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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印尼 大選 이모저모

    [자카르타 AFP AP 연합] 20일 대통령 후보의 잇딴 사퇴와철회끝에 실시된 인도네시아 대통령 선거는 혼미속을 헤매는 인도네시아 정국의 결정판이었다.선거직후에는 군부가 심상찮게 움직이고 패배한 민주투쟁당(PDIP)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후보의 결과승복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지지자들은 결과에 불만을 품고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유혈충돌의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부유층들은 인도네시아를 떠나기에 바빴고 호텔 상가마다 폭동에 대비,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등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대통령 선거는 예정 시간을 수 차례 변경한 끝에 이날 10시30분 국민협의회(MPR)의사당의 본회의장에서 시작.아미엔 라이스 MPR의장의 개회 선언에이어 메가와티 후보와 국민각성당의 압둘라흐만 와히드후보가 지명 수락을발표한 뒤 의원들은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한 명씩 나와 단상 옆에 마련된투표소에서 투표. ?선거관리위원회는 참석 의원 690여명의 기명 투표가 오후 1시쯤 별다른 소란없이 끝난 뒤 곧바로 개표 준비에 돌입.흰색 체크무늬 투피스차림의 메가와티 후보는 본회의장 앞에 마련된 후보석에 앉아 담담한 표정을 지었으나투표 결과를 의식한 듯 긴장된 모습이 역력. 메가와티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지않으면 선거는 무효라고 주장했던 종전의태도와는 달리 개표직후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집권 골카르당은 B.J.하비비 대통령 후보의 전격 사퇴이후 악바르 탄중 당의장을 새 후보 지명했다가 철회하는 등 선거전부터 자중지란의낌새가 역력.골카르당은 하비비 대통령이 이날 0시30분(이하 현지시간)새벽MPR 국정보고가 부결된 후 전격 사퇴하자 6시간여뒤인 아침 7시쯤 당수인 악바르 탄중을 새 대통령 후보로 지명. 또 골카르당의 부통령직 제의를 거부했던 위란토 국방장관 겸 군참모총장을 부통령으로 영입한다고 발표.그러나 이날 상오 10시 선거시작 직전 탄중의 후보지명을 철회하는등 갈팡질팡. 이어 골카르당은 다른 회교 정당들과 제4의 후보로 유스릴 이흐자 마헨드라 월성당(月星黨)당수를 성급히 추대했으나 그가 다시 후보 수락을 거부하는 촌극까지 연출 ?한편 하비비 대통령은 사임 기자회견에서 퇴임 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인도네시아에머물 것이라면서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단체를 세울 계획”이라고 표명. ?선거 전날인 19일 밤부터 자카르타 시내에는 여야 정당 후보 지지자들간의 대충돌을 예고하는 조짐들이 속출.호텔 인도네시아와 만다린 오리엔탈 등시내 중심가의 대형호텔 입구에는 모두 바리케이드를 치고 유리문들을 두꺼운 합판으로 막는 작업에 부산한 모습.사히드자야 호텔 역시 철제 바리케이躍? 가설.일부 아파트들은 시위대들의 투석에 대비 1,2층 창문에 합판을 설치. ?자카르타의 상업지역으로 화교상점들이 밀집한 글로독은 지난해 6월 폭동당시의 악몽이 재현될 것을 우려,대부분 상점들이 철시.관공서,기업들도 문을 닫았으며 화교 상인들은 미 달러화 매입에 혈안.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수도 자카르타 중심가인 호텔 인도네시아 분수대 앞에서는 폭탄이 터져 3명이 부상. 수 일전부터 메가와티 후보를 지지하는 학생 수 천여명이 하비비 대통령과 위란토 군총사령관의 퇴진 시위를 벌여 온곳으로 경찰은 분수대 앞에 세워진 화분 속에서 폭발음이 들린 것으로 보아화분내에 폭탄이 숨겨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
  • [21세기 여성시대](4)군인

    지난 97년 개봉됐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지 아이 제인(G.I.Jane)’은 오락물에 불과하다는 일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금녀(禁女)지대인 해군특수부대(SEAL)조차 이제는 벽을 허물어야 할 때가 왔음을 보여줬다.1차대전때 여성 군입대가 공식화되고 2차대전때 병과(兵科)확대가 이뤄진 이후 불과 50여년만에 여성의 군(軍)진출은 비약적인 속도로 이뤄져왔다.여성은 사병에서부터 장관까지,단순 사무직에서 전투기조종사에 이르는 거의 모든 병과에 진출,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이같은 개방화 속도로 미뤄볼때 21세기여군의 역할증대는 거역할수 없는 추세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사상 첫 여성 학과장직을 맡았던 실라 위드넬 박사는미 역사상 최초의 공군장관을 역임한 인물.그녀는 93년 30년간 몸담았던 강단을 떠나 현역군인만 38만명인 공군을 거느리고 군현대화,조달부문 개혁 등탁월한 업적을 쌓았다.97년 퇴임,강단으로 돌아간후 지금까지도 이름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예비역 해군소장인 로버트 해자드는 미군내 최고위 계급 여성으로 알려져있다.작전,훈련,인사 등 다양한 경험이 그녀를 해군 인사참모부장까지 이끌어갔다.이들은 현재 미군내 여성의 지위와 여군의 미래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역사상 여성의 군대 진출은 기록에 남아있는 것만도 기원전 1300년전 중국상왕조 우딩(武丁)의 푸하오 왕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그러나 정식 여군으로 복무하게 된것은 1차대전때부터.그 전까지 여성은 남자로 변장한 다음에야 군인이 될 수가 있었다.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던오를레앙의 처녀영웅 잔 다르크도 ‘남자’로서 프랑스 군대를 지휘했지 여군은 아니었다. 여성이 정식으로 군에 입대할 수 있었던 것은 1차대전때.물론 간호와 사무에 한정됐으나 대우는 ‘최고’였다.1차대전말 미 여군 간호장병만 총3만4,000명에 달했다.여군 병과확대가 이뤄진 것은 2차대전때로 수송,기계수리,항공,첩보 등에까지 진출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50만여명의 여성이 암호해독과 레이더기지 운용 등 지원업무는 물론 적지에 투입돼 정보수집과 후방교란업무를 수행하는 특수작전도벌였다.인도계 영국인 베굼 누르는 프랑스 노르망디에 낙하된 최초의 여성스파이였다.암호명 ‘메덜린’으로 암약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서 1년여동안 정보를 보내다 독일군에 발각돼 44년 처형됐다. 유태계 폴란드인인 한나 세네쉬 역시 유고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23살의 나이에 총살된 비운의 주인공이다. 러시아 여군들은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80만명의 여군중 70%가 전방에서 독일군과 교전을 벌였다.티토의 빨치산 투쟁에는 200만명의 여성이 가담했다가28만2,000명이 처형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여성은 독립투쟁의 선봉장이었다.나이지리아에서1929년 일어난 ‘아바봉기’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기를 든 ‘여성의 전쟁’으로 유명하다.국민당과 싸웠던 중국공산당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장정에는 35명의 여성당원이 끝까지 길을 같이 했다. 