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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정치」 좌절을 만회하려면…(최택만 경제평론)

    한 재벌 전총수의 정치참여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정주영 현대그룹 전명예총재가 창당한 국민당도 그의 「정치은퇴」선언이후 내부분란으로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재벌의 정치참여는 세계적인 사례나 한국적 현실에 비추어 당초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세계적으로 재벌이 정치에 참여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일본에서는 이미 여러차례 그 실험이 있었다.일본 재계인사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대표적인 사례는 후지야마(등산진일랑)이다.대일본제당 재벌 2세인 그는 차기 총리내약까지 받고 외상에 취임했으나 실패했다.정치입문 실패뿐이 아니고 본업인 업체도 도산,패가망신했다.데이진(제인)인견사 사장인 오야(대옥진삼)가 한때 정계에 입문했다가 본업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정치에서 손을 뗐다. 일본 다이쇼와(대소화)제리의 사이토(재등요영)사장도 패가망신 직전에 정치에서 빠져나왔다.현재 일본 정치인 가운데 재벌로 알려진 고모토(하본)파의 고모토(하본민부)는 정치에 손댄뒤 그가 창립한 일본 최대의 해운회사인 삼광기선이 도산했다.그는도산한 회사의 주인이라는 불명예 때문에 그 계파의 가이후(해부준수)가 총리자리에 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록펠러 2세가 한때 대통령을 꿈꾸었으나 실패했다.영국에서는 로드차일드가가 정치에 관심이 많으나 정치자금만대고 정치에는 직접 참여 하지 못하고 있다.독일의 경우 1차대전 직후 AEG 재벌 총수 라테나우가 정계에 들어가 외상이 되고 차기총리에 유력시 되었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좌절됐다. 한국적 현실은 어떤가.우리는 유교문화권에 있는 나라이다.유교문화권에서는 보통 권력·명예·돈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이 3가지중 어느 한가지를 갖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있다.재벌이 정치에 참여하자 많은 국민들은 우리는 3가지 중 어느 것 하나 갖고 있지 않은데 누구는 전부를 소유하려 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었다. 국민들의 사시적 시각뿐이 아니다.경제계 내부에서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재벌이 재벌을 지배하는 사태를 우려했다.다른 한 재벌이 대선전 정당을 창당하려했던 것도 그우려에서 기인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많은 재벌들이 재벌 정치참여이후 정·경간 갈등과 마찰의 불똥이 자기재벌에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경제계는 정·경간 갈등이 심화되자 관망자세로 일관했고 설비투자마저 미루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되고 있는 물질만능 풍조를 확산시켰다.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금품타락선거를 조장했고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망국적인 풍조를 만연시켰다.이처럼 재벌의 정치참여는 정치계·경제계·국민 등 각계각층에 엄청난 폐해를 야기시켰다. 정 전대표는 그같은 위해를 초래한데 대해 깊은 자성과 통찰이 있어야 한다.정치참여를 시도했다가 여의치 않자 「은퇴」한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참으로 곤란하다.정 전대표의 최근 자세나 행동은 중소기업인이 회사를 하나 더 차렸다가 경영상태가 좋지않으니까 문을 닫아 버린 것과 흡사하다.정 전대표는 한때 한국 재계의 대표(전경련 회장)였고 정치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는 정당을 창당한 인사이다.중소기업을 문닫는 식으로 「정계은퇴」를 마무리 해서는 안된다.정 전대표는 그동안 갖가지 폐해를 일으킨데 대해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여생을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 바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국민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때 「정계은퇴」도 정식으로 선언해야 할 것이다.의원직을 갖고 있으면서 「정계은퇴」를 주장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가 않다. 정 전대표가 경제계로 돌아 가려면 먼저 우리경제인들에게 불안심리를 주고 경제에 불확실성을 야기시킨데 대해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외국에 나가 큰 공사를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정 전대표는 시정인이 아니다.모든 것을 공식적으로 매듭짓고 경제계나 기업으로 돌아가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정 전대표가 이번만은 「책임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 철새정치인(외언내언)

    『조맹이 귀하게 한 것은 조맹이 또 천하게 만들 수 있다』(조맹지소귀,조맹능천지).조맹은 진나라를 쥐고 흔드는 실력자였다.그 사람에 의해 출세를 한 사람은 그 사람에 의해 몰락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맹자」(고자상)에 쓰여 있는 말이다. 정주영국민당대표가 정계에서 물러난다는 사실을 놓고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그에 의해 「귀하게」될양으로 의리고 체면이고 내동댕이치고 그의 날개죽지 아래로 모여들었던 이른바 「정치후조」들.「조맹」의 후퇴로 당 자체가 흔들거리자 무엇보다도 그 후조들의 처지가 처량해진다.그야말로 꿩 떨어진 매의 신세.전에 몸담았던 당으로 되돌아간다 하기도 어려운 일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물러가는 「조맹」이 그 후조들 걱정까지 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불정한 설화를/정사인양 오식한다』고 꼬집었던 함윤수시인의 시 「후조」.「정치후조」들로서는 나름대로의 「후조의 변」이 없을 수는 없겠다.하지만 그런 변명은 「국민정서」쪽에서 볼 때 함시인의 지적마따나 「불정한 설화」이며 「정사인양 오식하는」일일뿐이다.유권자들 눈에 좋게 비치는 것은 아니다.「조맹」에 의해 희망을 가졌던 그들인 만큼 「조맹」에 의해 하게 되는 낙담도 크다고 할 것이다.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고 원망을 한다 하여 보상될 일은 아니다.역시 경홀했던 자기자신의 처신에 대한 성찰부터 하는 것이 옳은 순서일 듯하다. 애당초 「돈의 힘」으로 이루어진 모임이 국민당이었다.또 그 돈의 힘으로 해서 잠깐사이에 불끈 일어서서 제3당으로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금배지 후조들에 대해 실망이 컸던 이유중 하나도 돈많은 당으로 돈때문에 가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있었던 것.그러나 「돈의 힘」에는 한계가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수많은 「후조」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친다.「정은 정야」라 했다.우리 정계가 그 참뜻을 느껴야 할 때다.
  • 문형렬 첫 장편 「그리고 이 세상…」(이달의 소설)

