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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단계판매 숨긴 과천 11번 환자, 15명에 전파…“고발 검토”

    다단계판매 숨긴 과천 11번 환자, 15명에 전파…“고발 검토”

    과천시는 과천 11번 확진자를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법률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 과천 11번 확진자는 중앙동에 거주하는 50대 남성으로 지난달 26일 증상이 발현된 뒤 30일 확진됐다. 당시 과천시는 이 확진자가 수원중앙침례교회 신도인 수원 97번 확진자와 접촉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했을 뿐 다른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역학조사 결과 과천 11번 확진자는 최근 나흘 동안 인천에서 7명, 고양에서 8명 등 총 15명을 감염시킨 시초가 되는 ‘지표환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과천 11번 확진자는 조사 초기에 방문판매업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인천의 가정집에서 방문판매 설명회를 했다는 사실을 일절 밝히지 않았다가 최근 보건당국의 정밀 역학조사로 동선이 추가 확인됐다. 방역당국은 과천 11번 확진자가 서울에 있는 한 방문판매업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정확한 업체명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과천시 관계자는 “11번 확진자는 처음에는 그냥 프리랜서라고만 말했다. 역학조사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아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위치정보(GPS)와 휴대폰 위치추적 자료를 요청하는데 3∼4일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과천시는 11번 확진자의 GPS를 확인해 그가 인천시 남동구 한 아파트를 방문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4일 인천시에 관련 내용을 통보했다. 11번 확진자가 양성판정을 받은 지 닷새만이다. 인천시는 아파트 CCTV 등을 확인해 과천 11번 확진자가 가정집에서 방문 판매한 사실을 확인, 해당 설명회에 참석한 10명 중 인천시민 9명에 대해 4일 검체검사를 했다. 이 가운데 4명이 확진됐고, 이후 접촉자 중에서 3명이 양성판정을 받아 방문판매 설명회 관련 인천지역 확진자는 총 7명으로 늘었다. 인천시 관계자는 “과천 11번 확진자가 동선을 제대로 말하지 않아 감염병 확산 차단에 지장을 초래한 만큼 과천시에서 고발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그를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고양시 원당성당에서도 과천 11번 확진자와 관련한 확진자가 7∼8일 이틀간 6명이 나왔다. 확진자 가족 2명까지 포함하면 관련 확진자는 총 8명이다. 이 성당 교인 중 고양 64번 확진자가 지난 2일 최초 감염된 데 이어 딸(고양 65번)과 손녀가 확진됐고, 이들과 식사를 함께 한 성당 교인 등 5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역학조사결과 고양 65번 확진자가 과천 11번 확진자와 함께 지난달 26일 인천 남동구 아파트 방문판매 설명회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부고] 문병익씨 모친상, 이우봉씨 별세, 박희준씨 부친상, 황경상씨 부친상

    ■ 문병익(전남일보 경영본부장·이사) 씨 모친상 △ 박월례(도미니카) 씨 별세, 문현일(대한세라믹스 관리부장)·병익(전남일보 경영본부장·이사) 씨 모친상, 7일 오후, 목포 효성요양병원장례식장 1분향소, 발인 9일 오전 9시, 장례 미사 연동성당 오전 10시. 061-273-4422 ■ 이우봉(전 BN케미칼 대표이사) 씨 별세 △ 이우봉(전 BN케미칼 대표이사·전 부산매일신문 상무) 씨 별세, 지윤(화인베스틸 부장)·지현(삼성여고 교사)씨 부친상, 7일 오후 5시, 부산 동구 범천동 시민장례식장 304호, 발인 9일 오전 6시30분. 010-5530-7565 ■ 박희준(글로벌이코노믹 편집국장)씨 부친상 △ 박만수씨 별세, 박희준(글로벌이코노믹 편집국장·상무)씨 부친상, 7일 오전, 남구미요양병원 장례식장 VIP실. 발인 9일 오전 9시. 054-719-0044 ■ 황경상(경향신문 콘텐츠전략팀장)씨 부친상 △ 황문한씨 별세, 김연옥씨 남편상, 황경상(경향신문 콘텐츠전략팀장)씨 부친상, 임아영(경향신문 경제부 기자)씨 시부상, 7일 오전 1시15분, 구미강동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54-473-9650
  • 고양 원당성당 교인 잇단 확진에 폐쇄…근처에는 재래시장

    고양 원당성당 교인 잇단 확진에 폐쇄…근처에는 재래시장

    경기 고양시에 있는 원당성당 예배에 참석했던 교인들이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성당이 폐쇄됐다. 7일 고양시에 따르면 이날 성당 교인 중에서 확진자 3명이 추가로 발생했다. 고양시는 이날 오후 원당성당 교인 A씨(덕양구 성사동 거주)와 B씨(성사동 거주)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오전에는 두 사람과 지인 관계인 C씨가 먼저 확진 판정 받았다. 앞서 이 성당 교인 D씨와 딸, 손녀 등 3명이 지난 3일 오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로써 이 성당 관련 확진자는 교인 4명과 가족 2명 등 모두 6명으로 늘었고, 추가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고양시는 이 성당을 전격 폐쇄조처 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29일부터 목이 간지러운 증상이 나타난 데 이어 이달 6일부터 설사 증상까지 보였다. B씨는 증상이 없었다. C씨는 지난 1일부터 몸살과 설사 증상 등을 보여 6일 명지병원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고 오후 9시 30분쯤 양성 판정을 받았다. D씨의 딸과 손녀는 지난달 29일부터 몸에 기운이 없고 근육통·오한·미각후각 손실 증상이 있었다. C씨와 D씨는 지난달 28∼30일, 이달 3일 성당 미사에 참석한 것으로 1차 역학조사 결과 확인됐다. 보건당국은 확진 판정을 받은 교인들과 접촉했던 다른 교인 등을 찾아 전수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불도저에 추억마저 밀릴쏘냐…현대사 굴곡 닮은 만리동 고개여