현재 미군내 여군은 육군과 해병대만 각각 3만2,000명과 4만8,000명.공군장교의 15%,사병의 10%가 여성이다.아파치 공격헬리콥터를 몰며 탱크를 호위하는 여군의 모습은 이제 더이상 생소하지 않다.‘사막의 폭풍’작전때만 4만1,000명 여군이 참전했다. 박희준기자 pnb@ * 韓·日 여성지도자 세미나 개최 여성의 힘을 빌어 ‘21세기 한-일관계’를 새롭게 모색해보려는 대규모 한일(韓日) 교류행사가 열린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회장 이춘호)은 창립 30돌을 맞아 일본 여성 지도자 500여명을 초청,오는 24일∼26일까지 서울 힐튼 호텔에서 양국 여성지도자 세미나를 가진다. 세미나 주제는 ‘21세기 여성의 정치적 역할’.한일 여성국회의원을 비롯해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의 배우자,학계 및 여성단체 대표,여성 경제인,여성 언론인 등 한일 여성지도자 1,000여명이 참석하는 이번 세미나는 여성계최초의 대규모 한일 양국교류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세미나는 일본 자민당의 모리야마 마유미 의원을 비롯,양국 모두 초당적인 입장에서 여성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해 양국 여성정치발전에 관해 진지한토론을 열 예정이다. 구체적인 논의과제는 제1주제인 ‘새천년을 향한 여성의 정치세력화’와제2주제인 ‘21세기 여성의 가치변화를 주도할 주요 요인’.이중 제1주제에대해선 ▲21세기 정치세력으로서의 여성의원의 비전(김정숙 국회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정치인 배우자는 정치자원이 될 수 있는가(김정옥 이해찬 국회의원 배우자)▲여성지방의원과 생활정치의 이상(안상현 강원도 의원) 등의소주제로,제2주제와 관련해서는 ▲멀티미디어를 통한 여성의 가치변화(신낙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한일대중문화와 여성(하윤금 방송진흥원 연구원)▲사이버시대의 여성경제활동에 대한 전망(최영희 내일신문 발행인)▲여성의 정보화와 정치세력화(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등의 소주제가 토론된다.일본측에서도 각 1인이 발표자로 나선다. 특별행사로는 참가비(각 10만원)로 마련한 장애인 전용버스 증서(1억2,000만원)를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 전달하는 뜻깊은 행사와 함께 이번 세미나를위해 일본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야시로 에이타(八代 英太) 일본 우정장관 등에 대한 공로패 수여식이 있을 예정이다. 연맹의 이춘호 회장은 “한일 여성지도자들의 잦은교류를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양국 여성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여성문제 뿐 아니라 제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2000년에는 일본 삿뽀르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한일 양국 여성지도자 교류세미나를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경옥기자 ok@ * 한국 女軍의 어제와 오늘 한국 여군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50년 9월 피난지 수도 부산에서 여자 의용군 491명으로 창설됐다.당시 여자 의용군은 정보수집,수색활동을 비롯,군가보급,간호활동을 벌였다.의용군은 곧 해체되고 51년 육군본부에 여군과가 설치돼 여군에 대한 인사행정업무를 처음으로 다루게 된다. 여군의 독자적 훈련기관인 여군 훈련소가 서울 서빙고에 창설된 것은 55년. 이후 여군은 여군처로 개편(59년)되고 70년대 들어 여군훈련소와 여군대대를예속부대로 한 여군단으로 확대되는등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기갑,포병을뺀 모든 병과에서 남자에 못지 않은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여군은 간호장교 800명을 포함,2,000명 가량.창설이후 2만명의 여군이배출됐다.엄옥순(嚴玉順·43)여군학교장과 민경자(閔慶子·47) 육군본부 여군담당관이 현역중 최고직위인 대령으로 재직하고 있다.예비역으로는 13대여군 병과장을 지낸 정영숙(鄭瑛淑) 여성단체협의회 수석부회장과 김화숙(金和淑) 재향군인회 여성회장이 사회에서 활동중이다. 여군의 최대숙원은 장군 배출.엄옥순·민경자 대령이 입대 26년이 되는 2001년 육사 31기와 함께 장군진급심사 대상에 들어간다.보수적인 군문에서 최초의 여성 장군이 탄생될지 관심을 끈다. 황성기기자 marry01@ *역대 최고의 女戰士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여전사(女戰士)는 누구인가.미국의 인터넷 정보제공 업체인 ‘네트 사라소타’는 프랑스의 잔 다르크,중국의 화무란(花木蘭),미국의 몰리 피처,베트남의 트룽 자매를 꼽았다. 잔 다르크는 15세기 백년전쟁 때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험에 놓인 나라를구해낸 프랑스의 여걸.소작농의 딸로 군대를 이끌고 오를레앙 전투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둬 영국의 침략야욕을 분쇄했다. 1429년 영국군에 의해 포위된오를레앙에 군대를 이끌고지원을 나간 잔 다르크는 위험을 무릅쓰고 선두에서서 병사들을 독려,프랑스군의 사기를 높여 영국군의 항복을 받아냈다.1920년 5월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성인으로 추증됐다. 화무란은 5세기 중국 북위(北魏)시대때 흉노족의 침입으로 강제 징집령을받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하고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미국의월트디즈니사가 화무란을 ‘뮬란’이라는 제목의 만화영화로 제작,98년 전세계에 개봉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특히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그해 중국 방문전 이 영화를 보고 동양적 충효사상에 감명을 받아 중국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미 독립전쟁 때 맹활약한 몰리 피처는 본명 메리 매컬리보다 별명 ‘몰리피처(물주전자 몰리)’로 더욱 유명하다.남편 헤이스와 함께 뉴저지의 몬머스 전투에 참가한 그녀는 쉴틈없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부상병과 갈증에허덕이던 병사들의 목을 축여줘 이 별명을 얻었다.포병인 남편이 쓰러지자자신이 직접 포수가 돼 싸움이 끝날 때까지 싸웠다. 베트남의 트룽 자매도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여전사들.트룽 트락과 트룽니 자매는 1세기 중국 후한(後漢)의 지배를 받고 있던 베트남의 공주들이다. 중국군이 트락을 성폭행하고 남편을 살해하자 8만명의 반군을 조직,거대 중국에 대항했다.뛰어난 게릴라 전으로 당시 중국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빼앗은 것은 물론 세력권을 중국 남부까지 확대했다. 김규환기자 khkim@
  • 인니 새대통령 와히드

