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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광고 엿보기] 대중잡지 ‘별건곤’ 창간호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대중잡지 ‘별건곤’ 창간호 광고/손성진 논설고문

    1920년에 창간된 ‘개벽’은 항일 논조 때문에 일제에 의해 40회 이상 압수를 당하고 1회 정간을 당하는 등 탄압을 받은 끝에 1926년 강제로 폐간당한 시사종합지였다. 개벽 폐간 몇 달 후 개벽의 명맥을 이어 ‘별건곤’이 창간됐다. 별건곤은 1929년 발행된 ‘삼천리’와 쌍벽을 이룬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대중잡지였다. 별건곤은 ‘이 세상 밖의 다른 세상’이란 뜻으로 ‘별세계’와 같은 의미다. 별건곤의 발행인 이을은 개벽의 광고 책임자였고 1년 후 차상찬으로 바뀌었다. “웃음 없는 조선에 웃음의 꽃이 벌어지고 활기 없는 강산에 활기가 넘치리니 지체 말고 하루바삐 주문하여 읽어 보라.” 광고 문구처럼 개벽과 달리 별건곤은 대중의 ‘취미 증진’을 목적으로 한 대중잡지였다. 민족 계몽보다는 문예, 흥미, 오락, 여가에 관한 가벼운 읽을거리를 실었다. 편집 후기인 ‘여언’(餘言)에 “아픈 생활에서 때때로는 웃어도 보아야겠다. 웃어야 별수는 없겠지마는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것도 아니다”라고 쓴 데서도 편집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시사 문제는 마음대로 다룰 수 없어 대중지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은 연예 대중지가 번성한 1960, 1970년대와 비슷하다. 1926년 11월호 창간호에는 소설, 시, 수필, 풍자, 논설, 번역, 방문기, 전기(傳記), 상식, 경험담, 탐기(르포), 애화(哀話), 실화, 야담, 수기, 괴담, 만담(코미디) 등 거의 모든 장르의 글들이 실렸다. 창간호 표지 그림은 성벽 밑에서 말을 탄 조선인을 그린 동양화풍의 채색화다. 특히 1927년 2월부터 2년 동안 실은 서울의 대낮과 한밤중 세태를 탐사한 ‘대경성(大京城) 백주 암행기’와 ‘대경성 암야 탐사기’가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 여학생 기생, 마약중독자, 인신매매범 등 대도시 경성의 낮과 밤을 휘젓던 인물들의 모습을 낱낱이 파헤쳤다. 음습한 뒷골목이나 재판정과 경찰서, 직업소개소, 토막민 생활 등 식민지하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탐방기사였다. 200쪽가량에 50전에 판매되던 별건곤은 경쟁지들이 나오면서 1932년부터는 60쪽 정도 분량에 값도 5전으로 인하했다가 1934년 8월에 종간됐다. 5전으로 값을 내린 뒤 더 자극적인 기사를 실었고 독자층도 일반 대중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발행 3일 만에 절판된다고 해서 ‘삼일 잡지’, ‘절판 잡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별건곤은 잘 팔렸다. 독자는 대략 1만~2만을 헤아렸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한 숫자였다. 별건곤은 온 마을 사람들이 돌려볼 정도로 인기를 끈 잡지였으므로 실제 독자나 영향력은 그보다 훨씬 많고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2000년 전 마차 폼페이에서 발굴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2000년 전 마차 폼페이에서 발굴

    네 바퀴를 단 2000년 전의 폼페이 마차는 금방이라도 질주할 것만 같다. 정말로 보존 상태가 너무나 완벽해놀라울 정도다.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이 2018년 세 마리 말의 유해가 발굴된 마굿간 근처에서 고대 폼페이인들이 축제나 퍼레이드를 벌일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마차를 완벽한 형태로 발굴했다고 영국 BBC가 27일(현지시간) 전했다.이번에 발견된 곳은 고대 도시의 북쪽 성벽 근처인 치비타 줄리아나에 있는 고대 빌라의 마굿간과 연결된 2층 짜리 포르티코(portico·주랑 현관)이다. 마굿간에서 발견된 말들 가운데 한 마리에는 마구까지 채워져 있었다. 폼페이 유적공원은 이날 성명을 내 의전용 마차가 “철제 요소, 아름다운 청동과 양철 장식”은 물론 밧줄, 꽃장식까지 “거의 온전하게” 발굴됐다고 밝혔다. 공원 측은 지난달 7일 마차의 흔적이 눈에 띈 뒤 몇주에 걸쳐 마차 전체를 완벽하게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워낙 부서지기 쉬운 성분도 있어 플래스터 몰딩이란 특수 기법까지 동원하며 섬세하게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혹시 불법 도굴을 위한 터널 같은 것이 있을지 몰라 현지 검찰과 협조하며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고 했다.이번 발굴은 이탈리아 전역을 망라해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고 했다. 마시모 오산나 발굴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발굴은 고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우리를 진전시킬 특별한 것”이라며 여러 행사는 물론 결혼식에도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를 들어 신부를 시댁에 데려가는 데 이용됐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서기 79년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해 두꺼운 재가 온 도시를 곧바로 뒤덮는 바람에 이 도시는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것들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나폴리에서 남동쪽으로 23㎞ 떨어져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닫혀 있다.다리오 프란체스치니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은 폼페이가 “계속 우리를 황홀하게 만드는데 몇년 동안은 그럴 것이다. 아직도 파헤쳐야 할 땅이 20헥타르(0.2㎢)나 된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 개념으로는 아주 작은 단위로 받아들여지지만 고고학자 입장에서는 방대한 면적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부소산성에 백제 성벽 서문 터 추정 시설이…

    부소산성에 백제 성벽 서문 터 추정 시설이…

    충남 부여 부소산성에서 백제 성벽과 서문 터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부여군과 백제고도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부여 부소산성(사적 제5호)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백제 성벽과 서문 터 추정 시설, 통일신라부터 고려에 걸쳐 쌓은 성벽을 발견했다고 23일 밝혔다.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도읍기(538∼660) 왕궁으로 추정되는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 북쪽에 있고, 왕실의 후원이자 유사시 도피처로 활용됐다.문화재청이 지난해부터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서성벽 성문 흔적과 백제 ‘포곡식 성’(계곡을 감싸도록 성벽을 쌓은 성)의 동선, 배수 및 출입 관련 시설이 확인됐다. 또 부소산 남동쪽 정상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통일신라 ‘테뫼식 성’(정상부를 둘러 쌓은 성)의 축조 방식과 시기마다 달라지는 성벽의 변화 양상을 파악했다. 부소산성 백제 포곡식 성은 기본적으로 판축(흙을 켜켜이 다져 올리는 축조법)으로 축조됐다. 이외에 판축 외벽만 돌로 쌓은 양상, 두 겹 이상 판축한 모습, 내벽 경계에 석재를 이용해 배수로를 설치한 방식 등이 확인됐다. 서성벽 구간은 부소산성 성벽 가운데 중심 토루(흙을 다져 쌓아 올린 성벽)가 가장 견고하고 반듯한 상태로 확인됐다. 성벽의 판축층 너비는 약 4.8∼4.9m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최대 4.4m 정도다.추정 서문 터 지점은 부소산 남쪽 기슭의 추정 사비 왕궁지에서 백제 사찰 터인 서복사지를 거쳐 성 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문화재청은 “암거 상부구조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 주변으로 ‘문지공석’(성문 문짝 고정용 기둥을 끼우려고 구멍을 낸 돌), 원형 초석, 잘 다듬은 대형 가공석들이 산재해 출입 목적의 구조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백제와 통일신라 성벽이 연접한 지점에서는 백제 성벽 위로 통일신라 테뫼식 성벽이 축조됐다. 성의 외벽은 기존 백제 성벽을 고쳐 사용했지만, 내벽은 백제 성벽 위에 기단석축을 덧붙여 만들었다. 성벽 축성과정 중 유입된 ‘회창 7년’(會昌七年)이란 새겨진 명문 기와가 출토돼 성벽 조성 시기는 9세기 중반으로 추정됐다. 회창(會昌)은 당나라 무종 때 연호로, 회창 7년은 847년을 말한다. 문화재청은 “이번 서성벽과 추정 서문 터 확인을 통해 성벽의 실체와 축성 기술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이런 성과는 최근 한성기와 웅진기 왕성인 풍납토성, 몽촌토성, 공산성의 최근 발굴 성과와 함께 백제 중앙의 수준 높은 축성 기술과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 현장을 문화재청과 부여군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수신료 받아 북한에?” KBS 수신료 인상안에 ‘평양 지국 개설’ 포함(종합)

    “수신료 받아 북한에?” KBS 수신료 인상안에 ‘평양 지국 개설’ 포함(종합)

