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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불교에 분 변화의 바람… 여성 교무 결혼 허용하나

    원불교에 분 변화의 바람… 여성 교무 결혼 허용하나

    “내년 예비교무인 독신 서약 안 받겠다” 최고 웃어른 종법사 간담회서 공식화 창교 103년… 결혼 허용 합의 이루는 중 내규 개정 필요… 즉각 허용 무리 시선도 검정치마·쪽진 머리도 차츰 사라질 전망원불교가 그동안 금지해왔던 여성 교무들의 결혼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원불교 창교 103년 만의 일이다. 여성 교무의 결혼 허용과 함께 원불교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던 검정 치마 흰 저고리와 쪽진 머리도 바뀔 전망이어서 종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원불교의 교무란 개신교의 목사, 천주교의 사제, 불교의 승려처럼 제도로 공인된 교직자를 말한다. 이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남성 교무와 여성 교무를 각각 정남(貞男), 정녀(貞女)라 부른다. 남성 교무의 경우 90%가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데 비해 여성은 사실상 처음부터 독신이 요구된다. 여성 교무는 교무로 인정받은 지 일정 기간이 경과하고 정해진 연령에 이르면 ‘정녀 서원’을 하고 결혼을 포기한 채 교단 일에만 열중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여성 교무들이 ‘왜 여성들에게만 독신을 강요하느냐’며 ‘정녀 서원’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해왔다. 그러던 중 최근 원불교의 최고지도자인 전산 김주원(71) 종법사가 여성 교무의 결혼 허용 방침을 공식화해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전산 종법사는 원불교 103번째 생일인 대각개교절에 앞서 지난 23일 전북 익산 총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방침을 전격 공개했다. 전산 종법사는 “어느새 교단도 100년이 넘었고 결혼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되어가고 있다”며 “당장 내년부터 예비 교무인 원광대 원불교학과 신입 여학생들의 독신 지원서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쪽진 머리 등 복장·머리 모양과 관련해서도 “너무 신경쓸 일은 아니다”라면서 “입고 싶은대로 입고, 남의 눈총을 안 받을 정도면 된다”고 덧붙였다. 원불교는 국내 다른 종교에 비해 남녀평등을 중시해온 종교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원불교 창교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사회 개혁 1조항으로 ‘남녀권리 동일’을 내세웠다. 33년간 종법사로 원불교를 이끌었던 대산 종법사도 ‘원기 100년 이후 여성 교무 결혼 허용 여부를 결정하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소태산 대종사는 결혼 여부를 본인의 선택에 맡겼지만 전쟁 등을 거치면서 여성 교무들이 희생을 해왔다는 게 교단 관계자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전산 종법사는 간담회에서 “다만 합의에 맡기고 시행은 차차 할 생각”이라며 “문화적으로 충돌이 있겠지만 20~30년 뒤에는 거의 정착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 말마따나 ‘여성 교무 결혼 허용’은 최고의결기구인 수위단회의 결정과 행정부처인 교정원의 ‘전무출신지원자 심사규칙’을 비롯한 내규 개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원불교 교단 관계자들 사이에선 결혼 ‘즉각 허용’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원불교 최고위 성직자들 모임인 출가교화단 각단회 정기 모임에서 여성 예비교무들이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정녀지원서를 지원구비서류에서 빼기로 합의해놓고도 후속 절차 진전 없이 흐지부지된 바 있다. 기존 교무들에 대한 결혼 허용이 부를 파장을 의식한 교단 지도자들의 신중한 입장 정리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서울교구의 한 교무는 “종단 내에 여성 교무 처우와 관련한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고 최근 추진 움직임이 부쩍 눈에 띄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종법사님의 입장 발표가 다소 이른 감이 있다”고 귀띔했다. 서울교구의 다른 교무도 “여성 교무에 대한 결혼 허용은 재가 신도들 사이에서도 찬반 입장이 엇갈린다”면서 “본인의 의사에 맡기되 점진적 허용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0.9%’ 천주교 신자 증가 10년 만에 첫 1% 미만

    한국 천주교 신자 증가율이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신자 증가율은 0.9%로 10년 만에 첫 1% 미만 증가율을 기록했다. 신자 증가율 감소와 함께 미사 참례 등 신자들의 성사 참여율도 동반 감소세를 보여 천주교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2018년 신자수 586만명… 0.9% 증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30일 발표한 ‘한국천주교회 통계 2018’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수는 2018년 12월 31일 현재 586만 6510명으로 전년보다 0.9%(5만 2740명) 늘었다. 신자수는 계속 늘고 있지만 증가율 감소세가 확연하다. 최근 10년간 추세를 보면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2009년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2014년 2%대 증가율을 보인 것을 빼곤 2017년까지 꾸준히 1%대 증가율을 보였다. 하지만 2014년을 정점으로 매년 신자 증가율이 하락해 지난해 결국 1%대 밑으로 떨어졌다. ●미사 참례율·성사 참여율도 하락세 미사 참례율과 견진성사 등 신앙생활 지표도 동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 주일미사 참례율은 18.3%로 2017년(19.4%)에 비해 0.9% 포인트 하락했다. 부활 판공성사에는 99만 1648명이 참여했다. 부활 판공성사 참여자가 100만명 이하로 떨어진 건 지난 10년 새 처음이다. 견진성사는 전년 대비 9.4% 감소한 4만 2455명, 병자성사는 2.4% 늘어난 2만 242명, 첫영성체는 10.4% 감소한 1만 7832명, 고해성사는 15.1% 감소한 378만 9949명으로 나타났다. 병자성사를 뺀 모든 성사에서 전년에 비해 감소했다. ●여성 신자 57%·65세 이상 19% 노령화 추세 신자는 남자 42.6%, 여자 57.4%로 여성이 14.8% 포인트 높았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신자 비율(19.4%)은 2016년 17.4%에서 2년 만에 2% 포인트 상승해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성직자는 추기경 2명을 포함해 주교 42명, 한국인 신부 5233명, 외국인 신부 155명 등 총 543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5360명 대비 70명 증가한 수치다. 본당수는 전년 대비 13개 증가한 1747개로 나타났다. 전체 신자에 대한 교구별 신자 비율은 서울대교구 26.1%, 수원교구 15.6%, 인천교구 8.8%, 대구대교구 8.7% 등으로 2017년과 큰 변화가 없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테러 참사 스리랑카 “얼굴 가리지 마시오” 부르카 등 금지하는 이유

