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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장영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1920년대 만주항일투쟁 주도/청산리대첩뒤 10개 독립단체 통합/대한독립군단 창설… 초대 참모장 역임 무장독립단체의 통합체인 대한독립군단 참모총장을 역임한 백우 이장령선생은 1881년 5월20일 충남 천원군 목천면 서리에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결단력이 유달리 강했던 선생은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에 입학,1903년 육군부위로 승진했으나 1907년 8월1일 대한제국군해산령이 내려진 것을 계기로 해외에서의 조국광복투쟁을 결심하고 1907년 11월20일 중국 동북지방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했다.1905년 을사조약후 최초의 국외망명자가 된 것이다. ○충남 천안서 출생 선생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삼원보에 정착한 이회영형제를 비롯한 신민회 간부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선생은 이씨형제와 신흥강습소를 창설하고 교관이 돼 애국청년들의 군사훈련과 독립정신 고취에 헌신한다.1920년 8월 일제의 강압으로 학교가 폐교될 때 까지 2천1백여명의 독립군이 배출된 데는 선생의 공이 컸다. 선생은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을 기점으로 대종교의 지도자 서일·신규식·김헌·김성주를 중심으로 결성된 군정부(일명 대한군정서)의 참모장으로 임명됐다.대한군정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북로군정서로 개칭된다. 북로군정서 소속 군은 북간도지방의 군사주력부대로서 군인을 모집,훈련시키고 무기를 구입하여 임전태세를 확립하는 한편 곳곳에 정보연락기관을 설치했으며 근거지는 왕청현 십리평 일대의 30여리에 걸친 심림지대였다. 북로군정서 군은 소련령의 블라디보스토크등으로부터 최신 무기를 구입,무장하고 전투훈련을 계속했으나 이 사실을 탐지한 일본군은 독립군 대토벌작전을 계획하고 중국에 은근한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다.『중일 양국은 우호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영토내에 독립군 대부대가 무장하고 일본에 항전하고 있는 것은 중국당국에서 독립군을 보호하는 결과이므로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일본의 내정간섭을 불쾌하게 여겼으나 싸울 능력이 없었던 중국은 독립군을 공격하는 척 하면서 독립군에게는 산중피신을 권고하기도 했다.북로군정서 군은 좀 더 실력이 증강될 때 까지는 일본군과의 정면전쟁은 피할 생각이었다.그러나 1920년 9월20일 이범석을 단장으로 이동준비를 서두르던 중 예기지 않았던 훈춘사건이 발생했다. 일본군의 조종을 받은 마적 4백여명이 훈춘성을 공격하면서 일본영사관을 일부러 습격하고 일경간부 가족 부녀자 9명을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킨다.일본은 이 자작극을 구실삼아 중국당국의 양해도 받지 않고 연대병력을 전격적으로 출동시켜 한국인 부락을 모조리 습격했다.일본군은 북로군정서 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협공작전을 폈으나 북로군정서 군이 이를 인지,서로군정서와 합류하고 백두산지역에 새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안도현으로의 이동을 개시한다.그러나 일군의 집요한 작전으로 일전을 불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청산리 계곡은 동서로 25㎞에 달하는 긴 터널과 같은 계곡으로 좌우에는 울창한 삼림지대로 겨우 인마통행만이 가능할 정도였다. ○1천2백명 사살 북로군정서 군은 1제대장 김좌진장군과 2제대장 이범석장군의 지휘로 요충지에 군사를 매복시키는등 전투준비를 완료했다.1920년 10월20일 상오 9시 안천소좌가 이끄는 일본군이 지형정찰도 하지 않고 계곡의 좁은 길을 따라 이범석부대의 매복지점에 들어서자 독립군은 일제사격을 가해 일거에 패퇴시켰다.일본군 본대까지 달려와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으나 유리한 지형을 이용,포진하고 있는 독립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10월20일부터 25일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된 이 전투가 독립운동사에 가장 빛나는 청산리대첩이다.일본군은 연대장을 포함,1천2백여명이 사살됐으나 독립군은 불과 1백여명만이 전사했을 뿐이다. 1920년 12월 북로군정서 군의 주도아래 대한독립군·대한국민회·대한정의군정사등 10개 독립군단체는 대한독립군단으로 조직된다.선생은 이 단체의 참모총장으로 임명됐는데 병력은 3천5백명이었다. 대한독립군단은 이후 일본군의 예봉을 피하고 전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소련영토로 이동,러시아혁명의 와중에 있던 공산계열인 소련군과「동상이몽」식이었으나 한동안 손을 잡는다.속뜻이 달라 소련군과 갈등관계를 유지하던 독립군은 소련과 캄차카반도연안의 어업협상을 벌이던 일본이 『소련영토에 한인혁명단체를 육성하는 것은 양국 우호관계상 적절치 못하다』는 근질긴 항의때문에 무조건적인 무장해제를 통고받는다. 1921년 6월28일 소련군은 통보를 무시한 독립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독립군은 이 싸움에서 3백여명이 전사하고 2백50여명이 행방불명이 되는등 큰 피해를 입었다.흑하사변으로 불리는 이 참변후 선생은 중국 동북지방으로 피신했다. ○건국훈장 추서 대한독립군단 재편으로 1924년 3월 대한독립군정서군이 조직되자 선생은 다시 적극 참여했으며 7월 길림에서 전만통일의회주비회를 열어 독립단체가 통합되려 할 때 윤각과 함께 참가,회의의 주비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신민부를 조직했고 신민부의 참의원으로 선임됐다. 일제의 압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더욱 가혹해졌으며 선생이 있던 중국 동북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활동의 폭도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평생조국광복을 위해 같이 싸웠던 김좌진이 공산당원에게 살해당하면서 독립운동무대를 상해로 옮기려던 선생은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마적에게 피살되는 불운을 맞게 된다.선생의 나이 51세였다.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북한주재 중국대사/교종회 신임장 제정

