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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준수씨 구인 파문과 여야 움직임

    ◎“구인 난기류”… 정국 장기냉각 우려/관련자 문책인사 등 조기치유 전력/행정조직 지원없는 대선준비 추진/민자/민주선 「대여압박카드화」… 표몰이 가속화 예상 검찰의 한준수 전연기군수 강제구인을 계기로 이번 「관권선거주장」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상규명작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야권이 대여공세의 수위를 한단개 높임으로써 정국이 급속 냉각되고 있다. 민자당은 이번 사태가 정기국회 개원등 정국정상화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관련자 인책,선거제도 개선등 다각적인 조기 치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등 야권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대여압박카드로 장기활용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민자당◁ 민자당은 한씨의 구인을 계기로 검찰의 수사를 서둘러 매듭짓고 빠른 시일내에 연루자에 대한 인책과 후속인사를 단행한다는 입장이다.이같은 정면대응 방침은 가급적 이번 사태를 조기수습하기 위한 포석임은 물론이다. 민자당으로서는 성역없는 엄정한 수사로 관권부정 연루자를 가려내 형사적·정치적 책임을 지우고 아울러 제도개선등 수습카드를 제시하는 정공법적 대응만이 파문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태는 대선을 3개월 가량 앞둔 김영삼총재와 민자당에게 상당한 부담인 것도 사실이다.특히 김총재로서는 이동통신문제 해결과정에서 보여준 결단과 개혁의지로 대권후보로서의 이미지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점에서 돌출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총재측은 따라서 이번 사건을 김총재의 개혁의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위해 장단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자당은 우선 단기적으로는 검찰수사결과 연루자가 드러나면 「지위고하를 막론한 인책」을 당국에 거듭 촉구하는 한편 적절한 시점을 선택해 김총재의 기자형식을 통해 공무원 중립보장을 위한 제도개선방안을 천명한다는 계획이다. 이에따라 민자당은 연기군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한전군수는 물론,혐의가 드러날 경우 이종국충남지사와 임재길 민자당연기지구당위원장의 인책은 불가피하다고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는 시점에서 김총재가 직접 「공무원 중립보장」을 선언해 공무원의 선거개입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의지를 밝히는 것도 검토중이다.민자당은 ▲공정한 대선을 치르기 위한 선거법의 획기적 개선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개선등 제도개선으로 김총재의 의지를 뒷받침,예상되는 야당측의 단체장선거 연내실시등 대여공세를 무력화한다는 전략이다. 민자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이같은 단기적 처방과는 별도로 장기적으로는 연말 대선을 당조직및 김후보 개인 이미지에 의존해 치러야한다는 과제를 안게됐다.즉 행정조직의 암묵적 지원이라는 「여권프리미엄」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된데다 근거없는 대여폭로와 실현가능성없는 정책으로 국민 각계각층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야당프리미엄」이 판을 치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당세보강과 후보개인에 대한 홍보전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김총재측이 최근 금전적 청렴성 측면에서 김대중·정주영 두 야권후보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부쩍 강조하는 한편 그동안 일체 맞대응을 자제해온 정국민대표의 「시비」에 대한 반격강도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이다. ▷민주당◁ 한전군수가 강제구인되고 경찰력이 마포중앙당사에 진입한데 대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규정짓고 강경대응할 태세이다. 김대중대표가 러시아를 방문중이어서 아직 구체적인 대응방안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한씨 구인이전부터 촉구해온 총선당시 내무부장관과 이종국 충남지사및 당사 진입의 책임을 물어 내무부장관·경찰책임자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서는등 대여 정치공세수위를 한단계 높이고 있다. 또 김원기최고위원을 단장으로 정원식국무총리에게 항의단을 보내고 귀성객을 대상으로 긴급 당보호외 50만부를 배포하는가 하면 장외집회도 계획하는등 대국민 홍보에 부심하고 있다.그러나 추석연휴로 이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희석될수 있다는 점이 민주당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정치공세·홍보이외에 민주당의 향후 대응방안은 3당대표회담과 정기국회운영등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느 것 하나 선뜻 결론을 내릴수 없는 입장이다. 한씨 구인 집행직후 열린 긴급 심야 당무위원및 의원 합동회의에서 『즉각 3당대표회담을 거부하자』(김령배최고위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재고 가능성」이라는 유연한 표현으로 결론이 났고 김대표는 이기택대표와의 국제전화를 통해 『3당대표회담문제는 결정내리지 말고 남겨달라』고 당부해 분리처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체장선거·정기국회운영방안을 협의하고 정치관계법 심의특위의 협상 결과를 논의할 대표회담을 공권력의 당사진입등으로 거부하기에는 득실계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당◁ 한준수 전군수강제구인과 관련,정주영대표가 위로전화를 하고 김효영사무총장이 민주당사를 방문하는 등 「공분」을 표시했으나 기본적으로는 별 관심이 없다는 눈치이다. 김정남총무등 당직자들은 9일 이번 사태와 관련,▲관련자 사법소추 ▲노태우대통령 및 김영삼총재에 대한 정치적 책임추궁 ▲대선법개정 등 재발방지책 강구를촉구하면서 민주당과의 공조를 다짐했지만 정작 이날 아침 당직자회의에선 한전군수 연행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뿐만 아니라 이날 정대표가 이기택민주당대표와의 전화통화에서 야권공조투쟁을 제의한것처럼 민주당측이 발표한데 대해서도 국민당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하는 등 「소리는 크되 행동은 없는」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 한씨를 정략에 이용말라(사설)

    충남 연기군내 「관권선거」를 폭로한 한준수 전연기군수가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며 민주당 당사에 은신하고 있는 태도는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는다.한씨가 이른바 양심선언을 통해 선거비리를 용감하게 폭로했다면 검찰수사에도 떳떳하게 응해 법앞에 진실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검찰의 한씨 구인을 방해하고 있는 민주당측 처사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책임있는 공당인 민주당이 구인장을 발부받아 한씨를 연행하려는 검찰수사관들의 당사진입을 막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법을 무시하는 처사다.구인장 집행에 대한 방해행위가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된다는 것쯤은 민주당이 모를리 없을 것이다.그동안 민주당은 한씨의 폭로내용에 대해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해 왔다.그러나 한씨 구인문제와 관련해선 민주당사와 한씨가 치외법권이나 가진양 대응하고 있다.한씨와 민주당사는 정당한 법집행의 성역이 될 수 없다.법질서를 우롱하는 민주당측 처사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한씨의 소위 양심선언과 관련한 민주당의 태도가 상식을 벗어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민주당은 한씨를 이용한 폭로전술이 선거풍토 개선과 공명선거를 위한 것인지,아니면 12월 대선의 득표전략으로 이용하자는 것인지 그 의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만일 전자에 목적이 있다면 한씨를 즉각 검찰에 출두시켜야 한다.구인장이 발부되자 한씨의 은신처를 의원회관에서 당사로 옮겨 황급히 제2폭로회견을 갖도록 한 민주당의 처사는 비정상적이고 정략적임을 지적해 둔다. 한씨는 3·24총선 관권개입의 고발자이지만 자신이 바로 이를 지휘했던 「선거사범」이기도 하다.양심선언이라는 미명아래 이런 범법사안까지 덮어둘 수는 없다. 지금까지 검찰수사결과 밝혀진 부분들은 대부분 한씨의 개인적 혐의내용일 뿐 정작 규명되어야 할 고위 공무원의 개입여부 등은 충남도가 한씨에게 친전으로 보냈다는 선거지침서를 제외하곤 전혀 조사되지 않은 상태다.검찰은 그동안 한씨에게 모두 4차례에 걸쳐 소환장을 발부했지만 한씨는 응하지 않았다.한씨가 폭로한 관권부정선거사건의 공소시효는 앞으로 2주일밖에 남지 않았다.조속한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한씨에 대한 구인장발부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도지사 이상 고위층에 대한 해임등 징계가 선행되지 않는한 연행에 응할 수없다는 한씨의 주장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한씨가 검찰에 출두하지 않는한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한씨가 출두조서를 꾸며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수 있으며 한씨가 주장하는 고위공무원 인책도 가능한 것이다.한씨의 검찰출두야말로 이번 사태해결의 출발점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관권개입의 척결을 강조해왔고 이에따라 검찰도 성역없는 수사를 벌이고 있다.민자당의 김영삼총재는 8일에도 『연기부정선거는 심히 유감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토로하며 철저한 수사와 지위고하를 막론한 관련자의 엄중 문책을 거듭 다짐했다.그는 또 『이번 대선은 역사상 가장 공명한 선거가 되도록 하겠다』고 역설했다.우리는 정부 여당의 공명선거 의지가 확고하다고 본다. 이제 민주당이 할 일은 한씨를 이용한 선동정치가 아니라 하루빨리 정국을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 “공직자 선거개입 가중처벌”

    ◎민자/대선법에 조항신설… “부정” 원천봉쇄/오늘 총장회담,국회대책 논의/여/정자법 등 절충안 마련,원구성 유도/야/폭로전 계속… 연내 장선거 명분강화 여야는 한준수 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주장」사건으로 심각한 대치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14일 예정된 3당대표회담 및 올 정기국회 개회를 앞두고 후속 정국대처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민자당은 이번 「양심선언」사건 파문이 정기국회까지 이어질 경우 정국운용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정부 당국에 성역없는 수사와 관련자의 엄중처벌 등을 거듭 촉구하는 한편,공직자의 선거개입시 이를 가중처벌하는 조항을 대통령선거법에 신설을 검토하는 등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을 강구하고 있다. 민주·국민 등 야당측은 이에 비해 5일 대전 집회의 여세를 몰아 14일 3당대표회담 전까지 한씨의 검찰출두를 거부하면서 추가 「폭로전」을 전개,단체장선거 연내실시 주장의 명분을 강화시킨다는 입장이다. 민자당은 그러나 가급적 이번 사건을 추석전까지 조기수습한다는 방침아래 7일 열리는 3당총장회담에서 책임자처벌 이전에 완전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한씨가 즉각 검찰에 출두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키로 했다. 민자당은 또 14일 3당대표회동을 앞두고 대통령선거법과 정치자금법에 관한 새 절충안을 마련,이를 토대로 야당측의 조건없는 원구성을 유도한다는 기본입장아래 7일의 총장회담 등 각급 대화창구를 통해 야당측을 설득해 나가기로 했다. 민자당은 특히 대통령선거법 개정과 관련,▲도지사 등 행정조직의 선거개입 ▲통반장 등 말단 행정조직의 유권자 성향파악 또는 득표활동 투입 ▲공직자의 직위를 이용한 사전선거운동 ▲정부예산의 선거선심용사업 전용 등을 원천봉쇄하는 방안을 야당측에 제시한다는 계획아래 당정협의를 통해 구체안을 준비하고 있다. 민자당 김영삼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6일 이와관련,『과거같이 행정선거는 부작용만 초래할 뿐 더이상 관권선거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전제,『이번 폭로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범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관련자를 엄중문책하고 아울러 대선법개정시 획기적 제도개선책이 마련된다면 야당측의 단체장 연내실시 주장은 무력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 야 「장외공세」 성역없는 수사로 차단/민주의 대전집회와 민자 대응