    평양지국 개설 연구용역 등에 28억,北 취재시스템 강화에 26억 책정박대출 “친북 코드 맞춘 수신료 인상,원전에 공영방송까지 ‘北 퍼주기’ 열려”KBS “남북관계 개선여부 따라 확정”KBS, 수신료 54% 인상안 상정KBS 직원 “불만 많네, 능력되면 입사해” 글 野 “정권 나팔수, 억대 연봉 자랑에 조롱을”나경원 “수신료? 방만경영부터 바로잡아야”공영방송 한국방송공사(KBS) 이사회가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월 3840원으로 54% 인상하는 안을 상정해 논란이 이는 가운데 인상 명분으로 20억원 이상의 예산을 북한 평양에 지국을 개설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한 530건의 문건 파일 중에 ‘북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추진 방안’ 등 북한 원전 지원 관련 문건이 17건 포함돼 ‘국내는 탈원전, 북한은 원전 지원’이라는 논란이 일어난 직후라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 관련 부정확한 보도로 혼란 사례빈번해 평양 지국 개설 필요” 28억 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KBS는 ‘2021년 1월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조정안’ 자료에서 2025년까지 5년간 공적 책무를 위한 중장기 계획안으로 평양지국 개설 추진을 포함시켰다. “북한 관련 부정확한 보도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 사례가 빈번히 발생해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 보도를 위해 평양 지국 개설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자료에는 “방송사 지국 개설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라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극적이고 상징적인 조치”란 문구도 담겼다. 특히 KBS는 ‘통일방송 주관 방송사’를 명시하기 위해 연구용역과 전문가 학술회의 명목의 사업예산으로 28억 2000만원을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남북공동선언 기념 평양 열린음악회평양 박물관 다큐제작에 28억 책정 또 평화·통일 공감대를 확산하는 콘텐츠 기획을 위해 6·15 남북공동선언과 8·15 광복절을 기념하는 평양 열린음악회와 평양 노래자랑을 열고,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수천점을 3D 등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업에도 28억 4000만원의 예산안을 따로 책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KBS는 가장 신뢰하는 북한 관련 뉴스를 보도하겠다며 ‘북한 관련 취재 보도 시스템 강화’를 위해서도 26억 6000만원의 예산안을 별도 상정했다. 이를 위해 북·중 접견지역에 순회 특파원을 파견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박대출 의원은 이러한 KBS의 평양지국 개설 등을 포함한 수신료 인상 방안에 대해 “현 정권과 여당의 친북 코드에 맞춰 KBS가 수신료 조정안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원전에 공영방송까지, ‘북한 퍼주기’의 판도라상자가 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 측은 “해당 사업 계획은 남북관계가 어떻게 개선되는지 여부에 따라 확정된다”면서 독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밝혔다.네티즌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수신료 인상해 북에 갖다주느냐”“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잊었나” 소식을 전해들은 네티즌들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힘든 시기에 세금 같은 수신료를 인상해 북한에 갖다 주려고 하느냐”, “방만 경영에 편파 방송 논란도 모자라 수신료를 인상해 북한에 지국을 세울 계획이냐. 수신료 거부 운동을 벌여야 한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된 것을 잊었느냐”는 등 우려가 쏟아졌다. 북한은 지난해 대북 전단 살포를 이유로 대남비방전에 나선 이후 남한 혈세 180억원을 들여 만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한마디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폭파시켰다. 한국 정부는 유감을 표명했고 국제사회도 북한의 이러한 태도를 규탄하고 나섰지만 북한은 단 한 마디의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폭파를 하게 만든 원인 제공을 한국이 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KBS 직원 “너희가 아무리 뭐라 해도정년 보장, 수신료 꼬박꼬박 내야해” “욕하지 말고 능력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에 KBS직원 글 KBS는 이날 수신료 인상 논란 속에 KBS 직원으로 추정되는 작성자가 한 직장인 익명 온라인커뮤니티 ‘블라인드’ 게시판에 “너희가 아무리 뭐라 해도 우리 회사(KBS)는 정년이 보장되고 수신료는 꼬박꼬박 내야 한다. 능력 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라는 글을 올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우리 회사 가지고 불만들이 많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글쓴이의 소속은 KBS로 표기됐다. 게시글 작성자는 “답답하다. 너희가 아무리 뭐라 해도 우리 회사 정년 보장되고,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포함돼서 꼬박꼬박 내야 한다. 평균 연봉 1억이고 성과급 같은 거 없어서 직원 절반은 매년 1억 이상 받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제발 밖에서 우리 직원들 욕하지 말고, 능력 되고 기회 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고 써 논란이 가열됐다. 논란이 일자 KBS는 “불쾌감을 드려 대단히 유감이고 송구하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야당은 “철면피”라고 혹평하며 KBS의 ‘방만경영’을 정조준했다. 현재 6000억원이 넘는 수신료를 받고 있는 KBS가 프로그램 개선, 불필요한 인력 감축 등 체질 개선 노력은 하지 않고 또다시 준조세인 수신료를 1조원 이상으로 늘려 경영 적자를 메우고 기업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요구는 부적절하다는 게 야당의 판단이다.김근식 “취준생·취포자 조롱한 KBS”“특혜를 권리로 간주한 철면피 의식”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 정유라 글떠올라…취준생 박탈감이 조롱거리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소속 나경원 예비후보는 이날 “폐업하다시피 한 자영업자, 코로나로 일자리마저 잃은 실업자들이 KBS 억대 연봉과 수신료 인상을 들으면 얼마나 큰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끼겠나”면서 “수신료 인상에 앞서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는 자체 노력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남대 교수인 김근식 예비후보도 “정권 나팔수 욕먹으며 1억 연봉 자랑도 모자라서 이젠 자기들만의 기득권 성벽을 쌓고 성 밖의 힘 없고 빽 없는 취준생(취업준비생)과 취포자(취업포기자)들을 조롱하는 KBS 직원분”이라고 부른 뒤 “노조 조합원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진보 이름 아래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KBS 구성원 중에 이처럼 특혜를 권리로 간주하는 ‘철면피’ 의식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후보는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했던 국정농단사건의 핵심인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 글이 떠오른다면서 “‘성안’에서 자신들만 안전하고 자신들만 특혜 누리면, ‘성밖’에서 정규직 얻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취준생들의 박탈감 따위는 조롱거리밖에 안 되느냐”고 꼬집었다.김웅 “방송국 치곤 지나치게 높은 연봉”“46% 억대 연봉 원천징수 제출하라” KBS “46% 억대 연봉·무보직 1500명”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 생일에 ‘song to the moon(달님께 바치는 노래)’을 방송하는 방송국치고는 지나치게 높은 고액 연봉”이라고 비꼬았다. 김 의원은 “KBS는 스스로 46%가 억대 연봉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보여주지 않는다”며 KBS에 소득증빙을 위한 원천징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이 페이스북 글을 통해 “KBS 직원 60%가 연봉 1억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자 KBS는 “KBS 직원 중 1억원 60% 이상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1억원 이상 연봉자는 2020년도 연간 급여대장 기준으로 46.4%다”라고 반박했다. 또 억대 연봉자의 73.8%인 2053명이 무보직이라는 김 의원 언급에 대해서도 KBS는 그보다 적은 1500여명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김 의원은 KBS를 향해 “근거 자료(수치)의 출처는 2019년 국정감사때 제기된 내용으로 KBS 내 1억원 이상 연봉자의 비율은 2016년 58.2%, 2017년 60.3%, 2018년 60.8%로 나와 있다”고 재반박했다.“편파방송 노조 지적에 감사도 안하면서수신료 인상 매달려 국민 호주머니 넘봐” KBS1노조 “라디오 아나운서 편파 방송”“‘이용구 봐주기 수사’ 등 20건 삭제·변경”해당 아나운서 “코로나 보도 충실하려고” KBS 김모 아나운서가 정치적으로 편파 방송을 진행한 사례가 20여 건에 달한다는 노동조합의 지적에도, 사측이 제대로 감사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대출 의원은 페이스북에 “보도조작 감사에 착수하라고 요구한 지 40여일이 지났는데 KBS 사측은 도대체 뭐 했나”라면서 “수신료 인상에만 매달려 국민 호주머니를 넘보나”라고 비난했다. KBS노동조합(1노조)은 이날 최근 공개적으로 제기한 KBS1라디오 아나운서의 뉴스 편파방송과 관련, 비슷한 사례를 20여건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1노조는 앞서 김모 아나운서가 오후 2시 뉴스에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 소식을 전하면서 야당 의원이 제기한 ‘봐주기 수사’ 의혹 부분을 읽지 않았다며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1노조는 이날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김 아나운서가 큐시트에 배치한 기사를 삭제하고 방송하지 않은 사례 6건, 기사 중 일부를 삭제하고 방송하지 않은 사례 10여건, 원문 기사에 없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추가해 방송한 사례 1건, 기사 삭제로 큐시트를 임의로 변경한 사례 수건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편집기자 큐시트 배치한 기사 삭제”“靑인사 검찰조사·확진자 급증 삭제” 편집기자가 큐시트에 배치한 기사를 삭제한 사례로는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이 열병식을 실시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힌 뉴스, 미국 당국자가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우선시하는 것에 실망했다고 언급한 뉴스, 외신들이 북한의 신형 ICBM 공개 열병식을 신속 보도했다는 뉴스 등이 꼽혔다. 1노조는 “김 아나운서는 주로 청와대 주요 인사에 대한 검찰조사 뉴스, 북한의 무력시위 동향이나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담긴 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급증 뉴스, 해외 한인 교포의 코로나19 사망 뉴스를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KBS는 앞서 김 아나운서가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소식과 관련해 뉴스를 생략한 것은 코로나19 뉴스를 충실히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었다.KBS “해당 아나운서 업무 정지”라디오 편파방송 의혹 관련자 감사 KBS는 라디오 아나운서의 ‘뉴스 편파방송’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자 결국 관련자들을 감사하기로 했다. 우선 김 아나운서를 라디오 뉴스 진행 업무에서 배제했고, 추가로 주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중단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KBS는 이날 “김모 아나운서의 라디오 뉴스 진행 논란과 관련해 해당 아나운서 그리고 라디오 뉴스 편집기자 등 관련자들에 대한 감사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KBS는 지난해 12월 유사한 논란 발생 이후 심의평정지적위원회와 노사 공방위 등 사내 절차를 진행해 왔지만, 추가로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본격적인 감사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KBS는 “이번 감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해당 아나운서와 라디오 뉴스 편집기자 등 관련자들이 제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불만 많네, 능력되면 입사해” KBS 직원글에 “철면피야!”(종합)

    “불만 많네, 능력되면 입사해” KBS 직원글에 “철면피야!”(종합)

