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성벽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댄서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논쟁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발견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사태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87
  • [인사]

    ■산업통상자원부 △창조행정담당관 박덕렬△전기위원회 사무국장 김성수△대불자유무역지역관리원장 김판수△지식재산전략기획단 파견 박대규 ■여성가족부 ◇과장△청소년활동진흥 이금순△청소년활동안전 김봉호△청소년자립지원 인정숙△청소년보호환경 김성벽 ■국가보훈처 △나라사랑정책과장 나치만 ■한국마사회 △부산경남지역본부장 고중환△제주지역본부장 전성원△경마관리처장 장동호△광주지사장 정광섭△제주육성목장장 이현철△렛츠런파크 서울관람대 리노베이션 추진단장 이덕인△말산업진흥처장 문윤영△CS혁신단장 이은도△경영관리실장 최수원△인재교육원장 홍용현△회계팀장 김형권△사업전략팀장 정승기△서울지역본부장 겸 서울경마처장 최인용△정보기술처장 박찬욱△감사실장 겸 감사1부장 김진유△경마사업처장 겸 제주기획팀장 고영빈△홍보실장 겸 재활힐링승마센터장 박진국△마케팅처장 겸 발매마케팅팀장 안상식△ICT운영팀장 김종호△중랑지사장 진귀환△질병관리담당 김하기 ■뉴스1 △편집부 어문위원 주태진 ■농민신문사 △사장 임승한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천병철△양성평등센터장 이윤정 ■한화투자증권 ◇상무△인사지원담당 손중권△재경2지역사업부장 변동환
  • [인사] 산업통상자원부 외

    ■산업통상자원부 △창조행정담당관 박덕렬△전기위원회 사무국장 김성수△대불자유무역지역관리원장 김판수△지식재산전략기획단 파견 박대규 ■여성가족부 ◇ 과장급 전보 ▲ 청소년활동진흥과장 이금순 ▲ 청소년활동안전과장 김봉호 ▲ 청소년자립지원과장 인정숙 ▲ 청소년보호환경과장 김성벽 ■마사회 ▲ 부산경남지역본부장 고중환 ▲ 제주지역본부장 전성원 ▲ 경마관리처장 장동호 ▲ 광주지사장 정광섭 ▲ 제주육성목장장 이현철 ▲ 렛츠런파크 서울 관람대 리노베이션 추진단장 이덕인 ▲ 말산업진흥처장 문윤영 ▲ CS혁신단장 이은도 ▲ 경영관리실장 최수원 ▲ 인재교육원장 홍용현 ▲ 회계팀장 김형권 ▲ 사업전략팀장 정승기 ▲ 서울지역본부장 겸 서울경마처장 최인용 ▲ 정보기술처장 겸 ICT기획팀 박찬욱 ▲ 감사실장 겸 감사1부장 김진유 ▲ 경마사업처장 겸 제주기획팀장 고영빈 ▲ 홍보실장 겸 재활힐링승마센터장 박진국 ▲ 마케팅처장 겸 발매마케팅팀장 안상식 ▲ ICT운영팀장 김종호 ▲ 중랑지사장 진귀환 ▲ 질병관리담당 김하기 ■동의대 ▲인문대학부학장 윤지영 ▲법정대학부학장 차재권 ▲상경대학부학장 한기조 ▲교육대학원부원장 겸 교육연수원부원장 전윤숙 ▲행정대학원부원장 김상원 ▲경영대학원부원장 윤태환 ■한화투자증권 <전보> ◇ 임원 ▲ 인사지원담당 손중권(상무) ▲ 재경2지역사업부장 변동환(상무) ◇ 팀장 ▲ 펀드지원팀장 한석희 ▲ 고객자산운용팀장 장성호 ▲ 총무팀장 오미란 ◇ 지점장 ▲ 신갈지점장 이동준 ▲ 송파지점장 엄영훈 ■뉴스1 ▲ 편집부 어문위원 주태진 ■전북대병원 △군산전북대병원추진단 부단장 최규적 △사무국장 직무대행 김낙훈 △진료지원과장 김종우 △기획예산과장 장태규 △총무과장 허치문 △물류지원과장 김병진 △원무과장 김선익 ■동의대학교 ▲ 인문대학 부학장 윤지영 ▲ 법정대학 부학장 차재권 ▲ 상경대학 부학장 한기조 ▲ 교육대학원 부원장(겸 교육연수원 부원장) 전윤숙 ▲ 행정대학원 부원장 김상원 ▲ 경영대학원 부원장 윤태환 ■고려대 ▲ 보건대학원장 천병철 ▲ 양성평등센터장 이윤정 ■국가보훈처 ▲ 보훈선양국 나라사랑정책과장 나치만 ■한국환경산업기술원 ◇ 전보 ▲ 상임이사 환경사업본부장 김용진 ▲ 비상임이사 김태현 ▲ 비상임이사 서순복 ▲ 비상임이사 이정호
  • 치솟는 강남 재건축 분양가...’위례 지웰 푸르지오’ 돋보이다

    치솟는 강남 재건축 분양가...’위례 지웰 푸르지오’ 돋보이다

    강남3구의 재건축 아파트 분양가의 고삐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상승의 발목을 잡았던 분양가상한제(민간택지)가 사실상 폐지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국의 분양시장이 요동치면서 분양가상승에 부채질하고 있어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강남권 요지의 재건축 아파트 분양가는 3.3㎡당 평균 4000만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8월쯤 분양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진 가락시영아파트의 일반 분양가는 당초 지난 해말 3.3㎡당 2500만원으로 책정됐었다. 최근 조합 측에서 2800만원 선으로 올리는 방안을 시공사와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개포 주공2단지는 3.3㎡당 4000만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위례신도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위례신도시는 공공택지로써 분양가상한제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다. 실제, 위례신도시는 사실상 강남생활권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분양했던 아파트들의 분양가가 3.3㎡당 1700만~1900만원 선에 불과했다. 다음달에 위례신도시에 공급되는 ‘위례 지웰 푸르지오’에도 주택수요자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위례 지웰 푸르지오’의 시행은 대한민국 No.1 디벨로퍼 신영이 책임지게 되며 시공은 대우건설이 맡게 된다. 전용면적은 68㎡, 74㎡, 84㎡ 중소형으로 구성되며 총 784실(오피스텔) 대단지로 공급된다. ‘위례 지웰 푸르지오’은 위례신도시 내에서도 가장 노른자 땅이라고 불리는 업무시설 용지 26블록에 위치하고 있다. 위례 지웰 푸르지오’와 가까운 곳에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휴식 및 여가활동을 즐기기 좋고 장지천 수변공원은 1만5000여 평으로 조성 될 예정이며 인근의 창곡천 수변공원보다 그 규모가 약 1.5배 더 크고, 수량도 많은 장점이 있다. 게다가, 단지 동남쪽에는 30만평의 성남 GC가 있다. 또 생태공원이나 근린공원 휴먼링과 연계되는 ‘위례 지웰 푸르지오’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영위할수 있다. 단지 인근의 휴먼링은 남한산성을 모티브로 성벽 이미지를 형상화한 4.4㎞의 친환경 산책로다. 휴먼링은 차량이 달리는 도로와 분리되어 입주민들이 안전하게 산책∙조깅∙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교통여건도 양호하다. 차량 이용 시 동부 간선도로나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 용인~서울간 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등을 통해 서울은 물론 전국 어디든지 이동하기 수월하다. 대중교통여건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에서 지하철 8호선 복정역과 우남역을 잇는 위례선(2021년 개통 예정)도 이용할 수 있다. 또, 위례신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노면전차(트램) 라인도 이용할 수 있다. 단지 바로 남쪽에는 이마트가 들어설 예정으로 향후 입주민들은 더욱 빠르고 편리하게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위례 지웰 푸르지오’ 모델하우스는 9호선 삼성 중앙역 5번 출구 앞에 위치하며, 8월 중 개관 예정이다. 분양홈페이지를 통한 관심고객 등록시 모델하우스에서 대기 없이 입장할 수 있는 퀵패스이벤트가 진행중이다. 입주는 2018년 2월 예정이다.문의)1899-2700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11]=항생제의 두 얼굴(1)

     만약에 항생제가 없었다면 아마 인류는 멸종했거나, 지금처럼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배적인 위상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강인하다 해도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으면서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냄새가 나거나 소리를 내지도 않는 유령같은 침략자들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항생제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 바로 세균(germ)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콜레라가 한번 창궐하면 전국에서 한꺼번에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멸종’을 떠올릴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멀쩡하던 사람이 픽픽 자빠져 나가는데, 대책은 없으니 엉뚱하게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부적을 만들어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요.  ‘도성 한양에는 괴질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림에 내몰려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서 그 살을 먹고, 아들이 늙은 부모를 잡아먹고 연명을 했다’는 기록이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전하거니와 이를 어찌 전쟁의 참화에 비기겠습니까.   ●세균이 왜 무섭나고요?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신동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 영조 연간인 1730년에 수도 한양 일대에 역병이 퍼져 무려 1만 명이나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여만 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스무 명 중 한 명은 숨진 셈이지요. 이 역병은 홍역으로 추정되는데, 홍역이야 바이러스가 원인이니 그렇다 치고, 일반적인 세균에 의한 대표적 질병인 콜레라는 어땠을까요.  역시 신동원 박사의 저서인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에 따르면, 콜레라(세균 모양은 사진 참조)가 처음 조선에서 유행한 것은 1821∼1822년으로, 사서에는 ‘신사년 괴질’로 기록돼 있습니다. 1821년(순조 21년) 8월 13일 평안도에서 올라온 장계에 따르면, “설사와 구토를 한 후 비틀리면서 순식간에 죽어버렸고, 열흘 안에 1000여 명이 죽었는데, 병에 걸린 10명 중 한둘을 빼고는 모두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괴질의 특징은 ‘심한 설사와 탈수로 인한 쇼크’였답니다. 또 “전염되는 속도가 불이 번지는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심노숭의 ‘자저실기’에는 그 전파 속도를 “바람처럼 일어나 조수처럼 퍼져 항우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보다 더 빨랐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이 콜레라 유행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콜레라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유행을 했는데, 1858년 유행 때는 50여만 명이 죽었고, 1886년, 1895년에도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다산 정양용은 이 신사년 괴질에 관한 기록을 ‘목민심서’에 남겼는데 “도광 원년 신사년 가을에 이 병이 유행했다. 10일 이내에 평양에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요, 서울 성중의 오부에서 죽은 자가 13만 명이었다. 증상은 혹 교장사(攪腸沙) 같기도 하고 전근곽란 같기도 한데, 치료법을 알 수 없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다’는 기록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콜레라가 어찌 그 때에서야 처음 나타났을까만, 남아있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괴질 정도로만 기록된 것도 있어 정확한 병명은 추정할 뿐인 사료도 있고, 잃어버린 자료도 무척 많으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죽었길래…  우리나라에서 콜레라는 1660년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위력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국가 인구통계를 바꿀 정도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79차례의 역병 기록이 전하는데, 이 중에서 한번에 10만명 이상 죽어나간 경우도 여섯 차례나 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005, 청년사)에 따르면, 어떤 해에는 전국에서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7∼8%나 되는 규모였습니다. 요즘 인구로 치자면 350만∼400만명쯤 되는 수치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염병으로 나자빠지니 인구 동향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지요. 1807년 조신 인구는 756만 1463명으로 집계됐는데, 이후 역병이 집중적으로 돌아 28년 뒤인 1835년에는 661만 5407명으로 잡힙니다. 약 100만명 정도가 줄었는데, 이 기간에 큰 전화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역병과 이에 따른 기근이 원인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정도의 인구 감소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보다 큰 규모이지요. 조선왕조실록은 “구할 방도가 없다”는 기막힌 기록으로 그 때의 참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많은 사람이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프랑스에 주둔 중이던 미군 병영에서 시작된 독감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요. 이 바이러스가 제 1차 세계대전 참전병들이 귀환할 때 옮겨져 이후 한 달만에 미군 2만 4000명을 포함해 미국에서만 50만명이 죽어나갔으며, 이듬해에는 영국에서만 15만명이 죽는 등 이후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최대 5000만명이 죽었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돼 이 중 14만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유행한 바이러스가 요즘 자주 듣는 ‘H1N1’형인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항생제의 발견이 인류 문명에서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세균이 있는 곳에 항생제가 있다  아무튼, 파스퇴르가 세균의 실체를 알아내 현대 의학의 기틀을 다진 이후 인류는 귀신이나 마귀의 장난이라고 여겼던 이전의 무지몽매한 전염병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파스퇴르가 이룬 과학적 업적이 우리나라로 전파돼 괴질이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세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기까지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특정 질병의 예방책으로 활용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말은 파스퇴르가 예방용 접종을 위해 세균으로 만든 약을 뜻하며, 예방접종을 ‘vaccination’이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물론, 그 전에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해 인류를 천연두의 공포에서 구했지만, 임팩트가 파스퇴르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후 수많은 세균들이 속속 실체를 드러냈고, 인류는 이런 세균들을 제압할 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이 처방되고 사용된다는 항생제입니다. 어떻게 해서 ‘생명체에 맞선다’는 뜻의 항생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의 항생제를 만들어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이후 ‘항생제의 역사’가 곧 ‘문명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질병 치료에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쟁은 인명 살상 뿐 아니라 각종 세균을 전파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이후, 항생제는 그 위력만큼 엄청난 속도로 진화를 거듭합니다. 세균이 세포분열을 할 때 세포벽을 만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항균작용을 하는 페니실린류에서 시작해 세팔로스포린류,병원균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도록 만들어진 아미노글리코사이드류와 테트라사이클린류, 세균의 DNA에 작용하는 약제로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퀴놀론류 등 병원성 세균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항생제가 속속 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항생제들은 매독을 비롯해 디프테리아, 결핵,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왔지만,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성균의 출현입니다.  [다음 주에 게재될 ‘항생제의 반란-2’에서 계속됩니다.]  jeshim@seoul.co.kr
  • 夏~ 격정적인 오페라가 흐르는 밤에 ♪

