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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월드뮤직(서남준 지음,대원사 펴냄)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부른 ‘엘 콘도르 파사’,잔잔한 선율과 삶을 성찰하는 가사로 유명한 이 노래는 에스파냐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잉카제국의 재건을 꿈꾸었던 마지막 잉카 황제 투팍 아마루를 기리는 노래다.지금도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투팍 아마루의 영혼이 한마리의 콘도르가 돼 안데스의 창공을 날며 잉카의 후예들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팝송,칼립소,보사노바 등 세계음악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뤘다.1만 7000원. ●벨기에 이야기(이성기 지음,학민사 펴냄) ‘유럽의 눈’‘유럽의 심장’으로 불리는 벨기에의 문화체험기.벨기에는 네덜란드식 발음이고 영어론 벨지움,프랑스어로는 벨지크라 한다.면적은 3만㎡ 남짓으로 경상남북도 정도밖에 되지 않는,인구 1000만의 작은 나라다.로마시대 이래 외세의 압제에 시달리면서도 그들만의 독특한 플레미시 예술을 꽃피웠고,중세부터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온 유럽의 소강국 벨기에의 저력을 들여다 본다.9000원. ●유대인(정성호 지음,살림 펴냄) ‘디아스포라’란 그리스어로 ‘이산’‘흩어진다’는 뜻으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떠나 이교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것을 가리킨다.기원전 7세기에 바빌로니아인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19세기 게토에서 해방되기까지 유대인들은 몇몇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세계 곳곳에서 고립돼 살았다.어떻게 해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에워싼 다른 민족에 동화되거나 흡수되지 않고 견딜 수 있었을까.저자(강원대 교수)는 그 힘은 바로 유대인들의 종교적 법전인 ‘탈무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3300원. ●질문의 힘(사이토 다카시 지음,남소영 옮김,루비박스 펴냄) “제대로 된 질문이 상대를 움직인다.처음 만난 사람과도 3분 만에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저자(메이지대 교수)는 질문에도 잘못된 질문과 제대로 된 질문이 있다며,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원칙과 테크닉을 제시한다.무라카미 류,무라카미 하루키,스티븐 스필버그,무하마드 알리 등 ‘대화의 달인’에게 듣는 대화의 기술과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법을 소개한다.8700원.
  • 책꽂이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조용호 지음,마음산택 펴냄) ‘중남미·아프리카 문학기행’이란 부제가 말하듯 세계일보 기자인 저자가 2년 동안 중남미 5개국 8개 지역,아프리카 3개국 10개지역을 직접 답사,주민들의 삶을 문학이란 거울로 그렸다.그의 발품은 단편적·피상적이던 이곳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넓혀준다.1만 2000원. ●마르틴과 한나(카트린 클레망 지음,정혜용 옮김,문학동네 펴냄) 독일의 대표적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그의 제자이면서 독일의 유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사랑을 소재로 한 소설.17살 터울의 스승과 제자,나치 부역자와 유태인 등 여러 이질적 요소를 딛고 사랑을 꽃피운 사연을 하이데거의 부인 알프레데와 한나의 시선을 통해 그렸다.9500원. ●은빛 물고기(고형렬 지음,바다출판사 펴냄) 중견 시인인 저자가 연어이야기를 소재로 쓴 산문집.강원도 남대천에서 부화한 치어의 일생을 10년 동안 추적하면서 과학적 지식의 전달에 멈추지 않고 존재론적 질문과 철학적 명상 등을 시인 특유의 감성으로 빚었다.8000원.●몸과 몸짓 문화의 리얼리티(성광수·조광제·류분순 외 지음,소명출판 펴냄)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새로운 해석 이후 몸에 대한 담론이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왔다.그러나 정작 비판적인 분석의 글은 드물다.관련 분야를 연구해온 13명의 연구자들은 몸과 몸짓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그 의미를 밝힌다.1만 8000원. ●육체,비평의 주사위(최성실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계간 ‘문학과 사회’편집위원인 저자의 첫 평론집.90년대 문학에서 ‘육체적 상상력’이 태동한 의식적 무의식적 토대를 점검한다.이인성·배수아·백민석·오수연·오정희 등의 작품을 대상으로 그 발현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1만원. ●와이키키 브라더스(구자형 지음,안그라픽스 펴냄) 대중음악 평론가·방송작가·시인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해온 지은이의 록 소설.주인공 ‘최기타’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 이야기를 통해 예술혼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작가는 “궁핍 속에서 최고의 연주를 추구하는 이 땅의 언더그라운드 연주자들을 위해 작품을 썼다.”고 밝힌다.9500원.●미 투(김영두 지음,한국소설가협회 펴냄) 88년 등단한 작가의 소설집.소설가인 여자주인공이 연하의 남자 팬과 나누는 사랑의 감정을 깔끔하게 묘사한 표제작 등 12편의 단편을 수록했다.8000원.
  • [열린세상] “더이상 죽이지 말라”

    예외 없이 ‘수능 자살’ 보도가 있던 날,서울 대학로에 플래카드가 나붙었다.“더는 죽이지 말라!” 시험지옥을 강요하는 우리 교육 제도에 대한 10대들의 처절한 항변이다. 정말이다.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런 교육 현실에 책임이 있는 국가는 언제까지 속수무책,수수방관인가. 똑같은 구호가 전국 노동자대회 단상에 내걸렸다.“더 이상 죽이지 말라!” 이건 지난 일요일 일이다.‘손배-가압류’의 압박,비정규직 차별의 고통을 분신으로,혹은 몸을 매달아 표현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비명이다.저녁녘 종로 바닥은 불바다,격렬한 전쟁터가 되었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제도와 질서에 대한 항거가 자살,혹은 화염병으로 표출됐기 때문만은 아니다.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합리적인,이른바 민주적인 생각과 절차에 따라 방법이 모색되고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책임 있는 이들이 먼저 무책임하고,그에 앞서 더 위험한 무기력에 압도돼 있다는 인상이다.10대 소녀들이,또 가장인 노동자들이 잇달아 스스로의목숨을 던지는 사태에 정부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외면해도 좋은 소수자 또는 낙오자의 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닌지 치열한 성찰이 필요하다.약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다면,강자들의 눈치 보기에만 바쁘다면,그런 통치자는 세상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기업의 불법자금 100억원이 정당에 전달됐다.정당의 무슨 위원장실은 현찰을 쌓아두는 돈 보관소였다고 한다.언론들은 상상 그림을 보여준다. 강남의 어느 빌라에선 아버지의 회사에서 아들이 훔쳐낸 70억원이 빈 방 가득 발견됐다.보도된 현장사진이 가관이다.돈더미! 350만 신용불량자들이 로또 대박으로 꿈꾸다 마는 그 돈벼락이 거기 실물로 있다. “돈벼락을 맞았다.”는 놀라운 ‘증언’도 있었다.노무현 대통령 후보 때 측근이었다가 지금은 노 대통령을 공격하는 입장이 된 민주당 대변인이,노 당선자 시절 캠프에 있던 비서진들을 두고 뱉은 말이다.이 말은 물론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그러나 ‘돈벼락’은 없는 서민들에게는 상상만으로 신나는 일이다.‘내게닥친다면’이 그 상상의 실체다.옳은 일이었든 그른 일로서든,돈더미에 깔려죽든 말이다. 문제는 지금 느끼는 국민적 배신이다.강력사건이 났다 하면,젊은 여자가 칼 들고 농협을 털거나 살인사건을 저지르거나 일가족 자살 사건이 나거나 간에,그 원인이 어디서나 똑같이 ‘카드 빚’인 세상에서 이 돈더미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돈더미가 어떻게 그리도 손쉽게 거래되고 쌓아두고,‘벼락’까지 맞을 수 있는가.이것이 모두 국민을 위한 정치이고,그 정치자금이므로 용서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인가. 지난 주 미국의 한 반전 운동가가 서울을 찾아 와 회견을 했다.“더 이상 이라크에 파병하지 말라.”는 것이 회견의 주제다.미국 국제행동센터 사무국장인 사라 플라운더스는 미국이 이라크에 쏟아 부은 열화(劣化) 우라늄탄의 치명적인 방사능 폐해에 대해 고발했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핑계로 침공한 이라크에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인 열화 우라늄탄을 1991년 걸프전 때에 이어 또 썼다.그땐 사막에서 이라크 전차 1200대를 파괴하는데 썼으나 이번엔 인구밀집 지대인 바그다드에 퍼부었다.” 10년 전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69만 7000명 가운데 절반은 만성피로·피부발진·탈모·근육통·관절염·신경마비·불면증·정신착란·기억상실·호흡장애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든 후유증세로 고통을 겪고 있다.미국보훈처 장애수당 수령자가 30%나 된다고 한다. 열화 우라늄탄이 우라늄 찌꺼기를 이용해 만든 ‘더러운 무기’인 탓이다.선천성 기형,면역결핍,호르몬 이상 등의 문제가 참전 군인의 2세들에게 일어나고 있다.“한국군,이라크에 가지 마시오!” 그가 회견의 결론으로 던진 말이다.이 세상에 ‘인간적인 전쟁’이 없듯이 ‘자비로운 무기’도 없다.파병 결정이 더욱 신중해야 하는 또 한 가지 까닭이다. 정 달 영 언론인 assisi61@hanmail.net
