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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회장, 프란치스코 교황과 첫 만남

    이재용 회장, 프란치스코 교황과 첫 만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유럽 출장 중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2일 교황청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바티칸 사도궁에서 교황을 만났다. 한국인 성직자 최초로 교황청 장관에 발탁된 유흥식 추기경이 가교 구실을 했다고 전해졌다. 유 추기경은 2022년 5월 네 번째 한국인 추기경으로 임명됐고, 이 회장은 그해 7월 바티칸을 방문해 유 추기경을 축하한 인연이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여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옥외 전광판 4대를 설치했다. 일본 파나소닉이 2007년 설치한 옥외 전광판이 낡고 해상도가 떨어져 교황청이 교체를 검토하던 중이었다. 교황청은 도움을 준 삼성전자에 감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달 26일 독일 오버코헨에 있는 글로벌 광학 기업 자이스(ZEISS) 본사를 방문해 반도체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 이란, 히잡 단속 강화…체포과정서 성희롱·구타 일삼는 ‘도덕경찰’ [핫이슈]

    이란, 히잡 단속 강화…체포과정서 성희롱·구타 일삼는 ‘도덕경찰’ [핫이슈]

    이란 정부가 최근 히잡 단속을 다시 강화하고 나섰다. 17일(현지시간) 예루살렘포스트(JP) 등에 따르면 이란 도덕경찰은 지난 13일부터 ‘누르(빛) 계획’에 따라 테헤란 등 여러 도시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 들어갔다. 도덕경찰은 공공장소에서 히잡 규정을 어긴 여성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며 성희롱과 구타까지 자행하고 있다. 또 여성에게 테이저건을 사용하거나 승용차 유리창을 파손하는 등의 폭력 행위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이란 소셜미디어에도 폭력적인 도덕경찰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도덕경찰의 단속 재강화는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이슬람 명절인 ‘이드 알 피트르’(라마단 종료 후의 명절) 설교에서 이란 사회에서 종교적인 규범을 깨뜨리는 행동에 대한 조치강화를 강조한 뒤 나온 것이다. 이에 지난해 노벨 평화상을 옥중 수상한 이란 여성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이날 가족을 통해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성명에서 당국의 히잡 단속 강화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모하마디는 당국이 협박과 공포를 통해 거리를 여성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쟁터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모하마디는 이어 거리에서 나타난 이란 여성들의 용감한 저항과 시민 불복종이 이슬람 공화국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면서 “거리는 우리의 것이고, 승리는 우리의 운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단속은 또한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기 위한 ‘히잡과 순결 법안’이 이슬람 규범과 헌법 해석권을 가진 헌법수호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지난해 9월 마흐사 아미니 의문사 1주기 이후 불과 나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란 의회를 통과한 ‘히잡과 순결 법안’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복장 규정을 어기는 사람에게 최대 10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아미니는 2022년 9월16일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이는 등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가 갑자기 숨졌으며 이는 ‘히잡 시위’로 불리는 전국적인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 지난달 발표된 유엔 인권이사회 조사단 보고서에 따르면 히잡 시위에 대한 이란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551명이 사망했으며 1500명 이상이 체포됐다. 이란은 이란 이슬람혁명(이란혁명) 2년 뒤인 1981년부터 9살 이상 여성들에게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으나 아미니 사망 이후 일어난 시민 불복종 운동 등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고 JP는 전했다. 이란혁명 이전 삶 재조명되기도 이날 미국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BI)는 이란이 1979년 2월 이란혁명으로 이슬람공화국으로 바뀌기 전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을 대거 공개하기도 했다. BI에 따르면 이란혁명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에 이란은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샤(국왕)의 독재로 반대 의견을 탄압하고 정치적 자유를 제한했다. 그러나 모하마드 레자는 또한 이란이 서구 지향적인 세속적 근대화를 채택하도록 추진해 어느 정도의 문화적 자유를 허용했다. 모하마드 레자는 제2차 세계대전 와중 영국과 소련이 이란을 침공했을 때 부왕 레자 샤 팔레비가 퇴위하자 왕위에 즉위했다. 그의 치세 당시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에 의해 이란의 석유산업이 잠깐 국유화됐던 적도 있으나, 1953년 쿠데타가 일어나 모사데그는 실각하고 석유는 다시 기업들의 손으로 넘어갔다.지배자로서 모하마드 레자는 백색혁명을 통해 일련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꾀했다. 그러나 세속적 무슬림이었던 그는 시아파 성직자들 뿐 아니라 노동계급, 특히 전통적 상인 계급인 바자리들의 지지를 잃게 됐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것도 반발에 부딪쳤고, 국왕 본인과 왕실, 지배 엘리트 계층은 언제나 부패 추문이 들끓었다. 공산주의 정당인 민중당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정보기관 겸 비밀경찰인 사바크(국가정보안보기구)를 통해 광범위한 정치적 업압을 가했다. 1978년 당시 이란의 정치범은 최소 2200명이었고, 이는 백색혁명이 계속될수록 빠르게 불어났다. 그외의 여러 요소로 인해 이슬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비롯한 여러 집단들이 모하마드 레자에게 등을 돌렸고, 그런 한편 그 집단들 사이에서도 계속 충돌이 일어났다. 정치적 불안은 마침내 1979년 1월 17일 혁명의 형태로 폭발했고, 모하마드 레자는 이란에서 도주했다. 얼마 뒤 이란의 군주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됐으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사실상의 법왕에 올라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했다. 이후 모하마드 레자는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 처형될 신세가 돼 안와르 사다트에게 비호권을 인정받아 망명하고 있던 이집트에서 췌장암으로 숨졌다.
  • ‘국민 시어머니’ 서권순 “연명 치료 거부 서약”

    ‘국민 시어머니’ 서권순 “연명 치료 거부 서약”

    배우 서권순이 연명 치료 거부 서약을 고백한다. 16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고민순삭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에서 극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4인의 성직자와 만나 고민을 순삭하는 시간을 가진다.이날 방송에는 드라마 ‘인어아가씨’, ‘사랑과 전쟁’ 등으로 국민 시어머니라 불린 서권순이 출연한다. 서권순은 ‘죽음 서약’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죽음에 대한 고민을 방송 최초로 전한다. 서권순은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고 삶을 마쳤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 연명 치료 거부 서약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연명 치료 거부 서약서는 질병, 사고로 의식을 잃어 치료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다. 서권순은 이를 자녀들 모르게 진행했다고 해 모두를 놀라게 한다. 서권순은 “나이 들어서 자녀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 자녀들이 이 사실을 알면 반대할 수도 있는데 내 뜻대로 하는 게 맞을지 고민”이라며 죽음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전한다. 이에 4인의 성직자는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고 서권순은 눈물을 보여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궁금증이 쏠린다.
  • 파란 눈 선교사가 남긴 선물 ‘벚꽃 엔딩’[마음의 쉼자리]

