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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계단’에 앉으면 벌금 부과 ‘논란’…“예술품”vs“오랜 전통”

    ‘스페인 계단’에 앉으면 벌금 부과 ‘논란’…“예술품”vs“오랜 전통”

    “스페인 계단은 예술 작품이다. 예술품에 앉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페인 계단에 앉아 쉬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자 여행객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계단’에서 관광객들이 앉아 쉬는 것이 금지되면서 이같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135개의 발판이 있는 스페인 계단은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성지’다. 스페인 광장에서 삼위일체 성당까지 이어준다. 1723년부터 1726년 사이 만들어졌다. 세계인들에게 고전이 된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토를 맛있게 먹었던 그곳이다. 2016년 계단 대리석에서 수백년된 때 찌까기와 껌, 와인과 커피 자국을 씻어내는 리노베이션을 거쳤다.스페인 계단에 앉거나 눕는 행위가 금지된다.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피자, 샌드위치, 밀크쉐이크 등의 패스트푸드를 먹는 행위도 금지된다. 관광객들이 헵번을 따라하다가는 160유로~400유로(약 21만~54만원)의 벌금을 맞을 수 있다. 계단 아래 배 모양의 바르카치아 분수에서 물을 마시는 행위 등도 금지된다. 계단에 앉았다가는 경찰이 호루라기를 분다고 AFP통신이 6일(현지시간) 전했다. 유적지가 많은 로마에서 ‘길거리 음식’이 사실상 금지된 것이다. 로마에서 길거리 음식은 25~500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런 조치에 대해 이탈리아 신문 라리푸블리카는 “샌드위치와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로마 시민 비비안나 디 카푸아는 “로마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재교육시키는 방법”이라며 “로마에 대한 존중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마 시민인 기안니 바티스토니는 관광객들이 계단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너무 많다며 “스페인 계단은 예술 작품인데, 예술품에 앉아 먹는 것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반면 일부는 “이런 조치가 지나치며 파시스트와 같다”고 몰아붙였다. 로마 시민 비토로 스카르비는 “오래 전부터 여행자들은 스페인 계단에 앉아 광장을 내려다보며 경치를 보아왔다”며 “여행객들에겐 잊을 수 없는 로마의 추억 하나가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명동성당 앞에서 비수로 거사… 공범 묻자 “2000만 동포가 도왔다”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알아도 이재명 의사(李在明 義士)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독립운동가 정도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이 지사는 우연히도 의사의 의거일이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국노를 죽이려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교수형을 당한 의사에 대한 인식과 대접이 이렇다. 의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지만, 직계 후손이 없어 훈장을 국가보훈처가 보관하고 있었다. 고향도 평북 선천이라 생가나 일가붙이를 찾을 수도 없다. 형이 집행된 후 시신도 수습되지 않아 유골의 행방도 묘연하니 묘소도 있을 리 없다.잊혀진 의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것은 종친회였다. 이 의사의 본관은 진안인데 진안 이씨는 전북 진안을 비롯해 의사의 고향인 평북 등지에 집성촌이 있다. 또한, 진안 마이산은 1907년 이석용이 조직한 호남 의병 창의동맹단의 집결지였다. 진안에는 1925년 유림들이 일제에 항거해 순국한 의사와 열사 등 79위를 배향한 사당인 이산묘(耳山廟)도 있다.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 두 봉우리의 서쪽이다. 이산묘 영광사(永光祠)에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과 더불어 이 의사도 모셔져 있다.그런 인연으로 의사의 동상과 기념관이 고향에서 천 리 길이 넘는 먼 곳 진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진안군청에서 마이산도립공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도로 오른쪽에 이재명 의사 기념관이 있다. 2001년 종친회와 정치인들이 이재명 의사 추모사업회를 결성해 진안읍 군하리 6500여㎡ 부지에 조성한 시설이다. 그러나 금요일에 찾아간 기념관과 사업회의 문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관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홍살문은 나무가 삭아 홍살이 떨어져 뒹굴고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이러니 방문객은 있을 리도 없고 간혹 지나가다 들러도 관람을 할 수 없다. 몇 해 전 수리를 요청하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군청에서는 토지보상금 사용 승인이 나지 않았다고 답했다. 뜻을 모아 거액을 들여 지은 기념관이 보상금 갈등과 무관심, 예산 부족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관 옆 타향 땅에 세워진 의사의 동상은 더 쓸쓸해 보였다. 이 의사는 1887년 10월 16일 선천에서 태어나 8살 때 평양으로 이사 가서 그곳에서 성장했다. 의사는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미국 노동 이민회사의 모집에 응해 미국 하와이로 갔다. 1906년 3월에는 공부를 더 할 목적으로 미국 본토로 옮겨가 안창호가 중심이 돼 창립한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이듬해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공립협회는 매국노 처단을 결의하고 실행자를 선발했는데 거기에 지원한 사람이 바로 이 의사다.●이토 암살 실행 무산되자 이완용 죽이기로 의사는 그해 10월 9일 일본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때를 엿보던 의사는 1909년 1월 평안도 순시를 떠난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평양역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를 실행하지 못했다. 안창호가 이토와 함께 다니던 순종 황제의 안전을 위해 만류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는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에게 하얼빈역에서 사살됐다. 의사는 원래 목표대로 을사 5적을 비롯한 매국노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여러 동지와 야학당에 모여 이완용은 이 의사와 김병록· 이동수가, 이용구는 김정익이 죽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이완용이 12월 22일 종현 천주교당(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양심여학교 학생이던 아내 오인성씨와 마지막 작별의 밤을 지냈다. 오씨는 울지 않았고 남편의 거사를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날이 새자 김병록, 이동수와 함께 의사는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날 오전 11시 30분쯤 의사는 성당 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갔다. 의사는 비수를 들고 달려들었다. 인력거꾼 박원문이 제지하려 하자 그를 찔러 숨지게 하고 이어 이완용의 허리 쪽을 공격했다. 혼비백산한 이완용이 달아나려 하자 다시 3곳을 더 찔렀다. 거사 직후 의사는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됐다. “오늘 우리의 공적(公敵)을 죽였으니 정말 기쁘고 통쾌하다”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이완용은 치명상을 입지는 않고 목숨을 건졌다. 이완용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의사를 불러 응급 치료를 받았다. 일본 경찰은 이 의사를 이완용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와 있던 농상공부대신 조중응이 “네가 흉행(兇行)을 한 자냐”고 물었다. 이에 의사는 눈을 치켜 뜨며 “너 조중응은 귀중한 인사를 이 모양으로 하대하느냐”며 오히려 추상과 같이 꾸짖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일경에게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니 권연초 한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유유히 피웠다.●“내 목숨 빼앗을 수 있으나 충혼은 못 빼앗아”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은 의사는 일경이 “공범이 있느냐?”고 묻자 “이러한 큰 일을 하는데 무슨 공범이 필요하냐. 공범이 있다면 2000만 우리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다”고 말했다. 이듬해 4월 열린 재판에서도 “도와준 자를 말하라”는 일본인 재판장 스가하라에게 “이완용을 죽이는 것을 찬성한 자는 우리 2000만 동포 모두며 방조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역적 이완용의 8개 죄목을 거론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내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으나 나의 충혼, 의혼(義魂)은 절대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한번 죽음은 슬프지 않다.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내 결코 죽어서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의사는 1910년 5월 18일 경성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꼿꼿한 자세로 재판장을 꾸짖으며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부인 오씨는 ‘국적 이완용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았는데 우리 가부(家夫)는 왜 사형에 처하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총독부 체제 발족 바로 전날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했다. 의사는 의거를 공모한 사람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보호하면서 끝까지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김병록 등 동지 10여명도 최고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의사는 부인 오씨를 성모여학교 교사인 함마리아의 소개로 만나 1907년 겨울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씨도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변호인을 선임하는 등 남편 뒷바라지에 열성을 다했다. 남편이 죽은 뒤 오씨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중국 길림성과 상해 등지로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오씨는 귀국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증거와 단서가 없어 석방되었지만, 미행과 감시를 받았다. 오씨는 다시 망명을 도모하다 병을 얻어 29세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 외과 의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은 이완용은 53일 동안 입원했다. 순종과 고종은 이완용이 퇴원하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종을 보내 안부를 묻고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다. 전국의 관찰사와 군수들로부터도 위로금이 답지했다고 한다. 퇴원 후 충남 온양에서 휴양을 한 이완용은 총리직으로 복귀해 데라우치 통감과 한일합방조약에 서명했다. 그 4일 후 순종 황제로부터 대한제국 최고훈장인 금척대수훈장을 받았다. 이완용은 일제의 보호 속에 백작 작위를 받고 호의호식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1926년 68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의사의 칼을 맞아 폐를 다친 후유증이었다고 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의 벼루·안경, 문화재 된다

