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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49돌/해묵은 이념갈등 종식을 모색한다/정담

    ◎“「자유민주」 건국이념 통일로 승화돼야”/미군정·독재정권 친일파 수용이 갈등의 불씨/자유민주=보수·민족주의=진보 「기형적 틀」 형성/남북 이념적인 통합기회 없이 분단/6·25 겪으며 반공·반미로 첨예 대립/탈냉전시대 사상논쟁 재연은 역사의 아이러니 올해로 광복 49주년을 맞았다.그러나 반세기가 지나도록 자유민주주의라는 건국이념을 다시 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김일성사후 주사파문제가 예년에 없이 심각하게 부각되고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의 정통성마저 부인하며 해묵은 사상논쟁이 재연되고 있다.새로운 남북관계와 통일정책수립을 앞두고 진덕규(이화여대),이택휘(서울교대·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장),이현희교수(성신여대)가 우리의 건국이념을 재조명해보고 현재에 갖는 의미,구현방법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택휘교수=광복 당시 남북한은 모두 통합된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고 국민적 합의도 얻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광복과 함께 남한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북한은 구소련의 사회주의를 수용해 이념적으로 통합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분단이 고착됐습니다.광복전부터 내재해 있던 이념갈등은 그후 심화됐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현희교수=건국이념의 배경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내부적으로는 민족광복세력의 왕조체제청산과 미국과 소련등 외세에 의한 영향등을 우선 꼽을 수 있습니다.임시정부가 중심이 됐던 군주제청산은 민주체제로의 자주적인 노력으로 임시헌장에 절대 자주독립과 자유민주주의,나아가 전통사상인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삼균주의정신을 담고 있습니다.그러나 광복후 남북의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건국이념은 올바로 설정되지 못했습니다. ▲진덕규교수=국민적 열망이었던 자주독립정신을 문서에 담은 것이 건국 초기의 헌법입니다.여기에는 의회정치와 개혁적인 경제정책,근대적인 시민사회와 선진문화 도입등을 분야별로 담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같은 헌법정신,즉 건국이념은 이데올로기와 남북갈등으로 인해 반공으로 치우치게 됐고 결국 이데올로기의 경화는 삼균주의와 같은 임시정부의 이념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이택=그렇습니다.항일운동은 여러 갈래로 나눠 진행됐지만 군주정치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이념적인 틀에는 모두 합의하고 있었죠.그러나 45년이후 남북간에 타율적으로 생겨난 이념갈등은 6·25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의 제1 요소로 반공을 부각시켰고 북한은 반미를 들고 나와 첨예하게 대립합니다.이같은 갈등은 60년대 국제적인 해빙무드와는 상관없이 계속되다 80년대 들면서 서서히 해소됐습니다.45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역학변화가 이번에도 남북에 영향을 줘 급기야 남한에 사상논쟁을 재연시켰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현=광복직후 서구의 특정 이념을 초월해 통합된 민족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모아졌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하나의 민족국가를 세우겠다는 국민들의 열망은 그러나 좌우대립으로 멀어져갔고 그 과정에서 남한이 48년 먼저 선거에 의한 단독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사회 일각에는 이같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분단고착과 연결지어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북한의 주장처럼 단정의 책임이 전적으로 남한에 있는지,또 단정수립이 정말 불가피했는지 등을 짚어봤으면 합니다. ▲진=단독정부수립을 남한의 이승만정권이 혼자서 주도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한 역사인식이 아니라고 봅니다.왜냐하면 북한에는 이미 46년 실질적으로 정부가 세워진 것과 다름없을만큼 조직이 정비돼 있었고 남쪽마저 공산정권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중이었습니다.그래서 남쪽에서는 북쪽에 대응해 단독정부를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과 절박감이 팽배했습니다. 게다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끝나 미국은 결국 유엔에 남북한 정부수립문제를 위임했고 총선이 가능했던 남한에서만 선거가 치러진 겁니다.다시말해 처음부터 단독정부를 수립해 분단을 획책한 것이 아니라 당시 주변상황이 남한 단독정부수립으로 이어지게 한 거지요.때문에 이승만정권이 단정수립으로 분단을 노렸다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며 역사에 대한 몰이해·반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봅니다. ○무정부상태 계속 ▲이현=저 역시 단정수립에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킬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 않습니다.45년부터 48년까지 남로당은 대구폭동,여순반란사건,4·3제주사건등 전국적인 교란작전으로 정국을 무정부상태로 만들었습니다.당시 이승만박사는 「선 정부수립 후 통일」이 불가피 하다고 봤고 김구선생이 이끄는 한독당과 접촉을 합니다.한독당은 그러나 남한단독정부수립은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가져온다며 반대하며 좌우연립정권 수립을 주장합니다.이박사는 공산세력을 절대로 끌여들여서는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한독당이 불참한 가운데 불가피하게 단독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단정수립 불가피 ▲이택=단정수립이 과연 불가피했느냐 하는 문제는 현대 정치사의 주요 논쟁의 대상입니다.앞에서도 언급됐지만 북한은 46년에 이미 정부조직을 거의 완료해 놓고 남쪽에도 공산정권수립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 사실입니다.사료들을 종합해보면 단정수립의 책임은 상당 부분 북한 특히 소련에 있다고 봐야합니다.그러나 남한도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이박사와 민족세력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미군정을 설득하고 단정수립을 지연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현=좌우합작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치안상태와 내외의 역작용을 고려할 때 단정수립은 불가피했다고 정리를 해도 무리는 없겠군요.그렇다면 화제를 최근의 사상논쟁으로 돌려 그 원인과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운 건국이념이 현재에 갖는 의미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진=건국이념의 현재의 의미를 논하기전에 먼저 현실인식과 당위성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단정이 수립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까에 대한 가정은 얼마든지 해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실인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겁니다.대한민국은 선거를 통해 수립된 합법적인 정부였지만 상해 임정세력들이 제헌의회에 불참하는 등 불완전한 부분도 있습니다.그러나 그후 5·30선거에는 임정세력들도 참여했고 특히 조소앙선생이 최다득표를 얻어 국민적합의가 생겨납니다.강조하고 싶은 것은 6·25전쟁은 자유민주주의의 건국이념을 변하게 했던 사건이 되었습니다.즉 공산주의와의 대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건국이념으로 서의 자유민주주의를 반공으로 몰아가는 냉전적 대결성을 가열시키고 말았습니다. ▲이택=그렇습니다.이쯤에서 왜 이념적 갈등 또는 논쟁이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고 있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가장 큰 이유는 미군정이 군정의 편의를 위해 친일인사를 수용한 겁니다.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막상 항일민족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철저하게 배제됐습니다.이런 모순된 상황은 결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싹틔웠고 「자유민주주의=보수,민족주의=진보」라는 기형적인 이념적 틀을 만들었습니다. 이념적 왜곡은 70년대를 거치면서 더욱 커졌고 지금에 이릅니다.최근의 사상논쟁의 중요배경 역시 미군정과 그후 독재정권이 친일파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했다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진=친일파처리문제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정통성시비를 일으키는 면이 있습니다.대한민국에는 48년부터 50년대 초까지 정부·경찰·학교·법조계등 국가의 중간관료급에 친일파가 다소 남아있었지만 각료의 차관급이상에는 친일파가 비교적 적지않았습니다.그러나 50년대 중반기 이후 중요정책의 결정에 참여했던 고위직에도 친일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이는 당시 이승만정권이 국가의 1차적인 대결세력를 공산주의자들로,이들과 대립하면서 승리하기 위해 힘의 응집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현상으로 여겨집니다. ○김일성 집권수단 ▲이현=최근 주사파 학생들은 남북한의 친일파숙청과정을 비교하면서 남한 정권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북한이 광복이후 인민위원회의 주요간부급에 친일파 또는 친일한 혐의가 있는 사람을 모두 배제한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북한은 친일파의 숙청을 그 자체보다는 김일성 반대세력을 제거,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행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택=친일세력들은 6·25전쟁과 5·16혁명을 거쳐 80년대까지 모든 분야에서 충원됐고 이는 이념의 혼란을 가져온 주요 원인입니다.과거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30∼40년씩 방치해둬 어렵게 사는 반면 친일세력은 득세하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겁니다.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이를 비판했습니다.소위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친일세력이 대부분 일치하자 「이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자연히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고 봅니다.대안마련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북쪽의 이념은 그래도 어느정도 정리된 것처럼 비친 것이 우리사회의 이념적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진=한국전쟁이후 3·15부정선거까지만 돌이켜 보아도 자유민주주의 정치질서와 속성이 얼마나 유린되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4·19혁명은 자유민주주의로 되돌아가서 이를 확립해 보려는 열망의 표출입니다.그러나 곧 박정희정권의 조국근대화 기치에 눌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열망도 빗나갔지만 6월 항쟁을 계기로 다시 국민과 정부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으로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정의실현 ▲진=먼저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본질과 민족국가의 개념을 짚어봐야 합니다.민족국가수립의 적시성과 국민적 욕구와 합의가 확보되어 있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체제에서 말하는 민족주의의 개념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입니다.원래 민족주의는 계급을 초월한 개념입니다.그러나 사회주이는 이를 전략적·수단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택=민주주의는 통합된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민주주의의 운영원리는 구성원들 사이에 도덕성과 사회적 정의를 과감하게 실현하기 위해 개혁을 지향하는 겁니다.정부가 먼저 주사파등을 수용,보다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현=반대세력은 용인하되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불순한 사상 제거를 전제로 한 건국이념을 정립해야 합니다.광복이전의 공산활동은 항일운동의 방편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8·15이후와는 구분돼야 합니다.따라서 대단합 차원에서 8·15이전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공산활동을 한 사람도 독립운동자로포상하는 방안은 검토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단군의 후손으로 「하나였다」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45년 또는 48년이 아닌 임정의 임시헌법이 만들어진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경험을 토대로 한 건국이념으로 통일을 지향해야 합니다.
  • 독립운동의 시대별특성 조명/독립운동연,12일 학술심포지엄 개최