    【북경 연합】 북한주재 중국대사로 부임한 교종회가 24일 평양의 금수산 의사당에서 김일성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 1차 수능시험 남녀수석

    ◎전체수석 1백98점 재호필군 대구 성광고/“학교서 매일 밤12시까지 자습”/구멍가게 장남… 1등 놓친적 없어 『시험을 잘 보긴 했지만 수석은 뜻밖입니다.오늘의 영광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덕분입니다』 대입제도 개선후 처음 실시된 1차 대학수능시험에서 2백점 만점에 1백98점으로 전국 수석을 차지한 배호필군(18·대구성광고 3년)은 수석이 의외라며 기쁨을 주윗사람에게 돌렸다. 배군은 아침 7시에 등교해 학교 수업에 충실했고 수업이 끝난뒤 교실이나 도서관에 남아 밤 12시까지 복습과 예습에 열중해 왔다고 수석의 비결을 밝혔다. 배군은 『수능시험이 학력고사와는 달리 사고력 측정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개념파악에 힘썼으며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면서 TV방송교재와 학교문제집으로 보완했다』고 말했다. 배군은 대구 신암국교와 영신중을 거치는 동안 한번도 수석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지난해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수학경시대회와 교육부 주최 영어경시대회에서 수석을 하면서 주위에서는 배군이 이번 수능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할 수있을것으로 기대했을 정도. 담임 장병일교사(46)는 『배군은 고입연합고사에서 2백점 만점으로 수석 입학한 이후 줄곧 장학금을 받아 왔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보다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양보할 정도로 겸손하고 과묵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남중 맏이인 배군은 아버지 배원호씨(46·대구시 북구 대현3동 328의1}가 13년전 고향인 경북 성주를 떠나와 알루미늄새시공으로 일하고 어머니 박종선씨(42)는 구멍가게를 하는 어려운 살림 때문에 그동안 그 흔한 과외 한번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전자공학과 진학을 희망했으나 최근에 눈이 자꾸 나빠져 의예과로의 진학을 검토하고 있다』고 배군은 밝혔다. 중학교때는 컴퓨터를 많이 했으나 요즘은 시간이 없어 못하고 있다는 배군은 『쉬는 시간에는 주로 가요를 들으며 피로를 푼다』고 말했다. ◎여자수석 1백94·8점 조희연양 명덕여고졸/“부족과목 예습·복습 치중 주효”/단편소설 등 독서 큰 도움… 의사가 꿈 『수학능력시험의 문제유형에 익숙지 않아 재학생에 비해불리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뜻밖입니다』 21일 발표된 제1차 수학능력시험에서 1백94.8점을 얻어 여자수석의 영예를 안은 조희연양(19·93년 서울 명덕여고 졸)은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서울대 의예과를 지망했다가 고배를 마신 조양은 그동안 학원에 다니며 「명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양은 매일 하오 2∼3시에 학원수업을 마치면 밤 10시까지 남아 자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복습을 계속하는 등 재수생의 경우 자칫 페이스를 흐뜨러뜨릴 수 있는 약점을 극복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양에게도 입시사상 처음 실시된 수학능력시험에 적응하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영어 듣기평가에 대비해 학원을 오가는 시간에 영어회화 테이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또 주로 주말을 이용,우리나라의 단편소설등 다양한 책을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전교 2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고교를 졸업한 조양은 그러나 과외수업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20평남짓한 전세 연립주택에 사는탓에 가정형편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릴때부터 책을 가까이해 항상 좋은 성적을 보여 굳이 과외수업이 필요없었다는 것이 아버지 조시형씨(49·의류가공업)의 설명이다.2남1녀중 둘째인 조양의 오빠 성일군(21)은 포항공대3년 재학중이고 동생 성우군(18)은 경성고3년생으로 이번에 함께 시험을 치렀다. 중학교때 읽은 어느 신경외과 의사의 수기에 감동받아 의사의 꿈을 키우게됐다는 조양은 『올해 서울대의대에 재도전,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인간적인」 의사가 되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했다.
  • 추곡수매량·값 결정/양곡유통위 첫 회의

    올 추곡 수매량과 수매가를 결정하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됐다. 농림수산부는 18일 상오 과천 제2청사 대회의실에서 자문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 1차회의를 열고 양정시책 추진현황과 올 추곡 수매가 및 수매량을 정하기위한 위원회의 운영방향에 대해 협의했다. 한편 양곡유통위원회는 이날 임기가 만료된 김동희교수(63·단국대 농대)를 위원장으로 다시 선출했다. 내년 8월31일까지 1년간 양곡정책에 관한 자문을 하게 될 20명의 양곡유통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생산자대표=천경옥(농협중앙회 부회장·신임) 이봉주(충남 논산 연무단협장) 김종남(전남 강진) 김수호(경북 성주) 안길환(전북 김제) ▲소비자대표=인배환(공익문제연구원장) 오두현(한국소비자보호원 부원장·신임) 박수남(대한요식업중앙회장·신임) 김숙희(대한YWCA연합회장·신임) 김봉두(한일소비경제신문 편집국장·신임) ▲학계대표=김동희(단국대교수) 강봉순(서울대교수) 곽상경(고려대교수) 장동섭(전남대교수) ▲언론계대표=최택만(서울신문 논설위원) 김문순(조선일보 논설위원·신임) ▲연구기관대표=강정일(한국농촌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신임) 송대희(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통분야대표=유재근(전국양곡상연합회장·신임) 이재명(대한곡물협회 전무)
  • 꿀벌독/만성통증 치료에 특효/김문호 재미의학자

