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성룡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변신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제인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별장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 군복
    2026-06-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82
  • 서울시, 메르스판 ‘징비록’ 교훈 남긴다

    “질병관리본부 현재의 조직과 인력, 전문성으로는 신종 전염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 재난에서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투자하고 본부 자체의 위상을 높여야 합니다.”(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 사스·신종플루·메르스 역학조사위원) 서울시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수습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의 회고, 경험담, 극복 과정 등을 심층 인터뷰해 기록으로 남긴다. 시는 행정, 현장관계자, 의료계 전문가, 언론·학계 등 20명의 인터뷰 녹취록 전문을 6일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개한다고 5일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일까지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이뤄졌다. 행정 분야에선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창보 시 보건기획관, 김수영 양천구청장, 이해식 강동구청장 등 4명이 참여했다. 현장 관계자는 정권 시 보건환경연구원장, 김민기 서울의료원장 등 5명, 의료계 전문가는 천병철 교수 등 6명, 언론·학계는 장덕진 서울대 교수 등 5명이 인터뷰했다. 시는 인터뷰를 통해 메르스 대응 과정에서 경험한 문제점과 개선 사항을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내용은 서울시 메르스 대응 백서 등 유사 감염병 발생 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또 시 보건의료 종합대책 마련에도 반영된다. 중앙정부 해당 부서에도 전달해 공유한다. 박 시장은 “시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고 큰 예방주사를 한 대 맞은 셈”이라며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을 쓴 이유도 다음에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인데, 심층인터뷰도 그런 차원”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세트피스… 슈틸리케호 新무기 누가 나설까

    세트피스… 슈틸리케호 新무기 누가 나설까

    슈틸리케호의 다양한 세트피스가 미얀마전의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16일 태국 방콕의 라지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약체 미얀마를 상대로 2018년 러시아월드컵 2차예선 조별리그 G조 1차전을 치른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1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평가전에 이용재(V바렌 나가사키) 등 새로운 얼굴들을 선보이며 그동안 득점 다변화 방안으로 거론돼 온 세트피스 상황에서 두 골을 뽑아내며 3-0 완승을 거뒀다. 슈틸리케 감독은 15일 방콕의 골든튤립 호텔에서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에서 UAE전의 선발진에서 큰 변화를 주지 않겠다며 손흥민(레버쿠젠)이 선발로 나선다고 예고했다. 원톱으로는 이용재가 UAE전에서 나란히 그물을 출렁인 이정협(상주)을 제치고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오른쪽 날개로는 이청용(크리스털팰리스)보다 이재성(전북)의 낙점 가능성이 점쳐진다. 처진 스트라이커에는 염기훈(수원)과 슈틸리케 감독이 선호하는 남태희(레퀴야)가 경합한다. UAE전 때 센터백으로는 곽태휘(알힐랄)와 장현수(광저우 푸리)가 선발로,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는 후반에 투입됐다. 미얀마전도 비슷하지 않을까 예측할 수 있는데 시즌 후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평가를 들은 홍정호 카드도 버리기 아깝다는 얘기가 나온다. UAE전에서 교체하지 않은 좌우 풀백에는 김창수(가시와 레이솔)와 정동호(울산)가 도전장을 내민다. 골키퍼 장갑은 UAE전을 쉰 김진현(세레소 오사카)과 정성룡(수원)이 경합한다. 미얀마가 실점을 막겠다고 반칙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아 세트피스 전술은 승점 3을 챙기는 지름길이 된다. 낮 최고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와 습한 날씨 때문에라도 세트피스는 우리 선수들의 체력 소모를 줄이는 방편이 된다. 방콕 입성 후 첫 훈련이었던 전날 대표팀은 초반 15분만 공개한 뒤 비공개로 전환하고 취재진에 세트피스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킥을 전담해 오다시피 한 기성용(스완지시티)을 대신할 오른발 키커로는 손흥민을 찾아냈다. 그런데 왼발 키커로 김민우(사간 도스)와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등을 실험했지만 마땅찮았다. 그런데 염기훈이 UAE전 선제골을 왼발 프리킥으로 뽑아내 고민을 덜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풍산그룹] “부끄럽지 않은 후손 되자”… 징비록 영역본도 발간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풍산그룹] “부끄럽지 않은 후손 되자”… 징비록 영역본도 발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에 풍산이 대기업으로는 드물게 후원을 하고 있다.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1592~1598년)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수기로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으로 꼽힌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전투를 이끌었다면 류성룡은 전쟁을 총괄한 사람에 비유된다. 풍산그룹이 이 드라마를 후원하는 것은 풍산그룹의 뿌리가 바로 임진왜란을 극복한 서애 류성룡 선생이기 때문이다. 풍산그룹의 고 류찬우 창업주는 서애 선생의 12대손으로 안동 하회마을에 6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풍산 류씨 가문의 후예다.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는 말을 류 창업주는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평소 “선조인 서애 선생의 정신을 알리고 실천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풍산은 1976년 12월 류 창업주를 중심으로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다는 뜻에서다. 1991년 5월에는 서애의 정치·경제사상과 애국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애전서 전4권을 출간했다. 이 같은 지원 사업은 회사를 물려받은 류진 회장 세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01년 7월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했으며, 2003년에는 징비록 영역본도 출간했다. 드라마 ‘징비록’도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통해 자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방위산업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후원 활동을 펼쳐 왔다. 대표적으로 육군사관학교 체육관을 증·개축해 기증했다. 육군사관학교 체육관인 ‘서애관’은 풍산그룹이 1980년 건립한 국제 경기장 규모의 종합 실내 체육관이다. 2013년에는 우리 해군의 세 번째이자 역대 최고 성능의 이지스함으로 평가받는 서애 류성룡함에 대한 함내 홍보관 설치를 후원했다. 류 회장은 또 학교법인인 병산교육재단을 통해 병산서원도 운영하고 있다. 하회마을 인근에 자리한 병산서원은 류성룡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하지만 조상들의 애국 정신과 달리 미국 유학 중인 류진 회장의 아들 성곤(22)씨는 2013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국적법상 미국인이 됐다. 풍산의 지주사인 풍산홀딩스는 2014년 류 회장이 직계가족에게 지분을 증여한 사실을 공시하면서 성곤씨의 국적이 변경됐다고 밝혔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풍산그룹] 류진 회장 장인은 노신영 前 총리…삼성·현대家와도 연결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풍산그룹] 류진 회장 장인은 노신영 前 총리…삼성·현대家와도 연결