    夏~ 격정적인 오페라가 흐르는 밤에 ♪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 하나인 ‘리골레토’는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왕의 환락’에 깊은 감명을 받아 만든 것이다. 권력자의 부도덕성과 횡포, 왜곡된 신분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 ‘왕의 환락’의 메시지는 ‘리골레토’에도 오롯이 담겼다. 호색한인 공작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던 궁정의 어릿광대 ‘리골레토’가 공작으로 인해 딸 ‘질다’를 잃게 된다는 이야기다. 당국의 검열을 거치며 많은 내용이 축소됐지만 극적인 선율에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품은 오페라 최고의 비극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는 16일 열리는 서울신문 창간 111주년 기념 음악회 ‘한여름밤 오페라의 향연’에서는 ‘여자의 마음’ 등 ‘리골레토’의 아름다운 아리아들을 들을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비제의 ‘카르멘’의 아리아도 함께한다. 낯선 클래식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꾸며지는 ‘한여름밤 오페라의 향연’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오페라의 주요 아리아들을 쉽고 풍성한 해설과 함께 들려준다. 장윤성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고 그가 이끄는 군포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른다. 대전시립교향악단, 울산시립교향악단 등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장 지휘자는 선 굵은 오페라 해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나부코’와 ‘운명의 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베르디 오페라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군포프라임필하모닉은 국내의 대표적 클래식 축제인 ‘교향악 축제’에 5년 연속으로 참가한 유일한 민간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은 ‘리골레토’의 아리아로 문을 연다. 군포프라임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서곡을 시작으로 ‘그리운 그 이름’, ‘악마야, 도깨비야’, ‘여자의 마음’ 등을 들려준다. 이어 공연되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19세기 시칠리아 섬의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치정극을 그린 단막 오페라다. 특히 간주곡이 뜨거운 사랑을 받아 영화 ‘분노의 주먹’,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등에 쓰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간주곡과 아리아 3곡을 들려준다. 비제의 걸작 ‘카르멘’이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하바네라’, ‘세비야 성벽 근처에서’, ‘아무도 나를 두렵게 할 수 없어’ 등 강렬하고 격정적인 아리아들이 객석을 뜨겁게 달군다. 메조소프라노 김선정과 소프라노 김수연, 소프라노 남혜원, 바리톤 김동섭, 테너 신동원과 노비아스합창단이 무대에 오르며 장일범 클래식평론가의 해설이 더해져 클래식 초보자들에게도 오페라의 매력을 선사한다.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15만원. (02)2000-9752~5.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종북 논란 신은미, 북한 입국 일상 공개 “모란봉 평양성벽길을 따라..” 충격 근황

    종북 논란 신은미, 북한 입국 일상 공개 “모란봉 평양성벽길을 따라..” 충격 근황

    종북 논란 신은미, 북한 입국 일상 공개 “모란봉 평양성벽길을 따라..” 충격 근황 ‘종북 논란 신은미’ 종북 논란 신은미 씨가 북한에서의 일상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을 미화한 ‘종북 콘서트’ 논란으로 올해 1월 국내에서 추방당한 재미동포 신은미 씨(54)가 최근 또다시 북한에 입국한 것으로 보인다. 종북 논란 신은미 씨는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기는 평양’이라는 제목으로 “저는 일본강연을 마치고 지금 북한에 와 있다. 공항에는 수양딸 설경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고 북한에서의 근황을 전했다. 종북 논란 신은미 씨는 “심 카드를 샀더니 인터넷, 국제전화 모두 가능하다. 너무 바삐 다니느라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틈나는 대로 북녘 동포들의 모습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종북 논란 신은미 씨는 “동행한 재미동포 교수님이 카톨릭 신자라서 오늘은 교회 대신 평양에 있는 장충성당에 갔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 점심식사는 옥류관에서 쟁반국수로”라며 평양에서의 일상을 공개했다. 29일에도 “모란봉 평양성벽길을 따라 을밀대에 올랐습니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재일동포 학생들이 준 한반도기를 산책 나온 북녘동포 할머님들과 함께 펼쳐 들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또 “지금 설경이네 집에 왔습니다. 수양손자 주의성이 벌써 1년 9개월이 되었습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출발하려고 합니다”라고 행보를 상세하게 전했다. 한편 신은미 씨는 북한 입국 전 이달 16∼23일 일본의 도쿄와 교토, 요코하마 등을 돌며 강연하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계열의 조선학교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신은미 페이스북(종북 논란 신은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종북 논란 신은미, 북한 일상 공개 “평양성벽길을 따라..” 충격 근황

    종북 논란 신은미, 북한 일상 공개 “평양성벽길을 따라..” 충격 근황

    북한을 미화한 ‘종북 콘서트’ 논란으로 올해 1월 국내에서 추방당한 재미동포 신은미 씨(54)가 북한에서의 근황을 공개해 화제다. 종북 논란 신은미 씨는 지난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기는 평양’이라는 제목으로 “저는 일본강연을 마치고 지금 북한에 와 있다. 공항에는 수양딸 설경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고 북한에서의 근황을 전했다. 종북 논란 신은미 씨는 “동행한 재미동포 교수님이 카톨릭 신자라서 오늘은 교회 대신 평양에 있는 장충성당에 갔습니다. 미사를 마친 후 점심식사는 옥류관에서 쟁반국수로”라며 평양에서의 일상을 공개했다. 29일에도 “모란봉 평양성벽길을 따라 을밀대에 올랐습니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재일동포 학생들이 준 한반도기를 산책 나온 북녘동포 할머님들과 함께 펼쳐 들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쏟아지는 여름 뮤지컬, 신작 3편 감상해 보니