    ◎관권개입 방지 근본대책 강구/여/“구시대적 선동은 대치정국 부채질” 여론도/“장선거 끌어내기” 초강경 포문/야 민주당은 5일하오 대전역 광장에서 「관권부정선거 규탄및 한준수 전연기군수 양심선언대회」라는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고 대여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어 파문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이번 「관권선거주장사건」을 연말 대선에서의 관권행정선거재발방지책 마련이라는 근본적 치유보다는 연내 단체장선거실시의 연결고리로 삼아 유리한 고지선점을 기대하는 눈치다. 민자당은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검찰의 엄정수사와 책임자처벌을 거듭 촉구,사태의 조기수습에 진력하면서도 이를 빌미로 야당측이 장외선동정치로 나서는데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는 이른바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다. 때문에 검찰수사발표와 뒤이은 여야 각당의 대응,특히 야권의 거리정치 지속여부에 따라 정치권이 또다시 「관권선거시비 태풍」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자당◁ 이종국충남도지사 인책과 임재길 연기지구당위원장 교체를사태수습안으로 사실상 굳힌 민자당지도부는 김영삼총재의 확고한 의지대로 이날도 철저하고 엄정한 검찰수사및 책임자 문책,그리고 재발방지책마련을 거듭 촉구해 한점 의혹도 없는 사건처리를 천명하고 있다. 더욱이 김총재가 화려한 민주화투쟁경력과 폭넓은 지지기반으로 이번 대선에서도 타당후보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민자당은 차제에 관권행정선거시비의 소지를 없애는 획기적 방안마련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을 정도.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야당측이 장외선동정치로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한다는게 민자당의 지배적인 분위기이다. 민주당이 관권선거규탄대회를 개최한 이날 즉각적으로 박희태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한 전군수를 볼모로 대규모 군중집회를 가짐으로써 연말 대선에서 자당에 유리하도록 국민을 현혹시키는 선동정치,거리정치를 획책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민자당의 기류를 잘 나타낸다. 민자당고위당직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민주당이 뉴DJ상을 정립한다면서 구DJ로 돌아가는 것 같다』(김영구사무총장),『대선만 가까워오면 단골메뉴로 써먹는 이같은 낡은 수법의 강경 장외투쟁이 뉴DJ의 실상인지 묻고싶다』(박대변인)며 민주당측의 이같은 구시대적인 행태를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다. 특히 3당대표회담까지 확정된 마당에 민주당이 이처럼 거리선동정치로 또다시 나온 것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대한 정면 위배이며 이 사건이 몰고올 지도 모를 여야대치정국의 「원초적 잘못」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테면 민주당이 장외정치를 그만두고 국회 정상화에 협조하는 것이 이번 사태해결의 수순이라는 것이다. 민자당이 이번 사건의 검찰수사가 마무리된뒤 국회차원의 3당공동조사를 제의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민주당◁ 5일 하오 대전역 광장에서 「연기군수등 관권부정선거 규탄및 한준수 전군수 양심선언 국민대회」를 가진 것은 지난 3월 총선 선거운동이후 5개월여만에 처음으로 갖는 옥외집회라는 점에서 초강 대여공세라고 할수 있다. 총선이후 이지문중위의 군부재자투표부정 폭로,6월의 단체장선거 법정시한 마감,제2이동통신등대여공세의 호재가 있을때도 옥외집회만은 자제해왔다. 이는 옥외집회가 뉴DJ이미지 전략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섣불리 옥외집회를 가질 경우 김대중대표의 과거 민주화투쟁을 하던 과격이미지가 되살아나 그동안 쌓아온 「온건한」DJ모습이 희석될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옥외집회를 가진 것은 한전군수의 관권선거 폭로가 단체장선거 관철을 위한 대여공세의 최대 호재일 뿐더러 「대선을 앞두고 한번쯤 옥외집회를 가져도 크게 손해볼 것은 없다」는 시험용의 성격을 띠고 있다. 김대중대표가 당초 집회 참석여부를 놓고 고민하다 참석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민주당은 이와함께 이번 집회를 계기로 정기국회와 대선전에서의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도 갖고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다시말해 한전군수의 폭로내용을 전국적인 선거부정으로 규정짓고 이를 대전집회를 통해 대국민 홍보를 함으로써 정치관계법 심의 특위로 희석된 단체장선거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킨다는 전략이다. 김대중대표가 이날 연설에서 『한전군수의 양심선언으로 전면적인 부정선거의 진실이 의문의 여지없이 밝혀졌다』고 몰아세운뒤 『이런 일의 재발방지를 위해 단체장선거실시와 공명선거를 위한 법개정을 해야한다』고 초강경의 포문을 연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이 도지사및 한전군수를 구속시키는 선에서 조기 진화할 것으로 보고 이 문제를 계속 물고늘어져 장기화시킬 태세이다. 또 대전집회를 전기로 중부권 대선표밭갈이 거점을 확보,지역당 이미지도 불식시킨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대회가 끝난뒤 김대표는 『오늘 집회는 군사통치·관권에 의한 부정선거의 시대가 끝났다는 신호탄』이라고 만족해하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해 본격적인 대여공세를 예고했다.
  • 어려움 겪는 시장경제 구축(소련쿠데타 1년:중)

    ◎극심한 인플레… 값 비싸 물건 못산다/생활비 1천% 상승… 빈곤층 늘어/생산성도 하락,기업민영화 차질 외견상 러시아경제는 지난 1년사이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 우선 구소련경제난의 대명사였던 줄서기가 사라졌다.슈퍼마켓·시장·백화점 진열대에는 빵·채소등 식품류와 각종 생필품이 가득 쌓여 누구든지 돈만 있으며 언제라도 살 수 있게 됐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시민들뿐아니라 러시아당국도 시장경제원리를 나름대로 이해해가고 있는듯한 모습이다.소위 「돈의 맛」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모스크바시당국은 공산주의시절 성역이던 붉은광장에까지 수입담배·운동화·위스키,심지어 도색잡지까지 파는 키오스크 설치를 허용했고 대도시 지하철역 입구·백화점주변등엔 돈되는 것은 무엇이든 들고나와 팔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외양을 한꺼풀만 들여다보면 사정은 지극히 비관적이다. 금년초 단행한 1단계 가격자유화조치는 공장창고에 쌓여있던 물건들을 시장으로 끌어냈지만 대신 천문학적인 가격상승을 가져와이제는 「물건은 있지만 돈이 없어 못사는」식이 돼버렸다. 7월말 현재 공식 인플레율은 월15∼17%로 발표되지만 시민들의 실생활비부담은 1월초에 비해 1천6백%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있다.반면 임금은 겨우 2배정도 올랐다.극심한 현금난 타개를 위해 매월 2천 6백억 루블의 돈을 찍어내고(「트루드」지 보도)있지만 금년상반기중 체불임금이 2천2백16억 루블에 이르는 것으로 집게됐다. 고르바초프시절 5백일 경제개혁계획 작성자였던 샤탈린교수는 금년 1∼5월 사이 러시아경제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GNP 17%감소 ▲공업생산 13%감소 ▲소비재생산 25%감소 ▲자본투자 44%감소 ▲수출 30%,수입 18% 감소한 것으로 집게했다.연말쯤 인플레가 2천4백∼2천9백%까지 뛸 것이란 예상도 있다(「경제와 생활」지 보도). 옐친정부는 당초 가격자유화를 통해 국가보조금을 철폐하고 국영기업 민영화,루블태환화 단계적 실시 등을 시장경제화로의 주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임금인상등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의회내 보수세력과 군산복합체등의 조직적인 저항으로 어느 하나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옐친대통령도 최근들어서는 일방적 개혁추진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는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향후 러시아의 경제개혁이 한단계 늦춰질 것이라는 풀이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옐친정부는 경제회복에 긴요한 2백40억 달러의 서방지원을 얻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와 한 합의를 이행해야할 입장이다.IMF는 러시아정부에 대해 금년말까지 에너지가격 완전자유화·인플레 9%이하로 억제·재정적자(현재정적자는 70억 달러)를 GNP의 5%선 이하로 억제할 것등을 차관제공의 선결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7월현재 러시아의 총외채는 7백43억 달러에 이르지만 우크라이나등 CIS국간 외채분담문제가 아직 분명히 마무리지어지지 않아 외채상환등에 있어 채권국들의 협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8월 현재 달러당 루블화의 교환비율이 1백61루블까지 하락,80대 1 수준에서 변동환율제로 정착하겠다는 목표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기업민영화도 주춤하고 있다.현재 러시아전역에서 일반에 매각된 중소기업체수는 모스크바의 6천개를 포함,1만여개.계획대로라면 93년말까지는 4천개의 대기업도 일반에 매각될 예정이다.하지만 이를 인수할 시중자금이 크게 부족해 민영화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산업생산량 하락에는 동구 및 구소련공화국들 상호간의 교역붕괴가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발트해 3국이 완전독립했고 CIS국들 다수가 독자화폐 도입을 추진하는등 소련시절의 루블화경제권이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경제체제로의 구조개선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5년안에 경제회생의 토대를 닦겠다는 러시아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시장경제 토대를 닦는데 길게는 10년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 기밀개념 구체화… 국민 알권리 신장/20년만에 손질한 군기법안

