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성역화 사업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AI 복지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삼척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한섬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신셰계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9
  • [승화되는 ‘5·18’정신](2)발포명령자 아직도 오리무중

    ◆풀리지 않는 문제. 새 천년에 처음 맞는 5·18 20주년을 용서와 화해를 바탕으로 통일과 국민통합의 원년으로 삼자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다. 김동원(金東源)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5·18 20주년은 나눔과 공존을 위한 문화를 창출하고 5·18이 역사 속에 화석화되지 않고 시민들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작용,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5월 정신의 공감대 확산 즉 전국화는 ‘그날의 희생’이 한 지역의 불행했던 사태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희생,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뜻한다.5·18의 전국화는 국민통합과 깊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화합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우선 발포명령자 및 암매장의 진상이 아직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만큼 이에 상응하는 국가유공자 대우와 국립묘지 승격 등을 통한 완전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5월 단체들은 ‘5월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 등 5대 원칙을 제시해 왔다. 이중 책임자 문제는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이 사법적 심판을 받았고,피해 보상에서도 지난 90년 제정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금까지 3,860명이 모두 2,100억여원의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마지막 4차보상으로 868명이 보상을 신청,심의중이며 5·18묘지 성역화 사업,5.18기념공원,5·18자유공원,사적지 보전사업,전남도청 기념공원 사업 등도 이미 마무리됐거나 추진중이다. 최대 쟁점중 하나인 민간인 사망자 수는 현재 정부의 보상을 기준으로 부상후 사망한 93명을 포함,259명이다. 지금까지 3차 보상을 통해 행불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64명,현재 심의중인 행불자는 43명에 이른다.하지만 이를 근거로 암매장 여부에 대한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유공자 예우문제는 15대 국회에서 추진된 ‘국가유공자예우 및 지원에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1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16대 국회로 넘겨진 상태. 이에 대해 5월단체 관계자는 “5·18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놓고도 희생자를 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반쪽짜리 명예회복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진상규명 문제는 지난 95년말 검찰이 5·18 수사와 재판 등을 통해 80년 당시 신군부의 광주진입 행위가 국헌을 문란케 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내란 또는 내란 목적 살인을 저지른 폭동이라는 법률적 결론을 내린 것으로 사실상 매듭지어졌다. 수많은 인명이 총탄에 맞아 희생됐으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포명령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5·18국제학술대회에서 글라이스틴 80년 당시 주한미국 대사가 “진압결정은 전두환씨가 하고 최규하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재가한 것으로 확신한다”는 발언을 통해 발포명령자를 추론할 수있을 뿐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5·18기념재단 내의 '진실조사위원회' 활동.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숙제를 풀고자 나선사람들이 있다.5·18기념재단 내의 ‘진실조사위원회(위원장 姜信錫목사)’. 지지부진한 진상규명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진정한 명예회복을이루자는 취지로 지난해 10월 구성됐다. 조사위는 ▲행방불명자 추적 ▲암매장 여부 조사 ▲무연고 사망자 가족찾기 ▲발포 명령자 규명 등을 연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5·18 20주년을 맞은 올해의 첫 사업으로는 5·18 후유증으로 정신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생활상을 공개해 비도덕적 국가권력이 개인에 미친 참상을 알리기 위함이다. 조사위는 이같은 후유증 환자 채록을 토대로 18일쯤 ‘부서진 풍경’이란제목의 350쪽짜리 책을 펴낸다. 또 올부터 5·18 구묘역에 묻혀 있는 11기의 무연고 사망자 가족찾기 사업을 전개한다.유골에 대한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 이들의 주검을 가족에게 되찾아줄 계획이다. 이와 함께 매년 5월이면 논란이 거듭돼온 암매장 여부에 대한 조사도 편다. 그동안 접수된 50∼70여건의 제보를 토대로 장소가 겹치는 부분에 대해 정밀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조사위 김선미(金善美·35)간사는 “조사위 활동은 책임자를 찾아 법적으로 처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아 시민의 명예를 되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 金대통령 절박한 호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5일 3·15 마산의거 제4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지난달 28일 2·28 대구의거 기념식 참석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 영남지역나들이다. 김 대통령은 이날 지역감정에 대해 완곡한 표현을 썼다.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뜻이 깔린 듯했다.‘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등의 직접 화법을 구사했던 대구 방문때와는 대조를 이뤘다.이날 연설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 하나가되어야 한다” “화합과 협력을 통해 우리의 힘을 한데로 모아야 한다” “마산시민이 이제 국민대화합과 국가도약의 큰 길을 여는 데 선봉에 서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김 대통령은 마산의거에 대한 평가와 정부지원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김 대통령은 “그동안 정부는 14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3·15 성역화사업과3·15의거탑 주변의 공원조성 공사를 추진해왔다”면서 “앞으로도 필요한지원을 다각적으로 강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약속했다.또 유럽 순방 때 마산 발전을위한 투자유치 노력도 했음을 소개했다. 먼저 김 대통령은 “이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인 마산항 개발을 위해 순방기간중 벨기에로부터 2,100억원의 투자약속을 받아냈다”고 처음 공개했다.또“거가대교 건설과 마산항 횡단보도 건설을 위해 프랑스로부터 각각 9,000억원과 2,000억원의 투자를 약속받는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정부가 지역 구분 없이,오히려 영남지역 발전을위해 더 공을 들이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진다.또 이번 총선이 그동안의 지역감정 해소 노력을 무위로 만드는 결과로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배어있는 호소이기도 하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무명용사 위령탑 주민힘으로 건립

    일선 자치구와 주민들이 독자적으로 한국전 당시의 전투지역을 찾아내 무명용사의 혼을 달래는 위령탑을 건립,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울 강서구는 20일 6·25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상당수 젊은이들이희생된 관내 개화산 자락에 최근 ‘호국 충혼 위령탑’을 세웠다고 밝혔다. 위령탑을 건립하는데는 주민들의 힘이 컸다.지난 93년 개화산 미타사 주지로 온 송강스님으로부터 “꿈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군인들의 환상을 자주본다”는 말을 들은 주민들은 국방부·국가보훈처 등을 찾아다니며 각종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그 결과 1사단 전사(戰史)에서 6·25때 ‘개화산전투’로 숨진 1,100여명의 무명용사들이 산 곳곳에 묻혀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됐다. 이어 주민들은 이 일대를 성역화하기로 하고 500여만원을 모금했으며 미타사에서도 2,500여만원을 선뜻 내놓았다.강서구에서도 6,600여만원의 별도 예산을 편성,사업을 거들었다. 개화산은 6·25가 일어난 뒤 황해도 지역에서 해상으로 철수한 1사단 11,12,15연대 소속 병력이 집결해 마지막까지 항전한 곳.인민군에 포위돼 본부와의 연락이 끊긴채 마지막 한발의 총알까지 쏘며 저항하다 최후를 맞았다고한다. 강서구 관계자는 “무명용사들의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을 성역화하기로 했다”면서 “매년 6월에는 전사자 가족들이 모여 합동위령제를 지낼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 (48) 밀양시