    불도저에 추억마저 밀릴쏘냐…현대사 굴곡 닮은 만리동 고개여

    불도저는 낡은 집과 좁은 골목만이 아니라 애틋한 정과 추억을 함께 밀어 버린다. 아파트에 집착하는 대가로 상실하는 감성의 가치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진화하는 아파트의 편리함에 매혹당한 탓이다. 성형수술로 얼굴을 다 뜯어고치듯 서울은 옛 모습을 잃고 있다. 서울역 서쪽의 만리재 언덕도 지난 10여년 동안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지도에서 서울역과 충정로역, 애오개역을 이어 줄을 그으면 거의 정삼각형이 되는 지역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정면으로 맞선 사대주의 학자 최만리가 나고 자란 곳이다. 만리재라는 이름도 최만리에서 나온 것이다. 재개발 바람은 서민의 애환이 구석구석 녹아 진한 여운을 풍기던 동네 분위기를 바꿔 버렸다. 언제 적 만리재를 말하느냐는 듯 시가 10억원이 넘는 번듯한 아파트들이 군데군데 치솟아 있다. “만리동 고갯마루에 소의초등학교가 있었다. 교문 옆에 아이스케키 통을 놓고 그 위에 걸터앉아 ‘두 개 시-버-언!’ 하고 소리를 질렀다. … 아이스케키 통을 둘러메고는 만리동 고개를 내려와 서울역광장을 돌아 남대문을 거쳐 명동까지 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만리동 고개로 되돌아오곤 했다.”빈민 활동 선구자인 김진홍 목사는 ‘황무지가 장미꽃같이’에서 이렇게 썼다.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은 도심과 가장 가까운 주거지인 이곳에 몸을 겨우 눕힐 수 있는 땅뙈기를 구해 타향살이를 시작했었다. 지게꾼과 구두닦이, 행상이라는 일자리가 있었던 서울역이 지척이었다. 걸어서 20분이면 닿는 남대문시장에서 난전을 펴고 장사를 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만리재는 조선시대 때부터 마포와 서소문밖을 이어 주던 소통로(疏通路)였다. 걸어 오르려면 숨이 차는 큰 고개 만리재를 넘어 내려가면 작은 고개 애오개(아현)가 나온다. 애오개에는 일제강점기에 경성감옥이 있어 자식 옥바라지를 하려고 가파른 길을 넘어 걸어가던 눈물의 모정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성감옥 자리에는 서울서부지방법원과 서부지방검찰청이 들어서 법토(法土)의 맥을 잇고 있다. 양쪽 사람들은 정월 보름이면 서로 위험한 돌팔매질 놀이를 했다는데 무슨 원한 관계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고 전해져 내려오는 세시풍속일 뿐이다. 애오개 쪽이 이기면 경기도의 농사가 잘되고 만리재 쪽이 이기면 평안도나 경상도 등 외도(外道)의 농사가 잘된다는 속설이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만리재 쪽은 왜 피 터지게 싸우며 이기려고 했을까. 개발이 어려운 언덕바지라는 점이 땀과 눈물의 ‘트라이앵글’을 이만큼이나마 지켜 냈다. 삼각형 지역 속의 손기정기념관, 환일고등학교 십자관, 성니콜라스성당 등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몇몇은 파괴의 위기를 딛고 살아남았다. 굴곡진 현대사를 품은 건축물들은 방문객들을 잠시 감성에 젖게 한다.충정로역 근처에는 오래된 작은 아파트들이 유난히 많다. 사람 나이로 미수(米壽·88세)가 된 국내 최고령 아파트 충정아파트에 비하면 1969년생 미동아파트는 이제 51세로 젊은 축에 속한다.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안쪽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성요셉아파트가 나타난다. 1971년 완공이니 미동아파트보다 두 해 아래다. 비탈길에 절묘하게 자리잡았는데 맨 아래쪽은 6층이고 맨 위쪽은 2층이다. 방앗간, 김밥집, 미용실, 세탁소 등의 작은 1층 상가들은 변두리 동네 어귀의 가게들처럼 정겹다. 인접한 약현성당의 성도들을 위해 지었다는 이 아파트에는 지금도 수도자들이 거주한다고 한다. 중림동 일대가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됨에 따라 이 아파트는 보존하기로 결정돼 안팎의 환경을 조금씩 개선하는 중이다. 동네를 칙칙하게 만든 주범이었던 아파트 바로 앞 무허가 창고를 ‘앵커시설’로 재개발, 지난 5월 16일 문을 열었다. 2층짜리 건물에는 ‘심야살롱’, ‘도시서점’이 입주해 도시재생사업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한다. 하지만 보존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은 탐방객들에게마저 싸늘한 반응을 보인다.성요셉아파트와 붙어 있는 남쪽 언덕에 약현성당이 있다. 약현(藥峴)은 조선시대에 약을 재배하는 밭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영향이었을까. 이 지역에는 약을 만드는 기업들이 있었거나 지금도 있다. 잊혀져 가는 종기 치료제 ‘이명래고약’ 본점도 원래 중림동에 있었다. 이명래고약의 개발자는 이명래가 아니라 충남 아산에서 활동한 에밀 피에르 드비즈라는 프랑스 신부라고 하니 뜻밖이다. 서울에 살던 천주교도인 이명래가 박해를 피해 아산으로 내려갔다가 드비즈 신부를 만나 제조법을 전수받고 민간요법을 더해 발전시킨 게 이명래고약이다. 이명래고약은 현대 의약에 밀려 2011년에 생산이 중단됐다. 충정로역 바로 옆에는 제약회사 종근당이 있다. 철공소 견습공, 쌀 배달원으로 일하다 21살 때부터 약품 외판원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약을 팔았던 고 이종근은 1941년 이곳에 궁본약방을 세웠고 1956년 종근당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자 고딕 양식 건물인 약현성당이 1998년 취객의 방화로 전소됐을 때 숭례문 화재만큼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당시 모습은 잃었지만 15억원을 들여 원형에 더 가깝게 복원됐다. 잘 꾸며진 정원을 갖춘 약현성당은 결혼식장으로도 사랑을 받고 드라마 촬영장으로도 애용되는 명소가 됐다. 서학(西學)을 믿었다는 혐의로 신유박해와 병인박해 당시 서소문 밖에서 처형된 98위의 순교자를 모신 성당 내 서소문순교자기념관은 방문객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만리재는 마라토너 손기정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곳이기도 하다. 소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5000m 경기에서 어른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압록강 건너 중국 회사에 20리 길을 매일 뛰어서 다녔던 소년은 마라톤 특기생으로 양정고보에 입학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는 활짝 웃고 있었지만 금메달 손기정과 동메달 남승룡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일본 대표로 출전한 설움이 앞섰던 까닭이다. 시상식 사진을 보면 손기정은 가슴의 일장기를 나무 화분으로 가리고 있다. 시상식장에선 애국가가 아닌 일본 기미가요가 연주됐다. 손기정은 인터뷰나 축하 인사 때마다 ‘손긔정’이라는 한글 사인을 해주고 간단한 한국 지도나 ‘KOREAN’을 그리거나 써줘 한국인임을 알렸다.목동으로 옮긴 양정고등학교 교정은 공원화됐다가 마라톤의 성지, 손기정체육공원으로 재단장해 지난달 문을 부분적으로 열었다. 공원 내 손기정기념관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입구에는 ‘남승룡 러닝센터’를 지어 업적을 함께 기리고 있다. 손기정이 갖고 온 나무 화분(월계수는 독일 기후에서는 자라지 않아서 월계수가 아니라 미국 대왕참나무 화분이다)은 교정에 심어 84년 세월 동안 거목으로 자랐다. 손기정기념관의 바로 위에는 1895년에 문을 연 봉래초등학교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울 교동초등학교보다 1년 뒤지는 유서 깊은 학교다. 만리재 고개 정상의 짙푸른 녹음은 과거에 이곳이 제법 깊은 산속이었음을 알려 준다. 잘 조성한 산책로는 여름의 열기를 이겨 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힘들여 멀리 갈 것도 없이 주민들은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산책로들이 휘감은 고개 정상이 식수를 공급하는 저장고라는 사실은 주민들도 다 모를 것 같다. 1956년에 조성해 출입금지 지역으로 관리하던 곳을 철조망을 걷어 내고 ‘만리배수지공원’이라는 휴식과 운동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으니 행정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배수지공원 언덕 아래에 환일고등학교가 있다. 기독교 감리교 계통의 학교로 1947년 균명중학교로 개교했다가 1957년 화재로 전소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 학교 십자관은 화재 후 철근콘크리트와 석조를 섞어 지은 건물로 63년이 흐른 지금에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찍어 낸 벽돌을 쌓아 올린 게 아니라 제각기 모양이 다른 돌을 마치 정교한 축대를 쌓듯이 짜맞춰 건축했다. 이런 방식으로 지은 건축물은 흔하지 않다. 1974년에는 학교 이름을 환일중고등학교로 바꿨다. 우리에게는 야구해설가로 유명한 고 하일성씨가 체육교사로 재직한 학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의초등학교에서 애오개역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한국정교회 서울 성니콜라스대성당이라는 숨은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정교회는 동유럽에서 발전한 기독교의 한 교파다. 우리나라 신도는 3000여명쯤 되고 전국에 6개의 성당이 있다. 교세가 약한 것은 민족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1900년 최초 전래된 정교회는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신부와 신도들이 떠났고, 몇 안 되는 국내 신자들은 고아처럼 남겨졌다. 1906년 러시아 선교사가 다시 도착했지만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정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게 됐다. 이후 고립무원의 상태로 일제강점기를 넘긴 정교회는 유엔군 참전국의 일원인 그리스군 종군 사제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교회를 재건했다. 아현동에 부지를 마련해 대성당을 완공한 것은 1968년이었다. 반구형 돔을 얹은 비잔틴풍 건축물은 조창한 전 경희대 교수가 설계한 것으로 국내에 두 개밖에 없다. 독특한 돔 지붕을 보고 산동네 아이들은 ‘대머리교회’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현4구역 재개발구역 안에 있는 성당은 옮겨질 뻔한 위기를 넘겼다. 만리재의 추억은 개발의 압력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덕분에 사람들은 편안하고 깨끗한 주거 환경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과 맞바꾼 것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삭막함이므로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군데군데 박힌 지난 시간의 흔적은 아련하기만 하다. 박제해 둘 수도 없었던 그때는 멀리서 무심히 흐르는 한강만이 기억할 것이다. 글 손성진 서울신문 논설고문 sonsj@seoul.co.kr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제7회는 11일 오전 10시 남산산책 편입니다.
  • [포토] 정몽준 장남 결혼…대대로 물려입는 웨딩드레스?

