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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재참사 모녀 10명에 새 생명

    화재로 참사를 입었던 일가족이 장기기증으로 10명의 새 생명을 구하기로 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3일 오전 서울 성동구 마장동 4층짜리 주상복합 연립주택건물에서 발생한 불로 숨진 건물관리인 박원상(40)씨의 아내 방신자(41)씨와 초등학교 5학년 딸 은미(12)양의 장기를 기증받기로 했다고 6일 밝혔다. 이들은 화재 당시 유독가스에 질식해 현재까지 뇌사 상태에 빠져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지항(17)군은 5일 밤 끝내 숨을 거둬 주위를 안타깝게 해왔다. 박씨 가족은 평소 20평가량 되는 낡은 건물에 전세를 얻어 넉넉지 않게 살면서도 따뜻한 가족애로 서로를 어루만져 왔다. 지항군과 은미양은 성격이 활발하면서도 학교에서 성적도 항상 상위권을 다퉈 부부를 기쁘게 했다. 특히 박씨는 당시 1층 관리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가족과 이웃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에 뛰어들었다 화를 당할 만큼 평소 성실하고 정의감이 넘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삼촌 태환(51)씨는 “원상이가 평소 가족들이 모인 장소에서 불의의 사고가 생기면 주저없이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해온터라 사고가 난 뒤 친가와 외가 모두 가족 회의를 거쳐 고인의 숭고한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은미양의 장기 이식으로 간경화와 간암말기 환자인 최모(61·여)씨와 만성신부전증 환자 이모(34·여)씨 등 5명이 새 생명을 얻게 됐고 방씨의 장기 이식으로도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이모(47)씨 등 5명이 건강을 되찾게 됐다. 장기적출 수술이 끝난 뒤 방씨와 은미양의 시신은 강동성심병원으로 옮겨져 3일 장을 치르고 8일 오전 발인할 예정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당선소감

