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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보수 이슬람 왕국 사우디 “엔터 강국 될 것” 깜짝 발표 이유는?

    초보수 이슬람 왕국 사우디 “엔터 강국 될 것” 깜짝 발표 이유는?

    원리주의 이슬람 왕정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엔터테인먼트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파격안을 내놨다.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의혹으로 국제 투자 유치에 차질을 빚는 사우디 왕실의 승부수로 풀이된다. 22일(현지시간) 아랍뉴스 등에 따르면 사우디 오락국(GEA)은 “사우디를 세계 10대 국제 엔터테인먼트 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라면서 “라마단 기간 중에도 이슬람 학자의 감독 하에 이슬람 성격의 오락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란 읽기 경연 등 프로그램에 거액의 상금을 걸 예정이다. 이외에도 축구 팬들을 겨냥해 전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을 초청한 각종 행사, 미국 프로농구(NBA) 경기 유치 등 서방에서 인기 있는 이벤트 개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날 발표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사우디는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여성 권리 운동가, 성직자, 지식인을 체포했고 지난 10월에는 카슈끄지를 살해해 국가적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잠재적인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던졌다”면서 “사우디가 초 보수국가의 이미지를 떨치려고 한다”고 평가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원불교 은산 김장원 원정사 열반

    원불교 은산 김장원 원정사 열반

    원불교 교단의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은산 김장원 원정사가 지난 21일 오후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열반했다. 세수 78세, 법랍 55년. 은산 원정사는 ‘종명과 공명은 수화(水火)라도 피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 교단의 대의라면 물처럼 합한다는 신념을 지킨 성직자로 유명하다. 특히 원불교 중앙총부 자립경제 구축과 산업기반 조성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은산 원정사가 추천한 전무출신(원불교 성직자)은 40여명에 이른다. 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3일 오전 10시 30분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진행된다. (063)850-3365.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피와 뼈의 아이들(토미 아데예미 지음, 박아람 옮김, 다섯수레 펴냄) 스물세 살 신예 작가가 서아프리카 문화와 신화를 바탕으로 창조한 판타지 소설. 마법을 가진 마자이와 그렇지 못한 코시단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던 오리샤 왕국. 그러다 마법을 갖지 못한 왕이 마자이들을 시기해 몰살했고, 어린 제일리 역시 엄마를 잃었다. 그로부터 11년 후 제일리는 왕의 추격을 피해 잃어버린 마법을 찾아 나섰다. ‘새로운 J.K. 롤링의 탄생’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664쪽. 1만 6000원.절대 여자(아드린 플뢰리 지음, 표원경 옮김, 한동네 펴냄) 페미니즘을 논하며 사회 개선을 말하는 책들은 많지만 자기 자신을 돌보고 공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등한시된다. 어린 아들의 엄마이자 이혼녀, 서른아홉의 젊은 작가인 저자가 자신의 여성성을 배신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로 살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278쪽. 1만 4500원.낯선 중세(유희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성직자 문화와 민속 문화, 기독교적 단일성과 게르만·로마적 다양성, 이성과 신앙 등이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공존했던 게 중세 문화다. 오늘날 유럽인들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중세에서 비롯된 문화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중세 역사 입문서. 504쪽. 2만 3000원.달빛 노동 찾기(신정임 외 지음, 오월의봄 펴냄) 야간 노동자들의 일상을 기록한 인터뷰집. 사람들이 ‘24시간 365일 서비스’라는 편의를 누릴수록 누군가의 밤과 휴식은 점점 더 짧아진다. 장시간 야간 노동이 노동자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고, 그들이 받고 있는 노동의 가치 등을 빠짐없이 적었다. 214쪽. 1만 4000원.그들은 왜 극단적일까(김태형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이별을 통보한 연인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고, 잊을 만하면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 사건이 들려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뉴스 댓글에서도 극단적으로 난투극을 벌인다. 우리 사회의 극단주의를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배타성, 이성적 사고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인 ‘광신’, 자신이 믿는 것을 타인도 믿으라고 요구하는 ‘강요’, 자신이 믿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을 증오하는 ‘혐오’에 기초해 분석했다. 287쪽. 1만 5000원.하루사용설명서(김홍신 지음, 해냄 펴냄) 매일 하나씩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 써 내려간 산문집. 작가는 남을 도울 때 오히려 내가 행복해지는 ‘헬퍼스 하이’ 현상을 소개하며 나를 먼저 돕는 헬퍼스 하이를 느껴야 남을 돕는 내공을 쌓을 수 있다고 덧붙이는 등 일상적인 지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통찰을 전한다. 416쪽. 1만 6000원.
  • 종교는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종교는 장애(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오는 2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전법회관 지하1층 선운당에서는 종교 속 장애와 관련해 독특한 행사가 열린다. 장애인 불자 모임인 보리수아래(대표 최명숙)가 ‘스님과 신부가 만나 종교와 장애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마련하는 세미나. 불교를 비롯해 개신교와 천주교 등 각 종교의 장애에 대한 견해 차를 살피면서 장애인 포교 방안 등을 논의하게 된다. 발제자는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 담준 스님과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전 원장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담준 스님은 ‘불교윤리 측면에서 본 장애’, 이수철 신부는 ‘가톨릭에서 보는 장애’를 각각 발표한다. 담준 스님은 중앙승가대 승가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원효 윤리사상에 관한 연구’ ‘원효 윤리의 공리주의적 해석 가능성 검토‘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수철 신부는 1982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해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미국 성 요한 세인트 존 신학대학원에서 수도영성을 공부했으며 ’사랑 밖에 길이 없었네‘를 저술했다. 세미나에서는 각각의 종교에서 부닥치고 느낀 문제점을 장애 종교인들이 직접 표현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보리수아래 회원인 홍현승(뇌성마비)씨와 이상복(심장장애) 파주한사랑공동체 원장이 ‘내가 바라는 종교’라는 주제로 각각 시와 수필을 발표한다. 최명숙 대표는 “사찰과 성당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부딪히는 일상적인 만남을 중심으로 바른 종교 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며 “장애인들이 원하는 종교 생활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종교 안에서 그들의 문화예술활동과 종교활동의 연계 가능성을 알 수 있는 기회”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천주교 주교들은 개XX, 죽어라” 두테르테 또 독설“

