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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하게 즐기는 눈꽃산행

    편하게 즐기는 눈꽃산행

    저기 산이 있다. 이른 새벽 부지런히 서둘러 그 산을 오르면 멀리 산자락 위로 빨간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아름다운 산하가 동서남북으로 거침없이 흐르는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산에서 장애우나 노약자들은 이런 풍경의 유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현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전혀 방법이 없지는 않다. 강원도 정선의 함백산, 경남 합천 오도산 등은 자동차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명산이다. 전북 무주의 덕유산처럼 관광곤돌라를 타고 정상을 밟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설화(雪花) 가득한 설천봉까지 오르는 데 15분이면 넉넉하다. ■ 오도산 아침 7시20분. 여명이 산을 깨우는 시간. 초롱초롱했던 별빛이 조금씩 사그러지며 산자락 주변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어둠은 여명과의 싸움에서 패퇴해 달아나며 샛파란 하늘을 토해냈다. 그리고 구름에 휩싸인 산봉우리 위로 시뻘건 해가 솟아 올랐다. 오래전부터 근동의 사진작가들 입에 오르내렸던 저 유명한 오도산(吾道山) 일출이다. 햇살이 사위를 비추자 발 아래로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산들이 제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첩첩첩 산산산이다. 크고 작은 수십개의 봉우리가 넘실대는 ‘산들의 바다’를 눈으로 따라잡기조차 벅찰 지경이다. 오도산 정상은 1134m. 합천의 진산 가야산(1430m)보다는 못해도 이 일대에서는 가장 높다.2㎞ 정도 떨어져 있는 두무산(1039m) 등과 더불어 가야산맥의 말단봉을 이룬다. 서쪽으로 숙성산, 백운산 등의 고봉준령들이 성벽을 이뤘고, 북쪽은 가야산, 남쪽은 황매산 등이 에워싸고 있다. 멀리 집산연봉들 사이로는 호리병을 연결해 놓은 듯한 모양새의 합천호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오도산 정상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어 접근하기 좋다. 차량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교행할 정도로 폭이 좁다. 가야마을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10㎞쯤. 한굽이를 돌 때마다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산하가 번갈아 펼쳐진다. 오도산 정상은 현재 한국통신 무인중계소에 막혀 있다. 하지만 굳이 정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해맞이 기념비 주변 등 도로 곳곳에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는 길 : 88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을 나서면 삼거리. 오른쪽은 해인사 가는 길, 왼쪽은 야로·합천 방향 1084번 지방도로다. 왼쪽길을 따라 고개를 하나 넘으면 26번 국도와 만난다. 이 길을 타고 묘산면 방향으로 직진해 묘산면 소재지까지 간다. 묘산초등학교를 지나 500m쯤 가면 면소재지 끝부분 오른쪽에 ‘가야마을’ 이정표와 함께 ‘오도산 중계소’ 표지판이 나온다. 오도산 인근에 해인사, 영암사지, 합천호 등 둘러볼 만한 곳도 많다. 묘산면사무소 055)930-4031. ■ 덕유산 덕(德)이 많아 그 많은 눈을 이고 있었던 겐가. 언제나 좋은 덕유산이지만 겨울이면 유난히 빛을 발하는 설국(雪國)으로 변한다. 덕유산은 남쪽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눈이 많다. 서해의 습한 공기가 거봉을 기어오르다 힘에 겨워 눈을 뿌려대기 때문이다. 무주리조트 스키장 한 쪽의 관광곤돌라를 타고 정상으로 향했다.5분쯤 지났을까. 양팔에 주렁주렁 눈송이를 안은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힘에 겨운 듯 하나같이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곧이어 설천봉(1520m) 정상. 느닷없이 펼쳐진 설국의 풍경에 관광객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기묘한 자세로 가지를 비틀고 선 고사목들이 눈을 의심케 했다. 설천봉에서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까지의 표고차는 채 100m도 되지 않는다. 잰 걸음으로 20분이면 충분한 거리.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어린이는 물론, 양말을 아이젠 삼고 오르는 노인들의 모습도 곧잘 눈에 띈다. 내친 걸음, 삼남을 굽어보는 향적봉에 올랐다. 해발 1614m. 한라산과 지리산, 그리고 설악산 등에 이어 네 번째다. 정상에 서자 북으로 적상산을 발아래 두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 서쪽은 운장산과 대둔산, 남쪽은 지리산, 동쪽으로는 가야산과 금오산 등이 눈으로 뒤덮인 등산로와 함께 일망무제로 펼쳐졌다. 영·호남을 가르며 100리길 대간(大幹)을 이루는 덕유연봉의 장쾌한 파노라마다. 이런 곳을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가는 길 :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무주 나들목→좌회전→적상면 삼거리→좌회전→사산삼거리→좌회전→치목터널→구천동터널→무주리조트. 향적봉까지 오르려면 아이젠 착용이 필수다. 앞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 간혹 한 쪽 신발에만 아이젠을 착용한 관광객이 미끄러지며 뒷사람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다. 관광곤돌라 왕복 어른 1만 1000원, 어린이 8000원.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4시.(063)322-9000. ■ 함백산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높이가 1573m에 달해 태백의 지붕이라 불리는 태백산(1567m)보다 높다. 예로부터 묘고산이라고도 불렸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과 같은 의미로, 신성한 산이란 뜻이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길 중 하나가 함백산 오르는 길이다. 함백산 정상의 방송 송신탑까지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됐다. 백두대간의 중부지역 최고봉답게 함백산 정상은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북쪽으로 은대봉, 두문동재가 이어지는 능선과 금대봉, 매봉산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서쪽으로는 웅장한 산세를 자랑하는 두위봉, 백운산, 장산이 펼쳐진다. 쾌청한 이른 아침이면 동해 일출 전망도 가능하다. 함백산 인근의 만항재도 잊지 말고 찾아야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화 천국. 겨울엔 눈덮인 설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영월과 정선, 그리고 태백이 모두 이 지역에서 만나, 하늘아래 가장 높은 삼거리를 이룬다. 해발 1330m. 지방도로 중 가장 높은 414번 도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고한읍사무소 033)560-2615. 인근 태백시에서 열리는 눈축제 행사장을 찾아가도 좋겠다. 제15회 태백산눈축제가 1월25일∼2월3일 태백산도립공원과 황지연못, 여성회관 앞 얼음썰매장, 태백 레이싱파크 등에서 열린다. 눈 미끄럼틀, 튜브 봅슬레이 등 탈거리와 태왕사신기 얼음조각 등 볼거리로 가득찼다. 태백산도립공원 입장권에 도장을 받아 하이원스키장 매표소에 제시하면 관광곤돌라, 리프트권 등을 50% 할인받을 수 있다.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550-2081,2828, 태백산 도립공원 550-2741,2745.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국도→석항→31번국도→화방재(어평재)→414번 지방도→함백산, 만항재. 눈이 많이 오면 길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글 사진 무주·합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당선작] ‘여수’에서 식물성의 세계로, 그 타자 찾기 - 한강론/주지영

