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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우에 잠긴 백제 유산들 큰 피해

    폭우에 잠긴 백제 유산들 큰 피해

    충남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공주 공산성의 누각이 물에 잠기는 등 백제 문화권의 문화재 피해가 속출했다. 충남도는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내린 집중호우로 공주의 공산성·석장리 유적과 부여 부소산성 등 16건의 문화재(국가 문화재 7건 포함)가 피해를 봤다고 이날 밝혔다. 공주에서는 지난 15일 오전 8시 30분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지구’ 중 한 곳이자 사적인 공산성 누각인 ‘만하루’가 한때 침수됐다. 공산정 부근 성벽은 유실되고 금서루 하단의 토사가 흘러내리는 등의 피해도 발생했다.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준 ‘공주 석장리’ 유적도 같은 날 오후 계속된 장대비 속에 발굴지가 침수됐다. 석장리박물관은 출입이 통제됐고, 박물관 소장 유물도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백제 왕릉과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공주의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도 토사가 유실돼 15일부터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부여에서는 집중호우로 왕릉원 내 서쪽이 있는 고분 가운데 2호 무덤 일부가 유실됐다. 부여 부소산성 군창지는 탐방로가 훼손됐고, 부여 여홍민씨 고택 행랑채가 외벽과 벽체 파손으로 출입이 통제됐다. 서천에서는 선천읍성 주변에 절개지 일부 붕괴로 토사가 유실됐고 영수암 대웅전 후면에 나무가 넘어졌다. 논산에서는 죽림서원이 침수 피해를 봤다. 충남도 관계자는 “피해 발생 직후 추가 피해로 인한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와 응급조치를 했다”며 “문화재에 대한 긴급보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설] 李 “불체포특권 포기”, 또 그냥 해본 말이었나

    [사설] 李 “불체포특권 포기”, 또 그냥 해본 말이었나

    더불어민주당 비이재명계 의원 31명이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는 혁신위원회의 1호 혁신안인 ‘불체포특권 포기’를 가까스로 안건으로 올렸다가 결국 당론 추인이 불발됐다. 그러자 다음날 당내 비주류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입장이 나온 것이다.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불체포특권 포기와 체포동의안 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권고했던 것이 지난달 23일이다. 민주당은 이런저런 핑계로 뭉개다 지난 13일에야 등 떠밀려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래 놓고는 “정치적 목적의 영장 청구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무산시켰다. “헌법상 권한을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국민 정서와 아예 성벽을 쌓고 사는 별천지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이해 못할 이는 이재명 대표다. 그는 지난달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했다. 앞서 지난해 대선에서 불체포특권을 공약하고도 정작 대장동 수사 과정에서의 구속영장에는 특권 뒤에 숨었던 그다. 뒤늦게 불체포 권리 포기를 거듭 다짐했다면 대표로서 당론 관철에 앞장서야 하건만 그는 친명 진영의 반대 앞에서조차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가 돌아서서는 “존경한다니까 정말 그런 줄 알더라”고 했던 말 뒤집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듯 국민을 기만하는 그의 심리 상태가 궁금할 따름이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윗물’에 ‘아랫물’이 스스로 혁신에 나설 리는 만무할 것이다. 혁신위가 돈봉투 사건 진상 조사, 꼼수 탈당 의원 복당 금지를 제안했어도 민주당은 전부 모르쇠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못 믿을 정당이 돼 가는 판이다.
  • 백제·신라 길목 ‘남원 아막성’ 국가지정문화재 추진

    백제·신라 길목 ‘남원 아막성’ 국가지정문화재 추진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이자 최대 격전지였던 ‘남원 아막성’의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10일 전북도와 남원시 등에 따르면 도는 조만간 남원 아막성에서 출토된 신라 유물의 특성과 의미를 토대로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신청할 계획이다. 아막성은 602년과 616년 두 차례 백제와 신라의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백두대간 시루봉(해발 777.7m)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있으며,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을 지킬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특히 가야 세력 멸망 이후 신라의 진출 및 백제·신라의 점유과정을 잘 보여주는 탁월한 유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전북도와 남원시는 지난 2020년부터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신라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구와 유물을 확인했다. 이에 지난해 문화재청에 국가사적 지정을 신청했지만, 문화재청은 주변 유적과의 관계성 및 고고학적 특성과 의미를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보완을 요청했다. 남원시는 객관적인 근거 자료 추가 확보에 나섰다. 발굴조사 등을 통해 아막성의 집수시설과 성벽, 주거지 등이 신라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확인했다. 또 출토유물의 대다수가 삼국사기 등 문헌에 기록된 아막성의 운영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6세기 중반~7세기 초반의 신라 유물임을 밝혀냈다. 남원시 관계자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아막성은 7세기 백제와 신라의 최대 격전지로서,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의 핵심 주제를 발굴조사로 그 실체가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학술적 기여도가 매우 높다”면서 “삼국시대에 한 장소에서 전투가 2회 이상 등장한 경우는 지극히 이례적이고,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성곽 중 위치가 확인된 매우 드문 사례인 아막성을 반드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 ‘남원 아막성’ 국가지정문화재 추진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 ‘남원 아막성’ 국가지정문화재 추진

    “(602년) 가을 8월에 백제가 와서 阿莫城을 공격했다. 王이 將士들로 하여금 逆戰하게 하여 이들을 대패시켰다. 貴山·箒項이 이곳에서 죽었다.(삼국사기 권4, 진평왕 24년 조)” “(616년) 가을 8월에 왕이 出兵하여 신라 阿莫山城을 포위하였다. 신라 왕 眞平이 精騎 數千을 보내 이에 拒戰하였다. 우리 군대가 패하여 돌아왔다.(삼국사기 권4, 진평왕 38년 조)”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이자 최대 격전지였던 ‘남원 아막성’의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10일 전북도와 남원시 등에 따르면 도는 남원 아막성에서 출토된 신라 유물의 특성과 의미를 토대로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신청할 계획이다. 아막성은 602년과 616년 2차례에 걸쳐 백제와 신라의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백두대간 시루봉(해발777.7m)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을 지킬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특히 가야 세력 멸망 이후 신라의 진출 및 백제·신라의 점유과정을 잘 보여주는 탁월한 유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특히 602년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한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비춰볼 때 602년 이전에 아막성은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또 역사적으로 554년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뒤 신라의 영역확장 과정에서 축성되었을 가능성과 562년 대가야가 멸망한 뒤 신라의 진출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전북도와 남원시는 지난 2020년부터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신라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구 및 유물을 확인했다. 이에 지난해 문화재청에 국가사적 지정을 신청했지만, 문화재청은 주변 유적과의 관계성 및 고고학적 특성과 의미를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보완을 요청했다.남원시는 객관적인 근거 자료 추가 확보에 나섰다. 발굴조사 등을 통해 아막성의 집수시설과 성벽, 주거지 등은 신라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파악하고, 출토유물의 대다수가 삼국사기 등 문헌에 기록된 아막성의 운영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6세기 중반~7세기 초반의 신라유물임을 밝혀냈다. 전북도와 남원시는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에 아막성 국가사적 지정을 재신청할 계획이다. 남원시 관계자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아막성은 7세기 백제와 신라의 최대 격전지로서,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의 핵심 주제를 발굴조사로 그 실체가 명확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학술적 기여도가 매우 높다”면서 “삼국시대에 한 장소에서 전투가 2회 이상 등장한 경우는 지극히 이례적이고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성곽 중 위치가 확인된 소수의 성곽 중 하나인 만큼 반드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송파, 풍납동 문화재 보존·주민 상생방안 제시

