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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퀴어·SF… 펜에 스민 다양성

    여성·퀴어·SF… 펜에 스민 다양성

    대부분 문학상 수상자 여성 돌풍 여전 장르 문학도 약진… ‘K문학 위상 높여’올 한 해 문학계는 ‘다사다난’보다는 ‘다이내믹’에 가까웠다. 한림원에 번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로 한 해를 거른 노벨문학상은 두 명의 수상자(올가 토카르추크·페터 한트케)를 배출했다. 한국에서는 김혜순 시인이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 차기 노벨문학상 수상 전망을 높였다. 변방의 서자 취급을 받던 SF 등의 장르 문학은 대세로 떠올랐고, 여성 작가를 필두로 한 페미니즘과 퀴어 서사는 여전한 힘을 발휘했다. ●후보도 수상자도 여성… 여성 작가 초강세 올해 트위터에서 돌았던 ‘짤’ 중 하나. ‘김승옥문학상 수상자’라는 코멘트 아래 쭉 이어지는 7명의 사진은 모두 여성이었다. 대상을 받은 윤성희 작가를 비롯해 우수상 수상자인 권여선, 편혜영, 조해진, 황정은, 최은미, 김금희 모두 여성인 까닭이다. 올해 13회째를 맞은 김유정문학상도 사정은 비슷했다. 수상자 편혜영 작가를 비롯해 후보 작가들(김금희, 김사과, 김혜진, 이주란, 조남주, 최은미) 모두 여성이었다. 동인문학상(최수철)을 제외하고 이상문학상(윤이형), 현대문학상(박민정) 등 주요 문학상도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최근 사회에 던지는 윤리적인 질문 자체가 문학 미학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가 됐다”며 “젠더나 퀴어, 장애인 같은 소수자 서사를 다루는 데 여성 작가들이 사회에 더욱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첨단의 윤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페미니즘·퀴어 서사의 진화 여성 작가들의 활약으로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쏘아 올린 페미니즘 소설 붐은 올해도 계속됐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리타 메이 브라운 등 외국 유명 페미니스트 소설가들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는가 하면 국내 여러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발간이 이어졌다. 퀴어 문학에서는 박상영이라는 걸출한 신예의 탄생이 주목받았다. 지난해 출간한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로 주목받았던 박상영은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으로는 6개월간 4만 5000부를 찍었다.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퀴어 서사를 넘어 청년 세대의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한다는 평을 받는다. ●신성의 등장, 무크지 창간… SF 문학의 약진 웹소설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SF, 판타지, 무협, 로맨스, 추리 등을 포괄하는 장르 문학이 크게 각광받았다. 그중에서도 SF의 활약은 눈부셨다. 포스텍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은 출간 6개월 만에 3만 3000부를 찍어 신예 작가로는 이례적인 관심을 받았다. 김보영 작가는 미국 최대 출판그룹 ‘하퍼콜린스’에 중·단편 소설 3편의 번역 출간권을 판매, 한국 SF 최초로 영미권 주요 출판시장에 진출했다. 한편 지난달에는 SF 전문 무크지 ‘오늘의 SF’(아르테)가 창간돼 SF 문학을 비평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고호관, 듀나, 정세랑, 정소연 등 SF 문학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들이 편집위원을 맡았다. 복도훈(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는 “AI나 인류세,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SF적인 상상이 우리 삶의 중요 기제가 됐다”며 “최근의 SF 붐은 밑바닥부터 실력을 다져 온 작가들과 팬덤, 출판사들까지 오래된 노력이 ‘빅뱅’처럼 폭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로 뻗어가는 K문학의 힘 한국에서 130만부를 찍은 ‘82년생 김지영’은 올해까지 19개국에 수출, ‘K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만 18만부, 일본에선 15만부가 인쇄되는 등 비슷한 사회 환경의 동아시아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에서도 한국 문학에 대한 열띤 관심이 이어졌다. 지난 6월 김혜순 시인은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문학상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수상했다. 9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낭독회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즈음 스웨덴 문예지 ‘10TAL’은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했다. 외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한국문학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올 한 해 출판 지원 종수는 26개 언어권 151종이었다. 2010년 15개 언어권, 53종의 책을 번역 출간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종교적 확신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종교적 확신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1327년 11월을 시대 배경으로 수도원에서 벌어진 희대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다. 호르헤 수도사는 책 페이지에 독을 발라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는 수도사들을 죽게 만든 종교적 확신범이다. 웃음을 다룬 고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에 접근하려는 수도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사건 수사를 맡은 윌리엄 수도사는 호르헤에게 말한다. “그래! 잘 들어 둬. 당신은 속았어.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자신의 믿음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자들, 자신의 믿음이야말로 타인의 믿음의 진실성을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이라고 확신하는 자들이야말로 악마라는 것이다. 신앙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하며 남을 정죄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필요 없어. 하나님의 인정만 받으면 되지”라며 이웃에게 거침없이 무례를 저지른다. 자기 신앙이 한 점의 의혹도 없는 확고부동한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맹신자들이다. 중세 종교재판관들도 같은 부류다.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투시력이라도 있는 듯 행동한다. 조지프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은 인간 내면의 허약함과 취약성을 지적한다. 그는 “도덕으로 견뎌 내는 문명화된 인간의 삶이란 가까스로 식은 용암의 얇은 표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것과도 같아서 자칫 방심했다가는 언제 어느 때 그 표면이 갈라져 불타는 심연으로 떨어지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추앙받는 성인(聖人)의 삶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그러니 인간 숭배란 얼마나 부질없는가. 절대적 확신으로 무장한 지도자가 흔드는 깃발 따라 나부끼는 군중이란 얼마나 끔찍한가. 인간은 고독 속에서 선해지고 강해질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에서 “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 귀중한 자질”이라고 말한다. 한적한 골목길이 석양에 물들고 있다. 무리 짓기보다 혼자가 되자. 절대적 확신보다 정직한 의심과 성찰로 한 해를 마감하자.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사설] 삼성의 ‘비노조 폐기’ 결정, 노사관계도 초일류 돼야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펼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 재판에서 임직원 32명 중 26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2013년 10월 심상정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하고 금속노조 삼성지회 등에서 삼성그룹 수뇌부를 고소한 지 6년 만이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에 이어 ‘그룹 2인자’로 통하는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그룹 미래전략실에서 하달돼 각 계열사, 자회사로 배포된 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각종 보고자료 등은 그 자체로 노조 와해와 고사 등 범행의 모의와 실행, 공모까지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명시했다. 삼성이 50년 넘도록 표방해 온 이른바 ‘무노조 경영 방침’의 허구와 불법성은 그동안 숱한 도전을 받아 왔다. 1997년 이후 삼성전관(현 SDI), 에스원, 호텔신라, 연구소, 삼성전자, 에버랜드 등 여러 계열사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삼성은 선제 허위 신고, 납치, 감금, 퇴직 강요 등으로 이를 철저히 막아 왔다. 심지어 하청업체, 사내기업의 노조 설립도 용납하지 않았다. 세계 초일류기업을 자처했지만, 노사관계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있는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비노조 정책을 폈다.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경영 방침은 결국 독으로 돌아왔다. 이미 지난달 16일 한국노총 산하 조직으로 삼성전자노조가 공식 출범해 사회적으로 환영을 받았다. 노사 상생의 관계를 확립하는 것은 삼성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법원 판결 직후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힌 점은 고무적이다. 단순한 말에 그쳐선 안 되고 삼성그룹 차원의 후속 조치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번 판결이 과거 반인권, 불법 행위에 대한 성찰과 함께 노조와 상생·공존의 새로운 경영철학 및 기업문화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삼성그룹이 진정한 글로벌 기업을 추구한다면 노사관계도 글로벌 수준으로 상향 조정돼야 한다.
  • [열린세상] 맹장과 반론권/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열린세상] 맹장과 반론권/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맹장을 일컬어 ‘있으나 마나 한’ 창자라고 한다. 웬만한 백과사전은 소화기관의 흐름을 설명할 때 맹장을 지나친다. 입과 식도를 지난 음식물이 위와 소장과 대장을 거쳐 항문에 이른다는 식이다. 맹장은 소장과 대장 사이, 대장이 시작되는 곳에 주머니처럼 달렸다. 크기는 새끼손가락만 하다. 소장이 한 일과 대장이 할 일 막간에 수분이나 염분을 흡수하는 소임을 맡았다. 맹장은 식구 하나를 데리고 산다. 실 풍선처럼 생긴 충수돌기다. 맹장염은 이 충수돌기에 이상이 생겼을 때를 말한다. 충수염이 정확한 표현이다. 곪은 충수돌기를 잘라낸 것을 두고 흔히 맹장을 떼어 냈다고 말한다. 이쯤 이르러서야 맹장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여겨질 터이다. 며칠 전 한국기자협회와 언론학회가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언론보도를 성찰하기 위한 자리였다. 세 편의 좋은 논문이 발표됐다. 특히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의 글이 좋았다. 권 위원은 피의사실의 공표보다 한국 언론에 더 위험한 것은 ‘전지적 검찰시점’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의 관점에 매몰돼 수사 상황을 전달하는 언론의 태도를 말하는데 공정보도를 해치고 알 권리를 방해한다. 한국 언론이 ‘검찰에 따르면’이라는 관행적 형식의 기사를 쓰고 있으나 실은 요모조모가 죄다 검찰로 변주될 가능성도 꼬집었다. 무엇보다 “피의자의 해명을 기사 끄트머리에 맹장처럼 달고 있다”는 그의 표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권 위원의 글은 공들여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맹장 같은 반론은 반론이 아니다. 당사자의 해명이랍시고 맹장의 충수처럼 기사 끝에다가 으레 붙이는 몇 마디 언설은 반론이랄 수 없다. 수사기관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사 혹은 수사기관을 참칭한 언론 자작의 근거가 약한 억측을 가리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이미 범죄가 ‘드러나고, 파악되고, 밝혀지고, 전해지고, 알려져’ 단서가 잡힌 ‘나쁜 놈’의 해명 몇 마디가 기사 말미에 달랑 붙어 있다고 해서 그에게 귀를 기울일 시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부실한 반론, 형식적 반론은 뉴스 품질의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2019년 옥스퍼드대의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한국 언론의 뉴스 신뢰도는 22%였다. 조사 대상 38개 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4년째 최하위다. 언론이 누군가의 앵무새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언론이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반론이 제대로 자리잡아야 한다. 맹장 끝에 붙은 충수 같은 반론이 아니라 기사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맥락에 당사자들의 견해가 촘촘히, 질적으로 균등하게 스며드는 반론이어야 한다. 반론은 당사자의 권리행사로서의 반론권과 국민의 알찬 알 권리로서의 반론으로 나눌 수 있다. 권리로서의 반론권은 역사가 오래됐다. 1958년 제정 민법 제764조에 반론권의 행사가 보장됐다. 1980년 제정 언론기본법은 제49조에 ‘정정보도청구권’이라는 이름의 반론권 제도를 정식으로 도입했다. 2005년 제정된 언론중재법은 반론권을 핵심 축으로 한다. 반론권은 진실 여부를 불문하며 언론사의 고의나 과실 혹은 위법성을 따지지 않는다. 언론이 관행적으로 맹장 같은 끄트머리 반론을 반복하는 이유 역시 법적인 반론권 행사의 사전 대응책인 셈이다. 반론은 당사자의 권리구제라는 법적 측면 말고 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 당사자들의 견해를 두루 반영하는 장치가 반론이다. 공정한 보도를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사의 원조 모양새다. 일방의 익명 관계자의 견해는 언론의 지면을 빠르고 넘치게 채울 수 있으나 시민 독자의 언론에 대한 신뢰를 야금야금, 급기야 치명적으로 깎아내린다. ‘신뢰도 22%, 만년 꼴찌’라는 뼈아픈 평가는 부실한 반론 양식에 기인한다. 임기응변식 자잘한 처방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제대로 된 반론이 착근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자극적이며 재미 넘치는 수사단계 보도를 지양하고 법정의 재판보도 중심으로 언론의 취재보도 구조가 재편돼야 한다. 국민도 느리고 밋밋하며 재미없는 언론보도에 익숙해질 의무가 있다. 반론은 맹장이 아니다.
  • 인물화, 시대를 담다