    풍산은 정·재계와 언론계로 연결되는 화려한 혼맥을 가지고 있다. 류 창업주는 서애 류성룡 선생(1542~1607년)의 12대 후손이다. 회사 이름 ‘풍산’도 본관인 풍산 류씨를 따서 지었다. 류 창업주는 1923년 5월 19일 경북 청송 덕천마을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안동 하회마을에 6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풍산 류씨 서애종파 가문답게 유교적 가풍이 엄한 집안으로 통한다. 1941년 대구공립직업학교(현 대구공고)를 졸업하고 1957년 풍산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자수성가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무역으로 돈을 모은 뒤 1967년 귀국해 이듬해 풍산의 모태인 구리를 가공하는 풍산금속공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류 창업주는 고 배준영 여사와 사이에서 2남 2녀를 뒀다. 류 창업주는 지난 1999년 11월 24일, 배 여사는 지난 1월 31일 별세했다. 배 여사는 한국여자테니스연맹회장으로 30여년 동안 왕성히 활동했다. 1969년 남편이 부평에 국내 최초의 신동 공장을 세우자 그곳에 간이 식당을 만들고 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 직원 식사를 준비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장남인 류청(65)씨는 한때 풍산의 미국 현지법인 PMX의 사장을 지냈으나 일찌감치 사업에서 손을 떼 지금은 그룹과 왕래가 없다. 그가 보유했던 풍산과 풍산홀딩스 보유 지분도 지난 2009년부터 팔기 시작해 2012년 10월에 모두 털어냈다. 산업용 동판 및 주화를 제조하는 PMX는 1989년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아이오와주에 설립된 자회사인데 설립 후 지금까지 실적부진으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1982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당시 이름 박서영)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결혼했다가 6개월 만에 이혼했다. PMX 사업 부진과 이혼 문제로 류 창업주의 눈 밖에 난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미국을 오가며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녀 류지(63)씨와 차녀 류미(60)씨도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이들도 풍산그룹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차남이자 막내인 류진 회장이 1999년 류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바통을 이어받아 풍산을 이끌어 가고 있다. 류 회장과 직계들이 풍산 지주회사인 풍산홀딩스 지분의 42.4%를 보유하고 있다. 180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중저음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류 회장은 노신영(85· 롯데그룹 총괄고문) 전 국무총리의 딸 노혜경(55)씨와 결혼했다. 풍산은 이 혼사를 통해 재계 혼맥의 중심부에 진입해 있다. 노혜경(55)씨는 미국 스탠퍼드 법대 출신이다. 류 회장과 노씨는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슬하에 성왜(25)양과 성곤(22)군을 두고 있다. 두 자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2013년부터 풍산의 지분을 조금씩 물려받고 있다. 풍산그룹은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집안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61) 서울대 교수는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장녀 숙영(56)씨와 결혼했다. 숙영씨는 정몽규(53)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누나이다. 노 전 총리의 둘째 아들 노철수(59)씨는 애미커스그룹 회장이다. 그의 부인은 고 홍진기 전 내무장관의 막내딸인 홍라영(55)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이다. 이건희(73)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70)씨의 동생이며, 오빠는 홍석현(66) 중앙일보 회장이다. 노 전 총리의 셋째 아들 노동수(56)씨는 광명특수인쇄 사장을 맡고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바보, 산을 옮기다(윤태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대변인·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윤태영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와 역정을 지근거리에서 기록한 비망록. ‘대통령의 필사’로 알려진 저자가 노 대통령의 언행들을 ‘국민통합’ 측면에서 중점적으로 서술했다. 자서전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일화나 인권변호사 활약상은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국민통합의 화두를 각 시기마다 어떻게 구현하려 했는지를 관찰자 시각에서 가감 없이 서술한 게 특징이다. 1987년 이후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와, 대통령 당선 이후 재임기를 나눠서 다뤘다. 3당 합당과 낙선 등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 ‘국민통합’ 화두를 정치적 과제로 설정하는 과정, 부산에 잇따른 출사표를 던지면서 지역주의 벽에 도전하는 정치 역정이 그려진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한 정치인의 우직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저자는 지난해에도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와 정치적 리더십을 조명한 ‘기록’(책담)을 출간한 바 있다. 418쪽. 1만 5000원.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왕롱주 지음, 김승룡·이정선 옮김, 한숲 펴냄) 원명원은 중국 원림예술의 절정기에 지어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황실’의 어원으로 서양인들에겐 ‘지상낙원’으로 비쳐진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소실된 뒤 동치제가 일부를 복구했으나 다시 훼손됐고 중화민국 이래 방치된 채 끊임없이 파괴당했다. 역사가인 저자는 원명원이 제왕의 궁원으로 성장했다가 아편전쟁기에 소실돼 스러지는 장면을 청조의 융성·패망에 얹어 살폈다. 문헌자료를 통해 재구성한 원명원 내 제왕 일상과 원 조직, 역할을 통해 원림이 휴양공간 아닌 청조 정치의 심장부였음을 보여준다. 건축과 역사로 나눠 원명원을 조망한 게 특징. 저자는 청조 제왕들이 주거공간이자 정치공간이었던 원명원을 자금성보다 더 아꼈을 것이라 본다.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유적공원이 됐고 곳곳에 복제 원명원이 조성되고 있다. 저자는 잘못된 덧칠을 그만두고 지금의 모습을 잘 유지하는 게 진정 유산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464쪽. 1만 5000원. 미디어 시간여행(김동민 지음, 나남 펴냄) 음악이나 회화, 연극, 건축, 영화는 각각 독립학문이나 예술로 분화돼 언론사(言論史) 영역에선 다뤄지지 않았다. 책은 그런 장르를 미디어 개념으로 확장해 ‘시간여행’ 테마로 엮었다. 한양대 겸임교수인 저자의 두 번째 책. 예술을 예술 이전의 미디어였다고 보고 예술품에 담긴 미디어 의미를 탐색한 게 특징이다. 미디어 역사에서 누락된 미디어를 찾아 동서양을 누빈다. 라스코 동굴벽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피카소의 ‘게르니카’, 류성룡의 ‘징비록’…. 사회과학 발전의 맥락과 맹점을 지적하고 그 안에서의 언론학 연구방법도 살폈다. 뉴턴이 중력 법칙을 철학적 사유에서 얻었듯이 마르크스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착상을 철학적 사유에서 얻었음을 추적한다. 미디어를 역사로부터 격리된 발달과정이 아닌, 역사 속 맥락을 살펴 상호작용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흥미롭다. 개화 당시 언론 부분에서 조선과 일본의 시선과 상황을 비교한 점이 도드라진다. 264쪽. 1만 5000원. 보이지 않는 힘, 퍼블릭 어페어즈(조승민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기업·단체가 자신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정책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결정·집행되도록 펼치는 활동’ 이렇게 정의되는 ‘퍼블릭 어페어즈’(Public Affairs)를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원이 상세히 풀어냈다. ‘퍼블릭 어페어즈’는 미국·유럽에선 경영활동의 필수항목으로 여겨지지만 우리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로비’쯤으로 인식한다. 저자는 공감과 동의를 얻기 위해 세상을 설득하는, 시장 밖의 비(非)시장전략이 바로 퍼블릭 어페어즈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퍼블릭 어페어즈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우리에게 이 활동을 뒷받침할 제도와 체계적 전략이 미흡하다고 말한다. 로비와 정치활동 후원, 선거 참여 등 10가지 범주로 나눠 퍼블릭 어페어즈를 개념화하고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살폈다. 특히 한국 퍼블릭 어페어즈의 과제를 투명성 확보, 체계적 활동, 사회적 기여 등 3가지로 정리한 게 눈에 띈다. 176쪽. 7000원.
  • 유승준 인터뷰, 무릎꿇고 사죄 “13년 전 군대 갈수 없었던 이유는..” 심경 고백