    송파, 풍납동 문화재 보존·주민 상생방안 제시

    서울 송파구가 풍납동 문화재와 지역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며 문화재청 측에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구는 ‘풍납동 미래도시 연구용역’을 통해 풍납동 문화재와 주민 삶의 균형을 이루는 개발 청사진을 마련했다고 2일 밝혔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성벽 및 왕궁으로 추정하는 1~2권역(보존구역)은 발굴한 문화재를 현장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유적현장전시관 및 백제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한다. 또 3~5권역(관리구역)은 현재의 건축 규제를 모두 해제하고 중층아파트 단지부터 대규모 고층아파트 단지까지 들어서는 한강변 명품주거단지로 개발한다는 게 골자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함과 동시에 역사유적관광객 유입으로 지역이 다시 활력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송파구가 제시한 풍납동 미래상은 문화재청이 일부 규제만 해결하면 가능한 그림”이라며 “문화재청은 ‘문화재 독재’에서 벗어나 문화재와 주민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풍납동 지역 슬럼화는 가속되고 있다. 풍납동 내 빈터와 빈집은 315곳으로 추정된다. 풍납동 토성 복원사업이 시작된 1993년 이후 송파구 전체 주민은 증가했으나, 풍납동만은 2만명 넘게 줄었다는 것이 구의 설명이다. 이에 서 구청장은 “많은 주민이 ‘문화재 독재’라며 신음하는 풍납동에 대해 우선 규제 완화를 실천해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가 제시하는 안으로 풍납동이 개발되고 역사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 된다면 많은 사람이 백제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경험할 수 있다”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생의 도시가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구는 지난 5월 문화재청 측에 규제 개선을 정식으로 건의했다. 주요 내용은 ▲발굴 결과를 반영해 토성 성벽이 위치하지 않은 구역은 보존 구역에서 제외하는 등 권역 조정 ▲건축물 신축을 막고 있는 규제 해제 및 조정 ▲현지 보존이 필요한 경우 문화재청·서울시·송파구·풍납동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기구에서의 논의 등이다. 한편 서 구청장은 지난 1년 동안 문화재 정책 재검토 요청, 문화재청장 면담 및 현장 방문 요청,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을 지속해 오고 있다. 지난해 민선 8기 취임 첫날에도 풍납동 주민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 “13세기 북유럽 건물 원형이 잘 보존된 탈린 역사지구를 보러 오세요”…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 인터뷰 [헬로 월드]

    “13세기 북유럽 건물 원형이 잘 보존된 탈린 역사지구를 보러 오세요”…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 인터뷰 [헬로 월드]

    <편집자 주> 지구촌 별별 이야기를 담는 나우뉴스는 외국인 오피니언 리더들의 눈과 입을 통해 세계의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하는 ‘헬로 월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유엔공식벤더로 인정받은 통역번역 전문법인 (주)제이엠 커넥티드 임지민 대표와 함께 진행합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Tallinn)은 13~16세기 북유럽 무역 중심지로 구시가지(올드타운)에는 북유럽 중세시대 건물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스텐 슈베데(Sten Schwede)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는 17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스퀘어 1층에 있는 에스토니아 비즈니스 허브에서 “에스토니아를 방문한다면 구시가지를 꼭 둘러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유럽의 발트 3국 중 최북단에 위치한 에스토니아는 인구 132만명 국가로 전 국토의 3분의 1이 울창한 삼림으로 덮여있어 ‘유럽의 아마존’이라고 불린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옛 시가지는 중세시대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에스토니아 탈린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Tallinn)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구시가지 성벽 사이로는 1500년 완공 당시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한 올레비스떼 성당이 있다. 에스토니아는 정보통신 강국이다. 에스토니아는 회사 설립, 은행계좌 개설, 소득세 신고 등을 인터넷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다. 영상통화 서비스 스카이프(skype)가 에스토니아에서 탄생했다. 에스토니아는 2014년부터 전세계 기업가들이 온라인으로 에스토니아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전자영주권’(e-Residency)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슈베데 대사를 만나 에스토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에스토니아는 어떤 나라인가. - 발트해 연안에 있는 에스토니아는 한국과 매우 유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에스토니아 사람들도 크고 강력한 이웃 국가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힘겨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에스토니아 영토는 역사적으로 덴마크, 독일,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가 지배했다. 에스토니아는 1918년에 독립을 이뤘고, 올해 독립 105주년을 맞이했다. 1940년부터 1991년까지 에스토니아는 소련(구 러시아)에 점령당했다. 독립 후 에스토니아는 다른 자유 국가들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1991년은 에스토니아와 한국이 함께 유엔 회원국이 된 해다. 양국 간의 활발한 교류는 같은 해에 시작된 셈이다. 양국 간의 접촉은 최근 5년 사이 많이 강화됐다. 2018년에는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하기로 결정한 직후였다. 현재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관은 서울 도심에 있는 서울스퀘어 빌딩에 있다. 같은 건물 1층 로비에는 에스토니아 비즈니스 허브 서울을 개소해 에스토니아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비즈니스 허브 서울은 에스토니아와 한국 기업 간의 접촉을 촉진하고 에스토니아를 여행을 홍보하기 위한 곳이다. ▷ 한국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관광 명소는. - 에스토니아를 방문한다면 수도 탈린은 꼭 둘러봐야 한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완벽하게 잘 보존된 중세 북유럽 무역 도시다. 탈린은 13~16세기에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다. 오늘날 탈린의 구시가지에는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많은 레스토랑, 카페, 바, 미술관, 박물관, 상점이 있다. 타르투, 페르누, 나르바 등 다른 도시도 추천한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잘 준비된 하이킹 코스와 조직된 투어를 통해 숲과 습지를 탐험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의 자연은 야생동물로 가득하기 때문에 곰이나 조류 관찰을 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에는 2000개가 넘는 섬이 있다. 가장 큰 두 개의 섬인 사레마와 히이우마는 독특한 섬 문화를 가진 곳으로 꼭 방문할 가치가 있다. 추운 겨울에는 해빙 위에 설치된 공식 빙상 도로를 통해 운전을 해서 섬에 갈 수 있다. ▷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으며 한국 문화는 에스토니아에서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많은 에스토니아인들이 한국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집에서 한국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유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  ▷ 한국에서 추천하고 싶은 관광지는 어디인가. - 에스토니아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수도 서울을 방문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의 동해안과 부산, 그리고 제주도를 추천한다.  ▷ 에스토니아와 한국 간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려면. - 먼저 항공권 가격이 내려가서 더 많은 사람들이 양국을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항공업계가 정상화되면 양쪽 모두 관광객이 급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영화, TV,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인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 영화와 TV 업계는 탈린이나 에스토니아의 다른 지역에서 영화의 일부 또는 TV 시리즈의 에피소드를 촬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에스토니아의 낭만적인 풍경들이 에스토니아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에스토니아에 대한 비즈니스 정보를 얻으려면. - 에스토니아 비즈니스 허브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에스토니아와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분들은 비즈니스 허브를 방문하시거나 요청서를 보내면 된다. 또 한국인들에게 에스토니아의 전자영주권(e-Residency)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발행하는 디지털 증명서를 통해 글로벌 기업가들이 온라인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약 2000명의 한국인이 참여하고 있다. 아래에는 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와 인터뷰 원문을 함께 게재합니다.    Interview with Sten Schwede, Ambassador of Republic of Estonia embassy in Korea   ▷ Estonian history, culture, relationship with Korea. - Estonia has a very similar history to the history of Korea. Just like Koreans, Estonians too had to exist and at times make a hard effort to survive between much larger and more powerful neighbors in the region. Located by the Baltic Sea meant that the territory where Estonians lived was throughout the history ruled by Danes, Germans, Swedes, Poles and Russians. Finally nation’s independence was declared in 1918. So this year the Republic of Estonia celebrated its 105th anniversary. Between 1940 and 1991 Estonia was occupied by the Soviet Union. After regaining our independenc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Estonia and other free nations could start again 32 years ago. 1991 is the year when both Estonia and South Korea became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Active bilateral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started the same year. Since then contacts between our countries have intensified a lot, especially in the last 5 years. In 2018 the Estonian President Kersti Kaljulaid visited South Korea. Shortly after the decision was taken by our government to open our embassy in Seoul. Today, the Estonian Embassy in Seoul is up and running in the city center, at the legendary Seoul Square Building. In addition we have opened Estonian Business Hub in the lobby of the same building, which is open to everyone who might have interest to learn more about our country. The Estonian Business Hub Seoul is there to facilitate contacts between Estonian and Korean businesses and promote Estonia as an exciting travel destination.  ▷ Can you introduce tourists spots? - When visiting Estonia one should reserve time to explore country’s capital Tallinn. The old town of Tallinn is an exceptionally complete and well-preserved medieval northern European trading city. The city developed as a significant trading center in the 13th-16th centuries. Today Tallinn’s old town hosts many restaurants, cafes, bars, art galleries, museums, shops, loved by tourists. Other important towns worth exploring are Tartu, Pärnu and Narva. For those who want to get out of town and experience the nature there are forests and wetlands to explore with well-prepared hiking trails and organized tours. Estonian nature is full of wildlife, so one can for example do bear or bird watching. Estonia has more than 2000 islands. The two biggest islands - Saaremaa and Hiiumaa - with their specific island culture are definitely worth visiting. In cold winters you can actually drive to those islands over an official ice-road, that is set up on the sea ice.  ▷ How much Estonians know about Korea? - Estonians know Korea well and Korean culture is getting more and more popular in Estonia. Many Estonians drive Korean cars or use Korean technology at home. More and more young people learn the Korean language and are interested in studying in Korea.  ▷ What tourist destinations would you recommend in Korea? - I would recommended Estonians to visit your beautiful capital Seoul. Then your country’s East coast, but also Busan and the Island of Jeju.   ▷ What would make exchanges between Estonia and Korea more attractive? - First, flight ticket prices should go down, so more people can visit both countries. When the situation in aviation industry normalizes, then I’m sure we’ll have a spike in tourists both ways. Secondly, one way is to raise the interest among Koreans through film, TV, social media. The Korean film and TV industry should look into options of shooting part of a film or an episode in some TV-series in Tallinn or anywhere else in Estonia. There is plenty of romantic scenery in my country. From what we know that would help a lot in awareness raising about my beautiful country. Thirdly, the Estonian Embassy and the Hub should continue what we are already doing – promoting Estonia in Korea, making sure that every inquiry about Estonia is answered so people would like to visit, work or study in Estonia, or do business with Estonia.  ▷ Anything else you want to add? - Those who would like to do business with Estonia should send us a request or visit the Estonian Business Hub which is open on weekdays between 11am and 6pm. I also suggest Koreans to explore the possibilities offered by Estonia’s e-residency program. Around 2,000 Koreans have already joined the program.   진행 임지민 통번역사·JM커넥티드 대표 jc@jmconnected.co.kr
  • [열린세상] 벽을 허무는 대학이 성공한다/이창원 한성대 총장·한국행정개혁학회 이사장