    인물화, 시대를 담다

    갤러리현대 개관 50주년 기념 특별전 첫 서양화 기법의 누드화 ‘해질녘’ 등 시대정신 구현한 작가 51명 작품 담아 근현대미술 100년 작가·사회 변화 표현평양 능라도를 배경으로 나신의 두 여인이 등을 돌리고 선 채 목욕을 하고 있다. 저 멀리 대동강 위로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어른거린다. 목욕하는 여인을 주제로 한 유럽 후기 인상주의의 전형적인 누드화를 닮은 이 그림은 1916년 도쿄미술대학 유학생 김관호(1890~1959)가 졸업작품으로 제작해 그해 ‘제10회 문부성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해질녘’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최초의 누드화를 당시 조선인들은 볼 수 없었다. 김관호의 특선 소식을 대서특필한 ‘매일신보’는 ‘여인의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게재치 못한다’며 사진을 싣지 않았다. 내년 개관 50주년을 맞는 갤러리현대가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미술 100년을 인물화로 돌아보는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전시의 첫 작품으로 ‘해질녘’을 선정한 취지도 이 그림을 통해 근대미술 태동기에 화가의 달라진 인식과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관호를 비롯해 도쿄미술대학 졸업생인 고희동, 이종우, 오지호, 김용준의 1920~30년대 자화상이 나란히 소개된 점도 의미가 있다. ‘해질녘’과 자화상 5점은 현재 도쿄예술대학(도쿄미술대학 후신)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최열, 미술사학자 목수현·조은정,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전시에는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흐름 속에서 당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화면에 담아낸 화가 51명의 작품 71점이 선보인다. 미술사적으로 귀중할 뿐 아니라 평소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고전 명작들이다. 본관에서 열리는 1부 전시는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된 근대미술의 대표적 인물화가 장식한다. 1930년대에는 조선의 향토색이 드러나는 인물화가 많이 그려졌다. 조선미술전람회를 관장하는 일본 심사위원들이 식민지로서 조선의 특색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오지호의 ‘아내의 상’(1936),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 등이 인물의 형태와 의상, 배경 등에서 향토색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1940년대에는 이쾌대의 ‘군상 Ⅲ’(1948)에서 보듯 해방의 기쁨과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신관으로 이어지는 2부 전시에선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해방 이후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건너온 한국인의 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인물화가 선보인다. 전쟁의 폐허에서 아이를 업은 단발머리 소녀를 그린 박수근의 ‘길가에서’(1954)와 소달구지에 가족을 싣고 남쪽 나라로 향하는 가장의 모습을 담은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1954)은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이어 가는 인간의 본성을 옹골차게 담아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화가의 자화상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담배를 피우는 여성의 옆모습을 그린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폐교에서 발견한 칠판에 김치를 담그는 여성을 그린 김명희의 ‘김치 담그는 날’(2000) 등은 화가의 내밀한 감정을 투사한 자화상이자 시대의 초상으로 읽힌다.전시 마지막은 1980년대 이후 민중미술이 주목한 새로운 유형의 인물화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종구 ‘활목할머니’, 오윤 ‘비천’, 박생광 ‘여인과 민속’, 임옥상 ‘보리밭’, 신학철 ‘지게꾼’ 등을 통해 불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능동적이고 강인한 인물상과 격변의 시대를 묵묵히 통과해 온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자문위원인 유홍준 평론가는 “근현대 미술의 성장과 발자취를 이처럼 요약적으로 보여 주는 전시는 없었다”면서 “이번 인물화전이 근현대사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는 18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정세균 총리 지명자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 주력하겠다”

    정세균 총리 지명자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 주력하겠다”