    [자카르타AFP연합] 이슬람 지도자인 압둘라흐만 와히드 국민각성당(PKB)후보가 인도네시아의 차기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와히드 후보는 20일 오후 시작된 대통령선거에서 국민협의회(MPR)의원 700명 중 373표를 얻어 313표를 획득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민주투쟁당(PDIP) 당수를 60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이날 5명의 국민협의회 의원은 기권했다. 와히드 후보는 이날 오전 10시30분(한국시간 12시30분)에 시작돼 1시35분개표에 들어간 선거에서 개표 초반 박빙의 차로 메가와티 후보에 뒤졌으나개표 종반에 지지몰표가 나와 역전했다. 이번 선거는 하비비 대통령이 후보를 사퇴하고 집권 골카르당이 대체 후보를 내지 못하는 극도의 혼미 속에 진행됐으며 와히드 대통령당선자의 소수당인 국민각성당과 막판에 후보를 내지않고 그의 지지를 선언한 골카르당의 연정수립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하비비 대통령은 국민협의회가 대통령 국정보고에 대한 신임투표를 통해 자신을 불신임한 후 선거를 불과 몇시간 앞두고 전격적으로 후보 사퇴를선언했다. 골카르당은 하비비 대통령의 추천으로 악바르 탄중 골카르당 당수를 대통령후보, 위란토 국방장관 겸 군참모총장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었으나 당 간부회의에서 거부되는 바람에 선거 직전 후보지명을 철회했다. 한편 박빙의 접전에서 패배한 메가와티 후보는 개표 직후 “선거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적인 절차로 대통령을 뽑았지만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극히 험난하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메가와티여사의 낙선은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불만과 저항을 불러일으켜 향후 정국의 가장 큰 불안요인으로 떠올랐다.지난 97년 5월 수하르토 대통령의 18년 독재를 몰락시킨 데 이어 새로운민주주의 대장정에 들어서려는 인도네시아 민중의 여망은 실현 한발 앞에서좌절되고 말았다. 세계적인 관심 속에 치러진 이날 선거는 겉모양새는 야(野)-야(野)대결구도.그러나 집권 골카르당과 이슬람세력은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반(反)메가와티 공동 전선구축에 성공,대세를 뒤집었다. 투표 직전까지 후보 지명과 사퇴가 잇따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메카와티쪽으로 기울던 승세는 새벽 급작스레 후보로 등록한 군소정당인 월성당(CSP)의 우스릴 마헨드라 당수가 투표시작 직전 “와히드에 표를 몰아주자”며 전격 사퇴하면서 반전됐다.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을 얻어가며 강력한 대통령후보로 부상한 메가와티 진영에는 긴장과 당혹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후보조차 못낸 집권당이 약체 후보인 와히드를 밀기로 했다는 설은 투표에들어가기 직전 일부 골카르당 의원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골카르의 와히드 선택은 일단 메가와티로 대변되는 민중민주 세력으로 권력을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결정에서 나온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큰 변수였던 위란토장군과 군부 역시 기득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골카르 및 수하르토의 가족들과 친한 와히드 지지쪽으로 막판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대통령제하에서 권력기반이 극히 허약한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도네시아는 정국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일차적으로 골카르 지지자들과 지분 나누기 정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여기다 메가와티의 낙선에분노한 시위가 격화될 경우 군부의 개입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 와히드 후보는 수하르토 통치 18년을 무너뜨린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메가와티여사와 집권 골카르 후보 사이에 선택된 ‘과도기대통령’의 운명을 처음부터 타고난 셈이다.김수정기자 crystal@ * 와히드 당선자는 누구 인도네시아 새대통령으로 선출된 압둘 라흐만 와히드(59) 국민각성당(PKB)당수는 지난 6월 총선에서 당을 인도네시아 제3당으로 도약시킨 인물. ‘구스 두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3,000만명의 회원을 지닌 인도네시아 최대의 회교조직 ‘나흐들라툴 울라마(NU)’를 이끌고 있으며민주개혁과 함께 종교 및 민족적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문에 이슬람적 이상을 정책에 반영하려고 애쓰는 한편 동시에 기독교도및 소수 중국계의 인권옹호에도 앞장서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메가와티 민주투쟁당(PDIP) 당수와는 친밀한 친구 내지 조언자로 친분을 유지해온 반면 국민협의회(MPR) 의장이자 이슬람계의 또다른 지도자인 아미엔라이스와는 첨예한 라이벌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는 지지자들로부터 중간다리 역할 또는 ‘킹 메이커’로서만 비춰졌지만 막판 뒤집기에 성공,인도네시아 4번째 대통령에 오르게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98년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사임한 이후부터. 수하르토에 이어 대권을 물려받은 하비비 대통령이 여전히 실정으로 인도네시아 정국을 불안으로 내몰자 민주개혁 운동의 새로운 인사로서 급부상,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 뇌졸중으로 인한 시력장애 후유증을 겪고있는 등 건강에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옥기자 ok@*재확인된 군부위세 와히드 대통령정부의 앞날을 점치는 데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군부다.군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됐고 앞으로 군의 지지를 받아야 제대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와히드의 당선은 국민협의회(MPR) 내 군부의원들의 지지와 친군부성향의 골카르당 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에서 도중하차한 B J 하비비대통령은 위란토 군참모총장 겸 국방장관을 부통령후보로 지명했으나 위란토가 이를 거부했다.역시집권당 후보가 됐다 취소된 악바르 탄중 골카르당 당수 역시 위란토를 후보로 지명했다. 이들이 위란토에게 매달린 이유는 간단하다.위란토장군과 군부의 지지 없이는 당선도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위란토는 정치적 야심을 좀처럼 내비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힘의 향배를 저울질하다 막판 와히드의 킹 메이커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인도네시아는 헌법에 군의 정치적 권한행사를 보장한 특이한 나라다.국정최고기관인 국민협의회(MPR) 700명 가운데 38석이 군부대표 몫이다.이들은 임기 5년 동안 군복차림으로 당당하게 국정을 논한다.현재 군의 총병력수는 육해공군과 경찰군을 합쳐 50여만명. 수하르토 통치 32년을 떠받쳐온 것도 군부였고 지난해 5월 수하르토 하야뒤 하비비 정권을 지탱해준 것도 군부였다.따라서 위란토가 하비비의 부통령후보 제의를 거절했을 때 하비비의 정치적 운명은 끝난 것이었다. 위란토장군은 군부 내에서 일단 개혁파로 불린다.64년 육사를 수석졸업한엘리트고 89∼93년 수하르토의 부관을 지내며 승승장구,참모총장에 올랐다. 대중기반도 없는 제3당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에 앞으로 인도네시아 정국에서군부와 위란토장군의 입김은 더 위세를 부릴 게 분명하다. 이기동기자 ye