    “천주교 주교들은 개XX, 죽어라” 두테르테 또 독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천주교 성직자에게 망언과 독설을 퍼부었다. 11일 일간 인콰이어러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필리핀 마닐라의 한 학교 기공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주교들이 ‘개XX’라는 것”이라며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두테르테는 또 “주교 대다수는 동성애자”라며 “금욕생활을 취소하고 남자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막말을 이어갔다. 그는 이어 “주교들은 돈이 많다”면서 “거리를 지나갈 때 금품을 강탈하고 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자신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재판 없이 진행되는 초법적 처형 문제를 현지 천주교 주교와 성직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것에 반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필리핀의 ‘철권통치자’로 불리는 두테르테는 지난해 12월에도 “주교들은 쓸모가 없다”면서 “바보 같은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비판하는 것인 만큼 죽어야 한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성경의 창세기와 원죄를 거론하며 “완벽한 어떤 것을 만들고 그 우수함을 해치는 이벤트를 생각하는 이런 멍청한 신이 누구냐”고 말했다. 그는 또 “신이 자신을 기쁘게 해줄 사람이 없고 곁에 여자가 없어서 외로운 나머지 지구와 만물,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고 말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심석희 미투] 침묵의 대물림… ‘그루밍 성폭력’에 스러지는 운동부 청춘들

    [심석희 미투] 침묵의 대물림… ‘그루밍 성폭력’에 스러지는 운동부 청춘들

    4년새 63%↑성폭력 상담·신고 93건 폐쇄성 탓 고발 땐 선수 생활 접어야 체육계 “터질게 터졌다, 빙산의 일각” 문화연대 등 오늘 자성촉구 기자회견“감독 선생님이 부르더니 ‘수비를 이렇게 하라’면서 민감한 부위를 만질 때가 있어요. 그냥 참고 넘어가죠.”(중학교 여성 핸드볼 선수 A양) 쇼트트랙 여자대표팀 대들보인 심석희(22·한국체대) 선수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에게 고2 때부터 상습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준 가운데 체육계 내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A양 사례처럼 지도를 빙자해 학생 선수들의 몸을 만지는 등 성폭력을 저지르는 현장 지도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 선수의 폭로가 ‘체육계 미투’의 시작이 될지 주목된다. 9일 체육학계에 따르면 초·중·고·대학 소속 학생 선수들이 성폭력에 노출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8년 진행한 ‘학생 선수 인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중·고교 학생 1139명 중 63.8%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는 언어적 성희롱이 58.5%로 가장 높았고 강제추행(25.4%), 성관계 요구(1.5%), 강간(1.0%)까지 있었다. 폭행도 일상적이었다. 응답 대상 중 78.8%가 ‘훈련 태도 등을 이유로 맞거나 욕을 듣거나 기합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 인권위 실태조사 이후 10년간 어린 선수들의 인권 실태를 살핀 대대적 조사는 없었다. 하지만 심 선수의 고백 등을 보면 상황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신고·상담 건수는 2014년 57건에서 지난해 93건으로 63.2% 늘었다. 체육계 내부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어린 선수들은 성폭력·폭행 등을 당하고도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 탓에 심 선수처럼 용기 내는 일이 드물다. 우선 선수들이 초·중·고교 때부터 감독·코치를 ‘아버지’처럼 모시는 비정상적인 사제 관계 속에서 운동하다보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어렵사리 고발해도 “딸 같아서”라며 친밀감의 표현처럼 덮어버리면 피해자만 곤란해지기도 한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성직자와 교인 관계처럼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도 ‘그루밍 성폭력’(신뢰 관계를 쌓아 심리를 지배한 뒤 가하는 성폭력)이 흔하다”고 말했다. 수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따져봐야겠지만 심 선수도 6살 때부터 자신을 지도한 조 전 코치의 폭행 등에 제대로 저항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체육계 특유의 폐쇄성도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한 종목의 코치들은 대부분 학교 선·후배 등으로 엮여 있어서 어린 선수가 특정 지도자를 고발하면 선수 생활을 접을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국내 운동부 학생 다수는 엄청난 훈련량 탓에 수업을 제대로 못 받아 운동으로 성공하는 것 외엔 대안 없는 삶을 산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설령 지도자의 잘못이 인정돼도 솜방망이 징계만 받고 6개월 뒤면 돌아올 것”이라는 인식이 피해자를 더욱 위축시킨다. 김상범 중앙대 체육과학대학 교수는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의 폭행 혐의 재판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가 생겨 용기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심 선수의 폭로가 피해 뒤 침묵하던 다른 선수들의 생각을 바꿔 체육계의 자정(自淨)을 알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정 교수는 “체육계의 잘못된 관행이 이번에도 고쳐지지 않으면 바로잡을 기회가 영영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문화연대 등 관련 단체들은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범죄를 방조하는 체육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서울신문은 운동부 학생이나 성인 선수들에게 발생하는 폭행, 성폭력, 언어폭력 등 인권 침해 실태를 집중 취재하고 있습니다. 관련 사례를 경험하셨거나 목격하셨다면 제보(dynamic@seoul.co.kr) 부탁드립니다. 제보자 신원 등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 [글로벌 In&Out] 70년 만의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회 신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70년 만의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회 신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2018년은 역사적인 사건이 많은 한 해였지만 한국 매체가 간과한 사건이 있다. 그것은 분단 후 거의 70년 만에 재개된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이다. 본 기사에서는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의 역사는 조선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선교회는 1897년 고종이 아관파천을 끝내고 대한제국 선포를 준비하던 무렵, 러시아 제국 외교사절단 부영사 대행의 성직자 파송 요청에 따라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 그 선교 활동은 1900년 2월 대수도사제가 한성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한국에 새로 들어온 정교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선교회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러시아어, 기독교 교리 등을 가르쳤는데, 그중 한국인 14명이 세례를 받았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은 1903년 재정비한 선교회 부속학교에서 문을 열었고 성 니콜라이 성당으로 명명되었지만 불과 1년 후 문을 닫게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발발 후 한국에 진주한 일본군은 러시아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한편 한국선교회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러일전쟁 후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 활동은 1906년 재개되었다. 1906~1912년 성찬예배가 한국어로 완역됐고 선교회 부속의 새 남학교들과 여학교가 설립되었다. 총 322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중 최초의 조선인 정교회 성직자도 생겼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대위기를 맞았다. 1918년 종교단체 자금 공급이 중단되고 자산과 토지가 몰수돼 러시아 정교회는 재정난에 봉착했다.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의 최고회의기구인 성 시노드가 1923년 그 관할권을 도쿄 대주교 세르기 티호미로프에게 이양했고 재산을 일본 정교회 재단 명의로 등기했다. 조선선교회는 러시아인 일본대주교의 관할하에 발전해 나갔으며 1935년 조선인 정교도는 약 1100명에 달했다. 1940년대에 일본 당국이 조선선교회를 세르기로부터 독립시키려 압력을 가했고, 결국 1941년 10월 초 조선선교회의 전권이 1936년 조선선교회 관리자로 임명되었던 폴리카르프 프리마크 대수도사제에게 이양되었다. 해방 전후 조선선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의 동아시아 총대주교대리구에 편입되었고 곧이어 1945년 12월 27일부터 폴리카르프 신부의 관리하에 ‘임시자치’가 공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 후 소련의 위신이 극도로 높아지자 그동안 볼셰비키 정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망명한 백계 러시아 디아스포라도 친소련파와 반소련파로 분열되었다. 또한 1946년 이후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성립되면서 선교회는 일제강점기 때보다 더욱 공공연한 탄압을 당하게 되었다. 특히 1947년 반소련파 러시아인들과 일부 한국인 정교회 신도가 미소공위 소련 대표단이 폴리카르프 신부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이용해 폴리카르프 신부를 쫓아내고 선교회의 소속을 바꾸기로 했다. 그들은 주일본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지지하에 일본 정교회의 관할권을 장악한 북미관구 소속 베냐민 대주교의 협조를 얻었다. 그 결과 한국선교회는 최종적으로 일본 정교회 산하로 들어갔고 폴리카르프 신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경찰에 체포되어 1949년 6월 말 추방당했다. 선교회는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성당이 파손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나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군인들에 의해 복구되었다. 1955년 12월 25일 일본 정교회 산하에서 다시 콘스탄티누폴리스 정교회의 관할로 옮겼다. 이렇게 한국 땅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 활동이 중단된 지 70년 만인 2018년 12월 28일 러시아 정교회 성 시노드 회의가 남북의 신도들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총대주교대리구를 신설하고 러시아인 신부가 한국에 입국함으로써 한국정교사에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다.
  • “천주교 1순위 과제는 사목자 리더십·인성교육 강화”

