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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원·노동계 침투… 주사파조직/「애국동맹」의 실체

    ◎전 민중당 성남노동위장 주도… 조직원 241명/중부당 편입뒤 김일성찬가 만들어 북에 전달 「애국동맹」은 전민중당 성남을지구당 노동위원장 최호경(35·노점상)이 지난해 12월 자신이 야학활동을 할때 알아둔 학생·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학원 및 노동계의 「주사(주체사상)파」조직. 당초 조직원은 2백41명이었으며 「95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북한의 뜻에 따라 명칭을 「95년 위원회」로 정했다. 최는 지난해 4월 조직원 변의숙(25·여)을 제네바를 경유,밀입북시키는 등 북한과의 연대를 모색해오다 「남한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총책 황인오에게 포섭돼 자신의 조직을 당산하에 편입시키면서 명칭도 북한의 지령대로 「애국동맹」으로 바꿨다. 「애국동맹」은 산하에 「8·28(북한청년절)청년학생연맹」「5·1(세계노동자의 날)노동연맹」「11·11(전농이 정한 농민의 날)농민동맹」및 언론·문화예술 산업선교회 등을 담당하는 「부문대오」로 편성돼 있다. 최는 지난해 11월 하순 「남한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6차회의에서 김일성·김정일생일에 축하노래를 만들어 보내기로 한 결정에 따라 문화예술담당조직원인 윤정환(26)에게 지시,「수령님께 바치는 노래」라는 제목의 김일성찬양가를 만들게 해 이를 일본내 북한거점을 거쳐 북한에 전달하기도 했다.
  • 신세대작가 소설에 상반된 평가/이성욱·김욱동씨 평론통해 비판·성찬

    ◎이/“문학적 품격 결여된 단순한 상품”/김/“탈장르의 역동적·창조적 힘지녀” 최근 표절시비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신세대작가군의 소설들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나와 주목된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는 「실천문학」가을호에,김욱동 서강대교수는 「계간문예」가을호에 각각 신세대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상반된 분석을 담은 글을 게재했다.이성욱씨는 「실천문학」에 실은 글 「참을 수 없는 최근 소설들의 가벼움」을 통해 이인화 박일문 주인석 등의 신세대작가들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불량수입상」「포스트가의 사생아」라는 식으로 강도높게 비판했다.반면 김욱동씨는 「계간문예」에 실은 글 「한국소설의 돌연변종」에서 이인화 박일문 하재봉 장정일 장석주 하일지등 신세대 작가들을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지닌 한국소설의 돌연변종』이라고 상찬하고 있다. 또한 신세대작가들의 작품 출간과 관련하여 이씨는 신세대작가들의 작품들이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으로 대중의 감수성이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상품논리에 따라 생산된 문학적 품격을 갖추지 못한 작품들이라고 분석했다.즉 그들의 작품은 「이노베이션」논리와 마케팅기술에 의해 일정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명백한 상품일뿐으로 소재주의와 새로움만으로 치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김욱동씨는 포스트모던한 신세대작가들의 작품들이 이데올로기의 쇠퇴에 따른 소련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하는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와 같은 텍스트 외적 문제보다는 글쓰기와 같은 텍스트 내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때문에 많은 작가들은 이제 「문학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문제보다는 오히려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한편 신세대작가 작품들의 공통점으로 이씨는 ▲허무주의·청산주의적 정조 ▲아마추어적인 변혁운동의 기술 ▲80년대 변혁운동에 대한 회의적 시각 ▲비객관적 현실묘사 ▲소재주의 ▲낮은 성취도와 완성도등을 지적한다.이와는 반대로 김씨는 ▲문학작품을 주어진 장르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장르확산 또는 탈장르현상 ▲예술과 관련된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예술가소설적 특징 ▲억압으로부터 성을 해방시킨데 따른 에로티시즘 글쓰기의 성행등을 꼽아 서로간의 첨예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 최수철 작 「벽화그리는 남자」(이달의 소설)

    ◎삶과 영화의 대비통해 현실해부/영상시대의 발빠른 대응작품 평가 「벽화 그리는 남자」는 가장 전형적인 최수철적 소설이다.돌발적 사건에 대한 자세한 묘사,그것과 뒤엉킨 상념과 관념 덩어리들의 순간확대적 배열,공간적 삽화에 의한 서술방식,세상(또는 말)에 대한 강한 자의식 등이 최수철 소설의 형식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면 이러한 특징들은 「벽화」에서도 여전히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우리는 기왕에 10여년 간이나 이러한 방식으로 글을 써온 그의 인내력과 열정에 경외감을 품으면서도 이 작가가 일종의 자동기술의 소설기술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그는 이러한 위기를 느꼈음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섣불리 기능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고 작중인물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의 위기의식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작가의 위기감이 그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세계에 대한 원천적인 비관적 세계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얼음판 위에서 항상 쭉쭉 미끄러지는 두 발,원근법이무시된 풍경,쌓이면 벽이 되고 마는 사랑,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한 「무정부적」글쓰기…』라는 최수철의 세계에 대한 비관적 인식은 그의 초기 작품의 기조와 거의 동일하다.왜 그는 세계에 대해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화두·기록·화석」을 감동으로 읽던 우리는 「벽화」속에 드러난 고정된 세계인식에 실망을 느끼게 된다.또 이런 식이로군! 하는 자조의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작중화자인 김인곤이 영화조감독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정영민 강수남 박중빈 그리고 과거의 끈에 의해 만나게 되는 서성대 최봉진 손태문에 대한 벽화그리기인 이 작품은 삶과 영화의 길항을 통하여 삶이란 내레이션이 없는 영화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영화 속에 구멍을 파놓고 스태프들을 원격조종하는 강수남,영화를 편집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편집당하는 박중빈및 정영민이 그 한 쪽을 차지한다면,국민학교 이후 지능이 멈추어버린 서성대,의문의 죽음을 당한 손태문,여성과 남성에 대한 자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최봉진,자전거로 작은 원을그리며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세탁소의 배달부 등은 그 반대편인 현실의 삶을 드러내 준다.내레이션 없는 이미지의 집적,그것이 현실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 이 글의 전언이다. 말에 대한 탐구가 영상에 대한 탐구로 변화했을 뿐 최수철의 글쓰기 방식은 견고하기만 하다.원초적인 의사소통의 추구를 위한 언어에 대한 강한 자의식이 「벽화」에서는 객관적 세계의 이미지화에 대한 탐구로 바뀌어 있다.80년대가 말의 성찬의 시대였고,90년대는 영상압도의 시대라는 작금의 시대인식에 대한 작가의 발빠른 대응일까? 「벽화」속의 주인공이 같은 종합예술인 연극을 두고 영화를 제작한다는 사실은 영상(이미지)이 가지는 환영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이미지에는 경계가 없으므로 무한정 중첩될 수 있다.기술매체에 매개된 이미지에 종속되어 단지 이미지덩어리로 존재하는 인간들,이것이 최수철이 우리에게 비판적으로 보여주는 90년대 삶의 모습이다.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전적인 최수철식의 방법인 동물적 감각(에 매개된 이미지에 기대어)으로 살아가는 것이다.그는 예상대로 『세상이라는 동물의 급소가,또한 나 자신의 것이기도 한 그 급소가 휑뎅그레 펼쳐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있다,그것이 바로 『그동안 내가 그려오던 벽화에 다름아니었다』고 중얼거리면서….
  • “리얼리즘 논쟁은 공허” 자책의 소리/민족민중문학권