    1.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서 우리네 일상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경계의 반복적인 명멸과 대면하는 자리에 인간을 위치시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들에 의해 일상의 공간은 구획되고 짜여진다. 주어진 공간의 구획을 넘어서는 순간에도 경계 짓기는 끝없이 지속된다. 안주와 일탈의 길항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 속에서 내파되고, 일탈의 가능성을 지속시키는 새로움을 향한 갈망조차 이미 기획된 미시적인 욕망의 파편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기에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욕망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일상을 전복시킬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맡은 것, 그것이 소설의 운명이 아닐까?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는 루카치의 명제는 소설의 발생론적 배경을 논하는 자리에서 도출된 것이지만, 그것은 현대의 소설이 처한 위상을 거론할 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소설의 문법 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작가의 ‘별빛’이 있어야 하고, 또한 현실사회의 고해를 건너는 ‘모험’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모험을 통한 별빛 찾기, 이를 달리 잃어버린 타자 찾기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인식이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 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불모지이다. 그곳은 산업사회일 수도 있고, 후기산업사회일 수도 있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the other)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나서는 고독한 탐험가, 그가 작가이다. 잃어버린 타자는 인간이 황폐화시킨 자연일 수도, 남성에 의해 도구화되어 억압받는 여성일 수도, 도시에 의해 황폐화된 농촌일 수도, 자본가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수도, 이성에 의해 감금된 비이성일 수도 있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이 짊어져야 할 비극적 운명이다. 어떤 타자를, 어떻게 지향하는가, 바로 그 점에서 소설의 색채와 작가가 이뤄내고자 하는 세계는 다른 빛깔을 띠게 된다. 소설사적 흐름에서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들은 바로 이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을 시도했고, 그 모험의 결과로 산출된 별빛들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빛을 밝혀준다. 인간에게 불을 내어 준 프로메테우스가 그 대가로 자신의 심장을 독수리에게 내맡기듯 그들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를 밝혀 줄 소설을 쓰기 위해 벌판을 고독하게 방황한다. 그렇다면 최근 소설에서 프로메테우스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천형으로 짊어지고 가는 작가는 얼마나 되는가.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의 운명을 포기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고 있지는 않은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매스미디어적 메시지들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소설의 고독한 운명을 방기하고 현상적이고 피상적이며 찰나적인 것에 쉽게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결여한 채 일상에 안주하여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쾌락들을 경탄해마지 않는 그런 소설들을 대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프로메테우스의 천형처럼 소설의 비극적 운명을 짊어지고 고독한 방랑의 길을 떠나는 작가가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한강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작품은 죽음과 광기, 소통의 법칙을 뒤집는 침묵이나 몸짓, 욕망의 금기를 위반하는 근친상간, 동물성에 대비되는 식물성 같은 언표들을 공적인 영역 속에서 가시화한다. 뼛속부터 밝음의 영역에 속해있던 기획된 욕망들을 삭제하려는 충동질로 가득한 그의 소설에서 인위적인 모든 것들은 부정된다. 제도나 관습 일반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획일화된 것들을 거부한다. 먹고 마시는,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들조차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들을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폭력적인 일상에 휘둘릴수록 본래의 육체에 깃들이고 있었을 법한 영혼에 대한 갈급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가라앉았던 감정의 앙금들을 분출하고, 토해낼 때 비로소 영혼의 정화는 일단락된다. 의식(儀式)과도 같은 파토스가 지나가고 난 빈 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그렇다면 한강 작품에 나타나는 ‘모험’은 무엇이며, 그 모험을 통해 찾고자 하는 ‘타자’는 무엇인가. 초기 작품에서는 죽음의 기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가 설정된다. 타자의 자리가 설정된 이후 그 타자와의 합일 방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가면벗기와 맨얼굴 찾기’에서부터 출발하여 ‘언외언과 관의 사유’를 거쳐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이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1995)에서부터 ‘내 여자의 열매’(창작과비평사,2000)를 거쳐,‘채식주의자’(창비,2007)로 전개되는 바, 이에 대한 검토를 통해 한강 작품의 의의를 탐색하고, 나아가 ‘지금 여기’에 대해 고민하는 소설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지평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2. 관념으로서의 여수(旅愁), 행(行)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첫 창작집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일상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적 징후에 시달리거나 심지어 자살 같은 극단적 행위를 통해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한강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은 인간의 육체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죽음은 그 기억 속에 유폐된 인물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인물들이 삶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이끄는 통로이다. 그 통로의 끝에서 인물은 좌절과 절망 같은 심리의 장막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타자와 조우한다. 그런데 여기서 작중 인물의 병적 증후나 자살 등을 유발하는 가족의 죽음을 두고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현실에 내재한 모순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죽음의 기억은 인물의 내면에 일상에 적응할 수 없을 만큼의 정신적 상흔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린 시절 농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와 동네 아이들에게 매맞아 죽은 동생 진규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질주’의 인규, 생모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녁빛’의 제헌,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동반 자살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심각한 결벽증을 앓는 ‘여수의 사랑’의 정선 등을 보면 그렇다. 누군가의 죽음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부적응이라는 요인을 촉발하는 정신적 상흔으로서 작동한다면, 그것은 작가의 인식이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아닌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조건을 문제 삼는 쪽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말하자면 한강의 관심은 불행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드러내는 측면에 놓인다. 따라서 작가는 가족의 죽음을 인물의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용서와 증오 등과 같은 보편적 주제와 연결시킴으로써 특정 시대, 특정한 상황을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을 탐색하려 한다.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 그러한 정신적 상흔으로 인한 병적 징후, 죽음과 같은 음울한 기운이 만연한 일상에의 부적응, 기억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등으로 구성된 서사가 ‘여수의 사랑’ 전편을 관통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를 깔고 작가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둡고 침울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설정된 타자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 안에 오롯이 담긴다. 가령,‘여수의 사랑’을 보자. 이 작품에서는 정선과 자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정선의 경우. 여수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술에 찌들어 살다가 결국 정선과 어린 동생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꾀한다. 혼자 살아남은 정선은 서울에 살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정선은 서울을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이 만연하고, 온갖 병균이 득실한 곳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정선은 ‘결벽증’과 같은 병적 증세에 시달린다. 다음 자흔의 경우. 그녀는 두 살 때 서울역에 버려져 고아가 된 뒤 보육원 생활을 거쳐 입양이 된다. 돈에 대한 욕심도, 행동거지에 조심성도 없다.‘모든 것을 생각 없이’ 다루는 그녀는 아무 희망도 없이 도시를 옮겨 다닌다. 자흔은 일상의 ‘나’와 또 다른 ‘나’의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핏기가 없는 데다가 입가와 뺨에 온통 하얗게 버짐이 피어 흡사 분가루를 뒤집어쓴 광대 인형’ 같은 것이 일상의 ‘나’이고, 늘 떠돌아다니면서 세상사에 무관한 채 ‘견고한 평화가 어른거리는 얼굴’,‘무구하고도 빛나는 웃음’,‘천진한 영혼’을 가진 것이 또 다른 ‘나’이다. 또 다른 ‘나’는 여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고향도 모르는 자흔은 성인이 되어 문득 찾게 된 여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여수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의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로 거듭 태어나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수는 풍경이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품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죽음과 같은 음험한 기운, 온갖 병균으로 득실한 ‘서울’에 대비되는 여수란 과연 어떤 곳인가. 길 여기저기에 소들이 쟁반만 한 똥을 갈겨놓은 진짜 시골이었어요.(중략) 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마을 앞 버려진 부두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이며 더러운 판자때기들이 뒹굴고, 검푸른 물결은 갯벌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가 밀려가고……염소 울음 소리, 새소리, 바람, 두엄 냄새, 일하는 아낙네들……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낯익은 것이 없었는데도 마치 내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품속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았어요.(‘여수의 사랑’,50∼51쪽) 따뜻한 산수화 한 폭을 보고 있는 듯한 여수의 풍경은 자흔에게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으로 각인된다.‘푸른 실 하나하나를 촘촘히 엮어 놓은 것같이 잔잔한 만’에 염소 울음소리와 새소리가 있고, 바람이 불고, 두엄 냄새가 나며, 그런 자연적인 것들과 어우러져 백발 성성한 노인과 머릿수건을 쓴 아낙네, 상고머리 소년들이 일을 하는 곳,‘무덤’마저 ‘착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곳, 그곳이 바로 자흔의 기억 속에 자리한 ‘여수’이다. 고향도 모른 채 고아로 자란 그녀에게 여수는 ‘어머니 품속’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숨쉰다. 여수로 표상되는 이 세계야말로 자흔에게 인간다운 삶을 가능토록 하는 타자이다. 그녀가 여수를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도시의 삶을 견디기 위해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녀가 물고기 키우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까닭은 자신이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이다.“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물고기가 되고자 하는 일이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로 흘러들어 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일상의 ‘나’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품속 같은 ‘여수’와 일체가 되고자 하는 또 다른 ‘나’를 지향하는 자흔을 통해, 정선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상흔으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정선에게 죽음의 기억이 서린 여수는 병적 증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자흔은 그런 정선에게 여수를 이야기하고, 그럴 때마다 정선의 결벽증은 심해진다. 그러다가 정선은 차츰 자흔을 통해 환기되는 여수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자흔이 그녀의 곁을 떠나자 정선 역시 여수행 기차를 탄다. 정선의 여수행은 자흔처럼 일상의 ‘나’로부터 벗어나 아름다운 여수를 사랑하는 ‘나’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여행이다. ‘여수의 사랑’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타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여기’라는 현실에 작가가 천착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인간은 불행한 존재다.’라는 관념의 영역에서 설정된 것이어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리얼리티가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여수’라는 타자가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몸피를 얻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천착이 심화되어야 하며, 더불어 그렇게 얻어진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탐구해 들어가야 한다. 3. 맨얼굴에 담긴 관(觀)의 사유 실현가능한 것으로서의 ‘타자’가 되기 위해 작가의 인식이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자와 합일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어둠의 사육제’와 ‘아기부처’에서 이뤄진다. 이들 작품에서 ‘여수’로 상징되는 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지향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주력한다. 그 방법은 ‘가면 벗기를 통한 맨얼굴 찾기’와, 용서라는 마음이 우러나오도록 하는 ‘관’의 사유로 구체화된다. ‘어둠의 사육제’를 보자. 먼저 주목할 것은 ‘서울’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여전히 ‘어둠’이자,‘인간들의 더러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무덤’으로 인식한다. 죽음의 기억이 이러한 인식을 이끌어내었던 초기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서울의 구체적 현실에 천착하여 그 속에 내재된 동물적 폭력성을 감지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인식이 현실에 밀착해 있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세상에 밟히고 뒤둥그러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을, 번들거리는 눈과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를, 그 이상 철면피할 수 없을 되바라진 억양을 묵묵히 관찰하며 나는 연민이나 환멸이라고만은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슬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0쪽) 중년 여자는 자신의 얼굴을 실수로 때린 여대생에게 ‘동물적인 분노와 보복’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전철에서 뻔뻔스럽게 자리 양보를 요구한다. 비단 중년 여자뿐만이 아닌 이 작품의 여러 인물들에게서 모두 감지되는 동물적 폭력성은 이후 전개되는 한강의 소설에서 현실 인식의 한 증좌가 된다. 나(영진)와 인숙 언니는 같은 고향 사람으로 둘 다 서울로 상경한다. 영진은 ‘세상에 대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인숙 언니는 ‘커다랗고 감정이 풍부했던 눈이며 부드럽기만 했던 입매’를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울로 올라와 변화한다. 여직공이던 인숙은 ‘거친’ 말씨를 내뱉고 ‘나쁜 쪽만 생각’하는 ‘독한 사람’으로 변한다. 무역회사 경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 영문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던 영진은 인숙이 전세금을 빼들고 도망가자,‘악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품고 ‘인간에게 살의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한다. 명환 역시 ‘본래 선한 사람’이었으나,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잃고 ‘모든 인간들에게 살의’를 품는다.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전세금을 갖고 도망간 인숙이나, 그 인숙으로 인해 ‘독기’를 품은 ‘나’나, 돈으로 용서를 구해온 가해자에게 복수를 꾀하는 명환이나, 모두 중년 여인처럼 동물적 분노와 보복심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어둠 속에 꼿꼿이 네 발을 세운 채로, 경련하는 암고양이의 모습을 소리없이 주시하고 있는 검은 수고양이의 모습은 흡사 악령 같았다.(‘여수의 사랑’,223쪽) 쥐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고양이를 냉혹하게 주시하는 악령 같은 수고양이는 동물적 폭력성이 난무하는 현실을 환유하는 장치이다. 영진과 인숙, 명환 등은 바로 이 동물적 폭력성에 길들여진다. 이러한 동물적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가면을 벗음으로써 맨얼굴을 찾는 것이 그 첫 번째 방법이다. 동물적 복수심으로 남을 괴롭혀 온 명환이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빈손’,‘완전한 빈 몸뚱이’가 되기 위해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영진 역시 그런 복수심을 버리고 간암 치료를 받는 인숙 언니의 행동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가면 벗기와 맨얼굴 찾기가 이뤄진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객실의 음산한 풍경 속에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나는 그 가면 같은 얼굴을 뒤집어쓴 사람이 더 이상 눈물 따위를 흘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여수의 사랑’,231쪽)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상에 길들여진 자들의 뻔뻔스러운 얼굴을 표상하는 ‘가면 같은 얼굴’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은폐한다. 그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폭력적인 동물성을 표상하는 수고양이의 것에 가깝다. 작가는 가면을 쓴 비정한 일상의 인간들에게서 발견한 물질만능주의, 출세지향주의, 가족이기주의와 같은 현실의 모순을 비판의 목록에 등재한다. 동물적 폭력과 복수심에 길들여진 일상의 가면을 벗고 또 다른 ‘나’의 맨얼굴을 획득할 때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품을 수 있고, 또한 타자와의 합일이 가능하다. 요컨대, 맨얼굴 찾기가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일차적 방법인 셈이다. 맨얼굴로 도심의 일상에 나서는 영진에게서 현실을 향한 적극적인 대응 의지가 엿보인다. ‘어둠의 사육제´가 동물적 폭력성이 길들여진 가면을 벗고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맨얼굴을 되찾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아기부처´는 그 맨얼굴이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를 ‘언외언(言外言)´과 ‘관(觀)´의 사유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타자와의 합일을 가능케 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주인공 선희는 프라임타임의 앵커인 남편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입은 화상 흉터를 감추려고 철저하게 긴 옷을 입는다. 선희가 감기에 들자 자신에게 감기를 옮길까봐 병원에 가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는 말실수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고, 독단적인 인물로서 출세를 위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다. 