    ‘구한말 우국지사’ 황현의 벼루·안경, 문화재 된다

    문방구·생활유물 나눠 문화재 등록 예고경술국치에 죽음으로 맞선 우국지사이자 구한말 4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불린 매천(梅泉) 황현이 남긴 벼루와 안경 등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황현의 유품을 ‘매천 황현 문방구류’와 ‘매천 황현 생활유물’로 나눠 각각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5일 밝혔다. 문방구류는 벼루, 벼룻집, 벼룻돌, 필통, 연적, 지구의, 도장 등 19점이다. 황현은 20대에 1만권의 책을 읽었노라 자부할 만큼 독서광이었고, 다양한 문방구류를 소장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남긴 벼루 3점에는 그가 직접 지은 벼루명이 새겨져 있다. 생활유물은 안경과 안경집, 호패, 합죽선, 상투관, 얼레빗, 소쿠리, 표주박, 책장 등 35점으로 구성됐다. 황현은 심한 근시에 오른눈이 사시여서 20대 중반부터 안경을 썼다. 황현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에 한탄해 다음달 8일 ‘절명시’와 유서를 쓰고, 소주에 아편을 타서 마신 뒤 10일 56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1958년 흑산도에 세운 천주교 성당인 ‘신안 흑산성당’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이날 밝혔다. 흑산성당은 선교뿐 아니라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쳐 낙도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부고] 김이경씨 모친상, 유재호씨 별세, 김헌정씨 모친상

    ●김이경(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상임이사·전 겨레하나 사무총장)·김숙현·김지현·김대업씨 모친상, 박경순(전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강성구·함종훈씨 장모상, 1일 오전 6시 30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3일 오전 5시. 02-2072-2014 ●유재호(아시아태평양교류연구원원장)씨 별세, 유양석(국민대 교수)·유효석(재미)씨 부친상, 7월14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장례미사 3일 오전 9시45분(현지시간) 호놀룰루 피터 앤 폴 성당. 010-5228-9754 ●김화영·김헌영(다우CND 감사)·김헌정(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김화희씨 모친상, 김용호·김나영·김광현씨 조모상, 7월31일 오후 10시40분, 부산 인창요양병원 장례식장 VIP실, 발인 3일 오전 6시30분. 051-464-5831
  • [인사] DGB금융그룹, 커리어케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DGB금융그룹 [DGB금융지주] ◇ 1급 승격 △ 재무전략부장 전광채 △ 시너지추진부장 배인규 ◇2급 승격 △ CSR추진부장 황성준 ◇ 3급 승격 △ 재무전략부 부부장 송경수 ◇ 신규임용 부점장 △ HR·기업문화부 조사역 김연석 [DGB대구은행] ◇ 1급 승격 △ 중동지점장 김철호 △ 여신심사부장 박동희 △ 시지지점장 손대권 △ 지산지점장 오영호 △ 외환사업부장 오재용 △ 대곡지점장 우상태 △ 사상공단영업부장 유용현 △ 용산동지점장 이원수 △ 여신관리부장 이중현 △ 성서3단지영업부장 이해원 △ 전략기획부장 장활언 △ 검사부장 전영의 △ 법원지점장 정환열 △ 부산영업부장 허단 △ 유통단지영업부장 현석환 ◇ 2급 승격 △ 구미4공단지점장 김경철 △ 홍보부장 김성효 △ 외동공단지점장 김의환 △ 대이동지점장 김종각 △ 북구청지점장 김준년 △ 팔달영업부 기업지점장 김창훈 △ 여신심사부 수석심사역 김현철 △ 화원지점 지점장 김형구 △ 인사부장 박성진 △ 봉곡지점장 박재식 △ 북비산지점장 서영의 △ 중산지점장 송성빈 △ 신천4동지점장 양종석 △ 디지털영업부장 오채영 △ DGB인권윤리센터장 유충식 △ 금융소비자보호부장 이미연 △ 김천지점장 이상용 △ 성당시장지점장 이상준 △ 고령지점장 임병욱 △ 인재개발부장 정기대 △ 동서변지점장 조진현 △ 효성타운지점장 진영수 △ 중구청지점장 최석태 △ 인재개발부 조사역 하임수 △ 대명동지점장 한남식 ◇ 3급 승격 △ 상주지점 부지점장 강경원 △ 리테일금융부 부부장 겸 심사역 강문성 △ 경북도청지점 부지점장 강선민 △ 리스크관리부 부부장 강평무 △ 상주지점 부지점장 금동삼 △ 울산영업부 부지점장 김기영 △ 남문시장지점 부지점장 김세준 △ 구미영업부 부지점장 김영조 △ 경주영업부 부지점장 겸 프라이빗 뱅커 김은영 △ 지산1동지점 부지점장 노건우 △ WM사업부 부부장 마경미 △ 수신기획부 부부장 박정식 △ 효성타운지점 부지점장 박효정 △ 내당동지점 부지점장 손정목 △ 여신심사부 심사역 손종득 △ 총무부 부부장 오정열 △ 인재개발부 조사역 유영호 △ 3공단영업부 부지점장 유인성 △ 계산동지점 부지점장 이공훈 △ 여신심사부 심사역 이근식 △ 재무기획부 부부장 이득만 △ 테크노폴리스지점 부지점장 이수환 △ 투자금융부 부부장 이정원 △ 대곡역지점 부지점장 이지영 △ 금융개발부 부부장 정우덕 △ 준법감시부 준법감시역 정재엽 △ 여신지원부 부부장 최순임 △ 전략기획부 부부장 최형석 △ 강남영업부 부지점장 겸 프라이빗 뱅커 현재희 △ 시스템운영팀 부부장 홍원용 ◇ 부점장급 이동 △ 인사부 조사역 구은희 △ 혁신금융부장 권영섭 △ 구미영업부 기업지점장 김경욱 △ 창원영업부장 김근철 △ 여신심사부 수석심사역 김용덕 △ 본리동지점장 김원재 △ 인재개발부 조사역 김원태 △ 삼덕동지점장 김정선 △ 강남영업부 금융지점장 김진태 △ 인재개발부 조사역 김현태 △ 범어푸른숲지점장 류규창 △ 효성타운지점장 박금동 △ 수도권본부 수도권PRM센터 기업지점장 박세훈 △ 점포전략부장 박영삼 △ 송현역지점장 박용도 △ 인재개발부 조사역 서성덕 △ 대곡역지점장 송병욱 △ 투자금융부장 오세현 △ 디지털영업부장 오채영 △ DGB인권윤리센터장 유충식 △ 리테일금융부장 윤재웅 △ 수도권본부 수도권PRM센터 기업지점장 이기열 △ 노변지점장 이동준 △ 금융소비자보호부장 이미연 △ 인재개발부 조사역 이삼권 △ IT기획부장 이상근 △ 부천지점장 이상림 △ 인재개발부 조사역 이상화 △ 수도권본부장 이성우 △ IMBANK전략부장 이숭인 △ 경북대병원지점장 이시우 △ 평리동지점 금융지점장 이우춘 △ 용산동지점장 이원수 △ 인재개발부 조사역 이윤경 △ 대구대지점장 이정만 △ 글로벌사업부장 이준상 △ 검사부 수석검사역 이태우 △ 성당뉴타운지점장 이형수 △ 복현지점장 이흥수 △ 세천지점장 임병석 △ 전략기획부장 장활언 △ 포스코타운지점장 정성호 △ 신천동지점장 정세한 △ 검사부 수석검사역 조동인 △ 인재개발부 조사역 최석찬 △ 중구청지점장 최석태 △ 인재개발부 조사역 최정란 △ 인재개발부 조사역 하임수 △ 대명동지점장 한남식 △ 해도동지점장 황성은 △ 업무지원부장 황세영 △ 공공금융부장 황진모 △ 인재개발부 조사역 황철규 ◇ 신규임용 부점장 △ 여의도지점장 김기만 △ 성서공단영업부 기업지점장 류희장 △ 사상공단영업부 기업지점장 박충환 △ 카드사업부장 신용필 △ IT기획부 시스템운영팀장 안용준 △ 투자금융부 IB사업팀장 양진석 △ 울산영업부 기업지점장 오영진 △ IT기획부 수석IT전문역 이윤헌 △ 이곡동지점장 이은희 △ 이현공단영업부 기업지점장 정의록 △ 구암동지점장 최영윤 ■ 커리어케어 △ 신임 부문장 김도훈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법무지원실 실장 박창준 △ 기획협력실 실장 김세린 △ 경영지원본부 본부장 홍유진(업무혁신TF팀장 겸직) △ 청소년교육본부 본부장(직무대리) 이상은 △ 시민교육본부 본부장(직무대리) 김재순 △ 교육기반본부 교육R&D팀 팀장 노준석 △ 교육기반본부 국제협력팀 팀장(직무대리) 김민지 △ 교육기반본부 교육연수센터 팀장 임선영 △ 청소년교육본부 학교교육팀 팀장(직무대리) 최진영 △ 청소년교육본부 아동청소년교육팀 팀장 최지윤 △ 시민교육본부 시민교육팀 팀장 김재경
  • 110년 투르 드 프랑스에 콜롬비아 출신 첫 챔피언, 그것도 최연소