    쏟아지는 여름 뮤지컬, 신작 3편 감상해 보니

    뮤지컬 시장이 6월 중순부터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극장 뮤지컬만 10편 가까이 같은 기간에 맞붙으며 뮤지컬 전용 극장은 빈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흥행이 검증된 작품의 재공연뿐 아니라 신작들이 쏟아진다는 점에서 여름 뮤지컬 시장의 성장세를 엿볼 수 있다. 대형 공연기획사들의 진검승부에서 ‘데스노트’와 ‘체스’,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먼저 뚜껑을 열었다. ‘데스노트’ - 괴물 보컬 웨스트엔드 무대를 밟은 홍광호와 그룹 JYJ의 김준수는 ‘데스노트’(씨제스컬쳐)에서 다시 한 번 이름값을 증명해 냈다. 앞서 도쿄 초연에서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넘버는 홍광호의 ‘꿀성대’와 김준수의 금속성 보컬 덕에 한층 드라마틱하게 살아났다. 연극성이 강한 연출에서 두 배우의 연기력도 빛을 발했다. 홍광호는 똑똑한 고교생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손에 넣고 폭주하다 자멸하는 과정을 섬뜩하게 묘사했다. ‘죽음’(엘리자벳) ‘드라큘라’ 등 비현실적인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김준수는 기괴한 이미지의 천재 탐정 엘(L)이 맞춤옷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 만화 ‘데스노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건 현대사회에 팽배한 허무주의, 정의와 선악에 대한 철학적 논쟁, 반전을 거듭하는 두뇌 대결 등의 요소 덕이다. 이 모두를 3시간 이내의 뮤지컬에 담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엘의 추리에는 중간중간 비약이 보였고, 라이토와 엘의 대결도 원작만큼 치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판타지와 로맨스가 넘쳐나는 대형 뮤지컬 시장에 음울함과 냉소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다. 강홍석은 라이토를 이용해 인간 세계를 희롱하는 사신 류크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력이 높았다. 라이토를 사랑하는 아이돌 가수 미사 역의 정선아와 미사를 지켜주는 사신 렘 역의 박혜나도 비교적 짧은 분량에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러나 뮤지컬계 최고 디바인 두 배우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 점은 아쉽다. 일본 공연을 수정 없이 가져온 탓에 일본 만화를 보는 듯 유치한 장면도 몇몇 보인다. 8월 15일까지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체스’ - 낯선 끌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 등의 작사가 팀 라이스가 만든 ‘체스’(엠뮤지컬아트)는 브로드웨이에서 두 달 만에 막을 내린, 크게 성공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체스 챔피언 프레디와 러시아의 체스 챔피언 아나톨리의 맞대결을 냉전이라는 맥락 속에서 그려낸 ‘체스’는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는 낯설고 독특한 소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런 ‘체스’에 도전한 건 ‘삼총사’ ‘잭 더 리퍼’ 등 외국 뮤지컬에 대중성을 더해 성공시켜 온 왕용범 연출이었다. 뚜껑을 연 ‘체스’는 시각적인 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했다. 서숙진 디자이너는 체스의 고향인 이탈리아 마로스티카 마을을 옮겨 놓은 무대세트 위에 영상을 투사해 매끄러운 공간 이동을 구현해 냈다. 중세 이탈리아의 성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체스 세계챔피언십이 열리는 태국 방콕과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국 등 세계 각국으로 변신했다. 3m가 넘는 체스의 말을 들고 펼치는 앙상블의 군무도 신선한 광경이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들을 사각의 핀 조명 아래 가둬 놓는 연출도 체스라는 소재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그러나 첩보물을 방불케 하는 스토리의 긴장감을 반감시키는 건 단조로운 구성이다. 극과 넘버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한 장면이 끝나면 넘버가 2절까지 이어지는 뻔한 패턴이 반복된다. 흐름이 예측 가능한 탓에 극이 축축 처진다. 아나톨리가 프레디의 조수 플로렌스와 사랑에 빠지고, 아내와 조국마저 버린 채 미국으로 망명하는 과정도 급작스럽게 전개돼 설득력이 떨어진다. 7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시카고’ - 원조 파워 ‘시카고’(신시컴퍼니)는 국내 공연계의 베스트셀러다. 그만큼 익숙한 작품이지만, 1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오리지널 팀에게는 ‘오리지널’만의 매력이 충분했다.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재즈 선율에 담은 ‘가장 미국적인’ 뮤지컬에서 미국 배우들은 관객들을 브로드웨이를 여행하는 것 같은 환상으로 끌어들인다. 놀라운 유연성을 갖춘 배우들은 다리를 일(一)자로 찢으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길쭉한 팔다리와 탄탄한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관능적인 몸짓은 시선을 단번에 붙잡았다. ‘올 댓 재즈’ 같은 명곡을 원어로 듣는 즐거움에 미국식 유머를 다양한 글씨체로 표현한 재기발랄한 자막이 재미를 더한다.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이고도 ‘무죄’를 외치는 여죄수들의 뻔뻔함도 배우들의 매력 때문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테라 매클라우드(벨마 켈리 역)와 딜리스 크로만(록시 하트 역)의 기량은 물론 출중했다. 그러나 섹시함과 뻔뻔함, 처연함을 오가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매력을 100% 표현하지는 못한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의 벨마와 록시인 최정원과 아이비의 기량이 결코 떨어지지 않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8월 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열린세상] 6·25사변과 6·25전쟁/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6·25사변과 6·25전쟁/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내일은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산화하려고 기습 남침한 6·25전쟁 발발 65년째 되는 날이다. 6·25전쟁은 오랫동안 6·25사변 또는 6·25동란으로 불렀다.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된 대한민국 영토의 북쪽을 불법 점거해 섬멸돼야 할 무장 단체인 북한이 변란을 일으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영토에 관한 헌법 제3조 규정에 충실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되면서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돼 6·25사변도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을 뜻하는 6·25전쟁으로 바뀌게 됐다. 이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의 효력을 존중하는 헌법 제6조에 충실한 개념이다. 그 후 6·25와 관련된 법령을 개정할 때마다 용어를 고쳐 나가다 2년 전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마지막으로 6·25사변이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3조가 개정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법적 지위를 설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3조는 남북 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주권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대내적으로는 민족 내부거래 관계로 본다는 뜻이다. 헌법 제4조에서 지향하는 평화적 통일의 과제를 이루기 전까지는 그런 잠정적 상황을 상당 기간 지속할 수밖에 없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1953년 정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1129일 동안의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우방국의 손길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3대 세습을 이룬 김씨 조선 왕조 치하에서 힘들게 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투부대를 파견한 미국 등 16개국, 의료지원을 한 인도 등 5개국, 물자와 재정 지원을 한 아르헨티나 등 39개국의 도움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극동아시아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이념 전쟁에 정예 군대를 직접 보내 도와준 모든 나라에 대해서는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후손들에게라도 보은하는 것이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발전한 대한민국의 당연한 책무라 할 수 있다.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것은 그 안의 모든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다. 한자어인 ‘나라 국(國)’을 파자(破字)해 보면 성벽 곧 국경을 뜻하는 바깥 네모 안에 있는 ‘혹 혹(或)’ 자의 위쪽에는 ‘창 과(戈)’가 있고 그 아래에는 땅과 바다를 뜻하는 짧은 선( )과 그 위에 ‘입 구(口)’가 있다. 전쟁 무기인 창은 군대 즉 국방력을 가진 정부를 상징한다. 그 밑에 ‘사람 인(人)’ 자 대신 ‘입 구(口)’로 쓴 것은 나라 안에는 사람만 아니라 입을 가진 모든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입은 음식이 들어가는 통로뿐만 아니라 말하는 지체이므로 헌법상 기본권인 생존권과 자유권을 포함한다. 결국 나라 국(國)에는 정부, 국민, 영토의 세 가지 필수 구성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이처럼 정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국민과 영토를 보호하는 것이다. 정부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빈손으로 할 수는 없다. 사람과 돈이라는 자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부담할 몫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기본법인 헌법에는 정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과 함께 정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의무도 규정돼 있다. 현행 헌법 제2장에는 그 내용이 자세히 열거돼 있다. 27개 조문에 걸쳐 있는 기본권 조항에 비하면 의무에 대한 사항은 병역, 납세, 교육, 근로, 재산권 행사 등 네댓 개에 불과하다. 조문 수가 적다고 해서 가볍게 여길 것은 아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필수적 의무로 헌법에서 직접 정한 것 말고도 ‘국가보훈 기본법’ 제6조(국민의 책무)가 ‘모든 국민은 희생·공헌자의 공훈과 나라 사랑 정신을 존중하고 선양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에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처럼 개별 법률에서 명시한 의무가 수십 개나 된다. 그러나 국민의 의무는 권리에 비해 관심이 적은 것 같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가기 전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들에게 감사하면서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국민의 의무를 다시금 생각해 보면 좋겠다.
  •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大데레사 성녀의 땅, 아빌라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를 가다] 大데레사 성녀의 땅, 아빌라

    16세기 유럽 가톨릭교회는 ‘혼돈의 시대’라는 말 그대로 큰 위기를 겪었다. 가톨릭 교회에선 세속적인 타락과 영적 혼란이 만연한 그 시절, 여인의 몸으로 교회의 영적 쇄신을 이끈 걸출한 인물이 회자된다. ‘첫 여성 교회학자’로 통하는 이른바 대(大) 데레사(1515-1582)성녀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관으로 스페인 가톨릭 영성 성지순례에 나선 일행이 톨레도를 거쳐 지난 8일 찾은 곳은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85㎞ 떨어진 아빌라. 데레사 성녀의 개혁정신이 오롯이 담긴 쇄신의 땅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눈에 들어오는 육중한 황톳빛 성벽. 11세기 후반 국왕 알폰소 6세의 사위 우루고위 백작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쌓은 거대한 로마식 성벽이다. 대 데레사가 하느님을 만나는 황홀경에 빠진 모습의 조각상이 놓인 아빌라 대성당을 지나 안으로 드니 데레사의 숨결이 담긴 흔적들이 널려 있다. 어둡고 비열한 현실에서 무지한 사람들을 이끌어 나가는 수도자의 역할을 강조해 청빈과 고행의 실천으로 일관했던 대 데레사 성녀. 아빌라 출신인 그는 어릴 적부터 신심이 깊었고 일곱 살에 순교 성인전을 읽고 오빠와 함께 순교자가 되겠다며 아프리카로 가려 가출했던 여인이다. “데레사 성녀 탄신 500주년 되는 해”라는 안내자의 설명과 함께 일행이 먼저 찾은 곳은 성녀가 19살 되던 해 입회해 33년간 몸담았다는 엔카르나시온(강생) 가르멜 수도원. 방황과 병치레로 혼란의 사춘기를 보낸 성녀는 이곳에서 기도 중 예수님이 기둥에 묶인 채 매질 당하는 환상을 본 후 크게 각성했다고 한다. 줄곧 성녀가 치중했던 모토는 바로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였다. 인격적인 신을 감각적으로 느끼기를 염원했던 성녀는 잇따른 신비체험을 겪었다. 수도원 뜰에 깔린 ‘7궁방’이 치열했던 수도의 삶을 보여준다. 끝없는 정진과 신비로운 영적 체험을 공유하자는 성녀의 뜻이 오롯하다. 스페인 전역에 17개의 봉쇄수도원을 세운 데레사 성녀. 영적 개혁의 구심점인 이 수도원들의 시작이 바로 가르멜 초기 규칙대로 수도생활을 하자며 4명의 수녀와 함께 세운 ‘맨발 가르멜회’이다. 엄동설한에도 샌들만 신고 다니는 절제와 고행의 실천. 외부와의 만남을 피한 채 좁은 방에서 금욕과 기도를 이어가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바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뜻의 발현이 새삼스럽다. 당시 수녀들의 유품이 전시된 2층에 놓인 손때 묻은 첼로, 기타 같은 악기며 천장 버팀목들에 그려진 그림들이 선명하다. 훗날 수도원 원장으로 가르멜 수도원으로 돌아온 데레사는 이 2층 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한 아이를 만나 “나는 데레사의 예수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예수의 데레사’라는 별칭이 붙게 된 신비체험의 순간이다. 생애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고백하고 기도생활을 자세히 기록한 ‘자서전’이며 기도 및 영성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 ‘완덕의 길’, 자신의 영성생활을 종합한 ‘영혼의 성’은 수도자들이 탐독하는 저서들이다. “꼭 필요한 것 중에서도 정말 필요한 것을 선별할 줄 아는 영성이야말로 성녀 데레사가 발견한 기쁨이자 충만이었다.” 엔카르나시온 수도원의 다니엘 데 파블로 마로토 신부가 기자에게 전한 귀띔이다.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 지금 가톨릭 교회는 임종 때 그렇게 말했다는 ’예수의 데레사’ 정신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까. 글 사진 아빌라(스페인)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충청수영성/서동철 논설위원

    충청수영이란 충청도수군절도사영(忠淸道水軍節度使營)의 줄임말이다. 충청도 수군을 지휘하던 절도사가 머물던 본영이라는 뜻이다. 아산만에서 금강 하구의 장항만에 이르는 충청수역은 해안선의 길이가 992.8㎞에 이르고 250개 남짓한 섬을 포괄하고 있었다. 충청수영은 이 관할 수역의 중간 지점인 지금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일대에 있었다. 충청수역은 고려시대 이후 남부 평야지대의 곡식을 개성이나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당시 왜구가 해안은 물론 내륙까지 침범했던 것도 쌀을 비롯한 양곡 탈취가 가장 큰 목적이었던 만큼 수군의 강화는 필연적이었다. 조선이 고려 군제(軍制)를 발전시켜 오천에 충청수영을 설치한 것은 세종 29년(1447)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기 충청수영의 군선은 142척, 병력은 8414명에 이른다. 충청수영성은 충남 해안과 안면도·원산도로 둘러싸인 천수만에서도 좁은 내만(內灣)에 깊숙이 들어앉았다. 앞바다의 수심이 깊은 데다 서해안의 다른 포구와 달리 심한 조수간만의 차이에도 배가 드나드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수영성은 해변과 주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려 지금 보아도 천혜의 요새다. 석성(石城)인 충청수영성은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둘레 3174척, 높이 11척 규모로 중종 4년(1509)부터 16년 동안에 걸쳐 쌓았다. 충청수영은 봉수를 이용해 먼바다를 포함한 관할 수역의 움직임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청도 봉수에서 외연도 봉수, 녹도 봉수, 원산도 봉수를 거쳐 충청수영성 남쪽 1.2㎞ 지점에 있는 망해정 봉수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 시스템이었다.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징을 감안한 충청수영의 권설봉수(權設烽燧)는 다른 수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왜구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충청수영이지만 병자호란 이후 수도권 방어가 가장 중요한 군사적 목표로 떠오르면서 본영의 이전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수영성의 위치가 왜구를 방어하고 조운선의 안전한 운항을 도모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비상사태 발생의 경우 왕실과 조정의 피난처인 강화도 일대를 보호하는 데는 적절치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도 3년(1779)부터 10년 동안 충청수사의 임시지휘소라고 할 수 있는 행영(行營)을 안흥에 설치해 운영하기도 했다. 충청수영성의 현재 모습에서 전성기 위용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뛰어난 경관을 가진 누각 영보정(永保亭)의 복원이 최근 시작됐고, 성벽을 되살리기 위한 발굴조사도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지역 최고의 역사관광 자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다만 조급증은 떨쳐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원형에 충실한 제 모습 찾기를 당부한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 ] ‘호모 스마트쿠스’ 디지털 감옥을 탈출하라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 ] ‘호모 스마트쿠스’ 디지털 감옥을 탈출하라