    [열린세상] 벽을 허무는 대학이 성공한다/이창원 한성대 총장·한국행정개혁학회 이사장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으로 기업들의 비즈니스 활동은 영역 구분의 의미가 사실상 없다. 4차 산업혁명으로 초연결사회가 실현되면서 다양한 영역의 융화로 인해 한계를 극복하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경우는 살아남지만 그러지 못하면 도태되는 시대가 됐다. 지난 4월 교육부가 발표한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 체계’(RISE)와 ‘글로컬 대학30’ 추진 방안을 보면 대학과 지역이 함께 성장해 국가ㆍ지역ㆍ대학의 세계적 경쟁력을 동반성장하게 하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인구, 산업, 사회구조의 빠른 변화에 대응해 대학 내 전공 분야 간, 대학과 지역 및 산업 간, 국내 및 국외 간 벽을 허무는 것이다. 대학이 벽을 허물어야 하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수평적 벽’ 허물기로 학문 간, 전공 간 장벽을 허무는 교육이 필요하다. 수요자인 학생 입장이 아니라 공급자인 교수 입장에서 만들어진 기존의 대학 시스템에서는 사회 수요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교육이 실현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성대의 경우 학문 간, 전공 간 장벽을 허무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2017년부터 ‘전공트랙제’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입학 후 1년 뒤 전공트랙 2개를 자유롭게 선택하는데, 같은 단과대학 내 혹은 단과대학을 넘나드는 융합전공이 가능하다. 전공트랙제의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2020년 8월 및 2021년 2월 졸업자의 경우 전공트랙제 졸업생의 취업률은 학과제 졸업생 대비 11.3% 포인트 높았다. 또 전공 선택 기회 확대 측면에서 학생들의 전공교육 만족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5년 이후 6년간 100점 만점에 7.8점이 높아졌다. 둘째, ‘수직적 벽’ 허물기다. 고등교육과 초중등교육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적 교육과정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먼저 초중등교육에 문을 열고 벽을 허무는 시도를 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중고 학생의 디지털 역량 배양을 위해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실시하는 ‘디지털 새싹 캠프’다. 한성대도 이 사업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 사업을 통해 대학과 초중고등학교 간의 소프트웨어ㆍ인공지능(AI) 교육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대학교수, 현직 교사, 정보기술(IT) 기업 인사, 대학원생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초중고 학생과 예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SWㆍAI 교육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재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상황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지역, 산업이 힘을 모아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고등교육과 평생교육 간 벽’ 허물기다. 그동안 일반 대학은 학령기 학생을 대상으로 전문교육을 했다. 평생교육은 다양한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교육 외의 교육으로 인식됐다. 평생교육에 대한 이러한 인식 때문에 디지털 전환 시대에 적응하려는 중장년은 생애전환 교육을 찾아다니고, 청년들은 ‘N잡러’에게 필요한 기술을 단기 비학위 과정에서 배우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의 전문적인 인적·물적 인프라로 시민의 평생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한성대 미래플러스대학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선취업을 했다가 다양한 시기에 후진학하는 학생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터 경험을 학습 경험으로 인정하고 다학기제, 시간제등록제 등을 통해 학습 설계와 경력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과거 중세나 왕조시대에는 성벽이 무너지면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학은 과감하게 벽을 허물어야 경쟁에서 성공한다.
  • ‘대구 팔거산성’ 사적 지정 예고