    테러 참사 스리랑카 “얼굴 가리지 마시오” 부르카 등 금지하는 이유

    지난 21일 부활절 연쇄 폭발 참사 이후 비상사태에 돌입한 스리랑카 정부가 추가 테러 예방책의 하나로 얼굴을 가리는 의상 착용을 전면 금지했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은 지난 28일 성명을 통해 29일부터 어떤 형태로든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23일부터 비상사태에 돌입했으며 시리세나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비상사태 관련 권한에 따라 이뤄졌다. 시리세나 대통령은 “이번 금지 조치는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누구도 얼굴을 가려서 신원을 알아보기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날 발표를 통해 얼굴만 가리는 부르카, 얼굴과 몸을 한번에 가리는 니캅 중 어느 쪽이 금지되거나 허용되는지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 대통령의 발표에 앞서 스리랑카 무슬림 성직자 모임인 올 실론 자미야툴 우야마는 이슬람 보복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여성 신도들에게 얼굴을 가리지 말라고 촉구했다. 스리랑카 인구는 2100만명으로 이 가운데 무슬림은 10%가량이다. 부활절인 지난 21일 스리랑카에서는 수도 콜롬보의 고급 호텔과 주요 교회 등 8곳을 덮친 연쇄 자살폭탄 공격으로 모두 253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스리랑카 정부는 현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내셔널 타우히트 자마트(NTJ)와 잠미야툴 밀라투 이브라힘(JMI)를 테러와 직접 연관된 조직으로 지목했고, 이슬람국가(IS)는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스리랑카 경찰은 지난 26일 스리랑카 동부 카탄쿠디에 있는 NTJ 본부를 급습해 테러 공격의 핵심으로 지목된 NTJ 창설자인 자드란 하심의 아버지와 두 형제를 사살하고 본부 곳곳을 압수수색했다. 정부는 앞서 두 단체를 단체를 불법 단체로 공식 규정하고 관련 자산을 몰수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테러 용의자 140명을 체포한 데 이어 140여명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군경 1만여명을 동원해 길거리나 교회, 모스크 등에서의 추가 테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아카디아는 아테네 서쪽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중심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외딴 산악 지대가 님프와 자연의 정령이 사는 낙원이라고 여겼다. 이곳의 주민들은 자연 속에서 양과 염소를 치며 걱정 없이 살아간다고 믿었다. 수천 년 전에도 이미 번잡한 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전원을 동경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 같다. 들판을 지나던 세 목동이 커다란 석관을 발견했다. 양만 치며 살아온 이 순박한 사람들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셋 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글자를 짚어 가며 떠듬떠듬 읽는다. 왼쪽 젊은이는 석관에 몸을 기대고 생각에 잠겨 있다. 붉은 천을 두른 젊은이는 글자를 가리키며 설명을 구하듯 오른쪽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본다. 푸른 드레스에 금빛 튜닉을 걸치고 금빛 샌들을 신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이 도회적 여인은 옅은 미소를 띠고 목동들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석관에는 ‘아카디아에도 나는 있다’는 라틴어 구절이 새겨져 있다. 낙원에서도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이 세상의 행복은 일시적이고 무상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주제가 그림에서 유행한 것은 중세 말의 일이다. 중세 말은 전쟁과 흑사병으로 사회 분위기가 흉흉했다. 부유한 후원자들은 고위 성직자나 미녀를 둘러싸고 해골들이 춤추는 그림을 그리게 해 지상의 권세나 젊음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교훈과 함께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기괴한 분위기의 메멘토 모리와 푸생의 조용한 고전주의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이 그림의 주제는 메멘토 모리와 닿아 있다. 푸생은 해골을 직접 들이대며 위협하지 않는다. 석관과 라틴어 글귀로 넌지시 죽음을 가리킬 뿐이다. 우아한 여성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아카디아에 사는 님프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지만, 예술의 의인화라는 설도 있다. 예술은 인간의 유한함을 극복하는 방책으로 고안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지 못하지만, 예술이라는 형태로 삶을 기억하고 붙잡아 놓을 수는 있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 그림은 루이 14세의 컬렉션에 들어 있던 것이다. 절대 권력을 누렸던 화려한 왕은 이 그림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미술평론가
  • 노트르담 거액 기부 ‘뭇매’… 노란조끼發 불평등 논란 재점화