    사상 첫 국회의장 출신 총리 지명자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회의장)은 17일 “국가가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총리라는 중책에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세균 후보자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힘이 되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작정”이라며 총리 지명 소감을 밝혔다. 정세균 후보자는 “저는 원래 종로에서 3선 도전을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서도 “많은 분과 대화를 하고, 저 자신도 깊은 성찰을 통해 국민에 힘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총리 지명을 수락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 이유를 말하며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주문했다”면서 “이런저런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인 소통 노력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정세균 후보자 지명은 헌정 사상 첫 국회의장 출신 총리 발탁이다. 정세균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통과하면 이낙연 총리에 이어 또다시 호남 출신 총리가 된다. 전북 진안 출신의 정세균 후보자는 전주 신흥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대 행정대학원과 미국 페퍼다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북대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쌍용그룹에 입사해 상무이사까지 지냈고, 참여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는 등 부처 통솔 및 현장 경험으로 ‘경제 총리’에 적임이라는 평이다. 정세균 후보자는 15대부터 20대까지 내리 6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고향을 지역구로 두다 2012년 19대 국회 때부터 ‘정치 1번지’ 종로에 뿌리를 내렸다.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김대중 당시 총재 특보를 지냈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장, 민주당 대표 등 당 최고위직을 잇달아 역임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운영위원장,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상임위에서 활동했다. 20대 국회 전반기인 2016∼2018년 국회의장을 지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한국인 지대한 영화 사랑 100년 지킨 버팀목, 백년 대계 담아 낼 비전 그릇 어디 있나

    한국인 지대한 영화 사랑 100년 지킨 버팀목, 백년 대계 담아 낼 비전 그릇 어디 있나

    한국영화 100년을 맞은 2019년이 저물고 있다. 1919년 10월 27일 연쇄극 ‘의리적 구토’로 출발한 한국영화는 우리 국민들이 기대는 가장 친근한 오락이자 문화였고, 대중과 가장 가깝게 호흡한 예술 장르이기도 했다. 올해 봉준호 감독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한 가장 큰 선물임과 동시에 한국영화의 저력과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봉 감독 역시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영화청년들의 롤모델로 각인됐음은 물론이다. 세계 어느 국민들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 관객들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가 인정한 작품에 1000만 관객 흥행으로 보답한 것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절묘한 균형을 포착해 내는 한국 상업영화의 강점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지대한 영화 사랑과 영화적 안목을 보여 주는 대목임에 분명하다. 1월부터 시작한 ‘한국영화 100년의 기록’이 어느듯 마지막 연재를 맞았다. 한국영화사 연구자이자 한국영화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한국영화 100주년 행사로 바빴던 올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올해 신구 영화인들이 함께 뜻을 모은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영화의 날인 10월 27일까지 다양한 기념사업과 행사들이 이어졌다. 한국영화 역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영화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가한 ‘한국영화 100년 100경’이 영화의 날에 맞춰 발간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 모든 사업들은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각 분과와 영화진흥위원회 실무진의 헌신으로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한국의 주요 국제영화제들과 한국영상자료원(KOFA)도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상영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과 만났다.특히 2019년은 한국영화 관련 학술 행사들이 집중적으로 진행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열린 포럼BIFF에서는 100주년을 기념한 두 섹션 ‘동아시아 초기 영화의 수용과 실천’ 및 ‘균열과 생성: 한국영화 100년’이 3일에 걸쳐 진행됐다. 영상자료원이 공동 개최하고 필자가 책임 기획을 맡은 전자는 초창기 한국영화사 연구를 세계영화사의 맥락, 특히 동아시아 국가 간의 영화사 비교 연구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장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설 지석영화연구소가 기획한 후자는 이창동 감독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100년간의 한국영화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또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한국영화학회 등 영화학계가 협업한 국제학술세미나 ‘글로벌 한국영화 100년-사유하는 필름을 찾아서’는 국내외 저명 학자들부터 신진 연구자까지 집결해 한국영화의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미래를 예측해 보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한국영상자료원 역시 올해는 가장 바빴던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지난해 12월에 부임한 주진숙 원장 체제로 뒤늦게 100주년 사업에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한국영화 관련 행사 지원부터 ‘기술’, ‘여성’, ‘독립영화’라는 키워드로 한국영화 100년을 새롭게 바라보는 자체 행사들까지 숨가쁘게 치렀다. 영상자료원이 보존 중인 한국영화 자료들은 올해 가장 바쁘게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 파리, 브뤼셀, 부다페스트 등 한국문화원이 있는 해외 도시들에서 영화제와 행사들이 연거푸 이어졌기 때문이다. 영상자료원 내부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들이 이어졌다. 시네마테크 KOFA는 100주년 기념 영화제 ‘발굴, 복원 그리고 재창조’를 비롯해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 고전영화들을 소개했다. 한국영화박물관은 여성 캐릭터와 검열 이슈로 영화 100년을 일별한 기획전시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와 ‘금지된 상상, 억압의 상처’를 선보여 관람객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2004년에 착수한 연구 파트의 원로영화인 구술사 사업도 올해 송길한(시나리오 작가), 김동호(강릉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김지미(배우), 홍파(감독)를 선정, 그들의 영화 인생과 한국영화 역사에 대한 소중한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에 걸맞은 대중적, 학술적 행사들이 이어졌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영화 100년을 역사가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정리한 ‘통사’(通史)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러분들은 공신력 있는 한국영화사 도서를 접한 적이 있는가. 아마 쉽게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영화사 연구 지형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인 ‘한국영화전사’는 1969년 한국영화 50주년을 기념해 고 이영일(1932~2001)의 저술로 발간된 바 있다. 2004년 후학들을 통해 개정증보판이 나오긴 했지만,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진 50년 전의 기록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영화전사’가 발간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한국영화 100년 혹은 ‘전사’ 이후 50년에 대한 본격적인 통사 기술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또 다른 이영일, 즉 뛰어난 영화사가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실 이 책을 쓸 당시 그는 30대에 불과했고, 마치 돈키호테의 열정과 자세로 한국영화사 저술 작업에 임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바꿔 보자. 지금 우리는 ‘한국영화전사’에 버금가는 또 다른 통사를 가질 수 없을까. 또 한 명의 돈키호테가 없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불행하게도 국내외 한국영화 학계의 연구자층은 2000년대 초반 전성기에 비해 얇아졌고 특히 들이는 품에 비해 명료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영화사 연구에 과감히 뛰어드는 대학원생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학계 역시 연구 방법론이 크게 바뀌었다. 지금 연구자들은 역사가의 관점과 흐름이 읽히는 통사 쓰기보다 미시적 관심사에 따른 연구 주제에 천착하거나, 해체론적 접근을 기반으로 국가 영화사의 균열 지점에 더 관심을 가진다. 특히 소논문의 절대 생산량을 학술적 업적으로 계량화하는 현재 아카데미의 규칙 탓에,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 같은 통사 기술 작업은 더이상 시도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영화학계는 한국영화사 100년을 공신력 있게 기술하는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고, 결국 앞으로의 숙제로 남았다. 영상자료원 역시 깊은 고민을 실천으로까지 옮기지 못했다. 올해 한국영화 100주년을 본격적인 통사 서술의 계기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국가나 영화 관련 기관의 든든한 지원이 선결돼야 하겠지만, 영화사 연구자들 역시 직업적 사명감은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소논문 형태의 각론으로 진행한 수많은 연구 성과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들의 영화사 쓰기를 시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감독과 작품의 역사뿐만 아니라 정책·산업, 기술, 관객 수용, 비평 같은 각자의 연구 관심이 반영된 복수의 영화사를 기술해야 한다. 물론 여성주의나 문화사 같은 관점도 한국영화사 100년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장단점이 확실히 있겠지만 각 주제나 시기의 전문 필자들이 참가하는 집단적 글쓰기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복수의 역사 서술들이 학계의 연구자들끼리만 읽는 용도가 아니라 대중적 시야에서 주목받고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의 지난 100년과 새로운 100년을 국민들과 함께하는 가장 근사하고 세련된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국립 한국영화박물관 건립이라 생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박물관은 공간의 규모나 건축의 상징성도 중요하겠지만, 공신력 있게 정리된 한국영화 100년의 기록과 새롭게 준비해야 할 100년의 비전으로 채워져야 한다. 한국영화박물관은 한국영화의 지난 100년과 앞으로의 100년 그 자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한국영화의 모든 것을 보존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그릇이어야 하고, 특히 청소년들이 과거의 한국영화에 공감하고 미래의 한국영화를 예측하는 체험의 장이 돼야 한다.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영화의 기록을 어떻게 국민들과 공유할 것인지 고민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끝으로 25회에 걸쳐 연재한 ‘한국영화 100년의 기록’을 읽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낭만닥터 김사부2’ 안효섭, 첫 의사 役 ‘연기 대변신’ [SSEN컷]

