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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 살기 위해서(사설)

    장애인올림픽 선수단이 28일과 29일에 출발했다.같은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지만,온국민의 관심속에 화려하게 출진했던 하계올림픽에 비하면 가는지 오는지 별로 관심도 못받으며 떠나는 그들이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그들이 다지는 승리의 결의가 대견하여 마음으로부터 빛나는 성과를 기대한다. 바르셀로나에서 9월3일부터 열리는 이 대회에 우리는 10개종목 65명의 선수를 출전시키고 있다.이 규모는 지난 88 장애자올림픽때에 비하면 25%수준밖에 안된다고 한다.세계 94개국에서 3천9백여명이 참가할 이 대회에서의 우리 목표는 10위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다소 무리한 기대이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의 장애자 동기간들이 불굴의 투지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오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이 대회에의 출전은 금메달이나 입상순위보다는 참가하는데 더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출전선수 모두가 힘껏 뛰어 삶의 탄력을 회복하고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가지고 귀국하기를 빈다.떠나기도 전부터 국민의 무심함 때문에 적지않이 노여움을 겪은 일이 우리는 미안하고 부끄럽다.부디 선전하여 그런 마음도 극복하기를 빈다. 사람이란 의외로 단견해서,성하고 불행을 모를 때에는 불행에 대해 오만하고 겸허하지 못하게 마련이다.온갖 시련을 겪어가며 자기 앞의 삶을 수용해온 장애인은 그런 뜻에서 성한 사람들보다 숭고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더구나 불굴의 의지로 올림픽경기를 대비하며 훈련해온 출전선수들은,모두가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다.그런 장애인의 삶은 성한 사람들을 일깨우고 각성하게 한다. 지난 88년 하계올림픽을 사상 유례없이 성공적으로 치러낸 우리는 잇따라 장애자 올림픽도 썩 훌륭하게 치렀다.그 관심과 능력 그대로 이어지기를 바랐지만 오늘의 현상은 그렇게는 되지 않은 것같다.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88대회때 우리는 매우 진귀한 경험을 한 바가 있었다.당시의 하계올림픽이,구소련 동구권으로 이뤄진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에 의해 메달을 석권당한 것에 비해 장애자 올림픽은 그 역현장을 빚었다.미국 캐나다 영국등 장애자 복지정책이 잘되어있는서방선진국들이 장애자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목격했었다.국가가 얼마나 장애자에게 공을 들이는가의 척도가 그것으로 드러났던 셈이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가 정식대회로 출범한 60년이후 제3회 대회인 68년 이스라엘부터 참가하여 첫해에는 메달없이 29개국중 23위를 기록하고 7회대회까지는 20위권만을 맴돌아왔다.그러다가 제8회였던 서울대회 유치를 계기로 종합 7위로 뛰어오르는 계기를 만들었다.이것이 이어지고 못하고가 판가름나는 것이 금번의 바르셀로나대회다.잘사는 사회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고르게 사는 사회다.장애자처럼 본인이 책임질 수 없는 불행을 안고 사는 이웃이 불행하지 않도록 더불어사는 사회를 말한다.장애자에게 무심한 편인 우리는 슬기롭게 더불어사는 이웃이라고 할수 없다.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전한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며 아름다운 승리의 드라마를 많이 가지고 돌아오도록 간절히 빈다.
  • 「신당」 만 만들면 「새정치」인가(사설)

    민자당의 이종찬의원과 민주당의 한영수의원이 17일 각각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소속정당을 떠날 것을 선언했고 함께 신당을 만들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이 소식에 접한 우리의 첫 느낌은 우려 바로 그것이다.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런 정국이 더욱 불안스럽게 전개될 가능성에 대한 걱정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첫째,이들은 우여곡절을 거쳐 어느정도 정리된 정국구도를 뒤흔들어보려는 뜻을 보이고 있다.이른바 양김청산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런 구호와 시도가 계속될때 정국불안은 가중되리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다. 지금의 정국은 누가 뭐라해도 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최고위원이며 대통령후보들인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최근 일촉즉발의 상태까지 갔던 정국을 협상으로 타개해보려고 휴전으로 이끌어간 것도 「양김」이었다.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양김」의 정치력이 오히려 기대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또 일반국민의 정서속에 「양김」은 아직 뚜렷이 자리잡고 있다고 믿는다.물론 애증의 감정이 엇갈릴 수도 있지만 비록 원망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지금 그들을 단번에 퇴장시켜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오는 12월의 한판승부를 통해 기회를 제공하고 그후에는 정리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자연스럽게 양김시대를 맞고 보내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이종찬의원 등은 양김청산과 표이를 이룰 「새정치」를 계속 표방하며 지지층의 확산을 노릴것이다.이의원은 이미 회견에서 『개혁의 새정치를 행동으로 실천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새정치」의 개념이 아전인수로 흘러서는 안된다.합리적인 개념정립으로 누가 보아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어야 하고 그 의지가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의 「새정치」는 그런 점에서 부족함이 많다.오히려 오랜 정치인생활을 해온 「양김」과 비교되는 개념으로 정치경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정치가 「새정치」라는 오해를 주는 측면도 있다.오늘날 정치의 불안과 파행을 가져온 근본원인을 성찰하고 개선과 개혁의 의지속에서 「새정치」의 참모습이 나와야하지 않을까. 그렇지않으면 「새정치」는 이루어지지않는 말장난일 뿐이다.오늘 탈당한 두사람은 각기 소속정당에서 대통령후보가 되려고 노력을 거듭한바 있다.그러나 아직도 경륜과 역량 자질이 부족했는지 최후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이제 이렇게 당을 박차고 나온것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보다는 「나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어린 구태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새정치는 그들의 몫이 아니다.우선 출발부터 세를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이의원의 경우 특히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두어차례의 기회를 일실하고 뒤늦게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해방후 많은 정당의 부침을 보아왔다.특히 정치적 변혁기나 대선,국회의원공천 등이 맞물렸을때 물거품 같은 정당의 출몰을 목격했다.대체로 자신의 역량이나 정치적 한계를 모르는 사람들의 과욕이 빚어낸 정치적인 해프닝으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 무모한 통일소동 「범민주대회」(사설)