  • [외언내언]‘재외동포 통합법’

    오는 12월 시행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에 대해 법무부가 12일 보완 대책을 내놓았다. 보완책은 중국동포의 한국국적 취득 조건을 완화하고 고국방문을 전면 허용하며 취업기회도 늘려주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그러나‘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등 관련 단체들은 정부가 내놓은 보완책에 대해 대체로 불만족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정부가 중국동포의 국적취득 요건을 완화한다면서 현실적으로 까다로운 조건을 달아 놓았고 고국방문,취업 요건도 충분치않다는 주장이다. 법무부가 보완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 법이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이래 미주지역을 제외한 재외 동포들이 동포차별법이라며 강력히 반발을 했고 특히중국동포들은 명동성당에서 오랫동안 농성까지 벌여가며 시정을 요구한데 따른 대응이었다. 그러나 13일의 불만족 반응도 중국동포들의 것일뿐 러시아나 기타 지역 동포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아마도 보완책마저 또 지역 차별이냐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정부가 재외동포들의 요구를 낱낱이 들어줄 수는 물론 없는 일이다.동포들이 나가 살고 있는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고 그들 나라와의 외교관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게 국가의 정책이다. 그렇긴 하지만 재외동포법이 이렇게 출발부터 삐거덕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게 이 법의 입법계기가 미국동포들이었기때문에 다른 지역 동포들을 간과(看過)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는 점이다.다른하나는 정부가 재외동포에 대한 포괄적인 개념을 갖고있지 않은 것 같다는것이다. 벌써 10여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외입양아 문제같은 것도 이 법에서는 아예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통일까지도 염두에 두고 세계에 나가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한민족 공동체’ 실현이란 보다큰 그림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시작일 뿐이다.비록 미비하게 출발은 했으나 이를 계기로재외동포에 대한 새로운 국내인식이 심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든지‘재외동포 지위향상 추진협의회’같은 기구가 생겨 재외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일수 있게 되었다는 것 등은 하나의 소득이다. 정부는 이법을 시행해 가면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시정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이번 보완책도 그런 입장의 반영이다.이 법이 동포 차별법이 아니라 재외동포 통합법이 되도록 고칠 것은 고치고 시정할 것은 과감히 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林春雄 논설위
  • [21세기는 여성시대] 1. 정치지도자(상) 여왕‘대통령

    ‘여성성(性)의 회복’이 21세기의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전쟁과 폭력과 살상으로 점철돼온 20세기의 인간성을 지배해온 것이 ‘남성성(性)’이었다는데서 오는 자성의 소리가 높기 때문이다.“20세기 가장 혁명적인 사건은 여성해방의 시작과 남성우위의 붕괴”라고 에리히 프롬도 일찌기 설파했듯이 21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사건은 새로운 성(性)패러다임의 변화임을 예측하기어렵지 않다.대한매일은 이 새로운 성패러다임의 예측을 위해 20세기 각분야에서의 전현직 세계여성지도자들의 소개와 여성운동의 현주소 등을 시리즈로기획,‘여성성’의 실체를 다양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이해심,인내심,공평성 등 대부분 모성애의 특성으로 표현되는 여성성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분야로는 정치분야가 꼽힌다.20세기 인류사회에 저질러져온 전쟁과 폭력과 살상의 대부분이 바로 정치적 결단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 200여개의 국가 가운데 여왕이나 여대통령을 국가수반으로 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7개국,2차세계대전 이후로부터 따지면 모두 44명에 달한다.한편 여성총리는 모두 22명이고 그 가운데 현직은 3명이다. 이같은 수치는 2차대전 이후 세계 정치지도자의 총 수가 1,200여명 이라는통계와 비교해볼때 0.5%의 지극히 미미한 비율이다. 수반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 등 일반 정치인의 비율에 있어서도 여성 비율은 현저하게 떨어진다.1998년을 기준으로 여성의원 비율이 가장 많은 국가는 스웨덴으로 40.4%,다음은 노르웨이 39.4%로 대부분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그러나 인도네시아 12.6%,필리핀 11.5% 등 아시아국가들은 현저하게 낮고 민주주의의 선도국인 미국도 12.6%에 불과하다.한국의경우는 더욱 떨어져 3% 정도 수준이다.따라서 유엔개발계획(UNDP)이 계량화한 여성세계화지수 순위가 한국은 정치·경제발전에 훨씬 못미치는 73위에머무르고 있다. 현직 여성 국가수반 가운데 그 상징성이나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은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73).52년 2월 부친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윈저가의 네번째 왕으로 즉위한 그녀는 15개 영연방국의 상징적 국가원수이며 세계 최장수 여성 국가원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59)는 72년 즉위 이래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부친 프레데릭 9세의 뒤를 이은 그녀는 옥스포드 고고학박사이자 화가로 다재다능함을 뽐내고 있다. 네델란드 여왕 베아트릭스(61)는 80년 4월 어머니 줄리아나 여왕에 뒤이어등극했으며 1890년에 등극한 외할머니 빌헬미나 여왕 등 3대 여왕으로 유명하다. 현직 여성대통령으로는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54),아일랜드의 매리 매컬리스(48),라트비아의 바이라프라이베르카(62),파나마의 미레야 아리아스(53) 등이 있다. 쿠마라퉁가는 어머니 반다라나이케가 현직 총리로 있어 모녀정치인으로 유명하며 88년 야당당수 이던 남편 암살 이후 정계에 투신했다.매컬리스는 매리 로빈슨전대통령의 후임으로 최초로 여성끼리의 지도자교체 사례를 남겼다. 프라이베르카는 의학·심리학 박사학위와 5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석학인 동구 최초의 여성대통령.