    KBS, 수신료 54% 인상안 상정나경원 “수신료? 방만경영부터 바로잡아”“코로나로 자영업자·일자리 잃은 실직자들KBS 억대연봉·수신료 인상 큰 좌절감”野 “정권 나팔수, 억대 연봉 자랑 모자라 조롱”KBS “46% 억대 연봉, 무보직 1500명”공영방송 한국방송공사(KBS) 이사회가 수신료를 54% 인상(월 2500원→월 3840원)하는 조정안을 상정해 논란이 이는 가운데 KBS 직원으로 추정되는 작성자가 “너희가 아무리 뭐라 해도 우리 회사(KBS)는 정년이 보장되고 수신료는 꼬박꼬박 내야 한다. 능력 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라는 글을 올리자 야당은 “철면피”라고 혹평하며 KBS의 ‘방만경영’을 정조준했다. KBS 직원 “너희가 아무리 뭐라 해도정년 보장, 수신료 꼬박꼬박 내야해” “욕하지 말고 능력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에 KBS직원 글 국민의힘은 1일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억대 연봉’ 글을 계기로 “KBS는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기 전에 방만한 경영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앞서 해당 커뮤니티에는 ‘우리 회사 가지고 불만들이 많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글쓴이의 소속은 KBS로 표기됐다. 게시글 작성자는 “답답하다. 너희가 아무리 뭐라 해도 우리 회사 정년 보장되고,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포함돼서 꼬박꼬박 내야 한다. 평균 연봉 1억이고 성과급 같은 거 없어서 직원 절반은 매년 1억 이상 받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제발 밖에서 우리 직원들 욕하지 말고, 능력 되고 기회 되면 우리 사우님 돼라”고 써 논란이 가열됐다.KBS “상식 밖 내용, 송구” 사과 글은 최근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면서 일각에서 비판 여론이 일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KBS는 이날 사과문을 내고 “KBS 구성원의 상식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의 글이 게시돼 이를 읽는 분들에게 불쾌감을 드린 점에 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대단히 유감스럽고 송구한 마음”이라고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현재 6000억원이 넘는 수신료를 받고 있는 KBS가 프로그램 개선, 불필요한 인력 감축 등 체질 개선 노력은 하지 않고 또다시 준조세인 수신료를 1조원 이상으로 늘려 경영 적자를 메우고 기업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요구는 부적절하다는 게 야당의 판단이다.김근식 “취준생·취포자 조롱한 KBS”“특혜를 권리로 간주한 철면피 의식”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 정유라 글떠올라…취준생 박탈감이 조롱거리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소속 나경원 예비후보는 이날 “폐업하다시피 한 자영업자, 코로나로 일자리마저 잃은 실업자들이 KBS 억대 연봉과 수신료 인상을 들으면 얼마나 큰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끼겠나”면서 “수신료 인상에 앞서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는 자체 노력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남대 교수인 김근식 예비후보도 “정권 나팔수 욕먹으며 1억 연봉 자랑도 모자라서 이젠 자기들만의 기득권 성벽을 쌓고 성 밖의 힘 없고 빽 없는 취준생(취업준비생)과 취포자(취업포기자)들을 조롱하는 KBS 직원분”이라고 부린 뒤 “노조 조합원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진보 이름 아래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KBS 구성원 중에 이처럼 특혜를 권리로 간주하는 ‘철면피’ 의식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후보는 ‘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했던 국정농단사건의 핵심인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 글이 떠오른다면서 “‘성안’에서 자신들만 안전하고 자신들만 특혜 누리면, ‘성밖’에서 정규직 얻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취준생들의 박탈감 따위는 조롱거리밖에 안 되느냐”고 꼬집었다.김웅 “방송국 치곤 지나치게 높은 연봉”“46% 억대 연봉 원천징수 제출하라”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 생일에 ‘song to the moon(달님께 바치는 노래)’을 방송하는 방송국치고는 지나치게 높은 고액 연봉”이라고 비꼬았다. 김 의원은 “KBS는 스스로 46%가 억대 연봉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보여주지 않는다”며 KBS에 소득증빙을 위한 원천징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KBS 직원 60%가 연봉 1억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데 대해 KBS가 “KBS 직원 중 1억원 60% 이상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1억원 이상 연봉자는 2020년도 연간 급여대장 기준으로 46.4%다”라고 반박했다. 또 억대 연봉자의 73.8%인 2053명이 무보직이라는 김 의원 언급에 대해서도 KBS가 그보다 적은 1500여명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KBS를 향해 “근거 자료(수치)의 출처는 2019년 국정감사때 제기된 내용으로 KBS 내 1억원 이상 연봉자의 비율은 2016년 58.2%, 2017년 60.3%, 2018년 60.8%로 나와 있다”고 재반박했다.“편파방송 노조 지적에 감사도 안하면서수신료 인상 매달려 국민 호주머니 넘봐” KBS1노조 “라디오 아나운서 편파 방송”“‘이용구 봐주기 수사’ 등 20건 삭제·변경”해당 아나운서 “코로나 보도 충실하려고” KBS 김모 아나운서가 정치적으로 편파 방송을 진행한 사례가 20여 건에 달한다는 노동조합의 지적에도, 사측이 제대로 감사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대출 의원은 페이스북에 “보도조작 감사에 착수하라고 요구한 지 40여 일이 지났는데 KBS 사측은 도대체 뭐 했나”라면서 “수신료 인상에만 매달려 국민 호주머니를 넘보나”라고 비난했다. KBS노동조합(1노조)이 이날 최근 공개적으로 제기한 KBS1라디오 아나운서의 뉴스 편파방송과 관련, 비슷한 사례를 20여건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1노조는 앞서 김모 아나운서가 오후 2시 뉴스에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 소식을 전하면서 야당 의원이 제기한 ‘봐주기 수사’ 의혹 부분을 읽지 않았다며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1노조는 이날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서는 김 아나운서가 큐시트에 배치한 기사를 삭제하고 방송하지 않은 사례 6건, 기사 중 일부를 삭제하고 방송하지 않은 사례 10여 건, 원문 기사에 없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추가해 방송한 사례 1건, 기사 삭제로 큐시트를 임의로 변경한 사례 수 건을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편집기자 큐시트 배치한 기사 삭제”“靑인사 검찰조사·확진자 급증 삭제” 편집기자가 큐시트에 배치한 기사를 삭제한 사례로는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이 열병식을 실시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힌 뉴스, 미국 당국자가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우선시하는 것에 실망했다고 언급한 뉴스, 외신들이 북한의 신형 ICBM 공개 열병식을 신속 보도했다는 뉴스 등이 꼽혔다. 1노조는 “김 아나운서는 주로 청와대 주요 인사에 대한 검찰조사 뉴스, 북한의 무력시위 동향이나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담긴 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급증 뉴스, 해외 한인 교포의 코로나19 사망 뉴스를 삭제했다”고 지적했다. KBS는 앞서 김 아나운서가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소식과 관련해 뉴스를 생략한 것은 코로나19 뉴스를 충실히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었다. KBS, 라디오 편파방송 추가 의혹아나운서·편집기자 감사 KBS “해당 아나운서 업무 정지” KBS가 라디오 아나운서의 ‘뉴스 편파방송’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자 결국 관련자들을 감사하기로 했다. KBS는 이날 “김모 아나운서의 라디오 뉴스 진행 논란과 관련해 해당 아나운서 그리고 라디오 뉴스 편집기자 등 관련자들에 대한 감사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KBS는 지난해 12월 유사한 논란 발생 이후 심의평정지적위원회와 노사 공방위 등 사내 절차를 진행해 왔지만, 추가로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본격적인 감사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KBS는 “이번 감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고 해당 아나운서와 라디오 뉴스 편집기자 등 관련자들이 제반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아나운서를 라디오 뉴스 진행 업무에서 배제했고, 오늘 추가로 주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중단하도록 했다고 강조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저 하늘 높이 날아올라

    올 초 중국에서 맨 처음 코로나가 감지됐을 때 이것이 전 세계로 퍼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봄에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을 때도 여름 정도 지나면 수그러들겠거니 생각했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됐지만, 코로나는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염병은 인명을 앗아가고 경제를 망가뜨리고 문명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인류의 자부심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과거에는 전쟁, 전염병 등으로 도시가 폐쇄되고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일이 더 흔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있어서 멀리 있는 사람과 안부를 주고받고 강의와 회의도 하지만 전신, 전화도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했을까? 전신, 전화는 19세기 말에야 등장했다. 영국의 사업가 폴 로이터는 1850년 주가를 파악하는 데 비둘기를 이용했다. 마흔다섯 마리의 통신용 비둘기는 기차보다 빨리 브뤼셀과 아헨을 오가며 주가를 전달했다. 성서에도 대홍수를 견딘 노아가 물이 빠졌는지 알아보려고 방주 밖으로 비둘기를 날리는 얘기가 나오지만, 비둘기를 조직적으로 통신에 이용한 사람은 로이터가 처음이었다. 로이터는 이 성공을 바탕으로 1865년 로이터 통신회사를 설립했다. 1859년 마이크로 사진이 발명되면서 비둘기는 더 많은 정보를 운반할 수 있었다. 프랑스 사람 르네 다그롱이 발명한 마이크로 사진은 보불전쟁으로 파리가 포위됐을 때 구실을 톡톡히 했다. 투르에 있던 임시정부는 전단을 마이크로 사진으로 축소해 비둘기의 다리에 매달았다. 비둘기는 프로이센군이 훈련한 매의 공격을 뚫고 파리로 돌아가 소식을 전했다. 배고픔, 두려움과 싸우던 파리 시민들은 큰 용기를 얻었다. 포위된 파리에 남아 있던 마네가 남프랑스로 피란 간 아내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비둘기 덕분이었다. 1870년 11월 마네는 아내에게 “여기는 말고기 말고는 먹을 게 없구려”라고 하소연하는 편지를 썼다. 피뷔 드 샤반은 파리 시민에게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를 화폭에 담았다. 원경에 성벽으로 둘러쳐진 파리 시내가 보인다. 검은 옷의 여인은 안고 있는 비둘기를 맹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팔을 뻗고 있다. 미술평론가
  • 향촌동 르네상스 … 바흐가 흐른다

    향촌동 르네상스 … 바흐가 흐른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대구 역시 오래전엔 읍성이 있었던 도시였다. 대구읍성의 북쪽 성벽 아래, 그러니까 향촌동 일대가 지금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쇠락한 도심에서 문화와 예술의 성지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새삼 이 공간에 주목하는 건 옛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향촌동에 담겨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독특한 정서 때문이다. 그 시절의 이야기만 따라가도 한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대구가 코로나19 초반의 악몽에서 회복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거리두기는 이어지고 있다. 외지인, 특히 수도권 지역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편이니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며 다니는 게 좋겠다. 먼저 향촌동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피자. 그래야 왜 대구 사람들이 ‘향촌동 르네상스’를 꿈꾸는지 알 수 있다. 향촌동은 옛 대구읍성의 북쪽 성곽(현 북성로)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현 대구역 맞은편에 있다. 조선 선조 때 일본 침략에 대비해 쌓은 대구읍성이 사라진 건 1906년이다. 당시 ‘야마모토 군수’라고 불렸던 친일파 박중양 대구군수가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대구읍성을 불법 철거했다. 향촌동의 최전성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였다. 헌병대 등 권부가 몰린 옛 경북도청 앞이 낮의 중심지였다면, 밤을 지배하는 곳은 향촌동이었다. 당시 대구 유흥의 중심이었던 향촌동 골목에는 사미센(일본 악기)과 일본인들의 게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광복 이후 일제가 떠나며 쇠퇴하던 향촌동은 1950년대 한국전쟁 피란 예술인들로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 전쟁 중이었지만 골목에는 바흐와 베토벤 음악이 흘렀고, 문학이 꽃을 피웠다. 당시 한 외신기자가 ‘폐허에서 바흐를 듣는다’고 썼던 기적의 공간이 바로 향촌동이었다. 오늘날의 향촌동이 꿈꾸는 모습 역시 바로 이 시기의 살롱 문화다. 피란 시절 북적댔던 향촌동은 예술인들이 떠나면서 다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1980년대 김치에 막걸리를 마시던 젊은이들마저 대구 신도심으로 눈을 돌리면서 향촌동은 60대, 70대들의 공간이 됐다. 그 골목에 이제 막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보태지기 시작한 것이다.이 동네의 모양새가 참 독특하다. 좁은 골목길을 경계로 한쪽은 젊은이들의 양지, 또 한쪽은 어르신들의 성지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향촌동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복합문화공간인 ‘대화의 장’이다. 이 안에 카페 겸 펍인 대화살롱, 대화주방, 대화강당, 대화공방, 대화스튜디오 등이 밀집돼 있다. 이름에서 보듯 음식이나 장식 등이 젊은이 취향이다. 옛 한옥을 리모델링한 대화강당에서 토론 모임을 갖거나 젊은 작가들이 입주한 공방에서 여러 소품들을 살 수도 있다. ‘개화기 복장’을 갖춰 입고 인증샷을 찍으러 오는 ‘인싸’ 커플도 흔하다.대화의 장에서 50m쯤 떨어진 ‘꽃자리 다방’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다. 화가 이중섭이 그려 준 표지화로 유명한 구상 시인의 시집 ‘초토의 시’ 발간기념회가 열렸던 공간이다. 건물도, 이름도 예전 그대로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 ‘퍼센트 14-3’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1955년 대구 군예대에서 근무하던 명배우 허장강이 이 집 안채를 세내 잠시 살았다고 한다. 아마 당시 군예대 동료였던 영화배우 박노식 등도 문턱이 닳도록 이 집을 들락거렸지 싶다. 이 카페는 수제화 골목 지나서 있다.어르신들의 중심 공간은 ‘판코리아 성인텍’이다. 이곳은 농반진반 ‘60금’ 건물이다. 60세 이하 ‘아이들’은 출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영숙 문화해설사에 따르면 겉으로는 작아 보여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수백 명의 어르신들로 북적댄다고 한다. 어르신 놀이터는 해거름이면 파장이다. 오후 6시 무렵이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집으로 가거나, 주변 공간으로 삼삼오오 사라진다. 화려한 복장의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무렵이다. 향촌동 골목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그 좁은 골목을 따라 하꼬방(단칸 가건물)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적산가옥도 많다. 보통 적산가옥 하면 목조 주택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향촌동 일대 옛 살롱들의 대부분은 시멘트로 지은 건물이다. 숱한 기억들을 갈무리하고 있는 옛 건물들을 엿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시인 구상이 즐겨 묵었다는 화월여관(현 판코리아 성인텍), 지독히 가난했던 화가 이중섭이 생애 마지막 예술혼을 불살랐던 백록다방(현 갤러리모텔), 음악감상실 르네상스(현 판코리아 식당) 등이다. 이 건물들에 얽힌 이야기가 재밌다.피란 시절 향촌동을 넉넉하게 만든 이는 구상 시인이다. 주머니가 솜털처럼 가벼웠던 예술인들은 무시로 외상술을 마셔댔고, ‘향촌동 귀공자’ 구상 시인은 이들의 밀린 외상값을 지갑을 털어 내줬다. 이중섭이 1955년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던 백록다방은 경북여고 동기인 두 인텔리 여성이 마담이었다. 둘의 빼어난 미모와 지성미는 숱한 예술인들을 불러모았다고 한다. ‘음악은 르네상스에서, 차와 대화는 백록에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나. 이중섭이 캔버스 삼아 그렸던 은박지는 미국산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이중섭을 흠모하던 시인 김광림이 구해 줬다고 한다. 물론 이중섭은 이때 번 그림값을 술값으로 탕진해 버렸다. 그가 전시회를 열었다는 미 공보원 건물은 아쉽게 사라졌다. 르네상스는 클래식 음악감상실이었다. 박용찬이란 호남의 갑부 아들이 1951년 1·4 후퇴 때 레코드 한 트럭분을 싣고 내려와 문을 열었다고 한다. 화가 김환기, 건축가 김중업, 배우 최은희와 감독 신상옥 등이 즐겨 찾았다. ‘북성로 허브’가 세 든 건물은 해방 공간의 세도가 이기붕의 신혼집이 있었던 건물이다. 고딕풍으로 멋을 낸 외관이 인상적이다. 아울러 이중섭과 소설가 최태응이 묵었던 경복여관(현 의류 가게),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이름을 딴 청포도 다방(현 갤러리모텔 주차장), 음악다방 백조(현 아파트 공사장) 등도 안내판으로만 남은 공간들이다.대구에 가 볼 만한 일몰 전망대가 생겼다. 앞산 중턱에 있는 ‘해넘이 전망대’다. 앞산 일대의 소박한 집들과 도심의 거대한 마천루들이 붉게 물드는 장면이 제법 곱다. 입장료를 내고 올라야 하는 앞산 전망대의 해넘이가 압도적일 만큼 화려하다면 ‘해넘이 전망대’의 일몰 풍경은 어딘가 나른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을 준다. 해넘이 전망대 아래는 빨래터 공원이다. 이 일대 주민들의 옛 빨래터를 공원으로 꾸몄다. 빨래터 앞엔 두 그루의 수양벚나무가 있다. 지금은 잎이 졌지만 수양벚꽃이 흐드러지던 봄엔 아마 전국에서 가장 화사하고 요염한 빨래터였을 게 틀림없다. 세상 어느 남정네가 벚꽃 아래에서 빨랫방망이를 내리치는 여인네를 보며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지 않았으랴. 빨래터에서 두어 블록쯤 아래에 봉준호 영화감독의 어린 시절 집이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봉준호 생가 복원’ 운운하는 선거 구호가 등장해 여론의 질타를 받는 해프닝이 일었던 곳이다. 해넘이 전망대에서 굽어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그저 봄날의 꿈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백제 왕도 풍납토성, 나무 기둥 설치해 성벽 쌓았다

