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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흔들 아찔한 낮… 반짝반짝 설레는 밤

    흔들흔들 아찔한 낮… 반짝반짝 설레는 밤

    ‘소금산 출렁다리’ 생기면서 침체기 탈출 발밑 100m 낭떠러지에 머리카락 쭈뼛 밤엔 암벽이 대형 스크린 ‘미디어 파사드’ 성황림·용소막 성당서 단풍 인증샷 찰칵강원 원주의 간현관광지가 환골탈태하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소금산 출렁다리에 이어 절벽에 길을 낸 잔도, 유리다리 등 관광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시설물들이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거대한 암벽을 통째 스크린 삼은 미디어 파사드도 준비 중이다. ‘스릴의 성지’를 꿈꾸는 간현관광지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봤다. 간현관광지는 ‘라떼형’ 관광지다.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의 대학생들이 즐겨 찾던 MT 명소였다. 그러다 유행이 지나고 여행문화가 바뀌면서 장기 침체가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한방에 뒤집은 게 소금산 출렁다리다. 간현관광지는 소금산 출렁다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절대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삼산천 위로 솟구친 암벽의 봉우리 두 곳을 연결해 만들었다. 높이는 100m, 길이 200m, 폭은 1.5m다. 출렁다리 앞에 서면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바닥이 격자형으로 만들어져 발아래 천길 낭떠러지가 훤히 보인다. 그렇다고 눈을 감고 건널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발아래를 똑봐로 굽어봐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주변 풍경은 또 얼마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출렁다리 옆의 전망대(스카이워크)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폭 3m의 격자형 철구조물이 암벽을 지나 12.5m 길이로 펼쳐져 있다. 이 전망대를 끝까지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앞으로 간현관광지 일대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스릴의 성지가 될 듯하다. 원주시가 작심하고 ‘간담서늘쇼’를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잔도(棧道)다. 절벽 바깥쪽에 선반을 꽂고 그 위로 길을 냈다. 길이는 1.2㎞ 정도다. 소금산 출렁다리와는 탐방로로 연결된다. 두 곳을 모두 돌아보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리지 싶다. 유리다리도 관심을 끈다. 소금산과 간현산 사이를 잇는 다리다. 다리 상판 부위에 강화유리를 놓아 발아래가 훤히 보이도록 할 예정이라니 그 느낌이 얼마나 섬뜩할지는 경험하지 않고도 알 만하다.밤에는 영상쇼가 펼쳐진다. 주인공은 미디어 파사드다. 개미둥지마을 자연 암벽, 그러니까 소금산 출렁다리 바로 아래 직벽을 스크린 삼아 진행된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축물 등의 표면에 조명 시설을 설치하거나 디스플레이 기법을 연결해 이미지를 시연하는 것을 말한다. 간현관광지의 자연 암벽 자체가 밤이면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하는 셈이다. 미디어 파사드 규모는 폭 250m, 높이 70m에 달한다. 국내에 시연되는 미디어 파사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절벽 아래 삼산천에는 음악분수가 조성된다. 미디어 파사드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공식 개장 예정일은 내년이다. 미디어 파사드에 정확히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공연과 영상이 함께 어우러지는 콘텐츠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단순한 분수쇼보다는 미디어 파사드와 출렁다리, 음악분수 등과 원주의 이야기가 하나의 스토리로 엮여 수변 무대에 펼쳐지는, 공연극 형식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원주시에서 어떤 콘텐츠를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이 계절에 가볼 만한 원주의 명소 몇 곳 덧붙이자. 신림면의 성황림(천연기념물 93호)은 ‘신들의 숲’이라 불리는 곳이다. 수목과 초본류를 합쳐 150여 종이 자라는 토속식물의 보고다. 원래 4월 초파일과 중양절(음력 9월 9일) 등 두 차례만 일반에 개방하던 곳이었는데, 현재는 주말마다 문을 열고 있다. 성황림 숲은 단풍이 곱다. 성황당 주변에 시립한 복자기나무 등이 당단풍보다 붉은빛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중양절인 25일쯤엔 숲 전체가 붉게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양절에 치러지는 제례의식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됨에 따라 예정대로 진행된다.이웃한 용암리의 용소막성당은 횡성의 풍수원성당과 원주(원동)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1915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됐다. 성당 오른쪽의 거대한 느티나무는 벌써 붉게 물들었다. 노란 은행나무를 곁들이면 풍성한 ‘인증샷’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성당 뒤편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울창한 솔숲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원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마스크 처음 쓰고 나타난 교황