    독립기념관 부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택휘)는 「한국독립운동의 시기별 특성」을 주제로 제8회 독립운동사 학술심포지엄을 12일 상오 10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연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정제우 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이 「구한말 국권회복운동의 특성」,윤경로 한성대교수가 「1910년대 독립운동의 특성」,이균영 동덕여대교수가 「20년대 독립운동의 특성」,김영범 서울대강사가 「30년대 독립운동의 특성」,한시준 단국대교수가 「40년대 전반기 독립운동의 특성」을 각각 발표한다.올해 주제는 독립운동의 태동과 성립,발전과 심화의 과정을 시간적 기준을 통해 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또 김상기 충남대교수와 신용하 서울대교수,이현희 성신여대교수,김호일 중앙대교수,이연복 서울교대교수가 토론자로 나선다. 이번 심포지엄은 독립운동사연구소가 「광복 50주년 기념 학술행사」의 하나로 지난 92년부터 4개년 계획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것.92년에는 「한국근대사에서 일제의 침략논리와 실상」,93년에는 「한국 독립운동의 지역적 특성」을 주제로 했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독립운동사 연구의 회고와 전망」·「독립운동과 민족통일」이라는 2개의 대주제로 나누어 대규모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0417­60­0400.
  • 가극「금강」에서 4인의 새별탄생/이명훈·박은래·이정렬·황후령 발탁

    ◎주역 모두 신인… 공연예술계 “새자극” 동학농민혁명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실상과 민중의 역동적 삶을 그린 대형가극「금강」이 주역진을 모두 신인으로 채우는등 파격적인 모습으로 팬들과 만난다.8월15∼18일 하오5시·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가극단「금강」(단장 문호근)은 최근 극중 두 주역인 신하늬와 인진아 역에 이명훈(26)­박은래(26),이정렬(27)­황후령씨(22)등 두쌍의 새 얼굴을 전격발탁하고 본격연습에 들어갔다.특히 이번 배역결정은 공개심사를 통해 신인배우를 모집하고 강도높은 훈련과정을 거친뒤 주연급을 선정하는 등 새로운 캐스팅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공연예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있다. 동학농민군의 반봉건 반외세·민족자주정신의 현재적 의의를 조명하는 가극「금강」은 신동엽 시인의 장편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한 민족극 형식의 작품.외세침탈과 봉건질곡의 민족수난기를 사랑과 혁명이라는 두개의 고전적 테마로 풀어나간다. 주인공으로 발탁된 이명훈·박은래씨는 경희대 성악과 동기생으로 폭발적가창력과 선 굵은 연기력이 강점.특히 바리톤 이훈 교수의 수제자인 이명훈씨는 산뜻한 뮤지컬 분위기의 노래를 자신의 굵직한 벨칸토 발성에 실어 들려줄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더블 캐스팅된 또 한쌍의 주인공 이정렬·황후령씨는 음악과 연기면에서 이명훈­박은래 조와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가슴을 울리는 독특한 「민중창법」이 두드러진 이정렬씨는 주로 포크 록계통의 노래를 부르는 그룹「노래마을」의 간판가수.민족음악 진영이 추천한 「민음협」의 대표가수이기도 한 이씨는 『앞으로는 레게음악을 해보겠다』고 밝힐 정도로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음악을 구사하고 있다.그의 짝이 될 황후령씨 역시 전국 청소년 성악콩쿠르 등에서 대상을 받기도 한 성악도(성신여대 성악과 4년)이지만 대중가요적 발성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는 차세대 음악극 스타. 『클래식,대중음악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우리 민족가극의 전형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연출자 문호근씨(48·한국음악극 연구소장)의 설명이고 보면 이번무대는 관객들이 한 작품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이채로운 경험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 6·25전 좌익활동 학계의견 정리

