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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독재국가란 모든 사람들이 한사람을 두려워하고 한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국가이다」.누가 한말인지는 밝히지 않은채 리더스 다이제스트 최근호에 실렸던 명언.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들은 믿을 수 있는 친·인척으로 울타리를 치게 마련이다.◆멀리 갈 것도 없이 89년 12월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난뒤 국민의 심판으로 처형된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가 그러했고,북한의 김일성주석도 비슷하다.당·정·군의 요직에 친·인척 수십명을 골고루 배치,자신과 아들 김정일의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있다.글자 그대로의 「족벌공화국」.◆대표적인 인물 몇명만 들어보자.권력서열 5위인 부주석 박성철과 최고인민회의 의장인 양형섭이 4촌매부이고 전총리이며 현재 황해북도책임비서로 있는 강성산은 이종동생.조카사위인 김병하와 황장엽은 당중앙위원이자 비서.처 김성애는 여맹위원장이다.하나뿐인 사위 장성택은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책임자.◆그런데 요즈음 일본에서는 장성택이 신분을 속이고 그곳에 나타났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김일성의 사위라는 점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됐겠지만 그 보다는 처남인 김정일의 오른팔이자 김정일에게 무슨일이 있을때 후계자로 떠오를 수 있는 막강한 실세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울타리 치고는 튼튼한 울타리.◆북한에서는 지난 8월말 신의주에서 대규모의 반정부시위가 있었고 식량폭동도 몇차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김일성부자가 주변에 아무리 튼튼한 울타리를 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민들이 부수기 시작하면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듯.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할 뿐이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2

    ◎김영남·강석주·고성순/북한외교의 「트로이카」/외교정책 결정의 메카니즘/외교부,84년에 당 국제부 누르고 실권 장악/“주석이 머리쓰셔야 하나” 김정일,전권 행사 솜털을 뽑아 그 자리에 다시 박을 만큼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김영남외교부장,능통한 영어구사력과 함께 세련된 제스처를 갖춘 강석주 제1부부장,중앙통신사 편집국장 출신으로 뛰어난 문장력을 자랑하는 고성순책임참사,바로 이들이 북한외교를 이끌고 있는 트로이카다. 북한의 외교정책은 김영남과 강석주가 분석한 내용을 고성순이 유려한 필체로 정리,김정일에 올리면 외교실무능력이 없는 김이 거의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곧장 국가정책으로 결정돼 시행된다. 김정일은 84년 이후 『외교부는 나의 외교부며 당의 외교부』라고 말하며 외교업무를 장악하고 있지만 외교부에서 올리는 제의서에 그대로 따를 뿐 정책방향을 지시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그는 정책적인 지시를 내리기 보다는 『외교부에 규율이 없다』『외교부를 군사화해야 겠다』『외교부에 부는 날나리 바람을 잠재워라』『왜 외교부가 돈벌이에만 열중,나의 외교에 먹칠 하느냐』는 식의 질타나 엉뚱한 주문을 자주한다. 최근 대일수교추진과 관련,당 국제담당비서겸 국제부장 김용순의 활동이 눈에 띄지만 어디까지나 외교부와의 사전합의 아래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그는 당차원의 대외연락을 맡아 일본의 정당들과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식의 정당외교를 통해 수교회담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그는 「술고래」이며 「매사에 허허실실하는」성격의 소유자로 치밀하고 꼼꼼한 판단과 분석력을 요구하는 외교관으로서는 적당치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지난 84년 『당 국제부는 상대국의 집권당및 제정당들과의 연락업무만 맡되 집권당과의 교류시는 외교부와 사전 협의를 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있은 후 외교부는 당시까지 받아온 당 국제부의 통제를 벗어나 외교정책의 실세로 부상했다. 당 국제부는 60년 김일성으로부터 『당국제부 외교부 3호청사(대남담당총본부)는 삼위일체가 돼 통일문제를 보라』는 지시를 받을 정도로 신임을받아왔다.이같은 당국제부에 대한 신임을 입증하듯 84년초 김정일도 『당국제부원들도 외교관인 만큼 폴카등 외국 춤을 배워둬야 한다』고 하명,이에따라 국제부원들과 그 부인들이 사교춤을 배우겠다며 예술인들을 데려다 국제부마당에서 춤판을 벌인 일이 있었다. 너무 뜻밖의 이같은 해프닝에 국제부를 제외한 모든 당중앙위 부서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당국제부에 날라리 풍이 들어왔다』며 성토하고 덤비자 김정일이 이 책임을 당시 국제부 제1부부장이던 김용순에게 전가,그를 탄광으로 1년간 「혁명」보냈다.이때 김용순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인데…』라며 반발,김정일의 분노를 샀으며 이를 계기로 당조직지도부가 당 국제부에 대한 일대 검열을 실시했고 이 결과 예술인과의 「부화」사건(연애)등이 드러나는 바람에 70여명이 숙청되기도 했다.이 숫자는 당시 1백50여명이던 국제부원의 절반에 가까운 것이었다.그러나 외교부는 조직지도부의 검열결과 「건전」판정을 받았으며 이로써 당국제부를 제치고 외교의 실권을 장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뿐만 아니라 77년부터 83년까지 외교부장을 지냈으며 지난 5월 사망당시까지 북한외교를 대표해온 허담은 『외교업무는 신속·신축성을 요구한다』며 양대 기관중 하나를 정리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은연중 「고리타분한 이론」만 내세우는 당국제부의 권한 축소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85년부터 외교부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로 바뀌어 형식상으로는 정소 축소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85년부터 외교부는 김정일의 직속 부서로 바뀌어 형식상으로는 정는데 김은 『백두밀령에서 풍산과 고초를 겪으신 김일성주석께서 아직도 머리를 쓰셔야 하는가』하는 말로 자신의 외교전권행사를 미화하고 있다. 북한 외교가의 또 다른 숨은 실력자는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부부장겸2과장인 이화선.그녀는 김정일의 직속기구인 조직지도부에서 북한의 대외사업전반을 관리·지도하며 김정일의 외교담당 개인비서역을 담당하고 있다.다른 모든 부서가 그러하듯 외교부도 김정일의 친위부서인 조직지도부의 담당자들의 입김을 무시할수 없는 실정이다.또 현 제네바대사인이철(이수용과 동일인물)도 조직지도부 서기실출신인데 김정일에게 외교업무에 관해 많은 자문을 하고 있다. 북한의 외교관들은 『적을 알아야 적을 탈승한다』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비록 4∼5일정도의 시차는 있으나 남한의 신문·잡지들을 그때그때 까다롭지않게 보고있다.외교부는 남한의 일간지5개및 시사월간지 2종을 구독한다.특히 외교부 지역국과 국제기구국 요원의 경우 KBS와 MBC­TV및 라디오방송을 24시간 모니터해서 만든 「참고통신」을 하루 두차례씩 읽으며 남한정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이 통신은 북한 중앙통신사에서 정치문제를 중심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상오에 나오는 것은 「1보」,하오에 나오는 것은 「2보」라하며 분량은 매회 40∼50페이지 정도이다.
  • 김일성 사위 장성택 사진 공개