    ◎서울학술대회서 봉독요법 개발 발표/벌에 전기쇼크 가해 추출… 신경통·관절염 등 80% 완치/임산부·당뇨병 환자엔 “금물” 신경통.관절통.근육통으로 불리는 만성통증은 약물투여등의 현대의술로도 좀처럼 치료되지 않는경우가 많다.따라서 만성통증을 없애기 위한 연구는 세계적으로 활발하며 국내에서도 최근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6일부터 4일동안 한국통증연구학회 주최로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는 「제1차 세계동서의학 통증치료 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끈다. 보건사회부.대한의학협회.대한한의사협회등가 협찬하는 이 대회는 미국.일본.독일.프랑스등에서 세계적인 통증의학전문가들이 대거 참석,최신의 만성통증치료법을 집중 소개한다.레이저요법,방아쇠점 주사요법,전기침요법등 동서의학을 접목한 치료법이 주로 발표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연구는 재미의학자 김문호박사(뉴저지 매머드통증연구소장)의 봉독요법이다. 봉독요법은 꿀벌의 독을 인체에 주사해 신경통,근육통,관절염등을 치료하는 방법.봉독은 벌에 9∼12v의 전기쇼크를 가해 추출하는데 대략 1만마리에서 1g가량을 얻을수 있다.멜라틴·아파민·아돌라핀등의 단백질및 효소성분으로 구성된 봉독은 인체 면역체계 강화와 항염증작용을 갖는다.즉 멜라틴·아파민등의 단백질 성분은 뇌하수체­부신체계를 자극하여 항염증작용을 갖는 코티손과 카데콜라민을 생성한다.코티손과 카데콜라민은 동물실험 결과 일반 항염제보다 1백배이상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인체에 봉독을 주입해 주면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세포가 완전 차단되어 통증이 없어지게 된다.봉독은 특히 척추이상환자에게 많이 생기는 다발성경화증처럼 치료가 어렵거나 원인을 알수 없는 만성통증의 제거에 뛰어난 효과를 지닌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88년 오스트리아 의사 필립 터크가 처음으로 임상에적용한 이 치료법은 78년 미국에 봉독요법학회가 결성되면서 현대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난 89년부터 3년간 이 학회 회장을 역임한 김박사는 봉독을 순수하게 추출해 순도높은 무균성주사제로 정량화한「에피톡신」을 개발하는데 성공,89년 미식품의약국(FDA)로부터 임상연구용 신약으로 승인을 받았다.김박사는 지금까지 3천여명의 만성통증환자에게 봉독요법을 적용,80%가량의 통증 완치율을 거뒀다고 밝히고 있다. 봉독요법은 처음엔 아픈부위에 봉독 1㎎이 함유된 주사액을 3대 투여한 뒤 1주일에 2회씩,모두 12∼16회 주사하게 된다.이 방법은 주사제가 정량화되어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벌의 독침을 몸에 직접 찌르는 민방의 독침요법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부작용이적다.다만 주사제를 투여받은 뒤 가려움증(치료시작때 80%.치료중 40%.치료후 5%)과 부어오름(30%).두통(6%)이 오기때문에 임산부나 합병증이 심한 당뇨병 환자등에게는 권장되지 않는다. 김박사는 『봉독요법은 약물이나 여러 치유법으로 잘 듣지않는 만성염증과 통증질환의 특수 치료법으로 효과가 뚜렷하다』며 『현재 미국·독일등에서는 민방으로 전해 내려오는 봉독의 약리작용 규명과 신약개발 노력이 활발히 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국제레이저치료학회장 페카폰티넨교수(핀란드 쿠오피오의대 마취과)가 침구점에 레이저로 빛에너지 자극을 가하는 레이저 통증치료법을 소개한다.또 뉴욕 심장질환 연구재단 요시아키 오무라교수는 통증부위에 침을 꽂은뒤 그 침에 특수한 전류를 흐르게 하는 전기침요법을 발표할 예정이다.
  • 카페서 시민 집단폭행/경관 4명 파면

    서울경찰청은 4일 경찰관 시민집단구타사건과 관련,서울서부경찰서 형사과소속 임승익경장(36)등 경찰관 4명을 파면조치하고 윤재국형사과장·조철행형사계장등 간부3명은 지휘책임을 물어 중징계키로 했다. 임경장등 4명은 지난달 31일 하오11시30분쯤 은평구 대조동 N카페에서 술을 마시다 손님 김모씨(27·포장마차종업원)등 5명과 여자종업원문제로 시비끝에 김씨를 집단구타,팔을 부러뜨리는등 전치8주의 중상을 입혔다. 사건을 담당한 서부경찰서는 지난 1일 이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없이 숨겨오다 3일 뒤늦게 김씨의 일행 조철준씨(23)와 문성주씨(23)만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불구속입건했을뿐 관련경찰관들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 남녀 무용수 「누드춤 사진전」 서화갤러리서 열려

