예외다

    [SSEN이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신정환에겐 예외다

    매주 목요일은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녹화 날이다. 녹화를 하루 앞둔 오늘(22일) 제작진은 어떤 마음일까. 전날인 21일 JTBC 측은 ‘아는 형님’ 룰라 특집을 예고, 이상민과 함께 채리나, 김지현 그리고 신정환이 이번 녹화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고정 출연자인 이상민이 거의 매회 룰라 얘기를 했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며 “아예 룰라 특집을 준비해 한꺼번에 멤버들이 뭉쳐보자 싶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지 24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중은 성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불법 도박도 모자라 대중을 기만한 그를 다시는 방송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 ‘아는 형님’은 꼭 신정환을 섭외했어야만 속이 시원했나 이런 대중의 마음은 지난해 방영한 신정환 예능 복귀작 Mnet ‘프로젝트S: 악마의 재능기부’ 시청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예능 천재라 불리기도 했던 신정환이 7년 만에 예능으로 돌아왔지만, 10부작으로 방송된 이 예능의 최고 시청률은 0.4%(닐슨코리아 제공)에 그쳤다. 거의 애국가 시청률 수준이다. 이는 대중은 아직 그를 달갑게 맞이할 준비가 안 됐다는 방증이자, 어쩌면 그에게 주는 벌이기도 하다. 물론 해당 프로그램 이후 더이상 방송 출연은 없었다. 이 점이 ‘아는 형님’ 제작진의 이번 섭외에 의문이 드는 한 가지 이유다. 말하자면 복귀에 실패한 신정환을 다시 약 1년 만에 대중 앞에 세우겠다는 의도가 전혀 가늠이 안 된다. ‘룰라’로 데뷔하긴 했지만 신정환은 ‘컨츄리 꼬꼬’로 활동하며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사실 ‘룰라 특집’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까진 아니다. 또 ‘재기’를 노리기에 ‘아는 형님’은 그다지 적절한 포맷의 예능도 아니다. 신정환이 ‘아는 형님’에 나와서 무슨 이야기로 시청자에 웃음을 줄 수 있을지도 상상이 안 간다. 신정환이 교복을 입고 나와서 춤을 춘다면? 노래 첫 소절만 듣고 제목을 알아맞힌다면? 웃음을 줄 수 있을까. 신정환이 ‘나를 맞혀봐’ 코너에서 “내가 해외 불법 도박을 했다가 걸렸을 때 거짓말을 했는데...정답은 세글자야!” 정도는 말해줘야, 멤버들이 너도 나도 “정답! 뎅기열!” 정도는 해줘야 그나마 ‘피식’ 정도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제아무리 섭외가 제작진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대중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그 책임과 결과 역시 제작진의 몫일 수밖에 없다. ■ 000는 되고 신정환은 안 되는 이유로 말할 것 같으면 일부 네티즌은 “수많은 연예인이 잘못하고도 다시 방송에 복귀하는데 왜 신정환한테만 박하게 구는 거냐” 묻기도 한다. 물론 여러 연예인이 음주운전, 도박, 심지어 마약에 손을 대며 물의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과 신정환이 다른 이유는 분명 있다. 방송에 복귀해 다시 대중의 사랑을 되찾은 이들은 빠르게 잘못을 인정했고, 자숙의 시간 동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2013년 유세윤은 음주 운전 사고를 냈다며 경찰서에 자수했다. 음주 운전 자체는 잘못된 일이지만 그가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이 빠른 복귀에 도움이 됐다. 김구라 역시 막말 논란으로 수차례 구설에 올랐지만, 본인 잘못을 인정하고 매번 사과했다. 수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일본군 위안부 발언을 했던 것이 뒤늦게 문제가 돼 모든 방송에서 하차한 적도 있지만, 김구라는 방송을 떠난 동안 매주 위안부 복지 시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신정환은 달랐다. 죄를 짓고도 거짓말로 포장하기 바빴다. 신정환은 2005년 서울 압구정 카지노 바에서 불법 바카라 게임을 하다 적발됐을 때도 “아는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라며 도박에 가담한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하루가 지나서야 결국 혐의를 시인했다. 이후 2010년 9월, 신정환은 돌연 출연 중이던 MBC ‘라디오 스타’, KBS2 ‘스타골든벨’, MBC ‘청춘 버라이어티 꽃다발’ 녹화에 사전 통보 없이 줄줄이 불참했다. 당시 소속사 측은 과로로 인해 스케줄에 불참하게 됐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그가 필리핀에서 도박한 뒤, 빚 때문에 억류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대중은 실망했다. 신정환은 “도박장에 간 것은 맞지만 지인들과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라며 “여행 중 뎅기열에 걸려 병원에서 지냈다”고 해명했다. 병원에 입원한 사진까지 함께 공개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이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신정환은 뎅기열 때문이 아니라 도박 빚 때문에 체류 된 상태임이 들통났다. 신정환은 결국 외국환관리법 위반과 상습도박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후 신정환은 수차례 귀국을 미뤄오다 2011년 1월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1억 2000만 원을 빌려 도박을 했다던 신정환은 이날 공항에 고가의 옷을 입고 장난스러운 모자를 쓰고 등장해 또 한 번 질타를 받았다. 2011년 6월 재판에서 징역 8개월 실형 선고를 받은 그는 “사회에 봉사하며 살겠다”면서 선처를 호소, 항소했다. 그해 12월 성탄절 사면으로 가석방 출소했다.그리고 7년이 지난 2017년 9월. 그가 다시 TV에 등장했다. 신정환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 믿기지 않는다. 곧 태어날 아기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어 방송 복귀를 결심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복귀 1년이 지난 지금, 신정환은 부끄럽지 않은 아빠일까. 그에게 기회는 누가 주었을까. 대중은 여전히 명품 옷으로 휘감고 복면같은 모자를 쓰고 나타나 공항에서 고개를 숙이던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병원 중환자실 일하는 16명의 간호사가 일제히 임신