    ◎통속적 소재 불구 문학적 향기 가득/불치병 여대생·신학생의 비극적인 사랑 지금까지 적지않은 수의 우수한 단편들을 발표해온 문형열이 이번에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펴냈다.「그리고 이 세상이 너를 잊었다면」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리고…」는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는 여대생과 독신의 서약에 매여 있는 천주교 신학생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내적인 오뇌와 외적인 제약에 의하여 양면으로 포위된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강렬하게 이어져 가던 그들의 사랑은 결국 남주인공이 부제 서품을 앞두고 군에 자원 입대한 후 여주인공이 쓸쓸히 죽고 그 소식을 들은 남주인공 또한 자살해 버리는 것으로써 종막을 고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줄거리의 차원만을 피상적으로 관찰하면서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다면 우리는 금방 「아,값싼 감상에 호소하는 흔해빠진 통속소설이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통속소설에서 항용 애호되는 요소들 가운데 한 부분을 일부러 골라서 이 소설의 얼개를 만들어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줄거리의 차원에 대한 피상적 관찰만을 토대로 하여 「통속소설」이라는 개념을 운위하는 것은 사실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따지고 보면 오늘날 세계적인 고전으로 공인받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에도 단순한 줄거리의 차원에서는 통속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줄거리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 가운데에서 어떤 것은 고전의 반열에까지 상승하고 어떤 것은 철저히 통속적인 작품의 수준에서 주저앉고 마는가라는 물음에로 관심의 초점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으리라.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짧게 말하자면 줄거리라는 이름의 골격을 얼마만큼 풍요롭고 깊이있는 문학성의 살로서 감싸는데 성공하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게 될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성격을 새롭게 다듬어 놓고 나서 다시 「그리고…」라는 작품에로 돌아가 그 전체적인 면모를 꼼꼼히 살펴볼 때 우리는 이 작품이비록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걸작은 아닐지언정 그것 나름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갖춘 의미있는 작업의 결실임에는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문형열은 그동안 여러 단편들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던 「절망을 강요하는 듯한 세계의 부조리성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의미의 차원을 건져낼 수 있는가」라는 다분히 실존론적인 질문을 이 작품에서 좀 더 평이한 언어로 그러나 전과 다름없는 긴장미를 동반하는 가운데 다시한번 던지고 있으며 그 질문을 통하여 독자의 정신을 삶에 대한 고통스럽고 진지한 성찰에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와 같은 평가가 가능하다.이 작품 속을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서정성의 향기가 단순한 감상의 차원과는 구별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한다.
  • 국민당은 현대와의 관계를 단절하라(사설)

    국민당은 28일 정주영대표의 당무복귀를 통해 대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 재기의 길로 접어드는 새 행보를 시작했다.정대표는 국민당의 향후 진로에 언급하면서 국민에 뿌리를 내리는 「민주정당」「정책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그러자면 당이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도와 기구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올바른 진로 제시라고 본다. 국민당의 새 진로는 대선참패의 원인에서부터 찾아야 한다.현대그룹과의 정경일체로 치른 선거전에서 예상외의 저조한 득표율로 참패한 이유를 솔직하게 성찰해야 한다.국민당이 「현대당」「재벌당」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민의 정당으로 쇄신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번 대선이 표로써 보여준 국민의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대표는 아직도 국민당과 현대와의 관계단절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바로 이점을 우리는 중시하는 것이다.거듭 강조하거니와 국민당은 당장 현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정대표는 자신의 진실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회의하고 있다는사실을 뼈아프게 유념해야 한다.정화돼 가는 선거풍토에 김권이란 오물을 뿌린 장본인이 누군인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식언과 무책임이 정치관행으로 용인되는 것을 거부했다.국민당이 표방한 공당화는 정대표 개인의 신뢰회복과도 직결되는 문제임을 환기시키는 바이다. 국민당은 누구의 사당이어선 안된다.당운영방식도 1인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정대표가 매사를 일방적으로 좌지우지해서도 안되겠고,소속의원이나 당직자들이 당운영경비를 정대표의 주머니에만 의존해서도 안될 것이다. 국민당이 창당 1년도 안돼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는 풍부한 자금력이었다.게다가 이 돈은 정대표의 개인헌금으로 충당되는 것으로 알려져 다른 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한 정치자금이라는 착각마저 갖게 했었다.그러나 현대그룹 불법 비자금의 국민당 유입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는 국민당과 현대의 단절이 인적관계에서뿐 아니라 자금면에서도 국민당의 홀로서기를 뜻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정당은 당원이나 국민들이 헌금한 「티끌」같은돈을 모아서 운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작은 헌금은 많이 모일수록 소망을 키우지만 큰 헌금엔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가 달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정대표가 사재에서 출연키로 했다는 정치발전기금 2천억원보다도 국민당 당직자와 당원들 스스로의 자력경생노력을 더욱 중시하고자 한다.이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어 유감스럽다.국민당이 진정 「현대당」「정주영당」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공당이 되려면 당직자와 당원들이 당비를 내서 당운영비의 기초로 삼아 나가는 풍토를 적극적으로 조성해나가야 한다.그럴 뜻과 능력이 없다면 국민당의 공당화 작업은 무위에 그칠 것이다.
  • 들쭉날쭉 대입문제 난이도/정인학 사회2부기자(오늘의 눈)

    전기대학들의 합격자가 발표되면서 올 입시문제는 지난해보다 더 쉬웠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세칭 상위권 대학에서는 대입학력고사 기준으로 3백40점만점에 최고 10점가량,중위권 대학에서는 지원 경쟁률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점가까이 치솟고 있다. 출제 당국은 이미 올 새학기부터 입시 수험생들에게 올 입시도 지난해와 같은 수준에서 출제하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언해왔고 시험 당일에도 이같은 공언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예년 수준」이라던 출제당국의 공언은 공언이 됐고 예측은 빗나가 버렸다.여기서 우리는 커다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비단 대입시뿐만아니라 시험문제가 너무 쉬울 경우 성적의 우열을 가리는 변별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일단 덮어두자. 만일 시험출제당국이 애초부터 올 입시를 지난해에 비해 쉽게 출제할 요량이었다면 수험생을 비롯 전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요 역부족으로 지난해보다 더 쉽게 출제했다면 시험문제 난이도 조절능력에 한계를 안고 있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 까닭이 전자쪽이었다면 사회 흐름의 방향타격인 「예측 가능성」은 크게 흔들리게 돼 앞으로 수험 준비생은 교육당국의 공언을 결코 믿으려 하지않을 것이다. 또 후자쪽이었다면 앞으로의 대입시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대입시제도가 채택된다.통합교과적으로 출제된 시험문제로 시험을 두번 치러 수험생이 한번 시험에 실패하더라도 또한번의 수험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새대입제도의 골격이다. 그러나 두번 수험기회를 준다는 당초의 새대입제도 도입의 근본취지는 두차례의 시험문제의 난이도를 동일하게 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있다. 만일 난이도에 차이가 난다면 누구나 쉬웠던쪽의 시험에서 얻은 득점을 활용하려 할것이다.이렇게 되면 시험관리요원만도 10만명이나 동원되어야하는 한차례의 시험은 무용지물이되어 결국 인적·물적 낭비를 초래하는 결과가 될뿐이다. 올 전기대 입시의 난이도 조절의 실패 원인이 어느쪽이든 교육당국은 이번 기회를 뼈아픈 성찰과 함께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차분한 성탄전야/대부분 일찍 귀가… 가족과 함께