    노트르담 거액 기부 ‘뭇매’… 노란조끼發 불평등 논란 재점화

    브라질박물관 기부 3억원 그쳐 ‘대조’ “대기업, 세액공제 혜택 받으려는 꼼수 세수 줄어 서민층은 비자발적 기부자” 佛, 복구 기간 동안 임시성당 건립 검토프랑스를 비롯한 전 세계의 ‘큰손’들이 화마로 무너져 내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을 위해 앞다퉈 거액을 쾌척해 사흘 만에 모금액이 10억 유로(약 1조 3000억 원)를 돌파했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뒤따르고 있다. ‘노란 조끼’ 시위의 여파로 불평등에 민감한 프랑스에서도 성당 복원이 결국 서민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해 화재가 발생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 보수공사에는 7개월여간 110만 7000헤알(약 3억 2000만원)의 기부금만 모인 사실과 대조됐다.브라질에서는 유명 금융재벌의 미망인으로 알려진 한 여성 갑부가 지난 16일 노트르담 성당 재건을 위해 8800만 헤알(약 255억 원)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은 17일(현지시간) 불에 탄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를 위한 대기업들의 기부가 이어졌지만 프랑스에서는 정작 생계 위협을 받는 서민층에 대한 온정의 손길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란 조끼’ 운동의 창시자인 잉그리드 르바바세르는 “사회적 고통에 대한 대기업의 관성에 대해 분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점증하고 있다”면서 “그들(대기업)은 노트르담을 위해 하룻밤 사이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기부금의 최대 66%에 이르는 세액 공제 혜택을 받기 때문에 정부 세수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며 결국 일반 프랑스 납세자들이 비자발적 기부자가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여론이 들끓자 1억 유로 기부를 약속했던 프랑스 명품 브랜드 구찌와 입생로랑의 모기업 케링 그룹의 소유주 피노가는 세액 공제 혜택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소액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1000유로까지 개인 기부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75%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날 프랑스 전역의 100여개 성당은 지난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불길이 일어난 시간인 오후 6시 50분에 맞춰 일제히 종을 울리며 노트르담의 아픔을 함께했다. 한편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공사 기간에 노트르담을 대신할 임시성당을 세우는 방안을 교회 당국과 프랑스 정부가 검토 중이다.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기도의 공간이자 노트르담을 보려고 세계 각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임시건물을 노트르담 바로 앞에 세운다는 것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고위성직자인 파트리크 쇼베 몬시뇰은 18일 C-News 방송과 인터뷰에서 “(복구공사 예정기간인) 5년간 성당이 폐쇄된다고 말해선 안 된다”면서 임시성당 건립 구상을 밝혔다. 그는 파리 구도심의 시테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 목재를 이용해 임시성당을 설치하려고 한다면서 이 방안에 안 이달고 파리시장도 동의했다고 전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계속 기억하자”… 로마서 열린 세월호 5주기 추모 미사

    “계속 기억하자”… 로마서 열린 세월호 5주기 추모 미사

    “억울한 죽음 규명, 살아있는 자의 의무”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미사가 열렸다.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현지에서 유학 중인 한인 신부, 수녀 등 성직자와 로마에 거주하는 평신도 등 80명은 이날 저녁 로마 중심가의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 예배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로마에 체류하는 한인 성직자들은 세월호 사고 1주기부터 매년 추모 미사를 열어 왔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날 미사는 로마유학사제단협의회 회장인 수원교구의 배성진 신부가 집전했고 강론은 예수회 소속의 김민철 신부가 맡았다. 김 신부는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그만하자고 하는데, 뭘 그만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알기 위해서라도 아직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사건을 우리 사회가 철저히 되돌아보고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오늘만 기억하지 말고 계속 기억하자. 어린 생명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원인과 과정을 밝히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의무이며 그래야 동일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사 시작 전에는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들의 사고 전 모습 등을 담은 영상을 상영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미사에도 참석한 이백만 교황청 주재 한국 대사는 “가톨릭의 성지인 로마에서 한인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해마다 잊지 않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뜻깊고 고맙다”며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동영상] 노트르담 대성당 석재 골조와 두 종탑 구한 건 골든타임 살린 덕

    [동영상] 노트르담 대성당 석재 골조와 두 종탑 구한 건 골든타임 살린 덕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석재 골조와 두 종탑을 그나마 화마로부터 건져내 피해를 최소화한 것은 발화 직후 15~30분의 골든타임을 잘 살려낸 소방관들 덕분이라고 프랑스 내무부 차관이 극찬했다. 로랑 누네 내무부 차관은 16일(현지시간) 소방관들이 석재 골조와 두 종탑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용기와 결단력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그는 “15~30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됐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됐다”며 경찰관과 소방관들은 앞으로 48시간 동안 남은 구조물이 안전하게 버틸 수 있는지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500여명의 소방관들은 성직자, 문화재 관계자들과 협의해 지붕과 첨탑을 포기하고 400여명은 불길이 성당 안과 두 종탑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며 100여명은 대형 성화(聖畵)와 유물 등을 옮기는 데 최선을 다했다.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적으로 결단력 있게 화재에 대처한 셈이다. 850년 넘은 대성당을 복구하겠다고 전날 약속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연설을 통해 5년 안에 “훨씬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우리는 이 재앙을 함께 뭉칠 기회로 만들어내고 있다”며 “소방관들은 막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을 막았다. 종교도 다르고 프랑스 각지에서 몰려든 20~25세의 젊은이들이 해냈다”고 격려했다.수많은 기업 총수들이 복구 노력에 써달라고 기탁을 약속한 금액만 8억 유로(약 1조 267억원) 가량 된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도널드 터스크 유럽연합(EU) 대표는 회원국들에게 프랑스 지원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1000년 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복구하는 재단을 이끌었던 에릭 피셔는 AFP 인터뷰를 통해 노트르담 재건에는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목재 지붕과 첨탑이 무너졌지만 그나마 많은 대형 성화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썼던 것으로 얘기되는 가시면류관, 나중에 성인이 된 루이 9세가 입었던 튜닉 의류 등 많은 성물을 구해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걱정했던 세 군데 ‘장미의 창’ 가운데 남쪽 것도 온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첨탑 위에 있던 수탉 청동 조각상도 바닥에 떨어진 잔해 더미에서 극적으로 찾아냈다. 각국 오르간 연주자들이 꿈의 무대로 한 번쯤 서보고 싶어했던 성당 안 파이프 오르간도 온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를 위해선 파이프 오르간을 잠정적으로 뜯어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복원이 마무리된 뒤 다시 설치해야 한다. 문화재 당국은 보존 가치가 높은 유물이나 성화 등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거나 전시할 것으로 보인다. 화재 원인을 아직 단정하지 못한 가운데 파리 검찰청의 레미 하이츠 대변인은 사고 원인을 둘러싼 얘기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며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50명을 소환했다고 밝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노트르담을 특별하게 만든 보물들, 인간 띠잇기로 구했다는데 얼마나