    스마트폰을 통해 창출되는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오는 2017년 43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보스턴컨설팅그룹)된다. 국민 10명 중 8명이 하루 평균 3시간 39분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호모 스마트쿠스’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KT경제경영연구소)도 나온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질주는 한편으로 짙은 그림자를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2014년 인터넷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14.2%가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청소년의 중독 비율은 30%에 육박한다. 청소년과 영·유아들이 스마트폰의 단편적·즉각적인 정보에만 익숙하다 보니 종합적인 사고 능력이 떨어지고, 향후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 기관과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들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과다 사용의 폐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뒤따르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과 함께 국립청소년 인터넷드림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헬프콜 청소년전화(☎1388)로 신청하면 1~7주 동안 이곳에서 숙식하며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학기 중엔 수업 일수로 인정을 받는 데다 참가 기록이 학교생활기록부(NEIS)에 남지 않는다. 10만~20만원의 식대보조금만 내면 된다. 장윤영 인터넷드림마을 캠프운영부장은 “각종 상담과 대안적인 여가활동,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고 자아실현의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캠프 입소가 여의치 않으면 학교를 다니면서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청소년전화로 전화하면 전국의 시·군·구 200여곳에 산재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상담을 해준다. 스마트폰 중독 정도가 중증인 경우 병원 치료를 알선해준다. 부모 상담도 진행한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사용을 둘러싸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자녀의 중독 여부에 상관없이 일단 상담을 받을 것을 조언하고 있다. 김성벽 여성가족부 청소년매체환경과장은 “스마트폰 사용을 놓고 문제가 생기면 다른 부분에도 마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전반적인 양육 방식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광역자치단체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인 ‘아이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중독 예방교육은 물론 진단·상담 등을 진행한다. 전화(☎1899-1822)나 인터넷(iwill.or.kr)으로 접수하면 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도 전문 상담기관인 인터넷중독대응센터를 설치해 내방 상담이나 전화, 메신저, 화상·문자 채팅, 게시판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전화(☎1599-0075)나 인터넷(iapc.or.kr)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성인, 유아도 이용할 수 있다. 이 밖에 일부 지역 가정상담센터나 종합사회복지관 등도 인터넷 중독 치유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예방교육, 특히 스마트폰을 갓 쓰기 시작하는 유아기에 대한 프로그램도 올해부터 진행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올해 3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전국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에 스마트폰 중독 예방을 위한 동화와 놀이교구를 배포하고 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통학버스를 놓치는 모습 등을 담은 동화책이다.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퍼즐을 맞춰 보며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도록 하고 있다. 중독 특성과 발달단계 등을 고려한 특강식 예방교육도 운영된다. 또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을 방지하기 위해 스마트폰 과다 사용을 예방하는 스마트미디어 청정학교 14곳을 지정, 운영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지난달 30일 연세대와 함께 ‘바른 ICT 연구소’를 설립했다. 스마트폰 등 ICT 부작용의 원인과 해법을 연구해 건전한 ICT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게 설립 취지라고 한다. 이 회사는 유치원 등을 찾아가 어린이에게 올바른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리는 ‘바른 ICT 키즈교실’ 프로그램도 펼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정보화진흥원 등과 함께 디지털 기기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리는 ‘바른 ICT 청소년 캠프’를 열고 있다. KT는 전국의 ‘IT서포터스팀’에서 스마트폰 및 게임 중독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전문강사가 학교에서 스마트 기기의 역기능 예방 교육을 제공하는 ‘스마트 ICT스쿨’ 프로그램에 지난해 25만명의 유아와 청소년이 참가했다고 한다. 스마트폰 없는 생활을 체험하는 ‘스마트 런 캠프’에도 128명의 청소년이 참가했다. 올바른 ICT 이용문화 확산을 위한 스마트 ICT 콘텐츠 공모전도 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를 대상으로 SNS의 역기능을 환기시키는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삼성SDS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의 역기능 예방 활동인 ‘스마트 브리지’ 사업을 펴고 있다. 매년 60여명의 사내 임직원 강사를 양성하고, 매년 상·하반기 한 차례씩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방문해 중독 자가진단, 동영상 등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개발한 ‘스마트보안관’과 ‘아이스마트키퍼’ 등 애플리케이션(앱)은 가정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중독 예방 방법이다. 청소년이 스마트폰에 이들 앱을 내려받으면 보호자가 자녀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 등을 제어할 수 있다. 유해사이트 차단과 함께 학교 폭력 등에 관해 전문 상담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SK텔레콤의 ‘T청소년안심팩2’, KT의 ‘올레 자녀폰 안심 서비스’, LG유플러스의 ‘자녀폰 지킴이’ 등도 비슷한 앱이다. 반면 게임사들은 중독 문제 대처에 소극적이다. 특히 최근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모바일 게임사들은 중독 치유를 위한 사회적 공헌에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게임업계는 게임 중독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면서 “이들이 참여해야 스마트폰의 역기능 문제에 종합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해외여행 | 나가사키Nagasaki 를 보듬는 빛과 그림자-나가사키 순례길

    해외여행 | 나가사키Nagasaki 를 보듬는 빛과 그림자-나가사키 순례길

    어둠을 밝히는 빛. 빛은 어둠을 지우지만 그 빛을 따라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빛에겐 늘 환희와 찬사가 따르지만 그림자의 사정은 다르기 마련. 그 와중에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더 도드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림자는 빛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빛도 그림자도 살포시 보듬고 있는 나가사키에서. 나가사키현長崎縣 & 시마바라 반도島原半島 나가사키현은 규슈 북서부에 위치한 현으로 5개의 반도와 총면적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청소재지는 나가사키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중국, 우리나라와 마주하고 있어 일찍이 대륙과의 교통 요충지이자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의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이와 함께 가톨릭 선교의 출발지로 역사적, 문화적, 상징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들과 이국적인 풍경이 어우러진다. 나가사키현의 5개 반도 가운데 나가사키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시마바라 반도는 해저화산의 분화로 형성되었다. 반도 한가운데 해발고도 1,359m의 운젠다케를 주봉으로 화산군은 여전히 화산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활화산이다. 때문에 예부터 온천이 발달했다. 반도 전역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믿는다는 것의 의미 나가사키 순례길 산티아고나 시코쿠의 순례길처럼 정해진 순례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톨릭 문화유산이 산재한 나가사키를 거닐며 나는 이따금 존 레논이 부른 <Imagine>의 후렴구를 흥얼거렸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믿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순간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히라도平戶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 그리 주목할 것 없을 것 같은 작은 섬이지만 히라도는 이래 봬도 대항해시대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선이 연이어 들어오고 네덜란드와 영국 동인도회사가 상관을 설치했을 만큼, 그리하여 서쪽의 수도라 불리며 번성했던 일본 최초의 남만南蠻무역항이다. 바야흐로 무로마치 막부 말기 일본 각지가 전쟁으로 혼란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1550년, 예수회 소속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가고시마를 거쳐 이곳 히라도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은 포교를 조건으로 무역을 하고 있었기에 교역을 통해 막강한 힘을 얻고자 한 영주들은 포교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히라도는 일본 그리스도교의 시작점이 된다. 수세기가 흐르고 옛 영화는 오간 데 없이 한적한 섬마을이 되었지만 곳곳에 이국적 정취를 풍기는 가톨릭교회와 성지가 남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던 탓인지 더없이 차분했던 히라도. 히라도항 주변으로 조성된, 간세 리본이 반가운 규슈올레 히라도 코스를 걷다 보면 일본의 전통적인 사원 누각 위로 얼굴을 내민 고딕풍의 뾰족한 교회 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야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 언덕길 중간 즈음에 위치한 세 개의 사원 뒤로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교회가 우뚝 솟아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길가에는 무역이 번성했던 시대에 항구 주변으로 방파제를 겸해 세워두었던 나무 등대가 운치를 더한다. 