    병원 중환자실 일하는 16명의 간호사가 일제히 임신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16명의 간호사들이 동시에 임신하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애리조나주 메사의 배너 데저트 메디컬센터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이들 가운데 12명의 간호사들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볼록한 배를 안고 기자회견을 갖고 물이 자신들의 임신에 뭔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모두 성탄절에 맞춰 출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두 얘기 모두 웃자고 한 얘기였다. 이들 가운데 가장 빠른 출산 예정일은 다음달이며 맨 마지막은 내년 1월이다. 이 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 가운데 10%가 임신한 것인데 환자들이 먼저 유난히 많은 간호사들의 임신을 먼저 알아챘다고 이들은 털어놓았다. 출산을 한달 밖에 남기지 않은 로첼레 셔먼은 “우리도 페이스북 그룹을 맺기 시작할 때까지 우리 중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임신했는지 깨닫지 못했다”며 “마치 우리는 협약을 맺은 것처럼 아기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졸린 개로 간호사는 결핵과 대상포진처럼 전염력 강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상대하거나 암 환자 치료 등처럼 임신한 여성이 해서는 안될 일들을 대신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 12명의 임신부 간호사들은 다음주 일제히 12주 동안 출산 휴가를 떠난다. 물론 병원측은 이들이 일제히 휴가를 떠나 자리를 비워도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놓았다고 밝혔다. 수간호사 헤더 프란시스는 “우리는 몇달 동안 계획을 마련해놓았다”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케인의 골든부트 새긴 5파운드 지폐 유통, 몇만 파운드까지 치솟을까

    케인의 골든부트 새긴 5파운드 지폐 유통, 몇만 파운드까지 치솟을까

    축구 종주국답게 영국에서는 러시아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한 해리 케인의 공적을 세상에 둘도 없는 방식으로 축하하고 있다. 웨일스의 머서 티드빌에 사는 세밀 조각가인 그레이엄 쇼트가 케인의 얼굴과 월드컵 골든부트를 실제 5파운드 지폐에 새긴 것이다. 그가 월드컵에서 뽑은 득점과 같은 숫자인 6장의 지폐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는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간) 그 중 한 장을 한 주류 소매점에서 사용했다고 BBC가 1일 전했다. 기존의 기념주화나 지폐가 수집가들의 표적이 돼 구매된 다음 그네들끼리 거래되는 것과 사뭇 다르다. 돈이 돌고 돌아 가치를 알아본 가게 주인이나 손님의 손에 들어가 시간이 흐르면 가격이 오르는 식이다.쇼트는 이미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초상을 5파운드 지폐에 새겨 지금은 무려 5만 파운드에 거래되고 있다. 머리핀에 여왕의 초상을 새긴 것은 10만 파운드를 호가한다. 버밍엄 출신인 그는 지폐들을 웨일스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 한 장씩 유통시킬 요량이다. 머서 티드빌을 처음 선택한 것은 아버지가 이 근처 태생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장은 이미 잉글랜드 축구협회(FA)와 케인 자신에게 선물했다. 그는 “아마도 돈이 필요하거나 성탄절이나 휴가를 즐기기 위해 팔게 될 누군가 이 지폐를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지폐를 쓴 주류 소매점 주인 맨브릿 카우어는 지폐의 진가를 몰라 보고 다른 이에게 거스름돈으로 줘버렸다. 카우어는 “생각도 못했다. 누군가 당신에게 지폐를 줘도 다른 고객이 다가와 5파운드 지폐가 필요할 수 있다. 그게 내가 놓친 이유”라고 입맛을 다셨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부처님오신날’ 불전함 절도범 꼼짝마!