    한국 천주교계는 사목자들의 리더십과 인성교육 강화를 쇄신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생각한다. 또 성직자들의 독선과 소통부족을 가장 개선할 요소로 여긴다. 이 같은 사실은 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사목연구소가 지난 연말 주교회의와 각 교구 홈페이지, 사목연구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실시해 8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확인됐다. 천주교 구성원 886명 대상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선 교회의 쇄신과 복음적 성장을 위해 시급한 과제로 응답자의 34.7%가 ’사목자들을 위한 리더십과 인성교육 강화’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적 분위기 조성’(34.5%),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지속적인 양성제도 마련’(26.1%)이 뒤를 이었다. ‘신자들의 기도와 영성생활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도 23.1%나 됐다. 한국천주교의 구성원별 개선 사항도 눈길을 끈다. 주교들과 관련해선 응답자의 59%가 ‘대화와 소통필요’를 가장 많이 꼽았고 다음은 ‘독선과 권위주의 탈피’(52.2%)라고 답했다. 신부의 경우 ‘독선과 권위주의’(73.3%)가 ‘대화와 소통’(73%)보다 다소 높게 조사됐다. 수도자들은 ‘미성숙한 언행’이 42.2%로 가장 높았고 ‘편협하고 일방적인 사고’가 38.1%로 뒤를 이었다. 한편 평신도의 개선점으로는 가장 많은 63.5%가 ‘분파적 모임과 행동’을 꼽았고 ‘동료, 이웃과의 반목과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답변도 61%를 차지했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조사 결과와 관련, “무엇보다 성직자의 쇄신 요구가 확인됐다”면서 “대화와 소통, 독선과 권위주의는 동전의 양면으로 이는 사목적 리더십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라고 지적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 중단과 70년 만의 재개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 중단과 70년 만의 재개