    ‘대구 팔거산성’ 사적 지정 예고

    신라시대 군사요충지로 추정되는 ‘대구 팔거산성’이 8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됐다. 팔거산성은 대구 금호강 북편 유역에 있는 함지산 정상부에 축조됐다. 남쪽으로 대구 분지가 한눈에 보이고 금호강과 과거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가 교차하는 길목을 감시할 수 있어 신라 왕경(신라시대 수도로 지금의 경주) 서쪽의 가로축 방어체계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축성 양식에선 신라시대 산성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문(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접근할 수 있도록 높게 조성된 문)식 구조와 곡성(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둥근 돌출부) 등이 확인된다. 팔거산성 내 목조 집수지(물 또는 빗물을 저장하는 시설물)는 신라시대 산성 집수지 발달사에 중요한 자료로 학술 가치가 뛰어나다. 문화재청은 팔거산성에 대해 30일간의 예고기간에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최종 지정할 예정이다.
  • 신라 군사요충지 대구 팔거산성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된다

    신라 군사요충지 대구 팔거산성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된다

    신라 시대 군사요충지로 추정되는 ‘대구 팔거산성’이 8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됐다. 팔거산성은 대구 금호강 북편 유역에 있는 함지산 정상부에 축조됐다. 남쪽으로 대구 분지가 한눈에 보이고 금호강과 과거 주요 교통로였던 영남대로가 교차하는 길목을 감시할 수 있어 신라 왕경(신라시대 수도로 지금의 경주) 서쪽의 가로축 방어체계를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축성 양식에선 신라시대 산성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문(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접근할 수 있도록 높게 조성된 문)식 구조와 곡성(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둥근 돌출부) 등이 확인된다. 그러면서도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의 접합부 축조방식은 팔거산성만의 독특한 양식을 자랑한다.팔거산성 내 목조 집수지(물 또는 빗물을 저장하는 시설물)는 신라시대 산성 집수지 발달사에 중요한 자료로 학술 가치가 뛰어나다. 집수지에서 출토된 목간(글을 적은 나뭇조각)은 산성의 축조시기와 신라시대 산성의 운영 등 신라 지방사 연구에 요긴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은 팔거산성에 대해 30일간의 예고기간에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최종 지정할 예정이다.
  • 드론 피격 ‘조작’이란 우크라 “불타는 크렘린 기념우표 발행”

    드론 피격 ‘조작’이란 우크라 “불타는 크렘린 기념우표 발행”

    크렘린궁 드론 공격은 러시아의 자작극 또는 가짜 깃발 작전이라고 반박한 우크라이나가 ‘기념우표’ 발행을 예고했다.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영 우정사업본부 ‘우크포슈타’의 기관장 이고르 스멜얀스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불타는 크렘린궁’ 기념우표를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야로슬라프 유르치신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새 기념우표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크렘린궁 드론 공격 당시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우크라 우정본부는 공식 계정에 유르치신 의원의 게시글을 공유하며 “생각해볼까?”라고 호응했다. 몇 시간 뒤 우크라 우정본부장 스멜얀스키는 “우크포슈타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기념우표를 선도적으로 발행해왔다”면서 기념우표 제작을 공언했다. 그는 “성벽 너머 누군가가 정말 좋아하겠다”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조롱하면서 ‘불타는 크렘린궁’ 우표 도안을 선보였다.기념우표 도안에는 화염에 휩싸인 크렘린궁 위를 나는 드론과 이를 지켜보는 우크라이나군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번 기념우표 발행 예고는 크렘린궁 드론 공격을 ‘러시아의 자작극’ 또는 ‘가짜 깃발 작전’(상대가 선공한 것처럼 조작해 공격 명분을 만드는 수법)이라고 일축한 우크라이나 입장과 대비된다. 핀란드를 방문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 “우크라이나는 푸틴 또는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았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드론 크렘린궁 공격’ 주장을 부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푸틴은 승리가 없고, 그의 국민들에게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며 러시아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장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러시아가 자국민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려 이런 일을 계획했을 거란 주장이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크렘린궁 공격 보도는 수일 내 러시아의 대규모 테러 도발을 예고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우려했다.이런 정부 입장과 별개로 우크라 우정본부는 물론 각 선전 채널은 크렘린궁 드론 공격을 마치 자국의 전쟁성과처럼 기념 또는 선전하고 있다. 이를 두고 러시아 매체 RT는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크렘린궁 드론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우크라이나는 바로 이 공격을 묘사한 우표를 발행하기로 했다”고 지적했다. 지적을 의식한듯 우크라 우정본부장 스멜얀스키는 4일 “어제 대통령이 밝혔듯 우크라이나는 푸틴과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불타는 크렘린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우리는 이 ‘긍정의 빛’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 우정본부는 전쟁 이후 자국군을 찬양하거나 러시아를 비난하는 의미가 담긴 기념우표를 수시로 발행했다. 작년 4월에는 흑해 ‘뱀섬’에서 투항을 요구하는 러시아군에 맞선 자국군을 기리며 ‘러시아 군함, 꺼져라’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같은해 10월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케르치해협 대교, 일명 크림대교가 폭발한 뒤에도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의 몰락을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빗대 조롱한 기념우표를 선보였다. 당시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으나,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러시아 유명 코미디언의 장난전화에 속아 크림대교 공격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한편 크렘린궁은 3일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보복을 공언했다. 크렘린궁은 “전날 밤 우크라이나가 무인기로 크렘린궁 대통령 관저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며 “2대의 무인기가 크렘린궁을 겨냥했으나 군이 전자전 체계를 적절히 사용해 이들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공격으로 푸틴 대통령은 다치지 않았고 파편 등으로 인한 건물 손상도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우리는 이를 러시아 대통령의 생명을 노린 계획적인 테러 행위로 간주한다”며 “러시아는 적합한 시기와 장소에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경고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사건 당시 크렘린궁에 없었으며, 이후 예정된 일정을 변경하지 않고 평소처럼 업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 오가료보에 있는 관저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렘린궁은 오는 9일 전승절 행사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 日 AV 여배우 수입 공개에 신동엽 ‘깜짝’

    日 AV 여배우 수입 공개에 신동엽 ‘깜짝’

    일본 유명 성인비디오(AV) 배우들이 수입을 공개하면서 AV 산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입장을 전했다. 지난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 일본편’에는 일본 AV 여자 배우 오구라 유나, 아이자와 미나미, 하마사키 마오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MC 신동엽은 이들에게 “AV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AV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약 100편 정도 AV를 촬영했다고 밝힌 아이자와 미나미는 “전 마음에 드는 명품이 있으면 그냥 살 수 있을 정도다. 갖고 싶은 건 살 수 있다”고 답했다. 프리랜서 AV 배우로 11년간 활동해 지금까지 1000편 이상 찍은 하마사키 마오는 “저 같은 경우는 연봉으로 포르쉐 한 대를 살 수 있는 정도”라고 밝혀 놀라게 했다. 이에 신동엽은 “만약 그 차를 사고 나면 쫄쫄 굶어야 하는 거냐,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거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마오는 “아무것도 못 먹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놔 웃음을 안겼다. 이어 ‘AV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미나미는 “일본 AV는 장르가 다양하고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것 같은 사소한 성벽(性癖)까지도 전부 인정해준다”며 “그런 의미에서는 범죄율도 줄고 계속 필요한 업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나는 “일본에는 AV 외에도 성욕 해소를 위한 게 많고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MC 성시경이 “여러분에게 AV란 무엇이냐”라고 묻자, 마오와 유나, 미나미는 각각 “AV는 내 인생이다”, “AV는 삶의 기록”, “AV는 나를 낳아준 부모”라고 답했다.
  • 경주 대릉원·논산 출렁다리·수원 화성…입장료 없애는 ‘핫플 관광지’