    110년 투르 드 프랑스에 콜롬비아 출신 첫 챔피언, 그것도 최연소

    110년 투르 드 프랑스 역사에 처음으로 콜롬비아 출신 챔피언이 탄생했다. 더욱이 최연소 챔피언이다. 콜롬비아 지파퀴라가 고향인 에간 베르날(22)이 28일(이하 현지시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입성하는 투르 드 프랑스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미 전날 마지막 두 번째 20구간 경주 결과 종합 점수로 우승을 확정한 베르날은 이날 개선(凱旋)하듯 파리 시내에 들어와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주위를 돈 뒤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 거리에 마련된 결승선을 종합 2위 게레인트 토머스(영국)과 손을 맞잡은 채 통과했다. 둘은 이날 첫 60km를 마친 뒤 안장에 앉아 샴페인을 홀짝이는 오랜 대회 전통을 이어갔다. 지난 4월 화재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훤히 보이는 퐁네프 다리를 건넜는데 프랑스 중계진은 성당 모습을 애써 잡지 않는, 자존심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방송은 전했다. 지난해 챔피언인 토머스는 콩고드 광장을 지나 샹젤리제의 자갈길에 들어섰을 때 베르날이 행렬의 맨앞에 서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이른바 3대 그랜드 투어를 우승한 세 번째 콜롬비아 선수이기도 하다. 나이로 퀸타나가 2014년 지로 디탈리아와 2016년 뷰엘타 아 에스파냐, 루이 에레라가 1987년 뷰엘타를 우승했다. 전날 그의 고향인 지파퀴라 희망의 광장에선 수백명이 모여 대형 전광판에 중계되는 마지막 두 번째 20구간 경주 영상을 보며 베르날의 장도에 축하를 보냈다. 이 마을 벽에는 일주일 남짓 전부터 그의 얼굴을 담은 그림이 공개됐다. 베르날을 길러낸 파비오 로드리게스 코치도 함께 전광판 중계를 보며 열광했다. 산악 국가인 콜롬비아는 그동안 이 대회 시상대에 12명의 선수를 올렸지만 베르날이 종합우승을 처음 차지한다. 산악 구간을 우승해 붉은색 점박이 재킷을 입은 선수 역시 수십 명이었다. 올해 대회에도 베르날 말고도 리고베르토 우란, 나이로 퀸타나가 톱 10 안에 들었다. 베르날은 알프스를 넘는 마지막 두 번째 20구간 경주를 이네오스 팀 동료이자 종합 2위가 확정된 게레인트 토머스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 낙후되고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안데스 산맥 지역 출신이라 그의 우승은 특히 콜롬비아인들의 희망을 키웠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전날 종합 우승을 확정한 직후 “일개 주자의 우승이 아니라 콜롬비아 전체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사하라 열대바람, 유럽 폭염 강타…화마 버틴 노트르담도 붕괴 위험

