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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산그룹 홍성산업/제3자에 인수 추진

    홍성산업의 경영권이 제 3자에게 넘어갈 전망이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홍성산업에 8백50억원의 시설자금을 대출한 산업은행과,홍성산업의 지급보증으로 고려 계열사에 8백90억원을 대출해 준 대한·중앙투금 등 5개 투금사들이 이같이 합의했다. 홍성산업은 덕산그룹 박성섭 회장의 형인 성철씨가 설립,작년 4월부터 시멘트 반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강원도 삼척에 최신식 공장과 양질의 석회석광산을 보유하고 있어 장래성이 좋은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그러나 시설자금 등으로 1천5백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데다 고려시멘트 계열사에 대한지급보증으로 1천억원의 빚을 지고 있어 부채가 2천5백억원대에 달한다.
  • 경찰,누전발화 추정

    4일 하오 11시쯤 서울 종로구 삼각동 36의1 월성인쇄소(주인 임화식·40) 2층에서 불이나 이 인쇄소 직원 오성철(32)씨가 온몸에 2도 화상을 입고 중태에 빠졌다. 이날 불은 건물 내부 1백50평 중 60여평과 인쇄기계 등을 태워 4천5백여만원(경찰추산)의 재산피해를 낸뒤 20여분만에 꺼졌다. 경찰은 이 건물 1층 천장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았다는 인근 주민의 말로 미뤄 일단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중이다.
  • 제2금융권 무담보대출 많아 큰 피해/덕산그룹 부도파문 어디까지

