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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필라델피아 ‘4일 한국의 날’ 선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필라델피아 방문을 기념해 에드워드 G 렌델 필라델피아시장이 7월4일을 ‘한국의 날’로 선포했다고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발표했다.김대통령은 오는 3일 자유메달상을 수상하기 위해 필라델피아를 방문한다. 렌델시장은 선포문에서 “올 제11차 필라델피아 자유메달 수상자인 김대통령은 지난 40여년동안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증진을 위해 투쟁해왔다”면서“현재 김대통령과 한국국민들은 사회정의 실현 및 정치안정,시장경제 정착과 경기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개혁활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렌델시장은 “이러한 점들을 높이 평가하고 김대통령의 필라델피아 방문을 환영하는 뜻에서 한국의 날로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날로 선포된 4일은 제223회 독립기념일이며,성조기 채택 222주년,미국헌법 제정 212주년,그리고 권리장전 제정 208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美 ‘성조기 훼손금지’ 다시 논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하원이 24일 자국기의 훼손을 금지시키는 헌법수정안을 4번째로 통과시킴으로써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다시 한번 거세게일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국가의 상징인 국기는 함부로 훼손하거나 불태워서는 안된다는 입장이고 반대론자들은 국기 훼손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하원 본회의는 이날 성조기를 불태우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헌법수정안을 찬성 305대 반대 124로 통과시켜 상원에 제출했다. 국기보호법안 채택 시도는 지난 89년 하원이 통과시킨 뒤 연방대법원이 위헌판결을 내린 이후 모두 3번째이며,이전 2번의 헌법수정시도는 모두 상원에서 의결정족수 67표에 미달,부결됐다. 수정안 찬성론자인 크놀렌버그의원(미시건주)은“국기는 위대한 미국의 가치와 투쟁,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상원통과를 촉구했다.그러나 같은 주 출신 존 코니어스의원은 “이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단지 우리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언론과 행동의 자유에 더 많은 제한이 가해지는선례가 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국기모독 문제는 의회내뿐만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엇갈려논란이 계속되는 상태.‘국기를 불태우는 행위(Flag Burning)’이란 제목의웹사이트도 여럿 등장해 온라인으로 열띤 찬반논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대학에서는 관련 강좌가 개설돼 있기도 하다. 헌법 수정안은 상하원의원 3분의 2지지와 50개주 가운데 38개주가 승인하면개정할 수 있는데 점차 고조되는 미국인들의 애국주의 물결을 타고 언젠가는 통과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한편 한국의 경우 형법상 국기모독죄가 있어 지난 92년 새정치국민회의 김충조(金忠兆)의원이 여수 지구당사무실에서 당시 14대 대선에 김대중후보가낙선하자 태극기 액자를 내던지고 불에 태운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전례가 있다. hay@
  • 中“주권침해 횡포”…反美 감정 폭발

    [워싱턴 베오그라드 외신종합] 9일 중국내 미국 대사관,영사관 주변 일대는 중국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돌멩이들로 일대 난장판을 이루었다. 나토의 오폭은 수년 전에 입수한 낡은 정보 때문에 빚어졌을지 모른다고미국의 CNN 방송이 9일 보도. CNN 방송은 나토가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과 관련,폭격 목표가 된 건물을 식별하는 정보가 오래 전에 입수된 것이어서 오폭이 일어났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중이라고 전했다. 나토 관리들은 당초 목표물인 유고군 병참본부가 중국대사관 옆에 위치해있어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공습을 가한 공군기들이 중국대사관 건물을 유고연방군 병참본부로 믿었다”고 정정. 외교부 왕잉판(王英範) 부부장은 제임스 새서 미국대사를 불러 “미국이주도하는 나토의 중국대사관 폭격은 유엔헌장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나토의 행위는 중국의 주권에 대한 야만적 위반”이라고 항의.이에 대해 빌 클린턴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진짜 야만적인 행위는 밀로셰비치가 저지른 인종말살 행위”라고 반박. 9일 베이징대 학생들을 주축으로 수만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들은 “미제 타도”,“나토 해산”,“클린턴 사임”,“중국은 주권 수호를 위해 침묵하지않을 것” 등 구호를 외치며 성조기를 불사르고 유리창과 관용차 등 대사관기물을 파괴. 중국은 지난 7일 밤(현지시간) 늦게 긴급 소집돼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 안보리 회의에서 다른 이사국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안보리 차원의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으나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은 중국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들에 대해서도 보복의 위험을 경고하고보안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 미국은 중국측에 신속히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반미감정을 더욱 자극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9일 보도.이 신문은 베이징발 보도를 통해 오폭사건이 발생한지 한참이 지난 8일밤(중국시간)까지도 제임스 새서 주중 미국대사가 유감을 표시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 않아 중국 관계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유고공습에 맹독성 물질로 알려진 소모성 우랴늄탄(DU)을 사용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영국 BBC방송이 9일 보도. 미국방부 대변인인 척 왈드소장은 유고공습현황을 설명하는 브리핑 도중“대전차포 탑재기인 A-10기들이 DU탄을 투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확인.
  • 탄핵받은 ‘미국의 정신’/최철호 워싱턴 특파원(오늘의 눈)

    클린턴 대통령이 역사적인 하원 탄핵을 받던날 워싱턴은 구름이 잔뜩 낀 날씨였다. 어두운 구름을 배경으로 워싱턴 중심에 자리한 백악관 건물의 흰색은 왠지 곱지만은 않았다. 더는 도덕적 최고지도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가 집무하는 건물 앞에 휘날리는 성조기는 무겁게만 느껴졌다. 미국은 지금 심각한 정신적인 혼란의 와중에 있어 보인다. 최고의 덕망과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대통령이 추한 성추문과 관련,탄핵을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사를 만들어 낸다고 자칭하는 백악관 내에서 행한 추한 행동을 큰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는 실정이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든다. 가장 위대한 나라 국민들의 대표라고 자부하는 의회 지도자들 역시 같은 추잡한 성추문에 나동그라지고 무엇이 큰 죄이고 무엇이 작은 죄인지,대통령에게 적용될 때와 평민에게 적용될 때 다르게 나타나는 혼란도 커보인다. 클린턴 위증 논의가 한창일 때 언론들은 위증죄로 기소돼 교도소에 복역한 시민들을 상대로 토론을 시킨 적이 있다. 그들 모두 위증은 분명히 단죄돼야 할 죄라며 자신들에게 적용된 형벌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위증은 큰 죄가 아니라고 하는 논리는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목소리 높여 클린턴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같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 속에 의회 모든 의원들은 사분오열된 상태다. 행정부와 의회가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동안 국민들도 연일 반대 되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서로 다른 주장을 쓴 피켓을 든 시위자들이 백악관 앞에서 연일 마주치고 있다. ‘토머스 클린턴 제퍼슨(?)’과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이란 이름을 적은 가십 만화는 지금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수작으로 평가됐다. 훌륭한 지도자가 도덕과 인품을 겸비해 나라를 다스려 오늘날 위대한 미국을 낳았다는 교육지표는 초등생들까지 클린턴 탄핵토론을 벌이면서 여지없이 망가지고 있다. 19일 하원의 탄핵은 분명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아니라 일그러져 가고 있는 미국의 정신을 탄핵한 것이다.
  • 주한미군:上(대한민국 50년:16)