    유승준 인터뷰, 무릎꿇고 사죄 “13년 전 군대 갈수 없었던 이유는..” 심경 고백

    유승준 심경 고백 인터뷰 생중계 “13년 전 군대 갈수 없었던 이유는..” 처음 털어놓은 속사정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사과, 유승준 심경 고백 생중계’ 가수 유승준이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13년 만에 병역기피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유승준은 19일 인터넷 생방송 아프리카를 통해 13년 전 군 기피 및 병역 문제와 관련한 당시 상황과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유승준은 “무슨 말을 먼저 드려야 할지 솔직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며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국민 여러분과 법무부 장관, 병무청장님, 출입국 관리소장님, 한국의 젊은이들에 물의를 일으키고 또 허탈하게 해드린 점 사죄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승준은 “군대에 대해서 거부 반응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해서, 군인이 되라고 내게 늘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가려고 했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당시로 시기를 돌이킨다면 군대를 가야한다. 시간이 이렇게 큰 무리를 일으킬 줄 몰랐다. 돌이킬 수 있다면 2번 생각 안하고 간다”며 “지난해 7월에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만으로 38살이었는데 성룡 등 주위 분들이 ‘그 길 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결정을 잘 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군대를 가겠다고 했다”고 최근 군대를 가려고 했던 결심을 전하기도 했다. 2002년 1월 군입대를 앞두고 일본으로 공연을 나간 유승준은 당시 상황에 대해 “거짓말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시민권을 취득할 계획을 짜 놓고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군대를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간다고 말한 것이다. 시민권 선서가 2001년 10월경에 나왔다. 영주권은 아버지가 신청한 것이 나왔고 끝까지 거절했다. 당시 군대 가려고 했었고 시민권 인터뷰 참석을 하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시민권을 재발급 받는 것은 어려웠다. 일본 공연 갈 당시 시민권 인터뷰 날짜가 나왔고, 아버지가 오라고 설득하셨다”고 설명했다. 유승준은 인터뷰에서 “병역 기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데, 아버지가 ‘너가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했고 6, 7집을 37억 원에 계약해서 이행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부모님을 20살부터 모셨다. 회사에서도 직원이 많았는데, 다른 연예인이 없어서 내가 일을 안 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군대 가는 것조차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시민권 획득은 부모님의 설득, 계약 문제로 벌어졌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순 없다”고 털어놨다. 미국에 돌아가서 심각해진 여론에 대해서는 “한참 동안 몰랐다. 찍어 놨었던 방송도 불방이 됐다. 점점 멀어져 갔다. 한국 쪽 반응을 보지 않았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소재로 코미디 소재로 삼더라. 시청자들이 웃었다. 가족들과 같이 봤는데, TV를 껐다. 그 이후부터 한국 쪽 기사를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힘들었던 당시 심경을 고백했다. 유승준은 시민권 취득 후 입대를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당시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피해자인 줄 알고 있었다. 마음을 바꾸라는 사람이 아내였다. 한국땅 밟고 싶으면 군대를 가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해서 번복하기 꺼려했고 그저 도망가고 싶어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혈통과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런 문제가 나를 감싸고 있는 것 자체가, 가족을 봐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섰다”고 고백했다. ‘한국 국적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 국적 포기에 대한 제의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렇게 선처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간절함을 드러냈다. 끝으로 유승준은 병무청 관계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도 선처를 해주셔서, 한국 땅 밟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젊었을 때의 잘못에 사죄드린다”면서 “국민 여러분, 시간이 오래 지나서 사죄드려서 죄송하다. 용기가 없어서 쉽게 나오지 못했다. 늦게나마 사죄의 말씀을 전하게 됐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제가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회복하고 싶다. 물의 일으켜 죄송하다. 많은 허탈감을 드려 죄송할 뿐이다”고 호소했다. 유승준은 지난 1997년 3월 데뷔앨범 ‘웨스트 사이드(west side)’의 타이틀곡 ‘가위’로 데뷔해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2년 입대를 3개월 여 남긴 시점에 해외 공연을 이유로 출국한 뒤, 약혼녀 오모 씨의 미국 영주권 취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 가족이 거주 중이던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했다. 결국 병무청은 출입국 관리법 11조(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입국 금지조치를 내릴 수 있다)에 의거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유승준은 현재까지도 관광비자가 아니면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됐다. 이후 유승준은 중국으로 건너가 성룡이 이끄는 엔터테인먼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중화권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유승준 심경 고백,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심경 고백,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심경 고백,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심경 고백,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심경 고백, 유승준 인터뷰 사진=유승준 인터뷰 캡처(유승준 심경 고백, 유승준 인터뷰)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승준 “작년까지 억울했다…군대 가려고도 했다”

    유승준 “작년까지 억울했다…군대 가려고도 했다”

    ‘유승준 아프리카TV’ ‘신현원 프로덕션 인터뷰’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가 아프리카TV를 통해 심경을 고백했다. 유승준은 19일 오후 10시 30분(한국시간) 인터넷 아프리카TV(http://afreeca.com/shinpro)를 통해 한국 대중과 마주했다. 영상은 홍콩 현지에서 생중계됐다. 유승준은 “작년까지만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제 잘못이라는 걸 깨닫고 이렇게 나오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 유승준은 약 10초간 90도로 깎듯이 인사를 한 후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유승준은 “오늘은 심경 고백하는 자리도 아니고 변명의 자리도 아니다”며 “여러분들에게 제 잘못을 사죄하는 자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승준은 “국민 여러분, 법무부 장관님, 병무청장님, 출입국관리소장님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1년 1월로 시간을 돌린다면 군대를 가겠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가겠다. 당연히 간다”고 말했다. 유승준은 “군대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고, 가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승준은 지난해 군입대를 고려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작년에 군대에 가고 싶다고 한국에 연락을 했다”며 “관계자 분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대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주위 분들에도 말씀 드렸다. 당시 성룡 영화를 찍고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내가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씀 드렸더니 성룡 회사 사장님도 ‘잘 했다’고 말씀 해주셨다. 와이프, 아이들에게도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유승준은 “군대에 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틀 있다가 내 생년월일을 물어 보시더라. 나는 76년생인데 알고 보니 38살까지 군대에 갈 수 있는 것은 80년대생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군대에 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말로 군대에 갈 의향이 있었다면 지난 13년간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부터 시작해, 국적을 회복하더라도 병역 의무가 소멸되는 만 37세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인터뷰를 진행하는 배경 등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승준 인터뷰+심경 고백, 국적회복 간절히 호소했지만 병무청 입장 보니 “가능성 0.1%도 없다”