    백제 왕도 풍납토성, 나무 기둥 설치해 성벽 쌓았다

    백제 한성기 왕도인 풍납토성의 축조 방법과 증축의 단서가 발견됐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서쪽 성벽을 조사한 결과 토루 별로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해 나무 기둥들을 박은 흔적을 찾았다고 1일 밝혔다. 풍납토성은 폭 40∼50m, 추정 높이 11m에 둘레 길이가 약 4㎞인 거대 토성이다. 토루는 풍납토성의 몸체를 이루는 흙더미를 일컫는다. 연구소는 “축조 방법 확인을 위해 성벽을 평면으로 절개해 조사를 해보니 나무 기둥이 토루 하단부터 켜켜이 수직으로 박혀 있는데 흙을 더 높이 쌓아 올리기 위한 구조물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풍납토성은 중심 골조에 해당하는 1토루를 쌓아 올린 후 수차례 토루를 덧대어 2·3토루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1토루에서는 길이 60∼70㎝의 나무 기둥을 88∼162㎝ 간격으로 총 6단으로 박아 설치한 흔적이 나왔다. 2토루와 3토루 경계에서는 성벽 경사면과 역방향으로 박힌 나무 기둥과 기둥을 받치기 위한 석재가 확인됐다. 연구소는 “역경사 나무 기둥은 풍납토성 성벽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한 공법이나 성벽 시설물의 일종으로 보인다”면서 “성벽 축조 방법과 공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이번 조사에선 처음 성벽을 축조한 이후 증축한 증거로 토루 사이에서 얇게 깐 돌인 부석(敷石)도 발견됐다. 부석은 처음 흙을 쌓아 올린 초축면인 1·2토루와 이후 증축한 3토루 사이에서 확인됐다. 우선 1·2토루를 축조한 뒤 그 위에 얇은 돌을 깔아 성벽을 보강했으며, 이후 다시 그 위에 3토루를 쌓아 올렸던 흔적이라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풍납토성 증축과 관련해서는 1999년, 2011년 발굴조사 이후 논의가 지속돼 왔으나 증축 공법에 대한 해석은 엇갈렸다. 이 같은 조사 성과는 이날 오후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에 공개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양극 사이를 넘나들다… 콘크리트 속 자연과 인간의 공생

    양극 사이를 넘나들다… 콘크리트 속 자연과 인간의 공생

    #건축을 향한 여정 안도 다다오가 복서였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는 우연히 고서점을 지나가다 발견한 르코르뷔지에 전집에서 그의 스케치를 보고 자신도 건축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순간의 일이었으나 당시 그의 결정이 우연만은 아니었다. 안도는 일본 목구조 속의 빛과 공간감에 대해 감각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르코르뷔지에의 스케치에 반하면서 건축을 향한 신념은 굳어져 갔다. 무엇보다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답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남들이 대학을 갈 때 배낭을 둘러메고 거장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러시아 횡단을 시작한다. 목적지는 유럽이었다. 1965년 25세가 되던 해 안도는 유럽 여정을 마치고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경유해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뤼니테 다비타시옹을 찾아 스케치에 전념했다. 그러곤 끝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바라보며 건축의 원형을 서양에서 구하려고 했던 초기의 자기 생각을 되짚어 보고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간 마르세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프마르탱의 작은 오두막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인생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의사가 수영을 엄격히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오솔길을 내려와 지중해의 바닷속으로 들어간 것이 치명적이었다. 그의 유해는 해변가에 눕혀졌고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대가와의 만남은 공간적으로 이어졌다. 마르세유를 떠난 여객선은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인도를 향해 떠나고 있었고, 안도는 배고픔을 잊은 채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라투레트 수도원 남쪽 파사드의 음률을 음미하고 있었다.#공간 건축을 향하여 필자는 파리 유학 중 1992년 9월 퐁피두센터에서 안도의 강연을 들었다. 그의 모습은 모노크롬 그대로였다. 짧은 커트의 단발머리와 수도승 같은 그레이톤의 재킷을 입고 있었다. 강연에서 그가 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저에게 건축은 두 대립되는 사이(間)를 고민하고 방황을 계속한 끝에 자신의 의지를 예리하게 갈고닦은 그 순간에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것은 공간의 형태, 서양과 동양, 내부와 외부, 추상성과 구상성, 부분과 전체, 역사와 현재, 과거와 미래, 그리고 단순성과 복잡성 등으로 결코 한자리에 머물 수 없는 양극 사이에 존재합니다.” 안도는 자연을 재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자기만의 공간언어가 필요했다. 안도는 공간언어 체계를 르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이라는 두 거장에게서 가져왔다. 르코르뷔지에로부터는 수평성의 자유로운 벽의 개념을, 칸에게서는 바로크의 침묵의 벽을 연구했다. 안도는 두 거장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건축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근대 건축에서 건축과 공간을 해석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는 중력과 대응하는 자세에 있다. 그 해석은 정적인 공간과 동적인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정적인 공간은 수직적 개념이고 동적인 공간은 수평적 개념을 지향한다. 수직의 빛은 천창을 통한 신비로운 빛을 지향하고 수평의 빛은 다양한 오브제와 만나는 수평의 움직임을 유도한다. #자연과 교감하는 공간 안도는 초기의 주택 프로젝트에서 자연과 건축의 조화로운 공간 개념을 정(靜)적인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정의 개념은 주위 환경이나 장소성을 중요시하게 되는데 동양에서의 집의 개념은 건물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영역’을 가리킨다는 의미이다. 그의 관심사가 지역성이나 주변의 자연환경에 집중하는 이유이다.공간의 경험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는 고베의 ‘바람의 교회’에서는 로코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긴 복도를 만들어 인간의 육감을 통한 공간을 연출했고, 시간을 공간에 불러들이면서 움직임이 있는 동(動)의 건축으로 진화한다. 시간은 건축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추상적인 시간은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공간을 빌려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간의 개념은 공간의 폐쇄성을 무너뜨리고 공간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체험적 공간 속으로 유도한다.자연과 건축공간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그는 초기의 연작을 통해 건축 공간 속에 자연을 표현하는 방법의 단계별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빛의 교회’에서는 정적인 공간 속에서 빛의 연출을 통해 잔잔한 무브망(움직임)을 유도하고 있으며, ‘바람의 교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교감시키는 선적 공간이 대두되고 있다. ‘물의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진입로의 긴 여정은 새로운 공간 건축을 유도하는 시도가 됐다. ‘물의 교회’에서는 자연과 사계절에 대응하는 건축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정적인 건축 속의 움직임 그의 초기 작품은 일본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정적인 공간에서 점진적으로 서양의 공간언어에서 오는 체험적이고 동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도는 많은 회고록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스승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는 르코르뷔지에로부터 무엇을 배웠을까. 안도가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사사한 것 중 중요한 근대 5원칙이나 공간의 개념을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는 오히려 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시노’ 주택에서는 필로티를 적용하는 대신 외벽이 지하까지 박혀 있으며 외부의 창은 수평성 대신 수직성을 띠고 있다. 또한 도미노이론에 대해서는 기둥의 하중을 분리해 공간에 자유를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기둥의 상징적 의미가 상실되며, 따라서 최대한 지면과 접하는 벽이 기둥보다 더 자연과 교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초기의 작품에서 기둥은 일본 신사의 상징적 의미를 표현하거나 오브제와 프레임의 역할로서 끊임없이 변하는 경계를 주시하고 있다.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을 설계할 당시 안도는 밀폐된 공간(3.6×14.5m) 속에서 수도승처럼 참선하며 빛, 소리, 온도가 존재하지 않는 최초의 공간 속에서 무의식의 상태가 됐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새소리와 함께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됐을 것이다. 자연의 빛에서 침묵이 만들어지고 온기와 새소리는 자아를 발견하게 한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한 곳에 머물거나 어떤 부류에 속하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인위와 자연, 움직임과 멈춤, 형태와 공간, 단순과 복잡, 이것들의 양극 사이를 넘나드는 것이다.#탈중심의 즐거움 필자는 학부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 한 건축가의 특강을 듣고 건축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정림건축에서 근무하던 중 당시에 유행하던 해체주의를 공부하기 위해 파리 유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세계 철학의 중심지 파리에 해체주의에 대한 담론은 없었고 학생들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보고 뿌리도 없이 유행에 휩쓸리는 한국 건축의 한계를 경험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하는 파리의 하늘 밑에서 나 자신의 존재는 없었다. 존재의 가치가 소외된 자신은 무한히 자유롭다. 하루를 끝내는 석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의 순수를 노래하는 어느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돌아가자. 대자연의 어머니의 품으로. 역사로부터 지켜지는 것은 아름답다. 너의 지친 노동으로부터 바람의 숨결로 너를 쉬게 하리라.” 콘텍스트는 땅을 읽는 방식이지만 실제로는 논리적 혹은 합리적으로 대하는 자세가 아닌 경제적 논리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콘텍스트 건축’은 태와 터가 지닌 역사의 주위를 맴도는 자연환경, 예를 들면 바람이 어떻게 불고 빛의 강도는 어떠한가 하는 식의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콘텍스트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순수의 정신이야말로 이 시대에 사라진 휴머니티를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초기의 작품에서 정리되고 있다. ‘메종 드 고기리’의 부지는 개발업자들의 땅 나누기 수법에 자연이 난도질당한 곳이었다. 콘텍스트가 죽은 곳에서 건축물의 공간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밤나무가 우거진 대지를 처음 접했을 때 밤나무를 어떻게 내부 공간 깊숙이 끌어들일까 하는 화두가 계획의 중심이 됐다. 대지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과 감성을 포착하는 것, 그것이 감성적 콘텍스트 계획의 시발점이다.‘메종 드 나튀르’는 부암동의 성벽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콘텍스트가 강한 부암동의 지형들에 순응해 자신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전통 공간에서의 채와 마당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내외부의 공간이 하나의 시나리오를 가지면서 다양한 시퀀스를 제공한다. 시나리오적 공간과 전통 공간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이다. 빛과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림자가 만들어지는 정적인 공간과 이야기가 있는 동적인 공간이 있는 작품이다.‘메종 드 테르’는 정제된 매스가 자연의 소리와 만나는 소리의 집이다. 개울가의 소리를 담기 위한 발코니 공간과 새들이나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중정의 공간을 계획했다. 비어 있는 마당의 즐거움은 잔잔한 그림자와 작은 공연장의 소리를 담아낸다. 자신의 내부로의 느낌이 있듯이 건축공간도 내부의 공명에 의해 존재를 나타낸다. 움직임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대상의 중심에 빠질수록 의식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중심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변방의 한가로움을 탐하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내면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 오늘도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다. 건축가 전인호
  • ‘김신조 사건’ 52년만에 개방된 북악산 철문…문 대통령 직접 열어