    ◎금융권 정확한 피해액 파악 안돼 당혹/그룹해체 불가피… 경매 3자인수 유력 덕산그룹의 연쇄부도가 「일파만파」로 금융계를 강타하고 있다. 은행·투금·종금·보험 등 1,2 금융권의 관계자들은 27일에 이어 28일에도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으나 정확한 여신 규모는 물론 담보확보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은감원은 덕산이 ▲작년 11월 무등건설 인수(1백50억∼2백억원) ▲올 1월 충북투금 인수(1백90억원) ▲전북 순창에 온천개발을 위한 임야구입(1백90억원) ▲지난 22일 「일간 오늘」 창간 등 무리한 사업확장이 연쇄부도의 원인이라고 분석. ○…공식 발표와는 달리 각 은행의 여신관계자들은 장기신용 3백억원,한일과 하나 각 1백10억원,신한과 한미 각 1백90억원,서울신탁 2백62억원,광주은행 3백23억원,주택 59억원 등 은행권의 대출만 2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 2금융권의 경우도 중앙투금이 2백억원대에 이르는 등 서울의 8개 투금사 중 신한투금을 제외한 7개 투금사가 1천억원 정도를 담보 없이 대출하거나 지급보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금사 역시 새한종금이 한국고로시멘트에 70억원의 지급보증을 선 것을 비롯,총 1천2백억원대에 이른다는 게 금융권의 풍문.또 태평양 50억원,동양베네피트 17억원,흥국 40억원,신한 1백억원,대일 40억원,대신 1백억원 등 9개 생보사도 3백60억원이나 물린 것으로 확인됐다.이와 별도로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도 각각 2백53억원과 1백24억원의 지급보증을 섰다. 별도 부채로 분류되는 미상환 회사채의 규모도 은감원의 공식 수치와는 달리 방계사인 고려시멘트와 홍성산업을 제외하고 12개 계열사 9백15억원에 이른다는 게 증권감독원의 설명. 2금융권의 경우 초우량 기업인 고려시멘트의 지급보증만 믿고 돈을 빌려주었거나 담보 없이 대출해 준 것이 대부분이라 웬만큼 담보를 잡은 은행과 달리 대규모 부실이 불가피할 전망. ○…덕산그룹은 해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자금조달에 유력한 배경이 됐던 고려시멘트가 공식적으로 지원을 거부한 데다,돈줄을 쥔 박회장의 어머니인 정애리시씨(고려시멘트 이사) 역시 마찬가지 입장으로 보이기때문. 이에 따라 덕산은 부실기업의 처리방안인 ▲자구노력 ▲은행관리 ▲담보(경매)처분 ▲제3자 인수 ▲법정관리 신청 중 사업성이 밝은 시멘트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모두 담보처분이나 3자 인수로 결론이 날 듯. 한편 지난달 덕산이 인수한 충북투금의 경우 신용관리기금이 예금인출 사태에 대비,27일 31억원을 지원. ○…덕산그룹 계열사에 지급 보증을 선 탓에 법정관리 신청을 검토 중인 상장사 고려시멘트는 5백9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28일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고려의 회사채 발행잔액 5백90억원 중 3백20억원어치는 무보증채이며 나머지 2백70억원어치는 보증채이다. 보증채 2백70억원의 보증사는 대우증권 1백억원,대유증권 80억원,동양증권 60억원,한국보증보험 30억원 등이다. 한편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도물산은 2백25억원의 보증채를 발행했다.조흥은행이 1백75억원을,신한은행이 50억원의 보증을 섰다. ◎부도 긴장… 광주 표정/하도급업체 2백여사 연쇄부도 예상 덕산중공업 등 2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덕산그룹(회장 박성섭)이 부도를 내면서 광주지방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덕산그룹에 지급보증을 섰던 고려시멘트(주)(대표 유중옥)와 한국고로시멘트제조(주)등 계열사들에 대한 법정관리신청이 수용된다 하더라도 이들 기업체와 거래해온 하도급업체 2백여개의 자금줄이 막혀 연쇄부도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덕산그룹이 부도사실을 밝힌뒤 이틀째인 28일 계열사인 무등건설과 덕산종합건영이 광주·전남지역에 짓고 있는 2천여가구의 아파트 입주계약자들은 계약금마저 날릴 위기에 놓였다. 또 입주가 진행중인 광주시 서구 주월동 덕산 패밀리아파트에 입주한 40여 가구는 이날부터 도시가스공급을 받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고 이 아파트 공사에 참여한 20여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모려와 농성을 벌이는 등 진통이 확산되고 있다. ◎박성섭 회장 누구인가/조선대 경영도 참여… 무리한 확장 박성섭 덕산그룹 회장(47)은 전 조선대 총장 박철웅씨의 차남.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74년 고려시멘트 이사를 시작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했다.부친이 조선대 총장으로 있을 때 재단의 이사로 학교 경영에도 참여했다. 덕산그룹의 터를 닦은 것은 지난 80년대 말 형제들 간의 재산분배로 한국고로시멘트제조(주)를 갖고 분가하면서부터.우수한 두뇌와 강력한 추진력으로 오늘의 덕산그룹을 세웠다. 전남 광주권의 지방지인 무등일보의 회장도 맡고 있으며 지난 22일에는 타블로이드판 대중지인 「일간 오늘」을 창간했다.수하의 전문 경영인들은 『회장을 모시기가 어렵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평이 좋다. 무등일보 사장 시절 건축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덕산의 재력을 바탕으로 조선대를 되찾으려 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5형제 중 맏인 성철씨는 시멘트 원자재를 생산하는 홍성산업 회장이며 운동권 출신으로 기자생활도 잠시 했던 막내 성현씨가 모기업 격인 고려시멘트 그룹을 이끌고 있다.
  • 북최고 정책결정 기구/당 정치국 상무위 어찌 될까

    ◎오진우 사망 이후의 진로는/김일성·오 사라져 김정일 혼자만 위원으로/혁명 1세대 충원… 「고문회의」 격하 가능성/“세습용도 끝났다” 일부선 폐지 점치기도 권력서열 2위였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25일 사망함으로써 북한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존치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상무위는 북한 권력의 총결집체인 당중앙위 정치국에 설치된 핵심중의 핵심기구.지난해까지 김일성 김정일 오진우 3명만이 상무위원으로 있었다. 실제로 김일성 생전에 북한의 모든 주요결정은 사실상 이 기구를 통해 이뤄졌다.김일성은 주요 현안이 있을 때 2인의 상무위원 이외에 강성산 정무원총리 등 극소수의 측근을 은밀히 불러 구수회의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김일성·오진우 두사람이 사망하고 김정일 혼자 남게 된 상무위는 어떤 형태로든 개편이 불가피해졌다는 게 정부와 북한전문가들의 일반적 관측이다.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오는 4월 현최고인민회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에 상무위원회까지 개편해 김정일의1인자 등극 내부정비 작업을 마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이 당장 상무위원을 충원하는 모험은 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민족통일연구원의 서재진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일이 김일성 1주기에 맞춰 공식 1인자 자리를 승계하면서 일부 혁명1세대 원로들로 상무위원회를 재구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즉 김이 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 다수의 혁명1세대로 상무위원회를 충원,자신의 울타리 역을 맡기는 형식을 취할 것이라는 추론이다.말하자면 원로들을 적절히 예우하면서 자신의 측근들을 일선에 전진배치하는 북한권력의 세대교체를 단행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등소평체제 중국의 사례처럼 상무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고문회의 성격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와는 달리 상무위원회가 사실상 김정일의 권력세습이라는 「역사적 기능」을 마쳤다는 점에서 아예 폐지될 것이란 관측도 없지 않다.김일성은 70년 5차 당대회에서 일단 상무위원회를 폐지했었는데 80년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를 부활시켰었다. 이는 김정일이 자칫 새로운 분란의 씨앗이 될 실세 상무위원회 재구성보다는 그 기능을 정치국으로 넘기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그러나 여기에는 김정일이 북한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그 실현가능성은 의문이다.
  • 북 서열2위 인민무력부장/오진우 사망/후임 최광 유력