    유승준 인터뷰+심경 고백, 국적회복 간절히 호소했지만 병무청 입장 보니 “가능성 0.1%도 없다”

    유승준 인터뷰+심경 고백, 국적회복 간절히 호소했지만 병무청 입장 보니 “가능성 0.1%도 없다”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법무부, 유승준 심경 고백’ 가수 유승준이 인터뷰 생중계를 앞두고 법무부 국적 회복 가능성에 눈물을 흘렸으나 병무청의 입장은 단호했다. 19일 한 매체는 법무부 측의 말을 빌려 유승준의 입국 금지 해제와 국적 회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법무부 입장을 접한 유승준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병무청 관계자는 “입국금지를 해제할 가능성은 0.0001%도 없다. 일부에서 왜 자꾸 이번 사건에 대해 왜곡되게 해석해서 국민을 혼란시키는지 모르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한편 유승준은 19일 신현원프로덕션과 인터뷰를 갖고 입국 금지 13년 만에 첫 심경 고백을 전했다. 유승준 심경 고백 인터뷰는 인터넷 아프리카TV를 통해 생중계 됐다. 유승준은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국민 여러분과 법무부 장관, 병무청장님, 출입국 관리소장님, 한국의 젊은이들에 물의를 일으키고 또 허탈하게 해드린 점 사죄하겠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유승준은 인터뷰에서 “그 당시로 시기를 돌이킨다면 군대를 가야한다. 시간이 이렇게 큰 무리를 일으킬 줄 몰랐다. 돌이킬 수 있다면 2번 생각 안하고 간다”며 “지난해 7월에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만으로 38살이었는데 성룡 등 주위 분들이 ‘그 길 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결정을 잘 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군대를 가겠다고 했다”고 군대를 가고 싶었던 의욕을 전하기도 했다. 2002년 1월 군입대를 앞두고 일본 공연에 임했던 유승준은 “거짓말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시민권을 취득할 계획을 짜 놓고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군대를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간다고 말한 것이다. 시민권 선서가 2001년 10월경에 나왔다. 영주권은 아버지가 신청한 것이 나왔고 끝까지 거절했다. 당시 군대 가려고 했었고 시민권 인터뷰 참석을 하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시민권을 재발급 받는 것은 어려웠다. 일본 공연 갈 당시 시민권 인터뷰 날짜가 나왔고, 아버지가 오라고 설득하셨다”고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유승준은 “병역 기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데, 아버지가 ‘너가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했고 6, 7집을 37억 원에 계약해서 이행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부모님을 20살부터 모셨다. 회사에서도 직원이 많았는데, 다른 연예인이 없어서 내가 일을 안 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군대 가는 것조차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시민권 획득은 부모님의 설득, 계약 문제로 벌어졌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순 없다”고 털어놨다. 유승준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어떤 방법으로도 선처를 해주셔서, 한국 땅 밟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젊었을 때의 잘못에 사죄드린다”면서 “국민 여러분, 시간이 오래 지나서 사죄드려서 죄송하다. 용기가 없어서 쉽게 나오지 못했다. 늦게나마 사죄의 말씀을 전하게 됐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제가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회복하고 싶다. 물의 일으켜 죄송하다. 많은 허탈감을 드려 죄송할 뿐이다”라고 거듭 사과를 전했다. 사진=유승준 인터뷰 생중계 캡처(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심경 고백)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승준 인터뷰, ‘13년 만에 심경고백’ 병역기피 무릎 꿇고 사죄 ‘눈물까지..’

    유승준 인터뷰, ‘13년 만에 심경고백’ 병역기피 무릎 꿇고 사죄 ‘눈물까지..’

    유승준, 13년 만에 첫 공식 심경 고백..병역기피 무릎 꿇고 사죄 가수 유승준은 19일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13년 전 군 기피 및 병역 문제와 관련한 당시 상황과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유승준은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국민 여러분과 법무부 장관, 병무청장님, 출입국 관리소장님, 한국의 젊은이들에 물의를 일으키고 또 허탈하게 해드린 점 사죄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유승준은 “그 당시로 시기를 돌이킨다면 군대를 가야한다. 시간이 이렇게 큰 무리를 일으킬 줄 몰랐다. 돌이킬 수 있다면 2번 생각 안하고 간다”며 “지난해 7월에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만으로 38살이었는데 성룡 등 주위 분들이 ‘그 길 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결정을 잘 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군대를 가겠다고 했다”고 군대를 가고 싶었던 의욕을 전하기도 했다. 2002년 1월 군입대를 앞두고 일본 공연에 임했던 유승준은 “거짓말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시민권을 취득할 계획을 짜 놓고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군대를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간다고 말한 것이다. 시민권 선서가 2001년 10월경에 나왔다. 영주권은 아버지가 신청한 것이 나왔고 끝까지 거절했다. 당시 군대 가려고 했었고 시민권 인터뷰 참석을 하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시민권을 재발급 받는 것은 어려웠다. 일본 공연 갈 당시 시민권 인터뷰 날짜가 나왔고, 아버지가 오라고 설득하셨다”고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유승준은 “병역 기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데, 아버지가 ‘너가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했고 6, 7집을 37억 원에 계약해서 이행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부모님을 20살부터 모셨다. 회사에서도 직원이 많았는데, 다른 연예인이 없어서 내가 일을 안 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군대 가는 것조차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시민권 획득은 부모님의 설득, 계약 문제로 벌어졌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순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시민권 취득 후 입대를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당시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피해자인 줄 알고 있었다. 마음을 바꾸라는 사람이 아내였다. 한국땅 밟고 싶으면 군대를 가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해서 번복하기 꺼려했고 그저 도망가고 싶어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혈통과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런 문제가 나를 감싸고 있는 것 자체가, 가족을 봐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섰다”고 고백했다. 끝으로 유승준은 병무청 관계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도 선처를 해주셔서, 한국 땅 밟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젊었을 때의 잘못에 사죄드린다”면서 “국민 여러분, 시간이 오래 지나서 사죄드려서 죄송하다. 용기가 없어서 쉽게 나오지 못했다. 늦게나마 사죄의 말씀을 전하게 됐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제가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회복하고 싶다. 물의 일으켜 죄송하다. 많은 허탈감을 드려 죄송할 뿐이다”라고 거듭 사과를 전했다. 한편 유승준은 지난 1997년 3월 데뷔앨범 ‘west side’의 타이틀곡 ‘가위’로 데뷔해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2002년 입대를 3개월 여 남긴 시점에 해외 공연을 이유로 출국한 뒤, 약혼녀 오모 씨의 미국 영주권 취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 가족이 거주 중이던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했다. 결국 병무청은 출입국 관리법 11조(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입국 금지조치를 내릴 수 있다)에 의거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유승준은 지금까지도 관광비자가 아니면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됐다. 이후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성룡이 이끄는 엔터테인먼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중국을 거점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승준, 아프리카TV “작년까지 억울했다. 군대 가려고 했다” 신현원 인터뷰