    경찰청, 사찰 966곳 집중 단속 오는 22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사찰, 신자를 대상으로 한 절도 행각이 급증할 것을 대비해 경찰이 집중 단속에 나선다. 경찰청은 14일부터 22일까지 9일간 전국 전통 사찰 966곳에 대한 범죄 예방 및 형사 활동을 벌인다고 밝혔다. 불교 신자들이 이 기간 사찰을 찾아 시주를 많이 하면서 절도범들도 덩달아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실제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전함’을 갖고 도망가거나 시주 돈을 훔치는 등의 절도 행위가 평소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지난해 월평균 종교기관 내 절도 발생 건수는 87.3건이었는데, 4~5월은 95.5건으로 평균보다 9.39% 높았다. 같은 기간 종교기관 내 폭력(36.0건)이 평소(월평균 52.6건)보다 31.56%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이에 경찰은 사찰과 연등행사 주변의 소매치기, 절도, 방화, 봉축 조형물 훼손 등을 중점 단속 대상으로 정하고, 취약 지점에 형사를 집중 배치해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로 했다. 문화재 절도, 사찰 방화 전력이 있는 우범자 등에 대한 첩보 수집과 사찰 주변 의심 차량 등에 대한 검문검색도 강화한다. 경찰은 또 집중 단속 기간을 2단계로 나눠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사찰 중심, 나머지 기간에는 사찰 주변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법회 방해 등의 신고가 접수되면 ‘코드1’ 지령을 내리고 신속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연시 특별방범 기간에 포함된 성탄절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오신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범죄 예방 차원에서 단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비행기·승무원이 모자라… 1만 6348번 지연됐다

    비행기·승무원이 모자라… 1만 6348번 지연됐다

    한 차례만 늦어도 줄줄이 지연 승무원 지각도 항공기 문제 포함 지연 사유 안 밝히고 배상 안 해 ‘1시간 지연 10% 배상’도 안 지켜 “부산~김포 항공편은 연결편 항공기의 도착이 지연돼 출발 시간이 20분 늦춰졌습니다.”지난 7일 오후 7시 17분쯤 김해공항에 도착한 김모(38)씨는 항공사 측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20분이 지연된 8시 20분에도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 결국 이 비행기는 예정보다 1시간 이상 지연되고 나서야 이륙했다. 김씨는 “20분 지연된다고 해놓고서 1시간 넘게 지연된 이유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13일 국토교통부의 항공정보포털시스템을 통해 김씨가 탔던 비행기의 지연 사유를 살펴본 결과 이 비행기가 1시간 11분 지연된 이유는 ‘승무원 연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승무원 연결 지연은 해당 비행기를 타야 하는 승무원(기장 포함)이 제시간에 탑승하지 못할 때 주로 발생한다. 승무원마다 비행 스케줄이 달라 결원이 생기는 경우 공항에서 대기 중인 ‘대체 승무원’이 없으면 자택에서 대기 중인 승무원이 긴급 호출을 받아 투입된다. 이 항공사가 비행기 출발이 지연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안내하지 않은 것도 기체 결함이나 날씨 탓이 아닌 ‘승무원’ 탓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항공사는 이날 김해공항에서만 승무원 연결 문제로 두 차례(각각 1시간 이상) 지연 출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2일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대형 항공사의 제주행 비행기도 같은 이유로 지연됐다. 그러나 이런 ‘승무원 연결’ 문제로 비행기 출발이 늦어지는 사례는 별도의 통계로 집계되지 않고 ‘항공기 연결(접속)’ 통계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공항공사 항공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항공기 연결로 인한 지연 횟수는 국내선만 1만 634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전체 운항 횟수 15만 4747건 가운데 10.6%에 해당한다. 특히 국내선은 노선이 짧다 보니 비행기 한 대가 당일 최대 5차례 운항을 한다. 기상 등의 이유로 출발이 지연되면 이후 스케줄이 줄줄이 늦춰진다. 승무원마저 제때 투입되지 않으면 비행기 출발 시간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정부는 최근 국내선이 1시간 이상 지연되면 운임의 10%를 배상하도록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을 개정했다. 하지만 실제 배상이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2시간 이상 지연 시 배상하는 국제선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4일 베트남 다낭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가 3시간 이상 지연됐을 때 승객들은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항공사는 “선행 항공편의 연결 관계 및 갑작스러운 정비로 지연됐다”며 요구를 거절했다. 항공사들은 배상이 이뤄져도 관행적으로 “정비, 기상 등 면책 사유에 해당되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보상한 것”이라며 늑장 출발에 위법성이 없었음을 강조한다. 이런 가운데 서울법원조정센터는 지난 10일 “지난해 성탄절 연휴 때 14시간 동안 기내에서 대기하다 결항돼 피해를 입은 승객들에게 항공사가 1인당 55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항공사들이 면책 사유를 내세워 배상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박진서 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소형 항공기 운항 시 지연이 잦다”면서 “대형 항공기를 투입하면 소비자 불편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생사고락 함께하고 전사한 황하삼… 이름 석 자 가슴 깊이 새겨”