    ‘김신조 사건’ 52년만에 개방된 북악산 철문…문 대통령 직접 열어

    북악산 북측 1일 개방 앞두고 점검엄홍길·이시영 및 주민과 동반 산행 1968년 북한군이 청와대를 기습했던 이른바 ‘김신조 사건’으로 닫혀 있던 북악산의 일부 지역 개방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직접 철문을 열었다. 정부가 일반인 출입을 제한해 온 북악산 북측면 일부 지역을 11월 1일부터 시민에게 개방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문 대통령이 개방을 하루 앞둔 이날 직접 개방지역 둘레길을 등반하며 준비상황을 최종 점검한 것이다. 이날 산행에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배우 이시영씨, 종로구 부암동에서 30여년간 거주한 주민 강신용(63)씨, 부암동에서 태어난 정하늘(17)양 등이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북측면 제1출입구인 부암동 토끼굴에 도착해 김도균 수도방위사령관으로부터 북악산 관리현황을 보고 받았고, 이후 관리병에게서 열쇠를 건네받아 철문을 열었다.청운대 안내소로 이동한 문 대통령은 입산 비표를 수령해 청운대 쉼터로 이동했다. 북악산 남측면과 서울시가 내려다보이는 청운대 쉼터에 도착해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김영종 종로구청장으로부터 북악산 개방 준비 과정과 관리계획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청운대 쉼터에서 2022년 예정된 북악산 남측면 개방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 문화재청장은 청운대 쉼터에서 곡장 전망대로 이동하는 동안, 한양도성 축조시기에 따라 성벽 구조물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설치됐다며 한양도성이 갖는 문화재적 가치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곡장 전망대를 거쳐 제4출입구에서 북악산 등반을 마치고, 백사실 계곡과 백석동천으로 이동하며 주말 산행 나온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이번 북악산 북측 개방은 2017년 청와대 앞길 개방과 2018년 인왕산길 개방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세번째 이뤄진 청와대 인근 보안 완화 조치다. 이번 북악산 북측면 둘레길 개방 점검행사는 코로나19에 따른 방역 상황을 고려해 산행 참석자를 최소화하고 손 소독, 발열 검사,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 철저한 방역 지침에 따라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북악산, 인왕산을 전면 개방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52년 만에… 김신조 사건으로 막혔던 북악산 길 열린다

    52년 만에… 김신조 사건으로 막혔던 북악산 길 열린다

    1968년 김신조 사건(1·21 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돼 온 북악산 일부 지역이 52년 만에 시민들에게 문을 연다. 대통령경호처는 29일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이 둘레길로 조성돼 개방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 도심 녹지 공간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 산악인의 오랜 바람인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남쪽으로 한강과 임진강에 이르는 한북정맥이 오롯이 이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대문구 안산에서 출발해 인왕산~북악산~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 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호처는 북악산 개방을 위해 국방부와 문화재청, 서울시, 종로구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기존 군 순찰로를 자연 친화적 탐방로로 정비해 왔다. 특히 청운대 쉼터에서 곡장 전망대에 이르는 300m 구간의 성벽 외측 탐방로가 개방돼 탐방객들이 한양도성의 축조 시기별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한양도성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됐다. 내년 상반기에는 북악산 남측면도 열린다. 경호처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열린 청와대’ 방침에 따라 2017년 6월 청와대 앞길을 개방했고, 2018년 6월에는 인왕산 출입 제한도 풀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북악산, 인왕산 전면 개방을 약속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주호영 “자유 압살 ‘재인산성’…성을 쌓는 자 망하리라”

    주호영 “자유 압살 ‘재인산성’…성을 쌓는 자 망하리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11일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에도 집회를 막고자 광화문 일대에 설치된 경찰 차벽과 관련해 “‘재인산성’이 이제 서울 도심의 익숙한 풍경으로 정착해가고 있다”며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질문을 원천봉쇄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위해 감옥행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코로나 방역을 구실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압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 팬데믹이 내년 말까지 이어진다면, 대한민국 주요 도시에서의 집회나 시위는 원천 봉쇄될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이 두려워서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시위 봉쇄에 나섰다는 것을 모든 국민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재인산성이 문재인 정권을 지켜주는 방화벽이 될 수 있겠냐”며 “이 정권 사람들은 더욱더 높이 불통의 성벽을 쌓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칭기즈칸의 말을 인용해 “성을 쌓는 자는 망하리라”라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매주 수석보좌관과 장관들을 자기 앞에 앉혀 놓고, A4 용지에 적어온 글을 읽어 내린다. 이건 부하들에 대한 업무 지시이지 국민과의 소통이 아니다.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들 앞에서 국민들을 향해 국정현안에 대해 보고한 적이 언제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빅 브라더’가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다. 국민들의 질문에 답하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수처를 겨냥해서는 “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들이 철옹성들이 여기저기 세워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2022년 양산 사저로 돌아가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장치들이 될 수 있겠나”라면서 “‘재인산성’이 대통령이 스스로를 유폐하는 장벽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조선시대 선비처럼… 성곽길 돌며 소원 빌어 보세요

    조선시대 선비처럼… 성곽길 돌며 소원 빌어 보세요

    서울 한양도성 성곽길은 창의문에서 백악산, 숙정문을 지나는 백악구간과 혜화동과 낙산공원, 이화마을, 한양도성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낙산구간, 흥인지문구간, 남산(목멱산)구간, 숭례문구간, 인왕산구간 등 크게 6개 구간으로 나뉜다.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며 순성을 떠나기 좋은 코스를 선정했다. ●백악구간, 서울 도심이 발아래에 혜화문 바로 옆에 있는 옛 서울시장 공관에서 출발해 와룡공원과 말바위 안내소, 숙정문을 지나 백악 촛대바위와 청운대에 이르는 길이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출입이 제한되다가 2007년부터 3~10월에는 오전 7시~오후 4시, 11~2월에는 오전 9시~오후 3시 개방한다. 백악은 해발 342m로 내사산(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4개 산) 중 가장 높다. 가파른 경사길을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서면 발아래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바위 조망대에서 한양도성의 야경을 구경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낙산구간, 한양도성 변화상 한눈에 혜화문 맞은편 가톨릭대 뒷길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시작해 낙산을 지나 흥인지문에 이르는 구간이다.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은 해발 126m로 내사산 중 가장 낮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코스다. 도성 안은 가톨릭대 교정이다. 순성길이 도성 안보다 낮아 도성의 웅장함을 잘 볼 수 있다. 태조, 세종, 숙종 등 축성 연대가 다른 성벽이 함께 존재해 축성기술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낙산 정상에는 성벽 출입구인 암문이 있어 내·외측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남산구간, 민족정기 간직한 중심점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시작해 남산 팔각정을 지나 백범광장에 이르는 구간이다. 3시간 정도 걸린다. 남산은 해발 243m로 조선 초기부터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국사당을 두는 등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 정상 부근에 서울 중심점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조선신궁를 지으면서 주변 성벽을 대부분 파괴했으나, 1970년대 이후 성곽보존 정비사업과 1990년대 중반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으로 옛 모습을 대부분 회복했다. 옛 남산분수대 자리에서는 조선시대 성곽 유구가 발견됐다. 이곳에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조성돼 이달 말 개관한다. 9~10일 제8회 한양도성문화제 기간 임시 개장한다. ●인왕산구간,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강북삼성병원 앞 돈의문 터에서 인왕산 곡성에 이르는 구간이다. 사직터널 서대문 방면에서 곡성까지는 연결되나 사직터널 종로 방면에서 돈의문 터까지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단절됐다.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지만 성곽 연결 구간만 걸으면 30~40분이면 충분하다. 해발 338m인 인왕산은 서울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치마바위, 선바위, 기차바위 등 거대한 기암괴석이 있는 바위산이다. 한창인 코스모스도 볼거리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600년 역사 품은 한양도성, 온·오프라인 축제로 만난다

    600년 역사 품은 한양도성, 온·오프라인 축제로 만난다

    AR 활용한 ‘내 손안의 한양도성’ 앱집에서 순성놀이… 돈의문 3D로 복원보물 1호 흥인지문에서 첫 국악공연유튜브 채널 ‘라이브 서울’로 생중계도전! 골든벨·온라인 가요제도 열려 “한양도성을 축조한 태조 이성계는 바뀌는 계절마다 도성을 따라 걸어봤을까, 성문을 지키던 수문장이 올려다봤을 달빛은 어땠을까. 과거시험을 보러 온 선비들은 봇짐을 내려놓자마자 한달음에 한양도성을 돌며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한양도성 안팎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도성은 도시를 지키는 벽이자 연결하는 길이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몸의 거리두기와 마음의 연결이 무엇보다 절실해진 지금,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서울을 둘러싼 600년 역사를 간직한 한양도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축제가 열린다.서울시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일상의 소중함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한양도성, 다시 봄’이라는 주제로 제8회 한양도성문화제를 9~10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특히 올해는 매년 핵심 행사였던 순성놀이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내 손안의 한양도성’ 앱은 한양도성 18.6㎞ 중 한양도성박물관, 흥인지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인왕산, 돈의문, 창의문 등 대표명소 6곳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앱을 실행해 한양도성문화제 홈페이지의 지도를 인식하면 된다. 이 중 한양도성의 서쪽 대문인 돈의문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됐지만 3D기술로 당시의 모습을 복원해냈다. 6개 명소마다 영상을 시청하거나 퀴즈를 푸는 등 미션을 수행하면 스탬프를 획득할 수 있다. 스탬프를 모두 모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을 올린 후 댓글을 남기면 추첨해 선물을 준다. 9일 오후 8시부터 진행되는 ‘흥인지문 풍류 음악회’는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에서 열리는 최초의 국악 공연이다. 서울시 공식 유튜브 채널인 ‘라이브 서울’로 생중계한다. 조선시대 도성의 동쪽으로 출입하는 성문이었던 흥인지문은 도성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지형적 약점을 보호하기 위해 반원형의 성벽을 한 겹 더 쌓은 구조)으로 돼 있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소리꾼 오정해와 유태평양, 연주가 김효영 등 정통 국악 장인들, 서영호 명인과 전통 예술단체 ‘한국시나위악회’ 및 타악단과 무용단으로 구성된 종합연희예술단인 ‘고르예술단’ 등 퓨전 국악 예술가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는 릴레이 순성도 열린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온 선비들이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어 장원급제를 빌며 도성을 돌았다는 설에서 유래했다. 9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며 전국에서 보내온 코로나19 극복 응원 메시지를 등에 매단 참가자들이 도성을 완주하는 행사다. 참가자 120명이 10명씩 12개 팀으로 나눠 도성 걷기를 이어나간다. 각 지점에는 방역요원이 배치되며, 팀별 2명씩 방역 담당자를 지정한다. 사전 신청자 1000명을 대상으로는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31일까지 비대면 개별 순성놀이도 운영 중이다. 이 밖에도 전국의 초등학생이 참여해 서울의 역사에 대한 퀴즈를 푸는 ‘도전! 한양도성 골든벨’과 비대면 온라인 가요제 ‘한양도성으로 가요’, 서울에 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양도성 말하기대회’와 ‘외국인 도전! 골든벨’ 등 다양한 시민 참여 행사도 열린다. 행사가 열리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에는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 화면이 설치돼 현장 진행자의 진행 아래 참가자들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비대면으로 대회에 참여한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 공격을 막기 위해 축조했다. 1396년 태조 5년에 백악(북악산), 타락(낙산), 목멱(남산), 인왕 등 내사산(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산)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보수했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1910년까지 514년에 걸쳐 서울을 지켜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 도성의 기능을 수행했다.서울시는 2012년 9월 한양도성도감을 신설하고 2013년 10월 국제 기준에 맞는 한양도성 보존 관리 활용계획을 수립하는 등 ‘한양도성 살리기’에 나섰다. 2012년 11월 23일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안중호 서울시 한양도성도감과장은 “가을이면 많은 분들이 한양도성을 방문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온라인과 비대면으로 한양도성을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방법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백제 왕성에 들어선 아파트숲… ‘문화재·주민 공존’ 새 역사를 품다