선희는 처음엔 남편의 흉터를 보고 고됐을 그의 삶을 연상하지만, 결혼 후 이기적이고 권위적이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남편의 화상 흉터를 싫어하게 된다. 자신의 흉터를 보듬어 줄 사랑을 찾아 남편은 외도를 하고 선희는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나는 한갓 짐승이었다. 땀에 젖어 산비탈에 엎드린, 누더기 같은 한겹 가죽만 남은 병약한 짐승이었다. 그 가죽 안에서 악취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감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 왔다(‘내 여자의 열매’,111쪽) 현실의 동물적인 폭력성에 선희는 철저히 희생당한다. 그 결과 남편과 세상을 향해 분노와 증오를 쌓아간다. 그렇지만 분노와 증오는 앞서 ‘어둠의 사육제’의 인물들처럼 스스로를 동물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 그런 동물적 삶으로 인해 선희는 황폐해져 간다.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선희의 모습은 꿈 속 아기부처의 얼굴에 비춰진다. 아기부처가 짓는 표정들은, 음흉한 입꼬리와 날카로운 눈초리를 하거나, 차갑게 빈정대는 눈꼬리를 한 그녀의 내면과, 진흙이 끈적이며 달라붙기도 하고, 모래가 되어 부서지기도 하는 남편과의 현재 관계를 거울처럼 되비친다. 아기부처의 얼굴은 선희가 병약해가는 것이 “마음속에 맺힌 악취 나는 감정들” 때문임을 깨닫게 하는 경고의 스크린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기부처로부터, 동물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나 몸짓’ 속에 현현하는 ‘언외언’에 있다.‘몸짓’으로서의 ‘언외언’은 ‘말’이 야기하는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남편, 어머니, 아기부처와 선희는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소통함으로써 화해한다. 어머니의 불화 그리기, 아기부처의 얼굴 빚기, 혹은 언어 장애 아동을 위한 삽화 그리기 등이 ‘언외언’의 도정에 가로놓인다. 아이, 까르르 웃는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외친다. ‘가자!’ (중략) 아이의 손을 번쩍 들게 하고 엉덩이도 약간 띄워서 아이가 펄쩍 날아오르는 것처럼 해야겠다. 아빠의 몸까지 함께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해야겠다.(‘내 여자의 열매’,102쪽) 언어장애아동처럼 언어를 거부하는 것은 말의 논리와 체계, 즉 말을 배우면서 사회로 편입되는 사회화과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일상 현실의 ‘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아버지의 노력에 힘입어 자기 안의 성벽을 허물고 드디어 입을 연다. 선희는 그들이 느꼈을 법한 기쁜 감정을 몸짓에 담아 삽화로 그려내야 한다. 아이와 아버지의 “날아오르는” 듯한 몸짓에 ‘기쁘다’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이 담긴다. 삽화를 그리며 깨닫게 된 ‘언외언’은 남편의 흉터를 어루만지는 몸짓에 담긴다. 남편이 다른 여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고 머리를 짓찧을 때 선희가 남편의 머리를 감싸안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몸짓’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말’ 그 자체에는 은폐된 ‘무엇’이며,‘침묵’의 빈 공간에, 말없이 이루어지는 ‘몸짓’ 속에 실재한다. 결국 언표화 되지 않는 마음을 환기시키는 방법은 ‘언외언’에 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인가. 이 작품에서 ‘언외언’의 심층을 ‘관(觀)’의 사유가 가로지른다.‘말’의 폭력성 때문에 갇혀 있던 용서와 화해의 마음은 ‘관’의 사유에서 풀려난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 자체를 초월한 곳에, 그리고 속물적인 욕망을 넘어선 자리에 “관”의 사유가 존재한다. 일상을 지배하는 논리규범에는 담길 수 없는 진정한 마음이 “관”의 사유 속에서 우러나온다. (i)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내 여자의 열매’,104쪽) (ii) 관음의 입술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귀가 퍽이나 예민한 이인가 보았다. 빗소리를 듣다가 깨달음을 얻었고, 늘 세상사람들의 소리를 관(觀)하고 있어 괴로이 부르는 음성을 듣는 즉시 곧 구제해 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내 여자의 열매’,105쪽) 삶의 고통을 인내하고, 마음속에 관세음보살을 잉태하듯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마음을 잉태하는 것, 그럼으로써 일종의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관’의 사유이다. 선희는 남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부부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깨닫는다.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남편의 모습은 실은 화상을 입은 그의 껍질에 지나지 않음을, 정작 남편의 마음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밑에 고통스럽게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목련은 나무에 핀 연꽃이라 목련(木蓮)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올려다보자, 하오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그 봉오리들은 마치 꽃잎 안에 흰 등불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117쪽)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나아가 겨울 나무에서 봄의 생명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겨울부터 저 날카로운 솔잎들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같은 푸른색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방금 나온 어린 싹 같은 연푸른빛이 생생하게 차올라 있었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내 여자의 열매’,125쪽) ‘아기부처’의 마지막 장면이다. 겨울 지나 봄으로 가는 문턱에서 자연을 보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같은’ 푸름에서 ‘다른’을 간취하고, 겨울부터 ‘지속’되는 것들 가운데 ‘방금 나온’ 생명의 시작을 발견한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는 획일적인 공식이 아닌, 한 나무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색의 잎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긍정하는 사유, 앙상한 겨울나무에서도 미세한 생명의 떨림과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그것이 바로 ‘관’의 사유이다. 이 관의 사유를 마음속에 지닐 때, 동물적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의 삶을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보다 인간다운 삶을 지향할 수 있다.‘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잠언과 같은 감탄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4. 식물성을 향한 욕망의 존재론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서의 맨얼굴과 ‘관’의 사유는 작가가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 현실의 삶에 뿌리내리면서 발견한 중간 경유지이다. 이 방식들은 의식의 층위, 마음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층위는 평면의 동심원에서, 외원을 이루는 동물적 폭력성이 강렬한 외파로 밀고 들어올 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내원과도 같다. 그 어떤 외파도 견딜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과 마음이라는 동심원의 평면 저 아래 깊은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것을 심화시켜야 한다. 요컨대 타자와의 합일을 향한 무의식의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그래서 의식의 수면을 꿰뚫을 정도로 강렬하다면, 그럴 때 현실의 외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한강은 ‘내 여자의 열매’를 거쳐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 연작에 이르는 도정에서 욕망의 영역으로 작가 인식을 심화시킨다.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이 그것이다. 이 순간 타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자리한 욕망의 영역이 설정되고, 그 결과 관념에 지나지 않았던 ‘여수’ 대신 ‘식물성’의 세계가 새로운 타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 타자는 여수처럼 현실과는 동떨어진, 현실 저 너머의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자,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 타자이다. ‘내 여자의 열매’는 식물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식물적 상상력이 길어내는 삶의 진실은 그 힘이 아직 미약하다.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일상이 싫어서, 도심의 똑같은 아파트가 싫어서, 지긋지긋한 피를 갈고 싶어서, 어머니처럼 되기 싫어서, 어디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없어서 결국 식물이 된다는 가정이 단순한 현실도피를 방증한다. 그리고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인물의 욕망 역시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식물성의 세계를 강렬히 욕망하는 인물에 의해 식물성의 세계가 온전히 개화하는 작품은 ‘몽고반점’이다. 이 작품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와, 몽고반점을 가진 처제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근친상간을 예술적 시선과 현실 윤리의 시선 속에서 포착해낸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처제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다. 우선 처제의 욕망을 보자. 그 욕망은 그의 눈에 포착된 몽고반점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채식주의자’,101쪽) 처제의 몽고반점은 ‘순수성’ 혹은 ‘순수한 영혼’을 표상한다. 곧 ‘어린아이’처럼 처제는 일상의 폭력성에 물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의 붓칠에 의해 ‘순수한 영혼’이 육체에 새겨진 ‘몽고반점’으로 가시화된다. 꽃을 그려 넣는 행위는 폭력적인 일상에 의해 상처받은 인간의 몸에 ‘순수한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식물성을 부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처제는 “뱃속의 얼굴”에 대한 무서움을 이겨낸다.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은 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진정한 욕망을 의미한다. 뱃속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진 까닭은 일상의 질서에 자신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질서로부터 벗어날 때 그 얼굴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처제는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가시화한 꽃 그림에 힘입고, 그녀 자신에게 내재해 있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함으로써,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로 풍겨 나오는 처제의 “배냇내”는 타자와의 합일이 뿜어내는 식물성의 ‘향기’인 셈이다. 몽고반점, 즉 꽃잎 그림자로서의 순수한 영혼과, 몸 혹은 꽃으로서의 진정한 욕망이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는 세계, 그것이 ‘색채의 세계’로서의 식물성의 세계이다.“색채의 세계”는 “격렬한 세계”이자,“마술적” 세계이고,“전혀 다른 세계”이다. 식물성에 대비되는 동물성의 세계는 일상에 만연해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함축한다. 그것은 육식성, 적자생존, 약육강식 등으로 점철된 일상이자 문명의 세계를 표상한다. 반면에 식물성은 순수성과 공존의 세계이자, 가족의 윤리마저 붕괴되는 탈일상이자 탈문명의 세계로 압축된다. 인간의 몸과 꽃, 그리고 짐승이 뒤섞인 교합에서도 드러나듯, 식물성의 세계는 “추악하면서도 아름답고” 동시에 “삶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고,“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곳”이기도 한, 차별상을 가진 일체의 것이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인 것이다. 하기에 처제가 욕망하는 식물성의 세계는 처제와 형부의 불륜관계처럼 제도의 금기마저 초월한 곳에 있다. 현실 제도의 금기를 위반하는 욕망이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은 오로지 ‘죽음’과 ‘광기’의 영역 안에서이다. 곧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은 금기의 위반에서 맛본 죽음과도 같은 향유(jouissance)를 안은 채 죽음을 향해 돌진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내몰려 사회로부터 배제당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건 모두 일상에서의 ‘죽음’과도 같은 귀결로 치닫는다. 처제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치열하게 표출한다. 그렇다면 그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의 욕망은 육체적 욕망과 예술적 욕망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동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모되고 찢긴 인간의 일상”을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강직한 성직자”로 불릴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그러다가 처제의 자해사건을 겪으면서 그가 작업했던 것들 역시 일상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그가 찾았던 “더 고요한 것, 더 은밀한 것, 더 매혹적이며 깊은 것”으로서의 실재를 현현하고 있었다. 처제의 ‘몽고반점’은 비디오아티스트인 그에게 이미지가 갖는 재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그는 지금까지 작업해 온 일상의 폭력성을 담은 이미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재현했든 간에 상관없이, 실재의 고통과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한계는 삶의 여러 국면에서 용솟음치는 욕망과 대면할 때마다 현실과 욕망의 경계 선상에서 그가 느꼈을 법한 환멸과도 같다. 그는 근친상간이라는, 현실의 금기를 위반하며 욕망의 극단에 잠시 도취된 결과, 잡으려 했던 욕망의 실재가 허망하게 스크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의 욕망은 처제가 보여주었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욕망의 시선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욕망은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자신의 육체적 쾌락 앞에 예술적 욕망을 무릎 꿇린 결과를 낳고 만다. 여기서 ‘그’의 욕망을 작가 한강의 글쓰기의 욕망과 연결시킬 수 있다. 처제와의 근친상간을 통한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애초의 글쓰기의 의도이다. 이 의도대로라면, 작중 인물은 ‘그’와 처제만으로 충분하다. 두 인물의 근친상간을 담은 캠코더의 화면처럼, 근친상간 그 자체만을 다루면서 식물성의 세계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본래 기획이고,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밀실에서나 가능하다. 그것이 공적인 장으로 나올 때(발표될 때), 현실로부터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로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비난을 피하고, 작가가 생각한 본래의 의도를 어느 정도 형상화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아내’이다.‘아내’는 현실 사회의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아내’의 등장에 의해 ‘그’와 ‘처제’의 근친상간은 작품 속에서 불륜으로 비판된다. 작가는 ‘아내’를 작품 결말 부분에 등장시켜 이 작품이 포르노그래피 혹은 외설이라는 비판을 비껴나가게 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본래 지향하는 예술(식물성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의 측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작가 한강의 영민한 균형 감각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식물성의 세계를 전면화한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드러내기에는 아직도 현실의 억압과 금기가 완강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작가의 비판 의식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본래적 욕망과 안전장치가 균형을 이루면서, 식물성의 세계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으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이들 소설에서 영혜라는 인물은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 속에서 포착된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인물형을 표상하며, 그 인물형이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드러낸다.‘채식주의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나)은 속물을,‘몽고반점’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부(그)는 예술가를, 그리고 ‘나무불꽃’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언니(그녀)는 일상에 함몰되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을 표상한다. 그들은 모두 길들여진 욕망에 사로잡힌 채 진정한 욕망을 추구하려는 영혜를 경계 밖으로 일탈한 인물로 취급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광인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영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의 욕망을 지켜내려 한다. 연작에서 교직된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들은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인식하는가. 혹시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욕망이란 ‘광기’와도 같은 것, 정상의 영역을 벗어난 것, 그래서 죽음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영혜는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런 영혜에게 작가 한강의 깊고 고통스러운 숨결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한강의 고민이 바로 진정한 욕망의 탐구 위에 있음을 방증한다. 5. 텍스트의 독법, 타자를 향하여 한강의 소설은 탄탄한 서사구성으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 간의 긴장관계까지도 탄탄하게 조여 낸다. 그런 까닭에 한강의 소설 전체를 하나의 텍스트로서 파악하는 독법이 필요하다. 일종의 텍스트 간 소통의 재구성 방식이다. 그 하나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내밀하게 파헤치는 방식.‘여수의 사랑’에서 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둘, 둘 이상의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저녁빛’이나 ‘진달래능선’,‘어둠의 사육제’에서는 서로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듬어주는 중층적인 시선들이 교직된다.‘내 여자의 열매’에서는 식물 되기를 꿈꾸는 인물의 내면을 편지 형식으로 삽입하고 지켜보는 시선에 남편을 배치한다. 셋, 동일한 사건을 겪는 인물들의 다중초점화.‘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불꽃’이 만드는 연작 형식.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채식주의자’는 그녀의 남편의 시선에,‘몽고반점’은 형부의 시선에,‘나무불꽃’은 언니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영혜를 바라보는 중층적인 시선들을 세 작품에 나누어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식물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영혜의 욕망을 보여주고, 그녀의 욕망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부각시킨다. 더불어 텍스트마다 화자를 바꾸어 조명함으로써 각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 인물이 다른 인물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 결과 각 인물들은 세 텍스트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선에 의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지금, 이곳’의 리얼리티를 무수히 직조한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이 꿈꾸는 ‘여수’에서부터 출발하여 ‘채식주의자’ 연작에서 영혜가 꿈꾸는 ‘나무 인간의 세계’로 나아가는 한강의 소설들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지난한 행보를 보인다. 한강은 그러한 타자와의 합일을 지향함으로써 폭력적인 일상 속에서 위협당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보듬고자 한다. 작가 한강이 어두움의 세계, 즉 은밀하고도 사적인 영역들에 은폐되어 있는 죽음, 성, 욕망 등을 공론화의 장으로 내어 놓고, 그럼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값진 의미를 갖는다.
  • (37) 여기는 하라르