    ◎45년 日 항복후 4만5천명 첫 진주/6·25땐 최대 32만명 파병 ‘韓國수호’/국력 신장 따라 우리방위비 분담 늘어 이땅의 주한미군 역사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지 25일만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됐다.이날 하지중장 휘하의 제7사단이 1진으로 인천에 상륙했다.인천 내항에는 해방군으로서 입성하는 미군을 환영하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부두는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을 이루었다.이어 29일과 10월 8일 40사단과 16사단이 부산과 목포에 도착,38선 이남지역을 지배하는 점령군으로 주둔하기 시작했다.당시 주둔병력은 4만5천명. 이후 주한미군의 존재는 대한민국 50년사의 전개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이땅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특히 주한미군의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 논쟁과 갈등은 두나라 관계의 본질을 대변해줄 만큼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국민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며 전개됐다. ○닉슨 ‘괌독트린’ 2만명 철수 주한미군에 의한 군정통치는 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끝났다.그리고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는 애치슨라인이 설정됨에 따라 49년 5월부터 6월 사이에 군사고문단 500명만 잔류시킨뒤 철수했다.주한미군의 첫번째 철군이다.이 과정에서 당시 李承晩 대통령은 미국측에 충분한 보상과 확실한 안전보장 등을 요구했지만 결국은 점령군의 철수완료 시기만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미군은 이로부터 1년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유엔 참전국의 일원으로 재진주해야 했고 이때 치른 대가는 컸다.전쟁기간중 가장 많을 때는 32만7천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전사 3만3천여명,부상 10만3천여명 등 인명피해만도 엄청났다.하지만 종전 이후인 8월8일 한국정부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합의하고 10월1일 조인함으로써 한반도에 합법적으로 주둔할수 있게 됐다. 70년대 들면서 한미간에는 또 한차례 주한미군의 철수를 둘러싸고 신경전과 갈등이 전개됐다.70년 닉슨이 아시아에서의 미국역할의 축소를 밝히는 이른바 괌독트린을 선언함에 따라 그해 후반기부터 71년 3월에 걸쳐 7사단 병력 2만명이 철수했다.한국측은 미국의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계획은 66년한국군이 월남에 증파될때 맺은 ‘브라운 각서’의 주한미군 감축시 사전협의 약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결국 이후 열린 협의에서 미국은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약 15억달러의 군사원조및 차관을 제공하는 한편 양국간 연례안보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우리의 방위산업 육성과 국군현대화 등의 추진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세번째 철군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76년 7월 인도주의를 표방한 민주당대통령후보 카터가 대선공약으로 내걸면서 쟁점화됐다.당시 한국은 유신의 철권통치하에 있던 시기로 한국의 인권문제가 미국내에서 여론의 쟁점으로 부각돼있었다.미의회 프레이저소위원회 청문회가 “한반도가 적화되더라도 미국과 일본의 안전에 영향이 없는 만큼 인권탄압적인 한국으로부터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못박을 정도로 미국내의 반한여론은 드높았다.한국정부는 이를 내정간섭의 논리와 핵개발 위협으로 맞받아침으로써 양국관계에는 살얼음판 같은 핵긴장이고조됐다.朴正熙는 75년 6월 12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고 있으나 지금은 개발하고 있지 않다.만일 미국이 핵우산을 걷어가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고 공개선언,미국정부를 압박했다.그런 한편으로는 ‘선보완 후철군’론을 주장하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균형 유지책과 한국의 자체 방위력 증강조치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카터의 철군결정은 미의회 및 군부로부터 많은 비판과 반발을 샀고 이에 카터는 싱글러브 장군을 주한 미8군 참모장에서 해임,철군 반대론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韓·美軍 역할­위상 큰 변화 아무튼 3차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의 밀고 당기기에서 한국은 20억달러 상당의 무기 및 군사시설을 제공받고 미공군의 강화,한미 합동군사훈련 실시,한미연합사령부 설치 등의 부수적 성과를 거뒀다.또한 3천4백명의 철수가 이뤄진뒤 미국은 대북한 군사력 재평가결과에 따라 81년까지의 주한미군철수 동결조치를 발표함으로써 3차 철군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로 일단락됐다. 이상에서 보듯 80년 이전에 거론되거나 실행된 주한미군 철수는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결정된 것이며 한국의 입장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80년대 초 한국이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다.광주의 참극에서 행해진 주한미군의 역할문제다.주한미군은 전에 한국의 정치적 격변기 때마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했으나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61년 5·16 쿠데타때는 매그루더 사령관이 이의 저지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79년 12·12 쿠데타태도 위컴사령관이 신군부에 항의를 했다고는 하나 항의로 그쳤다.그러나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신군부측의 병력이동과 관련,주한미군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부대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주한미군이 직·간접적으로 신군부를 지원 내지는 묵인했다는 비난을 샀다.그리고 이때부터 한국민들로부터‘반전반핵’‘양키 고홈’의 야유를 받으며 시위의 대상으로 몰리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철군을 둘러싼 양국간 대립과 해소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할 및 위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즉 한국전쟁 이후 70년대 말까지는 한반도의 안보를 미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보조하는 관계에서 80년대초 동반자관계로 격상했고 90년대 들어서는 94년 미군의 평시작전통제권 이양이 상징하듯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보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미묘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의 문제다.한국의 경제력 신장을 반영하기도 하는 방위비 분담은 78년 한미연합사 창설이후 어김없이 제기되면서 특히 대한군사판매차관(FMS)를 졸업한 86년 이후로는 연례안보협의회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다.
  • 국호·상징물 제정(대한민국 50년:2)

    ◎48년 7월1일 제헌국회서 ‘대한민국’ 확정/제헌국회 헌법기조위원회/대한민국·고려공화국·한·조선 논의/이승만 의장 ‘대한민국’ 상요 대세로 1948년 7월1일 제21차 회의가 열린 제헌국회 본회의장.의원들은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출한 헌법 초안을 놓고 2차 독회에 들어갔다.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신익희 부의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항목부터 축조심의에 들어갔다.이승만 의장(독촉)이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 “국호개정이 제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국호는 차차 국정이 정돈되어 가지고 거게에 민간의 의사를 들어가지고… 그러니까 국호문제에 있어서는 다시 문제 일으키시지를 말기를 또 부탁하는 것입니다”(국회 속기록) 이에 대해 최운교 의원(무소속)이 헌법기초위에서 심의한 국호가 몇가지며 그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반대에 부딪쳤다.이어 1조를 원안대로 통과시키자는 동의를 재청·삼청까지 얻어냈다.이때 조봉암 의원(무소속)이 제동을 걸었다.조의원은 “우리민족이 다 그렇게 만족치 않을 것이니 다음에 제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다.그는 1차 독회에서도 “대한민국이란 말은 역사적 합리성으로 보거나 체제로 보거나 형식적 법통으로 보거나 천만부당하다”며 반대했었다. ○찬성 163·반대 2로 통과 이승만 의장이 다시 발언에 나서 고칠 필요가 있으면 다음에 하고,일단 원안대로 통과시키자고 무마했다.의회는 거수표결에 들어가 제1조를 재석 188명에 찬성 163명,반대 2명으로 통과시켰다.한민족의 새 역사를 열어 나갈 신생국의 이름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확정됐다.1948년 8월15일 정부가 출범하기에 앞서 한달 보름전 일이다. 새나라 출발에는 국호 제정이 선결과제지만 이승만의 모두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나라이름을 짓는 데는 많은 진통이 따랐다.국호가 갖는 상징성이 지대한데다,당시 좌우가 갈리고 정당·사회단체가 난립한 상태에서 각기 주장하는 바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미군정 때 장차 수립할 우리 민족의 국가 이름으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았다.좌우대결이 치열해지면서는 남한지역과 우파는 대한민국을,북한지역과 좌파는 조선을 지지하는 ‘남대한·북조선,우대한·좌조선’으로 굳어져 갔다. ‘대한’이라는 국호는 대한제국 때 처음 쓰였다.1897년 고종이 중국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국임을 강조하느라 황제를 칭하면서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1919년 상해에 자리잡은 임시정부도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따라서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당연한 우리나라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를 부인하는 세력들이 해방후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예컨대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는 1945년 9월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대한’이라는 국호를 부정했다. 1947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는 남북한 각 정치세력에게서 임시정부 수립대강에 관한 답신서를 받았다.이에 따르면 한민당이 결성한 임시정부수립대책협의회와 신익희 주축의 입법의원은 ‘대한민국’을,좌우합작위원회가 주도한 시국대책협의회는 ‘고려인민공화국’을 주장했다.민주주의민족전선은 건준이 선포한 ‘조선인민공화국’에 집착했고,건준을 부정하는 북조선노동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국호를 규정했다.각 정치집단은 국호제정을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다툼의 방편으로 이용한 것이다. 제헌국회가 구성된 뒤 헌법기초 위에서 논의한 국호로는 ‘대한민국’‘고려공화국’‘한’‘조선’ 등이 있었다.이때도 일부에서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국호를 제정하자고 주장했다.그런데 5월31일 열린 국회 개원식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사용함에 따라 이 이름은 제헌의원들간에 대세로 자리잡았다. 국호에 관한 찬반 논의는,이승만 행정부가 1950년 1월16일 국무원 고시 제7호인 ‘국호 및 일부 지방명과 지도색 사용에 관한 건’을 법률로 제정하자 자연 소멸됐다.“우리나라의 국호는 대한민국(또는 한국)으로 하고,북한 괴뢰정권과의 확연한 구별을 위해 조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45년 12월 첫 태극기 게양 국호외에 국가의 상징인 국기·국가도 제정과정에서 많은 논의를 거쳤다.태극기는 대한제국이 정식 인정해 상해임정이 이어받은 국기였다.태극기는 1945년 12월24일 처음으로 미군정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성조기와 함께 게양됐다.당시 조선성냥회사 사장인 신창균이 하지 장군의 보좌관에게 부탁해 성사시킨 것이다.미군정은 이듬해 1월14일 군정청 광장에서 태극기 게양식을 가짐으로써 국기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무렵 만담가 신불출은 공연에서 태극기가 국기로서 적당하지 않다고 비아냥거렸다가 포고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이처럼 좌파세력을 포함한 일부에서 거부하긴 했지만 민심은 태극기 사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다만 그 도안이 다양한 데 문제가 있었다.독립문에 새긴 것,구왕실 소장품,미군정 문교부에서 공포한 도안,우리국기보양회가 제안한 모양 등 여러가지 태극기가 뒤섞여 사용됐던 것이다.현재의 태극기는 1949년 10월15일 문교부고시 제2호로 공포됐다. 그리고 애국가 가사는 1910년쯤 거의 완성됐으며 안익태가 곡을 붙인 현재 애국가는 1946년 5월 ‘임시 중등음악 교본’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그러나 제헌국회에서는 “국가는 적당한 시기에 남과 북 전체 민족의 의사로서 제정하자”며 논의를 유보했다.따라서 애국가는 사회관행상 국가로서 불릴뿐 아직도 법적으로는 공인받지 못한 상태이다. ◎“성조기와 함께 미군정청에 태극기 게양하자”/45년 하지 장군보좌관에 요구 성사 시킨 신창균옹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지 석달여만인 1945년 12월24일 미군정청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성조기와 나란히 게양됐다.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과연 독립을 이룰 것인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그때 이는 국민에게 크나큰 위안을 준 ‘사건’이었다. 그같은 선물을 국민에게 전한 신창균옹(90)은 1940년부터 마카오에서 임시정부의 연락책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였다.45년 4월 귀국한 그는 미군이 진주하자 9월 중순 하지 장군의 보좌관인 윌리엄스 중령을 찾아갔다.중령의 아버지는 선교사로 입국해 공주 영명고교 교장을 지냈고,그 때문에 중령은 한국땅에서 태어나 소년기를 보냈다.신옹은 윌리엄스 교장에게 세례를 받은 인연으로 동갑내기인 중령과 친하게 지냈다. 중령을 만난 신옹은 “미군정청에 성조기가 휘날리는데 이곳은 조선땅 아닌가.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도 함께 게양하자”고 요구했다.중령은 그의 말에 찬성하면서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12월 중순 신옹이 군정청의 연락을 받고 가보니 중령은 이미 귀국했고 후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태극기를 게양하기로 결정했으니 태극기를 빨리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한국사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태극기는 미군정 당국으로부터 당당하게 국기로서 대우받게 됐다. 신옹은 이후 조선성냥공장의 사장으로 새나라 경제부흥에 힘쓰는 한편 임정 요인들이 귀국해 만든 한국독립당에서 연락부장 등을 맡으며 활약했다.1948년 김구가 남북협상차 평양을 방문할 때 수행하기도 했다.이후 일관되게 진보정치운동을 벌였으며 현재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남측본부 의장을 맡고 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문화부 차장) 최병렬(문화부 차장급) 김종면(문화부 기자) 박정현(정치부 기자) 서정아(정치부 기자) 강선임(DB부 기자)
  • ‘성조기 입항’허용한 북의 절박/유상덕 국제부 기자(오늘의 눈)