    ◎“대중성 실패한 말의 성찬” 과거논쟁 비판/「노둣돌」「창비」「실천문학」에 관련논문 수록/자기반성·비판 통해 재도약 모색 민족민중 문학전에서 리얼리즘 논쟁이 다시 불붙어 문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최근 창간된 「노둣돌」을 비롯하여 「창작과 비평」 「실천문학」등 민족민중문학권의 세 계간문학지는 각각 가을호에 리얼리즘문학론과 관련된 논문들을 수록했다. 민족민중문학권에 있었던 민족문학주체논쟁(1987∼1989)과 리얼리즘논쟁(1990∼1991)의 정리와 평가를 통해 민족민중문학권의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이 논문들은 이제까지 논쟁에서의 오류를 자기반성적으로 비판함과 함께 행간에 깃든 편파적 지향으로 인해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87년 소장평론가들이 백락청의 이른바 「소시민적민족문학론」을 비판함으로써 불이 당겨진 민족문학논쟁은 이후 여러차례에 걸친 지상논쟁을 통해 민중이 민족문학건설의 주체가 되는 김명인·백진기의 「민중적 민족문학론」,노동자계급의 이념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조정환의 「노동해방문학론」등을 도출하기에 이르렀으며 창작방법의 문제를 둘러싸고 후에 리얼리즘논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이러한 민족문학논쟁의 전개과정과 성과에 대해 문학평론가 권순긍씨는 「노둣돌」에 기고한 논문 「민족문학논쟁,그 이론과 실천적 근거에 대한 비판」에서 『실천적 근거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말의 성찬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김명인·백진기·조정환씨가 각기 자신들의 새 이론을 뒷받침할 실천적 문학운동 조직의 건설을 등한히 함으로써 새 이론의 현실적 성취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러나 김명인씨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조정환씨의 「노동자계급 당파성」 등에 대한 옹호는 글쓴이의 이론적 지향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형수씨도 「노둣돌」에 기고한 논문 「창작자의 입장에서 본 리얼리즘논쟁」을 통해 리얼리즘논쟁이 실제 창작의 주체인 창작자들을 소외시킨 공허한 것이었음을 폭로한다.그의 말에 따르면 논쟁에 참여한 평론가 일부와 학술활동에 종사하는 석·박사의 일부를 제외하면이 논쟁에 대해 제대로 알고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그는 논쟁이 창작자로부터 멀어진 원인으로 ▲비평가들이 창작을 지도해야 한다는 비평의 잘못된 위상 ▲창작방법만 좋으면 훌륭한 문학작품이 나올수 있다는 식의 창작실제에 대한 무지 ▲발언이 틀렸을 경우 정정받으려는 태도가 모자란데 따른 난해한 외교적 언술의 횡행 등을 들었다. 이미 20여년전 리얼리즘 논쟁을 전개한바 있는 문학평론가 구중서씨는 「창작과비평」에 기고한 글 「광의의 리얼리즘문학론」을 통해 이제까지 리얼리즘문학논쟁의 쟁점들을 무화시키며 80년대이래 소장평론가들이 들고 나왔던 문학론들을 한꺼번에 비판하고 나섰다.그는 『70년대 민족문학이 소시민적 지식인문학으로 소멸될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는 소장평론가들의 주장이 검증을 거치지 않은 「가설」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80년대 운동주의 민중문학이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을 제외하곤 대중성 획득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또한 구소련의 공산당 해체로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을 내거는 노동해방문학의 전망도 매우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한국의 리얼리즘문학 논의가 80년대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비판적 리얼리즘 사이를 분별하는 범위에 정체되어 있다』는 구씨는 70년대에 주장했던,이른바 「소시민적 민족문학론」과 크게 다르지 않는 「리얼리즘 주류론」을 다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실천문학」에 논문 「현실주의 논쟁을 다시 살펴보며」를 기고한 문학평론가 정남영씨는 『민족문학주체논쟁은 이데올로기적인 수준에서 각 견해들이 추상적으로 대립하는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태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발전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각 입장들 사이에 골을 깊게 하는 면도 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그는 『동구몰락 이후 문예영역에서 이루어진 「반성」은 사태에 대한 냉철한 분석보다는 급진적인 입장자체에 대한 비난에 치중하고 그 입장의 토대에 있는 합리적 핵심마저 그 오류와 함께 매도해버리기도 했다』고 지적하고 리얼리즘논쟁에 대한 보다 신중한 평가를 촉구했다.
  • 제주 557개 마을사 7년째 발굴작업(지역문화를 가꾼다)

    ◎제주출신 소설가 오성찬씨/제주신문 재직때 향토사취재 인연/50권목표로 지난 90년 10권 출간/자취감춰가는 방언·마을내력등 수집 7년째 자비를 들여가며 5백57개에 달하는 제주 마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쉼없이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 오성찬씨(53)가 바로 화제의 인물. 이미 지난 90년에 5년간 현장을 답사한 제주도 16개 마을의 역사를 10권의 책으로 엮어낸 그는 당초 목표대로 50권을 채우기 위해 복더위도 잊고 지낸다. 『10년이면 너끈히 끝낼줄 알고 시작한 이 작업이 이제는 언제 완성될 지 확신할 수 없는 일생의 대업처럼 느껴집니다.자취를 감춰가는 제주방언과 마을의 내력을 복원시킬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마지막 증언세대가 될지도 모를 마을어른들이 살아계신 동안에야 가능하다는 생각에 거의 하루도 빠지지않고 현장답사를 나가곤 합니다』 오씨가 제주마을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제주신문 기자시절 「제주도 향사」라는 기획기사를 취재하면서부터였다.그후 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실직한뒤 4년동안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민속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제주향토사와 민속에 대한 애정이 깊어갔다고 회고한다. 『한 민족이 흥하고 쇠하는 것처럼 마을마다 특정 성씨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갖고 있어요.또 현장답사를 나갈때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마을에 관한 역사책을 갖고 싶어했는가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주의 마을」시리즈를 내면서 그가 가장 관심을 두고 추적한 부분은 지명이다. 대부분 3백∼5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제주마을들에는 귀양으로 혹은 정치적 망명으로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부평초처럼 정착한 마을 사람들의 재치와 생활상이 민요가락과 지명,밭이름,바다이름등에 그대로 남아 전승돼오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지명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달말쯤에는 1차적으로 제주도 지명과 고지도를 함께 담은 2백∼3백쪽 분량의 「제주도 토속지명사전」를 펴낼 계획이다. 그리고 5명이 한조가 돼 40∼70일에 걸쳐 현장답사를 마친 「제주의 마을」시리즈 다음편 집필에 또 다시 들어간다.마을의 자연환경과 사회적 배경,마을의 형성과 변천및 인구·신앙·지명·전설,마을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고향이야기와 선조들의 이야기를 고지도·자료사진등과 함께 기고받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권씩 모양새를 갖춰가는 것이다.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거나 자료조사를 통해 잘못 인식돼온 마을역사를 바로잡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최근 향토사를 책으로 정리하려는 작업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 그 어느때보다 흐뭇하다. 지역시인들의 시집을 펴내기 위해 설립했다가 이제는 시집보다 「제주의 마을」시리즈를 펴내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도서출판 반석의 경영도 처음처럼 만만치않다는 그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그동안 틈틈이 써놓은 「떠도는 혼들」과 「부초」,여순사건을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진혼아리랑」등 3편의 중편소설을 올봄부터 잇따라 중앙 문학지에 발표한 그는 소설가로서의 본업에도 빈틈이 없는 가장 바쁜 제주인으로 손꼽힌다.
  • 아쉬운 정책대결(대선정국:14)

    ◎국민여망 좇아 민생문제 우선해야/인기에 영합,「아파트반값」등 공약 안될말/여곤 등진 야의 단체장선거 강행도 무리 우리 국민중에 현시점에서 경제 및 민생문제 해결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가깝게는 14대국회개원에 즈음해,멀게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이 정치권에 바라는 제1차적인 요구사항도 역시 경제문제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믿을 만한 여론조사기관으로 손꼽히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에 의해서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검증됐다.이 연구소가 20세이상 일반국민을 대상으로한 표본조사에서 경제안정(17.9%)물가안정(16.4%)등 경제문제해결에 대한 기대가 단체장선거실시(0.1%)등 정치적 요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여야정치권이 현시점에서 지향해야할 정상궤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다시 말해 여야는 인기영합성 정치적 구호에 매달릴 게 아니라 민생·경제문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조사에서 나타난 주목할 만한 사실은 14대국회개원문제와 관련,야당측의 「단체장선거­개원」연계전략이 국가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수 국민이 현재의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감안,총선·단체장·대선등 선거를 1년에 3번이상 치르는 것은 무리라는 논리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또한 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라는 야당측 요구도 그 주장의 적실성 여부는 차지하고 「장외」보다는 국회 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대명제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야당측이 현행 지방자치법상 단체장선거 공고일인 12일까지 국회개원에 불응,정부측의 지방자치법 개정안 처리기회를 원천봉쇄한 것은 설득력없는 정략적 태도로밖에 볼 수 없다.더욱이 이같은 저간의 사정에도 불구,현행 지방자치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대통령과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은 여권에 대한 「흠집내기」차원의 공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왜냐하면 민주·국민 두 당의 의석수를 합쳐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발의 정족수는 물론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의결 정족수(모두 재적의원 과반수)에 크게 미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같은 대여 흠집내기공세로 이번 대선에서 「반사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과거 「야당탄압시대」에나 통했던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지적이다.우리 사회가 더 이상 「민주·반민주」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민주화·다원화의 단계에 접어든 만큼 「상대당의 불행이 우리당의 행복」이라는 제로섬 게임식 발상도 통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가올 대선을 앞두고 야당측이 국민의 지지기반을 넓히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면 장외에서 실현불가능한 정치공세로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것보다는 의정단상에서 여권의 정책부재를 지적하고 민생분야에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단체장선거 연기 또는 연내실시문제는 국회내에서 민주적 토론과 표결절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차기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도 최종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 및 민생문제에 대한 정책대결이 가장 바람직하고 시급한 과제라 할지라도 그같은 정책제시는 실현가능한 내용이라야 할 것이다.이는 우리 정치가 「말의 성찬」이 아닌 「실천의 정치」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선결요건이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당측이 「아파트 반값 공급」등 국민적 인기를 겨냥한 「공약」을 내건 바 있다.그러나 국민당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현대건설측이 아파트분양과정에서 보여준 행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황당무계한 「공약」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같은 견지에서 볼때 차기 대선은 여야후보들의 정책대결의 장이 되어야 하겠지만 실현가능성도 없이 각계각층의 모든 부문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경연장이 되어선 안된다는 지적이다.다시 말해 농촌에 가선 재원마련대책도 없이 무조건 추곡수매가를 대폭 올려야 한다며 농민표를 구걸하고,자신의 모든 정치자금을 가명계좌로 관리하면서 당장 금융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의 모순된 정치행태를 더 이상 계속한다면 양식있는 유권자들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다.
  • 외언내언