    (37) 여기는 하라르

    며칠 안되었지만 하라르(Harar)에서의 생활은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여행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동네에 나타나면 가이드를 희망하는 친구들이 수십 명 모입니다. 괜찮다고 해도 우린 친구니까 안내하고 싶다고 계속 따라오는데 지금까지는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동네에는 벌써 암하릭어를 하는 한국인인 저에 대해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제가 지나가면 “헤이, 차이나!” 혹은 “헤이, 파렌지!”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태권도!!”라고 부르거든요. 첫날 동네 꼬마들이 가라데를 보여달라고 해서 발차기를 살짝 보여주면서 태권도라고 그랬거든요. 지금 와 있는 하라르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하자면 에티오피아의 9개의 주(州) 중에 하나인 하라리주의 주도입니다. 2006년 유네스코는 하라르의 도시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성벽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5개의 게이트(Assum Gate, Asmaddin Gate, Bedro Gate, Suqutat Gate, Argob Gate)가 있습니다. 도시 안에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90개가 넘고 에티오피아 정교회 교회가 10개 정도 있습니다. 이슬람교 4대 성지 중 하나라고 하네요. 도시는 크게 올드 시티와 뉴 시티로 나뉘어져 있고 볼거리는 올드 시티에 많습니다.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아버지의 출신지가 이곳이고 올드 시티에 가면 황제가 궁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 있는데 관리 소홀로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프랑스 시인 랭보가 시 쓰기를 멈추고 아프리카 어딘가로 떠났다는 사실을 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 아프리카가 바로 이곳 하라르입니다. 이곳에서 랭보는 11년간 무기 거래상을 하며 엄청나게 돈을 벌었다고 하네요. 랭보가 밀매한 무기로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와 싸워 이긴 전투가 아도와 전투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강대국을 상대로 싸움을 해 이긴 건 이 전투가 유일하다고 하네요. 에티오피아는 이 승전의 날을 매년 공휴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올드 시티에는 랭보 박물관이 있는데 사실 랭보는 이 건물에 산 적이 없다고 하네요. 프랑스 정부차원에서 현재 랭보 박물관을 중심으로 하라리 문화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자문화 우월주의가 극심한 프랑스다 보니 관광안내 책자를 프랑스어로만 제작해 배포하고 있네요. 게다가 아무리 에티오피아가 개발도상국이긴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를 개발하겠다는 저 발상은 아주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라르에 유명한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커피입니다. BBC 다큐멘터리에서 스타벅스의 커피 감별사가 커피 맛을 보고 세계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 후 브랜드를 보여주는데 에티오피아의 하라르산 커피더군요. 현지에서는 커피 제조 공장을 방문해서 물어보니 커피 1Kg이 40~50birr 정도 거래되고 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비싸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번에 하라르에 오면서 시간이 없어 연구조사허가서를 받지 않고 와서 사실 불안해하면서 동네들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관광객이라면 보통 길어야 3일을 머물고 떠나는데 저는 그 날짜도 넘긴 상태고 계속 이상한 것만 물어보고 다닌다면서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는데 머무는 동안 경찰서 구경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지도교수가 그걸 제일 걱정하고 있거든요.       <윤오순>
  • 국내 최장 금정산성 내년부터 복원

    국내에서 가장 긴 산성인 ‘금정산성복원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부산 금정구청은 15일 금정산성 복원계획과 관련, 최근 문화재청의 복원 승인이 남에 따라 내년부터 중ㆍ장기 복원사업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복원 사업은 성벽과 관청이 있던 금정진, 암문, 장대, 망루 등의 시설물 복원과 산책로 정비 등이다. 복원 사업에는 국ㆍ시비 등 총 745억원이 투입된다. 구청 관계자는 “복원사업은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추진되며 완료 시점을 2022년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구는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 부산은행이 기탁한 1억원으로 북문과 남문, 제2,3망루에 대해 보수공사에 들어가 올 연말 완료할 방침이다. 부산 금정구와 동래구, 북구, 경남 양산시 등에 걸쳐 있는 금정산성은 조선 숙종 33년(1707년) 때 축조됐으며 1971년 사적 제215호로 지정됐다. 총 길이가 1만 8845m로 국내에서 가장 길지만 전체 성곽 가운데 2856m는 1972년부터 부분 복원돼 제 모습을 찾았으나 나머지는 등산로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있는 실정이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33) 아프리카의 카멜롯 - 곤다르 기행

    (33) 아프리카의 카멜롯 - 곤다르 기행

    성곽의 도시 곤다르.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쪽으로 약 500km정도 떨어져 있고 비행기로는 1시간 남짓 걸린다. 바하르다르에서는 이제 길이 뚫려 차로도 갈 수 있다. 못미더워 비행기를 타면 20분이 채 안 걸린다. 암하라족이 다수를 차지하며 중세 유럽풍의 성곽 덕분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곤다르(Gondar)에 도착해 왜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가 아닌 에티오피아를 탐냈는지 이해가 갔다. 내가 만난 곤다르는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의 아프리카가 아닌 중세의 유럽 그 어느 곳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두리번거렸더니 모든 택시기사들이 대뜸 ‘토모’를 찾고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이거 참 신기하네. 토모가 누군데? 이곳에서 거의 7년째 곤다르의 건축물을 연구하는 일본인 연구자였다.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제대로 답변도 안 듣고 토모라는 사람이 사는 곳에 나를 내려줬다. 한국은 아프리카 연구가 활발하지 않지만 일본에는 아프리카 연구자들이 아주 많아서 에티오피아에서도 수년째 현지조사 중인 일본인 연구자들을 많이 만났다.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곤다르 시청의 도시계획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는 토모 덕분에 성곽의 도시 곤다르의 이곳저곳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50birr짜리 입장권(이 표는 버리지 말고 파실라다스 왕의 풀장을 구경할 때 다시 사용할 수 있다.)을 사서 곤다르 성에 들어서니 매표소 뒤쪽의 언덕 위에 펼쳐져 있는 오래된 궁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에게 엑스칼리버 전설로 유명한 영국 중세 시대 아서왕의 궁궐 카멜롯에 비유해 곤다르 성은 ‘아프리카의 카멜롯’이라고도 불리는데, 현지인들은 ‘파실 게비’라고 부른다. 곤다르 성은 약 900m에 달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도시인데, 안에는 황제가 사는 궁전뿐만 아니라 법원, 도서관, 수도원, 목욕탕 등이 들어서있다. 건축양식은 악숨(Axum)의 전통에 포르투갈의 영향이 가미되어 있어 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곤다르의 유적지는 랄리벨라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곤다르는 파실라다스(Fasiladas) 왕과 아들 요하네스(Yohannes) 1세 등 그 후계자들이 1636년부터 1864년까지 약 200여 년간 수도로서 살았던 곳이다. 파실라다스 왕은 이전의 수도였던 고르고라(Gorgora)에 말라리아가 만연하자 해발고도 2,000미터가 넘는 곤다르로 수도를 옮긴다. 곤다르는 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좋은 요건을 갖춘 곳이었지만 천도의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카톨릭교회의 유입으로 종교분쟁이 잦아져 통치가 어려워지자 파실라다스 왕은 에티오피아 정교회만을 믿는 새로운 도시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마을 입구에는 파실라다스 왕의 풀장이라고 부르는 시설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에티오피아 정교회 의식의 세례를 받아야 마을 주민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윤오순>
  • 연천 호로고루城서 탄화곡물 다량 발견

    연천 호로고루城서 탄화곡물 다량 발견

    경기도 연천 호로고루 고구려성에서 동물뼈와 탄화곡물이 다량으로 남아있는 지하시설물이 발견됐다. 소, 말, 개, 사슴, 노루, 멧돼지의 뼈와 쌀, 조, 콩, 팥 등 곡물은 고구려 군대의 식생활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토지박물관은 31일 호로고루 2차 발굴보고서를 내고 성 내부에 대한 시굴 및 발굴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호로고루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고구려가 목책의 형태로 처음 축조한 뒤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상실하자 임진강 유역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인 성으로 추정된다. 이때 기와건물과 지하시설물 등을 갖춘 복합 방어시설로 재정비되어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신라세력을 방어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되었으며, 신라가 장악한 뒤에는 당나라와 전투에 대비하여 고구려 성벽에 새로운 성벽을 덧붙여 보강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호로 지역에 있는 옛 성이라는 뜻의 호로고루(瓠蘆古壘)는 삼국시대 호로하로 불린 임진강 중상류에 있다. 말을 타고 강을 건널 수 있는 이곳은 현재도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400년 아픔의 역사 뛰어넘자”

    “400년 아픔의 역사 뛰어넘자”