    북한 인민무력부장이자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가 25일 새벽 2시30분 오랜 「암성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북한관영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군사위,조선국방위 명의로 된 부고를 발표,『당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고 조선국방위 제1부위원장이며 당중앙군사위 위원인 인민무력부장 원수 오진우가 78세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오진우의 시신은 2·8문화회관에 안치되어 있으며 장례는 3월1일 국장으로 치러진다고 북한 중앙방송은 전했다. 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일단 오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인민무력부장에는 최광 총참모장이,후임 총참모장엔 김정일의 측근인 오극렬이 유력시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장의위원 2백40명 【내외】 북한은 25일 「인민무력부장」오진우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며 오는 3월1일 상오10시에 발인한다고 밝히고 「국가장의위원회」명단을 발표했다. 「국가장의위원회」위원에는 김정일을 포함해 총리 강성산 부주석 이종옥 박성철 김영주,부총리겸 외교부장 김영남 등 당·정고위간부 2백40명으로 구성됐는데 그 상위 주요 인물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정일,강성산(총리),이종옥 박성철 김영주(이상 부주석),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최광(군총참모장),계응태 전병호 한성용(이상 당비서)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김철만(국방위원),최태복(당비서),최영림(부총리겸 금속공업부장),홍성남(부총리),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홍석형(국가계획위원장),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이선실(정치국 후보위원),김철수 김병식(부주석 사민당위원장),유미영(천도교청우당 위원장),김기남 김국태 황장엽 김중린 서관희 김용순(이상 당비서),김환 김복신 김창주 김윤혁 장철 공진태(이상 부총리)
  • 북한주민 3명 귀순/벌목공 2명 포함

    시베리아 소재 북한 벌목장에서 일하던 벌목공 2명과 북한의 농업연구사 1명등 모두 3명이 러시아지역으로 탈출한 뒤 합법적 절차를 거쳐 18일 상오 서울에 도착했다고 외무부가 밝혔다. 외무부 당국자는 『시베리아 벌목공 김봉찬·전성철과 농업연수사로 일하던 이민복등 3인이 합법절차에 따라 서울에 왔다』며 『정부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귀순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온 시베리아 벌목공수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25명에 이르고 있다.
  • 순찰차 탈취범/격투끝에 검거

    【부산=이기철 기자】 파출소 순찰차량 탈취사건을 수사중인 부산 중부경찰서는 18일 범인 김성철씨(27·무직·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1가 99)를 붙잡아 절도혐의로 긴급구속했다. 김씨는 이날 상오2시50분쯤 부산시 중구 보수동 2가23 뉴보수장여관 앞길에서 중부경찰서 보수1파출소 소속 김치훈 순경(27)과 김기환 순경(31) 등 2명에게 차량절취혐의로 붙잡혀 수갑이 채워진 채 파출소로 연행되려는 순간 감시가 허술한 틈을 이용,순찰차량인 부산4가 3506호 엑셀승용차를 몰고 달아났다. 김씨는 탈취한 순찰차를 부산시 서구 동대신동 1가 중앙공원밑 이면도로에 버리고 도주,북구 감전동 소재 이화장여관에 숨어 있다가 친구 장모씨(27)와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한보철강 부근에서 만나기 위해 하오4시50분쯤 택시를 타고 이곳에 도착해 내리려는 순간 잠복근무중이던 경찰에게 격투끝에 검거됐다.
  • 주민선물 줄어든 김정일 생일/2월16일의 평양 이모저모