지난 9월1일 취임한 아리아스 대통령은 사망한 전대통령 아르눌포 아리아스의 미망인으로 올 연말 미국으로부터 파나마 운하를 이양받는 대역사를 앞두고 있다. 라윤도 국제팀장 ranuma@ * 여성해방 운동사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은 20세기가 다되어서였다. 그 이전까지 여성의 지위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 법률적으로 남성에 예속된 신분이거나 아니면 소외된 계층,그 자체였다.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페미니스트 운동의 결정적 동기부여는 여성들의 참정권과 함께 재산권 획득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실제 서양 여성운동사에서 페미니즘의 기원은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을 경험한 중산층 여성들이 자유주의적 신념을 자신들의 권리신장과 연결시키기시작한 1840년대를 기점으로 한다. 재산권의 평등한 향유라는 목적으로 시작된 중산층 여성들의 페미니스트 운동은 이후 공창(公娼)제도 폐지,반음주,반폭력 등 가정내 여성을 위협하는남성적 악의 척결이라는 사회정화 페미니즘 운동으로 전개되어 갔다. 미국에서 1839∼98년 사이 금주령을 투표로 통과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참정권 획득의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벌였던 사실은 대표적인 예이다. 참정권 문제가 지상최대의 과제였던 19세기 후반의 여성운동은 영국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이고 창문을 부수는 등의 폭력성을 띨 정도로 과격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영국은 20세기초인 19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30세 이상의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했으며 미국 역시 1920년에야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서구 각국에서는 여성의 투표권 획득을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법적평등이 달성되었다. 그러나 이를 정점으로 페미니즘 운동도 서서히 침체국면에 들어가면서 보수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대공황기때인 1930년대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일을 훔쳤다는 원망까지들으며 미국 등지에서는 반(反)페미니즘 분위기가 팽배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진보적 여성해방운동’ 또는 ‘전투적 페미니즘’ 이름으로 새로운 여성운동이 일기 시작했다.특히 래디칼 페미니즘을 주도한 미국의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강간,아내구타,어린이 성폭력,낙태 합법화,동성애 등을 여성해방운동의 주제로해 또다른 차원의 여성권리를 앞세웠다. 20세기말,확대된 여성해방운동의 이념은 이제 정치·경제 영역뿐 아니라 사회 각 영역의 대안적 사유방식으로 자리잡으며 서구뿐 아니라 제3세계까지도확대되고 있다. 이경옥기자 ok@ * 세계 여성해방운동 주요연표 ▲1848 세계 최초의 여성권리대회 미국 세네카 폴즈 개최.▲1903 영,여성 사회정치연합(WSPU) 창설.▲1918 영,여성 참정권 획득.▲1923 미,전국 여성당헌법 수정안(남녀 평등권) 의회 제출.▲1936 미,산아제한 합법화.▲1949 프,시몬 드 보봐르 ‘제2의 성’ 출판.▲1950 미국의 여성취업률 30%.▲1960 미,식품의약국(FDA)산아제한용 피임약(필) 인가.▲1963 미,여성운동의 어머니베티 프리던 ‘여성의 신비’출판.▲1964 미,시민권리법안 제정-EEOC(고용평등기회위원회)설립.▲1966 미,최대의 여성조직인 ‘NOW’ 베티 프리던에 의해 조직.▲1968 미,‘뉴욕급진여성’단체 미스 아메리카대회 반대 데모.▲1973 미,대법원 임신중절권 합법화.▲1988 바버라 해리스 신부,최초의 성공회여성주교로 서품.▲1995 제4차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경창헌 주한아르헨티나 대사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는 한반도와 지구상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면적은 한반도의 13배나 된다.남북 길이만도 3,694㎞에 이른다.21세기 세계가 필요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천혜의 자원 보고(寶庫)로 불린다. 2차세계대전 전에는 세계 강대국의 하나였으며 지난 수십년 동안 정치·경제적 곡절을 겪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에 가깝다.중남미에서 가장잘사는 나라로도 평가된다. 아르헨티나의 21세기 밀레니엄행사는 남반구의 가장 남쪽에 있는 나라로서나름대로의 특색을 갖는다.지난 8월26일 출범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2000’이라는 조직이 모든 행사를 기획·추진하고 있다. 밀레니엄행사는 화려하고 장대한 규모 대신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서민 대중의 정서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주요 테마는 이민의 역사를배경으로 한 통합과 조화다.지향점은 물론 ‘21세기의 선진 아르헨티나’이다. 첫 행사는 지난 11~12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명한 빨레르모공원에서 치러졌다.‘이민자축제’였다.세계 60여개국 이민사회가 참가해 각국의 전통문화와 음식,풍물을 소개했다.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살고 있는 3만여명의 우리교포들도 참여해 고전 무용인 칼춤,부채춤,사물놀이 등을 소개했다.한국관에서도 한국 전통 음식과 묵화 붓글씨를 현장에서 소개했다.‘2002년 월드컵홍보’도 겸했다. 아르헨티나는 올 연말까지는 온통 문화축제로 꾸며져 있다.지난 21일부터는 전에 없던 기록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9월부터 연말까지 새 밀레니엄맞이 기념 마라톤대회,전통민속인 탱고축제,영화축제,문화의 밤 행사 등도전국 각지에서 행해진다. 금세기 마지막날인 12월31일 축제의 절정을 이룬다.부에노스 아이레스시를비켜 지나며 바다처럼 흐르는 거대한 ‘라 프라타’강에서 모든 요트와 크고 작은 배들이 동원돼 선상축제가 벌어진다.시내 20여개 공원에서는 불꽃놀이도 펼쳐진다. 같은 시기 부에노스 아이레스 북방 1,600㎞에 위치한 살따주에서는 ‘구름기차’의 축제를 갖는다.이 열차는 12월31일 오후 3시 살따시를 출발,2000년 1월1일 0시에 4,220m 고지의 뽈로리야 철교를 지나게된다.2000년 들어 최초의 결혼식이 이 열차 안에서 치러진다.아래에서 보면 하늘로 향하는 듯한철교는 구름이 되어 천상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자랑하는 안데스 관광지인 바릴로체의 봉우리,일명 ‘성당의작은산’은 3만m에 이르는 전등 트리로 조성된다.12월8일 점등되어 뉴밀레니엄의 태동을 축복할 예정이다. 안데스산맥과 접한 멘도사주도 산악인들을 위해 12월31일 출발하여 하늘과가장 가까운 곳에서 2000년 첫 태양을 맞을 수 있는 남미 최고봉 아꽁까구아산(해발 6,962m)을 등정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그 역사가 말해주듯 이민사회로 출발하여 애환을 거듭하고 있다.선진국가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충정도 각별하다.아르헨티나는 서민 대중의 정열과 지혜가 흘러넘친다.새로운 2000년에는 한 걸음 앞선 선진,번영으로 연결될 꿈에 부풀어 있다. [慶昌憲 駐아르헨티나 대사]