    ◎무용이 옷을 훌훌 벗었다/최영모가 찍은 4만여컷중 30점 전시/“선정주의냐” “예술이냐” 판단 관객에 무용이 옷을 벗었다.오는 9일까지 서울 청담동 서화갤러리에서 열리는 「최영모의 무용사진전」에는 11명의 남녀무용수들의 「옷을 입지 않은 춤」30점이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이번 누드무용사진전에 무용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이 잔뜩 쏠려 있다.「상업성을 앞세운 선정주의냐」아니면 「나체는 진실이며 미이며 예술이냐」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관객들의 몫이다. 『춤이 몸으로 쓰는 시라면 의상은 육체의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굴레가 되어왔다』는 것이 사진작가 최영모씨의 주장이다.그러나 무대에 선 무용수들의 옷속에 감춰진 진실을 상상해 왔던 관객들에게 껍질을 훌훌 벗어던진 무용수들의 잘 조율된 몸의 실체는 충격적이다. 이 전시회에 몰리는 일반관객은 다분히 감각적인 관심못지 않게 무용계 내부의 특별한 차원에서 시선은 뜨겁다.사회전반적인 분위기탓에 드러내 놓고 자신의 「벌거벗은 춤」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무용인들이 무언의 공감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개된 누드사진은 30커트.모두 30대전후의 농익은 몸이다.그러나 실제로 최씨의 누드작업에 동참한 무용가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인물로 30여명에 이른다.지난91년부터 이 작업에 매달려온 최씨는 이들과 더불어 그동안 2백여회에 걸쳐 4만여커트를 앵글에 담아 왔다.그중에서 고르고 고른 30장이 이번에 공개된 것이다.물론 공개직전까지 이 작업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으며 공개를 거부한 20명의 사진은 햇볕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촬영을 권유받은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자신의몸을 공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혹독한 훈련으로 트레이닝된 자신의 몸매를 한번쯤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다들 품고 있었다는 것이 최씨의 설명이다. 이번에 공개를 결심한 11명중 여자는 안은미(현대무용·미혼)·김수현(한국무용·미혼)·신명숙(한국무용·미혼)·김인희(발레·기혼)·조성주(현대무용·미혼)·오선명(현대무용·기혼)등 6명.남자는 홍승엽(현대무용·기혼)·박호빈(현대무용·미혼)·최두혁(현대무용·미혼)·김성한(현대무용·기혼)·제임스전(발레·기혼)등 5명이다.김인희·제임스전·오선명·김성한은 춤으로 맺어진 부부사이다. 최씨는 지난83년 중앙대 사진과를 졸업하고 막바로 무용사진계로 뛰어들어 올해로 12년째를 맞는 무용사진 프리랜서.최씨는 자신의 이번 작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정적인 눈초리를 경계한다.『단지 금기의 대상이던 누드댄스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지 말고 옷이라는 껍데기에 가려 보지못했던 춤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사진예술영역의 확대』라는 점에서 감상해 줄것을 주문한다. 무용평론가 김영태시인은 『최씨는 인체미의 예찬자다.인체미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노력가이다.최영모의 누드작업에 비록 한정된 무용가들만 수락했지만 우리나라같은 유교사회에서는 혁신이나 다름없다』고 평했다.
  • “카페 여종업원 차지하기”/경찰­시민,주먹다짐 일전(조약돌)

    ○…서울서부경찰서 형사과 소속 임승익경장(36)등 경찰관 4명은 지난달 31일 하오11시30분쯤 은평구 대조동 N카페에서 술을 마시다 손님 김모씨(27·포장마차 종업원)등 5명이 여종업원을 데리고 나가려는 것을 보고 참견하다 김씨일행과 시비를 벌였다. 시비도중 임경장등은 김씨의 일행 가운데 조철준씨(23)와 문성주씨(23)가 동료 이대우순경(29)의 목을 때리자 경찰신분증을 보이며 연장자인 김씨에게 무릎을 꿇게 했으나 거부하자 김씨를 집단 구타,팔을 부러뜨리고 머리에 20바늘을 꿰매게하는 중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 1일 이 사건을 인지했으나 정확한 조사없이 숨겨오다 3일 뒤늦게 조씨와 문씨만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입건했을뿐 관련 경찰관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았다.
  • 유선방송 프로그램/공급업체 20곳 확정

    ◎11개 분야… 기존방송사 모두 탈락/「문화예술」·「기독교 채널」은 보류/방송국 12월 선정… 95년부터 공급 정부는 31일 오는 95년 방송예정인 종합유선방송(CATV)의 프로그램 공급업체로 종합보도분야의 연합TV뉴스등 11개분야 20개업체를 선정,발표했다.이날 선정된 프로그램공급업자는 별표와 같다. 35개 신청업체가운데 KBS문화사업단,MBC프러덕션,SBS프러덕션등 기존 방송사들은 정부의 배제방침에 따라 모두 탈락했다. 종교분야의 기독교채널도 허가를 신청한 기독교방송등 3개업체가 콘소시엄을 구성하지 못해 허가가 보류됐다.문화예술분야는 허가신청업체가 없어 선정이 2차로 미뤄졌다. 오인환공보처장관은 이날 프로그램공급업체 선정심사와 관련,『각 분야별로 공급업체를 복수선정한다는 원칙아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등한 참여와 종합유선방송의 전문성 확보에 주력했다』면서 『특히 컨소시엄 구성주주 가운데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자본금이 부실한 업체는 허가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종합유선방송위원회와 공보처의 심사를 거쳐최종 선정된 이들 업체들은 오는 95년초부터 보도·영화·스포츠·음악등 각 분야별로 프로그램을 제작,종합유선방송국을 통해 각 가정에 공급하게 된다. 공보처는 종합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업체가 이날 선정됨에 따라 오는 10월말까지 종합유선방송국설립에 대한 신청 접수를 받은뒤 12월에 방송국을 지정할 방침이다. ◎투명한 심사과정… 중기등 고른 분포/선정 뒷얘기와 사업계획/35개사 경쟁 청문회 거쳐 잡음없애/수신료 월1만∼1만5천원 예상 공보처가 31일 허가업체를 선정·발표한 종합유선방송(CA­TV)프로그램 공급업은 민영 공중방송만은 못하더라도 상당한 이권사업이다.때문에 업체지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 신경전이 전개되었었다. 그럼에도 공급업체선정과정에서 외부로 전혀 잡음이 새 나오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오린환공보처장관은 이를 두고 『투명정치,투명행정을 지향하는 문민정부의 힘』이라고 자랑했다. 공보처는 사전내정설등의 의혹을 불식시키기위해 종합유선방송위의 예비심사를 거치는 2단계 심사모델을도입했다.공보처심사과정에서는 공정거래위·국세청등 관계부처의 의견수렴과 함께 법조계·언론계등 각계 대표로 구성된 허가심사위의 최종심의를 거치도록 했다.또 35개 허가신청업계를 대상으로 개별청문회를 치밀하게 함으로써 탈락자들의 불만소지를 없앴다. 물론 선정작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당초 12개분야를 계획했으나 문화예술채널 희망자가 없었다.우여곡절끝에 여성분야를 신청한 승보케이블을 설득,문화쪽으로 돌리도록 해 21개 사업자를 선정했으나 발표직전 거절의사를 밝혀 공보처를 당황하게 했다. 또하나 골치아픈 문제는 기독교채널의 경우.기독교방송,개신교종합유선방송사업단,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등 3개 업체가 팽팽히 맞서 공보처는 마지막까지 컨소시엄구성을 권유했지만 불발,결국 선정을 보류했다. 이번에 지정된 업체들은 대기업7,중소기업7,언론사2,정부산하단체 2,종교단체2개등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KBS MBC SBS EBS등 기존 방송사는 매체독점방지를 명분으로 모두 탈락시켰다. 한편 이들 선정업체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유선방송가입자 기본수신료는 월 1만∼1만5천원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유료영화채널의 경우에는 7천8백원을 추가부담해야한다. 방송시간은 드라마·교육채널은 상오 방송후 중단했다가 하오에 다시 방송하고 영화,음악,여성채널은 새벽 1∼2시까지 방송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다.나머지는 상오 10시에 방송을 개시,자정까지 계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다만 연합TV뉴스는 미CNN처럼 24시간 방송으로 신속한 국내외 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허가대상업체들은 95년 방송이 개시되면 96년까지는 1백만 가구가 가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98년쯤에는 수천억원의 신규시장이 형성되면서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리라 예상된다.2천년대초에는 전체가구중 30∼40%가 유선방송을 시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선방송시대의 개막은 위성방송의 등장과 함께 뉴미디어시대를 열어 가며 시청자 채널선택권의 대폭 확대를 가져오는 동시에 방송인력의 열띤 스카웃전을 예고하고 있다.
  • 민족,그 말의 운명/김도현·민주평통 사무차장(일요일 아침에)