    백제 왕성에 들어선 아파트숲… ‘문화재·주민 공존’ 새 역사를 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일대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상징하는 것이 ‘광진교’다. 광진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완공됐는데, 1917년 지어진 한강인도교에 이어 한강의 두 번째 다리다. 1934년 오늘날과 같은 철골 구조의 트러스교로 대체된 한강인도교가 경인선 철도 부설에 따라 새로운 산업축을 연결했다면, 광진교는 전통적인 남북축을 잇는 ‘1번 고속도로’상에 놓였다. 조선 시대에는 임진나루를 건너는 것이 한양과 의주를 잇는 큰길이었다. 조선의 건국과 한양 천도에 따라 신설된 루트로 빠르지만 배를 타야 한다. 그러니 사람 위주의 통행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임진강 도하 지점은 호로하로 불리던 연천 장남과 파주 적성 사이였다. 호리병처럼 강폭이 좁아지고 수심도 얕아 배를 타지 않고도 우마차가 건널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남북을 오가는 물류의 가장 중요한 통로는 이 호로하길이었다. 북쪽에서 호로하를 건넌 사람과 화물은 감악산을 넘어 양주 고을과 오늘날의 의정부, 상계동 일대를 거쳐 한강변 광진에 닿는다. 이후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거나 수운을 이용해 한강을 거슬러 오르거나 한강 하구로 나갔다. 부여족의 한 갈래인 온조도 남하하면서 당연히 호로하와 광진을 건넜고, 그렇게 BC 18년 한강 남쪽에 새로운 나라 백제의 수도를 건설했다. 이것이 바로 ‘풍납토성’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경제적 가치가 뛰어난 호로하와 광진은 당연히 군사적으로도 중요했다. 풍납토성의 백제는 건국 이후 공주로 천도하기까지 줄곧 강 건너 아차산의 고구려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임진강의 상황도 다르지 않아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확보한 이후 호로하를 사이에 두고 신라는 남쪽에 칠중성, 고구려는 북쪽에 호로고루를 쌓아 대치했다.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 ‘풍납동 전설’은 천호동과 풍납토성을 찾았다. 광진의 역사를 제대로 둘러보고 나면 백제왕성으로 각광받는 풍납토성의 존재에도 오늘날 천호동이 ‘신흥 상업지구’로, ‘서울 강동의 중심’ 정도의 이미지로만 비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진다. 답사단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천호동의 동명대장간이다. 1930년대 후반 문을 열어 지금까지 3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전통 대장간이다. 주변에 3곳의 대장간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지금은 동명대장간만 남았다고 한다. 천호동과 강동구는 물론 주변의 강남구·서초구·송파구를 통틀어도 이제 전통 대장간은 이곳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2006년부터 대장간 일을 하고 있다는 젊은 대장장이 강태봉씨가 답사단을 맞았다. 주변 풍경이 기막히다. 대장간이 들어 있는 작은 건물은 울긋불긋한 색채가 바랜 러브호텔로 둘러싸여 있다. 옆 건물 2층에는 ‘천호1·3동 뉴타운 지정 추진위원회’ 간판이 붙어 있다. 길 건너에는 ‘조합원 및 세입자 이주 개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한강 남쪽 마지막 대장간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답사단 몇몇이 호미며 부엌칼을 사들고 즐거워하는 모습에서는 희망도 보게 된다. 기계로 만든 물건보다는 사람의 손이 간 물건에 훨씬 더 높은 값을 쳐 주는 시대가 아닌가. 없어도 되는 물건도 아니고 부엌일이며 텃밭 가꾸기의 필수품이다. 동명대장간의 경쟁력은 모든 것이 비인간화돼 가는 미래로 갈수록 더욱 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간에서 진황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천호시장 사거리에서 구천면길과 만난다. 구천면은 천호동이 경기 광주군에 속해 있던 시절의 땅이름이다. 구천면길은 천호구 사거리를 지나 광진교로 이어진다. 오늘날에는 뒷골목처럼 초라해 보이지만, 한때는 서울에서 경기 광주와 이천, 충청북도 충주와 새재 너머 영남 지역을 잇는 큰길이었다. 동명대장간을 비롯해 3곳의 대장간도 이 큰길 주변에 모여 있었다.천호동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건널목을 두 번 건너면 풍납토성이다. 광진교에서 이어지는 곳이 천호동 구사거리가 됐으니 1974년 세워진 천호대교로 가는 이곳은 천호동 신사거리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강동구를 벗어나 송파구에 들어선다. 풍납토성의 북동쪽 성벽이 가까워지면서 서양식 풍차 상징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바람개비도 여기저기서 돌아간다. 풍납이라는 땅이름은 이 동네가 바람드리 마을로 불린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 ‘바람드리’는 ‘배암드리’가 와전된 것으로 해석돼 풍납토성이 왕성이 아닌 방어성으로 인식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풍납 혹은 바람드리는 어떤 노래가사처럼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억측’을 해 본다. 높게 쌓은 토성 내부는 당연히 성 바깥쪽보다는 바람의 강도가 약하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에 매섭게 몰아치는 북서풍이라면 더했을 것이다.풍차가 있는 곳에서 토성의 북쪽 성벽을 따라가면 왼쪽에 ‘풍납리토성 사적비’가 보인다. 풍납동 일대가 경기 광주군 구천면에 속했던 1963년 세운 것이다. 풍납동은 같은 해 서울시에 편입돼 성동구 풍납동이 됐고, 1975년에는 강남구, 1979년 강동구, 1988년 송파구가 됐다. 사적비 앞에는 광진교와 나란히 1976년 세워진 천호대교가 지난다. 광진교가 너무 낡은 데다 왕복 2차로에 불과한 만큼 교통 수요를 감당치 못해 대안이 필요했다. 천호대교가 서울미래유산인 반면 광진교가 아무런 타이틀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1994년 옛 다리를 철거하고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옛 광진교가 남았다면 당연히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것이다. 이제 풍납토성 내부로 들어간다. 토성은 나지막한 흙 언덕의 모습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딱 좋은 지금의 모습으로는 방어용 성벽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성백제 시대에는 당연히 달랐다. 한성백제박물관에는 2011년 발굴된 풍납토성 성벽의 일부가 그대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는데, 아랫변이 43m, 윗변이 13m, 높이는 11m에 이른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토성의 윗부분이 깎여 나가기도 했지만, 토성 아랫부분에도 상당한 두께의 퇴적이 이루어졌다. 풍납토성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고적 제27호로, 해방 이후인 1963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1호로 지정됐다. 문제는 조선고적 시절부터 풍납토성 전체가 아니라 성벽만 문화재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규제가 없었던 토성 내부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가 되기에 이르렀다. ‘백제의 방어성’일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백제의 왕성’으로 사실상 공인되면서 토성 내부의 보존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답사단이 찾은 풍납토성 역사문화공원은 보존과 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현장이기도 했다. 공원 터에는 경당연립이 있었다. 1999년부터 이듬해까지 이 자리에 아파트를 짓기 위한 구제 발굴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200기가 넘는 한성백제 주거지와 저장공을 비롯해 왕성이 아니라면 존재하기 어려운 유구와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지금 공원에는 당시 드러난 대형 신전 터의 일부가 재현돼 있다. 발굴조사가 연장되고 아파트 신축이 늦어지자 주민 대표의 유적 파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 사건이 오히려 유적 보존의 촉매가 됐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풍납토성 내부 지역 곳곳에 삼표레미콘 풍납공장의 조속한 이전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토성의 서쪽 성벽 일부를 깔고 앉아 있는 삼표레미콘은 서울시와 송파구의 이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을 내기도 했다. 레미콘 공장이 주거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먼지 산업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의 플래카드는 토성 내부 주민 사이에도 싫든 좋든 재산권보다는 문화재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는 자리 잡은 증거로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답사단은 토성 동벽을 따라 걷는 동안 풍납토성을 백제 왕성으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전화로 들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1997년 1월 토성 내부의 현대아파트 터파기 공사장에 들어가 백제 토기를 찾아냈고, 당시 문화재관리국의 긴급 발굴로 이어져 오늘날의 풍납토성이 있게 만든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풍납토성을 찾은 답사단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유적을 보존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답사는 서울아산병원이 바라보이는 풍납토성 동남쪽의 전망대에서 마무리됐다. 토성 내부 지역의 보존 정책은 당초 전면 보존에서 일부 구역은 정부가 매입해 보존하고 나머지 구역에서는 주민들이 그대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도시재생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와 지역 주민이 상생하는 역사문화 중심 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내부 지역에는 벌써부터 이런 분위기가 좋아 찾아드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역사도시 품격을 기본적으로 갖춘 풍납동이다. 제대로만 추진한다면 풍납토성 내부 지역이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로 발돋움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기대한다. 글 서동철 문화재위원회 위원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해설 임정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다음 일정 제18회 104고지와 안산 ●출발 일시 : 9월 26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해양패권 놓고 칼 벼리는 美中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해양패권 놓고 칼 벼리는 美中

