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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아닌 개인 평가… ‘혹사 폐해’ 고교 축구 팀 성적 증명서 없앤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체육특기자 대학 입시 개선을 위해 ‘팀 성적 증명서’ 발급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고 6일 밝혔다. 팀 성적 증명서는 고교 축구 성적 지상주의와 그에 따른 선수 혹사 등 폐해를 낳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KFA는 올해부터 고등리그의 팀 성적 증명서 발급을 중단하고 개인 실적 증명서만 발급하기로 했다. 올해 신입생이 3학년이 되는 2022년부터는 모든 전국 대회의 팀 성적 증명서가 사라진다. 대신 객관적인 지표가 개인 실적증명서에 추가된다. 기존 개인 실적 증명서에는 경기 수, 출전 시간, 입상 내용만 표기됐지만 앞으로는 이동 거리, 패스 성공률, 볼 차단, 크로스 횟수 등의 데이터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KFA는 영상분석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올해는 시범 운영을 위해 고등리그 일부 경기장에, 내년부터는 90% 이상, 2022년에는 전 경기장에 카메라를 설치해 각종 데이터를 측정할 예정이다. 홍명보 KFA 전무는 “기존에는 소속팀 입상 실적에 대한 입시 의존도가 높았다”며 “개인 기량이 우수하거나 잠재력이 큰 선수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성적 때문에 맞는 게 당연하다는 학생선수들

    성적 때문에 맞는 게 당연하다는 학생선수들

    “폭력 일상화… 가해자 되는 악순환 반복” 2212명이 “감독·또래의 성폭력 경험”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한 체육계에서 초중고 학생선수들은 폭언과 욕설 등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신체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기기 위해 때리고 맞는 게 당연한 일이 돼 버린 탓에 초등학교 학생선수들 중 40% 가까이가 폭행을 당하고 나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7일 공개한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선수 5만 7557명 가운데 9035명(15.7%)이 언어폭력을, 8440명(14.7%)이 신체폭력을 경험했다. 일반학생(신체폭력 경험 비율 8.6%)과 비교하면 2배에 가까운 수치다. 조사는 지난 7~9월 학생선수가 있는 전국 5274개교 6만 321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인권위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은 주로 3~4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초등학생 선수 중 71.2%(1만 2829명)가 운동을 시작한 이유로 ‘내가 좋아서’를 꼽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성적이 저조하다는 이유 등으로 욕설이나 폭력이 돌아왔다. 초등학생 선수의 19.0%가 언어폭력을 경험했고, 12.9%는 신체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초등학생은 맞고나서의 감정에 대한 질문에 ‘운동을 하기 싫어진다’(17.0%)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38.7%)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와 관련해 초등학생들은 인권위와의 심층면접에서 “미워서 맞는 것이 아니니깐 맞아도 괜찮아요”, “내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코치님에게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어폭력을 당한 초등학생 중 69.0%, 신체폭력 경험자의 75.5%는 가해자로 코치나 감독 등 지도자를 지목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선수의 경우 지도자와 함께 선배 선수가 주요 가해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는 “일상화된 폭력 문화 속에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미 폭력을 훈련이나 실력 향상을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하게 된다”며 “폭력의 내면화로 인해 폭력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또 감독과 선수 사이의 ‘그루밍 성폭력’(신뢰 관계를 쌓아 심리를 지배한 뒤 가하는 성폭력)과 또래나 선배의 성폭력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응답자 중 2212명(3.8%)은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성)폭력으로부터의 보호체계 정교화, 상시 합숙훈련 및 합숙소 폐지, 과잉훈련 예방 조치 마련 등 다양한 개선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스페셜올림픽이 국가대표를 추첨으로 뽑는 이유

    [박록삼의 시시콜콜] 스페셜올림픽이 국가대표를 추첨으로 뽑는 이유

    엄연한 올림픽 대회다. 4년마다 세계 190개 나라 운동 선수들이 참가하는 거대한 지구촌 축제다. 올해 하계 올림픽은 지난 4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열렸다. 동계, 하계별로 4년마다 열린다. 그런데 각 종목별 국가대표선수는 추첨으로 뽑는다. 경쟁을 통해 금-은-동메달을 가리지만, 모든 참가자에게 메달 못지 않은 영광의 리본을 준다. 국가 순위도 발표하지 않는다. 권투, 레슬링 등 거친 격투 종목은 없다. 바로 ‘스페셜 올림픽’이다. 말 그대로 아주 특별한 이들이 모여 서로 화합하며 경쟁하고, 도전과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낸 것으로도 충분히 기뻐하고 환호한다. 지적 발달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특별한 올림픽이다.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여동생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에 의해 1968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올림픽, 패럴림픽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인정하는 3대 올림픽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1991년 제8회 미국 미네소타 대회에 처음 출전해 금 10개, 은 6개, 동 8개를 땄다. 그리고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을 개최해서 뜻깊은 지구촌 행사의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특히 의미있는 것은 국가대표선수 선발 방식이다. 대표선수는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전국대회 각 종목 조별 1위 입상자 중 현장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단순한 성적,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발달장애인에게 다양한 국제 대회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한 스페셜올림픽국제본부(SOI)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공정하고 더욱 의미가 깊다. 그것이 스페셜올림픽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가치이자 정신이다. 실력지상주의, 경쟁의 효용성, 성적우선주의에 갇혀 허우적대는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스페셜올림픽이다. 하지만 스페셜올림픽의 숭고한 가치와 정신를 훼손하며 여기에조차 특정인이 일그러진 욕망을 담아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씁쓸하게 만들었다. 발달장애인 딸을 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스페셜올림픽코리아 회장을 지냈다. 2013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 세계동계대회의 준비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의 딸 김모씨는 별도의 공모 절차 없이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메신저’ 단독후보로 선정됐고, 2016년 7월 스페셜올림픽코리아 당연직 이사로 선임됐다. 2009년 동계스페셜올림픽 세계청소년대표회의에서 동아시아지역 대표로 참가했고, 2011년 아테네스페셜올림픽 폐막식에도 글로벌 유스 리더 자격으로 축사를 했다.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땐 세계청소년대표회의 공동의장직을 수행했다. 뿐만 아니다. 김씨는 SOK에서 주최하거나 준비한 문화예술공연·무대에도 등장한다. 그는 2013년 열린 ‘평창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에서도 밴드 ‘부활’과 협연했다. 그 다음해인 2014년 뉴욕에서 열린 유엔 세계장애인의날 기념공연에도 참가했다. 나 원내대표의 딸 김씨가 설령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누려야할 참가와 도전의 기회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했다. 결과적으로 스페셜올림픽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지난 9월 16일 나 원내대표를 뇌물수수와 사후부정수뢰, 업무방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그 이후 시민단체들은 나 원내대표에 대해 4차 고발까지 진행했고, 검찰은 이 고발 건을 형사1부에 배당했지만 세 달째 접어들도록 아직까지 고발인 조사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와 별도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오는 11일부터 스페셜올림픽코리아를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특권과 반칙이 뿌리 뽑히는 또다른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강북, 동북권 예술교육센터·종합체육센터 첫삽

    강북, 동북권 예술교육센터·종합체육센터 첫삽

    2022년 서울 강북구에 ‘동북권 아동·청소년 예술교육센터’(시립)와 ‘강북구 종합체육센터’(구립)가 들어선다. 서울시는 강북구 미아동에서 동북권 아동·청소년 예술교육센터와 강북구 종합체육센터 착공식을 가졌다고 30일 밝혔다. 이 시설은 서울시와 강북구가 공동 시행하는 사업으로 동북권 아동·청소년 예술교육센터는 지하 1층~지상 4층, 강북구 종합체육센터는 지하 2층~지상 2층 규모로 미아동 811-2번지 일대에 건립된다. 두 센터의 총사업비는 520억원이다. 서울시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하나로 다른 지역보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강북구에 대규모 문화 체육시설 건립을 추진해 왔다. 이 시설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삼양동 옥탑방 생활 이후 추진되는 ‘강북 우선투자’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시는 소개했다. 유연식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두 센터는 세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문화시설로 강북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북권 아동·청소년 예술교육센터는 과도한 입시 경쟁과 성적지상주의로 ‘아동·청소년 학업스트레스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은 한국의 교육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세계가 주목하는 ‘핀란드 아난탈로 아트센터’를 모델로 한다.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강북구 종합체육센터는 수영장, 헬스장 등 다양한 생활 스포츠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대규모 시설로 조성할 계획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지역 주민 여러분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공사가 순조롭게 시작돼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번 시설들이 강북구의 생활체육 활성화와 문화 저변 확대를 견인하는 중심 시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성적 지상주의 민낯… 아마·생활체육까지 ‘검은 유혹’