    해마다 8월이면 우리겨레는 운명처럼 「민족」이란 말과 만난다. 올해는 민족적·민주적 정통성을 자임하는 문민정부가 출범,때맞춰 임정지도자 5위의 유해도 봉환했고 일제통치의 상징이던 총독부건물도 헐어 일제침략 이전의 옛한국 서울 광화문 모습을 찾겠다고 하니 더욱 민족이란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이러한 통상적·연례적 의미를 넘어 민족이란 말에 담아야 할 내용을 새롭게 새기고 우리 것으로 굳게 붙잡고 알아야 할 것을 크게 깨치지 않으면 안될 까닭이 있다. ○이념 앞서는 가치 이제 통일이라는 우리의 민족문제는 통일과 화해를 위한 대화도,대결의 논쟁도 「민족」이란 말을 앞세워 해야할 때를 맞았다. 그 이유는 이렇다.김영삼대통령은 취임사와 평통 6기출범식등 통일관련연설을 통하여 「민족복리」와 민족의 가치를 유달리 강조했다.이에 영합하듯 북한당국은 지난 4월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을 발표하고 김일성주석이 직접 작성했다는 설명까지 달고 있다. 순수하게 민족통일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크게 고무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려하는 이도 있다.우리의 「민족」가치의 강조가 자유민주와 같은 보편적 가치나 이를 위한 우방국과의 동맹을 가볍게 하거나 그러한 오해를 부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또 북쪽의 「민족단결」주장은 국민과의 거리가 좁아진 문민정부의 출현으로 반파쇼통일전선전략의 바탕이 없어지자 그 중점을 반미로 이동시킨 새로운 통일전선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이 걱정은 심지어 민족이란 말을 쓰는 것을 억제하자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과거에 우리가 「인민」,「동무」라는 말을 쓰기에 주저했듯이. 우리겨레에게 민족이란 말은 우리민족의 운명만큼이나 기구한 내력과 중층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일제때 가슴깊이 사랑과 그리움으로 간직했던 민족이란 말은 해방을 맞는 순간 그 잠시의 환호작약의 시간이 흐른 뒤 좌우이념대결이 시작되자 기구한 운명은 시작된다. 갈등의 해방정국에서 좌파는 「민주진영」,우파는 「민족진영」으로 스스로를 불렀다.그래서 「민족」은 파쇼,보수,반동으로까지 매도되었다. ○한때는 용공매도 이승만정부가 수립되어 6·25를 거쳐 반공태세가 강화되면서부터 「진보」주의적 성향은 「민족」을 표방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따라서 민족이란 말이 「진보적」으로,나아가 「용공적」으로까지 비쳐지게 된다. 4·19뒤 대표적 진보언론인 「민족일보」가 진보혁신세력의 환영속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다가 5·16뒤 된서리를 맞는 것에서 제호의 「민족」이란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가 잘 드러난다.5·16뒤 군사혁명세력은 자신을 기성정치세력과 구별하기 위해 「민족적」 민주주의를 주창한다.이에 대하여 기성세력은 「가식적」 민주주의라고 비판하며 민족이란 말의 저의를 박정희씨의 용공경력과 결부시켜 집요하게 공격했다.한편 박정권 역시 곧 민족이란 말을 불순시하기 시작한다.서울대학생모임인 「민족」주의 비교연구회를 탄압한 것이 그 예의 하나이다.10·26뒤 서울의 봄을 무산시키며 등장한 신군부는 이른바 창조적 「민족」주의를 잠시 주장한다. ○남북통일의 기반 북한에서는 원래 민족주의를 「계급적 모순을 은폐하고 노동계급이 자기의 근본이익을 위하여 투쟁할 수 없게 하는 것」(철학사전·평양)이라고 보고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로 대신하였다.그들은 50년대 중반이후 「주체」와 주체사상을 강조하다가 80년대 말부터 「우리민족 제일주의」를 부쩍 내세우고 있다.이것은 물론 남쪽의 자유민주주의와 중소이념분쟁,최근의 동구사회주의 붕괴 등 내외조건의 변화에 따른 체제이데올로기로써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현실로써 민족통일을 눈앞에 두고 남북한은 민족이라는 말에서 서로 만났다.이 만남은 우연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바람일 수 있다.여기서 우리는 민족이란 말을 쓰기에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뿐만아니라 우리가 바라고 세계와 역사의 방향이 나아가는 내용을 거기에 담아야 한다. 민족이란 말은 우리가 만나야 하고,지켜야 하고,사랑해야 할 운명이다.「이름은 그 운명을 가진다」라고 철학자 빈델반트는 말한다.우리에게 있어서도 민족·한민족·조선민족의 운명이 그 고난과 역경의 고비를 지나 평화와 화해와 번영의 밝은 길로 들어서도록 빌고 애써야할 것이다.
  • 헬기추락사 군인/1계급 승진 추서