    2018년은 역사적인 사건이 많은 한 해였다. 대한민국 올림픽 개최 및 남북 단일팀의 참여, 남북한 관계의 전면적 개선,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의 채택, 북-미 정상회담 등 사건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7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냉전질서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뉴스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매체들은 2018년 말에 일어난 또 한 가지 역사적인 사건을 간과하였다. 그 것은 분단 후 거의 70년 만에 재개된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이다. 2018년 콘스탄티누폴리스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일방적으로 인정한 후 러시아 정교회가 콘스탄티누폴리스 정교회와의 친교관계를 단절하면서 동방 정교회 내 분열이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교회는 2018년 말 러시아에서 올레그 넬린 대사제(протоиерей Олег Нелин)를 한국에 파견함으로써 지난 70년 간 중단되었던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 활동을 재개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2006년 평양에 김정일의 지시로 건설한 러시아 정교회의 성삼위일체 성당, 일명 ‘정백사원’이 있으나 북한의 국가 특성상 선교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는 2018년 서울에서 재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 기사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 정교회 한국선교회의 역사는 조선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선교회는 1897년 고종이 아관파천을 마치고 대한제국을 선포할 준비를 하던 무렵, 러시아 제국 외교사절단 부영사 대행의 성직자 파송 요청에 따라 공식적으로 창설되었으나 그 선교 활동은 1899년 중순 2명의 러시아인 선교사와 1900년 2월 흐리산프 셧콥스키 대수도사제(архимандрит Хрисанф Щетковский)가 한성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싶었던 고종이 1898년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짓도록 서울 정동의 토지 825평을 러시아 외교사절단에 선물하였는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외교적 스캔들이 되었고 러시아 정부는 결국 땅 값을 한국 정부에 환불함으로써 토지를 사실상 구입하였다.당시 한국인들은 한국에 새로 들어온 정교회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00년 4월 9일자 ≪제국신문≫이 정교회 활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최근 희랍교(그리스 정교)는 들어온 지가 수 주일에 불과한데 입교하는 사람이 심히 많다고 하니 어느 교파이던지 천주교(기독교 전반)란 일반적으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듯하다.” 선교회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러시아어, 기독교 교리 등을 가르쳤는데, 그 중 한국인 14명이 세례를 받아 정교 신도가 되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은 1903년에 재장비한 선교회 부속 학교에서 열렸고 성 니콜라이堂으로 명명되었지만 불과 1년 후 문을 닫게 되었다. 1904년, 일본과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 간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한반도와 만주가 전장이 되었다. 한국에 진주한 일본군은 러시아 선교사들을 추방하였고 한국선교회의 활동을 중단시켰다. 러일전쟁 후 러시아 정교회의 한국 선교 활동은 1906년 재개되었다. 1906년 ~ 1912년 성찬예배가 한국어로 완역됐고 선교회 부속의 새 남학교들과 여학교가 설립되었다. 총 322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 중 최초의 조선인 정교회 성직자도 생겼다.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대위기를 맞이하였다. 1918년 인민위원소비에트의 ‘국가와 종교, 교회와 학교의 분리에 관한 법령’ 공포로 종교 단체 자금 공급이 중단되고 그 자산과 토지가 몰수되면서 러시아 정교회가 재정난에 봉착하였다. 소비에트 정부가 조선선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 정교회의 최고회의기구인 성 시노드가 1923년 그 관할권을 도쿄 대주교 세르기 티호미로프에게 이양하였고 일본정부로부터 소유권 보호를 받기 위해 그 재산을 일본정교회 재단의 명의로 등기했다. 조선선교회는 러시아인 일본대주교의 관할하에 발전해 나갔으며 1935년 조선인 정교도는 약 1100 명에 달했다.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당국이 조선선교회를 러시아인 관구장주교 세르기 티호미로프로부터 독립시키려 압력을 가하였고, 결국 1941년 10월 초 조선선교회의 전권이 1936년 조선선교회 관리자로 임명되었던 폴리카르프 프리마크 대수도사제에게 이양되었다. 해방 전후 조선선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의 동아시아 총대주교대리구에 편입되었고 곧 이어 1945년 12월 27일부터 폴리카르프 신부의 관리 하의 임시 자치가 공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 후 소련의 위신이 극도로 높아지자 그 동안 볼셰비키 정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망명한 백위계 디아스포라도 친소련파와 반소련파로 분열되었다. 또한 1946년 이후 냉전체제가 한반도에서 성립되면서 선교회는 일제강점기 때보다 더욱 공공연한 탄압을 당하게 되었다. 특히 1947년 2차 미소공위 개최시 소련 대표단이 선교회 맞은편에 숙소를 차리고 폴리카르프 신부를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자 선교회의 대소관계와 관련된 의혹이 심화되고 반소련파 러시아인들과 일부 한국인 정교 신도가 이를 이용하여 폴리카르프 신부를 쫓아내고 선교회의 소속을 바꾸기로 했다.그들은 주일본 연합군 최고사령부 (SCAP)의 지지 하에 일본정교회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을 일소하고 그 관할권을 장악한 북미관구(현재 아메리카 정교회) 소속의 베니아민 바살리가 대주교(архиепископ Вениамин Басалыга)의 협조를 얻었다. 그 결과 한국선교회는 최종적으로 일본정교회의 산하로 들어갔고 폴리카르프 신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경찰에 체포되어 1949년 6월말 북한으로 추방당하고 만주를 거쳐 소련으로 귀국하였다. 선교회는 한국전쟁에서 폭격으로 성당이 파손되는 등 커다란 피해를 입었으며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군인들에 의해 복구되었다. 1955년 12월 25일 북미관구 소속의 일본정교회 산하에서 다시 이탈하고 터키 이스탄불의 콘스탄티누폴리스 정교회의 관할로 옮겼다. 이렇게 한국 땅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 활동이 중단된 지 70년 만인 2018년 12월 28일 러시아 정교회 성 시노드 회의가 남북한의 신도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싱가포르 및 동남아시아 주재 총대주교대리구를 신설하고 러시아인 신부가 한국에 입국함으로써 한국정교사에 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다. 글·사진 : 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 ‘사법 유린’ 전두환, 강제로 법정에 앉힌다