    [2006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당선소감

    2004년 1월이었습니다. 전 학교 후문에 자리한 ‘차나무 사이로’라는 전통 찻집에 갔었지요. 그 찻집엔 이미 내 앞을 다녀간 수많은 손님들이 자신이 다녀갔다는 흔적이나 추억 등을 한 줄의 글로 정성껏 새겨진 노트가 각 테이블마다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들을 따라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이상한 차를 기다리며 저의 씁쓸한 마음을 새겨 넣었습니다. 올해 신춘문예도 떨어졌어. 난 역시 작가가 될 자질이 없나봐. 문창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성실한 삼촌(동대 문창과 사람들은 절 이렇게 부른답니다)이 아닌 능력 있는 삼촌이 되고 싶었는데. 이런 푸념들을 한 페이지에 가득 구구절절이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노트를 덮으며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면 꼭 다시 이곳을 찾아와 이 노트를 바라보면서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리라고 다짐했었답니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제 동화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 그 때의 다짐을 되새기며 다시 그곳을 찾았지요. 그러나 그 노트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그 노트는 제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것은 무의미한 기다림이라고 생각하고 야속하게도 훌쩍 떠난 모양입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다시 돌아왔는데 말이지요. 제가 등단되는 것은 로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당선 소식에 제일 기뻐해 주신 부모님과 내 동생, 늘 저의 등단을 확신하며 격려해준 천하를 제압하는 동대문창 03학번 동기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여러 선생님들, 동대문창 희곡분과 여러분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탄생하는 데 큰 기여를 해 주신 노경실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약력 ▲1979년 전남 여수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재학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유령’ 작가의 진실/조연정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 -‘부넝숴(不能說)’ 중에서 ●편집자주:원고의 각주는 편의상 모두 본문 안에 삽입했습니다. 1. 형식에서 정서로, 혹은 인식에서 믿음으로 김연수는 똑똑하고 성실한 작가다. 이것은 물론 그의 작품이 증명해 주는 바다. 이미 첫 장편 ‘7번 국도’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에서 그것이 예고되었고,‘굳빠이, 이상’에서는 그의 ‘좌뇌’가 승한 글쓰기가 과도하다 싶을 만치 절정을 이뤘으며, 최근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는 논픽션적 자료의 편집으로 픽션을 제작하는 방식의 글쓰기(이에 대해서는 김연수 심진경 류보선의 좌담 ‘작가-되기, 혹은 사라진 매개자 찾기’,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참고)가 일가를 이뤘다고 할 만하다. 새로운 소재와 생생한 묘사라는 ‘발로 쓰는’ 글쓰기가 유행하는 가운데, 김연수는 그 나름 ‘읽고 쓰는’ 글쓰기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고나 할까? 예컨대,‘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의 보르헤스식 모티프에서 ‘연애인 것을 깨닫자마자’에 나오는 경성제대 이어철 박사의 ‘냉수를 마셔라’라는 자료에 이르기까지, 또 휘트먼의 시에서 한시에 이르기까지 그의 레퍼런스는 실로 화려하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비록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읽을 만하다. 읽을 만하다는 것은 그 자료적 풍부함과 형식적 공들임이 해석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김영하나 백민석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라는 소재적 새로움을 문단에 던져줄 때, 김연수는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다”라는 형식적 새로움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자칭 “현학적인 문학근본주의자”인 것이다. 더불어 김연수는 시대적 상처와 유관한 작가다. 첫 단편집 ‘스무 살’의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투신하는 학생 운동가라든지,‘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첫사랑’에서 수배자의 고백이라든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의 배경이 되는 광주항쟁과 지역감정의 문제라든지, 이처럼 80년대적 상황과 사회적 투쟁의 상처는 89학번 김연수에 의해 소설 안으로 계속해서 호출된다.“세대의식과 소설가적 자의식을 맞세우며 자신의 소설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갱신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물론 김연수가 등단했던 1990년도는 집단의식보다는 ‘나’가 문단의 화두였다. 한편에서는 윤대녕, 신경숙이 ‘나’를 돌아보며 내면으로 침잠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김영하가 그 ‘나’를 파괴하겠다며 나르시스트의 ‘거울’을 부수고 있었고, 백민석의 주인공들이 엽기적인 행각을 서슴지 않았으며, 여러 문화적 코드들이 혼종된 작품들도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억눌렸(렀)던 개인의 욕망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왜곡된 방식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가 드러났으며, 그 와중에 대사회적인 투쟁이나 고민은 이미 유행지난 옷가지처럼 옷장 깊숙이 처박힌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김연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성승경’의 동생 ‘승진’이 죽은 누나의 원피스를 입고 유령처럼 밤거리를 헤매듯, 그 유행지난 옷가지들을 자꾸 꺼내서 입어본다. 그는 자칭 “80년대에 가까운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옷은 역시 유행에 걸맞지 않는 터라, 더불어 이 부채의식이라 할 만한 것에 짓눌려 있기에 작가의 상상력의 궤적이 너무나 크고 그의 지적 발랄함이 너무나 경쾌한지라 “김연수에게 문학적 글쓰기는, 자신의 진실을 고통스럽게 토로하는 것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서영채,‘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봄,p328)라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김연수 식 예의 그 경쾌한 글쓰기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는 재치있는 연애소설에서 그 빛을 발하고, 결국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편집자, 주석가, 번역가로서의 그의 재구성 능력이 우연과 필연, 진실과 거짓에 관한 통찰까지 얻음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이렇게 본다면 김연수에게 80년대적 상황 혹은 세대 감각,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다소 우울한 정서의 문제는 작가가 초지일관하고 있는 형식적 구성력에의 관심, 또 그에 값하는 작가의 능력에 의해 묻혀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징후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들과 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과 비애의 정서는 “이 소설만큼은 연필로 쓰기로 결심했다.”라는 작가의 고백과 함께, 김연수의 작품 목록에서 특이한 것으로서만 간주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집의 독특함 혹은 이질성에 대한 평가는 뒤이어 나온 ‘유령작가’의 형식적 강렬함에서 더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장편 연재를 시작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문학동네,2005년 겨울호)에서 김연수는 다시 80년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끌고 오면서 전후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김연수의 ‘변전’(김형중),‘기획력’(심진경), 혹은 ‘문턱 넘기’(김연수)는 여전히 한쪽에는 세대의식, 한쪽에는 작가의식을 놓고 그 양극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소설에서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김연수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작가라는 것이다. 그가 유지해 왔고 벌써 정점에 도달한 듯 보이는 포스트모던적 글쓰기나 불가지론적인 사고에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세계인식이 “그러므로 진실은 없다.”는 냉소나 허무주의가 되지 않고,“진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도 바로 인간에 대한 끝없는 관심 때문일 텐데, 그것은 어떤 ‘정서’의 집약을 통해 스며 나오기도 하고,‘의지’ 혹은 ‘믿음’으로 실천되기도 한다.“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194.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1:페이지수)라는 식의 위로와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창작과 비평사,2005,p.28. 이하 본문에서 이 책을 인용할 경우 2:페이지수)라는 의지 같은 것들이 김연수를 해체적 허무주의자라는 평가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한복판에 항상 ‘언어’에 대한 고민이 놓인다는 점이다. 소설집의 제목에 ‘작가’라는 말을 대놓고 쓸 만큼, 또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 목록이 다수에 해당할 만큼 그에게 언어의 운용은 중요하다. 김연수 소설의 인물들이 흔히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읽고 있다는 사실도 그 증거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언어 수행 행위를 바탕으로 해서, 김연수만의 진정성과 고민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으로 이 글은 쓰여진다. 그의 형식적 기발함과 재치와 성실성에 묻혀 버린 김연수의 진정성은 무엇이고, 그가 멈추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그 질문을 지금껏 어떻게, 어디까지 해결했나? 2. 기억으로 말할 수 없는 것, 말로 기억할 수 없는 것-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작가가 그렇듯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거나 쓴다. 김병익이 지적했듯,‘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작품들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서두를 뗀다.(김병익,‘(해설)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위의 책)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는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 채 혼잣말을 계속하고, 그의 이혼한 아내는 꿈꾼 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부넝숴’와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의 화자는 아예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일방적인 편지 형식이며,‘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 친구의 자살 원인을 알기 위해 ‘소설’을 쓴다. 유서에 자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남겨 놓지 않은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고,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라는 처절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너’의 흔적을 그리고 ‘우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혼잣말이며,“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며, 편지에는 답장이 없다는 것이며, 소설 속의 인과관계 안에서는 어떤 진실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언어는 장애를 지니고 있다. 말은 할수록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처럼 단어 몇 개로밖에 소통할 수 없는 말하기가 더 단호하고 정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속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허무한 일인가. 그래도, 여하튼, 침묵은 비겁하다. 그래서 인물들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또 말하고 쓴다. 전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도 그랬다. 그렇지만 그들은 타인과 소통할 수 없음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 아니 그 점에 대해서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왜일까? ‘첫사랑’의 ‘나’는 수배중이다. 자수할 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첫사랑 ‘정인’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다. 그 편지 내용이란 건 거창할 게 없다.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역설적으로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떠올려지듯 ‘나’는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 고해성사를 해나간다. 자신의 관심이 무시당하자 정인의 뺨을 때린 일, 혜지누나에게 화풀이하듯 “남의 잔에 술이나 따르는 더러운 년이 일식은 무슨 일식”(1:114)이냐며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 등을 얘기한다. 그런 고백의 사이사이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데프콘 발동”,“직선제 개헌”과 같은 정치적 사건들을 무심히 끼워 넣는다. 그런데 그 편지는 단지 자신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망쳐버리는 동물은 사람뿐이야.”(1:114)라는 뒤늦은 뉘우침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남겨야만 한다는 초조한 마음”(1:98)에 사로잡혀 편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특별히 그 대상이 ‘정인’이어야 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정인’의 주소는 짐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되었고, 정인에 대한 기억도 따라서 우연히 떠올려 졌을뿐이다. 결국 고백을 들어줘야 할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는 지난날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다.“너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을”(1:105) 연구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나를 다치게 하지도 않으면서 너를 놓치지도 않는 방법”이 바로 자기 안에 머물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한없는 기쁨과 막연한 불안감이 하늘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처럼 내 안에서 서로 섞여서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뀌는 동안, 조금씩 둥근 원이 태양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지. 눈물 방울처럼 검은 유리판에 새겨진 그 아름다운 노란빛. 언젠가 보았던 너의, 또 혜지누나의 눈물 맺힌 눈동자처럼 한쪽 부분부터 흔들리는 그 둥근 빛. 그러나 결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을 그 소중한 동그라미. 무한히 수축됐다가 다시 온 우주로 퍼져나가는 그 노란 물결.(1:118)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둥근 노란빛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미지는 이 작품에서 특히 일식을 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를 따라 나간 시위에서 처음 본 ‘펄럭거리는 노란빛’,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노란빛,‘나’는 그게 꿈이었고,‘사랑’이었다고 정의 내리고 이제 일식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지만 검은 유리판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태양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진 그 노란빛은 꿈도 사랑도 아니다. 어쩌면 꿈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실재(real)를 가리고 있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예쁘던 반딧불이 실은 끔찍한 벌레에 다름 아니었듯 말이다. 이렇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사랑하고 내 안에서 꿈꾸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게이코’는 어떤가. 이 작품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모티프다.‘태식’과 ‘김씨’가 크리스마스 날 케이크 판 돈을 갖고 사라진 게이코를 찾으러 가는 데는, 게이코가 받았던 펜팔 편지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게이코의 아버지는 월남 가서 실종됐고, 엄마는 자살을 했고, 따라서 그녀는 ‘천애고아’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엄마’라는 단어 대신 ‘모친’이라는 단어를 쓰는,“하루에 열 마디 이상을 하지 않고”,“말한다고 해도 더듬기 일쑤”(1:29)인 ‘게이코/경자’는 ‘서유진’이라는 이름으로 ‘수잔’에게 펜팔 편지를 쓴다. 답장도 받았고 게이코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그 답장은 ‘게이코/경자’에게 온 것이 아니며,‘게이코’가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인 ‘유진’에게 온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편지에 털어놓는 이야기란,“펜팔 가이드”의 예문대로, 자신은 다니지 않는 학교 얘기, 자신은 가본 적 없는 캠핑 얘기일 뿐이다. 학교와 캠핑, 날씨에 대한 안부를 묻는 것 등이 ‘게이코’ 또래가 누려야 할 삶의 전형이어야 하는 것이다. 말더듬이 게이코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수잔’에게 일지라도 자신이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빵집에서 일하는 말더듬이 고아라는 것을 이야기할 리 없다. 아니 어쩌면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자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잔’을 대화 상대로 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도 말하기 싫다는 무의식적인 의지의 표명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왜 편지를 쓸까. 그 편지 역시 ‘첫사랑’의 편지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녀는 빵집에서 여전히 빵처럼 둥근 그 노란 빛 아래서 편지를 쓰면서, 그렇게 자기를 원하는 방식대로 꾸며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면 그녀가 빵집 창문에 다 못 쓰고 간 ‘New Year‘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편지를 쓰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물러 있듯, 게이코의 행방의 단서가 되었던 편지는 당연하게도, 그녀가 간 곳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에게 쓰는 행위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려는 행위이며, 결국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다. 그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을 차단한다. 단지 각자의 기억을 더듬고 각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처럼 그들의 쓰기/말하기/읽기는 자기 충족적이다. ‘리기다소나무숲에 갔다가’의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끊임없이 ‘만담’을 하는 것도 ‘나’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치유의 과정에 가깝다. 카페 여자와 딴 살림을 차렸다가 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자살 소동으로 시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촌은 내 “인간 연구”의 대상이다. 나는 왜 “인간 연구”에 골몰할까? 대학 1학년 때 분신 장면을 목격한 나는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1:151)이 무엇일까 라는 숭고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질문은 삼촌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삼촌에게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삼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촌 역시 ‘나’에게 답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들 사이에는 질문과 답의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다. 삼촌은 넋두리를 늘어놓듯 자신의 로맨스를 말하기 시작하고, 도라꾸 아저씨는 옆에서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라는 식의 추임새를 넣어 준다. 가히 ‘만담’ 수준이지만, 혼잣말에 가깝다. 이 ‘만담’ 속에서 나는 삼촌을 이해했고, 삼촌은 공감을 얻었을까? 이해는 앎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앎이 이해와 치유의 첫 걸음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해받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삼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여전히 삼촌은 ‘리기다소나무 숲’ 안에서만, 혹은 자신 안에서만, 지난 날 부르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조리는 수밖에 없는 것을.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만담’을 하는 동안,‘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봉우’는 그야말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국낙서문학회 지역지부에서 ‘나대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봉우에게 삶이란 ‘만반의 준비는? 5천. 평생동지는? 12월 22일’ 따위의 말장난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방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주간지의 독자페이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지어서 투고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봉우에게 삶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우가 만든 최고의 낙서는 바로 ‘인생이란? 픽션에 불과하다’였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허상과 직면하니 그야말로 인생은 픽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2) 뱃 속에서 죽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절에 들어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예정’은 “시답지 않은 주간지에 아무 짝에나 소용없는 낙서 따위나 투고하는”(1:197) 봉우에게 세상을 모르는 ‘멍청이’,‘어릿광대’라고 소리친다. 봉우는 그야말로 상처와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나대로’ 그 상처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이며, 그 외면의 방식이 바로 ‘낙서질’이었던 것이다.“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고” “그 자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지만”(1:198) 봉우는 낙서질을 통해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하는 일이 상책일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자기를 보호하던 그 ‘노란 빛’은 꺼져버릴 수도 있고,‘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넋두리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봉우 역시 “자기만은 어두운 산길에 혼자 버려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산에서 길을 잃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봉우의 그 두려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괘 감정으로서의 불안(불안과 증상에 대한 논의는,S. 프로이트,‘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정신병리학의 문제들´, 열린책들,2003)에 다름 아닐 텐데, 그 불안은 ‘나대로’의 낙서라는 증상을 극복하고 상처와 맞설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예정이 자기 안의 ‘노란빛’을 밖으로 드높이 내걸 듯, 혹은 게이코가 빵집을 나와 어디론가 첫걸음을 내딛듯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노란 꽃잎 가장자리가 흐려지면서 노란색과 초록색과 진회색이 서로 경계도 없이 뒤엉켜”(1:181) 버리듯,“꼭꼭 막아둔 마음의 가장자리도 그렇게 풀리게” 된다. 이제 자기 밖으로 나와 그렇게 풀린 ‘노란빛’은 ‘첫사랑’에서와 달리,‘사랑’도 될 수 있고,‘꿈’도 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럴 가능성은 있다. 이처럼 증상과의 타협에서, 증상에의 만족에서 나오는 첫걸음이 도달해야 하는 것은 결국에 “병에 걸리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1:229)이며,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비책”이다. 그 원인을 밝히는 일이 어떤 위험을 동반하든 그 알 수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로소 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의 상처, 그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도출된다. 상처는 분명 어떤 ‘좌절’에서 기인할 텐데, 일단 우리는 각각의 서사 속에 끼워져 있는 시대적 배경들을 통해 그 상처가 밖으로부터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은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며, 이 작품은 일가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물론 여기에서도 쓰기와 말하기에 값하는 ‘읽기’를 통한 상처치유의 행위가 지속된다. 전라도 출신 아버지가 시대에 무기력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그 시대 자체를 용서하는 방식은 바로 ‘신문 스크랩’이다. 그리고 ‘내’가 그 초라한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아버지의 그 신문 스크랩 ‘읽기’이다.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에 기대 나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천천히, 붙여 놓은 기사를 읽었다.(중략)다 읽은 뒤에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를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 내내 도서관 한쪽에 앉아서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누구를 용서했던 것일까? 