    사하라 열대바람, 유럽 폭염 강타…화마 버틴 노트르담도 붕괴 위험

    獨 40.5 네덜란드 39.2도 최고기록 경신 연일 40도 넘는 佛, 대성당 무너질 우려 “진화때 석조 스며든 물 말라… 구조 취약” 600명 탄 유로스타 폭염 고장으로 멈춰살인적 폭염으로 유럽 전체가 몸살을 앓는 가운데 24일(현지시간)과 25일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파리 등이 기상관측 이래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에서 밀려오는 뜨거운 온난전선인 이른바 ‘오메가 블록’의 영향으로 6월부터 시작된 폭염은 올여름 유럽 곳곳의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독일 기상청(DWD)은 24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게일린키르헨 지역이 종전 기록보다 0.2도 높은 40.5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 기상청(KNMI)은 브레다 인근 길제 리엔 공군기지의 기온이 39.2도까지 상승해 1944년 8월에 기록한 38.6도를 넘었다고 전했다. 벨기에 클라이네 브로겔 지역의 기온은 39.9도까지 올랐다. 기존 최고기온은 1947년 6월에 기록한 38.8도였다. 벨기에 기상청(MRI)은 이날 0시부터 사상 처음으로 해안 지역을 제외한 벨기에 전역에 폭염 적색경보를 내렸다. 파리는 25일 오후 1시 42분 41도를 기록해 역대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기상관측 이래 파리 낮 기온이 40도를 넘은 것은 두 번째로, 프랑스 기상청은 이날 오후 기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폭염이 이어지며 지난 4월 화재 참사를 겪은 뒤 복원 중인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에서는 화재에서 살아남은 아치형 천장이 폭염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화재 당시 진화를 위해 뿌린 물을 머금고 있는 석조가 폭염으로 빠르게 마르며 구조가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에도 이상 기온 현상의 무서움을 전 세계가 몸으로 느끼는 가운데 특히 유럽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일대의 뜨거운 바람이 이동한 온난전선의 영향을 받으며 기록적인 폭염을 겪고 있다. 더불어 도시 내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낮에 흡수한 열을 밤에 다시 내뿜는 ‘열섬 현상’으로 유럽의 도시들이 폭염에 더욱 취약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날 승객 600여명이 탄 유로스타 열차가 벨기에 할레 인근에서 폭염으로 고장 나 운행이 중단되는 등 유럽 곳곳에서 폭염 사고가 이어졌고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벨기에 브뤼셀시가 폭염에 대비해 오후 1시에 업무를 마치도록 하는 등 유럽 각국은 폭염 대책인 ‘히트 플랜’을 가동했다. 네덜란드 주요 도시에는 폭염과 심한 오존까지 겹치며 폐기능 저하, 기관지 자극 등이 우려되며 스모그 주의보가 내려졌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부고] 김산호씨 모친상, 예덕화씨 부친상, 한준희씨 별세, 박서진씨 부친상

    ●김산호(안양시청 교통정책과장)씨 모친상, 22일 낮 12시, 천주교 안양 중앙성당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010-8651-4411 ●예덕화(매일신문 윤전제작국 부장)·덕승·정희·덕구씨 부친상, 최동희·최명가·도현정씨 시부상, 김순덕씨 장인상, 23일, 대구가톨릭대병원 장례식장 103호, 발인 25일 오전 8시. 010-7506-1486 ●한준희(한국어린이선교회 총재·한국선교몬테소리 회장)씨 별세, 이성재(성민교회 담임목사)씨 모친상, 23일 낮 12시께,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25일 오전 4시30분. 02-2227-7566 ●박순홍·박순찬·박은희·박윤희·박은찬·박서진(㈜디앤아이플러스 대표이사)·박선희씨 부친상, 전은미씨 시부상, 김재록·길유찬(㈜지앤케이팩 대표이사)·윤동학씨 장인상, 23일 오후 7시,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22호실, 발인 26일 오전 11시, 장지 분당 휴 추모공원. 02-440-8922
  • [부고]

    ●박덕주(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전 운영팀장)씨 부친상 22일 경북 경산시 경산옥산 장례식장, 발인 24일 (053)801-4444 ●정주일·재구·주영·경구(HDC현대산업개발 전무)·성구씨 모친상 23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경남 산청 호국원 (02)2650-2742 ●김산호(안양시청 교통정책과장)씨 모친상 22일 천주교 안양 중앙성당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010-8651-4411 ●한준희(한국어린이선교회 총재·한국선교몬테소리 회장)씨 별세 이성재(성민교회 담임목사)씨 모친상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 25일 오전 4시 30분. (02)2227-7566
  • [부고]

    ●박덕주(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전 운영팀장)씨 부친상 22일 경북 경산시 경산옥산 장례식장, 발인 24일 (053)801-4444 ●정주일·재구·주영·경구(HDC현대산업개발 전무)·성구씨 모친상 23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경남 산청 호국원 (02)2650-2742 ●김산호(안양시청 교통정책과장)씨 모친상 22일 천주교 안양 중앙성당 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010-8651-4411
  • 밤낮 없이, 로맨틱한, 프라하… 황금빛, 설렘, 나 즈드라비!

    밤낮 없이, 로맨틱한, 프라하… 황금빛, 설렘, 나 즈드라비!