  • [사설] 언제까지 재수생 강세인가

    어찌 이리도 똑같을까.‘고3 교실은 울상,재수생은 안도’라는 굵은 글씨가 언제까지 대학수능 시험을 평가하는 제목이어야 하는지 안타깝다.일부 고교와 입시학원이 한국교육평가원의 수능 표본채점을 분석한 결과 재학생 성적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떨어진 반면,재수생 성적은 오히려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1999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재수생 강세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물론 성적이 우수한 재학생들이 이미 수시모집을 통해 들어갔고,상위권 대학에 도전하려는 학생들이 주로 재수를 하기 때문에 양자의 평균 성적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입시학원들이 재수생 점수를 실제보다 부풀리는 경향도 있다고 본다.이에 우리는 재수생 강세가 옳은지 여부를 검증할 객관적 자료가 없음을 먼저 지적한다.교육당국은 이제부터라도 재학생과 재수생의 성적을 계열이나 지역,권역,남녀 등의 항목별로 비교 분석하고,이를 공개하기 바란다.평균성적뿐 아니라 상위권 점유율 등을 면밀하게 따져야만 재수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재수생들의 지난해와 올해 성적을 비교분석한 결과 성적이 실제로 올랐다면 이를 공론화해 해결책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 이상 문제가 있다면 더이상 쉬쉬해선 안 된다.암기위주의 내신시험과 종합적 사고력을 요하는 수능시험간 괴리가 재학생 수능성적 저하의 원인이라는 지적에도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적지 않은 사교육비와 시간을 추가로 부담하는 재수는 결코 필수과정이 되어선 안 된다.공교육 개혁만이 유일한 답이다.
  • 이런 책 어때요 / 데이비드 베컴

    데이비드 베컴·톰 와트 지음 / 임정재 옮김 물푸레 펴냄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축구소년’.영국 이스트 런던 리튼스톤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베컴은 또래보다 한 뼘이나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축구영웅이 됐다.이 책은 베컴 스스로 자신을 성찰한 내밀한 인생고백서다.어린시절 그를 축구의 세계로 이끈 아버지,유년시절부터 맺어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인연과 갈등,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빅토리아 애덤스와의 연애와 결혼생활,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사연 등이 진솔하게 펼쳐진다.모델이자 패션 리더로서의 베컴의 모습도 살폈다.1만 5000원.
  • [젊은이 광장] 총학 이기주의 유감

    얼마전 성균관대 총학생회가 정문 앞 상가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학교 정문을 확장하는데 주변 건물주들이 세입자들을 핑계로 건물 값을 올려 받으려 해 공사가 쉽지 않자 총학생회가 나섰다는 것이었다.총학생회는 상가 세입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불매운동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몇년 전만 해도 총학생회가 이런 일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총학생회란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단체였다.과거 총학생회는 오히려 대학 당국이 영세상인을 쫓아내려 하면 이에 맞섰다. 도대체 몇년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단순히 이를 어떤 이기적인(?)총학생회가 저지른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성균관대 총학생회는 몇년새 등장한 이른바 ‘비운동권’ 학생회다.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학생들의 총학생회 참여는 눈에 띄게 줄었다.총학생회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매년 줄어갔고 학생회 간부는 기피 대상이 됐다. 심지어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과반수에 이르지 못하는 건 이제 관례처럼 됐다.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학생의 참여를 이끌어내기에 기존 학생회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던 것이다.군사독재 시기인 80년대 학생회가 품고 있던,사회 운동의 커다란 축으로서 사회의 변혁을 도모하던 지사(志士)의 스케일을 90년대 이후 학생이 감당하는 것은 어쩌면 버거웠으리라 본다. 시대는 달라졌고 사람도 달라졌다.분명히 새로운 형태의 총학생회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이때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였다.이들은 학생의 관심을 총학생회로 되돌리기 위해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며 학내 사안에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문제의식이 대다수 학생의 인식에 부합한다는 것은 비운동권 학생회가 기존의 학생회를 빠르게 대체해 나갔다는 점이 입증해 준다.그런데 문제는 비운동권 총학생회 역시 대안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기존 총학생회를 반대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정립한 이들은 기존 총학생회의 순기능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이 무조건 모든 것을 청산해버렸다.때문에 비록 과도했다 하더라도 분명 추구해야 할 가치인 성찰적·비판적 지성이 너무 쉽게 버려졌다.그리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출세 이데올로기가 대신 들어섰다. 정문이 다른 대학에 비해 초라해 대학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비쳐질 수 있다는 이유로 영세상인을 상대로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도 결국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것이다.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등장한 이후 총학생회 선거에서 후보와 대학 당국간 담합이 있었고,폭력 사태가 있었다는 등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회 정의를 추구하고 사회 변혁을 기획할 수는 없다.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소시민의 생활을 바탕에 두고 소박하게나마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삶은 불가능한가.자기 삶의 바탕을 긍정하고,그것에 바탕을 둔 비판적 지성이야말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일 것이다.총학생회가 찾아가야 할 제자리는 바로 이곳에 있다.선거철로 접어든 요즘 대학 캠퍼스,과연 이러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하지만올해도 운동권이니 비운동권이니 하는 고함섞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결코 쉽지는 않을 듯하다. 고 건 혁 서울대 SNUNOW 편집장
  • 리더가 되고싶은 여성들이여 여성적 가치로 무장하라

    최근 ‘리더십’이 여성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여성의 사회참여는 꾸준히 증가했으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서는 아직도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앞으로 10년은 사회 각 분야의 주요한 위치에 여성의 대표성을 증대시키고 여성적 가치에 주목해 사회문화적 변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기라 한다.특히 내년 총선을 통해 정치에 투신할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새삼 ‘여성의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연과 학연 등 꽉 물린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남성사회와 달리 여성들은 개별적인 노력 이외에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또 중간관리자급 이상의 여성들이 늘고 있으나 아직도 여성을 윗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아 조직내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여성들도 의외로 많다. “실력은 있으나 리더십이 없다.”는 말로 폄하되기 일쑤인 여성들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것은 여성의 힘을 생산적 에너지로 전용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정치현실을 바꾸는 힘 9월17일 개원한 이화리더십개발원에서는 현재 정치분야와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각 분야 30명씩.정치분야에서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들이 대거 참여,눈길을 끈다.여성학자 오한숙희 씨를 비롯해 한나라당 김금래(여성국장)·박순자(안산지구당위원장)씨와 새천년민주당 김영애(수석전문위원)·김선미(안성지구당위원장)씨,개혁국민정당 고은광순(서초갑지구당위원장)·김영희(전국여성회의 부의장)씨 등이 나란히 참여하는가 하면 여성신문 김효선 사장,이재희 한국 여성의 전화연합 공동대표,이해훈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소 연구교수와 성기영·정용실 아나운서도 있다. 강의는 이화여대 조기숙·장필화·김선욱·유장희·김수진·김원용 교수를 비롯,이연숙·남궁석 의원과 한국일보 장명수 이사,MBC 김영희 PD 등이 맡았다. 현실을 ‘삶속에서,직장에서 여성학을 사회변화와 조직변화를 접목시키는 실천의 단계’라고 정의한 이화리더십개발원은 앞으로 ‘여성리더 100만인 시대’를 목표로 하는 교육프로젝트 수행계획까지 내놓고 있다. 