    경남 밀양시가 새 천년에는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쉬는 관광·전원도시로변모한다. 밀양은 경남 동북부 내륙 깊숙히 자리잡은 전통을 중시하는 충효의 고장이다.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가지산을 중심으로 얼음골과 호박소 등 수려한 경관을 갖고 있다. 경부선 철도변에 위치해 있어 철도문화가 발달했던 60년대까지는 인구 25만을 자랑하는 웅군(雄郡)이었다.그러나 70년대 이후 뚫리기 시작한 고속도로가 수송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소외된 밀양은 교통의 오지로 남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밀양시는 민선 자치 이후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범시민 정신운동을 전개했다.지난 4년간 의식 개혁과 지역사랑 운동을 벌여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개혁의 기반을 마련하고 21세기 ‘일등 시 일등 시민’을 구현하기위해 야심찬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명대사 유적지 정비와,폐교를 활용한 문화·예술공간 확충,종합체육단지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명실상부한 문화·관광전원도시를 건설,새 천년의역사를 창조한다는 포부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교통문제도 오는 2004년쯤이면 말끔히 해소된다.경부고속열차가 밀양역에 서고,밀양을 지나는 부산∼대구간 고속도로 및 국도와 지방도 5개 노선이 4차선으로 확·포장된다.이렇게 되면 부산·대구·울산시와 창원·마산 등지는 1시간 이내로 좁혀지고,이들 지역 주민 1,000만명이 여가를 즐길 장소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사명대사 유적지 정비사업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유적지를 성역화해 청소년에게 구국정신을 일깨우고,불교연수원∼대법사∼표충비∼영남루∼만어사∼표충사∼얼음골을 잇는 불교 관광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무안면 고라리 사명대사 생가 주변 4만4,000여㎡를 정비하고 임진왜란 전적기념관을 건립한다.나라에 중요한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땀 흘리는 것으로 유명한 표충비 비각(碑閣)을 보수하고,대법사에 이르는 진입로 1㎞와 유적지 연계도로 1.5㎞도 확포장할 계획이다.이 사업은 국비와지방비 등 82억여원을 들여 올해부터 오는 2002년까지 4개년 사업으로 추진한다. ?폐교를 활용한 문화·예술공간 확충사업 인구감소로 늘어난 폐교를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청소년들의 탈선장소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1석2조의 효과를 거둔다. 현재 시가 확보한 폐교는 7개교.이중 3개교는 이미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나머지 4개교도 활용계획이 수립됐다. 하늘아래 첫 동네인 단장면 구천리 사자평에 위치한 고사리분교는 기념물로 보존한다.무안면 내진초등학교는 자연학습원으로 조성하고,삼랑진읍 안태초등학교는 청소년 예절학교로 활용하며,산내면 임고분교에는 민?薇같活? 유치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민간위탁자를 물색중이다. 부북면 월산초등학교 등 3개교는 밀양연극촌과 미리벌 민속박물관,가인예술인촌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종합체육단지 조성사업 정부가 마련한 국민체육진흥 5개년 계획에 맞춰 체육시설을 규모화·집단화해 활용도를 높이고 대규모 체육대회를 유치해 시민의 자긍심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오는 2003년말까지 240억원의 사업비로 교동 일대 1만7,000여평에 각종 체육시설을 건립하기로 했다.800평 규모의 실내체육관과 소도시형 실내수영장을 건립하고,공설운동장에 육상경기 보조트랙을 설치할 계획이다.3,000평 규모의 보조잔디축구장과 주차장도 각각 건설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부지 매입을 끝내고,내년말 실시설계가 완료되면 2001년에는 착공할 계획이다. 밀양 이정규기자 jeong@ -밀양 이상조시장 인터뷰 “21세기 밀양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명실상부한 영남 최고의 문화·관광도시로 변모할 것입니다” 이상조(李相兆) 밀양시장은 “철도문화가 발달된 60년대에는 인구가 26만명에 달했으나 도로교통이 불편해 지금은 13만여명으로 줄었다”며 “대단위무공해 공장을 유치하고,쾌적한 환경을 겸비한 돌아오는 밀양을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21세기 밀양의 개발 방향은.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쾌적한 전원도시건설이다.민선 취임 이후 일관성있는 개발방향을 설정해 추진하고 있다.그동안 추진해온 대형 프로젝트사업을 2003년까지 마무리짓고 미착수 사업이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특히 밀양역광장 확장 및 밀양강 주변 개발등 우리시의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업에는 아끼지 않고 투자하겠다. ■지역문화 육성과 관광진흥책은.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위해 미리벌 민속박물관과 가인예술촌,밀양연극촌을 개원했다.앞으로도 폐교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이용하고 교동지구에 종합예술타운을 건립할 계획이다.사명대사 유적지를 관광벨트화하고,얼음골 케이블카와 골프장을 조기유치하며,숙박시설도 확충해 머물다 가는 관광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환경보전 대책은. 밀양은 높은 산 깊은 계곡에서 모아진 맑은 물이 흐르는밀양강을 중심으로 자자손손 정답게 살아온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를 그대로보전, 후손에 물려주기 위해 지난해 ‘푸른 밀양 21’을 발간해 행동강령을제시했다.내년에 수립하는 환경기본계획이 완료되면 밀양은 전국에서 가장살기좋은 ‘그린시티(Green City)’가 될 것이다. ■돌아오는 밀양 건설 시책은. 인구 유입정책은 무엇보다 살기 좋은 고장 건설이다.그리고 대학교와 무공해 공장을 유치해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주민소득을 증대시켜 고향을 떠났던 출향인들을 기다리겠다. 밀양 이정규기자 - 아일랜드 파크 계발 계획 밀양 시내 한 복판에 ‘아일랜드 파크’가 뜨고 있다.시내를 흐르는 밀양강에 갇혀 섬 아닌 섬이 된 삼문동과 가곡동 일대 강변둔치가 말끔히 정비돼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이 일대는 지대가 강 바닥보다 낮아웬만한 비에도 침수 피해를 당하고,둔치에는 비닐하우스가 설치돼 경관을 해쳤었다.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밀양시는 지난 95년부터 아일랜드 파크 조성계획을 수립,사업을 추진하고있다.우선 밀양강에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도록 제2밀양교 부근 하류에 제1수중보(洑)를 설치했다.밀양의 상징 영남루 맞은편에 조성된 야외공연장에서는 수준높은 공연이 이어지며,주변에 건립된 분수대가 뿜는 시원한 물줄기는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준다.바로 옆 체육공원은 휴일마다 청소년이나 동호인들로 만원이다.인근 송림공원은 이들의 회식장소. 용두교밑 6,000여평에 조성된 조각공원은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동북아 및 한국의 고대 암각화 29점이 재현돼청소년들의 역사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개원식 준비 이모저모

    ‘부산민주공원’ 개원식을 하루 앞둔 15일 주최측인 부산시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행사준비로 분주했다. 주최측은 과거 전례가 없는 전·현직대통령이 함께 참석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특히 자리배치와 입장순서에 제일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주최측은 단상에 두개의 자리를 마련,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자리를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자리보다 약간 앞쪽으로 배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입장순서도 동서 양측 문으로 전·현직대통령이 동시에 입장하는 계획을 세웠다.행사후 테이프 커팅에서는 김전대통령이 김대통령 바로옆에 설 예정이다. 부산시 중구 영주동 중앙공원내에 위치한 민주공원은 6,152평 규모로 중앙에는 기념관이 서 있다.특히 기념관 2층에 마련된 상설전시관에는 4·19항쟁,부마항쟁 때의 생생한 흑백사진이 전시돼 있다.한 시민은 “부산은 민주화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성역화가 뒤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의미있는 일로 평가한다”고 반겼다. 김전대통령은 이날 부산을 찾아 삼성자동차 부산공장과 모교인 경남고를방문했다.김전대통령은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가동중단은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가장 잘못한 일 중의 하나”라고 비난했다.이어 “이런 행동은 전적으로 정치적 보복”이라며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날 저녁에는 옛 민주계 인사들과 만찬을 함께 했다.김전대통령은 16일 민주공원 개원식에 참석한 뒤 부산출신 의원들과 오찬을 할 예정이다. 부산 박준석기자 pjs@
  • 白凡기념관 국민성금으로 세운다

    백범(白凡:임시정부 수반 金九선생 아호)기념관 건립과 백범묘가 있는 효창공원 성역화 사업에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행정자치부는 29일 “사단법인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위원장 李壽成)가 신청한 백범기념관 건립 및 효창공원 성역화사업을 위한 기부금품 모집 계획안을 차관회의에서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정부는 내주 국무회의에서 이 계획안을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공익을 목적으로 하고 국민적 참여가 필요한사업이어서 원안대로 허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는 기념관 건립 사업을 위해 언론매체를 통한 공개모집,계좌모금,ARS,인터넷 모집 등을 통해 200억원을 모으려 하고 있다. 위원회측은 특히 국내 뿐 아니라 해외 교민 등을 대상으로도 모집운동을 편다는 계획이다. 현행 기부금품모집 규제법은 ▲국제적으로 행해지는 구제사업 ▲천재지변기타 이에 준하는 재난의 구휼사업 ▲불우 이웃돕기 등 자선사업 ▲공익을목적으로 국민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한 사업 등에 한해 기부금품 모집을 허가토록 하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고승 生家 성역화작업 활발

    지방자치단체들이 우리민족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고승들의 생가터를 앞다퉈 성역으로 꾸미고 있다. 경남 밀양시가 사명대사(1544∼1610)의 생가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것을 비롯해 전남 무안(초의선사·1786∼1866),전북 장수(용성스님·1864∼1940),충남 홍성(만해스님·1879∼1944),그리고 경남 산청(성철스님·1912∼1993)에서도 생가 복원과 추모비 건립에 나섰다. 밀양시는 지난해 무안면 고라리의 1만여평 부지에 정침,사랑채,사당,대문채,삼문 등을 세웠으며 오는 2002년 완공을 목표로 최근 임진왜란 전적기념관을 기공했다. 무안군은 지난해 12월 삼향면 왕산리 초의선사 생가터에서 시작한 생가복원과 추모각 및 추모비 건립공사 준공식을 8월말 가질 예정이다. 번암면 죽림리의 용성스님 생가 성역화에 나선 전북 장수군은 지난달 죽림정사 대웅전 상량식을 치른데 이어 생가 복원설계에 들어갔다.일대 4,000평에는 내년 10월까지 대웅전과 선방,승방,요사채,종고루,생가,정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장수군은 또 용성스님의 출가지 해인사가있는 경남 합천군과함께 용성스님 현양사업에 공동으로 나서기로 했다. 홍성군도 지난 91년 결성면 성공리에 만해스님 생가를 복원한데 이어 94년부터 사당 주변 토지를 매입해 공원으로 꾸미는 공사를 진행중이다.공사가끝나면 생가옆의 시비(詩碑)도 공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산청군은 지난해 9월 단성면 묵공리에 성철스님의 생가 복원공사를 시작했다.안채와 사랑채,외삼문 등 건립공사를 거의 마친 상태다. 박찬기자
  • 郡政위해 신앙 등진 영광군수

    전남 영광군이 역점사업으로 추진중인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관광명소화’사업이 특정 종교계의 반발에 부딪치자 김봉렬(金奉烈) 영광군수가 자신이 다니던 교회 집사직을 내놓게 됐다. 김군수는 순수하게 지역전통문화 계승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이번 사업을계획했으나 자신이 다니던 기독교 장로교회가 주도적으로 반대하고 나서자최근 집사직을 사퇴했다. 김군수는 “모든 지역민이 바라는 사업을 특정 종교단체의 반대로 중단할수는 없다”고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업이 지난 97년 발표되자 영광지역 기독교 단체는 “관광개발이라는명분아래 타 종교의 의견수렴도 없이 특정 종교의 성역화 사업을 추진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천주교와 원불교를 비롯,이지역 주민들은 이번 관광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를 바라고 있어 이를 둘러싼 찬반논쟁이 일었다. 김군수는 이에 따라 자신이 다니던 교회 목사와 신도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꾸준히 벌여왔으나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결국 집사직을 사퇴한 것. 영광군은 지난 97년부터 오는 2001년까지모두 92억여원을 들여 법성면 진내리 일대 1만4,000여평에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관광명소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고증작업을 마친 뒤 현재 진입로 확·포장 공사를 하고 있다. 영광 최치봉기자 cbchoi@
  • 충남해안지방 올여름 가볼만한 관광지