    ◎「과실누설」 삭제로 일반인 형량 완화/남북화해등 시대정신 전향적 반영 4일 국방부가 마련한 군기법개정안은 군사기밀의 실질적 보호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알권리 차원에서 국민의 군사사항에 대한 접근방법을 구체화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외국을 위한 누설죄등에는 가중처벌을 하되 일반인의 과실누설 조항등은 삭제하는등 형량의 적정성을 유지토록 하는데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국방부가 이같은 개정안을 서둘러 마련한 직접적 계기는 지난2월 헌법재판소의 「군기법 일부조항 한정합헌」결정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무엇보다 기밀누설·수집·탐지등의 조항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여론과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군기법은 지난72년 유신체제가 선포된 직후 제정돼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하고 군부의 성역화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비판받아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2월 당시 헌법재판소(주심 김량균재판관)는 『군사기밀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면 언론보도를 위한 취재는 물론 학문의 자유가 위축되며 국민의 정당한 비판이나 감독도 불가능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국민의 알권리 대상영역을 최대한 넓혀줄 수 있도록 최소한도에 한정돼야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의 그같은 당시결정은 남북화해와 북방정책등 현실분위기에 발맞춘 조치라고 재야는 물론 일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환영을 받았다. 이에따라 국방부는 3월 국방부 정보본부내에 「군기법 개정추진위원회」를 곧바로 구성,미·영·독·불·일본·중국등의 군기법 관련법률을 수집하는 한편 법무·국방부·안기부·기무사·합참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전문19개조 1개 부칙으로 돼있는 현행법을 전문26개조 3개 부칙으로 구체화시킨 개정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배경 아래 작성된 개정안은 군사기밀의 개념을 구체화,「누설시 국가안보에 해로운 결과 초래」라고 막연하고도 광범위하게 규정됐던 것을 ▲누설시 국가안보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 ▲적법절차에 따라 군사기밀로서의 표지를 갖추는 것등으로 세분화시키는등 헌재결정을 반영했다. 또 「일반인 과실누설」과 「예비음모죄」「비업무상 과실누설」「언론·출판누설 2분의1 가중처벌」조항등을 삭제,일반인에 대한 처벌은 완화하는 대신 업무상 누설은 엄중처벌하는 등 군사기밀 취급자에 대한 규정은 강화시켰다. 이번 개정안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모든 국민은 군사기밀의 공개·제공·설명을 국방부장관에게 문서로써 요청할수 있다」는 공개요청권 인정과 「외국을 위한 누설죄」에 대한 가중처벌을 신설했다는 점이라 하겠다. 이날 정보본부 수집보안부 유정갑부장(육군소장)은 개정안을 설명한뒤 『그동안 시대정신에 부응한 전향적인 법률로 개정하는데 관계기관과 함께 신경을 썼다』며,『꼭 지켜야 할 비밀은 엄격히 보호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최대한 보장한 것이 이번 개정안의 골격』이라고 부연했다. 유부장은 또 「국민및 언론의 군사기밀보호 협조요청을 강제력이나 기속력이 없는 선언적 의미로 신설했다고 설명했으나 그 조항(13조)이 「…언론 기관장은 군사기밀 여부 확인을 통해기밀사항이 과장되거나 허위보도됨으로써 국가안전보장상 불이익이 초래되지 않도록 국방장관과 협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 『강제력이 있다』는 기자들의 지적을 받자 즉각 『문안을 선언적 의미로 수정해 법제처로 넘기겠다』고 답변,개정작업에서의 전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 알권리와 군기의 합리적 조정(사설)

    우리나라의 경우 군에 관한 한 정확히 얘기하자면 사실 금기와 비밀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에 속한다.그것은 멀지않은 과거에 전쟁을 치렀고 남북대치와 분단이라는 특수장황에 따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따라서 군사안보와 군기보호의 측면을 감안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은 다소의 불편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전폭적으로 이해하고 협조해온게 사실이다. 이런 군사안보현실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우리헌법재판소가 『군사기밀보호법은 최소한도 축소돼야 한다』는 해석을 내렸을 때 국민들은 우리 사회민주화발전과 관련하여 새시대의 또다른 징표로 받아들여 이를 환영한 바 있다.마침 그 무렵에 군 내부에서 사조직의 해체,각종 부조리·불합리행태 추방,인사쇄신,기강확립등 조용하고 세부적인 자기 쇄신노력이 드러날 때였고 아울러 국방비의 공개논의가 활성화하는 등 군의 민주화 의지가 두드러질 때여서 더욱 그 의미가 돋보였던 것이다. 헌재의 결정인 즉 『필요이상의 군사기밀 양산은 언론보도를 위한 취재의 자유와 학문연구의자유를 위축시키며 국민의 정당한 비판과 감독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군사기밀의 보호라 할지라도 한계를 갖는다』는 지적이었다.민주주의이념과 우리 헌법정신에 비추어 당연한 해석이요 바람직한 방향제시였다. 따라서 이번에 국방당국이 군기의 보호와 군사비밀의 대상및 범위를 합리적으로 축소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군기법개정안을 마련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로서의 국방 「신사고」의 결과로 받아들이고싶다. 국방및 안보를 위한 군사기밀사항은 그것이 공개 또는 고의로 누출됐을 경우의 국가적 불이익과 군사안보상의 타격을 고려할 때 엄격히 보호유지돼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군기사항은 때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해주는 바 「알권리」 또는 의사표현의 자유와 상충되는 바 있게 마련이다.중요한 것은 필수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군사기밀과 국민의 알권리가 어느 지점에서 합리적으로 조정되느냐 하는 점이다. 현행 군기법은 72년 유신당시 제정된 것으로서 시대상황과도 맞지않을 뿐더러 군을 지나치게 성역화했다는 건설적인 비판이 군내부에서도 일어왔다.특히 헌재가 지적한 바대로 군사기밀의 한계를 너무 확대했다는 지적이 두드러졌었다.국가의 안전보장에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정도의 실질적인 비밀가치의 범주를 넘어 공지의 사실까지 군사기밀로 덮어놓은 것은 지나쳤다는 것이었다.개정안이 보호돼야 할 기밀과 필요하다면 공개될 수 있는 기밀의 경우를 명시한 의미도 여기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군기법개정과 관련된 국방당국의 발전의지가 국회심의과정에서 의미 있게 반영될 것으로 기대한다.
  • 중국/등소평 「개인 숭배운동」 조짐(특파원코너)

    ◎홍콩 관측통들,잇따른 사례에 관심/기념식수지 성역화… 접근금지/등노선 「집정당 사상」으로 격상 최근 중국에서는 최고지도자 등소평에 대한 개인숭배운동이 시작된 것으로 의심가는 몇가지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나와 홍콩의 차이나 워처(중국관측가)들의 촉각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개인숭배운동의 징후가 처음 나타난 곳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심수시에서였다.지난 1월하순 이른바 남방경제특구들을 순시하던중 심수시 한 식물원에서 등이 기념으로 심은 나무가 최근에 와서 칙사대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나무주위에는 왕릉에서나 볼수있는 커다란 돌기둥 6개가 세워진후 쇠줄로 연결,사람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었으며 별도로 세워진 약 1m 크기의 화강암에는 「등소평수식수」(등이 손수 심은 나무)라는 글씨를 새겨놓고 있었다.한 정치지도자의 기념식수가 이같이 융숭한 대접을 받기란 드문 일이다. 이보다 더 본격적으로 개인숭배 냄새를 피운 것은 심수시내 한복판에 지난 6월말부터 모습을 드러낸 대형 초상화이다.7월1일 당창건 71주년기념일에 맞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등초상화는 높이 10m에 가로 30m의 대형 광고판에 점퍼차림의 등이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는 모습을 그려넣고 그 오른쪽에는 등이 지난 84년 이곳에 들렀을 당시의 어록을 써놓았다.이 글은 『심수의 발전과 경험은 우리가 세운 경제특구정책이 정확했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내용이며 그림하단에는 심수시의 발전된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이 나붙자 대부분의 심수시민들은 괜찮다며 찬성하는 의사를 보이고 있으나 외지에서 이곳에 들른 사람들은 가지각색 반응.상해에서 왔다는 한남자는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이렇게 큰 개인선전광고는 찾아볼수 없을 것』이라며 『심수사람들이 등소평선전을 통해 자기들을 높이려 한다』고 비난했다.어떤 신혼부부는 정치적 의도야 어떻든 한시대를 대표한 인물이 아니냐며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홍콩신문들이 전했다. 이 선전벽화를 제작한 심수시미술광고공사의 황붕사장은 『심수시가 개인숭배에 뜻을 두고 있는것 같지는 않다』면서 『왜냐하면 이 선전화 구상은 먼저 내가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황사장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은 심수이 아닌 상해와 북경에서도 개인숭배와 관련된 움직임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해에서는 등소평이 문화혁명 후반기 정계에 복권된 이후의 정치생애를 그린 「등소평의 길­1973」이란 제목의 전기영화를 제작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내년봄부터 촬영에 들어갈 이 영화의 감독은 『개혁개방정책 최고설계사로서의 등의 이미지를 은막에 투영하는 최초의 대작』이라고 설명했다. 북경에서는 지금까지 등소평 「노선」으로 부르던 개혁개방정책을 「사상」으로 승격시키려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중국에서는 지도자들의 정책방향에 대해 「주의」「사상」「노선」등 3단계로 엄격히 구분해 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주의는 마르크스·레닌에게,사상은 모택동에게만 붙여왔었다. 당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북경에서 3일동안 열린 「등소평 집정당건설사상연토회」에서는 그동안의 「등로선」이 「등사상」으로 격상된채 당과 국가 및 언론기관의 이론관계자들로부터『계통적이고 완벽하며 심오한 사상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등의 극찬을 받았다.특이한 점은 모사상을 혁명초기의 「건당사상」으로,등사상을 건국이후의 「집정당건설사상」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등자신이나 일부집권층은 11억 인구를 통솔하고 개혁·개방을 무난히 추진키 위해서는 문화혁명이후의 모와 같은 절대권위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뜻을 굳힌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홍콩경제일보의 한 칼럼은 천안문사태이후 달아오른 모택동열풍을 식히려면 등소평열풍을 일으켜 모와 등사상중 어느편이 배불리 먹여주는 노선인지를 분명히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쓰고 있다.뿐만 아니라 뿌리깊은 좌경세력을 제압하고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자들을 압도하기 위해서도 모처럼 개인숭배를 통한 등의 권위제고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정치권 파장… 여야대응을 보는 시각