    |도쿄 박홍기특파원|‘400년 만의 화해’ 울산광역시와 일본 남서부 규슈지역의 구마모토시가 오는 24일 구마모토성에서 ‘한·일 우정의 콘서트’를 비롯, 다양한 화합의 행사를 갖는다. 지난 4월 울산 대표단이 구마모토를 찾고, 고야마 세이시 시장 등 구마모토 측이 답방하면서 논의한 결과다. 울산과 구마모토시의 구원은 400년전 정유재란까지 거슬러 간다. 당시 일본의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을 공략했을 뿐만 아니라 퇴각하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일본으로 끌고 갔다. 때문에 구마모토성의 바로 아래에는 울산마치(町·마을)가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다. 또 일본의 3대성에 속하는 구마모토성은 조선인들의 노역으로 세워진 까닭에 인근의 오사카성과 달리 울산의 서생포 왜성과 거의 비슷하다. 돌의 틈에 흙을 넣고 성벽도 수직이 아닌 반달과 흡사한 곡선형으로 쌓아 성벽을 기어오르기 힘들게 축성한 것이다. 울산과 구마모토시측은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아픔의 역사를 뛰어 넘어 이제 화해와 친선의 도시로 새로 자리매김해야 할 때”라면서 “역사 흔적을 보듬음으로써 지리적 연관성이 뛰어난 두 도시가 협력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콘서트에는 울산시립무용단과 타악기 공연, 재일 무용가 정명자씨의 장구춤과 살풀이춤 등 한국 전통문화를 선보이고 SG워너비, 씨야 등의 인기가수들도 출연한다. hkpark@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1626년(인조4, 천계6) 1월23일 누르하치는 영원성으로 들이닥쳤다. 그가 이끄는 병력은 20만이라는 설도 있고,13만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누르하치의 대병력이 나타나자 영원성의 전면에 머물던 명의 관민(官民)들은 경악했다. 대릉하(大凌河), 소릉하(小凌河), 행산(杏山), 탑산(塔山) 등지의 명군 지휘관들은 가옥과 곡식을 불태우고 도주했다. ●영원대첩(寧遠大捷)의 실상 누르하치는 영원성에 대한 공격에 앞서 자신이 데리고 온 한인(漢人) 포로를 풀어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를 통해 누르하치는 원숭환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우리는 20만의 대군이다. 성은 분명히 함락될 것이다. 여러 관인들이 항복한다면 높은 관작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환의 회답은 간단했다.“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공격해 왔는가? 나는 성을 사수할 것이다.” 1월23일, 누르하치는 공격을 명령했다. 후금이 자랑하는 철기(鐵騎)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방패를 손에 쥔 경보병(輕步兵)들을 비롯하여 후금군 병사들이 성을 향해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20만이라고 큰 소리치는 대병력이었다. 영원성의 원숭환 병력은 대략 1만 정도에 불과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병력 수만 보면 승패는 이미 끝난 셈이었다. 성으로부터 홍이포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사격은 정확했다. 포탄은 벽력같은 굉음을 내며 돌격해 오는 누르하치 병사들의 대열 중간으로 떨어졌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병사들도 쏟아지는 화살 앞에 나가 떨어졌다. 후금군의 사상자가 속출했다. 1월24일, 누르하치는 전차(電車)를 투입해 다시 총공격에 나섰다. 포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야 했지만 날은 춥고 땅은 꽁꽁 얼어 있었다. 다음날에도 후금군은 희생을 무릅쓰고 돌격을 계속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누르하치는 흥분했다. 그는 병사들의 선봉에 서서 전투를 독려했다. 홍이포의 포탄은 누르하치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않았다.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누르하치는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스물 다섯부터 전장을 주유했던 누르하치였다. 그동안 누르하치는 명군보다 몇 배나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연전연승했다. 거기에 철기의 기동력이 더해지면서 명의 오합지졸들은 후금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1619년 사르후 전이 그러했고, 이후 줄곧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홍이포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는 후금군의 신속한 기동과 병력의 집중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더욱이 원숭환은 그동안 상대했던 명군 지휘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그 스스로 영원성을 점찍어 성벽을 수축하고 군량을 비축해온 ‘준비된 지휘관’이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여러 장수들과 혈서를 써서 수성(守城)을 맹세했다. 원숭환의 탁월한 영도 아래 만계(滿桂), 조대수(祖大壽) 등 부하 장수들도 선방했다. 연이은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자 누르하치는 병력을 거둬 심양으로 철수 길에 올랐다. 청실록에서는 유격(遊擊) 2명, 비어(備禦) 2명이 전사하고 500명의 병사들이 죽었다고 적었다. 영원성의 승리가 남긴 영향은 컸다. 이후 후금은 함부로 산해관을 넘보지 못했다.1641년(崇禎 14) 홍승주(洪承疇)가 송산과 행산전투에서 무너질 때까지 산해관 앞의 영원을 거쳐 금주(錦州)에 이르는 요새와 성채들은 후금의 서진(西進)을 차단했다. ●전투 부상 후유증으로 누르하치 사망 1626년 8월, 누르하치는 영원성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윽고 후금의 버일러(貝勒)들은 홍타이지(皇太極)를 새로운 한(汗)으로 옹립했다. 그는 누르하치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여덟 번째 아들이 최고 권력자로 즉위했다는 사실 자체가 명이나 조선의 눈으로 보면 이채로운 것이었다. 무조건 장자가 계승하는 관행으로 보면 말이다. 홍타이지(1592~1643)는 잘 알려진 것처럼 훗날 제위에 올라 태종(太宗)이 되고, 병자호란을 일으켜 인조에게서 치욕적인 항복을 이끌어냈던 인물이다. 그의 모친은 몽골족 여자였다. 누르하치가 1615년 황(黃), 홍(紅), 남(藍), 백(白) 등 사기(四旗)를 확대하여 팔기(八旗)를 창설했을 때, 스물 두 살의 홍타이지는 정백기(正白旗)를 관할하는 버일러가 되었다. 그는 이 무렵부터 다이샨(代善), 아민(阿敏), 망굴타이(莽古爾泰) 등 그의 형들과 더불어 ‘사대 버일러(四大貝勒)’로 불리면서 정무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홍타이지는 누르하치를 수행하여 전장을 누비면서 탁월한 전공(戰功)을 쌓았다. 특히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그가 세운 전공은 혁혁하여 누르하치는 ‘내 아들 홍타이지는 사람들이 의지하기를 인체로 치면 마치 눈과 같은 존재’라고 찬양했다. 홍타이지는 무략(武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여진족의 지도자로서는 드물게 한문에도 능통했다. 홍타이지가 개인적으로 탁월한 인물이고, 추대에 의해 한으로 즉위했지만 즉위 직후 그의 위상은 보잘것이 없었다. 일견 만장일치에 의해 옹립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즉위 직후 당장 그의 사촌형 아민이 삐딱하게 나왔다. 아민은, 홍타이지를 한으로 인정하지만 자신은 소속 기인(旗人)들을 이끌고 독립하겠다고 통보했다. 홍타이지는 긴장했다. 아민의 독립을 허락하면 나머지 각 기들도 전부 이탈하려 들 것이고, 그럴 경우 후금의 연맹 조직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즉위 직후 그는 아민을 설득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권력강화를 위한 홍타이지의 노력 아민을 겨우 설득했지만 홍타이지의 앞길은 첩첩산중이었다. 누르하치 시대 만주족은 분권(分權), 합의제(合議制)에 기초한 전통적인 부족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르하치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각 버일러들은 자신의 권력이 왜소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당연히 누르하치를 견제하려 들었다. 부족제의 전통이 강한 상황에서 홍타이지는 더욱이 서열상 사대 버일러 가운데 맨 꼴찌였다. 나머지 버일러들이 누르하치의 후계자로서 막내인 홍타이지를 옹립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의 권력을 억제하고 전통적인 부족제 본래의 통치체제로 돌아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즉위 직후 홍타이지는 백관들로부터 조하(朝賀)를 받을 때 세 명의 형들과 나란히 앉아 남면(南面)했고, 제례(祭禮)를 거행할 때도 그들과 동렬(同列)에 섰다. 그것은 사실상 공동 집정이었다. 홍타이지는 이름만 한일 뿐 실제 가지고 있는 권력 면에서는 세 명의 버일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나섰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한인(漢人)과 몽골인들에게 주목했다. 당시 후금 사회에는 많은 한인과 몽골인들이 있었다. 정복 과정에서 포로로 획득하거나 귀순해 온 사람들이었다. 누르하치는 한인들을 좋게 봐주지 않았다. 그들을 복속시키려고 위해 탄압을 일삼았다. 만주인들이 그들에게 약탈을 자행해도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다. 자연히 만주인들과 한인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한인들은 침학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물론, 만주인 관인들을 암살하거나 우물에 독을 풀기도 했다. 무리를 지어 반란을 일으켰다. 홍타이지는 한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책을 바꾸었다. 만주인 귀족이나 관원들이 한인들을 함부로 약탈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인과 만주인들을 분리시켰다. 한인들의 거주 지역에 만주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한인 관리들을 시켜 그들을 통제하도록 했다. 능력 있는 한인들을 발탁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홍타이지의 포용정책에 힘입어 많은 한인들이 관직에 진출했다. 한인 관료들의 경륜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홍타이지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1627년 무렵, 홍타이지는 산해관을 향한 서진을 잠시 멈추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힘썼다. 동시에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조선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힘없는 자의 눈물이 지닌 역설적 힘

    힘없는 자의 눈물이 지닌 역설적 힘

    맹강녀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여성이다. 만리장성 부역에 징발된 남편을 찾아 나섰으나, 공사현장에 닿았을 때 남편은 이미 죽고 없었다. 맹강녀는 성벽 앞에서 울기 시작했고, 열흘 만에 만리장성이 무너졌다. 무너진 성벽 속에서 남편의 유골이 나왔다. 중국 작가 쑤퉁(44)의 소설 ‘푸른 노예’가 ‘눈물’(문학동네)이란 제목을 달고 번역·출간됐다.‘쌀’(아고라)과 ‘나, 제왕의 생애’(아고라)에 이어 올해만 세 번째 책이다. 지난해 출간된 ‘이혼지침서’(아고라)와 올 가을에 나올 ‘무측전’(비채), 현재 번역중인 ‘양귀비의 집’ ‘흥분’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쑤퉁이 한국에 몰려오고 있다.‘눈물’은 신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다시 쓰기 위해 영국 케논게이트 출판사가 기획, 전 세계 30여개 출판사가 함께 출간하는 ‘세계신화총서’ 작업의 하나로 나왔다. 쑤퉁이 선택한 신화는 중국 4대 민간설화 중 하나인 ‘맹강녀 이야기’이고, 설화의 재해석을 위해 집어 든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눈물이다. 소설에서 눈물은 금기다. 가장 비루하고 허약한 것들의 상징이나, 황제가 법으로 금지할 만큼 전복적인 것 또한 울음이고 눈물이다. 우는 것을 금지당한 사람들은 귀로 울고, 입술로 울고, 유방으로 운다. 울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일어나 걷기를 포기한다. 주인공 비누는 머리카락으로 운다. 남편 완치량이 노역에 끌려갔을 땐 손가락과 발가락으로도 울었다. 재산도 권력도 갖지 못한 민초, 그중에서도 손가락질 당하는 여인, 그 여인의 가장 연약한 눈물이 가장 강하고 거대한 성벽, 절대왕정의 하늘을 찌를 듯한 치세를 무너뜨렸다. 눈물의 반역엔 세상의 모든 허약한 것들이 동참한다. 풍뎅이들, 흰나비떼들이 울고, 수천 마리의 청개구리들이 함께 운다. 바람과 구름은 허공에서 울부짖고, 풀과 나무는 산언덕에서 흐느낀다. 약한 것들의 연대는 강한 것들의 강고함을 허문다.“가난하고 힘든 백성들은 눈물을 갖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소설은 비통하고 슬픈 이야기라기보다는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이야기”라고 쑤퉁은 썼다. 쑤퉁의 알레고리는 눈물을 넘어 확장된다. 전쟁으로 말이 씨가 마르고 사냥이 금지되자, 귀족들은 말을 대신할 말인간, 사냥감을 대신할 사슴인간, 멧돼지인간을 길들이고, 전국 각지에서 말 노릇, 사슴·멧돼지 노릇을 하러 사람들이 몰려든다. 고위관리에게 끌려간 비누는 ‘눈물탕약’을 제조해 바친다. 권력질서가 창조한 비통한 삶의 양태가 극악하다. 전 2권, 각권 95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애인대행’ 사이트 33% 성인 인증없이 접속 가능…청소년 성매매 무방비 노출

    ‘애인대행’ 사이트 33% 성인 인증없이 접속 가능…청소년 성매매 무방비 노출

    ‘강남 지금 만나요.’‘2:1 대행이오∼’‘경제적으로 큰 도움 주실 분’‘페이(pay) 50(만원) 키 170 이상 S라인 여자분만’…. 이른바 애인을 구해 준다는 ‘애인 대행’ 사이트에 등장하는 성매매 유혹 문구들이다. 애인 대행 사이트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어 청소년들의 성매매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앞으로 이런 사이트에 청소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최근 대구YWCA에 의뢰해 69개 애인 대행 사이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를 22일 발표하고, 성매매 등 불법·불건전 만남을 조장하는 사이트들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모니터링 결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속이 가능한 69개 애인 대행 사이트 가운데 33.3%인 23곳이 청소년 가입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의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진 P사이트는 로그인 후 2시간 동안 48건의 만남 쪽지·문자가 도착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25건)는 성매매를 요구했으며, 건전한 만남을 요구하는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김성벽 매체환경팀장은 “기타로 분류된 19건의 경우 결국에는 성매매 요구로 이어져 이를 포함하면 92%가 성매매와 관련돼 있다.”면서 “애인 대행 사이트들이 일반 아르바이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이 큰 금액으로 청소년들에게 대행 알바를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한편 청소년들의 이용이 잦은 5개 포털 사이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다음과 엠파스, 네이트 등 세 곳이 ‘애인 대행’이나 ‘애인 알바’ 등을 금칙어로 지정하지 않고 성인 인증 절차 없이 해당 사이트에 쉽게 접속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원회는 69개 사이트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청소년 유해성 여부를 심의 요청할 계획이다. 여기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돼 고시되면 해당 사이트는 청소년 제한 접근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처벌받는다. 위원회는 또 포털 사이트에 대해 청소년에게 유해한 직업 알선 및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대해 금칙어 적용하고 성인 인증 시스템을 갖출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유해 온라인 슈팅게임 청소년들 무방비 노출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온라인 슈팅게임이 청소년 보호의 사각 지대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10일 학부모정보감시단에 의뢰해 가장 인기 있는 13개 게임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슈팅 게임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13개 가운데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은 서든어택과 워록, 카운터스트라이크, 크로스파이어, 테이크다운 등 5개였다. 특히 워록과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게임물 내용 등급 표시가 아예 없었다. 게임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때 이용등급을 알리지 않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 5개는 모두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때 이용등급을 공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서든어택과 카운트스트라이크, 테이크다운 등 3개는 게임에 접속하거나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때 나이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특히 이 게임들의 잔인한 장면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손수제작물(UCC)을 통해 마구 퍼지면서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김성벽 팀장은 “게임을 운영하면서 반드시 성인 인증을 받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해당 사업자에게 권고하고, 지속적으로 시정조치를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男 프로농구 심판진 ‘금녀의 벽’ 무너진다