    경주 대릉원·논산 출렁다리·수원 화성…입장료 없애는 ‘핫플 관광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해 유명 관광지 입장료를 잇따라 폐지하고 있다. 경북 경주시는 다음달 4일부터 사적 512호인 황남동 대릉원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20일 밝혔다. 대릉원은 신라시대 고분 23기가 모인 곳으로, 연간 130만명이 찾는 경주 대표 사적지다. 시는 그동안 문화재 보존과 시설 관리를 위해 나이에 따라 1000∼3000원의 관람료를 받아 왔다. 이에 따라 관람객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정문, 후문, 동문 등 3개의 출입문을 통해 대릉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다만 문화재 보호를 위해 음식물 반입과 반려동물, 전동차 출입은 제한된다. 시는 이번 무료 개방으로 중심 상가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충북도는 지난 2월부터 청주 ‘미동산 수목원’을 찾는 관광객을 무료입장시키고 있다. 어른 25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씩 받던 입장료를 없앴다. 이로써 연간 방문객이 3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동산(해발 557.5m) 자락에 자리잡은 이 수목원은 장미원 등 51개의 일반·특별전문원을 조성해 1593종 31만본의 식물을 갖추고 있다. 산림과학박물관, 목재문화체험장, 산림환경생태관, 숲길 등을 활용한 산림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충남 논산시도 올해부터 탑정호 출렁다리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어른 3000원, 어린이·청소년 2000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탑정호 출렁다리는 600m로 국내 호수 위에 설치된 다리 중 가장 길다. 이 밖에 경기 수원시 수원화성, 경기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공원, 경북 상주시 성주봉자연휴양림, 충북 단양군 다리안관광지 등이 입장료를 폐지했다. 수원화성은 방어 기능과 성벽 안에 갖춰진 4개의 성문을 비롯해 각기 다른 모양과 특성을 지닌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지자체들, 관광객 모시려 유명 관광지 입장료 줄줄이 폐지

    지자체들, 관광객 모시려 유명 관광지 입장료 줄줄이 폐지

    자치단체들이 지역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해 유명 관광지 입장료를 잇따라 폐지하고 있다. 경북 경주시는 다음달 4일부터 사적 512호인 황남동 대릉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20일 밝혔다.  대릉원은 신라시대 고분 23기가 모인 곳으로 연간 130만명이 찾는 경주를 대표하는 사적지다. 시는 그동안 문화재 보존과 시설 관리를 위해 나이에 따라 1000∼3000원의 관람료를 받아왔다. 이에 따라 관람객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정문, 후문, 동문 등 3개의 출입문을 통해 대릉원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다만 문화재 보호를 위해 음식물 반입과 반려동물,전동차 출입은 제한된다. 시는 이번 무료 개방으로 중심상가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충북도는 지난 2월부터 청주 ‘미동산 수목원’ 방문객을 무료 입장시키고 있다. 어른 25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씩 받던 입장료를 없앤 것이다. 이로써 연간 방문객이 3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동산(해발 557.5m) 자락에 자리잡은 이 수목원은 장미원 등 51개의 일반·특별전문원을 조성해 1593종 31만 본의 식물을 갖추고 있다. 산림과학박물관, 목재문화체험장, 산림환경생태관, 숲길 등을 갖추고 다양한 산림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충남 논산시도 올해부터 탑정호 출렁다리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어른 3000원, 어린이·청소년 2000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탑정호 출렁다리는 600m의 길이로 국내 호수 위에 설치된 최장이다. 이밖에 경기 수원시 수원화성, 경기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공원, 경북 상주시 성주봉자연휴양림, 충북 단양군 다리안관광지 등이 입장료를 폐지했다. 이 중 수원화성은 방어 기능과 성벽 안에 갖추어진 4개의 성문을 비롯해 각기 다른 모양과 특성을 지닌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수원화성은 당시의 최첨단 과학과 건축술이 빗어낸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 “더러워 죽겠다”…인도서 ‘또’ 한국여성 성추행 당했다

    “더러워 죽겠다”…인도서 ‘또’ 한국여성 성추행 당했다

    “표정 봐. 더러워 죽겠다.” 인도에서 한국인 여성 여행객이 또 현지인 남성에게 성추행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8일(현지시간) 리퍼블릭TV 등 인도 매체에 따르면 한 한국인 여성 블로거는 전날 오후 서부 라자스탄주 조드푸르에서 영상을 촬영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이때 한 남성이 이 여성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위험을 감지한 여성은 “촉이 왔다”라며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뛰며 도망쳤다. 웃음 지으며 여성을 졸졸 쫓던 이 남성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노출했다. 이 장면은 영상에 그대로 촬영돼 소셜미디어(SNS)에도 공유됐다. 조드푸르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고 해당 남성도 체포했다. 조드푸르 경찰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 여성 외국인 여행 블로거가 조드푸르에서 한 남성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즉시 남자의 신원을 확인해 체포했다”고 밝혔다. 조드푸르는 아름다운 성벽과 푸른색으로 채색된 마을로 유명하며 한국인 관광객도 자주 찾는 곳이다. 인도 델리 여성위원회 스와티 말리왈 위원장은 트위터에 “우연히 성추행당하는 한국인 블로거의 영상을 보게 됐다. 극도로 혐오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라고 말했다.A씨의 영상에는 인도 네티즌들이 찾아와 “15억명을 대신해 사과를 전한다” “당신이 괜찮기를 바란다” 등의 사과 댓글을 달고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에도 서부 뭄바이를 찾은 한 한국인 여성 인터넷방송 진행자가 현지인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현지인 남성은 길을 걸으며 생방송을 진행하던 이 여성에게 다가가 팔을 잡아끌고 볼에 입을 맞췄다. 관련 영상이 공유되자 뭄바이 경찰은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보고 영상에 나온 19세, 20세 남성 2명을 체포했다.
  • [씨줄날줄] 광화문 전찻길/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광화문 전찻길/서동철 논설위원

    서울 전차는 돈의문(서대문)에서 종로와 흥인지문(동대문)을 지나 홍릉에 이르는 노선이 1호선이다. 개통식은 기공식 이후 9개월 만인 1899년 5월 17일 열렸다. 그런데 고종실록에는 ‘전차가 5월 26일 종로 거리를 질주하면서 다섯 살 아이를 치어 죽게 했다. 사람들이 격노하여 차체를 부수고 기름을 뿌려 불태워 버렸다’는 대목이 보인다. 조정의 논의도 ‘전차를 붐비는 거리에 다니게 해 사람을 죽게 했으니 나방이 스스로 불속에 뛰어든 것일 뿐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대한제국 사회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전차가 근대적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지만,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 전차는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기존 문루 아래로 통과했다. 그런데 1907년 두 문의 좌우 성벽을 각각 8간씩 헐어 전찻길을 냈다. 일본 공사 요구에 조정은 반대했지만 헤이그밀사 사건 이후 고종이 퇴위하면서 성곽 훼철은 강행됐다. 전차 2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선은 1899년 12월 20일 개통됐다. 종로에서 숭례문을 지나고 서울역 뒤편을 돌아 청파동과 원효로로 이어지는 노선이다. 서대문역과 남대문역을 잇는 의주로선도 1900년 신설됐다. 서대문~마포 노선은 1907년 완성됐다. 1909년 일한와사가 사업을 인수한 이후 일제의 통치체제 강화에 맞추어 전차 노선은 더욱 늘어난다. 경복궁을 헐어 낸 자리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26년 완공됐는데, 1917년 건설 자재 운반용 선로를 처음 깔았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광화문과 영추문을 거쳐 효자동에 이르는 전차 노선은 1923~1926년 개통된다. 이때 서십자각도 사라졌다. 1923년에는 경복궁 동쪽 송현동에 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서면서 보신각 사거리에서 안국동까지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이 노선이 1929년 총독부까지 연장되면서 광화문 사거리까지 역(逆) U자 노선이 됐다. 경복궁 월대를 복원하고 있는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최근 발굴조사 과정에서 찾아낸 광화문 앞 Y자 모양 전차 선로가 바로 이때의 흔적으로, 이 선로는 1966년까지 지표에 존재했다. 오늘부터 18일까지 현장이 공개된다. 2m 깊이도 안 되는 땅속에 숨어 있던 100년 전 과거가 빛을 보는 것이다.
  • 이준석 “천하람, 이미 결선투표 준비…安에 2%p 우위”