    마스크 처음 쓰고 나타난 교황

    마스크를 쓴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캄피돌리오광장의 성당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주재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행사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교황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중 행사를 치른 것은 처음으로, 코로나 2차 대유행과 교황청 근위대의 감염자 발생 등 심각한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 UPI 연합뉴스
  •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마종기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퍽 이채로운 위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생애의 많은 시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슬럼프 없이 균질적 시 쓰기를 해 온 모어(母語)의 사제요, 순수 참여의 틀을 넘어 지성적 사유를 통한 위안의 시 쓰기를 지속해 온 서정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그의 열두 번째 시집 ‘천사의 탄식’이 나왔다. ‘시인의 말’에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보낸다”라고 적었던 그 작품들이 실렸다. 30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귀국해 국내 독자들과 만나고 지인들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 왔던 그였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그러질 못했다.시인은 시집 뒤표지 글에서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 나눔이고 생환 훈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라고 했다. 그 세계에 대한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동원해 지난날로부터 이번 성과에 이르기까지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올해는 봄에 귀국하려고 시집 출간도 그렇게 잡아 놓았는데 갑자기 터진 코로나 난리 때문에 귀국을 못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영시집 ‘Forty Two Greens’(마흔두 개의 초록)가 뉴욕의 코드힐 프레스(Codhill Press)를 통해 출간됐습니다.” 거기서도 여전히 그는 현재형의 시인이다.●체온 나눔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 이번 시집에 ‘아내의 꽃’이라는 정갈한 시가 있다. 평생 이국에서의 외로움을 함께해 온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그에게 아내는 언제나 “따뜻해지고 느긋해져서/ 어깨가 다 가벼워지는” 세월을 나누어 온 반려자일 것이다. “아내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미국에 와서 결혼한 이후 너무 외로워 시를 썼고 서울 친구들에게 발표를 부탁하며 의사 생활을 이어 왔는데 시를 읽어 달라고 할 사람이 없었어요. 아내와는 시에 대해 나누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바로 그 외로움 때문에 시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영화 ‘패터슨’에도 인용된 의사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인이 되는 첫째 조건이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되뇌면서, 어쩌면 아내는 좋은 시를 쓰라고 그동안 자신의 시에 관심을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내가 제 시를 읽겠다고 합니다.” 두 분의 사랑과 체온 나눔의 시간이 지극한 울림으로 전해져 온다.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과 서양무용가 박외선 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학문적, 예술적 역량과 감성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게 틀림없을 것이다. 시인은 미국으로 향할 때 손에 50달러를 쥐어주며 헤어졌던 선친의 급작스런 별세 소식에 서러움과 죄책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전형적인 문사셨어요. 청빈한 삶을 기리셨고 가난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예술가형이셨지요. 단 한 가지 무용에만 몰두하셨던 분이죠.” 청년 마종기는 연세대 의예과에 입학했고, 1959년 1월에 ‘현대문학’ 초회, 이듬해에 완료 추천을 받고 시인이 됐다. 올해는 그러니까 등단 갑년(甲年)이 되는 셈이다. 마종기는 드뷔시나 사티 같은 인상파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의 시도 그 방향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우선 살아남아야 했고, 시는 자신에게 먼저 위로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종기의 초기시에는, 이국 생활을 예감이라도 한 듯, 처연한 유랑 의식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시인은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 영원한 떠돎이라는 실존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그에게 시는 천천히 위안과 그리움의 세계로 번져갔다. 그런 세계를 함께해 준 스승은 누구였을까? “한 분이라면 최민순 신부님을 들겠습니다. 가톨릭계에서는 존경받는 영성 신학자셨고 이탈리아어 ‘신곡’이나 스페인어 ‘돈키호테’를 직역해 세간을 놀라게 한 번역가셨지요. ‘현대문학’ 등단 소감도 신부님께 올리는 편지 형식으로 썼지요. 선친 장례 미사도 명동성당에서 친히 챙겨 주셨습니다.” 문인 중에는 박두진 선생을 들었다. 그분의 착하고 조용하신 성정도 좋아했고 그분의 단호한 강골도 좋아했다. 학생 때부터 선생을 따랐고, 그분이 ‘현대문학’에 등단시켜 주셨고, 첫 시집 ‘조용한 개선’(1960) 서문도 써 주셨다. 그렇게 부모님과 스승에 대한 체온 나눔의 기억으로 그는 이국 생활을 견뎌 왔고 지금까지 ‘마종기’일 수 있었으리라.●‘변경의 꽃’에서 ‘아내의 꽃’까지 1965년 공군사관학교 군의관이었던 마종기는 그해 여름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가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심문을 받고 감방에 수용됐다. 기소유예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쫓기듯 나와 산 것이 벌서 55년째다. 그는 1968년과 1972년에 황동규, 김영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을 두 번 펴냈다.“그 친구들과 함께 펴낸 ‘평균율’은 제게 큰 의미가 있지요. 고국을 떠난 게 1966년이었고 5년간 미국에서 수련의로 살아낸 그 시절은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고 한편으로는 저를 괜찮은 의사로 만들어 주기도 했어요. 그때 두 친구가 우정의 선물을 준 거죠.” 이번 시집 표지 캐리커처도 김영태가 그린 것이 들어갔다. 언젠가 시인은 “김영태 시인이 보낸 편지가 제일 많더라”고 추억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을 향한 시인의 사랑이 깊게 전해져 온다.1969년에 방사선과 전문의에 합격한 뒤로 그는 의대 교수로서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 그 과정에서 낸 세 번째 시집 ‘변경의 꽃’(1976)은 이국에서 살아온 이의 떠돌이 의식과 그리움을 담은 결실이었다. ‘변경의 꽃’이야말로 이국에 살던 시인의 초상이 아니었겠는가. 그러고 보니 ‘변경의 꽃’으로부터 그는 ‘담쟁이 꽃’, ‘박꽃’, ‘축제의 꽃’으로 ‘꽃’을 변형해 오다가 이번에 ‘아내의 꽃’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시인은 가장 아끼는 시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를 들었다. 나도 ‘이슬의 눈’(1997)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혼돈의 시간을 겪어 정서적으로 시의 도움이 절실하던 때의 시집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떠올렸다. 한 편 읽어 보자.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바람의 말’) 그 ‘바람의 말’을 넓혀 온 트라이앵글이 의학과 시와 신앙이 아니었을까? ●의사-시인-신앙인 ‘선순환의 삶’ “제 시에서 의학과 신앙이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사였으니 의학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요. 신앙 역시 외국에서 살아오느라 더 깊어지거나 흩어졌을지 모르지만 가톨릭 교인으로 60년 살아왔으니까요.” 그는 의학이나 신앙이 시의 모멘텀이 되는 때는 있었지만 가급적 그 몸체가 다 보이는 것은 경계해 왔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시집은 조금 달랐다. 시인은 지난봄 원고를 보내고 첫 교정지를 받았는데 팬데믹으로 모든 게 정지되자 다시 찬찬히 원고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후회가 없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등단 소감에 좋은 믿음의 시인이 되겠다고 썼던 생각이 났고, 몇 편 버리고 서너 편 신앙적 시들을 넣게 됐다고 한다. “의학은 육체의 치유, 시는 정신의 치유, 신앙은 영혼의 치유를 위한 매개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고 믿음과 시를 합치면 감동이 떨어지게 되고, 의학과 시도 한쪽으로 기울면 둘 다 역할을 못할 것입니다. 서로 우러르고 가까이에서 아끼는 상태가 돼야겠지요.” 그만큼 ‘의사’와 ‘시인’은 어느 하나가 주(主)가 되고 다른 하나가 종(從)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종기에게 상호의존적인 수평적 축이었던 셈이다. 선진 의학을 5년간만 공부하고 돌아가겠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시인은 그 땅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았다. 오하이오에서 의사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플로리다로 옮겨 사는 시인은 아들 셋과 손주들이 멀리 살고 있어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게 전부라고 한다. 평생 고독했지만, 자신의 시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분을 만나면 갑자기 자신을 겹으로 싸고 있던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이 다 날아가버린다고 했다. 의사-시인으로 “한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슬의 명예’)이었다지만, 그의 ‘변경의 꽃’으로서의 시작(詩作)은 지금부터 다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마종기’의 생으로 시작될 것이다. 위안과 그리움을 “내 나라도 보이던 따뜻하고 편한 그 색깔”(‘노을의 주소’)에 담은 ‘천사의 탄식’이 보내준 소중한 만남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이 신랑은 내 남편”…아내 몰래 결혼식하려던 남자의 최후

    “이 신랑은 내 남편”…아내 몰래 결혼식하려던 남자의 최후

    잠비아에서 한 남성이 아내 몰래 다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다가 들통나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사연이 전해졌다. 12일(현지시간) ‘잠비아 옵서버’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잠비아 수도 루사카의 체인다에 있는 한 가톨릭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이 신랑의 중혼 시도 사실이 밝혀져 중단됐다. 이는 이날 결혼식에서 새신랑으로 나선 남편 아브라함 무윤다의 원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난입해 결혼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즉 이번에 중혼을 시도한 무윤다는 잠비아 국세청(ZRA) 소속 직원으로, 이날 자신의 아내에게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간다는 쪽지를 남겨둔 채 집에서 나와 그동안 몰래 만나온 내연녀와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내는 결혼식 직전 이웃주민들로부터 남편의 중혼 계획을 전해듣고 성당으로 달려가 결혼식을 간신히 멈추게 할 수 있었다.당시 상황을 일부 하객이 촬영해 인터넷상에 공유한 영상에는 아내가 어떻게 성당 안 복도로 걸어들어와서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이 결혼식은 계속할 수 없다”면서 “여기 있는 이 남자는 내 남편”이라고 폭로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아내의 폭로에 하객들은 깜짝 놀라 동요했지만, 새신랑을 자처한 남편은 그저 턱에 손을 괸 채 지켜봤고 새신부 역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 마스크를 쓴 아내는 앞쪽 신도석에 앉아있던 한 여성과 언쟁을 벌인 뒤 결혼식 주례를 보려한 신부님(성직자)에게 항의했다. 아내는 신부님에게 “이 남자는 내 남편”이라면서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면서 “난 여기서 결혼식이 열리는 것조차 몰랐었다”고 하소연했다. 당시 아내는 포대기와 비슷한 천을 이용해 갓난아기를 업고 있었고 다른 두 아이도 함께 데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공유된 영상은 아내가 다른 사람과 언쟁을 벌이는 도중에 끝이 나지만, 이후 새신랑을 자처했던 무윤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돼 경찰서로 연행됐고, 남편의 부모 등 다른 가족은 이를 두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지 매체는 무윤다는 중혼죄로 기소될 수 있다고 전하면서도 새신부 역시 무윤다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국제연합(UN) 자료에 따르면, 잠비아에는 현대 법령에 근거한 결혼 제도 외에도 관습을 따르는 결혼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지 않으므로, 이미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 상태에서는 결혼을 또 하려는 사람은 기소될 수 있다. 이번에 체포된 무윤다 역시 중혼 시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징역 7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최송현 “♥ 이재한과 12월 성당서 혼배성사로 결혼” [EN스타]

    최송현 “♥ 이재한과 12월 성당서 혼배성사로 결혼” [EN스타]