    태안,서산,당진 등 충남 서북부 해안지방이 수도권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부분개통되면서 서울과의 거리가 한결 가까와진 탓이다. 현재 서해안 고속도로는 평택까지 내려와 삽교호 너머 당진까지 1시간대에닿게 한다.종전에 비해 40분 가량 단축된 것이다.3시간30분 남짓 걸리던 안면도도 2시간30분이면 된다.이에 더해 배후지역인 예산은 덕산온천 등을 내세우며 관광객유치전에 가세한다.이들 지역의 주요 관광지를 알아본다. 태안 만리포,학암포 등의 해수욕장과 신진도,가의도 등 기암절벽의 옹말졸망한 섬들이 즐비하다.구불구불한 해안선에서는 바다낚시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특히 오는 2002년 4월에는 안면도의 자연휴양림과 꽃지해수욕장에서꽃박람회가 예정돼 있다.군은 한달간 열리는 이번 행사를 위해 진입도로를확충하는 등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 인근 안면읍 승언·중장·신야리 일대 156만4,000평을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테마파크,실버타운 등 6개지구로 특성화,비치호텔,전망타워,콘도,골프장(18홀),실내워터파크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서산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 계곡에 있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암벽에 부조형식으로 조각된 불상은 조명의 변화에 따라 자비로운 얼굴과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진다.가야산 계곡을 따라 1㎞ 가량 올라가면 보원사지 터가 있다.5층석탑,당간지주 등의 유물이 당시 절의 위세를 짐작케한다.해미면 읍내리의 해미읍성은 조선시대에 건조된 평지성.높이 5m,둘레 1,800m로 조선조 말엽 천주교신자 1,000여명이 처형돼 순례자들이 자주 찾고 있다.축협이 한우개량사업을 벌이는 운산면 원벌리 삼화목장은 봄이면 벚꽃,가을이면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당진 간척사업 등을 통해 삽교호방조제,대호방조제,석문간척지 등이 형성돼 있다.우강면 송산리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태어난곳으로 순교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최근 성역화된 곳이다.석문면 교로리해안가는 서해안이면서도 해돋이와 일몰을 동시에 볼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해변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독특한 지형구조 때문인데 이 곳사람들은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이 동해안보다 훨씬 많다고 자랑한다. 예산 덕숭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수덕사는 백제말에 창건된 것으로전해진다.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굵어지다가 서서히 좁아지는 배흘림기둥으로도 유명하다.불교문화를 한눈에 볼수 있는 성보박물관이 곧 문을 열 예정이다.덕산면 사동,신평,시량리 일대의 덕산온천은 중탄산나트륨천으로 양질의 온천수를 자랑하고 있다. 임태순기자 stslim@
  • [기고] 光州의 5월은 저무는데

    얼마전 초청강연차 광주를 다녀왔다.강연을 마친 후 5·18 묘지를 참배했는데 묘역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공수부대 간부들도 조의를 표하고있었다. 그날 아침 광주의 한 신문을 보았더니 전남대 총학생회가 전남대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학생의 33.4%가 ‘5·18 기념행사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고 한다.또 전체 학생의 과반수인 50.6%가 5·18묘지를 한번도가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광주는 오히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는 느낌이다.5·18당시 나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었는데 외신을 통해 광주소식을 많이 들었다.CNN을 포함한외국방송에서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석방될 때마다 5. 18의 참상을 담은 영상자료를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광주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가운데,5·18은 벌써 현재의우리와는 상관없는 흘러간 역사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시민들의봉기와 무력적인 진압,수백명의 사망자와 실종자의 발생과 같은 역사의 큰기복도 19년 정도의 세월이면 잊혀지게 되는가? 올해도 5·18기념식은 광주에서만 거행되었다.1997년에 5·18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지만,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행사는 광주에서만 열리고 있다. 5·18의 성격을 특별법으로 ‘5·18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망월동 일대를 성역화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어딘가 모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국가의 법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고 시행하는 사업이,광주 이외의 지역 주민들에 의해 소외당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5·18행사가 광주에서만 계속 거행된다면,광주와 다른 지역간의 골이 깊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이러한 일들은 5·18의 희생자들도 바라는 바가 아닐것이며 결과적으로 광주는 이중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전남대 여론조사에 의하면 ‘진상 규명 등 5·18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해결되었다’고 응답한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한다. 민주주의가 시들어가는 초기증세로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가 손꼽히고 있다.무관심은 실존하는 문제에 대한 망각을 낳고,망각의사각지대에서 또 다른 사회적 격변(Social Upheaval)이 준비되어 간다. 광주지역에는 좋은 관광숙박시설과 온천도 많은데,다른 지역 손님은 별로오지 않는다고 한다.학생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신록의 계절이 가기전에‘예술의 고향’이라고 자부심 가득한 광주를 방문해서 5·18 희생자들의 영령을 가깝게 느끼면서,그들의 정신이 오늘의 현실에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鄭夢準 국회의원·무소속]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10)전남 완도군/인터뷰/축제