    이른바 「범민주대회」때문에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고 국민들은 이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범민련이란 재야단체와 전대협이란 학생단체가 범민주대회를 어떤 방법으로든 치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경찰은 이를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서울과 광주에서는 한동안 사라졌던 화염병시위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해마다 이맘때면 겪는 일이지만 왜 이래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 금할수 없다. 우리가 여러차례 지적한바 있지만 범민주대회는 북한이 남쪽의 일부 재야인사와 학생들을 부추겨 「남조선해방」을 위한 혁명역량을 축적하고 민간주도의 통일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대남전략의 일환이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요즈음 거의 매일 재야세력과 학생들에게 반정부투쟁을 선동하고 있다.지난 11일 노동신문은 범민족대회를 봉쇄하는 것은 「온 겨레의 통일염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전」이라고 강변하면서 『남조선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통일에 역행하고 있는 남조선 집권자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등 악의에 찬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범민주대회가 그들의 통일전선전략에서 나온 하나의 책동임을 자인한 것이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기본합의서가 발효된 이후에도 시대착오적인 도발을 계속한다는 것은 남북관계에 새로운 난관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볼수 밖에 없다.이산가족 노부모 고향방문같은 인도적인 사업은 무산시켜 놓고 범민족대회라는 무모한 통일소동을 남쪽에서 펼치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북한당국은 말할것도 없고 북한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범민련과 전대협도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통일을 저해하는 반민족적 집단으로 지탄하지 않을수 없다. 김일성주체사상을 신봉하고 폭력시위를 주도해온 이들 집단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그런데도 범민주대회를 외치고 있는 것은 대회의 성사에 뜻이 있다기 보다 행사추진을 통한 전열정비와 연말로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선거에서의 반정부·반여당투쟁의 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망상이 아닐수 없다. 이들은 걸핏하면 국민을 앞세우고 통일을 부르짖는다.대다수 국민이 외면하고 있는데도 국민을 앞세우는 것은 자기기만이며 북한의 장단에 따라 통일을 부르짖는것은 민족을 기만하는 일이다. 우리가 범민련과 전대협에 주고싶은 충고는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라」는 것뿐이다.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일정책은 모두가 잘못이고 북한의 통일전략은 모두가 옳다는 식의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있는한 우리 사회는 이 집단들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범민주대회를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어처구니 없는 통일소동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면 그 죄과는 그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무엇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며 무엇이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한 바른 길인가를 냉엄하게 성찰해 주기 바란다.
  • 끝내 무산된 「고향방문」(사설)

    이산가족 노부모의 고향길은 이다지도 멀고 험난한가.처음에는 눈앞에 펼쳐지듯 가깝게 보였으나 날이 갈수록 멀어지더니 지금은 흔적도 없이 가물 가물 사라져가는 느낌이다.노부모고향방문사업이 사실상 무산됐기 때문이다.지난 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실무접촉에서 우리측은 이 사업을 예정대로 성사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으나 북측은 전제조건만 고집,다음 접촉일자도 정하지 못한채 결렬되고 말았다. 이산가족 노부모고향방문은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된 것이고 기간도 8월25일부터 28일까지로 예정돼 있었다.또 방문단 규모도 정해져 있었다.얼마되지 않는 숫자이고 기간도 짧지만 우리는 이 사업이 실현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왔다.이 사업의 실현이 남북의 헤어진 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그러나 북한은 이 소박하고 절박한 기대를 외면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핵문제와 연계시켜 『노부모고향방문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협박했고 다음에는 이인모노인을 먼저 송환하라고 떼를썼다.그것도 부족한지 제6차 실무접촉에서는 우리측의 연례적인 군사도상훈련을 트집잡아 『안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이같은 전제조건이 어불성설임은 이미 몇차례 지적했기 때문에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인도적인 사업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작태에는 환멸과 함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89년 이산가족교환방문을 위한 실무접촉에서도 「피바다」라는 혁명가극을 서울에서 공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교환방문사업을 무산시킨 일이 있었다.이번에도 노부모고향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선동공세의 하나로 이를 이용하다가 막판에 거부해버린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남북이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합의를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산가족의 재회를 큰 생색이나 베풀듯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북한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한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냉각될 수밖에 없으며 우리 정부도 이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남북관계에서 인도적인 사업을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에도 명확한 기준이 설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달현 북한부총리의 「서울방문」으로 남북간에 경협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이를위해 최각규부총리가 방북할 예정이고 남포공단건설을 위한 조사단을 북한에 파견키로 되어있다.북한의 경제가 파탄위기에 직면해 있는만큼 북한으로서는 경협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우리정부도 북한경제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그런데도 북한이 체제전략에만 매달려 인도적인 사업을 무산시킨 이상 최부총리의 방북과 남포조사단 파견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정부도 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정부의 단호한 자세를 보여주는 온당한 대응이며 그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당국에 있음을 지적해 둔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화해를 원한다면 노부모고향방문같은 인도적인 사업을 조건없이 성사 시켜야 한다.북한당국의 냉엄한 성찰과 성의있는 자세변화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 행복의 조건/노영희 시인(굄돌)

    젊은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컸던 탓으로 뒤돌아보면크게 행복을 느끼며 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변혁기의 온갖 사건들과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개안의 삶은 자주 난파당하곤 했다.「평상심이 도」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본받고 싶었지만 소용돌이치는 사회는 우리 모두를 어둡게 하기만 했다. 사실 우리네 사회구조속에서 개인이 행복을 누리려면 적어도 두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하나는 경제적인 여유요,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다.어떤이는 반박할지 모르겠다.인간의 행복은 일을 통해 창조의 기쁨을 통해,인간끼리의 사랑의 확인을 통해,풍요로운 자연속에서,신과의 교감을 통해 느끼는 것이라고.그러나 이 행복은 우리 모두가 따뜻한 공동체로서 벅차게 살맛나게 느껴지는 행복은 아니다.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열중할 일,사랑,경제적이 여유,민주주의 실현이 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나는 여성들과 오래 일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제는 말안해도 가슴으로 완벽하게 안다.이들이 어떻게 해야만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러나 네가지 조건 중에서도 먼저 해결되어야할 문제가 있다면 수많은 정치현안들이다.인간의 삶은 정치로부터 자주 상처받는다.그래서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정치가 있어줘야 된다고 믿는 사람중의 한 사람이다.TV를 보니까 어느 프랑스 의원은 지하철을 타고 지역에 내려가고,또 다른 의원은 도서실에 박혀 살았다.스웨덴의 국회는 여성의원 수가 20%가 넘었다.내 눈엔 정치인이 그냥 직업인으로만 여겨졌다.그들은 모두 정직하고 진실해 보였다.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그렇다면 모두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아무리 바쁘고 짜증나더라도 철저하게 자기를 성찰하고,살만한 사회조건의 마련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그런 면에서 최근에 죽은 중국의 주은래 부인 덩잉차오의 유언장은 음미해볼만하다.덜가질수록 행복하고,단순해질수록 선에 가깝고,나눌수록 풍부해진다는 생활속의 진실도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 또 불법집회한 「선생님」들(사설)

