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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절에 한양도성의 성공과 실패를 생각한다

    광복절에 한양도성의 성공과 실패를 생각한다

    “한양도성은 오늘도 변함없이 거대도시 서울을 품고 있다.” 서울 한양도성에 대한 어떤 책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서울 한양도성이 중요한 문화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날 한양도성은 “변함없이 거대도시 서울을 품고 있”지 않다. 1천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시와 서울시 주변의 “서울세력권”을 포함하는 대서울 속에서 한양도성은 극히 좁은 구역만을 담고 있다. 이런 류의 주장은 한양도성 밖으로 거대하게 성장한 현대 서울과 대한민국을 조선시대의 눈으로 “퉁 치는”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다. 한양도성의 가치를 과도하게 강조하려는 일각의 움직임에 대한 나의 위화감은 군사학적인 관점에서도 비롯된다. 성을 쌓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방어다. 사람들은 유사시에 한양도성이 군사적인 목적을 발휘되기를 기대했으며, 그러한 기대에도 한양도성은 번번히 본래의 방어 기능을 달성하지 못했다. 내가 5년 전에 교감 번역본을 출간한 바 있는 “징비록”에서 류성룡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듯이, 일본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한양도성을 군사적인 방어선으로 이용하려 한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아 있는 한양 사람을 총동원해도 다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한양도성이 넓었기 때문이다. “성안의 백성들과 공노비, 사노비, 서리, 내의원·전의감·혜민서 관리들을 뽑아 성벽을 나누어 지키게 했지만, 지켜야 할 성첩은 3만 여 개인데 성을 지킬 인구는 겨우 7000명이었을 뿐 아니라 모두 오합지졸이어서 성벽을 넘어 달아날 생각만 했다.” 한양도성이 “현존하는 전세계의 도성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방어에 적합한 견고한 산성 대신 평지의 널찍한 읍성을 지키려다가 일본군에 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물론 한양도성이 방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양이라는 행정구역을 나타내는 존재도 것은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에 보이는 “성곽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려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한양도성의 목적이 행정구역 표시와 방어의 두 가지임을 선언한다. 이 말에 의거해서 생각한다면, 한양도성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피지배자들에게 지배집단의 권능을 보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성이 방어를 위해 존재한다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한양도성은 임진왜란이라는 국제전쟁 뿐 아니라, 이괄 및 능양군(인조)의 봉기 때에도 뚫렸다. 마찬가지로 성을 쌓느라 사람들을 고생시켰지만,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이라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쿠가와 정권을 지키지 못한 일본 도쿄의 에도성 역시 나는 높이 평가할 수 없다. 한양도성이나 에도성의 이러한 실패와는 대조적으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라는 국제전쟁에서 조선 지배층을 군사적으로 지켜냈다. 이처럼 국내외의 여러 성곽과 비교할 때 조선시대의 한양도성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이러한 한양도성을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성장한 현대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조선왕조와는 질적으로 달라진 대한민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19세기 조선왕조 시대의 관점으로 한국과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다. 급변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시대착오적인 판단이 조선왕조를 망하게 했다. 8월 15일 광복절을 하루 앞둔 아침에 한양성곽을 바라보며 서울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 글: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교수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경세·문장 모두 탁월… 임진왜란 위기 헤쳐나간 명재상