    성탄전야가 예년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지나갔다.24일 하오 대부분의 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성탄전야를 보내기위해 도심은 비교적 한산했다.쌀쌀한 날씨탓에 초저녁까지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던 백화점등 상가 주변도 하오9시가 넘어서면서 인파가 크게 줄어 평소보다 오히려 한가한 편이었다. 또 대부분의 유흥업소에도 밤늦게까지 젊은이들로 가득찼으나 영업제한시간인 자정무렵에는 모두 돌아가 조용한 모습을 되찾았다.이날 전국의 성당과 교회에는 초저녁부터 성탄미사와 예배를 드리려는 신도들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명동성당의 자정미사에서 김수환추기경은 『그리스도의 탄생은 화합과 일치와 평화를 의미한다』면서 『지금은 갈등과 반목의 어두운 굴레에서 벗어나 온세상에 생명의 빛이 가득하도록 온 인류가 깊은 자기성찰에 힘쓸 때』라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이에앞서 하오8시30분쯤 구로구 시흥3동 무의탁양로원인 「섭리의 집」을 방문해 노인 20여명과 함께 30여분간 미사를 집전,이들을 위로했다.한편 하오 11시25분쯤에는이날 특별가석방된 임수경양이 아버지 임판호씨 등과 함께 명동성당에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도착,자정미사에 참석했다.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승자에게 영광을,이제 모두 제자리로 가자(사설)

    앞으로 5년동안 이나라를 이끌어 나갈 제14대 대통령을 맞는 아침은 밝았다.뻗쳐나는 햇살이 광휘롭고 상서롭다. 이 우리의 새로운 영도자를 뽑기 위해 우리는 지난 한달 동안 산고를 치렀다.빠른 것도 같고 지루한 것 같기도 한 한달이었다.영하를 녹이는 열기가 온나라를 뒤덮은 한달이었다.한때의 예보와는 달리 투표일은 대체로 맑고 포근한 날씨였다.우리의 경사를 하늘도 축복해 주었다고 할 것이다. ○결과승복,축하하고 위로하고 지난 밤을 뜬눈으로 새운 것은 반드시 각선거진영만은 아니다.많은 국민이 텔레비전을 지켜보면서 표수가 움직일 때마다 일희일비했다.그만큼 이번 14대 대통령선거에의 관심은 높았다.승패가 갈린 이 시간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선거진영이 있는가 하면 패북의 고배를 들면서 지난 한달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는 선거진영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최선을 다해 싸운 모든 선거진영에 박수를 보낸다.혼탁이나 반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금품수수에 흑색선전등 과거 선거의 폐단이 우리를 암울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그리고 이런 불법·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응분의 사법조치가 취하여질 것으로 믿는다.그러나 세몰이 집회를 자제하고 지역감정 유발을 억제하는등 과거의 선거에 비해 크게 개선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선거였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겨룸이 됐든 겨룸에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이제 결과에 대해 승복하는 가운데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도미를 장식해야 할 차례이다.이와 같은 아름다운 정신의 축적이 곧 이나라의 민주발전에 이바지하는 길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6공의 공명의지 결실했다 이번 선거는 공명을 위한 제6공화국의 결연한 의지를 담은 국가적 행사였다.그것은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 탈당으로부터 시작되어 현승종중립내각의 출범으로써 구체화했다. 지나간 선거사에서 통폐로 지적되어 온 것이 김권의 난무 못지않은 관권의 개재였음은 우리 모두가 신물이 날 정도로 경험한 사실이다.이번 선거에서는 이 적폐를 차단함으로써 우리의 선거사에빛나는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것이다.선거기간 동안 더러 「관권 개재」운운하는 말이 나왔지만 그것이 설사 사실이었다 해도 상부로 부터의 지시에 의한 조직적인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이었음은 국민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 처음으로 관권이 어느 편에 손들어 주지 않는 선거를 치렀다.이는 한 단계 성숙한 민주발전을 뜻하는 것임에 다름이 아니다.물론 이 선례는 앞으로의 선거사에 연면하게 이어져 내려가야 한다.이번 선거에서 금권의 난무를 차단하지 못한 점은 우리 모두가 깊이 성찰할 과제로서 여전히 남는다고 하겠으나 폐단의 쌍벽이던 관권개입을 배제한 점은 한시대를 마감해가는 6공이 남긴 뚜렷한 발자취라고 할 것이다. ○「안정속의 개혁」 대열로의 동참 대통령 선거가 세상일의 모두인 것처럼 일부 선거진영이 설쳐댔던 것임을 우리는 기억한다.그러나 물론 선거는 우리들 삶속의 일부행사였을 뿐이다.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는 한달 전과 같은 우리들의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우리 모두가 흩어졌던 마음자리를 추스려 그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모두들 제자리에 다시 서자는 것이다. 우선 선거진영부터 그래야겠다.선거기간 동안 격앙된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강도높은 험담을 늘어놓고 흑색선전에도 앞장섰던 그 마음을 이제 원상으로 되앉혀 놓아야 한다.상대 진영도 선거운동하는 동안이 「적」이었지 당선자가 결정된 마당에까지 적일 수는 없다.이제 감정의 앙금들을 씻어내고 다 같은 「국민」으로 되돌아가 「안정속의 개혁」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놓았던 일손을 잡아야 한다. 일반 유권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선거기간 동안에는 지지하는 후보가 다름으로 해서 공연히 논쟁을 벌이다가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달아 버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렇게 맺혔던 마음들을 풀고 지난날의 정을 되찾아야겠다.비록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는 낙선했다 하더라도 과정에 참여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자세임을 되새기면서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야 할 것이다.선거기간 동안에는 벽보를 훼손하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이젠 깨끗이 지우는데 앞장서는 것도 본받을만한 선거후의 시민정신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치안력을 선거에 많이 빼앗겼던 것이 사실이다.특히 북한에서의 후보자들에 대한 가해 내지는 유세장이나 투개표장 폭력사태 유발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경찰력은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 같은 불상사 외에도 다른 폭력사태가 없었던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그들의 불철주야의 노고 때문이라 생각하면서 치하한다.이제 민생치안에 눈을 돌려야겠다.더구나 연말연시는 경계의 눈초리를 더욱 예리하게 번뜩여야 할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 나체쇼 벌이는 이 혼탁의 작태들(사설)