    5년간 168명 적발… 유소년 25명 달해 성장기 청소년은 심각한 부작용 초래 올해 초부터 보디빌더들이 불법 약물을 복용해 몸을 만들었다고 소셜미디어에서 폭로하는 이른바 ‘약투’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테스토스테론·클렌부테롤 등 스테로이드 약물들이 급속히 아마추어 스포츠와 생활 체육에 침투해 있는 양상이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가 최근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5년간 아마 체육인 168명이 도핑 검사에서 적발됐다. 보디빌더가 117명으로 전체의 70%에 달했고, 배구, 사격, 컬링, 럭비, 자전거, 태권도, 레슬링, 아이스하키에 이어 장애인 종목까지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불법 약물 사용이 광범위했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여상이 자신의 야구교실에서 유소년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투여한 것으로 드러난 상황을 뒷받침하듯 5년간 도핑이 적발된 유소년 선수도 25명이나 됐다. 종목별 도핑방지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프로 못지않게 아마추어에게도 약물 유혹은 컸다. 프로 종목의 경우 시즌이 이어지며 실력을 보일 기회가 많지만 아마추어는 그야말로 단기 이벤트에서 성적을 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금지 약물을 복용해서라도 성적이 좋으면 된다는 인식이 아마나 생활체육 대회에서도 통용되는 현실이다. 유소년 선수들은 더 절박하다. 경기 성적이 대학 진학이나 프로 진출 여부와 직결되다 보니 감독 등 지도자들이 부모를 회유하는 경우도 있다. 농구 선수 출신인 임용석 충북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운동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우리 체육의 민낯이 바로 약물 파문”이라고 말했다. 일반인들도 여름 시즌마다 몸만들기에 나서는 헬스 업계는 약투의 진앙지다. 보디빌더 출신 유튜버 박승현이 공개적으로 보디빌딩 업계의 스테로이드 남용과 치부를 밝혔고, 일부 선수들이 인정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약물 투여가 고소전으로 비화된 상황이다. 금지 약물은 눈에 띄는 효과만큼 부작용도 크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제제가 투여되면 갑상선 기능 저하 등 심각한 신체 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의 미래도 위태로워진다. 스포츠혁신위원인 정윤수 성공회대 교수는 “불법 약물 사용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성적 지상주의와 입시를 둘러싼 학부모들의 열망과 지도자들의 욕심이 맞물린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한국 체육은 모든 선수를 김연아·류현진처럼 훈련시켜”

    “한국 체육은 모든 선수를 김연아·류현진처럼 훈련시켜”

    “국가·승리지상주의 다양성 전환 필요”스포츠혁신위원회가 지난 5월부터 체육계 구조 개혁을 위해 발표하고 있는 권고안에 대해 엘리트 체육계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전국 체육학과 교수들이 국가 스포츠패러다임 혁신과 체육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내 대학 스포츠 학과 교수들은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의 스포츠 패러다임을 민주주의와 인권, 공정, 평등, 다양성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교수 194명은 선언문에서 “대한체육회는 스포츠개혁에 반하는 일련의 매도와 왜곡을 당장 멈추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강신욱 단국대 교수는 “체육계가 동의하는 것은 현재 한국 스포츠에 문제가 있으며 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며 “엘리트 체육인들이 합숙 폐지나 주말대회로의 전환에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범 중앙대 교수는 “우리 국가의 위상에 비춰볼 때 현 체육 시스템은 더이상 어울리는 옷이 아니며 이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며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되는 건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구선수 출신인 임용석 충북대 교수는 “운동선수 가운데 김연아나 류현진처럼 되는 건 10%도 안 된다. 하지만 한국 체육은 모든 선수를 김연아나 류현진처럼 훈련시킨다. 결국 90%의 운동선수들을 불행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성 체육인들이 주장하는 ‘기존의 성과를 무시한다’는 지적에 대해 “많은 학생 선수들이 성적을 내기 위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혁신위가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반박했다. 최재원 중앙대 교수는 “엘리트 체육 양성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지 엘리트 체육인들을 쫓아내자는 게 아니다”라면서 “학생 선수들이 즐기고 성장하는 시스템 속에서 엘리트 선수들이 배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파벌·짬짜미·성추행 얼룩진 ‘효자 종목’… 또 솜방망이 처벌받나

    파벌·짬짜미·성추행 얼룩진 ‘효자 종목’… 또 솜방망이 처벌받나

    ‘여자숙소 출입’ 김건우 출전정지 1개월 등 성적 연연한 빙상연맹, 간판 선수 감싸기 빙상계 “기강해이에 비슷한 사고 반복” “군대식 연대책임” vs “선제적 결단 필요” 선수촌장, 선수 전원 퇴출 놓고 논란도 과거 큰 파열음을 일으킨 파벌 싸움과 대회 성적·메달을 둘러싼 ‘짬짜미’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쇼트트랙이 또다시 스포츠정신에 먹칠을 했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남자 선수가 암벽 등반 훈련 도중 후배 선수를 성희롱한 사실이 25일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의 국가대표 심석희 성폭행 파문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쇼트트랙의 병폐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으로도 해석된다. 사건은 지난 17일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여자 선수들과 함께 진행하던 등반 훈련 중 발생했다.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쇼트트랙 간판 임효준(23)이 여자 선수들 앞에서 남자 후배 B의 바지를 돌연 끌어내렸다. 임효준은 장난이었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피해자인 B선수는 극심한 모멸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와 신치용 선수촌장은 지난 24일 기강 해이를 이유로 임효준뿐 아니라 피해자를 포함한 대표 선수 16명 전원을 한 달간 선수촌에서 쫓아냈다. 결코 장난으로만 여길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못된 관행을 바로잡자고 체육계가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마당에 병폐의 온상으로 눈총을 받아 오던 쇼트트랙이 또 사고를 치자 “아예 종목을 폐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도 높은 비난이 체육계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자신이 몸담은 종목이 손가락질과 눈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선수들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도 스포츠 팬과 국민들의 눈초리가 따갑다. 실업 빙상팀 C감독은 “이런 비슷한 사건이 계속된다는 것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쇼트트랙 김건우(21·한국체대)가 여자 선수들의 숙소에 무단 출입했다가 발각됐을 때도 출전정지 1개월이라는 가벼운 징계 처분에 그쳤다. 김건우의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 자격도 유지해 징계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엘리트 스포츠의 뿌리 깊은 ‘성적 지상주의’에 따른 간판 선수 감싸기와 문제를 일으켜도 가벼운 처벌만 받고 언제든 복귀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반복되는 병폐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C감독은 “선수가 사고를 쳐도 국제대회 성적을 내야 하니까 연맹은 감싸기에 바쁘다”면서 “이를 본 선수들은 무서운 게 사라지고 기강은 해이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많은 빙상인들은 이번에도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이번 사건 가해자에 대해서 가벼운 징계를 내릴 것으로 봤다. 박태웅 연맹 사무처장은 “퇴촌된 대표팀 선수들이 한 달 뒤에는 다시 입촌해서 훈련을 하게 될 것이며 다만 가해 선수의 재입촌 여부는 다음달 징계 심의 결과가 나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선수촌장이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 그리고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선수들에 대해 퇴촌 조치를 한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군대식의 ‘연대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설명부터 “터진 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작은 구멍을 서둘러 막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번 사건 배후에 그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따라붙는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In&Out] 학교 체육의 미래가 걱정이다/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

    [In&Out] 학교 체육의 미래가 걱정이다/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

    올해 초 한국 체육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빙상계 ‘미투 운동’에서 촉발돼 지난 1월 26일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한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의 범부처 대책 발표, 2월 11일 스포츠혁신위원회 출범, 그리고 2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출범까지 정부의 스포츠 혁신 방안이 일순간에 쏟아졌다. 현재는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안이란 방식으로 정부 주도의 스포츠 개혁이 진행 중이다.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기존의 스포츠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한 듯하다. 그러나 이 권고안이 오히려 성실하고 묵묵하게 체육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체육인들을 자괴감에 빠뜨리고 있다. 체육계의 문제를 정상화한다는 명분 아래 제시된 ‘스포츠혁신위원회 2차 권고문’에 따르면 체육계는 인권사각지대, 학습권 유린, 성적지상주의를 만들어내는 주체이며 각종 폭력이 난무하는 적폐이자 개혁의 대상일 뿐이다. 일부 지도자의 (성)폭력 범죄 행위가 스포츠계에 만연한 현상이라고 규정하는 왜곡된 언론 보도와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문이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황색 저널리즘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권고문의 내용을 예로 들면 ‘전국소년체육대회를 폐지하고 전국체전 고등부와 통합해 학생 선수, 일반 학생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함양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학생 체육 축제 형식으로의 전환’을 발표했다. 물론 전국소년체육대회가 문체부의 관리를 받지만 엄연히 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있는 대회이며 지속적인 개선을 통해 스포츠 발전의 산실로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전국소년체육대회를 폐지하는 일은 그동안의 성과와 기여는 무시한 채 성적지상주의, 과열 경쟁 등의 문제만을 부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증요법으로는 개혁을 이룰 수 없다. 또한 과열 경쟁 방지를 위해 등위를 없애면 스포츠의 본질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교통사고를 예방한다고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대회 형식을 바꾸는 일은 집의 외장을 바꾸는 일종의 전시 행정 정책으로,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이라 보기 어렵다. 검증되지 않은 대회 형식 변경이 성과를 낼 것이라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며 혼란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 피해가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치명적인 오류가 될 수도 있기에 시간을 갖고 합리적인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계, 체육계 전반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적 참여와 논의를 통해 학교 체육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체육인들이 개혁의 대상이 아닌 개혁의 주체가 된다면 우리나라 청소년을 위한 진정한 체육 대회의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전국소년체육대회 폐지 및 전국학생체육축제로의 전환이라는 성급한 권고안을 유보하고 현장의 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길 바란다.
  • 합숙소부터 대학 입시까지…학교 스포츠 정상화 위해 싹 바꾼다