    체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프라하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프라하만 보고 다른 나라의 도시로 넘어가지만 근교에 돌아볼 만한 도시가 많다. 쿠트나 호라와 플젠이 대표적인 곳인데, 모두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와 현대 맥주의 역사가 시작된 도시다.●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카를교를 걷다 프라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힌다. 로맨틱하면서도 웅장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찾는 여행객도 많다. 연간 1억명이 찾아든다. 프라하를 가장 잘 여행하는 방법은 딱 하나. 바로 걷기다. 코스도 단출하다. 우리에게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바츨라프 광장에서 출발해 구시가 광장을 거쳐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를 건넌다. 그리고 프라하성까지 건너가면 대부분의 명소를 섭렵할 수 있다. 좁고 구불구불한 구시가의 돌길을 따라 수백년 된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중세의 시간 속으로 들어선 듯하다. 이 코스는 꼭 새벽에 걸어 보기를 권한다. 낮 동안 바글대던 관광객도 이때는 별로 찾지 않는다. 낭만적이면서도 로맨틱한 프라하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보헤미안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았으리라. 지금의 체코 서쪽에 보헤미아 왕국이 있었는데, 우리가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는 자유로운 민족의 땅이었다. 프라하는 이 보헤미안의 수도였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보헤미안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핍박과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들이 사랑하는 음악과 춤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았다. 이 보헤미아의 감성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작곡가가 바로 스메타나다. 그는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보헤미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스메타나는 프라하에서 음악공부를 하다 1848년 일어난 혁명운동에 큰 감화를 받고 체코 민족 음악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평생 체코 민족의 정서를 담은 음악을 작곡하는 데 온 힘을 쏟은 그는 6곡으로 이뤄진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한다. 1883년 작곡된 이 교향시는 비셰흐라드, 블타바, 사르카,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 타보르, 블라니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들으며 아침 해 뜰 무렵 카를교에 서보자. 유유히 가로지르는 블타바강을 바라보며 ‘나의 조국’ 2악장 ‘블타바’를 듣다 보면 뭔가 가슴속에 뜨거움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놀라운 사실은 스메타나가 교향시 ‘나의 조국’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50세 때였는데 당시 그는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아름다움과 그로테스크의 공존 ‘쿠트나 호라’ 쿠트나 호라라는 도시가 있다.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해발 254m의 쿠트나 호라 고원지대의 브르흘리체 만 급경사면에 자리한 이 도시는 13세기에 엄청난 양의 은이 매장된 광산이 개발되면서 성장한다. 최고로 번성했던 14~15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 한 도시 가운데 한 곳이기도 했고, 중앙 조폐국에서 최초의 은화인 ‘프라하 그로셴’을 주조하기도 했다. 당시 쿠트나 호라는 프라하에 버금가는 도시였고 보헤미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16세기 이르러 은광이 바닥나면서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걷지만, 15세기 말까지만 해도 도시의 시청과 거대한 귀족 저택이 속속 들어섰다. 블라슈스키드부르 궁전, 성 바르바라 대성당, 성 야고보 성당, 스톤 하우스, 고딕 양식의 분수대 등은 보헤미아의 아주 값진 유적들이며, 유럽 건축 양식에서 보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지금의 쿠트나 호라는 마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조용하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프라하를 빠져나와 마을 골목길을 여유롭게 거닐다 보면 이곳에서 며칠 정도 숨어서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쿠트나 호라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은데,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성 바르바라 대성당이다. 마을 입구에서 보면 멀리 고딕식 첨탑을 송곳처럼 두르고 있는 거대한 성당이 위용을 뽐내며 서 있다. 1380년대에 건축이 시작돼 150년 뒤에 완성된 이 성당은 외관의 웅장함도 보는 이를 경탄케 하지만 내부의 갖가지 장식도 보는 이를 감탄케 한다. 15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천장에는 보헤미아 왕가와 길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왕국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해골성당’ 성 바르바라에서 발길을 멈추다 성 바르바라 성당이 아름다움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매혹시킨다면 기이함과 그로테스크함으로 홀리는 곳도 있다. 주인공은 일명 ‘해골성당’이라 부르는 코스트니체 세드렉 성당이다. 한창 은광산이 성업 중이던 14세기 무렵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이어 후스 전쟁(1419∼1434)으로 수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성당 부근에 매장됐는데, 더이상 시신 안치가 힘들어지자 성당의 한 맹인 수도사가 죽은 이들의 뼈와 해골로 만드는 성당을 고안해 낸다. 이후 체코 조각가가 성당 내부에 해골과 사람의 뼈를 정교하게 쌓았고 여러 장식을 덧붙였다.성당은 으스스하고 오싹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부터 사람 키 높이보다 높은 해골 탑이 방문객을 맞는다. 천장에는 해골과 뼈를 엮어 만든 2m 높이의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언뜻 보면 마늘 타래를 엮어 걸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해골로 만든 제단도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데 이 모든 걸 일일이 손으로 만든 조각가의 노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달콤 쌉싸름한 필스너의 도시, 플젠 플젠이라는 도시는 맥주를 좋아하는 주당이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다. 프라하에서 약 90㎞ 정도 떨어진 곳으로 기차로 한 시간 반이면 닿는다. 우리는 흔히 맥주 하면 독일을 떠올리지만, 체코는 독일 못지않은 맥주 강국이다. 전 세계에서 개인 맥주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체코다. 국민 1인당 연간 150ℓ의 맥주를 소비한다. 한국인의 식사에 김치가 빠지지 않듯, 체코인의 식사에는 결코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체코 맥주의 대표선수는 ‘필스너’다. 라거 계열 맥주를 대표하는 필스너는 전 세계 맥주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맥주인데, 필스너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이곳 플젠이다. ‘필스너’라는 맥주의 이름은 플젠이라는 지명에서 나온 것으로 프랑스 샴페인 지방에서 처음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샴페인)처럼 원산지에 대한 표기가 전체 카테고리를 대표하는 명사로 자리잡은 경우다. 체코인들은 플젠에서 생산된 원조 필스너 맥주의 명성을 보호하고자 오리지널을 뜻하는 우르켈을 더해 오늘날의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맥주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즉 ‘필스너 우르켈’은 ‘오리지널(원조) 필스너 맥주’라는 뜻이다. 플젠이 처음부터 맥주로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플젠에서 맥주가 처음 생산된 것은 1295년,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이다. 당시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도시였던 플젠은 250여 가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250여 가지의 각기 다른 맥주를 생산했다. 여러 제조 공법으로 만들어지던 맥주는 품질이 매우 낮았고 맛은 형편없었다. 그러다 1838년 일대 혁명이 일어나는데, 플젠의 시민들이 맛없는 맥주를 더이상 마실 수 없다며 약 5700ℓ의 맥주를 광장에 쏟아버렸다. 지역의 양조업자들에게 제대로 된 맥주를 만들라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에 위기를 느낀 양조업자들은 독일 바바리안 지역의 전설적인 브루 마스터였던 요셉 그롤을 초빙했고 그롤은 플젠 지역의 물과 홉, 보리를 사용해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하면발효식 맥주를 개발한다. 그리고 1842년 드디어 현대 맥주의 시작이자 최초의 라거인 필스너 우르켈이 탄생한다.●19세기 지하터널 오크통 맥주 맛본 순간, 캬~ 당시 만들어진 필스너 맥주는 뮌헨에서 먼저 만들어진 다크 라거와 달리 밝고 투명한 황금색을 띠었다. 맛 역시 중후함보다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 강했다. 이는 플젠 특유의 좋은 물 덕분이었다. 이후 플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필스너를 생산해 기차로 운반하며 맥주의 중심지가 됐고 필스너 우르켈은 현재 우리가 가장 널리 마시는 라거 맥주의 기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필스너 우르켈의 제조 과정은 현대화됐지만 그 제조법은 1842년 처음 탄생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동일하게 지켜지고 있다. 병, 캔 등 어느 용기에 담기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처음 만들어진 그 맛 그대로다. 굳이 맥주 한 잔 마시러 플젠까지 간다고? 이런 의문을 가진 이들도 일단 우르켈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오길 잘했다며 입맛을 다신다. 연간 25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공장은 53개국으로 수출되는 필스너 우르켈의 실제 공장이자, 맥주 양조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우르켈 공장 앞마당에는 기찻길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출발한 기차가 유럽 전역으로 맥주를 수출했다고 한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맥주병과 캔, 맥주를 실제로 만들고 있는 과정을 커다란 유리벽을 통해 볼 수 있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효모가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의 맥주를 시음하는 순서다. 필스너 우르켈 지하 터널 저장고에서는 전통방식 그대로 나무통에서 숙성되고 발효된 필스너 우르켈을 맛볼 수 있다. 맥주 공장은 한여름에도 영상 8도로 유지된다. 19세기 처음으로 만들었을 때의 원류 그대로다. 오크통에서 바로 따라 주는 맥주는 홉의 진한 향과 구수하면서도 상쾌한 맛이 환상적이다. 갓 따른 맥주는 눈부신 황금색을 자랑하며 풍부한 거품은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다.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면 ‘캬아~’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살균도 여과도 하지 않아 효모가 그대로 살아 있고 맛과 향이 풍부하다. ‘아침부터 맥주를?’ 했던 사람도 금세 한 잔을 비우게 된다. 우리가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마시는 맥주는 장기 유통을 위해 맥아 성분을 필터로 걸러내고 열처리해 효모균의 활동을 정지시킨 맥주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맥주의 풍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플젠 양조장에서 시음하는 맥주는 풍미가 100% 남아 있다. 이 맥주의 유통 기간은 5일에 불과하다고 하니 플젠 현지 공장 투어에서 맛보는 맥주는 투어에 참여한 사람만 경험할 수 있는 귀한 맥주인 셈이다.맥주에 어울리는 음식이 콜레뇨다. 돼지를 만 하루 맥주에 재운 뒤 오븐에서 바삭하게 만든 음식으로 족발과 비슷하다. 돼지고기 냄새가 없고 담백한 것이 특징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아참, 체코를 여행 할 때 체코어로 다른 것은 몰라도 ‘나 즈드라비’(Na zdravi)라는 표현 정도는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건배!’라는 뜻이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 여행수첩 대항항공의 인천~프라하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프라하 공항은 한국인 이용객이 많아 한글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인천~프라하 비행 시간은 11시간. 프라하에서 인천으로 올 때는 9시간 30분 걸린다.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에서는 유레일패스(www.eurail.com/kr)를 이용하는 것이 여행을 손쉽게 하는 방법이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쿠트나 호라 중앙역까지 기차가 운행한다. 플젠까지는 프라하 중앙역에서 기차로 갈 수 있다. 필스너 공장은 역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체코 음식은 고기로 시작해서 고기로 끝난다. 대표적인 전통 음식, 족발과 비슷한 콜레뇨를 꼭 맛볼 것.
  • 바른미래 혁신위 “권성주 단식 해코지..손학규 몰랐나”