    ◎“땅사기” 정치적 「풍문공세」 지양해야/당략적 시비­조사촉구 구분을/물증없는 공방에 국민들 눈살/국회 들어가 확실한 진상규명 바람직 국회 공전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데다 정보사부지 사기사건의 파문까지 겹쳐 정치권은 의외의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민주·국민당등 야권은 이번 사건을 여권에 커다란 상처를 입힐수 있는 대형 호재로 생각,정치공세의 톤을 점차 높여가는 실정이다. 자체 진상조사활동을 펼치는 한편 국회등원을 계속 미룬채 이른바 「의혹캐기」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여러가지 설을 유포,국민들의 「여권 등돌리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특히 국민당의 정주영대표는 11일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하영기제일생명사장등을 구속하고 김영삼민자당대표도 스스로 의혹을 벗어야 한다』며 아무런 물적 증거의 제시없이 여권을 몰아붙였다. 야권이 이처럼 강도높은 정치공세를 취하고 있는데는 몇가지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첫째,오는 12월 대선을 겨냥한 「여권흠집내기」전략으로 분석된다. 민자당의 김대표가 대선정국에 커다란 변수가 될뻔한 이종찬의원의 당내잔류결정을 설득한 뒤로 재계·관계등 범여권의 결속도가 눈에 띄게 달라져 야권은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정권교체는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에 젖어 있는게 작금의 사정이다. 때문에 야권은 가능한 한 많은 「꼬투리」를 잡아 여권에 생채기를 내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놓여있는 판국에 이번 사건이 터져 「물 만난 고기」인양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야권이 계속 유언비어성 「여권핵심실력자 연루설」을 공공연히 퍼뜨리는 것도 이같은 전략의 전술적 차원으로 이해된다. 둘째,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를 빌미로한 국회등원 거부와 관련,점차 높아져 가는 대국민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화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장선거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전 보다는 농어촌및 중소기업특별지원등 피부에 와닿는 민생국회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야권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야권 특히 민주당은 「한점 의혹없는 수사」를 명분으로 이번 사건을 이용해 국회등원을 무기연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셋째,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대표간의 「밀월관계」를 깨뜨리겠다는 고도의 전략도 숨어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이 끊임없이 「여권고위인사 연루설」을 유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중극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한 포석으로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민자당은 이같은 야권공세에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정공법」을 구사하고 있다. 사건발생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재삼 재사 확인해본 결과 정치권인사가 관련된 흔적이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나아가 민자당은 국정조사권발동 문제까지도 긍정검토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야권은 오히려 『국정조사는 실익이 없다』며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영삼대표는 지난9일 노대통령과의 청와대주례회동에서 「성역없는 수사」를 건의한데 이어 10일 당무회의에서도 다시한번 「철저한 수사」와 「국회차원의 진상규명」을 천명했다.김대표는 이날저녁 속리산사무처요원연수회에 참석,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가 알아본 바로는 정치권이 개입돼 있지 않다고 확신한다』며 『따라서 정부측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와함께 여권실세로 꼽히는 인사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저마다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도 민자당의 이러한 자세를 웅변적으로 대변해 준다. 때문에 민자당은 야권의 공세를 「확증없이 모험적으로 지껄이는 상투적인 발언」(박희태대변인)으로 치부하고 있다. 특히 국민당 정대표가 이번사건 주모자가 김영삼대표와 같은 경남출신이라는 점을 지적,「김대표 관련설」을 주장한데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야권의 이같은 공세는 결국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에 의해 시비가 가려질 것으로 민자당은 자신한다. 지난10일 실시된 강원도 홍천·양구등 두 군데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자당의 텃밭이라며 정대표까지 직접 나서 표밭을 누렸음에도 국민당의 두 후보가 완패한 사실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라는게 민자당측의 설명이다.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공당으로서 당연하다. 그러나 단지 당리당략에 의한 정치적공세와 엄정수사촉구는 명백히 구분돼야 하며 따라서 야당이라고 해서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는 구태의연한 행태가 더이상 계속돼서는 안된다는게 국민들의 「바람」이라고 민자당은 믿고 있다.
  • 손 공보처,「사회변화와 언론의 사명」 강연

    ◎“자유와 책임 조화,신뢰받는 언론문화 신장”/“언론의 기업성,공익위해 기여해야/사이비언론 적절한 대응조치 강구” 손주환공보처장관은 11일 『사이비언론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강구해야 되며 법의 테두리 내에서 사회전체의 질을 높여간다는 차원에서 관심있게 정책을 펼 것』이라고 말했다. 손장관은 이날 고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고대 정외과교우회 주최 월례 조찬강연에 참석,「사회변화와 언론의 사명」이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6·29선언 이후 자유언론시대가 이뤄졌고 매체가 늘었으나 선정주의가 위험수위에 이르렀고 국제화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따라서 언론은 ▲자유와 책임의 조화 ▲전문화 수준의 향상 ▲발행부수공사제도의 정착 ▲통일언론의 명제정립 ▲뉴스가치에 대한 언론사내 이견조화 등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날 손장관의 연설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사회는 6공화국 들어 역사적 일대전환을 맞았다.정치분야에서 민주화와 통일의 진통을,경제분야에서는 성장과 배분의 문제로 갈등을 경험했다.사회부문에서는 지역간·계층간 첨예한 갈등과 민생문제등을 해결해야 했고 외래문화홍수 속에 우리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새 가치관을 정립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6·29이래 언론은 국가권력의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성역없이 취재·보도하고 있다.이는 기자를 대상으로 기자협회가 90년에 설문조사했을때 72.7%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데서 잘 나타난다. 또 한국언론의 자유상황에 대해 국제언론계에서도 인정,1995년 IPI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되어있다. 다만 우리 언론이 이처럼 향유하는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는 가에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수 없다.언론 자유란 언론사에 귀속되는 것이라기 보다 국민의 알권리 신장을 위해 언론사에 신탁된 국민의 자유로서 인식돼야 한다. 이처럼 언론자유속에 과열경쟁에 의한 무책임한 보도로 침해받는 인권이 나날이 증가하고 언론중재 건수가 계속 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전례없는 양적팽창을 이룩,6·29 당시 28개 일간지가 92년 5월 92개에 이르렀고 주간지는 7백35%,월간지는 2백28%가 늘었다.방송도 공민영방송체제로 개편,국민 채널권이 넓어졌고 유선방송법이 제정돼 뉴미디어방송시대에 돌입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 볼때는 일부 중앙지와 방송사를 제외하고 아주 열악한 경영상태에 머무르고 있다.언론 선정주의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비난도 없지않다.또 최근 각 신문이 지나친 증면경쟁을 벌이는 것도 낭비와 과소비가 아니냐는 일부의 비판까지 있으므로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점개선을 위해 첫째 우리언론은 자유와 책임을 조화,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둘째 공익성과 기업성이 언론성장과 발전의 두바퀴란 차원에서 공익성을 위해 기업성이 기여해야 한다.셋째 전문화의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넷째로 ABC(발행부수공사제도)가 조속히 정착,합리적 운영과 제작·광고의 과학화와 매체연구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다섯째 통일언론에 명제를 정립해 나가야 하며 이는 통일시대를 맞이한 언론의 기능과 사명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여섯째 언론팽창과 더불어 다시 제기되고 있는 문제가 사이비기자의 대두이다.1개 군에서 20개이상 지방신문기자가 다툼을 벌이는 현상을 보게 되면서 지역민들의 비판하는 소리를 또 다시 듣게된 언론현실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일곱째 우리 언론계 내부에는 아직도 뉴스의 가치판단에 대한 세대간 이견차이가 존재하고 있다.이것이 언론인 상호간·내부세대간에 풀리지 않는 불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정치세력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 언론이 아직까지 이와같은 상호불신을 완전히 극복치 못함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언론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공고한 기반이 구축됐다.그러나 자유와 책임이 조화된 건강하고 신뢰받는 언론문화가 신장돼야 한다.이제는 정부와 언론이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국정의 책임을 공유하는 동반자로서 새롭게 이해·협력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할 때이다.
  • 쿠바,탈사회주의 개헌 추진/33년만에 종교자유 공식 인정

    ◎외국인투자도 제한허용 할듯 【멕시코시티 UPI 연합】 개헌안 심의에 착수한 쿠바는 10일 처음으로 종교자유를 공식 인정했다고 관영 프렌사 라티나 통신이 보도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수신된 이 통신은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정원 4백63명의 의회가 개헌안중 『국가가 신앙의 자유를 인정,존중하며 보장한다』는 조항을 승인했다고 전했다.쿠바가 종교의 자유를 공식 인정하기는 지난 1959년의 공산혁명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의회는 또한 헌법에서 공산주의 지지 조항도 뺄 것으로 보여 쿠바가 사회주의에서 탈피해 중남미 단합쪽에 더욱 주력하리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의회 심의가 계속되고 있는 개헌안에는 이밖에도 ▲제한적인 외국인 투자 허용 ▲직접·비밀 투표 도입 ▲정부의 비상 조치권 인정 등이 담겨져 있다. 프렌사 라티나는 국가 소유 체제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내에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는 내용도 개헌안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신세계질서 적응” 궁여지책/국제고립 탈피 겨냥,공산주의 지지 철회(해설)북한과 함께 지구상에 남은 공산철권통치의 마지막 요새인 쿠바에서도 철의 장막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다. 쿠바는 10일부터 열린 의회에서 개헌안 심의에 착수,지금까지 지속해왔던 구소련및 국제공산주의에 대한 지지조항을 삭제하는 한편 쿠바국민들에게 정치·경제적 권리를 대폭 부여할 것으로 알려져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있다. 다시말해 구소련과 동구사회주의 체제가 사라진 지금 기존의 체제에서는 버텨나가기가 힘들다고 인식,시대조류에 맞춰 쿠바 나름대로의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일부 헌법조항들이 바뀐다고 해서 이를 두고 쿠바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것이라는 판단은 아직 이른감이 있다. 왜냐하면 이같은 변화의 몸짓은 국가평의회의장인 피델 카스트로가 탈냉전이후 국제적인 고립을 당해온 쿠바의 경제난을 다소라도 해결하고 아울러 자신의 집권기반을 굳히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근거는 우선 헌법개정안은 공산당을 「사회와 국가의 지도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5조의 논의는 아예 배제되어 있는 것을 단적인 예로 들수 있다.따라서 정부의 권력을 대폭 강화시켜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겠다는 카스트로의 강한 집념을 더욱 다진 것으로밖에는 볼수 없다. 쿠바의회는 국가의 안전과 안정에 위협이 있을때 정부에 비상조치권을 발동할수 있게 함으로써 대통령에게 초강력의 지도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한편 대통령직속기관으로 국방위원회를 신설,언제라도 필요시에 총동원령과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체제고수라는 자신의 성역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상당한 권리를 부여해 어려운 살림살이에 대한 무마와 비전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시의원과 지방의원을 직접투표로 선출하게 함으로써 제한적이나마 사회주의체제에서 일탈한 민주적인 조치로 인권을 신장시켰고 경제적으로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사업을 인정하고 토지사유화와 토지의 자유로운 매각을 인정하는등 자본주의 요소를 과감히 도입하고있다. 또한 외국인에게도 쿠바에서의 거주를 허용하고외국인의 자국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인정해 쿠바경제의 활성화를 꾀하는 한편 무교인 쿠바에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이처럼 국내정책에 유연성을 보인 것은 그동안 고립된 쿠바를 회생시키는 길은 과감한 시장경제로의 정책만이 국가경제를 회생시킬수 있다는 절박함과 이를 방치했을 경우 국민들의 욕구불만이 분출,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야기되는 것을 사전에 막아 보자는 계산도 깔고 있는 것이다.
  • 「땅사기」 국조권 발동될까/여당제의와 야대응 안팎(진단)