파도와 파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달빛과 달빛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1:65∼66) 주목할 점은 이 작품에서만큼은 읽기의 방식이 자족적이고 자위적인 행위에 그치지 않고 소통을 위한 매개가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안에 머문 채로 그 상처를 짓누르고 있지만, 그 ‘신문 스크랩’은 ‘나’로 하여금 초라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아버지의 마음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고작 딸이 집을 나갔다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생기고,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에서 전적으로 회상에 의존한 작품은 ‘뉴욕제과점’이라는 자전소설 밖에 없다고 작가가 밝혔듯, 우리는 이 소설집을 단순히 회상 형식을 통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추억의 보고서’ 또는 ‘반성의 기록’(정선태,‘(해설)빵집 불빛에 기대 연필로 그린 기억의 풍경화’,‘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2003,p.295)으로 읽을 수 없다. 그 속에는 분명,‘언어’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통찰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며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언어’의 불가능성, 즉 언어 자체로는 어떤 진실에도 가 닿을 수 없고,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해묵은 해체적 사고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언어와 비극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성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즉 구조로 회수될 수 없는 다수성과 사건성이라는 점에서 서로 관련된다. 비극적 인식이란 바로 그러한 언어 안에 놓인 인간 조건을 발견하는 일이며, 이처럼 다시는 반복할 수 없다는 언어에 의한 고통은 인간이 결코 ‘아이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비유로 확인된다.(가라타니 고진,‘언어와 비극’, 조영일 역, 도서출판b,2004,pp65∼86)그런데 고진은 ‘아이’가 단지 비유가 아니며, 아이는 이미 어른 이상으로 인생을 알고 있는 존재, 어떤 순수한 비애와 부조리감을 깨닫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에 기댄다면,‘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전편을 감도는 슬픔과 비애의 정서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혹은 잃어버린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반복될 수 없는 ‘기억’, 반복될 수 없는 ‘언어’적 조건과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연수는 “기억이나 회상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며 “글쓰는 순간만의 진실”(김연수 외 좌담, 앞의 글,p.81)을 믿는다고 말했다. 애초에 우리가 ‘기억’해 낼 것은 없고 ‘언어’로 표현해야 할 것도 없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순간 순간의 진실일 뿐이라는 말인 듯싶다. 그 일회적인 언어에 의존하여 쓰고 말하고 읽음으로써 자신의 상처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는 상처가 완벽히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이는 “삶은 살아가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2:61)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의 세계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3.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넘어서는 몇 가지 방식-‘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최근작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으로 돌아가 보자.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죽기 전 두 개의 글을 쓰고, 하나의 글만 남겨둔다. 남겨둔 글은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로 시작되는 203행의 대서사시로서,“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평양전쟁, 한국전쟁,4·19,5·16 등 한국 현대사의 최중심지를 관통해온” 한 남자의 생애를 담은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그 한 남자의 생애는 또래의 다른 남자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서사시는 한 인간의 내밀한 역사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역사를 다룬 시라고 봄이 정확하다. 할아버지는 그 역사를 증명하는 ‘한 남자’일 뿐인 것이다.“할아버지의 또 다른 글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그 다른 글 역시 태워버렸다. 그 글에는 서사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것이 들어 있을 테고, 그것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 다른 사람은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4·4조의 정형적인 형식처럼 그 서사시가 어떤 일관되고 형식적인 구조에 속하는 추상화된 개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면, 불태워진 할아버지의 그 비망록은 여전히 ‘언어’로서도 ‘기억’으로서도 도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진실을 의미한다.“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이고”,“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이니” 할아버지의 그 두 글 사이의 거리는 엄연한 것이고,‘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인과관계의 구조로 엮어진 ‘그’의 소설이 현실(reality)과도, 실재(the real)와도 멀어진 거리와 같다. 실재와 구성화된 그것 사이의 거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지도에서 비워진 행로로 상징된다. 일년 전 이혼한 아내와 우연히 재회한 ‘나’는 아내를 따라 인사동 거리를 걷는다. 아니 함께 걸었다기보다는 아내를 따라 걸었던 것인데, 그 ‘길’은 한 개인의 진실로 들어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을 뜻한다. 꿈 얘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애초에 그런 소통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지만, 꿈따위는 잠에서 깬 다음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이었던 ‘나’는 그런 아내의 의지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그는 이제 그 아내의 진실, 아니 그녀와 자신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적도를 사고 그날을 행로를 그려 본다. 하지만 기억의 행로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고, 지형도가 아닌 ‘지적도’일지라도 그것은 실재의 ‘유사물(le semblant)’일 뿐이므로, 그 유사물 속에서는 모방된 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디우(Alain Badiou)에 따르면 진리는 언제나 특수한 상황의 진리(S. 지젝,‘진리의 정치, 혹은 성 바울의 독자로서의 알랭 바디우’,「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5,pp.208∼218)이다. 하나로 이어진 선 안에서는 그 다양한 상황의 진리들은 모두 지워져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없음에도 그어지는 그 많은 선들은 다 무슨 의미일까? 역사의 인과관계가, 혹은 지나간 일들의 진실이 도중에 사소하고 우연적이고 꾸불꾸불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단숨에 긋는, 그런 선과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그날 걸어간 복잡하고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는 무엇일까?(2:19) 따라서 ‘나’의 생각이 미치는 지점은 모든 삶의 행로는 우연이고, 그 안에서 진리는 발견될 수 없고, 나의 불행도 그저 불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의 우연성을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우연에 가까운 행로의 의미를 따져 묻는다. 그리고는, 결국엔,“오랜 시간이 흐르고 하면 지금의 우연한 일들도 모두 필연이 된다”(2:28)는 정답을 얻어낸다.“우리가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그날 길 잃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한 없이 걸어다녔던 일들도 필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거대한 ‘농담’일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는 윤리적 행위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사건에의 충실성’이라는 말로 윤리를 설명한다.(A 바디우,‘윤리학-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2001)그가 정의하는 ‘사건’이란 인식 범위 밖에서 발생하며,‘공식적’ 상황이 ‘억압’했던 것을 가시적이게 만드는, 언제나 어떤 특수한 상황의 진리이다. 따라서 사건에의 충실성이란 사건의 견지에서 ‘인식’의 영역을 횡단하고, 그 속으로 개입하고, 사건의 기호를 찾는 지속적 노력을 가리킨다.(이하 한 단락의 내용은 S. 지젝의 앞의 글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임)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바디우의 논의는 “범역적 우연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소생”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실재 사물과의 모든 열정적 조우가 환영일 뿐이라는 해체주의적 사고와 대립된다. 요컨대, 후근대적 해체주의자들이 비관주의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을 때, 바디우는 “기적은 실로 일어난다.”는 전적으로 정당한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원성과 불멸성에 대한 이와 같은 바디우의 추구는 물론 개별적인 상황, 다양성의 상황의 전제로 하는 열린 개념이다. 다소 길게 인용된 바디우의 논의를 따라,‘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 결국 내가 삶의 모든 길은 우연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도 어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한번 버텨보기로 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진리’를 위한 행위이고,‘사건에의 충실성’을 담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자기 안에 머무는 회피나, 삶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지 않고 한 개인의 진실, 혹은 삶의 진실에 가 닿으려는 ‘행위(act)’를 시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태도는 분명, 자기 안의 둥근 노란빛에 의지하여 자폐적으로 말하고, 쓰고, 읽던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속 인물들의 태도와는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그’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이 “패배는 내 안에서 온다. 여기에 패배는 없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인물들임에 분명하다. 그 고투의 방식을 몇 가지 단계로 분류해 보자. 첫 번째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에서와 같이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고 소통에의 의지를 표명하는 방식이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세영과 네즈미가 지도를 보고 찾아간 길이 잘못 된 길이었지만, 세영이 “돌아갈 수 없어, 네즈미. 우린 계속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첫 번째 방식 안에서 설명된다. 잘못 들어선 길이 “공로가 아니라 사유지”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구조화되지 않은 상황의 진리, 혹은 개개인의 사적인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말’이 아닌 ‘몸’으로 다가가는 방식이다.‘부넝숴’를 한번 보자. 지평리 전투에 투입되었던 중공군 ‘나’는 들판을 가득 메운 매화꽃잎들처럼 지평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사자들 틈에서 한 조선인 여성 구호원에게 구조된다. 그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이 전복되고 그 둘은 외딴 농가에 고립된다.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먹을 것도 없고, 죽음을 지척에 둔 상황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한 일은 두 가지이다. 몸을 섞거나 시를 읊거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그때의 일은. 살아 있다는 건 그토록 부끄럽고도 황홀하고도, 무엇보다도 아픈 일이더군. 아프다는게.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어. 그래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도 계속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우리는 쉬지 않고 몸을 섞었어. 죽음이 지척이었으니까.(2:71) 그들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몸을 섞는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고통 속의 향유(jouissance)’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만하고 그 향유의 끝장을 보는 ‘죽음충동’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그들은 그렇게 “몇 번이나 해가 뜨고 저물었는지, 몇 번이나 달이 둥글어졌다가 다시 여위어졌는지”(2:75)도 모른 채, 수색대가 왔다가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가는 것을 “죽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식만 살아서 지켜보고 있는지”(2:75)도 모른 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그녀’는 죽고 ‘‘나’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나’는 이제 점쟁이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캉이 ‘죽음 충동’과 관련하여 ‘두 죽음 사이의 영역’(위의 책,pp.251~265)이라고 말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캉에 따르면 그곳은 상징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의 영역으로서 존재의 질서 너머에 있는 유령적 환영의 영역이다. 그곳은 ‘죽음 너머의 삶’이 갑작스레 출현한 장소이고, 상징화되지 않는 ‘불가분의 잔여’이기 때문에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예컨대, 그 형상은 운명을 이행한 이후의 오이디푸스, 즉 ‘과도하게 인간적’이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자, 어떤 인간적 법칙들이나 고려 사항에도 묶여지지 않는 존재에서 찾을 수 있다.‘그녀’의 피를 1000그램이나 수혈받고 죽음의 경계를 넘은 ‘나’는 이 ‘산죽은-파괴불가능한’ 유령적 대상과도 같다. 운명을 보아버린 ‘나’는 이제,“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세상에서 믿기 어려운 얘기”(2:77)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죽은’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두 번째 방식, 온몸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면 그 순간 상징적 질서로 편입되는 어떠한 ‘언어’도 소용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방식이 성공했는가. 그 둘이 함께 ‘몸’을 통해 ‘유사-죽음’을 경험했더라도, 여하튼 현재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역설적으로 ‘죽음’이라는 경계가 놓여 있지 않는가? 여기서 굳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아예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설령 그게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소통에의 ‘의지’를 드디어 ‘실천’으로 관철하는 일이며, 반복될 수 없는 ‘언어’의 한계,‘기억’의 한계,‘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그것은 새였을까, 네즈미’의 세영이 5년 동안 한결같이 사랑했던 남편에게 자신이 절대로 이해 못하는 다른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하는, 아니 극복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식이냐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언니의 동거남,‘네즈미’와 섹스를 하는 방식이다. 네즈미에게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드는” 세영의 방식이 “무모한 열정”으로 보이지만, 세영의 그 무모한 열정은 끝장까지 간다. 자동차 사고로 남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2시간 동안 울기만 했던 세영, 그렇게 다른 삶이 있었던 남편의 죽음을 방조했던, 아니 어떤 행동(action)도 하지 않음으로써 적극적으로 행위(act)했던 세영은 결국 ‘자살’한다.(정신분석은 행동과 행위를 분리한다. 행위는 그것의 담지자(행위자)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다는 점에서 행동과 다르다. 행위 이후에 나는 ‘전과 동일하지 않다’. 행위 속에서 주체는 무화되고 뒤어이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라캉은 ‘자살’을 모든 (‘성공적’) 행위의 전형으로 파악한다. 알렌카 주판치치,‘실재의 윤리’, 이성민 역, 도서출판b,2004,p.133∼134) 세영의 방식이 극단적이고 무모하다면,‘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는 어떠한가. 이 작품에는 소통 불가능성과 그 불가능을 넘어서는 시도와 그 결론이 모두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랑의 모든 국면을 다 경험”함으로써,“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함으로써만 가능한 결론이다. 여자 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나서도,‘소설’ 쓰기를 통해서도 애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그녀와 자신의 삶에,“어떤 진실도, 상상도, 이해도 없는”(2:151) 가장 합당한 주석을 달며, 그저 “짐작을 하며”,“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2:143)이거나, 둘째,“지도에서 비워진” 그 곳으로 직접 가보는 일이다.‘그’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이 “서로를 속이는 것도, 속는 것도 없는”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어두운 구멍”(2:43)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인물들이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의지’의 방식을 택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의 ‘나’가 ‘결국 가야하는 길’이고,‘부넝숴’의 ‘나’가 ‘덜/더 가버린 길’이다. 당연히,‘그’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향해 가는 것은, 이처럼 ‘몸’으로도 ‘언어’로도 이해 불가능한 그녀를 이해하는, 아니 자신의 진실을 이해하는 마지막 방법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검은 그림자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껄껄거린다.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2:154) 그곳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많다. 현실과 꿈이 뒤섞인 공간,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공간, 어떤 논리도 거부하는 공간, 죽음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공간 등등. 그러나 어떤 말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곳은 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실재’와 대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현실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이다.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트를 사면 항상 옮겨 적던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다. 아주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것들을 마주할 용기”(2:111)라는 릴케의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에게 그 용기를 갖는 일은 의무이다.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원정대장이 역설한 바대로 “분명히 의의가 아니라 임무”(2:117)인 것이다.“그 꿈이 제아무리 압도적이라고 해도 원정대는 그곳을 ‘정복’해야만 한다.”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오로지 ‘의무’ 때문에 ‘행위’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윤리적 주체(‘의무’와 윤리적 행위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의 책,5장 참고)이다. 4. 진실은 어디에,“대뇌와 성기 사이”(김연수,‘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문학동네 2005년 겨울,p.158)그 어디쯤 ‘유령작가’라는 말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김연수는 그 의미가 ‘대필작가’ 쯤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논자들은 그 안에서 작가적 자의식을 찾아냈다.‘유령’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보면 어떨까?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김연수의 최근 두 소설집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죽음을 넘어선 그 어떤 영역을 살펴보고 ‘유령’이 되어버린 작가가,‘아직’ 언어와 기억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이’에 머물고 있는 상처받은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아프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다 느끼라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가 하면 죽기 싫어서다. 그래서 눈물은 조롱거리가 되고 아픔은 비난받고 두려움은 무시되며 믿음은 당연하다고 여긴다.”(2:117). 우울은 도덕적 쇠약함이며, 죄라고 라캉이 말했던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그’가 위와 같은 말에 의지하여 낭가파르바트로 갔듯이 우리도 각자가 넘어야 할 산 하나쯤은 마음 속에 있을 것이고, 그 산을 넘기 위한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것의 우리의 ‘의무’이다. 그렇지만 ‘죽음’이 윤리적 행위의 전형이라며, 그 죽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타자의 진실, 나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현실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김연수는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이해는 필연적으로 오해가 되고, 살 부비는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의 마음 속 비망록을 들여다 보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해결은 한 가지다. 그 “대뇌와 성기 사이” 그 어디쯤에 있을 ‘마음’으로 진실을 그저 믿는 것이다. 김연수의 세계인식과 작가의식은 이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모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위의 책,p.121)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 어떻게 들려줄지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의 장편 연재가 기대된다. <끝> ■ 당선소감 “조금은 자신 갖고 내목소리 낼수 있을것” 글쓰기는 나에게 공포다. 학교에서 몇 개월째 학부생들의 리포트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난 과연 내가 누군가에게 글쓰기에 관하여 조언을 해 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항상 회의적이다. 여전히 나는 무엇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절부절 못하고, 하얀 모니터 앞에서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워지곤 하는 걸…. 그렇지만 여하튼 읽는 일은 행복하고, 쓰는 일은 나에게 작은 희열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 일들을 멈출 수가 없다. 혼자 품고 있던 그 공포와 행복 사이에 용기를 채워 준 이번 당선이 정말 기적 같다. 여전히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제 조금은 자신을 갖고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와 온전히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라 몹시 부끄럽다.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더없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는 신범순 지도교수님과 국문과의 모든 은사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꽃비 내리는 자하연을 몇 번이고 함께 맞이했던 1동의 동료, 선·후배들의 자극에도 빚진 바 크다. 함께 공부하던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그리고 나이 서른을 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철없고 무심한 자식을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어렸을 적부터, 성실히 읽고 쓰는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여기게끔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약력 ▲197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글쓰는 순간이 진실’ 작가의 본질 파헤쳐” 응모작 총 20편은 작가론이 대부분이었고, 김현론을 비롯한 문학사적인 쟁점을 다룬 게 3편 있었다. 작가론 중에는 시인·소설론이 거의 반반씩이었다. 아마 최근 신춘문예 평론의 주류가 작가론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특히 전후문학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4·19세대 작가론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작가론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시선을 끈 글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행복한 공간-김현론’(김윤정),‘몸의 형이상학, 모성적 관능과 타자없는 육체 사이-김선우론’(함돈균),‘속도에 저항하는 시의 모험-김기택론’(강영준)‘‘틈’을 바라보는 시선-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김나영),‘고독의 의무, 소설의 의무-윤성희 소설집 ‘거기, 당신?’론’(이은주),‘‘유령’작가의 진실-김연수의 최근작을 중심으로’(조연정) 등이었다. 김현론은 정직한 글쓰기의 자세를 보여준 진솔한 비평적 자세가 돋보였으나 개인적인 체험에 너무 함몰된 점이 아쉬웠다. 김선우론은 인문학적인 거시적 시각으로 시인에 접근하면서 미세한 현대적 환상과 성담론을 분석한 점이 돋보였으나 일반론적인 해설위주에 그쳐서 아쉬웠다. 김기택론은 성실한 독법이긴 하나 해설론에 그친 한계가 있었다. 배수아론은 라캉의 틈 이론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려 했으나 결론이 너무 조급해 보였다. 최종적으로 윤성희론과 김연수론은 우위를 다툴 정도였다. 윤성희론은 반 루카치적인 소설론을 전개한 점이 시선을 끌었지만 문장력이 치밀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김연수론은 탈구조주의적인 이론의 틀에 너무 얽매인 느낌이 있으나 기억이나 회상을 불신하고 글쓰기의 순간만이 진실이라는 이 작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헤친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김윤식 임헌영
  • 변호사 소득자료 강제 제출 추진