    국민당의 대천선거유세장에 나체 쇼가 등장했다는 보도엔 그저 어이가 없어 입부터 벌어진다.엄숙한 정견발표장을 퇴폐유흥장으로 전락시키다니,기가 찰 일이다.유권자를 모독하고 온 나라의 선거개혁운동에 충격을던진 이낯뜨거운작태에개탄과분노를금할길없다. 정당이 유세장에 청중을 모으기 위해 연예인이나 풍물패를 동원해 여흥행사를 갖는건 있을수 있고,법적으로도 허용돼 있다.요즘같이 날씨가 차가워 청중들이 모이지 않을 때일수록 주최측은 그런 식전행사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것이다.그러나 이런 행사는 어디까지나 도덕적 윤리적으로 건전한 것이어야 한다.국민당의 나체쇼처럼 국민정서와 사회규범을 해치는 퇴폐적인 프로그램이어서는 안된다. 유세장의 나체쇼가 청중들의 항의로 중단됐다는 사실은 주목할 일이다.한마디로 말해,유권자의 양식과 감시의 눈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그들은 올바른 분별력을 가졌기에 유세장의 나체쇼에 역겨움을 표시했고,또한 건전한 시민정신의 소유자였기에 급기야 연단으로 뛰어 올라가 쇼를 중단시킬수 있었다.대천 청중들에게 박수를 보낸다.우리 국민 모두가 그들만 같다면 이번에공명선거의 숙원을달성하는것은그리어려운일이아니다. 나체쇼 파동에 대해 국민당은 부대변인 이름으로 사과성명을 내는 한편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대천·보령지구당위원장이 자진 사임했다고 발표했다.그것만으론 안된다.당의 대표가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선거문화 혁신에 앞장설 것을 다짐해야 한다.지금 국민들은 국민당의 유권자 모독행위에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또한 국민당의 금권선거와 과열·타락 양상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우리는 국민당대통령후보로서의 정대표의 진솔한 사과와 다짐만이 국민들의 이러한 분노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본다. 관계당국의 선거사범단속상황을 정당별로 보면 국민당이 전체 단속건수(지난달 28일 현재 5백47건)의 절반이 넘는 2백75건으로 단연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국민당은 정부의 편파적 단속과 국민당 탄압의 결과라고 주장한다.뿐만아니라,이런 사태에 책임을 지고 국무총리가물러나야 한다는 정치공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이러한 강변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국민당은 성찰할줄 알아야 한다. 대천사건은 우연한 해프닝이라기보다는 극성스러운 국민당의 한 단면을 드러낸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운동으로 집권해봤자 거기엔 「범법」이라는 꼬리가 붙어 정권의 합법성이 문제가 된다.민주주의는 결과 못지 않게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국민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국민의식과 전통문화/이창갑 건양대총장(굄돌)

    현대인들 중에는 우리의 「옛것」이라면 그것을 무조건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것이라 단정하면서 이를 부정하려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그래서 그들은 우리 것을 배척하고 남의 것만을 신봉하면서 하루 속히 옛 잔재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옛것」이라하여 그것이 모두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것만은 결코 아니다.「옛것」은 옛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온 삶의 지혜인 동시에 현대인들이 이룩해야 할 새로운 문화의 바탕이기도 하다.특히 선인들이 창출한 전통문화는 선인들의 생활을 가장 편하고 행복하게 이끌어준 정신적 지주인 동시에 현대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초석이기도 하다.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문화란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하듯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얻어진 삶의 지혜요,방법이다.민족나름대로의 그러한 문화가 곧 전통문화이다.그러므로 전통문화에는 반드시 그 문화가 방생하게 된 원인과 배경이 있고 그것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오늘에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이 있는 것이다.원인없는 결과를 상상할 수 없듯이 원인없이 창조된 문화란 있을 수 없고 까닭없이 이어져 내려온 문화 또한 상상할 수 없다.다만 우리들의 학문이 그 문화가 발전하게 된 배경과 이어져 내려오게 된 원인을 미처 다 밝혀내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그래서 옛 것이 모두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하며 심하면 미신처럼 비춰지고 있다 하겠다.좀더 깊이 성찰하고 구명하면 전통문화 속에는 현대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오묘한 진리와 슬기가 담겨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문화를 부정하고 무조건 서구의 문화만을 추구하려는 것이 적지않은 현대인들의 공통된 심성이다.여기서 가치관의 혼미,주체성의 상실이 초래된다. 이러한 혼미와 상실은 결국 사회의 혼미,전통문화의 상실을 초래하였다.그 결과 신문의 사회면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회질서의 파괴,윤리의 붕괴상을 전달하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이러한 상황은 이제 거의 위험수위에 다다른 느낌마저 든다. ▷필진이 바뀝니다◁ 12월∼93년1월의 필진이 김상복(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 이창갑(건양대총장) 정복근(극작가) 최갑석(재향군인회 중앙이사) 최완수씨(간송미술관 연구실장)로 바뀝니다. 10∼11월에 집필해주신 김금지,김영수,김희수,차정미씨께 감사 드립니다.
  • 금권과 탈법 고발하고 처벌해야(사설)

    한강상공에 공명선거를 촉구하는 비행선이 떠서 이채롭다.선거전은 중반으로 접어든다.정부와 선관위는 끊임없이 공명선거를 이룩해 내자고 호소한다.정부는 사상 가장 공명한 선거를 치름으로써 그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 나가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에 차 있다. 그에 따라 각당에서도 거푸 공명하게 선거전에 임할 것을 다짐했고 또 실제로 이때까지의 양상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른바 세몰이 대형 군중집회를 삼가고 있는 것도 그중의 한 예이다.곧바로 표로 연결되는 것도 아닌 그같은 과시욕은 낭비의 측면 못지않게 지역감정을 내장한채 필요이상의 열기를 부채질했음이 사실이었다.삼가고 있는것은그에대한성찰의결과인듯이보인다. 그렇기는 하지만 40여년 선거사의 적폐가 하루아침에 말끔히 스러진다 할 수는 없다.이번 선거의 양상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옛그림자를 아주 지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금품수수가 있고 선심관광이 있으며 흑색 모략선전에 유언비어가 난무한다.폭력사태도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도 들린다. 금품이 난무하는 선거의 혼탁상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만 또한 무엇보다 두려운 것이 실현 불가능으로만 보이는 공약의 남발이다.그런 유형의 공약을 듣고 있노라면 이번 대선으로써 우리는 금방 지상낙원을 이루게 될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표만을 의식한 나머지 공약으로 끝날 것이 뻔한 공수표 떼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혜안으로써 가려내야 한다.어느 진영이 어떻게 움직이고 무슨 말을 하며 공명선거의 의지에 부합되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가,않는가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감언이나 자그만 이익에 현혹될 일이 아니다.금품의 난무와 온갖 탈법의 사례들은 보는대로 경고하고 고발하는 주권의식을 보여야 한다.그에 대한 처벌은 사직당국이 할 일이다.이제 유권자의 진실로 무서운 면을 정치인들에게 보여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공명선거를 이룩해 내느냐,못하느냐는 결국 유권자에 달려 있다.타락선거를 본원적으로 봉쇄하는 길 또한 유권자가 냉엄한 표로써 보여주는 방법외에 달리 없다.금품도,교언도,흑색선전도,지역감정 부추김도 소용없는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정당한 선거전의 진영에 승리를 안겨줘야 한다.
  • “체계적 청소년환경교육 시급”/「청소년단체협」 오늘 환경심포지엄