이 과정을 이수중인 개혁국민정당 김영희 전국여성회의 부의장은 “개인이 발탁되던 시대에서 팀이 함께 움직이는 정치시대로 바뀌었다는 인식에 공감했고,다른 정당의 여성들이 함께 공조해서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이미지메이킹과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 등을 배운 좋은 기회였다.”라며,“정치현실이 어떻든 여성들은 공정해야 한다는 의식을 모두 함께 갖고 있음을 확인했고,우리의 이런 생각으로 정치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분야에서는 LG·삼성그룹,아시아나 항공,김&장 법률사무소,KTF 등이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중간관리자급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기업분야의 교육은 비즈니스 환경변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탐구하고,정확한 자기진단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현재의 위상을 파악,가치지향적 미래 비전을 설계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있다. 또 여성 리더들에게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지적되는 전략적 사고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강화해 장기적 목표와 목표달성 전략을 구상하도록 하며,여성들간에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코칭과 멘토링을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목표이다. 이화리더십개발원 조형 원장은 “정말 여성들의 힘을 느꼈다.특히 정치분야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성숙함을 확인했는데,여성적 마인드와 바른 정치에 대한 의욕 말고도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가 보강됐다고 여긴다.그런가 하면 기업에 몸담은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여성만의 리더십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남성과 다른 흡인력으로 일하고 있었다.여성참여를 늘리려고 해도 ‘인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며,단지 능력을 검증할 기회가 없었을 뿐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리더십을 교양과목으로 배운다 숙명여대에서는 이경숙 총장을 비롯,17명의 교수들이 리더십 훈련을 받는가 하면 21세기를 열어갈 여성인재 양성을 위해 학점이 부여되는 리더십 프로젝트를 도입,운영하고 있다.‘숙명리더십아카데미’는 이화여대에 앞서 설치됐다. 숙명여대에서는 리더십을 ‘특정인이 지닌 생래적 능력이 아니라,교육과 훈련을 통해 습득하고 달성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능력으로,어느 분야,어느 지위에서나 요구되는 사회적 역량’이라고 정의,이론·교육·다양한 실습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리더십 관련 과목을 최소 36학점 이상 이수할 경우 이를 복수전공으로 인정하고 있다.또 2003년 2학기부터는 교양과목에 리더십워크숍을 신설,학점제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리더십센터’의 CEO를 대상으로 한 리더십교육에도 여성 수강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인터넷사이트 ‘iwillb.com’은 여성 리더십교육을 실시하는 전문사이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성의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6%가 안 된다.세계 181개국 중 102위,세계 평균 15%에도 크게 못 미친다. 내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50%가 여성의 몫으로 결정됐고,대부분의 정당은 30%선의 여성 공천을 공약하고 있다.이에 따라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참여 확대를 위한 조치들이 다각도로 시행되고 있어 여성계에서는 ‘리더십으로 준비된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남주기자 hhj@
  • 오피니언 중계석/한국교회 ‘지성전 체제’ 문제점

    한국교회,특히 대형교회들은 일반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양적 팽창위주의 선교와 이기주의의 수렁에 갈수록 깊이 빠져들고 있다.그 단적인 경우가 바로 대형교회의 지교회 늘리기인 ‘지성전 체제’.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른다는 시장 원리로 교세를 확장시키려는 종교상업주의의 전형으로 불신임받고 있다.기독교사상이 27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마련한 심포지엄에서는,최근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같은 ‘지성전 체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견해들이 쏟아졌다.이 가운데 장신대 한국일 교수의 ‘지성전은 선교가 아니라 선전이다’ 주제의 발제문을 요약한다. 지성전 혹은 지교회란,표현 그대로 개척하여 설립한 본 교회에 종속되어 있는 교회이다.모두 대형교회에 의해서 운영되며 본 교회의 이름을 그대로 지닌 채 그 목회정책과 방향,행정의 지시를 받는다.지교회 예배시 설교는 본교회 담임목사의 설교가 위성방송 혹은 테이프를 통해서 선포되며,재정이 본교회 중심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지교회의 헌금은 모두 본교회로전달되며 재정적으로 독자권이 없다. 대형교회들이 표면상 주장하는 지교회의 목적은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활성화,한국사회의 복음화 등 일반적 선교적 동기로 모아진다.그러나 이면에 있는 실제적 동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지교회를 통해서 본 교회와 똑 같은 교회들을 각 지역에 설립하여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본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목회 철학을 그대로 실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요즘 지교회 제도에서 선교와 선전이 서로 혼동되는 현상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선교와 선전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나,선전은 교인을 얻기에 급급하여 선교활동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선교는 결과적으로 어느 교회에 소속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반해,선전은 지명도가 있는 목회자와 교회의 인지도를 사용하여 기존의 지역교회에 소속된 교인들을 유혹할 수 있다. 지교회 체제는 교회를 잘못된 선민의식을 갖도록 오도할 수 있다.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어느 특정 교회의 소속감으로 인식하게 될 때 교회는 배타적 공동체가 된다.그러나 교회는 본질상 세상을 향해 열린 공동체이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세속적인 계층을 뛰어넘어 하나가 됨을 선언하고 실천해야 한다.앞으로의 교회는 에큐메니컬 정신으로 지역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다른 교회를 배려하고 약한 교회를 세워주며 함께 지역과 한국사회를 복음화하는 일에 각 교회들이 소유한 자원을 모아 힘을 합하여야 한다. 교회,특히 신생교회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교회가 중요하기 때문에 바른 교회관과 선교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만 하고 비판적 성찰을 하지 못하면 교회의 본질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교회성장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있게 전파되며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표징이다.그러나 교회성장이 선교의 전부가 아니다.중요한 것은 교회가 복음에 충실한가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부패상을 개혁하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위해 절대적 권위를 하나님에게만 부여하고 교회자체를 상대화시켰다.개혁교회는 자신을 상대화할 수 있는 토대에서만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고 올바른 선교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세상을 향한 올바른 선교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자기 비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건강한 교회만이 건강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지교회 문제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성호기자 kimus@
  • [대한포럼] 서울주의, 강남주의