    파란 눈 선교사가 남긴 선물 ‘벚꽃 엔딩’[마음의 쉼자리]

    벚꽃의 계절이다. 올해 유난히 개화가 늦어 많은 이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사실 벚꽃이야 시간 맞춰 꽃을 틔운 것일 뿐 허물이 있다면 지레짐작한 인간의 몫일 터다. 지금은 사그라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해도 벚꽃 필 무렵이면 왕벚나무의 원산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일본이 원산지인 ‘사쿠라’를 왜 우리 땅에서 봐야 하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제주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의 후손이 일본의 왕벚나무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우리와 일본 사이에 은근한 ‘벚꽃 원조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애먼 왕벚나무들이 속절없이 잘려 나가는 일도 있었다. ‘친일 혐의’를 뒤집어쓴 채 말이다. 2018년 학술 조사에서 우리 왕벚나무와 일본산 왕벚나무는 서로 다른 종이란 게 밝혀지면서 왕벚나무 원조 논쟁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제주왕벚나무는 태곳적부터 우리 땅에 있었다. 한데 이를 세상에 알린 이는 한국인이 아니다. 파란 눈의 외국인이다. 프랑스의 선교사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1873~1952)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개화기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남긴 기념비적인 일들이 많은데, 제주왕벚나무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도 그중 하나다. 타케 신부는 생전에 직접 벚나무를 심기도 했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벚나무는 두 그루다. 대구 중구 남산로의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안에 있는 왕벚나무와 바로 옆 성바오로수녀원 안의 왕벚나무다. 이 나무들이 타케 신부가 심은 것으로 밝혀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사연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타케 신부는 55년 동안 한국에 머물며 우리 식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그는 1898년 1월 한국에 들어와 부산, 진주 등에서 사목 생활을 하다가 1902년 제주로 발령받아 13년을 머문다. 제주도에서 식물채집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그는 1908년 한라산 자락의 관음사 인근에 자생하던 왕벚나무(천연기념물)를 발견해 유럽, 미국 등 학계에 보고했다. 종전까지 ‘사쿠라’라며 일본의 나무로 여겼던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란 사실을 처음 밝힌 것이다. 여태껏 수많은 제주 사람을 먹여 살린 ‘제주 밀감’(온주밀감)을 1911년 처음 들여온 이도 그였고, 이제는 제주의 자랑이 된 구상나무가 고유 특산종이란 사실을 밝힌 이도 그였다. 그의 이름을 따 ‘타케티’라는 학명이 붙은 식물만 해도 한라부추 등 20여종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1922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1952년 선종해 천주교 대구대교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묻힐 때까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대구대교구청 경내의 벚나무는 이 당시에 심은 것이다. 2015년 국립산림과학원이 이 벚나무의 나이테 검사를 했는데 수령이 90년 정도로 나왔다. 타케 신부의 근무 기록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아울러 최대 80년 정도로 추정되는 일본 왕벚나무보다 우리 벚나무의 생명력이 훨씬 강하다는 것도 입증됐다. 대구대교구청의 왕벚나무를 직관하던 순간의 감동이 여태 선연하다. 이 나무를 심으며 타케 신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지리 가난했던 조선이 왕벚나무처럼 쑥쑥 자라 작지만 강한 나라로 성장할 거라 예상이나 했을까. 오래전 심어진 벚나무는 뜻밖에 둥치가 그리 굵지 않다. 대신 늘씬하게 위로 뻗었다. 검은 나뭇가지 아래로는 수많은 벚꽃이 매달렸다. 꽃잎은 흰색에 가깝다. 바로 앞 안익사(安益舍)의 낡고 거무튀튀한 기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아쉽게도 또 한 그루의 왕벚나무는 볼 수 없다. 수녀원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남산동 교구청 내에 벚나무들이 제법 많다. 숲을 이룰 정도는 아니지만 벚나무 노거수들이 틔워 낸 꽃들의 자태가 제법 빼어나다. 새소리, 바람 소리는 덤이다. 옛 한옥을 배경으로 화사한 ‘벚꽃 엔딩’이 펼쳐질 때 타케 신부의 미소와 만날 수 있다면 이 봄이 좀 더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을까.
  •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 서울대교구 이경상 신임 보좌주교 서품식 참석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 서울대교구 이경상 신임 보좌주교 서품식 참석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11일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된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경상(바오로) 신임 보좌주교 서품식에 참석했다. 서품식에는 정순택 대주교, 염수정 추기경, 한국천주교 주교단 및 사제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용호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 부위원장, 시민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앞서 지난 2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경상 주교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했다. 이 주교는 이날 서품식 후 공식적으로 주교로서 사목활동을 시작한다. 김 의장은 “이경상 신임 보좌주교의 수품을 축하드린다”라며 “낮은 곳에서 모든 이들을 섬기는 성직자들을 본받아 서울시의회도 민생 안정과 시민 안전을 위해 늘 현장 속에서 시민 곁에서 시민들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경상 신임 보좌주교는 김 의장의 지역구인 개포동 천주교회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하며 인연을 맺은 바 있다.
  • “남편에게 성적 매력 어필해야”…‘12세 소녀-63세 남성’ 결혼한 이유 [핫이슈]

    “남편에게 성적 매력 어필해야”…‘12세 소녀-63세 남성’ 결혼한 이유 [핫이슈]