    ◎“기존 학교교육 단편·일시적 효과 못거둬/교수·학습자료개발 활동중심 수업필요 자원개발 공업화 등으로 우리 주위에 환경파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조기환경교육 특히 청소년에 대한 환경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회장 김문희)는 12일 하오1시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청소년과 환경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고 효과적인 청소년 환경교육방안을 모색한다.「새로운 세계의 가치관으로서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될 이번 심포지엄은 환경교육이 교육대상의 가치관의 전환을 요구하는 진지하고 심각한 과제임을 알림과 함께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환경교육을 한차원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심포지엄 참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에 대한 학교환경교육은 ▲교육단계별 환경교육 내용체계의 미비 ▲환경교육에 대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인식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 배제 ▲행정체계 교원 학습자료에 대한 지원 미흡 등으로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또 쓰레기줍기및 버리지않기,합성세제 안쓰기등 환경보전을 위한 이제까지의 청소년활동도 표면적이고 일시적이어서 제한적 효과밖에 못얻는 실태. 「청소년 환경교육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표하는 교육부 사회과학편수관실 김용만 연구관은 미리 제출한 자료를 통해 『학교환경교육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며 95년부터 시행될 제6차 교육과정에서 독립신설되는 「환경」「환경과학」등 환경교과목에 맞춰 교사양성체제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교수·학습자료의 개발보급을 늘리고 학생들의 능동적·적극적 참여를 유도할수 있는 활동중심의 수업방법이 활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환경 사회교육」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정유성 연세대교수는 『환경교육이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산업주의,과학기술지상주의에 기초해 많은 폐해를 가져왔던 이제까지의 교육자체에 대한 비판적성찰과 극복의 노력을 포함해야 한다』며 『환경교육은 기존의 교육에 덧붙여지는 교육이 아니라 바탕에서 형식과 내용에 이르기까지 전혀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환경교육의 실천을 통해 전인적인 교육을 실현하고 자연과의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할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야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청소년 환경운동의 위치와 과제」에 대해 발표하는 한국청소년연구원 황창순박사는 지난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실천과제들을 소개하고 93년까지 환경과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 남녀청소년을 포함시킬것 등을 권고한 실천과제 21의 청소년 관련부분이 앞으로의 청소년환경운동을 구상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들의 주제발표내용을 토대로 토론을 갖고 5개항의 청소년환경서약을 채택할 예정이다.
  • 「휴거 불발」이 교계에 남긴 교훈/정진홍(특별기고)

    ◎종교적 이기주의 벗고 자성계기로/경직된 신앙추구가 맹종·비상식 초래 이른바 휴거의 시한이 지났다.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우려하던 현상들도 나타나지 않았다.다행한 일이다. 물론 이 사건의 여진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다.특히 휴거의 일어나지 않음을 신비스러운 유예로 설명하든,자신들의 잘못된 예견으로 설명하든,준비되지 못했음에 대한 신의 또 한번의 은총으로 설명하든 그 집단 구성원이 경험했을 허탈과 절망,그리고 그 안에 잠재했을지도 모르는 분노의 정서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그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그들의 찢긴긴 가슴을 위로해주는 일이 그들의 가족·친구·이웃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새로운 책무가 되고 있다. 사회도 이제는 이 현상 때문에 일었던 긴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그 집단에 대한 질책과 정죄,호기심과 이상스러운 기대를 지니고 혼란스럽게 대응하던 분위기도 차츰 가라앉을 것이고,어쩌면 곧 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개개인의 미성숙,사회의 불안,그리고 종교의병리현상에 대한 성찰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극히 당연한,그러나 이 시점에서 더할 수 없이 새삼스러운 과제에 봉착하고 있음을 단단히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이 사건의 발생원인에 대한 많은 진단들이 유의미한 것들이었다면 이제 그 진단에 대한 처방을 신중하게,그리고 구체적으로 펴야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 진단들 중에서 개개인의 인성과 관련지어 이 사태를 설명하려는 것은 그것이 집단적인 현상과 아울러 생긴 것임을 간과하는 위험이 있고,사회불안이 원인이라는 원론적인 진단은 책임주체를 모호하게 하는 알리바이 조작의 위험이 있다.그렇기 때문에 차제에 우리가 구체적으로,그리고 현실적으로 관심갖고자 하는 것은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자성과 새로운 자기개혁의 기대이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몇가지를 들어 그 기대 내용의 일부를 담아보고자 한다. 우선 신앙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그 가르침 속에 담겨있는 반지성적 분위기를 지적할 수 있다.신비나 초월로 개념화될 수 있는 종교다움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순수한 또는 돈독한 신앙의 강조가 맹목성이나 편집증적인 태도를 부추기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을 언급하려는 것이다.양태의 차이는 있지만 그러한 경향성은 기독교의 보수,진보 어느 진영에서도 감지될 수 있는 현상이다.아니,도대체 종교란 늘 그럴 수 있는 위험을 자체 안에 지니고 있음을 자의식으로 지니고 있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다음으로 교회지상주의적인 태도의 심각성을 지적할 수 있다.물론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구분하는 신학의 주장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현실적으로 오늘 우리 사회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교회생활로 등식화되고 있고,신에게 봉헌한다고 하는 것은 그대로 교회를 위한 봉헌과 등가화 하고 있다.이것은 신도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생활규범일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 신과 교회의 우선순위를 도치시킨다든지 교회자체의 창조적 혁신을 불가능하게 하는 억압기제가 된다면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이밖에도 사랑이라든가 희생이라든가 하는 실천적 덕목이 자기집단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집단이기주의적인덕목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교회간의 경쟁,정통과 이단의 논의,타종교간의 갈등,자기집단의 이해와 관련된 사회문제에의 선택적 반응등은 그러한 문제가 빚는 우려할 만한 조짐들이다. 무릇 종교는 문제정황에서 비롯하는 것이다.그리고 해답의 상징체계로 사회와 문화 안에 현존한다.그러므로 종교는 의미의 원천으로,희망의 출구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종교도 예외없이 살을 에는 자기아픔을 견지하지 않으면 안된다.끊임없이 자신을 참회할 수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기독교는 그럴 수 있어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보여준 교회의 태도 곧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차별화 의도나 인색한 자기성찰이 불식되면서 이른바 휴거이후가 한국기독교의 새로운 태어남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겨울문턱,마음의 깃을 여미자(사설)