    요즘 신행정수도 논의가 활발하다.행정부는 물론 입법부까지 서울 이외의 다른 곳으로 옮겨 보자는 얘기다.학계와 정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와 가며 길을 닦고 있다.학계 모임인 신행정수도연구단은 잇따라 공개 세미나를 갖고 기존 도시로부터 꽤 떨어진 충청지역에 2000만평 정도의 공간을 마련해 50만명을 수용하는 자족도시를 만들어 행정수도로 삼자고 제안하고 있다.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신행정수도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확실히 수도 서울은 어떤 형태든 외과적 수술을 받아야 한다.수도권은 분산과 생산적 해체가 이뤄져야 한다.수도권의 조세 수입은 전체의 70.9%요,금융 거래의 66.8%가 수도권에서 이뤄진다.중앙 행정 기관의 72.7%가 몰려 있고 정부 투자 혹은 출자 기관의 85%,100대 기업 본사의 95%가 집중되어 있다.수도권의 기형적 비대화는 극심한 도시 문제를 야기하며 경쟁력을 상실해 국가 운영의 중추적 역할마저 경색현상을 보이고 있다. 언뜻 보면 신행정수도 건설은 순풍에 돛을 단 것 같아 보인다.신행정수도 필요성이 명백하고 정부가 특히 요즘 고삐를 죄고 있다.지난 대선에선 선거 공약으로 부각되면서 지역 민심에 적잖이 영향을 끼쳤던 사안이이기도 하다.그러나 신행정수도가 그것도 2012년까지 들어 설 것이라고 믿으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신행정수가 도시 하나 만들어 정부 기관이나 옮겨다 놓으면 되는 단순한 토목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도는 한 국가 운영의 물질적 기반의 토대요,인적 네트워크와 통치의 노하우가 생성되고 육성된 산실일 것이다.단군 이래 나라를 주도해온 이른바 지도층의 온갖 손때가 묻어나는 역사적 공간이다.물질적 세계는 물론 정신 또는 의식 세계까지 지휘하는 사령탑이어야 했다.생활의 기준이나 가치 판단 또한 서울식이어야 한다는 서울주의의 모태였다.그래서 서울엔 언제나 최고가 있어야 했고 또 서울에 있으면 어느 것이나 최고가 되었다. 신행정수도는 국가 통치 체제의 지리적 기반을 바꾸는 것이다.물적 기반을 대체하고,인적 네트워크를 새로 만들려는 시도일 것이다.기존 사회 지도층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중앙집권식국가 운영 방식을 지방 분권형으로 바꾸는 작업이다.‘서울’이 절대 가만히 있을 리 없다.행정수도 건설은 완벽에 가까운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가능해 질 수 있는 까닭이다.서울주의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는 행정수도는 세우기도 어렵거니와 국론 분란과 국정 운영 시스템의 공백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멀리 갈 것이 없다.또 다른 서울주의격인 강남주의를 보자.권력자든,돈이 많든,학벌이 화려하든 하여튼 최고는 서울에서도 강남으로 몰려든다.강남에 있으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소아병적 우월적 의식을 농축시켜 간다.일부는 강남주의의 신봉자가 되어 사회적으로 우월적인 위치를 활용해 보통과 다른 사회 지도층이라는 계층으로 만들어 나가려고 안간힘이다.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대책이 통할 리 없다.강남 문제는 강남주의에 대한 성찰과 극복이 없이는 시끄럽기만 할 뿐 풀리지 않을 것이다. 강남주의가 그렇듯 서울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급변한 국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사회 운영 체제의 유연화가 절실하다.그러나 의식 세계의 뒷받침이 없는 변화나 개혁은 이벤트에 그치거나 감당하기 힘든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세상이 일만 생기면 양편으로 나뉘어 쇳소리를 내는 것도 상대의 공감을 묵살하려 하기 때문이다.강남정책도 그렇듯 서울주의의 극복없는 신행정수도는 모험일지도 모른다.행여 정치적 공명심이나 계산이라도 깔려 있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정 인 학 논설위원 chung@
  • 盧대통령 시정연설 / 盧 “宋교수 포용” 희망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문제를 꺼내며 ‘포용’을 강조했다.사전 배포된 원고에는 없던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수사중인 사안에 대한 권력남용이자 명백한 사법권 침해라며 강도높게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송 교수에 대한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무슨 기획을 해서 초청했거나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청와대로서는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청와대와 사전조율을 거친 뒤 송 교수가 입국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추측에 대한 해명이다. 노 대통령은 이어 “송 교수에 대한 수사,처벌의 문제는 분단시대 극단적인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법과 상황에서 지금 거론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세상은 많이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저는 엄격한 법 집행을 마다하자는 뜻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제는 대결과 불신과 증오의 시대가 아니라 민족간의 화합과 포용을 말하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와 포용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어느 한쪽의 극단적 견해가 일방적으로 여론을 지배하는 데 대해서는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처벌하더라도 이 양면에 대한 성찰이 함께 진행되고,우리사회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고 보다 폭넓은 화해와 포용이 이뤄지는,한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그와 같은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희망사항’을 말했다. 이에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편향된 사고를 보이고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며 명백한 사법권 침해”라고 비난했다. 박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포용론은 엄격한 처벌을 바라는 국민여론과도 배치된다.”며 “발언을 취소하고 송씨 입국에 대해 언제 누구로부터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곽태헌 진경호기자 tiger@
  • [대한포럼] 재신임보다 중요한 것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선언’ 이후 실시된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재신임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처음 42∼57% 선이었던 ‘재신임’응답이 12일 발표된 SBS조사에서는 60.2%를 기록했다.이대로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면 노 대통령은 분명히 재신임받을 것으로 여겨진다.이는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최근 20%대로 떨어졌다가 지난 8일 내일신문 조사에서 16.5%로 최저치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지지도는 낮지만 “재신임하겠다.”는 우리 국민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13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오는 12월 15일 전후 재신임만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방법과 시기,신임 여부에 따른 거취 문제까지 밝혔다.이를 두고 각 정당이 제각각의 반응을 보여 앞으로 어떻게 합의돼 실시될지는 미지수다.분명한 것은 처음엔 최측근인 최도술 전 비서관의 SK비자금 수수에 책임을 지고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가 11일 기자회견때는 야당과 보수 언론의 국정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추가한 뒤13일 시정연설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평가를 국민에게 주문하고 있는 점이다.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뿐 아니라 방법과 시기를 이렇게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으로서는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너무 큰 부담이다.어느 누구도 탈권위주의적이며 지역주의와 정경유착의 부패고리와 단절하는 정치개혁 노선에 반대하지 않는다.이런 우리 시대의 개혁요구와 그의 순수성을 믿고 국민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그렇지만 지난 8개월 동안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박수를 보낼 수만 없는데서 고민이 생긴다.‘재신임 국민투표’는 후보의 정당과 정책,그리고 개인 능력을 비롯한 인격 전반에 걸쳐 묻는 선거와 다른데도 노 대통령은 그런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반대하면 혼란이 걱정되고,찬성을 하면 지난 8개월 동안 잘한 일 뿐 아니라 잘못한 점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부여해 수용하는 것이 된다. 이런 와중에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이 ‘재신임 정국’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 보지도 않고 환영부터 했다가 유보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여당이 분열되고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인데도 30%대의 지지층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한나라당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참여 정부의 잘못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서 가장 먼저 찾아진다.노 대통령 스스로 “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잘 나서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과 시대의 물결이 저를 대통령으로 택했다.”고 시정연설에서 밝혔다.그렇다면 국정을 운영하는데서 수시로 국민의 뜻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이번 ‘재신임 선언’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비서실장조차 발표 1시간 전에야 알 정도로 매사에 독단적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칫 국정중단 사태까지 우려되는 이런 중대사에 대해서는 사회 원로들과 각 정당 지도자들,그리고 지지자들과도 의논해야 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산적한 국정현안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책 하나 제시하지 못해 사태를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참모들의 잘못도 크다.반대파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탈한지지자들을 설득해 함께 가려는 노력 역시 부족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국정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물론 수긍한다.건전한 비판보다 사사건건 무조건 반대부터 한 사례는 많다.그러나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은 먼저 안에서부터 찾는 것이 순서다.재신임을 받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냉철한 성찰이다.그런 다음 처음 국민들이 지지했던 순수함과 개혁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실천의지를 다져야 할 것이다. 최 홍 운 논설위원실장 hwc77017@