    ◎경제난 악화·우상화 초점… 특별배급 못한 「최대명절」 북한 김정일이 16일 53회 생일을 맞았다.이날 낮 평양체육관에서 개최된 소년단 전국연합단체대회와 저녁에 평양에서 열린 경축야회에서 절정에 이른 그의 생일 경축행사는 그 성격과 규모 양면에서 예년보다 격상·확대됐다. 이는 김일성사망으로 인한 「국상」기간임을 감안해 이번 그의 생일행사는 조촐히 넘길 것이라는 당초 일부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북한당국은 이미 지난 7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통해 김의 생일을 「민족 최대명절」로 선포했다.그의 생일과 그 다음날인 17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각 직장과 가정에 인공기를 게양토록 하는등 생전의 김일성의 생일행사와 같은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지난 1월초부터 북한전역에서 떠들썩하게 진행되어 온 경축행사의 「레퍼토리」도 예년보다 다양해졌다.그의 출생지로 꾸며지고 있는 백두산 밀영답사행군대회 등 기존행사 이외에 「김일성 위대성 관련 인민무력부 발표회」등 몇가지 우상화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특히 생일 하루전날강성산·이종옥·박성철등 고위급인사들이 참석한 「김정일탄생 53돌 경축 중앙보고대회」는 과거 이 행사가 김일성생일에 한해 치러졌다는 점에서 주목됐다.「김일성은 곧 김정일」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시위」함으로써 김정일시대의 개막을 기정 사실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측이 김의 생일행사를 김일성 생존시보다 요란하게 치르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의미로 새겨진다.첫째 대외적으로 그동안 각종 억측을 자아낸 김정일의 위상약화설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다.둘째로 대내적으로 김일성 추모분위기를 자연스레 김정일 추대 분위기로 바꾸는등 권력승계 공식화를 위한 막바지 정지작업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김정일의 생일을 「민족 최대명절」로 격상시켰음에도 이에 상응해 주민들에게 나눠줄 「선물」은 마련치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다.경제사정의 악화 탓이다. 김일성 생존 당시 북한은 매년 홍콩·마카오로부터 생일선물을 주문한 바 있다.하지만 올해에는 인덕정치」(어진 정치)니 「광폭정치」(통 큰 정치)니 하는 우상화에 초점을 맞춘 「립서비스」뿐이어서 대조적이다.남한으로부터 설탕반입을 늘린 것 이외에는 「생일 특별배급」과 관련한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재미교포 이혼녀 성폭행/유학생에 2억 배상하라/서울지법 이례적판결

    ◎“최고 3천만원 대” 국내관례 깨/“4억 배상” 미법원 결정의 절반 성폭행에 대해 외국 재판정에서 내린 손해배상액수와 국내 배상액수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합의5부(재판장 박성철 부장판사)는 11일 재미교포 이혼녀 정모씨(36)가 미국에서 유학생 김모씨(31)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김씨를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4억여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후 이를 집행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김씨는 정씨에게 모두 2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성폭행사건의 손해배상액은 치료비와 정신적 위자료 등 피해자에 대한 「보상적 배상」의 의미만을 담아 최소 1천만원에서 최고 3천만원을 넘지 않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피해자의 실질적 피해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의미가 포함된 「징벌적 배상」이 추가돼 배상액수가 우리보다 엄청나게 높다. 양국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으로 인한 법감정과 법체계의 차이로 금액 산정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이번에 2억여원으로 배상액수를 고쳐 판결한 것은 외국에서 선행된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국내 민사소송법상의 외국판결 승인제도와 우리의 관행사이에서 고심한 결과다.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477조는 「외국판결에 대한 단순한 집행판결의 경우 외국에서 내린 재판의 타당성 여부는 조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돼있어 재판부가 이같은 절충식의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특히 이전에 이같은 판결의 선례가 없었을 뿐더러 국제화·개방화 추세속에서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이번 판결에 더욱 신중을 기했다는 후문이다.
  • 석유협회 부회장에 홍찬기씨 내정

    대한석유협회는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는 강성철 상근 부회장 후임에 홍찬기 민자당 중앙당 상무위원을 내정했다.
  • “선교 전초기지로 활용”/기업·기독교계/북한에 교회 세운다