    [포토] 정몽준 장남 결혼…대대로 물려입는 웨딩드레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지난 4일 결혼식을 올린 가운데 일반인으로 알려진 신부가 입은 웨딩드레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몽준 이사장 내외가 40년 전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가 앞서 결혼했던 두 딸에 이어 며느리에게 이어진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4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자리한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는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의 결혼식이 열렸다. 이날 신부는 앞서 시누이들이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와 비슷한 디자인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정몽준 이사장의 차녀 정선이씨는 지난 2014년 8월 14일 결혼식 당시 모친 김영명 이사장이 1979년 7월 28일 입었던 드레스를 현대식으로 고쳐 입었다. 2016년 6월 16일 서울시 중구 소재 명동성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장녀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 역시 어머니와 여동생이 입었던 드레스와 비슷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고 식을 올렸다. 정기선 부사장의 신부가 입은 드레스 역시 목을 감싸는 긴소매의 백색 드레스였다. 최근 결혼식을 올린 신부들이 주로 입는 화려하고 노출이 과감한 디자인의 드레스와 다르게 클래식한 디자인이다. 이날 결혼식에는 정몽준 이사장 가족을 비롯해 정몽규 회장, 정몽일 현대엠파트너스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정대선 현대비에스앤씨 사장, 노현정 전 아나운서 등 범현대가 인사들과 이홍구 전 국무총리, 홍정욱 전 국회의원 등 정계 인사, 친구로 알려진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 등이 참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탈리아에는 대나무로 된 세계 최대 미로 정원이 있다

    이탈리아에는 대나무로 된 세계 최대 미로 정원이 있다

    이탈리아 파르마의 작은 마을 폰타넬라토에는 세계 최대 미로 정원 ‘라비린토 델라 마소네’(labirinto della masone)가 있다. 대나무 벽으로 된 이 미로 정원은 현지 출판인이자 편집자 프랑코 마리아 리치(82)가 43년 전인 1977년 아르헨티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와의 교류를 계기로 고안해 만든 곳이다. 당시 보르헤스는 미로에 빠져 미로라는 책을 쓰기도 했었다.라비린토 델라 마소네는 면적 약 8만㎡(2만4200평)의 땅에 길이 3㎞나 되는 미로가 펼쳐진 세계 최대의 미궁이다. 높이 30㎝에서 15m에 이르는 20만 그루의 다양한 대나무 숲이 통로 벽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은 넋을 잃고 공상하고 반영하기 위한 미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리치는 “밀라노에 있는 자택 뒤편에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저원이 있는데 어느 날 한 정원사가 작은 대나무 숲을 심으면 좋겠다고 추천해줬었다. 우선 대나무를 구하기 위해 유럽 최대 대나무 재배지로 200여 종의 대나무 묘목이 있는 프로방스로 향했었다”면서 “밀라노 정원에서 금세 무럭무럭 자라는 대나무의 마법 같은 성장력에 완전히 빠졌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폰타넬라토에 있는 시골집 주변에도 대나무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프로방스로 가서 더 많은 대나무를 구매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나무 정원을 미로처럼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대나무는 미로를 만들 완벽한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는 미로 정원을 설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전통적인 미로의 형태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일곱 개의 나선으로 된 크레타 미로와 서로 연결되는 네 개의 사각형 미로가 합쳐진 로마 미로 그리고 샤르트르 대성당에 있는 미로처럼 11개의 나선으로 된 그리스도 미로가 있다. 그중에서 리치는 두 번째 로마 미로를 채택했다. 하지만 그는 이 미로를 기존의 단순한 외길 방향이 아니라 합류 지점이나 숨겨진 통로 같은 작은 함정을 곳곳에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이 미로 정원은 전체적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가 안토니오 필라레테의 건축 논문에 처음 등장한 별 모양을 하고 있다. 이 형태는 16세기 베스파시아노 곤차가에 의해 건설된 성채 도시 사비오네타나 이탈리아 북동부 푸리울리의 팔마노바 도시 건설에도 쓰였다.리치의 미로 프로젝트는 건축가 다비데 두토가 시간을 들여 꼼꼼히 진행했다. 그는 리치를 위해 ‘폴리필리의 꿈’(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삽화책)풍의 정원을 설계했다. 그리고 이 미로 안에는 미로와 신앙 사이의 오래전 연관성을 기념하기 위해 피라미드처럼 생긴 예배당을 세웠다.라비린토 델라 마소네는 이탈리아 산업디자인협회(ADI)와 이탈리아 대나무협회(AIB) 등의 후원을 받는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는 종종 각종 행사가 개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라비린토 델라 마소네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울산 태화강역~울산항 수소트램 운행한다

    울산 태화강역~울산항 수소트램 운행한다

    울산 태화강역에서 울산항 구간에 수소 트램이 시범 운영된다. 울산시는 송철호 시장 공약 사항으로 계획하고 있는 도시철도 트램사업에 앞서 태화강역에서 울산항 사이 4.6㎞ 구간에 수소 트램을 먼저 실증하기로 했다고 3일 밝혔다. 수소 그린모빌리티 규제 특구인 수소 도시 울산에서 국내서 처음으로 수소 트램을 운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는 329억원을 들여 수소충전소, 차량기지, 정거장 등을 설치해 운행하기로 했다. 이 수소 트램 사업은 지난해 현대로템 제안으로 추진됐다. 현대로템은 현재 현대자동차와 친환경 수소전기열차를 개발하고 있다. 수소전기열차는 물 이외의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는 친환경 차량이다. 전차선, 변전소 등의 급전설비가 필요하지 않아 전력 인프라 건설과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현대로템은 저상형 트램 형태의 플랫폼으로 제작하고 있고, 수소 1회 충전에 최고속도 시속 70㎞, 최대 주행거리 200㎞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9년부터 개발을 시작했고, 올해 시제 열차를 제작 완료할 계획을 밝혔다. 울산시는 현대로템과 실증을 거친 뒤 울산시가 구축하는 도시철도 구간에 모두 수소 트램을 적용하기로 했다. 울산시는 1조 3316억원을 투입해 4개 노선, 연장 48.25㎞ 구간에 트랩을 운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개 노선은 1노선 태화강역∼신복로터리(11.63㎞), 2노선 가칭 송정역∼야음사거리(13.69㎞), 3노선 효문 행정복지센터∼대왕암공원(16.99㎞), 4노선 신복로터리∼복산성당(5.94㎞)이다. 울산시는 1·2노선(1단계)은 2027년 개통한다. 3·4노선(2단계)은 2028년 이후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이젠 모스크로 이용”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이젠 모스크로 이용”

    터키 이스탄불의 유럽 쪽에 자리한 관광 명소 아야 소피아는 이슬람 모스크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겐 박물관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기 532년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의 명령으로 짓기 시작해 537년 완공돼 1000년 가까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명성을 얻었다. 13세기 4차 십자군 원정대에 점령 당해 동방정교회의 보금자리 지위를 잃었다. 그리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장악하면서 술탄 메흐메드 2세의 명령에 따라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이용되다 1930년대 박물관으로 지정돼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됐는데 터키 국가위원회가 다시 모스크로 바꾸기로 했다고 영국 BBC가 1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지난해 레쳅 타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방선거 과정에 공약한 내용인데 법원은 2일 회의를 열어 이를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방송은 전했다. 다만 법원은 앞으로 15일 안에 이를 공표하겠다고 밝혔는데 공표를 미루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주장을 펴왔는데 이슬람권에서도 가장 세속적인 터키의 야당은 이런 움직임에 반대해 왔다. 세계 각국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이 터키를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수백만명을 신도로 거느린 동방정교회 지도자도 반대를 표명했다. 리나 멘도니 문화부 장관은 정부 내 위원회 승인도 받지 않고 “광적인 국수주의와 종교 분위기”에 휩쓸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대해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고 비난했다. 에르네스토 오톤 라미레스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그리스 일간 타 네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터키 정부에 서한을 보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1616년 아야 소피아의 건축 기술을 그대로 본떠 블루 모스크가 들어설 때까지 이곳은 과거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던 이 도시의 유일한 모스크였다. 오스만 제국이 무솔리니 이탈리아 정권의 편에 들었다가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 멸망하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민족주의 정권이 이곳을 재건했다. 이곳을 재개관하기 일년 전에 이곳에서는 종교 의식을 행하지 못하게 막는 법을 통과시켰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세상을 잊는 곳, 쉼이 있는 곳, 神들의 그 숲