    ‘굶주린 혼령들(Hungry Ghosts)’.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북경주재기자인 제스퍼 베커가 58년부터 시작된 중국 모택동 정권의 ‘대약진운동’기간동안 3천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대참상의 실상을 보고한 책의 제목이다. 49년 중국본토를 해방시킨 모택동은 의지력과 땀,우월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새로운 사회 건설에 착수했다.공산중국은 58년 대약진운동을 시작하면서 가난한 중국이 15년안에 영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위정자들의 흰소리와 달리 사정이 나빠지면서 불과 1년뒤부터 중국의 많은 지방에서 굶주림이 시작됐고 노약자들부터 죽어나갔다.마침내 천문학적인 숫자의 아사자가 발생하자 중국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내걸었던 혁명적 조치들을 슬그머니 철회했다. 중국은 70년대말 등소평 등장이후 대외개방의 길로 나아가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이제 ‘굶어 죽었다’라는 말은 들을수 없다.오는 2020년에는 GNP가 미국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산 원조곡물을 실은 배가 지난달 29일 북한의 남포항에 곡물을 내려놓았다.성조기를 단 미국의 배가 북한의 항구에 곡물을 직접 내려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이 배는 청진항에도 곡물을 하역하기 위해 북한 동북부로 향하고 있다. 북한이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했던 미국의 식량원조선박 입항을 허용한 것은 북한의 식량사정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이다.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리고 성조기를 단 미국선박의 입항을 허용했을 수도있다.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정부와 국민들은 북한이 대외에 문호를 개방하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북한의 식량난은 ‘체제에 의한 빈곤’이다.체제빈곤현상은 식량뿐 아니라 생필품과 산업생산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북한이 중국처럼 개방·개혁정책을 채택해 식량난과 경제난을 해결,우리와 머리를 맞대고 평화통일방안을 논의할 날을 진심으로 기대한다.
  • 적에게 웬 식량지원인가/찰스 크라우트해머(해외논단)

    ◎북한군 DMZ후방배치 약속 받아내야 미국의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25일자 워싱턴 포스트 신문의 오피니언란을 통해 「미국은 군대를 비무장지대로부터 후방배치하겠다는 양보를 북한으로부터 받은 다음에야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다음은 그의 칼럼 「죽을 운명의 적에게 웬 식량지원인가」의 요지이다. 만약 멀리 떨어진 어떤 나라가 굶어죽을 지경이라면 미국은 이 나라 국민들에게 먹을 것을 대줄 도덕적 의무가 있는가.그렇다.이때 이 의무는 분명 미국이 원해서 떠맡은 그런 성격이지만 미국의 위치를 고려하면 또 피할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좀더 어려운 질문으로 들어가자.멀리 떨어진 어떤 나라의 국민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처해 있는데 그 나라가 첫째 미국을 원수,적이라고 대놓고 삿대질하고 둘째 미국의 우방을 지키는 3만7천명의 미군을 포 사정거리 안에 놓은채 1백만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으며 세째 우방과 우리의 3만7천 군인들을 깡그리 태워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을러대고 있다면 이때도 우리 미국은 이 나라에 식량을 대줄 도덕적 의무가 있는가. 아니다.그러기는 커녕 미국의 대통령은 이 나라를 어떤 식으로든 강해지게 해서는 안되는 정반대의 의무를 지닌다. 그런데 왜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식량을 보내는 것이냐. 북한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옛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보다도 더 한심한 반 생산적 경제체제를 무리하게 고집해온 끝에 국민들의 배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대 군사력의 영예를 위해 일반 주민들을 희생시키는 광신적 군사주의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그런데도 미국은 2천5백만 달러의 식량 지원을 약속했고 이제 막 성조기를 단 화물선이 북한을 향해 출항했다. 그런데 이번주 북한의 한 최고위 망명객의 논문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과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 테이블에 북한을 앉히려고 무진 애썼다.북한의 수락 여부를 듣기 위해 우리는 1년을 기다려왔다.북한은 마침내 지난주 뉴욕 회동에서 답을 하겠다고 말했었다.그러나 북한은 차일피일 회동을 미루다가 끝내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 이처럼 정통으로 뺨을 얻어맞은 꼴인데도 미 국무부는 『식량지원을 평화회담에다 연계시키지 않고자 한다.정치나 국제협상과는 아무 상관없이 식량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의 손에 식량이 어서 빨리 쥐어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고 천명했다.한두 마디 더 들어보면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은 예컨대 카나다에서 기근이 있어났을 경우와 똑같이 북한의 기근을 아무 조건 없는 인도적인 가슴만으로 다뤄야 한다」고 믿고있는 것이 역력하다. 이 무슨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함인가.미국 군인을 위협하는 바로 그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을 피하면서 북한에 식량지원을 할 수 있다고는 이 행정부도 설마 믿지는 않을 것이다.이 행정부의 국방장관이나 합참의장이 이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하지 않았던가.존 샬리카쉬빌리 합참의장은 기근이든 기근이 아니든 북한은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며 『그들의 말대로 큰 곤경에 처해 있다면 왜 이런 군사훈련에다 얼마 안되는 자원을 쓸어넣고 있는가.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라고 말했다. 국무부 대변인이나 클린턴 대통령에게 어떻게 생각하는냐고 물어 볼 일이다.평화회담에 코웃음치고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어쩌면 다른 상대가 아닌 우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는 나라에 왜 식량지원을 해주는가. 식량지원,좋다.단 북한의 양보와 교환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이때 우리는 북한이 평화회담에 모습을 나타내는 척 하는 것 이상의 실속있는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한다.우리는 북한에게 이같이 말해야 한다.식량을 원하는가. 식량을 주겠다.한 가지 조건이 있다.너희 군대의 상당 부분을 비무장지대(DMZ)로부터 한 100㎞쯤 뒤로 물러나 있게 해라. 이것은 쉽게 검증할 수 있다.또 결과가 금방 감지될 것이다.우리의 3만7천 군인을 보호하는데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사실 이 군인들은 북한의 볼모가 아니다.이들은 북한과의 게임에서 유리한 패를 모조리 손에 들고도 이를 쓸줄 모르는 미국 행정부를 지키는 보호자들이다.〈미국 칼럼니스트/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김한규 총무처장관에 듣는다(올해 국정 어떻게)