    ◎“단순사기”판단… 국회정사화 유도/여/등원 미룬채 「의혹캐기」 정치공세/야 정보사부지 사기사건의 파문이 그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민자당이 10일 「국회차원의 조사」를 야당측에 제의,귀추가 주목된다. 민자당은 국회에서 국정조사권 발동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국회정상화의 실마리가 풀리기를 기대하고 있다.반면 민주·국민 양당은 독자적인 진상조사에 착수,「여권실력자 연루설」을 유포시키는 등 정치공세에 치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자당◁ 민주·국민 등 야당측이 정보사부지 사기사건을 「대여흠집내기」차원으로 악용하면서 파문확산에 주력할 기미를 보이자 국회차원의 조사용의를 밝히는 등 정면대응에 나섰다. 민자당은 그동안 『한점 의혹도 없이 사건전모가 명명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며 다소 관망적인 자세를 보여왔다.그러나 10일 당무회의에서 김영삼대표가 「성역없는 수사」와 「국회차원의 진상규명」을 강조함으로써 적극적인 자세로 선회한 것이다. 일차적으로 당측이 중간수사결과를 다각적으로탐문한 결과 「단순 사기사건」임이 명백해 더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관측이다.민자당으로서는 또한 야당측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여권실력자 배후설」을 고의로 퍼뜨리고 있는 마당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전열을 흐트러뜨리려는 야당측의 전술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일소하기 위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즉 김대표등 당지도부는 야당일각에서 여권핵심인사는 말할 것도 없이 대선에서 큰 역할을 맡을 중진들을 「상처」입힐 목적으로 이들의 연루설을 작위적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는 점을 중시,정공법으로 맞서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김대표의 한 측근은 『민주당의 김대중대표가 이번 사건에 민자당중진이 연루됐다는 증거를 입수했다면 이를 폭로하지 않을 사람이냐』고 반문하면서 『물증도 없이 그저 여권을 흠집내려고 연기만 피워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여권이 국회차원의 조사용의를 표명하고 있는 것은 단체장선거 문제로 장외에서 버티고 있는 야당측을 원내로 불러들이는 부수적 효과까지 겨냥하고 있다.이번 사건이 국회정상화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 민자당으로서는 일단 상임위나 특위를 통한 조사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야당측이 국정조사를 요구할 경우 국회정상화 이후 『진지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려면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만큼 야당측도 국회정상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야권◁ 민주·국민당은 국정조사권 발동이 여당의 전략에 말릴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일단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자체 진상조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등은 정보사 부지매매 사기사건에 대한 검찰의 축소수사의혹및 배후세력 개입여부에 중점을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특히 제일생명이 총선을 한달여 앞둔 지난 2월14일 4백30억원의 어음을 성무건설 정건중회장에게 발행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한양이 민자당 가락동연수원 매입대금을 지불한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들 자금이 선거자금으로 유출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당의 「정보사 부지 부정사건 조사위원회」의 김병오의원등 재무담당반은 10일 국민은행과 보험감독원을 잇따라 방문,제일생명의 부지매입대금 2백50억원 입출금과정및 보험회사에 대한 관리·감독 실시여부등을 집중 추궁했다.그러나 이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국민당도 진상조사단(단장 이건영의원)첫회의를 열어 조사단을 3개팀으로 나눠 조사활동에 착수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문제에 버금가는 정치공세의 호재라고 판단,장외정치 공세를 어느정도 편뒤 등원하여 국정조사권 발동등을 통해 원내 공세를 전개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국민당도 일부 원내외 당직자들이 등원투쟁을 주장하고 있으며 정주영대표가 당내 인사들의 요구를 완전히 잠재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내주초인 14일 김대중·정주영대표는 회담을 갖고 합동조사단 구성,국회운영방안,단체장선거문제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황과 함께 조사단의 실효성및 공조체제의 균열위험 때문에 양대표는 국회정상화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여,국회차원조사 공식제기/정보사땅 사기

    ◎상위소집·필요땐 국조권 발동 민자당은 10일 당무회의를 열고 정보사부지 사기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차원의 조사」를 공식 제기했다. 민자당 김영삼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무회의에서 『이번 사건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조사와 함께 필요하다면 국회차원의 조사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경제에 미치는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공신력이 회복되어야 한다』면서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하루빨리 진실을 밝혀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구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단 야당이 국회에 들어와 법사·재무·국방위 등 관련상위에서 논의해본뒤 필요하다면 국조권 발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조권발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야당측의 등원을 촉구했다. 한편 민주·국민당등 야권은 이날 각각 정보사부지 부정사건 진상조사단회의를 열고 매각자금의 정치자금유입 가능성과 배후를 철저히 규명키로 하고 관련기관방문등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조사위(위원장 김령배)의 제2반(반장 김병오)은 이날 상오 국민은행을 방문,2백30억원의 돈이 1개 지점에 1개월 이상 입금돼 있었는 데도 은행장이나 담당이사가 모르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따졌다.
  • 외언내언

    교회에서 예배가 끝날무렵 일제히 봉송하는 주기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고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것이 보여주듯 하느님은 남성을 상징하는 「아버지」이지 여성을 상징하는 「어머니」가 아니다.하느님은 성을 초월한 존재가 분명한데도 신도들은 하느님을 남성의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있다.◆전세계 기독교신도의 70%가 여성.그러나 교회에서의 남녀차별은 엄격하다.성경에도 여성을 경시하는 「말씀」이 수두룩하다.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고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바람에 남녀가 같이 낙원에서 쫓겨났다는 구약에서부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다」라는 신약에 이르기 까지.◆성직자도 남성일색이다.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 여성성직자를 찾아보기 어렵다.우리나라 개신교의 경우 교파가 80여개에 이르지만 여성목사를 인정하는 교파는 7∼8개 밖에 안된다.그래서 요즈음 개신교계에서는 「여성목사 찬반논쟁」이 한창인데 반대론이 훨씬 우세하다.그리스도의 12제자중 여성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사실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고 복종하라」는 성경말씀이 반대론의 근거.◆그런데 영국교회가 신도들이 하느님을 「어머니」로 부를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한다.외신보도에 따르면 최근 열린 영국감리교 연례회의에서 격론끝에 하느님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러도 좋다고 결의했다는 것.여성신도로서는 큰 승리이고 세계교회 전체로 보아서도 큰 변화가 아닐수 없다.◆하느님을 「어머니」로 부른다고 해서 교회에서의 남녀평등이 이루어질는지는 의문.이때문에 여성목사가 갑자기 많이 배출될 것 같지도 않다.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교회내에서의 여성역할을 증대시킬것은 틀림없을 듯.어쨌든 바람직한 변화이다.
  • 정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민주­반민주」 대결구도·권위주의 청산/다양한 이념포용… 「보통사람」의 시대로/국회권한 강화로 「과거청산」도 과감히/전방위외교 추진해 세계속 한국위상 높여/여당 대선후보 자유경선·지자제실시등 큰 성과 「오늘은 기쁜 날,찻값은 받지 않습니다」5년전 6·29선언이 있던 날 서울의 어느 찻집에 써붙였던 글귀는 당시의 전국민의 감정을 한마디로 나타낸 것이었다.사회 전반의 경직된 분위기를 일소하고 권위주의의 청산으로 민주화의 훈풍은 예고했던 6·29선언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었고 그 성과는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에 6·29가 미친 파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정치부기자의 방담을 통해 엮어본다. ­민주화의 새 장을 열었던 6·29선언이 있은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그동안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었죠. ­그렇습니다.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지요.우리 국민들은 너무 쉽게 과거를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권위주의통치의 마감을 알리는 6·29선언이 있던 날,모두들 얼마나 감격했습니까.서울의 한 다방 여주인은 「오늘은 기쁜 날,차값은 무료입니다」라고 써붙이고 고객들에게 서비스함으로써 기쁨을 자축했지요. ○“오늘은 기쁜날…” ­6·29선언이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되겠습니다.우리가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민주적 정치행태들이 6·29정신의 영향아래 가꾸어진 것들이라는 점을 알아야하겠지요. ­노태우대통령은 6·29선언후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곧 6·29실천에 착수했습니다.「보통사람의 시대」개막을 주창했던 노대통령은 대통령당선자의 신분으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다녔고 와이셔츠차림의 회의주재모습을 언론에 보이는등 그야말로 비특권인임을 과시했습니다. ­노대통령은 또 취임이후에도 「각하」라는 용어를 쓰지 말도록 지시했습니다.청와대를 개방하고 회의용 탁자를 전부 원탁으로 바꾼것도 권위주의시대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요. ­사전에 짜인 각본에 의해 진행되던 대통령기자회견이 콘티없이 이뤄져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그밖에 대통령 외출시 몇시간씩 교통통제를 실시하던 것도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되는등 대통령의 일반적 움직임과 관련된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6·29선언이 우리정치에 미친 영향은 집권 여당의 민주화로 상징됩니다.도중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당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후를 자유경선을 통해 탄생시켰지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은 정말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었습니다.중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일단 시도했다는 자체로서도 평가할만 하지요. ­여당내에 점차 비주류가 자리잡아가는 것도 특기할만 합니다.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획일적으로 움직이던 과거 예를 들며 「통치권 누수」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으나 너무 단편적 시각인 것같습니다.민주주의란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가운데 최선의 정책을 찾아내는 것 아니겠습니까.대통령이 힘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그것을 절제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 분화 뚜렷 ­노대통령이 야권의 대표적 투사였던 김영삼 민자당대표에게 대권후보자리를 넘겨준 것도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겁니다.노대통령은 우리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여야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나 그것을 한꺼번에 이루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이룩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때문에 3당통합을 통해 김대표를 받아들여 여당 지도자의 면모를 가꾼뒤 후계를 삼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요. ­여야관계나 국회운영에 있어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가 청산된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과거에는 권위주의정권과 그에 항거하는 재야인사간의 갈등이 그야말로 사생결단 양상이었지요.6·29선언이후에는 이러한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민주화투쟁보다는 정책이나 이념에 따른 정치권의 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보여집니다. ­일부 야권 인사들이 아직 구태를 떨치지 못하고 간혹 극한 투쟁에 나서보기도 하지만 예전같은 국민호응은 없다는게 일반적관측입니다. ­군장성출신들이 대거 야당에 입당한다든지 극렬 재야 운동권인사들이 제도권 정당에 들어오는 현상이 빈번해진 것도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여야총재나 대표사이의 만남이 잦아진 것도 6·29선언이후의 변화입니다.대통령이 정치현안해결에 직접 나서 야당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보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이해됩니다.이같은 타협적 태도가 여야 3당의 합당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사건을 가져오기도 했지요. ­국회 국정감·조사권이 부활되는등 국회의 권능이 대폭 강화된 것도 지적해야겠습니다.「청문회정국」이란 말을 낳으면서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으나 전직 국가원수의 국회증언이 이뤄지는등 국회활동을 통한 과거청산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지요.정부의 추곡가결정에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등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국회심의권한도 강화됐습니다. ­지방의회 구성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도 6·29선언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요.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어가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군림하는 정치인에서 봉사하는 정치인으로서 빠른 자세변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절차도 착실히 마련되어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6공초기 노사분규가 악화되면서 민주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과도기를 거친뒤 점차 노사간에도 화합·타협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대통령 희화화 허용 ­학원자율화·해외여행자유화·문화예술인에 대한 제한없는 창작활동허용등 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의 자율화조치도 정착되어가고 있는데 이의 바탕에는 6·29선언에 따른 정치민주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6·29선언으로 신문·방송등 언론매체도 상당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매체의 등록개방으로 다양한 간행물과 방송이 출현,6·29선언이후 53개의 일간지와 5개의 방송,그리고 2천84개의 주간·월간지가 새로이 늘어난 거죠. ­더욱이 이같은 양적 팽창 뿐만아니라 언론의 보도기능에 있어서도 질적인 수준향상이 이뤄졌다는 게 특이할만 합니다. ­각 언론이 제한없는 보도와 비판,풍자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직대통령을 코미디소재로도 활용하는 이른바 「대통령의 희화화」를 꼽을수 있죠.대통령을 마음대로 비판하고 또 대통령의 실수만을 소재로 한 책도 여러권 출판됐습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양태로 국민들은 어느 장소에서든 누구나 자유롭게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할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됐죠.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셈입니다.국회의원들도 이같은 매스컴정치시대를 맞아 자신들의 새 이미지창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질정입니다. ○언론 보도기능 강화 ­그렇습니다.그 당시에는 중앙일간지의 경우 조·석간 각3사체제로 운영한 데다 지방지도 시·도별 1개씩으로 제한했었습니다.거기에도 정부의 입김이 많이 좌우되었던 형편이었지요.그러나 이제 공영방송도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고 민방도 생겨났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취재와 보도가 금지되었던 「성역」이 사라진 셈이지요.따라서 「유비통신」의 위력이 약화되었고 외신을 절대시하던 풍조도 없어졌습니다. ­6·29이전의 웃지못할 얘기를 소개해보죠.5공시절 한동안 현직대통령을 두고 「땡」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인구에 회자했습니다. ­정각9시 뉴스시작을 알리는 「땡」소리와 함께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동정기사가 10여분 이상 계속됐던 것을 말하는 거죠.당시는 대통령기사에 대한 일정 지면과 방송시간 할애는 무조건적이었습니다. ­또 현직대통령과 외모가 너무 닮았다고 해서 탤런트 모씨의 TV출연이 장기간 금지된 실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황을 비교해보니 언론계도 6·29이전에 비해 엄청난 지각변동을 경험한 셈이군요.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너무 변화속도가 지나쳐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방종」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대두하는 실정입니다. ­6·29선언 이후 6공정부의 외교스타일도 많이 달라졌죠.6·29선언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전세계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고 노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전방위외교를 펼쳐 회기적인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은 이제 중국,쿠바정도 뿐입니다. ­이러헌 북방외교의 성과는 그대로 남북관계진전으로 이어져 남북통일의 튼튼한 받침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됩니다. ▷정치부기자 방담◁ 김만호 정치부 차장 구본영 〃 김명서 정치부 기자 최철호 〃 김경홍 〃 유 민 〃 황진선 〃 문호영 〃 이목희 〃 윤승모 〃 양승현 〃 박정현 〃 유상덕 〃 김현철 〃 한종태 〃 이도운 〃
  • 6·29선언 5돌 당정평가대회 보고내용