    낙엽이 뒹구는가 싶더니 하루이틀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지고 초겨울이 발아래 다가왔다.불과 얼마전까지도 낮동안의 볕이 머리를 벗길듯 했는데 산간에 눈도 뿌렸다는 소식이다.절기의 어김없음에 새삼 옷깃이 여며진다. 이렇게 바뀌는 계절에는 마음이 먼저 스산해진다.다가오는 추위와 겨우살이 준비에 마음이 먼저 을씨년해지는 것이다.못먹고 헐벗던 시절에 비하면 이제는 겨울이 그렇게 두렵고 무섭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비는 해야한다.물리적 대비도 대비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황량함을 다스리는 일이다. 국가원수가 외국을 방문했을 때 위해를 가하려던 북의 음모가 불거져 나오고,정당하게 협상테이블에 마주하여 대화로 문제해결을 꾀했어야 할 노사가 뇌물거래를 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그 때문에「시민의 발묶기」 파업을 간신히 모면한 택시가 또 다시 술렁이고 있다.집단마다 해묵었거나 새로운 갈등때문에 눈만 뜨면 지옥처럼 처절하다.민생이 어떻게 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때여서 겨울이 더 걱정스럽다. 특히 우리를 을씨년스럽게 하는 것은 아들이 아비를 쏘아 강물에 던지면서 아비의 주검이 강위로 떠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자루안에 벽돌을 『넉장씩이나』넣었다는 이야기다.그 손으로 아버지가 남긴 통장에서 아비를 청부살인하게 교사했던 악당들의 입막음 돈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는 날씨보다 훨씬 무서운 추위로 우리를 엄습한다. 부모를 벤 손으로,그 죄깊은 손으로 행복한 인생을 일굴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우리에게 정말로 무서운 일은 사람들에게 깃들어가고 있는 이 무도한 품성이다.맑고 바르고 따뜻한 품성을 잃지 않아야 이 미친듯이 잘못되어가는 성정에서 자신을 지킬 수가 있을 것이다. 「소중한 내 자식」이 그렇게 그르친 인생으로 살게 되는 일처럼 부모를 불행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자식이 악몽으로 가득한 인생을 산다면 부모의 인생도 실패한 것이 되고 만다.돈으로 지킨 어떤 삶도 그 실패를 메워주지는 못한다.수십억의 재산을 지니고도 주차관리나 파출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미덕일 수 있지만 돈을 뺏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아들을 둔 죄는 누구도 사면할 수가 없다. 절기가 이렇게 바뀌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철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변을 돌아보고 가족구성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들을 위해 무엇을 챙겨둬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일이 더 급하다.사기꾼과 정상배와 사이비종교와 온갖 범죄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정신을 파괴하고 있는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그것을 물리치고 정화하는 노력을 이런 계절에는 특히 기울여야 한다.이 계절의 기능은 눈이 맑아지고 생각이 밝아지는데 있다.좋은 부모로,좋은 자식으로,좋은 시민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반성의 아침이 거듭되면 실패도 최소화하고 죄짓는 불행도 예방하고 혼돈과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헤어나올 수도 있다.싸늘한 기운이 대기를 채우는 초겨울의 일요일 아침은 깊은 자기성찰로 심신의 겨울을 예비하기에 알맞은 아침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 전환기의 경찰 새 모습 기대한다(사설)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경찰의 존재의미와 역할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정의실현의 기반을 유지하는데서 찾아질 수 있다.우리 경찰도 그러하다. 오늘이 경찰의 날이다.경찰청의 독립등 경찰 위상의 강화를 위한 노력이 차츰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에서 민주경찰이 창설 47돌을 맞게 된 것이다. 광복의 해에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격동과 시련속에서 우리경찰이 국기를 다지고 사회안녕·질서를 유지하는데 기여한 공로는 지대하다 할 것이다.그때그때 적지않은 영욕도 겪었다.이날을 맞아 특진과 포상을 안은 경찰관이 영광과 박수를 안는 한 측면의 모습이라면 「경찰관 제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어느 누구 다른 한 경찰관의 말에서는 어두운 쪽의 한 모습을 엿보게도 된다. 그러나 경찰은 한마디로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다.국민이 의지해야 할 「지팡이」이기도 하다.그래서 우리는 늘 그들의 헌신적인 봉사에 감사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크게 갖고 있다.특히 오늘날과 같은 변화의 시기에는 우리가 경찰에갖는 기대치는 높아가면 높아갔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그런 측면에서도 경찰의 창설일이 단순한 자축의 날이 되기보다는 지난날을 정리하고 반성함으로써 앞으로 더 큰 발전의 계기가 되는 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경찰에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적 상황을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과감히 개선하는 계기로 인식해야겠다는 점이다.경찰은 엊그제 대선등 정치적 과정에서의 엄정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전 경찰이 경찰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며 공정한 감시자가 되고 엄중한 법집행자가 되겠다는 이 결의는 모든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을 받기에 충분했다.그것이 바로 법질서를 수호하는 국가기관으로서의 경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표명이었기 때문이다.그것은 이제 더이상 국민으로부터 외면되고 기피되는 경찰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스스로의 성찰과 다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시대상황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투철한 현실인식이기도 할 것이다. 다음으로 경찰은 무엇보다도 본연의 업무인 수사와 대민행정에서 잘못된 관행들을 개선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에도 항상 주목해야 한다.「범죄와의 전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범죄의 예방과 신속한 해결,인권이 최대로 존중되는 수사관행의 확립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과거 많은 물의를 빚었던 사건,좌고우면하며 흔들렸던 사건처리 등을 떨쳐버리고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자세와 노력으로 국민앞에 다가서야 한다는 것이다. 제한된 인원과 장비와 예산으로써 갈수록 늘어나는 반사회적 범죄와 각종 비리에 효과적으로 대처해나가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그렇지만 국민들은 거의 「모든 것」을 경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경찰의 막중한 사회적 비중과 우리생활과의 직결성으로 해서 그러한 것이다. 앞으로 대선을 앞두고 치안의 수요는 더욱 늘어나게 되고 그 틈을 이용한 다른 범죄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예상되고 있다.경찰은 이에 대비해 사회정의실현과 법질서 확립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국민의 일반적의식으로는 경찰하면민생치안일수밖에없다.경찰은 여기에 모든것을 걸어야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경찰은 우리를 지키는 출발점이고 종착점임을 부정할 수 없다.또한 어떠한 경우든 그래도 국민이 믿고 의지하는 것은 경찰력 뿐이라는 자각과 긍지를 갖는다면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 전환기 경찰의 새 모습은 보여지리라 믿는 것이다.
  • 약물중독된 노래는 듣기 싫다(사설)