    배우 최송현이 오늘 보도된 결혼 소식에 대해 해명하며 오는 12월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앞서 10일 오전 최송현이 연인 이재한과 이날 결혼한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에 최송현은 “‘비디오스타’ 출연했을 때 ‘10월 10일에 결혼할까 봐요’ 했던 말에 오늘 결혼 기사가 났다”며 이날 결혼 소식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최송현은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했었고 신혼집을 새로 얻거나 혼수를 준비하는 등의 과정이 없기 때문에 아무 날이나 정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혼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웨딩 촬영을 아직 못했다”라면서 “8월에 양가 부모님 모시고 상견례를 했고 9월에 오빠가 세례를 받았다. 12월 초에 성당에서 가족과 증인만 참석하는 혼배성사로 결혼한다”라고 알렸다. 이어 “하객 모시는 결혼식을 안 하는 우리도 코로나19로 속상한 일들이 많았는데 결혼식 미루고 마음고생 하신 예비부부님들 모두 응원한다”라면서 “모두 어렵고 힘든 시간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고 잘 흘려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한편, 최송현은 예비 신랑인 다이버 강사 이재한과 MBC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출연해 연애 스토리를 공개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경기도, 이천 ‘도자예술마을 회랑길’ 등 7곳 관광지로 육성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이천 도자예술마을 회랑길,김포 북변동 백년의거리 등 테마 골목 7곳을 관광 거점으로 육성한다고 9일 밝혔다. 앞서 도는 지난 5∼6월 관광 테마 골목으로 ▲수원 화성 행리단길 ▲안산 원곡동 다문화 음식거리 ▲평택 신장쇼핑로 솜씨로 맵씨로 ▲김포 북변동 백년의 거리 ▲이천 도자예술마을 회랑길▲포천 이동갈비 골목 ▲양평 청개구리이야기 거리 사업대상지 7곳을 선정 7곳을 선정했다. 도는 이후 실시한 테마 골목별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10∼11월 두 달 동안 각 골목별로 골목 고유의 이야기 개발, 관광상품 개발 및 시범운영, 벽화, 설치미술 등 골목 경쟁력 강화, 주민참여 역량강화(해설사 육성 교육 등), 온·오프라인 홍보 등의 사업을 진행하며 이들 지역의 관광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포 북변동 백년의 거리에는 여행 작가들이 직접 골목을 찾아가 100년의 세월이 만들어 놓은 오래된 골목 속 이야기를 발굴해 카드 뉴스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릴 예정이다. 또 노후 건물에 예술 콘텐츠를 입히는 설치미술을 통해 예술가 골목으로 꾸미기로 했다. 안산 다문화음식거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향 음식을 소재로 ‘원곡동으로 떠나는 세계음식 여행’ 콘텐츠를 만들 계획이다. 아울러 지역의 다문화 주민을 대상으로 음식문화 해설사를 육성하고 그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다문화음식거리에서 즐길 수 있는 미식 투어 상품도 개발하기로 했다. 테마 골목마다 관광 크리에이터나 문화기획가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골목 투어도 추진한다. 또한, 도는 관광테마골목이 상품성이 있는지 알아보면서 골목 홍보도 하기 위해 관광 유투버나 문화기획가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시범투어를 공통사업으로 운영한다. 김포 북변동 백년의 거리는 100년 된 김포성당에서 시작해 북변동 청년 문화거점 공간인 1950 해동서점을 거쳐 지역 내 휴식공간인 363예술광장까지의 코스다. 안산 원곡동 다문화 음식거리는 다문화 음식들을 경험해보고 요리교실에 참여하는 코스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미국적인 삶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미국적인 삶

    인상을 잔뜩 쓴 부부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제목은 뒤편에 있는 농가를 카펜터 고딕 즉 목수가 만든 고딕이라 일컫는 데 착안한 것이다. 지붕 물매가 가파르고 박공에 길쭉한 창문이 나 있는 게 고딕 성당을 닮았지만 어울리지 않게 거창한 이름이다. 두 사람은 당대 농부의 전형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다. 아내는 흰 칼라가 달린 검정 드레스에 프린트 무늬 앞치마, 남편은 흰 셔츠와 데님 작업복, 검정 재킷, 손에는 쇠스랑. 여성 모델은 우드의 누이동생이고, 남성 모델은 우드가 이가 아프면 신세를 지던 치과 의사였다. 우드는 이 그림으로 시카고미술관이 주최한 콩쿠르에 입상했다. 지역 신문들이 아이오와 농부 부부를 그린 이 ‘괴상한’ 그림을 앞다투어 소개하면서 우드는 폭발적인 명성을 얻었다. 진보적인 비평가들은 이 그림이 바이블 벨트라고 불렸던 중서부 지역의 답답하고 뻣뻣한 사람들에 대한 기막힌 풍자라고 칭찬했다. 진짜 아이오와 농부들은 이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고집 세고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묘사된 게 마땅치 않았다. 적대적인 반응에 부딪히자 우드는 자신도 이 지역 토박이이며, 이 그림은 특정 지역 사람을 묘사한 게 아니라 미국인 일반을 묘사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의 누이동생은 자기보다 나이가 두 배인 치과의사의 부인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당황했다. 사람들에게 오빠가 이 그림을 부부가 아니라 부녀로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드 자신은 이 점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1929년 발발한 대공황의 그늘이 미국 사회에 짙게 드리우면서 이 그림에는 다른 해석이 덧씌워지게 됐다. 비평가들은 이 그림에서 풍자가 아니라 애국적 의미를 찾아냈다. 이 부부는 미국적 덕성과 개척자 정신을 나타내는 사람이 됐다. 비평가들은 미국 민주주의가 이들처럼 촌스럽지만 건실한 남녀의 노동 위에 세워진 것임을 역설했다. 이들은 부부인가 부녀인가? 이들은 경직된 사회의 표상인가? 아니면 지켜야 할 가치를 표방하는 사람들인가? 오늘날 표류하는 미국 민주주의 속에서 이 그림은 또 어떤 새로운 의미를 지닐까? 미술평론가
  • 예술작품 입은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

    예술작품 입은 삼성 비스포크 냉장고

    6일 삼성전자 모델이 서울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프랑스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의 작품 ‘퐁텐블로 성’을 품은 비스포크 냉장고를 소개하고 있다. 펜과 잉크를 사용해 건물의 파사드를 섬세하게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티보 에렘이 가전업체와 협업한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이 외에도 런던 호라이즌, 노트르담 성당 등 그의 작품을 냉장고 도어 패널 디자인에 적용해 이날 출시했다. 삼성전자 제공
  • 전통건축 문법을 근대적으로 풀어낸 자생적 모더니즘