    ◎정치·경제·사회 민주화의 기틀 공고히/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6·29선언 5주년 평가보고대회에서 민자당·국무총리실·법무부·공보처는 각각 해당 분야별 성과를 보고하고 남은 과제를 제시했다. 당정은 이날 6·29선언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는 기본 자유가 신장되고 권위주의가 청산됨으로써 민주화가 획기적으로 신장·확산되어 국가발전의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또한 앞으로 6·29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고 각종 부조리를 척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이날 당정보고내용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자율화·사회질서의 확립/총리실 ◎지방의회 구성… 「풀뿌리 민주」 실현 ▷자치와 자율의 확대◁ 시·군·구의회와 시·도의회를 구성함으로써 다양하고 균형있는 지역개발추진등 효율적인 국가·사회발전의 토대를 구축,주민의 참여와 자율로 주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했다.지방자치법령·지방선거법령등 자치관련 법규의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지방자치의성공적인 착근과 이의 내실있는 발전을 위한 여건조성에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자치단체의 행·재정력 확충을 통한 자치능력의 보강을 이룩했다. 또 교육위원회에 심의·의결기능을 부여하고 교육청과 교육자치기관간의 독립성 유지로 교육자치의 틀을 마련하고 교육감과 교육위원도 지방자치 정신에 입각,선출하도록 제도화했다.대학도 교수와 학생이 주인이 되어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국·공립대 총학장을 대학의 복수추천에 따라 임명하고 사립대의 총학장 임명승인제를 폐지했으며 교수회의 활성화와 대학평의원회 구성및 운영,학생자치기구 운영등으로 활기찬 학원분위기를 조성했다. 민간의 창의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 경제체제로의 전환및 노사간 화합,행정권한의 민간위탁확대와 행정규제의 완화등으로 사회 각분야의 민주화와 자율화의 토대를 구축했다.특히 통일논의의 개방,해외여행 자율화,자유로운 창작활동 보장등 각부문의 자율영역을 확충했다. ▷밝고맑은사회건설◁ 112순찰차 확대,인원·장비보강등 범죄대응체제를 강화하고 심야퇴폐유흥업소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제도적 보완으로 민생치안 상황이 크게 호전됐으며 불법 주정차,음주운전,노점상,등산시 취사행위 등의 금지조치를 통해 자유민주시민의식을 제고시켰다.이와함께 「새질서·새생활운동」을 전개,사치·호화·낭비및 비능률·불합리 등을 추방하고 일더하기등 「5대 더하기운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또 「특명사정반」「비리 수사부」운영을 통한 고위공작자등 사회지도층 비리의 예외없는 의법조치등으로 누적된 구조적·고질적 부조리에 대해 「성역없는 수술」을 전개했고 부동산투기,외화유출,금융부조리,탈세등 경제질서 문란행위에 대해서도 부단한 단속과 제도개선을 추진했다.재벌기업단체에 의한 경제력 집중억제,각종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강화로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한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 2백만호건설등을 추진,전국 보유주택수의 33% 물량을 5년만에 건설했으며 2000년까지 42조원을 투입,잘사는 농어촌 기반조성을 위한 농어촌발전 종합대책을 수립,시행중이다. ▷반성과 다짐◁ 과도한 지역이기주의와 권한의 효율적 수용태세 부족으로 지방자치의 활성화가 미흡하며 중소기업의 창업과 경영등의 실제활동에 아직도 많은 간섭과 규제가 남아있다.어린이,여성대상 범죄 등에 대한 체감치안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일선 대민행정행태에 대한 불만도 아직은 거센 상태다. ○기본권관련 법·제도 개혁/법무부 ◎시국사범등 1만여명에 사면조치 ▷인권보장의 제도적 장치 마련◁ 헌법을 개정,집회 결사의 허가제를 폐지함으로써 자유권을 확대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범죄피해자구조권및 청구권과 모성보호규정을 신설했다. 국제인권규약과 국제노동기구(ILO)등 인권관련 국제규약에 가입함으로써 인권선진국을 지향했다.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해 운영함으로써 인권보장의 체계를 완비하고 법원조직법과 검찰청법을 개정해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강화했다. ▷보통사람들의 기본권신장◁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설치해 서민들의 소송구조범위를 확대하고 민법및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 여성의 지위향상에 노력했다. 쾌적한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환경정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의료수혜권을 확충했다. 근로시간의 단축,최저임금법의 시행,산재보험법의 개정등을 통해 근로자의 생활권을 향상시켰다. ▷형사법상의 기본권 강화◁ 형법상의 국가모독죄를 삭제하고 구속적부심의 확대,피해자 진술권등을 보장했다. 범죄피해자구조법을 제정해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국가부조를 의무화했다. 사회보호법을 개정,필요적 보호감호처분을 폐지했으며 보호관찰대상을 축소하고 전과관리기록도 개선했다. ▷사면·복권및 공안관계법률 정비◁ 국민화합을 위해 87년 7월 2천3백35명을 사면·복권한 것을 비롯,3차례에 걸쳐 1만7백25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단행하고 2천6백97명의 시국사범을 석방했다. 논란이 되어온 국가보안법을 개정,반국가단체의 범위를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경우로 한정하고 금품수수·잠입탈출등에 대한 불고지죄 폐지,국외공산계열관련 잠입·탈출 처벌조항의 삭제를 통해 오·남용소지를 없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제정,노동쟁의조정법의 개정을 통해 쟁의행위의 제한을 완화했다. ▷민주발전을 위한 참정권신장◁ 국정감사및 조사법을 제정하고 국민투표법상의 정당의 찬반활동을 허용했다. 공명선거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사전선거운동,불법자금의 유입차단,과열및 타락방지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적극적이고 엄정한 수사를 전개했다. ▷평가와 향후과제◁ 갈등과 반목으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극복,국민통합을 이룩했고 각분야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크게 신장됐다. 각종 법적·제도적장치의 개혁으로 민주발전의 기반·국제적 지위의 향상과 통일기반을 조성했다.그러나 자유와 권리의 신장에 따른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인식이 따르지 못해 준법·질서의식이 미흡하다.일부 잔존하고 있는 공직사회의 권위주의,부조리,공복의식의 부족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언론자유 창달·사회변화/공보처 ◎언기법 폐지… 신문·방송에 자율권 ▷언론자유보장법률·제도의 개혁◁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정기간행물 등록등에 관한 법률」등 대체입법을 제정했다. 신문·통신·잡지등록을 전면 개방해 정기간행물이 6·29당시보다 3배로 증가했다.일간신문은 28종에서 92종(중앙지 18종→44종,지방지 10종→48종)으로 증가했고 총등록간행물은 6·29당시 2천2백36종에서 92년5월말 현재 6천2백16종으로 늘어났다.언론활동 제한제도및 관행의 개혁에 있어서 주재기자를 전면부활하고 프레스카드제도를 폐지했다.신문발행면수와 지가를 완전자율화했다.방송분야에서는 방송법을 제정해 공정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방송위원회기능을 대폭 강화했다.KBS·MBC의 공영방송체제를 확립하고 방송구조의 다원적 개편의 일환으로 민방인 서울방송을 신설하고 교육방송을 독립시켰다.교통방송을 신설하고 종교방송의 활성화 차원에서 기독교방송에 보도및 광고방송을 허용하고 평화방송과 불교방송을 신설했다. 뉴미디어방송시대 개척을 위해 91년말 종합유선방송법이 제정됐고 95년 인공위성방송준비및 고화질 TV연구가 추진중이다. 출판분야에서는 출판사등록을 전면개방하고 월북작가작품 출판허용및 공산권자료 개방도 이루어졌다. ▷언론자유시대의 도래◁ 언론자유의 철저한 보장으로 보통사람들이 마음놓고 말할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언론은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 간섭·성역없이 자유롭게 취재·보도했고 경영자와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자유와 독립이 보장됐다.기자협회 자체의 여론조사 결과도 기자의 72.7%가 언론자유신장에 대해 긍정평가했다.IPI총회 한국언론대표 기조연설에서도 『기자들은 권력기관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는 반면,이념적인 과격주의자들을 더 무서워한다』고 했다.국제언론계에서도 한국언론의 자유실태를 신뢰하며 93년 IPI 원탁토론회및 95년 총회의 서울개최결정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평가와 교훈◁ 이제 언론의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공고한 기반이 구축됐다.신문지면의 획기적 증면이 이루어졌고 전국동시인쇄·전산체제구축·뉴미디어산업 개발착수등 제작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졌다.신문광고는 91년 1조1백96억원으로 87년보다 3배 증가했고 방송광고는 91년 7천6백66억원으로 87년보다 1.9배 증가했다.매체종사자수도 88년 2만2천5백20명에서 91년 3만3천8백65명으로 폭발적인 증가가 있었으며 신문·방송업이 인기직종으로 부상해 입사경쟁률도 높고 고임금체제로 정착했다. 그러나 자유에 걸맞는 책임·윤리가 정착돼야 한다는 언론계내의 새로운 자성론도 대두됐다.신문의 양적팽창에 비례하는 질적향상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언론사간 무제한 경쟁양상으로 인한 언론의 과소비비판 여론이 있으며 국제화시대에 대처하는 능력배양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민주화 계승·발전의 길/민자당 ◎평화적 정권이양에 중범/“여야합의” 직선개헌… 정통성 구축 ▷민주화시대의 개막◁ 1987년 6월29일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대화와 화해의 시대를 활짝 연 역사적인 날이다.6·29 민주화 선언은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우리 정치사의 큰 흐름을 바꿔 놓았으며 비민주적이고 단절과 혁명의 과정을 겪었던 우리 헌정사를 일신했다. 정치적 경쟁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사법부의 독립성 강화와 인권의 신장,지방자치 실시 등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민주시민사회를 여는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직선제 개헌과 정통성 확보◁ 국민의 여망이었던 직선제 개헌이 헌정사상 처음 여야합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정통성을 확보한 제6공화국이 탄생했다.또 우리 선거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경선을 실현함으로써 평화적 정권이양의 선례를 마련했다. 여야가 자유경쟁을 통한 국민의 심판을 받아 정권을 이양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의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의회와 정당의 활성화◁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입법권을 행사하게 되었다.국회는 진정한 정치의 무대가 됐으며 직선제에 의한 정권경쟁은 침체된 정당정치를 활성화시키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다.「거리의 정치」가 해소되고 제도권 정치의 틀이 마련됐다. ▷안정적 국정운영◁ 88년 4·26총선은 여소야대라는 새로운 정치판도를 만들어 사회가 혼란하고 민생이 불안하게 되었다. 이에 민정당과 민주당 그리고 공화당은 국민을 위한 민주화를 위해 3당합당이라는 대결단을내렸으며 그 결과 민주자유당의 창당으로 나라는 안정을 되찾고 국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자치의 실시와 자율성확대◁ 지자제는 5·16혁명에 의해 중단된 이후 30년만에 처음 실시되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지난 2차례의 지방의회 선거는 선거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공명정대하게 실시되어 선진 선거풍토조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한껏 드높였다. ▷향후과제◁ 6·29선언 8개항의 약속이 모두 실현됐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부분도 없지 않다. 먼저 정치권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관에는 여전히 권위주의가 상존해 있다.때문에 민자당은 민주화과정에서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고 경제활성화등 국민의 여망을 수용함으로써 민주화를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도 정책적 배려를 강구해야 한다.
  • 동작동 국립묘지 「국립현충원」개칭/국방부