    남해에 위치한 전남 완도군이 찬란한 해양문화를 꽃피웠던 청해진시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완도군은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대사의 후예로서 청해진 유적지를 복원,성역화해 세계인이 찾는 국제적인 해양문화·관광명소로 개발하기 위해 온 힘을쏟고 있다.인구 7만명에 201개 유·무인도로 이뤄져 천혜의 관광·수산자원이 풍부하다.‘장보고 청해진 유적 성역화 사업’은 올해부터 오는 2010년까지 4단계로 나뉘어 총사업비 1,496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역사문화·관광개발 사업이다.군이 민선시대 출범과 함께 제2의 청해진 시대를 열기 위해지역 특수시책으로 추진해온 군민들의 최대 숙원사업이다. 올 상반기에는 1단계로 해상왕 장보고 만화영화 제작,캐릭터사업,대하역사소설 집필,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등 ‘분위기 조성사업’이 추진된다. 하반기에는 2단계로 창작연극 제작,대통령 친필 휘호석 제작,해양문화축제,해양역사캠프 개설 등 ‘분위기 확산사업’이 추진된다. 3단계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영정 제작,사당 건립,개척항로답사,국제해양포럼 개최,유적지 발굴·복원,조각공원 조성 사업이 추진된다. 4단계로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장보고배 철인3종 경기대회 창설,해상왕장보고관 건립,장보고 석상 건립,선박역사박물관 건립,민속촌 조성사업 등을 추진한다. ■ 장도유적지 정비·복원 장도 일대 3만8,000여평에 흩어져 있는 고증 가능한 유물과 유적을 복원한다.성문과 성벽 890m,망루 등을 복원하고 목책,바닷길,떼다리를 정비한다.동백나무숲은 보호하고 아카시아 등 잡목은 동백,후박,해송으로 바꾼다. ■ 청해진기념관 건립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군진이었던 청해진을 중심으로장보고 대사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기념관을 건립한다.이 전시관에는 장보고 대사의 업적과 후대에 남긴 역사적 사료,유구를 보존·전시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육성한다. 제1전시실에는 장보고 영정,연혁,생가,장보고의 일생,행적도 등을 그래픽패널과 연속모형으로 전시한다.적산법화원도 전경을 그래픽 패널로 전시하고 신라방,신라소의 모습을 모형으로 재현한다. 제2전시실에는 청해진 전경,발굴유적도,선박제조과정,군복,무기류 등을 모형과 그래픽 패널로 전시한다. 제3전시실은 완도의 역사,문화제,장보고 당제,완도의 오늘과 미래상을 알기 쉽게 소개하도록 꾸민다. ■ 해양민속촌 조성 총사업비 370억원을 들여 4만2,000평의 부지에 청해본진,저자거리,신라방 등을 조성한다. 청해본진은 통일신라시대 경주와 당나라 장안성의 도시계획 및 성제 규범에 따라 고증자료를 근거로 복원한다.주작대로를 중심으로 관청 36동,관리의집 9동,중인의 집 17동,평민의 집 62동,병사의 집 10동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한다. 저자거리도 고증에 따라 통일신라시대 건축물로 재현한다. 전통공예촌에는 칠기·섬유·지죽제(紙竹製)공방,옹기전,만물상,고가구점,한복집,토산품판매점 등을 조성한다. 민속음식점에는 방앗간,떡집,전통다과점,전통찻집,엿집,주막,한약방 등을재현한다. ■ 선박역사박물관 건립 장보고 대사 시대의 선박인 ‘방주선’을 비롯해 고대 선박의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시대·종류·크기별 선박을 전시한다.매년 열리는 장보고축제에서 모형선박 건조대회를 열어 우수작에 장보고 대상을 수여하고 수상 작품을 박물관에 전시한다. ■ 역사문화환경 정비 장좌마을에 숙박지와 농경문화 체험공간,역사문화 학습공간,개펄상태 학습 및 체험의 장,산림지역 자연학습의 장을 조성,생태·문화마을로 정비한다. 민속촌∼기념관∼장군샘을 연결하는 탐방로를 자연지형을 이용해 환경친화형 수종으로 조경,생태거리로 육성하고 법화사지와 관음사지,장군바위 일대를 정비한다. ■ 장보고 대사 신라 하대(下代)인 9세기경 청해진 대사로서,서남해안에서 약탈을 일삼던 당나라 해적들을 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했다.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하는 등 해상왕국을 건설했다. - 車官薰군수 인터뷰 “완도는 세계 해양인이 공감하는 해상왕 장보고 대사 청해진 설치 1,200주년의 역사성과 주제성을 가지고 있는 역사의 고장입니다” 車官薰 완도군수는 “그동안 역사의 그늘속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던 장보고 대사의 웅대한 해양개척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해 완도를 국제적인해양·문화 관광명소로육성하겠다”고 밝혔다. ■ 장보고 청해진유적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세계 해상무역권을 제패한 장보고 대사의 해양개척정신을 재조명해 계승·발전시키고 이를 국민적 사표로 삼아 21세기 해양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다.장보고 대사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해상왕국을 건설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1,200여년동안 우리에게 잊혀져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 장보고 대사 업적 재조명을 위해 어떤 사업들이 추진됐나. 민선1기가 시작된 지난 95년부터 장보고 축제를 개최해 장보고 대사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또 장보고 대사 해양경영사 연구를 위한 국제학술대회를 3차례 열었다.국제학술심포지움에서는 장보고 대사의 선각자적인 진취적 기상과 활동,당시 동북아의 해상무역에 관한 다양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특히 열악한 지방재정에도 불구하고 장도 청해진 유적 정비 및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해 중앙정부에 사업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건의한 결과 해양수산부와 문화관광부가 해상왕 장보고 유적 성역화 사업에 국비를투자하기로 결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청해진 유적지 활용 계획은. 장보고 대사 재조명·평가사업은 관광·레저와 연계해야 성공을 거둘수 있다고 본다.청해진 본거지는 성지로 개발하고,장도 일대는 국민관광 및 휴양단지화해 국제적인 해양관광명소로 육성할 계획이다.유적 주변에 청소년음악·연극공연장,유스호스텔,놀이광장,극기체험장 등 해양자연환경과 조화된 시설을 조성해 청소년들의 호국수련장으로도활용할 방침이다.유적지가 복원되면 신라시대와 21세기가 조화를 이뤄 신비감이 느껴지는 새로운 명소로 각광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완도·林松鶴- '장보고 축제' 지역경제 활성화 한몫 현재와 미래의 꿈을 바다에서 찾고 있는 완도군에서는 국내 최대의 해양문화축제인 ‘장보고축제’가 96년부터 매년 여름 열려 21세기 신해양시대에걸맞는 진취적인 민족혼을 일깨우고 청해진의 옛 영광을 세계속에 부각시키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는 8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동안 완도항 일원에서 개최된다. 군민의 날 행사와 함께 열리는 장보고축제는 깨끗한 바다와 다도해 문화를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그래서 해마다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해양수산부가 후원하는 올 축제에서는 전국 청소년 장보고 선발대회,해양역사캠프,전국 바다수영대회,노젓기대회,장보고 형상 범선 만들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특산품인 김 제조 장면 재현,세계 진기 바다동식물 전시회,청해진 바다음식 축제,전국 바다낚시대회 등 관광객과 군민이 함께 어울리는 한마당 잔치도마련된다. 장보고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 특색을 살린 문화축제로 자리잡아가고있다.지난해에는 문화관광부로부터 우수축제로 선정돼 국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바다로,세계로,미래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열리는 장보고축제는 지방문화축제를 중앙부처와 공동 주최함으로써 지방문화축제의 국제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일본 등 외국 자치단체도 장보고 축제에 참여해 우호증진 및 경제교류 확대,관광객 유치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완도군은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해양의 멋과 특성을 살린 관광상품을 개발,판매하고 있다.청정해역 완도에서 생산되는 각종 해조류와 어류,섬과 바다를 주제로 한 티셔츠,넥타이,시계 등 66품목 130종을 판다. 완도·林松鶴
  • 민주열사 명예회복 학술회의 주제발표(정직한 역사 되찾기)

    ◎독재에 왜곡된 현대사 재정립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학술회의가 1일 기독교회관에서 민주열사 유가족들과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열사범추위) 주최로 열린 98년도 2차 학술회의에서 李昌馥 열사범추위 상임대표는 기조연설을 통해 의문사 진상규명과 열사들의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특별법 제정 및 범국민 추모사업의 조기 현실화를 강력 촉구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특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마련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이 발표됐으며 ‘각국의 사례에서 나타난 과거청산의 문제점과 올바른 방향’(李昌洙 한국 국제문제연구소 대표),‘국가 보훈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金三雄 서울신문사 주필) 등의 발제 강연과 토론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채택했다. ◎기조연설/과거 청산돼야 국민 대통합/李昌馥 열사 범추위 상임대표 우리 현대사는 외세에 편승하여 국민을 배신하고 독재를 행사해 온 세력들의 불의에 항거한 위대한 투쟁의 역사였다. 4·19민주혁명과 5·18광주민중항쟁,6월항쟁,87년 노동자 대투쟁,그리고 50년만의 민주적인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국민대중은 민주발전과 통일,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한결같이 싸워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본격적인 민주화시대를 열였고,통일을 위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 金大中 대통령의 ‘제2의 건국’ 선언이 의미하는 바 역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가 민주·통일시대를 향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면 올바른 과거청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총체적 개혁을 통해 독재시대의 기득권 구조를 깨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지역과 계층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여 사회통합적 시민공동체를 건설하는 일,남북간 화해와 협력,평화체제를 구축하여 통일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민주·통일시대의 역사를 개척하는 요체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민족민주열사의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은 꼭 이루어내야 한다. 열사들의 죽음은 개인차원이 아닌 우리 현대사에 중요한 사변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민주열사의 명예회복은 독재정권에 의해 왜곡되어졌던 우리 현대사를 바로잡는 성스러운 일이고,의문사 진상 규명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하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간 차원에서 동시에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국가차원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며 민간차원에서는 열사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고자 했던 염원을 실현하는데 범국민적인 사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각국 사례로 본 과거청산 문제점과 올바른 방향/청치세력화된 시민사회가 주체로/李昌洙 한국국제문제연구소 대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4년 4월 흑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 청산 작업을 시작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란 헌법기관을 만들어 인권침해 조사,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인권침해 및 가해자들에 대한 사면문제,국민 통합과 화해 촉진법 제정 등과거 청산 과제를 수행했다. 그러나 남아공 국민감정과 국가주도의 과거청산 활동간에는 일정한 괴리가 생기고 있다. 정치세력간의 타협성 때문이다. 또 흑빈백부(黑貧白富)의 구도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과거 독재정권이 구조적으로 수행했던 인종차별 정책을 해소시키는 데는 법적인 해결과 진실규명만으로는 미흡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과거청산 작업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와 공동체내의 빈부격차 해소 등과 같은 경제적·정치적 문제들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 과거청산 문제는 주로 실종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76년 이후 군사독재정권은 조직적인 인권침해 과정에서 3만여명의 실종자를 낳았다. 83년 과도정부는 그러나 ‘국민화해법’을 통과시켜 군부에 의해 저질러진 모든 형사적 범죄에 사면을 단행했다. 89년 메넴 정권도 거의 대부분의 군인들을 사면했다. 이렇게 아르헨티나 과거 청산문제가 번번히 무산된 것은 군부의 조직적 반대 때문이다. 남아공과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군부중심의 구세력이 여전히 정치적실세로 작용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위의 예에서 본다면 과거청산 작업은 과거청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는 시민사회가 정치적 요구 수준을 벗어나 정치세력화 해 그 흐름을 주도해야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보훈법 문제점과 개선방향/국가유공자 예우 특별법 제정을/金三雄 서울신문 주필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각급 보훈대상자와 그 유가족들을 홀대해 왔다. 특히 민주화와 통일운동,노동운동으로 희생된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는 이제라도 보훈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친일경력자의 독립운동가로의 둔갑 사례를 바로잡고 4·19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가운데 유신을 지지한 사람이나,5·18 광주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훈장을 받은 쿠데타 주역들의 서훈을 치탈해야 한다. 아울러 민족민주열사들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우하거나 광주민주항쟁 희생자와 똑같은 차원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밖에정부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첫째,열사·희생자 중 긴급조치·반공법·보안법·계엄법 등에 의해 ‘범죄자’로 기록된 경우 유죄선고를 무효화해야 한다. 둘째,정부와 국회 주관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고 위령탑을 세우는 한편,마석 모란공원을 민족민주열사 묘역으로 성역화해 산재된 시신을 모셔야 한다. 셋째,희생자들의 정신을 승화시키기 위해 교과서에 사실을 기록하고 추모주간을 설정해야 한다. 넷째,국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의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다섯째,진실 규명과 국민화합을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그리고 국민대표로서 ‘과거청산과 미래창조를 위한 국민화합 위원회(가칭)’ 같은 것을 만들어 피해자의 한과 가해자의 참회가 한마당에서 융화되도록 해야 한다. ◎民辯 작성 2개 특별법 시안 열사 범추위는 민주열사 유가족 및 민족민주 운동단체들의 최대 현안인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민족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등 두가지 특별법이 올 가을 정기국회에서 제정되도록 힘쓰고 있다. 범추위는 이달말까지 자체 시안을 확정해 여야당에 보낼 예정이다. 이의 초기작업으로 민변이 작성한 두 특별법의 시안골자는 다음과 같다.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안) △의문사란 사인이 명백히 자연사로 확인되지 않고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대통령 직속하에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두며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 3인씩 선출. △위원회는 필요한 경우 검찰총장 등 관련기관의 장에게 수사협조 요청 및 소속공무원의 파견 등을 요청할 수 있음. △위원회가 관할 지방검사에게 영장청구를 요청하는 경우,검사는 이를 관할 지방법원에 신청하여야 함. △사건 조사기한은 2년 한정. △위원회는 혐의가 인정될 경우,관련자를 검사 등에 고발해야 하며 검사 등이 공소제기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관할 고등법원에 재정신청해야 함.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조사 사건과 관련된 공소시효는 정지되며,발효이전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에도 이 법률 적용.◆민족민주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에 관한 법률(안) △‘민족민주 유공자’는 해방 이후부터로 시기 제한. △민족민주 운동의 정의에 관해 전문가 의견 참고후 확정. △민족민주 운동을 위한 활동과 관련하여 사망했거나 상이를 입은 자와 함께 민족민주 운동에 특별한 공적을 남기고 사망한 자도 유공자 적용. △유족의 범위,등록 및 결정,예우에 관한 구체적 내용은 국가유공자등 예우및 지원에 관한 법률 5조를 적용. △보상은 공헌과 희생의 정도 및 생활정도를 고려하여 달리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체적 내용은 시행령으로 정함. △유공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 위원회는 9인으로 하고 대통령,국회,대법원장 각 3인씩 추천. △민족민주 운동을 이유로 한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형사소송법 420조 및 군사법원법 469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음. △민족민주 운동을 이유로 요시찰인 명부 등재,여권발급 절차 예외적 취급 등 불이익 행위를 당한 자는 서면으로 위원회에 불이익 행위의 판정을 신청할 수 있다. 심의 결과 불이익행위로 인정된경우 위원회는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함. △정부는 민족민주 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해야 함. 위원회의 의결에 의햐며 정부는 유공자를 추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사업비 등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음.
  • 金 대통령과 望月洞/87년 이후 정치적 고비때마다 참배