  • 종교계, 보안법 폐지 목소리 더 높인다

    국가보안법에 관해 교단이나 종단 차원의 전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던 종교계가 최근 ‘폐지’ 쪽으로 가닥을 잡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특히종교계는 성명발표와 서명 등 소극적 형태에서 벗어나 집회나 삭발단식 등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톨릭계는 아직 교회전체 차원의 공식적인 견해는 표명하고 있지 않지만각 관련단체가 연합해 ‘운동’에 나서고 있다.특히 내년 ‘대희년’에 담긴 해방과 구원의 의미를 뿌리내리기 위해 반드시 국가보안법이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정의구현사제단,정의구현전국연합 등 33개 단체는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천주교연대’를 발족,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2,000명의서명을 받아 ‘보안법 폐지 선언문’을 발표했다.천주교연대는 또 지난달 16일부터 지난 12일까지 전국 14개 교구를 돌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순회기도회를 열었고 문규현 신부 등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20명은 명동성당에서 삭발 단식중이다. 불교계 역시 종단 차원의 입장 발표와 운동은 없다.그러나 제10차 범민족대회 행사와 관련,지난달 진관스님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자 철폐의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실천승가회 전국불교운동연합 등 9개 단체는‘국가보안법 폐지 불교연대’를 결성,18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국가보안법폐지와 정치수배 해제 촉구 법회를 봉행한다.이에앞서 ‘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 행동연대’도 지난 11일 서울 명동성당에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제1차 국민대회’를 갖고 명동성당에서 조계사까지 행진을 벌였다.‘김영삼 정권시절 정치수배자 수배해제를 위한 범불교도대책위원회’도 조계사에서400여일 이상을 농성중인 정치수배자에 대한 ‘즉각 정치수배 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개신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를 주축으로 지난 7월부터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설교문을 작성,배포해왔다.KNCC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한국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 인권목회자동지회 등 각 단체들은 지난 9일 서울 기독교회관과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목요기도회를 갖고 본격적으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이들은서명을 받아 국회 법사위에 전달할 예정이며 시민 사회단체와 활동을 연계해 나가기로 했다. 김성호기자
  • [외언내언] 개신교의 참회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가톨릭의 부패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됐다.우리나라에서는 면죄부로잘못 번역된 대사(大赦·indulgentia)의 남용에 항의해 발표한 95개 조항의성명서가 그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대사란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는 행위인보속(補贖)의 방법과 기간이 너무 엄격해서 신자들이 보속을 다 이행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아지자 10세기부터 교황이 일정한 조건을 부과하면서 죄를 사면해준 제도였다.그 조건들은 교회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생이나 자선의 실천이었는데 교회가 부패하고 세속화하면서 대사가 남발되고 전제조건도 대성당 등을 짓기 위한 헌금으로 대체되면서 상품화되고 말았다.루터는돈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당시 교회의 악습에 반기를 들고 ‘오직 성서와믿음과 은총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은 뼈를 깎는 자기쇄신으로 거듭났다.지금도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해 파문(破門)했던갈릴레오 갈릴레이를 1992년 복권시켰다.지난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에 대한 교회의 침묵을 반성하는 문헌 ‘우리는 기억한다:쇼아(Shoah·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반성’을 발표했고 중세의 종교재판과 같은 교회사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회개도 이루어졌다. 한국 개신교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개신교 교단에 구성된 15개 목회자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9일 일간신문에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5단 크기 광고를냈다.같은날 10개 기독교 시민단체들도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실천연대’를 결성했다.이들은 최근 교회와 신자들이 연루된 일련의 사건들-고급옷 로비 사건,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방송사 난입,종말론 추종자들의 집단가출,신애양 사건,모 교단의 선거부정 및 비리 시비 등-이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것에 대해 참회하며 교회 쇄신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자기고발 광고는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고 왜곡된 기복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철저하게 가르치지 못한 죄 ▲돈과 권력있는 자를 가난하고 약한 자보다 우대하고 교회의 자원을 사회정의 실현과 이웃을 섬기는 일에 바로 사용하지 못한 죄 ▲IMF 고통과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세계 8억 인구가 기아상태에 있는 현실에서 나눔과 섬김의 원리로 청빈의 삶을 살지 못한 죄 ▲신사참배 등 역사적으로 교회가 권력과 맘몬(物神)의 우상 앞에 무릎 꿇었던 죄 등 7개항의 죄를 고백하고 있다.“주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로 끝나는 이 고백과 교회갱신운동이 루터의 성명서가 그랬듯 한국개신교를 거듭나게 하는 제2의 종교개혁바람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임영숙 논설위원