    “생사고락 함께하고 전사한 황하삼… 이름 석 자 가슴 깊이 새겨”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창립과 활동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윤중기 인터뷰 일시 1997년 11월 6일 장소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윤중기 이경종(6·25 참전사 편찬위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1950년 12월 18일 황하삼과 인천을 출발 6·25 사변 때 나는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이었으며 살던 곳은 동구 인천극장 건너편이었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할 때는 앞집에 살던 황하삼(黃夏三·인천해성중학교 3학년)과 함께 출발했다. 함박눈이 많이 내린 그 날 깊은 밤에 도착한 곳이 안양이었고 안양에서 새벽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걸어서 도착한 곳이 수원이었다. 수원에서부터 터벅터벅 걸어서 남하하여 대구에 도착했을 때 때마침 그날이 1950년 12월 24일 성탄절 전날이었다. 대구에서 삼랑진을 거쳐 다음 집결지인 마산까지 가게 되었다. 1951년 1월 3일 황하삼과 내가 17일 동안 걸어서 내려와 마산에 도착해 보니 마침 마산에서 해병 6기 신병 모집이 있어서 중학교 4~6학년들이 신병모집에 응했는데 나는 황하삼이 어려서, 황하삼과 같이 움직이려고 해병 신병 모집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때 나와 인천공업중학교 같은 반이었던 문병하, 한경희, 임석주를 포함한 4~6학년 중학생 600여명이 해병 6기로 입대하였다.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황하삼과 함께 입대 해병 6기 신병모집에 나이가 어려서 지원도 못 한 중학교 1~3학년 학생들과 탈락한 중학교 4~6학년 인천학도의용대 대원 1500여명은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부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다. 3주 훈련을 마치고 군인이 된 우리들은 부산 동래온천에 있었던 육군보충대로 갔다.5사단 35연대 1대대에 황하삼과 함께 배속 육군보충대에서 드디어 트럭을 타고 하루 종일 걸려 강원도 전방으로 가게 되었다. 최전방이 가까워져 오면서는 포성 소리가 은은히 들리더니 점차 그 소리는 커지고 화약 냄새도 났다. 그렇게 화약 냄새가 나는 골짜기를 지나 도착한 곳이 5사단 사령부였다. 여기에서 각 연대로 배치되고 나와 황하삼은 함께 35연대 1대대로 배치받았다. 1대대 보급과 탄약소대에 황하삼과 함께 배치 나와 황 하삼은 5사단 35연대 제1대대 보급과에 있는 탄약소대에 남게 되었다. 당시 내가 배치받았던 탄약소대는 1대대 전 지역에 탄약을 보급하는 곳이었다. 5사단 35연대 1대대 CP에서 출발하여 나는 황하삼과 탄약 실은 트럭 위에 앉아 전방 대대 OP 쪽으로 보급 물자를 운반하는 일을 했다. 보급물자를 실은 트럭을 타고 대대CP를 출발하여 트럭 위에서 보니까 콘크리트 다리 옆으로 큰 바위산이 있고 그 다리를 지나서면 왼편으로 샛길이 나타나면서 그 길로 우리 탄약차가 들어서면 그곳이 바로 대대 OP가 있는 풍기국민학교였다. 대대OP·CP를 설명하자면 대대OP는 대대전방지휘소를 말하며 대대전방 전투지역 가까운 곳에 위치를 잡아 대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곳이고, 대대CP는 대대의 후방에서 행정과 보급을 맡아 전투지역을 지원해 주는 곳이다.동네 친구 황하삼의 전사 인천학도의용대 화수분대에서 나하고 같이 활동한 황하삼이 살던 집은 인천극장 앞 우리 집 건너편이었다. 황하삼은 인천에서 남하할 때부터 나하고 같이 걸어서 내려갔고,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도 같이 입소했고, 부산 동래 임시보충대에서 같이 지냈고, 5사단 35연대 1대대 보급과 탄약소대에도 같이 배치되어 생사고락을 같이한 유일한 친구이며 전우였다. 황하삼은 나와 같이 최전방에 있을 때 적 포탄이 떨어지면서 파편에 뒤통수를 맞아 내가 보는 앞에서 즉사하였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슬프고 괴로웠던 첫 휴가 1951년 6월 중순에 대대장이 나에게 첫 휴가를 가라고 배려해 준 것은 인천부터 나하고 같이 전쟁터에 온 내 친구 황하삼이 며칠 전에 전사했기 때문에 대대장이 나를 위로해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고향 인천의 내 집을 떠났을 때는 1950년 12월 18일, 그때로부터 불과 7개월 만이었지만 몇 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막 집에 가까이 갈수록 부모님과 형제들 보고 싶었던 감정은 사라지고 갑자기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황하삼 얘기를 어떻게 꺼내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황하삼 어머니 통곡의 눈물 어느덧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좀 있으려니까 황하삼 어머니께서 오시더니 “우리 하삼이도 잘 있지?”라고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네 어머니, 하삼이는 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귀대 날짜는 다가오고 해서 할 수 없이 황하삼이 전사했다고 실토하고 말았다. 그러자 황하삼 어머니는 “왜 내 아들만 죽었냐”라고 통곡의 눈물을 흘리셨고, 황하삼 식구들은 온통 울음바다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52년 7월 5일 상이용사로 제대 나는 가칠봉 전투에서 괴뢰군의 집중 포격으로 전신에 파편상을 당해 부산 1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8개월 동안 내 몸 안에 박혀있는 파편을 빼내는 긴 입원 치료를 받은 후 1952년 7월 5일 상이용사로 명예제대를 하였다. 한 형제같이 함께 자란 황하삼! 조국과 고향을 지키려 전쟁터까지 같이 가서, 나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는 죽어서 고향에 오지 못하고, 그래도 항상 네 이름 석 자 황하삼은 내 가슴 속 깊이 있다. 글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11회 계속참전기 10회를 마치며 같이 한 동네서 자란 중학생 황하삼과 윤중기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부산까지 20일간 같이 걸어가서 함께 자원입대한 후 한 부대에서 같이 참전하였습니다. 먼 훗날에도, 나라를 위하여 전사한 인천학생 황하삼의 애국심을 기억해주기 바라며 이 참전기를 기록합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윤중기 ▲공립인천공업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인천학도의용대 화수분대 소속 1950년 12월 18일 : 인천공업중학교 4학년생으로 동네 친구 황하삼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서 도보로 남하 시작함. 1951년 1월 10일 :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여,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도착하여, 동네 친구 황하삼과 같이 자원입대함. 1951년 6월 4일 :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윤중기 옆에 있었던 황하삼이 전사함. 1952년 7월 5일 : 상이용사로 명예제대.
  • “한반도 대화 결실 보길”