    또 연예인들이 대마초흡연을 하다가 적발되었다.마약이나 대마초를 단속만 하면 연예인들이 무더기로 걸려드는 일에 우리는 환멸을 느낀다.몽롱한 눈으로 취한듯이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무대를 향해 열광하는 10대들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그들은 영웅이 없는 시대에 연예인을 우상으로 삼아 청소년기의 한때를 환호하며 보내는 우리의 자녀들이다. 연예인 생활이 스트레스가 심하고 약물로라도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야 절정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연예활동의 속성이라는 이론이 있다는 것은 안다.그러나 그렇지 않고도 좋은 연예활동을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그래야만 재능이 나온다는 것도 「설」일뿐이다.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해악이 사회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면 해서는 안된다. 약물중독이 본인의 인생을 멸망시키고 마침내는 폐인이 되어 쓰레기같은 종말을 만든다는 사실은 새삼스레 더 말할 것도 없다.자신의 잘못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은 업보이므로 어쩔수 없다 치고 문제는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다.특히어린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엄중하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오늘날 청소년에게 집단으로 영향을 미치는 세력중에서 대중예술만큼 지대한 것이 또 있는가.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으로 인기를 얻고 영화를 누리고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 연예인들이라면 그들에게는 그들의 소중한 수요자인 청소년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특히 우리의 청소년처럼 정제된 고급문화의 기회에 접할 기회는 부족하면서 분별없이 외래의 저질문화에만 한없이 노출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그 영향과 해악이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노래방이 전 세대의 오락으로 공개되어 있고 눈만 뜨면 TV가 갖가지역할로 가수를 동원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가수도 단순한 가수로 끝나지 않는다. 최근에만 해도 뉴키즈소동이 사회의 지축을 흔들듯 했었다.감성을 이성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미숙한 그들에게는 우상에 몰입하는 정도가 전인격적이다.하는 짓마다 닮고 싶어하므로 좋아하는 연예인이 약물복용을 한다면 그것이 독약이라도 따라 할 지경이다.그러므로 잊을만하면 약물소동을 빚는 연예인들을 우리는 용서하기 힘들다. 그런 뜻에서는 사회가 너무 만만하게 대처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우리에게는 든다.그런 근거로는 약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별로 오래지 않아서 멀쩡한 모양새로 브라운관에 복귀하고 연예활동에 별로 지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약물중독이 인생을 멸망시키는 것은,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런 이치로 보면 중독혐의가 무고가 아닌 이상 계속 중독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는데도 금방 방송으로 되돌아오곤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그런 일이 반복되면 약물사용에 대한 청소년의 죄의식을 점점 약화시키고 불감증을 증폭시키게 된다.약물에 취해서 부르는 노래는 듣기도 싫고 아이들에게 듣게 하기도 싫다.그런 혐의가 남아있는 연예인들이 슬며시 안방으로 스며드는 일에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이런 정서에 관계인들의 성찰이 있기를 빈다.
  • 사랑·화해의 신앙이어야한다(사설)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는 정말 슬프다.『가정을 돌보지 않을 만큼』종교에 빠져버린 아내를 증오하는 남편이 교회에 불을 질러 열네명이나 되는 생목숨을 불태우고 숱한 부상자를 냈다.자기 죄에 자신도 놀라 회한에 찬 「범인」과 그 아내의 「종교」가 지은 허물에 모골이 송연해진다.「착한 주부」였던 아내가 가정도 가족도 팽개치고 이런 결과를 초래하도록 섬기기를 요구하는 하느님이,우리 모두 알고 있고 또 많은 인간이 사랑하며 구원을 바라는 하느님과 바로 같은 하느님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내의 신앙생활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이런 끔찍한 짓을 한 남편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그러나 이 사건은,오늘의 우리 종교계가 예감시키던 어떤 불길을 적중시킨 것 같아 우리를 더욱 우울하고 불행하게 한다.맹목적이고 광신적으로 팽창해가는 교세들과 그 확장을 위해 물불 가리지않는 선교방법,종교간의 비방과 경쟁으로 벌어지는 분란,상업화로 치닫고 집단이기주의로 경직돼가는 파당성들이,사려있는 사람들에게 종교혐오증까지 유발해 왔다.종말론이라는 해괴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증세까지 만연시켜 공권력까지 동원시키고 있다.그런 가운데서 벌어진 이 방화살인은,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집대성처럼 생각된다. 무릇 종교란 사랑과 화해가 본체다.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효를 알며 자애로써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제대로 된 종교의 가르침이다.그런 본체를 왜곡시켜 극단적이고 편파적이며 자의적인 방법으로 미망에 빠지게 하여 그 본래의 의미를 무너뜨리는 종교들이 횡행하더니 그것이 불행의 씨가 되었다.이 비종교적인 결과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우리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묻는다. 한 가족구성원이 종교를 갖는 일로 가정에 적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부부가 종교를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종교가 도덕적 신뢰를 갖게하는 정도의 기여는 반드시 할 수 있어야 옳다.종교에 의해 진선미의 변화를 실증하지 못하는 신앙은 의미가 없다.남편으로 하여금 증오에 불타 돌이킬 수 없는 죄의 늪에 빠지게 한,그런 변화밖에 부르지 못했다면 그 종교지도자는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모든 종교의 성직자들은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이 신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늘 성찰해야 한다. 타락하고 이기적인 심성이 종교에까지 침투하여 전문 사기꾼보다 더한 방법으로 신앙을 악용하는 오늘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종교생활을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해 사려깊어야 한다.당치도 않은 개인 기복으로 환상을 조장하고 혹세무민을 일삼는 종교와 광신이 들끓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 중요한 일은 어떤 종교의 이름으로도 국가와 사회와 가정이 부정되는 극단적인 신앙은 수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그런 종교가 부를 수 있는 비극에 대해서는,종교자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미구에 다가온다.그것을 다 함께 성찰할 계기가 지금이라고도 생각한다.이미 죄지은 이를 단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같은 악운이 거듭되지 않도록 모든 성직자와 신도는 바로 지금부터라도 노력해 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 「한국주거사」 펴낸 홍형옥교수(인터뷰)

    ◎“주거문화의 변화과정 학문적으로 접근” 『이 책 저술의 주안점은 주거문화의 형성과 변용에 따른 「가족」을 시대적 상황과 제약에 적응하고 대처해 나가는 주거현상의 주체로서 이해하고자 한데 있습니다』 경희대 홍형옥교수가 펴낸 「한국주거사」는 원시주거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의 주거사를 고고학적,역사적,민속학적,사상적측면에서 두루 고찰한 역저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건축사」는있었지만 「주거사」는 없었습니다.독자들에겐 주거사라는 용어자체가 생소하죠,하지만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그 집에 사람이 지배받는다」는 윈스턴 처칠경의 말이 있지 않습니까?그래서 우리 주거문화에 대한 올바른 성찰을 위해 이 학문에 손을 댔습니다.주거사는 전통의 발전적계승과 후손에게 물려줄 바른 전통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생각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규범」과 주거현상주체로서의 「가족규범」이 융합되어 나타나는 「주거규범」을 다루었다.그러면서 이땅의 주거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어 나왔는지를 각종 자료와 도면을 곁들여 정밀하게 추적하고 있다.특히 우리가 전통주거형태로 알고 있는 「한옥」이 시대적,계층적,기후적 여건과 거주자의 의식에 따라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언제 비로소 확립되었는지도 밝혔다.이에따라 우리의 온돌문화는 적어도 조선중기이후에야 오늘 전해지는대로 완형을갖췄음도 지적하고 있다. 최교수는 『애초 1980년대까지의 주거사를 다룰 예정이었으나 출판상의 문제로 1945년까지 제한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이후의 부분은 10년쯤 지나 다시 정리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 하창수 장편 「젊은 날은 없다」(이작가 이작품)