    전통건축 문법을 근대적으로 풀어낸 자생적 모더니즘

    한강 양화대교 북쪽에 한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위에 특이하면서도 기품 있는 일군의 건축물이 앉아 있다. 이 봉우리의 이름은 절두산으로, 천주교도의 목을 잘라 처형했던 순교성지다. 절두산성당으로 통칭되는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과 ‘병인박해100주년 기념성당’은 잊혀져 가는 건축가 이희태(1925~1981)의 명작이다.●이희태, 1세대 건축가 3대 거장 근대적 의미의 건축가는 체계적인 건축교육을 받고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설계한 한국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의 박길룡(1898~1943)이 최초의 근대 건축가다. 그러나 건축가의 직능을 본격적으로 알린 이는 해방 이후에 활동한 김중업(1922~1988)과 김수근(1931~1986)이다. 이들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확립돼 세계를 주도한 모더니즘 건축을 정착, 발전시켰다. 이들과 견줄 수 있는 다른 건축가라면 단연 이희태를 꼽을 수 있다. 한국 근대건축의 대표작들이 만들어졌던 1960~1970년대는 이 세 건축가가 정립한 삼국지의 무대이기도 하다. 김중업·김수근은 모두 일본 유학을 통해 모더니즘 건축을 습득했다. 김수근은 유학 시절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단게 겐조의 영향을 짙게 받았고, 김중업은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사무실에 취직해 직접 배우기도 했다. 이들의 학력과 이력의 아우라는 대단했고, 그들의 제자가 현재의 건축계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이희태는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외국 유학은커녕 고등교육조차 꿈꿀 수 없었다. 1942년 경성직업학교를 졸업한 것이 최종 학력이다. 건축 현장의 기능인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인 학교였다. 졸업 후 강제징용을 피해 어찌 취직한 곳이 조선비행기공업회사였고, 여기서 엘리트 건축가인 엄덕문·김중업 등을 동료로 만났다. 그들 같은 지식인 건축가가 되는 것이 청년 이희태의 새로운 목표가 됐다. 한국전쟁 직후 일생의 기회를 잡는다. 당시 서울대 미대 학장인 장발이 엄덕문에게 강의를 부탁했는데 그가 이희태를 소개해 대신 강의를 맡게 됐다. 고졸 청년이 최고 대학의 강사가 됐으니 평생 서울미대 교수로 불리기를 영광으로 삼았다. 장발은 4·19 내각수반 장면의 동생이며, 한국 천주교에 큰 위상을 가진 집안 출신이었다. 이희태의 능력과 성실함을 높게 산 장발은 천주교 건축 일을 주선했다. 1954년 명수대성당을 시작으로 혜화동, 인천 송림동, 진해, 경주, 청파동, 아현동, 압구정동 성당을 설계하게 됐다. 아울러 명동 샤르트르 수녀회, 계성여고, 서강대 예수회 신부관, 성나자로마을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 가운데 명수대성당은 최초의 모더니즘적 성당으로, 혜화동성당은 그의 대표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1960년대는 그의 전성기였다. 절두산성당과 국립극장 현상설계에서 당선돼 건축계 최대의 히어로가 됐다. 국립극장 설계를 위해 미국과 유럽의 문화시설을 견학했고, 멕시코와 홍콩 등 초청 방문도 잦았다. 1970년대 초까지 경주박물관, 공주박물관(현 충남역사문화원), 부산시립박물관 등 문화시설 설계로 분주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설계 의뢰가 끊겨 사무소 문을 닫았고, 가정 문제는 복잡해졌으며, 불치의 병까지 얻어 끝내 57세 나이로 타계했다. 내성적이며 비사교적이었던 그는 제자를 키우지 못해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남겨진 자료도 많지 않다. 어려운 처지에도 명동 한복판에 사무소를 얻었고, 늘 고급 맞춤양복을 입었으며, 매사에 엄격하고 깔끔했던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으로 기억될 뿐이다.●절두산성당, 20세기 한국의 고전 한국 천주교 전래사는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다. 신유박해로 300여명, 기해박해로 130여명 그리고 병인박해(1866~1871)로 8000여명이 순교했다. 1866년 2월 흥선대원군의 조선 조정은 9명의 프랑스 선교사를 포함해 전국에서 신도 수천 명을 처형했다. 이는 곧 그해 가을의 병인양요를 촉발시켰다. 프랑스 극동함대 선단이 8월에 한강의 양화진과 서강까지 거슬러 정탐했고, 9월에 대대적으로 강화도를 침략했다. 천주교도들이 프랑스 군대를 끌어들였다고 병인양요 후 또다시 대대적인 처형을 자행했다. 특히 양화진에서 수백 명을 참수했다. “외적이 더럽힌 곳을 원인 제공자들의 피로 씻는다”는 야만적인 명분이었다. 원래 이 봉우리는 누에머리를 닮아 ‘잠두봉’이었으나 참수 처형 이후 ‘절두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천주교는 1957년 잠두봉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순교 100주년에 맞춰 1967년 성당과 기념관을 완공했다. 서울의 다른 순교성지인 새남터는 1982년에 기념성당을, 서소문 밖 처형터는 2020년 역사박물관과 기념공원으로 단장했다.자연 지형을 최대한 존중하고 성당과 박물관의 기능을 조화시키라는 것이 설계 조건이었다. 이희태의 당선안은 그 장소성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지형의 높낮이 차이를 활용해 높은 곳에 성당을, 한 단 낮은 곳에 박물관을 배치했다. 두 건물을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그 접점에 높은 종탑을 세워 서로 통합했다. 이 종탑은 멀리서도 종교적 상징이 되는 랜드마크다. 두 개의 분리된 건물은 건물 외벽에 걸쳐진 회랑으로 모두 연결된다. 전통 건축의 방법인 채 나눔을 따르되 기능적 통합을 꾀했다.불규칙한 지형을 살리기 위해 1층을 띄운 필로티 형식으로 박물관을 설계했다. 필로티 하부에는 8각 화강석 기둥을 세워 마치 전통 누각 건축의 누하주와 같아 보인다. 위로 볼록한 기념관의 콘크리트 지붕은 초가지붕을 연상시킨다. 갓 모양인 성당의 원형지붕은 넓적한 칼 모양의 종탑이 내리쳐 잘려 나간 순교자들의 머리를 상징했다고도 한다. 회랑의 난간은 마치 목조를 짜 맞춘 것 같은 세심한 디테일을 가졌다. 역사적 장소성뿐 아니라 문화적 전통성과 종교적 상징성을 동시에 얻는 데 성공했다. ●독학으로 완성시킨 토착적 고유형 건축 그는 체계적인 고등교육도, 모더니즘의 세례도 받지 못했다. 모든 것을 독학으로 습득해야 했다. 그럼에도 초기작인 혜화동성당(1955)은 그 어떤 건축보다 모던하다. 직사각형의 몸체와 사각기둥인 종탑이 전부인 건물이다.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아름다움의 비밀은 외관의 비례에 숨겨져 있다. 종탑의 높이와 건물의 폭이 같아 보이지 않는 정사각형을 이룬다. 직사각형 몸체의 가로세로비는 2대1로, 두 개의 정사각형이 숨어 있다. 그의 다른 성당들도 이처럼 정교한 비례의 틀 안에서 계획됐다. 모더니즘 건축은 건축적 개념과 내부 공간의 구성을 중시했지만, 이희태는 이를 비례 체계의 형식미로 구현했다. 독학의 한계이자 성과였다. 당시 의식 있는 건축가들은 서구 건축의 수용과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모순 속에서 건축적 자의식을 표현해야 했다. 두 가지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하나는 모더니즘 건축의 보편성 위에서 전통을 차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 건축의 문법을 근대적 방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김중업이나 김수근이 전자의 태도를 취했다면, 이희태는 후자에 가깝다. 김중업의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옥의 처마선을 추상화했으나 전반적으로 르코르뷔지에의 문법에 충실했다.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한국 전통의 인간적 스케일을 추상화한 모더니즘적 집합체였다. 반면 이희태의 절두산성당은 목조건축을 연상시키는 누각형 구성, 초가형 지붕, 열주와 서까래 등의 전통적 문법을 철근콘크리트로 추상화했다. 그래서 이질감보다 편안함이 앞선다. 필로티-열주-처마지붕의 세 요소로 건물을 구성했는데, 이는 전통 건축의 기단-벽체-지붕의 3분구성으로 회귀한 것이다. 이후 국립극장이나 공주박물관에 공통적으로 적용된 그만의 고유한 문법이었다. 근대적 건축가의 길을 결심했을 때나 모더니즘의 원리를 체득할 때 그리고 현재와 전통의 화해를 꾀하고 자신만의 건축 문법을 만들 때도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스승이 없기에 자기 지시적이었고, 외래의 이상형이 없었기에 토착적인 고유형을 창조할 수 있었다. 어쩌면 한국 천주교의 운명과도 닮았다. 한국 천주교는 전교 사상 유례없이 내부적 갈망으로 시작해 자생적으로 성장해 왔다. 독학 가톨릭인 셈이다. 박해와 순교는 외래 종교와 전통 가치관이 충돌한 결과였다. 마치 우리의 근대건축이 서구와 전통 사이에서 갈등해 온 것과 같다. 차이가 있다면 순교자의 후예들은 박해의 역사를 충실히 기억하는 반면, 이희태의 존재와 건축적 의미는 거의 잊혀져 간다는 점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대구 상가 화재, 2명 숨져…“도박판 벌어졌다”(종합)