    ◎이번 방문 국민대통합의 계기 기대 金大中 대통령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방명록에도 ‘대통령 金大中’이라고만 썼다. 굳은 표정으로 제단에 선 金대통령은 향을 피우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제단에는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쓴 조화가 놓여 있었다. 5·18 희생자 영정 261위를 모신 유영봉안소에서는 헌혈하다가 총탄에 맞은 고 박금희양(당시 전남여상 3년)과 어머니와 함께 걸어가다가 숨진 김완봉군(당시 무등중 3년)의 영정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잠기는 듯했다. 비온 뒤 한껏 푸르른 광주 망월동 5·18묘역은 이 곳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그리고 이제는 대통령이 된 金대통령을 이렇게 맞아 들였다. 金대통령이 망월동 5·18묘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5월16일 5·18묘역 성역화사업 준공식 참석을 겸해 참배했었다. 그때 金대통령은 방명록에 ‘永遠한 勝利’라고 썼었다. 제15대 대선승리를 예감했던 것일까. 이에 앞서서는 87년 6·29선언으로 사면이 된 직후였다. 그러나 모두 야당총재나 지도자 자격이었다.현직 대통령의 5·18묘역 방문은 金대통령이 처음이다. 金泳三 전임 대통령은 취임 후 매년 망월동 묘역 참배를 시도했지만 남총련 학생과 일부 5·18 관련단체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5·18묘역은 金대통령과 숱한 정치적 인연도 맺고 있다. 96년 4·11총선 패배 직후 등 정치적 고비때마다 이곳에 들러 새출발의 결의를 다져왔다. 이번엔 국난극복과 국민통합을 위한 ‘제2건국운동’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용서와 화해의 완결,그리고 사회통합의 첫걸음으로 비쳐지길 기대하고 있었다.
  • ‘의로운 희생’제자리 찾기 첫 발/민주열사 명예회복委 결성 의미

    ◎의문사 규명·묘소 성역화·배상 함께 추진/특별법 제정 목표… 추모제·서명운동 전개 40여개 재야 및 시민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3일 출범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 범국민추진위원회’(열사 범추위)는 지금까지 유가협 등 일부 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희생자 명예회복운동을 범(汎)재야 차원에서 본격 추진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열사 범추위는 이를 위해 올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및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참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마련한 초안을 기초로 각계 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 달 초에는 공청회도 가질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韓忠穆 집행위원장은 “지난 달 24일 일부 국회의원들과 특별법 제정취지를 설명하는 간담회를 가졌다”면서 “10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특별법 취지에 동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기국회가 개회되면특별법 제정을 청원한 뒤 국회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는 방안도 강구중”이라고 덧붙였다. 특별법에는 △민주민족열사 명예회복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조사위 구성 △민주민족열사 묘소 성역화 △국가의 배상규정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열사 범추위는 또 유가협 등 일부 재야단체가 매주 금요일 서울역 광장에서 펼쳤던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1인당 1,000원의 광고기금 모금운동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유관단체나 유가족의 행사에 그쳤던 열사 추모 및 기념사업도 범국민적 행사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이밖에 다음 달 14일부터 1주일 동안 계속되는 제3차 열사 추모 및 기념주간 행사에서는 희생자들이 죽음을 맞은 장소에 희생자의 이름을 붙여 ‘열사의 거리’로 지정하는 선포식도 갖는다. 19일에는 범국민 추모제도 거행된다. 참여 단체들은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열사 범추위를 ‘민족민주열사 범국민 추모사업회’로 발전시키기로 하고 다음 달 중순쯤 준비위를 구성할 계획이다.
  • 白凡 기념사업협회 신임회장 李壽成씨

    ◎白凡 민족사랑 널리 알리겠다”/南北 화해는 白凡 평화통일론의 구현/국민 모금운동 벌여 기념관 건립 계획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새 회장으로 선출된 李壽成 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의 방북과 금강산개발 협정체결 등 남북화해 움직임은 金九 선생의 자주적 평화통일론이 반세기만에 다시 구현되는 것으로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주요 과제는. ▲金九 선생의 사상과 생활철학을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시대에 뒤떨어진 말처럼 들리는 잘못된 오늘의 현실에서 백범의 헌신적 민족사랑 정신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세속적인 자신의 이익보다 언제나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 백범의 생활철학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교훈이다. ­백범기념협회 운영 방안은. ▲백범 관련 사업과 협회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회원수를 늘리고 정부와도 긴밀한 협조를 하겠다. 백범기념협회 회원은 독립유공자 자녀,백범 흠모자 등을 포함,현재 14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백범기념관 건립문제는. ▲기념관은 전국민의 모금운동을 통한 국민의 이름으로 지어져야 한다. 장소는 경교장(京橋莊) 등 金九 선생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장소는 관계자 및 정부와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념관은 백범사상과 민족사랑 정신을 배우는 훌륭한 교육장소가 될 것이다. ­金九 선생 등 독립투사들이 안장돼 있는 효창원의 성역화 작업은. ▲金九 선생 묘역등은 국립묘지 수준으로 성역화돼야 한다. 효창원을 독립운동이나 민족의 성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범 재평가에 대해서는. ▲백범은 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영웅이다. 세계의 영웅중 일부는 과대 평가된 인물도 있으나 金九 선생은 진정한 민족의 영웅이다. 과거의 정권은 백범을 국민으로부터 유리시키려고 시도했다. 국민은 백범을 존경했으나 집권세력은 그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 했다. 그러나 새정부는 백범을 다시 국민의 편으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회장을맡게 된 동기는. ▲처음에는 여러번 고사했다. 부회장은 몰라도 감히 회장은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6월18일 회장에 선출됐다. 金九 선생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님과 함께 경교장을 방문,金九 선생을 처음 만났다. 金九 선생은 ‘李壽成 學仁’이라고 쓴 백범일지를 주셨다. 그후 백범일지를 100번이상 읽었다.
  • 白凡 재조명:4·끝(정직한 역사 되찾기)