    유승준, 아프리카TV “작년까지 억울했다. 군대 가려고 했다” 신현원 인터뷰

    ‘유승준 아프리카TV’ ‘신현원 프로덕션 인터뷰’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가 아프리카TV를 통해 심경을 고백했다. 유승준은 19일 오후 10시 30분(한국시간) 인터넷 아프리카TV(http://afreeca.com/shinpro)를 통해 한국 대중과 마주했다. 영상은 홍콩 현지에서 생중계됐다. 유승준은 “작년까지만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제 잘못이라는 걸 깨닫고 이렇게 나오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 유승준은 약 10초간 90도로 깎듯이 인사를 한 후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유승준은 “오늘은 심경 고백하는 자리도 아니고 변명의 자리도 아니다”며 “여러분들에게 제 잘못을 사죄하는 자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승준은 “국민 여러분, 법무부 장관님, 병무청장님, 출입국관리소장님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1년 1월로 시간을 돌린다면 군대를 가겠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가겠다. 당연히 간다”고 말했다. 유승준은 “군대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고, 가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승준은 지난해 군입대를 고려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작년에 군대에 가고 싶다고 한국에 연락을 했다”며 “관계자 분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대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주위 분들에도 말씀 드렸다. 당시 성룡 영화를 찍고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내가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씀 드렸더니 성룡 회사 사장님도 ‘잘 했다’고 말씀 해주셨다. 와이프, 아이들에게도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유승준은 “군대에 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틀 있다가 내 생년월일을 물어 보시더라. 나는 76년생인데 알고 보니 38살까지 군대에 갈 수 있는 것은 80년대생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군대에 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말로 군대에 갈 의향이 있었다면 지난 13년간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부터 시작해, 국적을 회복하더라도 병역 의무가 소멸되는 만 37세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인터뷰를 진행하는 배경 등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승준 인터뷰, 13년 만에 심경 고백 “군대가고 싶었지만 갈수 없었던 이유는..” 무릎꿇고 사과

    유승준 인터뷰, 13년 만에 심경 고백 “군대가고 싶었지만 갈수 없었던 이유는..” 무릎꿇고 사과

    유승준, 13년 만에 심경 고백 “군대가고 싶었지만 갈수 없었던 이유는..” 무릎꿇고 사과 ‘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심경 고백’ 가수 유승준이 13년 만에 병역기피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유승준은 19일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13년 전 군 기피 및 병역 문제와 관련한 당시 상황과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유승준은 심경을 묻는 질문에 “무슨 말을 먼저 드려야 할지 솔직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유승준은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국민 여러분과 법무부 장관, 병무청장님, 출입국 관리소장님, 한국의 젊은이들에 물의를 일으키고 또 허탈하게 해드린 점 사죄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유승준에 따르면 그는 13살인 1989년 이민을 갔다. 이후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했고 1999년 3집 ‘열정’ 활동 당시 병역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바른 청년 이미지라서 해병대 홍보대사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고, 나는 내가 홍보대사 한 것은 금연 외에는 한 것 없다”고 밝혔다. 유승준은 “군대에 대해서 거부 반응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해서, 군인이 되라고 내게 늘 말씀하셨다. 어릴 때부터 가려고 했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당시로 시기를 돌이킨다면 군대를 가야한다. 시간이 이렇게 큰 무리를 일으킬 줄 몰랐다. 돌이킬 수 있다면 2번 생각 안하고 간다”며 “지난해 7월에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고 싶다고 했다. 만으로 38살이었는데 성룡 등 주위 분들이 ‘그 길 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결정을 잘 했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도 군대를 가겠다고 했다”고 군대를 가고 싶었던 의욕을 전하기도 했다. 유승준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한국땅을 밟고 싶다. 아이들과 떳떳하게 밟고 싶다. 예전에 ‘아름다운 청년’ 유승준이라고 했는데, 아름답지 않았는데 아름답고자 노력했고,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모습 때문에 어르신들이 좋아해주셨다”고 울먹였다. 2002년 1월 군입대를 앞두고 일본 공연에 임했던 유승준은 “거짓말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시민권을 취득할 계획을 짜 놓고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군대를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간다고 말한 것이다. 시민권 선서가 2001년 10월경에 나왔다. 영주권은 아버지가 신청한 것이 나왔고 끝까지 거절했다. 당시 군대 가려고 했었고 시민권 인터뷰 참석을 하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시민권을 재발급 받는 것은 어려웠다. 일본 공연 갈 당시 시민권 인터뷰 날짜가 나왔고, 아버지가 오라고 설득하셨다”고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유승준은 “병역 기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데, 아버지가 ‘너가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했고 6, 7집을 37억 원에 계약해서 이행해야 하는 조건도 있었다. 부모님을 20살부터 모셨다. 회사에서도 직원이 많았는데, 다른 연예인이 없어서 내가 일을 안 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군대 가는 것조차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시민권 획득은 부모님의 설득, 계약 문제로 벌어졌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순 없다”고 털어놨다. 미국에 돌아가서 심각해진 여론에 대해서는 “한참 동안 몰랐다. 찍어 놨었던 방송도 불방이 됐다. 점점 멀어져 갔다. 한국 쪽 반응을 보지 않았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소재로 코미디 소재로 삼더라. 시청자들이 웃었다. 가족들과 같이 봤는데, TV를 껐다. 그 이후부터 한국 쪽 기사를 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힘들었던 시기를 회상했다. 그는 시민권 취득 후 입대를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당시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내가 피해자인 줄 알고 있었다. 마음을 바꾸라는 사람이 아내였다. 한국땅 밟고 싶으면 군대를 가라고 한다. 자존심이 상해서 번복하기 꺼려했고 그저 도망가고 싶어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혈통과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런 문제가 나를 감싸고 있는 것 자체가, 가족을 봐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섰다”고 고백했다. ‘한국 국적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 국적 포기에 대한 제의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렇게 선처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간절함을 드러냈다. 끝으로 유승준은 병무청 관계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도 선처를 해주셔서, 한국 땅 밟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젊었을 때의 잘못에 사죄드린다”면서 “국민 여러분, 시간이 오래 지나서 사죄드려서 죄송하다. 용기가 없어서 쉽게 나오지 못했다. 늦게나마 사죄의 말씀을 전하게 됐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제가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회복하고 싶다. 물의 일으켜 죄송하다. 많은 허탈감을 드려 죄송할 뿐이다”라고 거듭 사과를 전했다. 한편 유승준은 지난 1997년 3월 데뷔앨범 ‘west side’의 타이틀곡 ‘가위’로 데뷔해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2002년 입대를 3개월 여 남긴 시점에 해외 공연을 이유로 출국한 뒤, 약혼녀 오모 씨의 미국 영주권 취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 가족이 거주 중이던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했다. 결국 병무청은 출입국 관리법 11조(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입국 금지조치를 내릴 수 있다)에 의거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유승준은 지금까지도 관광비자가 아니면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됐다. 이후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성룡이 이끄는 엔터테인먼트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활발히 활동을 이어왔다. 유승준이 한국국적을 재취득하려면, 미국 국적은 포기해야 한다. 또한 귀화가 아니라 국적 재취득이라면 만 37세가 넘지 않은 경우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유승준은 1976년 12월15일 생으로, 현재 만 38세. 지난해 12월15일 부로 병역의무는 소멸된 셈이다. 따라서 그가 다시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군대에 갈 염려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방송 캡처(유승준 인터뷰 유승준 심경 고백)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승준 “작년까지 억울했다. 군대 가려고 했다” 신현원 인터뷰