    “한반도 대화 결실 보길”

    프란치스코 교황이 1일(현지시간)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한반도를 위한 대화가 결실을 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부활절 미사를 집전한 뒤 성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발표한 강복 메시지 ‘우르비 엣 오르비’(로마와 온 세계를 향해)에서 “현재 진행 중인 대화가 결실을 보기를 기원하고 한반도 지역의 화해와 평화를 진전시키길 바란다”며 한반도 상황을 별도로 언급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 1년에 두 차례(부활절과 성탄절) 거행되는 우르비 엣 오르비는 교황의 축복을 의미한다. 교황은 “(대화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한민족의 안녕을 증진하고, 국제사회에서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혜와 분별을 가지고 행동하길 빈다”고 덧붙였다. 이는 오는 27일로 확정된 남북 정상회담, 오는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 등이 대성공을 거둬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13년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첫 아시아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고 그동안 한반도의 긴장 상황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대화를 통한 한반도 화해를 촉구해 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균미 칼럼] 위니 리의 용기, 그리고 미소

    [김균미 칼럼] 위니 리의 용기, 그리고 미소

    단단하고 차분하다.10년 전 자신이 당한 성폭력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자전소설 ‘다크 챕터’의 국내 출간에 맞춰 한국에 온 위니 리(40)에 대한 첫인상이다. 방한 전부터 작가의 이력과 작품이 화제가 됐었다. 성폭력의 트라우마는 완전히 극복한 것인지, 북투어하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계속 반추하는 것이 힘들지 않은지,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 궁금한 게 많았다. 대만계 미국인 2세인 위니 리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다. 하버드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언니와 달리 위니는 아일랜드 문화와 신화에 관심이 많아 대학 졸업 후 영국 런던에서 영화제작자로 활동한다.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 그는 2008년 4월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힐스에서 하이킹을 하다 생면부지의 15세 현지 유랑민 소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위니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좋아하던 영화 제작 일도 접는다.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3년 반이 지난 2011년 성탄절에야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되찾기까지 2년여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마음먹고 글을 쓰기 시작하기까지 5년 반이 걸렸다.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위니를 만나기 전까지도 불편함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경찰·검찰 조사와 피고 측 변호인단의 인신공격성 심문과 사건을 선정적으로 바라보는 대중의 호기심을 견뎌 내고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자신의 얘기를 하는 위니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위니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을 쓴 것은 성폭력 피해자를 나약한 생존자로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을 교정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해자의 잘못인데 피해자가 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지, 자신 속으로 움츠린 피해자들에게 괜찮다고,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얘기를 나눌수록 어쩌면 이리도 우리와 비슷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길같이 위험한 곳을 여자가 왜 혼자 가느냐, 여행을 왜 혼자 가느냐, 쓸데없이 왜 남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느냐는 등 피해자 탓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 지인들은 성폭행 사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거나 매우 불편해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 않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쏟아지는 왜 여자가 밤늦도록 술 마시고 다니느냐, 치마가 왜 그렇게 짧으냐, 화장을 왜 그렇게 진하게 했느냐는 등 피해자가 마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피해자를 탓하는 소리를. 얼굴을 찌푸릴 수는 있어도 범죄의 타깃이 돼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갖다 붙이는 것도 기가 막힌다. 꽃뱀 논리도 그렇다. 위니는 영국 등에서 성범죄 신고의 2%만이 허위 신고라는 통계가 있다며 어떤 여자가 성폭력 피해자로 유명인이 돼 돈과 이름을 알리길 원하겠느냐고 반박하는데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더 조심하지 않았다고 피해자를 탓하는 왜곡된 인식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 너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무서워서 그런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방관자적 태도는 이제 그만하자. 성폭력 가해자가 생판 모르는 남인 경우보다 직장 동료, 선후배, 친인척 등 아는 사람인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성폭력 대상이 될까 봐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나. 최근 들어 미투 동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있다. 파괴력이 큰 유명 인사와 관련된 실명 폭로가 뜸해지고 있고, 수사 결과도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긴 조급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위니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남자들이 변해야 한다. 한국에서 ‘위니’가 꼭 나올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위니의 주장처럼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연대와 지지로 미투 운동의 동력을 살려 나가야 한다. kmkim@seoul.co.kr
  • 심술 고양이가 주인 먹여 살린다. 상표권 소송 이겨 7억원 벌어