    아프리카 가나의 63세 남성이 12세 소녀와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전 세계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축복으로 가득해야 할 여느 결혼식과 달리 조혼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영국 BBC 등 외신의 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가나에 사는 누우모 보르케티 라웨 츠루(63, 또 다른 이름은 고보루 울로모)는 지난달 30일 12세 소녀인 나아 오크로모와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인 츠루는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원주민 공동체를 이끄는 종교적 지도자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제사 등의 의식을 이끄는 사제 역할을 해 왔으며, 신부인 12세 소녀 역시 같은 원주민 공동체 구성원이다. 해당 공동체 측은 60대 종교 지도자와 12세 어린 소녀의 결혼을 두고 “성직자는 처녀와 결혼해야 한다는 오랜 전통이자 관습“이라고 주장했다. 공동체의 한 관계자는 BBC에 ”이 소녀는 이미 6년 전인 6세 때부터 지도자의 아내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면서 ”결혼식을 치른 소녀는 앞으로 임신과 출산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원주민 공동체 구성원 중 일부는 12살 어린 나이에 60대 남성과 결혼하는 소녀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 하고, 남편에게 성적 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향수를 사용하라”고 조언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BBC는 “이러한 발언은 해당 결혼이 단지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조혼이 비교적 흔한 가나에서도 남편과의 부부관계까지 강요하는 이 결혼식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조혼근절을 위한 국제비정부기구(NGO)인 ‘신부가 아닌 소녀’의 조사에 따르면, 가나 여성의 19%는 18세 이전에 결혼하며, 15세 생일 이전에 결혼하는 여성도 5%에 이른다. 가나 현행법상 18세부터 법적 혼인이 가능하지만, 암암리에 어린 소녀들을 마치 재물로 삼는 악습인 조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결혼식을 올린 63세 종교 지도자 츠루가 현지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논란이 커지자 현지 경찰은 엑스(X‧옛 트위터)에 “결혼식을 올린 소녀의 신원을 확인하고, 현재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다”면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사회복지부 등과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엔아동기금(UNICEF, 유니세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 해 동안 원치 않은 조혼을 하는 소녀는 1200만 명에 달하며, 가나에만 현재 200만 명 이상의 어린 신부가 있다. 유니세프는 “18세 이전의 조혼은 근본적으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이는 전 세계 소녀들의 생명과 복지,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라면서 “최근 들어 조혼이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나, 가나를 비롯한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감소세가 더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탈레반 “간통한 아프간 여성들, 돌로 쳐 죽일 것”

    탈레반 “간통한 아프간 여성들, 돌로 쳐 죽일 것”

    아프가니스탄의 집권하고 있는 탈레반이 간통죄를 지은 여성에게 공개 투석형을 시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는 최근 아프간 국영 TV를 통해 서방 관리들에게 보내는 음성 메시지를 공개했다. 해당 메시지에서 아쿤드자다는 “우리가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것에 대해 당신들은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간통죄에 대한 처벌을 곧 시행할 것이며, 공개적으로 여성을 채찍질하고 돌로 쳐 죽일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탈레반 수장의 이번 발언은 탈레반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을 재통치하기 시작한 이후 나온 메시지 중 가장 가혹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쿤드자다는 “서방에서는 여성에 대한 공개 처벌이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를 실천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신의 대행으로서, 당신들은 악마의 대행으로서 각자 인권을 옹호한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아쿤드자다는 이번 음성 메시지를 통해 국제 사회가 옹호해온 여성의 권리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대한 탈레반 해석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샤리아와 성직자들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런 서양인들이 말하는 권리를 여성들이 원할까?”라며 “우리는 이 땅에 샤리아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은 탈레반의 이번 발표를 강하게 비난하고 탈레반 지도부에 이 같은 관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탈레반이 만든 아프간이라는 ‘감옥’에 사는 여성들 이 같은 발언은 아프간 국민들 사이에서도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일부 사람들은 국제 사회에 탈레반에 대한 압박을 높여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카불에 사는 여성 탈라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인도적 지원으로 국제 사회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여성들에게 불리하게만 작용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공무원이기도 한 그는 “아프간에서 여성으로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없다”며 “매일 아침, 여성들에게 엄격한 제한과 규칙을 부과하는 수많은 통보와 명령으로 시작하므로, 작은 기쁨마저 빼앗겨 좀 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여성들은 감옥에서 살고 있다”며 “그리고 탈레반은 우리를 위해 하루가 다르게 그 공간을 줄여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딘딘, 사촌누나와 불륜사건에 “너무 혼란스러워”

    딘딘, 사촌누나와 불륜사건에 “너무 혼란스러워”

    딘딘이 충격적 불륜 사건에 혼란스러워한다. 26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고민순삭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에서 개신교 김진 목사, 불교 성진 스님, 원불교 박세웅 교무, 천주교 하성용 신부 등 4인의 성직자가 법조인들의 고민 상담을 펼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가운데 이혼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는 “요즘 불륜으로 찾아오는 의뢰인들이 많다”라며 최근 더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불륜 흐름을 이야기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러면서 초임 변호사 시절 맡았던 불륜 사건을 말해 현장을 충격에 빠뜨린다. 사촌 누나와 사촌 동생이 불륜을 한 것도 충격적인데, 여기에 계속해 더해지는 불륜의 자초지종이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에 딘딘은 “너무 혼란스러워”라며 반응이 고장 난 모습을 보인다. 성진 스님은 “갈수록 더 복잡하네”라며 매운맛 속세의 사연에 말을 잇지 못한다. 김제동은 “난 이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이해를 포기해 궁금증을 자극한다. 다양한 이혼, 불륜을 접한 변호사는 ‘직업병’을 키워드로 고민 상담을 한다. 변호사의 ‘직업병’은 무엇일지, 또 성직자들은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을지, 본 방송에 관심이 쏠린다.
  • 사이비 교주에 빠진 아빠와 할머니…유쾌한 집안 구출 작전