    ◎신원그룹,나진·선봉에 곧 착공/예장 남선교회 10곳 세윅 기금 모금/농협 기독교선교회도 통일기금 조성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에 우리 기업이 투자하는 교회가 건립된다.북한의 세번째 교회가 되는 나진·선봉지역의 교회는 신원그룹에 의해 2∼3개월안에 착공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신원그룹 박성철회장이 북한의 협상파트너인 김정우 북한대외협력추진위원회위원장과 합의에따라 건립될 이 교회는 북한의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 이어 3번째 교회.나진·선봉지역교회는 북한의 현지인 보다 북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것이어서 3백석규모의 봉수교회보다 큰 4백50석 규모로 건립할 계획이다. 성결교 장로인 박회장은 최근 북한방문때 성경과 찬송 30권을 평양봉수교회에 전달했다.그동안 한국교회의 여러 선교단체와 미주 한인교회등에서는 북한측과 북한교회건립과 병원시설 지원등을 협의해왔으나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다. 국내 교계에서는 북한이 제3교회의 설립을 한국의 기업의 주도로 설립하기로 합의함에따라 그동안정지됐던 남북 기독교교류가 다시 활발하게 진행되어 북한선교의 새 길이 열리고 선교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전국 15만명의 평신도들로 구성된 예장(통합)남선교회 전국연합회(회장 김구룡장로)가 북한교회재건계획을 마련하고 오는 97년까지 10억원의 기금을 조성키로했다. 연합회회장 김구룡장로(영암교회)는 최근 연합회별로 북한에 10개교회를 설립키로했다고 밝혔다.김회장이 이날 발표한 북한교회건축계획에 따르면 한반도 통일에 대비 북한지역에 도별 1개씩의 교회를 건축하기위해 1개 노회연합회가 이를 책임지고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 노회연합회는 순회헌신예배를 통해 건축헌금을 모으는 한편 연합회예산의 5∼10%를 건축헌금으로 내놓아 3년안에 기금 목표액을 채우기로 했다.연합회는 북한교회설립추진과 남북기독교교류촉진을 위해 올해 8월에 열릴 전국대회및 54차 총회에 북한 교회지도자 5명을 초청키로하고 관계당국과 협의중이다. 한편 농협기독교선교회 전국연합회도 북한에 기독교를 선교하기위해 5억원의 통일기금을 마련하고있다.지난해 5월부터 기금을 모으기 시작한 농협선교회는 1만명의 기독교 신자가 5천만원의 기금을 마련하고 오는 98년까지 3억원 2천년까지 5억원을 목표로 하고있다.
  • 세계화 추진 「실천강령」 제시/김대통령 「6대과제」 천명의 함축