    ◎합동행정타운 건립… 민원 원 스톱 서비스/공무원 내집마련 지원… 3년간 4만5천세대 공급/인력 2천명 감축 버서직·사무보조원 우선 □대담=이경형 정치부장 「경쟁력」이 무엇보다 앞서는 교리로 대두되고 있는 시대에 총무처의 역할은 더욱 커보인다.행정부문의 경쟁력 확보가 곧 국가 경쟁력 회복의 관건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행정이라는 생명체의 극말단까지 퍼져 있는 신경조직을 움직이는 두뇌가 바로 총무처이기 때문이다.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총무처를 맡은 김한규 장관을 서울신문 이경형 정치부장이 21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0층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지난해 말 총무처장관에 취임한뒤 이제 두달 남짓 지났습니다.그동안 겪은 총무처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놀란 것은 공무원의 수준이 정말 높다는 것이었습니다.또 사무관급 이상은 상당수가 해외연수를 다녀왔더군요.그런만큼 의식수준 또한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입니다.특히 총무처는 각 부처를 지원하고 조정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지요.따라서 하는 일이 일반사업부처와는 달리 외부로 크게 드러나지 않아요.그럼에도 그 어느 부처보다도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하고 있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밖에서 보던 공무원사회와 안에서 겪는 공무원사회가 다른 점이 있던가요. ○공직사회 일관성 유지를 ▲그동안에는 의정활동과 정당활동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공무원사회와 접했었지요.그런데 외부에서는 공직사회의 한 단면만을 보고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요.제 자신도 마찬가지 였지요.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고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바로 공직사회입니다.이런 측면이 복지부동 등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비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올해 총무처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정부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행정의 대국민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올해 업무추진의 기본방향이지만 총무처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김영삼 대통령은 지난달 「경쟁력 10%이상 높이기」차원에서 공무원을 오는 2000년까지 1만명 감축한다는 방침 아래 올해 먼저 2천여명을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셨습니까.감원에 따른 공직사회의 동요는 없겠는지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직사회가 솔선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감축되는 직위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신분상 불이익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감축방안은 먼저 국장급 간부의 비서를 2인당 1명으로 줄이는 작업을 현재 하고 있습니다.또 사무보조인력은 가급적 1개과에 1명을 넘지않도록 하고,무인경비 및 자동교환시스템을 도입하여 방호원과 교환원 등의 인력을 감축하고 철도·체신 등 현업관서의 경영개선을 통한 인력감축을 추진할 것입니다.결원이 발생한 직위에 대한 신규충원도 유보합니다. ­김장관께서 언젠가 「총무처장관은 90만 공무원의 노조위원장」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연금복지회관도 확충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재직중에 안정된 생활환경 아래서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그런데 현재 공무원의 보수를 비롯하여 후생복지수준은 민간부문과 비교해 볼 때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공무원의 보수를 현실화하는 문제는 국가경제와 연관지어 생각할 문제입니다.그러나 공무원들의 집 걱정은 꼭 덜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적어도 10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집 걱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그래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주택마련지원 3개년 계획」입니다.이와 함게 전·현직공무원과 그 가족을 위한 연금복지회관과 체육시설,휴양시설도 중·장기적으로 확충할 것입니다. ­「주택마련지원 3개년 계획」은 획기적으로 들리는데요.구체적 내용을 소개해주시죠. ▲현재 공무원의 주택보급율은 75.6%입니다.전체국민의 주택보급율이 86.1%이니 상당히 뒤져있는 셈이죠.특히 10년 이상 근무하고도 집이 없는 사람이 4만5천여명에 달합니다.이들을 위해 오는 2000년까지 주택건립분양,주택자금지원 등을 통해 4만5천세대의 주택을 공급하겠습니다.또 공급하는 주택의 규모 또한 최근의 수요변화와 소득수준향상에 맞추어 그동안의 소형평수 위주에서 적정규모로 조정할 방침입니다.수도권 지역에는 이미 구리시 토평지역에 7천여평의 택지를 확보하였으며,연차적으로 6만여평을 추가로 매입할 것입이다. ­최근 6급 이하 공무원에 대한 대외직명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하신 적이 있지요.구체적인 구상이 있습니까. ○하위직 대외직명 활성화 ▲5급 이상 공무원은 공식적인 직위명을 사용하고 있지요.그런데 6급 이하는 「주사」나 「서기」로 부르기가 뭣해 「선생님」 등으로 어색하게 부르고 있지요.무엇보다 자기직무의 중요성과 전문성에 걸맞는 직위명이 없어 자긍심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그래서 담당하는 업무의 성격을 감안해 「전문관」「조사관」 등의 직명을 붙여 사용하게 하여 이들의 자부심을 높여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지방도시의 정부합동청사 신축계획이 나왔습니다.장관께서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라면서요.재원을 마련하는데는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지방청사 합동화 사업이란 지방도시에 「합동행정타운」을 건립하여 민원인이 여러기관에 걸친 민원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했습니다.행정민원의 이른바 「원 스톱 서비스」를 가능케하자는 것이지요.이렇게 되면 행정기관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구축되는데다 교통난을 완화하고 경비도 절감되는 등 여러가지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현재 대상지역을 선정하기 위한 기초조사를 하고 있습니다.가능하면 올해안에 내륙 및 해안의 도청소재지급이상의 도시 1곳씩을 대상지역으로 선정할 방침입니다.재원은 현재 각 지방도시 곳곳에 흩어져있는 단독청사를 매각하면 국고부담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외부전문가 채용을 위한 「개방형 임용제도」와 공직사회 내부의 전문가 육성을 위한 「전문분야별 보직관리제」의 성과는 어떻습니까. ▲지난해 외부의 전문인력유치를 위해 중앙부처 5급 이상 1만3천460개의 직위에 대하여 직무분석작업을 완료했고,이 작업을 바탕으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201개 직위를 외부에 개방할 수 있도록 지정했습니다.민간전문가를 계약이나 파견 겸임 특채 등다양한 방법을 통해 적극 유치할 것입니다.또 올해부터 통상산업부나 해양수산부같은 몇개 부처에서는 「전문분야별 보직관리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공무원이 적성에 맞는 전문분야에서 장기근무함으로써 전문성을 더욱 향상시켜 나가자는 제도이지요.이들 제도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정부의 업무도 점차 어느 부처의 영역으로 묶어 둘 수 없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예를 들면 사법시험에 합격,법률에 밝은 사람이 외무부 조약국이나 국제기구국같은 곳에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외무고시합격자도 통산,대외무역분야에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상호연관성이 많은 분야는 인력충원방식을 대폭적으로 개방해야된다는 것이지요.영국같은 나라에서는 교류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들었는데요. ○올 국가공무원법 개정 ▲그렇지않아도 그런 방향으로 올해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특히 이 법에는 공무원과 민간기업과의 인사교류도 포함되어 있지요.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만큼 공직사회의 특정 전문분야의 인재가 상당히 부족합니다. ­총무처의 중요업무 가운데 하나가 국가의전이지요.최근 무궁화문양이 넥타이로 만들어져 나오고 태극기에 관한 규정도 국민에게 친근하도록 바뀌는 등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미국의 경우는 성조기 문양을 패션에 이용하기도 하죠. ▲그동안은 국가상징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태극기나 무궁화를 활용한 디자인의 사용이 금기시되어 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정부에서 생활디자인에 적극 활용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이를 위해 지난해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도 바꾸었지요.성조기 문양을 말씀하셨는데 우리도 무궁화 문양을 활용한 넥타이 30여종이 이미 나오고 있습니다.오는 4월에 있을 「국가상징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국가상징문양을 활용한 여러가지 생활용품디자인도 적극적으로 개발해 보급할 것입니다.스포츠용품이나 학용품 등에 태극이나 무궁화가 그려져있으면 국민들도 우리 국가상징에 대해 보다 친숙하게 느끼지 않을까요. ­훈장이나 포장을 받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습니다.일부인사는 훈장을거부하기도 했는데요.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포상제 더욱 강화 ▲그동안 포상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과거 독립운동과 정부수립에 기여한 애국지사와 조국수호와 국토방위에 헌신한 전몰·상이군경,경제개발과 농어촌 근대화에 기여한 산업역군,그리고 열악한 여건에서 국가발전에 공헌한 공직자 등 포상해야 할 대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이들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하신 분들입니다.포상거부 문제는 그동안 일부 사례가 있었습니다만,앞으로는 상을 받는 사람이 정말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도록 하여 상의 권위를 높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심사기준과 절차를 더욱 강화하여 실질적으로 공적있는 분이 선발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부포상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장관의 공직자관을 밝혀주십시오. ▲공무원들은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은 공복으로 투철한 국가의식을 가져야 합니다.국민에게 서비스하는 봉사자라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그런데 그동안 우리 공직자들은서비스하는 「봉사자」와 군림하는 「관료」 사이에 괴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요.지금까지는 공무원들이 앞만보고 살아온 측면이 있지만 이제부터는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것입니다.현재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실시하는 국장급 이상의 교육과정에 장애인과 노인 등을 돌보는 사회봉사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것도 공직사회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 가투 등 담은 비디오로 「투사」 양성/「일심전사대」 암약상