    변호사 소득자료 강제 제출 추진

    변호사들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수임료 내역을 세무당국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전문직 자영업자들이 성실하게 수입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가산세를 부과하고, 장부를 기재하지 않는 일반 사업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방안도 검토된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1일 합동 신년 인터뷰에서 “전문직 사업자들은 관련 협회나 공공기관을 통해 수임건수·수임료 등을 국세청에 제출하고 있으나 변호사는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변호사의 수임건수와 수임액 자료 등이 빠짐없이 제출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재 변호사들은 지방변호사회에 수임건수는 내고 있으나 수임료 내역은 제출하지 않고 있다.”면서 “변호사법 시행령을 개정, 수임료를 제출하도록 법무부, 변호사협회 등과 협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부동산 관련 소송으로 변호사 비용이 들어간 사람이 양도소득세를 낼 때 직·간접적으로 들어간 변호사 비용을 소득공제해줌으로써 변호사 수입을 일부 노출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 부총리는 변호사를 포함한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이 국세청에 수입금액명세서(매출소득자료)를 낼 때 수임건수뿐 아니라 건별 금액까지 자세히 적어내도록 신고 내역을 세분화하겠다고 밝혔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수입금액명세서를 개략적으로 써 내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면서 “앞으로는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가산세를 부과하거나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강제이행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세원 노출을 위해 현금거래를 대체할 수 있는 결제수단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장부를 쓰지 않는 일반 자영업자들에 대한 과세도 강화하겠다고 한 부총리는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다시 일어설 용기 필요하십니까

    연말이다. 한해의 아쉬움을 접고 희망찬 새해를 구상할 때다. 매년 되풀이하는 거창한 계획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실천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이럴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지침서 한 권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19세기의 저명한 정치개혁자이자 언론인, 사업가인 새뮤얼 스마일스(1812∼1904)의 ‘자조론(自助論)’(공병호 옮김, 비즈니스북스 펴냄)이 완역, 출간됐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등 스마일스의 세기를 뛰어넘는 주옥같은 명언이 담긴 이 책을 새해를 앞두고 만나게 된 것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스마일스가 말하는 ‘자조정신’이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여는 것, 즉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꾸는 힘은 ‘나’에게 있으며,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바로 자조정신이라는 것. 이를 뒷받침하듯 여러 계층을 아우르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 처한 삶의 현장에서 근면과 성실, 용기와 불굴의 노력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기업가, 노동자, 기술자, 과학자, 발명가, 군인, 정치가, 예술가 등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개인적 성공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전을 성취한 사람들의 인생은 잔잔한 감동을 전달함과 함께, 대중적인 자기계발서의 효시로서 손색이 없다. 저자는 고향 소도시 작은 야학에서 행한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근면과 인내의 덕목으로 분투하면 누구나 부와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부(富)와 행복은 제도나 국가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노동과 근면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것. 신분의 제약이나 타고난 재산의 유무에 관계 없이 누구나 의지와 노력을 통해 부와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은, 당시 노동자 계급에까지 파급돼 전 사회적인 경제활동 인력의 분발과 노력을 촉발시켜 국부(國富)를 만들어낸 텍스트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스마일스는 기존의 영웅 자리에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개인을, 타고난 부와 재능의 자리에 자기 분야에 대한 몰입과 열정을 대치시켰다. 영웅이 아닌 범인, 천재가 아닌 노력가, 재능보다는 열정, 자본보다는 검약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 악덕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인격과 도덕의 가치’에 대한 경구도 새겨 읽을 만하다. 다시 일어서야 하는 용기가 필요할 때, 무기력함 때문에 의욕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문제해결을 위한 예리한 지혜를 구할 때,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는 여유시간을 갖고 싶을 때, 잠시 스마일스가 인도하는 자조정신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어느새 당차게 세상살이의 거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그리고 교훈을 얻은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1만 5000원.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데스크시각] 고소득 자영업자 세무조사 이대론 안된다/오승호 경제부장