    노트르담을 특별하게 만든 보물들, 인간 띠잇기로 구했다는데 얼마나

    프랑스 파리의 명물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과 첨탑이 15일(현지시간) 화재로 무너져내렸다. 뼈대는 건져 재건할 수 있다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약속했지만 뼈대의 몇 퍼센트나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850년 된 목조 건축물이어서 내부를 장식한 인테리어, 특히 많은 문화재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을지 염려된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부시장은 이들 문화재를 구하기 위해 긴급한 대응을 했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많은 양을 화마로부터 구해냈는지 밝히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야 할 것이다. 노트르담이 자랑하는 보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영국 BBC 소개로 살펴본다.장미의 창 성당 안의 세 군데 ‘장미의 창’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3세기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나 분파와 관계 없이 모든 관광객이 가장 좋아했다. 먼저 서쪽 앞면에 있으며 셋 중 가장 작은 ‘장미의 창’은 1225년쯤 완공됐다. 마치 유리가 석재를 떠받치고 있는 외양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찬탄했다. 남쪽 ‘장미의 창’은 지름이 거의 13m나 되며 84개 패널로 이어 붙여져 있어 역시 눈길을 붙들어맸다. 하지만 이전에도 화재로 파손됐기 때문에 이번 화재로 더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프랑스 기자 로랑 발디퀴는 트위터에 이날 밤 북쪽 ‘장미의 창’은 온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다른 두 군데 모두 화염으로부터 온전한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쌍둥이 탑 대다수 관광객은 서쪽 앞면 위에 왕관처럼 앉은 두 고딕 양식 탑 아래에서 한참 머무른다. 1200년대 공사를 시작했는데 북쪽 탑은 40년이 지나서야 겨우 완성됐다. 남쪽 탑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250년에 마무리됐다. 두 탑 모두 68m 높이에 387계단을 올라야 파리 시내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정부 관리들은 두 종탑 모두 온전하다고 말했다.가르고일(Gargoyles) 둘 이상의 동물을 합성해 형상화한 이 상상의 동물들은 대성당 지붕 쪽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스타라이게 가르고일은 가장 위쪽에 앉아 파리 시내를 손아귀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는 것 같다.종들 대성당은 10개의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에마뉘엘이라 불리는 가장 큰 것은 무게가 23톤이 넘는데 1685년 남쪽 탑에 설치됐다. 탄생 850년을 기념해 2013년 더 작은 종들을 북쪽 탑에 들였다. 각각은 프랑스혁명 때 화포로 쓰기 위해 녹여졌다가 나중에 성인 이름 하나씩을 붙여 복제됐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성당을 무대로 1831년 ‘노트르담의 곱추’를 집필했다. 주인공 콰지모도는 추악한 생김새 때문에 이 성당 종치기로 일하며 이곳을 도피처로 삼았다.고딕 첨탑 이번에 붕괴된 중앙 첨탑의 건축 연도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혁명 때도 해체됐다가 1860년대 복원됐다. 왕립건축학회는 “노트르담 지붕과 첨탑을 잃은 것과 아마도 석재 뼈대까지 잃은 것은 프랑스 고딕 건축의 유산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이라며 “프랑스인의 아픔, 어디에 있든지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공유했던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가시면류관 등 유물 대성당 안의 예수 승천 코너에는 십자가, 예수가 썼던 가시 면류관 등이 보관돼 있었다. 안느 이달고 파리 시장은 트위터에 경찰관과 소방관, 성직자 등이 인간 띠잇기로 면류관, 십자가에 박힌 못, 12세기 성인으로 추대된 루이 3세가 입었던 튜닉 의상, 다른 가치 있는 문화재들을 급히 피신시켰다고 자신에게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화재 초기, 문화재 담당자들과 소방 관계자들은 회의를 갖고 목조 지붕과 첨탑을 포기하고 성당 안의 성화, 유물 등을 화마로부터 구해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인간띠를 이은 경찰관과 소방관, 성직자 등이 성화, 유물 등을 옮겨 지켜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2사도와 4명의 전도자를 상징하는 16개 동상은 지난주 보수 공사를 위한 비계 작업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미리 이동시킨 덕에 화마를 피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치즈 대부’ 고 지정환 신부에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치즈 대부’ 고 지정환 신부에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지난 13일 선종한 ‘임실 치즈 개척자’ 고 지정환 신부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5일 오후 이개호 장관이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전북 전주 중앙성당을 찾은 자리에서 유족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수했다고 밝혔다. 벨기에 태생인 고인은 1959년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입국해, 1961년 전북 부안성당에 부임했다. 이후 줄곧 한평생 국내 치즈 산업 육성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부임 후 3년간 간척지 100㏊를 조성해 농민들에게 제공하는 등 늘 가난한 농민들의 삶의 기반을 다지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뒤에는 임실에서 산양 보급, 산양유 및 치즈 개발에 힘썼다. 특히 임실 성가리에 국내 첫 치즈 공장을 세워 치즈 산업을 이끌었고, 임실 치즈 농협도 출범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농식품부는 “고인은 영양 공급이 부족했던 어려운 시기에 선진국에서 젖소를 수입해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등 한국 치즈 산업을 태생시켰다”면서 “임실을 치즈 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전북 지역의 복지시설을 오가며 장애인과 소외 계층도 돌봤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에서 인혁당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한국의 민주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뒤에는 우유 트럭을 몰고 광주로 갔다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추방당할 뻔 했지만 그간 이뤄 온 여러 공적 덕분에 추방을 면했다. 그러나 정권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고인은 이러한 공로로 2016년 법무부로부터 우리나라 국적을 받은 바 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6일 오전 10시 전주 중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진행한다. 장지는 전주시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낙농업 불모지서 일군 기적… ‘임실치즈’ 아버지