    사이비 교주에 빠진 아빠와 할머니…유쾌한 집안 구출 작전

    대책 없이 재밌다. 원래도 재밌는데 한국적이어서 더 재밌다. 웃고 떠들다 보면 2시간이 모자랄 정도지만 그 안에 스며든 위트와 풍자는 이 연극을 마냥 가볍게만 만들지 않는다. ‘위선자 탁선생’은 재미와 교훈이라는 연극의 기본과 본질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작은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1622~1673)가 1664년 발표한 ‘타르튀프’. 17세기 당시의 부패한 성직자들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타르튀프를 데려와 요즘 말로 하자면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내용이다. ‘위선자 탁 선생’은 ‘타르튀프’를 이 시대 한국 연극으로 바꿨다. 어느 평화로운 집안에 예수 뺨치는 선지자 같은 탁 선생이 있다. 은혜로운 탁 선생의 말씀에 홀딱 홀린 할머니(조소녀)와 아빠(오달제)는 탁 선생이라면 무조건 숭배하며 다른 가족들이 입도 뻥끗 못 하게 막는다. 위압적인 할머니와 아빠의 말씀이 지엄하니 별수 있나. 뒤에서 의심하고 욕하는 수밖에.등장부터 거룩하지만 탁 선생의 내면엔 욕망이 가득하다. 탁 선생은 엄마(나애자)를 몰래 좋아하고 둘만 있을 때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낸다. 할머니와 아빠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의 추악한 실체를 파악하고 어떻게든 몰아내고자 한다. 요즘 같았으면 녹음과 폐쇄회로(CC)TV 등이 있겠지만 원작이 쓰이던 시기엔 당연히 없었다. 탁 선생의 위선을 까발리기 위해 나애자는 테이블을 가져와 남편보고 숨어서 들으라고 지시하고 탁 선생을 한껏 유혹한다. 탁 선생이 결국 걸려들고 아빠 역시 그의 실체를 알아버렸지만 이미 전 재산을 줘버렸으니 별도리가 없다. 작품 속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져 전 재산을 홀라당 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쩐지 겹친다. 수백년 전의 연극이지만 동시대 연극으로 다가오는 것은 각색의 힘이다. 멀게는 김수영의 시 ‘껍데기는 가라’부터 시작해 가수 엄정화의 ‘몰라’ 가사가 대사로 등장하는 것은 물론 가깝게는 윤석열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공정과 상식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대사에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도 등장한다. 오달제의 동생 오숙희가 화려한 랩을 선보이는 것은 잠시나마 연극이 아니라 랩 경연 프로그램을 보는듯한 기분도 든다.배우들의 연기 또한 일품. 경상도 사투리와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잘 살렸고 작은 공연장에서 객석과 경계를 허물고 과감하게 오가는 것도 색다르다. 코미디 장르에 맞게 배우들이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어떻게든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여기에 환상의 호흡으로 주고받는 티키타카는 작품의 매력을 한껏 살린다. ‘위선자 탁 선생’은 배우이자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대표인 김수로가 직접 운영하는 연극학교 10주년 기념 공연이다. 연극학교는 전국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는 예비 배우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로 오디션을 거쳐 학생들을 선발한다. 김수로, 강성진, 박건형 등 베테랑 배우들과 함께 한국 연극계를 이끌어갈 신예 배우들의 조화가 돋보인다. 23일까지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만날 수 있다.
  • 김제동 “이런 요구 받은 적 없다…미안” 난처함 표한 이유

    김제동 “이런 요구 받은 적 없다…미안” 난처함 표한 이유

    방송인 김제동이 대학생들의 고민 상담 중 난처함을 표했다. 12일 첫 방송 되는 MBC에브리원 ‘고민순삭-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에서는 대학생들의 각종 고민이 공개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개신교 김진 목사, 불교 성진 스님, 원불교 박세웅 교무, 천주교 하성용 신부가 사연자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공감과 해결책을 선사한다. 첫 번째 출장 상담 장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펼쳐졌다. 대학생들의 많은 고민이 쏟아진 가운데, 여자친구와의 연락 문제로 고민하는 대학생에게 김제동은 “전 이런 요구를 받아본 적이 없다. 미안합니다”라며 난처함을 표해 웃음을 자아낸다.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사귄 여자친구와 만남을 지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학생의 사연도 소개됐다. “‘스킨십 케미’가 너무 잘 맞는다”는 이 대학생의 발언에 성직자 4인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리기도 했다. 성진 스님이 “우리가 알아듣게 설명해요”라며 해결책을 제시하자 딘딘은 “스님 연애하셨으면 잘하셨을 것 같다”며 감탄했다.
  • 딘딘 “캐나다 유학 시절 인종 차별… 자존감 무너져”

    딘딘 “캐나다 유학 시절 인종 차별… 자존감 무너져”