    ◎“위대한 白凡사상 새정부서 법통 계승”/통일염원 안고 넘었던 38선 반세기 만에 다시 열려/京橋莊 반드시 복원… 문화재로 지정 영구보존 해야 서울신문은 ‘정직한 역사 되찾기’ 일환으로 백범 金九 선생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면서도 잘못된 평가를 받아온 金九 선생을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백범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통해 일그러진 현대사와 가치관의 혼돈을 바로잡고 사회정의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金九 선생의 업적·사상·통일론 등과 이들을 오늘의 현실에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는가를 백범 재조명을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통해 알아본다. 서울신문 金三雄 주필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는 金九 선생 아들 金信 장군,저명한 백범연구가인 金祐銓 전 광복회부회장과 李萬烈 숙대교수(한국사 전공)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 金信(金九 선생 아들) 金祐銓(전 광복회부회장) 李萬烈(숙명여대 교수) 金三雄(사회·주필) ▲金三雄 주필=金九 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은지 50년만에 鄭周永현대명예회장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땅을 밟았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정황은 물론 다릅니다. 하지만 백범이 갔던 길을 반세기만에 鄭명예회장이 다시 간것은 중요한 역사의 발전입니다. 백범이 서거한지 거의 50년만에 백범노선과 같은 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며 정경분리·상호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에 물꼬가 트이고 있습니다. 金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중 미국도 대북 제재중 일부를 해제할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국제환경과 남북관계의 이러한 변화로 백범노선을 실천할 수 있는 단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오늘의 상황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백범사상과 통일론 등에 대해 우선 논의해 보죠. ○좌·우파 모두 포용… 문화국가 건설 ▲李萬烈 교수=백범은 동학·유학·불교·기독교 등을 섭렵하며 그들을 민족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완전히 용해시켰습니다. 다원적 종교가 있는 사회에서 여러 종교를 민족주의로 수렴시킨 것은 큰 의미가 있죠. 백범은 또 좌파세력과 민족주의 우파의 통합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한 포용력을 배경으로 독립과 통일,더 나아가 문화국가 건설을 지향했습니다. 통일이 안되면 완전한 자주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차원 더 높은 문화국가는 더욱 어렵다고 인식했죠. 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金주필=백범은 임시정부를 27년간이나 이끌었습니다. 그러한 예는 세계사에도 없는 일이죠. 독립운동사에서 백범의 역할과 위치는 어떻습니까. ▲金祐銓 부회장=임시정부에서 백범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의 화신이었죠. ▲金주필=그러나 백범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李교수=백범 반대세력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죠. 통일지향 세력이 아니라 남북분단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백범의 자주적 평화통일론을 묵살했습니다. 집권세력은 백범의 업적도 평가절하했죠. 백범에 대한 잘못된 평가의 긴 그림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金주필=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자격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귀국후에도 주도권을 잡지 못했죠. 해방공간에서 백범이 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고 생각합니까. ▲金부회장=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주도권은 잡았으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미국과 갈등을 빚었죠. 5·10선거 후에도 국회에서 金九 선생 지지가 많았어요. 남북협상 때도 108명의 문화인이 지지성명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金九 선생이 돌아가신 후 반대파가 정권을 잡아 빛을 보지 못한것 뿐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미국의 입장에서 백범을 본 오류의 결과입니다. ▲金信 장군=주도권 문제와 관련,金부회장의 생각과는 조금 다릅니다.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어요.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미국의 강요로 개인 신분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는데다 친일세력의 조직적인 반발로 어려운 상황에 빠졌죠. 친일세력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판단아래 똘똘 뭉쳤습니다. 일본에 아부했듯이 그들은 미군정에 아부했고 李承晩에게도 아부했습니다. 李박사정권에서 권력의 핵심을 차지했죠. 현대사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가족에게 고통을주고 개인과 조상을 희생하면서 싸워온 독립투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때 친일파 형사들에게 잡혀갔던 독립투사들이 해방후에 다시 그들에게 잡혀가는 기막힌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친일세력들은 해방후 당연히 벌을 받고 독립투사들은 보상을 받았어야 했는데 거꾸로 됐죠. 그때 잘못된 역사 청산작업 때문에 현대사가 일그러진 것입니다. ▲金주필=백범은 분단을 거부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협상을 추진했습니다. 남북협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남북지도자 공동성명 발표 큰 의미 ▲金부회장=남북협상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된 평가입니다. 대표자 연석회의는 북측의 각본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성과가 없었지만 백범이 관심을 가진 것은 남북지도자 회담이었어요. 金九 선생,金奎植 박사,金枓奉,金日成 등 4명의 지도자들은 4월30일 회담후 공동성명까지 발표했죠. 공동성명은 전문과 4개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통일정부 수립을 명시하고 있어요. 남북지도자가 만나 공동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북한 단독정부 수립도 적극 반대 ▲金장군=평양에서 아버님이 연설하실 때 남쪽만의 단독정부는 절대 반대한다고 말씀하시자 열렬한 공산당식 박수가 터져나왔죠. 그러나 북쪽에서의 단독정부 수립도 반대한다고 하시자 장내는 조용했습니다. 북쪽만의 단독정부 수립도 반대한다는 것은 언론에도 일체 보도되지 않았어요. 북측도 남쪽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다는 내용만을 발표했습니다. ▲金주필=백범의 자주적 평화통일 정신을 오늘의 상황과 어떻게 연계시킬수 있을까요. ▲金장군=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초기에는 민족주의자 뿐만 아니라 좌파와 무정부 인사도 참여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충칭(重慶)으로 옮겨왔을 때도 연합정부였죠. 연합정부였던 임시정부의 법통과 아버님의 통일론을 이어받아 통일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독립운동 때도 독립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일은 비현실적이라는 비관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독립을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통일도 지금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통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金주필=임시정부는 1941년 대일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주체가 되어 전승국으로 대접받고 전후 처리문제에서도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었죠. 그러나 연합국은 그러한 대접을 해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李교수=프랑스는 소극적이나마 임시정부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영국 등은 인정하지 않았죠. 미국은 임시정부가 분열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정부를 인정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핑계에 지나지 않았어요. 사실은 독립운동때 임시정부가 중국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은 자신들의 식민지 때문이었죠. ▲金주필=시해되던 날은 일요일이었는 데도 金信 장군은 그날 옹진에 가셨죠. 암살음해 세력이 金장군을 떼어놓기 위한 음모는 아니었나요. ▲金장군=유엔대표단과 함께 갔었습니다. 그러나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어요.어떤 음모가있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평양에서 돌아온 후 암살에 관한 여러가지 풍문이 많았고 그것들을 여러차례 아버님께 말씀드렸죠. 돌아가시기 이틀전에는 박동엽씨 등 2명이 경교장으로 찾아와 보다 안전한 병원에 입원시키라는 말도 했어요. 그말을 아버님께 전했으나 나는 떳떳하며 겁낼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기념관 건립·학술상 제정 등 절실 ▲金주필=새정부의 탄생을 계기로 임시정부의 법통계승과 백범사상을 이어받을 사업을 추진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백범 기념관 건립,전집 출판,학술상 제정,백범과 3열사의 묘가 있는 효창공원 성역화 작업 등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기념관 건립과 관련,李교수께서 말씀해 주시죠. ▲李교수=백범 기념관은 꼭 필요합니다. 서거 50주년(1999년)이나 2000년의 새 세기가 시작되기전 기념관이 지어져야 합니다. 건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요. 기념관을 지을 때는 국민의 이름으로 지어야 합니다 이상적인 장소는 서대문형무소 자리일 것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오랫동안 옥고를 치렀고 그곳은 통일로의 출발점입니다. 백범의 독립과 통일정신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이죠. 효창공원도 국립묘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의 망월동 묘지는 이미 국립묘지 수준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효창공원이 국립묘지 수준이 안된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金주필=백범이 머물렀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문제는 어떻습니까. ▲金부회장=영구 보존을 위해 우선 문화재로 지정해야 합니다. ▲金주필=백범을 기념하는 독립상과 통일상 등을 만들면 어떨까요. ▲李교수=좋은 생각입니다.그러나 셋방살이도 꾸려가기 힘든 백범기념협회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상을 만들려면 백범의 이상인 독립국가·통일국가·문화국가를 상징하는 독립·통일·문화상을 만들고 차차 확대하는 것이 어떨까요. ▲金주필=金九 선생에 대한 여러가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민족의 큰 스승인 백범의 사상과 통일론 등이 명실상부한 민주정부로 제2건국이라 할 수 있는 金大中 대통령 정부에 의해 이땅에서 완벽하게 구현되고 남북의 화해와통일로 이어지도록 모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집니다.
  • 白凡 재조명:3­1(정직한 역사 되찾기)