    세상을 잊는 곳, 쉼이 있는 곳, 神들의 그 숲

    강원 원주에 ‘신들의 숲’이 있다고 했다. 일 년에 단 두 차례 제를 올리는 날에만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한다는 숲 성황림(城隍林)이다. 평소 문을 굳게 닫아 걸었던 성황림이 앞으로는 매주 토요일마다 일반에 개방된다. 원주시가 마련한 ‘신과 함께하는 숲속 여행(성황림)’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그 덕에 원주 사람들조차 쉽게 볼 수 없었던 성황림을 이제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을 나서면 신림(神林)면이다. 이름처럼 ‘신이 깃든 숲’이라는 뜻이다. 일대 주민들은 ‘성황림’ 때문에 이 같은 지명이 유래했다고 믿고 있다. 성황림은 신림면 성남리에 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원주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의 군사가 영월로 진출한 길목도 이곳이었다고 전해진다. ●토종 식물의 보고… 매주 토요일 일반 공개 먼저 성황림의 전체적인 모습부터 살피자. 숲은 전체가 천연기념물(93호)이다. ‘신들의 숲’이라서라기보다 토종 식물의 보고라서다. 다른 지역에선 흔한 외래종들을 희한하게도 성황림 영역에서는 찾기 힘들다. 전체 면적은 5만 4000여㎡. 1만 6000평이 조금 넘는다. 이 숲은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도 ‘조선보물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이었다. 우리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건 그 이후인 1962년이다. 숲은 포장도로를 경계로 서낭당 주변의 평지 숲과 서낭당 서쪽의 산지 숲으로 구분된다. 숲속 여행 프로그램은 서낭당이 있는 평지 숲에서 진행된다. 서쪽 숲은 여전히 금단의 영역이다. 오래전엔 두 숲이 하나였다. 서낭당 앞으로 난 길로 마을 주민과 우마차가 오갔다. 그러다 숲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서낭당 뒤로 새 통행로를 냈다. 그 탓에 숲이 두 개로 나뉘게 됐다. 숲해설가를 겸하고 있는 고계환 이장은 이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우회도로를 냈어야지 숲 가운데를 잘라 길을 낸 게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름 역시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은 성황림보다 예전부터 불려 오던 순우리말 이름인 당숲이나, 서낭숲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종전까지 성황림은 일 년에 두 번 공개됐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4월 8일 초파일과 9월 9일(올해 10월 25일) 중양절에 제를 올린다. 이날 외지인의 출입이 허용됐다. 잠긴 문을 열면 곧바로 깊은 숲이 펼쳐진다. 선입견 탓일까. 다른 숲에 견줘 적막감의 무게가 한층 무겁게 느껴진다. 사실 성황림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다소 거리낌이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허락된 숲을 매주 들어간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걱정이 앞섰다. 한데 고 이장이 전하는 내용은 달랐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서낭신은 사람의 발걸음을 제한하는 권위적인 신이 아니며, 오히려 사람 곁에 있는 신이란 거다. 숲을 이루는 토종 식물을 보호하겠다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았던 거지 서낭신이 막은 건 아니란 얘기다. 학계에서 보는 성황림의 주인은 토속 식물이다. 복자기, 귀룽나무 등 50여종의 나무와 파드득나물 등 100여종의 초본류가 자라고 있다. 반면 주민들 입장에선 나무들이 숲의 주인이다. 신목(神木)이 있기 때문에 숲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초본식물이 무성해지면 나무 밑동에 이끼가 생기는 등 나무의 생장에 지장을 받게 된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주변 땅을 밟게 해야 오히려 나무의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서낭당 옻샘·30m 신목 전나무에 경외감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서낭당 주변으로 금줄이 쳐져 있다. 예전엔 통행을 막는 금줄이었지만 요즘은 소원지를 다는 줄로 쓰인다. 금줄은 오른쪽으로 꼬는 일반 새끼줄과 달리 왼쪽으로 꼰다. 오른쪽으로 꼰 새끼는 악귀가 풀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낭당 뒤로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숲에 생명을 불어넣는 개울이다. 주민들은 옻샘이라 부른다. 발원지 주변에 옻나무가 많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숲 인근에서 발원한 옻샘은 성황림을 적신 뒤 곧바로 남한강 지류인 주포천에 합류한다. 그러니까 오로지 성황림을 위해 존재하는 개울인 셈이다. 신의 영역인 서낭당 주변에서 침엽수는 단 한 그루, 신목이라 불리는 전나무다. 이 숲에서 전나무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서낭당 왼쪽의 엄나무에도 금줄이 쳐져 있지만 신목의 권위에는 이르지 못한다. 성황림을 방문한 이들은 대개 서낭당 건물에 경외감을 갖는다. 하지만 서낭당은 말 그대로 신목의 신위를 모시고, 신목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에 불과하다. 전나무의 높이는 얼추 30m에 달한다. 가슴 높이 둥치의 지름은 1.2m로 어른 서너 명이 팔을 뻗어야 겨우 맞닿을 수 있을 만큼 굵다. 학계에선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타고 내려왔다는 신단수(神壇樹)의 원형을 이 나무에서 엿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성황림 전체가 숭배의 대상이 된 것도 이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서낭당 앞에 시립하듯 선 나무들은 대부분 복자기나무다. 가을이면 잎이 단풍보다 붉게 물든다는 나무. 가을에 이 숲을 찾으면 얼마나 황홀한 풍경이 펼쳐질까. 서낭당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솔숲이 있다. 서낭당 일대가 신의 영역이라면 솔숲은 인간의 영역이다. 단옷날 등 특별한 날에 주민들이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어울려 놀던 장소다.●용소막성당·정원형 미술관 가볼만 성황림 주변에 가볼 만한 데가 몇 곳 있다. 용암리 용소막 성당은 횡성의 풍수원성당과 원주(원동)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191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됐다. 성당 뒤편에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울창한 솔숲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지정면의 간현관광지는 원주를 대표하는 유원시설이다. 소금산 출렁다리가 랜드마크다. 섬강 100m 상공에 길이 200m 규모로 설치돼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출렁다리 옆으로 하늘바람길이 조성돼 있다. 간현계곡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폐역인 간현역과 레일바이크 등 볼거리와 놀거리도 많다. 이웃한 흥법사지는 신라시대의 절터다. 진공대사 탑비(보물 463호)와 흥법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64호) 등이 남아 있다.뮤지엄 산은 산 정상에 조성된 정원형 미술관이다. 지난해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미술 관람을 위해 방문하면서 한층 유명해졌다. 뮤지엄 산을 설계한 이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빛, 물, 바람을 재료로 쓴다는 그의 건축 철학이 건물 곳곳에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난해 개관한 명상관도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반구형의 독특한 건물 안에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백남준의 ‘위성나무’ 등 미술 문외한도 알 만한 이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원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오크밸리 리조트가 원주시와 함께 ‘신들의 숲 패키지’를 운용하고 있다. 오크밸리 숙박(1박)과 성황림 숲 체험이 포함됐다. 소원지 만들기 체험, 숲속 명상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명상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은 성황림에서도 ‘인간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솔숲이다. 예전 주민들은 단옷날 이 솔숲을 찾아 그네를 타거나 기마전 등의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패키지는 2인 기준 16만 4000원이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 ‘코로나 19’ 확산으로 미사 다시 중단

    천주교회의 현장 미사가 다시 중단된다. ‘코로나 19’가 확산하는 탓이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1일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을 올려 “광주광역시가 오늘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생활 속 거리두기)를 2단계로 상향 조정했다”면서 “교구는 감염증 확산을 막고 지자체 위기 대응조치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완료될 때까지 광주 시내 본당과 기관의 미사와 모임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광주대교구는 “광주 시외 본당과 기관의 경우 미사는 드릴 수 있되, 모임과 행사는 갖지 않지만, 본당 신부님의 재량에 따라 감염증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미사도 중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구는 이와관련해 3일부터 미사 중단 취소 결정이 있을 때까지 방송 미사를 제작해 라디오, 유튜브 등을 통해 내보낼 방침이다. 광주대교구는 “우리 지역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함으로 인해 걱정과 어려움이 커가고 있지만, 기도 안에서 주님께 도우심을 청하고 지혜롭고 강건하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염원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코로나 19’가 급속히 확산하던 무렵인 지난 2월 22일 교구 창설 83년 만에 처음으로 소속 본당 미사를 전면 중단한 바 있다. 이후 석 달 여 지난 5월 6일 미사를 재개했다. 광주대교구에는 140개의 성당이 속해 있으며 신자 수는 2018년 12월 기준 36만 3000여명에 달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파리 예배당 벽 틈에서 프랑스 혁명 유해, 로베스피에르도?