    래퍼 딘딘이 캐나다 유학 시절 겪었던 인종차별에 대해 고백한다. 12일 오후 7시 40분 처음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고민순삭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에서는 개신교 김진 목사, 불교 성진 스님, 원불교 박세웅 교무, 천주교 하성용 신부 등 4인의 종교 성직자들이 고려대학교 캠퍼스를 찾아 대학생들과 교직원들의 고민을 나누는 모습이 그려진다. 딘딘은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서 상처받았던 경험을 말하자 자신도 고등학교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가면서 겪은 경험담을 꺼냈다. 딘딘은 “(인종 차별로) 자존감이 무너졌던 상황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별을 극복했던 경험을 들려준다. 딘딘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 학부모의 ‘갑질’로 힘들다는 사연을 접하고 놀라기도 했다. 딘딘은 “저희 엄마는 늘 과외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다”며 “성적이 떨어진 건 아이 잘못이지, 선생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과드릴 선생님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 왕권을 강화시킨 ‘의회 정치’… 국가를 무너뜨린 ‘의회 패싱’[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왕권을 강화시킨 ‘의회 정치’… 국가를 무너뜨린 ‘의회 패싱’[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대헌장으로 불리는 마그나카르타는 1215년 영국의 존 왕이 귀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왕에게 대항해 왕에게서 받아 낸 문서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왕의 독주와 전횡을 막고 백성의 권리와 자유를 쟁취한 문서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의 해석에는 놓친 부분이 있다. 존 왕이 헌장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귀족들과 오랜 시간 토의함으로써 그들에게서 화해를 끌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대헌장은 통치자와 귀족들이 긴 시간 협상한 결과물로, 결국에는 통치자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도운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존 왕은 귀족들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음으로써 이들이 더는 국정 운영에 방해꾼이 아니라 동반자이자 책임자로 참여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대헌장은 훗날 영국에서 왕과 귀족들이 국사를 걱정하고 논의하던 의회를 탄생시키고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초석을 놓았다.대헌장 제정을 계기로 왕과 귀족의 신뢰가 회복되고 양측이 협치함으로써 정책 의제를 수월하게 입법화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왕들은 의회의 동의를 얻으면 세금을 징수하거나 법률을 제정하고자 할 때 일을 좀더 쉽게 추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다. 의회를 이용한 통치는 결국 왕권 안정은 물론 국가 재정 수입 증가와 건실한 재정으로도 이어졌다. ●왕이 만든 의회, 왕의 국정 파트너 영국 이외의 유럽 국가들도 의회와 더불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통치자에게 유리함을 인식하게 됐다. 왕들은 의회를 국가 운영에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장치이자 교두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필리프 4세는 1302년 삼부회로 알려진 신분제 회의를 소집했다. 전국의 성직자, 귀족, 시민의 대표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의회를 연 것이다. 필리프 4세는 당시 대외적으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대립하면서 위기감을 느끼자 프랑스가 왕권을 중심으로 통합됐음을 과시하려고 의회를 소집했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실험은 의회가 왕의 정책에 거국적인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의 왕이 과세를 하려고 의회의 힘에 의존했듯이 프랑스의 통치자도 의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강력한 군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필리프 4세는 신민의 대표 기구인 의회의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교황과 벌인 권력 다툼에서 승리했다. 이렇듯 통치자의 위용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고 왕국의 대표자들을 소집해 의회라는 기구를 만든 당사자는 바로 통치자 자신이었고, 왕은 의회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은 지휘자와 악단의 호흡이 잘 맞을 때 가능한 법이다.성공한 군주는 ‘의회 정치’ 활용의회와의 협상 결과물 英 대헌장 佛 삼부회 지지 얻은 필리프 4세다수결로 왕 선출했던 獨 ‘선제후’의회가 왕권 안정의 교두보 역할의회 협력 없인 왕권도 위험루이 16세 의회제 활용할 줄 몰라佛절대왕정이 대혁명 배경 되기도의회의 힘 무시했던 일부 통치자정치적 역풍 맞아 국정 혼란 초래의회 정치의 또 다른 선진국인 독일에서는 통치자와 신민 대표자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였다. 전통적으로 지방분권적 성향이 유난히 강해서 토착 세력이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이었던 독일에서는 통수권자인 왕조차 지방 호족들 손에 선출됐다. 특정 가문에서 왕위가 세습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때도 왕위 계승에 대한 귀족들의 동의 절차가 필요했고 왕권의 정통성은 귀족들의 선출로 보장됐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선제후들이 왕을 선출하는 금인칙서가 반포(1356)되기도 했다. 왕이 죽으면 왕국을 대표하는 선제후 7명이 모여 다수결로 새로운 통치자를 뽑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신임 왕은 자신을 선출해 준 데 대한 답례로 귀족들과 일종의 선거 계약을 해야 했다. 이는 독일어로 ‘발카피툴라티온’(Wahlkapitulation)이라고 하는데 ‘카피툴라티온’(Kapitulation)은 사실 항복이라는 뜻이니 왕권은 귀족권, 즉 통치자는 신민의 대표자들과 타협·협상·협력적 태도를 보여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통치자·선제후단은 합의제적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1356년의 ‘선거법 개정’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왕과 선제후들이 1년 이상 협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양측이 서로 합의해 선거법을 만들었으므로 왕위 계승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줄어들었고, 동시에 선제후단은 왕국을 대표하는 대의 기구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흑사병이라는 사상 초유의 감염병에 직면하자 왕과 선제후단은 합심해서 국가의 통일성과 안정성을 확보해 위기를 타개하고자 했다. 양측은 공공선을 지상 목표로 삼아 인내심을 갖고 정치적 대화와 타협으로 국정을 안정화할 수 있었다.●혁명까지 불러일으킨 슬로건 중세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로 평가받는 프리드리히 2세는 대귀족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면서 그들의 영지에 동의 없이 과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의회주의적 전통은 훗날 “대표 없이 조세 없다”는 슬로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18세기 중반 영국이 북미 식민지에 세금을 부과하자 신대륙에 정착한 영국인은 “국민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아 의회에 보내지 않으면 세금을 부과당할 수 없다”며 저항했다. 자신들을 대표할 의회 의원을 선출할 투표권이 없으니 영국 정부에 세금을 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군대를 보내 진압하면서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이 벌어졌고 영국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식민지를 잃었다. 마그나카르타의 협상자들이 과세를 둘러싼 팽팽한 기 싸움을 현명하게 해결했지만, 후대의 영국인은 그러지 못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를 거치지 않고 국민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던 영국 왕실의 정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식민지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은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대표, 즉 의회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당시 영국 왕인 조지 3세에게 희망을 품고 기다렸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통치자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점차 분노로 바뀌었다. 결국 이들은 1774년 ‘대륙 의회’를 구성하고 영국 왕실에서 독립하면서 직접 대안을 찾으려고 했다. 의회와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정부가 붕괴한 역사적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을 들 수 있다. 1789년 5월 5일 프랑스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베르사유궁전에서 루이 16세는 신분제 회의를 소집했다. 절대왕정이 확립되면서 1614년 이후 단 한 번도 개최되지 않다가 무려 175년 만에 의회가 열렸으니 제대로 운영될 리 없었다. 의회가 열리기 전부터 사람들은 인권·자유와 평등·민주주의적 국가 운영 방식 등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했기에 이들의 정치의식은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라고 요구했으나 왕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왕이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할 수 있는 ‘민생 행보’를 펼치기 어려웠던 시대였기에 의회를 통해 우회적으로나마 이런 급격한 변화를 읽어 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터이다. 하지만 자신의 막강한 공권력에만 의존했던 왕은 신민의 대표 기구인 의회라는 좋은 제도를 활용할 줄 몰랐다. 이처럼 꽉 막힌 정치 상황에서 스스로 주권자로서 인식하기 시작한 국민은 새로운 국회(국민의회)를 구성하고 혁명을 일으켰다. 루이 16세는 몰래 도망치다가 붙잡히는 수모를 당했고, 결국 의회가 내린 사형 결정에 따라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한 달 뒤면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그 결과가 여소야대이든 여대야소이든 대통령은 의회를 국정 파트너로 존중하고 의회와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협치하며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의회를 뜻하는 ‘팔러먼트’(parliament)라는 단어가 13세기부터 사용됐는데, 어원은 중세 프랑스어의 ‘파를레’(parler·말하다)에서 파생됐다. 이처럼 본래 의회는 왕과 신민의 대표자들이 협상을 벌이는 기구였음을 잊지 말자.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 의회민주주의가 발전한 선진국의 역사적 사례가 보여 주듯이 성공한 통치자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의 정치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상응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격상된 의회는 공동체의 번영을 이루려고 통치자와 기꺼이 협력했다. 하지만 의회를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은 통치자들은 정치적 역풍을 맞아 목숨을 잃거나 심지어 국가에 손해를 입혔다. 역사는 성공한 통치자가 되려면 의회와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함을 말해 준다. 중앙대 교수·작가
  • 맨발의 집시, 파리를 홀리다