    ‘낭만닥터 김사부2’ 안효섭, 첫 의사 役 ‘연기 대변신’ [SSEN컷]

    ‘낭만닥터 김사부2’ 안효섭이 데뷔 5년만에 처음으로 의사 역할에 도전한다. 안효섭은 오는 1월 6일 첫 방송되는 SBS ‘낭만닥터 김사부2’를 통해 돌담병원 다크호스로 맹활약할 전망이다. ‘낭만닥터 김사부2’는지방의 초라한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진짜 닥터’ 이야기로, 괴짜 천재 의사 김사부(한석규)를 만나 인생의 ‘진짜 낭만’을 찾아가며, 치열하게 달려가는 내용을 담는다. 제작진은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보다 박진감 넘치는 흥미진진한 서사와 인생의 성찰이 고스란히 담긴 대사, 유쾌한 웃음과 울림의 감동 등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한 스토리 전개를 예고한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안효섭은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써전이 된, 타고난 수술 천재 외과 펠로우 2년 차 서우진 역을 맡았다. 극중 서우진은 매사에 시니컬하고 재미를 못 느끼지만 오직 수술실에서 집도할 때만은 엄청난 집중력과 기민한 손놀림으로 빛을 발하는 인물이다. 돈이 없어 모든 게 빠듯했던 서우진이 우연한 계기로 돌담병원에 가게 된 후 김사부를 만나 인생의 변화를 맞는다. 이와 관련 제작진은 안효섭이 수술실에서,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심각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장면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안효섭은 웃음기 하나 없는 진중함으로, 시크하고 무표정한 서우진을 일관되게 표현, 몰입도를 높였다. 안효섭은 서우진 역을 통해 데뷔 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의사 역할을 맡아 새로운 연기 대변신에 나서게 된다. 첫 의사 연기를 위해 안효섭은 의학 자문 전문가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시술하는 과정을 지켜본 후 계속 연습하는 등 최선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밝고 명랑한, 로맨틱한 이미지로 다가섰던 안효섭이 ‘낭만닥터 김사부2’ 서우진으로 어떤 성장을 이뤄내게 될지 기대를 모은다. 안효섭은 “‘낭만닥터 김사부2’는 혐오와 편견으로 가득한 지금 이 세상에서, 모든 색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다양성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며 “돌담병원이라는 도화지 안에서 틀린 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어우러져 펼쳐지는 가슴 뭉클한 내용들이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작품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낭만닥터 김사부2’ 메시지가 많은 분들의 상처에 위로가 되어주는 따뜻한 포옹 같은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멋진 제작진, 그리고 배우들과 함께 서우진이라는 인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찬 각오를 덧붙였다. 제작사 삼화네트웍스 측은 “안효섭은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김사부 한석규로 인해 단단하게 성장하게 되는 또 한명의 낭만 의사가 될 것이다. 귀엽고 개구쟁이 같은 이미지를 벗고, 서우진 캐릭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안효섭의 대변신을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문화마당]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책이 말한다, 이 부정의한 세상에/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갈라진 벽의 틈새를 보듯, 2010년대도 훌쩍 지나갔다. 2009년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티브 잡스’가 열어젖힌 ‘제4차 산업혁명’의 봇물에 휩쓸려 그사이 삶의 전 영역이 ‘좋아요’와 ‘하트’ 놀이에 중독됐다.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정보와 상호작용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머리 한쪽이 늘 멍한 산만함에서 우리 정신을 지켜 주는 것은 역시 호흡 긴 서사인 책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 책의 대지에 핀 꽃들은 자주 불(不)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먼저,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유의 어둠 속에 찬란한 빛을 던졌다. 만연한 부정의에 경악한 독자들은 ‘분노하라’는 시대의 명령을 따랐다. 무엇에 분노했는가. 불공정이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라며 학자금 대출과 알바 인생에 절망하는데, 장학금 챙겨 가며 공부한 전직 법무부 장관의 딸이 보여 준 세상, 즉 특권을 통해 쌓은 스펙을 제 능력인 양 자부하는 ‘20 vs 80의 사회’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불평등이다. 부의 세습이 노골화돼 부익부빈익빈이 갈수록 심화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진 ‘21세기 자본’의 사회는 문제의 실체가 불평등이라는 인식을 퍼뜨리는 중이다.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 ‘불평등 세대’ 등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한국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로잡지 못하면, ‘세대 전쟁’의 홍역이 덮쳐 올 것임을 우려하게 한다. 착취된 노동이다. 일이 행복을 주지 못하는데 왜 일해야 하는가. 적당히 일하고 작은 행복이라도 확실히 챙기는 쪽이 낫지 않은가. ‘피로사회’는 성과에 집착하면서 죽음에까지 자기를 몰아붙이는 ‘자기 착취’를 폭로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미생’인 세상인데, 자신을 고갈시키지 않는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 청년들은 ‘자존감 수업’을 받고 ‘미움받을 용기’를 행한다. 삶의 새로운 양식을 찾아 동네책방을 순례하고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는다’. 가부장제 가족주의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계기로 ‘페미니즘’이 일어섰다. 여성이 쉽게 살해되고 폭행당하며 차별받는 사회는 작동을 멈춰야 한다. 편견으로 점철된 세상을 살아가는 ‘82년생 김지영’이 더는 없어야 한다. 여성은 벌써 주체인데도,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한다’고 일깨운다. 그래서 여성들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고 선언하고 ‘백래시’, ‘탈코르셋’ 등 해방의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 ‘이상한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가족 형태가 꾸준히 시도되고 ‘딸에 대하여’, ‘대도시의 사랑법’ 등 퀴어의 일상화도 이제 어색하지 않다. 언어의 소외다.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스러져 가는 이들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책의 입술은 목소리 없는 이들한테 열려야 한다. ‘소년이 온다’의 높은 문학적 성취도, ‘사당동 사람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고기로 태어나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 인간의 조건을 살피는 기록의 존엄성도 여기서 비롯된다. 정치는 난잡하고, 경제는 암울하고, 사회는 비참하다. 세상이 타락한 자들을 위한 숫자 놀이로 전락한 듯하다. 온통 이익(利)을 말할 뿐 아무도 의(義)를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던 얼굴은 어용을 자부하고 ‘나는 왜 법을 공부하는가’를 성찰하던 마음은 위선이 됐다. 촛불과 함께 힘차게 타올랐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는 또다시 무릎이 꺾이는 중이다. ‘닥치고 정치’에 기대를 걸었지만, 현실은 ‘닥쳐라, 정치’로 변해 가고 있다. 불타 버린 이 자리에서 책은 다시 출발한다. 새해에는 어떤 책이 시대의 죽비가 될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 “직급 오를수록 시야도 넓어져”… ‘킴 원리’ 주창한 한국인