    파리 예배당 벽 틈에서 프랑스 혁명 유해, 로베스피에르도?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이들의 유해 500여구가 통설과 달리 ‘속죄의 예배당’ 벽 안에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속죄의 예배당은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왕정 복귀가 이뤄져 루이 18세가 형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신을 1815년 공동묘지에서 역대 왕족의 묘지인 생드니 대성당으로 옮기고 난 뒤 그 터 위에 짓기 시작해 1826년 완공한 건축물이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숨진 이들의 유해는 루이 18세의 명에 따라 발굴돼 파리 지하묘지(카타콤)로 이장됐다고 믿어 왔는데 이 통설을 뒤집을 증거가 이번에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텔레그래프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예배당을 관리하는 에므리크 프니구에 드 스투츠는 예배당 벽들에서 발견된 특이한 틈새와 루이 18세가 쓴 편지에서 얻은 힌트를 바탕으로 고고학자에게 조사를 의뢰했고, 고고학자들은 벽들의 틈새에 카메라를 넣어 사람의 뼈로 채워진 나무상자 4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의 일이었지만 파리 등 프랑스 전역에서 반정부 ‘노란 조끼’ 시위가 확산할 때여서 알려지면 귀족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돌아 공격 당할까봐 함구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추가 조사가 내년부터 이뤄질 예정이다. 프랑스 혁명을 논할 때면 빠지지 않는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유해도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집권 후 정의 구현을 내세워 공포정치를 펼치다 이듬해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처형당하면서 지금의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이 16세와 앙투아네트의 목을 참수하고 이곳에 묻어버리면서 시작된 공포 통치도 막을 내렸다. 스투츠는 현지 일간 르 파리지앵 인터뷰를 통해 “고고학자들이 건넨 사진 속에 팔다리 유해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감격해 눈물을 터뜨릴 뻔했다”며 “지금까지는 이 예배당이 루이 16세 부부만을 기리는 공간으로 여겨졌는데 이번 발견으로 이곳이 (귀족들과 혁명 참가자들 모두 잠든) 혁명의 공동묘지였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는 다른 유명한 인물로는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뒤 바리, 극작가이며 초기 여성 인권활동가였던 올림프 드 고쥬, 오를레앙 공작이며 프랑스의 마지막 국왕인 루이 필리페 1세의 아버지인 루이 필리페 등이 거론된다. 일부에서는 국왕의 엄명에도 부르봉 왕정의 복귀에 불만을 품은 작업 인부들이 반발해 벽 틈에 유해들 일부를 숨긴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김성호의 종교로 읽는 세상] 축복도 죄가 되나요

    [김성호의 종교로 읽는 세상] 축복도 죄가 되나요

    1992년, 그러니까 28년 전 이맘때쯤 종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희대의 사건이 있었다. 개신교 감리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가 이 교단 신학교인 감리교신학대 학장을 지낸 신학자 변선환(1927~1995) 목사를 출교(黜敎) 조치한 일이다.`교회 바깥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변 목사의 다원주의 발언이 화근(?)이었다. 신학의 토착화를 외치며 다원주의를 펼쳤으니, 성경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근본주의의 개신교단에서 용서할 수 없는 이단 신학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출교는 목회자와 신자의 자격을 박탈당한 채 교회에서 영원히 거세되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극형이다. 출교 3년 후 연구실에서 세상을 떠난 변 목사는 지금도 종교 간 화합과 다원주의를 말할 때 회자된다. 타 종교를 존중하고 대화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적그리스도’ 취급을 받고 종교재판에 회부됐던 변 목사 사후 한국 종교계에선 화합과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노력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변 목사가 초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그 첨병이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협의회 등 7대 종단 협의체인 KCRP는 해마다 종교 간 화합주간 행사를 연다. 신자들이 성당이며 절집, 교당, 예배당 같은 이웃 종교 시설을 교차 방문해 서로 종교를 알아가도록 주선도 한다. 그 앎과 이해의 모토는 바로 `다름도 아름답다´이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해와 일치에 나선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신앙직제협의회)도 특별한 사례다. 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정교회가 참여한 이 협의회는 천주교를 이단시하는 일부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 시위로 가끔씩 골치를 앓지만 일치기도회며 신학 대화모임을 잇고 있다. 2017년에는 교황청과 루터교세계연맹이 함께 작성한 `갈등에서 사귐으로´를 신구교 신학자들이 공동 번역 출간해 세계 기독교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보수 개신교 안쪽은 변화가 없어 보인다. 부쩍 늘어가는 종교 간 화합과 화해의 몸짓과는 달리 성경과 예배당에 몰두하는 배타의 신행과 고집스런 독단이 활개 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최근 감리교단에서 한 목회자를 놓고 `출교´를 다시 들먹인다. 지난해 8월 31일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한 수원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담임목사를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재판위원회에 회부한 것이다.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는 혐의다. 이 교리와 장정에는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가 범과(잘못을 저지름)에 해당한다. 재판에 지면 이 목사는 출교의 중징계를 당할 수 있다니 28년 전 변 목사의 종교재판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지인의 요청으로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한 것으로 알려진 이 목사는 `축복도 죄가 되느냐´며 교단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2016년 경북 김천 개운사 법당 훼손 사건에 개신교 신자 대신 사과하고 복구 기금을 모금한 서울기독대 손원영 교수는 해고됐다가 법원 승소와 재단 이사회의 복직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학교 측 방해에 막혀 출근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학교 측은 손 교수가 불교 법회에서 `예수님은 육바라밀(6가지 수행덕목)을 실천한 보살´이라고 한 것을 문제 삼는다. 손 교수 발언은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정한 것으로 정통 교리를 따르지 않는 이단행위라는 입장이다. 손 교수 복직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각 종교 전문가들이 종교 간 대화 모임을 만드는 추세와는 사뭇 다르다. 세상이 어수선해서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2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사목방문해 그곳 이슬람교 최고지도자와 함께 서명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선언´이 부쩍 자주 회자된다. 평화에 대한 약속을 구속력 있는 문서로 남겼다는 의미를 지닌 그 선언엔 이런 문구를 새겼다. `도덕 가치들과 올바른 종교 가르침들을 지켜나갈 때 급진주의와 맹목적인 극단주의에 대응할 수 있다.´ 우리네 종교는 왜 자꾸 거꾸로 갈까.
  • 풍경을 끌어안고, 이야기를 끌어내다