  • 미 국무부 ‘국제 종교자유 보고서’ 첫 공개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미 국무부는 9일 전 세계의 종교자유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144개국 종교자유실태에 대해 실사를 거쳐 작성된 이 보고서는 “거의 모든 국가들이 헌법에 종교자유를 명시하고도 현실은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북한의 종교자유 실태에 대한 요약. 헌법은 ‘종교·신앙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실제 정부는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경우 외에 모든 조직화된 종교활동을 억압하고 있다.진정한종교자유는 없다.헌법은 “아무도 외세를 끌어 들이거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기 위해 종교를 이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정부가 지원하는 몇몇 종교단체의 형성을 허용했다.이들은외국종교 조직과 국제지원단체를 연계하기 위한 것이다.이 단체대표를 만난몇몇 외국인들은 이들이 종교교리나 의식,교육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헌법은 “종교목적을 위해 사원을 지을 수 있다”고 하지만 종교활동을 허용하는 불교사원은 없다.2개의 개신교와 1개의 가톨릭 성당이 88년이후 평양에 문을 열었다.많은 방문자들은 활동이 연출됐다고 본다.당국의 사전 절차없이 이곳을 찾았던 외국 신자들은 심지어 부활절에도 문이 잠기거나 텅비어있음을 발견했다.그 중 몇명은 안에 들어가 봤으나 좌석이나 성경,찬송가집에 쌓인 먼지로 보아 사용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고 지적했다.당국은북한에 한곳의 신학교가 있으며 한해에 6∼9명을 선발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정권이 용인할 수 없다고 간주한 종교관행에 종사하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반대자들을 혹독하게 처리하고 있다.미 의회에 증언한 증인은 북한에 신앙 때문에 투옥된 사람이 있고 당국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가르쳐신을 믿는 이들은 미친사람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 BBC보도 네덜란드女기자 동티모르 수도 딜리 취재기

    영국 BBC방송은 네덜란드 여기자 이레네 슬렉트가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송고해온 현장 취재기를 7일 보도했다.슬렉트기자는 딜리 시내의 유엔 동티모르파견단(UNAMET)본부 건물에 피신해 있으면서 유엔파견단의 속수무책에분노를 나타냈다. [런던 BBC 연합] 지난 며칠 동안 끊이지 않는 총소리 때문에 제대로 잠을자지 못했다. 그동안 480명의 각국 언론인들이 동티모르에서 민병대들의 위협을 받고 철수했으며 이제 이곳에는 20명만 남아있다.UNAMET 주변 도처에서화재가 일어나고 있다. 민병대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불을 지른 뒤 우리가 도망가려 하면 사살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인도네시아인들이 딜리에 건설한 모든 건물과 사회간접자본들이 체계적으로 불에 타 사라지고 있다.대학과 정부기관등 모든 것이 불에 탔다.식량과 물이 부족하다.파견단 본부 건물 내에는 이제 이틀분의 식량과 식수만 남아있다.시내 역시 모두 민병대들에 의해 불타고 약탈당하고 있다.파견단 본부 건물에는 현재 약 2,000여명이 있으며 대부분 민병대의 공격을 피해들어온 사람들이다.동티모르 주민들은 그동안 교회나 성당에서 성직자들의 보호를 받아왔으나 최근 민병대들이 이들을 쫓아냈으며 대부분 동티모르 외부로 추방됐다. 나는 이곳에서 파견단의 처사에 분노하고 있다.다가올 상황을 보지 못했던파견단은 주민들에게 주민투표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티모르인들은 투표결과가 발표된 뒤부터 민병대들에 의한 진짜 폭력사태가 시작될 것임을 수개월 전부터 경고해왔다.그러나 유엔은 이같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동티모르인들은 외국 언론인 극소수라도 남아있는 것을 안도하고 있다.이곳 딜리에서만 약 5만명이 추방됐다.파견단은 동티모르 주민중 3분의 1이 이동중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이곳에 그대로 남겨져 학살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이들이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25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문규현신부)이 오는 26일 창립 25주년을맞아 다음달 4∼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번 행사는 민주화운동이 치열했던 지난 70∼80년대,사제단과 사회운동의역사와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짚어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관련 행사로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정리한 책인 ‘암흑속의 횃불’ 봉정식과심포지엄·문화공연·기념미사 등이 마련된다. 또 4일 오후2시 개막식이 끝난뒤 곧바로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김선태신부(전주신학원 부원장)가 ‘민족사 안에서의 사제단 25년’’십자가는 우리의 길’이란 주제로 각각 강연한다. ‘암흑속의 횃불’은 지난 94년 사제단 창립 20주년을 맞아 출범된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 가톨릭계에서 70∼80년대 펼친 민주화운동의 내용과일지, 성명성·발표문 등 자료를 연도별로 모은 책.현재 74∼85년까지를 6권으로 정리했는데 이번에 봉정된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선 ‘민족과 사회정의’를 주제로 함세웅신부(인간과 정의) 이이화교수(민족사안에서의 정의의 흐름) 김광식교수(오늘의 사회적 삶속에서의 정의)가 발제에 나선다. 문화공연은 ‘기억 결심 실천’이란 주제 아래 70∼80년대의 사제단관련 사건을 엮은 것.노래패의 공연과 영상·나레이션으로 구성된 1시간짜리 공연이다. 마지막 행사는 통일염원 기념미사.김인국 백남해 최종수 신부의 주례로 진행되며 이 시대 사제들이 지켜야 할 소명과 다짐을 천명한 사제헌장이 낭독된다. 김성호기자
  • 명동을 세계인의 문화·예술 거리로

    명동과 남대문시장,북창동 등 서울 도심을 관광특구화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됐다. 중구(구청장 金東一)는 최근 ‘비전 중구 2020-장기발전계획’에 따른 명동,남대문시장,북창동 지역 개발안을 확정하고 서울시에 관광특구 지정을 신청했다고 2일 밝혔다. 구는 우선 명동을 문화예술이 살아숨쉬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명동성당을 축으로 주변에 시민광장과 노천극장 등을 갖추는 한편 외국인이 많이몰리는 점을 감안, 지하철 4호선 명동역 근처와 미도파백화점 근처 등 2곳에새로 면세점을 마련하기로 했다. 보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외환은행 본점 주변과 명동성당 뒤편을 지구촌먹거리와 한식먹거리로 조성하고 중국대사관 근처는‘리틀 차이나’로 꾸민다. 특히 항상 인파가 붐비는 명동거리를 고품격 패션거리,중저가 패션거리,액세서리 거리 등 블록별로 차별화하고 명동입구에서 명동성당까지를 축제의거리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긴 김밥만들기’ 등 거리 이벤트를 개최할계획이다. 세계 최대의 재래시장인 남대문시장의 관광명소화를 위해서는 숭례문입구∼신세계백화점∼퇴계로를 ‘워킹블록’으로 지정,노점상을 정비하는 한편 숭례문입구에 대형 아치와 안내판을 설치,관광객들이 사진촬영 및 쇼핑정보 이용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남대문시장도 우리 먹거리,아동의류지역,여성의류지역,수입상품·일용잡화·액세서리지역,종합상가지역,농수산물지역,문구류지역 등으로 세분화한다. 비즈니스 건물과 호텔이 밀집한 북창동 지역 역시 먹거리,워킹블록,숙박시설,지하상가 등으로 새롭게 정비된다.먹거리에 따라 전통음식거리,일본음식거리,중국음식거리,유흥음식거리 등으로 나누고 유흥음식거리에는 나이트바,재즈바,록바,가라오케 등 다양한 한국의 밤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할 방침이다.프라자호텔 뒤편∼남대문로3가와 소공로는 워킹블록으로 지정,교차점에 팔각정같은 전통 시설물을 세우고 세계음식박물관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구는 이밖에 이들 지역의 장급 여관들을 관광호텔로 개선,관광객들에게 중저가의 숙소를 제공하고 카지노 설치·운영도 검토하기로 했다. 구 관계자는 “서울시의 승인이 나오는대로 곧바로 단계별 실천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 하릴 다으 터키대사