    ◎학교 뒷산 등서 구보·PT체조 등 극기훈련/쇠파이프­각목 사용·화염병 투척 연습도/못하면 얼차려… 훈련뒤 자체평가회의 23일 경찰이 단국대 주사파 조직 「일심전사대」로부터 압수한 「운동권 교육용」 비디오테이프는 학원가의 폭력시위가 영상매체를 통해서도 학생들에게 침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쇠파이프 타격 등 군대 훈련을 뺨치는 강도높은 실전 모의훈련,가두투쟁 장면 등이 녹화된 이 테이프로 학원가 폭력시위가 조직적인 교육의 산물임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37분짜리로 제작된 테이프는 저학년 학생들이 선배들에 의해 「투사」로 만들어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훈련은 학원가 폭력시위의 특징인 「치고 빠지기」를 능숙히 해내기 위해 학교 운동장과 학교 뒷산 등지에서 구보를 하거나 군대 유격훈련인 PT체조 등을 하는 등 극기훈련을 중심으로 실시된다. 학교 뒷산에서 쇠파이프나 각목으로 전경의 방패를 때리거나 화염병·돌 등을 던지는 법도 연습한다. 주로 선배가 후배를 개별지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훈련이 끝난 뒤에는 전투력 향상을 위해 자체 평가회의를 갖기도 했다.훈련과정에서 잘하지 못하는 조직원들은 「원산폭격」 등 군대식 얼차려를 받았다. 특히 94년 6월15일에 있었던 김창학씨(25)의 지휘 아래 복장을 흰색 운동복으로 통일하고 무전기를 든 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 주택에 난입,미군 경비원을 구타하고 성조기를 하강한 뒤 달아나는 장면도 녹화돼 있다. 투쟁의식을 높이는 간부들의 인사말과 함께 조직에 새로 가입한 김민욱군이 『선배들의 권유로 가입했다.청년학도의 옳은 길이며 체계적·조직적·집단적 생활이 좋다』며 투쟁을 맹세하는 내용의 인터뷰도 담겨있다. 이밖에 학내 야간 순찰 및 조직원 취침 점검,학교 정문 앞 등지에서의 유인물 배포 연습,구호제창 연습 등도 녹화돼 있다. 이들은 지난 8월 한총련 사태때는 경찰무전기 교신내용을 감청,연세대 정문 앞의 경찰배치 상태,검문 실태,경찰병력 이동상황 등을 파악하는 등 고단위 정보수집 임무를 맡기도 했다.
  • 좌경폭력 「일심전사대」 적발/단국대 15명 검거

    ◎“주체사상 사수” 혈서/30여차례 폭력시위 주도 서울경찰청 보안부는 23일 단국대생인 이재권씨(27·정외 4년)와 민영우씨(26·정외 4년 휴학) 등 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하고 이모씨(24·식품영양 3년 휴학)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군복무 중인 유성신씨(25·정외 4년 휴학) 등 3명에 대해서는 군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고 이미 구속된 김창학씨(25·행정 3년 제적) 등 9명에 대해서는 관련 혐의를 추가로 적용,검찰에 송치했다. 이씨 등은 지난 93년 1월 단국대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한마음으로 신봉한다는 뜻으로 이른바 「사수대」인 「일심전사대」를 결성한 뒤 지난 8월의 「한총련」 사태 등 지금까지 30여차례에 걸쳐 각종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 93년 6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인주택에 게양된 성조기를 내렸으며 94년 4월에는 총장실과 이사장실에 난입,집기 등을 부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직원들을 상대로 교내에서 돌맹이와 화염병 투척 등 폭력시위 훈련 등을 시켰고 이를비디오테이프에 녹화,교육용으로 사용해 왔다. 특히 북한 원전인 「주체사상 총서 영도체제」 등 불온서적 37종을 탐독했고 조직원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20여명이 손가락에서 피를 내 쓴 「일심전사대」라는 깃발을 들고 각종 시위에 참가해 왔다.
  • 겨울방학·연휴맞는 극장가/어린이·가족영화 잇따라 개봉

    ◎드래콘 투카­심형래씨 7번째 작품… SF영화/101 달마시안­101마리 얼룩 강아지들의 소동/「마이크로 코스모스」 관객 5만 동원… 「7악동」도 볼거리 초등학교 방학과 연말연시 공휴일을 겨냥한 어린이·가족영화가 잇따라 극장가에 오른다.서울 초등학교가 일제히 방학식을 갖는 21일 한국영화 「7 악동」,외화 「101 달마시안」 「스페이스 잼」 등 세편이 개봉하며 22일에는 우리영화 「드래곤 투카」가 뒤를 잇는다.또 외화 「아름다운 비행」(12월28일 예정),아이맥스 영화 「위대한 서부」(97년1월1일) 등이 대기중이다. 한편 지난 7일 선보인 곤충세계 다큐멘터리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상영관을 전국으로 넓혀나가고 있다. ▷드래곤 투카◁ 개그맨 심형래가 7번째 감독·주연한 SF영화로 서양용을 본떠 만든 괴물 드래곤 투카를 비롯해 개성있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다.피자집 점원 영구가 16세기말 조선시대로 가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외계인 투마와,투마의 아들인 투카를 물리친다는 줄거리.심감독의 전작들과 비슷한 분위기·구성이지만 SF기법이 정교해져 14m 길이의 드래곤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는 등 특수효과가 돋보인다.다만 어린이영화이면서 무술장면이 잦고 과격한 것은 눈에 거슬리는 점. 서울에서 22일 무지개극장(어린이화관 내),29일 코엑스에서 상영하는 등 내년 1월초까지 전국 30여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 ▷101 달마시안◁ 월트디즈니의 인기 만화영화 「101 마리 강아지」를 극영화로 리메이크했다.달마시안(털이 짧은 점박이 개) 암수 한쌍이 사랑에 빠지면서 그들의 주인인 로저와 아니타도 결혼한다.달마시안 한쌍은 새끼들을 낳아 행복하게 산다.그러나 모피회사 사장인 마녀 크루엘라가 코트를 해입으려고 런던시내 달마시안을 몽땅 유괴하는 데서 온갖 소동이 벌어진다는 내용. 1백마리가 넘는 달마시안이 어지러울 정도로 뛰어다니며 수놓는 화면이 장관이고 그밖에도 여러 종류의 동물이 등장,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이크로 코스모스◁ 지난 7일 서울 두군데,14일 부산·제주 한군데씩에서 개봉한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도 10여일만에 관객 5만여명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전국 상영관은 ▲서울=코아아트홀,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부산=대한,시민회관(25일부터) ▲대전=대덕과학문화센터(22일) ▲제주=아카데미 ▲진주=동명아트홀(97년1월4일) ▲제천=명보 등이다. ▷기타◁ 「7악동」은 고아원의 개구장이 소년·소녀 7명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이는 활약을 그린 작품.TV 등에서 연기력을 쌓은 어린이배우들이 당찬 연기와 무술솜씨를 보여준다. 반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스페이스 잼」은 어린이에게 보여주기에는 결점투성이인 영화이다.스토리전개·화면구성이 치졸한데다 툭하면 성조기와 제작사 마크를 화면 곳곳에 드러내 마치 「미국 제일주의」와 제작사를 홍보하는 CF물처럼 보인다.
  • “식량선적 미 선박/8월14일 북 도착”/미 국무부