    풍경을 끌어안고, 이야기를 끌어내다

    마리오 보타라는 건축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내가 건축 공부를 시작했던 1979년쯤 ‘A+U’라는 일본의 건축잡지를 통해서였다. 보타는 1943년생이니 그때 그의 나이 36세였을 게다. 카데나초와 리바 산 비탈레의 주택들과 모르비오 인페리오레 학교가 실렸는데, 매우 기하학적으로 간결하고 정연하면서도 자연과의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그의 건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루이스 칸, 르코르뷔지에와 일했고 스카르파에게 수학했다는 보타의 작품들은 그 세 명의 분위기가 묘하게 융합된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후 그가 발표하는 일련의 주택 시리즈는 연이어 세계 건축계를 강타하며 최고로 주목받는 건축가가 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건축가였다. 1980년대 내가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보타는 최고의 관심을 받으며 활약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었다. 프랑스 샹베리의 문화센터를 시작으로 프랑스 에브리의 대성당, 스위스 루가노의 고타르도 은행과 바젤의 팅글리 미술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었다. 그를 위시해 ‘티치노 학파’라고 불리는 일련의 건축가들이 유럽의 건축계를 열광시키고 있었다. 80년대 후반 파리에서 마리오 보타의 강연회에 참가했던 적이 있었다. 입추의 여지 없이 가득찬 청중의 열기는 뜨거웠으며, 강연 후에는 그와 일해 보고 싶다며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온 젊은 건축가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에 그렇게 찾아가서 일할 기회를 가졌다는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소문으로 떠돌며 건축학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했었다.1987년경 파리 벨빌 건축학교에서 조직한 ‘티치노 건축투어’에 참가해 1주일 동안 티치노의 건축가들을 찾아 볼 기회가 있었다. 보타를 비롯해 루이지 스노치, 아우렐리오 갈페티, 리비오 바키니 등의 건축물을 둘러보면서 티치노에 오랜 건축의 전통과 문화적 풍토가 있어 왔음을 알게 됐다. 이 여행은 나의 건축가로서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지어진 건물이 주변의 대지와 어우러지며 보여 주는 엄청난 힘이었고, 잘 지은 건물의 장인적 완벽함에서 풍겨 나는 아우라와 그것이 주는 감동이였다. 그때 나는 건축 이론과 역사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좋은 건물을 ‘짓는’ 것으로 귀결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나 역시 건물을 실제로 ‘짓는’ 건축가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게 되었다. 1989년도로 기억한다. 교보생명의 신용호 회장이 오랜 노력을 통해 마리오 보타를 한국에 초청했고,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건축가를 찾고 있었다. 당시 파리에서 일하고 있던 내가 연결됐고 면접 후 함께 일하기로 결정되면서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마리오 보타 부부를 만났다.보타는 일과의 대부분을 건축에만 집중한다는 사람이었으며, 실제로 건축주와의 미팅, 식사, 현장 방문 등 공식일정을 제외하고는 호텔방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든지 개인적인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보생명에서 보타를 초청한 이유는 부산에 교보빌딩을 설계하기 위해서였다. 보타는 그 사이트를 방문하고 업무협의를 마친 뒤 돌아갔다. 나 역시 파리로 돌아왔고 교보와 보타 사이의 연락 업무를 담당하며 월 1회씩 루가노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방문해 프로젝트 협의를 진행하게 됐다. 보타 사무실은 설계를 시작했고 몇 차례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몇 달이 흘러 갔지만 프로젝트는 쉽사리 진척되지 않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을 보고받은 신 회장은 내게 적극적으로 보타 사무실에 합류할 것을 독려했고, 결국 보타 사무실에 합류하여 부산 사옥과 서초동 사옥의 두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게 됐다. 스튜디오 보타에 도착했을 때 보타는 실장 역할을 하는 마우리치오 펠리와 인사를 시키고는 비어 있는 책상을 찾아서 여기서 작업하라고 한 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작업 도구들을 챙기고는 여기저기 물어 물어 사무실 내부에 있는, 이 프로젝트와 관계 있는 자료들을 모두 파악했다. 며칠인가 지나서 드디어 보타가 나타났다. 그는 태연하게 마치 매일 보았던 것처럼 그동안의 진행 상황을 들여다보고는 코멘트하고 스케치도 하면서 첫 미팅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스튜디오 보타에서의 일은 시작됐다. 프로젝트는 한 달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됐다. 보타는 매우 직관적이고 핵심을 바로 짚어 가지만 또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내기 위해서 수많은 시도를 반복하는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을 지나며 프로젝트는 아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 가기도 했다. 드디어 두 프로젝트가 1차적으로 마무리돼 가면서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 약간 흥분할 정도로 좋은 제안들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보타도 매우 흡족해했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도 모두 와서 둘러보고는 감탄을 연발했다 그 두 가지 안을 들고 한국으로 향해 신 회장을 만났다. 그분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가만히 두 프로젝트를 응시했다. 그분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다고 느껴졌다. “음, 역시 좋아…. 이 두 프로젝트 모두 진행해야겠어.” 그렇게 1991년 교보생명 서초동 사옥과 부산 사옥의 설계가 시작됐다. 나는 약 1년 정도를 예상하고 스위스 루가노의 스튜디오 보타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됐다. 루가노는 매우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시였고 사무실 직원들도 매우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으며 일은 흥미롭게 진행됐다. 사무실의 최고참 마우리치오가 내게 귀띔했다.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는 아마도 길고 긴 시간이 걸릴 거야.” 그의 말대로 대구 동성로 사옥과 서울 상계동 사옥이 추가되고, 특히 서초동 사옥이 우여곡절을 거치게 되며 4년을 보타 스튜디오에서 보내게 됐다. 그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티치노와 이탈리아 북부의 문화와 건축을 알게 되고 보다 친숙해질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보타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알게 모르게 그의 스타일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마리오 보타’ 이외의 도서는 ‘금지’돼 있었다. 직원들은 보타 특유의 언어에 익숙해 있었고 ‘마리오라면 어떻게 할지’를 추정하며 작업들을 진행했다. 심지어 마리오가 직원들에게 상당한 여지를 주는 것 같아도 프로젝트를 마칠 때면 모든 것이 항상 그의 뜻대로 돼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들려왔다. 그는 직원들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도록 여지를 주면서도 끊임없이 그의 생각들을 발전시켜 갔고 본인이 만족할 만한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프로젝트를 끌고 갔다. 보타의 건축은 뚜렷한 형태 언어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언어가 구사된 그의 건축은 항상 그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닌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프로젝트들은 또한 그 대지와 프로그램들과 연결되어 매번 다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그에게는 루이스 칸과 르코르뷔지에, 그리고 스카르파라는 스승이 있었고, 그는 이 셋의 탁월함을 자신의 건축 세계에서 조화롭게 펼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 역시 루이스 칸과 르두, 팔라디오 등에 대한 학창시절의 관심과 공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지만 보타의 건축을 이해하고 함께 일하면서 맥락을 같이할 수 있었고 좋은 소양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1995년 이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무실을 시작했다. 2005년인가 리움 관계로 서울을 방문한 보타와 재회하고 서울대에서 있었던 강연을 듣게 됐다. 보타와 그의 건축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그 강연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내가 그의 사무실을 떠난 후 10년 사이 그는 건축 관련 미디어의 시야에서는 약간 멀어진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프로젝트들을 계속하며 여전히 마리오 보타라는 뚜렷한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감탄과 경의를 되새기게 된 계기였다. 2011년 6월 이상각 남양성모성지 신부가 마리오 보타와 성당 설계를 진행하기를 원했다. 현장과 마스터플랜에 관한 자료들을 보내고 보타와 통화했다. 보타는 평소와는 달리 즉석에서 동의하고 8월 20일 성지를 방문했다. 10월 14일에는 이미 1차 제안이 도착했고 이어서 설계 계약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요구사항은 3000석 수용 가능한 성당이었다. 보타는 경사면을 이용하고 지하에 위치하며 높은 두개의 타워가 있는 안을 제안했다. 그리고는 또 그 특유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2011년 8월 사이트를 처음 방문한 후 2014년 9월 설계를 마무리하기까지 3년에 걸쳐 거의 1~3개월마다 13회에 걸쳐 계획안을 발전시켜 왔다. 2014년에는 예산 문제로 3000석을 1200석으로 축소해야겠다는 신부님의 설계변경 요구가 있었다. 보타는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동조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안해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공사는 장학건설이 담당했다. 2017년 4월 1일(보타의 생일이기도 하다) 착공해 2020년 5월 공사가 완료됐다. 풍경 속에서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 그 대지와 융합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진화를 거듭하는 보타의 저력을 보여 주는 강력한 작품이 긴 숙성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언덕에 자리잡은 성당을 바라보면 가슴 깊이 뜨거움이 느껴진다. 과정을 함께하며 보낸 긴 시간과 우리의 노력과 열정이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최근에 준공한 디어스 사옥은 마리오 보타를 닮지는 않았으나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과 또 ‘팔라디오’라는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 장소의 특성과 자연의 빛, 그리고 공간의 깊이와 풍부함, 간결함과 강렬함, 질서와 변이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메타포를 지닌 공간적 장치’이다. 디어스 사옥으로 2019년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것은 ‘짓는’ 건축가에게 큰 격려가 됐다. 건축가 한만원
  • 우리 개신교는 왜 아직… “축복도 죄가 되나요?”

    우리 개신교는 왜 아직… “축복도 죄가 되나요?”