    유승준 “작년까지 억울했다. 군대 가려고 했다” 신현원 인터뷰

    ‘유승준 아프리카TV’ ‘신현원 프로덕션 인터뷰’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가 아프리카TV를 통해 심경을 고백했다. 유승준은 19일 오후 10시 30분(한국시간) 인터넷 아프리카TV(http://afreeca.com/shinpro)를 통해 한국 대중과 마주했다. 영상은 홍콩 현지에서 생중계됐다. 유승준은 “작년까지만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제 잘못이라는 걸 깨닫고 이렇게 나오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 유승준은 약 10초간 90도로 깎듯이 인사를 한 후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유승준은 “오늘은 심경 고백하는 자리도 아니고 변명의 자리도 아니다”며 “여러분들에게 제 잘못을 사죄하는 자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승준은 “국민 여러분, 법무부 장관님, 병무청장님, 출입국관리소장님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1년 1월로 시간을 돌린다면 군대를 가겠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가겠다. 당연히 간다”고 말했다. 유승준은 “군대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고, 가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유승준은 지난해 군입대를 고려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작년에 군대에 가고 싶다고 한국에 연락을 했다”며 “관계자 분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대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주위 분들에도 말씀 드렸다. 당시 성룡 영화를 찍고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내가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씀 드렸더니 성룡 회사 사장님도 ‘잘 했다’고 말씀 해주셨다. 와이프, 아이들에게도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유승준은 “군대에 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이틀 있다가 내 생년월일을 물어 보시더라. 나는 76년생인데 알고 보니 38살까지 군대에 갈 수 있는 것은 80년대생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며 군대에 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말로 군대에 갈 의향이 있었다면 지난 13년간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부터 시작해, 국적을 회복하더라도 병역 의무가 소멸되는 만 37세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인터뷰를 진행하는 배경 등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은 누구

    ‘선조실록’의 편찬자는 선조 시기 영의정까지 지낸 류성룡의 단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재상으로 그릇이 작다. 붕당에 대한 마음을 떨치지 못해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면 용납하지 않았다. 임금에게 바른말을 고하지 못하여 대신다운 풍절이 없었다.” 하지만 선조 시대가 동서남북의 붕당정치가 치열하게 이뤄졌던 시기인 점을 감안했을 때, ‘선조실록’에서 남인의 거두인 류성룡에 대한 기술이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선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가장 조잡하고, 질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효종 때에 ‘선조수정실록’으로 다시 쓰이게 된다. 어찌 됐든 당시 정치의 중심에 서서 서인, 북인 등과 치열하게 대립했던 류성룡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은 그가 충무공 이순신의 충실한 후견인이었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이순신과 한동네에서 자랐던 류성룡은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조에게 권율, 원균 등과 함께 이순신을 명장으로 천거했다. 6년 뒤 이순신이 모함을 당했을 때 그를 끝까지 지킨 것도 류성룡이었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이순신을 천거한 사람이 나이므로 나와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몹시 공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류성룡은 선조 앞에서 직접 이순신을 변호했다. 이후 선조가 류성룡을 경기 지방에 보내 순찰토록 했는데, 한 달 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이순신은 다시 모함을 받아 죄인이 돼 있었다. 이때 류성룡은 사직을 결심하고 1개월 동안 무려 10여 차례의 사직 상소를 올렸다. 결국 이순신은 류성룡과 이원익, 정탁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참수형을 면하고 백의종군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살아남은 이순신이 복직 뒤 명량해전에서 대활약을 펼쳐 조선을 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 ‘징비록’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류성룡 ‘징비록’

    때는 1604년 싸락눈이 날리는 한겨울의 깊은 밤이다. 경북 안동의 유서 깊어 보이는 한 사랑채에서 나이가 지긋한 선비가 일렁이는 촛불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덧입혀지는 내레이션. “화살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이순신은 직접 나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총탄에 맞고 말았다. 총탄은 가슴을 관통하고 등 뒤로 빠져나갔다.” 현재 KBS에서 주말 밤마다 방송하고 있는 대하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의 첫 회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쓰는 글에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줌으로써 이 드라마가 류성룡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임진왜란 이야기라는 것을 넌지시 드러낸다. 실제로 ‘징비록’은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물이고 드라마는 바로 류성룡의 이 저작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중종 37년(1542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류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자랑했던 그는 21세가 되던 해 퇴계 이황 밑에서 학문을 사사하게 되는데, 이때 이황이 류성룡을 가리켜 “이 사람은 하늘이 낳은 인물이다. 반드시 뒷날에 크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온 그는 1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재상의 자리에 머문 인물이고, 당파 간의 다툼이 예사롭지 않았던 선조 대에 남인의 영수라 거론되면서도 한 번도 유배를 가지 않은 인물이다.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고 불릴 뿐 아니라 이순신과 함께 육지에서 임진왜란을 이끈 탁월한 리더십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에 그는 좌의정이면서 병조판서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4월 13일 오후에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이 거칠 것 없이 부산, 동래, 밀양을 함락시키며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올라오자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류성룡을 도체찰사로 임명해 군사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선조가 한양을 떠나 피란길에 오를 때 수행 업무를 맡았고 개성에 도착해서는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이후 7년 동안 전란의 한가운데서 진두지휘를 맡았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저술하게 된다. ‘징비록’이라는 책 제목은 중국의 고전인 ‘시경’에서 유래한다. 류성룡 자신이 직접 서문에서 “‘시경’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야말로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고위직에 있으면서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 땅에서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우국충정에서 쓰인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징비록’은 류성룡 개인이 저술한 초본과 나중에 인쇄된 간행본 두 가지가 전해 온다. 간행본에서는 초본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선조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이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예를 들면 초본에서는 선조가 주도하여 한양을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간행본에서는 그냥 조정 내에서 한양을 떠나자는 논의가 이루어졌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간행본은 다시 16권본과 2권본으로 나누어진다. 16권본은 ‘징비록’ 상·하 2권과 ‘근폭집’ 2권, ‘진사록’ 9권, ‘군문등록’ 2권과 ‘녹후잡기’로 구성되어 있고, 2권본은 ‘징비록’ 상·하 2권과 ‘녹후잡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현재 출판되어 있는 ‘징비록’의 대부분은 간행본의 2권본을 번역한 것이다. ‘징비록’ 1권(상)은 1586년에 일본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온 일부터 시작한다.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는 히데요시에게 물길이 험해서 사신을 보내지 못한다고 답장을 보낸 일, 소 요시토시가 다시 사신으로 오고 이에 대해 조건부로 통신사 파견을 수락하는 과정, 통신사의 파견,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엇갈린 보고, 날로 극성스러워지는 왜적 때문에 뛰어난 장수를 천거하라는 선조의 명에 그동안 세운 공에 비해 진급이 늦었던 이순신을 천거한 일, 그리고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 다니기에만 급급했던 초기 전황, 선조의 피란, 명나라 원군의 도착과 패전,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군과 의병들의 활약상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2권(하)은 대부대를 이끌고 온 명나라의 2차 원군과 권율의 행주대첩, 일본이 한양을 점령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면서 굶어 죽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백성들의 딱한 상황, 한양 수복, 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하옥과 원균의 패전, 명나라와의 갈등, 곽재우와 유정의 활약, 이순신의 복귀와 전사 과정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녹후잡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한강의 물이 3일 동안이나 붉은 모습을 띠었다든가 도성 안에 항상 검은 기운이 퍼져 있었는데도 하늘이 간절히 알려준 이상한 기운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임진왜란이 지속된 기간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징비록’은 전쟁 기간 동안 재상과 도체찰사를 겸임한, 요즘 말로 하면 국정 최고책임자였던 류성룡이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당파의 색깔 없이 객관적으로 집필한 저서로서 임진왜란에 대한 그 어떤 기록물보다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역사적인 가치로만 빛나는 건 아니다. 일본 열도를 통일한 뒤 조선과 중국까지 자신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에서 시작하여 그런 히데요시의 야망을 한순간에 꺾으며 장렬히 죽어간 이순신의 죽음으로 책을 마무리한 구성이 마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드라마틱하여 기록 문학으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다. 또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말도 있다. ‘징비록’은 책 제목에 드러나듯이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자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갖고 집필된 책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그때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까. 다시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과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위지침을 마련한 일본, 그러한 일본을 명실상부한 파트너로 점찍은 미국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정세는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임진왜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자신을 ‘징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역사는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남북분단과 같은 비극으로 되돌아왔다. 또다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기 전에 ‘징비록’을 썼던 류성룡의 마음을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권경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졸업 후 진로 보장 원하면 ‘특수대학’ 지원하길