    낙동강 물줄기가 태극 모양으로 감싸고 돌며 수려한 긴 모래사장을 형성한 마을, 고색창연한 한옥과 전망 좋은 정자가 즐비한 마을, 산세가 험하지 않고 그늘이 없이 밝은 마을, 바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이다. 조선 명재상으로 꼽히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을 배출한 곳이다.#이름을 짓기 어려운 큰 그릇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 신흠은 서애를 수행했을 때 기억을 이렇게 술회했다. “공은 내가 글씨를 빨리 쓴다는 이유로 반드시 나에게 붓을 잡으라고 명하고 입으로 불러주어 문장을 이루게 하였다. 줄줄이 이어지는 문서나 편지를 비바람 몰아치듯 신속히 지었는데, 붓이 멈추지 않고 문장에 점 하나 더하지 않았어도 찬란하게 격을 이루었다.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까지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우리가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을 선현 중에는 경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문장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고, 학문에 능했던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한 인물이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커다란 능력을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문장이나 학문에 능한 사람은 경세나 행정에 어둡고, 경세에 밝은 사람은 문장이나 학문이 얕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애는 그런 상식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영의정, 도체찰사(都體察使)로서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경세가이자 ‘맹자’의 문체를 체득한 이름난 문장가였다. 주자학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당시 학자들이 이단시하던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설에까지 관심의 범주를 넓혔던 학자이자 병법에 밝은 실무형 이론가이기도 했다.#퇴계 수제자… 병법에도 밝은 실무형 이론가 퇴계 이황의 수제자를 꼽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서애다. 21세 되던 해에 처음으로 퇴계의 문하에 들어 ‘근사록’(近思錄) 등 성리서를 배웠는데, 퇴계는 그를 만나 보고 나서 하늘이 낸 인재라고 찬탄했다 한다. 퇴계의 예언대로 서애는 임진왜란 당시 국가가 위난에 빠졌을 때 크게 공을 세웠다. “임금께서 한 발자국이라도 이 땅을 벗어나시면 조선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선조는 여차하면 중국으로 넘어갈 요량으로 국경과 가까운 곳으로 피란하려 했다. 조정의 일부 신하들도 이에 동조하였지만 서애는 극구 반대해 자칫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민심의 동요를 잠재웠다. 선조가 장수로 삼을 만한 인재를 천거하라고 했을 때는 지방 수령으로 있던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세를 역전시키게 만들었다. 소극적이던 명나라 원군을 설득해 끝까지 왜적을 몰아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명나라의 신병법인 기효신서법을 배워 군사들을 조련했고 훈련도감을 설치해 군사력 향상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파에 따라 서애의 활약상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하기도 하지만 이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그의 탁월한 안목과 기여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사상의 정수가 담긴 잡저 서애의 문집은 가장 먼저 ‘잡저’(雜著) 부분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서애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글들을 모아 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잡저는 송(宋)나라 역사를 읽으면서 당대에 귀감이 될 만한 사건들에 대한 평설(評說)을 기록한 ‘독사여측’(讀史測)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정주학(程朱學) 계통의 이론을 담은 ‘주재설’(主宰說) 등과 양명학을 비판하는 ‘왕양명이양지위학’(王陽明以良知爲學) 등은 서애의 학문적 사상을 논할 때 필수적으로 인용되는 글들이다. 일견 여타의 정주학자들과 비슷한 견해를 보이지만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읽어 보면 양명의 주장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은연중 보여 주기도 한다. “왕씨의 의도를 잘 살펴보면, 대개 당시 세상의 학문이 외면적인 것으로만 치닫는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결같이 본심(本心)을 위주로 하여, 무릇 마음을 써서 강구하는 행위를 모두 행(行)이라고 여겼던 것이니, 이는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가 너무 지나치게 곧게 된 경우이다.” #벼슬을 버리고 은거를 결심하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국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서애는 부단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했다. 그러나 선조는 계속해서 윤허하지 않았다. “의리상으로는 비록 임금과 신하였으나 정으로 볼 때에는 친구 사이와 같았다. 나만큼 경을 잘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 당인들은 집요하게 그를 공박했다. 마침내 그가 57세이던 1598년에 파직돼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때 관작을 삭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애초에 벼슬에 초연했던 서애로서는 이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전란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유비무환의 교훈을 담은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을 담고 있어 숙종 연간에 이미 일본에서 입수해 출판하기도 했다. 이후로 다시는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향한 서애의 충정은 죽는 날까지 식지 않았다. “나라 위한 마음은 늙어서도 그대로라 세모(歲暮)에 빈산에서 비장하게 읊조리네 노년이라 매사에 감회가 일어나니 무단히 눈물이 홀연 옷깃을 적시네.” #사관(史官)도 놀란 조문 행렬 대신이 세상을 떠나면 사흘 동안 조정은 공무를 중지하고 시장은 문을 닫는 것이 전례였다. 서애가 고향 풍산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는데, 시장 상인들은 애도의 뜻으로 하루 더 문을 닫았다.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선조실록 사관의 평이 흥미롭다. 1000여명이나 되는 조문객이 한때 서애가 살았던 묵사동 빈집에 모여 조곡(弔哭)을 하였던 일을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 인물이 조정에서 발자취가 끊어졌고 상(喪)이 천리 밖에서 났는데도 온 성안 사람들이 빈집을 찾아 모여서 곡을 하였으니, 아마도 시사(時事)가 날로 잘못되어 가고 민생이 날로 피폐해지는데도 후임으로 수상(首相)이 된 자들이 모두 전 사람만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추억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의 백성 역시 불쌍하다.” 선조실록은 북인이 중심이 돼 기술했기 때문에 서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내용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사람들이 서애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권경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서애집’은 서애집(西厓集)은 조선 선조 조의 명재상이었던 류성룡의 시문집이다. 원집(原集) 20권 10책, 별집(別集) 4권 2책, 연보(年譜) 3권 2책 등 총 27권 14책으로 구성됐다. 인조 11년(1633년) 봄에 합천 해인사에서 원집과 별집을 합쳐 초간했다. 고종 31년(1894년) 가을에 하회의 옥연정사에서 연보를 추가 중간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982년에 번역, 출간했다. 류성룡의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이모가 남긴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반세기 전 한 가족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뒤로 드문드문 들어선 새하얀 양옥 주택, 젊은 부부와 두 어린 아이가 함빡 웃는다. 1970년대 초 울산의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 사택이다. 막내의 가슴에는 유공유치원 이름표가 달랑거린다.울산에 정유공장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단지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사택 단지나 사원 아파트가 함께 조성되었다. 서구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공장과 함께 사택과 클럽을 조성하고, 유치원과 볼링장, 실내 수영장도 운영했다. 도심의 사원 아파트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운행되었다. 사택이라고 하면 탄광촌이나 철도 관사 등이 쉽게 떠오르지만, 노동자들의 살림집으로 회사에서 공급하는 주택(社宅)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옥타비아 힐의 아버지가 추종했던 200년 전 영국 사람 로버트 오언(초상화·1771~1858)은 대개 공상적 사회주의자이자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의 주거를 기업의 주된 과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최초의 실험을 한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계곡 골짜기의 뉴 래나크에서 말이다. “오언은 그전에 맨체스터에 있었어요. 같은 산업혁명 상황이라고 해도, 맨체스터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후에 엥겔스(1820~1895)가 나쁜 주거 환경을 묘사해서 보고서를 낸 곳이죠. 소셜리스트라는 말로 워낙 알려졌지만, 오언은 도시를 만드는 것, 타운 플래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에요. 도시 계획 자체가 오언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이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오언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환경 문제로 들어가서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오언은 웨일스 대장장이의 아들로, 9살 때 런던으로 상경해 포목점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면 방적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지던 맨체스터로 옮겼고, 20대 초에는 작은 공장을 인수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맨체스터에서 철학과 문학 클럽을 드나들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도 키워 나갔다. 20대 말인 1800년엔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산골로 들어가 뉴 래나크 면 방적 공장을 인수했다. 당시 발명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의 수방적기를 도입해 데이비드 데일(1739~1806)이라는 기업가가 차린 공장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여러 공장이나 탄광이 그렇듯, 수력을 기계 동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낙차가 큰 물 근처에 공장을 두어야 했고, 클라이드 강의 수려한 계곡이 바로 그랬다. “맨체스터에서 왜 래나크로 갔을까. 맨체스터에서 스스로 일하면서 노동자들 현실을 봤겠죠. 산업 혁명에 따른 문제를 풀지 못할 문제라고 보느냐, 아니면 풀 수 있느냐, 거기에서 두 길이 나뉘는 거예요.” 오언이 래나크로 간 것은 사랑에 빠져서였다. 데이비드 데일의 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출신의 격차가 컸다. 장인의 환심을 사려고 기업의 주주가 된 것이다. 공장을 인수하고 보니, 운영이 문제였다. 인근 주민들은 전통적인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공장에 출퇴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기술자들은 먼 도시에 살았다. 공장에는 교회 구빈원에서 노동력이랍시고 보낸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과 일에 별 의욕이 없는 떠돌이 임시 노동자들뿐이었다. 돈만 생기면 술 마시고 뻗어 버리는 노동자들을 구타하거나, 적게 먹는 아이들을 초과 노동시키면서 영국은 위대한 산업화를 이루어 내는 중이었다. 몸집이 작고 손가락이 가는 아이들은 거대한 방적기 아래를 드나들며 실오라기를 줍고 실을 잇는 데 동원되었다.오언은 맨체스터 생활을 접고 뉴 래나크로 이사를 갔다. 그는 뉴 래나크에서 일하려고 먼 곳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반듯한 집과 더 많은 월급을 먼저 주기로 했다. 공장 곁에 사택을 조성해 한 가족이 한집에서 살게 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고, 노동자들은 출퇴근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일이 줄어도 월급을 주고, 하루에 8시간만 노동하게 했다. 마을 안에 매점을 조성해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했는데, 월급은 적게 주면서 공산품은 턱없이 비싸게 팔아 두 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식민지에서나 모국에서나 제국의 기업가들이 꾀한 기본 모델이었다. 1817년에 오언은 뉴 래나크에 노동자 자녀와 고아들을 위해서 영국 최초로 초등학교를 두었다. 오언의 경영 방식은 해마다 더 높은 수익률로 되돌아왔지만, 다른 주주들은 노동자를 위하느라 기업주의 이익을 줄인다며 투자에 훼방을 놓았다. 오언은 1813년에 반대자들의 주식을 몽땅 사 버렸다. 이후 10여 년간 이 산골 공장 마을은 유럽 곳곳의 정치가, 왕족의 방문 행차를 맞았다. 방문객들은 청결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에 만족한 활기찬 노동자들이 사업성을 높이고 수익 목표를 달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한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목도하고 대단히 놀랐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소개한 글이 1817년에 발표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이다. “오언의 상상도는 뉴 래나크를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글로 썼는데, 나중에 그림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거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엄청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도시가 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그걸 직접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아닌가. 가난한 노동자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달라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찾은 거지요. 물론 이상 도시 계획은 그전에 르네상스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언이 다른 점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산업, 기계 시대에 먹고사는 문제하고 연결한 거죠. 그리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해 냈어요.” 오언은 실업의 원인을 기업주들의 잘못된 수익 목표에 두었다. 나폴레옹 전쟁(1804~1813)을 거치면서 영국의 공장은 기계화되어 엄청난 공산품을 생산했지만 전쟁이 끝나고서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아 결국 불황이 닥쳤다. 그러자 기업주들은 노동자부터 대량 해고해 버렸다. 경기에 따라 해고되고 취업되는 노동자들은 결코 기술을 쌓거나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 오언의 대안은 인구 1000명 안팎의 작은 일자리 공동체를 많이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언론에 실리면서 환영과 함께 맹렬한 비난도 받았는데, 먹고살 만한 노동자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아서 결과적으로는 실업 빈민 수가 더 급증할 것이라는 위협이었다.아무리 수익성으로 증명해 보여도 기업주들의 욕심이 멈추지 않는 데 질린 오언은 1925년에 큰 이익을 본 뉴 래나크를 매각했다. 그 돈으로 한 건축가와 함께 만든 도면과 모형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워싱턴 하원에서 모형을 전시하고, 마침내 인디애나주의 개신교 정착촌 뉴 하모니에서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중이떠중이 몰려든 사기꾼과 알코올 중독자들은 월급만 받고 일하려 들지 않았다. 뉴 래나크에서 25년 동안 모은 재산을 2년 만에 날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오언에게 공상가라느니, 협동주의 운동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원에서 발표한 오언의 개념도는 이렇다. 네 방향의 반듯한 도로와 텃밭에 둘러싸인 블록이 있다. 블록 한가운데에는 공공시설과 어린이집, 각급 학교, 공동 부엌, 강당, 클럽, 도서관과 종교 시설이 들어간다. 야외는 녹지로 조성되어 운동과 여가 장소로 이용된다. 블록의 세 변에는 노동자를 포함한 4인 가족마다 방 4개짜리 주택들이 계획된다. 나머지 한 변은 독신자와 고아 숙소, 먼 곳에서 놀러 온 친지나 가족들을 위한 손님방, 교사나 의사의 관사, 공동 창고가 들어선다. 한쪽 도로 건너편에는 이들이 노동할 공장이나 회사가, 반대쪽 건너편에는 입주민들에게 식량으로 공급될 논밭과 과수원이 배치된다. 공장과 주거, 곧 사택 단지 사이에는 키 큰 나무를 심어 적절히 분리한다. “그 그림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공상적이었는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거죠. 오언은 미봉책으로 조금조금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새로 만들어서 해결해 보자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내용을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언제부터 쓸 수가 있었느냐고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서로 얘기를 못했잖아요.” 오언의 계획은 이후 여러 추종자들을 거쳐 20세기 미국과 일본, 수많은 근대 국가에서 실현되었다. 그를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가르쳤던 우리의 학교도 바로 그렇게 조성된 사택 단지나 아파트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오언은 공상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뉴 래나크라는 공장에서, 동시대 현실에서 직접 마주친 문제를 해결해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196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도시 주택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도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에요. 서구 사례에서 대응하기 쉬운 짝을 찾아서 사지선다형처럼 고르려고 한 거지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요. 결과물로 나온 도시의 모양은 비슷한데, 근본적인 해결이 나오지는 않아요.”사택 살던 아이들이 그렇듯 이모네 가족도 이모부의 전근에 따라 몇 년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들의 주소는 사택이 아니라 강남의 아파트가 되었다. 오언의 개념도가 착실하게 실현된 200년 후 대한민국의 귀결은 협동조합이나 화폐 없는 공동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월급보다 더 큰 재미를 보았다.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오언을 따른다며 사택을 짓고 특정 종교나 생활 방식을 강요하려 든 기업주도 역사상 많았다. 강점기 일제 관료의 사택은 문화재가 될지언정, 우리 노동자의 공단 사택과 클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주택 청약권이 아니라 노동자가 이사하지 않고 일터 가까이에 거주할 권리, 회사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따질 수는 없었을까. 새벽 5시부터 30도를 오가는 날, 아득하게 펼쳐진 아파트 숲 사이를 매일 1시간 넘게 땀 흘리며 출근해야 하는 신도시 노동자들은 벌써 피곤하다.
  • 황인구 서울시의원, “안전성·적법성·투명성을 핵심 가치로 강동 교육정책 발전해야”