    맨발의 집시, 파리를 홀리다

    올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2024 파리올림픽은 파리에 있는 유구한 문화유산에서 올림픽 경기를 치르는 것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베르사유궁전 정원에서 승마, 앵발리드에서 양궁, 그랑팔레에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식인데 그냥 찍어도 그림이 될 풍경에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꿈 같은 일은 많은 이를 설레게 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찬란한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구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파리올림픽에도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다.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2019년 화재가 발생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올해 4월까지 복원하고 싶어 했지만 코로나19 확산과 환경 문제 등으로 계획이 미뤄져 올림픽이 끝난 뒤인 올해 12월에나 본모습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를 상징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올림픽 기간에 제대로 못 본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이를 조금이나마 달랠 기회가 있다. 바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서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한국어 버전은 6년 만이다.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 때문에 꼽추인 콰지모도의 이야기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진짜 핵심 인물은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다. ‘백년전쟁’, ‘페스트’ 등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교회가 타락을 거듭해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로 꼽히는 15세기를 배경으로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 대주교인 프롤로,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의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을 그렸다. 이들은 사랑은 저마다의 이유로 금지돼있다. 콰지모도는 순수한 영혼이지만 외모가 추하고, 프롤로는 성직자, 페뷔스는 이미 약혼한 몸이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랑 때문에 이들이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중세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원작에서는 에스메랄다가 만 16세의 소녀지만 뮤지컬에서는 30대의 유리아, 정유지, 솔라가 맡았다. 세 배우 모두 농익은 관록으로 세 남자는 물론 파리 전체를 홀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뽐낸다. 각자 매력이 달라 빠져들게 되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회전문 관객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다. 특히 이들이 과감히 맨발로 무대 위에 등장해 춤을 추는 모습은 집시 여인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프랑스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는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성 스루’(Sung through) 형식이다. 뛰어난 음악성과 운율을 살린 대사 및 가사, 노래와 연기를 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가 나뉜 점이 특징이다. 초반부터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춤과 마치 서커스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움직임 등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에 깊이 있는 철학적 주제를 다뤄 대중성을 추구하는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매력이 있다. 남자들이 먼저 좋아해 놓고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에스메랄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면서 에스메랄다는 비극을 맞는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그렇게 스러져가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희극적인 뮤지컬과는 다른 진한 여운을 남긴다.탄탄한 서사와 다양한 볼거리, 아름답고 절절한 넘버, 마음에 전해오는 감동이 어우러져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23개 나라에서 150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명작 뮤지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작품을 대표하는 넘버 ‘대성당의 시대’는 부르는 이마다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며 몇 번이고 듣고 싶게 한다. 3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 공연이 끝나면 부산(3월 29일~4월 7일), 대구(4월 12~21일), 경기 이천(4월 26~28일) 공연으로 이어진다.
  • “독재적이고 교회 분열시켜” 교황 맹비난 추기경…교계 술렁

    “독재적이고 교회 분열시켜” 교황 맹비난 추기경…교계 술렁

    프란치스코 교황을 맹비난하는 익명의 추기경의 글이 떠돌아 교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보수 가톨릭 웹사이트 데일리 컴퍼스에는 ‘데모스 2세’의 이름으로 ‘바티칸의 내일’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해당 글에서는 교황이 “독재적이고 복수심이 강하며 최근 교회를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분열시켰다”고 맹렬히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민중’이라는 뜻의 데모스는 2년 전 가톨릭교회 추기경단에 나돌던 비밀 쪽지의 작성자다. 쪽지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신랄한 공격과 함께 차기 교황이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담겨있었는데 이 메모는 훗날 조지 펠(1941~2023) 추기경이 작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데모스를 따라 가명을 쓴 데모스 2세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 있다. 해당 글은 한 추기경이 다른 추기경들과 주교들의 제안을 취합한 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데모스의 비밀 쪽지처럼 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가득 실렸다. 데모스 2세는 교황의 강점으로 “약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봉사, 피조물의 존엄성에 대한 관심”을 언급하며 “고통받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포함됐다”고 꼽았다.그러나 “단점도 명백하다”면서 “독재적이고 때로는 보복적인 것처럼 보이는 통치 스타일”을 문제로 꼽았다. 법률문제에 대한 부주의, 정중한 의견 차이조차 용납하지 않는 점 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데모스 2세는 “가장 심각한 것은 신앙과 도덕 문제에 있어서의 모호함이 신자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혼란은 분열과 갈등을 낳는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복음적 증거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는 개혁파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저격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 피임,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불법 이민 문제 등에 전향적이었고 가톨릭의 식민 지배 가담과 사제의 성추행을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특히 최근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허용하며 보수파의 거센 반발을 샀다. 데모스 2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이을 차기 교황이 갖춰야 할 7가지 덕목을 제안했다. 교황이 마음대로 교리를 변경할 수 없으며, 교황이 교회의 가르침을 세상에 편안하게 적응하도록 개조할 권한이 없다는 등의 내용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 교황과 정반대의 인물을 차기 교황으로 선출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 글이 올라오기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감기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방문했다. 교황을 새로 선출하는 ‘콘클라베’는 원래 교황의 사후 소집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아있을 때 소집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데모스 2세의 글은 후임자를 선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데모스 2세는 “이 기고가 다음 교황청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필요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성당에서 ‘상체 노출’했다가 국제수배령 받은 여성 [포착]

    성당에서 ‘상체 노출’했다가 국제수배령 받은 여성 [포착]

    우크라이나 국적으로 알려진 20대 여성이 3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선정적인 영상을 찍었다는 이유로 국제 수배령을 받게 됐다. 미국 뉴욕포스트 등 외신의 2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2021년 우크라이나 국적의 모델인 롤리타 보그다노바(24)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있는 성 바실리 대성당 앞에서 영상을 촬영했다. 그녀는 상의를 들어 올리며 가슴을 노출하는 등 선정적인 모습을 담은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SNS에 업로드 했다. 당시 해당 영상이 논란이 되자 당국은 그녀에게 출국 금지를 명령했고, 보그다노바 역시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러시아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해당 영상 속 여성이 자신인 것은 맞지만, 영상을 SNS에 업로드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후 그녀의 SNS에는 그녀가 미국 등지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물들이 올라왔고, 일각에서는 그녀가 러시아 당국과의 약속을 어긴 채 미국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러시아 당국은 20일 여전히 문제의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면서, 해당 여성에 대한 국제 수배령을 내린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내부의 보수 정통주의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및 평화를 요구하는 성직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최근 옥중에서 의문사하며 푸틴 대통령과 당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센 가운데, 대중의 시선을 환기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 금지된 사랑이 만든 아름다운 궁전, 잘츠부르크 미라벨 궁전 [한ZOOM]