    ‘금녀(禁女)의 벽이 무너진다.’ 한국프로농구(KBL) 사상 첫 여성 심판이 탄생하게 됐다.1997년 남자 프로농구가 출범한 뒤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여성 포청천’이 코트를 누빈 경우는 없었다. 성벽을 뛰어넘을 주인공은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휘슬을 불었던 박윤선(35) 심판. 그는 07∼08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KBL 심판 공채에 도전, 최종 명단 5명에 포함됐다. 박 심판은 한 달 남짓 남자 지원자들과 부대끼며 실기 및 체력 테스트, 필기시험 등을 치른 결과 상위권 성적을 거뒀다. 그는 건강 검진 등이 남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KBL 여성 심판 1호로 이름을 올린다. 신현수 KBL 심판위원장은 “성별을 떠나 성적을 최우선으로 보고 결정했다.”면서 “박 심판이 체력과 판정 능력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전했다. 농구의 본고장 미프로농구(NBA)에서는 97∼98시즌 미국 남성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여성 심판 2명을 뽑았고, 현재 바이올렛 팔머 1명만이 활약하고 있다. 국내 남자 종목(남녀 통합 운영되는 배구 제외)에서 여성 심판이 등장하는 것은 프로축구 임은주 심판에 이어 두 번째. 덕성여고와 상업은행에서 포워드로 활약한 박 심판은 1993년 현역을 떠난 뒤 2002년 WKBL 심판으로 코트에 복귀했다. 올 겨울리그까지 모두 84경기에서 뛰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평소 마음에 뒀던 남자 농구 심판의 공채를 앞두고 매일 12㎞ 이상 달리기와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구슬땀을 흘렸다. 박 심판은 “코트 위에서는 남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심판이냐가 중요하다.”며 각오를 다졌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Let’s Go]‘또 다른 매력’ 하와이 크루즈

    [Let’s Go]‘또 다른 매력’ 하와이 크루즈

    와이키키 없는 하와이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하와이에서 와이키키 해변을 지우면, 그 뒤에 가려졌던 또 다른 하와이를 만나게 된다. 화산이 만들어 놓은 검은 아름다움, 원초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매력적인 세계다. 하와이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십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크루즈 여행이다. 다소 생소한 여행 장르이긴 하지만 여러가지 번거로움이 뒤따르는 패키지 프로그램에 비해 한결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7박 8일동안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호를 타고 하와이의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오하우 호놀룰루 항에서 마우이와 하와이, 그리고 카우아이를 잇는 장장 1500㎞의 여정이다. 글 하와이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첫째날. 저녁 8시 출항 진주만 등 호놀룰루 시내 유적지를 둘러본 다음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Pride Of America)호에 올랐다. 오하우를 출발해 하와이(흔히 빅 아일랜드란 애칭으로 불린다)와 마우이, 그리고 카우아이 등 4개 섬을 8자 형태로 돌아보는 코스다. 먹구름에 파묻힌 호놀룰루항을 빠져 나온 배가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검은 파도가 성벽처럼 단단한 배 옆면에 부딪히며 비췻빛 포말로 스러져 간다. 칼날처럼 휘어진 초승달과 유람선이 내뿜는 검은 연기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이 ‘Starry Starry night’를 만들어 낸다.‘타이타닉’을 들먹이지 않아도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다. 전전반측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둘째날. 오전 8시 빅 아일랜드 힐로 입항 →오후 6시 출항 하와이는 호놀룰루가 있는 오하우 등 8개의 주요 섬과 1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면적이 가장 큰 곳은 빅 아일랜드. 제주도의 8배에 달한다. 밤을 도와 달린 배가 빅 아일랜드의 힐로에 닻을 내렸다. 진한 청색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바다 너머로 뭉게구름과 야자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나니 마우 가든, 아카카 폭포 등 상하의 나라에 온 것을 실감케 하는 풍경을 지나 화산(Volcano)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화산지역이다.27개에 달하는 분화구 중 가장 큰 것은 지름 4㎞의 킬라우에아 분화구. 거대한 운석에 맞은 듯 움푹 패어있다.‘펠레(화산의 여신)의 궁전’이라 불리는 분화구 주변에 흘러 내린 노란색 유황은 마치 옐로 카드처럼 언제 있을지 모를 마그마의 분출을 경고하는 듯하다. 분화구 주변 길을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흰 연기가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연기 아래로는 필경 주황색 용암이 들끓고 있을 터. 그 척박한 땅에서도 먹을 게 있을까. 공작새처럼 긴 꼬리를 가진 하얀 열대조(Tropic Bird)가 먹이를 찾아 비행하고 있었다. 분화구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용암이 바다를 메워 거대한 반도를 만들어 놓은 ‘카우 사막’과 만난다. 검은 아스콘을 물에 반죽해놓은 듯,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손을 대보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짝 태운 달고나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다. 셋째날. 오전 6시 마우이 카훌루이 입항 하와이 크루즈는 아침에 기항을 하고 저녁에 출항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낮동안은 섬을 돌며 관광과 다양한 레포츠를 즐기고 밤에 항해를 하는 것. 섬에 상륙하지 않고 선내에서 하루를 보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수영장과 자쿠지 탕에 몸을 담근 채 열대의 태양을 만끽할 수도 있고, 선내 어디에선가 항상 열리고 있는 각종 이벤트에 참가할 수도 있다. 선탠용 의자에 몸을 파묻고 독서를 즐기는 승객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여유롭다. 열대과일 음료 하나쯤 옆에 있다면 제대로 된 그림. 넷째날. 오전 9시 할레아칼라 화산행, 오후 7시 출항 마우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버스를 타고 이 섬의 자랑 할레아칼라 화산에 올랐다. 높이 3055m. 백두산과 서울의 남산을 합쳐놓은 높이쯤 된다. 둘레 33.5㎞, 지름 14㎞로 세계 최대 분화구다. 산정으로 향할수록 비릿한 담뱃잎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집들이 지붕에 굴뚝을 이고 있다. 고지대여서 밤은 물론 낮에도 제법 춥기 때문에 집집마다 벽난로를 설치해놨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머리위에 있던 구름이 어느새 버스를 두껍게 휘감았다.10여분쯤 달렸을까. 구름 뒤에서 짙푸른 하늘이 뛰쳐 나왔다. 비행기가 구름대를 뚫고 최고도로 상승했을 때의 풍경 그대로다. 차에서 내려 걷다 보니 구름위에서 산책을 하는 듯하다. 다운 힐(자전거를 타고 산자락을 내려오는 액티비티)을 즐기는 사람들이 은검초(이 지역에만 서식하는 식물로 사람의 손이 닿으면 죽어버린다)가 핀 검붉은 화산지대를 새처럼 내려간다.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듯하다. 하와이가 내뿜는 매력의 절반 이상은 화산의 몫. 외딴 행성에 온 듯한 분위기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천문관측소를 지나 할레아칼라 분화구에서 절정에 달했다. 크루즈 여행의 백미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킬라우에아 화산이 거칠고 남성적이라면 할레아칼라 화산은 우아하고 현란한 여성미를 뽐낸다. 미려한 선을 그리며 봉긋 솟아 오른 분화구내 산봉우리며,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리는 곱디고운 토양 등이 여간 아름답지 않다. 표면이 달과 흡사해 우주조종사들의 훈련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실핏줄처럼 가는 탐방로를 따라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보다도 작아 보인다. 분화구에서 트레킹을 하려면 사전에 국립공원측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이 멋진 곳을 체험하지 못하고 30분 정도밖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섯째날. 오전 7시 빅 아일랜드 코나 입항. 오후 6시 출항 프리스타일 크루즈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기항지마다 색다른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들른 빅 아일랜드의 코나는 관광보다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바다거북과 함께 하는 90달러 대의 스노클링에서 400달러 대의 헬리콥터 투어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영어에 능통하다면 현지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액티비티도 고려할 만하다. 가격이 선내 프로그램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전문 기술이 필요한 윈드 서핑 등은 경험이 없으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재미만점의 액티비티는 일찍 판매가 끝나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둬야 한다. 여섯째날. 오전 8시 카우아이 나우윌리윌리 입항 유람선이 닿으면 주민수가 5%가량 상승할 만큼 사람이 적은 카우아이는 섬 전체가 울창한 수목에 뒤덮여 정원의 섬이라 불린다. 야자수 등을 제외한 섬 전체 나무의 98%가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들이다. 이곳의 신비로운 풍경에 매료된 영화제작자들은 섬 곳곳에서 ‘쥐라기 공원’ 등 수많은 영화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와이메아 협곡을 찾았다.‘섬 속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곳. 지각변동과 풍화작용이 빚어낸 대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빈슨가(家)에서 소유한 사유지라는 것이 이채롭다.1864년 2만 2000달러에 하와이 왕가로부터 사들였다고 전해진다.1000달러에 매입한 니하우섬 또한 로빈슨가 소유다. 순수 혈통의 하와이 원주민들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230명가량의 섬 주민들이 물질문명과 담을 쌓은 채, 자신들만의 전통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곱째날. 오후 2시 출항 이제껏 밤에만 움직였던 배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머문 시간에 항해를 시작했다. 빛이 해안절벽을 비춰 만들어낸 예술작품, 나팔리 해변을 보기 위해서였다.27㎞ 구간에 펼쳐진 나팔리 해변은 땅거미가 드리울 때라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슈퍼스타는 항상 공연 끝자락에 등장하는 법. 카우아이는 여행객들을 위한 마지막 비경을 안배해 두고 있었다.2시간 남짓한 항해 끝에 나팔리 해안절벽들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칼날처럼 얇고 촘촘한 산자락에 투영된 빛이 극명한 음영의 대비를 이루며 탄성을 자아냈다. 북극해를 연상케 하는 거친 파도위로 하얀 실같은 여러 갈래의 폭포와 동굴, 해안절벽 등이 숨막히게 이어졌다.1시간 남짓 계속된 빛과 해안절벽의 현란한 쇼가 끝나면서 크루즈 여행도 막을 내렸다. 글 하와이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하와이 크루즈 여행 팁 ▲하와이는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한다. 빗물이 지하 암반 등을 통과하면서 정화되는 기간은 무려 25년. 현재 마시는 식수가 25년 전에 내린 빗물인 셈이다. ▲선내 식당 등의 에어컨이 다소 차게 느껴질 만큼 세다. 긴소매 옷이나 방풍 재킷 등을 준비하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인다. ▲선내 대부분의 시설들은 기본적으로 무료다. 단, 주류나 별도의 음료를 주문하려면 돈을 내야한다.‘Lasy J 스테이크 하우스’ 등 식당 세 곳도 유료. ▲매일 출입문에 게시되는 승선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지켜야 한다.‘코리안 타임’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항상 수경을 지참할 것. 별도의 장비없이도 열대어와 바다거북 등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보증금 명목으로 본인 신용카드에서 300달러가량 선 공제하는 경우도 있다. 선내 사용 금액이 이 액수를 넘을 경우에만 청구된다. ▲승객 한명 당 하루 10달러의 팁이 과금된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별도의 팁은 필요치 않다. ▲선내 TV 20번 채널→Ships News Flash→Onboard Account View를 차례로 누르면 자신이 쓴 액수를 확인할 수 있다. 하선 전에 사용 내역을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차를 렌트해 둘러볼 만한 곳이 많다. 국내 운전면허증도 통용되나, 가급적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가는 것이 좋다. ▲예카투어 등 ‘대한항공 하와이 연합사’들은 ‘하와이 4개 섬 크루즈 9일’상품을 판매하고 있다.339만∼579만원. 액티비티 참가비용은 본인부담. 매주 토요일 출발.www.yecatour.com / www.flycruise.kr,(02)516-2277.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호는 2005년 6월에 취항한 8만 1000t급 호화 유람선. 객실 1073개에 2144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 길이는 280.59m. 고급 호텔에 견줄 만한 일품요리는 물론, 수영장 등 선내 시설물에서 벌어지는 각종 게임과 이벤트, 파티 등을 즐길 수 있는 ‘바다 위 복합 문화공간’이다.
  •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고흥 천등산