    바른미래 혁신위 “권성주 단식 해코지..손학규 몰랐나”

    바른미래당 혁신위가 혁신위의 정상화를 위해 무기한 단식 중인 권성주 혁신위원을 조롱한 손학규 대표 측 인사에 대해 “해당 당직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기인 바른미래당 혁신위 대변인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목숨을 건 단식을 감행하는 권 의원을 향해 육두문자가 담긴 욕설을 퍼붓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며 “모두 손 대표 측근 및 주변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손 대표 정무특보 정모씨와 손 대표가 임명한 채모 위원장 등 3인은 권 의원에 ‘어제 밤에 몰래 뭘 좀 먹었느냐, 짜장면 먹은 것 아니냐’는 일베식 조롱과 함께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며 “심지어 혁신위를 비방하는 불법 전단지가 배포되기도 했는데, 손 대표의 수행비서인 이 모씨가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그는 “단식 중인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고 갖은 조롱과 비하로 단식의 취지를 음해하는 것은 인격살인을 넘어 실제 살인이 될 수 있는 심각한 범죄”라며 “손 대표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손 대표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정식으로 사과해야 할 것이고 몰랐다면 해당 당직자들을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손 대표 비서실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어느 당이나 극성당원들이 있게 마련이고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당대표실에서는 즉각 제지했다”며 “손 대표의 측근들이 소동을 부린 것처럼 묘사한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했다. 이어 “당 대표 비서실장이 권 위원을 찾아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유감을 전하고 출입통제조치를 했음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1일 당 개혁 방안을 찾기 위해 청년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10일 당 대표 재신임 투표를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가결했다. 이에 반발한 주대환 혁신위원장이 사퇴하면서 혁신위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권 위원은 12일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붉게 수놓은 김수근의 흔적…불광동서 만난 이국의 풍경

    [흥미진진 견문기] 붉게 수놓은 김수근의 흔적…불광동서 만난 이국의 풍경

    불광대장간에서 문학 작품 속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쇠 두드리는 소리가 “꽝”, “꽝” 하고 울려 퍼지는 게 너무 신기했다. 대장간 구경을 마치고 좀더 걸어가니 불광동성당이 나타났다. 건축가 김수근은 “건축은 빛과 벽돌의 조화”라며 사람들이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는 따뜻한 벽돌 건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불광동성당은 구조가 특이했다. 전면으로 입장하지 않고 옆으로 들어가서 내부의 길을 따라 빙 돌아서 들어가게 돼 있다. 성당 내부로 가는 벽돌로 둘러싸인 길은 매우 아름다워서 잠시 이국적인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여느 성당들과 달리 화려하지 않고 단조로운 색들의 줄무늬로 이뤄졌다. 마치 한복의 색동저고리 소매 같았다. 이국적인 매력이 있으면서도 내부에 우리만의 특색을 겸비한 건축물이었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해 은평한옥마을 근처에 내렸다. 먼저 숙용 심씨 묘표를 보러 갔다. 숙용 심씨 묘표는 일본 도쿄의 한 공원 주변에서 발견돼 2001년에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밀반출됐던 문화재를 어렵게 되찾았는데 ‘왜 이렇게 잘 알려지지도 않고, 잡초 무성한 곳에 있을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들 영산군의 묘가 보이는 위치에 두게 돼 그렇다고 했다. 묘표 아래 ‘셋이서 문학관’이 있었다. 문학관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진관사 태극기비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백초월 스님께서 일장기에 먹물을 묻혀 만들어 불단에 숨겨 놓은 것을 2009년 발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망대에 올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과 한옥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끼고 투어를 마쳤다. 이렇게 서울 곳곳을 누비며 현재가 역사의 연장선임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박하민 이화여대 영어영문학부 3년
  •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회 불광동과 은평한옥마을’ 편이 지난 13일 은평구 불광동과 진관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더위를 피해 불광역 구내에 집결한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불광대장간과 천주교 불광동성당을 찬찬히 둘러봤다. 참가자들이 독일제 쌍둥이 칼보다 한 수 위라는 ‘불광’ 부엌칼을 사려고 줄을 서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됐다. 김수근이 설계한 붉은 벽돌 성당은 “왜 굳이 유럽까지 성당 순례를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행은 701번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진관사와 은평한옥마을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답사 축지법(縮地法)이다.북촌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층짜리 한옥마을길을 요리조리 걷는 기분이 삼삼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수려한 조선 성종의 후궁 숙용 심씨 묘표는 압권이었다. 대리석 비석의 자태가 눈을 홀렸다. 걸레스님이자 화가 중광과 ‘소풍’의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 등 ‘도적놈 셋이서’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3명의 기인이사(奇人異士)를 모은 ‘셋이서 문학관’이 흥미진진했다. 백초월 스님의 얼을 느끼게 하는 진관사 태극기 비석을 거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옥상 전망대 정자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초복 바로 다음날의 폭염도 북한산 바람 숲 아래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맵시 있는 개량 한복 차림으로 참가자들을 이끈 베테랑 정순희 해설사는 은평구의 중심 불광동과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는 진관동에 서린 역사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냈다. 은평구는 ‘서울스럽지 않은’ 옛 풍광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했던 서울의 서북쪽 가장자리 고을이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가장 늦게 편입된 막내 자치구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물결로 뒤덮이기 전까지 5000기가 넘는 무덤이 산재한 땅이었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언급한 대사찰 청담사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나오고 서울에서 처음 통일신라시대 기와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다. 무덤과 유물은 조선시대 장례문화와 매장 풍습을 밝혀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해발고도 132m의 나지막한 진관동 이말산 기슭에는 역관과 내시, 궁녀의 무덤이 수두룩했다. 중국으로 가는 의주로(통일로)의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이리라. 의주로는 서울 서대문에서 의주까지 1080리 길에 이르는 조선의 제1대로였다. 중국과의 조공무역에서는 역관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전문직인 동시통역사이지만 조선시대 역관은 중인 신분의 대물림 직업이었다. 인동 장씨, 연주 현씨, 남양 홍씨, 우봉 김씨가 역관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역관은 단순 통역관이 아니라 외교전문가였고, 무역상이었으며, 외국어 교육가였다. 때론 스파이 노릇도 마다치 않았다. 천주교와 실학이 이들의 손과 입을 통해 국내에 전파됐다. ‘실학파의 아버지’ 유대치, 오경석도 역관 출신이었다. 이말산은 역관을 93명이나 배출한 우봉 김씨의 선산이기도 했다. 조선 말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국제인’ 김득련의 묘가 남아 있다.내시와 궁녀의 무덤이 대거 발굴돼 이목을 끌었다. 진관내동 중골마을 백화사 옆에 이사문(李似文)을 시조로 모시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실재했다. 국내 최대의 내시묘역으로 ‘내시들의 정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광해군 13년(1621)에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 김충영의 묘가 가장 오래됐다. 왕과 왕비의 명령을 전하는 최고의 요직 대전 승전색을 지냈다.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14기 중에는 종1품 숭록대부 2기, 종2품 상선의 묘 5기를 비롯해 정경부인에 오른 내시부부 합장묘도 7기가 있었다. 2003년 내시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 4억 8000만원에 조경업자 손에 넘어가 파헤쳐졌다. 석물도 사라지고 상선 노윤천의 묘 등이 봉분도 없이 남았다. 현종의 유모였던 상궁 옥구 임씨, 임실 이씨의 묘도 마찬가지다. 사후 고향에 갈 수 없었던 내시와 궁녀가 묻히기에 딱 좋은 땅이었다. 이말산은 한양 사대문을 둘러싼 그린벨트지역인 사산금표(四山禁표)를 막 벗어난 지역이다. 궁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살아서 권력이 있던 자가 죽으면 묻힐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에는 아쉽게도 내시묘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평은 경계의 땅이다. 개성에서 서울로 들어서는 경계이자 서울과 고양, 양주 세 지방이 만나는 접경이다. 옛 조선 한성부 북부의 상평방, 연은방, 연희방이 도성의 서북경계였는데 이 중 연은방(홍제원계, 양철리계, 불광산계, 신사동계 등)과 연희방(수색리계, 증산리계, 성산리계, 망원정계 등)의 일부가 오늘의 은평구에 속한다. 18세기작 ‘해동지도’나 19세기작 ‘광여도’ 등을 보면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은 서울의 서북 외곽인 은평구의 가장 끝에 북쪽을 향해 돌아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수봉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려가다가 서오릉이 안겨 있는 효경봉에서 북으로 한 갈래가 갈라져 나가 창릉천을 맞는다. 이 줄기가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의 경계를 이룬다. 비봉에서 나지막한 산줄기 하나가 서북으로 길게 뻗어나가 한복판에 낮은 봉우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이말산이다. 북쪽 창릉천의 낮은 지대가 진관내동이고 남쪽의 비봉에서 박석고개로 이어지는 큰 산자락 쪽이 진관외동이다. 1949년 고양군 일부가 서울시에 편입됐으나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진관내리, 진관외리는 1973년까지 이어졌다. 서대문구 은평출장소를 거쳐 1979년에야 은평구로 승격됐다. 신라의 청담사, 고려의 신혈사·삼천사와 조선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이다. 진관사는 1011년 고려 현종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터에 큰 절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 세웠다. 태조 이성계도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에게 제사 지내는 수륙재(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를 진관사에서 봉행토록 했다. 진관사의 신미대사가 첫 한글서적 중 하나인 ‘석보상절’을 펴낸 점과 세종이 성삼문·신숙주·박팽년·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이 머물면서 훈민정음을 연구토록 경내에 독서당을 세워줬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진관사가 한글창제 비밀 작업 공간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민족대표 33인에 서명한 만해 한용운, 대각사의 백용성 스님과 함께 조선 불교계의 독립운동 선봉 백초월 스님의 본거지였다. 백초월 스님은 진관사와 진관사의 포교원인 마포 극락암을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조직인 연통부의 불교계 연락본부로 사용했다고 한다.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와 인쇄물은 백초월 스님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태극기 보자기는 인쇄물을 싸고 있었는데 일장기 위에 먹물로 태극과 4괘를 그려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삼일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 대부분이 일장기에 덧칠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양식과 동일한 점 등이 인정돼 등록문화재 제458호로 지정됐다. 인쇄물은 삼일운동 직후 국내외 독립운동 현장에서 발간된 상하이판 독립신문, 신대한,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6종 16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발간한 신대한 2호와 3호는 유일본이다. 학계에서는 진관사의 태극기와 자료는 백초월 스님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백초월이 일본에서 체포돼 압송된 1920년 3월 이전 급히 숨겼다는 것이다. 1944년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하기 전까지 24년 세월은 체포와 옥고로 점철됐다. 진관사 태극기가 90년 만에 빛을 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진관사 진입로는 ‘백초월길’이라고 명명됐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3회 부암동 능금나무길 ■일시 및 집결장소:7월 20일(토) 오전 10시 윤동주문학관 앞(창의문)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미래유산 톡톡] 망치로 두드려 만든 쇠는 父子의 60년 자부심이다