일찍이 가톨릭이 전해졌지만 어지러운 전국을 통일하려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선교사 추방령을 발령하고, 정권을 이어받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14년 금교령을 내리면서 ‘키리시탄’을 엄격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키리시탄은 당시 포르투갈어로 가톨릭 신자를 가리키던 말로 지금까지도 일본의 가톨릭 신자를 키리시탄이라 부른다. 키리시탄으로 살고자 하면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다. 때문에 히라도를 비롯해 나가사키현의 오래된 성당들은 대부분 20세기 초에 완공된 것들이다. 옅은 풀빛을 머금고 있는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교회도 1931년에 완공된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일반적으로 고딕양식은 중앙 첨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첨탑들이 대칭을 이루기 마련인데 이 성당은 정면에서 보면 왼쪽에만 팔각탑이 자리한 비대칭 구조다. 이를 두고 불가사의한 경관이라고도 하는데 실은 성당을 지을 때 2,000엔 정도의 공사비가 부족해 부득불 그리 되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메이지시대1868~1912년부터 건축된 성당과 관련 유산 가운데 13곳이 ‘나가사키 교회군과 그리스도교 관련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올라 있다. 1918년에 봉헌된 타비라 천주당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데 교회 건축의 일인자였던 테츠카와 요스케 스스로도 자신 있는 작품이라 했을 만큼 당당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 성당이다. 더욱이 신자들이 손수 개간하고, 성당 건축에 필요한 석회도 바닷가에서 직접 채집해 구워서 사용하는 등 헤아릴 수 없는 애정과 노력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타비라 성당 옆으로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박해로 인해 숨어야 했고 떠나야 했지만 죽어서라도 성당 가까이 머물고 싶었던 신자들이 다시 이곳에 돌아와 잠들어 있다. 크든 작든 꽃 장식 없는 묘소는 하나도 없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오랜 갈증을 달래어 주듯 오후내 그치지 않던 빗방울이 묘지를 적셨다. 성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교회 259-1 Kagamigawacho, Hirado-shi, Nagasaki +81 950 22 2442 06:00~18:00 타비라 천주당 19 Tabiracho Kotedamen, Hirado-shi, Nagasaki +81 950 57 0254 07:00~18:00(일요일은 13:00부터)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나가사키長崎 말할 수 없었던 비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7년 금교령을 내렸지만 가톨릭의 교세는 잠재워지지 않았기에 당시 수도였던 교토와 오사카 지역에서 24명의 가톨릭 선교사와 신자를 체포하여 나가사키까지 걸어오게 한 다음 처형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작은 로마라 불릴 정도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오는 도중에 2명이 더해져 모두 26명이 1597년 2월5일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본보기였다.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박해는 근대로 넘어 오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 개항이 되기까지 무려 25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간 가톨릭 신자들은 불교도로 가장한 채 비밀리에 신도 조직을 만들어 신앙생활을 지속했다. 그들을 가리켜 ‘잠복 키리시탄’이라 한다. 1853년 개항 이후 미국,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열강과 통상조약을 맺게 되면서 나가사키 항구 인근에 외국인 거류지가 조성되고 다시금 선교사들이 들어오게 된다. 1862년 로마가톨릭은 이들을 성인에 시성하였고 프랑스외방전교회 소속의 프티장 신부는 일본 최초의 가톨릭 순교지인 니시자카에 성당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거류지 내에서만, 외국인들에 한해서 종교 활동이 허락되었기에 1864년 니시자카가 잘 보이는 오우라 마을에 성당을 세우게 된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잠복 키리시탄들의 마을이었던 우라카미에서도 오우라 천주당은 한눈에 들어왔다. 1865년 3월17일 우라카미의 잠복 키리시탄들은 마침내 오우라 천주당을 찾아 들어오게 되고 그리하여 일본의 가톨릭은 올해로 신도 발견 1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구구절절 이야기를 알지 못한 채, 더욱이 가톨릭 신자도 아닌 다음에야 나가사키의 성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나카마치 성당에서 만난 히사시 신부는 종교를 떠나 어떤 때든 어디에서든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믿음’의 중요성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종교라는 것은 가족, 친구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믿는 것과 같은 거라고. 들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잠복 키리시탄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종교를 넘어서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마음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일까, 그전에 나는 과연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더라. 나가사키에서 평화를 떠올리는 것이 가톨릭 유산 때문만은 아니다.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원자폭탄의 피해를 받은 곳이 나가사키다. 1945년 8월9일 11시2분, 원자폭탄이 투하된 바로 그 시간에 멈춰선 벽시계는 결코 돌이킬 수가 없다. 버섯구름과 함께 도시는 잿빛 폐허가 되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도 피복의 상처를 안고 아직까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흔적이 인상적이다. 센다이 출신으로 나가사키 의과대학에서 방사선의학을 전공한 박사는 원폭으로 부인으로 잃고 본인도 앓고 있던 백혈병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부상자 구호와 원폭장애 연구 그리고 전쟁의 어리석음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는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장 다다미 한 칸 방 뇨코도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그가 생전에 머물렀던 이 작은 집 ‘뇨코도’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원폭의 피해는 성전에도 몰아쳤다. 신도 발견 이후 우라카미 촌장 집터에 건설되었던 우라카미 천주당도 원폭을 비켜가지 못했다. 옛 성당의 무너진 종탑 하나가, 재건된 성당 아래 그대로 남아 있는가 하면 오른쪽 뺨과 머리카락 일부가 시커멓게 탔지만 그 형상이 온전한 목조의 마리아상이 잔해 속에서 발견되어 소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우연인지 기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지금의 모습 그대로가 전하는 울림만을 되새길 뿐이다. 니시자카 순교지 & 26성인 기념관 7-8 Nishizaka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22 6000 09:00~17:00 성인 250엔, 중고생 150엔, 초등생 100엔 오우라 천주당 5-3 Minamiyamate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23 2628 08:00~18:00 성인 300엔, 학생 250엔, 아동 200엔 우라카미 천주당 1-79 Moto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44 1777 09:00~17:00(월요일 휴관) 뇨코도 & 나가이 타카시 기념관 22-6 Ueno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44 3496 09:00~17:00 성인 100엔(학생은 무료) 나가사키 원폭기념관 7-8 Hiranomachi, Nagasaki-shi, Nagasaki +81 95 844 1231 www.city.nagasaki.lg.jp/peace 08:30~17:30(5~8월은 18:30까지) 성인 200엔, 학생 100엔 ●미나미시마바라南島原 그림자는 땅에 묻었네 전국시대 시마바라 반도를 통치한 아리마 일가는 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불과 3km의 거리를 두고 두 개의 성을 구축했다. 미나미시마바라에 위치한, 이제는 터만 남은 히노에성과 하라성이다. 히노에성은 아리마 일가가 대대로 거주했던 산성, 하라성은 15세기 중반 바다를 면한 언덕에 새로이 쌓은 성으로 4km에 달했다.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에 아리마 영주는 더욱 강력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 필요하던 차 1580년 스스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 포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히노에성 가까이에 일본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세미나리요가 설립되고 십대 소년들이 라틴어와 서양음악 등을 익히게 된다. 1582년 일본 가톨릭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세미나리요에서 수학한 4명의 소년이 중심이 된 덴쇼 소년사절단이 로마에 파견된다. 일본 역사상 최초로 유럽을 방문한 이들은 교황을 알현했다. 이후 소년들이 가져온 구텐베르크 인쇄기로 일본은 동아시아 최초로 서양식 활판인쇄 서적을 발행하게 된다. 그러나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이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막부는 금교령과 함께 영내 하나의 성만을 인정하는 ‘일국일성령’을 내리고 그에 따라 히노에성과 하라성을 폐성한다. 주민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던 시마바라 반도는 종교 탄압은 물론이고 세금 착취에 따른 지독한 배고픔의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개종을 거부한 기리시탄들에게는 가차 없는 처벌이 따랐다. 1613년 히노에성 앞으로 흐르는 아리마강 가운데 자리한 모래톱에서 8명이 화형에 처해진다. 오랜 박해를 참다 못한 주민들은 1637년 드디어 난을 일으킨다. 시마바라의 난이다. 막부는 대군을 파견했고 민중들은 밀리고 밀려 폐성이었던 하라성에 진을 치게 된다. 성 안 높은 곳에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성벽에는 십자가나 성상을 그린 깃발을 내건 채 3개월여 저항했지만 끝끝내 함락되어 전멸하고 만다. 하라 성터에 섰다. 희생된 이들과 파괴된 성, 난의 흔적은 모두 이 땅 아래에 묻혔다. 그러나 어둠을 찾아낸 빛이 머리 위 하늘도, 눈앞 바다도, 발아래 초원도 제 나름의 푸르른 기운을 발하는 이 땅 곳곳을 비춘다. 견고한 성벽이며 상처가 남아 있는 죽은 자들의 유해, 총알탄을 다듬어 만든 십자가, 낱알이 된 묵주 등 질곡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난다. 봄이면 유독 탐스런 벚꽃이 움튼다고 하는데 빛과 그림자는 결국엔 서로를 보듬는 존재. 결국에는 한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라 성터 133 Minamiarimacho Tei, Minamishimabara-shi, Nagasaki +81 957 85 3155 아리마강 순교지 2747 Kitaarimacho Bo, Minamishimabara-shi, Nagasaki +81 957 76 1800 취재협조 나가사키현 관광연맹 www.nagasaki-tabinet.com 문의 나가사키현 서울사무소 02-730-2192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新국토기행] (27) 경기 연천군