    북한 김일성주석의 사위 장성택(45)의 최근 모습(중앙에 안경을 쓴 사람). 지난 5월 귀순한 전북한외교관 고영환씨는 25일 본지와 가진 단독회견에서 당 3대혁명소조사업부장인 장이 현재 김정일 후계시대의 제2인자의 지위를 구축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증언했다. 장은 김정일의 유일한 친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으로 김으로부터 『믿고 의지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 일본의 주간문춘은 26일 지난 9월12일 하오 일본 나리타(성전)공항에 도착한 북경발 JAL752편에서 내리고 있는 장의 사진을 찍어 10월3일자 주간지에 게재했다.
  • 체제 고수 위한 “구걸행보”/김일성,왜 중국에 가나

    ◎“핵사찰” 국제압력속 “변함없는 지원” 요청/대일수교·권력승계 논의… 「한국승인」 문제도 거론할듯 북한 김일성주석의 돌연한 중국방문은 소련정변 이후 소·북한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시점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만하다. 김일성주석은 과거에도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상황발전」이 있을 때마다 방중한 전례가 있는바 내달 4일의 중국방문 역시 소련의 쿠데타 실패,남북한동시유엔가입,국제사회로부터의 핵사찰 압력 가중이라는 환경변화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서 종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혈맹」의 우의를 내외에 과시하고 중국으로부터 변함없는 지원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정치 분석가들도 소련공산당이 해체됨에 따라 심한 고립감을 느낀 김이 이번 방중에서 이른바 「아시아 공산주의」를 고수한다는 양국의 연대의식을 더욱 굳건히 다지고 중국정부에 보다 많은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한 김은 중국 지도층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사찰 문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교섭 ▲후계자문제등을 협의할 것으로 보이는데 김은 그 가운데서도 지난 80년대 당과 외교·국방부문에서 전권을 장악한 그의 아들 김정일에 대한 권력세습과 관련,중국측의 「양해」를 구하는데 비중을 실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문제에 정통한 정용석교수(단국대)는 김의 이번 방중은 「다목적용」이라고 진단하면서 김이 중국 당국자와 심도있게 논의할 대목은 아무래도 『중국의 한국정부 승인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김은 중국당국에 그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춰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김일성 새달 4일 방중/WP지 보도

    ◎대소 냉각따른 경제지원 모색 【워싱턴 연합】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오는 10월4일 중국을 방문,소련붕괴 후의 중국­북한 양국의 협력관계를 비롯한 현안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25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중국소식통의 말을 인용,김일성이 10월4일 북경에 도착할 예정이며 과거 김의 중국 방문때와는 달리 이번 여행은 공개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이번주 북경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것같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김일성은 중국방문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강경한 공산주의국가인 두 나라간의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고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전에도 소련이 지난해 한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룬후 소­북한 양국간의 관계가 냉각되어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소련 공산당 붕괴로 더욱 고립화되었으며 북경으로부터 정신적·경제적 지원을 추구할지 모른다고 분석가들의 말을 전했다. 한 서방외교소식통은 김이 북경에 오는 것은 소련에서 발생한 사태로 인해 중국인들이 『우리는우리의 믿음을 계속 유지할 것이고 당신네들도 그렇게 하기를 희망한다』고 북한에 다짐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의적절하다고 말했다.이 신문은 쿠바나 베트남과 같은 다른 공산주의국가들이 중국이 앞장서서 국제공산주의의 깃발을 높이 쳐들기를 희망하고 있는 때에 김의 중국방문이 이뤄진다고 말하고 최근 중국공산당 대표단이 쿠바를 1주일간 방문해 카스트로 쿠바대통령과 회담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 외언내언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확립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밝은 조짐이 되어야한다.때문에 전세계는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환영하고 있고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언동은 기대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김일성주석은 지난 21일 (북한에 대해)『평화적이행 전략을 진행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다음세대에도 사회주의를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이보다 하루앞서 강석주외교부부부장은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핵에 대한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일방적인 핵사찰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단언했다.◆북한은 또 강영훈대한적십자사총재가 남북적십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한데 대해 「선전적 효과를 노린 불순한 정치유희」라고 비난하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그들의 이러한 언동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유엔가입이 성사된 직후에 종전의 태도보다 오히려 경직된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것은 서글픈 일이다.◆김일성주석의 발언은 체제수호를 위한 그의 고뇌의 일단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할수도 있지만 핵사찰을 거부하고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기위한 남북적십자회담마저 외면하고 있는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유엔에 가입해놓고도 그 룰을 지키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것은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고 우리민족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로 볼수 밖에 없다.유엔가입을 계기로 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동반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의 바람은 이룰수 없는 꿈이 되고 말것인가.착잡한 마음 금할길 없다.
  • 미 헤리티지재단 회장 에드윈 퓰너 특별기고(유엔코리아)