    국방부는 17만여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를 민족의 성역으로 격상시키고 국민의 애국심과 호국의지를 높이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최세창국방부장관은 25일 『국립묘지는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고귀한 생명을 나라에 바친 선열들의 애국위훈을 기리는 곳인 동시에 국민적인 호국교육의 도장인 만큼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며 명칭개정을 지시했다. 국방부는 이에따라 그동안 국립묘지관리사무소측이 제출한 「국립현충원」「국립호국원」「국립현충선양원」등 세가지 안과 일반인들의 의견을 들어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현재까지는 「국립현충원」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노태우대통령시대의 한국민주주의/카네기위원회 학술회의 중계

    ◎「6·29선언」으로 민주화길 열고 한반도통일의 디딤돌 놓다/권위주의 청산… 언론자유 급신장/여당사상 첫 후보경선,정치발전 기틀 마련/자율·개방화 촉진… 경제내실 다져/고임·고물가,시장원리 따른 불가피한 진통 미국의 권위있는 「윤리와 국제문제에 관한 카네기위원회」(회장 로버트 J 마이어스)가 「노태우대통령 시대의 한국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22일 뉴욕 맨해턴의 메릴하우스에서 열린 이 학술회의에는 미국측에서 제임스 릴리 미국방부 안보담당차관보와 학계의 데이비드 I 스타인 버그 조지타운대 교수등 한국문제를 다루는 주요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으며 한국측에서는 유종하 주유엔대사와 김달중 연세대교수 한승수 전상공장관등이 참가했다.상오 9시부터 하오6시까지 계속된 이날 학술회의는 노태우대통령이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뿌리내리게한 확실한 업적을 남겼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그의 공적을 한국의 정치발전사에 길이 남게 될것이라고 평가했다.이날 주제발표를 한 주요 인사들의 발표요지를 정리해 본다. ○한국민주발전의 역사적 고찰 ◇개스턴 J시거(조지 워싱턴대 아시아연구특별교수·전미국무부차관보)=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한미관계는 1987년 이후 보다 더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그것은 6·29선언 이후 미국이 그동안 기대해 왔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착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87년초 당시 미국무부 차관보로서 한국과 관련해 나의 관심은 북한으로부터 위협이 있는한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은 확고하다는 점과 87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져서 한국에 문민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점을 확실히 해 두는 것이었다. 곧이어 본인은 한국을 방문하게 됐는데 서울에 머무는 동안 당시 노태우후보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그때 본인은 노후보가 민주화의 필요성에 확신을 갖고 있는 훌륭한 지도자라는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은 경제적 기적에 이어 정치적 기적을 이루어 낸 보기 드문 나라중 하나다.그러나 경제적 기적에서 정치적 기적을 성취해 내는 과정에서 획기적 계기는 6·29선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인권문제에 눈부신 개선이 있었고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중 가장 기억해야 할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고르바초프 당시 소연방 대통령과 가진 한소정상회담이다.소연방이 지금 붕괴됐다고 해도 이 한소정상회담이 남긴 역사적 의미는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5년간 노대통령 지도 아래 추진된 한국에서의 민주화 경험은 민주주의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한국민주화 장래 ◇로버트 J 마이어스(카네기위원회 회장)=뉴욕 타임스지는 지난 4월18일자 사설에서 『임기를 몇달 남겨놓고 있는 노태우대통령은 이제 그가 추진한 한국의 민주화 작업을 마무리할 더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재선을 추구할 수 없는 노대통령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부를 이양하고 남북통일을 향한 길목을 열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한국역사상 보기 드문 위치를 확보했다』고 논평했다. 이 사설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노대통령이 한국의 민주발전과 남북통일에 하나의 커다란 표석을 세웠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그가 이룩한 업적과 그가 잡은 역사의 방향은 앞으로도 한국의 정치발전 과정에 계속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지금 사회전반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급속한 자유화와 개방의 물결 속에서 얼마간 혼란을 겪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경쟁국가들로부터 이례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는 계속될 것이고 경제적 어려움도 끝내는 한국인 스스로 극복하고 말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잘한 일이거나 못한 일이거나 간에 그들이 이룩한 한 두가지의 업적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된다.장개석은 국민당 기치아래 중국을 통일한 업적으로,모택동은 똑 같은 땅덩이 위에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 것으로,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동서독을 통일한 공로자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대통령은 한국의 역사 발전과정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인물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그의 6·29선언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한국이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공헌했다.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을 해낸 적절한 인물이다. ○오늘의 한국민주주의 ◇데이비드 I스타인버그(조지타운대 교수)=1987년 6·29선언은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적 변화를 가져 오게한 이른바 「노태우시대」의 시작이다. 6·29선언은 한국의 정치자유화를 촉진시킨 결정적 요인 이었을뿐 아니라 당시 거리에 즐비했던 젊은이들의 데모사태를 잠재우게 한 정치인으로서의 일대 결단이었다.또한 이 선언은 전통적으로 타협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사회에서 타협을 통한 위대한 결단이었다고 말할수 있다. 한국은 여러면에서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발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 행정부로부터 사법부가 독립하고 있다는 징후가 눈에 띄고 있다.또 여당이 국회에서 과반수선을 유지하면서 국회가 참으로 정치의 무대가 될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높은 교육열로 정치의 유동성이 크게 높아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일부에서는 노대통령에게 강력한 지도력을 주문했지만 노대통령이 만일 그랬었다면 그는 또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그의 인내심은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6공화국하에 한국민주주의 ◇김달중(연세대교수)=6·29선언이 한국민주화에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우리 헌정사에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또 하나의 공적은 6·29선언이 권력을 종적인 구조로부터 횡적인 분산구조로 변화시켰다. 이를 통해 사회의 자율화와 개방화가 촉진됐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한국민주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중의 하나는 언론의 자유라 할 수 있다.지금 한국언론에서는 세칭 「성역」이란게 없어졌다.대통령이 거침없이 비판되고 심지어는 만화에서까지 희화화 되고 있다. 사법제도에 개혁이 있었고 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이 개정됐다.정치의 자유화와 사회의 다양화는 제6공화국 시대에서 이룩된 가장 큰 발전이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정당의 비민주적 운영은 앞으로 개선 돼야할 대단히 중요한 부문으로 남아 있다.정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는 집권당인 민자당만이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라진 것중 하나는 민자당이 사상 처음으로 지난 4월 당의 대통령후보를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해 냈다는 사실이다.이종찬후보가 경선사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민자당의 이번 시도는 당내 민주화에 하나의 큰 발전으로 평가될 수 있다.검찰과 경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는 문제도 남은 과제이다.더 넓게는 교육분야와 민간경제 분야에서의 자율화 촉진도 중요한 일이다. 지난 5년동안 노정부는 권위주의 잔재를 없애는 일뿐 아니라 경제적 진전과 함께 정치적 발전을 이룩하는 공적을 남겼다. 전통적으로 상황이 달라 비교가 적절치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가 추진된 필리핀과 한국에서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아키노 정권의 민주개혁노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아키노정권을 이어받아 새로 대통령이 된 라모스는 앞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계속 도전을 받을 것이 확실하지만 노대통령은 민주개혁과 통일문제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민주·경제발전의 역사적조망 ◇한승수(전 상공장관)=6·29선언이후 자유화 개방화 조치는 경제부문에서도 노조설립,민간부문의 자율화,대외개방을 이루었고 저임금,자원집중관리,수출드라이브정책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고임금 고소비 현상으로 인한 물가인상,무역적자로 한국경제 전도에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크게 보아서는 자유경제의 기본질서인 시장원리로의 복귀에 따른 불가피한 고통이라고 본다.이것은 6·29선언이 민주화를 이뤄 정치적 내실을 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과 같이 경제적인 면에서도 내실을 다져 우리경제의 기조를 안정적이고 대외 경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로버트 원(미 한국경제연구소 회장)=노태우대통령의 성공은 그동안 한국이 성취한 경제발전이 밑거름이 됐다. 산업화는 무엇보다 통신시설의 확대,지식의 보급,도시화,사회안정 그리고 중산층의 확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이런 것들은 모두 민주정부를 지지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한 예로 한국의 전화보급률은 지난 10년동안 4배나 증가했는데 이는 국민상호간 정보교환을 돕고 정치조직망을 형성하게 했다.이것들이 바로 권위주의의 붕괴를 유도하고 민주화를 촉진했다. 사회의 민주화가 단기적으로 보면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비효율적으로 작용 할수도 있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민주화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지역내 지도적 국가가 됐으며 세계무역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확보했다.더 나아가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88년의 올림픽유치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민주국가와 산업국가를 동시에 성취하는데 상호작용을 해왔다.거듭 말하지만 한국의 성공적인 변화는 앞서 지적한 전제조건들의 성숙에서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경제개발 6차5개년계획을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상당부분 수정한바 있다.92∼96년간에 걸쳐 추진될 7차5개년계획은 점증하는 사회 경제적 요구와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다. 비록 어려움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노정부 5년동안의 시책은 한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데 의문의 여지없이 크게 공헌했다.
  • 1백만 관동군에 「정신대」 8만 동원/일 여성단체서 증언집 발간