    얼마전 연말정산 서류를 작성하면서 또 한번 씁쓸함을 느꼈다.‘학원비 지로납부’ 사용액을 빈칸으로 놔둬야 했기 때문이다. 현행 소득세법에는 자녀들의 학원비를 지로영수증으로 내면 연말정산때 신용카드소득공제 혜택을 받게 돼 있다. 학원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연말정산때 학원비를 지로나 신용카드로 내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학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학원비를 지로나 신용카드로 내기란 쉽지 않다. 학원들이 꺼려하기 때문에 현금으로 내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학부모들이 태반이다. 사업자들의 탈세를 막고 근로자들에겐 소득공제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착수금이나 성공보수금 등 변호사 수임료나 치료비를 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정착되는 것은 요원한 실정이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전체 신용카드 결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6% 증가했다고 한다. 반면 변호사나 법무사 등 법률사무소에서 결제된 카드 소비액은 되레 15.7% 감소했다. 몇 해전 국세청을 출입할 때 겪은 일이다. 소득세 신고액을 기준으로 변리사나 관세사의 수입이 의사나 변호사보다 훨씬 많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변리사나 관세사들이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소득을 성실히 신고하면서 빚어지는 일종의 ‘착시현상’일 뿐, 소득이 더 많지는 않다는 요지였다. ‘유리알 지갑’으로 비유되는 평범한 봉급생활자들은 세금 측면에서만 보면 내년 생활이 올해보다 팍팍해질 수 있다. 올해 1%포인트 인하된 소득세율이 내년에 그대로 적용되지만, 세금감면이나 비과세 혜택이 줄어든다. 정부는 돈을 많이 벌고도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는 이들 때문에 봉급생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매월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샐러리맨들은 재벌들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쉬운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 문제가 더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국세청이 고소득 자영업자 422명을 대상으로 지난 22일부터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소득을 축소 신고해 탈세한 사실이 포착된 사람들이어서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세무조사만으로 탈세가 더 이상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세무조사가 해마다 되풀이되지만,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법 행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당국은 고민해야 한다. 세무조사가 전가보도(傳家寶刀)는 아니지만, 탈세를 막는 하나의 방법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럭저럭 넘기면 그만이라고 여길 수준의 세무조사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 면역만 생겨 인력투입에 비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세무조사할 때만 바짝 엎드렸다가 당국과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내 고개를 드는 게 투기꾼이나 탈세자들의 속성이다. 따라서 이들의 탈세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을 지금보다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소득 자영업자를 포함한 개인사업자의 세무조사 비율이 얼마인지에 대한 통계를 별도로 작성하지는 않지만, 법인의 1.7%보다는 낮을 것이라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1년에 세무조사를 받는 이가 100명중 한 명 정도일 것이라는 얘기다. 인력이 모자라 여의치 않으면 탈세를 한 시점과 상관없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보완책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국세청이 탈세자의 고의성을 입증하지 않는 한,5년이 지나면 세금을 물리지 못하게 돼 있는 제도(국세부과 제척기간)를 손질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국세청은 영화 ‘MASH’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의 탈세를 적발해 세금추징은 물론 낮에는 배우 활동을 하게 하고, 밤에는 교도소에서 지내게 하는 아이디어로 탈세 방지 효과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가혹하다는 얘기다. 국세청이 새해 화두로 던진 ‘고소득 자영업자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오승호 경제부장 osh@seoul.co.kr
  • 2005 지구촌 빈곤퇴치 성적표 ‘F’

    올 1월1일 전세계 540개 단체들이 세계의 빈부 격차를 줄여보겠다며 시작한 빈곤 퇴치 캠페인(MPH)에 대한 ‘성적표’가 나왔다. 당초 의욕적인 계획과는 달리 유명 인사들의 말잔치와 이벤트성 행사들에 그쳤다는 것이 국제 구호 및 자선단체들의 평가라고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국제자선단체들은 이번 캠페인이 밥 겔도프가 기획한 ‘라이브8’과 같은 일회성 콘서트에 가려 실종됐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캠페인이 유명인들에 의해 ‘강탈당했다.’고까지 혹평했다.“손목 밴드와 팝 콘서트로는 아프리카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부채탕감 방안 구체화 안돼 세계 부국들의 모임인 G8 정상들은 지난 7월 글렌이글스에서 회담을 갖고 아프리카 등 최빈국 18개국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 진 빚 400억달러(약 40조원)를 탕감해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부채탕감을 약속받았던 18개국은 아직까지 한푼도 구경하지 못했다.6개월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말만 거창했던 국제원조 기금 MPH는 국제원조로 매년 500억달러(약 50조원)를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부국들에 국내총생산(GDP)의 0.7%를 국제원조기금으로 배당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G8정상들이 2010년까지 국제원조 규모를 두배로 늘리겠다고 합의한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가 슬그머니 발을 뺐다. ●불공정 무역관행 여전 각국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빈곤을 퇴치하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책을 선택하도록 했다. 하지만 성과가 전무하다. 세계무역기구(WTO) 홍콩 각료회의에서 합의도출에 실패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빈국들을 돕기 위해서는 국제 원조보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어야 하며,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공정 무역관행의 개선이다. ●국제 부패 협약 제자리 걸음 MPH는 부패를 줄이고 국제원조금이 수혜자들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패 국가들에게서 원조금을 환수할 것을 촉구했다. 부패 정부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이 오히려 빈곤의 악순환을 심화시켰다. 부패척결을 위한 국제협약도 제자리 걸음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빈곤퇴치캠페인측의 대변인은 “성과가 미미하다고 혹평할 수도 있지만 2005년은 세계 빈곤에 대해 세계인들이 관심을 갖고 처음으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각국이 제안한 빈곤퇴치 약속들이 성실하게 이행된다면 하루에 1만 20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각국 정부가 약속을 지키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루키 김정은 프로도 통했다

    최근 여자농구 관계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지난 20일 뚜껑을 연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가 슈퍼루키 김정은(18·181㎝·신세계)의 출현으로 들썩이는 것. 판 자체가 남자농구에 비교할 바 아니지만, 데뷔 뒤 2경기에서 보여준 기량과 공헌도를 보면 ‘뱅뱅’ 방성윤(23·SK)에 비견될 만하다. 김정은은 21일 삼성생명전에서 16점 9리바운드 3어시스트의 화끈한 성인무대 신고식을 펼쳤다. 아직 고교도 졸업하지 않은 루키가 데뷔전 ‘더블더블급’ 활약을 펼친 것은 유례 없는 일. 이틀 뒤 금호생명전에선 20점 6리바운드에 3어시스트를 곁들여 특급 데뷔전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했다. 덕분에 지난 시즌 3승17패로 최하위에 그쳤던 신세계는 첫 승을 거뒀다. 고교시절 국내대회와 청소년선수권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낸 특급 포워드 김정은이지만 프로에서의 성공 가능성은 반반이었다.신인드래프트가 생긴 2000년 이후 1순위 가운데 주전으로 자리잡은 것은 곽주영(국민은행)이 유일할 만큼, 프로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 하지만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용병급 파워를 자랑하는 김정은은 페인트존에서 ‘프로 언니들’ 1∼2명은 쉽사리 제치고 골밑 득점을 올려놓았고, 상황에 따라 타점 높은 미들슛으로 림을 가르는 영리함도 드러냈다. 김정은의 연착륙은 기록으로 증명된다.26일 현재 평균 18점(토종 2위),7.5리바운드(토종 4위),2점슛성공률 57.7%(토종 3위),3어시스트(공동10위) 등 전 부문 톱10에 진입했다. 그의 테크닉과 체력은 이미 수준급. 다만 고교 때 주로 센터를 맡았고 여자선수로는 드물게 원핸드로 슛을 던져 정확도가 떨어진다.김윤호 신세계 감독은 “워낙 겁이 없어 관중이나 선배를 의식하지 않고 실력의 100%를 발휘하는 것이 정은이의 장점”이라면서도 “원핸드로 슛을 던지다 보니 릴리스 전 단계에서 힘을 싣지 못해 슛거리가 짧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을 중2 때부터 지켜본 정미라 MBC해설위원은 “정은이가 대선수로 크기 위해서는 여자농구 특유의 시집살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에게 주어지는 ‘막일(?)’과 유명세를 탈 경우 쏟아지는 주위의 질시를 잘 버텨내야 한다는 것. 정 위원은 “성실하고 정신력이 강한 선수라 1∼2년의 고비만 넘기면 대표팀의 대들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한국 여자농구의 버팀목으로 성장할 그날을 농구계는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北·日 수교협상 3년만에 재개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 2002년 10월 이후 3년 넘게 중단됐던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이 내년 1월 말 재개된다. 납치문제와 북핵 및 미사일 문제를 다룰 별도의 분과위원회도 국교정상화 협상과 동시에 가동된다. 북한과 일본은 25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정부간 협의 이틀째 회의에서 일본이 제의한 ▲납치 ▲핵 및 미사일 ▲국교정상화 등 현안별 3개 분과위원회를 내년 1월 말 동시에 가동키로 합의했다고 일본 대표단이 밝혔다.일본측 대표인 사이키 아키타카(薺木昭隆)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은 북한측이 “납치를 포함한 미해결 문제에 대해 성실한 자세로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taein@seoul.co.kr
  • 현금결제·비보험치료 ‘집중탈세’

    현금결제·비보험치료 ‘집중탈세’

    국세청은 22일 의사, 변호사, 웨딩관련업자, 유흥업소 업주 등 고소득 전문·자영업자 422명에 대해 이날부터 한달간 세무조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422명중에는 의사, 변호사, 한의사, 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 149명이 들어있다. 조사대상자를 업종별로 보면 현금거래를 유도해 수입금액을 탈루한 웨딩관련업자가 43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성형, 지방흡입, 부인과 성형 등 미용 목적의 수술과 라식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성형외과·피부과·산부인과·안과의사가 42명으로 두번째로 많았다. 고액의 착수금과 성공보수금을 받으면서도 소득을 적게 신고한 변호사 38명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자영업자의 탈세를 방조 또는 부추기거나 세금탈루 혐의가 있는 세무대리인(세무사) 25명과 보약·한방다이어트 등 고가의 비보험진료 수입금액이 많은 한의사 17명도 세무조사를 받는다. 한상률 조사국장은 “세무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 1∼2월 탈루 혐의가 큰 고소득 자영업자를 다시 선정, 세무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와 전면 전쟁 ‘현금으로 결제하면 10∼20%정도 깎아주고, 비보험 진료는 소득을 대폭 줄여서 신고하고, 세무대리인(세무사, 회계사)이 나서서 허위장부를 작성해주고’ 세금 탈루 혐의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게 된 의사, 변호사, 한의사 등은 과거부터 계속된 전형적인 탈세수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국세청은 ‘많이 벌고,(세금은)적게 내는’ 고소득 전문·자영업자의 세금탈루 혐의에 대해 내년에는 더욱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하기로 했다. 조사 대상에 오른 사람들 중 일부는 빼돌린 세금으로 부동산투기를 일삼는 등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해왔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온 대다수 봉급생활자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내년에는 조사 강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탈루 사례 서울에서 골프연습장과 사우나를 운영하는 박모(52)씨는 매출을 낮춰 신고해 25억원의 소득을 탈루했다. 또 간이골프장 부지를 부동산업자에게 양도하면서 매매가액을 조정해 43억원을 편법으로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이렇게 얻은 소득으로 서울 강남의 90평대 아파트(30억원대), 서초동의 상가, 경기도에 주유소 2개 등 87억원대의 부동산을 샀다. 경기도에서 2002년 세무대리인으로 개업한 김모(45)씨는 유통과정이 문란하고 자료상 혐의마저 있어 세무대리계약이 금지된 화물사업자들을 골라 세무대리를 해주면서 탈세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화물업자들이 발행한 세금계산서가 허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의 약점을 이용,2∼3배 높은 수임료를 받고 가짜 세금계산서 발행을 눈 감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에서 피부·비만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 이모(48)씨는 대부분의 진료비가 비보험 항목임을 악용, 현금계산시 10∼20% 할인해주겠다며 현금결제를 유도,8억여원을 탈세했다. 예식장을 하는 김모(53)씨는 결혼식장을 부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위장, 예식장 수입금액 74억원을 누락한 뒤 탈루한 소득으로 서울 강남에 시가 30억원짜리 93평형 아파트 등을 구입하는 등 부동산투기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축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변호사 박모(41)씨는 인터넷법률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성공수수료 등 수입금액을 누락했다. 또 인터넷법률서비스업체를 설립, 수입금액이 늘자 다른 소득이 없는 타인 명의로 대표자를 등록한 뒤 가공경비를 계상하는 방법 등으로 27억원의 기업자금을 변칙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국세청은 밝혔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이사람] 연고없는 곳에 평생 둥지튼 전남 여수 애양원 김인권 원장