    [산이 좋아 산으로] 전남 고흥 천등산

    전라남도 동남단에 위치한 한반도 속 또 하나의 반도 고흥.172개의 작은 부속섬을 가진 고흥에서 세 번째로 높은 천등산(天燈山·553.5m)은 남쪽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 바위산이다.‘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하다.’ 혹은 ‘스님들이 정상에 자주 올라 밤이면 수많은 등불이 켜져 있었다.’ 하여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등산 정상에는 마복산과 연락을 주고받던 봉수대와 가뭄 때 기우제를 지냈다는 제단이 있다. 정상 아래 금탑사가 내려다보이는 너럭바위는 먼 옛날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신선대(선인대)라 불린다.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모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는 의미일 것이다. 천등산과 임도로 갈린 남쪽의 딸각산(429m)은 바위를 밟고 오를 때마다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월각산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천등산과 딸각산은 겨우 2㎞ 거리, 천등산 산행 코스를 잡을 때 딸각산과 이어보는 것도 좋다. 온통 바위더미로 이뤄진 딸각산에 서면 한적한 풍남항과 성벽처럼 견고한 천등산의 바위벽들이 잘 보인다. 두 산을 잇는 대표적인 코스는 송정마을∼딸각산∼천등산∼임도∼천등마을로 3시간쯤 걸린다. 두 산 사이 임도가 있어 차량 접근은 쉽지만 산행의 재미는 그만큼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임도를 거치지 않으려면 사동마을∼천등산∼헬기장∼딸각산∼송정마을 코스를 택하면 된다. 자가용을 가지고 갈 경우 원점회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사동마을에서 출발해 천등산과 딸각산을 거쳐 다시 사동마을로 내려오는 코스가 적당하다. 대신 딸각산 갈림길에서 사동마을까지 약 4.5㎞의 임도를 지루하게 내려서야 한다. ‘뱀처럼 생긴 계곡’ 사동마을의 사동저수지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저수지를 지나면 바로 천등산 산행 안내판이 나오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의 좁은 흙길은 안지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 오른쪽 시멘트 도로는 정상 턱밑까지 이어지는 임도다. 어떻게든 정상에만 가겠다는 목적이 아니라면 임도로 갈 이유는 없다. 사실 퍽퍽하게 임도를 따라 걷는 일도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등 뒤로 따라오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걷노라면 산행 초입부터 높고 우거진 수풀이 앞을 가로막지만, 그쯤은 기꺼이 즐거운 푸념으로 넘겨야 한다. 인적 드문 천등산, 자연이 주는 천혜의 선물이니 말이다.30분 남짓 오르면 안지재에 닿고 이제 길은 나긋해진다. 안지재 지나 얼마 안 가 숨이 멎을 거처럼 빼곡한 숲에서 모처럼 시야가 트이고 뒤돌아보면 사동저수지 곁으로 벼락산(343.8m)이 보인다. 덩굴 무성한 암봉을 왼쪽으로 돌아서면 펼쳐지는 본격적인 바윗길. 정상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에 올라서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선계가 따로 없다. 특히 정상에서 5분 거리 신선대에 서면 동쪽 비자나무숲 아래 금탑사와 남쪽으로 이어지는 안장바위능선이 장관이다. 딸각산으로 선을 잇기 위해서는 철쭉공원을 지나 내려선 임도를 20여분 따라 걷는 방법과 헬기장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양천잇재 임도에서 곧바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임도에서 겨우 15분, 딸각딸각 바위를 딛고 다다른 딸각산 정상은 자칫 다녀가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만큼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사방으로 펼쳐진 신록의 세상, 삐죽삐죽 솟은 바위와 남쪽으로 활짝 열린 남해바다 정경에 한여름 더위도, 일상의 시름도 싹 잊게 된다. 글 정수정 사진 진우석(월간 MOUNTAIN 기자) # 가볼 만한 곳 나로도 우주센터를 건립 중인 고흥에서는 7월28일∼8월6일 10일 동안 ‘2007 고흥우주항공체험전’을 연다. 블랙홀 체험, 우주인 훈련코스, 남극체험 등 우주항공 관련 체험행사와 자연사박물관 전시, 우주곤충 전시 등 다양한 전시가 마련된다. 우주캠프, 물로켓 발사대회 등 청소년 관련 행사가 많으니 자녀들과 함께 산행 후 들러보면 제격이다(www.spacegoheung.co.kr). 고흥에는 19개의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적당하다.
  •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4)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4)

    한국불교연합회 소속 대학생 50여명이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고구려의 옛 땅인 중국 동북지역 탐방을 떠났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의 인도로 ‘코리아의 고구려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이번 탐방길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편집자주- 6월 28일 탐방 4일째 아침.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계속 이어졌다. 비옷과 우산으로 무장하고 ‘오녀산성’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오녀산성’이라는 이름은 전설 속의 용감한 다섯 자매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던 흑룡이 산에 살았었는데 이들 다섯 자매가 맞서 싸워 용을 죽이고 자신들도 모두 죽었다는 전설이다. 현재 오녀산성은 마르지 않는 우물인 ‘천지’와 일부 담벼락만이 남아있다. 오녀산성에서 4시간 거리를 이동해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석회암 동굴 ‘본계수동’에 도착했다. 어두운 동굴 안을 보기 위해서는 보트를 타야했다. 본계수동을 둘러보고 저녁 7시가 넘어서 요녕성 내 최대의 도시 심양에 도착했다. 이곳이 흔히 ‘만주벌판’이라고 말하는 지역이다. 비 오는 심양의 거리에서 만주벌판을 그려본다. 평양관에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우리 일행은 평양 아가씨들의 공연에 더 관심이 쏠렸다. 평양관에서 공연을 하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평양 친구들을 보면서 가슴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6월 29일. 탐방 5일째 아침이 밝았다. 새벽녘에 아침을 먹고 고구려 역사상 가장 아름답다는 ‘백암산성’을 향했다. 백암산성은 뒤쪽으로 ‘태자하’라는 강이 흐르고 앞쪽은 가파른 경사 위에 자리잡고 있어 자연 성벽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웠던 산성은 성벽을 쌓은 돌을 가져다가 인근 가정집 보수에 쓸 만큼 방치되어 있어 안타까웠다.백암산성에서 내려와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처음 본 ‘녹두 아이스크림’이다. 예정대로라면 바로 ‘비사성’으로 달려가야 했다. 중국에서의 ‘옆집거리’ 4시간 정도를 갔어야 했지만 일정이 너무 늦어져 다음날로 일정을 연기했다. (계속) 글=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김옥미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1)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2)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3)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2)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2)

    한국불교연합회 소속 대학생 50여명이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고구려의 옛 땅인 중국 동북지역 탐방을 떠났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의 인도로 ‘코리아의 고구려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이번 탐방길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편집자주- 아침 일찍 압록강에 도착했다. 지도에서만 보았던 압록강에 와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북한의 아이들이 중국땅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똑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북한이 중국과는 그나마 교류가 있다는 것이 한민족인 우리들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강 너머로 북한이 보인다.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과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뻗어져나오는 795km의 길이를 가진 강으로 결코 큰강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자 교류의 요지로 선사시대때부터 고구려 6대 태조왕때까지 이 압록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구려 시대에도 압록강 하구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드라마 ‘주몽’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소서노도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선사시대, 고조선, 고구려 모두 압록강지역은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압록강변에서 북한의 담배와 우표를 볼수 있었다. 조선우표에 김정일이 나와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옥수수를 신기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이 창고는 고구려 시대 부경이라고 불리는 창고와 같다. 저렇게 보관하며 삶아 먹기도 하고 떡을 해먹기도 한단다. 고구려 시대에도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고구려 선조들의 지혜가 현재 중국인들의 삶속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 유적 ‘박작성’은 일부 남아있는 성벽만 현재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이 명나라때 쌓은 ‘호산장성’을 박작성 위에 복원하고 박작성의 흔적을 호산장성의 것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호산장성 박물관에 박작성의 우물을 발굴할 당시 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에는 호산장성의 흔적으로 설명이 되어 박작성의 역사를 호산장성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었다. 박작성에서 역사 왜곡의 현장을 확인한 우리 일행은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볼 수 있는 5호묘로 향했다. 5호묘는 입구까지만 촬영이 가능하고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다. 기록을 담아갈 수 없게 하는 것이 야속했다. 5호묘에 들어가니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 사방신(四方神)과 해신, 달신, 연꽃, 화염무늬 등 당시 샤머니즘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을 개방한 뒤로 점점 그림들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때도 많이 희미해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4호묘와 5호묘는 내부가 유사하여 4호묘는 개방 직후 곧 문을 닫았고 5호묘만 관광지로 개방하고 있다. 화강암에 안료를 가지고 그렸다는 신비함과 이곳을 볼 수 있다는 감동, 무덤이라는 두려움 등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연대기대로라면 아버지의 무덤인 광개통대왕릉에 먼저 가야했겠지만 시간상 아들인 장수왕의 묘로 추정되는 장군총을 먼저 갔다. 사방에 각각 3개씩 세워진 정호석. 총 12개의 정호석이 토목공학적인 균형을 이루어 왔는데 뒤쪽만 하나가 사라져 뒤가 점점 내려앉고 있다고 한다. 장군총을 둘러본 후 갑갑한 방탄유리 안에 갇힌 광개토대왕비를 찾았다. 광개토대왕비 또한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촬영이 불가능했다. 문 밖에서 찍을 수 밖에 없었다. 곧이어 광개토대왕릉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 광개토대왕릉 위가 명당이라는 얘기를 나눴다. 물론 사실 확인은 해보지 않았다. 저녁 무렵, 부지런히 ‘환도산성’을 향했다. 환도산성은 산의 능선과 절벽 등을 그대로 활용한 고구려의 전형적인 고로봉식 산성으로서 평양의 ‘대성산성’, 단동 근처 봉성의 ‘봉황산성’과 함께 가장 큰 성이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 근처에 두어 대피성 겸 장기농성전을 위한 수비성으로 활용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환도산성을 나오는길에 국내성터를 지났다. 국내성터는 도로가라 내려서 볼 여건이 안됐다. 사진과 같이 창문너머로만 보며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압록강변을 다시 지났다. 압록강의 야경과 함께 탐방 두 번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 (계속)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1)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김옥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백제 행정조직 5부명 찍힌 기와 발견

    전북 임실 성미산성에서 백제의 행정조직인 5부(五部)의 이름이 찍힌 기와가 출토됐다. 성미산성은 임실군 관촌면 주천리 산 23번지에 있는 둘레 522m의 테뫼식 고대성곽이다. 전북문화재연구원은 성미산성의 건물터와 빗물을 한데 모아두는 집수시설등을 발굴조사했다고 4일 밝혔다. 그 결과 성벽은 내벽과 외벽 모두 판 모양으로 쪼갠 돌을 쌓아 덧댄 협축식(夾築式)으로, 전남 동부지역에서 확인된 백제산성과 유사했다. 글자가 찍힌 기와인 백제시대 인장와(印章瓦)는 성곽 내부 남쪽에서 다량으로 나왔다.‘上’·‘中’·‘下’·‘前’말고도 ‘五’처럼 백제시대 수도나 지방 행정 조직인 5부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큰 글자가 확인됐다. 이같은 5부명 인장와는 부여를 제외하고는 청주 부모산성에서 ‘前’, 금산 백령산성에서 ‘上部’, 정읍 고부 구읍성에서 ‘上部上巷’이라고 찍힌 것이 출토된 적이 있다. 한편 성벽 상층 퇴적토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 1점이 출토됐다. 높이 9.8㎝로 조사단은 8세기 무렵 몸에 지니고 다니는 호신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울 4色 탐험-역사의 숨결] (10) 북악산 탐방로