    황인구 서울시의원, “안전성·적법성·투명성을 핵심 가치로 강동 교육정책 발전해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황인구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 강동4) 등 강동·송파 지역 시의원 9명은 지난 7월 25일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서 지역 교육현안과 정책 등을 청취하는 업무보고를 가졌다. 이 날 간담회에는 김병혁 교육장을 비롯하여 교육지원청의 각 부서장과 김종무, 노승재, 송명화, 이정인, 이준형, 이태성, 정진철, 홍성룡, 황인구 시의원이 참석했다. 이번 업무보고는 새로 출범한 제10대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지역 현안을 공유하고, 역내 재개발·재건축 등에 따른 교육환경 변화에 대한 논의의 장을 갖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특히 거여·마천동과 고덕강일 등의 학교 신설과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등의 재건축 단지 내 학생배치계획, 지역 노후 학교에 대한 시설개선 및 안전보강 사업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황인구 부위원장은 “학교용지 확보 및 신설배치계획, 교육환경 개선사업 등 각종 교육정책들이 적법한 절차와 투명한 과정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또한, 황인구 부위원장은 “안전한 도시가 최고의 도시”라고 강조하며, “적극적인 안전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함과 동시에 각종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지역의 여러 환경적 변화(지하철 9호선 3단계 개통, 둔촌 주공아파트, 고덕강일 공공주택지구 등 강동·송파 일대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등)에 따른 아이들의 학습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마무리 발언을 통해 황 부위원장은 “사람이 아름다운 강동, 서울을 이끄는 송파의 비전을 이뤄가기 위해 지역 발전과 교육 혁신은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오늘 논의된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강동송파교육가족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셋집도 내 집” 역발상… 런던 빈민굴, 사람 사는 동네로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셋집도 내 집” 역발상… 런던 빈민굴, 사람 사는 동네로