    “직급 오를수록 시야도 넓어져”… ‘킴 원리’ 주창한 한국인

    30년 인사 경험 담은 논문 英학술지 등재 美교육자 ‘피터의 원리’ 반대 논리로 인용 고위공무원, 4차 산업혁명 사명 감당해야 김판석(63)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가 자신의 30년 인사·행정 경험을 담은 논문을 영국의 유명 학술지(Public Money & Management)에 발표했다. 제목은 ‘직급만큼 본다’이다. 김 교수는 30년간 인사·행정 분야를 연구한 이 분야 전문가다. 1990년 인사행정론 강의를 미국에서 처음 시작했고 지금도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과 문재인 정부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지내며 현장도 섭렵했다. 현장에 이론을 적용해 고위공무원단 제도와 인사수석실 신설 등 인사제도를 과감하게 혁신하는 아이디어를 다듬는 데 이바지했다. 김 교수는 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일하면서 공무원들의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임감도 커지고 시야도 넓어지는 현상을 목격했다”고 논문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스스로 ‘내 시각이 직급과 비교해 좁은 게 아닌가’ 돌아보고 지속적으로 성찰했으면 한다. 특히 고위공무원들은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서 세상의 흐름을 폭넓게 관찰하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가 주장한 ‘피터의 원리’(처음에는 유능한 부하 직원으로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무능이 드러난다)와는 반대 논리인 셈이다. 그는 “외국인들이 논문을 인용하며 ‘킴 원리’(Kim Principle)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지난 7월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대통령과 나란히 특강에 나서기도 했다. 특강에는 인도네시아 각 부처 간부들, 신임 공무원 등 7000명이 참석해 김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김 교수는 “지난해 조코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인사처장으로서 인도네시아 행정개혁부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예전부터 인도네시아와 인연이 있었다”면서 “인도네시아 공무원들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말을 듣고 공무원의 헌신을 강조했고 내 자신의 마음도 뜨거워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교수는 미래 계획도 밝혔다. “두 달 전 몽골에 가서 공무원 교육 훈련과 관련해 특강을 했다. 이처럼 개발 도상국에 인사·행정 제도를 전파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다.” 현장을 떠난 그의 눈은 아직도 인사·행정을 향하고 있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서울광장] 진짜 문제는 언론의 ‘선택적 받아쓰기’/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진짜 문제는 언론의 ‘선택적 받아쓰기’/박록삼 논설위원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인 지난 8월 하순부터 시작된 이른바 ‘조국 사태’는 한국 사회에 굵직한 과제를 던져 줬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안이지만 많은 이들의 주된 관심사에서는 뒤로 밀려났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살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 속에서 ‘검찰개혁’ 혹은 ‘조국 사퇴’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 타협과 양보가 없는 사회의 민낯은 대립과 갈등할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치유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선택적 정의’는 충분히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땠을까. 언론 또한 심각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책임의 지점이 있었다.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그들의 의도와 입맛에 따라 흘려 주는 내용을 언론은 ‘취재’라는 이름으로 받아쓰는 것이 상당수였다. 그 지점을 ‘언론의 선택적 받아쓰기’라 명명하고 싶다. 언론인에게 너무 자조적인 말이다. 또 구조적 한계와 묵은 관행 속에서 노력하는 기자들로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받아쓰는 것은 기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세상에 없는 내용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과 소식을 독자에게, 시민에게 전하는 것이 기자라는 직업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받아쓰기 자체가 아니다. 누구로부터 받아쓰느냐, 무엇을 받아쓰느냐, 어떻게 받아쓰느냐는 것이다. 그에 따라 언론의 보수성·진보성, 혹은 편향성·중립성, 아니면 야당지·여당지 등 다양한 이미지와 역할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내부 성찰은 채 무르익지 못했다. 외부의 비판을 추스르기도 전에 언론은 또 다른 사회적 의제로 넘어갔고 기존 보도 관행으로 돌아갔다. 그 고질적 악습은 ‘조국 사태´ 이전에도 있었고, ‘조국 사태’ 이후에도 변함없이 반복됐다. 먼저 지난 7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때를 돌이켜 보자. ‘일본 보복카드 100개, 이제 겨우 한 개 나와’라는 보수언론의 1면 톱기사는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한 교수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그러나 이후 몇 달 양국관계 상황을 보면 그저 실소할 따름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측이 50억 달러(약 5조 9260억원)라는 턱없는 인상안을 들고 나와 절대다수 국민들을 기함하게 한 협상이 이어지던 지난달 21일, 한 보수언론은 1면에 ‘미, 주한미군 1개 여단 철수 검토’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워싱턴 한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했다. 한국 사회의 해묵은 안보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특정 언론사를 거명하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사를 즉각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일련의 언론 보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받아쓰기다. 그것도 선택적 받아쓰기. 그 기저의 핵심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만이 오롯이 자리잡고 있다. 오직 일본 정부의 입장만 담겼을지라도 문 정부 비판에 유효하면 보수언론은 그대로 받아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외교안보와 같은 예민한 국익의 사안도 문 정부를 비판하기에 적절하면 미국 정부의 기사 삭제 요구 등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결기까지 보인다. ‘선택적 받아쓰기’의 폐해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검찰수사관 A씨의 불행한 소식 직후인 지난 2일 한 언론은 제목에 ‘단독’을 달아 A씨가 ‘윤석열 총장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고 ‘누군가’의 말을 받아썼다. 사실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숱한 추측과 해석이 가능할 만한 기사였다.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날 A씨의 유서를 확인한 다른 언론에서 윤 총장 앞으로 세 문장의 메모를 남겼다며 “윤석열 총장께 면목이 없지만, 우리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직접 인용했다. 여전히 사실관계는 오리무중이다. 언론은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드러낼 수 없다. 그렇다고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도 언론은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에 대해서 고루 말하지 않는다. 언론의 객관성과 중립성이 허상에 불과함은 이제 상식이 됐다. 하나 이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개별 언론이 각자 지향하는 가치와 세계에 대해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립성의 가면을 쓴 채 ‘선택적 받아쓰기’를 일삼으며 사실을 왜곡해 여론을 호도하고 기만하는 게 진짜 나쁜 일이다.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youngtan@seoul.co.kr
  • 문병훈 서울시의원, 서울시 부지 매입 과정 강력 질타

    서울시의회 문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초3)은 서울시 문화본부 예산(안) 심사에서 부동산 시세차익을 노리는 변심에도 대책 없는 서울시의 부지 매입 과정에 대해 강력하게 질타했다. 서울시 문화본부는 공유재산 심의를 통해 서울공예박물관 부지의 매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유주의 1차 변심으로 부지 중 일부를 매입하지 못하고 해당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부지를 중심으로 서울공예박물관 건립에 착수했으나, 사업진행 중 해당 부지 소유주의 2차 변심으로 인해 다시 부지를 매입한 후 건립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소유주의 단순 변심으로 인해 기존 매입 예상금액보다 약 7억원이 추가적으로 소요됐다. 문 의원은 토지 소유주의 변심에 의해 서울시의 행정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변심에 의한 행정무력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또한 서울시의 모습은 다른 공공시설 건립사업에 있어서도 원소유주들에게 부동산 시세차익 시도를 조장할 수 있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향후 강력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문 의원은 “부동산 시세차익 시도라는 나쁜 선례까지 남기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진심어린 성찰을 통해 이와 같은 사태가 재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질타하면서 서울시의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퓰리처상 수상자가 꾹꾹 눌러쓴 362편 영화 평론, 4권의 책으로

    퓰리처상 수상자가 꾹꾹 눌러쓴 362편 영화 평론, 4권의 책으로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배정된 층의 복도를 걸어 본 적이 있다. 어떤 분들은 불안해하는 듯 보였다. 어떤 분들은 화가 나 있었다. 어떤 분들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분들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나는 불안해하거나 화를 내는 분들이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지하는지 궁금했다. ‘이터널 선샤인’을 보는 동안 소극적으로 앉아만 있던 환자들이 떠올랐다. 기억이 깨끗하게 지워져 버린 그들은 늘 순간순간에만 존재하고, 그들은 그 순간을 받아들인다. 그들에게는 그 순간이야말로 전부이기 때문이다.” 딱딱한 비평이 아닌 에세이 스타일로 쓴 영화 비평이 공감을 자아낸다. 그저 영화를 설명하고, 칭찬하거나 나쁘다고만 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글 한 편 한 편에 저자의 성찰이 고스란히 녹았다. 영화를 사랑한 진정한 이야기꾼,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영화 평론가로 알려진 로저 에버트의 전작과 유작을 담은 4권짜리 영화 비평 모음집 ‘위대한 영화’(을유문화사)가 출간됐다. 1942년생인 로저 에버트는 20대 중반 때인 1967년부터 ‘시카고 선 타임스’에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30대 초반이었던 1975년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한다. 영화 평론가가 퓰리처상을 받은 경우는 이 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그해부터 동료 평론가 진 시스켈과 함께 TV에 출연해 수년간 영화 평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이른바 ‘스타 평론가’로 자리매김한다. 이어 영화사의 걸작을 재조명하는 리뷰를 시작한다. 1997년부터 격주로 나온 리뷰들은 미국의 수많은 영화팬들로부터 호응을 얻는다. ‘위대한 영화’는 이를 묶은 책이다. 100편을 묶은 1권이 2002년 나왔고, 이어 2005년, 2010년까지 3권이 나왔다. 로저 에버트가 숨을 거둔 후 2016년에 유작을 모은 게 4권이다. 4권의 책에 담긴 362편의 글은 20세기 영화사를 고스란히 돌아본다. 1권에서는 말론 브랜도의 열연이 눈부신 ‘대부’(1972),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력을 볼 수 있는 ‘이티’(1982), ‘쉰들러 리스트’(1993), 그리고 ‘스타워즈’ 등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들이 담겼다. 2권은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인 ‘국가의 탄생’부터 과도한 폭력성으로 비난을 받은 ‘스카페이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1988)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3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다. 감독의 대표작인 ‘화니와 알렉산더’(1982)를 비롯해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 빛’, ‘침묵’ 등 ‘베리만 3부작’ 전체를 다룬다. 이밖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철학적인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1940)까지 챙겼다. 1~3권에는 각각 100편의 글이, 마지막 4권에는 62편만 실렸다. 저자가 집필하다 숨을 거뒀고, 유족이 4권의 분량을 100편으로 억지로 맞추는 데 반대해 결국 62편으로 마무리했다. 4권에는 일본 영화를 비중 있게 다룬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36년 작품 ‘외아들’과 다키타 요지로의 ‘굿바이’(2008)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봐야 할 8편을 담았다. 특히, 기노시타 게이스케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1958)는 저자가 숨지기 한 달 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발표한 글로, 4권의 마지막에 실을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는 자신이 과거에 쓴 리뷰에 관한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고, 학생들과 영화를 분석하면서 나온 흥미로운 의견을 두루 소개하기도 한다. 감독이나 배우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간간이 수록했다. 영화 한 편으로 장르 전체를 파헤치거나 인물이나 캐릭터를 주제로 해 영화 전반을 두루 살피는 부분도 눈여겨보자. 깊이 있는 성찰을 수려한 문체로 자아낸 비평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내 뉴스 앵커의 진화… 男메인·女서브 공식 깨졌다