    합숙소부터 대학 입시까지…학교 스포츠 정상화 위해 싹 바꾼다

    학습 기본권 우선…233개 대회 폐지안 선수들 평일 공부·주말 경기 피로 우려‘스포츠 미투’ 사태를 기화로 민관 합동으로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4일 학교 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전면적 권고안을 내놓았다. 운동부 합숙소 문제부터 시작해 대학 입시까지 학교스포츠와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강력한 개혁을 제안했다. 스포츠혁신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학교체육 정상화를 위한 선수육성시스템 혁신 및 일반학생의 스포츠 참여 활성화 권고’를 발표했다. 올해 초 출범해 지난달 7일 스포츠 인권 분야의 권고안을 내놓은 뒤 후속 발표된 스포츠혁신위의 2차 권고안이다.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학교스포츠가 교육의 의미를 상실했고, 비정상적 구조가 고착됐다”며 “학교스포츠의 본질은 교육 활동이다. 하지만 다수의 학생 선수들은 학습을 도외시한 반복적인 훈련으로 인해 학력이 저하됐다. 학교스포츠 현장에서 특기자 진학과 관련해 비리가 드러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학교스포츠의 비정상은 엘리트 위주의 시스템의 폐단에서 연유한다”며 “일각에선 학습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호소하지만 학습권은 헌법적 기본권이다. 더이상 유보해선 안 되는 시급하고 중대한 개혁 과제”라고 밝혔다. ‘학기 중 주중 대회 참가 금지’ 부분은 이번 권고안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혁신위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개선 방안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학생 선수들의 학력 저하, 학교 내 이질화 현상, 대학 미진학 특기자의 사회부적응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파악했다. 2018년 기준으로 대회 및 훈련 참가로 인한 평균 결석일은 초등학교 5.1일, 중학교 12.7일, 고등학교 20.8일에 달하고 주당 훈련 횟수도 초·중·고등학생 선수 모두 평균 6회에 이른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혁신위는 운동선수들의 수업 불참을 막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학기 중 주중에 개최되는 233개 대회(전체 38%)를 전면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혁신위 이용수(세종대 교수) 2분과 위원장은 “방학이라는 기간과 주말 일정을 활용하면 조금 더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소년체육대회를 학교 운동부와 학교 스포츠클럽이 참여하는 ‘통합 학생스포츠 축전’으로 확대·개편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초등부는 전국 단위가 아닌 권역별 스포츠축전으로 전환하고, 기존에는 불참했던 고등부가 소년체전에 추가되는 방식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승리 지상주의에 노출되는 부작용을 양산하는 데다, 대회 1~4주 전부터 수업에 불참해 정상적 학교 생활이 불가하다”는 이유에서다.혁신위는 또한 합숙소 전면 폐지, 체육특기자 대학입시 때 교과성적과 출결·면접 반영 등도 함께 권고했다. 다만 체육계 일부에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왔다. ‘합숙이 필요한 환경에 처한 운동선수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거나 ‘원칙적으로 대학 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등의 반론이 제기됐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순수하게 메달 한 번 따보겠다고 몇 십년씩 고생하는 선수들의 가치 있는 꿈은 왜 하찮게 느껴지게 만드시나요? 여러분들께선 왜 공부하셨나요?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밤샘 공부하신 거 아닌가요? 여러분들은 되고 우리는 왜 안 되나요?”라는 글을 올렸다. 대한체육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미) 과열 경쟁을 방지하고 수업 결손을 최소화하고자 종합 채점제를 폐지했고, 주말부터 4일간 개최했다”며 “소년체전은 전국체전과 더불어 대한민국 스포츠를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국중고등학교탁구연맹 손범규 회장은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권고안 철회를 요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 위원장은 “‘엘리트 죽이기’가 아니라 ‘엘리트 살리기’를 하고 있다”면서 “지금 벽을 열지 않으면 엘리트 선수들의 성장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략적인 이행 계획을 수립해 권고안에 첨부했다”면서 “관계 부처는 앞으로 로드맵을 수립해 한 단계 한 단계 실행해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이순녀의 시시콜콜]바비 인형과 캡틴 마블

    [이순녀의 시시콜콜]바비 인형과 캡틴 마블

    1959년 3월 9일, 미국 뉴욕 세계장난감박람회에 등장한 마텔사의 신제품 인형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잘록한 허리와 긴 팔다리 등 비현실적으로 굴곡이 과한 몸매에 흑백 줄무늬 수용복을 입은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한 이 인형은 단숨에 전세계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첫 해에만 30만개가 팔렸다. 수십 년간 ‘미의 기준’으로 여겨져온 바비 인형이다. 올해 환갑을 맞은 바비 인형은 마텔사 공동창업자인 루스 핸들러가 독일의 성인 남성용 인형 캐릭터를 본따 아동용으로 만든 것이다. 파격적인 아이디어의 배경에는 자녀애가 있다. 어린 딸이 아기 인형으로 엄마 놀이만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 성인 여성 모습의 아동용 인형을 처음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바비’란 이름도 딸 ‘바바라’에서 따왔다. 출시 당시 부모들은 성적 매력을 과하게 부각시킨 외양때문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소녀들은 핸들러가 의도했던 대로 미래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바비 인형에 열광했다. 바비 인형이 걸어온 길에는 빛과 그늘이 모두 드리워져 있다. 오랫동안 패션과 대중문화에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누리며 전세계에서 10억개가 팔리는 영예를 누렸지만 획일적인 미의 기준에 대한 논란과 비판도 거셌다.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는 바비 인형의 변신을 이끌어 냈다. 1968년 크리스티라는 첫 흑인 바비 인형이 나온 이래 다양한 인종, 다양한 피부색은 물론 통통하거나 키가 작은 바비 인형도 속속 태어났다. 60주년인 올해에는 휠체어를 탄 인형과 의족을 달고 있는 모습까지 등장해 아이들에게 다양성의 가치를 심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바비 인형의 지난 60년 세월은 페미니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로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겼다는 오명을 씻어내긴 어렵지만 출시 초기부터 우주비행사, 외과 의사, 공군 조종사 등 ‘직업인 바비’ 시리즈를 통해 남성 전유물로 여겨져온 직업의 경계를 허문 점은 평가할 만하다. 이런 이유에서 마블 영화 사상 최초로 여성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 ‘캡틴 마블’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지금까지 슈퍼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남성이었고, 여성은 주인공의 연인이나 조력자에 불과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여성들의 능력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에 여성 슈퍼 히어로도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브리 라슨은 “젊은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를 당하고, 남성 네티즌들의 무지막지한 악플에 시달리고 있지만 흥행 전선은 오히려 불붙고 있다. 개봉일에 46만 857명을 불러모으며 압도적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3일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다. 바비 인형과 캡틴 마블. 언뜻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한 여성 캐릭터지만 진화하는 페미니즘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닮은 모습이 엿보인다.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열린세상] 운동선수는 죄송해야 하나/양중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열린세상] 운동선수는 죄송해야 하나/양중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 대학 시절 시험 때만 나타나던 어떤 동기의 답안지에 쓰여 있던 문구다. 당시에는 이런 답안지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선수가 무슨 공부야. 운동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다. 학창 시절 필자도 학교 대표 선수나 합창단 등에 뽑힌 적이 있다. 하지만 출전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어머니께서 ‘그거 해서 밥이나 먹고살 수 있겠냐’고 하시면서 선생님께 빼달라고 부탁을 드렸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운동을 하게 되면 공부와는 멀어진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1980년대 고교 야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해설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일본에는 고교 야구팀이 3000개가 넘는다. 고시엔대회가 열리면 일본 열도 전체가 들썩거린다. 그러니 우리와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도 팀을 늘려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나도 크게 공감해 야구팀이 늘어나 우리 동네에도 야구팀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랐다. 환상을 깨는 데는 30여 년이 걸렸다. 일본으로 연수를 간 것이 그 기회였다.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 가운데 축구 선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수업을 꼬박꼬박 챙겨 들었다. 방학 중에 열리는 세미나에도 예외 없이 참석했다. 그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수업에 들어오지 않으면 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운동을 해 온 선수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취업이 잘 됐다. 기업에서도 선수 출신들이 회사에 대한 충성도나 단합력,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더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일반 학생만큼은 아니지만, 전공에 대해서도 기초 지식 정도는 갖추고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됐다. 운동과 공부가 전혀 다른 게 아니라는 것을. 운동도 결국 공부의 일부라는 것을. 최근 우리 스포츠계는 폭력, 성폭력에 더해 도박이나 승부 조작 같은 일탈로 얼룩져 있다. 성적 지상주의, 합숙 시스템, 병역특례 제도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바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다. 김영기 전 KBL 총재가 고려대학교에 입학하던 1950년대만 하더라도 선수들은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시험을 거쳤다. 그런데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와 스포츠가 결합하기 시작했다. 외국과의 경기를 보면서 함께 열광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야말로 애국심을 높이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 대한 보상도 뒤따랐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겐 돈 들이지 않고 학업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도 됐다. ‘운동부라서 죄송하다’는 답변을 쓰는 선수가 늘어났다.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성적지상주의로 연결됐다. 성적을 내려고 합숙소를 갖추는 학교도 늘어났다. 정권은 체육특기자 제도와 병역특례 제도를 당근으로 제공했다.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나 협회에 힘이 몰리기 시작했다. 운동 이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선수 기용과 성적 내기에 전권을 가진 자에게 힘이 쏠리는 것이 당연했다. 엘리트들은 국제대회에서의 빛나는 성과로 보답했다. 없이 살던 국민들에게 감격의 눈물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성공한 체육 엘리트의 이면에는 좌절을 겪은 더 많은 실패한 엘리트들이 있다. 필자도 선수들과 관련된 사건을 여러 건 맡아 보았다. 대부분은 운동을 그만둔 후 살길이 막막한 상태였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지 못한 그들은 유혹의 손길에 매우 취약했다. 사회의 시스템이 그들을 다시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되돌리지 못한 것이다.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엘리트 선수라고 해서 평생 운동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고교나 대학을 마치고 직업적인 길을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고 하더라도 은퇴 후에 같은 길을 걷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극히 일부에 불과한 빛나는 체육인들만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제 그들에게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 [데스크 시각] 체육계의 SKY캐슬에 비극이 있다/안동환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체육계의 SKY캐슬에 비극이 있다/안동환 체육부 차장