    [이사람] 연고없는 곳에 평생 둥지튼 전남 여수 애양원 김인권 원장

    “나를 간절하게 원하는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오히려 제가 고맙고 감사합니다.” 올해로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한 지 25년째인 전남 여수 애양원 김인권(54·전남 순천시 매곡동) 원장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평생 둥지를 튼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그는 1980년 한센병 환자들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공중보건의로 군 생활을 하면서 이들과 끈을 맺었다. 입대 전 결혼한 부인(50)까지 동참시켜 3년 내내 소록도 관사에서 살았다. 제대한 뒤 1983년 5월부터 국내 최초(1909년) 한센병 치료기관인 애양원으로 갔다. 당시 김 원장은 모교(서울의대 정형외과)에서 제의한 교수직까지 물리쳤다. 그리고 병원에서 가까운 순천에 살림집을 마련했다. 이러한 부모의 뜻을 따라서인지 딸(25)과 아들(22)도 탈없이 잘 자랐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바쁜데다가 행복하고 만족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후회할 틈이 없다.”고 해맑게 웃었다. 훤칠한 키, 서글서글한 눈매, 오똑한 콧날 때문에 가끔 환자들로부터 “웬 외국인 의사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저 때문에 최소한 환자들 상황이 더 안좋아 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금세 힘이 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들이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안하는 일에 더 매달린다. 지금도 아침 9시 45분이면 어김없이 수술실로 간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번까지 인공관절 대체 수술을 하는 ‘체력 짱’이다. 매달 250여건, 연말이면 3000여건이다. 지금껏 애양원에서 한 수술 횟수는 4만여건이다. 외진 곳에 자리한 병원이지만 전국 곳곳에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 탓인지 환자들이 입소문을 타고 물어 물어 이곳을 찾는다. 하루 평균 500여명.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타지에서 온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왜 여기까지 왔느냐.”고 하자,“원장이 잘해, 돈도 싸고….”라면서 입 맞춘 듯 한 목소리다. 하지만 김 원장은 임상관련 논문이나 학술발표회는 되도록 미룬다.“그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애양원 선배의사들로부터 배웠다.”고 털어놨다. 보통사람들이 사는 방법에 대해,“우리 모두에게 현실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생활하면서 남을 조금 배려하는 생각과 행동에는 인색한 것 같다. 평소에 조금씩 돕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병원 한상인(42) 경리과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원장님은 ‘지존’으로 통한다. 수술도 잘하지만 독서량이 워낙 많다 보니 고고학이나 동·서양사 등에서 전문가 수준을 넘는다.”고 입에 침이 마른다. 신용(47) 사무국장은 “원장님이 정말 화가 나서 가장 심하게 한다는 말이 ‘어떡하면 좋습니까.´라면서 눈에 힘줄 때”라고 웃었다. 김 원장의 생활신조는 성실로 요약된다. 술·담배는 남이고, 취미생활은 수술이고, 그 장소는 병원이다. 직원들을 집으로 혹은 사무실로 초대해 직접 커피를 끓여주고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해 챙겨준다. 앞서 지난 2003년 그는 서울대의대 동문들이 장한 동문들에게 주는 ‘장기려박사 의도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의료인들도 욕심을 내세우지 말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진료해야 하고 (급여로)받은 돈의 일부를 이들에게 써야 할 때”라며 후배 의사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은 예산 한 푼 도움 받지 않지만 의사 8명, 간호사 48명, 행정직원 43명이 똘똘뭉쳐 90병상을 운영한다. 해마다 적잖은 규모로 흑자를 낸다. 이 돈으로 병원에서 운영하는 한센인 무료 양로원(88명)과 재활직업보도소(20명) 살림살이에 보탠다. 서둘러 수술실로 향하던 김 원장은 “항상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산다. 평범한 일에 감사하고 기도하면서….”라며 여운을 남겼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김인권 원장은 ▲51년 서울 출생 ▲75년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80∼83년 국립소록도병원 외과 근무 ▲81년 인도 Schiefflin 나환자 재활병원 수련의 ▲82년 서울대 의대 석사과정 수료 ▲83년 여수애양원 정형외과 과장 ▲87∼88년 영국 Oswestry. Robert Jones&Agues Hunt병원 정형외과 연수 ▲90년 서울대 의대 박사학위 취득 ▲92년 여수애양원 부원장 ▲95년∼현재 여수애양원 원장 ▲96년 인돈문화상 수상 ▲97년 세계성령봉사상 수상 ▲99∼2004년 중국옌볜대학 복지병원 환자 수술 의료 봉사(연 1회 1주 5회) ▲2000년 중외박애상 수상 ▲2003∼2005년 베트남 St.Paul Hospital in Hanoi&ITO Hospital in Hochimin city 수술 의료 봉사(연 1회 1주간 3회) ▲2004년 제1회 장기려 의도상 수상
  • [실전 논술] 윤리의 발생과 존속

    ●다음 글의 저자는 윤리의 발생과 존속에 대하여 특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저자의 입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공평 무사함에 대한 예찬과 그 기원 서로 이웃한 두 명의 족장 사이에 수 년 전부터 불화가 있어서, 그들은 서로 씨앗을 파헤치고 가축을 훔치며 집을 불태웠는데 전체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힘이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영토가 동떨어져서 이 싸움에 휩쓸려들지 않았던 제 3의 족장은 이 호전적인 두 족장 중에서 한쪽이 결정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날이 올 것을 염려하여, 결국 양자 사이를 호의와 친목으로써 중재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 때부터 평화를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는 자신과 상대방이 합세하리하는 것을 각각에게 암시함으로써 은근히 자신의 협상안을 강요했다. 그래서 양자는 그 앞에 모여 여태껏 증오의 도구이며 또한 빈번히 그 증오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자신들의 손을 망설이며 그의 수중에 맡겼다. 그리하여 실로 그들은 성실하게 평화를 추구하려 애썼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복지와 쾌적함이 갑자기 증대했다는 것, 이웃은 더 이상 음험하거나 조롱을 하는 악인이 아니라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상인이라는 것, 심지어는 뜻밖의 재난이 닥치면 지금껏 그래 왔듯이 이러한 이웃의 곤경을 이용하거나 그것을 최고도로 높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 재난에 대해 상대방을 구제해줄 수 있다는 것 등등을 놀라워하면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흡사 두 지방에 사는 부족인들은 그 이래로 아름다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눈이 밝아지고, 이마의 주름살도 없어졌으며, 모두가 자신의 미래를 신뢰할 수 있게 된 때문이었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있어 이러한 신뢰보다 더 쓸모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매년 동맹일에 다시 만났다. 족장과 그 부족민들 모두가, 더욱이 그 중재자의 앞에서 모였던 것이다. 그 중재자 덕분으로 얻게 된 이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중재자의 방식을 경탄하며 존경해 마지않았다. 그들은 중재자가 ‘공평 무사’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그 후 자신들이 모으게 된 이익에만 너무도 몰두했던 나머지 그 중재자인 이웃의 행실을 보지 못하여 그의 상태는 중재 이후에도 그전의 상태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몰랐기 때문이다. 즉, 그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므로 그가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기라도 한 듯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공평 무사함을 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경우에서 그 때까지 그와 유사한 일이 종종 일어났음에도 그들이 그런 일이 덕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은 그것이 처음으로 전 부족들이 볼 수 있도록 아주 큰 글씨로 벽에 쓰여졌을 때 이후의 일인 것이다. 도덕적 특성은 그것이 ‘가시적’으로 전 사회의 행·불행을 결정한 그 순간에야 비로소 덕으로 인식되고 명명되며 존중되고 함양하도록 권유를 받게 된다. 즉, 그럴 경우엔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감정의 높이라든가 내면적 창조력의 흥분은 너무 엄청나서 그들은 각각 자신이 갖고 있는 최상의 것을 이러한 특성에 부여한다. 즉, 엄숙한 자는 자신의 엄숙함을, 기품 있는 자는 기품을, 여인들은 온화함을, 청년들은 자기들 본질에 가득 차 있는 온갖 희망과 미래를 그 도덕적 특성의 발치에 놓는다. 시인은 그것에 언어와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을 유사한 계열에 넣어 혈통을 주고, 최후에는 예술가들이 하듯 자기의 상상이 창조한 형상으로 새로운 신격으로서 숭배하는 것이다. 그는 숭배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것은 하나의 덕이 된다. 만인의 사랑과 감사가, 마치 조각상에 그러하듯, 그것에 작용하여 결국에 가서는 훌륭한 것과 숭배할 만한 것이 ‘결합’하여 일종의 신전인 동시에 일종의 신적 인격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 후 덕은 유일한 덕으로서, 즉 이전과는 다른 독립된 존재로서 서게 되는 것이며, 신성시되는 초인간성으로서의 권리와 권력을 행사한다. 윤리와 윤리적인 것 도덕적·윤리적·윤리학적이라는 것은 오래 전에 설정된 규율이나 관례 따위에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고통스럽게 기꺼이 복종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으며, 복종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랫 동안 유전되어 온 천성에 의하여 윤리적인 일을 쉽고도 기꺼이 해치우는 사람(예컨대 고대 희랍인에게 있어서처럼 복수하는 일이 선한 윤리에 속해 있을 때 복수를 해치우는 사람)을 ‘선하다’고 한다. 그는 ‘무엇엔가’ 선하기 때문에 선하다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호의와 동정심 같은 것들은 윤리의 변천 속에서도 늘상 ‘무엇엔가 선한 것’으로, 유용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로 호의적인 사람, 자비심이 많은 사람을 ‘선하다’고 한다. 악은 ‘윤리적이지 않은 것’, 비윤리를 저지르는 일, 그것이 이성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인습을 역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을 해침은 서로 상이한 여러 시대의 모든 윤리 법칙에 있어서 대체로 해악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악하다’는 말에서 자유 의지로 이웃을 해치는 일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인간이 윤리와 비윤리, 선과 악에 대하여 구분을 지어 온 근본 대립은 ‘이기적인 것’과 ‘비이기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습 및 규율의 속박과 그로부터 자유로운 것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인습이 어떻게 ‘성립’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 가서는 선악이라든가 그 밖에 내재적 지상 명령(도덕 법칙)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무엇보다도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민족’의 보존이 목적인 것이다. 잘못 판단된 우연을 바탕으로 형성된 모든 미신적 관례는 인습을 강요하는데, 이 인습에 복종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다. 인습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위험한 것인데,‘공동 사회’의 경우가 개인의 경우보다 훨씬 유해하다. 그런데 모든 인습은 기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이 망각될수록 계속해서 존중될 만한 것으로 되어 간다. 거기에 바쳐지는 숭배는 세대가 지날수록 더 두텁게 쌓여 인습은 마침내 신성한 것이 되고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지문의 분석 이 글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일부이다. 이 책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친구이자 동지였던 바그너와의 절교로 깊은 상심과 사상적 변이를 겪고 있는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니체에 의하면 도덕은 특정한 습관이나 풍습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의 준수가 유쾌함을 창출함으로써 도덕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입증한다 하더라도 도덕이 곧바로 선하다고 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도덕 및 윤리와 관련하여 대단히 파격적인 니체의 입장은 일단 상대주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나, 그의 도덕 이론을 통칭하기에 딱히 적합한 용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덕 및 윤리의 발생과 관련하여 니체가 상대주의적 외양을 띠는 것은 분명하지만, 도덕 이론과 관련하여 그가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기존의 나약하고 노예적인 기독교 윤리를 파괴하고 건강하며 활기찬 초인의 도덕을 강조하는 데 놓여 있기 때문이다. ●출제의도와 생각하기 제시문에서 니체는 도덕 및 윤리가 결코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합의에 의해 우연히 창출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아울러 인습적인 힘에 의해 존속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보면 도덕 법칙은 사실 정당한 가치 척도가 될 수 없으며, 우연히 만들어져 인습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원칙들을 강제하는 체계일 뿐이다. 비교적 난해한 제시문이지만 나름대로 제시문의 입장을 요약한 다음, 거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단, 제시문의 주장에 대한 논박과 옹호가 논의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글을 써 나가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명료하게 제시하는 방법이다. 제시문이 비교적 추상적인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제시할 경우에는 적절한 예를 들어 접근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의 입장을 찬성한다면 니체의 주장이 맞아떨어질 수 있는 도덕 규범의 예를 보여 주고, 반대할 경우에는 니체의 주장에 대해 반례가 될 만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논제와 관련해 볼 때 주제의 방향은 도덕에 대한 니체의 입장 검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제문은 도덕에 대한 니체의 입장이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는 점을 제시하면 된다. 이러한 방향과 관련하여 서론은 먼저 전통적 도덕관에 대하여 정리하면서 문제 의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면 된다. 본론의 처음 부분에서는 앞서 언급한 전통적 도덕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 자연스럽게 글을 연결해 나갈 수 있다. 이어서 도덕의 발생에 대한 니체의 입장과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 된다. 도덕 및 윤리가 합의에 의해 우연히 창출된다는 니체의 입장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을 논술하면 된다. 이 때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으면 자의적이거나 추상적인 주장이 될 수 있으므로 구체적 예로써 보완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본론의 마지막 부분에는 도덕의 존속에 대한 니체의 입장을 정리하면 주어진 문제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본론의 마지막 부분인 도덕의 존속에 대한 니체의 입장, 즉 인습적인 힘에 의해 존속된다는 입장에 대해서 비판하는 내용으로 마무리지으면 된다. 단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닌, 자신의 견해가 드러난 논리적 비판이어야 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정의장 “3당국회 가동” 압박