    권영해국방부장관은 13일 김홍열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지난 12일 경북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야산에서 추락한 해군 헬기추락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사망한 박찬택대위등 10명을 1계급씩 진급 추서하라고 지시했다.
  • 갑자기 돌며 추락… 기체 불길에/성주 해군헬기사고

    ◎시계 5마일 악천후 비행 참변 【성주=이동구기자】 12일 하오 1시30분쯤 경북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속칭 넉바위 뒷산에 해군 작전사령부 627 비행단 소속 14인승 헬기(조종사 박승칠소령·37)가 추락,탑승자 11명가운데 부조종사 박찬택대위(30)등 10명이 숨지고 박소령은 중상을 입고 경북대부속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헬기는 추락순간 불이 나 사망자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탔다.박소령은 헬기가 추락할때 밖으로 튕겨져 나와 목숨을 건졌다. 사고지점은 해발 2백50m의 야산중턱으로 사고당시 안개가 짙게 깔린데다 간간이 가는 비까지 내려 시정거리가 5마일에 이르는 등 기상이 지극히 불량한 상태였다. 부조종사들을 제외한 사망자들은 하사관 정비사들로 임무교대를 위해 진해에서 인천으로 가던 길이었다. 해군 사고조사반(안성모감찰감)은 사고헬기가 짙은 안개 등 일기불순으로 방향을 잃고 추락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망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박찬택대위(30) ▲권혁만중위(25·이상부조종사) ▲박수언상사(40) ▲조성우중사(35) ▲조재렬하사(22) ▲정기춘〃(25) ▲김진호〃(24) ▲진종명〃(24) ▲김영준〃(23) ▲고금덕〃(24)
  • 가야(온가족이 함께 보는 우리역사:12)

    ◎한반도서 처음 벼경작… 철기·쌀 수출국/한반도서 처음 벼경작… 철기·쌀 수출국/문헌사료 절대 부족속 70년대들어 연구 활기 가야-.고구려·백제·신라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으면서도 오랫동안 사가들에게 외면당한 나라.국내보다는 일본에서 관심이 높았던 나라.최근에는 유적발굴이 활발해 국내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나라.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가야사 연구가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문헌사료의 절대적인 부족을 들 수 있다.국내외 사료 가운데 가야가 등장하는 역사서는「삼국사기」「삼국유사」와 일본의「일본서기」,중국의「삼국지」「남재서」등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들 사서도 대부분 자국과의 관계에서만 가야를 언급했을 뿐 가야사 자체를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다.그나마 11세기에 편찬된「가락국기」의 일부 내용이 삼국유사에 옮겨 실린 것이 유일하게 전해질 뿐이다. 또「임나일본부」설에서 보듯 가야의 역사를 자국사의 일부로 다루려는 일본 학계의 공격적인 태도가 국내 학자들을 한동안 움츠러들게한 측면도 있다.그러나 70년대 들어 천관우의「복원가야사」가 나오면서 국내 학계의 연구도 활발해졌으며 특히 최근에는 옛 가야지역에 대한 유적발굴이 큰 성과를 거둬 사료부족을 보완해 주고 있다. 가야는 문헌기록에 여러가지 이름으로 나타난다.가야·가야·가야외에 구야(구사·구사)가라(가라·가양)가락등이 모두「가야」를 지칭하는 것이다.이밖에 일본서기등 일부에서는 임나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런 명칭들은 모두「가야」또는「가라」라는 음을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인데 그 뜻에 대해서는 ▲갈래(분파) ▲강 ▲겨레등으로 해석하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가야는 삼한중 경상남북도 일대에 위치했던 변한의 소국들이 발전해 서기전후해서 연맹왕국을 이뤄 형성됐다(삼국유사에는 건국연대를 서기 42년으로 못박고 있다).연맹에 속한 가야제국의 수나 그 명칭에 대해서는 사서마다 차이가 있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략 6∼12국 정도로 보고있다. 이 가운데 주요국가가 김해지방의 김관가야(별칭 구사·남가라),함안지방의 아라가야(안라),고성의 소가야,성주의 성산가야,고령의 대가야(가라),진주의 고령가야등이다. 이들 가야제국은 초기에는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삼국및 낙랑,왜와 활발한 무역을 했다.주요 수출품은 이지역에 풍부한 철과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경작한 쌀등이었다.따라서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했으며 당시의 수준 높은 문물은 가야무덤에서 출토되는 각종 유물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4세기초 고구려의 침략을 받은 뒤로는 크게 약화됐다.5세기들어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 479년에는 중국 남재와 외교관계를 맺을 정도로 성장했으나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한다. 가야제국의 소국들을 연맹체로 결속시켰던 힘이 무엇인지,3국과 달리 연맹 형태를 끝까지 유지했던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왜와의 관계에서도,가야가 왜에 철기및 농경문화를 전달한 것은 분명하다.또 가야의 독특한 무덤형태나 거기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시기적으로 100∼200년 늦게 일본 각지에서 발견된다. 일본왕조는 한반도에서 3국의 등쌀에 시달린 가야주민들이 대한해협을 건너가 세운 일종의 정복왕국이 아니었을까.가야는 아직도 짙은 역사의 안개 속에 묻혀 있다.
  • 경수로 교체 김일성이 지시/IAEA­북한 새달초 협상

    북한은 핵사찰의 형식과 시기등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상을 다음달초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20일 밝혔다. 또 북한과 IAEA의 사찰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고 남북한 동시사찰 실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정치적 관계개선문제등을 논의하기 위한 북한과 미국의 3단계회담이 빠르면 8월중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이 제2단계 제네바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에 요구한 북한내 핵시설의 경수로 교체는 김일성주석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IAEA 불공정성」개선중”/강석주 문답