    청산유수 같은 달변이 있고 요령부득하게 더듬거리는 눌변이 있다.듣기 좋기로야 물론 달변쪽.그러나 거기 진실이 결여될 때는 눌변만 못하다.못할 정도가 아니라 악덕이 된다.동양의 현철들이 경계했던 대목이다.◆눌변·달변·열변… 등은 말의 형태.내용면으로 보면 말은 더 다양해진다.세상에는 듣기 좋은 가언·여사·덕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추언·악언·교언에 욕설도 있고 망언·폭언·강변에 독설도 있다.이간질하는 간언이 있고 꾸며서 헐뜯는 창언이 있는가 하면 책임을 벗으려는 둔사에 아첨하는 유언도 있다.요언·괴담에 재담·요설도 있고 터무니없는 유언·부설도 있는 것이 세상 아니던가.◆지금 온 나라가 이 같은 갖가지 형태와 내용의 말홍수 속에 있다.생활의 중요한 요소가 말이니 평소라 해서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하지만 선거판(유세장)의 말은 생활상의 것이 아닌 특별한 목적의식을 가진 것.나에게 금배지를 달게 해 주십사 하는 변설들이다.도도하게 흐르기도 하고 열기를 띠며 하늘로 치솟기도 하는 말,말,말의 성찬.말은 지금 나라안 구석구석 표밭을 누비고 있다.◆기지가 번뜩이는 말도 있고 독기가 서린 말도 있으며 비방하고 훼폄하는 말도 있다.상대방 후보의 약점을 노골적으로 들춰내기도 하고 6공의 실정을 공박하기도 한다.그런가 하면 비굴하게 비칠 정도로 청중에게 읍소하는 경우도.청중들은 그 말에 따라 실소를 하고 감탄도 하며 야유도 보낸다.중요한 것은 말에는 그 사람의 모든 인격이 실려있다는 점.아무리 다급하고 목이 타도 말을 골라 할줄만은 알아야겠다.◆합동연설회를 거치면서 표의 향방이 달라진다고 한다.서로를 비교하면서 저울질하게 된 결과.말이 중요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게 없다.남은 동안이라도 말을 인격의 향수로 삼아 나가보도록.
  • 야 후보 현금제공 혐의

    【마산】 마산지검 거창지청 정대표 검사는 25일 민자당 거창지구당 당원 이길상씨(32)를 연행,지난 23일 지구당 창당대회때 유권자들에게 현금을 제공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중이다. 또 마산지검 김성찬 검사는 통일국민당 진해·창원지구당 위원장 정차두씨(55)가 지역주민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잡고 조사중이다.
  • “경제대국 정치소국” 일본/박정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의 2박3일간 한국 방문은 한·일 양국관계의 현주소를 새삼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의제가 종군위안부문제와 대일무역수지적자 해소에 있었던 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어느때보다 각별했다. 그러나 미야자와총리는 이같은 현안과 양국간 실질협력방안에 대해 원론적인 수사로 일관했다. 빈손으로 서울에 온 그는 「말의 성찬」만 늘어놓았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우선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우리의 입장이 역사의 시계바퀴를 45년이전의 과거로 돌리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지난 65년 한·일기본조약체결 당시 이 문제는 전혀 사회문제화되지 않았던 만큼 새롭게 조명되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야자와총리는 그럼에도 「사죄」대신에 「사과」라는 표현을 했고 노태우대통령의 응분의 조치 요구에 「적절한 조치」라는 모호한 용어를 썼다. 방한 직전 미야자와총리는 한·일 양국간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그의 발언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번에 종군위안부등 현안에 대해 보다 겸허한 표현과 구체적 보상문제까지 거론했어야 옳았다. 미야자와총리가 노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가토(가등)관방장관이 「반일감정을 가르치는 역사교육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흔히 일본인은 말로 명분을 차리는 「다테마에(건전)」와 속마음인 「혼네(본음)」가 따로 노는 민족이라고 한다.가토의 「망언」을 보면 미야자와총리의 사과발언이 그들의 「혼네」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또한 90억달러에 이르는 대일무역수지적자에 대해 일측이 구체적인 시정방안을 내놓기보다 「실천계획」을 실무위로 떠넘긴 것은 일단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무역적자가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러나 1천억달러의 흑자를 내는 일본이 우리의 무역역조시정 5개항을 대부분 거부한 것을 보면 일본이 경제대국은 될지언정 정치대국이 되기에는 요원한 것같다.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일본의 자세가 계속되는 한 한일양국간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선린우호관계도,아태지역내 정치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노력에 협조해줄 어느 주변국가도 있지 않음을 일본은 깨우쳐야 할 것이다.
  • 1992년은 이런 해여야한다(사설)

    남북통일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분위기속에 우리는 1992년을 맞는다.그러나 구체적으로 그것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뤄질 것인가를 묻는다면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그것은 바로 금세기안에 우리가 지혜와 슬기로 풀어 나가야할 민족적인 대과제로 그 방향의 예측은 가능하나 단기적인 상황 예측은 쉽지 않은것이 오늘의 남북문제다.그러나 주변상황은 대체로 우리가 바라는 방향과 형태로,예상보다는 빠른 속도로 사태가 진전,우리의 지혜로운 대응과 때로는 결단을 재촉하면서 우리가 해야할 일과 피해야 할일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46년간 지속돼온 비극적인 분단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인 통일의 대장정,총선과 대선 등 4차례의 선거를 치러야 하는 소모적인 정치 행사,UR의 역풍을 맞으며 흔들리고 있는 경제 등 92년은 우리 민족사에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 될 많은 요인들을 안고 있는 해이다. ◎통일의 길은 멀지 않고 우리는 지금 나태와 좌절로 머뭇거리고 사치와 허위의 가면을 쓰고 허세를 부리며 거드름을 떨 처지가 못된다.그 무엇보다우리는 내부의 화해와 결속이 요구되는 시점에 있다.이데올로기 전쟁은 이미 청산되고 지금 세계는 경제전쟁의 시대에 몰입,모두들 온갖 지혜를 짜고 있다.부시 미국 대통령도 기업인을 수행하고 아시아 순방에 나서는 형편이다.그러나 우리는 남북문제를 비롯,비생산적인 정치바람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올해는 특히 1년 내내 크고 작은 선거에 들떠 경제에 폐해를 입히고 국민의 도덕성마저 황폐화시킬 소지도 충분한 정치일정을 피할 수 없게 돼있다. ◎민주화의 뿌리는 자라고 그렇다고 우리는 민주적인 절차나 민주화된 양식을 생략해 나갈 수는 없다.민주주의는 결코 고함이나 환상적인 슬로건,공허한 말의 성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아는 깨어 있는 유권자가 있고 유권자를 두려워하는 선량이 있을 때만 성숙된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을 수 있다.아직 우리 선거풍토는 「돈과 바람」이 대세를 가르고 지방색과 지역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선거체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로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이같은 풍토를 과감히 깨고 선거혁명을 일으켜 한잔 술에 흔들리고 공짜 관광에 넋잃고 작은 봉투에 총명이 흐려지는 우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곧 민주시민으로서의 무한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4차례의 선거를 사회기강의 해이나 경제에 주름살을 주지않는 범위안에서 이뤄지도록 해야하며 그 결과는 남북문제에도 투영되고 경제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게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92년의 최대과제는 선거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 중대한 선거를 주도해 나갈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는 만난을 무릅쓰고 돈 안드는 선거,깨끗한 선거를 이끌어 가는데 총력을 기울여 선거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92년을 선거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1년이 한세대인양 급변하는 지구촌의 변화무쌍한 상황속에서 경제적 측면을 보면 시장개방의 외압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을 극복하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머뭇거릴 시간은 없고 뒷짐지고 머뭇거릴시간이나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1백억달러를 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내려앉은 듯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쟁력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다.우리의 월등한 경제력은 북의 문을 열게하고 남북간의 통합과 화해의 길을 여는데도 크게 작용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독일의 브란덴부르크의 벽을 무너뜨린 것이나 크렘린의 성곽 내부에 개혁의 바람을 넣은 것이나 지금 한반도 북단을 노크하고 있는 개방의 입김,모두가 결국은 경제요,삶의 질의 문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우리만이 「하면된다」며 뛰던 70년대나 80년대가 아니다.동구·동남아시아·중국 등 모두가 팔을 걷어 붙이고 숨가쁘게 뛰고 미국마저도 「그 좋았던 시절」의 풍요와 여유에서 우리도 살아야 한다며 각박하게 따지고 대드는 영악한 경제전쟁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정치가 바로 서고 경제가 활력있게 돌아가고 백성이 자기위치에서 분수와 책무를 알고 사회가 안정되면 남북문제도 순리로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남북문제도크게 보면 대단한 책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붉은 종주국과 그들의 주변 우호국이 모두 다른길(시장경제체제)로 접어 들었고 그것만이 그들의 살길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북이 그처럼 섬기는 주체의 탑도 그 여명이 길수 없음은 온세계가 공감하고 있는 터이다. 문제는 어떻게 희생을 최소화하고 큰 혼란 없이 통합의 길로 가느냐는 것이다.독일의 갑작스런 통일을 그들 스스로도 예측못했고 개방과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해온 고르바초프 스스로도 붉은 깃발마저 크렘린에서 내려야 되는 것으로는 결단코 생각지 않았었다.그러나 그런 상황은 벌어졌다. 우리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는 있으나 우리가 가는 방향과 가야할 길이 어떤 것인가는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무엇을 두려워 하랴 한민족 통합의 길로 가야하고,보다 성숙한 가시적인 민주정치가 몇차례의 선거를 통해 뿌리를 내려야 하고 경제가 다시 일어서야 하고 국민들은 지구촌시대에 사는 지혜와 슬기로 올바른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1992년.우리는 좌절할일도 기죽을 일도 머뭇거려야할 일도 없다.21세기를 넘겨다 보며 올해를 성취와 희망의 해로 우리 스스로가 가꿔 나가면 되는 것이다.
  • 몽양 맏딸 북서 비참한 최후