    열린우리당은 18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 3주년을 기념해 당·정·청 워크숍을 열어 참여정부 3년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정세균 의장을 비롯한 여당 의원, 이해찬 국무총리와 장관들,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 등 100여명은 3년의 성과에 후한 점수를 매겨 자축하면서도 앞으로 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로 남은 과제를 마무리짓자고 결의했다.●“참여정부, 잘 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기조 발제에서 그동안 이뤄낸 성과를 하나씩 짚어가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흔히 국가 채무가 높다고 하지만, 공적자금 도래분과 외평채 등을 빼면 순수 재정적자 규모는 6조 규모로 낮아 (정부가)아주 알뜰한 살림을 해왔다.”면서 “수도권 과밀화 문제만 해도 역대 어느 정부가 이번처럼 공공기관 이전 등 다양한 특별법 같은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접근했느냐.”고 자부했다. 이 총리는 특히 “내년 하반기 이후에 건설경기가 살아나는 등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하며 “참여정부 끝날 때까지 국민소득 1만 8000달러를 달성하면 그 다음 정부가 사회적 관습·법률·문화만 개선해 선진국 진입이 가능해져 결국 선진국 진입의 틀은 참여정부가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민주·민노당과 함께 임시국회 가동” 정세균 의장은 17대 국회 성과를 언급하면서 “한나라당이 과거에는 행정부 독재를 하더니 이제 (길거리에서)입법부 야당 독재를 하려고 한다.”면서 “악의적인 언론 플레이, 무분별한 장외투쟁 같은 구태 정치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한나라당이 계속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면 부득이 타(他)야당과 공조해 (법안을)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아 사실상 민주당·민주노동당과 함께 ‘3당 국회’를 가동할 뜻을 시사했다.‘여야 합동 의원총회’도 제안했다. 토론에 참여한 박영선 의원은 “소득세 과표구간은 1996년에 만들어졌는데, 사회 양극화는 1997년 IMF사태 이후 심해졌으니 이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임종석 의원은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가급적이면 매년 정례화하자.”고 제안했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재보선 패배 등)작은 게임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몰라도 (대통령)선거에서나 역사적 평가에서나 우리가 결국 이길 수 있다.”고 기대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데스크시각] ‘양심적 병역거부’ 어떻게 볼까/김성호 문화부장

    오는 26일 열릴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계는 물론 사법당국과 군, 일반인들까지 인권위의 판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국가기관이 내리는 첫 결정이란 점이 예사롭지 않고 지난해의 사법부 판결 뒤집기 파장, 그리고 현실적인 적용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우선 양심을 전제로 한 병역거부를 국가기관이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인지의 여부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지난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군의 병역거부를 시작으로 공론화됐지만 사실상 1939년 여호와의 증인 신자 38명이 병역거부를 이유로 체포된 것이 그 시초로,66년에 걸쳐 지속돼왔다. 개신교 특정 교단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각 종교에서 속출했고 비종교 거부자도 해마다 늘고있는 추세다. 그간 누적 인원이 1만명에 이르렀고 지난 9월15일 현재 수감된 병역거부자만도 1186명에 달한다. 아제르바이잔, 앙골라, 아르메니아, 싱가포르, 터키 등 7개국에 총 72명이 수감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전세계에 수감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94%가 한국에 있는 셈이다. 이런 수치를 떠나 국가인권위의 결정에 주목하는 이유는 ‘병역거부를 더이상 범죄영역으로 보지 않는다.’는 전향적인 측면에 있다. 소수자의 인권을 포함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소수자를 인정한다는 열린생각의 수용차원이다. 두번째는 사법부의 판결 뒤집기와 관련한 실정법 충돌 논란이다. 지금 시점에서 지난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상충되는 인권위 결정이 몰고올 파문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인권위의 판단은 사실상 상징적 변화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인권위의 결정내용은 대부분 권고형태로, 구속력을 갖고있지 않다. 물론 관계기관이 성실하게 노력할 의무를 갖는다는 규정이 있지만 인권위의 권고 수위도 일반인들의 우려와는 달리 ‘더 긴 기간의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정책권고’쯤이 될 것이고 보면 세상이 뒤집힐 만큼의 큰 사안으로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지난해 사법부 판결의 이면에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할 때에는 양심의 자유가 좀더 존중되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번째는 병역거부 인정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적용할지의 어려움이다. 양심적 거부의 범위 판단과, 고의적 병역기피를 구분할 방법의 문제인데 이 부분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종교계와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병역기간을 현재의 공익근무기간보다 늘리고 근무의 강도도 강화하면서 합숙하게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대체복무자 수의 제한도 한 방법이다. 철저한 양심에 기초한 병역거부자라면 이같은 조건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여기에 우리의 실정법상 고의의 병역기피를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병역의 의미를 총을 들고 싸우는 의무에 국한할 게 아니라 좀더 넓은 의미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종교계와 국가인권위 주변 인사들의 관측을 종합해볼 때 26일 인권위에선 일단 ‘인정’쪽으로 결론날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종교계와 인권단체는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다. 대신 남북대치란 특수한 상황에서 유지돼왔던 ‘병역기피=범죄 형성’이란 도식적인 인식 탈피가 환영받는 가장 큰 이유다. 지금처럼 이 도식이 존재하는 한 감옥행을 선택하는 행렬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이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유럽의회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을 촉구해왔으며,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25개국에서 대체복무제를 인정하고 있다. OECD가맹국중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수감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오명을 떠나, 다양성의 사회를 향한 또 한 걸음의 차원에서 인권위의 ‘열린 결정’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김성호 문화부장 kimus@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불법행위로 생긴 빚 면책안돼

    카드빚이 3000만원 정도 있습니다. 연체하지 않으려고 회사 자금 3000만원으로 빚을 갚았는데, 곧바로 발각돼 쫓겨났습니다. 그동안 성실하게 근무했다고 회사는 3000만원에 대한 지급각서만 받고 형사고발을 일시 유예해 줬습니다. 이후 직장이 없어 다른 빚도 늘어났고 갚을 길이 없습니다.-안태영(41) 아쉽습니다. 안태영씨는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을 했습니다. 회사 자금을 직원이 함부로 가지고 가면 직위에 따라 횡령죄 또는 절도죄에 해당해 형사처벌을 받습니다. 민사상으로도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파산법은 고의로 저지른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의무는 면책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합니다. 피해자 의사에 따라 빌려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채권자가 채무자의 변제의사와 능력을 심사할 기회가 없었으니 파산제도에 포함시키기 곤란합니다. 만일 이런 경우에도 면책을 허용한다면 고의의 불법행위를 장려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의식하지 못하고 실수로 저지른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횡령이나 절도는 상대방에게 피해가 생기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고의로 인한 불법행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안태영씨가 회사에 진 3000만원의 빚은 파산절차를 밟는다고 면책되지 않습니다. 다른 채무에 대해서는 파산절차를 진행해 면책받을 수 있지만, 결정의 효력이 회사에서 훔친 돈에까지 미치지 않습니다. 원래 생활고로 인한 신용카드 채무는 회사에 성실하게 다니면서 개인회생 절차에 의해 전부 또는 일부를 순차로 갚아가면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파산제도를 통해 면책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미한 채무를 갚기 위해 파산절차에서 면책되지도 않는 채무를 새롭게 부담한 것이니 최악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금융채무 때문에 어렵더라도 공금 등에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안태영씨가 빚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사측의 배려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는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의 시효가 걸립니다. 이때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 제기되지 않으면 채무는 소멸합니다. 그렇지만 시효에는 여러 예외가 있습니다. 둘째, 가족의 지원을 받거나 저축으로 모은 돈을 갖고 손해금에 못미치더라도 회사와 합의를 시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불법행위가 있더라도 나머지 빚에 대해서는 파산을 통한 면책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유용한 돈을 변제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 [사설] 활황 증시에 ‘한탕’ 분위기 경계해야