    미국과 중국 간 ‘해상전력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이 세 번째 항공모함을 조기 진수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이 중국을 정조준해 ‘게임 체인저’를 표방한 첨단 해군력 증강계획을 발표하며 맞받아쳤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16일 캘리포니아주 랜드연구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중국의 해상 도전에 맞서기 위해 미 해군력을 무인·자율 함정과 잠수함, 항공기로 보강하는 야심찬 ‘퓨처 포워드’(Future Forward·미래로 향해) 계획을 발표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에스퍼 장관은 “미 해군력을 보강하기 위해 함대의 함정을 기존 293척에서 355척으로 대폭 확대하는 ’게임체인저‘ 계획을 마련했다”며 “미래 함대는 공중과 해상, 수중에서의 치명적인 효과(공격력)를 투사하기 위한 능력 측면에서 균형을 더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미 해군력 증강에는 소형 수상함과 잠수함 증강, 선택적으로 유인 또는 무인·자율이 가능한 수상 겸용 잠수정, 다양한 항공모함 탑재용 항공기 등이 추가될 것이라고 AFP는 전했다. 이번 계획은 함대가 고강도 전투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고 전력 투사나 원거리 정밀타격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에스퍼 장관은 설명했다. 대표적 예로 ‘새로운 유도미사일 프리깃(소형 구축함) 프로그램’이라며 “이는 분산전을 수행하기 위해 치명성과 생존성 등의 능력을 보강한 함정을 제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스퍼 장관은 ‘시 헌터’(Sea Hunter)라는 드론을 시험 중이라며 40m 길이의 이 드론은 한번 출격하면 두 달 이상 해상에서 적 잠수함을 자율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미래 함대는 무인시스템이 치명적인 화력을 내뿜고 기뢰를 뿌리는 것에서부터 보급 수행과 적에 대한 정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투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며 “우리가 향후 수년, 수십 년 후에 해상전을 어떻게 수행할지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AFP는 미 해군력 증강계획에 대해 “지금부터 오는 2045년까지 수백억 달러 규모의 미 해군예산 증액이 필요하다”며 “주적으로 인식되는 중국 해군력에 맞서 우위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앞서 14일 건조 중인 3번째 항공모함인 ‘003형’이 이르면 연말에 진수할 전망이라고 관영 언론들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 군사 전문지 병공과기(兵工科技) 등은 중국이 2018년 11월부터 상하이 창싱다오(長興島) 장난(江南)조선소에서 제작 중인 003형 항모가 이르면 올해 연말에 진수할 가능성이 있으며 늦어도 2021년 초까지는 건조가 끝날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전했다. 이들 매체는 “003형 항모는 지난 3월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건조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지만 6월부터 선체블럭 조립에 들어가 이미 기본 선형을 완성할 정도로 건조 작업이 급속히 진척됐다”며 “첨단 기법인 대형블럭 조립방식으로 공정 기간을 대폭 단축한 003 항모는 11~12월쯤 완성해 연말 진수하고서 이어 내외장 공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중국의 세 번째 항모가 될 003형은 전체 길이(전장)가 320m로 추정된다. 중국이 순수하게 독자 개발한 첫 국산 항모이자 두번째 항모인 002형 산둥함(305m)보다도 길고 폭도 미국 신형 제럴드 포드급 핵항모보다 넓다. 추정 만재 배수량은 8만t으로 러시아에서 도입한 첫 번째 항모 랴오닝(遼寧)함(5만 9439t)과 그와 비슷한 산둥함보다 크다. 젠(殲·J)-15전투기 등 30여대의 각종 함재기를 탑재한다. 랴오닝함은 2012년 실전 배치돼 6년 간 운항한 뒤 2018년 7월 랴오닝성 다롄(大連) 조선소에서 보수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12월 실전에 배치된 산둥함은 중국 조선소가 항모 건조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축척한 것에 나름 의미가 있지만, 성능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철용으로 들여와 개보수해 취역시킨 001형 랴오닝함을 약간 업그레이드한 수준에 불과하다. 003형 항모의 가장 큰 특징은 함재기를 효율적으로 띄울 수 있는 첨단 전자식 캐터펄트(Catapult·사출기)를 처음으로 장착한 것이다. 항모는 좁은 갑판 위에서 항공기를 띄우기 위해 항공기의 추력을 더해주는 새총 원리의 이륙 보조장비인 캐퍼펄트를 쓴다. 함재기가 갑판 밖으로 거의 내던져지듯 속도를 붙일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캐터펄트 덕분이다. 캐터펄트는 본래 고대 전투에서 적에게 돌을 날리기 위한 ‘투석기’를 뜻한다. 탄성이 좋은 나무와 끈을 이용해 돌을 성벽이나 적진을 향해 던지던 도구가 현대전에 와서는 항모에 탑재된 함재기를 힘껏 밀어 이륙을 도와주는 장비로 의미가 달라진 셈이다. 함재기 동체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실 함재기들은 이 장치에 몸을 싣고 강하게 등이 떠밀리듯 항모를 이륙하는 것이다. 항모는 전장이 300m가 넘지만 실제로 함재기 활주를 위해 사용하는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갑판 위에서는 다른 함재기와 각종 전투 장비, 인력들을 동시에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좁은 곳에서 바다로 떨어지지 않고 이륙을 하려면 캐터펄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첨단 캐터펄트 기종은 대략 90m의 길이가 주어지면 36t짜리 함재기를 이륙시킬 수 있다. 완전히 멈춰 있는 함재기를 단 몇 초 만에 시속 260㎞로 가속해 이륙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캐터펄트가 없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은 첨단 항모 제럴드 R 포드에만 전자기식 캐터펄트를 채택하고 있다. 만약 중국의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적어도 캐터펄트에 있어선 미국과 같은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현재 실전배치 중인 랴오닝함과 산둥함은 모두 선수가 치솟은 갑판에서 함재기를 발진하는 ‘스키점프’식을 도입했다. 때문에 항모에서 함재기를 단시간에 대량으로 이륙시키는데 제약이 많은 탓에 운용 효율성은 미국 항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다. 003형 항모가 캐터펄트를 탑재할 경우 최신예 조기경보기 쿵징(空警) 600까지 실어 실제 작전에 투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영국 군사전문지 제인 디펜스 위클리는 중국 003형 항모 배수량이 8만 5000t에 이르며 48대의 젠(殲)-15 함재기, 쿵징-600 조기경보기, 대잠 헬기와 수송헬기 등 60~70대 이상을 탑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40대 정도 탑재 가능한 산둥함이나 30대를 탑재가능한 랴오닝호 2척의 함재기 탑재량을 크게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은 특히 두 번째 중국산 항모 003형 외에도 세 번째 중국 자체기술 항모 004형을 조기에 건조해 최소한 4척으로 3개 항모전단을 꾸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7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상하이 장난조선소에서 조립이 진행 중인 항공모함과 별도로 새 ‘자매함’의 용골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동물의 척추와 같은 용골이 설치되는 것은 중국의 004형 항모가 본격적인 건조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는 2028년까지 미국과 바다 위에서 대등한 경쟁을 위해 원자력(핵)추진 항모를 포함해 6척 이상의 항모, 이지스급 함정 30여척, 원자력추진 잠수함 22척을 확보할 청사진도 마련했다. 다만 현재 건조 중인 중국의 세 번째, 네 번째 항모는 아직 미국처럼 원자력추진 장치를 갖추지는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군사 평론가 량궈량(梁國樑)은 “원자력추진 항모는 아마도 다롄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으로 보이는 중국의 다섯 번째 항모에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수마가 할퀴고 간 문화재들…충북 온달산성· 농다리 등 10곳 피해

    수마가 할퀴고 간 문화재들…충북 온달산성· 농다리 등 10곳 피해

    이번 집중호우가 충북지역 문화재와 전통사찰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13일 충북도 등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계속된 물폭탄으로 도내 문화재 10곳이 수해를 입었다. 피해액이 26억8000여만원에 달한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전설이 전해지는 충북 단양 온달산성이다. 사적 264호인 온달산성은 폭우를 이겨내는 듯 했으나 지난 10일 정상부 성벽 25m 가량이 붕괴됐다. 단양군은 문화재청에 피해상황을 보고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진천 농다리도 일부가 훼손됐다. 불어난 물로 아직 돌다리가 물속에 잠겨있어 정확한 피해규모 파악은 어려운 상태다. 군은 물이 빠지면 보수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고려시대 초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농다리는 길이 93.6m, 폭 3.6m, 높이 1.2m의 돌다리로 충북 유형문화재 28호다. 충주시 엄정면에 위치한 전통사찰 백운암과 돌탑인 부흥사 방단적석유구 등은 석축이 유실됐고, 진천의 길상사 등은 법면이 붕괴됐다. 음성에서도 문화재 피해가 속출했다. 조선시대 사당인 태교사는 담장 일부가 무너졌고, 고려 말∼조선 초 문신인 권근과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묘소인 ‘권근 삼대 묘소’는 집중호우로 일부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단양 온달동굴은 입구가 침수피해를 입었다. 도 관계자는 “온달산성 복구에만 18억원이 들어갈 것 같다”며 “정확한 피해조사가 끝나면 문화재청과 함께 조속히 복구 작업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내가 쥔 마지막 칼, 녹슬면 다 끝난다는 마음으로 뮤지컬 했다

    내가 쥔 마지막 칼, 녹슬면 다 끝난다는 마음으로 뮤지컬 했다

    “영광스럽고 감사하죠.” “아직도 배우는 마음이고 감사할 뿐이에요.” ●‘모차르트!’ 남다른 의미… 이례적 인터뷰도 인터뷰 한 시간 동안 주고받은 말의 절반 이상이 ‘감사하다’였던 그의 지난 10년은 절실함으로 채워진 듯했다. “뮤지컬이 저에겐 마지막 남은 칼 한 자루였어요. 이것마저 녹슬면 다 끝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인기 아이돌 출신 가수에서 뮤지컬 무대에 선 지 올해로 10년.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모차르트!’로 500번째 뮤지컬 공연을 가진 김준수의 얘기다. 뮤지컬 작품으로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던 그는 지난달 29~30일 56개 매체의 기자들을 만났다. 그만큼 이번 ‘모차르트!’ 무대의 의미는 남다르다. 가수로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었고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뮤지컬 배우로 성공했건만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라며 여전히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욕을 너무 먹었다”면서 순탄하지 않았던 시작을 떠올렸다. 아이돌 출신의 뮤지컬 도전이 환영받지 못한 분위기였던 데다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동방신기에서 탈퇴한 뒤 1년여 동안 활동이 없었던 때였다. 한 번 듣기나 하라길래 받은 CD에서 대표곡인 ‘황금별’을 듣고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제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가슴에 응어리진 말들과 상황이 극 중 자유를 갈망하는 모차르트와 비슷해 공감이 많이 됐다”면서 “왜 있는 그대로 나를 봐 주지 않을까 답답하고 억울했는데 ‘황금별’에서 ‘너의 꿈을 찾고 싶으면 성벽을 박차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는 가사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했다. “욕먹고 잘 못하더라도 모차르트 배역을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 자체로도 힘이 될 것 같았다”고 덧댔다. 이후 ‘엘리자벳’, ‘드라큘라’ 등 잇따라 대작에 출연해 남우주연상(2012년 ‘엘리자벳’)까지 거머쥐었고 다시 초연 10주년을 맞이한 ‘모차르트!’에 돌아왔다. 김준수는 ‘다른 배우의 대사 실수는 웃고 넘겨도 내가 하면 큰일난다’, ‘음이탈이라도 내면 끝난다’는 강박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같은 실수도 내겐 잣대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 부단히 노력했고, 이 기적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임한다” 동방신기 탈퇴 이후 10년간 방송 출연도 어려워 작품 홍보도 한 번 안 해 봤다는 그가 묵묵히 무대에서 입지를 굳힌 비결도 결국은 절박함에서 나온 성실한 태도였다. “작품 홍보를 위한 방송도 저만 빠진 적이 많다”는 씁쓸한 기억이 오히려 단련이 됐고 “그래서 저를 보러 와 주시는 관객들의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더 악착같이 했다”는 게 자랑 아닌 자랑이 됐다. “매 순간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이라는 그는 “다른 건 몰라도 김준수가 나오는 뮤지컬은 음악만큼은 좋을 거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또다시 고마움을 꺼내 들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조선군 피로 얼룩진 ‘호랑이 입’, 이 땅에 새겨진 日 침략의 상흔