    ◎이명영교수가 밝힌 여난구의 「기구한 생」/초대 북경공사 지낸 송성철과 결혼/남편 아오지탄광 유배로 영락/권좌에 오른 차녀 연구,언니최후 의식 “김일성 예찬”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서울토론회 참석차 서울에 온 여연구는 알려진대로 최고인민회의부의장으로 북한여성으로서는 최고위직에 있는 「인물」이다.부친은 혁혁한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선생. 그러나 이런 이런 집안의 형제중에서도 북한의 김일성체제 아래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26일 북한문제전문가인 이명영교수(성대)에 따르면 근황이 알려지지 않은 여연구의 언니 여란구(여란구)는 수년전까지 생존이 확인됐었으나 여연구가 25일 하오 몽양묘소를 참배하며 바친 화환에 이름이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고 분석했다.화환에는 「려연구」「려원구」(여원구)「려붕구」(여붕구)의 3남매 이름만 적혀 있었다.몽양은 본래 4남3녀를 두었는데 이름이 알려지기로는 이들 3남매 이외에 봉구(봉구)홍구(홍구)등이 있었고 「난구」에 대해서는 전해진 바 없었다.그러나 몽양의 장녀인 「난구」는 실상은 대단한 인물의 부인이었었다.이화녀전을 다니다 일본에 유학을 간 「난구」는 제주출신으로 역시 소피아대(상지대)유학을 마친 송성철을 만난다.송은 견결한 국제공산주의자로서 일본공산당 당원이었으며,해방무렵에는 열댓명밖에 안되는 일본공산당 중앙위원 후보의 자리에 까지 오른다.당시 조선인후보로서는 김두용·박은희가 있었으며,정치국에는 김천해가 정치위원 5명중 1인으로서 조선인의 이름을 뽐내고 있었다.일본이 패전하자 점령군 사령부는 일본공산당에 대해 추방령을 내린다.송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북한으로 갔으나 송만은 서울로 돌아와 박헌영의 남로당에 합류하여 활동했다.이때 몽양의 장녀 「난구」와 만나 결혼하게 된다.이들은 48년 「난구」와 함께 월북했다.여연구의 다른 형제들 보다는 늦게 월북한 셈이다. 송은 부수상겸 외상인 박헌영밑에서 북경대사관 초대 공사를 지냈으며 외교부 아주국장으로도 근무했다.송은 미제스파이로 몰린 박의 숙청과 더불어 몰락한다. 송은 귀국후 고문을 당했으며 60년쯤에는 아오지탄광으로 유배되어 72∼73년쯤 사망했다.여난구도 남편과 함께 비참한 생활을 했음은 물론이다.자식을 두지 못한 이들 부부는 일본 오사카(대판)에 사는 송의 형님 아들중에서 재용을 양자로 맞았다.이 송재용은 현재 일본에서 통일연맹중앙의장의 직함으로 반김일성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이광 바로 그 사람이다.이광씨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양부의 장인인 몽양을 위해 도쿄(동경)에서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여연구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아왔다. 25일 45년만에 선친의 묘소를 찾은 여연구는 한마디 말도 못한채 처음 20분간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반세기만의 「지각참배」를 뉘우치는 그의 울음은 주위사람들의 가슴까지도 처연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인간의 모습」은 이내 김일성예찬론자로 「표변」했다.분향을 마친 그는 15분간 계속된 추도사에서 김일성의 이름을 수도 없이 불러댔다. 북에서 내려온 기자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갖다 댔다. 어쩌면 여연구는 북측기자들의 카메라와 녹음기를 의식,김일성의 이름을 거듭거듭 외쳐댔는지 모른다. 김일성의 미움은 곧 죽음이나 다름없는 북한.그 「실락원」에서 언니 「난구」와 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지않기 위해 그는 서울에서 김일성찬양의 목소리를 높인게 아닐까. 김일성의 미움을 사 송성철과 함께 불행한 생을 마감한 「난구」는 항상 여연구의 마음을 짓눌러온 멍에였다. 46년만에 찾은 아버지 묘소 앞에서 애끊는 자식의 심정만을 표현할 자유도 없는 곳.그곳이 바로 북한 임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번엔 꼭 결실맺자”… 남북총리 화답

    ◎평양의 우리 대표단 이모저모/“올안 서울 오셔야죠”에 “가야죠” 응답/“남 언론 동구 붕괴 어떻게 보나” 묻기도/양산도·고향의 봄 연주에 “한마음 박수”/남북한 총리,무대 올라가 공연자들 격려/통일신보위원 “군비 줄이면 남북 모두 잘 살것” ○…정원식국무총리를 비롯한 대표 7명과 수행원·기자등 우리측 대표단 90명은 22일 하오 평양에 도착,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여장을 푼뒤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을 답사.이어 하오 7시부터 열린 연형묵정무원총리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모두 끝내고 평양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각계인사 두루 참석 ▷목란관 만찬◁ 이날 만찬이 열린 목란관 연회장에는 4백여평의 홀에 헤드테이블과 16개의 원탁테이블이 마련됐으며 한 테이블에 15명씩 모두 2백55명이 참석. 만찬에 참석한 남북회담 대표들과 취재기자,그리고 연예·문화계등 각계 각층의 북측 대표들은 서로 어울려 남한측 대표단과 고위급회담전망,남북교류문제등 여러가지를 화제로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만찬에 참석한 통일신보의 홍창식논설위원은 군축문제와 관련,『북한이 군사비에 많은 투자를 하다보니 인민의 생활이 어렵게 됐다』며 『그래서 군비를 축소하면 남북한 모두 잘 살 수 있게 될것』이라고 말하고 정치·군사문제 우선해결을 주장. 북한측 참석자들은 또 소련 동구권국가에서의 공산주의 붕괴사태를 남한언론에서 어떻게 취급하느냐며 관심을 표명한뒤 남한측의 「흡수통일론」에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이날 만찬은 칠면조요리 사슴고기중탕 닭고기 쇠고기요리가 망라된 성찬이었다는 평. ○정 총리,선글래스 선물 특히 만찬이 시작된지 약 1시간반쯤 지난 하오 8시25분쯤 13인조로 구성된 「왕재산 경음악단」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점차 고조됐다. 이들 경음악단의 반주에 맞춰 양산도·고향의 봄등 노래와 탈춤,빠른 템포의 무용등이 어우러졌는데 남북양측 참석자들은 박수로 이들의 공연에 호응하기도. 또 여성8인조 무용인 「꽃피는 봄」공연때는 출연자들의 무릎윗부분이 여러차례 노출돼 눈길을 끌었다. 약 35분간의 공연이 끝나자 정총리와 연총리는 함께 무대위로 올라가 공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는데 정총리는 악단지휘자에게 선글래스를 선물. 정총리가 이어 여성출연자들에게 『미인들』이라고 추켜세우자 연총리는 『북쪽 여자들은 모두 미인들』이라고 맞장구. ○…이날 만찬이 열린 목란관은 평양중심가 창광거리에 있는 정무원직영 연회장으로 지난해 2차 회담때도 남측 대표단을 위한 만찬이 열렸었다.뿐만아니라 북·일수교회담의 일본대표단등 외국귀빈들을 위한 연회도 자주 열려 비교적 잘 알려진 북한의 대표적 공연시설로 꼽힌다. ▷백화원 초대소◁ ○…낮12시55분쯤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 도착한 정총리일행은 초대소 로비에서 연형묵북한정무원총리의 영접을 받았으며 로비 뒤편에 있는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남북 양측대표들이 기념 촬영. 이어 양측 대표단들은 응접실로 옮겨 약 7분간 환담. 정총리는 연총리에게 『미국가셨다 언제 오셨냐』고 말문을 연후 『고향인 재령과 소학교를 다니던 사리원을 지날 때는 기차가 잠시 멎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고 토로. ○전 총리안부도 물어 연총리가 상담모습을 취재중인 기자들을 의식,『이번에는 북남 뿐만아니라 일본기자들도 많이 왔다』고 하자,정총리는 『일본 뿐아니라 국제적 관심도 큰만큼 이번에는 결실을 맺도록 노력하자』고 다짐. 이에 연총리는 『합시다』라고 응답. 연총리는 이어 강영훈전총리의 안부를 물었으며,정총리 역시 강전총리의 인사말을 전달. 정총리가 『금년내에 서울에 오셔야죠』라며 5차회담을 의식한 말을 건네자 연총리는 웃으며 『가야죠』라고 응답. 연총리가 정총리를 응접실과 부속실에 달린 침실로 안내한 후 초대소를 떠나자,우리측 이동복대변인은 도착성명을 발표. 이날 남북총리 환담및 도착성명발표에는 남북한 기자들은 물론 신화사·인민일보등 중국기자들,아사히등 일본기자들과 로이터등 서방기자를 포함해 40여명이 열띤 취재경쟁. ○건강·날씨 화제 삼아 ▷개성∼평양◁ ○…22일 상오 9시 개성역에 도착한 정총리등 남측대표단 일행은 침대칸 16량으로 편성된 특별열차에 탑승. 열차안에서 정총리는 북측의 안병수부위원장과 나란히앉아 건강문제와 날씨를 화제로 담소. 정총리가 백남준 북측 대표에게 『지난 1차 서울회담때 차량사고로 다친 허리가 괜찮으냐』고 묻자 백대표는 『아직도 거동이 부자연스럽다.하지만 역사적 선물이 아니겠느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 ○…양측 대표들의 환담이 끝난뒤 정총리는 북한의 중앙통신·로동신문 기자들의 요청에 응해 약 5분간 차내 회견. ○…대표단 일행을 태운 특별열차는 상오 9시 정각 개성역을 출발,도중에 한곳도 정차하지 않은채 3시간30분간을 달려 평양역에 도착. 열차안에서 북측 기자들과 안내원들은 한결같이 『이번 4차회담에서는 성과가 있어야겠는데 남측에서 불가침선언을 수용할 태세가 돼있느냐』며 관심을 표명. 특히 북측 기자들은 『남쪽의 차기대권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등 집중 질문. 또 북측 기자들은 『5공인사들이 정당을 결성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는데 『워낙 변수가 많아 앞일을 전망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평양역에 도착한 대표단은 아무런 환영행사없이 승용차와 버스를타고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직행. ○“45년만에 고향 본다” ○…이날 평양시내와 개성시내에는 농촌지역과는 달리 시민들의 왕래가 잦았는데도 남측 대표단 일행에 대해서는 눈길한번 주지 않는 냉담한 모습. 이와관련,북측의 한 안내원은 『세번에 걸친 총리회담에서 한치의 진전도 보지 못한채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실망해서 그런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제4차 회담에서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 ▷판문점 출발◁ 정원식국무충리등 우리측 대표단 7명은 이날 상오 8시30분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통과,북으로 행했다. 정총리는 북측이 보내온 승용차를 타기에 앞서 환송나온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잘 다녀오십시오』라는 인사에 『고맙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뒤 환송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자 이들은 박수로 답례. ○신분확인 완전 생략 북측 관계관들은 신분확인 절차를 위해 수행원 기자단의 명단과 사진첩을 준비해왔으나 이미 세차례나 이같은 「통과의례」를 치른 탓인지 신분확인 절차를 완전히 생략한채 『그냥 가시죠』『들어가세요』등의 인사말로 대신. ◎대표단 평양 도착 성명 우리 대표단은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이제 두번째로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대표단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평양시민들과 북녘동포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남과북은 이제 더이상 단절과 대결속에서 스스로의 역량을 허비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하루속히 서로 돕고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길로 나가야 할 때입니다. 서로가 자유롭게 왕래하고 서로의 사는 모습을 확인하는 가운데 민족공동체의 뿌리를 찾고 민족의 혈맥을 다시 이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남과 북이 유엔에 함께 가입한 만큼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조속히 정상화하고 공존·공영을 도모하면서 평화통일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표단은 이번 제4차 회담이 남북고위급회담의 진전에 하나의 분기점이 된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입장의 차이를 좁혀 합의를 생산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대화,분단의 고통과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대화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회담의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해와 양보의 자세로 모든 노력과 성의를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평양방문이 남북대화 20년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이정표로 기록될 수 있도록 북측 대표단의 성의와 협조를 기대합니다.
  • 호에 정치광고 금지법 논쟁(세계의 사회면)