    금지된 사랑이 만든 아름다운 궁전, 잘츠부르크 미라벨 궁전 [한ZOOM]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의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1559~1617)가 우연히 연회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살로메 알트(Salome Alt)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살로메 역시 오래 전부터 디트리히 대주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성직자인 주교는 여자를 만나거나 결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남을 이어갔다. 얼마 후 디트리히는 살로메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교황님께 허락을 받을 테니 살로메를 저에게 주십시오.” “대주교님은 결혼하실 수 없는 몸입니다. 저는 제 딸이 대주교님의 숨겨진 여인으로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디트리히와 헤어질 수 없었던 살로메는 아버지를 떠나 디트리히에게로 갔다. 디트리히도 교황에게 살로메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교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비밀결혼을 이어갔고 열 다섯 명의 아이가 생겼다. 디트리히는 살로메와 아이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606년 잘자흐강(Salzach) 건너편에 ‘알테나우 궁전’을 지었다. 알테나우는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의 집’ 이라는 뜻이었다.금지된 사랑의 슬픈 최후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과 종교전쟁 그리고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시기였다. 디트리히는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1573~1651)로부터 함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대항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디트리히는 그 동안 많은 도움을 준 황제를 배신할 수 없어 막리시밀리언의 제안을 거부했다. 막시밀리언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한 디트리히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 잘츠부르크를 공격했다. 디트리히는 황제가 이번에도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황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결국 디트리히는 막시밀리언의 편에 선 사촌동생 호헤넴스(Hohenems)에 의해 대주교 자리에서 쫓겨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와 알테나우 궁전에서 쫓겨난 살로메는 서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몰래 편지만 주고받을 수 있었다. 1617년 디트리히는 알테나우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감옥에서 눈을 감았다. 디트리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살로메는 죽을 때까지 상복을 벗지 않고 남편을 그리워하다가 1631년 눈을 감았다.남은 이야기 디트리히를 몰아내고 대주교의 자리에 오른 호헤넴스는 디트리히와 살로메가 떠난 알테나우 궁전에 계속 머물렀다. 그리고 궁전의 이름을 ‘미라벨 궁전’ (Mirabell Palace)으로 바꾸었다. 호헤넴스 다음으로 대주교가 된 로드론은 미라벨 궁전에 별채를 짓고 정원을 넓혀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금지된 사랑이 만든 아름다운 미라벨 궁전은 1818년 화재로 훼손되었다가 복원된 후 지금은 잘츠부르크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사제들의 ‘수녀 낙태 강요’ 외면”

    “프란치스코 교황, 사제들의 ‘수녀 낙태 강요’ 외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의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서도, 실질적인 조처를 취하는 데는 수년간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성학대 성직자 추적단체 ‘비숍어카운터빌리티’의 공동창립자 앤 바렛 도일은 이날 로마에서 기자들을 만나 “교황은 혐의를 받는 학대자들을 두둔하는 반복적 패턴을 보여왔다”고 주장했다. 2019년 이후 발생한 10건의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사건에서 교황이 사실상 가해자들의 편을 들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예컨대 예수회 신부인 동시에 저명한 예술가였던 마르코 루프니크 신부가 30년간 수녀 등 수십명을 성적으로 학대하고서도 공소시효를 이유로 처벌받지 않고 고향인 슬로베니아 교구로의 이적이 허용된 게 대표적이라고 도일은 지적했다. 도일은 “교황이 개혁에 진심이 아니라거나 교황청 내 반대에 막혀 있다는 게 아니다. 난 그가 개혁에 반대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내놓은 조처는 별다른 효과가 없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 출신의 활동가 도리스 라이징거는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사상 처음으로 수녀를 대상으로 한 일부 성직자들의 성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이 문제에 맞서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은 낙태를 살인청부에 비교하며 공개적으로 규탄했지만, 수녀들에게 낙태를 강요하는 성직자들에는 눈을 감았다”면서 성범죄 피해를 당한 많은 수녀들이 교단에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 교황청은 아직 구체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3년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칠레 전직 신부의 성범죄를 은폐한 의혹을 받는 후안 바로스 주교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거센 비난을 받자 공개 사과하고 성비위를 저지르는 가톨릭계 인사들을 척결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왔다. 2021년에는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 처벌을 명문화하는 등 38년 만에 교회법을 개정하기도 했으나, 활동가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도해 도입한 여러 대책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해 왔다.
  • 흑인 목회자 1000명 ‘가자 휴전’ 압박… 바이든의 견고한 집토끼가 흔들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발발 이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휴전을 촉구한 흑인 목사들이 지금까지 1000여명에 이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무슬림·아랍계의 바이든 지지 철회 움직임에 이어 민주당의 공고한 지지 기반이 연속해서 이탈하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미 전국적으로 교인 수천만명을 대표하는 흑인 목회자들은 지난해 10월 백악관 좌담회를 비롯해 공개 서한, 광고를 통해 민간이 수천명이 희생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공격이 중단되도록 미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해 왔다고 NYT는 전했다. 경합주인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제일 침례교회 티머시 맥도널드 담임목사는 “흑인 종교 지도자들이 바이든 행정부에 극도로 실망하고 있다”고 했다. 전국 아프리카계 미국인 성직자 네트워크 공동 의장인 바버라 윌리엄스 스키너는 “전쟁과 군국주의, 빈곤, 인종차별이 모두 연결된 것을 보았다”며 “중동 전쟁은 흑인들에게 민권운동 이후 처음으로 뿌리 깊은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방문하며 흑인 표심 잡기에 나섰지만 ‘집토끼’로 여겼던 이들의 이탈 분위기가 드러난 것이다. NYT는 “민주당에 견고했던 흑인들 지지에 균열이 생기면 11월 대선에 엄청난 의미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공화당은 이날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안을 발의하며 대선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이민 정책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마요르카스 장관이 미국·멕시코 국경 관리에 실패했다는 게 이유로, 그가 이민 관련 법 준수를 고의적, 체계적으로 거부해 국경 일대 이주민의 폭발적 증가를 야기했다는 주장이다.
  • 프라하의 상징 ‘카를교’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한ZOOM]

    프라하의 상징 ‘카를교’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한ZOOM]