    ◎성조기 게양… 쌀 등 1만3천t 수송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미 국무부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미국의 대북한 추가식량지원물량이 미국선박에 의해 다음주중 선적을 시작,8월 중순 북한에 도착할 것이라고 19일 밝혔다. 국무부 대변인실은 이번에 북한에 지원되는 식량이 성조기를 게양한 탐파베이호에 의해 운반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탐파베이호는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쌀 6천6백t,워싱턴주의 타코마에서 옥수수와 콩 혼합식품 3천5백t과 옥수수가루 3천t의 선적을 8월2일까지 모두 마치고 8월14일경 북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두 정상 유채꽃밭 거닐며 담소/한­미정상회담 이모저모

    ◎“재선될것 믿는다”에 “그 예측 꼭 맞기를”/“일정 짧아 아쉽다” 헬기장 가면서 환담 16일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과 공동기자회견.공동기자회견은 유채꽃이 만개한 봄기운 속에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김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중문단지의 신라호텔에 함께 머물면서 이날 상오 11시15분 호텔후원의 산책대화를 시작으로 하오 2시10분쯤 오찬회담이 끝날때까지 3시간동안 「밀착외교」를 펼쳤다. ▷한미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상오 11시25분부터 약 1시간동안 신라호텔 1층 「사라」실에서 통산 5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안보현안을 집중논의,이른바 「제주선언」으로 불리는 대북정책 기조를 정리. 평상복차림의 김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배경으로 회담장내 탁자 좌우로 좌정했고 양국정상 정면에 약간 간격을 두고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이양호 국방장관,박건우 주미대사,유종하 외교안보수석,유명환 외무부미주국장이,미국측에서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제임스 레이니 주한대사,안소니 레이크 안보보좌관,윈스턴 로드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가 배석. 회담에 앞서 양국대통령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취재진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한뒤,양측배석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회담을 시작.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정상은 평복차림으로 호텔 후원을 거닐며 산책 겸 대화.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숙소인 호텔 6층에서 내려와 후원에 먼저 도착,곧이어 후원으로 내려온 클린턴 대통령을 맞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취재진을 위해 잠시 포즈.양국정상은 환한 모습으로 굳게 악수를 나누며 긴밀한 한미 동맹관계와 돈독한 개인적 우의를 과시.양국정상은 유채꽃을 배경으로 봄기운이 완연한 호텔후원을 거닐며 약 10분간 담소. ▷공동회견◁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체제는 이날 회견장에서 발표된 「제주선언」에 그대로 반영. 김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유채꽃이 피어있는 호텔 후원으로 이동,후원에 마련된 야외 회견장에서 공동회견을 갖고 회담결과를 발표. 김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차례로 회견 서두문을 낭독,제주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제주선언」과 회담에 임한 각국의 입장을 설명. 회견을 마친뒤 김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주변의 유채꽃밭을 거닐며 잠시 산책. 김대통령은 『제주도는 바다도 좋지만,한라산도 명산』이라면서 『우리국민이 진심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에는 유채꽃이 없는데 정말 아름답다』고 말하자 김대통령은 『기후조건이 맞아 제주 전역에서 아름답게 피어 봄을 알린다』고 설명. 클린턴 대통령은 『오늘 기자회견장의 풍경과 날씨가 좋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환한 웃음 한편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등을 의식한 탓인지 미국의 CNN방송은 공동기자회견 과정을 생중계. ▷오찬회담◁ ○…양국 정상은 회견을 마친뒤 걸어서 호텔 1층의 오찬회담장인 「월라」실로 어깨를 나란히 한채 걸어서 이동. 오찬장에서 김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장방형 테이블을 마주보고 앉았고,양측 고위수행원 20명이 양측 대통령 좌우로각각 배석. 양국 대통령은 먼저 제주도 경치와 봄날씨등을 화제로 가볍게 환담을 나눈데 이어 오찬사 없이 회담을 진행,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 ▲일본의 신방위 대강 및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대만사태를 비롯한 미·중관계와 한반도정세 전반에 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 오찬 회담은 클린턴 대통령이 주로 최근의 한·일,한·중,북·중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김대통령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 양국 정상은 또 한·미 통상관계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김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의 5번째 수출시장이고,작년부터 대미 무역이 역조를 보이고 있다』며 통상분야의 협조를 당부. 오찬이 끝날 무렵,김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자,클린턴 대통령은 『일기예보는 틀려도 각하의 그 예측은 맞길 바란다』고 말해 웃음과 박수가 나오기도. ▷클린턴 이한◁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 여사는 이날 9시간의 일정을 끝낸뒤 하오 3시쯤 호텔로비에서 김대통령내외와 아쉬운 작별.김대통령은 『일정이 짧아 아쉽다』고 말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후의에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표시.이어 두정상은 호텔 동쪽 헬기장까지 걸어가며 계속환담. ▷클린턴 도착◁ ○…이에 앞서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새벽 5시35분 부인 힐러리 여사와 함께 특별기편으로 제주공항에 안착. 클린턴 대통령내외는 공항에 도착,미리 나와있던 공외무와 박대사,신구범제주지사 내외와 문동석의전장의 영접을 받았다. 클린턴 대통령 내외가 이날 새벽 5시50분쯤 숙소인 신라호텔에 도착하자 정장을 한 김대통령과 한복을 입은 손여사가 호텔 현관 안쪽에서 반갑게 맞이했으며 양국정상내외는 『이렇게 다시 만나뵙게 돼 반갑다』며 인사를 교환.〈서귀포=김영주·이목희·이도운 기자〉 ◎힐러리 멋진 제주풍광에 “원더풀” 연발/클린턴과 소나무숲·해변 걸으며 오붓한 한때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는 16일 하오 1시부터 공식수행원의 부인들과 함께 손명순여사가 주최하는 오찬에 참석했다. 힐러리 여사는 이날 평상복 차림으로 오찬장에 도착,손여사와 공로명 외무부장관의 부인 한명숙씨등의 영접을 받은뒤 제주도의 풍경등을 화제로 환담하며 양식으로 식사를 했다. 손여사와 힐러리 여사는 이미 몇차례 만나 친숙해진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으며,힐러리 여사는 제주도의 풍광이 마음에 드는듯 몇번씩 「원더풀」을 연발했다고. 힐러리 여사는 이에 앞서 이날 상오 6시30분부터 8시까지 남편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제주 신라호텔 주변을 산책. 클린턴 대통령부부는 제주도가 우리나라의 신혼여행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호텔 주위에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과 소나무 숲,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오솔길,중문 해수욕장의 모래사장 주변을 거닐며 오랜만에 오붓한 기분을 만끽하기도.
  • 한·미 정상 제주대좌­회담준비 이모저모