    일본 국적의 스물두 살 오사카 나오미. 아시아 남녀 선수 통틀어 테니스 단식 세계 랭킹 1위 기록은 오사카가 유일하다. 불과 1년 전 세계 72위였던 그녀는 지난해 9월 US오픈, 올 초 호주오픈까지 제패하며 새로운 테니스 여제로 떠올랐다. 두 메이저 예선과 결선에서 경기 직전까지 귀에 이어폰을 낀 오사카의 모습이 자주 노출됐다. 그래서인지 호주오픈 우승 직후 기자회견에서 ‘무엇을 듣고 있었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오사카는 “제이 록의 ‘Win’(승리)이라는 노래를 US오픈부터 지겹도록 듣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힙합 가수인 제이 록은 지난 10일 그래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랩 퍼포먼스’를 수상한 래퍼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녀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하면 착각일까. 비트도 가사도 직관적인 3분 20여초 랩은 마치 주문을 외듯 ‘이겨라’(win)는 단어를 56번이나 무한 반복한다. 오사카가 얼마나 승리를 갈망했는지 시공간을 넘어 전해진다. 도쿄올림픽을 1년 5개월 앞둔 한국 체육계는 지금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짙다. 체육계가 악습을 방조하고 선수들의 고통에 침묵한 자업자득이다. 책임 있는 단체와 인사들의 무책임한 대응과 안이한 인식, 폐쇄적인 조직 운영과 기형적인 파벌 문화도 지탄받았다. 지도자와 선수 모두를 병들게 하는 체육계 병폐는 이 참에 도려내는 게 마땅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한 민관 합동의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출범한 목적도 비리를 근절하고 구조를 혁신하라는 국민 요구에 부응한 조치다. 하지만 진단과 처방에서 혼란이 일고 있다. 심석희, 신유용 선수의 고통은 고교 시절 시작됐다. 악랄하고 상습적이었다. 병폐의 뿌리는 체벌·성폭력 등 가학적 방식으로 어린 선수들을 운동기계로 만들어 온 ‘체육 특기자 입시’다. 자식이 맞고 당해도 입시 불이익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부모도 이 병폐의 볼모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을 명시한 학교체육진흥법은 학교에서 지켜지지 않는다. 대회 성적이 나쁜 비정규직 코치는 쫓겨난다. 구조적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체육 수장인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성적지상주의의 엘리트 체육을 병폐로 적시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대한체육회를 배제하고, 대한체육회 총회에 문체부가 불참한 건 우연이 아니다. 전국소년체육대회(소년체전)를 축제로 바꾸고, 선수촌 합숙훈련 폐지와 같은 일방적 대책들이 정부 채널에서 쏟아진 불통 탓도 크다. 무엇보다 ‘올림픽 메달을 안 따도 되니 문제나 일으키지 말라’는 식의 힐난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하는 체육인들이 적지 않다. 챔피언을 열망하며 땀 흘리는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메달병 환자로 폄훼하거나 엘리트 체육이 쌓아온 공(功)과 사명을 부정하는 건 잘못이다. 합숙훈련 등 기존 시스템을 없애는 게 능사도 아니다. 큰 문제 없이 운영해 온 종목이 더 많다. 선수촌 합숙을 원하며 훈련에 전념하는 선수들도 피해자가 된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상주하는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의 기자실 무선인터넷 접속 암호는 ‘press2002’다. 100년이 훌쩍 넘는 한국 야구사에 없었던 ‘야구의 날’이 8월 23일로 제정된 건 2008년 그날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덕분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쾌거와 올림픽 야구 우승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를 쟁취한 ‘영예로운 승리’의 감동을 국민에게 선사했다. 한번 경쟁력을 상실한 스포츠가 다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다. 상한 노른자는 두고 흰자만 거둬 내는 과오를 경계해야 한다. ipsofacto@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승부 위주의 한국바둑 한계에 봉착…세계화가 돌파구”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승부 위주의 한국바둑 한계에 봉착…세계화가 돌파구”