    [미래유산 톡톡] 망치로 두드려 만든 쇠는 父子의 60년 자부심이다

    이날 답사 지역에는 불광대장간과 불광동성당 등 두 개의 서울미래유산이 있다. 불광대장간은 무쇠처럼 단단한 기술의 자부심으로 빛나는 곳이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기술이 계승된 곳으로 창업주 박경원씨는 지금도 쇠를 두드리는 현역 대장장이다. 그의 기술을 아들 상범씨가 이어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불광대장간은 모든 제품에 ‘불광’이라는 이니셜을 새기는데 마치 장인이 만든 명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 같다. 불광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물건 중에서 많은 이가 찾는 제품은 부엌칼과 호미이다. 아침저녁 밥상을 차리기 위해 사용하는 부엌칼과 텃밭을 가꾸거나 잡초를 제거하는 데에 요긴하게 쓰이는 호미는 한두 번 쓰고 마는 물건이 아니기에 무엇보다 품질이 우선돼야 한다. 이곳의 물건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라 직접 쇠를 달궈 망치로 두드리며 만들다 보니 구조가 촘촘하고 단단하다. 또한 물건들의 크기나 모양도 조금씩 다른데 직접 만져 보고 자신의 손에 익숙한 물건을 고르는 게 좋다. 1985년에 건축된 불광동성당은 우리나라 100대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설계자는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장 김수근이다. 성당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노아의 방주와 같고 전면에 뾰족 솟은 모습은 기도하기 위해 모은 두 손을 떠올리게 한다. 붉은 벽돌을 건축 재료로 자주 사용했던 김수근은 불광동성당도 붉은 벽돌로 만들었다. 성당의 주 출입구는 정면이 아니라 옆면에서 들어가게 돼 있다. 입구로 들어서서 걷다 보면 왼쪽으로 오르막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따라 십자가의 길이 이어진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성모마리아상을 만난다. 마리아상 맞은편으로 성당 문이 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을 통해 찬란한 빛이 내려온다. 불광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색동저고리와 같이 단순한 패턴이지만 차분히 내려앉은 색색의 빛깔이 우리에게 성스러움과 경건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또한 단순하면서 세련된 성당 내부는 세속적이고 복잡한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정순희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공저자
  • 임실 치즈테마파크에 지정환 신부 기념관

    임실 치즈테마파크에 지정환 신부 기념관

    올해 4월 선종한 한국 치즈의 개척자 지정환 신부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전북 임실 치즈테마파크에 건립된다. 임실군은 2020~2021년 총사업비 50억원을 들여 성수면 치즈테마파크에 ‘지정환 신부 기념관’을 지을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기념관 건립은 심 민 임실군수가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에게 건립 비용 일부를 지원해달라고 요청, 20억원의 국비가 확보돼 사업추진이 가능하게 됐다. 기념관은 1967년 국내 최초로 임실에 치즈 공장을 세워 관련 산업을 육성,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 지 신부의 정신과 발자취를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것이다. 임실군은 연말까지 지 신부와 관련한 사료 수집을 마무리하고 내년 착공할 예정이다. 심 민 임실군수는 “가난한 농민을 위해 30만평의 황무지를 개간해 100여 가구에 나눠주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늘 희망을 전달한 지 신부님은 한국 농업의 대부”라며 기념관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벨기에 태생인 고인은 1959년 한국행 배에 오른 뒤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지 신부는 산지가 많은 임실의 지역특색을 살리기 위해 부임 당시 선물로 받은 산양 2마리로 산양유·치즈 개발에 나섰다. 이후 임실 성가리에 국내 첫 공장을 설립해 치즈 산업을 이끌었고 임실 치즈 농협도 출범시켰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부산 영화의전당 서머 스페셜 기획전