    ◎“대구폭동­제주 4·3사건 항쟁일수 없다”/박헌영의 「미군정 타도」 폭력 노선이 원인/민중사관 주장 극복… “분명한 폭동” 결론 「대구폭동」인가 「10월항쟁」인가,「제주도 4·3사건」인가 「제주도 4·3항쟁」인가.지난 봄 교과서의 역사용어 변경을 위한 시안을 놓고 벌어졌던 이같은 논란은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비록 논의 차원이기는 했지만 새 정부가 그처럼 진보적인 사관을 교과서개편 문제에까지 개방했기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만큼 정부의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을 만큼 파문이 길었던 것은 이 시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6·25 44주년을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기억되어야 하는 것도 「10월 항쟁」「4·3항쟁」이라는 시각이 수용된다면 6·25 또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는 『「10월항쟁」이나 「4·3항쟁」이라는 표기는 첫째 국내의 민중사관,둘째 북한의조선전사,셋째 중국의 혁명사관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단언했다.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일제하의 독립운동은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인 만큼 8·15는 광복이 아닌 「민족해방」이다.또 일제하 「민족해방투쟁」은 8·15이후 미군정 치하 남한에서 「민중항쟁」이라는 형태로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이같은 논리에 따라 그들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저버린 대한민국의 건국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징벌을 받게되며 6·25는 북침이었을지도 모르는 단지 한국전쟁일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강연세대교수는 『그같은 민중사관을 그동안 적지않은 학자들이 편향적이 아닌가 우려하면서도 용인해 온 것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이라면서 『학계를 벗어나면 용인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학자들은 「폭동」과 「사건」이라는 단어의 차이만큼 현재 국사 교과서의 표기대로 「대구폭동」과 「4·3사건」을 차별화한다. 이현희성신여대교수는 먼저 『「대구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말했다.아무리 진보적인 연구성과가 나와 있다고 해도 그 때를 체험·목격한 격앙의 세대가 악의적의 공산 파괴공작의 맥락에서 비롯된 당시 상황을 증언·열변하고 있는 한 달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덕규이화여대교수는 『1948년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폭동으로 보느냐 항쟁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는 우리 국가의 이념까지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현희교수는 그러나 『과거 일반화된 표기였던 「4·3제주폭동」은 그 간의 연구와 지역적 특수성으로 볼 때 「폭동」이라 표기하기에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학계 대다수의 시각』이라고 전하고 『이같은 시각은 교과서에 「4·3사건」이라고 표기됨으로써 이미 수용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승조고려대교수는 이 두 사건을 남로당 총책 박헌영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남로당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1946년 가을부터 폭력투쟁 노선으로 전술을 바꿨으며 이는 좌익세력에 대한 과신과 우익 세력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된 과오로「대구폭동」과 「4·3사건」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다.한교수에 따르면 박헌영이 보기에는 미군정이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고 보수세력도 한줌 밖에 안되므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계산했다.한편으로는 북한 인민군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해 3만명의 경찰과 5만명의 국방경비대를 상대로 폭력과 무장투쟁을 하다 좌익세력은 모두 소진됐다.또 박헌영은 남로당 조직에게 모두 총탄이 되어서 「5·10총선거」를 저지할 것을 명했으나 많은 인명의 살상과 대량 구속을 초래했을 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저지하지 못했다.결론적으로 상대방의 전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극한투쟁을 벌이다 좌익세력의 총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통주의적 입장에 서는 학자들 사이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좌익·혁신적인 학자들에 비해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기회주의적인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좌파학자들에게 보수·반동·어용으로 낙인찍히며 공격당할까 두려워 사실과 다른 억지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기를 꺼려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려 속에서도 이제 폭동을 폭동이라고 제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많아졌다는 것은 폭동이냐 항쟁이냐의 논쟁을 계기로 우리 학계가 한부분의 건강은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이다. ◎46년10월 대구폭동/경찰서 등 방화·군수 살해/식량요구 시위가 발단… 경남북 등 확산 「대구폭동」은 1946년10월1일 상오 쌀을 나누어준다는 풍문을 듣고 대구시청 앞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가 발단이 됐다.당시는 미군정 아래 좌우대립으로 정국불안이 계속되고 물자부족과 군정당국의 식량공출로 생활고가 극심한 가운데 좌익계열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이른바 「9월총파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태는 하오 들어 시위군중이 1만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하오7시쯤 대구역 앞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한 시민이 숨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흥분한 시민들은 이튿날인 2일 아침부터 경찰서·역·시청 앞 등에서 대규모시위를 벌였고 당초 식량배급을 요구하던 구호도 애국자석방,조선인에게 행정권이양 등 정치적 문제로 발전되어갔다.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탈취하고 대구시청 간부의 집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이에 군정당국은 하오7시 대구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미군의 출동으로 대구의 소요사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시위는 다음 날인 3일 저녁부터 영천·달성 등 주변지역으로 번져나가 11월 중순까지 경북전역과 경남·전남·강원지역에서 계속됐다.시위가 일어난 대부부의 지역은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교량·철도가 파괴됐다.특히 시위가 극심한 영천의 경우 경찰서·군청·재판소가 불타고 군수가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48년4월 4·3사건/좌익의 지서습격이 원인/9년간 희생자 3만∼8만명 추정 「4·3사건」은 제주도에서 1948년4월부터 만9년동안 최소 3만명에서 최대 8만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를 낸 해방후 최대의 유혈사태였다. 사건은 단독정부수립을 위한 5·10총선을 한달남짓 앞둔 4월3일 상오2시,산중에 집결해 있던 제주도민 2천여명이 도내 15개 경찰지서 가운데 14개를 일제히 습격하면서 시작됐다.이들은 「미군철수」와 「단독선거반대」 「이승만매국도당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일부는 일본군이 남기고 간 99식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좌익세력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미군정은 즉각 1천7백여명의 경찰을 비롯,국방경비대와 우익인사들인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했다.이에 봉기대와 이에 동조한 도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장기적인 유격전의 성격으로 전환됐다. 이후 봉기대를 주민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근거지가 되는 마을전체를 불살라버리고 주민들을 집단이주시키는 군·경의 소개작전과 이에 맞선 봉기대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양민을 포함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이 사건은 또 진압을 명령받은 군대가 이를 거부하고 소요를 일으킨 48년10월 「여순반란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4·3사건」은 1957년4월2일 마지막 「빨치산」 오완권이 생포되어서야 비로소 막을 내렸다.
  • 조상의 멋과 체취 가득/서울정도 6백년 기념전 지상전시

    옛 한양땅 서울을 우리나라의 도읍으로 정한지 6백년.그 유구한 세월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살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왔다. 서울·서울 사람·서울의 생활은 그동안 어떻게 변모해 왔을까.그 변천상을 보여주는 서울정도 6백년 기념전시회가 시내 곳곳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기념전시회는 서울시가 정도 6백년을 맞아 대학박물관 및 사설박물관,민간단체들과 뜻을 같이 한 가운데 마련한 행사.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 이모 저모와 그 변천해 온 모습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서울의 문화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들이다. 「6백년고도 서울」이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금년말까지 계속되는 이번 기념전시회는 지난 2월 28일 성신여대 박물관에서 막을 올린 「서울지도전」으로 시작됐다.이어 태평양박물관에서 「한국 여인의 멋 5천년전」이 성황리에 열렸고 지난달 30일엔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조선시대 말기 청화백자전」이 개막돼 오는 30일까지 우리 조상들의 멋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밖에도서울의 과거,현재,미래의 모습을 다양한 전시매체를 통해 종합적으로 구성전시하는 「서울,새로운 탄생전」(9월 16일∼12월15일·경희궁터)등 11가지 전시회가 기획돼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 아쉬운 학자적 소신/김성호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4일 하오 서울 인사동 덕원미술관 1층에서는 이례적인 토론회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인우회주최의 고미술전시회에 선보이고 있는 혜원 신윤복의 속화첩 진위시비를 가리기 위한 모임이었다. 성신여대 허모교수는 이 자리에서 그림의 주제나 묘법등이 혜원의 회화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소신을 거듭 밝혔다.나머지 참석자 3명도 주최측의 입장에서 맴도는 질의와 발언으로 일관해 결국 이날 토론은 외형상으로는 「가짜논쟁」을 일으켰던 나모화가의 참패로 끝나게 된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어느정도 그 진위를 객관성있게 가려주기를 기대했었다.그러나 이런 기대는 물거품으로 변한채 우리 학계가 당면한 논리부재의 허약성과 무소신만 보여준것 같아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다. 당초 이날 자리는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보아야한다.우선 문제의 속화첩이 일본에서 거액을 들여 사온 반환 고미술품이란 점에서 그에 상당한 문화재 지정을 위한 첫 단계란 것이고 둘째는 학계와 전문 고미술상이 공동참여하는 고미술감정기구가 없는 실정에서 이날 학자들의 소신발언이 진위판정에 사실상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였다.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인우회측은 국내 내로라는 학자와 고미술관계자 4백여명에게 서신으로 토론회 참석을 제의했고 특히 「가짜 혜원그림」견해쪽에 기울었던 권위자들에겐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통해 참석을 수차례씩이나 권유했다.그러나 반응은 소극적이었고 결국 이날 모임은 신랄한 반대론자 없이 「진짜 혜원그림」쪽에 손을 들어준 결과를 낳은 셈이다. 문제는 학자들의 학문적 양심이다.흔한 미술전시회엔 자신의 이론이나 학설을 들춰가며 유식한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이처럼 중차대한 현실문제엔 등을 돌리는 이중성이 그것이다.물론 사안 자체가 가볍지않은 분위기에서 공개적인 견해피력이 위험부담이 있는만큼 나서기를 꺼려하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그러나 이들 학자의 발언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사안의 경우 소신있는 참여가 더욱 아쉬웠던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학계가 갖고있는 편견성 복지불동의 전형을 보여줬다고나 할까.성급한 문제제기로 무모한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당사자로 낙인찍히긴 했지만 논쟁자체를 만든 한 한국화가의 용기에 점수를 주고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런 자리였다.
  • 제37회 전국역사학대회 27·28일 고려대서