    프로 기사 조혜연 9단이 말하는 ‘바둑과 미래’‘가장 많이 까이는 프로 기사’ ‘일요일엔 시합을 안 하는 프로 기사’, ‘가장 영어를 잘하는 고수’, ‘기업 CEO 프로 기사’, ‘여자 이창호’…. 프로 바둑 기사 조혜연 9단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런 그녀가 바둑계에서는 극히 드물게도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한다고 해서 지난 8일 만나 진학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국내 남녀 프로기사 363명 가운데 박사 학위를 가진 이는 문용직·정수현 9단 딱 2명뿐이다. 물론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이는 더러 있다. 그에게 인터뷰를 신청한 지난달 30일 전화를 걸기 전에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에서 이창호 9단에 역전패를 당했다는 기사가 보였다. “역전패당한 것, 위로한다.”라고 했더니 그는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됐는데….”라며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패배한 기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터뷰 내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패배는 빨리 잊어야죠.”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등록3천년 역사의 바둑, 문화콘텐츠로 볼 것학업 탓 대국 포기 없을 터…수업 적게” -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승부 위주의 한국 바둑 문화에 의문이 들었다. 구글의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등장 이후 바둑은 과도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바둑계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 바둑은 ‘인류의 문화다.’, ‘예술이다.’, ‘스포츠다.’, ‘잡기다.’는 식의 시선이 겹쳐 있다.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3000년이나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이겨야 한다.’라는 결과주의가 만연했다. 이젠 바둑을 성적 지상주의, 결과주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화콘텐츠라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둑을 문화콘텐츠 시각에서 연구하고 분석하고 싶다. 다음 달부터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우리 분야, 바둑에 대해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박사 과정 공부가 만만찮을 텐데. “사실, 걱정이다. 학부에선 영문학, 석사로는 언론홍보를 전공했다. 문화콘텐츠학과는 학부, 석사와는 동일 계열이 아니라서 학점 이수가 많아야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대국을 포기하거나 시합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다. 직업이 바둑이니, 대체로 봄학기에 시합이 있는 편이어서 수업을 적게 들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박사학위 취득에 연도를 정해 놓지 않겠다. 초읽기에 몰리는 듯한 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프로 바둑계에선 학벌이랄까 학력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프로 바둑기사라는 면장이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으며, 어떤 면에서는 졸업장이나 박사 학위보다 더 높게 대우받기 때문이다. 학업을 하겠다고 하면 ‘바둑이나 잘 둘 것이지….’ 라는 다소 냉소적이랄까 폐쇄적인 문화도 작용한다. 하기야 다른 것은 다 포기하고 바둑에만 집중해야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 맞서 조혜연 9단은 3수생의 나이인 21살 때 첫 입시를 치렀고, ‘06학번’으로 고려대 영어영문학에 입학했다. 그리곤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입학 당시마다 바둑에 집중하지 않고 대학 간다고 많이도 ‘까였다.’ “국내 바둑계, 1등 아니면 루저…경쟁 극심바둑 최고 자리는 인공지능이 이미 차지일류 기사, 인공지능에 두 점 깔아야 정도인간계 1등 의미 퇴색…좋은 기전 사라져” - 국내 바둑계가 비상이다. “그렇다. 바둑계는 드라마 ‘SKY 캐슬’에 나오는 피라미드 구조, 바로 그것이다. 최고에 대한 추구, 즉 1등 지상주의가 극심한 곳이다. 중간 정도 하면 ‘루저’ 내지 패배주의라는 시각이 강하다. 초일류 기사가 아니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다른 것을 경시했다. ‘1등 주의’가 오늘 한국 바둑을 세계에 우뚝 서게 한 것은 인정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젠 성적 지상주의가 한계에 왔다. 바둑인, 특히 한국기원을 비롯한 프로 기사들이 달라져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 바둑계가 왜 달라져야 하나. “현대 바둑의 역사는 알파고 등장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바둑에서 최고의 자리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에 넘어갔다. 현재 최고의 프로기사라도 인공지능에 두 점을 깔아야 할 정도다. 이건 초일류 기사에겐 덤으로 치면 거의 30집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잘 와 닿지 않는다고? 축구로 치면 5-0으로, 5골을 받고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거다. 프로 기사들도 대국 이후엔 인공지능을 돌려가며 복귀하고 연습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바둑계를 지배해온 1등 주의, 성적 지상주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한국기원이 대국 기사들에게 일체의 전자기기 휴대를 금지시켰다. 물론 화장실에 갈 때도 사용 못 하게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좋은 대회가 많이 없어졌다. “권위의 국수전은 수년째 열리지 못하고 있다. 명인전, 기성전, 왕위전도 마찬가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알파고 등장 이후 국내 프로 기전의 약 80%가 폐지되거나 중단됐다. 이는 알파고 탓이 아니라 한국 프로바둑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이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프로 기전이 쉽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 승리 지상주의로 쌓은 바둑의 기반이 탄탄해 보이지 않는다. 반면 전국 규모의 아마추어 대회는 500개가 넘는다. 바둑계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불황인 게 아니라 엘리트 중심주의가 크게 약화된 것이다. KBS바둑왕전이나 GS칼텍스배가 대표적 국내 기전이지만 일부 기전의 경우 예선전에 나가는 기사들에게 출전료도 못 주는 형편이다. 물론 삼성화재배, LG배와 같은 듬직한 국제기전도 있다.” “바둑계 폐쇄적 기수문화탓, 언로 막혀상위 10명 억대 수입…中서 대부분 벌어한국기원 한해 17명 입단…일본은 7명뿐프로들 먹고살 문제, 한국기원 고민해야” - 프로바둑계는 무슨 대책을 세우나. “폐쇄적인 분위기 탓에 무슨 대책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프로 바둑계도 입단 연도를 따지는 소위 말하는 ‘기수 문화’가 있다.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팬들이 과거보다 너그럽게 봐줘서다. 상위 10명 정도만 억대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그것도 중국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나머지 기사들은 도장 운영, 후진 양성으로 먹고산다. 그런데도 한국기원은 1년에 17명(남자 13, 여자 4명)에게 프로기사 자격증을 주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우리보다 프로 바둑 시장이 훨씬 큰 데도 일본기원은 1년에 4명(남자 3명, 여자 1명), 관서기원은 2명 입단에 원생 1명만 뽑는다. 일본기원 소속 프로기사 330명, 관서기원 소속 138명으로 일본은 모두 468명인데, 우리나라는 363명이 활동한다. 몇 년만 지나면 우리가 프로기사 수가 일본보다 더 많아진다. 이들이 뭐로 먹고살아야 하나. 입단을 꿈꾸는 ‘미생’들이 입단한 뒤에는 과연 어떤지 질문해야 하고, 기성 바둑계가 답을 내놓야 한다. 한국기원이 불편해하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말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전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1985년생인 조혜연 9단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7년 4월 프로가 됐다. 당시 11년 10개월의 나이로, 여자 기사로는 최연소이자 남녀 합쳐 조훈현(9세7개월) 9단, 이창호(11세) 9단에 이어 세 번째 최연소 입단 기록이다. 입단 23년차로 어느덧 그가 듣기 거북해하는 ‘노장’ 축에 끼게 됐다. 그가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7살 때. 어렸을 적엔 노근수 아마 6단에게 바둑을 배웠다. 프로가 되기 6개월 전쯤 김원 프로 7단 도장에서 등록했다. 그의 바둑 스타일은 한마디로 야전 형이다.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정규 바둑수업을 받지 않고, 당시 PC통신 ‘천리안’에서 강호의 고수들을 깨면서 실전을 익혔기 때문이다. 잡초와 같은 강호가 그의 스승인 셈이다.- 영어 바둑책도 많이 냈다. “헤아려보니 20권이 된다. 현현기경(玄玄棋經)과 관자보(官子譜) 같은 바둑 고전 10권을 번역했고, 조혜연의 ‘창작 사활’ 시리즈 10권을 냈다. 이 또한 틈새시장이 먹힌 것 같다. 영어로 된 초급 바둑 책은 시중에 많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의 바둑 수준이 높아지면서 중급 수준의 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수요에 부응했던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책을 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책을 내고 싶고, 머릿속에는 창작 사활문제가 막 돌아다닌다. 너무 어려운 것보다는 일반 사람들이 보고 싶은 쉬운 책을 내고 싶다.” “영어 바둑책 20권…바둑 세계화 투어도日도장서 지도…한일 바둑문화 차이 실감” - 바둑 국제화도 앞장섰다. “사실, 영어영문학 전공도 바둑 국제화 포석을 깔고 진학한 것이다. 바둑 영문 블로그도 운영했고,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을 상대로 4년간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다. 서른 살 이후 아프리카와 중동을 빼고 다른 대륙에 바둑 보급 투어를 다니고 있다. 가장 중시하는 대륙은 역시 동남아로, 태국·싱가포르를 중심으로 바둑 붐이 일고 있다. 유럽·미주·오세아니아도 연 1회 꾸준히 방문해 바둑을 지도한다. 남미는 바둑을 비교적 최근에 배워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고 있다. 비용은 공식기전에서 대국 후에 나온 것으로 충당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늘어난다면 바둑 세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둑은 앞으로 더욱 세계화될 것인데, 이를 생각하는 기사라면 외국어 공부가 필수적이다.” - 일본도 자주 간다고 들었다. “한국 젊은 사람들, 일본 많이 가잖아요. 뭐, 그런 차원이다. 일본어 공부도 독학으로 하고 있다. 장기 체류는 아니고 일본 바둑 도장에서 ‘알바’를 하면서 여행 비용을 충당한다. 일본 도장에서 하루 지도하면 몇만엔 받는데, 그것으로 다음 여행을 하곤 한다. 일본은 바둑 저변인구도 넓고, 도장 분위기는 한국과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 프로기사가 왔다고 하니, 도장이 이벤트를 갖는다. 일본에선 프로기사와 대국을 하는 자체를 기념으로 삼는다. 장인 문화에 대한 존중이 보이고, 그런 것은 사실 부럽다. 그런데 한국에선 성적을 내지 못하는 프로기사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런 차이가 있다.” - 여자 기사여서 차별받지 않았나. “제가 프로에 입문할 때만 해도 ‘여자는 바둑이 약하다.’라고 매도당했다. 여자는 수리 논리에서 약하다는 편견을 극복하는 게 힘들었다. 바둑은 중반 이후 미세한 승부로 접어들면 고도의 수리적 능력이 필요하다. 여성에 대한 편견, 남성의 지적 우월주의가 10대 시절 나에겐 강한 자극이 됐다. ‘철녀’ 루이나이웨이(芮乃偉) 사범이 1999년, 이창호·조훈현 9단을 연파하고 통합국수에 오른 것은 바둑사에 남을 일이지만 여성이 수리 논리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남성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여자 기사는 입단대회는 남자와는 별도로 갖지만, 정작 대회만큼은 남성과 똑같이 치른다. 여성 수련생을 위한 훈련 방법 잘못으로 여성 기사들의 성적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감정이 섬세하고, 남성보다는 멀티플레이에 능하다. 지도 방법에 문제가 있다. 즉, 교육단계에서 여성을 배려하지 않고, 남성적인 시각과 지도방법을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다. 예컨대, 사범이 지적할 때 ‘왜, 그렇게 두면 안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이유 설명 없이 질책한다. 그러면 심약한 여성 수련생들이 울면서 도장을 뛰쳐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지독한 사람만 꾸역꾸역 참아낸다. 상대 전적에서는 앞서지는 못했지만 저는 ‘레전드’인 이창호·이세돌·조치훈·유창혁 9단과 맞붙어 승리한 경험도 있다. 여성을 위한 교육도구 개발이 시급하다.” “여성, 수리 논리에 약하다는 편견 깨여성 위한 바둑 지도 방법 개발 시급여성 기사 ‘얼평’ 말투…굉장히 폭력적” - 여성 기사에 대한 외모 평가도 많다. “외모 평가에 맞서 싸우는 것도 어려웠다. ‘얼평’에서 자유로운 여성 기사들은 아마 없을 거다. 바둑팬 대다수가 남성이어서 그렇겠지만…. 바둑 내용을 보고 평가해야지, 얼굴 보고 몸매 보고 싶으면 연예인을 보지, 왜 바둑을 봅니까. 1990년대 바둑에 몰두했던 여성 기사들이 ‘기사’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기사에 대한 남성의 시각이나 말투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조혜연 9단은 한국 여성바둑계를 군림했던 루이나이웨이 9단을 두 번 제압했다. 2003년 여류 국수전과 2004 여류 명인전 결승에서 루이 9단을 내리 꺾으며 전성시대를 열었다. 또 바둑이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주장인 그가 일요일 경기를 할 수 없다며 기권해버려 충격을 줬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요일 대국 포기는 오래된 불문율이었다. 대타로 나선 선수가 중국을 꺾으면서 조 9단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첫 여류 10단 전에서도 우승했다. 2016년 프로기사와 다면기를 해주는 앱 ‘더바둑’을 개발했다. 또 삼성전자 투자를 받아 ‘알파탭’이라는 바둑 전용 태블릿PC를 만들기도 했다. ㈜더바둑 대표인 조 9단은 회사와 관련, “창업 5년째인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재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1000대국을 달성했다. 그의 목표 1000승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루이 상대 첫타이틀 획득 가장 기억13번 패배로 고통스러운 순간 많아“ -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은. “기억에 남는 대국이 많다. 특히 고교생 때인 2003년 루이나이웨이 사범님을 꺾고 여류국수전 결승을 2대 0으로 승리한 그 기보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겐 첫 타이틀이었고, 상대가 루이 9단이었던 만큼 감회가 남다르다. 그러나 루이 사범님과 60판가량 공식전을 벌였는데, 승률이 30% 정도밖에 안 된다. 루이 사범님께 결승에서 두 번을 이겼지만, 13번을 패해 준우승 기록이 13번이나 된다. 루이 사범님과의 결승 무대를 떠올리면 기쁨보다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다.”- 바둑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둑은 빈 공간(바둑판)에서 출발, 사유만으로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게임이다.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지적 발견과 즐거움 추구를 돕는 도구로서 바둑을 더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 등장으로, 온라인 고수의 실력도 이젠 믿지 못한다. 진정한 고수는 오프라인으로 더욱 나오게 될 것 같다. 바둑이 세계화와 생활체육으로 변신에 성공한다면 인류의 지적 즐거움을 주는 도구로서 오래 사랑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바둑, 인류의 지적 발견·즐거움 추구 도구세계화·생활체육 변신하면 오래 사랑받을 것프로기사 면장, 특권 아냐…자격증이 될 것젊은 기사, 다른 분야 공부도 절실한 시기”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둑계의 지배적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수천 년을 지배해온 정석도 바뀌고 있다. 프로기사 면장이 특권일 수 없고, 바둑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으로 옮겨갈 것이다. 젊은 기사들은 바둑 이외에 학업이나 다른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적응력을 키우려면 하다못해 어학 공부라도 해둬야 한다. 바둑에서 졌다고 실패는 아니다. 사실 바둑의 전성기는 30대 이전이다. 나머지 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도 학업을 포기하는 기사들이 많은 데 안타깝다.“ 조 9단은 큰 대회를 앞두곤 식단조절을 했지만 이젠 평소에도 식단에 신경 쓸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바둑이 끝나면 녹초가 되는 경우도 많단다. “운동요?, 지하철 역 계단 오르기를 실천하는 것은 몇 년 됐다. 하루 1만보 걷기를 꾸준히 실천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조율 안된 대책만 쏟아져… ‘체육계 미투’ 산으로