    국내 뉴스 앵커의 진화… 男메인·女서브 공식 깨졌다

    기혼녀 발탁-주말 메인-단독 진행順 변화 이소정 “과감한 변화가 주는 메시지 주목”“나이 든 여자 누가 앵커 시키냐.” KBS ‘뉴스9’을 새롭게 이끌고 있는 이소정 앵커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십수년 전 한 방송사 최종면접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나이 들면 연륜 있는 남자 기자들처럼 앵커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당시 기자 지망생이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세월이 흘러 17년차 기자가 된 이소정 앵커는 지난 25일 지상파 메인뉴스 프로그램의 첫 여성 평일 메인앵커가 되며 변화의 중심에 섰다. 뉴스 스튜디오 풍경이 바뀌고 있다. 나이 든 기자 출신 남자 앵커가 무게를 잡고 젊은 여성 아나운서가 보조를 맞추는 전형적인 그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성 중심적 공간에서 여성도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화다. 우리 사회 바람직한 변화에 앞장서야 할 뉴스의 이런 변화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상파 메인뉴스에서 여성 앵커가 남성 앵커와 대등한 위치에 서는 일은 2000년대 들어서야 조금씩 시작됐다. SBS ‘8뉴스’는 2004년 김소원 아나운서를 발탁하면서 기혼 여성 앵커 시대를 열었다. 남성 앵커가 왼쪽, 여성 앵커가 오른쪽이던 자리를 반대로 바꾸면서 분위기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2007년 김주하 앵커가 MBC ‘뉴스데스크’ 주말 메인앵커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평일과 마찬가지로 남성 메인앵커와 여성 서브앵커가 짝을 이루며 방송하던 주말 ‘뉴스데스크’에서 김주하 앵커에게 메인앵커를 맡긴 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김주하 앵커는 국내 메인뉴스 최초로 여성 단독 진행을 맡아 여성 혼자서도 뉴스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김주하 앵커의 활약에도 다시 여성에게 그 자리가 돌아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2017년 말부터 1년 7개월간 주말 뉴스를 책임진 김수진 기자가 ‘뉴스데스크’ 여성 단독 진행 두 번째 주자였다. 1980년대 신은경 KBS 앵커, 1990년대 백지연 MBC 앵커를 비롯해 남성 앵커 못지않은 진행능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여성들이 다수 있었지만, 메인앵커 자리가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벽을 넘지 못했다. 메인뉴스 외 뉴스에서는 2008년 KBS2 ‘뉴스타임’에서 정세진 아나운서와 이윤희 기자의 여성 더블 앵커 체제를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이후 다양한 방식의 시도가 이어졌다. 여성 앵커가 뉴스를 책임지는 모습이 이제 낯설지 않다. 김주하 앵커는 2015년 MBN으로 이직한 후 메인뉴스인 ‘뉴스 8’(현 ‘종합뉴스’)를 단독 진행한다. 여성의 평일 메인뉴스 단독 진행은 한국 방송사상 처음이다. ‘종합뉴스’는 3%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MBC, SBS 등 지상파 뉴스와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7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소정 앵커는 “단순히 앵커만 바뀌는 게 아니라 보도국 전체가 변화의 고민, 치열한 성찰을 하고 있다. 과감한 변화가 주는 메시지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 중년 남성, 젊은 여성 앵커 조합의 뉴스 진행 관행을 탈피한 것이 KBS 뉴스 변화의 시작일 뿐이라는 포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엄경철 신임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은 “수용자들이 취재에 엄밀함을 요구하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저널리즘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담았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제2 진경준 사태’ 막는다···“부장검사도 재산검증”

    ‘제2 진경준 사태’ 막는다···“부장검사도 재산검증”

    대검찰청 약 한 달 만에 8번째 개혁안 내놔신규 부장검사 보임 대상자까지 검증 확대기존엔 차관급인 검사장 이상만 검증 대상내년 정기인사 신규 부장검사 대상 102명앞으로 검찰 고위간부로 가는 첫 관문인 부장검사 보직을 맡을 때 까다로운 재산 검증을 받게 된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린 검사들은 간부 승격 대상에서 아예 배제시키겠다는 취지다. 대검찰청은 27일 여덟 번째 개혁안으로 인사·재산 검증 대상자를 신규 부장검사 보임 대상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 법무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내년 정기인사 때 신규 부장검사 보임 대상자 102명(사법연수원 34기)에 대해 인사·재산검증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변호인의 변론권 강화 방안’을 내놓은 뒤로 한동안 뜸했던 검찰의 개혁 작업에 다시 시동이 걸린 셈이다. 부장검사에 대한 인사·재산 검증은 법무부 감찰관실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법무부의 검찰 통제가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 법무부도 이러한 검찰의 제안을 내칠 이유가 없다보니 확대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검찰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동안 검찰의 ‘꽃’으로 불린 검사장에 진급하는 대상자에 대해 인사·재산 검증이 이뤄져오다 지난 3월 차장검사 보임 대상자로 확대된 바 있다. 검찰은 31~33기 각 기수별 90여명에 대한 추가 검증 필요성도 법무부에 요청했다. 검찰 관계자는 “내부 비리에 대한 자정 방안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주식 등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윤리적 기준을 높이고 비위를 사정 예방하는 자정 기능이 작동할 것이란 설명이다. 검증 과정에서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보임에서 제외되고 사안에 따라서는 징계 절차 등에 회부된다. 검찰이 내부 구성원들에 대한 검증 강화 카드를 내놓은 배경에는 과거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진경준 전 검사장은 2015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재산이 공개됐는데 1년 새 약 40억원이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 의혹이 불거졌고 수사 과정에서 게임업체 넥슨으로부터 ‘공짜 주식’을 받은 뒤 되팔아 수익을 올렸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공짜 주식과 관련한 뇌물 혐의는 무죄가 확정됐다. 이날 개혁안을 발표한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이번 개혁안이) 과거에 대한 성찰”이라면서 “내부 구성원에게 재산과 주변 등 자기 관리를 엄정하고 깨끗하게 해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김초엽·한정현 작가 ‘오늘의 작가상’

    김초엽·한정현 작가 ‘오늘의 작가상’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김초엽(왼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한정현(오른쪽) 작가의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가 선정됐다. 민음사가 제정한 오늘의 작가상은 출판인, 서점인, 언론인, 작가,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1차 추천인단 50인이 한 해 동안 출간된 첫 소설 단행본 230여권을 대상으로 2종씩 추천하고, 많은 추천을 받은 5종 가운데 심사위원 4명이 최종 수상작을 결정한다.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 작가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과학적 가설로 인물들의 자기 성찰 과정을 그린 독특한 시도를 했다.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인 한 작가의 ‘줄리아나 도쿄’는 연애 서사와 역사적 에피소드를 병렬로 삽입해 시선을 확장시켰다. 수상 작가에게는 각각 1000만원의 창작 지원금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다음달 12일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오늘의 작가상에 김초엽·한정현… 젊은 여성 작가 공동 수상