    대구 상가 화재, 2명 숨져…“도박판 벌어졌다”(종합)

    추석 연휴 기간인 3일 오전 대구 달서구 한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대구소방본부에 따르면 3일 오전 3시 48분쯤 달서구 성당동의 한 3층짜리 상가건물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장비 30여 대와 8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화재 발생 20여 분 만인 오전 4시 7분쯤 진압했다. 재산 피해액은 1388만원 상당이다. 이 불로 60대 상가 관계자 2명이 숨지고 또 다른 60대 남성 1명은 중상을 입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해당 상가에서 도박판이 벌어졌고 이 도박판과 관련된 누군가가 불을 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숨진 이들을 부검하는 한편 현장 감식을 통해 범죄 관련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피해자가 치료 중이라 진술 확보가 어려운 상태”라면서 “목격자 등 다양한 진술을 취합해 화재 원인과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도박판서 불 질렀다”…대구 상가건물 화재로 2명 사망

    “도박판서 불 질렀다”…대구 상가건물 화재로 2명 사망

    대구서 상가 건물 화재로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3일 오전 3시 48분쯤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의 3층짜리 상가 건물 2층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20분 만에 진화됐다. 화재 현장에서는 상가 관계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1명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중태다. 경찰은 불이 나기 직전 상가에서 도박판이 벌어졌고, 누군가 불을 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숨진 이들을 부검하고 현장 감식을 해 사망 원인을 찾는 한편 불을 지른 사람을 찾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대구 상가서 원인 모를 불…2명 숨진 채 발견

    대구 상가서 원인 모를 불…2명 숨진 채 발견

    대구 한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3일 오전 3시 48분쯤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의 3층짜리 상가 건물 2층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이 나 20분 만에 진화됐다. 화재 현장에서는 상가 관계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1명은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숨진 이들을 부검하고 현장 감식을 해 범죄 관련성을 확인하는 한편 목격자 등을 상대로 화재 경위를 조사 중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백색이 곧 모든 색상… 자연을 오롯이 품다

    백색이 곧 모든 색상… 자연을 오롯이 품다

    #첫 번째 만남 리처드 마이어라는 건축가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2학기 과제를 통해서였다. 마이어가 설계한 주택의 평면도와 입면도를 보고 엑소노메트릭이라는 입체도를 그리는 숙제였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 집은 그의 초기 작품인 ‘스미스 하우스’였던 것 같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건축가는 리처드 마이어였다.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50세에 프리츠커상을 받았고, 연속으로 주요 국제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특히 당대 가장 비싼 설계비라고 화제였던 LA의 게티 센터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그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면 ‘뉴욕 5’에 대해서부터 시작해야 한다.1972년 뉴욕에 기반을 둔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피터 아이젠만, 마이클 그레이브스, 존 헤이덕, 찰스 과스메이는 건축가로서는 젊은 나이인 30대 후반에 ‘파이브 아키텍트’(Five Architects)라는 책을 함께 출판하게 된다. 이후 그들은 ‘뉴욕 5’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들로 성장하게 되었다. 재미난 사실은 이들 다섯 명은 모두 초기에는 함께 책을 낼 만큼 비슷한 모던건축의 색깔을 띠고 있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서로 다른 색을 찾아 발전해 나아갔다는 점이다. 마이어는 시종일관 백색건축을 하면서 자신의 색을 유지했던 반면, 아이젠만은 좀더 이론적으로 치우쳐 해체주의 건축과 컴퓨터를 이용한 건축 디자인 분야를 개척했다. 그레이브스는 서양 전통 건축의 모티브를 사용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으며, 헤이덕은 뉴욕에 있는 건축대학 쿠퍼유니온에 남아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한편 과스메이는 초기에는 일관성이 있는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나,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다가 딱히 자신만의 건축관을 보여 주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르코르뷔지에의 적통, 건축계의 앙드레 김 1934년 그다지 부유한 동네라고 할 수 없는 뉴저지 뉴어크에서 태어난 마이어는 ‘뉴욕 5’ 중에서도 건축 작품을 가장 많이 남긴 건축가다. 그는 자신의 건축을 르코르뷔지에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에는 그의 작품 스미스 하우스 모델 바로 옆에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모델을 비교 전시해 놓고 있다. 그의 건축은 시종일관 백색건축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건축에서 흰색만 사용하면 그의 아류로 취급받을 정도다. ‘건축계의 앙드레 김’이라고나 할까. 스미스 하우스 같은 초기 작품을 할 때는 나무에 흰색 페인트를 사용하였으나, 이후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하였고, 최근에 로마 근교에 지어진 주블리 성당에서는 백색 콘크리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마이어가 LA의 게티 센터 미술관을 설계할 때, 건축주는 색깔 있는 재료를 사용한 박물관을 원했고, 마이어는 흰색을 고집했다. 결국은 둘의 오랜 싸움 끝에 베이지색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실제로 마이어의 건축물은 게티 센터와 캘리포니아에 주택 한 채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흰색이라고 보면 된다. 마이어가 흰색을 고집하는 이유는 흰색은 곧 모든 색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리처드 마이어 30가지 색’이라는 책을 보면, 흰색의 건물이 시간과 태양광의 컨디션에 따라서 얼마나 다양한 색으로 보이는가를 알 수 있다. 마이어의 사무실에서 프로젝트마다 페인트의 흰색을 결정하고 실제 시공에서 선정한 흰색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다.내가 한국에 귀국한 후 사무실을 열고 디자인을 한 초기의 작품들도 대부분 흰색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게 마이어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거제도에 지어진 ‘머그학동’과 신안군 압해도에 지어진 ‘보이드’라는 작품이 흰색이다. 