    낙농업 불모지서 일군 기적… ‘임실치즈’ 아버지

    대한민국에 최초로 치즈 산업을 일으킨 지정환(본명 디디에 세스테반스) 신부가 지난 13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선종했다. 88세. 벨기에 태생으로 1959년 12월 6·25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부산항에 첫발을 디딘 고인은 이듬해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옮긴 뒤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로 ‘정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성은 본명인 ‘디디에’와 비슷한 ‘지’씨로 정했다.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그는 척박한 농촌을 먹여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치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상당 부분 산지여서 낙농업이 좋다고 여겼다. 그는 완주의 한 신부에게 받은 산양 2마리로 산양유와 치즈 생산을 시도했다. 그러나 치즈생산은 쉽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고심 끝에 치즈 생산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국으로 향했다. 프랑스 등 유럽의 공장을 돌며 장인들로부터 비법을 배워 와 임실읍 성가리에 국내 첫 치즈공장을 세우고 맛과 향이 균일한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치즈 농협도 출범시켰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들었지만 ‘신선하고 맛이 좋다’는 입소문울 타면서 수요도 크게 늘었다. 주문이 쇄도하자 농민들과 함께 젖소를 키워 치즈 생산량을 늘렸다. 낙농업 불모지였던 임실은 한국 치즈 산업의 메카로 우뚝 섰다. 목표로 했던 임실치즈산업이 궤도에 이르자 모든 것을 농민들에게 대가 없이 넘겨주고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전주와 완주 등 전북도 내 복지시설을 오가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데 힘썼다. 고인은 한국 치즈 산업과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2016년 법무부로부터 우리나라 국적을 받았다. 이후에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나눔의 삶을 실천해오다 숙환으로 영면했다. 빈소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전주 중앙성당에 마련됐다. 전주교구는 16일 오전 10시 전주 장례미사를 진행한다. 장지는 전주시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스마트폰 중독 스톱 외친 교황

    스마트폰 중독 스톱 외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10대 청소년들을 만난 자리에서 거듭 스마트폰에 중독돼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14일(현지시간) dpa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전날 로마 비스콘티 국립 고교 학생들을 교황청에서 만난 자리에서 “스마트폰은 큰 도움을 주고 위대한 발전이며 사용해야 할 물건이지만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면 자유를 잃게 된다”며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교황은 “여러분은 중독의 비극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며 “스마트폰 중독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청소년들에게 “침묵과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물론 늘 혼자 있는 게 여러분에게 좋은 건 아니기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지만, 여러분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2017년에도 교황은 미사 때 스마트폰에 대해 언급하며 신자들은 물론 많은 성직자조차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교황은 “미사는 쇼가 아니다”라며 마음을 들어 올려야지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서는 안된다고 성직자들이 설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대한민국 치즈의 대부 지정환 신부 선종-16일 장례미사

    대한민국 치즈의 대부 지정환 신부 선종-16일 장례미사

    대한민국에 최초로 치즈산업을 일으킨 지정환 신부가 지난 13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8세.벨기에 태생인 고인은 1960년부터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활동하며, 국내 치즈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 신부는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척박한 임실에서 산양 2마리로 산양유와 치즈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온갖 실패를 딛고 임실읍 성가리에 국내 첫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이를 모태로 임실 치즈 농협이 출범했고 임실은 우리나라 치즈의 메카로 자리매김 됐다. 파란 눈의 외국인 신부가 한국을 찾은 것은 1959년 12월. 벨기에 국적의 디디에 세스테반스 신부는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부산항에 첫발을 디뎠다. 이듬해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발령 난 그는 ‘정의가 환하게 빛난다’는 의미로 ‘정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성은 본명인 ‘디디� ?� 비슷한 ‘지’씨로 정했다. 1964년 임실의 작은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그는 척박한 농촌을 먹여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 치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농지는 적고 산지가 많은 임실은 낙농업이 제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완주의 한 신부가 선물한 산양 2마리로 산양유와 치즈 생산을 시도했다. 그러나 치즈생산은 쉽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던 지 신부는 고심 끝에 치즈 생산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국으로 향했다. 프랑스 등 유럽의 공장을 돌며 장인들로부터 비법을 배워 와 맛과 향이 균일한 치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산양유로 만든 치즈를 서울의 호텔과 레스토랑, 피자집 등에 납품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든 치즈가 ‘신선하고 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요도 크게 늘었다. 주문이 쇄도하자 농민들과 함께 젖소를 키워 치즈 생산량을 늘렸다. 낙농업의 불모지였던 임실은 이를 기반으로 한국 치즈 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됐다. 고인은 목표로 했던 임실치즈산업이 궤도에 이르자 모든 것을 농민들에게 대가 없이 넘겨주고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전주와 완주 등 전북도내 복지시설을 오가며 장애인 등 소외계층을 돌보는 데 힘썼다. 고인은 한국 치즈 산업과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2016년 법무부로부터 우리나라 국적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이 된 이후에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나눔의 삶을 실천해오다 지병이 악화해 영면했다. 빈소는 전주시 덕진구 서노송동 천주교 전주 중앙성당에 마련됐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6일 오전 10시 전주 장례미사를 진행한다. 장지는 전주시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전두환 “‘조비오 신부는 거짓말쟁이’ 문학적 표현”

    전두환 “‘조비오 신부는 거짓말쟁이’ 문학적 표현”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88)씨 회고록 관련 소송에서 검찰과 전씨 측이 치열한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특히 전씨 측은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쓴 것을 “문학적 표현”이라고 주장한 반면 검찰은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8일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전씨는 이날 재판에는 출석 의무가 없어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전씨는 지난달 11일 기소 10개월 만에 법정에 처음 출석해 헬기 사격은 허위이며 헬기 사격을 주장한 조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지칭한 것 역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조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뉴스1에 따르면 이날 전씨 측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회고록에서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서술한 데 대해 “거짓말쟁이 등의 표현은 의견을 표현하거나 문학적인 표현을 한 것이지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전씨의 회고록을 보면 헬기사격이 없었다고 하면서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은 사실 적시를 표현한 것”이라며 “사실적 입증이 가능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맞받았다. 전씨 측은 공소장 문제도 제기했다. 정 변호사는 “재판부가 앞서 공소장에 불필요한 내용이 기재됐다고 발언했는데 형사소송법상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고 보고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공판기일 이전에 증거 능력이 없는 증거를 제출하는 식으로 법관에 선입견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담은 형법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공소장 하나만 법원에 제출하고 기타의 서류나 증거물은 일체 첨부하거나 제출해서는 안 된다. 검찰이 전씨의 전과 기록과 회고록 출판 동기 등을 기재해 재판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공소사실을 특정하고 증거를 제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범행과정을 특정하기 위해 최소한 내용을 적시했다. 고의부분을 구체화하기 위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씨 측 변호인은 법정에 출석해 조는 모습을 보인 전씨 행동에 대해 재판부에 사과했다. 본격적인 재판 전 전씨 측은 “지난 기일에 피고인이 긴장해 조는 행동을 보였다”며 “재판부에 결례를 저질러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학대, 일본에서도…전국 16개 교구 조사