    오늘의 작가상에 김초엽·한정현… 젊은 여성 작가 공동 수상

    오늘의 작가상에 김초엽·한정현 작가가 공동 선정됐다. 민음사는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김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한 작가의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를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오늘의 작가상은 출판인, 서점인, 언론인, 작가,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1차 추천인단 50인이 한 해 동안 출간된 첫 소설 단행본 230여권을 대상으로 추천작을 각 2종씩 선정했다. 이렇게 선정된 5종에 한해 심사위원 4명이 참가하는 본심을 거쳐 최종 수상작이 결정되었다.김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흥미로운 과학적 가설을 바탕으로 인물들의 자기 성찰 과정을 그려낸 독특한 시도로 호평을 받았다. 한 작가의 ‘줄리아나 도쿄’는 연애 서사라는 플롯에 역사적 에피소드를 병렬적으로 삽입해 시선을 확장시킨 시도가 인상적이라는 평이다. 김 작가는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 작가는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수상 작가에게는 각각 1000만원의 창작 지원금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새달 12일 진행될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정치권, 사소한 논란 키워 국민 둘로 분열… 성찰의 공간 회복 절실

    정치권, 사소한 논란 키워 국민 둘로 분열… 성찰의 공간 회복 절실

    1945년 12월 30일 새벽 6시 원서동 74 송진우 자택에서 13발의 총성이 울렸다. 건넌방에 있던 양자 송영수, 외사촌 양신묵이 쫓아갔지만 고하는 얼굴과 심장 등에 6발의 총을 맞고 절명해 있었다. 송진우는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자 지주와 친일파가 주를 이루고 원세훈 등 독립지사들이 일부 참여한 한국민주당(한민당) 수석총무(지금의 대표최고위원)였다. 당색으로 보면 조선공산당과 대척점에 있는 극우 정치세력을 대표하지만, 송진우 개인적으로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로서 충칭 임시정부 봉대론을 주장하던 중간파였다. 송진우는 전날 오후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을 만난 뒤, 그날 밤 경교장의 반탁운동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좌우익은 물론 중간파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김구 등 충칭 임시정부 관계자들은 미군정과 실력대결까지 주장했고 송진우는 신중론을 개진했다. 송진우는 평소 미군이 2년쯤 머물러야 한다는 ‘훈정론’을 펴 왔던 터였다. ●하나의 조국 꿈꾸던 이들 암살·투옥·납북당해 12월 27일 동아일보 등의 ‘신탁통치 가짜뉴스’로 말미암은 반탁운동은 해방정국을 급랭시켰다. 송진우 암살은 좌우 극단세력의 테러와 유혈 충돌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송진우 피살 12시간 전인 12월 29일 자칭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의 기관지 조선인민보가 수류탄 테러를 당했다. 해방 후 언론사에 대한 첫 테러였다. 다음날 송진우가 암살당하고, 이듬해 1월 2일 한민당 기관지 동아일보가 좌익에 의해 테러를 당했다. 6일엔 중도적 서울신문까지 습격을 당했다. 좌파 성향의 중앙신문도 당했다. 7일엔 극우 성향의 대동일보가 피습됐고, 8일엔 좌익 성향의 자유신문사 공장에 다이너마이트가 날아들었다. 1월 2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 3상회의 지지로 돌변하는 성명을 내면서 대결 정국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제야 충칭 임정은 ‘신중한 방법론’을 모색했다. 김규식 임정 부주석, 한국국민당의 안재홍, 조선인민당의 여운형 그리고 임정 안의 조소앙·김원봉 등 비주류가 포함된 중간파들은 이미 정국의 안정을 위한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었다. 이들은 공산당과 한민당 내 중간파들과 개별적인 회합 끝에 7일 전체 모임을 갖고 4당 코뮤니케(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3상회의 결정에 따라) 탁치는 우리 (임시)정부가 수립된 후에 자주독립 정신에 의하여 해결하고”, “정쟁의 수단으로 암살과 테러 행동은 국가 독립을 방해하는 자멸행동이므로 절대 반대한다.” 당시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남북 단일의 임시정부 수립이었다. 코뮤니케에 서명한 대표들은 인민당의 이여성·김세용·김오성, 한민당의 원세훈·김병로, 국민당의 안재홍·백홍균·이승복, 공산당의 이주하·홍남표 등이었다. 하지만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8일 한민당 주류는 이를 거부했다. ‘반탁 정신이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공산당 역시 코뮤니케가 마치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전면 지지하는 것으로 선전했다. 해방 후 첫 남북단일정부 수립을 위한 좌우연합체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는 그렇게 극단세력의 방해로 무산됐다. 안재홍은 그 전말을 이렇게 정리했다. “탁치 문제는 임시정부 수립 후 독립정신에 준하여 해결하기로 한 약정을 (한민당은) 어구가 철저치 못하다고 취소를 발표하고, (공산당 측은) 4당 전부가 3상 결정 전면지지에 기울어진 것처럼 선전하여 민중의 의혹과 불만을 조장하였다”, “4당 코뮤니케가 불발로 끝난 것은 1차적으로 한민당, 2차적으로 공산당에 책임이 있다.” 반탁과 찬탁의 대결은 해방공간을 ‘애국과 친일의 대결’에서 좌우익의 대결 구도로 바꿔 버렸다. 우파는 비상국민회의로 집결했고, 좌파는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으로 결집했다.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국가 건설을 추구하던 중간파의 공간은 좁아졌다. 대신 허약했던 이승만, 한민당 등 극우세력은 확고한 기반을 확보했고, 좌익도 중도좌파의 광범위한 기반을 약화시켰다. 그렇다고 물론 자주적인 통일국가 건설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 국민은 극좌·극우의 패권주의가 아니라 중도파의 합작활동에 주목했다. 일제하에서는 비타협적 항일독립투쟁을 벌였고 해방 후엔 민족, 민주, 자주, 통일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데 목숨을 건 이들이었다. 소련과 미국에 기대 집권하려던 좌우 극단주의자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미군정은 1946년 8월 해방 1년을 맞아 80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한국인이 추구하는 정치형태는 대중정치(대의정치) 85%, 계급독재 3%였으며, 한국인이 원하는 체제는 사회주의 70%, 자본주의 14%, 공산주의 7%이었다. 앞서 1945년 11월 우익 성향의 선구회가 서울시민 978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선을 이끌어 갈 지도자’ 조사에선 중도좌파의 여운형이 33%로 가장 앞섰다. 그 뒤가 이승만(21%), 김구(18%), 박헌영(16%), 김일성(9%), 김규식(5%)이었다. 이승만을 밀던 미군정은 1946년 3월 자문기구인 민주의원 의장을 이승만에서 김규식으로 바꿨다. 1차 미소공동위가 결렬되자 여운형·김규식 등 좌우합작을 추진하던 중간파를 지원했다. 당시 미군정은 김구·이승만 등을 극우로, 김규식·원세훈 등을 중도우파, 여운형·김성숙·장건상 등을 중도좌파, 박헌영 등을 극좌로 분류하고 있었다. 합작위원회는 7월 19일 김규식(우파 주석)·원세훈·김붕준·안재홍·최동오(이상 우파), 여운형(좌파 주석)·허헌·정노식·이강국·성주식(이상 좌파)를 대표로 출범했다. 합작 원칙을 놓고 옥신각신하던 끝에 10월 4일 7원칙을 발표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양극단이 발목을 잡았다. 한민당은 토지개혁 원칙(몰수 혹은 체감몰수 및 무상 분배)을 문제 삼아 탈퇴를 선언했다. 조선공산당은 좌파 3개 정당의 합당 공작을 통해 합작위원회의 중도좌파를 무력화시키려 했다. 1947년 5월 2차 미소공동위가 열리면서 다시 좌우합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나 이번엔 7월 19일 여운형이 암살당했다. 좌우합작 활동은 사실상 좌초하고, 통일정부 수립에 대한 기대감도 멀어졌다. 이후 하나의 조국을 꿈꾸던 이들은 김구처럼 암살을 당하거나, 안재홍·조소앙·원세훈·조완구·김약수·김원봉처럼 납북됐거나 북행했고, 남에선 김창숙·김성숙·장건상처럼 끝없는 감옥살이를 견뎌야 했다. ●중간 지대 없애 억지·폭력에 의지하게 만들어 가짜뉴스에서 시작된 신탁통치 논란은 한국인을 좌와 우로 단절시켰다. 38선에 중립지대가 없었던 것처럼, 좌우 극단 이외의 중간지대를 없애 버렸다. 그 후유증은 해방정국과 남북의 극우·극좌 정권 수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성찰과 대화 대신 억지와 폭력에 의지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정치권은 사소한 논란조차 증폭시켜 국론과 국민을 둘로 분열시킨다. 가짜뉴스로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거짓 선동으로 대중을 동원한다.●檢개혁·조국사퇴 집회 공감 합친 수치도 97.9% ‘조국 사태’는 73년 전의 분열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실례였다. 8월 말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때부터 장관에 임명되던 9월 초까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찬반 응답자는 전체의 93.7%(8월 23일), 96.8%(9월 8일)이었다. 10월 초 조국의 장관직 사퇴 여부를 묻는 조사에서 찬반 응답자는 전체의 96.8%였다. 서초동의 검찰개혁 집회와 광화문의 조국 사퇴 집회에 대한 공감도를 합친 수치도 전체의 97.9%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에도 중간지대는 사라졌다. 긍정과 부정을 합치면 8월 셋째 주(96.8%), 9월 셋째 주(97.2%), 10월 둘째 주(97.5%) 모두 100%에 가까웠다. 앞선 대통령의 집권 3년차 2분기의 경우 김영삼 69%, 김대중 64%, 노무현 87%, 이명박 90%, 박근혜 90%였다. 이런 현상도 나타났다. 이른바 ‘빤쓰 목사’가 “대한민국에서 보수의 중흥을 이끄는 지도자”(뉴욕타임스 아시아판)로 언급됐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가 벌이는 ‘문재인 퇴진’ 농성장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른바 진보 논객들은 성찰이 아니라 진흙탕 싸움에 몰두했다. 사실 ‘조국 문제’는 좌건 우건 정쟁과 시비에 앞서 성찰의 문제였다. 지금 우리에겐 숨쉴 틈이 없다. 이편 아니면 저편이어야 한다. 생각할 공간도 없다. 옳고 그름을 두부모 자르듯 쪼개야 한다. 숨쉬고 생각하고 성찰하는 공간은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논설고문 kbc@seoul.co.kr
  • “비극 반복되지 않아야” 한·미·베트남 참전 군인들, 평화를 외치다