    「전교위」가 오늘 또 대규모 집회를 시도했다.이 단체는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원상복직을 위한 교사추진위원회」라는 기다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현직 교사들의 모임이다.선생님들이 옥외집회로 『기세』를 올리려하고 그것을 『원천봉쇄』하려는 치안당국과 몸싸움까지도 불사하는 갈등이 다시 재연되었다. 이 집회는 경찰에 의해,『불법집회이므로 장소사용 불가』의 통보를 받았었다.교육부도 현직교사들의 공무이외의 집단행동은 국가공무원법을 어기는『위법행위』이므로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그러나 전교위는 『경희궁터에서의 집회가 불가능』하므로,『제3의 장소』를 물색하여 집회를 강행키로 했던 것이다.『집회』의 문제를 『장소』의 문제로 돌려 집요하게 「선생님」들의 투쟁모습을 재연한 것이다. 전교위가 또다시 이같은 자극적인 집단행동을 들고 나서는 일이 우리는 유감스럽다.기회만 있으면 갈등을 고조시키고 사회를 소요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집단행동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이 모임은 발족때부터 가두서명으로 시작했다.비록 『교육대개혁』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들 몇몇의 운동권적인 방법으로 교육이 「대개혁」될 수있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명분이고 해직교사원상복직이 목적임을 알 사람은 알고 있다.해직 동료가 안타까워서 비상수단이라도 불사하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되는 심경도 없지않으나 그렇다고 집회강행이 효과적이고 온당한지는 스스로 성찰해볼 일이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행동거지 모두가 본이 되고 모방의 표적이 된다.그런데 이미 대법원서 불법으로 판결난 단체의 가입자를 복직시키기 위해 소요도 서슴지 않는 교사에게 자녀를 둔 학부모가 정의적으로 동조하겠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른바 전교조문제가 대량해직의 불행한 사태를 부르고 오늘에까지 이른 일에는 법조문보다 국민정서라고 하는 감성적 작용이 더 컸었던 일을 상기해보아야 한다.기회만 있으면 소요를 생각하고 법을 우습게 여기는 듯한 행동은 그들이 표방하는 『교육 대개혁』의 명분도 의심하게 한다. 해직당한 동료를 위해서도 이런 자해적인 방법은 해결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상흔의 치유를 위한 온당한 사려가 사회분위기 안에 조금씩 잉태되고 있을 때 새 불화의 행동대같은 「전교위」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자꾸만 거리로 나서는 일을 거듭하는 것은 이면을 의심하게 한다. 불가하다고 판정된 집회를 강행하는 논리는 법을 법으로 여기는 일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다.그들이 구상하는「교육대개혁」은 국법도 초월하는 것이라는 뜻의 간접 피역이기도 한 이런 행동을,청소년 학생들을 충동이는 효과까지 노려가며 서슴지않는다면 학부모를 주축으로 하는 국민감정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도 집회를 고집하면 원천봉쇄로 맞서는 치안당국의 대처에 맡길수밖에 없는 일이다.겉으로 나타난 명분을 보고 속에 내장된 「딴뜻」을 투시하는 능력이 우리국민은 매우 발달했다.집단행동 이전에 그점을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 주인석 첫장편 「희극적인…」(이작가 이작품)

    ◎“좌절한 운동권세대의 표류하는 삶”/니체의 「인간적인…」서 제목 차용/격동의 80년대 살아온 젊은이 아픔 그려 젊은 소설가 주인석씨(29)가 첫 장편소설 「희극적인,너무나 희극적인」을 열음사에서 펴냈다. 니체의 저서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제목을 따온 이 소설은 좌절한 80년대 운동권 세대의 표류하는 삶과 인식을 연극적 파라다임에서 조명한 지식인 소설이다.서울대 국문과 출신으로 연극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통일밥」등의 대본을 집필했던 작가의 전력으로 보아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상당히 개입된 작품으로 파악된다. 『격동의 80년대에 20대를 보낸 젊은 세대로서 혼돈스런 현실 속에서 지난 젊은 날 경험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추적해보고 싶었습니다』 과거는 그냥 존재했던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을진대 따라서 「희극적인,…」은 80년대를 해석·반성함으로써 총체성과 전망을 상실한 90년대를 뚫고 나가려는 작가의 노력의 소산으로 보여진다. 이 작품에는 『식민지 반봉건사회에서 태어나 제3세계적 개발독재사회에서 교육받고 예속적 국가독점 자본주의사회에서 젊은 날을 보냈으며 이제 포스트모던사회로 진입』한 1960년대산의 내면풍경과 진지한 고뇌가 배어있다.한 마디로 「희극적인,…」은 모더니즘적 가치가 붕괴된 현실에서 바라본 지식인의 음울한 소상이다.그 초상은 끔찍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띠고 있다. 천민자본주의의 총아인 방송국의 드라마PD 상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3일동안 벌어진 일을 다루면서 수시로 80년대로 회귀하는 회상형식을 취하고 있다.80년대 대학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던 상우는 세계와 첨예하게 불화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이는 그의 개인사적 불행의 삶과 함께 운동권시절 당했던 끔찍한 고문과 고문후유증에 연유한 것이다.그는 고문에 못이겨 수배된 친구 영환과 애인 지숙의 은거지를 자백했는데 이는 그에게 좀처럼 떨치기 힘든 커다란 죄책감을 짐지웠다.이같은 죄책감으로 굴절된 의식을 갖게된 상우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다분히 냉소적이다.그는 80년대 이후의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 잘 짜여진 희극일 뿐이며 80년대의 변혁운동 역시 다른 세상으로 뛰어들기를 열망했던 젊은세대의 연극일 따름이라고 자조하며 자신이 부패해가고 있다고 느낀다.고문과 감금으로 대표되는 엄혹한 시대의 비극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희극이라 우기는 것은 작가의 역설적 드러냄이며 그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는 것은 60년대산의 지극한 허무주의의 반영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운동권친구 영환의 의문사와 옛 애인 지숙과의 우연한 재회는 그의 의식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그는 연극 「외디푸스왕」 「햄릿」 「세추안의 착한 처녀」,영화 「닥터 지바고」등의 텍스트가 주는 의미를 해독하며 80년대 부조리한 삶과 변혁운동에 존재론적 성찰을 시도한다.결국 방송국을 사직하고 불투명하지만 자유로운 정신의 비상을 꿈꾸며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직까지 60년대산의 낙관주의가 소진된 것은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이 작품은 상처받은 한 젊은 영혼의 「비극적 길찾기」의 기록이다.따라서 「희극적인,너무나 희곡적인」이란 제목은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문학과 사회」90년 여름호로 데뷔하여 최근 연작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를 활발히 발표하고 있는 작가 주인석씨는 『90년대 서구적 모더니티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19세기를 되돌아보며 21세기를 전망하는 과학소설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 여행/윤시향 원광대교수·독문학(굄돌)

    다방을 가도 한 군데 다방,식당을 가도 한 군데 식당을 정해놓고 반드시 그곳에만 가는 분을 알고 있다.하다못해 외출시 화장실을 갈 경우에도 꽤 떨어진 곳에 있어도 그곳까지 가서 볼 일을 본다.이렇게 지조가 있는 분도 있는데 나는 아직도 새로운 걸 보면 끌려서 그곳에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여행의 매력은 새롭고 낯선 것과의 만남이다.흔히 낯선 것과 마주쳤을 때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너무나 안정되고 규격적인 우리의 일상은 때로 얼마나 무미하고 지겨운가.낯선 것 앞에서의 불안과 두려움은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일상적인 것은 너무나 낯익고 익숙하여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지 못한다.그래서 「낯설게 함」이 예술정서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 되는 것일 게다.너무나 익숙해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눈에 띄게 하는 것,이른바 「소외효과」가 어찌 문학에서만 필요하겠는가.성찰과 각성을 위해서는 떠남이 필요하다.평소에 전혀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떠나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두드러지게 눈에 띄게된다.그러기에 길은 언제나 구도의 상징이 아니던가. 여행의 다른 한 매력은 자유로움이다.낯선 곳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된다.아무도 자신을 모른다는 것,그것은 더러는 슬프기도 하고 더러는 홀가분하기도 하다.일상의 구속과 허울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쓸쓸한 자유로움과 더불어 배낭을 메고 먼 길을 마음껏 걸은 후의 그 달콤한 피곤,깊은 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매력이다.요즈음 자가용으로 떠나는 이른바 바캉스에서는 그런 맛을 못 느끼겠지만. 그러나 어찌 반드시 길을 떠나야만 여행이랴.한 권의 책속에 세계가,우주가,자연이,인간이 모두 들어 있지 않은가.사색과 상상의 여행 또한 가능하다.상상의 세계에서는 저 원시림 속으로,가장 번잡한 문명도시로,아니 저 멀고 먼 우주 끝까지,저 작디 작은 미생물 속으로까지 들어갈 수 있지 않은가.「상상을 초월하는 현실」도 가능하지만 「세계는 좁고 머리속은 넓다」
  • 외언내언