    ◎논문 41편 발표… 최대 학술대회로/관련연구단체 모두 참가… 분야별로 개최/김해 양동리·미사리 등 유적 발굴 보고도 제37회 전국역사학대회가 「한국의 역사학 연구와 문화사」를 주제로 27·28일 고려대에서 열린다. 전국역사학대회는 국내 역사학계 최대의 학술대회.한국미술사학회와 한국사연구회·한국사학회·동양사학회·한국서양사학회·역사교육연구회·경제사학회·한국과학사학회·한국고고학회·역사학회등 국내 역사 관련 연구단체들이 망라되어 역사학자들의 축제를 펼친다. 국내역사학 단체들이 해마다 번갈아 맡는 역사학대회의 올해 주최는 한국미술사학회로 공동주제인 「한국의 역사학 연구와 문화사」를 비롯,「한국사부」「동양사부」「서양사부」「역사교육부」「경제사부」「과학사부」「고고학부」「미술사부」로 나뉘어 분야별 학술대회가 열린다.또 학술행사 뿐 아니라 각 학회별 총회와 연회등 친목을 다지는 행사가 잇따라 대회가 열리는 동안 고려대 곳곳은 국내 역사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올해 대회에서는 모두 41편의 무게있는 논문들이 발표될 예정.27일 공동주제 발표에서는 김이나 홍익대교수의 사회로 문명대 동국대교수와 조광 고려대교수·신채식 성신여대교수·주명철 한국교원대교수가 주제발표를 한다.이 분야에서는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이만렬 숙명여대교수·안휘준 서울대교수와 김흥수 춘천교대교수등이 토론자로 나선다. 27일은 각 분야별 학술대회가 열리는 날.「한국사부」의 주제발표자는 정홍준 고려대교수와 황정하 청주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박경용 서울시시사편찬위원,「동양사부」는 김정희 수원대교수와 남기학 일본 교토대교수·차경애 이화여대교수등이다. 「서양사부」는 조원홍 육군3사교수와 정동준 충남대교수·김학이 서울대교수·이상현 세종대교수가 참여하며 「역사교육부」에서는 김광수 서울대교수와 양정현 서운중교사·강선주 미성중교사등이 교육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실증적 논문들을 발표한다. 「경제사부」는 정성일씨(국사편찬위원회)와 조석곤·주익종(서울대 대학원)·노택선교수(청주대)등이,「과학사부」는 문중양·임종태·이범교수(서울대 대학원)·이성규(인하대 대학원)가,「고고학부」는 임효택 부산대교수와 윤우준 한양대교수등이 김해 양동리와 미사리등 유적에 대한 발굴보고를 한다. 「미술사부」는 허영환 성신여대교수와 권령필 고려대교수의 사회로 김춘실 충북대교수와 윤용이 원광대교수·송남실 숙명여대교수등이 그동안 한국사 개설서에서 미흡하게 처리되어 온 미술사의 문제를 다룬 논문들을 발표한다.
  • 상해 임정1호 청사 해체 자재 국내반입/선열뜻 기릴 청사 복원추진

    ◎벽돌·기와·집기류등 컨테이너 28대분/김구·신규식 선생등 요인숙소 1채로/복원추진위 상해 임시정부 7개의 청사 가운데 최초의 청사였던 건축물자재를 국내로 들여와 복원이 추진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1월부터 20일까지 3차례에 걸쳐 들여온 기둥·기와·집기류등 임정청사 해체자재는 지난 1919년 4월10일부터 한달가량 임시정부가 청사로 사용했던 첫번째 청사건물이다. 이들 건물해체자재들은 임정청사등에서 임정요인들이 쓰던 탁자 5개,등나무의자,필통등 집기류와 건축물의 기둥·기와·벽돌등 컨테이너 모두 28대분가운데 12대분으로 인천시 중구 항동 보세장치장에서 통관절차를 밟고 있다.나머지 16대분은 6월13일까지 역시 선박편으로 인천항에 도착한다. 상해임시정부청사 복원추진위원회의 이현희교수(57·성신여대)는 21일 『중국 상해시 서금2로에 있던 임정1호 청사는 이동령 임시정부의장등이 모여 국호를 대한임시정부로,연호와 10개항의 헌법을 제정·공포하는등 대한민국 탄생의 산실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교수는 이첫번째 청사건물 소재지가 지난 49년 김신부로에서 현주소로 바뀌는 바람에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상해시 마당로에 복원,보존돼있는 임정청사는 마지막의 7번째 청사이다. 이교수이외에 이수봉 전충북대교수(60),교원대 정영호교수,오성환 청로유적·사적발굴연구회장등으로 구성된 상해 임시정부청사 복원추진위는 임정1호 청사이외에도 김구·신규식선생등이 숙소로 사용하던 상해시 보강로의 기와단층건물 1채의 해체자재도 함께 들여와 임정청사와 함께 복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임정1호 청사는 중국정부가 지하철건설공사와 관련,지난해 말부터 올 1월까지 해체하는 것을 돈을 주고 사들여 왔고 임정요인들의 숙소로 활용되던 건물은 91년9월에 해체된 것으로 돈을 주고 구입해 현지 창고에 보관해 오다 이번에 함께 들여오게 됐다고 말했다. 임정복원 추진위측은 이들 건축물 해체자재가 통관되는대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이나 용산에 들어설 가족공원등에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컴퓨터영상쇼/열린 음악회/즉선 패션쇼/대학축제가 달라졌다

    ◎“탈정치”… 다양한 프로마련/게임 통해 일체감을 도모 대학가가 축제시즌으로 접어들면서 대학마다 학생들의 행사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기발한 프로그램들이 속출하고 있다. 각 대학총학생회가 주관하는 축제행사에 종전의 이념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 줄어든 대신 「열전! 달리는 캠퍼스」 「즉석패션쇼」 「차밍교실」,3백인치 대형화면을 이용한 「컴퓨터그래픽 영상제」등이 등장한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낭만적인 대학생활의 대명사이던 60∼70년대의 「쌍쌍파티축제」나 이념적 성격이 전체분위기를 이끌던 80∼90년대초의 「대동제」때와는 달리 대학가의 탈정치화현상이 일반화되고 학생들이 점점 개인주의·감각주의를 선호하게 되면서 총학생회가 좀더 많은 학생들을 동참시켜 일체감을 형성하려는 시도로 여겨지고 있다. 4일 「석탑제」를 시작한 고려대는 예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획기적인 프로그램들을 이번 축제에 도입했다. 많은 인원이 동시에 함께 즐길 수 있는 「열전! 달리는 캠퍼스」를 올해 처음으로 마련,학생들의 단합을 유도하고 있는데 럭비공을 안고 경사진 세트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슬라이딩게임,공중에 매달린 밧줄을 타고 거미줄판을 향해 몸을 던져 부착시키는 왕거미게임등 다양한 게임으로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모기업의 협찬으로 1만여개의 모자를 마련,학생들에게 나눠주는등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이고 있다. 오는 10일 축제를 시작하는 연세대의 경우도 방송국 공개프로그램인 「열린 음악회」를 교내에서 공동기획으로 마련하는 한편 폐막제때는 3백인치 대형화면 1개와 1백인치 화면 4개를 행사장에 설치,컴퓨터그래픽으로 구성한 화려한 영상을 펼쳐보일 예정인데 이 행사 하나에 드는 비용만도 8백여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국민대는 오는 16일부터 21일까지인 축제기간 국내의류업체들의 협찬을 받아 패션쇼를 열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북악패션」프로그램과 전문강사를 초빙,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메이크업,옷 잘입는 법,워킹등을 강의하는 「차밍교실」을 공식프로그램의 하나로 마련했다. 이밖에이번달 안에 축제를 치르는 이화여대·서강대·성신여대등도 학생들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 47개대 2만5천명 특차선발/95대입요강 발표