    ◎“북한은 체제변화 결단내려야 한다”/유엔시대의 남북관계/한국 북방정책 성공으로 큰 압력/한반도 적화 포기 징후 아직 없어 지난달 소련에서 실패한 쿠데타가 진행중일때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보수파들의 소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었다.심지어는 북경이나 아바나까지도 소련개혁파에 대한 보수파들의 공격을 공공연하게 옹호하는것을 꺼렸다. 그러나 몇가지 두드러진 예외가 있었다.이라크의 쿠데타 기도자들에 대한 재빠른 지지쇼는 널리 보도된바 있고 비슷한 예로 북한도 국영언론이 그 즐거움을 감추지 못한 표현으로 소련시민들에게 새로운 쿠데타를 지지하고 그들의 명령에 따를것을 호소했었다. 물론 소련과 동구전역을 개혁의 물결이 휩쓰는 동안 평양측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소련의 쿠데타에 대한 북한의 성급한 지지는 하나의 좋은 예로 남아있다.그같은 태도는 강경 공산주의세계에서도 가장 성미급하고 고집스러우며 비이성적이고 예측불가능한 북한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냈다. 최근 수년간 북한도 언젠가는 그 체제가 개혁이나실용성을 고려하게 될것이라는 기대 속에서도 김일성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해왔다.그러나 이따금 한국에 대한 정책에 있어 전술변화를 취하기도 했다.지난 17일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한 예가 되고 있다.북한은 별개의 의석으로 가입할것을 세계각국으로부터 강요받았으며 그같은 여론을 따르지 않으면 가뜩이나 궁핍한 이미지가 더욱 손상될것이 분명했다. 비슷한 경우로 지난해 북한이 재개에 응했던 남북총리회담을 들수있다.그러나 세차례의 회합을 거치는 동안 서울측이 제시한 타당성 있는 많은 제안들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개방하면 실패 인정” 국제환경의 많은 희망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서울측과의 화해에 대한 기본적인 반대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그 까닭은 최근의 세계적 사건들이 말해주고 있다.김일성체제와 같은 폐쇄체제의 개혁과 개방은 바로 정치적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련에서 벌어진 믿지못할 사건들은 1948년 김일성체제를 탄생시켰던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효율적으로 종식시켰다. 공산주의는 이제 더이상국제공동체에서 막강한 힘으로 인식되지 않고 대부분의 옛고객들로부터 버림받아 역사의 쓰레기더미 위에 놓인 신세가 됐다. 이같은 역사의 진행과정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중국·베트남·쿠바·북한등 초창기 그들의 체제를 수립했던 동일한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 아직도 통치되고 있는 이들 네 이단자들이 동일하게 개혁의 보조를 취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 과거체제의 고수는 개혁구도를 향한 세대간 변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김일성은 세계 어느 다른 지도자보다도 국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해오고 있다.그가 죽거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면 변화는 급속하게 이뤄질 것이다.정치개혁운동이나 국제조류에의 접촉증대등 이른바 벽에 생긴 균열들은 독일의 통일과 동구전역에 공산주의의 몰락,소련공산당의 해체등을 가져왔다.우리는 아직 북한이라는 기둥에 균열이 생긴것을 발견치 못하고 있다.또 거기에는 바웬사나 옐친 같은 인물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민주주의나 자본주의의 장점에 대한 토론도 없다. 북한에 있어 개혁과 개방은 절박하기 때문에 소련의 상황이 아마도 열쇠가 될것이다.따라서 최근의 사건들은 한국의 북쪽형제들이 결과적으로 그들의 현체제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버리게 될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북한의 비참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은 김일성주의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우리는 공산주의가 본질적으로 인간의 기본심성에 맞지 않는것임을 안다.세계공산주의자들 대부분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북한국민들에게는 이제 결정할 기회가 주어졌음에 틀림없다. 그들의 정부를 향한 정책적 도전은 그곳 사회의 실체를 드러나게 할것이다. 서울측은 여러 제안들을 통해 남북한간의 사회적 경제적 교류를 증진시키기에 노력해왔다.이것은 바로 고도의 성공을 거둔 노태우대통령의 「북방정책」의 목표이기도 하다.소련·중국등 전통적인 북한의 우방들로부터 서울정부의 합법성을 인정받고 유대관계를 강화시켜 평양측 정부에 한국과의 관계정상화에 노력하도록 압력을 증가시키도록 했다.그리고 미국은 한국의 이같은 노력을 강력히 지원해왔다. ○“핵개발등 포기해야” 결과적으로 이 과정은 군사적 경쟁보다 경제적 정치적 협력을 증진시킴에 의해 남북 양측이 이익을 얻게될 것이다.이 과정의 중심부분이 바로 최근 유엔에서의 성공이다.유엔은 남북이 긴장완화를 추구하도록해 효율적인 새로운 대화통로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동북아에서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북한 침공의 억제력으로 4만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또한 워싱턴이 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것은 평양측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확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즉,김일성은 한반도 전체를 공산주의 지배체제하에 장악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포기했다는 어떤 징후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미국은 평양과 공식외교관계가 없기 때문에 부시행정부는 북한외교관들과의 비공식 대화나 평양측에 대한 무역제재조치의 부분적 완화등 몇차례 화해 제스처를 보낸적이 있다. 이제 공은 김일성의 코트로 넘어갔다.워싱턴은 만족할만한 태도변화가 있을때까지는 북한측과 어떤 형태로든 성급한관계개선을 피할 것이다.첫째 평양은 남측과의 대화를 재개해야 하고 자유왕래및 군사력증강에 대한 협정과 같은 구체적으로 진전된 행동을 보여야 한다.또한 평양은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에 응하고 개발중인 핵무기들을 포기해야 한다. 워싱턴과 서울간의 밀접한 안보관계유지는 지금이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우리의 다른 우방들과 달리 한국은 그들의 방위 수요에 있어 「무임승차」하지 않고 있다.서울은 이제 더이상 미국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지 않으며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 더욱더 많은 부담을 안고 있다. 동북아지역에 있어서의 평화는 미국이 이지역 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북한의 침략억제를 위한 적정규모 미군의 한국유지가 포함된다.물론 위험이 감소했다고 판단될때는 미군병력 감축이 고려될 수 있다. 이제 시간은 서울측에 있고 미국이 한반도에서 평화유지를 위해 행해온 중요한 역할은 상당히 감소될 것이다. ◎애윈 퓰너 ■전유럽전략방위문제연구소장 ■워싱턴대 객원교수 역임
  • 남북한 정상회담/김일성,성사 희망/강 외교부부장

    【뉴욕=박정현특파원】 강석주 북한외교부부부장은 17일 『이번 유엔총회기간중 이상옥외무장관과 김영남외교부장간 남북외무장관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부부장은 이날 총회 회의장 2층 인도네시아 라운지에서 한국 및 일본기자들과 만나 『외무장관회담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강부부장은 또 『앞으로 유엔내에서 남북대화 및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양측 대표부간 협의될 문제는 통일문제보다는 유엔과 관련한 것이며 단일의석을 이루는 문제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강부부장은 『핵사찰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협상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며 『남한내 핵무기를 철수한후 남북이 함께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부부장은 이어 『김일성주석은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하고 있으나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실질적 합의와 진척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앞서 그는 남북한유엔가입안이 통과된후 수락연설을 통해 『유엔에 대한 세계인민들의 기대가 날로 커가고 그에따라 이 기구의 역할을 그 어느때보다 높여야할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기에 유엔에 가입한 것은 의의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강석주 북한외교부부장 인터뷰

    ◎“유엔 단일의석 문제 조속 논의”/“동구완 달라 주체사상 확고” 『북한은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유엔에서 남측과 접촉및 회담을 많이 갖자는 입장입니다.의제는 통일문제보다는 유엔과 관련된 문제들을 협의하기를 원합니다』 강석주 북한외교부부부장은 17일 하오 남북한유엔가입안이 통과된 뒤 국기게양식을 마치고 총회 회의장 건물 2층 인도네시아 라운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히고 『남북유엔주재대사관 접촉에서는 단일의석을 이루는 문제도 논의될 것』이라고 말하는등 유엔에서의 남북간 협력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엔에 가입한 소감은. 『남한만 유엔에 가입하면 통일문제등이 왜곡돼 유엔에 전달될 수 있고 통일에 지장을 줄 것 같아 가입한 것이다.우리의 유엔가입은 오로지 군축과 통일을 위해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목적이 있다.남북한이 따로따로 유엔에 가입한 것은 일시적이어야 한다.두개의 의석을 후대에 물려주면 상상도 못할 죄가 된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는지. 『남북대화는 서울이나 평양에서 잘되고 있다.유엔에서는 유엔과 관련된 상호협조및 통일지향적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향후 북한은 대유엔외교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유엔과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남쪽에는 유엔사령부가 있는데 유엔가입을 계기로 북한이 유엔으로부터 합법정부임을 인정받았다.또 평화애호국이라는 점도 공인받았다.앞으로 유엔사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고쳐야 한다.유엔군의 모자를 쓰고 있는 주한미군은 나가야 한다. 이상옥외무장관의 유엔가입수락 연설을 들으면서 감정이 상했다.50년대(한국전쟁)에 유엔이 남한의 자유를 위해 나섰다는데 기분나쁜 소리다.과거를 들추면서 대결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남북이 서로 협상하고 협조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두개의 의석을 어떻게 하나로 만들수 있나.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남북한 단일팀으로 국제탁구경기에서 우승도 했다.원리는 마찬가지이다.남측이 민주통일을 지향하면 이뤄질 수 있다』 ­이상옥외무장관과 만날 가능성은. 『그는 장관이고 나는 부부장(차관)이다.그러나 김영남 외교부장이 뉴욕에 오면 가능성이 높다.우리는 외무장관회담을 하자는 입장이다.나도 외무장관회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남측의 의도를 모르겠다』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은. 『김일성주석도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그러나 고위급회담에서 진척이 있어야 이뤄질수 있다』 ­수락연설에서 사회주의를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서방세계에서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가 망했다고 하는데 일률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우리의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이 중심이 된 주체사상이다.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강하고 공고해질 것이다』 ­북한의 유엔가입이 일북수교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유엔가입으로 일본은 우리와 관계를 맺는데 편하게 됐다』
  • 전대협 배후 「활동가조직」은