    [新국토기행] (27) 경기 연천군

    경기 연천군은 최전방 접경지역 정도로만 알려졌다. 30만년 전 전곡리 유적지, 주먹도끼, 매서운 추위, 군부대…. 연천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러나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평화, 생명이 공존하는 ‘한반도의 허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연천은 서울 광화문에서 60㎞ 남짓한 거리에 있다. 전쟁 통에 잃어버린 ‘고향’처럼 기억에서 잠시 사라졌을 뿐 한국전쟁 전만 해도 원산~서울을 잇는 주요 길목 도시였다. 전후에도 한탄강과 임진강 두 강줄기가 흐르는 곡창지대였다. 한반도 첫 인류가 살았고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뱃길로, 일제강점기에는 기찻길로 번화했던 고장이다. 지형상으론 남북을 나누는 추가령지구대가 지나는 곳이다. 추가령지구대는 서울~원산을 연결하는 좁고 길며 낮은 골짜기로, 원산 쪽에서 한강 하류로 연결되는 교통로를 제공한다. 과거 임진강 뱃길이나 경원선 철도 역시 이 추가령지구대를 따라 났다. 하지만 뱃길이 쇠퇴하고 경원선이 단절되면서 쇠락했다. 해방 이후 38선이 그어지고 일부 지역은 북측에 속했다가 한국전쟁으로 다시 남측에 속하는 파란을 겪으며 고향과 가족을 잃은 사람도 생겨났다. 전쟁 후에는 갈 곳 잃은 피란민 등이 정착하기도 했다. 이 오랜 시간 속에서 연천은 묵묵히 자신만의 얘기를 만들어 왔다. [볼거리] ●고려에 귀부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릉’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나 있다. 고랑포 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에 홀로 위치했다. 경순왕은 신라 56대의 마지막 왕으로 성은 김, 휘는 부(傅)이다. 신라 문성왕의 6대손으로 927년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경순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나라가 후백제·고려·통일신라로 분열돼 있었고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지방 호족들의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결국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고자 신하들과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려에 스스로 와서 복종했다. 경순왕은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나라에서 공신에게 내려 조세를 개인이 받아 쓰게 하던 고을)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됐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해 여러 자녀를 뒀으며 고려 경종 3년(978년)에 세상을 떠났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제사 때는 2000여명의 자손이 찾는다. ●고려 4왕·고려조 16공신 모신 고려 종묘 숭의전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고려 4왕과 고려조 16공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고려의 실질적인 종묘다. 역성혁명을 통해 왕조를 찬탈한 조선왕조는 연천의 마전에 고려의 종묘를 건립했다. 이어 국조오례의의 구분상 중사에 해당하는 역대시조제로서 숭의전 전례를 치렀는데, 숭의전 전례는 왕이 직접 축문을 내리고 관리를 파견하는 국가의 중요 행사였다. 왕조 전환 후 전조의 흔적을 지워 없애는 전례에 비춰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임진강·한탄강 절경 한눈에… 고구려 3대 성 남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구려 유적을 감상하고 절벽 위에서 임진강과 한탄강 조망이 가능한 코스다. 성에 오르면 이 지역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원하고 탁 트인 전망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이 가운데 당포성은 임진강 중류의 절벽 위에 조성된 고구려 성이다. 임진강과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 대지에 축조됐다. 임진강과 소하천에 면한 남쪽과 북쪽은 15m 이상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성벽 역할을 한다. 적의 침입이 가능한 동쪽 방면에는 인공적인 성벽을 쌓아 올리기도 했다. 당포성의 동벽은 고구려 축성기술이 집약된 과학적인 구조로서 중국 집안과 평양 등지에서 확인되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성곽 구조와 같다. 당포성이 위치한 당개나루의 임진강은 서울에서 양주를 거쳐 연천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해당하는 요충지다. 이곳을 통과하면 개성이 지척이기 때문에 군사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은대리성은 한탄강과 차탄천이 합류하는 곳에 만들어진 성이다. 연천 고구려 3대 성 중 가장 크지만 성곽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성 내부의 면적은 23만여㎡로, 일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이 숲의 끝에는 전망대가 있어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 지점과 삼형제 바위를 볼 수 있다. 신비한 느낌을 주는 빼어난 관광코스 중 한 곳이다. 호로고루성은 개성의 유명한 경치 8곳을 일컫는 송도팔경 중 하나로 장단석벽 위에 조성된 성터다. 성 아래 강은 썰물의 영향을 받아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는 임진강 최초의 여울목이 있다. 대규모로 병력 이동이 가능한 이 길목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치열한 전투지였다.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 ●한국전쟁 아픔 고스란히 담긴 유엔군 화장장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 처음 만들었다. 감악산 전투가 벌어진 연천의 마전과 파주 적성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만큼 전사자들이 속출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수많은 유엔군 참전 용사가 이곳에서 한 줌의 재로 화해 고국으로 돌아간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용암이 빚은 절벽… 동이리 주상절리 임진강(동이리) 주상절리는 미산면 동이리 67-1 일대에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임진강 쪽으로 길게 직벽 주상절리가 형성돼 있다. 주상절리는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기둥 같은 절벽을 말한다. 서서히 식는 과정에서 규칙적인 균열이 생겨 마치 기둥처럼 갈라진 절벽이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이 지역 직벽 주상절리는 고원생대부터 신생대 4기까지 오랜 지질학적 시간 동안 형성된 지층이다. 임진강과 직벽 주상절리에 형성된 폭포, 담쟁이와 단풍나무가 절경을 연출한다. 예부터 장단석벽이라 해 송도팔경에 속한다. 이 밖에 한탄강 강변에 조성된 캠핑장과 인접한 전곡선사유적지,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에 만들어진 평화누리길도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50만년 전 분출된 용암과 시간이 만든 재인폭포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높이 18m의 폭포다. 높은 절벽에서 물이 쏟아지는 비경은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50만여년 전 분출된 용암이 한탄강과 임진강의 물길을 형성해 그 용암이 식으면서 지금의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들어 냈다. 재인폭포에는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인근 마을에 금실 좋기로 소문난 광대인 재인과 아름다운 부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재인의 부인을 탐낸 마을 원님이 재인을 없애기 위해 폭포 위에서 줄을 타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줄을 타던 재인은 원님이 줄을 끊어 버리는 바람에 폭포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만다. 원님의 수청을 들게 된 재인의 부인은 원님의 코를 물어 버리고 자결하게 되는데 이후 사람들이 이 마을을 ‘코를 문 마을’이라 했다고 한다. 이후 ‘코문리’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의 ‘고문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재인폭포 전망시설에는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현무암 협곡에 수줍은 듯 숨은 재인폭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스카이 워크 형태의 전망대(높이 27m)가 있다. [먹거리] ●야생 산야초로 입맛 돋우는 ‘고대산 금수강산’ 신서면 대광리 고대산 초입에 있는 음식점이다. 각종 산야초는 연천 여행에서 필수 ‘섭취 코스’다. 금수강산에서는 주인이 직접 채취한 야생 산야초로 담은 반찬이 입맛을 자극한다. 능이버섯과 더덕 등 약재를 넣은 백숙은 단골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졌다. 국물이 일품인 ‘산야초한방능이버섯백숙’도 대표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백숙에 넣어 주는 능이버섯의 크기와 양이 놀랍기만 하다. 동충하초를 넣은 보양 백숙도 유명하다. 애주가들은 식당 한쪽에 진열된 밀랍주와 산삼주 등 각종 약초주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031)834-1399 ●얼큰한 맛에 빠져드는 ‘아우라지 매운탕’ 아우라지는 한탄강과 영평천이 만나는 곳을 이르는 전곡읍의 한 지명이다. 30년 전통을 자랑한다. 국물은 맹물이나 쌀뜨물을 이용하고, 주로 냇물에 사는 물고기를 이용하는데 메기·쏘가리를 으뜸으로 친다.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위해 조개류·굴류, 각종 계절 향채 등을 넣는다. 주인이 한탄강에서 직접 잡은 참게, 메기, 빠가사리, 쏘가리 등 제철에 맞는 신선한 재료를 쓴다. 음식점 앞에는 주상절리가 있어 그 경치 또한 일품이다. (031)832-1513 ●붉은빛의 오묘한 즐거움 ‘청산막국수 초계탕’ 연천 3번 국도 초성리역에서 열두개울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간판이 보인다. 반찬으로 나오는 새콤한 물김치가 식욕을 돋게 한다. 이곳 초계탕은 다른 곳과 달리 약간 불그스름한 색을 띤다. 퓨전 형태지만 동치미 국물과 닭육수에 닭고기살과 각종 샐러드용 채소, 새싹채소, 밤, 도토리묵 등이 어우러지면서 오묘한 맛을 낸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난 뒤 말아 먹는 막국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찬 음식을 싫어하면 닭곰탕을 추천한다. 누룽지가 들어 있어 흡사 인절미를 먹는 것 같다. (031)835-6447 ●매콤 달콤 ‘한탄강오두막골 가물치구이’ 연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으로 가물치구이가 있다. 탕이나 즙을 내 보양식으로 먹는 가물치를 주인의 재치 있는 손맛으로 구워 먹도록 개발한 음식이다. 주인은 가물치가 한탄강에서 많이 잡히지만 마땅한 조리법이 없어 궁리하다 고추장 양념에 재운 뒤 굽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채 썬 듯한 고기를 양파와 섞어 구우면 상당히 많은 양의 기름이 흘러나온다. 키조개 관자 비슷한 식감에 고추장불고기처럼 달고 매콤한 맛이 난다. 비린 맛이 없어 쌀밥과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031)832-4177 ●계속 찾게되는 매운맛 ‘망향비빔국수 본점’ 전국에 국수 열풍을 불게 한 음식점이다.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5사단 신병교육대 정문 앞에 있다. 상당히 맵지만 며칠 지나면 또 군침이 돈다. 매운 걸 못 먹는 어린이들을 위한 아기국수도 있다. 비벼 나오는 정갈한 국수 위에 배 고물 등이 올라가 있다. (031)835-3575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청풍호’ 충북 제천 ‘내륙의 바다’