    북한의 국어정책은 66년의 김일성주석 교시를 계기로 새 모습을 보인다.국어혁명과도 같은 것.외래어나 한자어를 되도록 토박이말로 바꿔 나갔다.그 결과 5만여개의 「새말」이 생겨난다.이른바 문화어 운동이다.◆그래서 남과 북 사이의 말의 고랑은 더 깊이 패어 나갔다.「젤리」로 알고 있는 남한 사람으로서 「단묵」은 어리둥절케 하는 말.「샤워실」을 그들은 「물맞이칸」으로 쓴다.「물맞이칸」쪽이 그럴듯하기도 하지만 이쪽 사람들로서는 낯설다.그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주체사상」과 맥을 함께 하는 것.또 이런 움직임은 남한이라 하여 없었던 것도 아니다.국어순화운동이 그것이다.◆매사가 그렇듯이 과유불급은 진리.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만 못할 수도 있는 법이다.그 점에서 북의 문화어운동이나 남의 국어순화운동은 지나침으로 해서 미치지 못함만 못한 점은 없었나 성찰해야 할 대목.특히 한자어휘에 대한 과민방응에서 그걸 느낀다.가령 북에서는 「능력」을 「일본새」라 한다지만 꼭 그래야만 주체성이 돋보인다 할 것인지.언중에게 이미 친근해져 있는 말까지 죽이려 함은 잘못이다.◆한자의 교육도 그렇다.교육시기나 분량의 문제는 있다 해도 그 교육이 도외시 돼선 안된다.설사 일반적인 국자생활은 한글로만 하더라도 한자어휘의 뿌리를 이해하게 하는 데는 필요하기 때문이다.북한은 그동안 일반적 국자생활에서 한자를 배제해 왔다.그런데 이번에 온 김달현부총리는 한문을 「많이」가르치고 있다고 전한다.그것이 현실적인 국자생활과 어떻게 연관될지는 모르겠으나.◆청와대를 방문한 김부총리와 노대통령 사이에 오고간 얘기중 하나가 한자 문제.그밖에도 이퇴계등 문화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은 점이 주목된다.그 관계 학자들이 깊이있게 이를 논의하는 마당으로 발전했으면한다.
  • 「사치성 불평」에 빠진 한국(사설)

    남들의 한두마디에 번번이 민감할 것은 아니다.그러나 때로는 남들이 나를 훨씬 정확하고 예리하게 간파하여 스스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악습이나 실수를 찾게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다우존스사 카렌 엘리어트 하우스 부사장의 기고는 우리에게 그런 글이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여 반복해서 들었다고 지적한 말 몇가지는 이런 것이다.『우리나라가 쇠퇴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력을 상실했다』 『우리의 근로윤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혼돈상황에 빠져 의기소침해 있다』 『우리에겐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등.이런 말은 사실상 요즈음의 우리가 예사로 던지고 있는 말들이다.나도 해보았고 남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들어본 말이다.교수들도 걸핏하면 하고 있고 주부도 시정인도 입버릇처럼 하고있는 말들이다.필자가 정확하게 들춰낸 셈이다. 이런 우려의 말은 같은 시각에 워싱턴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의 수도에서도 들을수 있는 말이지만 『서울에서처럼 역설적이고도 근거없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어쨌든」개발도상국들에 모델을 제시했으며 「어쨌든」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도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성공적인 전환을 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그밖에도 한국은 경제자유화를 확대했고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중국및 동구 공산권국가들과도 유대를 맺게 되었으며 노동자와 학생들의 데모로 흔들리던 사회가 상당한 정도로 안정되게 구축한 나라인데,그런데도 한국인들이 『너무나』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는 것에 그는 의아해한다. 그의 간파력이 흥미있는 것은,성공보다는 실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매우 유사하며 두나라가 다같이 회응와 비판에 빠져있다는 현상을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페로와 정주영 현상까지도 같은 것에 대한 논지의 착안은 신선하다.그러나 정작 그의 논지가 지닌 신랄함은 다음에 나타난다.40년동안 억압적인 통치를 받아오면서 한국민을 회의하게 해온 문제는 정통성 문제였고 한국인들이 열성을 바쳐 그 문제를 해결해 왔는데도 『이 위대한 업적을 무시하고잊어버리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는』것에 그는 강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그러면서 수년전 독재정권하에서는 경멸받던 『강력한 리더십』과 『법과 질서』를 지금 한국인이 입에 올리는 것을,그는 한국인의 건망증적인 현상으로 풀지않고 『사치한 불평』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정치적 자유를 가진 사람들만이 문제에 대해 불평할 수 있는,그런 사치스러움의 향유라는 것이다. 겨우 며칠 외국인이 스쳐본 인상으로 적은 것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그러나 잠깐 다녀가는 남의 눈에도 선연하게 보일만큼 『이상스런 불평』에 싸여서 7·5%나 성장하는 GNP를 불평하고,지난 5년간 급료가 패증했음에도 인플레율이 6%선에 이른다고 불평하고 있으며 기업인들은 세계적인 확장에도 불구하고 급료수준 및 이자율이 높다고 투덜거리는 우리가 너무도 『이상하다』고 말하는 그의 글속에,진정으로 하고싶은 말은 따로 숨겨져 있는 것같다. 자신들이 이룬 공을 경멸하는 우를 범해가며 「사치한 불평」에만 너무 취해서 뭔가를 그르칠지도 모를 우려를 언중에 감춰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런 낭비스런 불평의 정체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같다.
  • 성금시비는 실망스럽다(사설)