    ◎89년 결성… 「한민전」 전위로 암약/대학선거 조직적 지원,학생회 장악/북 「구국의 소리」 방송따라 전술 제시 「전대협」을 실질적으로 배후조종하고 있는 지하조직이 「주사파」그룹인 「활동가 조직」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6일 안기부에 따르면 이 조직은 한국외국어대 경희대 한양대등 서울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민통」,연세대 서강대등 서부지역의 「조통그룹」,서울대 경북대 영남대등의 「자주그룹」,고려대가 중심이 된 「반제청년동맹」등 4개 그룹으로 되어있다. 「활동가조직」은 이들 4개 주사파 지하혁명조직의 지도책들이 89년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한민전」의 지도지침에 따라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을 구현하기 위해 구성된 것으로 안기부는 밝히고 있다. 이 조직은 운동권학생들을 비밀리에 접촉,1∼2학년생으로 「예비대오」를,「주사파」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3∼4학년생으로 「활동가 대오」를 각각 구성해 매년 학기초에 「전체 활동가 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비대오」및「활동가 대오」가 되면 김일성주체사상등을 장기적이고 조직적으로 학습하도록 하는 한편 「한민전」의 전위대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파쇼정권을 타도하고 사생의 자유를 쟁취한다」「국군통수권을 탈환하고 자주적 민족군대 건설을 위해 투쟁한다」는등의 「한민전」10대 강령으로 무장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이 조직은 특히 「전대협」을 장악하기 위해 자파 조직원이 총학생회장 후보가 되면 즉각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선배조직원등으로부터 1천여만원의 자금을 모으는등 당선을 위해 조직을 총동원해 왔다. 예컨대 송규봉군(23·경희대 총학생회장)이 지난해 경희대 총학생회회장 후보로 출마하자 경희대 「활동가 조직」인 「경희 애학」중앙위원회는 「주체혁신,멸사헌신의 각오로 제22대 총학생회장 파견자로서 전망을 밝힌다」는 「주체전망서」를 제출하도록 한뒤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학생회장으로 선출되게 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이 조직은 또 「전대협」을 실질적으로 조종하고 있는 「정책위원회」에 자파조직원 가운데 이론과 투쟁력이 탁월한 조직원을 들여보내 「정책위원회」를 주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조직원은 「정책위원회」에 들어 가서도 다른 정책위원들과 치열한 사상논쟁을 벌여 「주사파」의 이념과 투쟁방향을 관철시켜 왔다. 안기부는 이 조직이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한민전」의 전위조직이라는 사실이 구속된 송군등의 진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정책위원회」는 매년초 「한민전」신년사 내용을 기초로 투쟁방향을 수립하고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는 「한민전」의 「구국의 소리」방송을 통해 하달되는 투쟁지침에 따라 전략전술을 수립해 각대학 총학생회에 지시한다는 것이다. 「정책위원회」는 집회·시위나 총학생회간부들이 모일 때에는 「한민전가」「수령님을 따라 천만리,우리당을 따라 천만리」등 북한의 혁명가를 공공연히 부르고 이를 테이프에 수록,전국 대학에 보급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 북한 외교관의 귀순을 보고(사설)

    아프리카 콩고주재 북한대사관의 1등서기관으로 있다가 자유를 찾아 귀순한 고영환씨는 지금까지 귀순했던 북한의 현직관리중 가장 높은자리의 사람이며 최초의 외교관이다.그는 또 북한외교부장 김영남의 측근으로 대아프리카 외교정책의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그의 증언은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씨는 지난 13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귀순동기와 경위,북한의 실상등에 관해 비교적 담담한 심경으로 토로했다.그는 이날의 증언에서 북한이 60년대 중반 평북 박천에 지하핵연구시설을 건설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평북 영변과 황북 평산외에도 2개 지역에 핵관련시설이 더 있음을 폭로했다.그는 또 김현희의 KAL기 폭파사건은 평양이 저지른 것이라고 밝히고 김일성부자의 권력승계는 93년10월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증언은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사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만 북한의 현직고위관리였던 사람의 입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었던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그가 가진 정보중에는 성질상 공개되지 않은것도 많을 것이다.외교관은 대체로 국제정세와 그자신의 조국현실을 냉철하게 비교,관찰할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씨는 알바니아사태를 지켜보면서 공산주의체제를 비판한 것이 화근이 돼 평양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하자 귀순의 모험을 감행했다고 하는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김일성주석은 최근 『우리는 우리식의 사회주의 구축을 확고하게 지속해 왔기때문에 소련과 동구에서 일어난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면서 주민들의 사상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에도 금이 가고 있음을 현직 고위외교관의 「탈출」에서 감지할수 있다.그의 귀순을 계기로 북한은 외교관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한층 강화할 것이며 「의심이 가는 반동분자」들을 동구유학생들처럼 집단으로 소환하는 강경책을 쓸지도 모른다.그러나 사상통제와 교육의 강화만으로 체제를 수호할수 있다고 믿는것은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고영환씨의 귀순이후 북한이 취할 대남정책을 주시하고 있다.북한은 지난8월 유도선수 이창수씨의 귀순을 트집잡아 예정됐던 남북체육회담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으며 남북고위급회담도 콜레라라는 엉뚱한 핑계를 내세워 오는 10월로 연기시켰다.따라서 고씨의 귀순이 남북고위급회담에도 영향을 주지않을까 우려된다. 북한은 엘리트외교관의 탈출로 큰 충격을 받을수 밖에 없겠지만 이 충격을 슬기롭게 받아들여 폐쇄와 고립의 틀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고씨의 귀순은 자유와 민주의 대세는 아무도 막을수 없으며 참담한 물질적인 고통마저 겪으면서 오로지 물리적인 힘에 눌려 사는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것에 지나지 않는다.북한은 고씨의 탈출에 분개하기 앞서 천하대세의 흐름과 순리에 따라가는 현명함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귀순 북한외교관 고영환씨 1문1답