    ­뉴욕회담에서는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의 효력을 임시 정지한다고 했는데 현단계에선 완전히 복귀한 것인가. ▲NPT에의 복귀문제는 우리에게 가해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부정적인 불공정성이 해결되는데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IAEA의 불공정성 제거 문제는 지금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있다. ­남북한 정상회담은 언제쯤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상회담은 김일성주석이 제의한 문제다.김영삼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언급했다.정상회담을 하려면 우선 특사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우리는 정상회담에서 핵문제를 포함,전반적인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으나 남측은 실무접촉을 갖고 핵문제만 논의하자고 주장해왔다.이래서는 핵문제가 해결될수 없다.이 문제는 높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정상회담은 남측이 특사접촉을 받아들이면 가능할 것이다. ­영변에 있는 2개의 미신고시설에 대한 사찰은 언제쯤 수용할 것인가. ▲IAEA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을 기본으로 토의하게 될 것이다. ­IAEA와의 협의결과에 따라서는 영변시설에 대한 사찰을 계속 거부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오늘 발표된 문건을 잘 살펴보면 알수 있을 것이다.
  • 김일성 사망후 권력변화/미 하원 보고서·김판석교수 전망

    ◎보수좌파/기술관료/김정일체제 흔든다/개혁노선 싸고 양대세력 대립 심화/통치력 부족·경제낙후로 불안 증폭 북한은 김일성주석의 건강이 지난봄 다시 악화돼 김정일의 후계체제구축을 더욱 서두르고 있으며 김일성 사후의 김정일체제는 어떤 노선을 취하든 보수좌파 세력과 기술관료 세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분석은 14일 발표된 미하원 공화당조사위 산하 테러및 비재래식 전쟁특별연구반의 조사보고서중 「평양의 권력이양」과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9차 한반도문제에 관한 미국포럼에 제출된 「북한의 권력구조 변화전망」(김판석교수·올드도미니언대)논문에서 제시되고 있다. 공화당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월말쯤 중국의 의료진이 평양을 급히 방문,김일성을 치료했으며 이 의료진은 별달리 치료할 방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월에는 평양시내에 김일성이 사경을 헤맨다는 소문이 퍼졌고 북한당국은 이같은 소문의 전파를 막기 위해 김일성이 평양을 방문중인 스페인관리를 접견토록함으로써 그가 생존해있음을 입증시키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일성은 지난해 여름 건강이 계속 악화돼 밥을 제대로 씹지 못하고 음식이 입가로 흘러 자주 냅킨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그는 쉬 피로를 느끼고 목뒤의 혹이 커져 일부 신경을 압박,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김일성이 사소한 일에 성을 잘내는 것도 이같은 통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10월에는 김정일이 북경측에 중국공산당 추천의사가 이끄는 고위 의료진을 파견,김일성을 치료해주도록 요청했고 그를 진찰한 중국의사들은 그의 건강상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며 안정을 요하므로 입원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중국의료진은 김일성에게 신경장애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 그가 편안하게 일과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좋은 소식과 재미있는 활동만을 제공해야 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 오랜시간 잠을 자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김정일은 중국의사들의 권유를 즉각 이행토록 명령했으며 이때부터 김정일의 권력승계작업이 가속화됐다.지난해 봄이후 6백64명의 인민군장성들이 교체됐는데 이들 대부분이 김정일충성파였으며 김정일 자신이 원수승진에 이어 최고사령관겸 국방위위원장을 맡음으로써 군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한 것도 모두 이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또 강성산이 다시 총리에 임명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교수의 논문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사후에 여러가지 도전을 받게될 것이며 만약 경제적 실패나 이념적 오염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위기가 닥치면 혁명1세대들이나 혹은 극좌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위기탈출을 시도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갖고있는 근본적 취약점 즉 카리스마의 부족,통치력 미약,경제낙후,핵문제및 한·미·일·중의 외교문제 등 때문에 김정일체제는 불안정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밝혔다. 김정일이 어떤 개혁노선을 취하든 통치권력의 차원에서 볼때 딜레마에 빠질수 밖에 없다.대담한 개혁을 추진하면 보수좌파 세력들로부터 반발을 받고 최소한의 변화만 추구하면 기술관료나 지식인들로부터 경제발전과 기술축적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는 비판을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체제유지가 최우선이므로 피값을 지불하더라도 주체사상을 지키려 할 것이며 일시적 개방보다는 원거리 격리식 개방을 시도,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이념적 오염을 줄이는 차원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 “북 최후의 도박 핵전쟁”/홍콩 시사잡지 「아주주간」 보도

    ◎김일성 사망뒤 내란… 남침 전망 【홍콩 연합】 북한의 핵무기개발계획의 궁극의 목표는 한국이며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위협으로 미국과의 대화와 남북한대화에서의 유리한 지위확보등의 외교적 수확을 거두었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아주주간」 최신호가 14일 보도했다. 이 시사주간지는 김일성주석이 사망하면 북한은 필연적으로 권력투쟁에 휘말릴 것이라고 분석하고 이로인해 내란상황이 전개되거나 경제가 더욱 악화될 경우 북한은 마지막 도박으로 한국에 대해 핵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 황석영씨 첫 공판/“북서 받은 돈은 영화제작비”

    서울형사지법 합의25부(재판장 양삼승부장판사)는 12일 당국의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김일성주석을 만나고 해외에서 친북활동을 해온 혐의로 구속기소된 소설가 황석영피고인(49)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사건 첫공판을 열고 모두진술과 검찰측 직접신문을 들었다. 황피고인은 이날 공판에서 방북및 북한당국자·해외반한인사들과 접촉사실등 혐의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황피인은 그러나 『방북및 해외활동은 분단시대에 사는 작가로서의 사명감과 열정에서 이루어진 일일뿐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면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받은 미화 25만달러도 「장길산」의 영화제작비로 받은 합작자금일뿐 공작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황피고인은 89년 3월부터 91년 5월까지 5차례 밀입북,김일성주석을 7차례 만나고 일본·독일등에 머무르면서 범민련결성및 친북문화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한 혐의등으로 지난 4월 구속기소됐었다.
  • 창씨개명뒤 버젓이 일본의 밀정노릇/서훈취소 심의대상 8인의 행적