    정부는 지난 25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참석한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 침해를 뿌리 뽑기 위한 범부처 대책을 내놓았다. 대책의 골자는 ▲폭력·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성폭력 사건 은폐·축소 시 최대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처벌 강화 ▲합숙훈련 점진적 폐지 ▲체육계 전수조사 통한 현황 파악과 스포츠 인권 교육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당장 내년 도쿄올림픽 성적에 차질이 빚어지더라도 엘리트 체육 편중과 합숙 문화, 메달 지상주의의 병폐, 폭력과 성폭력의 나쁜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각오가 절절했다. 하지만 불안한 그림자는 여전하다. 정치권, 국가인권위원회, 여러 정부 부처, 감사원 그리고 27일 검찰과 법무부까지 갖가지 층위의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것들을 조율하고 오랜 기간 끌고 갈 주체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아 보여서다. 대한체육회가 자율적으로 주도하는 게 가장 좋은데 이미 할 수도, 해서는 안 될 조직으로 판명됐다. 연간 예산 4000억원으로 체육회를 통제하는 문체부 역시 자신있게 답하고 나설 처지가 못 된다. 해서 주체는 흐릿한데 오만 곳이 다 나서는 야릇한 국면이 됐다. 우선 6만 5000여명의 학생 선수들을 전수조사한다는데 이를 뒷받침할 예산과 전문가 투입 방안이 설명되지 않는 문제점이 드러난다. 예, 아니오 식으로 묻고 끝나면 아니함만 못할 것이다. 내실 있는 전수조사를 하려면 수준 높은 조사를 담보하는 예산과 인력을 고민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또 사후 징계 강화와 예방 조처 및 제도적 정비가 균형되게 자리하지 않는 한계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폭력이나 성폭력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이들에게 사법경찰권에 준하는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것 역시 누락돼 있다. 지난 11일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 법률안에도 이 내용이 빠져 있다. 아울러 폭력이나 성폭력 의혹을 인지하고도 이를 신고하거나 조사하지 않은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국회에서 반영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체육계 현안에 범정부적으로 결연한 각오를 비친 것은 초유의 일”이라면서도 “그 각오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논의가 시작되는데 벌써 소년체전 폐지 청원이 올라오고, 엘리트 체육 다 망가뜨리자는 것이냐는 식으로 대립 구도를 만들려는 일부의 모습이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오전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알려왔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및 디지털성범죄 근절 추진협의회’(1월 11일), 유관부처 차관급 대책 협의(1월 14일), 관계장관 협의(1월 15일), 당정협의(1월 24일), 사회관계장관회의(1월 25일)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에 대한 정책을 협의하고 조율해 왔습니다.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향후 체육 분야 구조 혁신은 민간위원들과 관계부처 차관들이 참여하는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추진할 예정입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체육 분야 구조 혁신을 위한 세부과제를 도출하고, 과제에 대한 이행 현황을 2020년 1월까지 점검할 계획입니다. (성)폭력 등 체육 분야 비리 근절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설치해 운영합니다.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조사 권한이 있어 피해사실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문체부는 앞으로도 관계 부처를 비롯하여 다양한 관계자들과 협의해 (성)폭력 등 체육 분야의 비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맞으면서 따낸 금메달 이제는 필요 없습니다”

    “맞으면서 따낸 금메달 이제는 필요 없습니다”

    24일 충북 진천선수촌을 찾은 정성숙(47) 신임 부촌장의 눈에 촌내에 걸려 있던 현수막 하나가 들어왔다고 한다.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현수막이었다. 선수촌에서도 성적지상주의로 인한 폐해를 감지하고 이러한 표어를 내걸었지만 최근 알려진 스포츠계의 폭행·성폭력 문제는 예방하지 못했다. 신임 부촌장이자 선배 체육인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구였다. 정 부촌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스포츠 강국에서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며 “이제는 다들 ‘맞으면서 훈련해 따낸 금메달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도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교육을 하고 있다. 도덕성이 중요하다”며 “일련의 (폭행·성폭력) 사태들이 지도자들로 인해 일어나고 있다. 지도자들이 먼저 바뀌면 선수들도 더불어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교수 출신 정 부촌장은 지난 21일 대한체육회로부터 여성 부촌장에 선임돼 25일부터 정식 업무를 시작한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 유도 63㎏급에서 연달아 동메달을 따냈으며 은퇴 이후에는 용인대에서 경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역대 선수촌장 중에 여성은 이에리사 전 선수촌장이 유일했고, 2017년 부촌장 직위가 새로 생긴 이후 여성 부촌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부촌장은 “이제 국가대표 선수들의 성비율이 반반에 가깝기 때문에 여성 부촌장이 나온 것 같다”며 “선수 출신의 여성 훈련관리관을 두고 여자 선수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혹시 필요한 것이 없는지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체육계 폭행, 지도자들 먼저 바뀌어야” 유도 선수 출신인 신유용(24)씨가 코치로부터 수년간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것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고등학생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은 더이상 말할 게 없는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쇼트트랙의 심석희 등에 대한) 구타가 선수촌 라커룸 같은 곳에서도 이뤄졌다고 하는데 주변 지도자들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부분이 아쉽다”며 “빠른 시일 내에 여자 선수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겠다. 부촌장이라면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생기지 않도록 친밀하게 다가가겠다”고 덧붙였다. 어떤 선수촌을 만들고 싶냐는 물음에 정 부촌장은 선수 출신의 경험이 묻어나는 대답을 들려줬다. “선수촌은 선수들에게 제2의 집입니다. 가장 지긋지긋하면서도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 선수촌입니다. 훈련에 집중하다가도 집처럼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당정 “체육계 성폭력 근절 위해 엘리트주의 타파”

    당정 “체육계 성폭력 근절 위해 엘리트주의 타파”

    여당과 정부가 체육계 성폭력 및 폭력의 원인이 엘리트 선수 위주 육성방식에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민주당과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는 24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 방안을 논의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체육계의 성폭력과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것은 물론 엘리트 위주의 선수 육성 교육방식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구성될 조사단과 긴밀히 협조해 학생 선수에 대한 폭력, 성폭력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관계 부처와 함께 학교 운동부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도 “체육계 성폭력의 근본 원인은 수십 년간 지속된 엘리트주의에 있었다”며 “여론이 잠잠해진다고 흐지부지돼서는 안 되며 당정청이 함께 손을 맞잡고 체육계 엘리트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도 장관은 “별도 법인으로 스포츠윤리센터를 설립하는 한편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겠다”며 “선수가 안심하고 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제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그동안 성적주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개선은 꾸준히 논의됐지만, 체육계에서 합의가 되지 않아 과제로 남았다”며 “각자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스템 선진화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에만 집중하는 메달 지상주의도 근절해야 한다”면서 “민관학협의체 등 사회적 대화 기구를 구성해 체육계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사건이 터진 지 10일이 지났지만, 국회는 무기력하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 관련 상임위원장으로서 죄송하다”며 “체육계 미투 사건에 집중하는 청문회 개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우선 “주무 부처의 장으로서 진심으로 죄송하다”면서 “체육계 성폭력 근절 방안이 단기 대책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자정 능력 없는 체육계… 빙상연맹부터 해체하고 쇄신하라”

    “자정 능력 없는 체육계… 빙상연맹부터 해체하고 쇄신하라”