특히나 자연경관이 훌륭한 곳에는 오히려 흰색 이외의 다른 색상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특정 색상과 재료를 주변 자연에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폐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대신에 흰색 캔버스 같은 백색은 아름다운 자연의 색상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될 수도 있고 마이어의 말처럼 모든 색상이 되기 때문에 자연 속에 건축할 때에는 흰색을 주로 선택하게 된다. #두 번째 만남 학창시절에 책으로 항상 접했던 마이어였지만, 사실 나는 마이어보다는 안도 다다오나 루이스 칸을 더 좋아했다. 보스턴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사무실을 구할 때 루이스 칸은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무실 지원이 불가능했고, 일본어를 못하여 안도 사무실에는 갈 수 없었다. 졸업 후에는 보스턴에서 가까운 뉴욕에서 일자리를 찾았는데 그때가 마침 이라크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어서 어느 사무실에서도 채용하지를 않았다. 이력서를 400장 넘게 뿌리고서야 겨우 네 군데 인터뷰가 가능했다. 그중 하나가 마이어 사무실이었다. 당시 세계적인 건축가였던 마이어는 경기를 잘 타지 않아서 직원을 뽑았던 것 같다. 마이어 사무실은 규모도 크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서 일을 해 보았다는 경우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 지원할 생각도 못 했었다. 그러다가 마이어의 광팬이었던 친한 선배가 “네 디자인의 공간감은 마이어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회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 선배의 말을 듣고 지원서를 보냈다가 덜컥 입사하게 된 것이다. 처음 인터뷰를 하러 사무실에 갔을 때 회사에 190㎝는 넘어 보이는 거구의 백발노인이 성큼성큼 걸어다니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다. ‘저런 외모라면 건축주분이 그냥 설득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건축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 ‘마천루’ 속 건축가가 현실로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서 뉴욕의 리처드 마이어 사무실에서 실무를 하는 꿈같은 일이 시작하게 되었다.#고급 주거의 마스터 마이어의 ‘더글러스 하우스’는 미시간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는데, 진입하는 시퀀스가 예사롭지 않다. 경사 대지의 높은 쪽에서 진입하면서 먼저 방문객은 네모진 창문이 뚫린 평범한 집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주택에 진입하기 위해서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일단 다리를 건너서 집으로 들어가면 정면은 막혀 있고, 햇빛만이 천창을 통해서 들어온다. 이곳에서 한 층을 내려가게 되면 두 개 층 높이의 거실과 전면 창으로 펼쳐진 미시간 호수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워낙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마치 배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건축은 주변 경관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디자인을 보여 준다. 숲 쪽으로는 침실들이 배치되어 있고, 호수 쪽으로는 거실과 식당 같은 공공 공간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사이에는 복도가 위치해 있는, 계획적으로 명확한 구도를 띠고 있다. 마이어는 이 집으로 고급 주거 전문건축가의 명성을 얻었다. 필자도 여러 건축가를 좋아하지만, 그 많은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살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마이어의 주택을 선택할 것이다. 프로젝트에 따라서 다르지만, 공사비는 상상을 초월해서 그가 플로리다 주에 지은 ‘누게바우어 하우스’의 경우 침실 4개짜리 주택임에도 총공사비가 400억원이 넘는 작품도 있다. 주택을 통한 성공적인 데뷔 이후 애틀랜타 주의 ‘하이 뮤지움’을 시작으로 프로젝트의 크기를 키우기 시작해서 바르셀로나 미술관, 게티 센터 등 각종 미술관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화이트 큐브 미술관의 마스터로 자리를 잡아 가게 되었다. 그가 사용하는 백색과 부드러운 자연채광은 미술관을 전시하기에 적합한 조합이 되었다. 그의 건축 브랜드는 그렇게 자리잡아서 미국의 많은 부자들은 마이어가 지은 주택에 살기를 희망한다. 이를 이용한 부동산업자들이 21세기 들어서 뉴욕 등 몇몇 도시에 마이어가 디자인한 아파트를 시행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내가 마이어 사무실에서 일하던 시절에 참여했던 프로젝트인 뉴욕의 ‘165 찰스스트리트 아파트’였다. 허드슨 강과 자유의 여신상을 볼 수 있는 이 아파트 프로젝트를 통해서 주거 건축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최근 내가 용산에 ‘아페르 한강’이라는 아파트를 디자인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건물 역시 흰색으로 디자인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페르 한강에는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넓은 테라스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정교한 미니멀 디자인 리처드 마이어는 본인이 유명 건축가라기보다는 ‘마스터 빌더’(Master Builder)로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건축은 완벽한 시공성을 요구한다. 실제로 모든 디자인을 하는 초기 단계에 프로젝트마다 다른 모듈러 그리드를 설정해 놓고 건축물의 모든 선은 그리드 선에 맞추어서 설계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공 시에 조금이라도 줄이 어긋날 경우가 생기면 아주 이상해 보이게 된다. 마이어 사무실의 직원들끼리는 “복잡한 형태의 건물을 디자인하는 프랭크 게리 사무실의 직원이 부럽다”고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이유는 형태가 복잡할수록 시공상의 작은 실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이어의 건축물은 모든 라인의 줄이 맞아야 해서 조금만 어긋나도 눈에 거슬린다. 마이어의 사무실에 출근한 지 몇 달이 지나고 나니 모든 사물에 줄을 맞추는 강박증이 서서히 생겨났다. 화장실에 수건도 직각으로 맞게 걸려 있어야 하고, 책상 위의 사물들도 정리되어야 맘이 편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직장 동료들에게 했더니 다들 나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건축도면을 보면 계속 줄을 맞추고 싶어지게 된다. 내가 설계한 머그학동에 가면 펜션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카페 동의 문, 창문, 정면에 있는 담장의 슬릿까지 줄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경향은 마이어 사무실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면도에 벽들이 줄이 맞춰져 있지 않으면 불편한데, 지금도 우리나라의 아파트 평면을 보면 벽들이 줄이 안 맞아 있는 경우가 많다. 볼 때마다 맘이 불편하다.어느 잡지에서 마이어에게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좋은 아빠’로 기억되고 싶다는 의외의 답변을 하였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게 될 때 그는 게티 센터 프로젝트를 하면서 뉴욕의 집을 떠나 LA에서 13년을 떨어져 지내면서 아내와는 이혼하였고, 그의 자녀들은 어느덧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서 아이가 클 때 곁에 있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지만 동시에 두 자녀의 아빠이기도 했던 것이다. 책으로, 건축 작품을 함께하면서,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인생의 경험으로 남아 있다. 건축가 유현준
  • 성남 야탑동성당 신자 1명 확진…29일까지 미사 중단