    심술 고양이가 주인 먹여 살린다. 상표권 소송 이겨 7억원 벌어

    심술 궂은 표정의 고양이다. 원래 이름은 ‘타르타르 소스’인데 2012년 인터넷에서 뜨거운 화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커피 회사 ‘그레나데 비버리지’가 고양이 주인과 계약을 맺고 아이스 음료 ‘그럼푸치노’(Grumppuccino) 상표에 썼는데 로스팅 커피나 티셔츠 등 다른 ‘그럼피 캣 제품’도 출시했다가 고양이 주인이 만든 ‘심술 고양이 유한회사’로부터 2015년 초상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이 최근 이 회사가 초상권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71만 1달러(약 7억 5366만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영국 BBC가 25일 전했다. 고양이 주인은 그럼푸치노에만 초상권을 판매했는데 다른 그럼피 캣 제품들을 출시한 것은 계약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법정 소식 전문인 코트하우스 뉴스에 따르면 여섯 살 암컷인 이 고양이는 법정에 가끔 나타났는데 선고일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주인은 타바사 분데센이란 사람인데 형제 중 한 명이 레딧 닷컴에 올린 사진이 인터넷에 급속히 퍼져 유명세를 떨치자 아예 캐릭터 판매 회사를 차린 것이었다. 2013년 닉과 폴 샌퍼드 부자가 창업한 그레나데 비버리지가 15만달러(약 1억 5930만원)에 계약을 맺고 초상권을 양도받았다. 2년 뒤 심술 고양이 유한회사가 소송을 제기하자 그레나데 비버리지도 맞고소를 해 최근에까지 이르렀다. 이날 재판에서 판사는 71만달러를 초상권과 상표권 침해 보상금으로 지급하라면서 이와 별도로 계약 위반에 따른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1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심술 고양이 유한회사는 의류나 캘린더, 장난감 등에 등장해 배당금 등으로 연간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인다고 했다. 또 텔레비전 출연 등으로 세계를 한바퀴 돌았고 2014년에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탄절 영화가 제작됐다. 또 윌 페렐, 잭 블랙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는 영화가 제작될 것이라고도 했다. 왜 이렇게 짖궂은 표정을 짓는 것인가는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고양이 갑상샘 난쟁이증이란 증상이나 아래턱이 앞으로 처져 있어 어금니를 꽉 물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슬기로운 감빵생활’, 마지막회 남기고 시청률 10.5% 기록 ‘고공행진’

    ‘슬기로운 감빵생활’, 마지막회 남기고 시청률 10.5% 기록 ‘고공행진’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내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17일 방송된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15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쫄깃한 전개로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높였다. 이날 15화는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 평균 10.5%, 최고 11.6%의 시청률로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에 올랐다. 각 연령별 시청률에서도 남녀 10대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폭 넓은 사랑을 받았다. 2049 타깃 시청률은 평균 7.3%, 최고 8.2%로 또 한번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닐슨코리아 / 전국 기준) 수도권 가구 시청률은 평균 11.6%, 최고 13%까지 치솟으며 뜨거운 인기를 증명했다. 15화에서는 출소를 코앞에 둔 김제혁(박해수 분)이 염반장(주석태 분)의 등장으로 또 다시 위기에 처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와 더불어, 2상6방 식구들을 둘러싼 예측 불가능한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며 방송 끝까지 높은 몰입을 이끌어 냈다. 과거 김제혁을 위험에 빠뜨린 염반장은 이번에도 음모를 꾸몄다. 자신의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교도소 특혜를 빌미로 김제혁에게 3억원을 요구한 것. 자신의 계좌에 현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갑질하는 쓰레기 슈퍼스타 김제혁’이라는 내용을 언론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김제혁이 이를 거부하자 염반장은 온실 연습장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하려 했고, 다행히 지호(정수정 분)의 기지로 난관을 극복했다. 하지만 방송 말미에 염반장의 모략으로 친형제와도 같은 법자(김성철 분)가 징벌방에 갇히게 되면서 김제혁의 분노를 유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개를 예고했다. 장기수(최무성 분)와 논문을 쓰기 위해 교도소를 찾은 여대생의 관계도 밝혀져 시선을 사로잡았다. 접견 도중 여대생이 자신의 딸임을 알아챈 장기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려 시청자들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석방 심사에서 탈락해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지만, 이내 성탄절 특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며 안방극장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교도소에서 독하게 약을 끊은 한양(이규형 분) 또한 마침내 출소했다. 연인 송지원(김준한 분)과 한양의 아버지는 물론, 그 동안 아들의 미래를 위해 매정하게 대했던 어머니까지 교도소 앞 음식점에서 출소를 애타게 기다렸다. 사랑하는 이들의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한양은 그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출소 직후 또 다시 마약에 손을 대며 경찰서로 향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재심을 준비 중인 유대위(정해인 분)에게 긍정적인 소식도 들려왔다. 박일병 사망 피의자가 유대위가 아닌, 오병장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 여기에 유대위 형(정문성 분)은 박일병 모친을 우연히 만나 재심에 유리한 증언을 확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법정 증언을 약속했던 중대원들의 심경 변화가 예고되며 앞으로의 결말에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한편,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마지막회는 18일 오후 9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툭하면 지연…‘年 7000만 항공시대’ 맞나