    웃을 일이 없는 경제 속에서 증시나마 견고한 성장세를 보여 다행스럽다. 코스피지수는 연초대비 50% 가깝게 가파른 오름세를 타고 있다. 자금유입도 꽤 활발하다. 시가총액이 500조원에서 600조원이 되는데 일곱 달 걸렸는데, 불과 두 달만인 최근 700조원도 넘어섰다. 덕분에 주식 투자자들의 수익성이 좋아지고 상장사들의 기업가치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시장의 ‘물’이 좋을 때는 경계해야 할 일도 그만큼 많아진다. 특히 기업정보도 모르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개인투자자들이 또다시 늘고 있어 걱정이다. 최근에는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또 주식에 투자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기관투자가나 외국계 펀드는 정확하고 빠른 정보와, 풍부한 자금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손해볼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들의 투자행태를 섣불리 흉내냈다가 자산을 탕진할 수도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주식시장이 많이 투명해졌다고는 하나, 불성실 공시와 작전세력의 조직적 주가조작, 정보 접근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얌체 기업들이 주변에는 여전히 수두룩하다. 이들 불순세력의 피해자는 결국 한탕주의 개인투자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 증시는 아직 변동성이 커서 위험부담도 만만찮다. 따라서 개인투자자들은 상당한 자제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증권당국도 개인투자자들의 보호와 시장의 공정성 제고에 신경쓰고, 증시의 건전화와 안정적인 상승세를 도와주기 바란다.
  • ‘커리어우먼의 모델’ 이행희사장 조언

    ‘커리어우먼의 모델’ 이행희사장 조언

    “직장인의 젠더(성·性)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입니다. 뒤에서 ‘나도 할 수 있는데….’라고 속삭이지 말고, 먼저 나서서 여러분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지난 13일 밤 서울 여의도의 빌딩숲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국회의사당 앞 현대카드·캐피탈 건물은 열기가 가득했다.50여명의 여직원들은 밤이 깊은 줄도 모른 채 여성 강사의 열변에 귀를 쫑긋 세웠다. 현대카드·캐피탈의 여직원 조직인 ‘우먼스 네트워크’가 마련한 강연회였다. 강사는 커리어 우먼의 ‘모델’로 떠오른 한국코닝 이행희 사장. 평사원으로 입사해 16년 만인 지난해 최고경영자(CEO)가 된 이 사장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아시아에서 주목받을 10대 여성 기업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유학은 물론 해외근무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가 단시간 내에 다국적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된 데 주목했다. ●“여성의 리더십이 세상을 바꾼다” 리더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차별을 딛고 오직 능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 사장의 경험과 철학은 ‘금과옥조’였다. 직제에도 없는 계장을 거치고서야 대리가 됐던 일, 코닝사의 제품 6만개를 줄줄이 외웠던 경험…. 이 사장의 이야기 보따리를 여직원들은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고속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좌절하거나 실패한 적은 없는지 등 질문도 쏟아졌다. 현대카드·캐피탈에 ‘우먼스 네트워크’가 조직된 것은 지난 9월. 가장 ‘수평적인 조직’으로 평가받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전세계 여성 직원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대리급 이상 여직원 97명이 모두 ‘우먼스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이 회사 전체 직원은 2500여명. 이중 여성이 40%를 차지하고 있지만 대리 이상의 여직원은 전체의 9%에 불과하다. 회사는 갈수록 늘어나는 여성 인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판단, 관리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대리급 이상 여직원들을 조직해 리더십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출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신입사원 모집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지는 ‘여초(女超)현상’이 일반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보조자’에 그치고 있는 여성 직장인들의 현실을 고민하는 금융권에서도 현대카드의 이 실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저 여자는 가정이 없나 봐” 설립 초기에는 ‘우먼스 네트워크’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짜임새 있는 참여 프로그램이 없으면 흔한 여성 친목단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기우였다. 학벌과 군대, 술자리 등으로 이미 탄탄한 ‘네트워크’가 있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의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열망과 참여는 뜨거웠다. 강연회 사회도 돌아가면서 맡을 정도로 철저한 참여 속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산됐다. 사장과 임원들을 불러내 회사 사정과 경제 전반을 묻고 토론했다. 진석현 인력개발팀장은 “네트워크 출범 이후 여직원들의 자세가 몰라보게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 직원들은 아직도 멀었다고 느끼고 있다. 남성이 열심히 일하면 성실하다고 칭찬하지만 여성이 밤 늦도록 사무실을 지키면 ‘독종’이라며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네트워크의 회장격인 성경희 소비자보호센터 부장은 “남자 상관이 ‘NO’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여자 상관이 ‘NO’하면 ‘왜 저렇게 깐깐하지?’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행희 사장은 여성들이 먼저 피해의식을 버리고,“저에게 맡겨 주십시오.”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여사원들이 이에 공감하면서도 “여성의 한계를 미리 단정짓는 남성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은 직장 생활에서 무엇을 더 이루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 사장은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 답변을 듣는 여직원들의 표정에는 부러움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짙게 묻어났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사진중복·DNA지문 우선 검증”

    “사진중복·DNA지문 우선 검증”

    서울대는 황우석 석좌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결과를 재검증하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구성,1차적으로 조작의혹이 제기된 줄기세포 사진과 DNA지문 자료에 대해 조사키로 했다. 1차 조사는 1주일이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조사위원회 구성을 감안할 때 연내에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노정혜 연구처장은 12일 대학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대는 황 교수팀의 요청을 수용, 그동안 제기된 논란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학의 발견에 대한 문제제기는 과학계의 자체 검증을 거치는 것이 발전의 한 양상이지만, 황 교수 연구의 진위 논란은 그 이전에 언론매체를 통해 중대한 이슈가 되어버렸다.”고 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대는 교내 생명과학분야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날 곧바로 조사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노 연구처장은 “논문의 보충자료 데이터가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진상파악은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자연대의 한 교수는 “1차 조사대상으로 삼은 줄기세포 사진중복,DNA 지문자료 수치 확인 등에는 1주일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황 교수는 이날 오전 5시40분쯤 입원(7일)한 지 6일 만에 퇴원, 서울대 수의대 연구실로 출근했다. 황 교수가 연구실에 나온 것은 지난달 24일 공직사퇴 기자회견 이후 처음이다. 황 교수는 연구실 앞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더욱 열심히 하겠으며 서울대의 자체조사에도 성실히 응하겠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어 오후 1시쯤 이병천 교수를 비롯한 수행원들과 충남 홍성의 돼지농장을 방문, 그동안의 실험결과를 둘러보고 직접 실험도 했다. 하지만 황 교수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이날 저녁 서울대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파산하면 밀린 국민연금·의보료는?

    Q은행 대출, 신용카드 사용대금을 갚기 위해 개인사업을 접었습니다. 대부분의 빚은 갚았지만, 세금 연체가 1000만원 정도 남았습니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료도 2년 동안 내지 못했습니다. 같이 일하던 직원 급여도 300만원 정도 밀렸는데, 도저히 갚을 여력이 안됩니다. -김은하(38) A세금은 파산절차로 면책되지 않습니다. 국민은 헌법과 세법에 따라 납세의무를 집니다. 국가는 세금을 걷을지 말지에 대해 개인과 계약을 맺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신용을 심사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파산과 면책의 근거는 채무자가 금융채무를 갚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채권자에게 내놓으면 나머지는 면제받는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세금은 계약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면책을 받을 때 제외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가입과 징수를 강제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료도 세금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세금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실무상 이런 부담도 파산절차에서 면책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종업원의 급여 역시 근로자 생활 안정을 위해 정책적으로 파산, 면책의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습니다. 사업이 기울어 임금이 체납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직장을 지킨 근로자에게 우선적인 특권을 인정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종업원 월급을 준다고 해도 일반 채권자의 이익을 해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김은하씨가 지고 있는 세금, 국민연금, 의료보험료, 직원 급여 미지급금은 파산 절차로 면책되지 않습니다. 세금 체납이 남아 있으면 세무서에서는 사업자등록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업자는 세금과 임금을 정리하기가 부담스러워지면 사업정리도 고려해야 합니다. 다만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시효 제도가 있습니다. 세금과 공과금은 통상 5년, 신고가 전혀 없었던 경우에도 10년의 시효가 적용됩니다. 임금도 판결로 확정되지 않으면 3년의 시효가 적용됩니다. 시효가 지나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됩니다. 보통 가난한 사람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밀리게 되는데, 이들을 배제하면 사회보장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을 국가가 의도적으로 제외하는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부정기적으로 체납자들을 구제합니다. 새롭게 발생하는 납부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조건으로 과거 밀린 납부금을 유예하는 것으로, 시일이 지나면 연체된 것은 시효가 완성됩니다. 이를 이용하는 게 두 번째 방법입니다.
  •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무더기 결항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무더기 결항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8일 0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대한항공의 항공기 운항이 절반 이상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여 ‘항공 대란’이 예상된다. 파업에 앞서 정부는 조종사 노조가 파업을 하면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노사는 7일 오전 11시40분부터 김포본사에서 13차 교섭에 나섰으나 협상은 결렬됐다. 노조는 기본급과 비행수당에 대해 각각 6.5%, 상여금 50% 인상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은 기본급 2.5%, 상여금 50% 이상의 인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대한항공 조종사 400여명은 이날 오후부터 인천 영종도 새마을연수원에 모여 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노조는 “파국을 원하지 않았지만 회사가 교섭에서 불성실한 자세를 보여 총파업에 돌입한다.”면서 “해외에 있는 노조원들이 동참하는 3일 뒤에는 파업참가 인원이 10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항공업계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이 지난 7월 아시아나항공 파업 때보다 더 큰 파장을 부를 것으로 예상했다. 회사측은 노조파업 첫 날인 8일 항공편 387편(화물기 포함)가운데 53%인 204편이 결항된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조종사 인력이 600∼700명밖에 안돼 첫날부터 전 노선의 감축 운항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제선은 154편 가운데 일본·동남아·중국 등의 노선에서 30편이 결항되고, 국내선은 202편 중 내륙노선 전편과 제주 17편을 포함해 총 49편의 운항이 취소된다. 화물기도 31편 중 24편이 결항돼 화물수출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한편 정부는 담화문을 통해 “파업으로 생기는 막대한 국가경제 피해와 국민 불편을 감안, 파업이 시작되면 긴급조정권 발동 등 특단의 대책을 적극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노조측은 “정부가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긴급조정을 언급하며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파업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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