    ‘청풍호’ 충북 제천 ‘내륙의 바다’

    충북 제천은 산악도시라 부를 만하다. 시 경계를 따라 월악산 등 20여개 산들이 험준한 자태로 서 있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계곡을 따라 흐른 물은 강으로 이어진다. 물길이 막힌 자리엔 호수도 생긴다. ‘내륙의 바다’ 청풍호(충주호)도 그중 하나다. 제천은 물론 단양과 충주까지 넓게 자락을 펼쳤다. 산군의 중심부에 고인 호수이니만큼 주변에 빼어난 경승지들도 잔뜩 매달고 있다. 새 명소로 떠오른 청풍호 전망대에서 굽어본 풍경은 장쾌하고, 용담폭포의 옹골찬 모습도 인상적이다. 벚꽃이 진 요즘엔 신록이 꽃 보다 더 예쁜 풍경을 펼쳐 내는 중이다. 청풍호 주변엔 짙푸른 초원지대 망덕봉 초입엔 옹골찬 용담폭포 박달재엔 못다 이룬 사랑의 전설이 청풍호 일대는 요즘 초록이 지천이다. 대한민국에 이만한 초원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너른 초원지대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이 풍경, 아무때나 볼 수 없다. 초봄, 꼭 이맘때만 드러나는 ‘희귀 아이템’이다. 대부분의 호수들은 봄철 농경을 위해 물을 뺀다. 여름 장마철을 앞두고 저수용량을 높이려는 뜻도 있다. 이때를 놓칠세라 잡초들이 왕성하게 자라 호숫가 전체에 짙푸른 초원을 펼쳐 낸다. 올해는 극심한 봄 가뭄이 더해졌다. 그 ‘덕’에 초원의 폭이 조금 더 넓어졌고, 깊이 또한 깊어졌다. 따지고 보면 생명력 넘치는 듯한 초원은 사실 극에 달한 물 부족이 빚어낸 역설의 풍경인 셈이다. 여기서 짚고 갈 게 있다. 제천을 처음 찾는 이들은 꼭 묻는다. 왜 공식 명칭인 ‘충주호’가 아니고 ‘청풍호’냐고. 충남 부여 앞을 지나는 강을 금강이라 부르는 이는 없다. 대개는 백마강이라 부른다. 경기 여주를 지나는 강을 한강이 아닌 여강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굳이 제천시 측에서 내세우는 공식 논리를 들먹일 것 없이 ‘청풍호’가 지역의 특징과 자존심을 살린 이름이라 이해하면 될 듯하다. 청풍호 일대에서 요즘 주목받고 있는 곳이 청풍호 전망대다. 제천시에서 조성한 ‘자드락길’ 제7구간인 ‘괴곡성벽길’의 중간쯤에 있는 고갯마루에 조성된 쉼터다. 원래 괴곡성벽길은 옥순봉쉼터에서 출발해 괴곡리, 다불암을 거쳐 고수골에 이르는 9.9㎞ 길이의 난코스다. 소요 시간도 4시간을 훌쩍 넘긴다. 하지만 일반 관광객의 경우 들머리에서 청풍호 전망대까지 한 시간가량 오른 뒤 하산하는 게 보통이다. 옥순봉쉼터에 차를 두고 걸어서 옥순대교를 건너 5분쯤 걸으면 오른쪽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이 들머리다. 전망대까지는 제법 품이 드는 편. 40분 남짓 땀깨나 쏟아야 한다. 전망대에 서면 나무 솟대 너머로 옥순대교와 옥순봉, 말목이산 등 청풍호 북쪽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청풍호 전망대에서 위로 100여m 떨어진 곳에 백봉전망대가 새로 조성됐다. 여기 서면 청풍호 주변 풍경을 360도 돌아가며 감상할 수 있다. 하산 길에 산마루주막에 들러 막걸리로 목을 축여도 좋겠다. 갈림길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수산면 상천리 망덕봉 초입의 용담폭포는 한여름 물맞이 폭포로 유명하다. 옛날 중국의 주나라 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폭포를 보고 신하들에게 찾아오라고 명령했다는 바로 그 폭포다. 폭포수가 30m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이 승천하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용담폭포라 불린다. 폭포의 묘미는 주변의 바위들이다. 선 굵은 암릉이 폭포 좌우를 굳건하게 에워싸고 있다. 폭포 위는 선녀탕이다. 물이 오랜 세월 바위를 파 만든 세 개의 작은 소를 일컫는다. 물줄기는 ‘선녀의 요강’을 닮은 세 개의 소를 돌아 30m 아래 소(沼)로 떨어져 내린다. 용담폭포와 선녀탕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폭포 맞은 편의 바위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암릉은 급경사 구간이라 곳곳에 철계단과 로프가 설치돼 있다. 암벽 등반하듯 10분 정도 기어올라 바위전망대에 서면 장엄한 용담폭포와 선녀탕이 자태를 드러낸다. 눈을 돌리면 청풍호 뒤로 월악산 영봉의 날카로운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제천 남쪽의 박달재는 꼭 들르길 권한다. 1948년 발표된 유행가 ‘울고 넘는 박달재’로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얼마 전까지도 38번 국도가 지나던 곳이었으나, 재 아래로 터널이 뚫리면서 지금은 고개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정상 부근에 휴게소만 달랑 있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조각공원과 휴양림이 조성되는 등 볼거리가 제법 많아졌다. 특히 박달과 금봉의 조각상이 풍경의 ‘갑’이다. 낭패한 표정으로 금봉을 잡으려는 박달과 그의 손이 닿긴 했으되 속은 뻥 뚫린 모습의 금봉이 세워져 있다. 한 편의 신파극을 보는 듯해 얼핏 실웃음도 터져 나오지만, 얽힌 내용을 곱씹어 보면 그리 웃을 일만은 아니지 싶다. 둘의 사연은 사실 뻔하다.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경상도 선비 박달이 고개 아랫마을에 살던 금봉과 사랑에 빠졌고, 과거에 낙방한 박달을 기다리다 금봉이 세상을 뜨자 뒤늦게 제천을 다시 찾은 박달도 시름시름 앓다 금봉의 뒤를 따랐다는 게 얼개다. 러브 스토리만큼이나 조각상에 담긴 뜻도 뻔해 뵈지만, 박달이 가졌을 허망함과 회한을 곱씹어 보면 몸 전체에 구멍이 뚫린 금봉의 조각상이 더할 수 없이 애잔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제천 여행 팁 하나. ‘관광 마일리지’는 꼭 챙기시라. 제천시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독특한 마케팅 전략으로, 관광안내소에서 마일리지 카드와 가이드북을 받아 제천 여행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한 뒤 제천의 관광지나 체험 여행지에 있는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인증하거나 스탬프를 찍으면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제도다. QR 코드 인증 시 최소 500원에서 최대 5만원까지 복권 방식으로 마일리지를 적립받을 수 있다. 스탬프 북에 스탬프를 찍으면 5000원에서 1만원까지 현금 기프트카드를 지급받는다. 적립한 마일리지는 제천 시내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제천역, 박달재, 청풍호 전망대 등 주요 관광지 18곳과 체험 여행지 28곳에 QR 인증코드 안내판과 스탬프가 설치돼 있다.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은 45개다. 제천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tour.okjc.net) 참조. 글 사진 제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43) 약선 떡갈비에 매운탕 한 그룻, 유기농 야채 우렁쌈밥까지…먹는 재미도 쏠쏠 →가는 길:제천의 명소들은 대부분 시내 남쪽, 그러니까 청풍호와 인접한 지역에 몰려 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간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좋다. 여기서 82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금성면 소재지를 지나 청풍대교 삼거리에서 왼쪽 20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금수산 입구 삼거리까지 간 다음 왼쪽 도로로 접어들면 상천리 금수산 주차장이다. 단양 나들목으로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단성면 소재지→36번 국도 충주 방향→원대삼거리→옥순대교→금수산 입구 삼거리→우회전→주차장 순으로 간다. 어느 길을 택하든 늦봄의 정취 가득한 청풍호를 차창에 매달고 달릴 수 있다. 제천의 대표 아이콘인 의림지를 먼저 보겠다면 제천 나들목으로 나와 의림지와 ‘울고 넘는’ 박달재, 배론성지 등을 묶어 둘러본 뒤 남제천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순서다. 국도 나들이를 즐긴다면 38번 국도를 타고 경기 이천에서 장호원, 감곡 방향으로 가다 박달재를 넘어 597번 지방도를 타면 청풍호까지 갈 수 있다. 주말에는 38번 국도도 막히는 경우가 있지만 영동고속도로보다는 덜한 편이다. 청풍호리조트 인근의 청풍힐호텔 한방 사우나는 산행 뒤 피로를 풀기 좋은 곳이다. →맛집:청풍호 주변에 이름난 집들이 많다. 황금가든(647-6303)은 건강식 떡갈비로 근동에서 대단한 명성을 날리는 집이다. 울금으로 맛을 내는 게 독특하다. 교리가든(648-0077)은 민물 매운탕이 맛있는 집이다. 닭볶음탕 등도 끓여 내지만 주메뉴는 역시 청풍호에서 잡은 빠가사리 등 잡고기로 만든 매운탕이다. 두 집 모두 청풍리조트 인근에 있다. 꽃피는산골은 토속적인 향이 물씬 풍기는 된장국과 보리밥이 맛있는 집이다. 수산면 능강리 솟대문화공간 인근에 있다. 산아래(646-3233)는 유기농 야채를 곁들인 우렁쌈밥을 내는 집이다. 봉양읍에 있다. 외진 곳인데도 점심 시간엔 제법 붐빈다. 제천 시내에선 명가 박달재(070-8825-1501)가 약선 떡갈비로 이름난 집이다. 천연 재료로 만든 조미료만 써 맛이 담백하다. 화사한 맛에 길들여진 도시인들에겐 다소 텁텁하게 느껴질 수 있다. 장락동에 있다. 간식거리로는 ‘빨간 오뎅’이 이름났다. 매콤한 고추 양념에 어묵 꼬치를 적셔 낸다. 화산동에 있다. →잘 곳:제천 주변에 이름난 리조트가 많다. 박달재 인근엔 리솜 포레스트 리조트가 있다. 깊은 숲 속에서 우아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청풍리조트(640-7000)는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곳. 객실창 너머로 물안개 핀 청풍호와 월악산 영봉이 넘실댄다. 한국관광공사의 호텔 체인 ‘베니키아’ 가입 업체로 식사와 사우나 등 부대업장의 가격도 저렴하다. 충주 쪽에선 수안보 한화리조트를 추천할 만하다. 제천 수산면과 가깝다. 단양 쪽에선 대명 리조트가 첫손에 꼽힌다. 단양 한복판에 있어 단양 8경 등과의 연계 관광이 수월하다. 제천 시내에선 서울관광호텔(651-8000)이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 [열린세상]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 사라진 가족사진/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 사라진 가족사진/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달 손주 녀석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구청 청소년회관을 빌려 발표회를 한다기에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했다. 재롱잔치가 시작되기 전, 초대받은 손님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려, 무대 한쪽에선 원아(園兒)들의 가족사진을 주제로 한 슬라이드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사진 속에는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음 짓는 주인공들 모습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무심히 지나쳤는데 슬라이드가 여러 차례 돌아가는 동안 슬그머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은 엄마 아빠 혼자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족이 10쌍 중 최소 1~2쌍에 이른다는데, 조부모가 손자 손녀를 돌보는 조손(祖孫) 가족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는데, 심지어 결혼이주가족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데, 사진 속 가족은 하나같이 엄마 아빠에 한두 명의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슬라이드 쇼에 등장했던 가족사진 중엔 한부모 가족이나 조손 가족임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아 부부가 이혼하기 전 행복했던 시절 찍어두었던 사진도 있었을 것이요, 다문화가족임이 부끄러워 가족사진을 숨긴 경우도 있었을 게다. 사진 속에만 남아있는 엄마 아빠의 웃는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모름지기 가족이란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있어야 ‘정상’이란 고정관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른바 비정상가족에 대한 사회적 낙인 및 편견이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실제로 가족이라 부르기 민망할 만큼 서로에게 소원한 ‘빈 조개껍데기 가족’의 경우에도, 사실을 숨긴 채 밖을 향해 높은 성벽을 쌓고 겉으로 화목하게 사는 것처럼 위장하는 ‘요새가족’을 유지하는 경우가 늘어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부모 가족이나 다문화 가정처럼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가족의 현실이 가족사진 속에서 ‘정상가족’으로 위장되고 있는 건 아니겠는지. 뿐만 아니라 예전 안방이나 마루 한복판에 걸려 있던 가족사진 속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옆으로 뒤로 엄마 아버지 작은아버지 삼촌 외삼촌 고모 이모들이 죽 줄지어 서고 손자 손녀들이 가득했었는데, 확대가족의 번화한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은 이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희소해졌다. 하기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 보니 ‘아니요’라고 답한 학생들 숫자가 10년 전에 비해 8배 이상이나 증가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함께 살지 않기에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걱정되는 건 이제 고령화에 힘입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기본이요,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도 살아 계시고, 때론 고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께서도 살아 계실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는데, 함께 사는 엄마 아빠만 가족이라 생각한다면 진정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구학자이자 미래학자인 토레스 길은 향후 인류 최대의 과제는 4세대 이상의 다세대(多世帶) 사회가 등장하면서 세대 간 공존의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최대의 사회적 과제로 부각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이제 방법은 유치원 때부터 살아있는 생생한 가족교육을 시작할 필요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한부모 가족이든, 조손 가족이든, 다문화 가족이든, 장애인 가족이든 놀림이나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함께 어울리고 서로 돌봐주어야 할 우리의 이웃임을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요, 함께 살지 않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모두 엄마 아빠를 낳고 길러주신 진짜 가족임을 경험하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유치원에서부터 가족을 주제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요 이모 삼촌에 사촌 동생에다, 가족처럼 친근하게 지내는 우리 이웃들까지 포함하는 다채로운 가족사진을 모아보는 건 어떻겠는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이 가족 풍경에서 사라진 자리에 핵가족만 남아 있음은 역설이요, 사진 속에서만 핵가족의 행복을 시연해 보이는 것은 위선일 게다. 가족은 스스로의 모습에 솔직할 때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어린 시절부터 느끼고 생각도록 해 주는 일, 작은 아이디어만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 생방송 중 거대 파도에 휩쓸리는 女기자 포착