    인종폭동으로 피해 입은 동포들을 위해 모금한 돈 때문에 교민사회에서 알력이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돈을 많이 갖고 적게 갖는 문제로 벌이는,다소 치사한 물의여서 더욱 듣고있기 거북하다.수만리 이역땅에서 고국을 아주 떠난 동포들이 벌이는 알력이므로 그런가보다하고 외면해 버리면 그만일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적든 많든,고국의 동포들이 직접 간접으로 이 돈의 모금에 참여를 했다.그렇다고 「내돈」을 내놨었으므로 참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인 것은 아니다.LA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고국의 동포들은 충격속에서 즉각 어떻게 하면 동포애를 발휘할수 있을까부터 생각했고 그 열기가 삽시간에 번져 모여진 것이 「성금」인 것이다.바로 그 성금을 놓고 더 갖고 덜 갖는 문제로 몸싸움까지 벌일 지경이라는 소식은 부끄럽고 서글픈 느낌이다. 성금 모을 때의 뜨거운 동포애를 스스로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소식을 접하는 일이 괴롭다.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피해에서 회복되려면 얼마나 더 세월이 가야할지 캄캄한 느낌에서헤어나지 못하는 동포도 있을 것이다.그런 피해자들로서는 『우리 위해 거둔 돈이니 우리한테 권리가 있다.다 내놔라』하는 심정일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그러나 성금을 낼때 우리의 심경은 이 성금이 모든 동포들의삶에고르게,그리고 가능하면 근본적인 문제의 대책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염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뜻에서는 성금을 관리하는 기구가 긴눈으로 성숙하게 동포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방안을 연구하고 협의를 통해 합의된 결정을 도출하여 집행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적어도 성금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어 동포끼리 알력을 빚거나 하는 일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들리는 바로는 성금을 피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나눠주지 않고 일부를 기금으로 하여 운용하자는 대책기구의 의견에 반발하여 일부가 극렬한 행동까지 벌였다고 한다.너무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른바 LA사태가 유색인종사이에서 벌어진 부당하고 편견에 찬 불의의 사태였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우리 동포들의 해외에서의삶의 태도에 조금은 반성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이같은 지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이는 같은 사태의 예방은 가능하지 않다.성금의 배분이 그런 근본적인 접근을 위한 이성적인 결정이었다면 충분히 토의해서 수렴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또한 전액을 피해자에게 분배한다 하더라도 피해의 정도나 회생능력이나 여건에 따른 차별화를,위원회에서 검토해보고 집행하는 방안도 영 불가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모든 일을 순이로 의논껏 치르는 것이 불행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뜻대로 안되면 집단 시위부터 벌이고 새로운 분규로 돌입하는 태도는,우선 그곳의 여러 타민주에도 좋지않은 인상을 심을 뿐이다.그곳에서 뿌리를 내려 살 사람들이,걸핏하면 시끄럽게 싸움이나 벌이는 말썽 많은 인종으로 비치는 일은 그들 스스로를 위해 해롭다.이역만리에 동포를 둔 고국 동포들은 그것이 걱정스럽다는 것을 거듭 밝혀 둔다.
  • 에이즈수혈 감염의 공포(사설)

    인간들의 음란하고 추악해진 성도덕에 대한 업보가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라는 공포의 질환이다.성경에 나오는 음란과 성적도조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의 세례속에서 멸망한다.그런데 오늘에는 그런 전체적 멸망 대신 개개인에게 공포와 불안을 안긴 끝에 마침내 생명을 앗아간다. 지구촌의 에이즈는 지금 확산일로에 있다.WHO(세계보건기구)가 가끔씩 환자수를 발표하곤 하지만 그 숫자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7월1일 현재 감염자수 1천만∼1천2백만명이라고 하나 실제는 그보다 많으리라는 것이 통설이다.감염된 줄도 모르는 감염자가 확산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국제화시대를 사는 우리 또한 여기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엊그제 보사부 발표에 의하면 6월의 감염자 7명을 포함하여 2백2명이라는 것이었지만 감염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없지않다 할 것이다. 두려운 것은 이 질환이 잘못된 성행위자만이 아닌 선의의 사람에게도 널리 감염되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수혈에 의한 감염도 그중의 하나이다.병원으로 병을 고치러 갔다가도리어 죽음의 병을 얻게 되는 것이 이 수혈감염이다.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신은 이 공포의 질환으로 벌 주려면서 인류 모두에게 공동책임을 지운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 수혈에 의한 감염 사례가 알려진 것은 지난 89년의 일이다.그후로 지금까지 피해자는 10여명에 이른다.그들 가운데는 절망끝에 자살을 택한 경우도 있다.지난 4월 21세의 젊은이가 자살한데 이어 엊그제는 57세의 노파가 자살했다.노파는 남편이 수혈감염된뒤 동반자살하려고 함께 팔목 동맥을 잘라 물담긴 세면기에 담갔다가 감염된 처지였다.그 자살을 도왔다하여 61세의 남편은 불구속 입건되었다.전해듣는 마음이 처연해진다. 큰 수술을 함에 있어 수혈은 필수적이다.날이면 날마다 수혈을 필요로 하는 수술은 줄서있다.그런데 그 수혈이 지금 공포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그뿐아니라 현재까지의 의학으로는 수혈에 의한 에이즈감염을 1백% 막기 어렵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심한 경우 감염된 뒤 3∼4년이라야 항체가 형성되는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럴때현재의 검사법은 무력해진다지 않은가. 이번 노부부 사건으로 해서 수혈 감염의 공포는 더 확산되고 있다.그렇다고 하여 죽어가는 생명에 수혈을 않는다 할 수도 없다.도덕적인 성찰이나 개탄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그래도 역시 주어진 여건 속에서나마 수혈·헌혈때 보다 철저하게 항체검사를 하도록 하는 수밖에는 없다.95% 정도는 5개월 안에 항체 양성반응을 보이는 것이니 말이다.또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수혈을 않는 것도 방법이다.어쨌거나 에이즈 다스리는 신약이 나오기까지 인류는 이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설사 자살에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자신의 잘못 아닌 불의의 타율적 감염은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 것인지 모른다.그런 경우들에 대한 보상길도 어서 열려야 할 것이다.
  • 「6·29선언」 5돌을 되돌아보며(사설)

    6·29선언 5주년을 맞으며 노태우대통령은 『이 선언은 나의 통치철학이 되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87년의 6·29선언은 당시 민주주의 관건이라고 여겨졌던 개헌시비를 일단락시키고 정치의 자유,기본권의 신장을 약속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정치적 파탄에서 구해주고 실질적인 민주화의 길을 터준 중대하고 현명한 결단이었다. 지난 5년간을 되돌아 볼때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자유가 크게 신장되어 정치·사회 분위기가 질적으로 달라진 사실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6·29이후 민주화를 위한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새로운 많은 문제에 당면,「무엇을 할것인가」이상으로 「어떻게 할것인가」의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의 당면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정치·사회·경제및 주변상황등 현실적인 특수성을 감안,「개혁」을 부단히 추구하되 「안정」이라는 기틀에 흔들림이 없도록 신축성있는 정책이 그 어느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우리는 현재 사회 제권위의 갑작스런 붕괴등 과도기적이긴 하나 일종의 사회적 혼돈마저 경험하고 있는 속에서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스스로 이에 역행하는 행동을 취하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이 일부 이익집단들의 행위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민주체제의 정착은 민주적인 법과 제도가 국민과 정치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그 가치와 안정성이 현실적으로 드러날때 그 실현을 실감케 된다.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와 반민주라는 구도가 정치권에서 소멸하고 재야 정치세력이 제도권으로 유입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지난 두차례의 선거에서도 탄압과 부정이라는 관권 개입에 따른 불만이 없어진 대신 금품유포나 대중동원등의 타락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그 부정적 결과로 국가경제에 주름살을 주고 정부와 정당의 정책에 불신감을 키워주고 있는것이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이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민주화 실현이라는 기본정신 보다는 당과 정파들이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현 사회·경제적으로는 많은 「착오」와 문제점을 예견하면서도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어떤 정치행사의 당장 「시행」을 강요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을 우리는 듣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제도상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토착화 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며 국민들이 민주적 관행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우리는 권위주의의 청산과 민주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단계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으나 정착의 단계에서 적지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일부 야권에서는 지금 6·29선언중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정치공세를 펴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고 정책을 협의하며 현안을 논의,분쟁을 해소해나가야 함에도 본래 기능을 정략적으로 이용,마비시켜 놓고 있는 실정이다. 노대통령은 『작년 지방의회까지 구성 함으로써 6·29선언 8개항의 민주화개혁을 모두 이뤘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6·29정신을 지속적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더욱 폭넓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화의 긴긴 도정에서 민주주의는 실천과 시도 및 시행착오속에서 정착화되고 뿌리를 내려간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그러나 「시행」은 하되 「착오」는 어떻게든 줄여 나가야 할 책무는 1차적으로 정권담당자에 있다는 점을 당부해 두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는 상황에 있다.그러나 「어떻게 할것인가」의 문제에서는 상황과 여건을 면밀히 검토,특정 정당의 당략이나 정략을 떠나 보다 대국적인 입장에서 민생과 국가경영상의 제반문제도 폭넓게 수용하는 지혜와 도량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의미에서든 6·29선언이 4·19와 더불어 온 국민의 호응을 받은 역사적인 결단이었으며 이 선언이 오늘의 한국 민주화의 기본틀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만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4년간 경제성장의 열매에서 더 많은 몫이 근로자에 돌아간것도 사실이요,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다원화되고 일사불란한 권위주의 체제가 거의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점 또한 누구나 실감해가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정치권의 행동양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국민의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는 점을 정치인들은 깊이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 6·29선언이 87년 당시 국민의 시대적 요구를 수용한 노대통령의 결단이었다면 오늘의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이 정치인들을 보는 시각이 어떠하며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세심히 살펴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정치행태를 지양하고 국민경제와 사회현실에 보다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대한다.이것이 바로 6·29선언의 기본정신이며 이나라에 민주화의 초석을 놓는 책임있는 정치인의 임무다.
  • 외언내언