    이준석 “천하람, 이미 결선투표 준비…安에 2%p 우위”

    이준석 “(천 후보) 무난하게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18일 “이미 안철수 후보와의 경쟁보다는 결선투표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3·8 전당대회 당권주자인 천하람 후보를 지원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오후 대구 엑스코(EXCO)에서 열린 국민의힘바로세우기(국바세) 토크콘서트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 후보에 비해서 (천 후보의 지지율이) 2% 정도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젊은 세대 위주로 구성된 천 후보 지지자들이 모바일 투표라는 방식에 능숙하고, 자발적 당원 가입이 많기 때문에 투표율이 훨씬 높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천 후보는 결선투표에 진출해서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기 때문에, 무난하게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김기현 당 대표 후보가 뒤에서 조종할 바에 직접 출마하라고 했는데, 당원권 정지를 먹여놓은 다음에 직접 출마하지 그러냐고 하는 건 약 올리려고 하는 건가란 생각이 든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누구의 조종을 받고 있는지 유권자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시면 아마 더 명쾌한 답이 나올 거다”고 말했다.천하람 “열흘 뒤에 대구 정치권 천지개벽시키겠다” 내년 총선 대구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며 “제 집안이 대구, 경북 출신이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애착과 연고는 항상 인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국바세 토크콘서트에는 천 후보와 김용태·허은아 최고위원 후보, 이기인 청년 최고위원 후보, 하태경 의원 등이 참석했다. 천 후보는 이 자리에서 “(오는 28일로 예정된 대구 합동연설회에서) 김기현·안철수·황교안 후보가 경쟁상대가 아니라 2021 시즌의 이준석을 뛰어넘겠다”고 말했다. 천 후보는 “지금 ‘윤핵관’들이 쌓은 성벽이 아무리 높고 두꺼워도 개혁의 바람이 돌풍처럼 몰아치면 쉽사리 무너질 것”이라며 “2주 정도 남았는데, 맨날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하면서 지역명만 갈아치우는 후보와 지역에 대해 고민하는 후보는 갈수록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천하람이 대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은 없고, 반대로 천하람이 대구에서 인정받는 연설을 하고 대구 정치권에 울림을 준다면 안 되고 싶어도 될 수밖에 없다”며 “열흘 뒤에 대구 정치권을 천지개벽시키겠다”고 덧붙였다.
  • 함안 아라가야 왕성 유적 실체 밝힌다

    아라가야 왕성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토성인 경남 함안군 가야리 유적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가 진행된다. 함안군은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올해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를 위해 지난 14일 업무협약을 했다고 15일 밝혔다. 국비 7억원과 도·군비 각 1억 5000만원 등 모두 10억원이 투입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6월 이전에 발굴조사를 시작해 연말까지 토성 내부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1587년 편찬된 ‘함주지’(咸州誌)에 ‘옛 나라에 터가 있던 곳’으로 기록돼 아라가야 왕궁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2018년 경작 과정에서 성벽 일부가 드러나면서 실체가 확인됐다. 함안군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9년부터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를 벌여 가야리 유적 규모가 신라 왕궁인 경주 월성, 백제 왕궁인 부여 부소산성 등과 비슷한 규모임을 확인했다. 유적지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때 만들어진 토성과 목책, 수혈 건물지 등 중요 시설물이 확인되는 등 역사·학술적으로 가치가 있어 2019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특히 지난해 실시한 항공 라이다 측량 등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둘레가 2.5㎞로 국내 최대 토성으로 조사됐다.
  • 함안 가야리 국내 최대 토성 왕궁지 실체 밝힌다...상반기 발굴조사 시작

    함안 가야리 국내 최대 토성 왕궁지 실체 밝힌다...상반기 발굴조사 시작

    아라가야 왕성으로 추정되는 국내 최대 규모 토성인 경남 함안군 가야리 유적 실체 규명을 위한 학술조사가 진행된다.함안군은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올해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를 한다고 15일 밝혔다. 이를 위해 함안군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4일 함안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 업무협약을 했다. 이번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는 국가지정 문화재 보수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하는 것으로 국비 7억원과 도·군비 각 1억 5000만원 등 모두 10억원이 투입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6월 이전에 발굴조사를 시작해 올해 연말까지 토성 내부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함안 가야리 유적은 1587년 편찬된 함주지(咸州誌)에 ‘옛 나라에 터가 있던 곳’으로 기록돼 아라가야 왕궁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2018년 사유지 경작 과정에서 성벽 일부가 드러나면서 실체가 확인됐다. 함안군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9년 부터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를 벌여 가야리 유적 규모가 신라 왕궁인 경주 월성, 백제 왕궁인 부여 부소산성 등과 비슷한 규모임을 확인했다. 가야리 유적은 유적지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때 만들어진 토성과 목책, 수혈건물지 등 중요 시설물이 확인되는 등 역사·학술적으로 가치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인정돼 2019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특히 지난해 실시한 항공 라이다(LiDAR) 측량과 고지형 분석을 바탕으로 한 발굴조사 결과 가야리 토성 유적은 둘레가 2.5㎞로 국대 최대 토성으로 조사됐다. 함안군은 아라가야 왕성 유적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가야리 유적지 발굴조사를 단계적으로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2200년 고성도, 중동 최대 박람회장도 거대한 대피소로 변했다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2200년 고성도, 중동 최대 박람회장도 거대한 대피소로 변했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역사적인 유적지가 이렇게 무너졌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12일(현지시간) 규모 7.8 지진의 진원지와 가장 가까운 도시인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서 만난 에유프(25)는 2200년 역사를 지닌 가지안테프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그는 “이 성은 전쟁에서 튀르키예를 지키기 위해 쌓은 성으로 튀르키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지”라면서 “도심 안에 성이 있어 평소 자주 오갔는데 무너진 성을 보니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지안테프성은 그 기원이 히타이트(기원전 1700~1200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 주민에겐 자랑거리이자 생활 터전이기도 했는데, 지진과 함께 일상 자체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돌로 차곡차곡 쌓였던 성 일부가 무너지면서 주변에는 잔해물이 나뒹굴고 있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산책을 했던 성 뒤편의 잔디밭은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는 이재민 텐트촌으로 변해 있었다. 고급 식당뿐 아니라 기념품, 디저트를 파는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았다. 주민들은 “관광 도시였던 이곳이 언제 다시 활력을 되찾을지 모르겠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신발 가게를 운영 중인 카디르(44)는 “이 마을은 유명 유적지가 많아 날씨가 좋을 때면 관광객, 주민 할 것 없이 인근 케밥거리에서 케밥을 포장해 와 산책했던 곳”이라면서 “지진 이후 인근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44년 동안 살면서 이런 재난은 처음”이라고 말했다.가지안테프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17세기 건물 시르바니 모스크의 돔과 동쪽 벽도 허물어져 잔해들이 쌓여 있었다. 지진 이후 문을 열지 않다가 이날 처음 열었는데 주민들은 잔해 옆에서 담요를 바닥에 깔고 기도했다. 사원에서 절을 하던 온대르(45)는 “이 동네는 가지안테프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동네로 500~600년 된 유적지가 많다”면서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목욕하던 전통도 이어져 오면서 대중목욕탕도 많다. 마을이 빨리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심 외곽에 위치한 ‘가지안테프 중동 박람회 센터’는 중동 최대 규모의 박람회장으로 각종 전시회가 열렸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3000명의 이재민이 모여 있는 대피소로 운영되고 있다. 도시 자체가 일순간에 거대한 이재민 대피소가 된 느낌이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연좌(29)는 “집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여진 때문에 무서워서 이곳으로 왔다”면서 “텐트보다는 치안 면에서 안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바(70)는 “지진이 났을 때 밖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고 집이 너무 심하게 흔들려 아무것도 못챙기고 잠옷 차림으로 남편과 아들, 며느리, 딸과 함께 맨발로 도망쳤다”면서 “며칠 후에야 집에 가서 이불과 짐을 좀 챙겨 왔다”고 했다. 이곳 직원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자원봉사자 바칸(30)은 “가게에서 일했는데 지진 때문에 할 일이 없어졌다”면서 “처음에는 친척을 데려다주려고 우연히 이곳에 왔다가 여기 상황을 보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오전 8시부터 구호 물품이 계속 배급된다. 집에서 신분증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쳐 온 사람들이 많아 이재민 등록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더 걷고 싶다, 겨울 입은 상당산성