    우리나라 도시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전체 인구의 90%를 넘겼습니다. 한국 사람 열 명 중 아홉은 도시에서 살고, 40대 이하의 반 이상은 고향마저 도시입니다. 우리가 나고 함께 살아가는 도시란 무엇일까요? 근대는 도시의 고민에서 출발했으며, 그 근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서울신문은 출판사 수류산방과 함께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의 합창’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조성룡(74) 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와 심세중(44) 수류산방 편집장의 대담을 지면으로 옮기는 형식으로 이어 갑니다. 근대 이후 세계의 도시를 만들어 온 역사적 인물과 흐름들, 당시 중요하게 대두됐던 가치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입니다. 그 과정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질문인데도 우리가 너무 몰랐던, 타율적이고 일방적인 도시 개발 과정에서 간과했던 모더니즘의 근본 고민들을 들춰 보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시리즈 제목은 1949년 출간된 모더니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서 따 왔음을 밝힙니다.)“나이팅게일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쉽겠어요. 영국의 간호사 나이팅게일(1820~1910)이라고 아시죠? 우리나라에서도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씩씩한 사람이었대요. 우리나라에서는 위인전을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생애 한 시절에 공이 있으면 그것만 띄우죠. 사실 나이팅게일이 전장에서 간호한 건 잠깐이거든요. 물론 나이팅게일은 그 시대 영국 사회를 개혁하는 일을 남자도 못할 만큼 해냈죠.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옥타비아 힐(Octavia Hill·1838~1912) 이라는 여성은 우리한테 그만큼 안 알려졌어요. 부잣집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집이 갑자기 망했어요. 그래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게 되죠. 그러다가 15살 때쯤에 당대의 인물인 존 러스킨(John Ruskin·1819~1900)이라는 사상가를 만나요. 그 양반이 미학 얘기도 했고 고딕건축에 대해서 연구도 많이 했지요. 1900년에 죽은 사람이니까 빅토리아 시대 사람인데, 이 시대가 영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어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했잖아요.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무슨 문제가 일어났냐면, 주택 말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해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지니까 집이 부족해서 집을 짓는데, 너무 엉망인 집을 마구 지어요. 그걸 봤겠죠. 나름대로 문제라고 생각했겠죠. 옥타비아 힐이 사실 러스킨하고 몇 살 차이가 안 나요. 러스킨 밑에서 그림 필사해서 그리는 일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이 사람이 20대에 자기 선생한테 도움을 받아서 집 세 채를 사요.”1887년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 행사에 남성의 동반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참여한 여성은 단 세 명이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조지핀 버틀러(Josephine Butler·1827~1906), 그리고 옥타비아 힐이다. 나이팅게일은 국가를 위한 전쟁에 나가 근대 의학의 개가를 알렸기 때문인지 세계적으로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조지핀 버틀러는 여성운동가였다. 옥타비아 힐은 우리에게 가장 이름이 덜 알려진 인물이다. 그나마 알려졌다면 문화재 보호 운동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의 창립자로서지만, 옥타비아 힐이 평생을 바친 주제는 도시 빈민들의 주거 문제였다. 그의 부모와 외조부도 박애주의를 실천하던 부유한 사회 사업가 집안이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병환 이후 어린 시절 런던 외곽에서 성장하면서 런던 빈민의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절대적 빈곤 계층은 근대화와 도시화의 산물이었다. 처음에는 최악의 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더 컸다. 옥타비아 힐도 그런 생각이었고, 나은 집을 얻어서 거기에 빈민들을 살게 하려고 계획했다. 정작 그 구상을 듣자 어떤 집주인도 선뜻 집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더럽고 위험할 것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세입자로 들이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진 청년 빅토리아 힐을, 마침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은 스승 존 러스킨이 도왔다. 좋은 집이 아니라 이미 빈민들이 살고 있던 최악의 주택을 겨우 몇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러스킨의 조건은 매년 5%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임대주택 지저분하게 방치하는 게 문제 “옥타비아 힐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임대 아파트가 좋아지려면 뭘 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아예 집주인이 된 거지. 런던의 매릴번이라는 동네인데, 집을 산 다음에 이 여자가 하는 일이 뭐였나면, 매주 임대료를 받으러 가요. 꼬박꼬박. 그런데 돈 벌려는 것보다는 연구를 하는 거예요. 임차인이 어떡하면 행복해지느냐. 가서 주민들한테 뭐가 문제인지 묻고, 어떻게 사는지 관찰하고, 옆집하고 계단을 같이 쓰려면 청소를 해야지 하고 알려 주기도 했어요. 처음에 3채에서 시작했는데 18년이 지나니까 이 사람이 관리하는 임차인이 3000명이 된 거예요.이 사람의 주장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거예요. 집하고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러니까 세입자가 행복해지려면, 삶이 고귀해지려면, 집이 그렇게 좋아져야 한다. 아름답죠. 집주인으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민했어요. 살아가면서 옆집하고 공유하는 부분을 어떡해야 하는가를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학생들하고 공공 임대 주택에 관찰하러 답사를 나가 보면, 임대 주택 사는 빈민들이 단지를 너무 지저분하게 방치한다고 관리인들이 불평하거든요. 바로 그 문제예요.” 옥타비아 힐의 빈민 주택에 대한 방법론은 깔끔한 새 집을 지어 빈민들을 이사시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매주 세를 걷으러 직접 다녔다. 체납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니 집세를 내려면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이 사는 집을 수선하고 가꾸는 일거리를 주었다. 집세도 낼 수 있었고 살림도 나아졌으며 주거 환경도 나아졌다. 야학이나 어린이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러스킨의 투자를 받았던 최악의 빈민굴이 몇 년이 지나자 번듯한 사람 사는 동네로 바뀌어 갔다. 주민들은 도시 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한 재개발에 밀려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됐고 공동체도 깨지지 않았다. 게으르고 술만 마시고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사람들이 빈민이 될 거라는 낙인을 찍지 말고, 자립심과 자존감을 가지도록 북돋아 주고 대화해 주자는 것이 힐의 방법론이었다. 그들은 퍼 주기 식으로 부양해야 할 불쌍한 사람이 아니며, 세 들어 사는 집은 세만 내면 그만인 남의 집이 아니다. ●난개발 반대… ‘그린벨트’ 용어 첫 사용 옥타비아 힐은 국가에서 보조금 주택을 분양하는 방식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대 주택이 수익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입주자 가족의 규모와 성격, 집의 입지를 고려해서 가구 배치를 섬세하게 정했다. 애초에 제대로 집행되지 못할 규칙은 제정하지 않았다. 집주인은 세를 과도하게 올리지 않고 장기적이지만 적절한 이윤에 만족하되 집의 상태를 좋게 유지하고, 세입자는 감당할 만한 집세로 떠돌지 않고 정착해서 살면서 일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세상에 보이려고 했다. 그녀가 관리하기 시작한 집들은 그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런던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내내 놀랍게도 100년이 넘게 신자유주의 시대를 견디며 지금까지 같은 방식으로 관리되며 수익을 내는 단지들이 남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하고 같이 책을 보다가 옥타비아 힐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이 사람이 누구지? 찾아보니까 우리말 자료가 너무 없어요. 처음에 나는 왜 집주인이 되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체험했다는 것이 좋은 방법 같아요. 집주인으로서 끊임없이 세입자와 친구처럼 얘기했대요. 그런데 철칙이 뭐냐면, 그 집 관리인을 전부 여성으로 고용해요. 그러니까 여성의 사회 진출하고도 관련이 있죠. 이 여성들이 몇십년 같이 일하면서 이런 일을 전파하는 전문인이 된 거죠. 그러다가 이 사람이 또 뭘 하냐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만 아니라 집 근처에 공원이나 정자 나무 그늘 같은 곳이 필요하다, 도시나 건축에서 오픈 스페이스라고 하는 공간인데, 그 중요성을 처음 말한 사람이에요. 지주는 땅이 있으니 오픈 스페이스를 가지죠. 지주가 아니어도 시골에 살 때는 오픈 스페이스가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고향을 떠나 도시에 오면 그런 공간이 없단 말이에요. 주말이나 저녁에 가족들하고 나갈 곳이 있어야 하잖아요. 정말 중요한 겁니다.”옥타비아 힐은 실외에 ‘앉아 있을 장소, 놀이할 장소, 산책할 장소, 그리고 여가를 보낼 장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고궁이나 교외로 놀러 갈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외곽으로 놀러 간다는 것은 여행 경비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하루치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외 녹지의 난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옥타비아 힐은 ‘그린벨트’라는 말을 처음 쓴 인물 중 한 명이다. 도시민들에게 근교의 공원과 녹지를 선사하기 위해서 시작한 난개발 반대 운동이 결국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으로 성장했다. 또한 옥타비아 힐의 사업은 세틀먼트 운동(Settlement Movement)을 낳았는데, 이는 중산층이 빈민과 같은 구역에 함께 거주하면서 생활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주택 관리,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게 해야 “요즘 임대 주택 한다지만, 아, 서울에 비싼 아파트에 임대 주택 넣으라고 하니까 단지 한쪽 구석에 몰아 놓고, 그 집 아이들 학교 가면 놀림 받잖아요. 그때 런던이나 지금 서울이나, 다 시골 사람들이 올라와서 노동자가 되면서 만들어진 도시예요. 산업화를 이뤘으면서, 그 노동자에 대한 생각을 사회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요. 150년 전 런던에 비교하면 서울에는 훨씬 집이 많잖아요. 그런데도 그 고민이 너무 적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될 리가 없었겠지만 해방 후에는 돼야 할 건데 5년 있다가 전쟁 나고, 또 몇 년 있다가 군사독재 시작해서 1988년까지 군사정권이었잖아요. 그런 시대 속에서 집을 지었다고요. 그러니까 이 집이 노동자를 위한 집이 아니에요. 내가 70대가 되고 보니까, 도대체 내가 사람들을 위해서 한 게 뭐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집 짓는 사람인데, 건축가들이 돈 있는 사람 집만 지어 줬단 말이지. 돈 없는 사람이 자기 집을 맡길 리가 없고, 국가의 임대 주택은 오로지 중산층을 위한 거였어요. 그런데 건축가들이 이런 내용을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저 임대 놓기 좋은 집이 아니라 세입자들이 품위 있게 살도록 설계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좋은 단지는 예쁜 집, 잘 지은 집이 있는 단지가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단지예요. 그러려면 설계와 관리가 서로 이어져야 하는 거예요.”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18 56~1925)가 그린 옥타비아 힐의 초상화는 1898년에 동료 노동자들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 무렵 이미 옥타비아 힐은 서방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지만, 국가나 정부에서는 그녀의 방식을 끝까지 반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딴 여러 단체가 생겼고, 그중에는 부작용도 많았다. 지금 서울에서 집주인이라는 이유로 세를 받으려고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정 방문을 한다고 하면 누구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옥타비아 힐은 무상 복지나 보조금에 완강히 반대했다. 엘리트주의에 기반해 근면이나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전파하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5%의 수익률도 악용되기 십상이다. 집값이 오르면 그에 따라 세도 올려 두 배의 수익이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초상화를 선물받았을 때 힐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벗들이 특별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지도 말고, 내가 갔던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말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대 환경은 또 다른 노력을 요구할 것이므로 우리가 끝없이 추구해야 할 것은 굳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 어떤 주택은 잘 수선하는 것이 낫고, 어떤 주택은 새로 짓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려 깊고 사랑을 담은 관리를 충분히 기울여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다가올 새롭고 더 나은 날들의 가장 큰 과제를 간파하는 것이다. 더 큰 이상, 더 큰 희망, 그리고 그 둘을 실현시킬 인내력”을 품고 서로의 집과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 여름밤, 에어컨 아래에서나, 맞바람이 들지 않는 대학가의 원룸이나 땡볕을 피할 길 없는 옥탑방에서나, 잠들기 어려운 도시의 밤에 말이다. 기획 수류산방
  • 안양문화예술재단, 공공예술 지식·감성 배양 프로그램 ‘2018 공공예찬’ 진행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이번달부터 5개월간 공공예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감성을 배양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문화예술재단은 ‘우리가 있는 곳,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곳’을 주제로 오는 28일 “2018 공공예찬” 첫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19일 밝혔다. 재단이 2~3년마다 개최하는 국내 유일 공공예술 축제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돕기 위한 행사다. 시는 문화와 예술을 도시 발전의 중심 개념으로 설정했다. 지역 공동체에 창조적 환경을 조성하고 삶의 생기를 불어 넣어 예술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도시 곳곳에서 예술 프로젝트로 미술·조각·건축·영상·디자인·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공예술 작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공공예찬’은 다양한 장르로 진화하는 공공예술에 대한 새로운 흐름을 제안하고,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의 참여를 위해 마련됐다. 그 첫 번째 기획으로 진행되는 ‘2018 공공예찬’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을 초청해 ‘공공성’에 대한 공통의 이해, 공통 이슈, 공통의 선결문제 등을 논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각 분야의 사회적 실천과 변화에 대한 비평적인 지식을 모은다. 이를 확장해 동시대 예술과 공공의 관계에 대한 확장된 비전을 탐구할 예정이다. ‘공공예찬’은 강연과 대담, 투어, 영상 상영,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이번달부터 11월까지 다섯 달 동안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총 5회에 걸쳐 안양예술공원 내 안양 파빌리온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오는 28일 조성룡(건축가)의 강연 ‘건축과 풍화’에 이어 이승하(조각가)의 투어·토크 ‘정령의 숲으로’ 첫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다음달 25일에는 조만수(연극평론가)의 강연 ‘거리극 공적공간으로서의 거리’, 송주원(안무가)의 워크숍 ‘몸으로 만나는 골목’ 이 열린다. 9월 29일에는 함양아(미디어아티스트)의 강연 ‘예술은 누구의 이름을 부르는가‘, 10월 27일에는 함돈균(문학평론가)과 이영광(시인)의 대화 ‘목소리 없는 것들을 불러내기’가 이어진다. 11월 24일에는 마지막으로 박해천(디자인연구가)의 강연 ‘도시의 감각과 중산층’, 이명현(천문학자)과 박정희(동물권활동가)의 강연·대화 ‘외계생명체에서 동물원 동물까지’가 이어진다. 안양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에서 참여자 3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김정은, ‘일본인 납치문제 조사결과 日에 재설명하라’ 지시”