    성남 야탑동성당 신자 1명 확진…29일까지 미사 중단

    경기 성남시는 분당구 야탑동 분당야탑동성당 신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26일 밝혔다. 이 신자는 지난 13일과 20일 오전 11시 미사와 24일 오전 7시 장례미사에 참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역 당국은 이에 따라 해당 미사 참석자들 가운데 발열·기침 등 의심증상이 있는 교인은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분당야탑동성당 관계자는 “교인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성가도 부르지 않는 등 방역수칙을 준수했다”며 “확진자가 발생한 만큼 오는 29일까지는 미사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확진된 교인의 감염 경로와 함께 세부 동선과 접촉자를 파악하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에 있는 원자는 과연 모두 몇 개일까?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에 있는 원자는 과연 모두 몇 개일까?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일찍이 플라톤은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하고 물었다. 물질의 기원에 관한 가장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물론 그러한 질문에 제대로 답할 만한 과학이 당시엔 없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해 가장 독창적이고 놀라운 주장을 한 사람이 나타났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BC 460 ~380)였다. 지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지식은 두 가지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지성에 의해 타당한 추론을 얻을 수 있고, 다른 방법은 모든 감각을 정교하게 동원해서 얻어낸 자료를 통해 추론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의 본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모든 물질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작은 것, 곧 원자(atomon)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바로 물질의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구성요소로서, 세계는 무수한 원자와 공(空)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또 원자를 설명하면서, 원자는 영원불변하며, 절대적인 의미에서 새로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사물들이 안정되어 있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까닭은 모든 원자들이 똑같은 크기를 갖고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꽉 메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원자가 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보따리 구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데모크리토스가 말한 원자는 입자로 바꿔 생각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데모크리토스가 말한 대로 물질을 계속 쪼개나가다 보면,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물질의 최소 단위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물질을 무한히 쪼개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양자론 개척자의 한 사람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그 최소 단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옛 데모크리토스의 표상을 믿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맨 처음 입자가 있었다’는 표상이었다. (...) 그러나 이런 표상이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물질을 계속 쪼개가다 보면 맨 나중에는 더이상 부분이 남지 않고 물질 속의 에너지가 변환될 것이며, 부분은 쪼개지기 전보다 작지 않을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물질의 최소 단위에 착상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의 확립에 기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은 원자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로 규정했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과학지식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자는 물질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질료이자 현대 물리학의 화두이다. 현대문명의 총화인 컴퓨터, TV, 휴대폰 등 모든 전자기기들은 원자의 과학인 양자론 위에 서 있는 것들이다. 물리는 원자에서 시작하여 원자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원자는 얼마나 클까? 원자의 크기는 대체 얼마나 될까? 전형적인 원자의 크기는 10^-10m다. 1억분의 1㎝란 얘기다. 상상이 안 가는 크기다. 중국 인구와 맞먹는 10억 개를 한 줄로 늘어놓아야 가운데 손가락 길이만한 10㎝가 된다. 각설탕만한 1㎝^3의 고체 속에는 이런 원자가 10^23개쯤이 들어 있다. 얼마만한 숫자인가? 지구의 모든 바다에 있는 모래알 수와 맞먹는 숫자이다. 그럼 원자핵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약 10^-15m다. 원자의 100,000분의 1 정도다. 그렇다면 원자의 크기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전자 궤도가 결정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자는 그 부피의 10^-15(부피는 세제곱), 곧 1천조 분의 1을 원자핵이 차지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빈 공간이라는 말이다. 이게 대체 얼마만한 공간일까? 원자가 잠실 야구장만하다면 원자핵은 그 한가운데 있는 콩알보다도 더 작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을 원자핵과 전자의 빈틈없는 덩어리로 압축한다면 지름 200m의 공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은 원자를 제조하는 데 너무나 많은 공간을 남용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결국 물질의 크기는 원자핵의 둘레를 돌고 있는 전자에 달린 문제이지만, 원자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또 다른 얘기이므로, 여기서는 이런 원자가 온 우주에 얼마나 있는가 하는 문제만 짚어보도록 하자. 자연에는 원소의 종류가 92가지 있고, 그중 수소가 양성자와 전자 하나씩으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원소다. 그 다음 단순한 원소로 헬륨이 있다. 우주에서 가장 많은 원소는 수소인데 그냥 많은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원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질량으로 보면 70%, 원소의 양으로 보면 90%가 넘는다. 그 다음으로 많은 원소는 헬륨이다. 질량으로 28%, 원소의 양으로는 9%를 차지한다. 다른 원소는 모두 합해도 질량으로 2%, 원소의 양으로 0.1%에 지나지 않는다.수소와 헬륨을 합치면 우주 내 물질의 약 99%를 차지한다. 나머지 90종은 1% 미만이다. 그런데 지구는 사정이 좀 다르다. 지구 중심에는 철과 니켈이 풍부하지만 지각에는 산소‧규소‧알루미늄과 같은 원소들이 많다. 바다에는 수소와 산소가 풍부하고 대기는 질소와 산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철 이하의 원소들이 별 속에서 만들어지고 나머지 중원소들은 초신성이 폭발할 때 만들어져서 지구라는 행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92개의 원소들의 이 같은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다. 수소와 헬륨 외의 모든 원소는 뜨거운 별 속에서 제조되어 초신성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지고, 그것들이 지구와 인간 등 뭇 생명체를 빚어냈던 것이다. 별이 우주의 주방인 셈이다.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로 나가면 우주와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다. 태양은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86%를 차지하는데, 그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이다. 따라서 태양계 전체로 볼 때 가장 풍부한 원소는 수소와 헬륨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원소는 산소이고 그 다음은 탄소이다. 우주 전체 원소들의 존재량 비와 비슷한 셈이다. 우주를 이루는 원자의 개수 그렇다면 이 우주에 원자의 개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뜻밖에 간단한 방법으로 알 수 있다. 원자번호 1인 수소 원자의 경우, 1억 개를 한 줄로 늘어세워도, 그 길이는 1㎝를 넘지 않는다. 1억이라면 어느 정도의 숫자일까? 사과 한 알을 1억 배 확대한다면 그 크기가 지구와 같아질 만큼 큰 숫자다. 그러니 원자가 얼마나 작은지는 상상력을 아무리 동원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도대체 누가 이런 크기를 쟀단 말인가, 하고 짜증이 날 정도다. 그렇다면 또, 그 원자의 무게는 그럼 얼마나 되는가? 아보가드로 수인 6*10^23개만큼 수소를 수소 1몰이라 하는데, 저울에 달면 1g이 나온다. 저 1g 수소의 개수는 지구상의 모든 모래알 수보다 많은 것이다.빅뱅 이후 태초의 우주공간을 가득 채운 물질이 바로 그런 수소다. 캄캄한 공간 속을 수소 구름들이 흘러다니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그 수소 구름들이 중력으로 뭉치고 뭉친 끝에 마침내 태양과 같은 별을 탄생시킨 것이다. 오늘도 당신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저 태양 같은 별을 만들려면 수소 원자가 몇 개나 있어야 할까? 지수 법칙을 아는 중학생 수학 실력만 있어도 간단히 그 계산서를 뽑아볼 수 있다. 태양 질량 ÷ 수소 원자 질량 =수소 원자 개수 그 답은 약 10⁵⁷개이다. 이 숫자는 옛 인도 사람들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라고 말한 1항하사(10^52)보다 10만 배나 많은 수이다. 그러니까 이 숫자만큼의 수소 원자 알갱이들이 모이면 저런 엄청난 태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저 태양이 없다면 이 너른 태양계 속에 인간은커녕 아메바 한 마리도 살아갈 수 없다. 물질의 오묘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시 저 별먼지에서 나온 물질의 조합체가 아닌가? 저런 태양이 각 은하마다 평균 2000억 개가 있고, 그런 은하가 관측 가능한 우주에 또 2조 개 정도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다 곱하면 온 우주에 있는 천체들의 원자 수가 나온다. 계산해보면 4*10^80이란 숫자가 나온다. 이것이 우주의 일반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의 개수이다. 그런데 우주는 일반물질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4%밖에 안된다. 그 나머지는 이른바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차지한다. 에너지는 아인슈타인의 E=mc^2 방정식에 따라 물질로 치환할 수 있으니까, 여기에 다시 25를 곱하면 대략 온 우주의 원자 개수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우주의 모든 원자 개수는 10^82승 개이다. 10^100승인 구골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다. 10^82승 개 원자들이 만드는 우주는 얼마나 물질로 충만해 있을까? 우주 공간의 1조분의 1 정도를 채우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물리학자는 제임스 진스는 우주의 물질 밀도에 대해 “큰 성당 안에 모래 세 알을 던져넣으면 성당 공간의 밀도는 수많은 별을 포함하고 있는 우주의 밀도보다 높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주는 사실 텅 빈 공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그야말로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의 종류는 약 60종이고, 그 개수는 약 10^28승 개이다. 그중 수소가 3분의 2(질량비는 10%)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 수소는 모두 빅뱅 공간에서 탄생한 것이다. 온 우주에서 수소를 만들 수 있었던 환경은 빅뱅 공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138억 년 전 빅뱅의 유물을 몸으로 갖고 있다는 뜻이니, 우리 모두는 우주의 역사를 지닌 참으로 유구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요한 바오로 교황 혈액 담긴 ‘성골함’ 도난당해

    요한 바오로 교황 혈액 담긴 ‘성골함’ 도난당해

    이탈리아 중부의 한 성당에서 보관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의 혈액이 담긴 황금 성골함이 도난당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탈리아 중부 도시 스폴레토 성당의 관리인이 23일 밤 제단에 모셔진 요한 바오로 2세의 성골함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해 교구와 경찰에 신고했다고 로이터가 현지 신문을 인용해 보도했다. 성골함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 몇방울이 담긴 유리병이 보관돼 있었다. 성인으로 시성된 바오로 2세의 유골함은 폴란드 크라쿠프 대주교가 2016년 스폴레토 누르시아 대주교에게 선문한 것이다. 성골함은 다음 달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을 딴 중부 움브리아주 새 성당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고 한다. 스폴레토 성당이 속한 대교구의 레나토 보카르도 대주교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며 성골함을 성당과 신자에게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보카르도 대주교는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당시 교황청에서 근무하며 교황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고위 사제 가운데 한 명이다. 이탈리아 경찰은 이 일을 절도 범죄로 보고 성당 내외부의 감시 카메라 영상을 토대로 용의자를 찾고 있다.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 264대 교황으로 즉위해 2005년 선종할 때까지 27년간 재위했다. 네덜란드 태생인 ‘하드리아노 6세(1459∼1523) 이래 455년 만의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자 20세기 최연소 교황 등의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교황은 과거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는 고백을 해 주목받았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한반도 평화의 횃불 든 천주교 “1억명 서명운동에 앞장”

    한반도 평화의 횃불 든 천주교 “1억명 서명운동에 앞장”