    라 로슈푸코의 「잠언」(481)은 「친절」에 대해 이렇게 써놓고 있다.­『진정한 친절만큼 희귀한 것도 없다.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저 남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거나 아니면 다만 여린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뿐이다』◆이건 친절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다.남의 비위나 맞추는 언행과 친절의 본질이 다르다는 뜻.때로는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는 옳은 말이 친절이나 예의로 통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므로 참다운 친절은 교언령색이 아닌 진실과 애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데에 라 로슈푸코의 진의는 있었다고 하겠다.그래서 그는 진정한 친절만큼 희귀한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로 들면 매사가 너무 어려워진다.엄숙해진다.가령 자선에 대해 말한다고 치자.『자선을 베풀면서 거기 스스로 희열을 느낀다면 그건 이미 자선이 아니다』고 하는 자선관은 극히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해석일 뿐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워진다.오른손이 하는 자선을 왼손이 알게 하는 자선이나마 요청되는 것이 사회현실이기 때문이다.친절도 그렇다.『남을 기쁘게 해주는 친절』이라면 얼마나 요청되는 우리사회인가.◆상냥함과 친절함이 많이 모자라다는 지적을 받는것이 우리 사회.인사성 없고 무뚝뚝하고.이에 대한 성찰로 근자에 각계에서 친절과 인사를 생활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서울 구치소에도 그 물결이 와 닿는다.면회인을 형제처럼 대하는 웃음과 친절의 민원실로 되고 있는 것.사실 우리는 『면회인도 반죄인』같은 시대를 살아왔다.공연히 오금이 저렸다.아니,저리게 만들었다.『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는 어깨띠가 그 저림을 풀어준다.◆좋은 일은 꾸준히 성심으로 펼쳐져야 한다.또 이런 움직임은 더 널리 번져 나가야 한다.친절­인사­웃음.우리 사회의 윤활유로 되어줄 요소들이다.
  • 외언내언

    기원전 1천4년 솔로몬왕에 의해 세워진 예루살렘 신전.그것이 4백여년후 바빌로니아군에 의해 파괴된다.기원전 516년의 재건을 거쳐 헤롯왕에 의해 확대조영되지만 서기 70년 로마군이 다시 파괴해 버린다.◆그 자리에 지금은 이슬람교 「바위의 모스크」가 서 있다.그 광장에 남아 있는 것이 저 유명한 「통곡의 벽」.그것은 길이 37m 정도의 돌담이다.세계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이 그 앞에 와서 목놓아 울었기에 붙은 이름이다.그들 겨레의 영욕을 생각하면서 복받치는 설움에 겨워 터졌던 통곡.그들은 통곡속에 조상의 아픔을 추체험했다.재결집에의 결의를 다졌다.◆6·25때 음식먹기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그 날의 아픔을 추체험해 보자는데 뜻이 있다.비록 단조로운 행사이기는 해도 「재결집」에의 결의를 다지는 가운데 오늘을 성찰해 보자는 뜻도 곁들인다.그렇다.그날을 생각할 때 오늘의 우리는 너무들 분수를 잊고 있다.「통곡의 벽」앞의 통곡이라도 있어야 옳을 정도로.6·25를 체험한 세대들은 그걸 뼈저리게 느낀다.◆보리주먹밥·개떡·수제비 등등이 선보인 6·25음식.실제로는 그밖에도 보리가루죽에 옥수수·감자·초근목피 등등 여러가지가 더 끼일 수 있겠다.물론 오늘에 먹어보는 6·25음식을 그날의 그 맛에 비길 수는 없다.오늘의 제과점 케이크보다 맛이 있었던 그날의 개떡맛을 안온하게 사는 오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 하겠는가.불결하게 먹어도 설사하는 법 없었던 그날의 그 음식.그거나마 없어서 굶주리지 않았던가.◆일부 대학에서는 이 행사에 자그만 시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새삼스레 전쟁을 상기시켜 남북간 화해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이유로.논리의 비약이 심해 보인다.지금은 우리 내적인 경고의 뜻이 더 큰 그날의 음식먹기행사 같은데.
  • 현충일에(사설)