    “김정은, ‘일본인 납치문제 조사결과 日에 재설명하라’ 지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한 조사 결과를 일본 측에 재설명하라고 지시했다고 교도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북한 평양의 소식통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며 일본이 이 조사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북일간 대화의 전제라고 일본 측에 전달했다. 북한이 제시한 조사 결과는 2014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일간 합의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양측은 “북한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재조사하고 일본은 대북제재를 완화한다”고 합의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납치피해자를 포함한 북한내 일본인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 조사를 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그 후 북일관계가 악화하며 북한은 2016년에 일방적으로 조사를 중단했다. 평양의 소식통은 “북한 당국은 조사 결과를 이미 비공식적으로 일본에 전달했다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일본측이 조사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적이 없다고 하고 있어서 김 위원장이 ‘재설명을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이라고 전했다고 통신은 소개했다. 통신은 또 다른 북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일본 측에 ‘스톡홀름 합의는 파기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을 전했고, 북일 양측은 합의가 유지되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일본 내각관방 산하 ‘납치문제대책본부’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가 17명이라고 규정했다. 이 가운데 5명은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방북 당시 귀국했다. 현재 문제가 되는 납치피해자는 12명이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생사확인 및 귀국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12명 가운데 8명은 사망했고 4명은 북한에 있지 않다며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해 왔다.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된 사안이란 것이 북한의 공식 입장이다. 이혜리 기자 lee@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말코, 네 이름(구스티 글·그림, 서애경 옮김, 문학동네 펴냄) 아르헨티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구스티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이 말코와 함께 보낸 시간을 담았다. 아기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괴로웠던 마음, 아이를 통해 깨달은 사랑의 의미 등을 다뤘다. 148쪽. 1만 6800원.인연·창밖은 오월인데(피천득 지음, 민음사 펴냄) 한국인이 사랑하는 수필가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과 작가의 유일한 창작 시집 ‘창밖은 오월인데’의 전면 개정판. 각각 중국 상하이 유학 시절 편지를 기다리는 일을 희망 삼았던 마음을 담은 ‘기다리는 편지’ 등 미수록 산문 2편과 미수록 시 7편을 추가했다. 각 권 300·180쪽, 각 권 1만 5000원·1만원.벌, 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노아 윌슨 리치 지음, 김승윤 옮김, 연암서가 펴냄) 세계의 벌과 벌의 생태를 비롯해 벌과 관련된 인간의 문화사, 양봉의 역사와 원리, 벌을 위협하는 환경 위기 등 벌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담은 안내서. 다양한 사진과 정교한 그림이 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228쪽. 2만원.동양방랑(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작가정신 펴냄)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의 저자인 후지와라 신야의 여행서. 이윤정 번역가의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개정판으로 책 말미에 소설가 장정일의 서평이 실렸다. 400여일간의 기록이다.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았다. 528쪽. 2만 8000원.건축과 풍화(조성룡 지음, 심세중 엮음, 수류산방 펴냄)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를 설계한 원로 건축가 조성룡이 송파 지역의 유일한 공공 미술 공간인 ‘소마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초고층 아파트 ‘상계동 주공 아파트 4단지’ 등 자신이 설계한 작품을 중심으로 도시 주거와 공공 건축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384쪽. 2만 1000원.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정치하는엄마들 지음, 생각의힘 펴냄)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창립 과정과 노동·보육·페미니즘·교육·공동체 등 단체의 회원들이 ‘엄마 정치’가 필요한 영역에서 1년간 활동한 기록을 담았다. 352쪽. 1만 6000원.
  • 이연걸 건강 악화 소문에 SNS에 직접 근황 “나 잘 지내고 있어요~”