    더 걷고 싶다, 겨울 입은 상당산성

    눈이 내린 날 찾고 싶은 곳들이 있다. 충북 청주의 상당산성은 그중 하나다. 흰 눈은 흐릿한 성벽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후줄근한 주변 풍경을 과감히 생략해 준다. 그 덕에 산성은 옹골찬 본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충북엔 은근히 산성이 많다. 방어해야 할 요충지가 많아서다. 고구려 평강 공주와 온달 장군의 고사가 전하는 단양 온달산성, 삼국시대 이래 단 한 차례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무패의 산성 보은 삼년산성, 충주의 장미산성 등 지역마다 하나씩은 꼭 있다. 2010년엔 중부권의 산성들을 묶어 유네스코 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느리지만 좋은 소식이 되어 돌아오려는 걸까. 지역 사람들의 느릿한 성정처럼 말이다. ●백제 때 처음 축조… 조선시대에 개축 상당산성이 축조된 건 백제 때다. 당시 토성으로 건설된 뒤 조선시대 숱한 전란을 겪으며 개보수를 거듭하다가 숙종과 영조 때 대대적인 개축 공사를 거쳐 현재와 같은 석성의 모습을 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석성 가운데 원형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산성으로 꼽힌다. 상당이란 명칭은 백제 때 청주 일대를 부르던 ‘상당현’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은 상당산(492m) 8부 능선에 4.2㎞에 걸쳐 빙 둘러 있다. 오목한 분지를 품고 산허리를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적잖은 산행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여느 산성과 달리 상당산성은 입구까지 도로가 놓여 쉽게 찾을 수 있다. 상당산성의 정문은 남쪽을 지키는 공남문이다. 무사석(武砂石)을 활용해 홍예문(무지개다리) 형태로 쌓았다. 옹성처럼 문 바깥에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을 두는 대신 안쪽에 옹벽을 쌓아 성문을 드나들 때 장애물 역할을 하도록 했다. 남문 인근에는 치성을 세 군데나 뒀다. 치성은 성벽에서 돌출시킨 요철 형태의 시설을 일컫는다. ‘꿩 치’(雉) 자를 쓰는데, 제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하는 꿩의 습성에서 뜻을 빌려 온 것이다. 보통 전방과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조성한다. 산의 형태를 활용해 쌓은 포곡식 산성에선 치성을 두는 경우가 드물다. 한데 상당산성 남문 쪽은 산의 굴곡이 거의 없어 방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다수의 치성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곽을 따라 둘레길이 마련돼 있다. 주차장이 있는 남문에서 출발해 남암문, 서장대,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을 거쳐 원점 회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성 안쪽엔 4만 6000㎡ 규모 자연마당 남문 위에 올라서면 낭성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전망이 빼어난 곳은 남암문을 지나 미호문을 향해 걷는 구간이다. 청주 시내와 멀리 미호천 일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성 안쪽으로는 성안마을과 자연마당 등이 있다. 성안마을은 성내 방죽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다. 청주시에서 벌인 한옥 보전 등의 정책 덕에 비교적 옛 모습을 잃지 않은 편이다. 자연마당은 4만 6000㎡(약 1만 4000평)에 달하는 생태공원이다. ‘다랑논’이라 불리는 휴경지와 생태 습지 등을 활용해 조성했다. 볏과 식물과 사초과 식물, 야생화, 연꽃 등의 군락지로 나뉘어 있다. 논배미 같은 소로를 따라 자박자박 돌아볼 수 있다. 청주 외곽 수비를 담당한 게 상당산성이라면 도시 중심부를 방어한 건 청주읍성이었다. 상당산성에 이어 청주읍성 안쪽을 돌아보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산성과 읍성은 직선거리로 약 6㎞ 정도 거리다. 고대의 청주는 군사 도시였다. 양반 고을, 교육 도시 정도로 알고 있는 이들에겐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 삼국시대부터 청주는 각국이 경계를 이루며 으르렁대던 각축장이었다. 조선시대인 1651년엔 충남에 있던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 왔다. 병마절도사는 해당 지역의 육군 총사령관이다. 이는 청주읍성이 충청병영성의 역할을 겸했다는 의미다. 19세기 말 고종 때엔 삼남 최대 군사기지인 진남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일본과의 전투에서 자존심 구기는 전적을 안기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조헌 등 의병이 가장 먼저 수복(1592)한 읍성이 왜군의 최정예 부대가 지키던 청주성이었고, 19세기엔 일제의 정규군이 청주와 충남 공주 등을 무대로 활동했던 ‘호중동학군’에게 걸핏하면 얻어터졌다. ●일제 ‘눈엣가시’ 청주읍성 허물어 이후 일제는 청주 일대의 유적을 없애는 작업을 벌였다. 청주읍성을 형편없이 허물어 배수로 공사 등에 썼고, 무심천의 돌다리 남석교는 아예 땅 밑으로 묻어 버렸다. 망선루 등 당대의 건축물도 이때 모두 헐렸다. 당시 일제의 만행에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지만 유독 청주가 호되게 당한 건 지난날에 대한 ‘뒤끝 작렬’ 때문이라고 청주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다. 청주읍성은 한때 높이 4m, 길이 약 1.8㎞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건 35m의 복원 구간이 전부다. 규모가 너무 작아 ‘애걔’ 하며 코웃음 치기 십상일 텐데 청주읍성은 규모보다 조성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청주읍성은 근래 제작한 것이 분명한 벽돌과 시간의 더께가 쌓여 거무튀튀해진 벽돌들이 피아노 건반처럼 어색하게 어울려 있다. 옛 벽돌들은 청주시가 2013년 성돌 모으기 운동을 벌일 당시 시민들이 십시일반 기증한 것들이다. 건물 신축 과정에서 발굴된 성돌 2개를 시작으로 모두 800여개 성돌이 모였다. 이 가운데 650개 성돌이 복원 공사에 쓰였다고 한다. 청주읍성이 복원된 곳은 중앙공원 서쪽 출입구 쪽이다. 읍성 기초석의 흔적이 확인됐던 장소다. 중앙공원은 청주 도보 여행의 중심지인 만큼 함께 돌아보길 권한다. 중앙공원 안에도 수령이 1000년을 헤아린다는 은행나무 ‘압각수’, 병마절도사영문, 망선루 등의 볼거리가 있다. 쫄쫄호떡 등 MZ세대가 즐겨 찾는 맛집도 이 일대에 즐비하다. 청주의 중심가를 일컫는 이름은 ‘성안길’이다. 