    ‘사법 유린’ 전두환, 강제로 법정에 앉힌다

    5·18 희생자 명예훼손 재판 또 불출석광주지법, 3월 11일 재판 구인장 발부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7) 전 대통령의 재판이 7일 광주에서 열렸지만 전 전 대통령은 또 출석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7일 재판에서 알츠하이머 증세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데 이어 두 번째다. 광주지법은 이에 따라 이날 구인장을 발부했다. 유효기간은 다음 공판기일인 오는 3월 11일까지이며 인치 장소와 일시는 각각 광주지법 201호 법정, 3월 11일 오후 2시 30분이다.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출석해야 공판 개정이 가능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부가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할 수 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는 이날 오후 2시 30분 201호 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다. 전 전 대통령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전 전 대통령이 고열로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송구하다”며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와 독감 진단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날 전 전 대통령이 또다시 출석하지 않아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공소 사실 확인 등 정식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다음 공판기일을 지정한 뒤 마무리했다. 정 변호사는 앞서 지난 4일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기일변경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예정대로 재판을 진행했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에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고 주장, 고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별별 이야기] 코페르니쿠스의 후예 르메트르/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별별 이야기] 코페르니쿠스의 후예 르메트르/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의 투표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예외적이었던 사례는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 목록에서 제외했던 2006년 총회 정도였다. 총회의 결정으로 ‘행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를 수정하고 보니 명왕성이 행성의 정의에 맞지 않게 된 것이다.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총회에서는 오랜만에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투표가 있었다. ‘허블’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우주 팽창의 증거를 처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천문학자 허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인 우주망원경 덕분에 ‘허블’은 우주, 첨단과학기술 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우주 팽창을 기술하는 법칙은 ‘허블 법칙’으로 널리 알려졌다. ‘허블 상수’는 우주 팽창 속도를 담고 있는 천문학과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값 중 하나다. 총회에서는 우주 팽창을 처음 제안한 가톨릭 성직자이자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허블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꾸어 부를 것이 권고됐다. 지동설에 이어 또 하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성직자 천문학자가 처음 제안한 것임을 널리 알리려는 결정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우주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시작한 유한한 존재라는 유력한 증거이며 현대 천문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르메트르의 우주 팽창에 대한 논문은 허블보다 2년 빠른 1927년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논문이 지역 학술지에 프랑스어로 실렸기 때문이다. 또 르메트르 연구의 중요성을 알게 된 연구자들이 1931년 영국왕립학회지에 영어 번역본 게재를 주선했을 때 우주 팽창에 대한 핵심 문단이 누락됐기 때문이다. 누락 과정에 당시 이미 영향력이 큰 허블에게 공을 돌리려는 누군가의 의도가 있었느냐 하는 문제에 여전히 논란이 있다. 어쨌든 이번 IAU 권고안은 허블 우주망원경의 명칭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모든 진리는 일단 발견하기만 하면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갈릴레이의 말처럼 허블의 관측이 없었다면 르메트르의 연구는 성립할 수 없었다. 사실 허블이 르메트르의 제안을 적극 소개했다면 그 자신이 더 높게 평가받지 않았을까? 르메트르가 허블보다 앞섰음을 더 늦기 전에 우리 세대가 인정한 것이 반가울 따름이다.
  • 두테르테 “10대때 가정부 성추행했다” 발언 논란

    두테르테 “10대때 가정부 성추행했다” 발언 논란

    막말과 돌출행동을 일삼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10대때 가정부를 성추행했다고 발언해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31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전날 남부 코타바토주 키다파완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범죄 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고해성사 내용을 소개했다. 두테르테는 “10대 때 가정부가 잠자는 방에 들어가 이불을 들추고 성추행을 시도했다”며 “가정부가 깨는 바람에 화장실로 피신했다가 다시 방에 들어가 그녀를 만졌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교회 내 성폭력을 문제 삼으며 “가톨릭에도 많은 짐이 있다. 따라서 나를 욕하기 전에 자체를 바로 잡아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들의 적이 되어 계속 그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 및 교육 단체들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이 역겹다며 즉각 반발했다. 여성단체 가브리엘라는 성명을 통해 “가정부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고백은 정말 충격적”이라며 “그는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트럼프 이라크 방문 역효과...반미 여론 비등

    트럼프 이라크 방문 역효과...반미 여론 비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방문이 현지 반미 감정에 기름을 들이부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29일(현지시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이라크의 알아사드 미군 캠프를 깜짝 방문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시리아와 달리 이라크에서는 미군을 철수할 계획이 없다”며 “시리아에서 활동이 필요하면 이라크를 기지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조차 만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라크인들은 트럼프의 안하무인적 태도에 분노했다. 이라크 정계의 막후에서 막강한 실력을 휘두르는 강경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미국은 이라크의 주권을 무시하는 오만함을 반복적으로 저질러왔다”고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 “미군이 이라크 떠날 것 요구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의회 2대 정파 이슬라 수장인 사바 알 사이디 의원도 “미국의 이라크 지배는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이라크가 미국의 한 주인 것처럼 들어왔다”고 반발했다. 같은 당의 하킴 알자밀리 의원은 “러시아 또는 이란과 미국이 맞붙는 장소로 이라크가 활용돼선 안 된다”며 향후 시리아 공습 거점으로 이라크를 활용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했다. 이와 관련 지아드 알아라르 이라크 정치평론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알아사드 기지) 방문은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반대하는 정당이나 무장 정파에는 엄청난 사기 진작이 됐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미 일리노이 검찰, 아동성학대로 기소된 성직자 700명 가까이 돼