    졸업 후 진로 보장 원하면 ‘특수대학’ 지원하길

    취업난이 이어지면서 경찰대, 육해공군 사관학교 등 졸업 후 진로가 보장되는 특수대학들이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다. 일반 대학과 달리 4년간 학비를 지원받아 공부하면서 경찰 간부나 군 장교로 임관할 수 있어서다. 특수대학의 전형 일정과 주의 사항을 알아봤다. 올해 100명을 선발하는 경찰대 경쟁률은 군·경 특수대학 가운데 가장 높다. 지난해 일반전형 90명 모집에 6323명이 지원해 70.3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10명을 선발하는 여학생 일반전형은 무려 160.5대1로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올해 육사는 310명, 공사는 175명, 해사는 175명을 선발한다. 지난해 경쟁률은 각각 18.6대1, 25.6대1, 23.2대1이었다. 경찰대와 사관학교는 일반 대학보다 전형 일정이 석 달 정도 빠르다. 경찰대가 다음달 15일부터, 사관학교가 다음달 29일부터 원서를 받는다. 올해 1차 학과시험일은 경찰대가 7월 25일, 사관학교가 8월 1일이다. 경찰대와 사관학교 복수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같은 날 시험을 봤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학교별 경쟁률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대와 사관학교는 특수대학으로 분류된다. 지원이나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일반 대학 수시나 정시에 지원할 수 있다. 수시 6회 지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떨어지더라도 일반 대학 복수 지원을 고려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선발 방법은 경찰대와 사관학교가 대체로 유사하다. 1차 학과시험을 거쳐 모집 인원의 일정 배수를 선발하고 나서 2차에서 신체검사, 체력검정, 면접시험을 본다. 다만 공군사관학교는 역사(안보)관 논술, 경찰대는 PAI 인성검사를 본다. 여기에 학생부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까지 합산해 최종 결과가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학과시험이다. 경찰대는 국어 45문항, 수학 25문항, 영어 45문항으로 모집 정원의 4배수를 선발한다. 사관학교는 문과와 이과에 따라 선발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지원해야 한다. 남녀 구분에 따라 4~8배수를 선발한다. 이 안에 들지 못하면 강철 체력과 확고한 신념도 무용지물이다. 1차 학과시험을 통과하면 2차에서는 체력검정과 면접 등이 진행된다. 2차 시험 반영 비율은 수능에 비해 낮은 편이다. 지원자 대부분 학과 성적이 비슷해 이 지점에서 승부가 난다. 지원 동기와 각오 등을 명확히 정리하는 게 좋다. 특히 시중에 학교별 기출 면접 항목들이 나와 있으니 이에 맞춰 여러 번 연습해 보는 것이 좋다. 사관학교의 경우 한국사능력 검정시험 결과에 따라 가산점을 차등 반영한다. 특히 공군사관학교는 한국사능력 검정시험 결과에 따라 최대 20점까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입시에서 반영하는 한국사시험은 이달 23일과 오는 8월 8일 두 차례 있다. 학교마다 점수 반영 방법이 다르므로 이에 맞춰 수준별 시험을 고르도록 한다. 올해 육사는 고교 학교장 추천 우선선발을 신설했다. 기존 군 적성 우선선발 20%에다 추가로 10%를 우선선발 한다. 학교당 2명까지 가능하다. 학생부와 수능이 면제되기 때문에 성적이 달리는 학생들이 도전해 볼 만하다. 그러나 졸업 후 진로가 보장된다고 무턱대고 도전하는 것은 금물이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학교생활이 일반 대학과 확연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군사 훈련 등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적성이 이에 맞는지를 반드시 살펴보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부고]

    ●박보무(전 광주지방법원장)씨 별세 성룡(미국 마블사 부장)씨 부친상 영진(동아일보 고문변호사)진오(동아일보 감사)씨 형님상 27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30분 (031)787-1505 ●이환석(ADT시스템 대표이사)씨 모친상 전기풍(경남 거제시의원)씨 장모상 28일 거제 맑은샘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055)636-4800 ●홍곤표(MBC 나눔 대표이사 겸 MBC 사회공헌실장)씨 부친상 2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02)2227-7556 ●황의서(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의중(불암고 교사)의진(미국 거주)유정(독립기념관 이사)씨 모친상 희승(잡플래닛 대표)씨 조모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2)3410-6920 ●조기연(중앙여고 교사)씨 모친상 김사승(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이성원(한일구조 대표)씨 장모상 2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97 ●이재덕(GS EPS 상무)재성(사노피파스퇴르 전무)재현(현대건설 부장)씨 부친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2)3010-2293 ●송지호(전 동아건설 전무)씨 별세 동근(전 대신증권 전무)씨 부친상 이수갑(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씨 장인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3410-6902 ●장영주(시그네트홀링스 대표이사)씨 모친상 김현수(국민연금관리공단 해외부동산팀장)완수(웨일미디어 대표이사)씨 외조모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30분 (02)3010-2236 ●지정연(전남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장)씨 장모상 28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062)250-4455 ●최문성(광문고 교사)문석(미국 거주)문수(GS칼텍스 차장)씨 부친상 신동휘(CJ대한통운 부사장)씨 장인상 28일 인천 인하대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30분 (032)890-3195
  • 성룡,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깜짝 선물…꽃미남 아이돌 그룹이 배식 ‘대박’