    ◎“북에도 개혁 외풍… 5년 버티기 힘들것”/“사상 나쁘다” 심한 감시… 소환 위기 처해 탈출 결심/지난 5월 서울에… 가족 신변 염려 “발표연기” 부탁/핵 개발 될때까지 국제사찰 안받을듯/개방 조류… 경제·식량난에 심각한 고민 『남한주민들의 밝고 자유스러운 생활모습과 건설·자동차공업등이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콩고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북한외교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귀순한 고영환씨(38)는 13일 내·외신기자 2백여명 앞에서 귀순동기와 경위,북한의 실상등을 낱낱이 밝혔다. ­귀순동기는. 『지난해 7월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파견나온 2등서기관에게 두달남짓 감시를 받던 터에 평양쪽에서 「사상이 좋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또 소련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신사고에 따른 정치적·경제적 변화가 일어난데다가 알바니아사태까지 빚어져 나의 사고에 변화를 일으키게 했다』 ­귀순경로는. 『평양소식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중 지난 3월2일 「유엔관련회의에 통역 안내를 맡아야 하니 평양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한쪽에서는 돌아가면 「통제구역」으로 쫓겨난다는 얘기도 들려 콩고를 떠나 국경에서 지니고 있던 돈으로 사람을 사 국경을 넘었다』 ­현재 북한에서의 외교관의 생활과 지위는. 『북한에서는 외교관이란 외국에 나가 돈을 벌 수 있고 외국구경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 최고로 선망하는 직종의 하나이다.물론 경제적으로 국가에서 아파트를 지급 받고 포도주와 담배등의 「보따리장수」로 외국돈을 비교적 많이 만질 수 있다.월급은 1등서기관의 경우 3백50달러,대사관(대사)은 4백50달러로 북한내에서는 높은 월급이지만 제3국대사관이 2천달러이상 받는 것과 비교하면 창피할 지경이다.최근에는 김정일이 외화가 없다는 것을 핑계로 대사관 예산 가운데 10%를 삭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월급은 3백50달러 ­남·북한통일문제에 대해. 『북한의 고위간부들은 70년대부터 80년초까지 통일은 김일성주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남조선당국은 대화의 상대자가 되지않는다고 여겨왔다.따라서 남조선의 야당,「전민련」등의 재야등을 대화의 상대자로 고집해온 것이다.그러나 80년대말부터 북한고위 간부들은 통일의 장애가 남조선과 미국만의 탓이 아니라 서로의 주장만을 옳다며 양보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덧붙여 앞으로 남북관계는 윤기복조국통일평화위원장이 경제전문이기 때문에 학술·체육보다는 경제관계를 우선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일 수교 목적은 돈 ­최근 소련정세의 변화가 북한의 대외정책에 미친 영향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신사고정책 발표이후 북한 정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일본과의 수교 목적이 개방보다는 일본으로부터 1백억 달러에 달하는 보상금을 받아 경제난을 타개하고 체제를 강화하려는데 있으며 독일·프랑스등 EC국가나 태국·말레이시아등 동안아국가와의 관계강화도 불리하게 진행되고있는 국제관계를 타개하려는데 주목적이 있다』 ­지난 87년 대한항공기 사건에 대해 알고 있나.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때에는 믿지않았으나 국가보위부 고위층의 연락을 받고 알았다. 당시 고위층으로부터 노동자·농민의 국가에서 어떻게 노동자가 탄 KAL기를 폭파시킬수 있느냐며 KAL기사건은 남한의 조작극이라고 각국에 호소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최근의 소련 상황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입장은. 『소련과의 관계는 정치·군사적 실리를 얻으려는 것이 북한의 기본 입장이다.그러나 소련내 강경파들에 의한 쿠데타가 「3일 천하」로 끝나버리자 매우 당황,이제는 소련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최근 북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 북한과 중국관계는 6·25를 통해 피로 맺어진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 이후 남한과 중국의 교류가 확대되고 한·중 수교의 가능성이 높아지자 중국에 대해 이념적 동맹관계를 내세워 중국을 붙들어 두기위해 애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가 북한의 개방 여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데.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생필품 부족등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외부세계로부터의 개혁바람등으로개인적으로 앞으로 5년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하며 북한의 고위층들도 조금씩이나마 개혁·개방의 필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개방된다면 어떤 식이 될것으로 보는가. 『극한 상황에서 체제 자체가 와해될 경우도 생각할수 있으나 그 보다는 현재로서는 당이 모든 정책을 주도하면서 점차 개혁·개방을 시도하는 중국식 개혁정책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 현재 북한사회 내부에서 조금씩 개방의 조짐들이 엿보이고 있으며 결국에는 경제적 개방이 정치적 개방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한다』 ○중국식 개혁 가능성 ­북한의 유엔가입결정 배경은. 『국제 정세가 날로 북한에 불리해지면서 국제무대에서 조금이나마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유엔가입을 결정했으나 유엔가입후에도 종전의 「하나의 조선」정책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북한의 핵시설 규모와 핵사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50년대말 김일성대학에 처음 핵물리학과가 개설된 이래 점차 남한의 경제·군사력이 성장하는데 위기를 느껴 이에 대한 대안으로핵무기 개발에 주력해 왔다.최근 핵사찰에 응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일뿐 결코 핵사찰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입장이다』 ­북한에 영변말고도 다른 핵시설이 있는가. 『그 문제는 북한당국내에서도 극히 일부의 고위층만이 알 뿐이며 영변말고도 몇군데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구체적인 장소는 모른다』 ­가족들의 소식은 알고 있는가. 『귀순할 당시 콩고에 남기고 온 아내(35)와 둘째아들(6)을 비롯해 평양에 살고 있는 어머니(68)등 가족들의 신변에 닥칠 위험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 그동안 가족들이 겪을 어려움을 생각해 귀순 사실을 발표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내 뜻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고영환씨 신상명세 ○출생지:자강도 강계시 서산리 ○주 소:평양시 평천구역 새마을2동 21반 무력부아파트2층2호 ○직 채: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참사대우) ○성 명:고영환,38세(53년7월14일생) ○학·경력 ­72.8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졸업 ­77.8 평양외국어대학 3학부 불어과 졸업 ­79.6 외교부 동아프리카담당 보조지도원 ­80.6 주자이르 북한대사관3등서기관 ­84.12 외교부 아프리카 담당국 지도원 ­87.7 외교부 아프리카 담당국 과장 ­88.11 주자이르 북한대사관1등서기관 ­90.12 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참사대우) ○기 타 ­노동당 당원(80년8월 입당)이며 불어에 능통 *재북시 북한방문 불어권 국가수반 및 대표단 통역·안내 □가족관계 관 계 이 름 직 업 비 고 처 김연옥(35) 콩고 거주 자 고은정(9) 인민학교 2년 평양 거주 자 고경림(6) 콩고 거주 부 고필용(72) ·개성시 인민위 부위원장 ·자강도 출하도매사업소 지배인 모 문기섭(68) ·무평양거주 형 고방남(47) ·강계국방대학 로켓발동기학부졸 ·만경대 약전기계공장 (지대함미사일)설계기사〃 형 고영철(42) ·평양방어사령부 정치지도원(소좌) ·당재정경리부4국(건설담당) 지도원〃 제 고영송(35) ·인민경제대 졸업 ·평남 증산군 3대혁명소조 지도원〃 누 나 고춘희(49) ·평양시 915탁아소 보모 매 부 전승이(49) ·당 조직지도부 과장 89년사망 매 고명희(32) ·인민군 출판사 교정원 매 부 설철범(33) ·인민무력부 보위국 지도원
  • “박천(평북)에도 지하 핵 시설 있다”

