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성 좇다 공공성 길 잃다
‘피해자 두 번 울리는 성폭력 보도.’
용산 아동 성추행 살해사건,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 성추행 사건, 마포 연쇄 성폭력 사건, 교도관 성추행 사건 등 올 상반기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성폭력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러나 이들을 다룬 언론의 태도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대책을 제시하기보다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문제 드러낸 성폭력 보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올 상반기 경향, 동아, 서울, 조선, 중앙, 한겨레 등 6개 일간지의 성폭력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성폭력 근절이라는 공공성 추구보다는 선정성이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상담소의 분석에 따르면 성폭력을 연애나 성적인 관계로 바라보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깃거리로 희화화하는 보도가 두드러졌다. 이는 성폭력을 단지 어이없는 사건으로 몰고가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문제점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또 사건에 대해 불필요하게 묘사하는 선정적인 보도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재현함으로써 피해의 심각성을 알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폭력성을 더 자극한다는 것이다.
성폭력의 원인을 가해자의 정신병리적 문제로 해석하거나 단순한 성욕의 문제로 치부하는 보도,‘밤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노렸다.’ 등 성폭력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보도,‘딸 가진 죄인’ 등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보호·통제를 강조하는 보도 등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순결을 강조하거나 피해자로 ‘전락’했다는 등의 표현은 피해 자체를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잘못된 통념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모욕 준 여성에 화나서 범행’‘차량에 감금하고 구애공세’ 등 가해자의 시각에서 표현하는 기사,‘발바리’‘빨간모자’ 등 가해자를 지칭하는 용어 등도 잘못된 통념을 강화하고 폭력성을 희석시켜 재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이나 교직원 등 집단간 정치적 쟁점으로 성폭력 사건이 보도됨으로써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점도 지적됐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필요
반면 성폭력 대책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쏟아낸 처벌 중심의 실효성 없는 대책만 보도했을 뿐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모니터링 기간 동안 성폭력 대책에 대한 기사는 모두 98건이 보도됐으나 대책들의 실효성을 검토하고 외국사례를 소개한 것은 고작 8건뿐이었다.
또 추진 중이거나 앞으로 국회에 제출될 법안 등을 마치 시행된 것처럼 단정적인 제목으로 보도, 성폭력 문제가 해결된 인상을 줌으로써 대책에 대한 무관심을 낳는 결과도 초래하고 있다.
상담소측은“ 잘못된 성폭력 보도가 피해자에게 두려움과 불안감을 준다.”면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전반적인 반성폭력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피해자 관점에서 언론 보도를 모니터링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치안 점검을 부각하며, 사회적인 안전망을 이슈로 삼는 기사가 필요하다.”며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표 참조)을 작성, 심포지엄 개최 이후 언론사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성폭력 보도 모니터링 심포지엄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는 3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