    ◎올보다 2배이상 늘어/본고사 보는 대학 39곳으로/75개대는 1월13일에 시험 9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만으로 우수학생을 미리 뽑는 특차모집 정원이 94학년도의 1만4백여명에서 2만5천명선으로 두배이상 크게 늘어난다. 또 전국 1백42개 대학 가운데 전기모집을 선택한 1백27개 대학에서 75개 대학이 내년 1월13일로 똑같이 입시일자를 정했다. 이밖에 대학별고사를 치르는 대학이 94학년도의 9개대에서 39개대로 크게 늘어 전체 모집정원의 33.3%(94학년도 7.3%)를 본고사를 통해 선발하게 된다. 교육부는 28일 전국 1백42개 국·공립및 사립대학이 제출한 이같은 내용의 「95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을 확정,발표했다. 이 모집요강에 따르면 94학년도에 25개대에서 1만4백68명을 뽑은 특차모집이 47개대로 확대돼 전체정원에 대한 모집비율도 4.4%에서 10.2%로 늘어난다. 특차모집은 고려대등 33개 대학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만으로,강원대등 13개 대학이 수능성적과 내신성적으로,광운대가 내신성적만으로 선발하며 오는 12월 26일과 27일 원서접수를 거쳐 같은달 31일까지 합격자를 발표한다. 특차모집 합격자는 내년 1·2월의 전·후기대 모집에 지원할 수 없으며 이중으로 지원해 합격하면 모든 합격이 취소된다. 전기대 입시일자는 포항공대·서울교대·동국대·상명여대·세종대등 24개 대학이 95년 1월9일,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숙명여대·성균관대등 75개 대학이 1월13일,한국외국어대·홍익대·인하대·성신여대등 28개 대학이 1월17일로 잡았다.부산외대·수원대등 33개 후기대는 2월10일 한날에 입시를 치른다. 94학년도에는 87개 대학이 1월6일에 입시를 치렀었다. 대학별고사 실시대학은 당초의 47개에서 39개로 줄어들었는데 대학별고사성적은 총점의 10∼50% 반영되며 11개대가 1과목,17개대가 2과목,9개대가 3과목,2개대가 4과목을 시험본다. 교육부는 학과정원등 대학별 입시요강의 나머지 세부사항을 오는 9월말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 경주 동악미술관에 「구면천정천문도」·「혼상」복원 전시

    ◎“신라의 옛 하늘을 보여 드립니다”/구면…/637년 별모습 1,319개 인조다이아로 새겨/혼상/360도 회전… 계절변화 알리는 하늘의 시계 국내 과학계와 한 독지가가 세계 최초의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을 복원,전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신라 전통과학실험의 장을 마련한 경주시에 위치한 동악미술관 천문지리실이 바로 그것. 경주시 민속공예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동악미술관(관장 석우일)은 연세대 나일성교수팀,세종대 강영훈교수팀,그리고 충북대 이용삼교수팀등 국내 천문학계의 무보수 도움을 받아 제작비 2억원을 들여 세계최초의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을 완성했다. 천면천정천문도는 조선시대 천문학자 남병길의 성경(1861년판)을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6년인 서기637년의 별자리 위치로 세차 계산한 것으로 2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미술관 2층 천장에 지름 6m의 반구를 만든뒤 1천3백19개의 별로 이루어진 2백90개의 별자리를 하나하나 새겨 놓았다. 특히 1천3백19개의 별을 6등급으로 나누어 인조 다이아몬드로 모두 장식,신라시대의 밤하늘의 별이 영롱한 모습으로 빛나 관람객의 눈길을 황홀하게 한다. 또한 지름 1m크기로 복원한 혼상은 하늘의 별들을 보이는 위치에 따라 천구면에 표시한 것으로서 평면에 그린 천문도와는 달리 일주운동에 따라 회전하면서 별들이 지평선에 뜨고 지는 것을 보여주어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하늘의 시계 역할을 한 고대의 위대한 천문기기였다. 지난 26일 열린 개관식에 참석한 성신여대 명예교수 전상운박사는 『경주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기술문화 유산의 본고장일 뿐 아니라 신라의 상징적 유물인 첨성대를 인류공유의 세계 고대 천문학의 유산으로 알릴수 있는 실험주의 방법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며 후세의 교육효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호평했다. 이 구면천정천문도와 혼상 제작을 총괄 지휘한 나일성교수는 영국·일본·중국등에서 관련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천문도와 혼상을 전시할 경주에 그들을 초청,조언을 구하는데 앞장 섰다.이 가운데는 영국 더햄대 스티븐슨교수(과학사학자),중국 북경 고관상대최석죽대장,북경 천문관 최진화관장,서안천문대 리치완박사등 10여명의 외국 학자들이 방문,의견을 내놓았다. 나교수는 『석관장과 천문학자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거의 1년이란 세월을 보냈다』며 『우리나라도 세계인을 향해 내보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전통과학실험의 장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지 4백평 규모에 연건평 1백50평의 동악미술관 2층에 자리잡고 있는 천문지리실에는 천장에 장치된 구면천정천문도와 바로 아래에 혼상을 설치한 이외에 5분의 1과 10분의 1로 축소한 첨성대 모형 3기가 전시돼 있다.한국과 중국의 고대 천문도 2점과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신라시대 해시계 파편을 완전히 복원한 작품이 전시돼 있다.그리고 조선시대 앙부일구를 비롯해 중국의 혼천의와 적도의 축소 모형등이 전시돼 있어 한국이 전통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과학기술까지도 감상 할 수 있다. 한편 천인감응사상을 부르짖는 석관장은 중앙벽 전면에 천정천문도를 펼쳐놓은 듯한 크기인 가로 6m,세로2.5m크기에 신라의 도읍지 경주를 한눈에볼수 있는 왕경도를 사학계의 도움을 빌려 제작,「하늘에는 천문도,땅에는 왕경도」를 입체 전시하고 있다.
  • 서울 윈드 앙상블 창립 20돌 연주회

    ◎지휘자 3명·연주자 150명 참여 서울윈드앙상블이 창립20주년을 맞아 3명의 지휘자와 1백50명의 관악연주자들이 참여하는 기념연주회를 28일 하오 8시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갖는다. 3월28일은 바로 서울윈드앙상블이 19 74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창단연주회를 가졌던 바로 그날.이번 연주회에는 창단지휘를 했던 상임지휘자 서현석씨(성신여대교수)와 지휘계의 원로 임원식,그리고 일본에서 관악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재일교포 이원구가 번갈아 지휘대에 선다. 서울윈드앙상블은 창단 이래 관악인구가 적은 상황에서 우수한 관악연주자 배출창구로 역할을 해오는 한편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음악을 보급하고 음악애호가들에게는 관악합주의 참맛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88올림픽 개·폐회식 및 시상식에 쓰인 모든 행진곡과 팡파르도 바로 이들의 연주였으며 95년에는 전세계에서 12개 단체만 엄선된 세계심포니밴드협회 세계대회에 초청되어 연주능력을 과시하게 된다. 서울윈드앙상블은 이번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이영희와 힌데미트의 「피아노와 관악을 위한 협주곡」을 한국초연할 예정.이와함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귀족들의 행진」,슈베르트의 「로자문데」,오펜바크의 「천국과 지옥」서곡,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서곡등을 연주한다.문의는 521­7170.
  • 일본관련 책들 서점가 “강타”