    미 일리노이 검찰, 아동성학대로 기소된 성직자 700명 가까이 돼

    미국 일리노이주 검찰이 아동 성학대 혐의로 기소된 가톨릭 사제 수가 일리노이 6개 대교구 자체 조사로 알려진 185명보다 훨씬 많은 690명으로 집계됐다고 1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세계 각국에서 성직자 아동 성학대 의혹이 불거져 프란치스코 교황 퇴위 요구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일리노이주 대교구가 지역의 아동 성학대 사건을 끝까지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매체 악시오스 등은 이날 사이트에 일리노이 검찰이 낸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학대 의혹 사건 예비 보고서 원문을 공개했다. 리사 매디건 일리노이 검찰총장은 “가톨릭 교회가 일리노이주 사제들의 성적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밝혀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저버렸다”면서 “일리노이 교구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고 일부는 아예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리노이 교구는 아동 성학대 가해자가 사망했거나 교구를 떠난 경우, 또 교회 지도층에 속해 있는 경우에 아예 사건을 수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리노이 대교구는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미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의혹이 쏟아지자 조사에 착수해 185명의 사제가 아동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었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학대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라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년 2월 각국 사제 대표들을 바티칸으로 소집하는 등 직접 상황 타개에 나선 상태다. 앞서 펜실베이니아주 대배심은 8월 14일 지난 70년 간 300명의 성직자들이 아동 1000여명을 성적으로 학대했고 교단이 이를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보고서를 내 큰 파장을 불렀다. 독일주교회는 독일 내 27개 교구에서 1946~2014년 3600명 이상 아동이 사제들로부터 성학대를 당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칠레 검찰은 현재 아동 성학대 등 성추문에 연루된 사제 158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1960년 이후 아동 178명을 포함한 총 266명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필립 윌슨 호주 애들레이드 대교구 대주교는 5월 아동 성학대 은폐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교황 측근으로 교황청 재무원장을 맡았던 조지 펠 추기경도 아동 성학대 혐의로 호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우크라 정교회, 러서 분리·독립 3개 분파 통합… 새 정교회 창설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러시아 정교회의 그늘을 벗어나 우크라이나 정교회 창설을 선언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직자들은 15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 성소피아 사원에서 190여명의 주교와 사제, 정교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비공개 회의를 열고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분리·독립하는 한편 3개 분파를 통합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창설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3개 분파 중 하나인 키예프 총대주교구 산하 우크라이나 정교회 주교 예피파니 두멘코(39)를 새 수장으로 선출했다. 러시아와 심각한 갈등을 빚으며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동안 우크라이나 정교회 분파들을 통합해 러시아 정교회에서 분리된 독립 우크라이나 정교회 창설을 추진해 왔다. 이날 회의는 키예프 대주교구를 러시아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산하로 편입시키기로 한 1686년 터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 시노드(주교회의)의 결정을 취소하고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대한 콘스탄티토플 총대주교구 관할권을 복원하는 결정도 내렸다. 그러나 300여년간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감독해온 러시아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구)는 이에 반발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와의 관계를 단절한다고 선언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포토] 4400여년 만에 발견된 이집트 성직자 무덤 16일부터 본격 발굴

    [포토] 4400여년 만에 발견된 이집트 성직자 무덤 16일부터 본격 발굴

    자, 4400년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이집트 고위 성직자의 마지막 안식처로 내려섭니다.  이집트 인류학자들이 14일(현지시간) 카이로 근처 사카라 피라미드 복합단지 안에서 발굴한 무덤을 공개했습니다. 들머리에 들어선 취재진의 탄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 무덤이 여태껏 도굴꾼들을 피해왔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합니다.  두 번째 사진이 보여주듯 비탈 쪽에 들머리가 파묻혀 있어 도굴꾼들의 손길을 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사카라는 피라미드들이 많이 흙 아래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었답니다. 이 고대 무덤도 피라미드의 일부분일 수도 있겠지요.  고대 이집트 제5왕조(기원 전 2500년∼2350년) 시대의 왕실 사제였던 ‘와흐톄(Wahtye)’와 어머니, 부인, 친척들이 묻힌 것으로 보이는데 16일부터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들어가면 미라 등 진귀한 발굴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 무덤의 길이는 10m이고 폭과 높이는 각각 3m입니다. 다양한 색깔의 상형문자(hieroglyphs)와 파라오 상들이 즐비합니다.  모스타파 와지리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 사무총장은 이 무덤 발견이 “최근 10년 동안 이뤄진 것 가운데 으뜸”이라고 말했습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사진 사카라 AFP 로이터 EPA
  • 미 FBI, 두 건의 대형 테러 참사 막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유대교 회당의 총기난사와 송유관 폭파 등 대형 테러음모를 사전에 적발했다. FBI와 법무부가 10일(현지시간) 미 오하이오 톨레도에서 이슬람국가(ISIS)를 대표해 현지 시너고그(유대교 회당)의 총기 공격을 준비해온 혐의로 데이먼 조셉(21)을 붙잡았다고 AP통신 등 현지언론이 전했다. 용의자 조셉은 FBI 위장요원에게 AR-15 반자동소총을 수령하다 붙잡혔다. 조셉은 지난 10월 11명이 숨진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총격 사건 이후 같은 형태의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FBI는 말했다. 법무부도 “랍비(유대인 성직자)를 포함해 되도록 많은 인명을 살상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 FBI는 폭탄 제조용 물질을 구매한 엘리자베스 레크런(23·여)을 체포했다. 레크런은 인터넷 채팅으로 접근한 FBI 위장요원에게 톨레도 지역 바와 송유관 등에서 폭발물을 터트리겠다는 계획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저스틴 허드먼 오하이오 북부검찰청 검사는 “이들 사건은 여러 형태의 테러리즘과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월드 Zoom in] 이란이 美 제재에 맞서는 자세… 미사일·스텔스함·암살

    [월드 Zoom in] 이란이 美 제재에 맞서는 자세… 미사일·스텔스함·암살

    美 “탄도미사일 발사 안보리 결의 위반” 이란 “방어적 목적… 위반 아니다” 반박 이라크 내 反이란 인사 암살팀까지 가동이란이 탄도미사일, 스텔스 구축함, 암살팀을 총동원해 미국의 제재에 맞선다.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최근 이란이 다중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시험 발사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31호를 위반했다”면서 “이란은 핵무기를 위해 설계된 탄도미사일과 연관된 모든 활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보리 결의 2231호는 2015년 7월 주요 6개국과 이란이 맺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의 효력과 이행을 유엔이 보장하는 결의다. 이에 이란 외무부는 2일 “우리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방어적인 목적이며 어느 안보리 결의도 위반하지 않았다”면서 “어떤 안보리 결의안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금지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외무부는 또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쪽은 핵합의를 불법적으로 탈퇴하고 다른 나라에도 이를 어기라고 압박하는 미국”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이란의 탄도미사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샤하브3, 에마드, 가드르, 세즈질 등 이란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2000㎞ 안팎으로 이란의 앙숙이자 미국의 최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또 레이더에 잡히지 않고 재급유하지 않으며 5개월간 항해할 수 있는 구축함을 새로 만들어 전 세계 석유 물동의 요충지 호르무즈 해협에 배치하면서 미국을 자극했다. 이란 국영TV는 1일 호르무즈 해협 입구인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항에서 열린 사한드호 취역 장면을 공개했다. 국영TV에 따르면 사한드호는 이란군이 6년에 걸쳐 건조한 1300t 스텔스 구축함으로 지대지·지대공 미사일 등 방공포, 첨단 레이더 장치, 헬리콥터 이착륙 설비를 갖췄다. 이란은 지난달 29일에도 페르시아만에서 작전을 펼칠 경잠수함 2척을 새로 확보했다고 밝혔었다. 이란은 또 역내 영향력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스라엘내셔널뉴스는 2일 영국 정보당국을 인용해 “이란이 현재 재건 중인 이라크에 입김을 불어넣으려고 이라크 내 반(反)이란 인사 암살팀을 가동했다. 이미 다수의 인사가 숨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내셔널뉴스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력을 가진 반이란 성향의 민족주의 이슬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마저 암살 위협을 받고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교황 “동성애 유행...동성애자는 성직자 말아야” 보수적 입장 천명