    ◎조선인위안부 「기모노」입혀 위장/“군수공장 취직” 구실… 한번에 2천명씩 만주로 일본의 여성단체들이 지난 1월 개설했던 직통전화 「종군위안부 110번」에 걸려온 제보를 토대로 증언집을 발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전후 책임을 확실하게 하는 모임」「종군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종군위안부 우리 여성 네트워크」「재일 한국 민주여성회」등 일본 여성단체들은 직통전화에 걸려온 제보 2백35건을 토대로 4개월에 걸쳐 제보자와 직접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하거나 추적조사를 벌인후 그 내용을 책자(1백88쪽)로 엮어 냈다. 이 책자에 담긴 일부 증언내용은 다음과 같다(증언자들은 당시의 직책). ▲군의(78세)=1940년 관동군 사령부 조선후방부대에서 사령부의 가족과 보급감부의 진료를 담당했다. 「관동군 여자특수군속 복무규정」이라는 두꺼운 규정서는 위안부의 취급에 대해 상세히 규정해 놓고있다.여자 특수 군속이란 조선인 위안부를 말하고 있다. 규정서에는 이들에게 월 8백엔의 급료 지급과 함께 피복·침구·화장품등을 대여하도록 하고 있다.관동군 보급감부는 위안부의 「보급」업무도 맡고 있다. 철도로 여자들을 운송했다.보통 열차 한칸에 2백명씩,10칸의 화차를 통해 2천명을 한꺼번에 운송했다. 만주철도의 열차는 넓어 열차 자체가 「팡팡열차」(위안소)가 되기도 했다.국경군은 「팡팡열차」를 일정한 기간까지 두도록 명령서를 시달했다.국경의 숙박업소들은 모두 관동군의 위안소가 되어버리고 민간집까지 접수해 「팡팡 숙」(위안소)를 만들었다. 당시 전 중국 해남도까지 위안부의 수는 8만명,관동군 수는 1백만명이었다.성병에 걸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일요일 외출시에는 「돌격 1번」(콘돔)을 지급했다. ▲경비대원(75세)=1938년 중국 양자강 상류의 악주(현재 악양)에서 철도 경비부대에 근무했다. 위안소에는 일요일만 갈 수 있으며 병사 한사람이 대부분 5,6분정도 위안소에 머무를 수 있었다.위안부 한사람당 하루 20명 정도의 병사를 상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위안부의 식사는 부대의 취사병이 만들어 보냈다.중국인 위안부는 중국옷을,조선인은 일본인 옷을입고 있었다. ▲통신 교육대원(73세)=나는 1944년 만주 흑용강성 부금에서 근무했다.거기에는 18∼20세의 조선인 위안부 20명이 수백명의 병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한사람의 조선인 위안부를 도망시킨 일이 있다.그녀는 경성고전 여학교를 졸업한 18세 처녀였다.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고관으로서 학교에서는 관동부 사령부 근무를 약속했다는 것이다.「관동군 전시 특별 여자 정신대」라고 했으나 실제로 와보니 위안부였다며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그녀가 마침 고열로 앓고 있어 호위헌병을 불러 「결핵」이라고 말해 해방시켰다. 조선인 여성은 경성역에서 2천명이 모여 열차에 태워져 만주의 신경에 하차 시켰다.거기서 20∼30명씩 나누어 다시 열차에 태워 각 지역으로 운송했었다. ▲국민학교 교사(71세)=1929년 8세때 부모들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가 전라북도에서 소학교(국민학교) 교사를 했다. 조선에서 3번째 근무지인 이리의 일출소학교에 있을 때 교장의 명령에 따라 8명의 제자(13세)를 여자정신대로서도미야마(부산)현의 군수공장에 보냈다. 당시 지시는 집안이 가난하고 몸이 튼튼한 어린이를 선발하도록 했기 때문에 수업료를 못내는 어린이 집을 방문,부모의 승낙을 얻어냈다. 그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정신대로 보내진 8명은 「심신이 모두 상처를 입어 사람들앞에 절대로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종군위안부를 의미한 것으로 알았을때 몹시 충격을 받았다.
  • 북은 핵상호사찰에 응하라/장수근 북한부장(데스크시각)

    해빙무드에 힘입어 비교적 순항해오던 남북관계가 핵에 좌초,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상호핵사찰규정협상에 나섰던 남북핵통제공동위 대표들이 5·27 판문점 대좌에서 서로 얼굴을 붉힌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남으로써 기대를 모았던 6월중순 남북핵상호사찰은 일단 물을 건너간 것으로 보이며 이같은 상황은 향후 고위급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 전반에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핵은 남북한의 차원을 넘어 세계의 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이 핵을 무기화할 경우 냉전체제 붕괴후 도래한 평화정착구도에 균열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때문이다.즉 북한이 핵폭탄을 손에 쥐게 될 경우 북한은 이를 무기삼아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해 온갖 주문 내지 공갈을 일삼으려들 것이기 때문에 핵개발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를 진전시키면서도 기회있을 때마다 「핵문제 해결없는 관계개선은 불가」라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핵사찰을 허용했다. 그러나 IAEA사찰은 신고된 목록에만 의존하는 사찰이어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핵재처리시설등 핵심 시설을 숨겨 놓을 경우 찾아낼 수도,또 문제삼을 수도 없는 사찰이다. 이번 IAEA의 임시사찰팀이 북한이 방사능 화학실험실이라고 주장하는 핵시설을 핵재처리시설로 밝혀내더라도 현행 IAEA 핵안전협정체제내에서는 이를 강제 폐기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한미양국이 IAEA사찰과 함께 남북상호사찰의 실시를 남북관계진전과 대북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대북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IAEA 체제의 한계 때문이다. 5·27 핵통제위 남북대좌 결렬은 「함께 져야할 부담」을 남쪽에만 지우려는 북한측의 그릇된 인식에 원인이 있다고 우리측 공로명위원장은 지적하고 있다. 북한은 이른바 「의심동시해소원칙」을 고집,북측의 녕변 한 곳을 보여주는 대신 남한내 전미군기지를 보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위원장은 『핵사찰과 관련해쌍방이 의심이 가는 곳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없이 들어가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사찰 권한과 권리는 동서간의 모든 군축협정에서도 인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물질이나 핵무기의 은폐 내지 은닉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특별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것도 핵문제해결의 또다른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측은 비핵화공동선언 1항에 규정되어 있는 핵무기 불배비·불저장의무이행여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존재할 수 있는 군사기지에 대한 사찰이 불가피하다고 전제,일방의 통고로 24시간내에 의심지역에 대한 사찰을 실시할 수 있는 특별사찰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이에대한 북한의 거부는 비핵화공동선언을 사문화시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란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북한이 핵문제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대목은 또 있다.지난해말 비핵화공동선언시 철회했던 「비핵지대화」주장을 판문점 핵통제위 접촉에서 또다시 카드로 들고 나오는게 바로 그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행태와 관련,전문가들은 북한이 핵폭탄제조에 필요한 「시간벌기 전술」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즉 판문점 테이블에서 시간을 끌면서 뒷구멍으로 녕변의 방사능화학실험실을 풀 가동,핵사찰 규정마련→상호사찰의 수순이 밟아지기 전에 핵폭탄을 움켜쥐겠다는 속셈이란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똑바로 깨달아야 할 것은 그같은 잔꾀로 남북상호핵사찰을 지연시키려 들 경우 그들에게 돌아갈 것은 국제사회로부터의 되돌이킬 수 없는 불신뿐이란 사실이다. 북한은 이제껏 입만 열면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없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해 왔다.김일성도 그랬고 연형묵도 그랬다.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이 여러 국제기구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미카네기재단의 연구원들과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도 녕변의 방사능화학실험실이 「의심스러운 구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진정 북한이 「남북합의서」에서 약속했듯이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을 원한다면 핵에 관한한 모든 것을 숨김없이 밝히고 상호사찰과 특별사찰을 받아야 한다. 북한핵카드의 효용가치는 팀스피리트훈련중지와 주한미군전술핵의 철수,노대통령의 핵재처리시설불보유선언으로 충족됐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을 더이상 「협상수단」으로 사용하려들 경우 남북경협은 물론 대미·대일수교 역시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코 「살 길은 핵」이 아니며 「Balanceof Terror(공포의 균형)」도 데탕트시대엔 통하지 않는 전술임을 북한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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