    ◎월 10여종씩 나와 서점마다 20∼30종 진열/「일본은 없다」/1백일만에 9만부 판매 “베스트 셀러”/「청산못한 역사」/이병도 등 60명 친일파 지목,행적 추적/국내 첫 연구서 「창씨개명」·「…근대인물사」도 눈길 일본의 현실을 다루거나 한일관계를 파헤친 책들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관련 서적은 지난해부터 출판량이 대폭 늘면서 한달에 10여종씩 나와 웬만한 서점에는 20∼30종이 진열돼 있을 정도. 이 가운데서 현재 출판계가 주목하는 책들은 「일본은 없다」「청산하지 못한 역사」「창씨개명」등이다. 「일본은 없다」(지식공작소 간·전여옥 지음)는 지난해 11월 중순 처음 서점에 나온 뒤 보름여만에 교보문고·종로서적등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12주동안 연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주 순위는 교보문고에서 종합3위·수필1위였으며 종로서적 순위에서도 종합4위·수필2위에 올랐다. 출판사에서는 그동안 9만부를 찍어 서점가에 돌렸으나 요즘 작은 서점에서는 책을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일본은 없다」가 이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데 대해 출판계에서는 『지은이의 시각이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달라 독자들이 산뜻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다』고 밝힌다.일본을 해부했다는 책들이 대부분 「일본은 밉지만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데 비해 지은이 전여옥씨는『일본은 배울 점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고 단정한다. 모방송국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흔히 일본인의 특성으로 일컬어지는「단결」「질서」「집단에의 복종」등이 사실은 타율적으로 파생한 「정신적인 후진성」임을 사례를 들어 입증한다.따라서 『일본을 뒤쫓기 보다는 우리의 활달한 기질과 창의성을 세워 일본에 앞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은 없다」에 못지 않게 잘 팔리는 책이 「청산하지 못한 역사」1·2·3권(청년사 간·반민족문제연구소 지음)이다.「청산하지…」1권은 나온지 1주일만인 지난주에 교보문고의 인문과학부문 베스트셀러 3위,종로서적의 같은 부문 9위에 성큼 뛰어올라 서점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3권으로 구성된 이책은 광복이후 사회 각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가운데 박정희·최규하·정일권·민복기·이병도등 60명을 「친일파」로 지목,그들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을 펴낸 반민족문제연구소의 김봉우소장은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각개인의 친일행각을 자세히 밝힌 책은 이것이 처음』이라면서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고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들 책만은 못하지만 「창씨개명」(학민사 간·정운혁 엮음),「우리나라 근대인물사」(새문사 간·이현희 지음)도 서서히 독서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한민족말살 정책인 창씨개명을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연구서로,창씨개명의 제도·실시과정·사상적 배경들을 다룬 한일 양국 학자·언론인들의 논문과 대담,관계서식등의 자료를 한데 묶었다. 성신여대 이현희교수(사학과)가 쓴 「우리나라 근대인물사」는 개항 무렵부터 광복을 맞을 때까지 우리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1백15명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한 교양서적.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평범한」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발굴한 점이 돋보인다.
  • 「정도 6백년 지도전」/서울의 변화상 한눈에

    ◎28∼4월25일까지 성신여대박물관서/조선이후 서울지도등 1백종 자료 전시/행정·정치도등 다양… 「경조오부도」 눈길 조선시대 지도책의 첫장에 그려지곤 했던 「천하도」는 중국을 중심대륙으로 비해와 환대륙,영해가 차곡차곡 감싸고 있는 모습을 담은 원형의 세계지도이다.유독 조선에서만 크게 번성한 「천하도」의 사상적 기원은 중국에서 찾아야 하겠지만 당시의 세계관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지도는 이처럼 그 지역의 문화사를 간직한 역사적 기록으로 간주된다.「천하도」가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처럼 각 지도에는 당시에 필요로 하였던 요소들이 당시 의식하에 그려져 있어 그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정도 6백년 서울지도전」은 바로 지도에 나타난 서울의 변화상을 통해 지도가 지닌 이같은 의미를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성신여대박물관(관장 허영환)이 28일부터 4월25일까지 여는 이 전시회에는 조선시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50종의 지도를 포함한 1백여종의 서울 관련 자료가 선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이미 지도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의 모양이 실제와 비슷한 정도까지 파악되고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옛지도는 모두 조선시대 것이다.조선시대의 지도제작술은 천문도를 그리는 기술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태조4년(1395년)에 1천4백63개의 별을 그린 대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든 기술은 태종2년(1402년)에는 상당히 정확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까지 만들어 낼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72종의 서울지도가 만들어 진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이번 전시회에는 그 가운데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 완성한 「대동여지도」의 제1첩인 「경조오부도」와 이보다 20년 앞서 만든 목판본 「수선전도」를 비롯,필사본으로 1780년대 만들어진 「한양도성도」와 「도성지도」등 30종이 출품된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의 국립지리원과 천문대 기상대의 기능을 합친 서운관과 도화서에서 정치·군사·산업·운수등 국가경영에 필요한 다양한 지도를 만들었다.출품된 지도 가운데 1394년 서울에 정도하고 경복궁 조성을 시작한뒤 그린 「경복궁도」나 1620년 경희궁을 완성하고 그린 「서궐도」등이 정치도에 해당한다면 1454년 인구 10만명인 서울을 5부49방으로 나눈 「경성도」는 행정도에 해당한다.또 1750년대 「도성삼군문분계지도」는 서울방위용 군사지도이며 1765년의 「사산금표도」는 벌목·매장·개간등의 금지지역을 표시했다.행정도인 「경성도」는 행정단위가 5부47방으로 바뀐 17 92년에는 「성시전도」가 제작되는등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새로 그려졌다. 이번 전시회에는 조선시대 것 뿐 아니라 일제시대 및 해방 이후 만들어진 지도도 각각 10종씩 선을 보여 그동안 서울의 변화상을 확연하게 보여준다.예를 들어 1939년 제작된 「최신대경성전도」에 나타난 여의도와 동부이촌동 일대의 거대한 모래사장은 1987년 만들어진 「서울특별시 행정안내도」에는 시가지로 변했다.
  • 동학혁명 100돌/대대적 기념사업 펼친다