    『사람마다 한번의 죽음은 있다』고 사마천은 입을 연다.그는 다시 『그러나 그 죽음이 태산보다 무거울 때가 있고 홍모보다 가벼울 때도 있다.어떠한 죽음이냐에 따라 그 의의가 달라지는 것이다』고 그 말을 잇는다.이 말뜻을 곰곰 곱씹어 보게 하는 오늘이 현충일이다.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대의 앞에 순하는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다.이승을 사는 사람 누구나가 아끼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비굴해지기도 하는 귀한 목숨을 홍모와 같이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닌가.그러므로 나라가 침탈당했을 때 나라를 찾기 위해 싸운 선렬과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하고 지키기 위해 싸운 호국의 영령들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기려야 한다.국립묘지에서 울려 퍼지는 진혼나팔 소리를 들으며 숙연한 마음으로 나라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생각해 봐야 한다. 오늘이 없는 내일이 없듯이 과거가 없는 오늘은 없다.영욕이 교차된 과거위에 오늘은 있다.오늘의 우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끼어들만큼 발전을 이룩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오늘까지의 역정에는 피땀 어린 과거가 있다.그중에서도 잊을수 없고 잊어서도 안될 것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핏자국이다.나라와 겨레의 영광을 위해 일신을 버린 그 희생정신 위에 오늘의 번영은 꽃피어 있다.그러기에 오늘이 영광되고 행복하면 할수록 잊지 않아야 할 일이 그 희생정신이다. 역사는 흐른다.흐르는 역사 따라 세상은 변전한다.우리의 국권을 침탈하면서 갖은 핍박을 가했던 나라와 다시 수교를 하고 있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던 북녘의 사람들과도 한핏줄로서의 맥을 이으려는 대화의 물꼬를 트고 있다.그뿐이 아니다.북녘의 야욕을 부추기고 도왔으며 고무·격려했던 적성의 나라들과도 공존공영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국제사회를 사는 냉엄한 현실일뿐,순국선열이나 호국영령의 위업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다.또 비록 역사의 흐름이 그렇다 하더라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용서와 망각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조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달고 묵념을 올리는 가운데 지하의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면서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는 하루로 삼았으면 한다.우선 그들의 희생정신부터 배우는 자세가 소망스러워진다.끝없는 이기의 패각에 묻혀 이타를 외면한 채 자기중심으로만 치닫는 삶부터 성찰해 봐야겠다.오늘의 모든 사회악과 부도덕의 근원이 여기 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한발짝씩 물러날 줄을 알고 제 목소리를 낮추면서 남의 말을 들을 줄 알게되어야겠다.이런 심성들이 큰 줄기를 이루면서 물질 못지 않게 정신이 더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한다.그것이 선열·영령들에게 보답하는 길로 될 것이다. 포성은 멎었건만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현충일을 맞는 마음이 착잡해진다.전국의 보훈병원에서는 6·25 전상자가 아직도 적잖이 심신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특히 화염병 들던 젊은이들이 꽃다발 들고 그들을 위문하는 광경을 보고 싶어지는 현충일의 심경이다.
  • 유신시대 시인의 고뇌 형상화/신예 박상우작 「시인 마태오」

    ◎타락한 정치 맞서 예술혼 지키려 노력 박상우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시인 마태오」는 예술가소설인 동시에 지식인소설이며,또한 넓은 의미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20대 중반인 19 73년 한 사람의 시인이 된,그리하여 이른바 유신세대라고 불릴 수 있는 강원도 탄광촌 출신의 마태오가 겪는 여러가지 애환과 절망·고뇌·방황의 풍경이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뼈대라고 할 수 있겠다. 시인 마태오가 편력하는 삶의 고통스러운 풍경은 무엇보다도 마태오와 그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의 불화에서 연유한다.유신시대라는 암울한 파시즘의 시기에 정결한 영혼을 지니고서 시를 쓰고자 하는 마태오에게 있어서,그 유신시대는 그야말로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던 것이다.그래서 마태오는 여느 사람들처럼 그 타락한 시대에 적당히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정치적 억압에 예술가적 자존심과 특유의 아웃사이더적 의식을 가지고 그야말로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이다.그 저항은 시인 마태오에게 「예술이나 시는 과연 누구에게 봉사하는가?」「타락한 정치와 사회에 맞서서 예술 본원의 힘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예술과 정치에 관한 근원적인 성찰과 물음으로 이끈다. 마태오의 치열한 고뇌에 동반자가 되었던 사람은 마태오가 신문사에 근무할 당시 선배기자였던 장경석이라는 인물인데,그는 언어가 지배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시녀의 기능으로 전락하였다는 착잡한 사실에 커다란 절망감을 느낀 나머지 결국 자살하고 만다.장경석의 이러한 행동은 마태오의 고뇌와 상심을 더욱 깊고 크게 만들어 마침내 마태오는 신문사 사직,아내와의 이혼,고향인 탄광촌 「흑사리」로의 낙향,광부로의 변신,「사북사태」로 추정되는 흑사리 탄광의 파업 참여,도피자가 되어 보낸 바닷가 마을 숙포에서의 며칠,자신의 신념에 대한 회의,마침내 1973년에 처음 시인이 된 이후로 7년만인 1980년 다시 시인으로 등단 등등의 파란만장한 인생여정을 체험하게 된다.한 시대가,그리고 역사가 어느 순수하고 정결한 영혼을 할퀴고 지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상우의 「시인 마태오」는 유신시대에 청년기를 보냈던 모든정결한 영혼들의 「추억의 사진첩」과 같은 작품이다.그러나 그 사진첩에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흑백사진들이 담겨있다.무엇보다도 「예술이 정치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예술사가 전개된 이래로 가장 중요한 물음이 이 작품에 스며들어 있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1980년 다시 시인이 된 마태오의 내면풍경과 시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도 좀더 치밀하고 정교한 형상화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형식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거의 단상형식에 가까운 한 페이지 분량의 내용이 각기 일련번호가 적힌채 나열되고 있는데,최근에 소설들이 단상이나 수필의 형식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소설사적 징후로 생각된다.앞으로 나아갈 전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우리를 편하게 하고 그 무엇에 대해서 확신케 했던 이념의 푯대가 사라진 시대가 소설사적으로는 형식의 파편성과 해체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이 점에 대해서는 성실한 후속적인논의가 필요하리라.
  • 「고스톱병」은 스톱돼야(사설)

    마약과 도박은 그것에 빠져든 사람을 황폐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그것은 다 함께 육체적 혹은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악마의 사자이다.마약이 육신을 좀먹기 시작한 끝에 정신의 황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면 도박은 그릇된 정신에서부터 출발하여 마침내 일신의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도박의 경우 오락·심심풀이의 경우와 본격적인 것과는 구별하여 생각되기도 한다.또 그에 관해서는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화투놀이를 한 것은 도박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도 나온 바 있다.그렇기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 한계점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많다. 심심풀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상습화하다 보면 버릇이 붙는다.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버릇이다.그렇게 되면 어느 새 심심풀이의 한계를 넘고 만다.간헐적으로 적발되어 오는 주부 도박단이 그것이다.건전한 취미를 가지려 하지 못한 채 심심풀이로 화투짝을 만지던 끝에 상습화하고 끝내는 파탄에 이르고 만것이 아니던가. 그뿐이 아니다.우리의 경우 계층도 없고 때와 장소의 구별도 없이 너무 흔하게 아무데서나 짬만 나면 판을 벌인다는 것도 문제다.길가에서 화투 치던 버릇은 외국 공항에서 고스톱판 벌이는 촌극으로까지 이어진다.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정치인이나 장사꾼,연극인이나 학자,혹은 남자 여자의 구별도 없다.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리가리지 않고 쉽게 판을 벌이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얼마전 폭탄주 없애기등 건전음주문화의 정착을 추진함으로써 일반사회의 호평을 받았던 군이 이번에는 「고스톱 추방」을 들고 나왔다.육군·공군본부가 있는 계용대지역 장병과 가족들을 위해 발행되는 주간지 「계룡대」는 시간이 날 때 고스톱을 치는 대신 바둑·장기·윷놀이·고누 등을 하라고 권장한 것이 그것이다.그러면서 고스톱의 여덟가지 폐해를 지적한다.용어가 과격하고 비도덕적이며 동료·상하관계에 금이 가게 한다는 등 그 지적들은 하나같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군에서 벌이는 이 도박 추방운동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스며들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진다.사실도박은 도박행위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숱한 반사회적 부작용까지 동반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본디 폭행·사기·살인 등은 도박판을 따라다니게 마련이다.또 도박으로 돈을 잃은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부녀자를 태워 몹쓸짓하고 돈을 우려내온 어느 택시 기사도 도박하다 돈을 잃고 그를 벌충하려고 한 짓이었다.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파탄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제3자에게까지 피해를 확산시키는 것이 도박의 부작용이다. 고스톱을 비롯한 각종 도박행위가 만연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적인 기강과 무관하지 않다.야비하고 비도덕적인 이 행위가 도덕성의 마비와 무관할 수 있다 하겠는가.쉽게 돈을 벌려는 생각이나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도 이와 관계된다.설사 오락성을 띤 가벼운 돈내기라도 죄의 유무와만 관계지어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본원적 심성의 문제에서부터 접근함으로써 도박 없애기가 대대적 사회운동으로까지 번져나갔으면 한다.
  • “「현대판 왜란」 재발 경계를”/문화등 간접침략 경각심 높여야