    1992년, 그러니까 28년 전 이맘때쯤 종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희대의 사건이 있었다. 개신교 감리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가 이 교단 신학교인 감리교신학대 학장을 지낸 신학자 변선환(1927~1995) 목사를 출교(黜敎) 조치한 일이다. `교회 바깥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변 목사의 다원주의 발언이 화근(?)이었다. 신학의 토착화를 외치며 다원주의를 펼쳤으니, 성경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근본주의의 개신교단에서 용서할 수 없는 이단 신학자로 낙인찍힌 것이다. 출교는 목회자와 신자의 자격을 박탈당한 채 교회에서 영원히 거세되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극형이다. 출교 3년 후 연구실에서 세상을 떠난 변 목사는 지금도 종교 간 화합과 다원주의를 말할 때 회자된다. 타 종교를 존중하고 대화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적그리스도’ 취급을 받고 종교재판에 회부됐던 변 목사 사후 한국 종교계에선 화합과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노력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변 목사가 초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그 첨병이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민족종교협의회 등 7대 종단 협의체인 KCRP는 해마다 종교 간 화합주간 행사를 연다. 신자들이 성당이며 절집, 교당, 예배당 같은 이웃 종교 시설을 교차 방문해 서로 종교를 알아가도록 주선도 한다. 그 앎과 이해의 모토는 바로 `다름도 아름답다’이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화해와 일치에 나선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신앙직제협의회)도 특별한 사례다. 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정교회가 참여한 이 협의회는 천주교를 이단시하는 일부 보수 개신교계의 반대 시위로 가끔씩 골치를 앓지만 일치기도회며 신학 대화모임을 잇고 있다. 2017년에는 교황청과 루터교세계연맹이 함께 작성한 `갈등에서 사귐으로’를 신구교 신학자들이 공동 번역 출간해 세계 기독교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보수 개신교 안쪽은 변화가 없어 보인다. 부쩍 늘어가는 종교 간 화합과 화해의 몸짓과는 달리 성경과 예배당에 몰두하는 배타의 신행과 고집스런 독단이 활개 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최근 감리교단에서 한 목회자를 놓고 `출교’를 다시 들먹인다. 지난해 8월 31일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한 수원 영광제일교회 이동환 담임목사를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재판위원회에 회부한 것이다. 교회법인 `교리와 장정‘’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는 혐의다. 이 교리와 장정에는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가 범과(잘못을 저지름)에 해당한다. 재판에 지면 이 목사는 출교의 중징계를 당할 수 있다니 28년 전 변 목사의 종교재판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다. 지인의 요청으로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한 것으로 알려진 이 목사는 `축복도 죄가 되느냐’며 교단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2016년 경북 김천 개운사 법당 훼손 사건에 개신교 신자 대신 사과하고 복구 기금을 모금한 서울기독대 손원영 교수는 해고됐다가 법원 승소와 재단 이사회의 복직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학교 측 방해에 막혀 출근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학교 측은 손 교수가 불교 법회에서 `예수님은 육바라밀(6가지 수행덕목)을 실천한 보살’이라고 한 것을 문제 삼는다. 손 교수 발언은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부정한 것으로 정통 교리를 따르지 않는 이단행위라는 입장이다. 손 교수 복직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각 종교 전문가들이 종교 간 대화 모임을 만드는 추세와는 사뭇 다르다. 세상이 어수선해서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2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사목방문해 그곳 이슬람교 최고지도자와 함께 서명한 `인간의 형제애에 관한 선언’이 부쩍 자주 회자된다. 평화에 대한 약속을 구속력 있는 문서로 남겼다는 의미를 지닌 그 선언엔 이런 문구를 새겼다. `도덕 가치들과 올바른 종교 가르침들을 지켜나갈 때 급진주의와 맹목적인 극단주의에 대응할 수 있다.’ 우리네 종교는 왜 자꾸 거꾸로 갈까.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관악구 전 직원, 종교시설 등 고위험시설 집중 현장점검

    관악구 전 직원, 종교시설 등 고위험시설 집중 현장점검

    서울 관악구는 관내 왕성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것과 관련, 전 직원이 방역과 예방을 위해 주말 내내 관내 고위험시설 및 종교시설을 대상으로 집중 현장점검 활동을 펼쳤다고 28일 밝혔다. 구는 관내 대형교회인 왕성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함에 따라 지난 26일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관내 고위험시설 및 종교시설 현장점검, 선별진료소 지원근무 등을 위해 전 직원 특별 비상근무체계에 돌입했다. 점검대상은 ▲종교시설 482곳 ▲노래연습장(코인 포함) 308곳 ▲PC방 172곳 ▲단란주점·유흥주점·콜라텍284곳 ▲실내집단운동 70곳 ▲방문판매업·직접홍보관 233곳 ▲당구장·볼링장 124곳 등 총 1720곳이다. 구는 전날부터 전 직원을 점검반으로 편성, 각종 고위험 다중이용시설을 현장 방문하여 시설별 점검표에 따라 코로나19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점검했다. 특히 관내 노래연습장, 유흥·단란주점, 콜라텍, 헌팅포차, 실내집단운동, 뷔페의 경우 집합제한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코인노래연습장과 직접 판매 홍보관의 경우 집합금지 명령 준수 여부를 중점 점검했다. 또 동 주민센터 직원들은 직능단체와 함께 관내 시설에 대한 전 방위적인 방역소독 활동을 실시하고, 고위험시설 이외에도 음식점, 미용업, 목욕탕 등을 방문해 코로나19 방역수칙 홍보 활동을 실시했다. 이어 이날에는 교회, 성당, 사찰 등 관내 종교시설 482곳에 대한 전 직원 집중 현장 점검이 이뤄졌다. 교회의 경우, 점검반이 예배 시작 전 현장을 방문해, 강화된 방역 수칙 준수 여부와 성가대, 찬양단 등 접촉대면 소모임 및 단체 식사 자제(일시중단) 준수 여부를 점검했다. 직원들은 점검표에 따라 전 신도 ▲발열 체크 ▲마스크 착용 ▲손 소독 ▲거리두기 ▲명단 작성 등 감염예방수칙 준수 여부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미 준수 사항이 발견될 즉시 교회 담당자에게 전달해 시정 조치했다. 이날 왕성교회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관악구 15명, 타 지역 7명, 총 22명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소규모 교회모임을 포함한 각종 다중이용시설 방문을 자제해주시고, 외부 활동 시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켜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성모 마리아 복원하랬더니 아줌마 얼굴로, 스페인 또 ‘명화 망치기’

    성모 마리아 복원하랬더니 아줌마 얼굴로, 스페인 또 ‘명화 망치기’

    스페인에서 8년 전 ‘주책 할머니’의 엉터리 명화(名畵)복원에 버금 가는 명화 훼손 시건이 또 일어났다. 23일(현지시간) 스페인 유로파 프레스 보도를 인용한 영국 BBC에 따르면 17세기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성모잉태’ 복제화가 복원 작업 중 훼손됐다. 이 명화를 소장하고 있던 발렌시아의 수집가는 그림의 때를 벗겨내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가구 복원가에게 의뢰했다. 그는 1200 유로(약 164만원)의 형편 없이 저렴한 비용을 불렀다. 물론 그는 회화 복원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림의 때를 벗겨내려다 그림 속 성모 마리아 이미지마저 지워 버렸다. 그 뒤 이 아마추어 복원가는 두 차례나 수정을 시도하고, 그림을 덧칠했지만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었다. 그림 속의 아름다웠던 성모 마리아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우스꽝스러운 여인의 이미지만 남았다. 그림 소유주는 뒤늦게 진짜 회화 복원 전문가에게 작품을 다시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8년 전에도 스페인 북부 사라고사 근처 보르하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마을 성당에 모셔진 20세기 예수벽화 ‘에케 호모’가 훼손되자, 주민들이 복원하겠다고 힘을 합쳤는데 주책 맞은80대 할머니 신도가 본인이 해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림 속 예수는 원숭이 얼굴처럼 변하고 말았다.지난해에도 나바레의 한 교회에 있던 16세기 성 조지의 목각상이 복원 와중에 플레이모빌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얼굴로 바뀌었다. 다행히 이 목각상은 전문기관을 통해 전문가에게 다시 맡겨져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이번 일을 계기로 스페인에서는 예술작품 복원에 대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현행 법으로는 복원할 기술이 없는 이들이 복원에 참여하는 일을 막을 수가 없다. 스페인의 복원·보존 전문가 협회(ACRE)는 성명을 내 법적 보호가 미비함을 규탄하고 최근의 사건들은 “문화재 파괴”라고 규정했다. 협회는 “규제가 미비해 우리 유산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복원과 보존 전문가들이 최근 기회가 자꾸 사라져 다른 일로 빠져나간다. 이 직종이 스페인에서는 사라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ACRE의 마리아 보르하 부사장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런 사고는 불행하게도 생각보다 흔하다“며 “비전문가의 개입은 작품 손상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든다”고 개탄했다. 갈리시아문화재복원학교 페르난도 카레라 교수는 신문에 “약국에서 약을 팔려면 약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면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예술작품 복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풍속의 역사’ 등 800여종 출간… 까치글방 박종만 창립자 별세