    조선군 피로 얼룩진 ‘호랑이 입’, 이 땅에 새겨진 日 침략의 상흔

    임진왜란은 수백만명이 학살되고 전 국토가 황폐화된, 역사상 최대의 외침이었다. 7년간 침략 전쟁은 36년간 일제강점보다 훨씬 처절한 피해를 입혔고, 동남해안에 남겨진 왜성들이 그 참혹한 역사를 증언한다. 한반도에 현존하는 30여 왜성 가운데 서생포왜성이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비교적 양호하다. 임진왜란의 주적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조한 성으로 사명대사가 강화 교섭을 벌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임진왜란, 전투와 협상의 양면전쟁 1592년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의 왜군 1진이 부산포에 침략했다. 바로 뒷날, 가토 기요마사의 2진이 부산 다대포와 울산 서생포를 동시 침공했다. 임진년 침략 초기 12만명의 왜군은 17일 만에 한양을, 두 달 만에 평양을 점령할 정도로 일방적 판세였다. 고니시와 가토는 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 다이묘(유력자)였다. 고니시가 숙고형의 지략가였다면 가토는 무모할 정도로 타고난 무골이었다. 두 다이묘는 침략의 최선봉을 차지하려 경쟁했는데 조선을 자신들의 영지로 삼으려는 탐욕 때문이었다. 고니시는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성에 주둔했으며, 가토는 한발 늦게 한양에 입성했다가 함경도로 진격했다. 두만강을 건넌 가토는 여진족의 저항으로 후퇴했고, 평양의 고니시는 명나라와 부딪치지 않으려 압록강 진격을 멈췄다. 그사이 조선 조정은 명에 원군을 청하는 등 실낱같은 반전의 기회를 만들었다. 파병을 결정한 명은 협상가 심유경을 평양에 보내 고니시와 강화협상을 시작했다. 본격 파병에 앞서 시간을 벌려는 기만술이었다. 이듬해 1월,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해 전세를 바꾸었고, 왜군들은 행주대첩 패배 후 경상도 남부로 후퇴해 장기전에 돌입했다.1593년 8월부터 동남해안 일대에 19개의 왜성을 쌓아 일부 왜군을 남기고, 주력은 일본으로 철수했다. 명왜 협상으로 이룬 일시적 휴전이었다. 무력으로 대륙 정복을 꿈꾼 도요토미와 달리, 고니시는 싸우지 않고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4년간 명과 협상을 지속했다. 반면 가토는 6000여 병사와 함께 서생포왜성에 주둔했고, 강화 중에도 2차 진주성을 공격해 함락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한편으로 조선 정부에 강화 교섭을 요구했고, 조선 측은 사명대사 유정을 대표로 내세웠다. 심유경·고니시 라인에서 소외된 가토와 조선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였다. 4차례 교섭을 시도했는데, 1·2차는 사명대사가 직접 서생포왜성에 들어가 회담했다. 협상의 여러 조건이 있었지만 일본은 경상·충청·전라의 하삼도 분할 지배가, 명은 조속한 종전과 조선 철병이 본심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낀 조선은 왜군의 완전 철수를 위해 명왜 협상을 어떻게든 결렬시켜야 했다. 사명·가토의 교섭은 이런 배경에서 진행됐다. 결국 1596년 9월 명왜 협상은 결렬되고, 1597년 14만 왜군이 재침공하니 정유재란이었다. 협상이 아닌 무력을 통해 하삼도 분할 점령을 시도한 2차 침략전쟁이었다. 임진년 직후에 축조한 왜성들은 주둔용 방어기지로 군수조달을 위해 부산 일대에 밀집했다. 반면 정유재란 때 신축한 왜성들은 전투용 전진기지였고 왜성 간 사이도 멀었다. 순천·남해·사천·고성·거제·마산·양산·울산의 8개 신축왜성은 최후의 남부 전선이기도 했다. 고니시는 서쪽 끝의 순천왜성에서, 가토는 동쪽 끝 울산왜성에서 농성했다. 결국 고니시는 노량해전을, 가토는 울산성전투를 치르고 구사일생 일본에 철군해 전쟁은 끝났다.●서생포왜성, 일본성의 실험 모델 서생포왜성이 자리한 울산시 서생면 서생리는 배산임해의 요충지로 원래 조선 수군의 만호진이 있던 곳이다. 임진왜란 후, 조선 수군은 왜성을 접수해 서생포진을 설치했다. 조선말까지 군사기지로 활용했기에 비교적 잘 보존됐다. 왜성은 진하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곳으로, 예전에는 바로 아래까지 바다여서 해상 보급이 용이했던 곳이다. 왜성은 동쪽 저지대의 외성과 서쪽 133m 높이 정상의 내성,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성곽의 총길이는 2.5㎞, 내부 면적은 4만 6000여평에 달한다. 왜군들이 설치한 지상 건물은 없고 성벽만 남았지만 일본 성곽 특유의 지형 이용법과 공간기법을 잘 살필 수 있다. 외성부에는 계단식으로 대지를 조성해 병사들의 주둔지로 이용했다. 최근 굴립주 건물지를 발굴했는데, 초석 없이 땅에 박은 굴립주는 일본의 전통적인 기법이며, 기다란 건물형태로 보아 병사들의 숙소였을 것이다. 내성부는 급경사를 따라 여러 겹의 성벽으로 감싸고 정상부에 텐슈가쿠(天守閣·성주의 거소)를 세웠던 천수대가 남아 있다. 내성은 다이묘와 가신 무사들의 핵심영역으로 최후의 방어지였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보편적인 성벽 기울기는 80도 이상의 수직에 가깝다. 그러나 서생포왜성의 성벽은 하부가 60도 정도로 완만하고 위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는 오목한 곡선형이다. 성곽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이다. 왜성의 주출입구는 양쪽의 성벽을 복잡하게 꺾어 문을 앞뒤에서 방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성벽 위에 야구라(櫓) 등의 방어용 건물을 설치했다. 이러한 출입구를 고구치(虎口)라 하는데 ‘호랑이 입’이라는 이름처럼 철통같은 방어용 시설이었다.가토는 1597년 11~12월에 울산왜성(학성, 도산성)을 급히 축성했다. 정유재란을 일으켰으나 급성장한 조명연합군의 전투력에 밀려 최후 방어선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존 울산읍성과 병영성을 헐어 그 석재를 가져다 쌓았기에 단기 완성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2만 3000명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했다고 한다. 동해로 연결되는 태화강을 배후로 하고 동산을 중심으로 3겹의 성곽을 둘렀다. 서생포왜성에 구현했던 오목형 성벽, 방어용 고구치 등도 적용했다. 이곳에서 정유재란 최대의 전투인 울산성전투가 벌어졌다. 조명연합군의 총공세를 가토의 1만 6000명 규모 왜군이 2주간 농성한 전투다. 인근 왜성에서 구원병 4만명이 올 때까지 가토군은 군마를 찔러 피를 마시고 말고기를 먹으며 겨우 버텼다고 한다.●왜성,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 귀국 후 가토는 자신의 영지에 구마모토성을 축성했다. 일본인들은 이 성을 오사카 나고야와 함께 일본의 3대성이라 하고, 가토를 축성의 달인이라 평가한다. 서생포와 울산왜성의 경험을 살리고 조선의 성들을 공격하면서 얻은 지식을 더했다. 아예 세이쇼류(淸正流)라 부르는 오목형 성벽의 곡선은 더욱 완만해졌고, 고구치나 텐슈가쿠는 더욱 견고해졌다. 돌출된 성벽(치) 등은 완연한 조선적 요소였다. 건물 바닥에 까는 다다미를 유사시 먹을 수 있도록 토란 줄기로 엮었고, 성안에 우물을 120개나 팠다. 울산성전투에서 겪었던 처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방어용 건축인 성곽에 의미 없는 형태나 요소는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동화 속의 성들을 보자. 아래보다 위가 넓은 형태는 성벽에 붙은 적들을 바로 위에서 공격하기 위함이다. 높게 솟은 첨탑은 보다 멀리 적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함이다. 뾰족한 지붕과 매끈한 성벽은 외부의 잠입을 막기 위함이다. 단단하고 튼튼하다 보니 아름다워진다. 유려한 형태의 수원화성, 장대한 중국의 만리장성, 화려한 인도 델리의 레드포트 등 세계의 중요한 성들은 기능적인 디자인과 미니멀한 공법의 유산이다.한국과 중국은 물론 중세 유럽의 성곽은 곧 도시의 경계였다. 보호의 대상은 시민과 백성이었고, 보호 대상에 차별이 없어 한 겹의 단일한 성곽을 둘렀다. 반면 왜성과 일본의 성 안에 백성은 없고 무사들만 있을 뿐이다. 성안의 인원도 다이묘·가신·하급무사로 계급화해 여러 겹의 성벽으로 감쌌다. 보호의 대상은 오로지 성주인 다이묘였다. 한국의 성곽은 땅을 깊게 파서 기초를 튼튼히 하고 성벽을 쌓는다. 기간이 오래 걸리지만 성벽을 수직으로 세울 수 있었다. 반면 왜성들은 기초를 하지 않고 지상에 바로 성벽을 쌓기 때문에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야 무너지지 않는다. 일상이 전쟁이었던 전국시대에는 빨리 쌓아야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생포왜성의 존재는 과거 일본의 야만적 침략을, 낯선 형태는 봉건적인 호전성을 기억하게 한다. 역사적 상처의 아픔을 잊어선 안 된다. 아픔을 기억해야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삼국시대 쌓은 거창 테뫼식 ‘거열산성’ 국가사적 예고

    삼국시대 쌓은 거창 테뫼식 ‘거열산성’ 국가사적 예고

    경남 거창군 건흥산 정상부근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인 거열산성(居列山城·경남도기념물 제22호)이 국가사적으로 승격된다.경남도는 최근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결과 도기념물인 거열산성이 국가사적으로 승격 지정이 예고됐다고 20일 밝혔다. 거창군 진산인 건흥산(乾興山·해발 572m) 정상부에 조성돼 있는 거열산성은 산봉우리를 둘러서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1974년 도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된데 이어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체계적인 복원정비와 보존관리가 되고 있는 경남지역 대표적인 고대 성곽 유적이다. 역사 학계와 자료 등에 따르면 거창군 일원은 6~7세기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영토확장 각축장이었다. 삼국통일 뒤에는 지방행정구역 9주 가운데 하나인 거열주(居列州)가 설치될 정도로 고대 동서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거열산성은 ‘삼국사기’에 ‘거열성(居列城)’과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으로 기록돼 있는 성곽으로 삼국항쟁기와 통일기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경남도와 거창군은 거열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네 차례 학술조사와 두 차례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거열산성은 둘레 1115m로 6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방면으로 진출하면서 축성한 1차성과 7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증축된 2차성으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도는 시기를 달리해 조성된 성곽 축조방법과 운영형태에 차이가 확인돼 고대 산성의 변화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최고 유적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석축성벽 외에 성안에서도 완성도 높은 네모형태 집수시설도 확인됐다. 거열산성은 앞으로 30일간 지정 예고기간을 통해 사적 지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9월 중에 사적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도는 함안 남문외고분군과 합천 삼가고분군 등 도내 가야유적 세 곳에 대한 국가사적 지정신청 준비도 마무리단계에 있어 올해안에 국가사적 지정이 추가될 수 있다고 밝혔다. 류명현 경남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조사연구와 복원정비를 위한 종합정비계획과 역사문화관광자원 활용 계획을 마련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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