    가톨릭 성직자 아동 성학대, 일본에서도…전국 16개 교구 조사

    미국, 독일, 칠레 등 여러 나라에서 가톨릭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파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이와 관련한 실태 조사가 실시된다. 과거 신부로부터 성학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집회가 열리는 등 문제가 표면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가톨릭주교협의회가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학대 의혹에 대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고 8일 보도했다. 가톨릭주교협의회는 지난 4일 상임주교위원회를 열고 전국 16개 교구에서 신속한 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구체적인 조사 방법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2002년과 2012년 전국 주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파악된 5건의 성학대 의혹 사례에 대해서도 검증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가사키대교구 소속 다카미 미쓰아키 주교는 마이니치에 “(객관성 확보 등을 위해 제3자가 포함된 조사도) 필요에 따라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일에는 성직자에 의해 성학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도쿄에서 집회를 가졌다. 피해자로 집회에 참가한 다케나카 가쓰미(62·공무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고다이라시에 있는 아동복지시설 ‘도쿄사레지오학원’에서 독일인 신부로부터 일상적으로 성적 학대를 받았다”며 “어른이 되어서도 당시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올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집회에 참석한 다카미 대주교는 “우리가 충분히 대응하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다케나카를 위로했다. 이와 관련해 도쿄사레지오학원은 2001년쯤 다케나카를 포함한 2명이 과거 성직자 및 일반 직원들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밝힌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 등이 없어 사실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마이니치에 밝혔다. 로마교황청은 지난 2월 각국의 주교들을 소집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성직자들의 아동 성학대 파문과 관련한 대응방안을 협의했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숭실대, “비기독교인 채용하라” 인권위 권고 거부

    숭실대, “비기독교인 채용하라” 인권위 권고 거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교직원 지원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권고를 숭실대가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5일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이런 식의 숭실대 채용 방침이 종교를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이라고 판단하고, 숭실대 총장과 학교법인 이사장에게 종립학교 설립 목적 달성을 위한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는 자격을 제한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인권위는 숭실대가 성직자를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이 아닌 데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공공성 등을 고려하면 기독교 신자라는 요건은 숭실대 교직원이 되기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진정직업자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숭실대가 기독교 이념에 따라 설립된 대학이라는 특수성이 있다고 해도 교직원 채용 시 비 기독교인을 원천 배제하는 것은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 직업안정법 등에 위배되는 것으로, 합리적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채용 방침에 대해 “기독교 신앙과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에 따라 국가와 사회, 교회에 봉사할 유능한 지도적 인재를 양성한다는 학교 설립 목적을 달성하려면 모든 교직원의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대학 자율성 보장 측면에서 교직원 채용에 대한 학교법인의 독자적인 결정권은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2010년 5월에도 재단 종교의 신자들로 교직원 지원 자격을 제한한 종립 사립대학교 2곳에 이런 관행을 시정할 것을 권고했고, 이들 학교는 권고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기독교 이념으로 설립된 이화여대의 경우 교직원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마술 조장한다” ‘해리 포터’ 책 불태운 폴란드 성직자들

    “마술 조장한다” ‘해리 포터’ 책 불태운 폴란드 성직자들

    폴란드 성직자들이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인 해리포터 시리즈를 불에 태우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재하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마술을 조장해 신성을 더럽힌다”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누리꾼들은 문화를 억압한다는 측면에서 ‘나치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다.영국 BBC는 1일(현지시간)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3명의 성직자가 해피포터 시리즈를 비롯해 일부 부족의 가면과 코끼리상 등을 불에 태우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전했다. 가톨릭 복음주의재단인 SMS프롬해븐은 이 사진들을 2만 2000명의 팔로워가 있는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성경에 따라 우리는 마술을 배격한다”고 밝혔다. 작가 J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출판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소설 작품으로 간주되며 세계적으로 5억권 이상이 판매됐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인들은 해리포터가 어둠의 마법사인 볼드모트 경으로 구현된 악에 맞서 싸우는 것에서 드러나는 ‘마법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왔다. 한 누리꾼은 페이스북 댓글을 통해 “해리포터라는 이름을 내걸며 강간이나 살인, 절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성경의 이름으로 그러한 행위를 자행하는 것은 본 적이 있다”며 이번 사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1823년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고 지적했다. 실제 나치는 1933년 5월 10일 ‘비독일인의 영혼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유대인 작가의 책과 가톨릭에 비판적인 책들을 골라 불에 태우는 ‘베를린 분서’를 벌였었다. 훗날 나치는 600만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폴란드 보수 정부는 전통적인 가톨릭 가치를 옹호하기 때문에 교회는 폴란드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BBC는 폴란드 교회의 공고한 권력이 지난달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아동 성폭력을 자행한 400여명의 폴란드 성직자들에 대한 문건이 공개되며 균열이 생겼다고 평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학생단체, 전두환 자택 앞 시위 “시민 학살한 죗값 치러야”