  • [인터넷 스코프] 인터넷 ‘한글사랑’ 중심돼야

    매년 한글날을 맞지만 우리가 과연 한글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특히 인터넷에서 한글을 마구 쓰고 있는 젊은 네티즌들을 보면 그 생각이 더하다.인터넷이 한글 사용보다는 외계 언어를 생성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도 안타깝다. 그에 비하면 외국인들이 한글을 대하는 태도는 경이롭기까지 하다.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접하면서 느끼는 첫 반응은 ‘과학적’이라는 데 있다.다른 나라의 언어와 비교하면 한글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표현 가능하다고 말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휴대전화로 한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하는 말들이 있다.한글의 정교성과 세련됨을 확연히 검증할 수 있는 장비라고 입을 모은다.자음과 모음의 틀 안에서 어려운 글자 하나 없이 모든 표현을 가능케 하는 언어는 한글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세계의 여러 국가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한글처럼 고유하고 과학적인 언어는 드물다.월드컵 이후에는 우리의 말과 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의 수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 이처럼 우수한 평가를 받는 한글이 정작 우리나라에선 함부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대학생들에게 맞춤법을 바라는 일은 욕심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컴퓨터 자판에 익숙해지면서 맞춤법,띄어쓰기 같은 일을 게을리 한 나머지 잘못 쓰이는 일이 허다하다.직접 글씨 쓰는 일도 줄어들다 보니 한글 쓰기도 엉망이다. 이렇게 한글의 오·남용이 이뤄지고 있는 데는 인터넷 문화의 발전이 그 밑바탕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함부로 쓰이는 채팅 언어,희한한 언어로 뒤범벅된 전자게시판 등이 단적인 예다.채팅방에서는 맞춤법에 맞게 쓰면 ‘재미없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바로 ‘퇴실’을 당하기 일쑤다. 인터넷의 한글파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성찰과 대응이 부족한 것은 못내 아쉽다.인터넷의 한글 파괴 속도가 위험 수위에 있기 때문이다.우리의 말과 글이다.사용자인 국민이 지키고 번성시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언어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인터넷도 그런 관점을 지지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한글이 제대로자리잡기 위해서는 첫째,관계 부처의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표준어나 맞춤법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도 중요하다.그러자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바른 한글 사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장려하는 제도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캠페인도 해봄 직하다.올바른 한글 사용을 한 홈페이지 기업,개인을 추천하는 일,어법에 맞고 띄어쓰기도 정확한 네티즌 필자들을 포상하는 일 같은 것이다. 둘째,네티즌들도 한글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이를 인터넷에서 가볍지 않게 다뤄 나가야 할 것이다.우리 전통문화 가운데에는 세계적으로 융숭한 평가를 받는 것들이 많다.그런데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높아진 관심도에 비하면 우리 한글의 마케팅이나 홍보는 부족한 듯싶다. 우선 한글 단체 또는 개인이나 관심 있는 한글 관련 홈페이지들을 묶어서 한글 홍보 네트워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언론도 ‘아’ 같은 인터넷 언어가 나오면 신문화라고 무턱대고 보도할 것이 아니라,한글 사랑에 앞장서는 홍보에도 뜻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연 희 강릉대 한국어학당강사
  • 김영현·박노해·장정일·김영하…90년대 문학 ‘10년의 성찰’/신수정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

    “90년대 문학을 되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자의 치욕스러움이다.” 흔히 90년대 문학의 특징으로 거대 담론의 실종과 내면세계로의 회피,서사구조의 상실,대중문화의 고고한 진군 앞에 ‘백기 투항’ 등을 거론한다.한마디로 ‘위기’라는 것.그러나 신예비평가 신수정(사진·38)은 이런 견해가 일면적이라고 일축한다.그가 낸 첫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문학동네 펴냄)는 90년대 문학에 대한 10년의 성찰이 담겨 있다. 93년 등단한 뒤 다작은 아니지만 예리한 시각의 글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98년 고석규비평상을 수상한 그의 글모음은 ‘90년대 문학’을 위한 항변으로 읽힌다.그는 섬세한 살핌으로 김영현,박노해와 장정일,그리고 김영하에게서 90년대 문학의 징후를 읽어낸다. 그에게 김영현의 ‘벌레’는 한국문학이 이성에서 욕망으로 이동하는 맹아다.“이상과 당위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이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육체적 존재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52쪽)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욕망’이 문학사에 떠오르는데,이를 반영한 작가는 박노해와 장정일.둘다 ‘인간=욕망하는 기계’로 규정하되 박노해는 ‘인간의 욕망’에,장정일은 ‘욕망의 인간’에 방점을 찍는다. 시집 ‘참된 시작’에서 박노해는 욕망을 넘어서는 인간의 힘을 강조하는데 견주어 장정일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등 일련의 포르노그래픽 작품에서 인간의 모든 이성적 기획에 도사린 억압성과 무의미함을 포착한다는 것이다.지은이는 박노해와 장정일의 길을 ‘구도자와 유희자’라는 대조적 키워드로 정리한 뒤, 이들이 90년대 한국문학사에 욕망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두가지 가능성이라고 평가한다. 논의는 더 나아간다.지은이는 이질적인 두 작가의 이면에 ‘계몽적 기획’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기존 체제와 부딪힌 두 사람은 “현존 체제의 그물을 넘어 또 다른 욕망을 욕망한다”며 그를 ‘아버지 넘어서기 욕망’이라고 진단한다. 신수정이 ‘90년대 문학’이라는 보따리에 담는 마지막 작가는 김영하.그의 작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프로이트의방법론으로 분석하면서,“자기 안의 남성성을 거세한 신인류 탄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진단한다.결론은 “사회정치적 리비도를 내면화한 90년대 문학은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들이 구현하고 있는 쓸쓸한 신성을 통해 문명과 제도의 폭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는 새 인간형에 대한 갈망으로 귀결된다.”는 것. 지은이는 90년대에 매달린 이유에 대해 “문학청년 시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사회·세계를 향해 발언한 시기가 90년대였는데 이 시기 문학 형태가 제 생각과 너무 닮았다.이 우연성을 필연적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었다.” 그의 비평집은 90년대를 반추하는 메타비평에 머물지는 않는다.그는 박완서 등 원로작가는 물론 은희경 성석제 배수아 하성란 등 문제작 작가들과 윤효 김이태 등 숱한 신인작가의 세계에 밀도높은 비평의 거울을 비춘다.그가 말하는 문학의 새로운 출발을 보려는 듯. 이종수기자 vielee@
  • [대한포럼] 건전한 진보를 위하여