    이연걸 건강 악화 소문에 SNS에 직접 근황 “나 잘 지내고 있어요~”

    중국배우 이연걸이 건강악화설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지난 23일 배우 이연걸(56·李陽中)이 최근 불거진 노화, 건강 악화 등 소문에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연걸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건강을 걱정해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어 “난 정말 잘 지내고 있고, 몸 상태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최근 모습이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지난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매체들이 보도한 이연걸 최근 모습과 달리 혈색이 좋고 건강한 모습이었다.이연걸은 티베트 사원에서 승려와 만난 모습을 공개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편 이연걸은 1979년 영화 ‘이연걸의 소림사’로 데뷔, 1991년 영화 ‘황비홍’에 출연하며 이소룡과 성룡을 잇는 액션 스타로 주목받은 인물이다. 지난 2013년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진단받고 치료에 매진해왔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과다하게 분비되면서 갑상선 중독증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이 때문에 이연걸은 안와 내압이 높아지면서 안구가 돌출되거나 각막, 시신경 등에 문제가 생겨 안와감압술을 받기도 했다. 사진=이연걸 페이스북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이연걸 근황, 갑상선 기능 항진증 투병 이후 ‘황비홍은 어디 가고...’

    이연걸 근황, 갑상선 기능 항진증 투병 이후 ‘황비홍은 어디 가고...’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고 있는 중국 배우 이연걸의 최근 모습이 공개돼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지난 2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측은 배우 이연걸이 최근 티베트 한 사원에서 포착됐다고 전했다. 해당 매체는 이연걸이 주위 사람들 부축을 받아 걸었다는 목격담과 함께 그의 모습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백발머리에 수척해진 이연걸의 모습이 담겼다.1963년생인 이연걸은 50대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쇠한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는 앞서 지난 2013년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진단받은 후, 활동이 뜸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과다하게 분비되면서 갑상선 중독증을 일으키는 상태를 말한다. 이 때문에 이연걸은 안와 내압이 높아지면서 안구가 돌출되거나 각막, 시신경 등에 문제가 생겨 안와감압술을 받기도 했다. 한편 이연걸은 1979년 영화 ‘이연걸의 소림사’로 데뷔, 1991년 영화 ‘황비홍’에 출연하며 이소룡과 성룡을 잇는 액션 스타로 주목받았다. 사진=KBS1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성폭행 의혹’ 김성룡 9단 프로기사회 회원 자격 박탈

    ‘성폭행 의혹’ 김성룡 9단 프로기사회 회원 자격 박탈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회(회장 손근기)가 ‘성폭행 의혹’을 받는 김성룡 9단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프로기사회는 8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 청소년수련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성폭행 의혹’을 받는 김성룡 9단에 대한 제명안 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 204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75표,반대 17표, 기권 12표로 제명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앞서 프로기사회는 지난 4월 24일 연령별 대의원회의를 열고 김성룡 9단 제명안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날 총회를 앞두고 김 9단은 탈퇴서를 제출했으나, 기사회는 투표를 실시해 찬성률 85.8%를 기록했다. 총회에서는 재적인원 354명의 과반이 출석해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제명이 결정된다. 프로기사회에서 회원 제명 결정이 내려진 것은 1986년 이후 무려 32년 만이다. 1967년 10월 출범한 프로기사회에서는 김 9단을 포함해 총 5명이 명예 실추 등의 이유로 제명됐다. 프로기사회에서 제명되더라도 프로기사 자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기사직에 대한 징계는 한국기원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김성룡 9단은 최근까지 한국기원 홍보이사와 바둑리그 팀 감독, TV 해설가 등 왕성한 활동을 한 중견 기사다. 그러나 지난 4월 16일 외국인 여성기사 A씨가 9년 전 김 9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큰 파문이 일었다. 손근기 프로기사회 회장은 “김성룡 9단이 탈퇴서를 제출했으나 투표 결과를 보면 프로기사들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 결정은 기사회 회원 자격을 박탈한 것이지만 프로기사회 회원이 아니면 사실상 프로기사도 아니라고 보면 된다”라며 “한국기원에도 (김성룡 9단) 제명안을 이사회에서 다뤄달라고 공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 억류 미국인 3명 평양 근처 호텔로 옮겨”…북미정상회담 전 석방?

    “북, 억류 미국인 3명 평양 근처 호텔로 옮겨”…북미정상회담 전 석방?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이 석방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2일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이 노동교화소에서 평양 외곽의 호텔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최 대표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평양의 한 주민한테서 들었다며 “북한 관계기관이 지난달 초 상부 지시로 노동교화소에 수감 중이던 김동철, 김상덕, 김학송씨를 평양 외곽의 호텔로 옮겼다”고 전했다. 그는 “이들은 치료와 교육을 받으면서 관광도 하는 강습 과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 3명은 모두 북한에서 적대 행위나 국가전복음모 등의 혐의로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목사인 김동철 씨는 2005년 10월 체포됐으며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교수 출신인 김상덕 씨는 지난해 4월, 평양과학기술대에서 농업기술 보급 활동 등을 했던 김학송 씨는 지난해 5월 체포됐다. 북한과 미국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들의 미국 송환에 대해 협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룡 딸 실종, 생모 경찰에 신고 “심리상태 매우 불안” 캐나다 포착?