    부산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는 1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영화 애호가들을 위한 여름 기획전 ‘서머 스페셜 2019’를 연다. 이번 기획전은 세 가지 섹션으로 열린다. 지난 3월 사망한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와 그의 남편이자 예술적 동반자 자크 드미 작품을 소개하는 ‘아녜스 바르다 × 자크 드미’,미술가들의 고난과 사랑을 그린 ‘미술 혹은 미술가들’,자유분방한 집시의 삶과 영혼을 볼 수 있는 ‘집시의 노� � 등 세 섹션으로 마련된다. 기획전에서 소개하는 영화는 모두 27편이다. 암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공포감에 시달리는 여가수의 행적을 시간대에 따라 보여 주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그린 ‘열정의 랩소디’(1956),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동안 겪은 이야기를 담은 ‘고뇌와 전율’(1965) 등이 주목을 끈다. 8월 3일 오후 5시 ‘아녜스 바르다,카메라와 세계’라는 주제로 추모 기념 영화비평 포럼이 열린다. 상영 일정과 영화에 대한 관련 정보는 영화의전당 홈페이지(www.dureraum.org)를 참고하면 된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대형 오르간 연주와 마임, 동화의 만남 ‘오르간 속의 거인’

    대형 오르간 연주와 마임, 동화의 만남 ‘오르간 속의 거인’

    롯데콘서트홀이 여름방학을 맞아 흥미로운 이야기와 신비로운 연주, 무언극을 융합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관객 참여의 시간도 마련해 공연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험도 선사한다.롯데콘서트홀은 공연장의 시그니처 프로그램 ‘오르간 오딧세이-오르간 속의 거인’을 오는 31일 오전 11시 30분 선보인다. 콘서트홀 벽면에 설치된 대형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고 음악동화를 연주와 마임으로 풀어간다. 오르간 음악동화 ‘오르간 속의 거인’은 오래된 성당의 황금 오르간을 좋아하는 한 소년이 상상 속 천사와 동물들과 함께 성당과 오르간을 파괴하려는 거인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임이스트 한승렬이 극의 생동감과 입체감을 살린다. 소년이 황금 파이프 오르간을 살려내는 장면에서는 공연 해설자가 관객 참여를 유도해 몰입도를 높인다. ‘오르간 오딧세이’는 콘서트홀의 상징인 파이프 오르간을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공연으로, 연주와 해설이 어우러져 남녀노소 모두가 흥미롭게 공연을 감상하며 파이프 오르간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코너는 트럼페터 나웅준이 파이프 오르간 내부로 들어가 이원 생중계 방식으로 악기 내부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관객들은 오르간의 ‘심장’ 역할을 하는 바람상자가 움직이는 모습, 5000여개의 나무 파이프와 금속 파이프의 실제 모습 등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박효신 콘서트 “무대 위해 33억 투입, 800명 인원 동원”

    박효신 콘서트 “무대 위해 33억 투입, 800명 인원 동원”

    가수 박효신이 지난 29일부터 열린 단독 콘서트 ‘박효신 LIVE 2019 LOVERS : where is your love?’를 통해 잇달아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가운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오감을 만족시킨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의 무대가 덩달아 화제다. 박효신 단독 콘서트가 열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은 한번에 1만 5천명 수용 가능한 거대한 스케일의 공연장으로 국내 정상급의 가수만 도전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박효신 콘서트를 찾은 관객은 원형으로 이루어진 공연장에 들어서자 마자 무대를 360도로 둘러싸고 있는 좌석과 함께 탁 트인 시야를 경험할 수 있다. 박효신이 지난 7일 공연에서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감독님과 스무 번가량 무대 시안을 고쳤다”고 말한 바 있듯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공을 들였는 지 알 수 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고 피아노 앞에 앉은 박효신이 ‘戀人 (연인)’을 부르며 처음 등장하는 순간 박효신과 피아노를 상자 모양으로 감싸던 무대 장치가 서서히 올라가며 순식간에 공연의 집중도를 끌어올렸다. 그런가 하면 뒤쪽에 높이만 무려 17m에 이르는 거대한 ‘LED 타워 무대’가 위 아래로 열리며 거인(졸타)의 얼굴이 빠르게 바뀌는 화면이 등장하는 ‘The Castle Of Zoltar’ 무대를 비롯해, 박효신이 노래를 마치고 걸어가며 성당의 문이 열리는 듯한 효과로 경건함마저 느끼게 하는 ‘겨울소리’ 무대 역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또한 정재일과의 기타 듀엣 공연 후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바닥에 깔린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시간을 걸어가는 듯한 효과 등 이 모든 무대 연출은 엄청난 물량을 자랑하는 LED 덕분이다. 박효신이 직접 “국내에 있는 LED는 다 들여온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 있게 준비한 이번 공연은 무대 구성 뿐만 아니라 돔의 천장에서 곡 분위기에 맞게 움직이는 LED 스크린까지도 관객들에게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는 중요한 장치가 됐다. 박효신의 소속사 글러브엔터테인먼트는 “완성도 높은 이번 무대만을 위해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평균 공연 무대 제작비의 약 7배에 달하는 33억을 투입했다. 공연 진행을 위한 인력도 800명가량의 대규모 인원이 동원됐다”고 밝혔다. 또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출연진으로 구성된 라이브 세션도 눈 여겨 볼 만하다. ‘대장’ 박효신을 필두로 ‘야생화’, ‘Goodbye’ 등을 함께 작업한 그의 음악적 동지인 정재일이 음악 감독으로 참여,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각종 악기와 코러스까지 아우르는 고품격 밴드 전체를 이끌었다. 정재일은 앞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의 음악 감독으로도 활약하며 대중의 인정을 받은 음악가다. 무대 연출과 맞물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의 음악적 시너지가 폭발하며 볼거리 뿐만 아니라 들을 거리까지 풍성한 ‘오감만족’ 공연을 책임졌다. 박효신은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LOVERS(연인)’을 연상시키는 탄탄한 스토리와 압도적 물량과 스케일의 무대 연출, 국내 정상급 밴드와 함께한 라이브까지 어우러져 오감을 만족시킨 이번 ‘LOVERS’ 공연은 관객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선사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 냈다. 한편 박효신은 오는 11일과 13일 단독 콘서트 ‘박효신 LIVE 2019 LOVERS : where is your love?’ 공연을 단 2회 남겨두고 있다. 사진=글러브엔터테인먼트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부고]

    ●노건택(전 내쇼날플라스틱 사장)씨 별세 지홍(에스디스피드 이사) 수홍(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학부 초빙교수) 채홍(유니아이비 이사)씨 부친상 10일 청담동성당 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7시 (02)3447-0750∼1 ●배기운(한국LPG산업협회 수도권협회장)씨 모친상 9일 인천 국제성모병원, 발인 12일 오전 6시 30분 (032)-290-3517 ●안정식(청주시 서원구 사직1동장)씨 부친상 9일 음성농협 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8시 (043)872-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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