    ◎정당·이익단체등 TV·라디오 이용 봉쇄/“부패 막는데 필수적”… 여서 일방 입법 추진/“일당독재 노린 치사한 조치”… 야·언론 비난 정치광고 금지여부를 둘러싸고 호주정국이 뒤숭숭하다. 노동당 정부는 최근 TV 및 라디오방송을 이용한 정치광고를 전면금지하는 내용의 선거관련법 개정안을 발표,야당과 언론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이 개정안은 지방자치선거나 총선에 관계없이 선거운동기간 뿐 아니라 연중 내내 방송정치 광고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정당 뿐 아니라 각종 이익단체에도 적용되며 고속도로 상태나 산림관리·청소년복지문제 등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광고까지도 전파매체를 타지 못하게 된다. 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경우 서방민주국가에서는 가장 완벽하게 TV를 통한 선거운동을 제한다는 케이스가 된다. 노동당 정부가 내세우는 법개정 취지는 TV광고가 워낙 돈이 많이 들어서 정치적으로 부패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깨끗한 정치를 위해서는 금지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인 자유당지도자 존 휴슨은 노동당정부가 법개정을 추진하게 된 1차적인 동기는 『그들 자신이 파산했기 때문』이라고 공박했다. 노동당은 지난해 선거를 치르면서 엄청난 빚을 안게 됐고 과거 정치자금을 헌납했던 기업가들이 노동당의 노조와의 유대강화 및 경기침체를 이유로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자금 운영상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TV 취재의 시선을 끄는 중요한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있길 때문에 정치광고 금지조치는 집권당에 비해 야당이나 이익단체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이들은 우려하고 있다. 언론의 반응도 정치광고를 통한 공허한 말의 성찬이 TV에서 사라지게 되기를 기대하는 긍정적인 시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비판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오스트레일리언지는 반부패 논쟁이 위선의 냄새를 풍긴다고 썼고 쿠리에 메일지는 일당독재를 위한 치사한 조치라고 매도했으며 에이지 오브 멜버른지는 정당과 이익단체의 정견 발표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노동당은 이제까지 TV 정치광고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왔다. 지난해 총선에서도 정치광고를 통해 환경보호론자들의 지지를 얻은 것이 결국은 미세한 승리를 거두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지난 89년 비록 방송사에 의해 거부되기는 했지만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당이 자유롭게 TV를 이용하도록 하는 대신 상업적인 TV 정치광고는 금지하도록 하는 의회의 권고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는 등 최근 들어 정치광고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보여왔다. 이같은 신랄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광고 금지조항은 의회에서 통과될 공산이 크다. 노동당이 하원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상원에서도 민주당과 합하면 과반수가 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체 상원의석 76석 중 8석으로 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원에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번 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는 상원의원선거 국고지원을 2배로 늘리는 조항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정치인들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정당과 후보 개인에 대해 각각 1천1백55달러와 2백31달러를 초과하는 정치헌금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한 내용은 이번 개정안 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지지를 받고 있는 대목이다.
  • 기초의회의원 당선자 명단(서울)