    ◎제주엔 “클린턴 환영” 현수막 물결/김 대통령,호텔서 「제주구상」 막바지 점검/클린턴,고르비 쓰던방 사용… 전용헬기 제주서 조립 김영삼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5일 상오 전용기편으로 제주에 도착,관계자들과 회담 내용을 점검하는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김대통령은 이날 제주 공항에 도착한 뒤 바로 숙소인 제주 신라호텔로 이동했다. 김대통령은 숙소에서 부인 손명순여사와 오찬을 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제주구상」을 가다듬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이어 이날 하오 공로명 외무·이양호 국방장관 등 정부 관계자와 유종하 외교안보·윤여준 공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들과 회의를 갖고 한·미정상회담의 의제를 논의. ○…정상회담이 열릴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내 제주신라호텔 주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36쌍이 걸리고 호텔 현관에는 「환영 미합중국 대통령내외 방한」이라고 씌여진 환영현판이 내걸려 회담 분위기를 고조. 제주공항 주변에도 양국 국기가 쌍쌍이 게양된 가운데 환영 현수막이 나붙어 관광객들도 제주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을 실감. ○…양국 의전팀은 시간사정등을 감안,클린턴 대통령 내외 도착때 화동들을 동원한 꽃다발 증정이나 의장대 사열등의 절차를 생략키로 합의.클린턴 대통령 내외는 16일 상오 5시30분 제주공항에 도착해 헬기편으로 회담장소인 신라호텔까지 이동할 예정. 미국측은 클린턴 대통령의 헬기 이동에 대비,20여대의 헬기장비와 부품등을 제주공항으로 운송,조립작업을 마쳐 완성헬기를 만든 후 지난 13일부터 예비운항과 도내 전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정찰활동을 실시. ○…16일 새벽 제주에 도착한 클린턴 대통령 내외가 제주를 떠날 때까지 사이사이에 휴식을 취할 방은 신라호텔 7층에 있는 하루 1백96만원짜리 로열스위트룸.이 방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내외가 묵었던,양실과 전통 한실로 꾸며진 48평짜리 방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부인인 라이사의 이름을 따 「라이사룸」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워지고 있다. ○…회담 당일인 16일의 양국 정상간 오찬은 제주도 특산품인 옥돔·다금바리·갈치·전복 등 해산물을위주로 한 요리가 나올 전망인데 호텔측은 클린턴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망고·파파야 등 과일을 서울에서 긴급 공수. 호텔측은 또 최근 광우병 파동을 의식,양국 영부인 오찬에 제공되는 쇠고기 요리 곁에는 「신선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을 영문으로 표기해 놓을 계획. 한편 호텔측은 클린턴 대통령의 방문으로 이미 예약된 90여쌍의 신혼부부 예약을 다른 호텔로 변경했다는 후문.〈서귀포=김영주·이목희 기자〉 □김 대통령­클린턴 회담일지 ▲93.7.10∼11=클린턴 대통령 방한,김영삼 대통령과 회담·공동기자회견(7.10),클린턴 대통령 국회연설(7.10) ▲93.11.21∼24=김영삼 대통령 시애틀 APEC정상회담(11.17∼20) 마치고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워싱턴)·공동기자회견(11.23) ▲94.11.14=보고르 APPC 정상회담참석중 한·미정상회담(인도네시아) ▲95.7.27=김영삼 대통령 워싱턴 한국전 참전비 제막식 참석차 방미,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워싱턴) ▲96.4.16=클린턴 대통령 방한(제주도 서귀포)·공동기자회견
  • 이­시리아/비무장지대 설치 합의/접경지역 조기경보체제 구축

    ◎워싱턴서 회담/양측 병력도 감축키로 【예루살렘 AFP AP 연합】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양국 접경에 조기경보기지 및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고 접경지역 병력을 감축키로 합의했다고 이스라엘 국영라디오가 28일 보도했다. 이 라디오는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철수문제를 논의키 위해 미국의 후원 아래 27일 워싱턴에서 개막된 최고위군사협상에서 양국 참모총장들이 ▲비무장지대설치 및 병력감축 ▲기습공격에 대비한 공중·육상 위성조기경보체계 ▲사찰방법 ▲신뢰구축조치등 4개 사안에 대해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 국기 모독과 표현의 자유/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눈)

    미국하원 법사위원회의 헌법소위는 25일 미국국기를 불태우는 등 성조기를 모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헌법수정안을 표결끝에 7대5로 통과시켰다.소위의 공화당 소속위원들은 일제히 찬성한데 비해 민주당 소속의원들은 일제히 찬성한데 비해 민주당 소속의원둘운 한결같이 반대했다. 미합중국의 상징이자 다인종국가인 미국사회의 통합의 징표인 성조기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더더욱 불태우는 것은 당연히 처벌을 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를 한데 대해 매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미국헌법은 인간의 기본권리의 하나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설령 미국정부나 미국국가에 대한 반대나 저항을 표현하는 수단의 하나로 성조기를 불태운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처벌을 할수 없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의원들은 비록 국가의 권위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이같은 민주당의 논리는 지난 89년 미국대법원의 판례로 이미 정당화되었고 오늘날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법집행의 준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의원들의 주장은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소중하다 해도 미국의 상징인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의 모독을 법치국가에서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표현의 자유가 국가모독까지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날 소위를 통과한 성조기 모독 금지를 위한 헌법수정안이 정식발의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다시 하원본회의에 회부되어 재적의원 3분의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 상원에서도 같은 절차로 역시 3분의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또 헌법구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각주의 의회에서 역시 같은 절차를 밟아 50개주의 4분의3이 찬성을 해야 하는 등 그 과정이 요워하다. 지난 90년에도 유사한 헌법수정안이 제출되었다가 중도에서 폐기된 적도 있어 이번에도 헌법수정으로까지 갈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그러나 작년 11월 미중간선거에서 공화당디 전국을 석권,상.하 양의원을 40년만에 자악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 미국사회는 확실히 보수주의 색채가 확산되고 있다.이번 헌법소위의 표결을 대수롭잖게도 볼 수 있으나 어느면에서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서로 사이클을 달리해가며 시대조류를 엮어가는 미국사회 흐름늬 단면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제주사태 다룬 대하소설 「한라산」 집필/현길언씨(인터뷰)

    ◎“소년기에 겪은 「4·3사태」 아직도 생생” 『제가 국민학교 2학년인 아홉살 때 제주 4·3사태가 터졌습니다.그후 수없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제 소년기의 체험은 선명하게 되살아났고,급기야 4·3사태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항상 곁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도 4·3사태를 다룬 대하소설 「한라산」을 집필하고 있는 중견작가 현길언(55·한양대 국문과 교수)씨.4·3사태를 앞뒤로 한 현대사의 격동기를 담은 「한라산」은 모두 5부 9권으로 제주 4·3사태 50주년이 되는 98년 완간될 대작인데 그 1부(1권),2부(2권)가 최근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됐다. 현씨의 고향은 남제주군 남원읍 수망리.당시 1백10여 가구 중 절반 가량이 초토화됐을 정도로 4·3피해의 한복판에 있었다.그런 만큼 작가 자신도 『그 악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토로한다.하지만 이 작품은 그같은 개인체험을 날것인 채로 전달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 진정한 미덕이 있다. 「한라산」은 4·3사태가 발생하기 전 일제말기 상황에서부터 출발한다.1부 「배반의 땅」에서는 2차대전이 끝나기 전 일본이 제주도를 본토사수의 교두보로 설정하고 7만명의 대병력을 섬에 배치하던 시기를,2부 「성조기시대」에서는 미군정 실시 후 47년 소위 「제주 3·1사건」 때까지를 시대배경으로 제주사람들의 일그러진 삶의 흔적을 더듬는다.4·3사태의 전사적인 성격을 띤 이 부분에서 현씨는 사태의 발생원인을 추적하는데 힘을 쏟는다. 『제주섬은 이미 2차대전 끝무렵부터 미군의 일본본토 공략기지로 설정됐고 일본 또한 본토사수를 위한 전략요충지로 여겼기 때문에 양국간 대규모 무력충돌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컨대 4·3의 비극은 미·일 등 외세의 대립에서부터 원초적으로 그 씨가 뿌려졌다는 게 작가의 기본시각이다. 그는 이어 제주도가 갖는 주변부적 성격도 4·3사태의 한 원인이 됐다고 진단한다.중심부 정세에 어두운 변두리 지역 이상주의자나 모험주의자들의 명분론은 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이념의 추종자처럼 만들어버렸으며,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중심부세력의 오판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 현씨는 『나머지 3·4·5부의 집필을 통해 아직도 아물지 않는 4·3의 상흔을 달래고 「한라산」을 4·3문학의 완결편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탤벗 선생님의 교실/김영화 한림대 교수·영어학(굄돌)

    탤벗 선생님은 「Mrs.Talbot's」라는 명찰이 붙여진 교실에서 일학년 학생들만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교육철학에 따라 책상과 걸상을 배치하고 교실안에 자동차 모형의 칸막이를 해놓고는 일상적인 학습이 아닌 상담이나 기타 창의적인 생각을 할 계기가 생길때 그안의 테이블로 일부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한다. 아이들이 짝을 지어 모형자동차안에 들어가서 놀이를 할때도 있는데 그때에는 순서대로 들어가기,남한테 방해되지 않게 놀기 등의 질서도 지키게 된다. 텔벗선생님은 아침 첫수업을 국기에 대한 맹세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미국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부끄럼없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임을 다짐하며 긍지를 가지고 살것을 맹세한다. 미국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계 어린이들에게 『너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하고 물으면 서슴없이 『미국인』하고 답이 나오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미국의 어린이들이 피아노를 배울때 처음 치게 되는 곡은 모두 「아메리카」에 관한 곡들이다. 미국은 자유와 정의의 나라,미국의 역사를 이룬 선조들은 훌륭하며 우리는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들이다. 그러니 미국인들이 한국에 옮겨놓고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성조기 그리기를 시키는 것은 정해진 과정대로 하는 것일 뿐이다. 어린이들을 영어 한마디 배우러 보냈다가 미국사람 만들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될 일이다. 과밀학습에서 성적순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뛰어가 경쟁력을 키워야만 되는 우리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교육개혁은 국민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대대적인 투자를 국민학교교육에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 워싱턴 DC(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11)