    툭하면 지연…‘年 7000만 항공시대’ 맞나

    LCC 한 달 최다 15회 ‘지각출발’ 고객 항의엔 “원래 자주 늦는다” 지연 이유도 ‘항로 혼잡’ 등 다양50대 사업가 A씨는 지난해 12월 22일 마카오행 티웨이항공 비행기를 탔다가 낭패를 봤다. 오후 9시 35분 출발 예정이었지만 밤 12시가 다 된 11시 57분에야 비행기가 이륙해 사업상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통상 국제선은 1시간을 넘기도록 출발하지 않으면 ‘지연’으로 보고 비정상 운항으로 분류한다. A씨가 항의하자 티웨이항공 직원은 “원래 자주 늦는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했다. 연간 여객 운송 7000만명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승객들은 잦은 항공기 지연 문제로 불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인천국제공항이 2터미널(T2)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동북아 허브 공항 시대를 여는 만큼 정비·인력 인프라 구축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서울신문이 항공정보포털시스템의 ‘실시간운항정보’에서 비정상 운항 현황을 확인해 보니 항공기 지연은 예상보다 많았다. A씨가 탄 티웨이항공의 12월 인천발 TW107 MFM(마카오) 비행기편(하루 1회 운항)만 봐도 한 달간 총 8회(5일, 15일, 16일, 18일, 21일, 22일, 23일, 25일)나 늦게 출발했다. 3.8일에 한 번꼴로 지각 출발을 한 것이다. 원인도 다양했다. ▲제방빙 작업 1회 ▲항로혼잡 2회 ▲무게중심 이상 1회 ▲항공기 연결 문제 4회 등이다. 티웨이항공 측은 “손님맞이가 다소 미흡하긴 했지만, 비행기가 노후화됐거나 정비 등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른 항공사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마카오행은 현재 4개 항공사가 운항 중이다. 12월 한 달 동안 진에어는 3회, 제주항공은 15회(하루 2회 운항), 에어서울은 각각 6회 지연됐다. 지연으로 인한 문제는 통상 저비용항공사(LCC)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2017년 항공교통서비스 보고서(3분기)’의 국제선 지연율 현황은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 9.99%로 ‘지각대장’ 1위의 불명예를 차지했다. 이어 이스타항공(7.46%), 대한항공(6.36%) 순이었다. 결국 대형 항공사나 LCC 가릴 것 없이 지연으로 말미암은 승객 불편이 크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성탄절 연휴 당시 기상악화로 14시간 20분 동안 이스타항공 기내에 대기했던 승객 60여명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승객과의 약속’을 보다 정확하게 준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항공기 지연과 관련한 소비자 불만이 많다는 것에 주목해 소비자 보상이 강화된 분쟁 해결 기준을 이달 중 내놓기로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연 문제는 항공사, 승객, 날씨, 공항 여건, 항로 문제 등 복잡하게 얽힌 만큼 항공사만의 책임으로 돌릴 순 없다”면서도 “보유 비행기가 적어 빡빡하게 짜인 일정 때문에 한 대만 고장 나도 이어진 연결 편까지 영향을 받는 문제나 정비인력 부족 등은 우선해서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열심히 잡아 넣었더니 다 풀어줘?” 도미니카 사법부-검찰 갈등

    “열심히 잡아 넣었더니 다 풀어줘?” 도미니카 사법부-검찰 갈등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사법부와 검찰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갈등에 불을 지른 건 사법부가 최근 내린 특별외출 허가다. 도미니카공화국 남부 산크리스토발 지방법원은 지난해 성탄절에 맞춰 재소자 57명에게 특별외출을 허락했다. 외로운(?) 교도소에서 나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라는 취지였다. 문제는 사법부의 허락을 받고 당당하게 교도소에서 나온 재소자들이 살인범 등 하나같이 강력범이었다는 점. 개중에는 검찰이 힘들게 잡아들인 마약카르텔 조직원도 적지 않았다. 2008년 도미니카 남부도시 파야에선 마약카르텔 간 전쟁이 벌어졌다. 국경을 넘어 원정을 간 콜롬비아 조직원 7명이 살해된 사건이다. 성탄맞이 특별외출을 나간 재소자 중에는 이 사건에 연루된 마약카르텔 조직원이 포함됐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두목이 이끌던 다국적 마약카르텔의 조직원도 특별외출 허락을 받았다. 강력범들이 무더기로 외출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미니카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도미니카 변호사협회의 회장 미겔 수룬 에르난데스는 "국민의 법 감정와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사법부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검찰도 열심히 잡아넣은 강력범들을 풀어주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익명을 원한 검찰 관계자는 "이러니 교도소 문은 '회전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며 "크리스마스를 이유로 수감자들에게 특별외출을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법부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문제의 외출허가를 내준 판사는 "법과 헌법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사법부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도미니카의 한 교도소 (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원폭소년’ 신년카드로 핵·전쟁 규탄한 교황