    ○종로구 ▲청운동 이두학(66·신한모방 고문) ▲효자동 이헌구(55·양곡상) ▲사직동 정명호(42·음식점 경영) ▲평창동 현효선(53·인쇄업) ▲무악동 심재득(48·보일러상 경영) ▲부암동 현수한(51·우유보급소업) ▲교남동 이만로(48·부동산임대업) ▲삼청동 천상욱(55·해태유업 근무) ▲세종로동 전종구(42·삼육개발 대표) ▲가회동 이형술(51·건자재 판매업) ▲종로 제1·2가동 홍승태(55·약사) ▲종로 제3·4가동 나재암(44·동양공사 대표) ▲종로 제5·6가동 정창희(43·부동산임대업) ▲혜화동 예상호(66·보험대리점업) ▲명륜 제3가동 박우신(53·선우건재 대표) ▲이화동 진기식(55·보건약품 대표) ▲창신 제1동 박권선(53·동대문학원장) ▲창신 제2동 전영태(49·회사원) 임와룡(53·목욕탕업) ▲창신 제3동 김헌중(61·개인경영) ▲숭인 제1동 손광일(48·자영업) ▲숭인 제2동 김성찬(56·금고이사장) ○중구 ▲태평로 제1가동 이문식(61·요식업) ▲소공동 정영광(49·수협중매인) ▲남대문로 제5가동 김부흥(49·회사원) ▲회현동 오진철(49·사업) ▲명동 김장환(60·상업) ▲충무로 제4·5가동 김사흥(55·인쇄소 대표) ▲필동 신상호(64·임대업) ▲을지로 제3·4·5가동 한경철(47·목욕업) ▲중림동 공선택(61·금고이사장) ▲광희동 이한성(47·상업) ▲신당 제1동 성하삼(41·출판업) ▲신당 제5동 오세태(61·상업) ▲신당 제6동 고장식(49·상업) ▲황학동 이종율(42·사업) ▲장충동 김영한(54·약국경영) ▲신당 제2동 원중희(48·상업) ▲신당 제3동 강길문(52·상업) 윤승호(50·상업) ▲신당 제4동 윤용섭(50·보성사 대표) ○용산구 ▲후암동 이근성(64·마을금고 이사) 김문자(49·여·표구사업) ▲용산 제2가동 임철호(59·의료보험업) 김귀남(54·축산업) ▲남영동 곽정복(56·펌프제작업) ▲이태원 제2동 육보근(54·섬유수출업) ▲한남 제1동 이천만(52·주차장업) ▲한남 제2동 안태주(57·소명산업 대표) ▲청파 제1동 김계조(56·한일기기 회장) ▲청파 제2동 이양온(57·금고 이사장) ▲원효로 제1동 윤평진(40·원진전자 대표) ▲원효로 제2동 심원섭(40·대진카텐 대표) ▲효창동 최병국(54·금고 이사장) ▲용문동 구태수(60·건축업) ▲이촌 제2동 이용주(52·금고 이사장) ▲한강로 제1동 김희옥(51·금고 이사장) ▲한강로 제2동 한광호(56·청소대행업) 한강로 제3동 김용태(48·상업) ▲이촌 제1동 윤종철(44·상업) 김흥수(53·현대산업 상무) ▲이태원 제1동 장진국(53·군수출업) ▲서빙고동 박장규(55·건설업) ▲보광동 성장현(35·학원 원장) 김무관(51·의사) ○성동구 ▲금호 제2가동 임남규(53·회사 대표) ▲금호 제3가동 정광일(60·금고 이사장) ▲금호 제4동 이복우(52·상업) ▲옥수 제1동 방효영(46·사업) ▲옥수 제2동 장기만(56·상업) ▲응봉동 민병은(61·금고 이사장) ▲금호 제1가동 김중배(45·삼진사 대표) ▲성수1가 제1동 이수영(55·금고 이사장) ▲성수1가 제2동 표종수(58·상업) ▲성수2가 제1동 김재인(66·상업) 김동천(50·상업) ▲성수2가 제2동 김태식(59·미곡상) ▲성수2가 제3동 김화목(52·사업) ▲성수2가 제4동 노승균(48·미림건설 회장) ▲왕십리 제1동 이일상(55·금성도금 대표) ▲왕십리제2동 이건상(28) 이복구(57·부동산중개업) ▲도선동 조용훈(61·공업) ▲마장동 이명재(44·부동산임대업) 문길호(63·민자중앙위원) ▲사근동 이경운(49·반도섬유 대표) ▲행당 제1동 서승린(47·동화한의원장) ▲행당 제2동 정기운(48·삼미 수출사장) ▲용답동 전이곤(40·신동아 영업소장) 김종산(50·동강피역 대표) ▲화양동 허운회(52·서비스업) 강인식(58) ▲송정동 김성균(44·성우실업 대표) ▲군자동 이성전(54·삼화전자부품) 김종환(36·건축업) ▲중곡 제1동 박원식(39·학원 경영) ▲중곡 제2동 김춘기(36·농업) 신인용(42·상업) ▲중곡 제3동 오효무(49·상업) 임동식(31·건설업) ▲중곡 제4동 이석봉(50·공업) 김세환(43·건설업) ▲능동 이재선(49·상업) ▲구의 제1동 백남식(50) 이영한(49·상업) ▲구의 제2동 권승현(65·법무사) 박영태(34·종교인) ▲광장동 최복수(41·공업) 최순칠(62·건설업) ▲자양 제1동 이금장(49·상업) 문홍열(46·건설업) 자양 제2동 김영용(35·건설업) 김세호(49·의사) ▲자양 제3동 최태순(53·상업) 이종학(54·상업) ○동대문구 ▲신설동 신포균(53·제조업) ▲용두 제1동 김덕배(57·정신기공 대표) 최병조(48·협동상사 대표) ▲용두 제2동 김영섭(50·한의원 원장) ▲제기 제1동 김구하(52·금고 이사장) 전중이(48·상업) ▲제기 제2동 조우준(54·약사) 김두억(35·공업) ▲청량리 제1동 김삼출(49·금고 이사장) ▲청량리 제2동 김영회(67·상업) ▲회기동 박정철(47·건설업) ▲이문 제2동 정수모(56·금고 이사장) 우갑진(53) ▲휘경 제1동 김흥수(52·부동산중개업) 정태갑(56·공업) ▲휘경 제2동 박영철(55·합성수지업) 김희경(44·상업) ▲이문 제1동 강대석(56·상업) ▲이문 제3동 강태희(43·회사원) 장길용(52·상업) ▲전농 제1동 최인규(59·한약전재상) 김임택(50·공업) ▲전농 제2동 이윤복(36·한약업) ▲전농 제3동 조원정(53·금고 이사장) 권영일(53·식품가공업) ▲전농 제4동 조직희(49·사업) ▲장안 제1동 임승학(44·상업) 나광현(53·상업) ▲장안 제2동 최동근(53·무역업) 인택환(39·자영업) ▲장안 제3동 강근성(46·제조업) 오영신(46·상업) ▲장안 제4동 이기오(42·사업) 이진전(43·상업) ▲답십리 제1동 박재원(52·상업) ▲답십리 제2동 윤태희(56·상업) ▲답십리 제3동 박주웅(48·경미건업 대표) ▲답십리 제4동 이재덕(54·상업) ▲답십리 제5동 이갑영(55·상업) ○중랑구 ▲면목 제2동 박시하(45·컴퓨터학원장) 정원진(36·상업) ▲면목 제4동 이해수(43·상업) 고제일(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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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현(53·제조업) ▲가락 제2동 차성환(29) 김종하(55·서비스업) ▲송파 제1동 김성춘(49·대우광학 전무) 민정호(54·건설업) ▲석촌동 이선우(32·상업) 이정열(53·요식업) ▲삼전동 박용모(32·상업) 신영선(46·석삼건재 대표) ▲가락 제1동 정성태(36·사설연구소장) ▲곽순영(48·상업) ▲문정 제1동 황재춘(54·건물임대업) 김영달(44·대웅주택 대표) ▲문정 제2동 이정복(53·건설업) ○강동구 ▲하일동 안종완(47·요식업) ▲상일동 차원경(40·건설업) 황성태(59·상업) ▲고덕 제1동 유쾌하(65·운수업) 문활성(57·부동산중개업) ▲고덕 제2동 박종석(37·사업) 안계만(46·상업) ▲명일 제1동 천종구(50·강사) 홍익근(31·상업) ▲명일 제2동
  • 가이후 방한 의식,「모양내기」 인상/서울 한­일 각료회담의 안팎

    ◎「지문」 대체수단 「성의」 반영에 관심/「무역협력위」 설치는 경협의 전향적 조치/역조시정·기술이전 여전히 외면 27일 폐막된 제15차 한일 정기각료회의는 지문날인폐지등 재일한국인 3세 이하에 대한 합의사항을 교포 1·2세에게도 확대적용키로 한 것을 비롯,몇가지 사항에 관해 양국간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그 성과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개선과 관련,▲지문날인폐지 및 대체수단의 조속한 시일내 마련 ▲외국인등록증 휴대의무의 탄력적운용 ▲재입국허가기간의 5년으로의 연장 ▲강제퇴거사유의 국사범 한정 등에 합의,교포사회 차별의 상징인 이른바 4대 악제를 외형상 해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미 지문날인을 해버린 교포 1세와 만 16세가 지난 교포2세를 제외한 10만여명의 교포 2세가 지문날인폐지의 실질적 혜택을 받게 됐으며 재입국허가기간 연장과 강제퇴거 사유완화 등을 교포사회 전체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 또 양국간 균형적 산업발전을 위해 한일 무역산업기술 협력위원회의 설치 및 내년 상반기중 제1차회의 개최,일본 중소기업협력관의 한국파견,일본 철구조물시장의 대한 개방 및 대한 일반특혜관세(GSP) 공여기간연장의 긍정검토 등은 무역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양국 경제상황을 감안할때 일견 전향적인 조치로 보인다. 특히 무역산업기술협력위 설치는 종전의 무역회담을 확대개편,양국 경제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경제분야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이밖에 신소재특성 평가센터를 내년 상반기중 한국 표준연구소에 설치키로 하고 일본측이 1천만달러 상당을 이곳에 지원키로 약속한 것도 첨단과학기술의 이전차원에서 정부내에서는 높은 평점을 매기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몇몇 합의사항과 이에 따른 성과에도 불구,전체적으로는 일본 정부입장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합의사항에서도 일본정부가 곳곳에 파놓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핵심현안인 지문날인제와 관련,이 제도의 완전폐지 시기와 대체수단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일본측은 또 대체수단이 마련될때까지 지문날인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지문날인 폐지원칙은 합의했다지만 요 몇달 사이에 만 16세가 돼버린 교포 2세들은 대체수단이 없기 때문에 당장 지문날인을 해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처벌」이라는 또다른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지난 4월 3세 이하 합의사항발표 이후에 지문날인 대상자가 이를 거부해도 처벌하지 않고 등록기간을 3개월씩 연장해주는 방법으로 사실상 지문날인을 면제하고 있다』면서 이번 합의로 교포사회에 대한 지문날인제는 완전폐지된 것으로 봐도 좋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재일 거류민단측은 비록 3개월씩 연장해 주더라도 그때마다 관청에서 당사자에게 지문날인에 대한 유형·무형의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지문날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국할 경우 귀국이 봉쇄되고 있는 것이 교포들이 처한 현실이라며 지문날인의 즉각적이고도 완벽한 폐지를 거듭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3세 이하 협상시한인 내년 1월16일까지 대체수단을 마련하겠다고 일본측이 약속했다지만 일본 관료사회의 속성상 신속한 조치를 기대하기란 난망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지문날인 못지않게 중요한 사회생활상 처우개선문제가 이번 회의에서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는 것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왜냐하면 법적지위문제 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문제가 교포들에게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기 때문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많은 교포들이 일본정부의 취업차별로 인해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도 뚜렷한 「인간차별」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및 국·공립교사 채용,지방자치제 선거권 등을 일컫는 사회생활상 차별문제가 앞으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양국간 최대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산업기술문제도 몇가지 사항에 대한 한국측의 요구를 일본이 들어주기는 했지만 기술이전·무역역조 시정·대한 구매사절단 파견 등 큼직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종전태도를 굽히지 않아 이번 회의성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예를들어 기술이전 문제는 『일본 민간기업들이 많은 자본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정부가 한국에 이전토록 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 없다』며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베이스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작은정부」이론을 되풀이 했으며 무역역조는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일 뿐 일본의 대한 수입감소와는 하등 관련이 없다는 고압적 자세를 보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특히 높은 수익성이 보장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부고속전철사업에 신간선의 참여를 강력 요구하고 대소 경협진출에 있어 한일간 긴밀한 협의라는 명목하에 한국의 활발한 대소 진출을 막아 보겠다는 치졸함까지 드러냈다. 결국 이번 회의는 양국간 동반자관계의 확립에 대한 말의 성찬이 오고 갔지만 대체적으로 「가깝고도 먼」 양국민의 감정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회담으로 분석된다. 그리고 지문날인 폐지등은 일본정부가 내년 1월 예정인 가이후(해부) 총리의 방한과 대 북한 수교교섭을 목전에 둔 모양갖추기의 인상이 짙어 그들의 진의가 의심스럽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일가 셋 가스중독사