    ◎“논쟁 벗고 행동을” 공직사회에 강한 주문/언론도 대상지목… 제구실 찾기 개입 시사 김영삼대통령이 25일 세계화구상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방향을 새로이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호주의 시드니에서 밝힌 뒤 이미 여러차례 개념을 풀이해보고 방향도 제시했던 것들이다.그럼에도 이날 세계화추진위원들을 만나 세계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번 밝힌 것은 세계화에 관한 논쟁국면을 실천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행위로 볼 수 있다.특히 새마을운동이나 근대화운동처럼 세계화를 하나의 국민운동으로 끌고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명의로 된 「국민교범」이 필요했고 그동안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집대성한 일종의 「세계화사전」을 내게 된 것이다. 김대통령은 잇단 세계화추진 의지의 천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직자 사이에 세계화에 대한 사명의식이 미흡하다고 판단,공직사회에 세계화에 관한 강한 소명의식을 불어넣을 필요성을 느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최근 정쟁바람을 타고 국가의 생존전략으로 제시된 세계화전략의 의미가 퇴색조짐을 보인데서도 이런 재정리 작업을 통한 분위기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던게 아닌가 싶다.이같은 세계화구상의 구체화는 결국 나라전체의 분위기를 생산적이고 일하는 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을 담당했던 박세일정책기획수석이 이날 『이제 세계화가 더이상 논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세계화에 대한 추상적 논의를 끝내고 행동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강조한 사실이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박수석은 특히 『김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시드니에 이어 연두회견에서 세계화구상을 밝혔음에도 불구,아직 세계화개념에 대한 견해의 불일치가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음을 중시,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과거 1백년이 근대화 공업화 시대라면 향후 1백년은 세계화시대로 현재는 문명기적 전환기라 할수 있다』면서 『공직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이같은 시대사적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국가발전이라는 목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세계화구상을 거듭 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이 이날 오늘의 시대를 혁명적 변화의 시대로 정의하면서 과거 1백년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으나 실패했음을 지적한 것은 그의 시대인식과 세계화전략에 대한 집념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1백1년전의 갑오경장은 개화파와 수구파의 싸움으로 3년만에 끝났고 결국 우리는 개방과 공업화를 통한 「근대국가」를 세우는 작업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21세기로 넘어가는 현재를 갑오경장이 있었던 시대와 비유함으로서 국민,특히 정치권에 강한 메시지를 주었다. 이를 테면 현재의 민자당내 김종필전대표를 둘러싼 보수파의 움직임이나 정책대안 없이 소모전을 되풀이 하는 야당이 갑오경장을 실패로 만든 수구파의 움직임과 같은 역사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이의 개선을 정치권에 촉구한 것이다.김대통령이 정치와 언론을 3번째로 세계화가 필요한 분야로 지적하면서 여러가지 발전방향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김대통령은 야당에는 정책으로 경쟁할 것을,이른바 「3김구도」에 대해서는 차세대 정치인의 양성과 당내 민주화를 들어 이같은 구도가 청산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언론에 대해서도 「정론을 펴는 공기」가 되어야 한다고 요청함으로써 권력투쟁에 천착하는 언론의 보도태도를 간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언론,특히 신문의 불공정거래(내부 불공정거래 포함)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조사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대통령이 직접 언론을 세계화의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대통령으로서 단순히 세계화를 촉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부가 가진 합법적 방법으로 언론의 공기화를 유도할 것이란 점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난해말 박수석에게 세계화에 대한 구상과 견해를 피력한 뒤 이를 정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박수석과 전성철정책1비서관등이 중심이 돼 마련한 이 교범은 앞으로 남은 김대통령의 임기동안 국정운영의 중심지표이자 이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김대통령이 교육의 세계화를 이야기하면서 자율과 경쟁을 촉구하고,교육부가 고교입시 부활문제등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표한 것에서 이러한 세계화구상과 구체적 정부정책 사이의 상관관계가 입증되고 있다. 앞으로 구체적 정책을 일관할 단어는 김대통령이 밝힌대로 「생산성」과 「유연성」이 될 것이다.
  • “북 투자전망 중보다 밝다”/방북 신원회장 회견

    북한기업과의 합작투자를 논의하기 위해 국내 기업인으로는 올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주)신원의 박성철(54)회장이 1주일만인 17일 하오 북경발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했다. 평양 체류기간 동안 김정욱 대외경제협력 추진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북한의 나진·선봉지역에 합작 또는 합영회사를 만들기로 합의를 하고 돌아온 박회장은 『북한의 투자여건은 양호한 상태로 앞으로 남북한 경협이 증진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오히려 중국보다 투자전망이 밝다』고 밝혔다.
  • 대우·한화 등 4기업/30명 북한방문 승인/통일원

    통일원은 지난해 말 6개 기업에 이어 최근 2차로 4개 기업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12일 밝혔다. 추가로 방북 승인을 받은 기업과 방북대상자는 ▲한화그룹이 이진우 그룹회장실 사장 외 11명 ▲동양그룹이 박제윤 동양시멘트 부회장 외 9명 ▲(주)신원이 박성철회장 외 2명 ▲대우그룹이 이경훈그룹부회장 외 4명 등 모두 4개기업,30명이다.
  • 청와대 비서관 내정

    ◎정책1 정성철/정책2 권오규/정책3 황성돈/사회·여성 이성헌 청와대는 11일 신설된 정책기획수석실 정책1비서관(장기정책)에 전성철변호사,정책2비서관(경제정책)에 권오규 재경원대외경제국총괄과장,정책3비서관(비경제정책)에 황성돈 행정연구원연구기획부장을 내정했다. 교문수석실이 폐지돼 정무수석실로 옮긴 사회·여성비서관에는 이성헌홍보비서관실국장이 내정됐다.
  • 북 설맞이 모임/김정일 불참