그러니까 청주읍성의 안쪽에 있는 길이란 뜻이겠다. 옛 이름은 ‘본정통’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잔재로, 나라 안 어느 도시에나 있었던 ‘혼마치’와 같은 말이다. 1994년부터 ‘본정통’이란 낡은 이름을 버리고 ‘성안길’로 고쳐 쓰기 시작했다. 성안길은 좁게 보면 도심의 번화가를 일컫지만 사실상 청주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이라 해도 무방하다. 남쪽의 육거리시장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있는 북쪽 내덕동 일대까지 두루 꿰고 있어서다. 보고, 먹고, 놀 공간들이 이 길을 따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자박자박… 청주읍성길 돌아보니 학천탕부터 간다. 최근 청주시에서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건물이다. 요즘엔 ‘목간’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바뀌었다. 목간은 목욕탕을 뜻하는 사투리다. 이름처럼 옛 목욕탕 시설을 그대로 카페 집기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 건축계 전설 김수근의 ‘학천탕’ 청주엔 한국 건축계의 전설 김수근의 작품이 두 개다. 국립청주박물관과 학천탕이다. 두 곳 모두 김수근이 말년에 설계했다. 청주 사람들의 성품을 생각하면 김수근에게 작품을 받은 것 자체가 ‘신통한’ 일이다. 폐 끼치기 싫어하고, 제 자랑 하기 꺼리고, 아쉬운 소리 절대 못 하는 청주 사람들이 어떻게 김수근을 찾아가 작품을 달라고 했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학천’이란 이름엔 한 로맨티시스트의 일화가 깃들었다. 다른 지역에선 특이한 사연이 깃든 곳마다 아내에게 선물한 정원입네, 뭐네 요란하게 자랑하던데, 이 도시 사람들은 당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대신 전해 줄밖에. 학천탕은 1988년 완공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빼어난 건축미 덕에 청주의 랜드마크로 통했다고 한다. 무려 8층에 달하는 학천탕을 지은 이는 박학래(1923~2010)다. 14세 때 목욕탕 종업원에서 출발해 결국 그 목욕탕의 주인이 됐다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학천탕은 당시 청주에서 목욕업계의 대부로 불렸던 그가 아내 채천식에게 선물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건물 이름도 부부의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뽑아 지었다. 좀처럼 개인 건물 설계를 맡지 않던 김수근이었지만 이런 사연을 듣고 설계를 허락했다고 한다. 건물 전체를 목욕탕으로 쓰던 학천탕은 시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몇 해 전 ‘목간’이란 카페로 변신했다. 그래도 남탕만은 남겨 뒀는데 그마저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았다.●물 없는 탕에서 그대와 ‘커피 한잔’ 맞이 공간 구실을 하는 카페 1층에는 옛 목욕탕 타일을 다듬어 깔았다. 탈의실 옷장, 때 수건, 번호표 등은 인테리어로 썼다. 2층은 메인 욕조와 사우나, 샤워기 등을 그대로 두고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물 없는 목욕탕에서 커피 한잔 홀짝대는 느낌이 독특하다. 한데 카페 구역은 과거에 여탕이었을까, 남탕이었을까. 이건 궁금증의 영역으로 남겨 둔다. 불고기 음식점으로 쓰는 3~4층도 마찬가지다. 궁금하다면 훗날 카페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보시길. 육거리 시장은 필수 방문 코스다. 이름 그대로 여섯 개의 길이 모이는 곳에 형성된 시장이다. 호사가들은 국내 5대 시장 중 하나로 꼽기도 하는데, 규모가 어느 지역의 전통시장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크다. 평상시 유동 인구도 많은 편이어서 초대형 쇼핑센터에 치이기 일쑤인 여느 전통시장보다 한결 북적댄다. 육거리 시장 아래엔 남석교(南石橋)가 묻혀 있다. 남석교는 ‘우리나라 최대 돌다리’라는 평가를 받는 문화재다. 조성 시기는 신라, 고려 때 등으로 엇갈리는데, 2005년 청주대 조사 결과 신라 때 처음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육거리시장 북적… 그 밑 잠든 남석교 남석교가 ‘문화재’인 건 분명한데, ‘대접’은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체가 묻혀 있어서다. 시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유물 분석 작업을 벌일 수 없어 문화재 지정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남석교는 그저 ‘돌로 만든 옛날 다리’에 불과하다. 다리가 건너온 천년의 시간 역시 함께 잠든 상태다. 청주대 학술조사 당시에 원형이 거의 보존된 상태인 걸 확인했다고 한다. 숱한 전란을 겪으며 수많은 문화재를 잃은 우리로선 기적처럼 남은 유물인 셈이다. 한데 남석교가 묻힌 위치가 공교롭게도 육거리 시장 한복판이다. 발굴, 복원 등의 주장들이 간혹 제기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남석교가 묻힌 위치의 천장에 이를 알리는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남석교가 모습을 드러내는 날, 청주의 관광 지도 역시 다시 그려지지 않을까.관광객이 실제 볼 수 있는 남석교 관련 유물은 법수(法首)가 전부다. 법수는 교량 등의 초입에 세운 장식물을 뜻한다. 전남 구례 운조루에서 보관 중인 ‘청주읍성도’에 이 모습이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국립현대미술관·연초제조창도 손짓 남석교 법수는 독특하게 ‘토종견’을 모델로 세웠다. 그래서 이름도 ‘석조견상’이다. 청주대와 충북대 박물관에서 각각 보관하고 있는데 청주대에 남은 석조견상 2기가 꽤 온전한 편이다. 1000년의 세월을 건너온 고대의 작품을 보자면 남석교를 직접 ‘알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시나브로 녹는다. 청주대 인근에 ‘핫플레이스’ 국립현대미술관, 연초제조창, 수암골 벽화 마을 등이 몰려 있으니 묶어 돌아보길 권한다. 시내 구경 뒤엔 대청호를 찾아야 한다. 늘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문의문화재단지, 청남대, 청주의 아름다운 건축물 10선 중 하나인 카페 에클로그 등이 이 구간에 있다. 옥천군 관내 물비늘 전망대, 부소담악 등에선 빙하기를 닮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물 흐름이 적어 겨울이면 너른 호수가 온통 빙판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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