    ‘풍속의 역사’ 등 800여종 출간… 까치글방 박종만 창립자 별세

    국내에 인문·사회·자연과학 명저를 소개한 출판사 까치글방의 박종만 창립자가 지난 1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5세. 출판사 측은 “까치글방을 창립하고 40여년간 이끌어 온 박종만님께서 6월 14일 타계하셨다”고 22일 밝혔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장례 미사를 올리고 서울 흑석동성당 ‘평화의 쉼터’에 모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경남고와 부산대 영문학과 졸업 후 1975년부터 2년간 월간 ‘뿌리깊은 나무’ 편집부에서 일했다. 1977년 까치글방을 연 뒤 이듬해 차기벽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한국 민족주의의 이념과 실태’를 첫 책으로 지금까지 800여종의 책을 출간했다. 까치글방은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 고전을 펴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풍속의 역사’(에두아르트 푹스),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 ‘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쿤), ‘토인비의 전쟁과 문명’(아놀드 토인비) 등이 유명하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20만부, 알랭 드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70만부 이상 팔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발도르차 평원. 푸르른 대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며 파도처럼 넘실댄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언덕 꼭대기엔 중세풍의 집 한 채. 이런 전원 풍경을 보고 ‘이탈리아를 제대로 여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친퀘첸토라고 부르는 작은 클래식카를 타고 달렸다. 세상에 나온 지 50년 된 이탈리아 차는 고약한 기름 냄새를 풍기고 오르막길마다 덜덜거렸지만 달리는 덴 문제가 없었다. 신형 마세라티나 페라리보다 이런 낡은 차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피렌체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투어를 활용해도 되지만, 100㎞나 이어지는 거대한 발도르차 평원을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선 렌터카가 필수다. 포도밭과 올리브밭은 긴 드라이브를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아무리 봐도 피곤하지 않은 색깔이 있다면 자연 그대로의 초록색일 것이다. 해발 300~700m 정도 되는 구릉 지역 꼭대기엔 성곽 형태로 세워진 작은 도시들이 있다. 그중에서 인구가 천명도 안 되는 피엔차라는 도시에 멈추었다. 골목 담장 위에 걸터앉았다. 푸르른 평원이 한 폭의 대형 그림처럼 펼쳐졌다. 새빨간 해가 자취를 감추며 대지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순간은 황홀 그 자체였다. 안개가 내려앉은 아침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서 포토그래퍼들이 가장 선호하는 시간대라고 한다. 6월이면 더욱 환상적이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온순한 바람에 청보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제 아무리 단단하게 닫힌 마음이라도 스르르 열려버리고 만다. 매일 이런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잠들고 깨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이 스스로 빚은 아름다운 풍경을 태어날 때부터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금수저라고 믿었다. 이곳 사람들은 삭막한 인공구조물에 지쳐 수백 만원을 들여 달려온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을 알까? 발도르차 평원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문화유산이다. 자연유산이 아닌 건, 아름다운 풍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연을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은 황폐한 언덕을 그냥 두지 않았다. 포도와 올리브를 기르고 마을을 이뤄 광장을 내고 성당과 집을 지었다. 자연은 가꾸고 매만져야 하는 캔버스였다. ‘사이프러스 나무를 심고 그 사이에 흙길을 내볼까? 그 길의 끝엔 예쁜 집 한 채를 지어야지!’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름답기 위해선 여백이 있어야 하고, 지루하지 않으려면 오브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아름다움을 향한 열정은 온 대지에 남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발도르차 평원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중심이 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을 반영했다’고 거창한 해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풍경 앞에서 감탄 그 이상의 평가가 있을까 싶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 발도르차 평원을 보며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25일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25일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해 전국 성당에서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가 봉헌된다. 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는 지난해 가을 정기총회에서 결정한 대로 오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지낸다고 16일 밝혔다. 다만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대규모 미사 대신 전국 신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한 상태로 진행되며 유튜브 생중계가 병행될 예정이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기도의 날’에 ▲오전 10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오전 10시 30분 수원교구 정자동 주교좌성당·원주교구 명륜동성당·대구대교구 주교좌 범어대성당·대전교구 대흥동 주교좌성당 ▲오전 11시 춘천교구 양양성당·인천교구 성모당·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 ▲오후 7시 30분 마산교구 창원 사파동성당 등에서 교구장 주교의 주례로 미사가 진행된다. 주교좌성당이 아닌 전국 1750여개 성당들에서도 ‘로마 미사 경본’ 한국어판의 ‘남북통일 기원 미사’ 전례문에 따라 미사를 치른다. 천주교는 1965년부터 매년 6월 25일에 가까운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해 지내 왔다. 1992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바꿨고 2005년부터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지냈으며 2017년부터는 한국전쟁 발발 당일에 지내고 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기헌 주교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야말로 그동안 남북 사이에 큰 장애물이 됐던 적개심과 전쟁의 고통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이 하나되기 위해 손을 잡는 새로운 출발의 해가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여기는 남미] 페루 성당 가득 채운 코로나 희생자 사진 중 멀쩡한 AV 배우 논란

    [여기는 남미] 페루 성당 가득 채운 코로나 희생자 사진 중 멀쩡한 AV 배우 논란

    페루 대성당을 가득 메워 화제가 된 코로나19 희생자 사진 중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영화배우의 사진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페루 가톨릭은 아직 이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황당하게 코로나19 희생자로 몰려 사진이 걸린 사람은 스페인의 영화배우 조르디. 사진을 보면 조르디는 단정하게 의사가운을 걸치고 있다. 사진 밑엔 페드로(베드로의 스페인식 발음)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사진 속 인물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의사 페드로를 추모하는 사진 같다. 하지만 실제 그의 직업은 성인영화 배우다. 사진은 그가 의사 역을 맡은 성인영화를 찍을 때 남긴 기념샷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그는 페루 출신도 아니고, 코로나19 희생자도 아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페루 대성당을 장식한 5000명 코로나19 희생자 중 한 명이 됐다. 5000장의 사진 속에서 '가짜 사진'을 찾아낸 건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진 페루의 네티즌들. 현지 네티즌들은 "대성당이 희생자를 추모한 건 잘한 일이지만 사진을 접수하면서 가짜를 가려내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성당 측에 사과를 요구했다. 한 네티즌은 "사진 속 인물이 AV배우라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 이상한 연상을 하는 사람마저 있다"며 대성당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 다른 네티즌은 "코로나19 사망자를 추모한다는 게 오히려 그들을 욕보인 격이 됐다"며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페루 가톨릭은 14일(현지시간) 수도 리마에 있는 대성당에서 코로나19 사망자의 사진을 붙여 놓고 성체축일 미사를 진행했다. 5000장 넘는 사진은 신자석을 가득 메웠다. 공간이 모자라 성당 내벽과 기둥에도 희생자 사진을 붙여야 했다. 강력한 사회적 격리조치 시행으로 신도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사진들만 놓고 열린 미사에서 집전한 카를로스 카스티요 대주교는 사망자를 위해 기도하고 "앞으로 더 어려운 시간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성당은 이날 미사에 앞서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로부터 사진을 받았다. 현지 언론은 "누군가 배우의 사진을 보내 장난을 쳤고, 대성당이 여기에 감쪽같이 속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대성당은 이 배우의 사진을 전달 받은 경위, 사진을 전달한 사람 등에 대해 아직 해명하지 않고 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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