    체코 프라하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카를교’(Charls Bridge)를 선택할 것이다. 블타바 강(Vltava River) 위에 놓여 있는 길이 520m, 폭 10m의 이 다리는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조 다리의 하나로 손꼽힌다. 1342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체코) 국왕인 카를 4세(Karl IV· 1316~1378)는 천재 건축가 페테르 파를러(Peter Parler·1333~1399)에게 홍수로 떠내려간 다리를 재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1357년 7월 9일 5시 31분 새로운 다리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놓였다. 그런데 왜 ‘1357년 7월 9일 5시 31분’이었을까?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날짜 표기법으로는 ‘1357년 7월 9일 5시 31분’이 맞지만, 당시 유럽의 날짜 표기법은 일과 월의 순서가 반대였다. 다시 말해 ‘7월 9일’이 아닌 ‘9일 7월’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날짜 표기법으로 정리하면 ‘1357년 9일 7월 5시 31분’이 되며, 숫자로만 나타내면 ‘135797531’이 된다. 가운데 ‘9’를 기준으로 홀수가 좌우균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수의 배열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균형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덕분에 카를다리는 1402년 완공 후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며 프라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블타바 강물에 생매장된 성직자 카를교를 만든 카를 4세는 체코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황제였지만, 그의 아들 바츨라프 4세(Wenceslaus IV, 1361~1419)는 게으르고 무능한 황제로 전해지고 있다. 바츨라프 4세는 평소 소피아 왕비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비의 고해신부였던 얀 네포무츠키(체코어 Svatý Jan Nepomucký, 1345~1393) 신부를 불러 소피아 왕비가 고해성사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말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얀 신부는 비록 황제의 명령이라고 해도 따를 수가 없었다. “성직자가 고해성사 내용을 누설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황제의 명령이라 해도 따를 수 없습니다.” 얀 신부는 모진 고문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얀 신부는 혀를 뽑힌 후 카를다리로 끌려가서 블타바 강물 속에 생매장되었다. 얼마 후 얀 신부가 빠진 지점 근처에서 다섯 개의 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얀 신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얀 신부의 시신은 프라하 성 안에 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체코어 Katedrála svatého Víta)으로 옮겨졌고, 고해성사의 숭고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얀 신부를 기리기 위한 동상이 유럽 곳곳에 세워졌다. 얀 신부가 순교한 카를다리에도 얀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카를다리의 양쪽 난간에는 체코인들이 존경하는 성인(聖人)들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얀 신부만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동상의 왼손은 십자가를, 오른손은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를 들고 있다. 그리고 머리 뒤에는 얀 신부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별 장식이 달려 있다. 유럽 곳곳에는 수많은 성인들의 동상과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얀 신부만이 머리에 다섯 개의 별 장식을 달고 있다.카를교 보수를 위한 악마와의 은밀한 거래 카를교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얀 신부 사건 후 카를다리 일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곳은 얀 신부가 강물에 던져진 지점이었다. 온갖 방법으로 보수작업을 했지만 다리는 다시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방법으로 보수공사 책임자는 악마를 찾아갔다. “다리가 원래 모습을 되찾도록 도와주시오. 도와주신다면 보수된 다리를 처음으로 건너는 생명을 당신에게 바치겠소.” 악마의 도움으로 카를교는 원래 모습을 찾았다. 보수공사 책임자는 악마와 약속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다리가 개통되는 날 주변을 막고 닭 한 마리를 풀어 이 닭이 다리를 처음 건너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의 생명이 아닌 닭 한 마리만 악마에게 바치면 되는 것이었다.하지만 악마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계획을 눈치챈 악마는 카를교가 개통되는 날 보수공사 책임자의 조수로 변신한 다음 보수공사 책임자의 아내를 찾아갔다. “책임자님께서 공사 현장에서 크게 다치셨습니다. 서둘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보수공사 책임자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카를교로 달려갔다. 그리고 남편을 찾기위해 카를교를 막고 있는 보초들을 제치고 들어갔고, 아무것도 모른 채 보수공사 책임자가 놓은 닭보다도 먼저 카를교를 건너고 말았다. 한정구 칼럼니스트 deeppocket@naver.com
  • 원작의 힘…관능의 몸짓, 무대를 압도하다

    원작의 힘…관능의 몸짓, 무대를 압도하다

    “언제든 오세요. 무슨 계절이든, 그대가 원할 때 내 집은 그대의 집.” 확실히 눈이 호강하는 뮤지컬이다. 비보잉, 발레, 아크로바틱 등 장르를 넘나드는 화려한 몸짓의 향연. 거기서 관객들은 자유와 불안이 동시에 담긴 집시들의 영혼을 강렬하게 확인한다. 맨발로 무대 위에서 고혹적인 매력을 뽐내는 에스메랄다를 보고 있으면, 그를 향한 세 남자의 ‘금지된 사랑’도 아주 잠시나마 이해가 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지난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2018년 이후 6년 만의 공연이다. 1998년 프랑스에서 초연된 뒤 지금까지 전 세계 23개국, 9개 언어로 번역됐다. 국내에서도 2007년 이후 누적 관객 110만명을 동원한 스테디셀러다.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프랑스 뮤지컬의 대표작이다. 대사 없이 오직 노래로만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전하는 ‘성 스루’(sung through) 뮤지컬이기도 하다.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5세기 파리와 노트르담을 배경으로 매력적인 보헤미안 여성 에스메랄다와 그녀를 향한 세 남자의 욕망을 그린다.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와 대주교인 프롤로,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는 모두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저마다의 이유로 ‘금지돼’ 있다. 프롤로는 이성을 욕망하면 안 되는 성직자이고 페뷔스는 이미 약혼한 사람이 있다. 콰지모도는 누구보다 맑은 영혼을 가진 인물이지만 외모가 추하고 끔찍하다.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역동적인 군무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에서는 주연부터 앙상블까지 배우들이 직접 노래와 춤을 소화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역할과 춤을 추는 역할이 구분돼 있다. 노래하는 배우들 외에도 전문 댄서들이 나서서 현란한 안무로 볼거리를 선사한다. 장르도 현대무용, 발레, 브레이크 댄스 등으로 다양하다. 2막에서 천장에 매달린 종을 붙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장면은 그 아찔함이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하다. 제작진은 “안무 하나하나가 극중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상징하며 작은 손짓, 발짓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지난 27일 저녁 공연에서 프롤로를 연기한 민영기 배우는 그의 잔인하고도 뒤틀린 감정을 광기 어린 표정과 폭발적인 넘버(노래)를 통해 인상적으로 담아 냈다. 뮤지컬계에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정성화의 콰지모도가 부르는 넘버 ‘불공평한 이 세상’은 에스메랄다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녀에게 헌신하지만 ‘좋은 친구’ 이상으로 그녀에게 성애적인 사랑은 기대할 수 없는 콰지모도의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정유지 역시 에스메랄다다운 과감함과 요염함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공연이 끝나고 플레이 리스트에 챙겨갈 만한 곡으로는 ‘대성당의 시대’가 있다. 뮤지컬을 시작할 땐 파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가 노래하지만 커튼콜에 이르러서는 배우 모두가 합창하며 색다른 감동을 준다. ‘대성당의 시대’ 등이 포함된 뮤지컬 OST는 과거 발매와 동시에 무려 17주간 프랑스 내 음악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10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렸다고 한다. 공연은 오는 3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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