    19일 상오10시쯤 서울 강서구 화곡1동 400의83 박희남씨(34·회사원) 집 안방에서 박씨의 어머니 서정숙씨(59)와 맏아들 박성찬군(6),이복이모 김호복씨(52) 등 3명이 연탄가스에 중독,숨져있는 것을 박씨가 발견했다.
  • 부시ㆍ고르비,“이라크 추가제재” 안팎

    ◎미ㆍ소 철군엔 한목소리 무력사용은 이견/“지역분쟁에 공동대응” 첫 가시화/공중봉쇄등 후속타에 관심 집중/“후세인에 대한 압박수단 없다” 지적도 미소 정상회담은 이라크가 유엔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을때 추가제재조치를 취하기로 하고 9일 헬싱키에서 막을 내렸다. 미소 정상들은 당장의 페르시아만 위기 해결을 위한 드라마는 연출하지 못했지만 지역분쟁에 공동대응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보냈다. 미국과 소련이 주요지역 분쟁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는 냉전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제3세계 분쟁에 늘 대립과 갈등을 보여오던 미소가 페만사태에 대해서는 세계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차원에서 공동보조를 취한 것이다. 이는 냉전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또 하나의 분명한 증거이며 탈냉전시대의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모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부시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라크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이라크군의 쿠웨이트로부터의 무조건 철수와 쿠웨이트 합법정부의 복귀를 촉구했다. 미소는 또전세계에 대해 유엔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조치를 준수할 것을 촉구하며 이라크가 유엔의 결의를 무시할 경우 유엔이 추가제재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미소는 이같이 한목소리의 공동성명을 통해 이라크제재를 재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공동성명은 역사적인 것이며 후세인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말의 성찬」일뿐 후세인에 대한 새로운 압력수단이나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미소는 단지 정치ㆍ외교적 노력을 통해 페만사태를 해결한다는데 합의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많은 수단이 있다』고 말했으나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아랍국가들에 의한 해결방안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만 지적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말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이와 관련 소련은 이라크와 긴밀한 접촉을 가지며 중재를 본격화 하겠다고 밝혔다. 소련은 그러나 무력사용을 통한 페만 사태의 해결에는 반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미국은 무력사용에 대한 소련의 동의를 얻는데 일단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10여만명의 대규모 군사력을 페만에 집결시키며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고르바초프는 또 이라크에 현재 남아있는 군사고문단 1백50명을 당장 철수시킬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페르시아만의 안보가 확립되고 유엔결의가 존중되는대로 페르시아만에 파견된 미 군사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혀 계속적인 미군 증강에 대한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한 흔적이 보인다. 소련은 대규모 미군이 중동에 진주한다는 것은 소련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해 왔다. 페만의 안보확립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애매한 점이 있어 미군의 중동주둔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지만 미군주둔이 결코 미국이익에 플러스 요인만은 아니라는 점조 지적되고 있다. 부시의 미군 철수 공약은 소련의 우려불식과 함께 후세인의 대미 선전전을 무력화 시키기 위한 양면전략이라고 미관리들은 밝히고 있다. 후세인은 미국이 중동의 석유자원을 통제하고 이슬람 성지를 점령하려고 획책하고 있다며 아랍인들의 대미 성전(지하드)를 촉구해 왔다. 미소는 대 이라크 추가제재조치가 어떤 것이 될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유엔의 추가조치로는 대 이라크 경제봉쇄조치를 위반하는 국가에 대한 제재와 유엔헌장 42조와 51조에 준한 무력사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대 이라크 공중봉쇄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소는 나아가 아랍국가들과 함께 중동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지역안보체제를 공동마련키로 합의했다. 이는 중동에서의 소련 영향력을 제한하려했던 미국의 중동정책이 수정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미소가 군사적으로도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소의 이같은 자세는 냉전이후 시대의 국제질서에서 양국이 어떻게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예시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아무리 강력한 초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세계의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듯이 유엔의 이름아래 모든 나라들이 협조를 할때만 미소의 공동보조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이번 페만사태에서 증명되고 있다.
  • 말의 성찬속 감춰진 「분단의 승리」/김영만 정치부기자(남북초점)

    ◎「듣기좋은 소리」로 포장된 「기조연설」 공방전/「불신의 골」 깊이 패인 남북… 회담목표 멀기만 남북대화를 「구경」하다 보면 혼자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대화와 회담이 지향하는 목표에 열중해 있다가 양측 대표가 토해내는 말들에서 남북관계의 현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혼자 놀라는 것이 그런 경우다. 어떤 때는 현실과 회담의 목표가 갖는 엄청난 괴리에 절망해버리는 수도 있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 총리회담장에서도 마찬가지 경우를 경험하고 있다. 5일 공개로 진행된 1차회담에서 양측은 각각 기조연설을 통해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준비해온 「회담목표」들을 풀어놓았다. 양측은 6일의 비공개회담에서 기조연설에서 드러난 양측의 입장차이를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기조연설에서 드러난 남북관계의 현주소는 양측의 목표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강영훈총리가 기조연설을 통해 내놓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 초안은 남북간의 현재 상황을 극명하게 노출하고 있다. 『통일을 이룰 때까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며…』 『남과 북은 상대방을 중상하는 일체의 행동을 중지하며…』 『의견대립과 분쟁을 당국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상대방을 파괴ㆍ전복하려는 행위를 일체 하지 않는다』 우리측의 합의서 초안을 뒤집어 현재의 남과 북간의 관계를 재조립해보자. 그것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중상하며 의견대립과 분쟁을 대화 아닌 다른 수단으로 풀려 하거나 풀거라는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이 된다. 또한 상대방을 파괴ㆍ전복하려고 하는 것이 남북간의 현실로 지적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전쟁상태에 있는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실제로 『미국 CIA의 사담 후세인 정권 전복공작 계획을 부시 미대통령이 승인했다』는 외신보도에서 나오는 전복이란 단어가 현재의 남북관계를 설명하는 데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 강총리의 기조연설에서 남북관계의 현실이 포괄적이고 다소간은 관념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 비해 연형묵 북한정무원총리의기조연설은 좀더 직설적이다. 연총리는 『남북간에는 군사적으로 상대방이 자기를 먹으려 한다는 불신이 있다』면서 『북은 남측에서 미군과 함께 북침하려 하며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승공통일」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총리는 『우리는 공화국에서의 정치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정치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고 위대한 주체사상과… 령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다져진 인민의 통일단결은 우리 공화국의 밝은 전도를 계속 담보할 것』이라고 불필요한 「자기자랑」을 했다. 이어 그는 어제의 도착성명에 이어 문익환목사ㆍ임수경양의 석방 등을 회담성사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함으로써 전제조건을 내세우는 또하나의 「현실」을 우리측 대표단과 보도진에게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양측 총리의 기조연설은 전복기도,상호 불인정,비방,새로 나타난 회담의 전제조건 등이 회담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해준 셈이다. 회담의 목표로 설정된 표현들은 듣기만 해도 모두를 기분좋게 한다. 설악산∼금강산의남북 관광코스를 연결하고 우편물을 교환하며 철도와 도로를 복원하는 일,서울과 평양에 상주연락대표부를 설치하고 여단급이상의 부대이동및 기동훈련을 45일전에 상대방에 통보하는 일등이 총리회담의 우리측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북측이 제시한 목표 역시 ▲사단급이상 군사연습 금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군사당국간 직통전화 설치 ▲3단계에 의한 군사력감축 등에서 보듯 정치ㆍ군사에 치우쳐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모두 듣기좋은 소리임에 틀림없다. 회담장에서 느끼는 현실과 회담목표의 엄청난 괴리는 우리 국민의 인내와 게으르지 않는 현실인식이 요구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한 인내와 냉정한 현실인식이 오히려 남북대화를 옳은 방향으로 착실히 진전시키는 바탕이 될 것이고 그 바탕위에서 북한의 태도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 검사 91명 인사이동