    송두율 교수에 대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그는 “송씨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부인한다고 들었고,우리도 황장엽씨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송 교수 말이 옳지 않은가 하는 선입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송 교수가 많은 한국 진보세력의 기대와 환영 속에 서울에 온 것을 보면,유 수석의 말은 진보세력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세력이 황장엽씨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을 정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황장엽씨는 김일성·김정일 독재체제를 강력히 비판하며 보수세력의 ‘전위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보수세력은 그동안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북한을 악용했다.진보진영의 민주화 운동도 친북행위로 몰아붙였다.진보세력은 거꾸로 보수진영의 그러한 행위를 ‘악’으로 규정하고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투쟁했다. 진보세력의 투쟁은 한국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그러나 많은 진보세력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외면했다.한국의 군사독재는 비판하면서 북한의독재체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으려 했다.송두율 교수 사건은 진보세력의 북한 보기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그들이 황장엽씨의 말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면 송 교수를 ‘영웅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져 왔다.자유방임주의가 진보일 때도 있었고 사회주의가 진보인 지역도 있다.진보주의는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확대 그리고 풍요로움이 인간다운 삶의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그래서 여러 한계가 있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도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북한에는 김일성에 이은 김정일의 전체주의적 독재체제가 건재하고 있다.독재는 경제의 파탄을 가져와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탈북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인권탄압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한국의 진보세력은 균형감각을 갖고 북한의 독재체제도 비판해야 한다. 진보세력이 감상적 민족주의에 빠져 북한의 독재체제 비판을 외면한다면 민주화 운동을 친북행위로 왜곡했던 보수진영의 논리가 지지를 받을 위험성이 있다.민주화 운동과 북한체제 지지는 구별되도록 해야 한다.진보진영은 북한의 독재체제가 아니라 북한 인민에 대해 민족적 애정을 가져야 한다.북한도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그런 북한을 지향하는 것이 북한문제에 대한 건전한 진보의 길일 것이다.송 교수 사건은 건전한 진보의 깃발을 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그러면 한국사회에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확대되면 사회혼란만 심화시킬 것이다.한나라당 등 정치권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위한 이념공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송 교수 문제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한국사회는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많은 사회적 손실을 가져 왔다.그러나 지금은 이념의 시대가 아니다.세계적 이념논쟁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끝났다.서울의시계만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수구세력이나 지나치게 북한 편향적인 진보세력은 자기 성찰을 통해 건전한 보수와 건전한 진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건전한 진보와 건전한 보수의 건전한 경쟁이 건강한 한국을 만들 수 있다. 이창순 논설위원 cslee@
  • [시론] 新4黨,국민위한 경쟁 나서라

    이제 우리 정치는 사상 초유의 새로운 경험에 들어섰다.집권당의 분당으로 1988년에 이어 새로운 4당체제가 된 것이 그렇고,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소속당을 탈당해 무당적 상태가 된 것도 그러하다.가뜩이나 경제사정도 좋지 않고 안보환경도 어려운데 과거 4당체제의 혼란을 기억하는 국민은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자신의 정치노선과 맞지 않는 정당에 형식적으로 적(籍)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고,예측가능하지 못한 정치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분명히 지는 것이 도리에 맞다.마찬가지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은 만약 지금이라도 자신의 정치 노선이 통합신당과 가깝다면 그 당을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그것이 헌법이 규정한 정당 책임정치와 대의정치의 원칙이다. 특히 무소속이 된 노 대통령은 다음 두가지 유혹을 버려야 한다.하나는 현 국정난맥의 탓을 정당 협조를 못받은 것에 돌리고 국회에 책임이 있는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대통령은 정부의 수반(首班)이자 모든 일의 최종 책임자다.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것은 국민의 불행이기도 하다.다른 하나는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고 싶은 유혹을 버려야 한다.정치는 국민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택한 또 다른 대표자다.그래서 대통령제는 ‘이중 정통성(dual legitimacy)’을 특징으로 하는 체제다.자신은 정통성이 있고 국회는 문제가 있다는 사고는 버려야 한다.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오직 국민일 뿐이다. 그럴 때 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스스로 말했듯이 국정과제에 집중하고 경제문제에 전념하는 일이다.총선을 염두에 두고 국민에게 불쌍히 보여 동정을 받고 지지를 받으려 해서는 앞으로도 이 나라에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나라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면 국민의 지지는 요구하지 않아도 몰려올 것이다.그 때는 국민도 행복할 것이고 그 대통령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것이다.그것이 스스로 말한 ‘창조적 파괴’의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신 4당체제가 해야 할 일도 하나밖에 없다.대통령을 공격해서는 이제 얻을 것이 없다.국민 지지도가 이미 땅에 떨어진 마당에 대통령을 더 흔든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라에 보탬이 될 것도 없다.공격보다는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정책 대안과 인물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국민이 보고싶어 하는 것은 대안의 적절성과 설득력일 뿐이지 그 어떤 것도 아니다.불가피하게 조성된 4당 체제라면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책임을 다하는 각축(角逐)을 보고 싶다.특히 민주당은 대통령을 탓할 위치에 있지 않다.오히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자기 정체성과 다른 대통령후보를 공천하고 국민에게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이제 와서 야당이라며 자신들이 추천했던 대통령을 공격한다면 또 다른 총선전략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원내 과반수를 점한 한나라당의 책임은 더욱 크다.한나라당은 대통령과 함께 이중 정통성의 한 축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과 함께 국가를 운영해야 할파트너다.이제 대통령 임기 7개월째다.대통령이 맘에 안 든다고,지난 대선이 억울했다고 딴맘부터 먹으려 한다면 국민의 심판은 준엄할 것이다.어쨌거나 대통령의 실패는 나라의 실패다.국민을 위한다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성찰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정치가 국민이 가야 할 길을 여는 작업이라면 대통령과 4당은 길을 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길 바란다. 김 광 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박사