    `한반도 종전 평화 우리가 견인한다.´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이 한창인 가운데 종교계가 선봉의 견인차 역할을 맡고 나서 주목된다. 천주교계가 종단 차원의 전국적인 서명운동 동참을 적극 독려하고 거점 매장인 `평화의 가게´ 운영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천도교 성직자·수도자들이 이에 호응하는 1인 시위에 돌입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한국전쟁 휴전에서 평화로 나아가자는 목소리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국제 캠페인. 한국전 발발 70년인 올해부터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인 2023년까지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에 대한 전 세계 1억명 서명과 각계 지지선언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국내외 400여 단체가 참여, 온라인 웹사이트(endthekoreanwar.net)와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그런 가운데 천주교계가 캠페인의 최전선에 나섰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동참을 호소하고 나선 데 이어 캠페인 명예대표인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지난 14일 “모든 분들이 평화의 횃불을 들 수 있길 바란다”며 서명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22일 천주교 주교회의에 따르면 천주교계는 지난 7월 말 의정부교구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열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심포지엄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의정부교구가 각 본당에 공문을 발송해 신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한 뒤 10곳 넘는 본당이 참여했고 전주교구를 비롯한 다른 교구 본당과 수도회로 서명운동이 번지고 있다. 천주교계는 이와 관련해 소상공인은 물론 프랜차이즈 매장, 학원, 병원 등 모든 매장을 대상으로 손님들의 서명운동 동참을 돕는 ‘평화의 가게’를 모집하고 있다. 천주교계의 캠페인 선봉 자임에 개신교와 원불교, 천도교 성직자·수도자들이 ‘한반도 종전과 평화를 위한 Korea Peace Appeal 함께 서명해요’를 내건 1인 시위로 호응하고 나섰다. 이들은 남북 평양공동선언 2년을 맞아 지난 14일부터 26일까지 2주 동안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주간´으로 설정한 뒤 지난 21일부터 각 종교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26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정문 앞, 흑석동 원불교소태산기념관 정문 앞,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 수운회관 앞 등에서 진행한다. 천주교 주교회의 민화위 측은 “많은 이들이 한반도 종전과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지지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지만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포토]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1억명 서명운동

    [서울포토]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1억명 서명운동

    22일 명동성당 앞에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사제 수도자들이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KOREA APPEAL 1억명 서명운동 종교인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2020.9.22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속보] 서울 신규 확진자 34명 추가…무단이탈 확진자도 적발

    [속보] 서울 신규 확진자 34명 추가…무단이탈 확진자도 적발

    서울 지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8일 최소 34명 발생했다. 서울시는 이날 0시부터 오후 6까지 지역 내에서 34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누적 확진자가 4938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신규 확진자 34명의 감염경로 중 강남구 소재 K보건산업 관련과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관련이 2명으로 가장 많았다. K보건산업에서는 지난 9일 직원 1명이 최초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이날까지 누적 확진자는 32명이다. 서울시는 K보건산업이 위치한 역삼동 스타팅 빌딩을 3~11일 방문한 시민은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당부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종사자 3명이 지난 9일 최초 확진된 후 지금까지 서울 시내 누적 확진자는 35명이다. 최초 확진자인 영양팀 배식원은 업무 중 마스크를 착용했으나 보호 장갑 착용은 미흡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과 관련한 서울 시내 확진자는 1명 늘어 누적 확진자는 4명이다. 은평구 수색성당에서도 1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누적 환자는 총 4명이 됐다. 이외에 타시도 확진자 접촉자가 4명 증가해 221명으로 늘었고, 이전 집단감염이나 산발적 감염 사례인 ‘기타’는 18명 증가해 2454명으로 집계됐다. 감염 경로 확인 중인 확진자는 4명 추가돼 865명으로 나타났다. 해외접촉 관련은 2명 늘어난 407명이다. 18일 발생한 확진자를 자치구별로 보면 강남구에서 6명으로 가장 많았다. 노원구에서도 3명의 확진자가 추가됐고 강서구, 관악구, 도봉구, 송파구, 은평구에서도 각각 2명의 코로나19 환자가 새로 나왔다. 양천구에서는 관내 양천경찰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확진자는 지난 17일 타구 거주 경찰관으로 14~16일 양천경찰서에서 근무했다. 15일에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는 “접촉자 19명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고 자가격리 조치했다”며 “경찰서 외 이동동선은 정밀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강남구는 자가격리 장소를 무단이탈한 주민 1명을 적발해 감염병 예방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조치했다. 현재 강남구가 관리하고 있는 자가격리자는 해외입국자 651명, 국내접촉자 249명 등 900명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오늘 6시까지 신규확진 91명…37일째 세 자릿수 될 듯

    오늘 6시까지 신규확진 91명…37일째 세 자릿수 될 듯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18일 오전 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최소 91명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날 같은 시간 98명에 비해 7명 줄어든 수치다. 그러나 이날 자정까지 추가 확진자를 고려하면 100명 선은 넘어설 전망이다. 이 경우 17일 연속 100명대를 유지하게 된다. 또한 일일 확진자는 37일째 세 자릿수를 이어가게 된다. 이날 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신규 확진자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지역별로는 서울 34명, 경기 32명, 인천 13명 등 수도권이 79명이었다. 비수도권은 충남 3명, 대전 2명, 부산 2명, 대구 1명, 경북 4명으로 12명으로 조사됐다. 수도권 최소 79명…산발적 집단감염 계속 수도권에서는 최소 79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서울에서는 서울지역의 기존 집단감염인 강남구 소재 K보건산업 관련과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서 각각 2명의 확진자가 늘었다. 이날 새롭게 집단감염으로 분류된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과 관련해서는 시내 확진자는 1명이 늘었으며, 은평구 수색성당에서도 1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밖에서 서울에서는 이전 집단감염이나 산발적 감염 사례인 ‘기타’가 18명이나 증가했으며, 감염경로를 조사 중인 확진자도 4명이나 달했다. 경기도에서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경기 지역 집단감염인 기아차 광명소하리 공장과 관련 직원 1명, 가족 1명이 추가로 확진됐다. 시흥에서는 이날 새롭게 집단감염으로 분류된 센트럴병원 관련 확진자 1명이 추가됐다. 고양시 정신요양시설(박애원)에서는 2차 전수검사에서 8명의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수원에서는 가족을 통한 확진자가 발생했다. 수원 258번은 가족인 수원 214·221번과 접촉해 이날 확진됐다. 수원 259번도 가족인 수원 257번으로부터 감염됐다. 성남에서는 2명, 군포에서는 1명이 추가로 확진됐는데 이들은 기존 확진자와 접촉을 통해 감염됐다. 파주와 부천, 김포에서도 각각 확진자가 1명씩 추가됐는데, 이들의 감염경로는 아직 확인 중이다. 인천에서는 이날 13명의 신규 확진자가 추가됐다. 이들 중 6명은 미추홀구 소재의 한 소형교회에서 발생했다. 이들 중 5명은 교회에 숙식하는 노숙인과 장애인이다. 이들은 이날 앞서 확진 판정을 받은 교회 신도(인천 864번)와 교회에서 접촉한 후 감염됐다. 이 교회 관련 신규 확진자는 총 6명이다. 인하대학교에서는 오프라인 수업 참석 중 학생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교내 접촉자를 자가격리하고 실험실과 연구실을 폐쇄했다. 비수도권 신규확진 12명…충남·대전·경북·부산 등 비수도권 확진자는 이날 오후 6시 기준 12명으로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충남 보령에서는 충남해양과학고 학생 확진자의 여동생이 추가로 확진됐다. 이 여동생 역시 대천여중에 다니는 학생이어서 해당 학교는 비상에 걸렸다. 천안에서는 공기청정기 판매업소 ‘에어젠큐’와 관련 확진자 1명이 추가됐다. 아산에서는 대구 동충하초 관련 연쇄감염인 그린리프녹엽 관련 확진자 1명이 추가됐다. 대전에서는 기존 확진자들의 가족이 추가로 확진됐다. 대전 351·352번 확진자는 무증상 확진자였던 대전 350번 확진자의 할머니·고모다. 대전 350번 확진자의 감염경로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북 경주에서는 중·고교생 2명과 50대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중 고등학생 확진자는 등교 후 유증상을 보여 방역당국은 해당 학교에 대해서도 진단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포항 북구에 거주하는 포항 70번 확진자는 기존 포항 68번 확진자로부터 감염됐다. 부산에서는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 부산 362번을 통해 2명의 확진자가 추가됐다. 부산 364번은 부산 362번이 이용한 식당에서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며, 부산 365번은 362번과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동료다. 한편 최근 신규 확진자는 0시 기준으로 지난 4일부터 18일까지 ‘198→168→167→119→136→156→151→176→136→121→109→106→113→153→126명’으로 집계됐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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