     “파문 이후 열흘이 지났는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등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점이 너무도 명백하다. 해서 빙상연맹을 해체하는 등 강력한 쇄신 의지를 안팎에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심석희(22·한국체대)의 용기있는 고백 이후 열흘 넘게 흘렀지만 정부나 대한체육회 대응에 여러 한계가 보인다며 18일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마주한 전문가 3인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임병선 선임기자가 사회를 본 좌담에서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성문정 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위원이 아프게 지적한 내용들을 간추린다. 사회체육계의 현재 상황 보면서 힘들고 곤혹스러울 것 같다. 어떻게 보는지.  성문정한번 휘몰아치는 폭풍인 것 같다. 그동안 보면 6개월 정도 떠들썩하다가 흐지부지되곤 했다. 그 과정에 정부가 이슈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독립적인 기구나 역할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자신들의 권한이 축소된다고 느낀다. 당사자인 체육회는 면피하고 적당히 몇 사람 문책하면 잊는 일이 되풀이됐다. 정부 대책을 보면 지극히 단편적이고 왜 우리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느냐는 본질을 보지 못한다.  최동호과거와 다른 조짐이 있긴 하다. 젊은빙상인연대란 선수 출신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어지고 있다. 언론에서도 자극적, 선정적으로 다루는 문제가 반복되지만 이참에 바꾸자고 목소리를 낸다.  함은주이번에 못 바꾸면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부문별로 연대의 노력이 커지는 등 각오도 커졌고 의지도 결연해졌다. 이번에는 바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성문정체육회나 정부의 개선안 보면 자정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체육계가 여전히 내부적으로 문제를 풀고자 한다. 피해자만 떠나는 구조가 됐다.  지난 11일 안민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윤리센터안 역시 제3의 기관일 뿐, 실질적 조사 권한이 없고 교육·홍보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최소한 사법경찰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가해자 강제소환권도 없다. 인지했는데도 조사를 안하면 법적으로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윤리센터만 던져놓았다고 볼 수 있다.  최동호 지난해 초부터 문체부에서 설문조사도 해 나도 사법 조사권을 부여하라고 촉구했는데 빠져 있다니 실망스럽다.  체육회 자정 능력 절대로 없다. 스포츠에는 적절하지 않은 말일 수 있지만 인적 청산이 필요하다. 스포츠 권력의 교체가 필요하다.  함은주윤리센터를 요구했던 것은 외부 사람이 들어와서 통제, 관리하고 지켜볼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기존에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길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인지, 한국 체육이 지향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 명확히 논의하고 만들자는 것이었지, 이렇게 서둘러 만들자는 취지가 아니었다.  미국의 세이프 스포츠가 우리가 지향하는 바와 비슷하다. 미국올림픽위원회(USOC)의 권한을 위임받아 상담과 법률 지원 연결 뿐만 아니라 신고 접수, 교육하는 기관이다.  최동호자꾸 기구만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지금 인권센터와 선수위원회에 제대로 된 사람 앉히면 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빙상연맹 해체시켜라. 선수 선발 등록 등은 체육회에서 할 수 있으니 이런 의지와 강력한 시그널 보내야 한다.  국위 선양 붙잡고 여태까지 먹고산 분들은 메달만 따면 정부도 용인했기 때문에 군림할 수 있었다. 엘리트 스포츠 붙잡고 평생을 살아온 분이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까 버릴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 보며 절망했다. 이런 인물들이 남아있는 한 체육계는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함은주메달을 포기하고라도 바꾸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동안 체육회가 메달만을 위해 매진했다는 것을 스스로 고해한 셈이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에게 어느 동료 교수가 얘기했다더라. ‘네 말대로 해 다음 올림픽에서 20~30위로 떨어지면 책임질 수 있겠느냐고?’ 정 교수는 ‘월드컵 본선 진출 못해도 의연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대꾸했다더라.  최동호70~80년을 이어온 주류 세력은 교묘하게 반격한다. 자신들 입지가 흔들리면 한국 스포츠의 위기라고 증폭시킨다. 평창동계올림픽이나 리우올림픽 때도 목표에 미달했다며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줄어서 위기라고 한다.  시민사회가 이런 논리를 깨야 한다. 앞의 그 교수가 얘기한 책임, 아무일도 아니고 망하는 것도 아니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도 그 논리에 젖어 선수들을 운동 기계로 보고, 국위 선양의 관점에 익숙해 있다. 참여하거나 즐기는 게 아니라 박수 보내고 환호하다 국제무대에서 조금 처지면 실망하고 질타하는 식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본선 못 가도 상관 없으니 애들 데려다 때리고 공부 안 시키는 것 고쳐도 좋아, 이렇게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함은주그 출발은 남의 일이 아닌, 스포츠를 내 일처럼 인식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최동호심석희와 스포츠 미투를 넘어 정말 판을 바꾸려면 다른 얘기를 해야 한다. 빙상연맹 해체다. 문제를 일으킨 게 한두 번도 아니다. 다시 출발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동계올림픽 등 아무런 문제 없다, 연맹 해체가 뭐 그리 큰일인가, 문제 없다, 다시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사회스포츠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얘기인 것 같다.  최동호국가주의 대 개인주의 프레임, 엘리트 대 생활체육 프레임 만들고 싶다. 국민들도 국가주의 프로파간다에 세뇌돼 있으니 화두나 논란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책임있는 분들이 빙상연맹 해체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성문정빙상연맹 해체해도 선수 피해 갈 일 없다. 지금 결단할 때가 오긴 했다. 체육단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정부가 무기력하고 의지 없다고 보인다. 국민들이 체육회에 맡기면 안된다는 것 뻔히 알면서도 월드컵과 올림픽 때만 되면 미치고 거기에 묻혀 그냥 놔둔다.  모든 특혜 누리며 밥만 먹으며 그거 하라고 하고, 그것밖에 못하나 질책하는 시스템이 과연 선진형이냐? 예전 사회주의 국가도 이러지 않았다.  국가대표 훈련일이 260일인데 그걸 어떻게 채우겠느냐. 진천선수촌은 세계 최고급으로 갖췄는데 리우와 평창 성적은 뒤로 갔다. 예전에는 대표팀에서 배운 것들을 소속팀에 돌아가 전수하곤 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래서 저변이 다 무너진다. 정부가 앞장서 그렇게 하고 있다.  체육회 권력을 민주적 지향점을 지닌 인사들, 가치를 길게 보는 사람으로 채워야 하는데 정부가 그렇지 못하게 만든다. 예산 분배도 종목 단체에 직접 권한을 줬다가 조윤선 전 장관 때 원위치했다. 종목단체가 스스로 살림할 수 있는 능력 갖춰야 하는데 체육회가 다 해주고 보호막 쳐준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번에 문제 터졌을 때 기자 질의에 답하는 형식을 통해 빙상연맹 해체하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또 훈련 일수 조정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반발 터져나오고 논의를 통해 수렴하고 혁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도권을 이미 정부가 빼앗겼다고 본다.  최동호전적으로 동의한다. 체육계 자정과 미래 설계 능력 없다. 정부가 자꾸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정부가 앞장서 올림픽과 월드컵 성적 걱정한다. 언론도 이를 부채질한다.  성문정체육계 안팎이 모두 무르다. 관료들은 유독 체육계와 체육회에 밀린다. 체육회 출입 기자들도 혜택을 누리니 강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두가 방관할 뿐이다.  함은주늘 인식하며 고민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체육계 혁신의 어려운 점은 내부인이 나서지 않으면 사회 다른 부문으로부터 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선수들이나 학부모들이 나서야 하는데 그걸 어렵게 만드는 여건이 분명히 있다. 심석희의 폭로 이전에 테니스 김은희씨가 있었고, 신유용씨가 지난해부터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야 힘을 받게 됐다. 이런 점들이 고민스럽다.  함은주내부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외부에서 압박해줄 필요 있다. 지금 진행되는 사건들이 합리적으로 해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체조협회 임원 사건 때 피해자와 가해자 진술만으로 다퉜다. 내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다. 그러면 또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다.  성문정맞는 말씀이다. 인지 신고 의무화를 도입할 필요 있다. 1차 가해자에 준하는 처벌할 필요가 있다. 외국엔 코치 윤리 강령이 있는데 대한체육회 규정을 살펴보니 국가대표 관리 지침에 남자가 여자숙소 들어가지 말라는 것, 딱 하나 있더라. 외국은 밀실에서의 일대일 만남, 훈련 외에 사적 면담 못하게 못박아 서명하도록 한다.  지도자 윤리강령 만들어놓고 계약 때 준수사항 서명하게 하고 처벌하게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안 지켰을 때 해촉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회이런저런 제도는 많이 갖춰져 있지만 엉성하다는 얘기인가.  성문정그렇다. 대한체육회를 정부가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정부는 정보도 많고 상황 판단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한다. 그래서 방조한다고 얘기한다. 얼마 전 문체부 간부가 체육회가 국가올림픽위원회(NOC) 기능도 함께 갖고 있어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변명했는데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체육회가 그런 얘기를 꺼내면 문체부가 한국올림픽위원회(KOC)와 분리하자고 치고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정부가 개입하면 안되고, 재정 지원 4000억원 받는 건 땡큐고, 그때마다 다른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정부가 얼버무린다.  사회체육회가 두 개의 모자를 편한 대로 고쳐 쓰는데 정부가 그걸 비호하니 더 나쁘다는 얘기인 것 같다.  성문정맞다. 과거에는 올림픽 메달만 따면 잘했다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나쁜 집단, 시스템 문제 있다고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노력했다고 하겠지만 본질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사건 터지니 개입 못하겠다고, 방관자를 자처하고 있다.  함은주우리가 성명서 발표한 것 있다. 궤변이라고. 평창 분산 개최 얘기할 때 IOC에 서한 보냈고, 평창에서 만났고, IOC 본부 가서 직접 담당관 만났다. 이 상황은 결코 정치적이지 않다. 체육회가 잘못해 자초한 일인데 그런 이유를 들이댄다면 가당찮은 일이다.  최동호문체부 간부의 진의는 따로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성문정그렇다. 쿠웨이트가 과거 문제 된 것은 NOC 위원장과 위원들을 정부가 선임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진의는 어떨지 몰라도, 별도로 가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얘기했어야 했다. 그 점이 아쉽다는 얘기다.  최동호동의한다. 불경스러운 일, 감히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책임있는 공직자라면 격랑 속에서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사회이제 정리를 해보자. 정부는 의지 없고, 대한체육회는 기득권만 지키려 하고, 시민단체 뒷심 없고, 언론은 방관자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누가 수습하는가.  최동호이기흥 회장 개인의 퇴장이 아니라 기득권의 퇴장이다. 아마 그가 물러난다면 엘리트 스포츠의 폐해를 국민들도 철저히 반성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빙상연맹 해체해도 문제 없다, 큰일 아니다는 것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4년 뒤 이런 비슷한 일이 터졌을 때 조금 더 나아간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문정문체부가 국정 철학 기조만 따르면 된다. 정부의 법인 등록 권한만 활용해도 된다. 법인이 목적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해산시킬 수 있다. 체육회 관리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 누가 너무하다고 얘기하겠느냐.  함은주규정 잘 갖춰졌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운영자의 의지 만으로도 제재 가능하다. 성(젠더) 감수성 있는 이들이 권한을 행사했으면 그런 가해자들 발 못 붙였을 것이다. 여론의 압박이 있고, 그 영향을 받아 운영하는 사람이 의지를 보이니까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  사회체육회 내부적으로는 어떤가요.  최동호저희는 이기흥 대책회의라고 이름 붙였는데 인권의식은 없는데 정치적 감각은 탁월하다. 여성인권진흥원에 전화해 도와달라고 하고, 체육회장을 지낸 원로에게 매달리고, 최근에 시도협회 지도자들 시켜서 결의대회 열게 하는데 그게 또 언론에 먹히니 문제다.  함은주선수촌 여성 부촌장 내정 소문도 젠더 감수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증명된다. 신유용씨가 처음 폭로했던 지난해 아무것도 안한 분이, 그런 문제가 제기된 걸 모를 리 없는 분이 부촌장으로 임명된다니 얼마나 웃긴가. 그걸 보고 어떤 선수가 인권이 보호받겠구나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사회오늘 말씀들이 체육계가 바로 서는 계기가 되는 데 힘이 됐으면 합니다.  정리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메달 못따도 ‘졌잘싸’…한국 사회 바꾸는 힘