    【내외】 북한 김정일이 31일 하오 평양에서 열린 새해 설맞이 모임에 불참함으로써 지난 11월1일 청류다리 시찰이후 두달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의 동정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한 1일 신년사 발표와 관련한 김정일의 공석 등장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정일이 불참한 가운데 이날 하오8시부터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 열린 새해 설맞이 모임에는 총리 강성산,부주석 박성철,김영주,김병식을 비롯한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참석했으며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도 주석단에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북 권력서열 불변

    【내외】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 3주(12월24일)를 맞아 23일 평양에서 진행된 「중앙보고대회」에는 김정일·오진우등 몇사람이 불참했으나 전반적인 권력서열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행사의 주석단에는 노동당 정치국 위원으로 총리 강성산을 비롯해 부주석 이종옥·박성철,부총리겸 외교부장 김영남,군총참모장 최광,당비서 계응태·김병호·한성용 등이 자리했다.
  • 군최고사령관 추대/3주 중앙보고대회/김정일 불참

    【내외】 북한은 23일 평양 2·8문화회관에서 김정일 군최고사령관 추대3주(12·24)를 기념한 중앙보고대회를 개최하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불변」과 만반의 「전투동원태세」견지를 촉구했다. 김정일이 빠진 가운데 총리 강성산,부주석 이종옥·박성철등 당·정·군의 고위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이날 보고회에서 군총참모장 최광은 기념보고를 통해 김정일의 영도가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기 위한 근본담보』라고 주장하면서 『전당 전군 전민이 김정일의 영도를 더욱 높이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성철스님 불자,「스님,꽃필 날이 멀었습니까」 후속편 발간 준비

    ◎불교계에 새 파문 예상/저자 “스님 사랑은 법력… 세속적 애정과 다르다”/큰스님 법문 쉬운말로 풀어 모두 담아 성철스님이 한 여성 불자를 사랑한 것으로 묘사하여 불교계에 파문을 일으켰던 수상집 「스님,꽃필 날이 멀었습니까」의 후속 제2권이 준비되고 있다. 강헌정씨(51)가 쓴 「스님,꽃필 날이…」는 지난 10월 성철스님 1주기에 맞추어 자유문학사가 펴냈다.그러나 성철스님 속가의 딸 불필스님과 문도들의 항의로 출판사가 곧 배포를 중단,인쇄본 1만부 가운데 7천부가 전국 서점에 깔리는 것으로 그쳤다.배포중단을 요구한 이유는 책내용 중에 저자(강헌정) 자신을 성철스님이 사랑한 여인으로 묘사한 대목이 들어있다는 것.이는 평생을 수행으로 살아온 스님에게 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스님의 사랑은 속인의 고뇌를 감싸안은 간절할 법력일뿐 세속적 애정이 아니라는 반론을 폈다.그러한 사랑의 표현이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염려한 부분들이 있기는 하다.「큰 스님의 강렬한 사랑이 날 못견디게 만든다.가슴의 불을 내색하지 않으시고 나를 한번 정시하시기 위한 표내지 않는 걸음걸이들­.우리는 두 사람이 다 불덩어리다」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랑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고는 큰 스님의 법력을 헤아리는 글을 쓸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세속의 애정 따위의 사랑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큰 스님이 진심으로 가르쳐 준 불법이 지금도 사랑으로 다가온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그래서 성철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 여덟해 동안의 법문을 하나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스님,꽃필 날이…」에는 그 법문이 모두 들어있다.선지식이 여간하지 않고서는 듣기가 어렵기로 유명한 성철스님의 법문을 모두 담았다.그것도 쉬운 말을 골라 풀어 썼다.이때문에 배포중단을 요구했던 문도중의 몇몇 스님들조차 법문해석에는 칭찬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가 후속 2권을 쓰기로 원력을 세운 것은 성철스님이 열반 이후에도 생전과 다름없이 불자들 가슴에 살아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무심히 던져준 스님의화두 하나까지도 모두 기록해 둔 탓에 「스님,꽃필 날이…」 제2권의 집필도 순조롭게 진행될 전망.『그만 앉아 있거라』는 스님의 목소리를 지금도 듣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참선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동사섭(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는 일)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글을 쓸 계획이다. 저자는 절밥을 거저 얻어 먹는 대신 절일을 하면서 전국 열대여섯군데 사찰을 찾아 10년 가까이 수행정진한 불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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