    성룡 딸 실종, 생모 경찰에 신고 “심리상태 매우 불안” 캐나다 포착?

    중화권 배우 성룡(64)의 사생 딸이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홍콩 밍보 등 중화권 언론들은 최근 기사를 통해 성룡의 사생 딸 우줘린(18)이 현재 실종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우줘린의 생모이자 성룡의 젊은 시절 내연녀인 우치리는 얼마 전 경찰에 딸이 사라졌다고 실종신고를 했다. 우치리는 경찰에 “딸의 인스타그램이 몇 개월째 그대로고 친구들에게 연락해봐도 다들 모른다더라”며 “딸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한 관계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하루 빨리 찾아달라”고 하소연했다. 1999년 태어난 우줘린은 성룡이 젊은 시절 내연녀였던 우치리와 사이에 얻은 딸이다. 엄연히 자기 핏줄이지만 성룡은 양육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겉으로 이들의 존재를 꽁꽁 감춰 왔다. 우줘린은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부친을 원망하며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러던 지난 2015년, 우줘린이 부친을 탓하며 가출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중화권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다. 여론은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해온 성룡이 우치리와 우줘린을 ‘방치’한 것도 모자라 아들 팡주밍(방조명·36)만 챙긴다고 비판했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자란 우줘린은 아버지 성룡에 대한 상처로 가출과 자해를 반복했다. 최근엔 급기야 집을 나와 흡연·음주를 하는 사진이 나돌았고, 이후 커밍아웃으로 크게 주목 받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자살소동을 벌여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바 있다. 한편 26일 중국 언론 시나위러는 인터넷에 실종됐다던 우줘린이 캐나다의 마트 CCTV 영상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상 속의 우줘린은 백발의 초라한 모습으로 카운터에서 누군가에게 “아빠를 찾고 싶어요. 우리 엄마…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우리 엄마…”라고 말하고 있다. 시나위러는 “우줘린이 캐나다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으며 힘이 들 때는 아빠 성룡의 이름을 대고 생활한다는 소식이 있다. 우줘린이 손에 낡은 이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다”고 전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성룡 9단 성폭행 의혹” 프로기사회, 제명 추진

    “김성룡 9단 성폭행 의혹” 프로기사회, 제명 추진

    프로바둑 기사들이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룡(42) 9단에 대해 제명을 추진한다.프로기사회는 24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연령별 대의원 회의를 열고 김성룡 9단 제명안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프로기사회 총회는 다음달 열리며 총회에서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제명이 결정된다. 프로기사회에서 제명되더라도 법적으로 프로기사 자격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원 이사회에서 김 9단의 제명안이 통과돼야 한다. 하지만 관례상 한국기원 이사회가 프로기사회 입장을 반영하는 만큼 제명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높다. 앞서 외국인 여성 프로기사 A씨는 지난 17일 프로기사 전용 게시판에 9년 전 김 9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태 해결에 미적거리고 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바둑계도 미투…외국인 女기사 “김성룡 9단에게 성폭행당해”

    바둑계도 미투…외국인 女기사 “김성룡 9단에게 성폭행당해”

    ‘바둑계 팔방미인’ 김성룡(42) 9단이 가해자로 미투(#Me Too) 논란에 휩싸였다. 김 9단은 재치 넘치는 입담과 해설로 바둑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기사여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여자 프로기사 A(35)씨는 최근 기사회 내부 게시판에 ‘김 9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A씨는 “2009년 6월 5일 김 9단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친구를 기다리며 술을 많이 먹었고,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날 밤의 일”이라며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죽을 때까지 숨겨 두고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폭로한 배경을 밝혔다. 김 9단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김 9단의 한 지인은 “논란이 된 사건은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이지 성폭행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국기원은 20일 미투 운동 대응을 위한 윤리위원회 첫 회의를 연다. 윤리위원회는 미투 관련 의혹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2차 피해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프로골프 등 5개 종목 단체와 62개 구단을 대상으로 성폭력 실태를 조사한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뿐 아니라 구단 프런트, 치어리더, 장내 아나운서 등도 포함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모든 분야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계기로 프로스포츠 분야도 들여다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김성룡 성폭행 의혹 ‘반박’ 외국인 기사 “눈떠보니 알몸이었다”

    김성룡 성폭행 의혹 ‘반박’ 외국인 기사 “눈떠보니 알몸이었다”

    바둑계에서도 미투(#Me too) 폭로가 나왔다.한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여자 프로기사 A씨는 17일 한국기원 프로기사 전용 게시판에 ‘과거 김성룡 9단에게 성폭행당했다’는 글을 올렸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그는 “이 글을 보고 내 마음이 어땠는지 느꼈으면 한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고, 누구도 나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다음은 A씨가 올린 글이다. “요즘 ‘미투’ 때문에 옛날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든 잊으려고 했던 시간인데…. 역시 그럴 수 없다. 2009년 6월 5일 김성룡 9단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같이 오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다가 술이 많이 마셨고, 그의 권유대로 그의 집에서 잠을 잤다. 정신을 차려보니 옷은 모두 벗겨져 있었고 그놈이 내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가 나를 강간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눈을 뜬 것이다. “일주일 뒤 김성룡이 술에 취해서 내가 사는 오피스텔 앞으로 찾아와 만나자고 했다. 몇 호인지도 물어봤다. 다행히 그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문을 잠갔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아침이 되어서야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외국인 여자기사로서 그동안 지내오면서 내가 얼마나 힘이 없는 존재인지 실감했다.” “9년간 혼자만의 고통을 감내하는 동안, 김성룡은 바둑계에 모든 일을 맡으며 종횡무진으로 활동했다. 방송, 감독, 기원 홍보이사 등등. 나는 9년 동안 그 사람을 피해 다녔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요즘도 웃으며 인사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그 날의 일 때문에 내가 얼마나 무섭고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는 것 같다.” 김성룡 9단은 한국기원 홍보이사, 바둑도장 운영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보도와 관련 김성룡 9단 측은 “합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로 성폭행은 아니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원은 17일 미투 운동 대응을 위한 임시 운영위원회를 열고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한국기원 이사인 임무영 대전고검 검사가 윤리위원장을 맡았고, 남녀 프로기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윤리위는 미투 관련 의혹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단호하고 엄정한 조치를 하며, 2차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당장 내년부터 수능 최저기준 폐지? 고2 ‘멘붕’

    당장 내년부터 수능 최저기준 폐지? 고2 ‘멘붕’