    메달 못따도 ‘졌잘싸’…한국 사회 바꾸는 힘

    정부, 즐기는 스포츠로 패러다임 전환 ‘국제대회 성적=국력’ 틀 벗어나야 “욕 먹을 각오로 개혁… 지금이 적기”‘한국 사회는 금메달을 포기할 준비가 됐습니까.’ 여자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22·한국체대) 선수의 용기 있는 고백 이후 번지고 있는 ‘체육계 미투’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체육계의 적폐인 폭력적 지도법은 성적지상주의가 드리운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기는 스포츠’에서 ‘즐기는 스포츠’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는데, 이에 따른 국제대회 성적 하락은 불가피하다. 21일 체육·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유소년 체육 정책 방향을 ‘공부하는 학생 선수’ 육성으로 정하고 세부 정책을 다듬고 있다. 초·중·고교 운동부 학생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포기한 채 운동에만 올인하는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취지다. ▲대회·훈련 참가를 이유로 한 공결처리 일수를 전체 수업일의 3분의 1로 제한 ▲최저학력기준 미달 학생은 경기 출전 제한 ▲2020학년도 대입 때부터 체육특기자전형에 학생부 내신·출석 의무 반영 등이 도입됐거나 추진 중이다. 교육당국은 중장기적으로 선수 육성 체계를 일본이나 미국, 독일과 유사하게 전환하려고 한다.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을 버리고 학교 내 ‘부카쓰’(部活)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도록 했다. 부카쓰는 우리의 방과후 동아리 활동과 비슷하다. 학생들은 합숙 위주의 스파르타식 훈련 대신 일주일에 2번 정도 방과후 집중 훈련을 통해 기술을 익힌다. 일본 체육계에 밝은 윤현수 청담중 교사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3위를 기록하던 일본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23위에 그쳤다”며 “일본에서는 메달중심적 사고가 덜해 부카쓰 활동이 축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선수 육성 시스템도 일본과 비슷하며, 독일은 3600여개 스포츠클럽에서 아이들이 운동을 즐긴다. 문제는 국제대회 성적이다. 한태룡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실장은 “선수 육성 모델이 바뀌면 향후 6년 내 올림픽 등에서 메달 수가 절반으로 줄 수 있는데 국민이 이에 동의하고, 정책 입안자들이 비판을 감수할 자신이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투’ 바람 앞에 웅크린 체육계의 속내도 복잡하다. “학령인구 급감 탓에 가뜩이나 선수 수급이 어려운데 집중지도 방식까지 포기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여전하다. 또 당장 전국체전 등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아이의 대학 진학을 바라는 학부모의 반발도 예상된다. 교육당국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응원 정서가 우리 사회에 이미 형성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민 30% 이상이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주는 병역특례 혜택을 없애야 한다고 응답하는 등 ‘국제대회 성적=국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면서 “3년 전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1970년대 이후 계속된 성적만능주의를 깨려면 정부가 국면을 과감하게 돌파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국제대회 성적 하락에 대한 비난을 각오하고 개혁해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대택 국민대 교수는 “선수 활동을 도구 삼아 유명대 진학을 노리는 ‘스포츠 캐슬’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일부 학부모와 지도자의 반발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사설] ‘엘리트 체육’ 포기할 각오로 체육계 미투 해결해야

    성폭력·성희롱 근절을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등 3개 부처가 합동으로 성폭력 등 체육계 인권침해 근절 대책을 다음달 중 내놓겠다고 어제 밝혔다. 부처별 추진 방향은 성폭력 사건 은폐· 축소 시 최대 징역형까지 처벌을 강화한 법령 개정, 익명 상담창구 설치 등 피해자 보호 체계 개선, 전수조사와 예방교육 등이 망라돼 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체육계 성폭력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앞선다. 엄벌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지켜지지 않았던 과거의 학습효과 탓이다. 2007년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감독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이듬해 문화체육관광부·교육인적자원부·대한체육회는 성폭력 지도자 영구 제명, 선수접촉·면담 가이드라인 수립, 성폭력신고센터 설치 등의 대책을 내놨다. 놀랍게도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최근 잇따라 내놓은 대책과 판박이다. 사건이 불거지면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지만, 여론이 사드라들면 다시 관행대로 강압적인 훈련과 합숙, 도제식 지도 체제를 고수하는 체육계와 이런 현실에 눈감은 문체부의 안이한 대응에 기가 막힐 뿐이다. 전문가들은 성적 지상주의에 기반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상명하복과 체벌 등 체육계의 그릇된 문화와 관행을 유지시킨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범죄를 저질러도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등을 따면 형이 감경되거나 복직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용기를 내 고발했던 피해자들이 얼마나 좌절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어떤 메달도 인권보다 가치가 높을 수 없으며, 국위선양이 선수 개인의 행복보다 앞설 수 없다. 이 기본적인 인권 의식을 모든 체육계 관계자와 문체부 공무원이 체화하고 생가죽을 벗기는 듯한 고통을 감내하며 개혁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체육계 성폭력은 재발할 것이다. 체육계가 인권 사각지대라는 해묵은 오명을 벗어날 길은 이제 말 그대로 환골탈태밖에 없다. 빙상과 유도, 태권도로 ‘체육계 미투’가 확산하는데도 책임지겠다는 체육계 인사 하나 없는 것도 문제다.
  • [일그러진 성적 지상주의-체육 시스템 바꾸자] “운동 계속 못 할까봐”… 체벌당한 선수 1.6%만 신고

    [일그러진 성적 지상주의-체육 시스템 바꾸자] “운동 계속 못 할까봐”… 체벌당한 선수 1.6%만 신고

    신고센터 익명성 보장 안 되고 추문 퍼져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후 체육계로 복귀 외부기관서 조사… 피해자 적극 구제해야“피해 당사자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외부에선 알기 어렵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최근 체육계 폭력·성범죄 등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내용이다. 당시 노 차관은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가 조재범(38) 전 코치로부터 수년간 성폭력을 당해왔다는 주장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심석희는 만 17세 고등학생 시절인 2014년부터 4년간 지속적으로 조 전 코치의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체육계의 폐쇄적 구조 때문에 운동선수들의 피해 내용은 스스로 이를 외부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달랐던 것이다. 지난 8일 대한체육회가 내놓은 ‘2018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반 선수(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들은 최근 1년간 체벌을 당했을 때 그 대응으로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37.2%), ‘참거나 모르는 척 했다’(38.0%)고 대답했다. 75.2%가 부당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대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지도자나 관련 단체에 신고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50%)와 ‘참거나 모른 척 했다’(30%)는 반응이 전체의 80%에 달했다. ‘지도자나 관련 단체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한 건도 없었다. 신고 창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체부(스포츠비리신고센터), 대한체육회(스포츠인권센터), 국민체육진흥공단(클린스포츠 통합콜센터) 등 3곳에서 폭행이나 성폭력, 스포츠 비리 등에 대해 접수받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이곳을 먼저 떠올리지 않고 있다. 선수들이 신고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 대부분 직접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각 종목 단체에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고 있다. 각 센터의 인력만으로는 폭력·성범죄 내용을 조사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와 지도자, 단체 임원끼리 서로 사제 관계로 촘촘히 얽혀 있는 상황에서 센터에 신고하게 되면 곧바로 소문이 무성하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 신고 내용은 추문에만 그치지 않고 선수에게 보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상급학교로의 진학이나 대회 출전에 있어 지도자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신고 이후 선수가 팀을 떠나더라도 인맥으로 얽힌 체육계에서는 가해자가 끈질기게 마수를 뻗칠 수 있다. 폭행·성폭력을 당한 선수들이 즉시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선수 생활을 계속 하지 못할까 두려웠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돼 있지 않는 것 또한 선수들이 고통을 받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주변의 무관심도 신고를 꺼리는 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최근 밝힌 유도 선수 출신 신유용(24)씨는 “최초로 피해를 입고 나서 1년 뒤쯤 여성 코치에게 사실을 알리며 증언을 부탁했지만 ‘가해자와 그 부인과도 아는 사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신씨의 사례와 같이 용기를 내 주변에 알렸음에도 ‘얽히기 싫다’, ‘네가 참아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에 상처를 입게 될 때가 있다. 한 체육계 인사는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을 팀 분위기를 흐리는 행위로 치부해 고통을 당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우려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을 때 신고를 한다 하더라도 무혐의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가벼운 처벌 이후 다시 체육계로 복귀할 수도 있다. 실제로 2017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대한체조협회 고위간부 A씨는 시간이 흐른 뒤 지역 체조협회장을 맡아 논란이 일었다. 조 전 코치도 폭행 사건 이후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려 했다. 결국 피해 사실을 체육계 내부에서 조사하는 것이 아닌 ‘제3의 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회에 발의된 ‘운동선수 보호법’에서는 스포츠윤리센터를 세워 성폭행 피해 선수들을 돕도록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도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성폭행·폭력 사건에 대한 처리는 시민단체 등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곽정현 한국여성스포츠회 상임이사는 “피해자가 신고를 할 때 익명 보장이 확실히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해당 분야 외부 전문가들과 바로 연결되어야 한다”며 “선수·지도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차광석 한국체육학회장은 “지도자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선수들 스스로도 본인의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스스로 지키려고 적극 주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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