    ◎통일사상의 정수/“自主없는 통일 허구” 날로 새로워/列强 간섭 배제하고 ‘민족의 힘으로’ 역설/지역·이념 뛰어넘는 화합의 정신 일깨워 20세기 후반 세계사를 지배하던 냉전은 끝났다.그러나 한반도의 냉전은 과거사가 아니라 여전히 현실이다.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거대한 시대의 흐름도 남과 북의 이념적 분단의 벽은 넘지 못했다.철옹성 같은 분단의 벽을 넘어 화해와 통일의 길로 가는 일은 이 시대 우리들의 소명이다.그 일의 출발점을 金九 선생의 민족화해와 자주적 평화통일론에서 찾으면 어떨까. 백범이 추구한 이상의 완결편은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이었다.그는 생의 마지막 부분을 민족통일을 위해 바쳤다.1948년 2월엔 ‘3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시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했다.백범은 냉전이라는 불리한 국제정세와 이승만과 김일성이 각각 미국과 소련을 배경으로 단독정부를 구성하려는 어려운 시대상황에서도 통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남북협상을 위해 1948년 4월19일 38선을 넘었다.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방문했다.북측에 의해 미리 짜여진 각본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그러나 남북협상의 성공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민족의 자주적 힘에 의한 평화통일 노력 그 자체도 중요했다.민족의 운명을 외세에만 맡기지 않고 자주적 통일을 위해 힘 쓴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은 소중한 역사다. 백범은 한반도가 분단의 위기에 빠지자 정치·이념적인 반대세력과도 손을 잡았다.그의 통일노력은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백범은 남북한에 단독정부가 수립되면 민족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통일의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그의 우려는 모두 현실화됐다.한반도에는 이념적 분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남쪽에는 정치·지역감정에 의한 또 하나의 분단이 있다.그 ‘마음의 분단’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이번 6·4지방선거에서 다시 확인됐다. 지역감정·혈연·이념 등에 의한 분열은 민족의 화합으로 바뀌어야 한다.백범의 애국적 민족사랑은 좋은 전환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념과 정치적 이익을 초월한 백범의 민족사랑 정신은 세속적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배워야할 중요한 덕목이다. 백범의 자주적 평화통일론도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오늘의 유효한 통일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한반도 통일은 물론 우리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미국·중국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도 중요한 변수다.강대국들은 그러나 한반도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적극적이고 자주적인 노력 없이는 통일은 불가능하다.백범의 자주적 통일론이 오늘의 통일정책에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는 지금 과거와 다른 차원의 남북교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그러한 변화를 남북화해로 승화시키기 위해 그동안 ‘박제’됐던 백범의 민족화해와 통일론에 생명을 불어넣어현재화해야 하지 않을까. 백범은 ‘今日我行跡(오늘 내가 걸어간 자국은) 遂作後人程(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니라)’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휘호로 즐겨 썼다.그가 넘었던 38선을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6일 다시 넘는다.반세기만에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그의 더 큰 소망인 민족의 화해와 통일도 가까워질 것이다. ◎DJ와의 인연/상대후보 백범암살 배후 드러나 3選 의원에/효창공원 골프연습장 공사 중단시켜 “報恩”/기념사업회 이사… 동상 건립 적극 재정 지원 金九 선생과 金大中 대통령은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민족의 큰 지도자 백범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을 때 金대통령은 20대 초반이었다.그러나 두사람간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운명적인 인연이 있다. 그들의 인연은 60년대 중반 金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빠졌을 때 그가 존경하던 백범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며 시작됐다. 金대통령은 67년 7대 총선에서 힘겨운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朴正熙 정권은 야당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당시 金大中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집권당인 공화당의 물량공세로 金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목포는 흥청거렸다. 집권당의 전략적인 집중 공세로 金대통령의 3선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그에게 ‘행운의 여신’이 나타났다.상대방 후보였던 김병삼(당시헌병 대위)씨가 백범 시해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金대통령측에서 알아차린 것이다. 金洙振(66·현재 국민회의 당총재 특보)씨는 선거 열흘전쯤 김병삼씨 관련 내용을 담은 책을 준비했던 金龍熙(77)씨를 찾아가 金大中 후보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金씨는 상대방 후보가 김병삼이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기로 했다.金씨는 李承晩 정권이 무너지자 안두희를 잡아 검찰에 넘긴 사람이다.그는 안두희의 고백과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병삼씨의 관련 내용을 담은 ‘이것이 진상이다’라는 책을 준비했다. 金大中 후보 진영은 절판됐던 이책을 비밀리에 다시 제작했다.투표 나흘전인 6월4일 목포역에 15만명 이상의 군중이 모였다.박순천 초대 신민당당수는 “공화당후보 김병삼씨는 백범암살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입니다.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폭로했다.‘이것이 진상이다’라는 책 3만5,000부가 즉석에 배포됐다.선거분위기는 급변했다.6월8일 투표결과 金大中 후보가 당선됐다. 金大中 대통령은 백범 추모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그때의 간접적 도움 때문에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백범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67년 서울시가 효창공원내 백범묘소와 3의사(義士) 묘소중간에 골프연습장을 만들기 위한 공사를 했었다.국회건설위 소속이었던 그는 공사를 중단시켰다. 그는 백범기념사업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매년 백범 추모제에 참석해 왔다.남산에 백범동상을 세울 때도 자금지원을 했다. ◎초라한 ‘묘역 성역화’/담장교체·소나무 식재 기념관 건립 예산 부족/구청 녹지과 관리맡아 “국가관리 필요” 여론 金九 선생의 묘는 효창공원에 있다.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의 묘도 함께 있다.많은 사람들은 최고 지도자였던 백범을 비롯 7명의 애국지사가 안장돼 있는 선열들의 묘를 국립묘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지금 효창공원의 장·단기 성역화 작업을 하고 있다.단기계획(97년∼99년)에 따라 담장 교체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용산구청의 유동렬씨는 1,326m에 이르는 담장공사는 연말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소나무 600그루도 새로 심었다.호국이념을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높이 11.7m 폭3m)도 공원입구에 세울 예정이다.장기계획은 7명의 애국지사들을 위한 기념관 건립이다.하지만 예산이 문제라고 유씨는 말한다. 성역화 작업이 진행중인 효창공원은 그러나 국립 현충원(국립묘지)과 비교할 때 너무도 초라하다.국립묘지는 국가가 관리하지만 효창공원은 용산구청의 공원녹지과에서 관리한다.기능·고용직 공무원 7명이 관리인의 전부다. 백범기념사업협회의 선우진 상임이사는 金九 선생이 귀국후 45년 12월부터 49년 6월 암살당할 때까지 3년6개월간 숙소 및 집무실로 사용했던 경교장(京橋莊)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고/세계화시대의 백범/都珍淳 창원대교수·한국현대사 백범이 안두희에 의해 비운의 생을 마감하자,엄항섭은 그의 서거를 ‘달은 하나지만 뭇 강에 자신의 모습을 도장처럼 박아내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표현하였다.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아로새길 민족주의자 백범의 월인천강은 남아 있는가. ○개방과 주체 선택 강요 한반도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강대국에 휩싸여 있어 선진 문물의 수입 등에서 적지 않은 장점도 있지만,사대와 식민 그리고 분단의 역사가 증거하듯 늘 강한 원심력이 작용하였다.따라서 한반도의 ‘역사적 화두’는 늘 대외적 개방과 민족적 주체를 겸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대개 어느 하나로 편향되는 경향을 띄었고,그 극단에 민족적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다.개방과 선진만 쫓아가면 사대·식민·분열의 굴레로,주체와 자주만 강조하면 후진과 망국의 역사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가.지난해 말 나라가 환란(換亂)위기에 빠진 이후,이제 우리는 진정 세계화되어 가고 있는 지 모른다.삼척동자도 IMF을 운위하고,뉴스는 언제나뉴욕 월가(Wall Street)의 동향을 전하며,국내 증시 또한 이에 따라 춤추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는 민족현실에 굳건히 뿌리 내린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때문에 작금의 현실은 백범이나 민족주의를 박물관의 골동품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과거에 대한 추모를 넘어서 현재적 생명력으로 되살려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대의 과제는 남북의 화합과 통일이라고,누구나 이야기한다.그러나 그것은 단지 관습적·수식적 문구(文句)에 지나지 않고 생활력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기 위해 최근 외국의 한반도 문제 권위자나 기관의 진단을 들어보자.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라느니,‘북한이 붕괴하더라도 유엔 관리하에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느니,‘남·북한이 민주적 분단관리체제로 영연방과 같은 느슨한 연방(confederation)이 필요하다’는 등의 언급은 다름아닌 ‘분단체제에 대한 균형적 관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최근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적 발언’이 아니라,역사와 구조를 지닌 ‘전략적 개념’들이다.북한이 강한 군사력으로 남한을 통일하려 했던 한국전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나,소련·동구권의 붕괴 이후 남한이 우월한 경제력으로도 북한을 흡수하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강력하고 일방적인 통일 한반도의 출현을 열강들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분명 ‘냉전적 대립’에서 ‘평화적 교류’로 나아가고 있지만,그것이 통일의 기초가 될지 분단의 장기 지속을 초래할 지는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따라서 우리는 두번 깨어나야 한다.먼저 남북 사이에 누가누구를 삼킬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하며,다음에는 평화를 넘어 통일에 이르는 길은 자주적 노력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필요가 있다.강대국이 해줄 수 있는 최대치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보장이다. ○강대국 역할 제한적 해방 직후 백범도 좌우·남북의 체제 대립적 정치구도의 한가운데 있었다.그러나 민족 분단의 위기가 박두하는 것을 목도하면서,그는 좌우·남북 대립의 구도 속에서 유실되었던 민족문제에 다시 주목하여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호소하였다.민족을 위한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이것이야 말로 백범이 남긴 월인천강의 핵심인 것이다.이후 백범이 노래한 시와 글도 모두 ‘자주적 평화통일’로 요약되거니와,그의 죽음도,그리하여 그의 부활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남아 있는 백범의 모습은 어떠한가.정치적 입지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위해 백범을 거론하면서도,그 생애의 총 귀결점인 ‘평화통일의 민족적 백범’은 허다하게 유실되어 있는 실정이다.백범은 자신의 미진한 바를 민족 앞에 바로 세웠으되,추앙한다는 우리는 백범를 다시 거꾸로 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 김정일일가 우상물 올 59개 건립