    ◎천도교서 「계획된 혁명」 부각에 초점 맞춰/방대한 백년사·자료·논문집 발간/우금치전투병 1만명 군적 싣기로 오는 10일은 동학혁명의 효시가 된 전봉준주도의 고부군아 습격봉기가 일어났던 날. 1894년의 일이니까 꼭 1백주년을 맞게 되었다. 이에따라 동학을 모태로 창도한 천도교는 동학혁명 1백주년기념사업회를 조직했다. 천도교는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올해 조형물 건립사업과 학술,문화예술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학술사업에 특히 중점을 두어 동학혁명의 이론을 학술적으로 정립할 계획. 왜냐하면 일제때에는 혁명의 주체를 피지배자로 보고 동학란으로 격하했는가 하면,기껏 발전한 역사관에 의해서도 동학운동,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전쟁 정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천도교의 입장과 주장은 사뭇 다르다. 비록 성공은 거두지 못했더라도 1893년 동학교도 8만이 참여한 1893년 3월10일 대규모의 보은장집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준비기간이 1년여나 되어 계획된 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도교는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동학농민운동을 동학혁명으로 부르도록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할 방침이다.기념사업회가 학술사업으로 확정한 각종 자료집 간행도 그 명칭을 모두 동학혁명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간행사업은 ▲동학혁명1백년사 ▲동학혁명 1백주년논문집 ▲동학혁명자료집등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동학혁명1백년사」는 6천4백60쪽으로 계획된 방대한 사료집. 그리고 「동학혁명자료집」은 2천6백쪽으로 간행할 예정이다. 「동학혁명1백년사」에는 19세기후반 동학사상이 태동한 사회적 배경에서 부터 1894년 동학혁명,1919년의 3·1운동,1920년대의 신문화운동에 이르는 기간의 주요 사안이 들어간다. 이현희(성신여대),김창주교수(동국대)등 8명의 필진이 참여하는 「동학혁명1백년사」는 모두 11개 항목으로 집필된다. 「동학혁명자료집」 간행에는 신일철(고려대 대학원장), 최동희(고려대), 진용후(서울대), 중총명교수(일본 종랑여대)등 13명의 학자가 집필을 담당했다. 이밖에 전국에 산재한 사발통문과 서찰,관군의 포고문 등 동학혁명 관련 사료를 한데 모아 번역하는사료편찬작업을 비롯,「청·일전쟁실기」와 「동학군군적부」 간행사업도 학술사업의 하나로 올해 추진한다. 동학혁명의 큰 요인으로 문호개방 이후의 외세가 가져온 모순이 지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청·일전쟁실기」 간행 역시 뜻있는 사업. 특히 동학혁명의 서막처럼 떠오른 보은장내집회때에 이미 조선조정이 청나라에 차병교섭을 벌이는등 외세개입을 자초했다. 끝내는 동학혁명 과정에 청군과 일군이 우리나라에 상륙함으로써 청·일의 각축장이 되었다. 1894년 12월 동학혁명이 맥이 결정적으로 꺾이는 공주 우금치전투의 상대도 일군이었다. 이전투의 참가한 1만여명의 동학군을 비롯한 전국의 동학군 명부를 수록하는 「동학군군적부」는 연말쯤 나온다. 이 군적부에는 각 지역의 전투일지를 부록으로 곁들여 싣기로 했다. 기념사업 전체예산은 39억6천1백만원. 이 가운데는 정부지원금 5억원이 포함되었으며 나머지는 특별성금과 천도교유지재단 지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 강연/경매/전시/고미술품 복합전시

    ◎김정희 서화 등 애장희귀품 93점 모아/「민족문화유산」 애호가 저변확대 겨냥/“외국사 진출따라 경매제도 정착의 디딤돌로” 고미술업계가 오랫동안 계속된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계유송년 고미술품 교환경매전」을 마련했다.국내 골동가를 대표하는 한국고미술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서울 인사동 고미술협회 특설화랑(732­2240)에서 지난11일 개막,17일까지 작품을 전시하고 이날 하오3시부터 교환경매에 들어간다. 출품되는 고미술품은 93점.작품숫자는 올해가 93년도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추었다.도자기 38점·서화 26점·목기 18점·금속 5점·석물 3점·민속품 3점등 고미술협회 8백여 회원들의 애장품가운데 정선을 거듭하여 내놓은 희귀고미술품이 상당량 들어있다. 도자기의 경우 한국도자기의 발전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전시품목을 배려했다.고려청자부터 조선시대 분청사기로 이행되는 과정은 물론 백자의 세계까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구름과 학이 있는 청자운학문매병(청자운학문매병),작은 꽃들이 앙증스럽게박힌 분청사기인화문대접(분청사기인화문대접),순백의 백자항아리(백자호),용이 꿈틀대는 듯한 청화백자용문항아리(청화백자용문호)등의 명품들이 나와있다. 서화부문에는 조선시대화가 박기순의 색깔고운 영모도,심사정의 산수도가 눈에 띄며 근현대 한국화단을 풍미했던 장승업·김은호·이상범·이응로·변관식의 그림이 저마다 독특한 화풍을 자랑하고 있다.또 추사 김정희가 활달한 필치로 쓴 대련칠언시도 빠뜨릴 수 없는 명품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공예부문에서는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진수인 청동정병이 눈길을 끌고 있으며 조선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이 삶의 흔적으로 남긴 가구와 떡살·다식판등 각종 목공예품들이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고미술품 교환경매전은 여느 전시회와 달리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전시회를 통해 고미술 애호인구의 저변확대를 꾀함과 동시에 관련학자인 허영환교수(성신여대 미술사)를 연사로 초청,전시장에서 학술강연회(17일하오1시)를 열고 곧바로 경매에 들어 가는것.즉 전시회·강연회·경매등 세가지기능이 연속적으로 복합된 이례적인 행사를 갖는다는 점이다. 한국고미술협회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고미술경매를 정례화할 계획이다.가격이 공개되는 밝은 거래가 경매라는 사실을 중시한 협회측은 경매제도가 정착할 경우 새로운 유통질서 확립과 함께 민족문화유산의 가치를 더욱 드높이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특히 소더비 크리스티등 외국 미술품경매회사의 국내진출에 따라 고미술업계는 자칫 자신들의 입지가 위축될 것에 대비하여 고미술 경매제의 정착을 서두르게 됐다고 배경을 강조하고 있다.
  • “「4·19」 교과서 기술 시정해야”/세종회관서 「재평가」 공청회

    ◎후진성 극복·질서회복의 전환점으로 인식/독재항거한 시민의식 기릴 제도·법 마련을 우리나라 민주헌정사에 큰 변혁을 가져 온 4·19혁명의 개념을 역사적 측면에서 새로 정립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주최로 1일 하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4·19혁명의 역사적 개념 재정립에 따른 국가정책방향」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공청회에서 성신여대 이현희교수가 「4·19 혁명론」,동국대 한상범교수가 「한국사에서 4·19혁명의 위치와 국가정책 방향」이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유준기 총신대교수,김운태 전서울대교수,강경근 숭실대교수,강삼재의원(민자),김원웅의원(민주),정종문 동아일보논설위원등이 참가해 『4·19혁명의 가치와 의미가 위대한 것으로 재인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4·19혁명론=4·19혁명은 우리 역사에서 볼 때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항쟁이 아니다.근대 민족항쟁사의 전통에서 그 맥락을 믿을 수 있으며 거기서 발전되어온자유·정의·진리를 정립하기 위한 민중의식의 성장에 의한 것이다. 결국 4·19혁명은 부정선거와 부패·무능한 독재적 집권층의 폭력에 항거한 민주주의의 쟁취항쟁이었다.최악의 사태에 맞서 민족주의적 의식구조를 지닌 학생들에 의한 파괴된 현대민족사의 복원을 위한 승리였다.4·19는 후진성 극복과 질서회복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으며 역사적 의미는 사회정의구현과 민중이익을 대변하는 범시민자치적 구국운동이란 점에서 찾아야한다. ◇한국사에서 4·19혁명의 위치와 국가 정책방향=영국의 명예혁명은 정권을 교체시킨 원동력이 상층지배신분 일부였지만 4·19혁명은 일반시민을 바탕으로 하는 대중운동이며 반민주적 강권지배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시민운동이었다. 4·19의 정신과 그 지향점인 민족·민주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반민족·반민주 악법과 제도 및 유습을 개폐하고 정비해야 한다.다음에 교과서에서 민족사에 대한 서술이 바로 되지 못한 점을 바로잡고 특히 3·1운동,4·19혁명 등 우리 민족운동의 정통성과 미래에 관계되는 중요사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해치는 잘못된 기술은 반드시 다시 써져야 한다. 초·중·고 교과서에서 「4·19」 또는 「4·19의거」라고 서술한 것은 「4·19혁명」으로 고쳐져야 마땅하다.아울러 법령정비나 장기간의 국가정책의 구상과 실현을 위한 제도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그에 따른 준비작업이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유아교육학회 「21세기…」 학술대회 발표내용을 보면