    ◎“김 부자 세습은 93년 10월 당대회서”/북한 고위외교관 고영환씨 첫 귀순/소 쿠데타때 보수세력 지원/KAL기 폭파 평양 꾸민일 북한의 참사관급 외교관인 고영환씨(38)가 지난 5월 우리나라에 귀순,13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60년대 중반 평북 박천에 지하핵연구시설을 건설했으며 앞으로 1∼3년내에 핵무기를 생산할 것이라는 얘기가 북한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많이 나돌고 있다』고 폭로했다.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처음 귀순한 고씨는 이날 『북한은 체제수호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핵무기를 개발할때까지 핵사찰에 응하지 않고 시간을 끌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는 아프리카 콩고주재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참사대우)으로 근무하던중 지난 3월 근무지를 이탈,5월초 제3국을 거쳐 귀순해왔다. 고씨는 귀순동기에 대해 『지난해 알바니아사태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다 자신도 모르게 사회주의체제를 비판한 것이 평양에 보고돼 소환될 위기에 처해 귀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일성주석등 북한고위층이 외국원수등을 접견할때 통역을 맡아왔던 고씨는 『북한은 내년에 김일성의 80회 생일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당대회와 같은 행사를 개최하기 힘들 것』이라고 설명하고 『따라서 북한은 제3차 7개년경제개발계획이 끝나는 93년10월쯤 7차당대회를 개최,김정일에 대한 권력세습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난 88년 11월 북한 외교부 동아프리카 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외교부본부로부터 앙골라 주재 수산대표로 있던 김호철씨가 KAL기 폭파범 「마유미」의 아버지이므로 모스크바를 경유,긴급 소환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이 지시를 전달한바 있다』며 『대한항공858기사건은 북한이 꾸민일』이라고 말했다.
  • “북한,소 사태 영향 없다/북­일 수교뒤 방일 희망”

    ◎김일성,일지와 회견 【도쿄 로이터 연합】 북한 김일성주석은 소련및 동구의 사회주의 몰락에 언급,『자립을 이루지못한 국가의 사회주의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동구를 지칭,강조했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주석은 북한의 향후 노선과 관련,『우리나라가 우리식의 사회주의 구축을 확고하게 지속해왔기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변화들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김주석은 또 『일본과 국교 교섭이 이뤄지면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하고 『몽골은 바다가 없으므로 나진·청진항등을 제공,몽골과 일본의 무역을 확대하도록 제안한다』고 말했다.
  • 북한 9·9절 행사/고르비,축전 보내

    【도쿄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북한의 건국43주년 기념일을 맞아 김일성주석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냈다고 북한의 관영중앙통신(KCNA)이 10일 보도했다.
  • 청소년 유흥가 출입 오늘부터 단속/전국 81곳「제한구역」표지/경찰

    ◎하오8∼새벽5시 선도 활동 9일부터 서울 부산 광주등 전국 주요도시의 유흥가및 윤락가에 81곳의 「청소년 출입제한구역」이 설정돼 하오 8시부터 다음날 새벽5시까지 미성년자들의 출입이 제한된다. 경찰청은 8일 이들 지역에 「미성년자 출입제한구역」이라는 표시판을 붙이고 9일부터 교사 청소년선도위원등과 함께 청소년 조기 귀가 캠페인과 비행청소년 선도보호활동을 적극 전개할 방침이다. ◎도시별 청소년 출입 제한구역 ◇서울=▲이태원 126 소방서∼이태원 럭키클럽 ▲용산구 한강로2가 청용다방∼상수약국 ▲신사동 501 서울카바레∼502 중앙카바레 ▲전농2동 620 맘모스호텔∼623 대일약국 ▲용두1동 홍일빌딩∼낙원스탠드바 ▲신길3동 329 상록수주점∼261 앵두집주점 ▲화양동 111 대사관 카페∼132 제일식당 ▲대조동 19 장호각∼181 대성장여관 ▲시흥1동 995 시흥노인정∼복지매장 ▲방배동 790 늘봄갈비∼752 식당 「적도의 꽃」 ▲신림5동 1432 상업은행 신림지점∼1426 가야쇼핑 정문 ▲천호4동 423 보영약국∼418 대시장약국 ▲길1동 459현대증권∼중소기업은행 ▲하월곡1동 104 청풍주점∼향주주점 ▲미아4동 460 세일극장 뒷골목 ▲오류1동 44 시티월드주점∼47 대림장여관 ▲서초2동 1304 영신빌딩∼1318 대신빌딩 ▲신정2동 117 메아리주점∼120 제일찻집 ▲방이동 38 빅토리호텔∼51 임마누엘교회 ▲을지로4가 제일조명∼아마존카바레 ▲남대문로5가 84 세브란스빌딩∼121 구도쿄호텔 ▲남대문로5가 643 힐튼호텔∼580 초원정 ▲회현동1가 92 파레스호텔∼회현동3가 12 오리엔탈호텔 ▲대현동 37 신촌역앞∼대현파출소 ▲창신1동 446 돌다방∼430 양양화물 입구 ▲노고산동 106 그랑프리여관∼109 경산여관 ▲아현2동 330 숲속주점∼331 향현주점 ▲영2동 432 영생약국∼문래동3가 5 대원철강사 ▲영1동 618 영등포역∼도림국민학교 ▲황학동 371 상업은행 성동지점∼754 경찰초소앞 ◇부산=▲초량2동 485 뉴부산바∼1206 오션클럽 ▲범전동 338 일대 속칭 「3백번지」 ▲충무2가동 17 계일장∼옥성관 속칭 「완월동」 ▲감전동 104 마차집∼105 야자수주점 ◇대구=▲도원동 3 시민약국∼도원아파트 ◇인천=▲숭의1동 360∼388 속칭 「창녀촌」 ▲학익1동 428∼480 ▲주안2동 507 일대 ◇광주=▲황금동 27 구시청사거리∼49 남도극장 ▲황금동 88 그랜드호텔∼102 런던약국 ▲황금동 27 구시청사거리∼14 청송슈퍼 ▲충장로2가 16 광주우체국∼29 미도스탠드바 ▲충금동 32 충장3가 입구∼14 보석상회 ▲황금동 5 삼우약국∼19 대인약국 ▲황금동 91 황금콜박스∼39 현대장여관 ▲학동 74 평화약국∼71 맛나상회 ▲대인동 25 공용터미널 뒷문∼24 송약국 ▲송정동 273 보난자클럽∼296 뉴욕클럽 ▲송정2동 840 한성장여관∼1003 송정역 앞 ▲송정3동 999 오비광장∼1003 장흥집 ◇대전=▲유천동 330 덕성주유소∼328 불사조 ▲정동 13 송림상회∼정동 4 한성약국 ◇수원=▲고등동 254∼256 ◇성남=▲중동 1005∼1364 ◇의정부=▲생연동 665∼690 ◇부천=▲심곡2동 170∼145 ◇평택=▲평택동 55∼185 ◇춘천=▲조양동 164∼죽림 산1 ▲소낙동 49∼26 ▲근화동 96 일대 ◇원주=▲학성1동 436∼1066 ▲태장2동 1367∼1365 ◇강릉=▲교2동 156∼140 ◇동해=▲발한동 2∼29 ◇태백=▲황지1동 33 일대 ◇속초=▲금호동 484∼473 ◇청주=▲남문로2가 구청주극장 입구∼제일극장 입구 ◇충주=▲성남동 110∼성서동 121 ◇천안=▲대흥동 62 마라톤약국∼32 금광당 ◇경주=▲황오동 179 중소기업은행∼197 경주우체국 ◇김천=▲평화동 324 영남여관∼261 서울여인숙 ◇안동=▲운흥동 186 시몽간판집∼남부동 16 ◇포항=▲대흥동 717 금하여관∼719 사창가 입구 ◇마산=▲신포동 주유소∼중앙통닭 ◇전주=▲전동3가 131∼다가동2가 21번지 ▲서노송동 582∼685 ◇군산=▲대명동 138 일대 ◇이리=▲창인동 1가 일대 ◇여수=▲중앙동 683 금천식당∼교동 243 교동오거리 ▲공화동 319 이칠세차장∼1354 전매서 ▲교동 587 정산부인과∼625 한국오토바이
  • 북한의 선택(사설)