    ‘원폭소년’ 신년카드로 핵·전쟁 규탄한 교황

    北 핵실험 강행 우려 해석도 “전쟁은 가장 어리석은 오만함” 인류의 거짓말·부정의 등 비판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배포한 신년카드에 원폭 피해자들의 모습을 담았다.지난달 31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교황이 연말연시를 맞아 제작한 카드에는 1945년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한 소년이 죽은 동생을 업은 채 화장터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카드 뒷면에는 ‘전쟁의 결과’라는 제목과 함께 아래에 ‘프란치스코’라는 자필 서명이 새겨져 있다. 카드 맨 밑에는 사진의 출처와 설명이 짤막하게 소개돼 있는데 “어린 소년의 슬픔은 피가 맺힐 정도로 꼭 깨문 입술로 표현될 뿐”이라고 쓰여 있다. 이 사진은 미국 해병대 사진사 조 오도넬의 작품으로, ‘일본 1945: 그라운드 제로에서 온 미 해군의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에 포함돼 있다. 미 의회도서관에 따르면 오도넬은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1945년부터 4년간 두 도시에 머무르며 원폭 후유증을 기록했다. CNN의 선임 바티칸 비평가 존 앨런은 웹사이트를 통해 “교황이 연말연시에 특정 사진을 고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이는 교황이 지금 이 메시지가 특히 적절하다고 생각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교황은 오래전부터 핵무기 사용을 규탄해 왔고 전쟁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걱정해 왔다. 이번 신년카드를 통해 교황이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우려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교황은 지난달 24일 성탄절 공식 메시지 ‘우르비 에트 오르비’(로마와 온 세계에)에서 한반도 대치 상황을 우려하며 신뢰 증진을 따로 촉구했다. 교황은 지난해 11월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가 해소되도록 “매일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황이 이날 발표한 신년 메시지에도 인류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경고가 담겼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송년 저녁 미사에서 “인류가 죽음·거짓말·부정의로 한 해를 낭비하고 망쳤다”면서 “전쟁은 뻔뻔하고 어리석은 오만함의 가장 명백한 표징이며, 많은 죄악이 인간적·사회적·환경적 악화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을 둘러싼 지적인지 밝히지는 않은 채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는 “하느님, 우리 형제들, 우리의 창조물 앞에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특별사면 ‘MB 저격수’ 정봉주…노원병 보궐선거 출마설

    특별사면 ‘MB 저격수’ 정봉주…노원병 보궐선거 출마설

    ‘MB 저격수’로 불렸던 정봉주 전 의원이 29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행된 특별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계속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도 이어지고 있어 정 전 의원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정치권 등에서는 정 전 의원이 내년 6월 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벌써 흘러나온다. 정 전 의원은 이날 발표된 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 대상자 6444명 명단에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정 전 의원은 특별사면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오늘 같은 날이 과연 올까. 실감이 나질 않는다”며 “지난 겨울 광장을 밝힌 촛불시민, 함께 걱정해 준 모든 분들 감사드린다. 문재인 대통령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 패널로 잘 알려진 정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주가조작 사건 등에 연루됐다는 주장을 했다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기소됐다. 2011년에는 징역 1년형을 확정받고서 수감됐으며, 2012년 만기 출소했다. 이후 선거법에 따라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됐고 그동안 여권에서는 정 전 의원에 대한 사면 복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지난달에는 여야 의원 125명이 정 전 의원의 복권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당시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사면복권을 제외하고 뒤로 미루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일 수 있다”며 “다가오는 성탄절에 마땅히 정 전 의원을 복권해줄 것을 간곡히 탄원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이날 특별사면 발표 후 “문 대통령의 배려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정의로운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는 국가를 만드는 데 함께할 것”이라고 연합뉴스를 통해 밝혔다. 정 전 의원은 현재 가족과 함께 외국에 나가 있으며, 내년 초 귀국할 예정이라고 정 전 의원과 가까운 관계자가 전했다. 여권에서는 이번 사면으로 피선거권을 회복한 정 전 의원이 이후 어떤 정치 행보를 이어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 전 의원이 당장 내년 6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의원직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 노원병의 보궐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정 전 의원의 자택이 노원에 있는 데다 2004년 총선 때 노원갑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혹은 지방선거에 도전할 수 있다는 예측도 일부에서 제기되나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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