  • [사설] 감사원장 부결, 행정공백 최소화를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현 정치구도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 정국에 미칠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다만 신 4당체제의 불길한 출발이어서 앞으로 국정운영이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염려되는 대목은 감사행정의 공백이다.현 이종남 감사원장의 임기가 오늘로 끝나 당분간 수석 감사위원의 대행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그러나 수석 감사위원의 임기도 다음달 중순에 끝나 감사행정의 표류가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게다가 다음달 중 헝가리에서 열릴 세계 감사원장회의에 감사위원이 대리참석해야 할 판이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는 파장 최소화를 위해 후보 지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국정브리핑을 통해 국회에 간곡히 호소한 대통령의 안타까운 심정과 ‘지독한 여소야대 국회’에 대한 불만을 모르는 바 아니나,국회와 갈등구조가 심화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민의 마음을 살펴 감사원 개혁의 최적임자를 찾아내 지명하는 것이 일의 우선 순위라고 본다.나아가 정부와 국회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새해예산안 심의와 선거법 등 국정현안이 산적해 있는데,서로 대화통로가 막힌 채 사사건건 대립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치권도 성찰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자유투표였다고 하나 찬반의석 분포를 볼 때 정략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떨어졌다고 해도,우리는 대통령중심제 국가다.정치권이 사안마다 국정의 발목을 잡아 대통령이 일을 못하게 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안을 처리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힘겨루기인가. 차제에 제 정당들은 그때그때의 국민감정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말고 감사원장에게 요구되는 경륜과 자질,그리고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잣대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 [열린세상] 갈등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시절이 수상하다.한꺼번에 분출하는 온갖 갈등과 더불어 태풍 매미의 습격은 우리 사회의 어수선함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하지만 자기 시대를 태평천하로 여긴 시대는 좀처럼 드물다.그럴수록 갈등을 과장할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율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온갖 시련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때문이다.그 중에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버티고 있는 해협을 무사히 빠져나와야 하는 시련도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가 여섯 개인 스킬라는 절벽 위에서 긴 목을 늘어뜨려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잡아먹었다.카리브디스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바다괴물이었다.오디세우스는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 스킬라가 사는 절벽 쪽으로 붙어서 노를 저어나갔다.운 나쁜 여섯 명이 스킬라에게 희생당한 대신 배에 탄 모든 사람은 무사히 소용돌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소수의 희생으로 다수의 안녕을 구한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이런 전략은 근대 공리주의의 원형이며,이는 우리 시대에도 ‘건전한’ 상식으로 통한다.공리주의는 다수의 복지를 위해 소수의 ‘우연한’ 희생을 정당화한다.여기서 잠깐 다시 생각해 보자.소수는 정말 ‘운 없는’ 사람들이며 다수는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만큼 건전한가? 우리사회에서 ‘소수’로 지목된 계층은 노조,농민,신빈곤층,장애인,성적 소수자들이다.다수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노조는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장애인 ‘성차별’ 고용금지법안을 거론하는 여성 장애인 역시 극소수의 경쟁력 없는 장애여성들의 소란일 따름이다.신빈곤층은 게으른 자들이고,성적 소수자는 비정상일 따름이다. 다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여성,농민,노동자,장애인,신용불량자,성적 소수자들은 머리가 여섯 개인 스킬라의 재물이 될 ‘운 나쁜’ 희생자일 뿐이다.공익을 위해서,전체의 안녕을 위해서 제거되어야 할 오디세우스의 희생자들처럼.과연 그러할까? 호주제를 예로 들어보자.인구의 절반인여성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질곡을 호소하면서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 왔다.그러나 전통수호주의자들에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 재혼 여성의 문제일 따름이다.그들에게 호주제 존속만이 가족을 결속시키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붕괴되고 해체되어 완전히 근친상간의 도가니에 빠질 것이라 예단한다. 호주제가 가족을 묶어준다는 것은 환상이다.호주제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도 가족 붕괴는 가속화되고 있다.결혼한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며 기혼여성은 출산을 기피한다.출산율 세계 최하위라는 객관적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던 시대는 지났다.맞벌이로도 생활비와 교육비를 부담하기 빠듯하다.이 위에 여성에게는 양육,가사노동,노인보호 등의 무거운 짐이 포개진다.미래의 여성들은 출산은커녕 결혼마저 거부할지도 모른다. 가족 붕괴는 호주제 폐지 때문이 아니다.일차적 원인은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에 있다.그런데도 유교적인 윤리는 시장경제의 위기가 초래한 부담을 비시장의 영역인 가정,특히 여성에게 떠넘기는 데 앞장선다.호주제 폐지에 반대하는 전통주의자들은 사회 안전망에 대한 요구를 막아버림으로써 자신들이 수호하려는 가족의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자기모순에 빠져버린 것이다.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공리주의의 모순도 이와 다르지 않다.그러므로 가족해체를,사회적 갈등을 막는 길은 갈등을 봉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갈등을 협상하는 데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임 옥 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 인디언문화 생활속으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간간이 접해오던 인디언 문화가 생활 속으로 조용히 파고들고 있다.‘문명의 야만’을 질타하는 인디언의 지혜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느리지만 꾸준히 문화계 곳곳에서 자리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관련 책 줄잡아 40여권 출간 그 동선이 가장 두드러진 쪽은 아무래도 출판계.지난해부터 주요 출판사들이 경쟁하듯 인디언 문화와 관련한 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북아메리카 원주민’‘샤먼의 코트’‘시팅불’‘인디언의 전설,크레이지 호스’‘우르릉 천둥이 말하다’ 등 시중 서점에 나와 있는 인디언 책은 줄잡아 40여권.1971년 출간된 이후 전세계에서 500만부 넘게 팔려나간 명서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도 지난해 7월 재출간됐다. 인디언 수난사나 원주민 멸망사 일색에서 인디언식 명상쪽으로 초점이 빠르게 옮겨지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체로키 부족의 영적 치료사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구르는 천둥’과 ‘우르릉 천둥이 말하다’를 비롯해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가대표적인 것들이다. 출판사 나무심는사람의 박시화 편집부 차장은 “인디언 문화는 ‘라즈니시’류의 단순한 명상서적에선 맛볼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면서 “경제불황의 늪에서 찾으려는 자기성찰 방식”이라고 인디언 출판붐을 해석했다. 인디언 관련 책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선보일 전망이다.새달 열린책들에서는 인디언 정신을 역설하는 내용의 신간 ‘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를 펴낼 계획이다.나무심는사람들에서도 연말쯤 인디언 의학서를 출간한다. ●음반·패션에도 젊은층 반응 뜨거워 인디언 문화를 책으로 접해오던 많은 소비자들은 음반쪽으로도 귀를 열기 시작했다.뉴에이지·월드뮤직 전문 음반사인 알레스2뮤직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인디언 음반(The Indian Road)을 출시해 짭짤한 재미를 봤다.단순한 플루트 연주와 인디언 원어 노래가 섞인 낯선 음반은 지금까지 1만여장이 팔렸다.비주류 음반치고는 기대 밖의 실적이다. 음반을 기획한 김영호씨는 “일부 지식인층 마니아들을 주로 겨냥했는데 뜻밖에 젊은층의 반응이 좋아 놀랐다.”면서 “11월쯤 북소리와 괴성 같은 인디언식 창법이 좀더 짙게 가미된 2집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이 음반사는 2집 발매에 맞춰 국내 첫 인디언 콘서트를 열 계획으로 인디언 여성 플루트연주자 메리 영 블러드와 인디언 여가수 조앤 셰난도를 섭외중이다. 인디언 열풍은 패션쪽에서도 조용히 분다.최근 ‘웰빙(Well being)족’들을 중심으로 인디언의 전통민속품을 본뜬 ‘드림캐처’ 스타일이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는 추세다. ●인터넷서 인디언식 이름짓기 유행 민감한 젊은 네티즌들이 이런 흐름에서 빠질 리 없다.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인디언식 이름짓기가 그 하나.인터넷 해외 사이트에 접속해 ‘마늘냄새나는 스웨터’‘노르웨이의 연약한 자작나무’‘5월의 꽃 메리온’처럼 길고 재미있는 인디언 이름을 얻는 유행이 번지고 있다. ‘인디언 스타일’이 현대인들의 정신적 허기를 달래주는 신약(新藥)일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진 않다. 마니아 중심의 인디언 문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인디언전문가 서정록(48)씨는 “자연과 인간의 가치를 동일시하고 공존공생의 삶을 중시하는 인디언 정신이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위안이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요즘 쏟아지는 신간 가운데 인디언 문화를 오류없이 제대로 전달하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황수정기자 sjh@