    [서울 4色 탐험-역사의 숨결] (10) 북악산 탐방로

    북악산 정상 백악마루(해발 342m)에 서면 서울의 동서남북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복궁에서 세종로가 뻗어나가고, 서울 성곽이 북악산을 휘감아 낙산까지 이어진다. 구기동과 성북동을 에워싼 북한산의 보현봉과 문수봉, 인왕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39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북악산 서울성곽 탐방로를 12일 찾았다.1968년 김신조 등 북한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한 ‘1·21사태’ 이후 폐쇄됐다가 지난 4월 다시 문을 열었다. 아직도 북악산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인터넷(50명)이나 현장(100명)에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면 번호표를 나눠준다. 번호표를 목에 걸고 성곽해설자를 따라 단체로 이동해야 한다. 출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이어진다. 홍련사에서 출발해 숙정문∼촛대바위∼곡장∼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쉼터로 내려오는 4.3㎞ 코스를 탔다. 홍련사에서 나무계단을 밟고 10분쯤 올라가면 숙정문이 나타난다. 말바위쉼터에서 출발한 일행과 만나는 곳이다. 숙정문은 서울 도성의 북쪽 대문. 사대문의 격식을 갖추기 위해 만든 터라 본래 일반인의 출입은 없었다. 게다가 풍수상 음기가 강한 곳이라 “숙정문을 열어놓으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해진다.”고 전해져 문 단속을 철저히 했다고 한다. 촛대를 닮았다는 ‘촛대바위’ 부근에는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수령이 600년이 넘는 노송도 있다. 궁궐에서 소나무를 특별히 관리한 덕이다. 경복궁쪽으로 누운 아름드리 소나무가 조선의 역사를 들려주는 듯하다. 여기까지가 지난해 4월에 1차로 개방된 1.1km 구간이다. 소나무 숲은 곡장(曲墻·일명 치성·雉城)까지 이어진다. 이곳은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바깥쪽으로 둥그렇게 노출시켜 쌓았다. 아군이 몸을 가리면서 적을 총이나 화포로 공격하도록 성곽 위에는 담장을 설치했다. 담장에는 총 쏘는 구멍이 3개 있다. 가운데는 가까운 곳을 쏘는 근총안을, 양옆에는 먼 데를 쏘는 원총안을 배치했다. 성벽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갔다. 시대별로 성벽을 보수한 공법이 다랐기 때문이다. 태조 5년(1396년)에는 큰 메주만 한 크기의 자연석으로 성벽을 다듬었다. 세종 4년(1422년)에는 장방형 돌을 쌓고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넣었다. 숙종 30년(1704년)에는 2자×2자의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해서 튼튼하게 쌓았다. 이 석재는 장정 4명이 들어야 할 만큼 무거웠다. 재미있는 것은 성벽에 새겨진 글씨다. 공사 일자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을 표시한 일종의 ‘공사 실명제’이다. 성곽해설사 유병철씨는 “조선 팔도에서 인력을 동원해 성곽을 쌓았기에 보수가 필요하면 이름을 보고 공사 책임자를 불러 들였다.”고 설명했다. 청운대에서 백악마루로 이어지는 곳에 ‘1·21사태 소나무’가 서 있다.39년 전 북한특수부대를 소탕할 때 총탄에 맞아 생긴 탄흔이 15군데나 나 있는 수령 200년 된 소나무다. 청와대에서 몇 백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백악마루에서 창의문까지는 콘크리트 계단 876개(1.6㎞)가 이어진다. 경계 근무를 위해 군인들이 다져놓은 계단이다. 때문에 흙을 밟는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군사시설물 보호구역이라 사진촬영도 맘대로 못한다. 정해진 곳에서만 가능하다. 인터넷 예매는 http:///125.131.116.61에서 받는다. 월요일은 쉰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목포서 뱃길로 233㎞…서해 끝 ‘가거도’

    목포서 뱃길로 233㎞…서해 끝 ‘가거도’

    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 했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떠 있는 섬, 가거도(可居島). 일제강점기때는 ‘소흑산도’라 불렸다. 지금은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라는 어엿한 행정구역명을 갖고 있다. # 시원한 곳 따뜻한 곳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 뱃길로는 233㎞ 떨어져 있는 절해의 고도. 쾌속선으로 내쳐 달려도 4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가거도항 선착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성벽처럼 둘러쳐진 방파제다. 국내 항만공사 사상 최장기간인 28년 만에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공사비만도 1325억원. 쌓으면 부숴버리는 파도,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세운 대역사의 현장이다. 가거도에는 여름에 시원한 마을과 겨울이 따뜻한 마을이 있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민가는 물론, 학교와 상점, 숙박업소 등이 가거 1구에 밀집돼 있다. 망추개와 콩돌해변, 달뜬목 등 둘러볼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름답기로는 역시 여름이 시원한 가거 2,3구가 한 수 위. 국내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성견여를 향해 헤엄쳐 가는 악어 모습의 가거 2구 풍경은 단연 압권이다. 분지형태의 섬등반도위로 황로, 백로가 염소들과 희롱하고, 섬 중턱의 폐교너머로 솟은 기암절벽에는 파도가 쉼없이 제 몸을 부순다. 찬탄을 금치 못할 절경이다. # 가거도 최고의 전망대 하늘별장 일주 도로는 없지만, 섬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등산로는 잘 개발돼 있다. 특히 2구에서 등대로 향하는 트레킹 코스는 반드시 가봐야 할 곳. 물새들의 천국 구굴도와 성건여 등 가거도의 비경들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1구쪽에서는 망추개와 달뜬목 등을 연결하는 등산로를 개발하고 있다. 섬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독실산(639m)에 올라야 한다. 산세가 우람해 오를수록 웅장한 느낌을 준다. 독실산 정상의 ‘하늘 별장’은 경찰 레이더 기지의 별칭이다.2005년 9월부터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맑은 날엔 제주도까지 관측되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 # 사람만 사나? 물고기도 산다 사람이 살 만하다면 물고기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터. 가거도에서 정서쪽으로 43㎞ 떨어진 ‘가거초’일대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을 이룬다. 물속에 숨겨져 모습은 드러나지 않지만, 가거도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맘때면 농어·돌돔, 여름과 가을엔 부시리, 겨울에는 감성돔 등 고급 어종들이 찾아든다.‘열기’라고도 불리는 불볼락은 무시로 잡힌다. 그래서 해마다 1만여명에 달하는 낚시꾼들이 가거도를 찾는다.1만 5000원에 낚싯대를 대여해 주는 곳도 생겨났다. # 선상관광도 해볼만 홍도 못지않다는 가거도 해안풍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시 배를 타야한다. 가거항 선착장에서 회룡산과 장군바위 사이를 빠져 나가면 곧바로 기암괴석들이 줄을 선다. 군대 연병장에서 사열이라도 받는 듯하다. 녹섬, 돛단바위, 섬등반도, 납덕여, 망부석(모녀바위), 검은여(손가락바위), 개린여, 칼바위, 빈주암, 남문 등 작은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선이나 낚싯배를 빌려타는데 1인당 2만∼3만원 정도 받는다.6∼10명 내외의 인원이모이면 출항한다. 글 사진 가거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만재도&가거도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 가는 길 목포항 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아침 8시에 출항한다. 가거도까지 어른 4만 6550원, 어린이 2만 3300원. 만재도는 어른 4만 3050원, 어린이 2만 1550원. 여름철 성수기(7월 15일 예정)에는 10%의 특송료가 부과된다. 목포로 올 때는 여객터미널 이용료 1500원이 면제. 동양고속 www.ihongdo.co.kr(061)243-2111∼4. 남해고속 namhaegosok.co.kr(061)244-9915∼6. 만재도까지 곧장 가는 관광선도 있다. 최규환 만재도 이장(011-1774-8654)이 연결해 준다. 목포와 진도에서 각각 출발한다. # 잠잘 곳 가거도는 가거 1구에 숙박업소들이 몰려 있다. 방당 민박 2만 5000원, 여관 3만원선. 여름철 성수기엔 가격이 다소 오른다. 만재도 ‘만재콘도’는 총 4실 규모.4인기준 8만원.1인추가 1만원. 단체가 묵을 수 있는 노인회관도 개방할 예정. 가격미정. 낚시인들을 상대로 5가구에서 민박을 운영한다. # 먹거리 대부분 식당에서 회와 해산물을 주로 판다. 모두 자연산이라는 것이 강점.㎏당 1만∼2만원선. 가거항입구 둥구횟집(010-2929-4989) 등이 유명하다. 목포시 옥암동 ‘인동주마을’은 ‘인동주’와 홍어삼합, 꽃게장 백반으로 유명한 곳.4명이 먹을 수 있는 한상차림에 3만원. 홍어삼합은 무료로 추가.(061)284-4068. # 알아둘 만한 전화번호 신안군청(tour.sinan.go.kr) 문화관광과 (061)240-8360∼5. 흑산면사무소 가거도출장소 246-5400. 흑산면사무소 275-9300. 남성낚시 246-4070,(011)9415-0117. 경진낚시 246-4534,(010)4662-4534.
  • [산이 좋아 산으로] 강원 춘천 삼악산

    [산이 좋아 산으로] 강원 춘천 삼악산

    경춘선을 타고 가다 중간 어디쯤에서 내린다 해도 산과 강을 마주하게 된다. 청평역에서는 동쪽의 호명산, 북쪽의 깃대봉까지 걸어 갈 수 있고, 가평역 가까운 곳엔 대금산과 수리봉이 있다. 강촌역에선 구곡폭포로 유명한 봉화산과 삼악산이 지척이다. 삼악산(三岳山·654m)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물이 소양강, 의암호를 지나 의암댐 수문을 막 벗어날 즈음 서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산이다. 육산의 몸뚱이에 세 개의 큰 돌산을 이고 있는 듯 특이한 형상으로, 용화봉(645m)·청운봉(546m)·등선봉(632m)의 세 봉우리가 ‘삼악산’이라는 이름을 낳았다. 웅장하진 않으나 기이한 모양의 바위가 많고 간간이 암릉길이 이어지는데다 등선계곡을 따라 크고 작은 5개의 폭포가 숨어 있어 아기자기한 산행에 제격이다. 산의 북쪽에는 지금의 현대적인 도로가 생기기 전 서울과 춘천 사이 유일한 육로였던 석파령(席破嶺)이 있고, 청운봉 아래 삼악산 성지에는 1.5㎞가량의 성벽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삼악산 산행의 가장 큰 매력은 능선에 올라 내려다보는 의암호와 시원하게 뻗은 북한강 푸른 물줄기. 여기에 오래도록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아온 경춘가도(46번 국도)에서 곧바로 산행을 시작,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도 한 몫 거든다. 삼악산 산행 들머리는 강촌교 북단, 등선폭포 매표소, 상원사 입구 매표소 등 크게 세 군데로 나뉜다. 이 중에서 강촌교 건너 서쪽 200m 지점에서 시작되는 등선봉∼흥국사∼삼악산∼상원사 종주코스는 서둘러도 6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삼악산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선폭포 쪽에서 상원사로 넘어가거나 반대로 상원사를 들머리 삼아 등선폭포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한다. 계곡과 폭포를 지나기도 하고 잘 자란 노송과 바위를 배경삼아 의암호 조망도 할 수 있는 이 두 코스는 3∼4시간 정도 걸린다. 상원사 입구 매표소에서 삼악산장을 끼고 돌아 조금만 오르면 깎아지른 암벽과 소나무 숲 병풍을 두른 상원사. 절의 왼쪽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제법 가파른 길을 20여분 올라 깔딱고개를 넘어서면 붕어섬, 중도, 상도, 의암댐 등 춘천 호반의 탁 트인 조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녹음 짙은 산 그림자를 담고 있는 북한강 수면은 조망이 트일 때마다 빛깔을 달리하며 발목을 붙잡는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암릉구간은 와이어로 고정된 시설물과 계단 등이 잘 정비돼 있다. 두 개의 봉우리를 넘어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정상 용화봉에 서면 신연강 협곡에서부터 춘천 시내와 의암호 북단 위도를 아우르는 짜릿한 조망을 맛볼 수 있다. 흥국사에서 내려가는 길은 단풍나무 등 활엽수가 숲을 이룬 시원한 계곡이다. 암벽 사이 오랜 세월 바위를 침식시키며 깊어진 골의 물줄기를 따라 서너 개의 작은 폭포를 지나면 소박한 물보라를 피워내는 등선폭포다. 이제, 매표소와 기념품 가게,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만 빠져나오면 금세 경춘가도에 닿는다. 글 정수정 사진 오상훈(월간 MOUNTAIN 기자) ■ 가는길 상원사 매표소 바로 위 산자락에 다소곳이 자리한 삼악산장(033-243-8112)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별장으로 지어졌던 건물을 잘 꾸며 민박과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잘 끓여낸 커피와 여러 종류의 우리차(4000∼6000원)가 있으며, 오미자차(6000원)의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 민박은 2인실 5만원, 단체용 큰방은 12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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