    소련에서 솟구치고 있는 대변혁의 본질은 역사가 지금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흐름을 역류시키려 했을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보수강경파와 군부가 손을 잡고 일으킨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뒤 70여년을 이어온 소련공산당은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고 연방제마저 해체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이러한 변혁은 소련의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무모한 모험을 저지른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이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시대착오적인 낡은 틀속에서 계속 움츠러들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북한·중국·쿠바 등에서 그러한 집단을 보게 되는데 우리는 북한을 걱정스런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김일성주석을 비롯한 북한판 노멘클라투라의 운명이야 상관할 것이 없지만 이들의 그릇된 아집때문에 북한주민들이 겪어야할 시련이 가슴아플 뿐이다.북한이 앞으로 취할 태도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를 예측하고 있다. 첫째,체제수호를 위해 내부단속과 주민결속에 부심할 것이란 점이다.이에따라 주민통제와 사상교육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짐작된다.평양방송이 지난 26일 「국내외의 적들로부터 사회주의를 수호하자」고 촉구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을 대변하고 있다.둘째,남북관계를 일단 냉각시킨뒤 시간을 갖고 대남전략을 재조정할 것으로 보인다.셋째,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소련의 변혁에 공동보조를 취할 것으로 생각된다.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직후 북한의 김영남외교부장이 급히 중국을 방문,중국의 전기침외교부장과 비밀회담을 가진 것은 이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련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응급처방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김일성주석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그러면 그가 선택해야할 바른 길은 무엇인가.두려워할 것도 없고 초조해 할것도 없이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다. 남북분단이후 반세기 가까이 북한을 강압적으로 통치해온 그가 지금으로서는 역사의 흐름에 발맞추기는어려울 것이다.그렇다면 점진적이나마 개방의 폭을 넓혀 나가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일부터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유엔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식대로 살자」고 고집하는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일성주석은 주체사상이란 독창적인 이념을 스스로 창시했다고 자랑해 왔다.그러나 그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주체사상의 원전자체가 종주국에서 소멸되고 있는 이때에 그것을 놓지 않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동구 공산체제의 잇단 붕괴에도 고개를 내젓고 소련의 변혁에도 눈을 감는다면 그 종말은 불을 보듯 뻔하다.김일성주석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소 반전드라마와 북한 대응

    ◎“기대만큼 허탈”… 희비 엇갈린 평양/총리회담등 대남정책 거듭 번복/「내키지 않는 남북대좌」 자인한셈/당분간 「문단속」강화… 「조정기」 거칠듯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직 복귀로 마무리된 소련의 정변은 엉뚱하게 한반도에 그 여파를 미쳐 남북고위급회담의 연기라는 불똥을 남기었다. 소련 군부강경파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던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북한은 사태추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반응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남북대화에 임하는 기본자세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서」라는 사실만을 확인시켜주고 말았다. 이는 곧 고위급회담이 재개된다해도 생산적인 대화가 어려울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회담전망을 낙관하고 있는 일부 정책담당자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교훈이 되고있다. 북한은 지난 19일 「고르비 실각」사실이 외신에 입전된지 불과 6시간여만인 하오 7시이를 중앙방송의 비정규뉴스를 통해 이례적으로 신속히 보도함으로써 개혁과 개방을 앞세워 김일성주석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고르비의 축출에 대해 고무된 감정을 솔직히 표출했다. 이어 같은날 하오 9시 방송을 통해 콜레라발생국가 주민의 입북을 제한할 것이라는 보건부대변인의 담화를 보도,일종의 복선을 깔았다. 북한은 소쿠데타 발생 하루뒤인 20일 로동신문을 통해 『사회주의 승리는 역사적 필연』이라며 『그 누구든지 역사발전법칙에 따를 때는 승리하지만 이 흐름에 역행할때는 파멸을 면치 못한다』고 호언했다. 북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날 상오10시 판문점에서 있은 제4차 고위급회담 남북책임연락관 접촉에서 「남쪽에서의 콜레라발생」이라는 절묘한 이유를 내세워 27일로 다가온 평양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자고 주장했다. 소사태에 고무된 북한으로 볼때 열악해진 국제적 입지를 반전시킬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 탐탁지 않은 남북대화에 임하기보다 좀더 사태가 명료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자는 입장이 분명해진 것이다.북한은 그러나 21일 쿠데타발생 3일이 지나면서 소련전역에서 수십만명의 국민들이 반쿠데타시위를 벌이는등 사태가 역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일체 언급을 회피한채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발표한 「정령」과 모스크바위수사령관의 통금령만을 전하는등 쿠데타주도세력에 대한 기대를 떨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21일과 22일 판문점에서 두차례의 고위급회담 남북책임연락관접촉이 있었으나 북측은 20일 내놓은 「판문점개최」만을 거듭 주장할뿐 제4차 평양회담의 개최반대인지,연기요구인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1일밤 소쿠데타가 실패로 끝났고 이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졌으나 북한이 이를 보도한 것은 하룻밤이 지난 22일 낮12시 뉴스에서였다.쿠데타 실패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않은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성명을 발표,정상적인 대통령의 직무에 복귀하겠다고 밝힌 사실만을 짤막하게 5번째 뉴스로 보도했다. 쿠데타실패뉴스를 접한 김일성주석이 기대만큼이나 큰 허탈감에 빠져 있으리라는 일반적 예측과 달리 예상보다 빠른 반응이었다. 곧이어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22일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고르바초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이 역시 이례적으로발빠른 행보였다. 더 나아가 북한은 23일 열린 남북판문점 책임연락관 접촉에서 「판문점개최」를 주장해 온 제4차고위급회담을 오는 10월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제의,남북합의를 이끌어냈다. 김일성주석이 지난달 24일 조·일우호촉진의원연맹대표단과 대좌한 자리에서 밝혔듯 북한이 다시 『세계조류에 맞춰 현실적인(대외)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음을 자인한 셈이다. 김주석은 그러나 소련의 격변이 「주체사상」과 같은 위대한 사상이 없는데서 비롯됐다는 말을 내세워 대내적인 결속의 고삐만은 늦추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소 사태 보도태도 일 자 보 도 내 용 19일 고르비 실각,비정규 뉴스로 신속보도. 콜레라 발생국가 주민 입북제한 발표 20일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판문점개최 주장 21일 소 국가비상사태위 「정령」만 보도 22일 고르비 직무복귀 간단히 보도 김영남외교부장,고르비지지 표명 23일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10월 평양개최 제의
  • 무안해진 김일성/장수근 북한부장(데스크시각)