    교황 “동성애 유행...동성애자는 성직자 말아야” 보수적 입장 천명

    동성애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보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자는 성직자가 돼선 안 된다며 보수적 견해를 밝혔다. 지난 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세라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8월 한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가 유행된 것 같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교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성직자와 성직 생활 내부에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뿌리 깊은 동성애 성향을 지닌 이는 성직 지원이 처음부터 허용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성직 생활에서 동성애를 위한 자리는 없다”며 “그러므로 교회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애초에 성직에 진입하지 않도록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동성애 성향의 사제와 성직 생활을 하는 남녀는 진실로 독실하게 생활해야 하고, 그들이 속한 신앙 공동체와 신자 사이에서 논란을 빚지 않도록 흠잡을 데 없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그들은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성직을 떠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직후인 2013년 “누군가가 동성애자로, 그가 신과 선의를 추구한다면 내가 누구라고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느냐”면서 상당히 완화된 입장을 보였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검찰총장 사과? 하든 말든… 1991년, 그렇게 다들 잊었더라

    [색다른 인터뷰] 검찰총장 사과? 하든 말든… 1991년, 그렇게 다들 잊었더라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은 700만여명이 봤다. 1991년 봄을 그린 영화 ‘1991, 봄’을 본 관객은 5000명이 채 안 된다. 87년은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지만, 사실은 군사정권과의 타협으로 매듭지어진 절반의 승리일 뿐이다. 87년의 타협이 91년의 패배를 불러왔고,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온갖 모순은 91년 패배에서 잉태됐을지도 모른다. 모두 쉽게 잊은 91년의 아픔이 온몸에 새겨진 인물 강기훈.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씨를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전남 강진에서 간암 투병을 하고 있는 그는 병원에 들르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을 찾는다. 이미 한 차례 인터뷰를 거절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승낙한 강씨는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렸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그에게 아픈 과거를 묻는다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이들이 91년을 잊고 살고, 어떤 이들은 의도적으로 잊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러기 힘들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이 더 아프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91년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터뷰에 응한 것처럼 보였다.→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검찰총장이 강기훈씨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검찰총장이 사과를 하든 말든 관심 없어요. 당사자도 아닌데 검찰총장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그를 수사했던 검사 강신욱 신상규 안종택 박경순 윤석만 임철 송명석 남기춘 곽상도, 당시 법무부 장관 김기춘,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 노원욱 정일성 이영대 임대화 윤석종 부구욱 박우동 김상원 박만호 윤영철, 허위로 필적감정서를 작성한 김형영 등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들 중 누구도 강씨에게 사과를 하거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 설령 사과를 하더라도 안 받는 건 제 마음입니다. 저는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고, 한편으로는 복수할 의무도 갖고 있어요. 물리적인 폭행은 아니지만 복수할 의무가 있어요. 권리가 아니라 의무죠. →1994년 출소 이후 어떻게 살았나요. -컴퓨터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에 다니고, 무역회사에도 있었어요. 막노동을 한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금방 알아보더라고요. ‘유서는 왜 대신 써 줬어요’라고 비난하듯 묻는 사람도 있고, ‘유서 써 준 게 뭐가 죄가 되느냐’는 사람도 있었죠. 안 썼다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어 줬어요. 대법원 판결이 나와서 사실이 돼 버렸으니까요. 5월이 되면 유독 힘들었고, 지금도 힘듭니다. 누군가 알아보고 사건을 이야기하면 멘탈이 깨져서 일을 못 했어요. →모두가 사실로 믿어버린 사건에 대해 재심 청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재판으로 뒤틀렸으니 재판으로 바로잡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사실 물리적 복수를 생각하기도 했어요. 과거에 고문으로 어쩔 수 없이 간첩이 된 분들한테 ‘10억원 받을 거냐 아니면 당신이 맞은 만큼 때려줄 거냐’고 한 번 물어보세요. 십중팔구는 ‘돈은 필요 없고 때려 주겠다’고 말할 거예요. →조작 당사자들 가운데 직접 대화를 나눈 이는 없나요. -재심 재판에서 국과수 직원이 나와 김형영이 필적 감정을 조작했다고 진술했어요. 김형영과 함께 필적 감정서에 사인한 사람인데 자기 책임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휴정 시간에 저한테 태연히 악수를 청했어요. 순간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안하다는 뜻인가요.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죠. 김형영의 죄를 진술한 것으로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무서워요.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조작이 가능했을까요. -사람들이 믿어 주니까 가능했겠죠. 제가 인간에게 실망하는 것도 그 지점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툭 던져 버리고 이후에는 관심 없죠.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1%도 안 돼요. 내 말이 타인에게 고통을 안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진보든 보수든 마찬가지예요.→거짓을 믿게 하는 작동방식이 있는 것 같군요. -이심전심이죠. 이 방향이 권력에게 이로우니까 모두 그렇게 몰고 간 겁니다. 검찰이 정권의 압력을 받아서 조작했다고 하는데 표현이 틀렸어요.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집단이 이심전심으로 한 거예요. 언론도 ‘이쪽 방향으로 가는구나’라는 걸 알고 받아 쓴 거죠. 얼마나 재밌어요. 연쇄죽음에 배후가 있다는 둥, 제비뽑기를 해서 자살할 사람을 뽑는다는 둥. 검찰이 흘리면 언론은 사실인 양 보도해요. 