    조선시대 우리 민족이 겪은 최대의 외침전쟁인 왜란은 지금으로부터 4백년전에 벌어져 6년8개월에 걸쳐 우리 겨레에 크나큰 희생을 강요하였다.그 아픔의 희생은 인명의 손상이나 물질적인 것에 끝난 것이 아니라 정신직,문화적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까지 파고든 아픔이었다. 우리 겨레가 잊을 수 없는 이 부질없는 침략전쟁인 왜란을 오늘날 어떻게 우리 마음에 삭여 오늘에 사는 교훈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며,또한 지연관계로 밀접하게 상종할 수 밖에 없는 한일 두 민족의 장래 역사에 생산적으로 살려갈 것인가? 4백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감정적인 분노와 새삼스러운 적개심을 일깨우는 식의 회고는 역사적 성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외세에 의한 침략전쟁은 어떤 때에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어째서 그것을 자초하게 되어 심한 고난을 겪어야 했는가,전쟁에 휘말려 들었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가 등 오늘에 사는 역사적 교훈을 얻어내야만 한다.왜란 그 자체는 없었어야 할 불행한 일이었으나,있었던 그 자체에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사적 자세를 가다듬을 줄 아는 역사적 자세를 확립하여야 하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볼때 침략전쟁은 국내의 자국 모순을 밖으로,전쟁이라는 수단으로 호도하려 할 때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왜란도 무력으로 강제통일을 이룩한 히데요시 정권이 당면하게 된 대내모순을 밖의 한반도로 유도하려는 고도의 계산에서 도발된 전쟁이었다.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이웃나라가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 모순에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또한 그것은 해결방법의 진로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한편 침략세력의 틈을 탈 수 있는 약점을 밖에 드러내게 되었을때 외세는 서슴없이 침략전을 도발하게 됨을 보았다.이점에서 국력의 굳건함을 이루어 과시하여야 하는 것이다.부질없는 지배층의 분열과 비리에 의한 계층 모순이 결국 침략을 자초하게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임진왜란 당사자인 일본에 대하여는,임진·정유왜란을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인식하고 겸허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역행적 역사의식과 「조선정벌」로 자만하는 착오된 역사태도를 청산하지 않는 현대 일본인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일본을 믿을 수 없으며 현대판적인 왜란(그것은 반드시 전쟁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여러가지 모습의 간접침략으로 감행될 수도 있다)의 재발에 한층 경각심을 높일 수밖에 없음을 깨우쳐 주어야만 할 것이다.
  •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선언 전문

    ▷전문◁ 자연은 인간존재의 모체이며 삶의 터전이다.인간은 공기와 물과 흙과 같은 환경의 은혜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다.환경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을 똑바로 인식하고 환경용량의 범위내에서 자제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윤리규범이다. 이를 어기는 사람의 행위와 무관심이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인류와 지구의 존속마저 위협하고 있다.이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60년대 이래 급속히 진전되어온 산업화와 도시화로 우리의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은 이제 더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지금 적절히 대처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환경은 더욱 오염되어 품위있고 건강한 삶의 유지는 물론 지속적인 국가발전도 어렵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환경오염이 몰고올 재앙을 막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슬기를 총집결하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환경보전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왔다.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와 환경을 보전하여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오늘의 세대와 미래의 후손들까지 복된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국가의 환경보전 기본원칙을 겨레의 의지로 선언한다. ▷환경보전 기본원칙◁ 1·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그리고 살기좋은 자연환경은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며 안전하면서도 생산적으로 유지 관리되어야 한다.이를 위해서 국민과 정부는 보다 나은 환경을 창출하기 위하여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모든 정책수립이나 개발활동은 그 결정과 시행에 앞서 환경에 미치게 될 영향을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따른 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여야 한다.개발은 환경보전과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한다. 3·국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및 사회활동을 분석하여 환경오염을 사전에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계획과 이미 발생된 오염물질을 적절하게 정화하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이를 위하여 종합적인 환경행정 체제하에 관계부처간의 효과적인 상호협조를 유지하여야 한다. 4·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환경보전 우선의 시각에서 국토 이용계획을 수립하고 우리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조성을 위해 이미 훼손된 자연자원과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여야 한다. 5·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환경에 관계되는 정책이나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위하여 적절한 제도를 확립하고 정보와 자료를 최대한 공개하여야 한다. 6·기업은 환경오염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진다.기업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발생하였을 때에 기업인은 즉각 이를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러한 실천이 기업윤리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여야 한다. 7·산업활동에서 환경보전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의 하나는 자원을 절약하는데 있다.따라서 생산으로부터 유통·소비에 이르는 우리의 산업구조를 자원이 절약되는 형태로 하루바삐 개편하여야 한다.이는 국제사회에서의 산업경쟁력 강화에도 필요함을 유의하여야 한다. 8·정부와 기업은 환경보전과 개선을 위한 과학기술을 연구개발하고 그 결과가 실제에 응용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새로이 개발된 모든 과학기술은 그 실용에 앞서 환경영향을 평가하고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9·민간단체와 언론기관은 공정한 환경보전 활동을 적극 전개할 것이며 정부는 이를 최대한 지원하여야 한다. 10·국민각자는 환경보전을 위하여 물자와 에너지를 아껴쓰는 건전한 소비풍토를 확립해야 하며 무관심으로 인해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진지하게 성찰하여야 한다. 11·우리 모두가 지구촌의 일원이다.「하나뿐인 지구」를 보전하기 위하여 국제적으로 펼치는 노력에 우리는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12·우리는 이제 물질적 성장만을 촉구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정신생활을 향상시킴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성장개념과 마음가짐을 정착시키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해 나가아야 한다. 13·이같은 제반노력을 우리의 윤리규범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하여서는 지속적인 환경교육이 필요하다.환경교육은 학교교육에서는 물론 미래지향적인 평생교육을 통하여 환경보전이 생활화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합심협력하여야 한다. 14·앞에서 천명한 환경보전과 창조의 기본원칙을 성실히 준수하기 위하여 국가는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고 중·장기 종합대책의 수립과 실천에 총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 선언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자자손손 쾌적한 환경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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