    ◎총독부 단체에 참여… 학병지원 권유/김성주/「2·8선언」후 변절… 전국서 친일강연/서춘/친일계 신문인 「만선일보」에 몸담아/이은상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각종 훈·포장을 받았던 김성수씨등 8명에 대해 정부가 친일 여부를 정식 조사하고 있어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 모두가 부통령·국회의원등 고위공직을 지냈거나 언론계·문학계등에서 지도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친일혐의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전혀 아니다. 일부 학계인사와 사회단체등에서는 광복직후부터 이들을 친일파로 규정하고 꾸준히 그 행적을 추적해 왔다. 다만 이승만정부 수립이후 좌­우 이념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승만정부가 친일여부를 가리지않고 마구 등용하는 바람에「친일파를 가려내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뒷전으로 밀렸을 뿐이라고 할수있다. 따라서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재평가에 나서 이들「거물」들을 조사대상에 올린 것은 뒤늦게나마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결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반민족문제연구소를 비롯해 관련학자·단체들이 조사·공표한 이들 각자의 친일행각을 보면 제1공화국에서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씨의 경우 1940년 10월27일 미나미 당시 조선총독이 결성한 총력동맹에 이사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매일신보」「경성일보」등지에 학생들의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글을 실었으며 시국강연반에 들어 전국을 돌며 친일강연을 했다. 이갑성씨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하나였으며 초대 광복회장을 지낸 인물로 자유당정권에서 당의 최고위원과 국회의원을 지냈고 공화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 상해에서 이와모토(암본)로 창씨개명한 뒤 일본의 밀정노릇을 했으며 미쓰비시사의 만주 신경출장소장,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촉탁으로 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적으로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윤치영씨는 초대내무부장관을 비롯,이후 역대정부에서 고위직을 누렸다. 윤씨는 그러나 독립운동을 한 시기로 인정받은 41년 12월20일 친일잡지「동양지광」이 주최한「미·영타도 좌담회」에 연사로 참석해『황국신민으로서 참전은 우리 어깨에 지워진 공정무사한 대사명』이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은상씨도 일제말 친일계 신문인「만선일보」에 재직한 사실이 있다. 이밖에 이번에 조사대상 8명에 포함된 서춘씨(매일신보 주필)는 이광수와 함께 2·8독립선언위원 가운데 친일파로 변절한 대표적 인물로 39년 7월 배영동지회 평의원,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지낸 외에 전국을 돌며 친일강연을 했고 승려인 이종욱씨는 총독부 지원으로 월정사 주지와 조선불교 종회의장을 지냈다. 윤익선씨는 서울 원서정 총대(현 동장)와 경성부 북부정회총대회 간사를 지냈으며 전협씨는 친일단체인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신임을 얻어 그의 추천으로 부평군수를 지냈으며 일진회 평의장도 역임했다. 반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은『정부 차원에서 친일파 재조사작업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 김일성/“NPT탈퇴 과오” 김정일 견책설

    ◎러 이타르­타스통신 「아주회보」 보도/“국정에 무능” 문책에 위상약화/신경과민증 나타나… 두달간 집무 못해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최근 일련의 국정운영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들이자 공식 후계자인 김정일비서를 심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러시아의 이타르 타스통신이 발행하는 「아시아 회보」최신판이 보도했다. 민감한 국제문제가 주내용을 이루고 있어 주로 정부기관과 연구소등에 배포되고 있는 이 회보는 「김정일의 건강 상태」라는 제목의 지난 22일자 평양발 기사에서 이같이 전하고 김정일이 최근 이같은 질책에 따른 신경과민증으로 두달간이나 집무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역시 이타르 타스통신이 발행하는 「24」지도 29일 김일성주석이 최근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결정 등 중요문제처리와 관련,김정일을 견책했으며 이 때문에 김비서의 위상이 다소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다음은 「아시아 회보」가 전한 내용의 발췌다. 김일성주석의 아들이자 공식후계자인 김정일이 아버지로부터 엄중한 질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은 현재 신경과민증을 앓고 있으며 이미 최근 두달간이나 집무를 보지 않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 4월말과 5월초 서방의 신경병리학자들이 평양으로 초빙되었다.북한요인들은 『김정일이 당시 몇주일 동안이나 자신의 집무실에서 밤새워 일했으며 이 때문에 현재 휴식을 취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대중매체들은 지금 김정일의 이름을 드물게 상기시키고 있는데 이는 김일성이 아들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최근의 풍문들을 설득력있게 대변해주는 것이 될수도 있다. 지난 5월12일 모든 신문의 2개면에 걸쳐 게재된 「한국전 승리 40주년」에 즈음한 중앙당 명의의 호소문에는 김정일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외국의 많은 북한관측통들은 금년 51세인 김정일이 당,인사문제,군,경제,사회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장악하면서 「친애하는 지도자」로서의 공식칭호에 어울리지 않게 일련의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에서는 예로부터 고위 간부요원들을 양탄자위로 호출,엄중문책하는 관례가 있다.현재의 고위간부중 이런 문책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엄중문책을 받은 당사자는 지방으로 보내졌다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중앙으로 복귀하는데 이런 시련을 겪은 당료는 상부방침에 무조건 맹종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예를 들면 김일성자신의 후계자에 대해 「객관적으로」 대하려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금년 81세인 그가 국정운영과 서민의 생활고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벗어버리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어쨌든 김정일이 어떤 과오를 범했는지는 베일속에 가려져 있다.북한 관측통들은 지금 북한 지도부내에서는 김정일의 지지자와 김일성의 「나이든 근위대」간에 은밀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면 김일성지지자들은 축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는 누구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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