    ◎국회의사당/링컨기념관/재퍼슨기념관/백악관/워싱턴 기념탑 축으로 동서남북 배치/불 건축가 설계… 1792년이후 계속 건설/워싱턴기념탑­의사당 사이엔 국립미술관·스미소니언박물관 자리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중심부에 위치한 링컨 기념관에 대리석 링컨이 엄숙한 표정으로 동쪽을 향해 앉아 있다.그 뒤로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문이 새겨진 석판이 있다.「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설파하는 링컨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여기서 1㎞쯤 동쪽으로 링컨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높이 1백69m의 워싱턴 기념비가 우뚝 솟아 있다.백색 대리석 기념비가 낮에는 희게 빛나고,밤에는 조명을 받아 어둔 밤하늘을 배경으로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기념비 주위로는 미국 50개주를 상징하는 성조기 50개가 펄럭인다.미국 건국의 확고부동한 표상이다. ○나라사랑… 공간초월 링컨의 시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워싱턴 기념비 너머로는 또 약2㎞ 떨어져 미국 국회의사당이 자리잡고 있다.국민들의 대표인 상하원 의원들이 모여 밤이 깊도록 쉴 틈 없이 국사를 논하는 장소다.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때면 워싱턴 기념비의 그림자가 점점 국회의사당 안에서 국사에 골몰하는 상하원 의원들에게 다가간다.물론 링컨의 엄숙하되 자애로운 눈길도 이쪽으로 향해 있다.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명의 대통령의 나라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토록 계속 이어진다. 링컨 기념관,워싱턴 기념비,국회의사당이 이루는 동·서 직선축을 직각으로 교차하는 남·북 직선축의 남쪽 끝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의 기념관이 있다.제퍼슨은 초창기 미국의 정치제도를 확립한 대통령이다.그는 또한 그가 작성한 미국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삶과 자유와 행복추구의 권리를 지님을 주장하기도 했다.미국 대통령의 귀감이 되는 이 제퍼슨의 입상은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그의 시선 역시 워싱턴 기념비에 닿게 된다.또 이 워싱턴 기념비 너머 북쪽 끝에는 다름아닌 백악관이 있다.오늘의 미국을 이끌어가는 백악관 안의 클린턴 대통령에게도 워싱턴 기념비의 모습이 보일 것이요,제퍼슨 대통령의 지혜로운 눈길이 와닿을 것이다. 이렇듯 워싱턴 기념비를 중심으로해서 동서남북에 각기 국회의사당,링컨 기념관,제퍼슨 기념관,백악관이 놓여 이루는 광장을 「워싱턴 몰」이라한다.이곳이야 말로 미국의 심장부라는 워싱턴시의 핵심부가 된다. 이 광장 주변,특히 워싱턴 기념비에서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지역에는 물론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우리네 상식으로는 이 건물들은 관청건물들이 될만하다.그런데 이들은 모두 미술관 아니면 박물관 건물들이다.국립미술관이 있고,우리 귀에도 그리 낯설지 않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항공­우주 박물관 등이 이 곳에 몰려 있는 것이다. ○V자형 참전기념비 이 워싱턴 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하나 더 있다.미국이 치른 전쟁중 전무후무하게도 패전한 월남전 참전용사비다.이것은 용감무쌍한 군인들의 동상을 나열하게 되는 여느 전쟁기념비와는 다르다.검은 대리석 벽으로 V자를 만들어 놓았는데,이 V자를 우뚝 세운 것이 아니라 땅 위에 뉘어 놓았다.이 대리석 벽에는 월남전에서 전사한모든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용산에 있는 우리네 전쟁기념관에도 이것을 흉내내어 놓은 것이 있다).이곳을 찾는 옛 전우들과 유족들은 검은 대리석 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죽은 자의 이름이 겹쳐지는 것을 보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린다. 워싱턴 몰의 건축·구조물 배치의 공통된 특징은 「시각적 중첩」이다.워싱턴 기념비를 사이에 두고 링컨 기념관은 국회의사당을 건너보고,제퍼슨 기념관은 백악관을 건너보고 있다.초창기 대통령이었던 링컨과 제퍼슨은 미국 국부인 워싱턴을 매개로 해서 나름대로의 애정어린 감시의 눈초리를 오늘의 미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월남전 참전용사비에서는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가 검은 대리석 벽을 매개로해서 서로 겹쳐지며 만나고 있다. 이러한 절묘한 배치기법이 애당초 의도된 바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을 두고 이들 건축·구조물들이 각기 들어서면서 자연히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워싱턴시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성장해 온 도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지 열다섯째 해가 되던 1791년 워싱턴 대통령은 현재의 워싱턴을 미국의 수도로 정하고 도시건설을 시작한다.무릇 새 국가의 시작은 새로운 수도의 건설로 이어지게 마련인가 보다.피에르 랑팡이라는 프랑스인 건축가가 신수도의 설계를 맡았는데 이때 이미 국회의사당,백악관의 위치가 정해졌고 게다가 추후에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광장을 도시 곳곳에 미리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워싱턴 기념비는 1888년에,링컨 기념관은 1922년,제퍼슨 기념관은 1942년,월남전 기념비는 1982년에 완성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첫째로,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의 수도 설계라는 중책을 주저없이 프랑스인 건축가에게 맡겼다는 것이다.잘 할 수만 있으면 누구라도 데려다 쓴다는 미국인의 실용주의는 이미 2백년 전에 「세계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둘째로,프랑스인 건축가 랑팡의 마스터플랜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후로 2백년간 이것을 충실히 따라 각종 기념물의 놀라운 시각적 중첩효과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미국인들의 신중함과 철두철미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불과 3∼4년만에 신도시들을 뚝딱 건설해 놓고도 이제와 보니 도시계획이 잘못 되었다느니 원래 계획대로 지어지지 못했으니 뜯어고쳐야 한다느니 말도 많은 우리네 현실이 새삼 낯뜨거워진다. 세계의 대도시는 다 미리 계획된 도시가 아니라 자연히 발생하여 성장해 온 것이 대부분인데 워싱턴만큼은 앞서 보았듯 예외가 된다.또 하나의 예외로서 우리의 수도 서울이 있다.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지금부터 6백년 전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정도전을 시켜 신도시를 건설한다.북악의 줄기가 뻗어내려 온 곳에 경복궁을 짓고 그 앞에 광화문을 세우며 이를 지나 남대문으로 향하는 탄탄대로를 세운다.이것이 오늘의 세종로다.서울의 마지막 백년이 지나는 동안 이 세종로에는 청와대에서 시작되어 경복궁,구 중앙청을 지나 이순신장군 동상에 이르는 일종의 선형배치가 이루어진다.얼핏 보면 워싱턴 몰의 선형배치와 비슷하기도 하다. ○타산지석재고할만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링컨 동상과는 다르다.링컨이 오늘의 미국을 움직이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앉아 애정어린 감시의 눈길을 주고 있다면 이순신 장군은 몇해전까지도 오늘의 한국을 움직이던 중앙청과 현재의 청와대를 아예 등지고 서 있다.링컨의 엄숙함이 미국의 상하원 국민대표들을 향한다면 이순신 장군의 위용은 그저 평범한 국민들에게만 떨쳐지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몰과 세종로의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세종로 주변에는 박물관이 없다.단지 세종문화회관이 하나 있을 뿐이다.나머지는 정부종합청사,보험회사 건물,통신회사 건물,그리고 남의 나라 대사관 건물 등이 있다.또 세종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이 넓은 길이기는 하되,그 길이 모두 아스팔트가 깔린 차도로 되어있다.국민들은 이 길 양쪽으로 걸으려면 여기저기 워키토키를 들고 서 있는 사복의 전경들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어디에서고 잔디가 깔린 워싱턴 몰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조선총독부(중앙청)건물이 지어진지 70년만에 헐린다고 한다.이것이 지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은 슬프다.그래도 남들은 2백년에 걸쳐 원래의 마스터플랜을 따라 차근차근 예술품에 비견 될 만한 건축·구조물들을 자기 나라의 심장부에 세워오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나라의 심장부에 아무런 마스터플랜이 없이 건물을 짓고 허물고 또 짓는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그것도 기념비적으로 지어져 서로 조화를 이루는 건물들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혼자서 멋진 상업건물들을 짓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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