보도가 나가면 검찰은 보도대로 수사하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서 작성자는 강기훈이 아니라 김기설’이라고 발표했을 때부터 진실이 규명되기 시작한 건가요. -과거사위 발표가 나왔을 때 제가 냉소적으로 변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남들은 저를 구제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았죠. ‘이게 왜 나만의 문제가 돼 버린 것일까. 나만 구제되면 다 해결되는 걸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자기 편해지기 위해서 나에게 문제 해결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냉소적인 인간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뭐 때문에 아파하는지 알고 그걸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세월호 보도를 차마 보지 못하고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을 차마 지나갈 수 없었어요. →1991년을 생각하면 어떤가요. -91년에 대해 많이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기억하지 못하는 국가는 미래가 없어요. 91학번들에게 부채의식도 느껴요. 저는 어쨌든 재야운동단체의 실무자였잖아요. 유서조작 사건으로 모든 게 엎어졌어요. 당시 운동권이 얼마나 준비를 안 했으면 그렇게 쉽게 엎어졌을까 생각해요. 그때는 소위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다 정치하려고 했어요. 87년 성과를 빌미로 야당 들어가서 한자리 해야 한다는 욕망에 불탔던 시절이고, 실제로 지금까지 많이 들어갔잖아요. →영화 ‘1987’은 요즘 젊은이들까지 보며 울었는데, ‘1991, 봄’은 별 관심을 못 받고 있습니다. -‘1987’은 재밌게 만들었잖아요. 저는 1987년에 감옥에 있었어요. 같이 감옥에 있던 친구와 그 영화를 봤는데 10분이 지나면서 불편해지기 시작했죠. 툴툴거리면서 봤어요. 저거 아닌데 이러면서….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는 자기들이 승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시절의 진짜 모습은 잊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서. 그들 중 1991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정작 본인을 모티브로 한 ‘1991, 봄’은 왜 보지 않나요. -거울 본 지도 오래됐어요. 제 삶 자체가 재난인데 뭐하러 그 영화를 보겠어요. →영화 속에서 ‘하찮고 시시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동안 너무 무겁게 살았어요. 별 내용 없는 시시한 수다를 떨고 농담도 하고 살고 싶어요. 저 보고 힘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젠 당신들이 힘을 좀 내시죠’라고 쏘아붙인 적도 있어요. 충분히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왜 힘내라고 하죠. 힘내서 잘 싸우길 바라는 건가요?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없었다면 91년 상황이 달라졌을까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다른 사건으로 뒤집어쓰고 결국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사람들의 열망이 어디로 향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아요. ‘87년 항쟁으로 민주화됐는데 뭘 또 그래’ 이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과 비슷해요. ‘적폐청산 다 했는데 뭘 또 자꾸 시끄럽게 하느냐’는 식이잖아요. 지금도 사람은 죽어 가고 있어요. 헌법에 보장된 파업을 하는데도 구구절절 이유를 나열하고 설득해야 하지 않나요? →91년에는 어떤 삶을 꿈꾸셨나요. -세상이 괜찮아지면 취직해서 결혼도 하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어요. 만일 제가 과거를 다 잊거나, 당사자가 아니었으면 저도 아마 무딘 감성으로 살았겠죠. 어쩌다 무슨 사건이 나면 ‘아, 옛 생각 나네’라고 과거를 반추하며 ‘후진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죠. →‘후진 인생’과 ‘시시한 인생’은 뭐가 다른가요. -옛날에는 어땠다고 떠벌리며 폼 잡는 인생이 후진 인생이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고, 어떻게 하면 애들 유학 보낼 수 있을까. 욕심에 부들부들 떨면서 망가지는 인생이죠. 그렇게 망가지지 않아 다행이에요. 이창구 사회부장 window@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강기훈에게 띄우는 91학번 편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제게 그는… “그해 봄을 망쳐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1991년 봄, 뜨겁고 잔인했습니다. 그리고 아팠습니다. 저와 같은 91학번 신입생이었던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고, 연일 또래 친구들이 몸에 불을 살랐습니다. 집회에 나갈 결심이 서지 않아 기숙사에서 이불을 덮고 비겁하게 울었고, 마침내 종로 집회에 나갔을 때 가슴이 벅차 울었습니다. 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인 김지하가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우라”고 했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에서 분신하자 성직자 박홍은 “죽음을 사주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이 유서를 대신 썼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게 당신(강기훈)은 어둠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습니다. 종로 거리는 차갑게 식었고, 우리는 패배주의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고백하건대 공안정국을 조성한 정권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당신이 진짜로 유서를 대필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깊었습니다. 91년 봄이 허무하게 지나갔듯이 당신도 어느새 잊혀졌습니다. 당신이 20년 가까이 외롭게 결백을 증명해 나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방관자일 뿐이었습니다. 시간은 무심히 흘렀고, 당신과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내내 흔들리는 당신의 눈빛을 봤습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냉소와 달관이 그 눈빛에 담겨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렸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1991년 봄, 믿어 주지 못하고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도리어 제게 더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해 봄을 망친 선배 세대가 더 미안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조작을 사실로 둔갑시킨 책임은 언론에 있습니다. 당신이 그해 명동성당에서 눈물로 결백을 호소할 때 서울신문 기자도 있었습니다. “제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네가 대신 쓴 거 맞잖아’라고 몰아붙이던 서울신문 기자의 얼굴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는 당신에게 제가 회사 대표는 아니지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91년 봄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약속도 드리고 싶습니다. 이창구 사회부장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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