    생방송 중 거대 파도에 휩쓸리는 女기자 포착

    21일 호주방송 ‘9news.com’는 지난 20일(현지시간) 프랑스 브르타튜 생말로에서 BFMTV 날씨 뉴스를 전하던 파니 아고스티니(Fanny Agostini) 기자가 거대 파도에 휩쓸리는 아찔한 상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영상에는 중세의 성벽과 탑으로 유명한 바위섬 몽생미셸 주변에서 생방송 뉴스를 전하려는 아고스티니의 모습이 보인다. 스튜디오에서의 진행 멘트가 이어지고 그녀가 리포팅을 하기 위해 서 있다. 곧이어 그녀 뒤로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일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사람들의 성화에 고개를 돌려 파도를 확인한 그녀가 손을 저으며 방송을 끊을 것을 요구하지만 거대한 파도는 이미 그녀와 스태프들을 덮치고 지나간다. 잠시 후, 화면에서 사라진 아고스티니가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로 카메라 앞에 나타나 방송 뉴스를 이어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고스티니가 웃음을 머금은 채 리포팅을 이어가자 스튜디오 진행자들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준 그녀의 영상은 지난 19일 유튜브에 게재된 지 이틀 만에 20만 46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BFMTV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新국토기행] 충북 제천시

    [新국토기행] 충북 제천시

    “천년의 솔향이 묻어나는 의림지, 옥순봉의 절경을 담은 내륙의 바다 청풍호,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한 금수산, 잠시 머물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제천에서 마음껏 웃고 즐기고 머물다 가시옵소서.” 충북 북부에 있는 제천시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보유해 휴양지로 뜨는 곳이다. 약초의 고장으로 2010년 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를 개최하는 등 한방산업이 발달해 건강이 가득한 자연치유도시로도 불린다. 바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자연과 문화를 즐기며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곳으로 인정받아 수산면과 박달재는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김진형 부시장은 “우리 고장은 건강한 기운이 가득해 힐링을 하기에 제격”이라며 “상반기에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돼 관광은 물론 산업 분야에서도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는 13만 6000여명, 1980년 시로 승격됐다.[볼거리] ●번지점프·유람선 등 청풍호 즐길거리 풍성 제천이 휴양 관광지로 뜨는 데 일등 공신은 단연 청풍호다. 청풍호는 1985년에 준공한 충주댐으로 인해 조성된 인공호수다.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에 걸쳐 있다. 제천에서는 청풍호라 부르고, 충주 지역에서는 충주호라 부른다. 청풍호는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담수량이 많다. 면적 67.5㎢, 평균 수심 97.5m, 저수량 27억 5000t에 달한다. 이 중 제천시의 담수 면적이 호수 전체 면적의 약 60%를 차지한다. 청풍호에 오면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 난다. 아름다운 풍광을 이용해 청풍호 주변에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랜드, 활공장, 수상 레포츠장 등이 마련돼 외지인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단양의 장회나루까지 유람선도 운행된다. 유람선을 타면 그림 같은 호반의 풍광이 연인처럼 따라다닌다. 국도 82번 도로를 타고 청풍면 쪽으로 달리는 청풍호반 길은 자연풍광과 레저휴양시설이 조화를 이루며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청풍호가 생기면서 수몰민이 발생, 상당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등 고통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제천의 보물이다. ●한 해 13만명 찾은 모노레일 ‘필수코스’ 청풍호 주변 관광지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다. 모노레일은 시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총 42억원을 투자해 만들었다.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마을에서 비봉산 정상(해발 531m)까지 23분이면 갈 수 있다. 걸어서 가면 1시간 이상 걸린다. 하산할 때도 모노레일을 이용할 수 있다. 모노레일의 총 길이는 2.94㎞. 6인승 12대가 설치돼 있다. 모노레일의 인기 비결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마련된 비봉산 정상에서 청풍호의 장관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봉산 정상에 서면 청풍호와 함께 월악산과 옥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물의 기막힌 조화에 많은 관광객이 최고라는 찬사를 보낸다. 지난해 13만명이 모노레일을 이용했다. 인터넷 예약 70%, 현장판매 30%로 이용권을 판매하는데 인터넷 예약은 서둘러야 원하는 날 이용할 수 있다. 신영철 시 관광시설팀장은 “통영의 다도해 전경보다 비봉산 정상에서 눈에 들어오는 청풍호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고 자랑했다. 이용료는 어른 8000원, 어린이 6000원, 장애인 3000원이다. 동절기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우륵도 반한 ‘국내 最古’ 저수지 의림지 풍경 ‘제천 10경’ 중 ‘제1경’인 의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삼한시대 축조됐다. 본래 이름은 임지였다. 고려 성종 11년(992) 군현 명칭 개정으로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면서 이후 제천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됐다. 현재까지도 수리시설로 활용되지만 지금은 유원지로서 명성을 더해 가고 있다.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세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3대 악성 가운데 한 명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와 그가 마시던 샘인 우륵정도 남아 있다. 시가 의림지 주변에 목조 산책길과 수경분수, 인공폭포, 공연시설까지 꾸몄다. 의림지 야경은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렌즈에 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의림지 수심은 8~13m, 호반 둘레는 2㎞에 이른다. 겨울철 의림지에서 잡히는 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로 각광받는 명물이다. ●‘동양 알프스’ 월악산… ‘단풍 절경’ 금수산 ‘동양의 알프스’로 불리는 월악산은 우리나라 5대 악산에 속하는 명산이다. 거칠고 높은 산만큼이나 깊고 아름다운 골짜기에 숲과 계곡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송계계곡, 용하구곡 등이 유명하다.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을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도 간직하고 있다. 송계에서 보면 영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의 행진이 장엄하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등산로는 덕주사 코스. 영봉까지로 산행 시간은 3시간 정도다. 제천과 단양에 걸쳐 있는 금수산의 본래 이름은 백암산이었다. 그러나 1548년 단양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이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고 해 금수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름에 걸맞게 산세가 수려하고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뤄 사시사철 어느 한 모습도 놓치고 싶지 않은 산이다. 특히 가을이면 고운 단풍이 아름답다. 높이 30m의 용담폭포, 아득한 전설을 간직한 선녀탕, 무암사, 정방사 등이 있다. ●청풍호반 둘러보는 자드락길 7개 코스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작은 오솔길을 의미하는 자드락길은 청풍호반과 어우러진 정겨운 산촌을 둘러보는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청풍호의 시원한 바람과 은은한 약초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새로운 ‘나’를 만나 볼 수 있다. 자드락길은 7개 코스로 총 58㎞에 달한다. 청풍면 만남의 광장에서 시작되는 1코스 ‘작은 동산길’은 자드락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작은 동산에 오르면 아기자기한 섬 같은 산들과 호수가 조화를 이룬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2코스인 ‘정방사길’은 금수산에 위치한 정방사로 가는 길이다. 66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정방사는 의상대라는 웅장한 암벽 아래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절벽 아래 지어진 제비집을 떠올리게 하는 정방사에서 바라보는 월악산 영봉과 호수 아래 노을이 장관이다. 3코스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생기는 동굴을 볼 수 있는 ‘얼음골생태길’, 4코스는 상천 산수유마을을 지나 용담폭포에 이르는 ‘녹색마을길’, 5코스는 청풍호와 옥순대교까지 이어지는 ‘옥순봉길’, 6코스는 삼국시대에 쌓은 성벽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괴곡성벽길’, 7코스는 한방의 도시 제천을 실감하는 향기로운 약초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약초길’이다. ●박해받던 천주교의 피땀 서린 배론성지 봉양읍에 있는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1801년 신유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이 숨어 지낸 곳이다.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 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1855년부터 1866년까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신학교가 있었다. 또한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 천주교의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무덤도 있다. 현재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한옥 누각성당인 배론본당,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피정의 집, 조각공원, 문화영성연구소 등이 들어서 있다. ‘배론’은 이곳의 지형이 배 밑바닥 모양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먹거리] ●‘약초의 고장’ 대표 한방음식, 약채락 시는 약초의 고장답게 ‘약채락’이란 한방고유음식 브랜드를 만들어 다양한 한방음식을 개발,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2008년 가장 먼저 개발된 약채락 비빔밥은 누구나 좋아하는 비빔밥에 지역에서 생산되는 뽕잎, 황기잎, 오가피잎, 그리고 황기, 당귀, 오가피 추출액을 넣어 특허를 취득한 약초고추장으로 만들어졌다. 향긋한 약초 향이 입안에 가득해 마치 보약을 먹는 듯하다. 아이들이 먹기 좋게 강하지 않은 약초를 첨가해 만든 약초돈가스와 약채롤가스도 있다. 황기 등을 이용해 푹 우려서 만든 담백한 육수에 신선한 갈비를 넣어 만든 약채갈비전골정식, 신선한 채소를 굽거나 튀기지 않고 쪄서 조리해 채소의 영양분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는 약채통밥정식, 약초가 들어간 약소스와 고소한 차돌 부위가 어우러진 한방소스차돌구이도 개발됐다. 밀가루 음식 마니아들을 위해 황기를 넣어 만든 면과 약초를 넣어 푹 우려낸 육수로 탄생한 약채칼국수, 직접 뽑은 메밀과 황기 약고추장, 건강육수를 사용하고 약채나물을 고명으로 올린 홍메밀 등 면요리도 있다. 최근에는 청풍호에서 잡은 잉어와 감칠맛 나는 소스가 만난 잉어약채스테이크, 황기를 이용한 육수로 만든 황기어묵정식, 제천의 당귀와 뽕잎이 함유된 약채빵도 만들어졌다. 약채락 음식은 지역 내 17개 음식점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피로 해소 등에 좋은 고본으로… 월악산 고본주 월악산 고지대에서 자라는 불로초인 고본과, 회향, 오미자, 계피, 대추, 감초 등 다양한 한약재를 소주에 담가 1년 이상 숙성시켜 만든 전통 토속주다. 고본의 뿌리를 잘게 썰어 약재처럼 넣기도 하고, 뿌리 그대로 술에 담가 놓기도 한다. 고본의 뿌리는 특이한 향에 매운맛을 내며 따뜻한 약성을 갖고 있다. 고본주가 탄생한 것은 가을에 뿌리를 캐서 말린 고본이 두통·관절통·치통·복통·설사·습진·식욕부진·피로 해소 등에 효과가 있어서다. 이를 안 월악산 인근 한수면 주민들이 고본 뿌리의 독특하고 자극적인 향을 줄이고 약효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정에서 약술을 담가 먹었다. 이후 월악산을 찾은 외지인들이 고본주를 마셔 본 이후 전국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에 제천시의 지원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됐다. 현재는 제천 지역과 인근의 충주 수안보 지역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고본주의 알코올 도수는 25도. 720㎜ 1병에 2만원이다. 월악주조 박민성(45) 대표는 “고본이 혈액순환에 좋기 때문에 고본주를 마시면 금방 얼굴이 달아오르지만 숙취 해소도 빠르다”고 말했다. 시는 2010 제천 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 개최를 맞아 2010병의 소주와 대량의 고본을 대형 항아리에 담아 술을 만들어 국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고본은 월악산 국립공원 일대에서 채취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좋구나, 송어 민물비빔회 제천 지역엔 바다가 없지만 충주댐 건설로 청풍호가 생기면서 민물고기 자원이 풍부하다. 그래서 민물고기를 이용한 각종 요리가 발달돼 있다. 청풍면에서는 바다 한치회를 응용한 담백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민물고기 비빔회가 유명하다. 요리방법은 간단하다. 굵게 썬 민물고기와 오이, 당근, 양배추, 미나리, 쑥갓, 깻잎, 풋고추 등에 초고추장 양념을 넣어 골고루 버무리면 된다. 비빔회로 가장 많이 먹는 것은 향어와 송어다. 색이 붉은 송어는 칼슘 함량이 높으며 비타민 A와 B가 풍부해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알려졌다. 향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씹는 감촉이 좋다. 비린내가 적고 잔가시가 없어 먹기가 좋다. 저지방 식품으로 고혈압, 성인병, 비만 예방, 피부 미용에도 좋다. 의림지 주변에서는 빙어를 식용유에 튀긴 후 고추장 양념을 발라 먹는 도리뱅뱅이가 유명하다. 빙어를 냄비에 동그랗게 돌려 조리한다고 해 도리뱅뱅이로 불린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씨줄날줄] 위기의 풍납토성/서동철 논설위원

    지난해 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풍납토성의 축조 당시 높이가 13.3m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남은 토성의 높이는 5m 남짓이지만 백제시대에는 5층 높이의 타원형 성벽이 3.5㎞ 길이로 정연하게 쌓여 있었다는 뜻이다. 당나라 ‘통전’(通典)에 기록된 인부 한 사람당 작업량을 대입하면 수축에 연인원 138만명이 투입됐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삼국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쌓은 토성의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나고, 투입된 인원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축성 주체가 대역사(大役事)를 감당할 만큼 확고한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풍납토성은 오늘날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지위를 굳혀가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 및 연구로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운 증거가 확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풍납토성을 백제와 연결시키는 학계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왕성 외곽의 수비성인 사성(蛇城)이라는 학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서울대 발굴조사에서도 하남 위례성과 같은 시기 축조된 반관반민적(半官半民的) 읍성으로 규정했다. 이런 고정관념을 뒤집고 ‘풍납토성은 곧 백제왕성’이라는 등식을 만든 주역은 고고학자인 이형구 선문대 명예교수다. 대만에 유학하던 시절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나 노나라 같은 고대국가의 도성(都城)이 대부분 강을 끼고 있는 평지에 진흙을 개어 켜켜이 쌓는 판축토성(板築土城)이었음을 확인했던 그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풍납토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풍납토성 내부에서 고층 아파트 건설공사가 벌어지던 1997년 신정 연휴기간 현장에 잠입해 기원 전후로 추정되는 백제시대 토기와 기와, 목재 더미가 파괴되는 현장을 확인했다. 풍납토성 내부에서는 어떤 공사도 발굴조사를 선행하는 규정이 생기는 계기였고, 결국 경당연립 재건축을 위한 발굴조사에서 초기 백제 유적과 유물이 대거 쏟아졌다. 이후 풍납토성은 장기적으로 내부 주민 전체를 외부로 이주토록 해 보존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방침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최근 문화재청은 뜻밖에 이른바 ‘문화재와 주민의 공존’을 추진하는 내용의 ‘풍납토성 보존·관리 및 활용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한 마디로 토성 내부 지역도 층수 제한은 있지만 재건축을 포함해 개발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얼마 전 춘천 중도 유적에 ‘레고랜드’를 허용하면서도 ‘활용과 보존의 상생’을 내세웠다. 풍납토성의 ‘문화재와 주민의 공존’도 같은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보존과 개발의 조화’는 건설업자의 견강부회는 될 수 있을지언정 문화재청의 논리여서는 안 된다. ‘보존’에 목숨을 걸어도 시원치 않을 정부기관이 먼저 ‘활용’을 이야기하는 순간 ‘상생’이나 ‘공존’이 물 건너 간다는 것을 모르나.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문경새재 제1관문 성벽 ‘건강’ 되찾는다

    문경새재 제1관문 성벽 ‘건강’ 되찾는다

    문경새재의 상징인 제1관문(주흘관·국가사적 제147호) 성벽이 전면 보수된다. 문경시는 올해 상반기에 국비 등 총 2억원을 들여 문경새재 제1관문의 성벽을 전면 보수한다고 14일 밝혔다. 조선 숙종 35년(1708년)에 축조돼 300년 이상 문경새재를 지키고 있는 성벽 동측 부분이 수년 전부터 배부름 현상을 보여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는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계측조사를 의뢰했고 해체 복원 결론이 내려졌다. 문화재연구소 등은 당시 관문의 동쪽 수문 상부 10m 구간에서 석축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으로 성벽이 경미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상중하 모든 지점에서 7㎜ 이상 위치가 변형되는 변위현상을 확인했다. 성벽 배부름 현상은 성벽 윗부분에서 스며든 빗물 등의 영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윗부분을 강회점토로 다져 배수 처리가 자연스럽게 되도록 보수할 예정이다. 시는 이와 함께 성벽 뒤편 누문으로 오르는 등성 계단의 이탈 현상도 바로잡을 계획이다. 시는 또 문경새재 성곽의 올바른 보존과 관리를 위해 종합정비계획도 세우고 제2관문 수구복원 등 연차적으로 성곽 복원과 보수를 병행해 나갈 방침이다. 엄원식 문경시 문화재계장은 “주흘관이 당장 붕괴될 정도는 아니지만 혹시 모를 위험을 막기 위해 보수 공사를 벌이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조선시대 성벽 중 수원화성을 비롯해 김포 문수산성, 청주 상당산성 등이 문경새재와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