    ◎경제­식량난 불구 규모 코고 호화 치장/총비서 승계후 박차… 생모 김정숙것도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올들어 많은 돈과 인력을 동원,김정일일가에 대한 우상물 건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들어 건설된 김정일가계 우상물은 지난 2월15일 남포 강서구역 혁명사적지에 김일성현지지도사적비를 세운 것을 비롯,3일 김책공업대학에 건립된 김정일-김정숙 말씀판까지 무려 59개에 이른다.사람별로는 김일성에 관한 것이 31개,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49년 사망)에 관계된 것 19개,김정일의 것이 9개이다.우상물은 김일성의 영생탑을 비롯 현지지도표지비,혁명사적비,말씀판 등이다.올해 진행된 북한의 우상물 건립의 특징은 ▲김일성의 치적에대한 재평가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박차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우상화에 의한 ‘혁명혈통’ 강조 ▲김정일의 총비서직 승계후 건설이 급증하고있는 점 등이다. 북한은 올해 김일성의 3년 탈상을 맞아 김일성을 신격화에 힘썼다.지난 7월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 연호를 사용키로 했으며 이에 앞서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을 ‘민족최대의 명절’에서 ‘태양절’로 격상했다.이는 김정일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김일성에 대한 업적을 최대한 부각시킴으로써 김일성이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라는 것을 과시하고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훈통치의 그늘에서 탈피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의 우상물을 규모가 크고 호화스럽게 치장돼 있다.지난 7월7일 금수산기념궁전지구 금성거리 입구에 세워진 김일성의 영생탑은 높이가 92.52m나 된다.북한은 이 탑을 제막하면서 금수산기념궁전의 성역화사업의 완료를 선언했다.지난 10월말 남포시 청산리에 세워진 김일성동상도 규모가 크다.부지만 무력 8만4천㎡에 이른다.지난 9월10일 태권도전당에 세워진 김일성의 현지교시판에는 김일성의 모습을 각종 보석을 넣어 그려놓았다. 김정숙에 관한 우상물 건축도 부쩍 늘었다.지난해 12월22일 청진시 청암구역에 김정숙의 혁명사적비를 세운 것을 시발로 올해만 19개의 우상물을 만들었다.북한은 최근 김정숙 출생 80주년(12월24일)을 앞두고 함경남도 이원군차호노동자구를 김정숙혁명사적지로 지정,성역화하는 등 우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는 김일성에 대한 숭배와 더불어 처인 김정숙을 ‘3대장군’의 한명으로 추켜세워 위대성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일이 가진 ‘혁명가계의 혈통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김정일의 우상물은 지난 2월14일 평남 맹산군에 김정일현지지도 사적비가 올들어 처음으로 세워졌으며 7월24일엔 판문점대표부에 현지지도표식비가 들어섰다.올해 세워진 김정일우상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난 7월 금성정치대학에 세워진 ‘김정일·김일성말씀판’이다.각각 길이 40m,높이 4m 크기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많은 우상물 제작에는 엄청난 돈과 인력이 동원돼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북한은 앞으로도 민생문제 해결보다는 김정일 일가의 우상물 건립을 계속 늘려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금수산궁전 조기완공 박차/중앙방송/군인외 일반근로자도 동원

    북한은 금수산지구 조성사업을 빨리 끝내기 위해 군인과 건설노동자들은 물론 정무원 위원회·부,공장·기업소 근로자까지 대거 동원하고 있다. 중앙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을 발휘해 금수산기념궁전 지구를 주체의 최고 성지로 보다 훌륭히 꾸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아미산금릉동굴,주택,원림녹화 등 성역화 조성사업에 정무원,근로자,학생들까지 동원해 노역배가를 다그치고 있다.특히 김정일은 최근 금수산지구 조성사업 조기완공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이들 군인,건설자들과 근로자들에게 감사를 보냈으며,주민들에게도 지원활동을 강화할 것을 독려하는 내용의 감사를 전달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 침체되는 변경무역(김정일의 북한:10)

    ◎북 교역물자 바닥… 통상구 11곳 거래 줄어/민둥산 천지에 목재수출도 한계 맞아/민생투자 확대… 경제복구만이 해결책/“사올 물건이 없다” 조선족 보따리장수 발길 끊어 중국 임강에서 시장의 안내로 민간인 통제구역인 임강시­북한 중강진시를 연결하는 다리 중간까지 갈수 있었다.아래에는 압록강이 도도히 흐르고 건너 초소에는 북한군 병사가 쌍안경으로 경계하면서 어디엔가 전화하는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곳 임강­중강진 통상구는 중국과 북한간에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상호간에 교역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압록강·두만강을 따라 1천406㎞의 국경지대에는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통상구 11개가 설치돼 있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서 매일 약 200여대의 트럭이 목재를 싣고 이 다리를 건너 임강에 와 식량과 교환하는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대부분 민둥산인 북한에서 계속 목재를 수출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니,그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들어 점차 거래가 줄어들고 있으며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자문자답(자문자답)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시장은 꼭 안내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말했다.함께 간 곳은 압록강에 있는 조그만 모래섬으로 위락시설을 갖춘 공원이었다.김일성과 모택동간의 회담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에 있는 모든 섬들은 북한령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모든 섬들은 북한령이다.그러나 이 섬만은 중국령이 됐다는 것이다.그것은 이곳이 본래 섬이 아니라 모래톱이어서 김일성­모택동 합의사항에서 제외돼 중국령으로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중국령이 된 뒤 임강시에서 이를 개발해 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작년 교역액 260억원 조그마한 위락시설이지만 요모조모 갖춰져 저녁이 되니 가족 동반객,남녀 데이트족,놀러나온 선남선녀들로 제법 북적거리기 시작하면서 썰렁하고 캄캄한 북한과 대조를 이뤘다.특이한 것은 공원 중앙에 커다란 야외 무도회장(입장료 1인당 1원·한화 100원)이 있는데,동네 미남미녀 10여명이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었다.필자 일행도 들어가 보라고 해 잠깐 구석에 앉았다.아무에게나 춤을 신청해 춰보라고 하지만 춤문화에 깜깜한우리 일행은 꿀먹은 촌놈처럼 어정쩡하게 앉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행중에 춤에 자신이 있다는 한두사람이 함께 간 안내양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그러나 중국인들과 비교해 보니 그건 춤이 아니라 그냥 끌어안고 왔다갔다하는 모습이다.얼마 안돼 안내양이 안되겠다는 듯이 춤을 멈추고 돌아왔다.발을 너무 자주 밟아서 안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춤문화는 익히 정평이 나 있지만,이런 오지에서도 여전해 자유스런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수십리 밖에 사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춤을 추기 위해 화려하게 차려 입고와 호흡이 맞는 파트너와 춤을 추려고 기다리고 있었다.춤을 추고 있는 몇쌍은 직업적인 댄서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도 아름답게 보여 춤하면 퇴폐적으로 흐르는 우리 문화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다음날 하루종일 압록강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달려 장백현에 도착했다.임강­중강진시와 마찬가지로 장백현­북한 혜산시 통상구로 지정된 곳이다.이곳에서도 북한에서 목재를 싣고와 식량과 교환한다고 한다.작년 교역액은 중국돈으로 2억6천만원(한화 2백60억원)이었다고 장백현의 한 공무원이 알려줬다.이러한 거래는 공식거래로 이뤄지는 것으로 물물교환의 형태로,당일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점이나 지사를 두고 있지 않다고 한다.교환비율은 어떻게 정하느냐는 질문에 국제시세에 맞춰 사전에 정해 놓은 교환비율을 적용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적거래나 밀무역은 얼마나 되는지 포착하기 어렵지만 당국에서 통제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사적거래는 고향방문의 형태가 일반적인데,북한에서는 중국으로 오기 어렵지만 장백현에 사는 사람들은 비자없이 혜산시에 30일동안 체류할수 있기 때문에(혜산시 이외의 곳을 방문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함) 고향방문 신청을 하고 식량을 가져가 인삼·명태 등과 교환해 돌아온다고 한다.그러나 요즘은 북한에서 교환해올 만한 상품이 거의 없어 사적거래나 밀무역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시장경제 도입 실험대 옛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체계가 일시에 시장제도를 채택하면서 사회주의 체제가붕괴된데 비해 현재까지 중국은 시장경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잘 조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따라서 체제유지가 우선인 북한은 중국의 점진적 개방정책 노선을 견지할 것이라는 것이 예견됐다. 전환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를 보면서 북한 체제도 개방과 시장제도의 도입이 필연의 수순임을 감지할 수 있지만 체제유지라는 절체절명의 명제에 빠져 개방과 시장제도의 도입을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이미 84년 합영법을 제정해 제한적으로 자력갱생을 통한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수정,문호개방을 준비했으며 91년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설립안을 발표해 시장경제의 제한적 도입과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개방정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다른 한편으로는 북·중 변경무역을 통해 인접지역간에 필요한 상품들을 초급적인 국제무역방식으로 상호교역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기능을 보완하면서 시장제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북·중 변경무역은 양국 정부가 지정한 통상구(구안)안에서 이뤄지고 있는데,1류 통상구는 중국 도문­북한 남양,집안­만포,삼합­회령,단동­신의주의 4곳에 설치돼 있고 2류 통상구는 중국 권하­북한 원정리,고사자­샛별,개산둔­종성,남평­노덕리,숭선­무산,장백­혜산,임강­중강진의 7군데 설치돼 총 11곳에 통상구가 설치돼 있다. 북한의 개방정책이 현실화되고 있는 두가지는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와 통상구라고 할 수 있다.이 두가지 정책이 성공되도록 돕는 것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북한 경제를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통상구 활성화 시급 그러나 북한에서 교환해 올 상품이 거의 없는 상황이므로 통상구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같다.이는 북한의 산업 복구와 발전이 선행돼야만 하기 때문이다.현재 중국에서 북한으로 문호가 개방돼 있으므로 시장 메카니즘 형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물물교환의 형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제통화로 거래되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예견된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북한은 상반기에도 민생에 필요한 투자는 안전에도 없이 금수산기념궁전 성역화 사업,김일성 부자 현지 지도비 및 사적비 사업 등 정치선전 상징물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500명을 파견한다느니,전세기를 낸다느니 하고 있다.북한은 정치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발전하고 통상구가 활성화돼야 인민이 먹고 입을수 있도록 하는데 힘써야만이 체제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