  • [열린세상] ‘성찰적 통일’을 제안하며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도로변에 걸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보고 북한응원단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였다.그리고 며칠전 송두율 교수와 해외거주 민주화 운동인사들의 ‘오랜만의 귀향’이 있었다.필자는 얼핏 보기에 서로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이 일들을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의 이질화와 냉전문화의 영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사안으로 해석한다. 분단이후 남북한은 50년 이상을 상호 이질적인 체제에서 존속해 왔으며,최근까지도 냉전적 대립을 지속해 왔다.이와 같은 과정은 필연적으로 남북한간의 이질화를 심화시켜 왔으며,분단국의 이질화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독일의 경험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그것은 남북한 사회의 차이가 일반적인 상이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주제가 서로 달랐다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단은 냉전체제의 최전선에 남북한을 대치하게 만들었으며,서로 상이한 방식으로 근대화의 여정을 걸어가게 만들었다.남북한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체제의이념적 대립이 극단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놓였으며,남북한의 근대화 역시 이 과정에 의해서 지배되어 왔다.냉전적 대립속에서 남북한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치체계를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켜 왔다.상대방은 철저하게 적대시되었으며,이 같은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가치에 대한 그 어떠한 이해나 동조도 이적행위와 동일시될 수밖에 없었다.이 점에서 남북한의 근대화는 분단과 극단적 대립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북한은 독재와 전체주의적 속성을 평등주의로 포장해 왔고,남한에서는 발전논리속에서 종종 정당한 요구들이 배제되어 왔다.그 결과로 우리는 체제의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는 북한과,성장지상주의 속에서 상실했던 가치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남한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이미 IMF 위기에서 나타난 것처럼 남한사회의 근대화는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가지지 않으며,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비교하여 시장경제체제,사회복지체제,법치주의와 정치적 민주화의완성,문화적 다원주의 형성의 측면에서 남한사회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무엇보다 분단체제와 냉전문화에 의해 왜곡된 사회의 정상화과정이라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남한의 성공은 아직도 갈 길이 남아있는 ‘절반의 성공’인 셈이다.포스트 모더니즘의 논리를 들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적 근대화 전체가 ‘성찰적 근대화’라는 대안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분단상태의 근대화는 이중적인 의미의 성찰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은 성공한 체제가 실패한 체제를 수렴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남한은 변화를 위한 주체적인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체제로서 전망을 가지지 못한 북한과 동일시될 수 없다.그러나 북한의 실패가 남한이 절반의 성공에 안주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남한 역시 왜곡된 근대화를 정상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우리 역시 분단으로 인한 ‘내 안의 장애’를 극복해야만 한다. 완전하지 못한 상태의 장애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북한을 산술적으로 더하는 방식의 통일은 새로운 갈등의 소지를 지닐 뿐만 아니라,근대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의 박탈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낳을 뿐이다.남북통일은 왜곡된 근대화의 정상화 과정으로서 해석되어야 하며,따라서 ‘성찰적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완전한 의미로서 통일의 시제는 과거로의 회귀도 아니며,현재도 아니다.그것은 미래 어느 시점이 되어야 하며,우리 스스로의 정상화 노력을 포함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우리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북한을 포용하는 내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조 한 범 통일연구원 북한기초연구사업 본부장
  • [마당] 바람난 ‘가족’의 향방

    스크린에서는 ‘바람난 가족’이,브라운관에서는 ‘앞집 여자’가,책에서는 불륜소설이,모니터에서는 연재만화 ‘폐인가족’이 연일 상종가를 치며 중산층 가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여름이었다.독신과 이혼과 무자녀와 자유연애와 혼외정사와 자살가족은 이제 더이상 금기의 단어들이 아니다.금지된 것들이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바람난 세태를 고발하면서 시대의 바람을 부추기는 듯하다. 얼마 전에 본 ‘바람난 가족’의 인상에 남는 대화 둘.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뒤 아들 내외에게 자신의 외도를 당당히 선언하는 60대의 시어머니 왈 “얘야,인생은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더라.그렇지 않으면,그게 사는 게 아냐.” 시어머니의 돌출발언을 지지하는 30대의 아내가,바람을 피우는 남편에게 왈 “이제 딴 거 신경쓰지 말고 당신도 당신 일생 살아.” 영화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고착된 가족 관념,가족의 가치에 대해 딴죽을 건다.주인공들은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으며 가족이라는 집단이 강제해온 도덕률을 무시한다.가족 구성원의 자유와 진정한 행복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을 불편하게 한다. 감독은 지금과 같은 가족제도 안에서는 인생을 솔직하게 산다는 것,혹은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걸까? 진정,구성원으로서의 가족의 행복과,단독자로서의 개별 자아의 행복은 위배되는 것일까? 신이 죽었고,이데올로기가 죽었고,이제 가족마저 죽어가는가? 가족은 우리 삶의 뿌리이자 기둥이다.한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며 죽을 때까지,이 황폐한 현실에서 따뜻한 힘을 주는 생명의 공간이자 비호(庇護)의 공간이 바로 가정이 아니던가.그러나 그 내밀한 비호성은 동시에 폭력적 억압성과 식민지성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특히 가부장제,모성신화,중산층 이데올로기 등은 가정을 전쟁터로 만드는 대표적인 기제들이다. 어쩌면 올 것이 왔는지도 모른다.‘바람난 가족’,‘폐인가족’으로 수식되는 가족해체의 징후들 속에는 가족 그 자체의 해체보다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중심적 억압질서,어머니로 상징되는 강요된 여성의 희생,중산층으로 상징되는 허위의식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고개숙인 아버지,몸통뿐인 어머니,분방한 자식들,이 모두에게 희생과 억압을 강요하는 가족이라면 분명히 문제적이기는 할 것이다. 부계중심사회로의 혁명과 산업혁명을 인류의 가장 큰 변혁으로 파악하면서,가족제도의 혁명에서 제3혁명의 가능성을 찾았던 이도 있었다.21세기 벽두에 ‘타임’지는 21세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결혼제도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고 비전 아닌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었다.아닌게 아니라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조심스럽게 대안가족이나 평등한 가족 이념이나 또 다른 형태의 유목민적 가족의 양상이 모색되고 있고,전통적 복고주의의 가족 양상이 재론되고 있는 걸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그러나 대안모색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올 여름을 뜨겁게 했던 ‘바람’이나 ‘폐인’이라는 수식어가 단지 가십화,희화화하는 선에서 멈출 게 아니라,가족의 문제를 결혼,성,육체,사회,문화,경제 등의 관점에서 재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그리하여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평등하고 보다 행복한 가족의 이념과 형태를 재정립할 자극제가 된다면 거풍하는,환해지는,꽃을 피워내는 그런 ‘바람’과 ‘폐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정 끝 별 열린사이버대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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