    법무부는 28일 검찰관 91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오는 31일자로 단행했다. 한편 서울지검 서부지청 임운희검사 등 검사 3명이 일신상의 사유로 사표를 내 모두 수리됐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오병주 △ 〃 〃 김진태 △ 〃 검찰4과 최성창 △서울지검 박정규 김종인 고천척 송민호 임철 △서울 동부지청 이준보 민충기 정진영 박철준 이인규 고건호 △서울 남부지청 정병욱 김성득 이삼 안창호 양재호 석동현 △서울 북부지청 김상봉 김민재 홍봉주 △의정부지청 심장수 이만수 김학근 박태석 김시진 김재현 △인천지검 조덕제 윤형모 이정웅 정병대 △수원지검 김용원 함승희 △성남지청 정선태 김동찬 백창수 이상권 박효진 △춘천지검 황영구 △강릉지청 김정기 신경식 △원주지청 이은중 △영월지청 유재우 △대전지검 이강천 김제일 송해운 △홍성지청 최찬영 △천안지청 이승섭 △대구지검 오재훈 이영우 박윤환 김섭 김종영 박준모 이창세 송기오 박병배 박청수 △안동지청 김도균 △경주지청 노환균 조두영 △김천지청 최재경 △상주지청 백병기 △영덕지청윤동각 △부산지검 경대수 백순현 △부산동부지청 한창석 정만진 이무상 △울산지청 이중훈 △마산지검 김성찬 △진주지청 최용석 △충무지청 최익석 △거창지청 정대표 △광주지검 김광노 윤찬섭 곽상욱 동현철 △목포지청 김영흠 이용삼 △장흥지청 김희관 △순천지청 임성덕 임춘택 박문호 △전주지검 강영권 △군산지청 강익중 △정주지청 심동섭 △제주지검 유재강 박현상
  • 피켓도 함성도 없이 그러나 희망을 안고/민주자유당 창당대회를 보고

    나는 여의도를 「정치도」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안개도」「연기도」라고 꼬집어 온 사람이다. 그곳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로서는 툭하면 자욱한 안개가 끼는 그곳의 풍경처럼 잘 헤아려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치감각이 둔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사당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여의도라는 곳이 자꾸만 정이 떨어지고 따라서 그곳을 가는 일이 거의 없다. 약속장소가 그곳이 되면 으레 비틀어 버린다. 병이라면 그것도 큰 병이다. 그러한 내가 2월9일 아침 그 안개지대엘 갔다. 그날 아침도 여의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내가 그 내키지않는 곳엘 간 것은 그날 10시부터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리는 민주자유당 「합당수임기구 합동의회」라는 역사의 현장을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서울신문에서 내게 이 일을 맡기려할 때 나는 참으로 당황했었다. 정치감각이 둔한,아니 아예 그쪽을 감지할 수 있는 더듬이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이 일을 떠맡게 되었다. 정치에 무식한 사람의눈으로 본 역사현장의 스케치도 어떤 면에서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줄지도 모른다는 좀 뻔뻔스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현장을 찾게 되었다. 개회 20분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과 귀를 「행사」쪽에 모았다. 과연 이곳에서 정치폭탄이 터질 것인가 싶도록 덤덤한 분위기였다. 회의에 참석하는 국회의원들도 서로 수인사를 나누는 정도였고 보도진들도 덤덤한 표정들이었다. 몇몇 기자들이 「내일부터 출입처가 어디냐?」는 농담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10시 정각,대회장에 들어서니 사진기자들이 단상앞에 사다리를 늘어놓고 올라서서 플래시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룬 높은 벽 때문에 단상은 차단되었고 모습을 볼 수 없는 사회자가 성원보고를 했다. 1백11명중 1백6명이 참석했다며 개회를 선언했다. 이어 의장단이 선출되고 경과보고,합당결의,강령 및 기본정책의 채택,대국민 메시지 채택 등의 순으로 회의는 거침없이 진행되었고 최고위원들의 인사가 있은 뒤 만세 3창으로 회의는 끝났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회의가 끝났다기보다 「국민의 여망,시대의 요청에 의한 새로운 정당,민주자유당」이 출범한 것이다. 그제서야 사진기자들이 이루었던 담이 무너졌다. 회의는 그렇게 물흘러가듯 했으며 다른 정치집회에서처럼 그 흔한 피켓도 볼 수가 없었다. 야단스럽지 않은 분위기였으나 엄숙하기는 했다. 그 80여분 남짓한 동안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온 무수한 말들이 내게 묵자의 겸애편을 떠올려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나라를 밝은 내일로 이끈다」든지 「분열과 정치대결의 정치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합당한 거대여당을 발족하게 됐다」는 등의 창당선언이나 경과보고때 나온 말들이 그것을 생각케 했다. 묵자는 일찍이 「천하의 이익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를 제거하는 것이 인인의 임무」라고 말했다. 대국이 소국을 침공하고 큰 집이 작은 집을 어지럽히며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고 다수가 소수에게 횡포하며 간사한 자가 어리석을 자를 속이고 귀한 자가 천민에게 오만한 것 따위가 천하의 해독인데 그런 여러가지 해독이 생기는 원인은남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회장의 마이크를 통해 내게 전달된 무수한 말들은 결국 그 밑 바탕에 이러한 묵자의 말들이 깔려 있었다고 느껴진 것이다. 분열과 대립의 정치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총재가 구상한 4당 구조의 과감한 타파도 결국은 『남을 그르다 하면서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은 불을 가지고 불을 끄자고 덤비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묵자의 얘기와 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대회가 끝났을 때의 여의도는 안개가 걷힌 상태였다. 마치 불투명한 정국을 해소하기 위한 합당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그 합당대회를 장식한 말들만으로는 내 머리속에 낀 「안개는 아직도」 였다. 그것은 여태까지 많은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숱한 「좋은 말」들이 말의 성찬이었을 뿐 실행되어 온 사례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 터였다. 그러한 불신의 안개는 내게서만 걷히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당수 국민들의 머리 속에서 안개는 아직도 걷히지 않았을 것으로 믿어졌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안개는 정치인들의 언행일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망에 다름 아닐 것이다. 창당대회가 끝난 뒤 나는 여러사람들과 「합당」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 역시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저녁 6시,나는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전시관 올림피아홀에서 열린 민주자유당 창당 축하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축하연에 초청받은 형식이었지만 실은 순전한 구경꾼이었다. 2천5백여명이 초청되었다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또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 두 최고위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창당대회장에서 들은 얘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내용들이었지만 그 말들은 훨씬 부드럽고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김지애 유열 최진희 등의 가수들이 들려준 감미로운 노래나 텔레비전 화면 혹은 신문ㆍ잡지 등으로 눈에 익은 얼굴들,군데군데서 만나게된 지기들 때문에 풀어진 마음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탤런트 이순재,성악가 박인수씨 등의 축시 「목련꽃」 낭독과 축가 「뱃노래」를 들은 뒤에 행해진 연설에서 거대여당 지도자들은 「10∼20년 뒤에 나라와 겨레를 살린 위대한 정치혁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굳게 단결하겠다」(김영삼)든지 「우리 당이 너무 커졌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결코 교만하지 않을 것」(김종필)이라든지,「흑백논리가 통하던 시대가 끝났으므로 이제 불안은 떨쳐버리자」(노태우)는 등의 얘기를 설득력있게 강조했다. 또 그것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열기 위한 대연합의 주역다운 얘기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머리속의 안개는 아직도 말끔히 가셔지지 않았다. 나는 그 원인을 일단 내 협소한 시각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편협한 시각,편협한 사고를 스스로 꾸짖으며 오래전 중공 당총서기 호요방이 일본의 야마자키 도요코와의 간담회에서 했다는 말을 생각했다. 『나라를 생각한다고 해도 그중에는 애국주의도 있으며 그 반대로 매국주의도 있고 또 오국주의도 있다. 40여년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들은 비록 그것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일지라도 그들을 애국자라고 할 수는없다. 그렇다고 매국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지만 오국주의자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물을 협소하게 본 결과 저지를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애국 아니면 매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국도 있으며 이 말은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소야대의 4당 체제로는 더 이상 과감한 개혁조치와 국운을 상승시켜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시킬 수 없어 정치적 안정을 도모키 위해 3당 통합으로 중심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이 합당의 명분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그 말을 믿고 싶어 한다.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이 삼발이와 같은 안정감을 우리들에게 안겨줄 것을 많은 국민들이 일단은 믿기로 할 것이다. 또 그 삼발이의 세 다리가 길고 짧음이 없이 튼튼하게 버텨 그 위에 얹은 「민주ㆍ번영ㆍ통일」을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말대로만 된다면 3당의 합당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 참으로 합당한 「정치혁명」이 아닐 수 없다. 두시간 남짓한 합당축하연이 끝나 귀가길에 오르며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여당이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라. 여당이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라. 그리고 우리 겨레여,오국주의자가 되지 말자! 하늘이시여,여당ㆍ야당 그리고 우리 한 겨레가 튼튼한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삼발이를 만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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