    학생단체, 전두환 자택 앞 시위 “시민 학살한 죗값 치러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20여명은 16일 정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씨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을 짓밟은 반(反)민주의 상징 전두환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두환은 이달 11일 광주법원에 출석한 자리에서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한 기자에게 ‘이거 왜 이래’라고 화를 냈다”며 “1980년 5월21일 시민을 향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이 보도됐고, 전두환의 발포 명령으로 당시 광주 시민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 소속인 이화여대 학생 정어진씨는 “전두환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다고 회고록에 거짓을 말했다”며 “발포를 명령하고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은 응당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하면서 ‘전두환=박근혜=황교안=나경원’, ‘5·18 발포 명령 학살자 전두환 구속하라’, ‘전두환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또 회견을 마친 뒤 전 전 대통령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긴 주걱으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전두환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기소 됐다.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선 전씨는 당시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이나 헬기 사격에 대한 질문을 외면하거나 전면 부인했다. 다음 재판은 증거 정리를 위한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되며 오는 4월 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전두환과 승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전두환과 승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아이돌그릅 빅뱅 멤버인 승리가 항간에 뜨겁게 회자된다. 전두환씨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공판에 출두한 뒤 연일 입초시에 오르고 있다. 승리는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 사건의 중심 인물로, 관련 일탈이 끝 모를 지경으로 확산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연인이 아닌, 공인(公人)이다. 세인들의 입에 그 이름이 쉼 없이 오르내림도 예사롭지 않은 공인의 신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따져 보면 두 사람의 요란한 회자는 ‘유명 공인’ 말고도 이중구조의 부조리 때문이다. 일반 상식에서 동떨어진 그들만의 생각과 행동 말이다. 지난 11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39년 만에 광주 법정에 선 전두환씨를 보자. 전씨의 혐의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전씨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는 ‘가면 쓴 사탄’,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묘사된다.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려는 광주 시민들과 관련한 자신은 ‘씻김굿의 제물’로 쓰고 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씨 측이 사죄나 유감 표현은커녕 헬기 사격 일체를 부인한 것이다. 발포 명령 인정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전씨가 던진 외마디는 “이거 왜 이래”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헌법적·법적 판단이 명쾌하게 정리된 한국의 아픔이다. 대부분의 국민들도 그에 동의한다. 그러니 ‘이거 왜 이래’는 전씨가 얼마나 심각하게 세상과 동떨어진 이중구조의 벽 속에 갇혔는지를 보여 주는 단초다. 의도된 회피이겠지만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말을 빌리자면 안드로메다다. 또 버닝썬의 승리는 어떤가. 직원의 손님 폭행 논란으로 시작된 버닝썬 사태는 이제 연예인 성범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버닝썬 실소유주에 마약 유통, 성범죄, 경찰 유착 의혹을 받는 승리가 연예계 은퇴라는 모면 수를 택했지만 사태는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그 버닝썬 사태 역시 매일매일을 열심히 건전하게 사는 일반인과는 몹시 다른 이중구조의 세상에서 놀아난 사람들에 시선이 쏠린다. 얼마나 많은 공인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즐겼을지의 분노 어린 의심이다.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자랑스럽게 입에 올린다. 우리 사회는 그 자랑스러운 3만 달러 시대에 발을 제대로 맞춰 사는 것일까. 그 거창한 3만 달러는 현실과 거죽의 괴리 앞에서 여지없이 무색해지곤 한다. 양극화 말고도 우리 앞에 드리워진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위기의 청년실업이며 자영업자·비정규직의 생존 위협, 급속한 초고령화 진입…. 그 와중에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로 불리는 일탈과 누림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다. 남의 눈과 공중의 상식은 아랑곳없이 내 생각대로, 그렇게 나만 잘살아 보자는 식의 이중구조. 그 틈새에 끼어든 뻔뻔한 이기주의 탓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손실과 반목을 치러 왔지 않은가. 대중의 기대를 짓밟고 국민에게 던진 ‘이거 왜 이래’ 응수는 그래서 더 큰 원성과 분노를 낳고 있다. 승리 역시 기대와 꿈을 분노로 바꿔 놓은 ‘위험한 공인’이다. 살얼음 같은 세상 속, 그들만의 위험한 리그를 이제 끝내자. ‘위험한 공인들’ 말이다. kimus@seoul.co.kr
  • [사설] 전두환, 5·18 유족에게 사죄하고 참회하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어제 광주 법정에 섰다. 전 전 대통령이 피고인석에 서는 건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속돼 재판을 받은 1996년 이후 23년 만이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거나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 기소됐다. 전씨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법정에서 “전씨가 과거 국가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면서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기록해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라며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반면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국가기록원 자료와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조사 결과,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참고인 진술 등을 조사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며 전씨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1시간 15분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전씨의 태도를 지켜본 대다수의 국민은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39년이 지나도록 광주 영령과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죄나 반성을 한 적이 없던 그가 이번 재판에서는 참회하길 기대했지만 반성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광주지법에 도착해서는 ‘발포명령’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전씨는 “이거 왜 이래”라며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전씨는 경호원의 부축을 받지 않고 법정에 혼자 걸어가는 등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인정신문에서도 헤드셋을 쓴 채 생년월일과 주거지 주소, 기준지 주소 등을 확인하는 질문에 또박또박 답변했다. 전씨의 파렴치한 행동은 이미 예견됐다. 회고록에서 자신이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는 뻔뻔한 주장을 폈던 그는 지난해 5월 불구속 기소된 뒤 재판부 이송 신청과 관할이전 신청을 하는 등 광주에서의 재판을 피해 보려는 꼼수를 부렸다. 건강을 탓하며 세 차례나 광주 재판에 불출석했다.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해 숱한 사상자를 낸 5·18 민주화운동의 가해자는 전씨가 이끌었던 신군부라는 사실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전씨는 앞으로 속행될 재판에서 진솔한 모습을 보이고 5·18 희생자와 광주,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참회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 길만이 속죄의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거듭 명심하길 바란다.
  • “계엄군 들어오기 전, 헬기가 전일빌딩 향해 사정없이 쏴 부렀어”