    ◎집단논리와 억압받는 자아 묘사/군대체험 소재로 한 옴니버스 셋째작/반전인물의 군생활 동화과정을 그려 작가 하창수씨(32)가 장편소설 「젊은 날은 없다」를 계간 「작가세계」에 2회에 걸쳐 발표했다. 장편소설 「젊은 날은 없다」는 작가의 군대체험을 바탕으로 한 옴니버스소설의 또 하나의 성과로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그러면서도 소설의 주제와 기법상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등 이전의 소설들과는 일정한 변별점을 지녀 눈길을 끈다.그것은 바로 반전소설 또는 종교소설로서의 「젊은 날은 없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이 작품은 전개상 종교소설적 형식을 취하는 한편 작품전체 의미상으로는 반전소설로 귀결된다.그렇다고 이 소설이 이전의 소설과 확연히 다른 형태로 씌어진 것은 아닌 만큼 소재의 협소함에 저항하는 작가 나름의 노력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같은 입장에서 작가 하씨는 『군대체험으로 한정된 일련의 소설들을 집필하면서 독자에게 줄지도 모를 식상함을 피했다』고 말한다.이와함께 『각 작품의 독자적 완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설기법이나 문체 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제까지도 변화를 주고싶다』고 밝혔다.따라서 장편 「젊은 날은 없다」는 앞으로 다양하게 변주돼 나올 하씨의 군대체험 소설의 한 형태를 모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장편소설 「젊은 날은 없다」는 기독교 이단종파 「여호와의 증인」신자인 청년 강민후의 군대체험을 다룬 작품이다.「여호와의 증인」은 살인을 금하고 전쟁수행 주체인 국가를 부정하기 때문에 그 신자는 군입소와 함께 집총거부와 국기에 대한 경의 표시거부 등을 사유로 군법재판에서 2년 가량의 형을 선고받는다.이같이 예비된 엄청난 고난과 이에 따른 심적인 갈등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임을 포기하고 군대생활을 해나가던 주인공 강민후가 결국에는 애궂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사건전개 속엔 핍박받는다는 것과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가와 같은 실존적 물음을 바탕에 깔고 전쟁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군인이 된다는 의미의 근본적인 성찰이 담겨있다.그리고 획일화된 논리 때문에 본의아니게 젊음이 희생되는 현실에 대한 집요한 추궁이 이뤄지고 있다. 작가는 작중인물의 입을 통해 사람들이 전쟁을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는 수단으로 당연시 받아들이며 분단상황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대의 존재의의가 침해받지 않음을 질타한다.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거의 선험적으로 자리잡은 이같은 고정관념에 의해 「여호와의 증인」쯤 어떤 고통을 당하든 대부분 눈 한번 깜짝 않는다는 것이 질타의 이유이다.「여호와의 증인」은 구체적인 사례의 하나일 뿐이라는 작가는 「여호와의 증인」자리에 대입될 수도 있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한 집단의 획일화된 논거에 의해 거부될 때의 고통을 상정해보라고 권한다.그 개인이 억압적 집단논리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작중의 오일병이나 윤이병처럼 자신의 목숨을 끊거나 자해하는 일 뿐이라고 작가는 경고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젊음」이란 단어 속에는 희생제의적인 요소를 깃들이고 있으며 군대라는 조직은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축소판사회」라는게 작가의 뜻이다.이런 맥락에서 볼때 제목처럼 아예 「젊은날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작중화자가 결말부분에 제시하는 「반전」이란 대안은 현실화되기엔 요원한 것이며 오히려 자유의지를 상실한 허무주의적 색채를 짙게 드리운 파국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현재의 모습이다.때문에 장편소설 「젊은날은 없다」는 군대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의 음울한 초상화로 읽혀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하씨는 군대체험을 실존적 차원에서 그려낸 장편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91년도 한국일보창작문학상을 받은 주목받는 신예작가.
  • 신앙이 주는 힘/노영희 시인(굄돌)

    벌써 성당에 나간지가 23년이나 되었다.뒤돌아보면 엉터리 신자가 아니었나 싶다.처음엔 기도할줄을 몰라 어린아이처럼 맨날 조르기만 했다.그러다가 주지 않으면 원망도 했다.욕도 했다.때로는 너무 힘이 들때에 기도에 대한 답이 없으면 하느님을 버리기도 했다.판단도 하고 의심도 하고 쪼개기도 하고 내맘대로였다. 얼마나 미숙한 신앙생활을 했는가.알고보니 신앙이란 그런게 아니었다.두가지 차원을 살아야 했다.하나는 하느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요 다른 차원은 하느님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둘다 생활속에,인격속에 담아내려면 보통으로 노력해서는 표도 안났다.날마다 매 순간마다 성찰하고 또 성찰해야만 했다. 하느님의 성품을 닮으려면 착함과 어짐,인내,용기,겸손,담대함,온유함…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덕목을 배워나가야 하니까 쉽지않은 일이었다.요즘은 한꺼번에 다 익히기가 어려워 시기를 정해놓고 특별히 그 덕목을 몸에 지니려고 해본다.그러자니 자연히 기도도 『주님! 제게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요』라고 바치게 된다. 그보다도 어쩌면 더 힘든 일은 하느님의 사상을 실천하는 길이다.정의와 사랑을 현실속에 실현한다는 것은 자기부정을 통해 꼭 행동으로 해야되기 때문에 더더욱 정성이 들어가야 된다.얼렁뚱땅 받아들이거나 지나갈 일이 아니다.매순간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싶다. 신앙을 잘못 받아들여서 여기저기서 탈이 많이 나는 것 같다.상당히 걱정도 되고 사회분위기를 흐려놓고 있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신앙생활을 하려면 철저하게 자기를 뒤돌아 봐야만 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자각해야만 한다. 하느님의 성품을 닮고 그분의 사상을 실천하는 길은 오히려 고통의 길이다.때로는 피해가고 싶은 연약한 마음도 생긴다.그렇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자기 빛깔과 소리를 내고 살아가려면 헌신과 애정이 필요하다.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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