    성룡,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깜짝 선물…꽃미남 아이돌 그룹이 배식 ‘대박’

    성룡,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깜짝 선물…꽃미남 아이돌 그룹이 배식 ‘대박’ 성룡 김희선, 김희선 앵그리맘 성룡 김희선과 아이돌 그룹 JJCC의 국경을 초월한 특별한 우정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성룡은 21일 김희선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MBC ‘앵그리맘’ 촬영장에 밥차와 커피트럭을 ‘깜짝’ 선물하며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특히 현장에는 성룡이 직접 발굴한 ‘성룡키즈’ JJCC가 일일 배식 도우미로 등장해 직접 방문하지 못한 성룡을 대신해 마음을 전했다. 김희선을 비롯한 앵그리맘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성룡의 특급 배려가 담긴 밥차 선물에 큰 감동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성룡 김희선의 특별한 우정은 지난 2005년 영화 ‘신화-진시황릉의 비밀(The Myth 감독 당계례)’ 출연을 계기로 시작된 것으로 성룡은 지난해, 자신의 주최한 자선콘서트 ‘Jackie Chan 2014 Peace & Love & Friendship’에 한국여배우로는 유일하게 김희선을 공식 초청하며 남다른 우정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어, 김희선은 성룡과 함께 9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JJCC 멤버 에디(Eddy)를 비롯해 JJCC의 데뷔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며 연예계 선배로써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대를 이은 이들의 특별한 우정에 훈훈함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룡,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깜짝 선물…국경초월 우정 언제부터?

    성룡,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깜짝 선물…국경초월 우정 언제부터?

    성룡,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깜짝 선물…국경초월 우정 언제부터? 성룡 김희선, 김희선 앵그리맘 성룡 김희선과 아이돌 그룹 JJCC의 국경을 초월한 특별한 우정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성룡은 21일 김희선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MBC ‘앵그리맘’ 촬영장에 밥차와 커피트럭을 ‘깜짝’ 선물하며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특히 현장에는 성룡이 직접 발굴한 ‘성룡키즈’ JJCC가 일일 배식 도우미로 등장해 직접 방문하지 못한 성룡을 대신해 마음을 전했다. 김희선을 비롯한 앵그리맘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성룡의 특급 배려가 담긴 밥차 선물에 큰 감동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성룡 김희선의 특별한 우정은 지난 2005년 영화 ‘신화-진시황릉의 비밀(The Myth 감독 당계례)’ 출연을 계기로 시작된 것으로 성룡은 지난해, 자신의 주최한 자선콘서트 ‘Jackie Chan 2014 Peace & Love & Friendship’에 한국여배우로는 유일하게 김희선을 공식 초청하며 남다른 우정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어, 김희선은 성룡과 함께 9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JJCC 멤버 에디(Eddy)를 비롯해 JJCC의 데뷔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며 연예계 선배로써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대를 이은 이들의 특별한 우정에 훈훈함을 자아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룡 앵그리맘 김희선에 밥차에 커피까지 선물…무슨 사이?

    성룡 앵그리맘 김희선에 밥차에 커피까지 선물…무슨 사이?

    ‘성룡 앵그리맘’ 성룡이 ‘앵그리맘’에 출연중인 김희선을 위해 밥차를 선물했다. 성룡은 21일 김희선이 주연으로 출연 중인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 촬영장에 밥차와 커피 트럭을 선물했다. 이날 현장에는 성룡이 직접 발굴해낸 ‘성룡키즈’ JJCC가 일일 배식 도우미로 등장해 직접 방문하지 못한 성룡을 대신했다. 김희선을 비롯해 함께 출연 중인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월드스타 성룡의 배려가 담긴 밥차 선물에 감동했으며, 고된 촬영의 피곤함을 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겼다는 후문이다. 김희선과 성룡은 2005년 영화 ‘신화-진시황릉의 비밀’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성룡은 지난해 자신이 주최한 자선 콘서트 ‘잭키찬 2014 피스&러브&프렌드쉽’에 한국 여배우로는 유일하게 김희선을 공식 초청, 돈독한 우정을 자랑했다. 더잭키찬그룹코리아 관계자는 “김희선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고심하던 중 함께 고생하는 출연진과 스태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힘이 돼줄 수 있는 밥차 선물을 기획하게 됐다”면서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성룡 대신 그의 수제자 JJCC 멤버들이 배식 도우미를 자처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룡 앵그리맘,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통큰 선물..대체 왜? 어떻게 만났나보니

    성룡 앵그리맘, 김희선에 ‘밥차+커피트럭’ 통큰 선물..대체 왜? 어떻게 만났나보니

    성룡 김희선 앵그리맘 ‘밥차+커피트럭’ 통큰 선물..대체 왜? 어떻게 만났나보니 ‘성룡 앵그리맘, 성룡 김희선’ 중화권배우 성룡이 배우 김희선과의 우정으로 드라마 ‘앵그리맘’에 밥차를 선물했다. 성룡 앵그리맘 밥차 선물 소식이 전해지며 성룡 김희선의 국적을 초월한 우정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성룡은 21일 김희선이 주연으로 출연 중인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 촬영장에 밥차와 커피 트럭을 선물했다. 이날 앵그리맘 촬영 현장에는 성룡이 직접 발굴해낸 ‘성룡키즈’ JJCC가 일일 배식 도우미로 등장해 직접 방문하지 못한 성룡을 대신했다. 김희선을 비롯해 함께 앵그리맘에 출연 중인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성룡의 배려가 담긴 밥차 선물에 감동했으며, 고된 촬영의 피곤함을 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유쾌한 한 끼 식사를 즐겼다. 김희선 성룡은 2005년 영화 ‘신화-진시황릉의 비밀’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이후 성룡은 지난해 자신이 주최한 자선 콘서트 ‘잭키찬 2014 피스&러브&프렌드쉽’에 한국 여배우로는 유일하게 김희선을 공식 초청하며 돈독한 우정을 자랑한 바 있다. 더잭키찬그룹코리아 관계자는 “김희선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고심하던 중 함께 고생하는 출연진과 스태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힘이 돼줄 수 있는 앵그리맘 밥차 선물을 기획하게 됐다.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성룡 대신 그의 수제자 JJCC 멤버들이 배식 도우미를 자처했다”고 전했다. 사진=더잭키찬그룹코리아(성룡 앵그리맘) 연예팀 seoule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