    확정 안 돼 수능·수시 준비 혼란 시민단체 “고교서열화 심화” 대학 “학종 공정성부터 높여야”“지난해 수시 교과전형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한 선배를 ‘롤모델’로 삼아 교과목과 수능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폐지될지도 모른다니 난감해요. 지금이라도 수능은 버리고 내신에 올인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수도권의 여고 2학년 이모(17)양은 2020학년도부터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폐지될 수 있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런 예고도 없다가 정부가 수능을 1년여 남겨 두고 갑작스레 폐지 권고안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확정안도 아니어서 수능 공부에 손을 놓을 수도 없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최근 교육부에서 각 대학에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장 변화를 겪게 되는 고2 학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폐지를 권고받은 대학들도 “교육부가 현장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부담만 떠넘기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27일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폐지되면 오로지 내신으로만 학생을 선발하게 돼 고교서열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면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를 반대했다. 이들은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는 깜깜이·복불복 전형으로 비판받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불공정성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년 기준 수도권과 지방의 주요 거점 국립대 대부분은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올해 고3에 해당되는 2019학년도에 대학별로 고려대는 3700여명, 연세대 1300여명, 이화여대 1400여명 등을 수시모집에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해 선발한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팀장은 “당장 내년에 입시를 치러야 하는 고2 학생들이 입시제도의 변화를 겪게 된다면 혼란을 겪는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대학들도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를 권고한 교육부에 불만을 나타냈다. 서울의 한 주요 4년제 대학 입학처장은 “교육부는 수능 최저학력 기준으로 대학들이 편하게 인재들을 뽑아간다고 하지만 수능 최저학력 기준마저 없어지면 지원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수시나 학종 평가를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면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 권고를 하기 전에 학종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인력 마련 등에 대한 지원부터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학종 전형에서는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없애더라도 교과전형(내신)의 경우 지방이나 강남·수도권의 학생들은 수준이 비슷하더라도 내신 등급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면서 “교육당국에서 ‘학종은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없애고 교과전형에선 적용하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학생과 대학의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검경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놓고 ‘썰전 한판’

    검경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놓고 ‘썰전 한판’

    “검찰이 독점한 영장청구권은 검찰 조직의 부패를 초래합니다.”(정태호 경희대 교수) “법률전문가를 거쳐야 국민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줄어듭니다.”(김성룡 경북대 교수)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영장청구제도를 중심으로 헌법 개정토론회’에 경찰 측 발제자로 나서 검사가 영장 청구권을 독점하는 현행 체제를 비판했다. 정 교수는 “영장청구권을 검사에게 독점시키는 헌법 규정을 삭제해야 검찰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고, 검찰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화된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국가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제대로 된 수사 구조를 형성하는 문제는 단순히 경찰과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는 경찰청과 한국헌법학회,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공동주최로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사안으로 떠오른 영장청구제도를 집중 논의하고자 열렸다. 현행 헌법 12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영장청구제도가 검·경의 권한 배분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입을 모았지만, ‘검사의 신청에 의한’ 영장청구제도 폐지 여부를 놓고선 입장이 달랐다. 검찰 측 발제자로 나선 김성룡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은 경찰의 영장 신청을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작업을 해 불필요하거나 오류로 인한 구속 등을 막아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면서 “(현행 헌법은) 수사 단계에서 이뤄진 영장 신청을 법률전문가인 검사를 거치도록 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줄이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영장청구제도 폐지가 아닌 검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자들도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영아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검찰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문제라면 정치권력에 의한 검찰 통제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헌법에서 검사영장청구 조항을 삭제하자는 주장은 국민의 인권침해를 용이하게 해달라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 측 토론자인 황정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은 “검찰과 경찰의 정체성은 모두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인권보장과 친하기 어렵다”면서 “인권보장을 위해 검사의 영장청구독점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경찰 생활을 돌아봤을 때 생경하다”고 의문을 표했다. 이어 “고양이가 생선을 지킨다고 헌법에 규정해도 고양이는 결국 생선을 먹는다”면서 “수사와 무관한 이들이 검찰과 경찰을 통제해야 국민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경찰,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폐지해야”

    “검찰이 독점한 영장청구권은 검찰의 공룡화를 가속화하고 검찰조직의 부패를 초래합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영장청구제도를 중심으로 헌법 개정토론회’에 경찰 측 발제자로 나서 검사가 영장 청구권을 독점하는 현행 체제를 비판했다. 정 교수는 “영장청구권을 검사에게 독점시키는 헌법 규정을 삭제해야 검찰에 대한 견제가 가능하고, 검찰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치화된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제대로 된 수사구조를 형성하는 문제는 단순히 경찰과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는 경찰청과 한국헌법학회,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공동주최로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사안으로 떠오른 영장청구제도를 집중 논의하고자 열렸다. 현행 헌법 12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영장청구제도가 검·경의 권한 배분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입을 모았지만, ‘검사의 신청에 의한’ 영장청구제도 폐지 여부를 놓고선 입장이 달랐다. 검찰 측 발제자로 나선 김성룡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검찰은 경찰의 영장 신청을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작업을 해 불필요하거나 오류로 인한 구속 등을 막아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면서 “(현행 헌법은) 수사단계에서 이뤄진 영장 신청을 법률전문가인 검사를 거치도록 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줄이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토론자들도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영아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검찰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문제라면 정치권력에 의한 검찰 통제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인 영등포 형사과장은 “촛불민심의 명령은 국정농단에 부역할 수 없는 검찰로 다시 만들라는 것”이라면서 “이것은 경찰의 숙원을 푸는 차원도 아니고 기관 간의 권한을 배분하는 차원도 아니다”고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강남 8학군 뜬다더니… 올 강남 일반고 신입생↓

    강남 8학군 뜬다더니… 올 강남 일반고 신입생↓

    올해 ‘강남 8학군’의 일반고 신입생 수가 다른 지역보다 오히려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정부의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힘빼기’ 정책 기조에 따라 학생들이 대치동 등 강남에 몰려들 것이라는 우려와는 상반된 경향이다. “학생, 학부모가 달라진 정책에 맞춰 움직이려면 시간이 걸려 통계에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과 “강남 집중화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는 분석이 엇갈린다. 7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8학년도 후기고(일반고) 신입생 수는 4만 9961명으로 전년보다 13.9% 감소했다. 이 중 강남구의 후기고 신입생은 3930명으로 전년 대비 15.0% 줄어 감소폭이 더 컸다. 저출산 영향으로 대부분 지역의 신입생이 줄었는데 강남 지역은 더 크게 줄어든 것이다. 강남·서초구와 함께 ‘강남3구’로 묶이는 송파구 신입생 수도 1년 전보다 14.6% 줄어 서울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반면 서초구의 일반고 신입생 감소율은 12.8%로 서울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이는 인접한 동작구에서 넘어온 학생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학원업계에서는 “비강남 지역의 자사고와 외고 등으로 학생이 분산돼 강남 일반고 신입생이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남권에 살면서 지역 내 일반고 보다 대입 실적이 좋은 강북권 자사고나 외고에 진학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입시 정책 변화에 발맞춘 학생들의 지역 이동은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때 이뤄진다”면서 “외고·자사고의 학생 우선 선발권 폐지 등 일반고 우대 정책의 영향은 현재 초등학교 6학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21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사고·외고 약화에 따른 강남집중화 우려는 과도하다는 시각도 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대학 입시에서 내신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강남보다는 비강남 지역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면서 “강남집중화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록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학입시에서 수능 외에 다른 요인의 비중이 커질 수록 강남에서 비강남 지역으로 학생들의 분산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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