    “비극 반복되지 않아야” 한·미·베트남 참전 군인들, 평화를 외치다

    세 국가 참전군인 대담 한국서 처음 열려“상대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리 절실”전쟁의 고통·인간에 대한 성찰 나눠“오늘 만나보니 투이 선생은 나의 적군이었네요.”(김낙영 작가) “어떤 적도 평생의 적은 아니잖아요.”(쿠엇꽝투이 작가) 1972년 국군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김낙영(71) 작가가 악수를 청하자 북베트남군 소속이었던 쿠엇꽝투이(69) 작가가 웃으며 화답했다. 서로 총을 겨눴던 이들은 종전 40여년 만에 손을 맞잡았다.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갤러리허브에서 열린 ‘월남에서 돌아온 그들’ 대담에서다.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전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인 ‘미안해요 베트남’ 20주년을 맞아 이 행사를 기획했다. 1970년 파병됐던 미국의 제럴드 웨이트(72) 볼주립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까지 세 국가 참전군인이 참석했다. 한국에서 세 국가 참전 군인이 공개 대화한 건 처음이다. 세 사람은 자유주의 수호, 외화벌이, 조국 수호 등 각기 다른 명분으로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전쟁의 상처는 같았다. 군인 가문에서 자라 참전을 당연히 받아들였던 웨이트 교수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한 것일까’,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됐다”며 “지금까지 평화학을 가르치며 객관적 회고와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1년 베트남 여아를 입양한 웨이트 교수는 “딸을 보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베트남에서의 일이 떠올라 복합적 감정이 든다”고 했다. 김 작가는 당시 고뇌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신에게 ‘제발 적을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전장에 나가면 ‘가장 먼저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면서 “전쟁 이후에는 무소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혈서를 쓰고 자원입대한 투이 작가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상대가 쓰러지면 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고통이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작가와 인류학자로 평생을 살며 전쟁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이어 오고 있다. 이들은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이런 폭력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막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투이 작가는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기 위해, 또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전쟁에 발을 들이면, 그 전쟁을 빠져나오는 데는 훨씬 긴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했다. 이어 “베트남은 여전히 전사자 수천명의 유해를 찾지 못했고, 지뢰를 밟아 생명을 잃는 어린이들의 소식이 여전히 들려온다”고 전했다. 제럴드 교수는 “모든 전쟁은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군인은 복종을 해야할 의무를 갖고 있다”면서 “그것이 적법한지 판단하고 전쟁을 막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로 사상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돼야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대화의 기회가 더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도 “적이었던 사람들도 이렇게 모여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따뜻한 자리였다”고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베트남전 참전 당시 폭력을 행사했던 경험이 광주 5·18의 민간인 학살로도 이어진다”면서 “베트남전에 대한 성찰은 우리가 가한 폭력을 넘어, 한국 사회의 남은 폭력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계기”라고 설명했다. 글 사진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가천대 교양강좌 ‘지성학’ 300회 돌파…각계 명사 릴레이 강의

    가천대 교양강좌 ‘지성학’ 300회 돌파…각계 명사 릴레이 강의

    가천대학교 대표 교양강좌인 ‘지성학’ 강좌가 300회를 맞았다. 이 강좌는 2007년 3월 15일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강의를 시작으로 ‘명품교양강좌’로 자리 매김하며 21일 이화여대 정끝별 교수의 강의로 300번째 강연을 했다. 13년 동안 300명의 명사가 강단에 섰으며 그동안 수강한 학생만 1만 4000여 명에 이른다. 그동안 사회,문화,경제,교육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사들로 강사진을 구성해 학기별로 12명의 명사가 매주 릴레이 강연을 해서 인기를 끌었다. 김훈 소설가, 서정진 셀트리온회장, 승효상 건축가, 오명 前 과학기술 부총리 , 정운찬 前 서울대 총장, 시인 정호승,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한승헌 前 감사원장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과 명사들이 지성학 강사로 나섰다. 이길여 총장도 직접 강단에 서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를 주제로 특강을 했고 배우인 이순재 가천대 석좌교수도 연기 인생을 바탕으로 특강을 했다. 개설당시 300명 정도가 수강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학생들이 몰려 수강 인원을 600명으로 늘리고, 강의 장소도 일반 강의실에서 강당으로 바꿔 현재 매학기 500여 명이 수강하는 대형 강좌로 운영되고 있다. 학과와 학년 구분 없이 수강하고 있으며 수강신청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강좌다. 교양선택 2학점으로 매주 목요일 3시부터 2시간씩 강의와 질의, 응답 순으로 진행된다. 강의 주제도 글로벌시대 국제 정세와 인재상을 비롯해 한국경제에 대한 이해, 역사 인식,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 취업난 등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한 격려까지 다양하다. 지성학 강의를 수강하는 공준혁(도시계획학과 3학년)씨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볼 수 있었던 대한민국의 명사들과 호흡을 함께할 수 있어 매주 새로운 강의가 기다려진다.”며 “각계 인사들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통해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성학 강의는 강의로 끝나지 않고 책으로도 엮어졌다. 지성학 강의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강의 내용을 묶어 ‘글로벌 시대의 한국과 한국인’,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라’, ‘글로벌 시대 자신만의 스펙을 디자인 하라’ 등 네권의 책을 발간했다. 이 책들은 명사들의 성공적이고 체험적인 삶을 통해 글로벌 시대에 리더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들려주고 인공지능이 리드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지, 삶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고, 미래는 또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을 전해 화제가 됐다. 최미리 부총장은 “각 분야 명사들의 살아있는 강연으로 학생들의 호응이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더 깊은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주고 급속한 변화와 혁신의 시대,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바로잡아 주는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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