    ◎“조기 영재교육보다 감성교육 중요”/유치원아 92% 특기지도… 동심 멍들어/강제학습에 앞서 자연 일깨워 주도록 요즘 한창 뛰어놀아야할 유아기 어린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똑똑하게 만들려는 부모들의 욕심때문에 각종 학습지에 매달려 강제학습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유아교육학회는 9일 중앙대 대학원관 국제회의실에서 「21세기를 대비한 한국유아교육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이처럼 잘못 흐르고 있는 우리나라 유아교육을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관심을 모았다. 이자리에서 유아교육협회 회장인 중앙대 이원령교수는 70년대이후 사람들이 유아교육을 조기교육·영재교육·재능교육등으로 잘못 판단,5세된 유아에게 7세된 아이들이 배울 내용을 배우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후 유아교육은 조기교육이 아니라 세살된 어린이는 세살답게,다섯살 된 어린이는 다섯살답게 기르는 적기교육이라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이상금교수도 「유아교육과 가정교육」이란 발제를 통해 고학력 시대가 되어 많은 부모들이 교육수준은 높아졌으나 옛날 부모들이 가졌던 올바른 교육관은 상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또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소수의 가족이 폐쇄된 공간에서 살게 되면서 어린이를 집안에서만 놀게하는 부모들이 많아져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소박한 자연놀이나 소박한 음식은 외면한채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로봇과 컴퓨터에만 매달린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이 자신의 욕심대로 아이를 키우려 하지말고 자연속에서 돋는해와 밤하늘의 별·작은곤충·들풀을 바라보며 마음을 움직일줄 아는 감성적 아이로 자라게 부모들이 먼저 미래지향적 생각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한편 성신여대 이숙재교수는 현재 유치원아의 92.3%가 특기교육을 받고 있다고 과열된 조기 특기교육의 한 통계를 밝힌후 특기교육을 시작하는 최저연령도 수영지도가 생후 1년5개월,영재교육 1년6개월,가정학습지와 미술교육 2년으로 점차 낮아지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이는 부모들에게 어떤 뚜렷한 조기·특기교육의 가치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조급함과 과다한 욕심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어린이를 어린이답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 여성근로자 권익신장 아직 미흡

    ◎노총,130개 가입업체대상 조사보고서 발표/고용평등법 강제이행등 개선책 필요/모집·승진부문서 남녀차별 관행 여전 여성근로자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서는 노동조합 조직의 성별 민주화와함께 남녀고용평등법등 법적 이행에 대한 강력한 요구,여성관련 단체와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한것으로 제시됐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영자 여성국장과 성신여대 강사 박숙자씨가 최근 노총에 가입한 1백30개 제조 및 비제조업체의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성과 노동조합」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고용평등법 시행이후 모집이나 채용,호봉에서는 남녀차별문제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교육 및 훈련기회에 있어 남녀차이는 제조업 분야는 17.6%가,비제조업 분야에서는 5.3%만이 「개선되었다」고 응답했다. 또 배치나 승진에서도 절반 정도가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대답했다.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는 생리휴가나 산전 산후 휴가제도는 절반정도의 업체가 개선했으나 수유시설이나 수유시간 제도의 실시·육아시설운영·육아휴직제도의 실시는 아직도 절반가량의 업체에서 전혀 실시하고 있지 않은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런 제반조치는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비율이 30%에 이르러 강력한 행정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한편 노동시장내 성차별 실태는 노동자의 모집경로·호봉체계·직종별로 살펴봤는데 상당부분 성차별 관행이 잔존했다.즉 4년제 대졸학력 인력을 제조업체에서 채용하는 경우 남자는 69.1%가 공채,학교기관추천은 9.9%인데 비해 여자는 공채가 53.8%,학교기관추천이 18.5%로 모집경로에서도 여성은 제한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표면상 직종별·성별로 구분하지 않는 단일호봉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업체는 29%에 불과했다. 이밖에 제조업 분야의 여성 사무직 근로자들은 주로 임금이나 하는일의 내용면에서,비제조업 분야에서는 승진의 속도나 승진 기회,그리고 업무의 내용면에서 남성 사무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조사대상 노동조합 가운데 여성조합원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미흡했다고 지적하고 여성조합원들이 조직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노동조합 조직내에서 실질적인 성별민주화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총독부청사 3∼4년내 사라진다/김 대통령의 “조속해체” 지시이후

    ◎“유물로 보존”·“완전철거” 논쟁 종지부/“새정부 어려운 결단”… 학계 크게 환영 김영삼대통령이 9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옛 총독부건물을 가능한한 조속히 해체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했던「국립중앙박물관 이전­총독부건물 철거」계획이 급진전하게 됐다.특히 김대통령의 지시 중에는 총독부건물을「해체」하라는 것과 국립중앙박물관을「건립」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이 문제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그동안 학계를 비롯,관련단체 등에서는 총독부건물을 경복궁 경내에서 철거해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지만 철거후 자리를 옮겨「역사적 유물」로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완전해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 왔기 때문이다.더욱이 김대통령이 지난 4월 문화체육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이전·복원」을 지시한 뒤로는 건물 자체는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왔다.그러나 이번 지시로 해체가 최종결정돼 1916년 이후 한국 정치사의 중심지에 자리잡았던 옛 총독부건물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또 김대통령이『5천년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에 합당한 국립중앙박물관을 국책사업으로 건립하는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만큼 중앙박물관도 전쟁기념관등 기존의 건물로 옮겨가기 보다는 새로 짓는 방향으로 결정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총독부건물 철거문제는 지난 89년부터 거론돼 왔으며 새정부 출범후 활발하게 추진됐다.그러나 당초 중앙박물관 이전장소로 예정됐던 용산 미8군기지를 경기도 지역으로 옮기려던 계획이 지난 6월초 무산되면서「박물관 이전­총독부건물 철거」일정이 벽에 부딪쳤다.이후 용산에 짓고 있는 전쟁기념관을 중앙박물관으로 전용하는 방안이 한때 민자당 쪽에서 나왔으나 정부측에 의해 부인됐다. 이처럼 총독부건물 철거여부가 불투명해지자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회장 조항래)등 9개 역사연구단체는 지난달 9일 공동성명을 내『민족의 정통성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는 옛 총독부건물은 하루빨리 철거하고 경복궁이 복원되어야 하며,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도 마땅히 빨리 이전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성명서 발표에 참여한 단체는 한국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단체들이어서 이 문제에 관한 학계의 의견은 명확하게,또 일치되게 표출된 셈이다. 이번의 「해체지시」가 발표되자 학계는 이를 전폭 지지하고 있으며 이와함께 시일이 더 걸리더라도 독립된 국립중앙박물관을 짓기를 바라고 있다.이현희 성신여대교수는『자유당정권이나 역대 군사정권들이 하지 못한 일을 문민정부가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한편 중앙박물관 이전부지 선정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문화체육부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기존 계획을 재검토하는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문화체육부는 새 박물관 부지로 꼽았던 ▲용산의 서울시가족공원▲서울 중구 필동 수방사자리등 4∼5곳가운데 서울시가족공원을 확정했다. 총독부건물은 지난 16년 일제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세웠으며 해방후에는 군정청,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됐다.5·16이후 대통령은 쓰지 않고 중앙부처가 들어선 중앙청으로사용되다가 중앙박물관 용도로 결정돼 83년 5월 중앙청은 철수했다.그뒤 3년간의 수리기간을 거쳐 86년 8월 중앙박물관이 들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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