    「개혁의 향도」고르바초프를 밀어내고 권력을 찬탈하려했던 소련 강경보수파의 궁정쿠데타가 「3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이번 쿠데타가 실패하리란 것은 거사 직후부터 여러 대목에서 예견돼왔다.8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정령」발표 이후 이뤄진 쿠데타군의 출동,언론장악의 실패,지도부의 분열상 노정등. ○개혁은 역사의 당위 이에 더해 시민들의 끈질긴 항거와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 보리스 옐친을 중심으로 한 개혁 지지세력들의 총구의 위협을 무릅쓴 저항도 쿠데타군의 발길을 병영으로 되돌리게 하는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이번 소련 쿠데타가 성공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사의 당위속에서 솎아내야할 것 같다. 이미 동구와 소련에서 실패한 것으로 판정이 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노라 탱크를 몰고 나온 보수세력집단에 손을 들어주는 「우군」은 아무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스탈린식 체제부활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지난 85년이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정책으로 민주와 자유를 누려온 모스크바 시민들은 주저않고 몸을 던져 쿠데타군의 탱크를 막았다.개혁의 흐름이 멈춰지고 보수의 회랑으로 되몰리기 보다는 차라리 목숨을 버리겠다는 저항 의지의 표출이었다. 소련 공산당의 끝장을 의미하는 이번 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는 향후 소련의 국내 정국은 물론 세계질서에도 심대한 영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지금 전후 어렵사리 구축된 평화공존의 큰 틀이 손상을 면하게 된데 대해 안도와 환영의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반면 고르바초프의 모스크바 복귀소식이 전해지면서 낯을 붉히고 있는 쪽도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 19일 고르바초프가 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정규 뉴스시간이 아닌데도 관영 중앙방송을 통해 이 사실을 즉각 보도하는 기민한 반응을 보였다.그런가하면 20일에는 노동신문의 논설을 통해 『사회주의의 승리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주장하며 고르바초프의 실각에 고무·격려된 듯한 태도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비록 웃는 모습은전해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그것봐라,꼴 좋다』는 듯한 표정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김주석은 그간 고르바초프가 추구해온 개방과 개혁정책을 『사회주의 이념을 저버린 배신행위』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난해왔다. 그런 그가 소련내 보수강경파의 재등장에 손뼉을 쳤으리란건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 때문에 그동안 소원해진 양국 관계가 복원될 것이란 기대를 안겨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소련이 보수강경으로 돌아선다는 것은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건설에서 소련이라는 든든한 동맹국을 다시 얻게 된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몇푼의 달러에 몸을 파는 고르비』라며 매도,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던 김주석에게 고르비의 크렘린 귀환은 그가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소 재건 기대 물거품 사회주의 승리의 표상으로서 김주석이 걸었던 소련재건의 기대는 이제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특히 그동안 유동적 상황에 놓여있던 소련의 개혁정책이 이번 쿠데타실패를 계기로 뚜렷한 방향을 잡을 경우 김주석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질 터이다. 이번 사태가 그동안 나름대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던 보수파의 몰락과 함께 김주석이 한사코 거부하는 개혁과 그 추진세력들의 완승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러하다. 김주석이 등을 비빌 수 있었던 보수파가 허물어지고 고르바초프를 정점으로 하는 개혁파가 다시 전권을 장악한 현 시점에서 그의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비롯한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등 소련의 지도층은 북한정권이 이번 「3일천하」쿠데타 때 소련군부 강경세력에 적극 동조한 사실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김주석의 무안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식」 고집땐 자멸 앞으로의 소·북한관계는 고르바초프의 실각사실에 속마음을 온통 드러낸채 환호했던 김주석이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잡느냐에 따라 조율돼 나갈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그가 소련이 앞장서 선도하고 있는 개혁과 개방의 흐름에 역행,계속 「우리식대로 살자」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집할 경우 북한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이번 소련사태에서 깨달아야할 가장 큰 교훈은 민주화·자유화의 노선을 보다 확고히 하지 않을 경우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 고르비 복귀 소식이 반가운 예레멘코 소 대사대리

    ◎“소­한유대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확신/콜레라핑계 고위회담 기피 우스운일” 『27년동안의 외교관생활중 가장 길고 어려웠던 사흘이었습니다.그동안 쿠데타에 맞선 소련국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국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22일 아침 주한소련대사관의 로엔그린 예레멘코대리대사(52)는 참으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레그 소콜로프대사가 본국에서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주한대사관의 총책임자로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본국정세의 변화에 온갖 신경을 다 썼기 때문이다. 그는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땐 대통령이 체포됐는지 어떤지 몰라 불안했고 매우 슬펐다』면서 『이제 국민들이 쿠데타를 물리친 만큼 소련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소련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개혁은 시작하면 계속해야하는 것이다.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고르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으로서 존경한다.소련의 민주화를 추진하는데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외신은 전하는데. 『옐친이 쿠데타기간중 국민에게 반쿠데타를 직접 호소한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같다.그도 이미 개혁의 맛을 봤으며 연방대통령(고르비지칭)밑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일 뿐이다. ­한소관계는 우리의 북방정책추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기존의 유대관계가 계속 진전할 것으로 낙관하며 특히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희망한다』 ­북한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57년부터 8년동안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 2등·1등서기관과 참사관으로 근무했다.지난 88년11월엔 셰바르드나제 당시외무장관의 북한 공식방문준비단으로 평양에서 김일성주석과도 만났다.어제 신문에서 북한측이 남북고위급회담을 한국의 콜레라비상때문에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를 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우스운 얘기다』 소련 모스크바국립대 동양대학에서 우리말을 익힌뒤 64년까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몇년동안 근무하다 외무부에 들어온 예레멘코대사대리는 모스크바에있는 부인과 역시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외딸(34)과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3일천하」로 끝난 쿠데타의 부담을 던 탓인지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 대사관·상의 활기/항공사엔 모스크바행 예약 쇄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262 청산빌딩 2층에 자리잡은 소련대사관은 예레멘코대리대사가 상오8시57분쯤 출근한데 이어 유학생·기업인 등의 비자발급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강남구 삼성동159 공항터미널 6층에 있는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부(소장 발레리 리자로프)는 이날 소련인 직원 5명과 한국인 직원 1명이 평소보다한시간 빠른 상오8시쯤 출근해 본국에서 전해오는 텔렉스와 타스통신 등을 지켜보며 쿠데타실패에 안도하는 표정. ○…이 건물1층의 소련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서울지점(지점장 파블리오크 비탈리)도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바쁘게 받는등 정상업무에 들어갔다. 예약과 직원 오모양(25)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동안 비행기 이륙이 가능한지,또는 예약을 취소할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가 쇄도했으나 오늘은 상오에만 20여통의 비행기 좌석 예약문의가 들어와 바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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