    “계엄군 들어오기 전, 헬기가 전일빌딩 향해 사정없이 쏴 부렀어”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해 11일 광주의 법정에 선 피고인 전두환은 “헬기 기총소사(항공기가 근거리에서 지상 표적이나 선박을 사격하는 것)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피로 물든 1980년의 광주를 지켰던 시민들은 “내가 헬기 사격의 목격자”라며 반박한다. 이들은 ‘전두환’이라는 이름 앞에 치를 떨면서도 폭력적 대응보다는 “진정 어린 사과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광주시민들의 목격담을 통해 그날의 진실과 이후 시민들이 감내해 온 울분에 대해 들어 봤다.“헬기 밑에서 불이 번쩍 나면서 전일빌딩을 향해 사정없이 쏴 부렀습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65)씨는 지난 10일 광주 금남로의 전일빌딩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빌딩에는 헬기 기총소사의 증거가 남아 있다. 박씨는 “그해 5월 27일 도청 정문 앞에서 시민군 병력배치를 하고 있었는데 총소리가 났다”며 “새벽 3시쯤 계엄군이 밀고 들어오기 전에 빌딩 옥상의 기관총을 향해 헬기에서 사격한 것을 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날 함께 만난 최운용(75·당시 민주헌정동지회 광주전남조직책임원)씨도 헬기 기총소사 목격자다. 5월 21일 오후 1시쯤 공수부대와 경찰들이 도청 방향에서 금남로의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다. 시민들은 물러섰고, 최씨는 관광호텔 쪽에서 쓰러진 청년을 인도 쪽으로 끌어낸 후 다시 이동했다. 10분 정도 더 걸어가 도착한 곳이 불로교였다. 최씨는 “오후 2시 30분쯤 불로교를 건너기 전 머리 위쪽으로 헬리콥터가 날아왔다”며 “헬리콥터가 불로교 위에서 총을 도청 방향으로 쏘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최씨의 목격은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조 신부는 1995년 광주 5·18 특검에 출석해 21일 오후 1시 30분에서 3시 사이에 헬기가 도청에서 광주공원 방향으로 가면서 불로교 인근에서 사격하고 백운동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증언했었다. 당시 선교를 위해 광주에 머물렀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도 특검에서 호남 신학대와 기독교병원 인근에서 오후 3시 15분부터 5시 사이에 기총소사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헬기를 이용한 기총소사까지 감행했다는 등 차마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해져 전해지고 있다”며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일 뿐”이라고 했다. 피터슨 목사에 대해서는 “목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난했다. 박씨는 “조비오 신부님뿐만 아니라 저와 최운용 선생님도 직접 목격을 했다”며 “우리들의 존재와 증언이 증거다”고 반박했다. 2018년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육군이 1980년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시민들에게 헬기 사격을 했으며, 공군이 무장 전투기를 대기시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전일빌딩 10층 외벽 등에서 발견된 탄흔을 호버링(hovering·항공기 등이 일정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 상태)하던 헬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감정했다. 최씨는 “2016년 전일빌딩을 주차장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정말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면서 핏발을 세우고 싸웠다”며 “그때 건물을 보존하지 못했으면 헬기 기총소사의 증거가 사라질 뻔했다”고 말했다. ●전두환 초도순시 막아선 최운용 어머니 5·18 희생자들이 잠든 광주 북구 ‘5·18 구묘역’ 추모객들은 입구 땅속에 묻힌 비석을 발로 밟고 참배를 시작한다. 비석에는 ‘전두환’, ‘이순자’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씨 부부가 1982년 3월 10일 전남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서 숙박한 것을 기록한 민박기념비다. 이 비석을 구묘역에 가져다 둔 사람이 최씨와 광주전남 민주동우회 회원들이었다. 최씨는 “1989년 초 기념비석의 존재를 알고 ‘살인마가 어떻게 전남에서 자고 기념비까지 만들 수가 있느냐’고 분노했다”며 “오월 영령을 달래기 위해 거사를 해야겠다고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동우회원 30여명은 1989년 1월 13일 망치를 들고 전남 담양 성산마을에 갔다. 그런데 비석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정보가 샌 것이다. 이들은 비석을 세웠던 돌 공장을 찾아가 “어떻게 했느냐”며 주인을 다그쳤다. 주인은 “오늘 새벽 이장한테 장비를 가져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비석을 파서 논두렁에 두고 지푸라기로 덮어 놨다”고 고백했다. 최씨는 “비석을 망치로 다 두들겨 깬 후 일부를 5·18 묘 인근에 묻었다”며 “당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1981년 대통령 신분으로 광주에 초도순시(지역을 돌며 상황을 살피는 것)를 왔다고 한다. 전씨가 당당하게 광주에 입성한 것을 막아선 것은 박씨의 어머니다. 어머니가 플래카드를 들고 전씨 행렬에 뛰어들었다. 당시 박씨가 사형선고를 받았기에 어머니는 두려울 게 없었다. 박씨는 “그날 어머니는 아스팔트에서 경찰들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영장도 없이 5일간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삼촌이 저를 통해 싸우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광주 북구 용봉동 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마친 후 집무실에서 만난 조영대 주임 신부는 “(삼촌인) 조비오 신부님은 살아생전에 전두환과 5·18을 왜곡하려는 세력들과 쉼 없이 싸웠다”면서 “돌아가셔서도 5·18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 싸우고 계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비오 신부가 전씨 회고록을 통해 명예훼손을 당하지 않았다면 재판정에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비오 신부는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 16명과 함께 신군부의 도청 진압작전을 막기 위해 행진에 나섰다가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몰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4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영대 신부 역시 5·18 당시 고교 1학년생으로 학살을 목격했다. 그는 삼촌을 대신해 전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인물이다. 조영대 신부는 성직자인 삼촌을 비방한 전씨를 향해 “조비오 신부님은 2008년 교황께서 고위 성직자 품위인 몬시뇰 명의를 수여한 분”이라면서 “광주 교구에서 사제가 몬시뇰에 임명된 것은 47년 만이었을 정도로 교구의 대표 성직자셨다”고 말했다. 조비오 신부는 5월만 되면 미사 중에 전두환과 군부세력들이 광주에 저질렀던 만행을 언급했다. 조영대 신부는 “조비오 신부님은 회개할 줄 모르는 전두환에게 분노하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속상해하셨다”며 “한숨을 푹 내쉬며 진상 규명이 잘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씨를 사면할 때는 “광주에 저질렀던 죄악이 얼마나 큰데 뉘우침도 없고 진상 규명도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분개했다고 한다. 아직도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씨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조영대 신부는 “(전씨를 단죄하라는 주장이) 단순히 보복이나 분노의 차원은 아니다”라면서 “민주화를 위한 밑거름인 광주정신을 되살려 가는 차원에서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광주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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