    하릴 다으 주한 터키대사는 28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와한국민들이 터키 지진희생자에 보여준 성원에 깊이 감사한다”면서 피해복구와 재건에 한국 건설업체가 참여하기를 희망했다.그는 이와함께 무역역조와투자감소도 해소되기를 기대했다. -지진피해가 매우 큰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이번 지진의 피해는 경제적 가치로 따져 500억달러로 추산됩니다.이는 터키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것으로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지진에 큰 피해를 입은 북서부 지역은 산업의 중심지이자 광물,수자원의 보고입니다.때문에 인프라 복구가 매우 시급합니다.지금은 잔해제거에 주력할 뿐입니다.많은 사체가 깔려있어 전염명 발생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상자는 얼마나 됩니까. 현재까지 사망자가 1만8,000명,실종자가 3만명으로 결국 4만명이상이 숨질것으로 예상됩니다.20만명이 집을 잃어 텐트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외국 정부나 기업에 한 가족이 겨울을 날 수 있는 조립식 주택이나 대형텐트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복구는 얼마나 걸릴까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터키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신용연장을 요청했고 이들 국제금융기구도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복구재원 마련을 위해 ‘지진세’를 도입키로 했습니다.지금 미국,독일,노르웨이 등에서 인도적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한국도 정부가 7만달러,민간이 그 2배 이상을 내놓았습니다.25일 현재 1억6,0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다시 한번 한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에 사의를 표합니다. -복구와 재건사업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정부에서 어떤 사항도 결정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유수 건설업체가 복구사업에 참여한다면 대환영입니다. -이번에 희생자가 많았던 것은 기준미달의 자재사용과 날림공사,공사감독부재가 지적되고 있는데. 터키에서 리히터 지진계 규모 6.0∼6.5의 지진은 자주 발생합니다.북서부지역의 주택들은 이 정도 지진에 대한 내진설계가 돼있지요.문제는 지난번지진의 강도였습니다.규모 7.4이상의 지진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지요.물론어디나 마찬 가지로 값싼 자재로 사람을 속이려는 건축업자가 있고 모든 건물을 일일이 단속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터키 정부는 건축물 감독입법등 법적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성소피아 성당 등 터키의 문화유산이 상당한 피해를 입어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흥미롭게도 600년전에 지은 건축물들은 멀쩡합니다.일부 일부 건물의 돔과지붕에 약간의 금이 가거나 구멍이 생긴게 고작입니다.그러나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을 우려한 나머지 관광계획을 취소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고또 정부가 대형 호텔을 지진피해자 수용소로 사용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최근 터키정부는 IMF로부터 50억달러의 차관을 받는 대가로 개혁을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터키는 지난 20여년간 연평균 물가가 60%가 올랐으며,금리도 100%나 뛰었습니다.연간 200억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 탓이지요.정부는 부족한자금을 국내자본 시장에서 빌리다 보니 금리가 올랐고 경제가 나빠졌습니다. 터키 경제의 문제는 재정적자와 탈세입니다.따라서 재정긴축과 조세정책 강화를 통한 재정적자 축소가 긴요합니다. -쿠르드족에 대한 의견과 쿠르드족의 지도자 오잘란의 처리문제는. 쿠르드족은 전체인구에서 약 10%를 차지,26개 소수민족중 최대 집단입니다. 그들은 터키인과 평등합니다.그동안 쿠르드계족 대통령이 2명,총리가 6∼7명,장관과 장군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나왔습니다.550명의 의원중 절대 다수가 넘는 300명이 쿠르드계입니다.터키내에서 차별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보안법 위반죄로 체포된 오잘란은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며,사건은 현재 고등법원에 계류중입니다.고등법원이 원심을 확정하면 사건은 의회로 넘어가고 의회가 이를 승인하면 처형됩니다. 박희준기자 pnb@
  • 金대통령, 탄생100주년 기념미사 참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7일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열린 운석(雲石) 장면(張勉)박사 탄생 100주년 기념미사에서 고인에게 최고의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고 뜻을 기렸다.고 장면박사가 역사에 새롭게 자리매김한것이다. 김대통령은 훈장을 추서하면서 “장박사는 군사 쿠데타 세력의 세뇌작업으로 오랫동안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면서 “장박사의 위대함은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젊었을 때는 영예와 찬사를 받다가 사후에 엄중한 심판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생존 당시에는 비판받던 사람이 사후에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면서 “의인은 불멸”이라고 강조했다.이어 “5·16을 한 사람들은 ‘장면정권이 너무 유약하다.약한 정권이다.나라를 지탱할수 없다’는 식으로 쿠데타를 정당화했다”고 지적한 뒤 “내가 옆에서 본 장총리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실례로 민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과 실천의지,민주적 경선을 통한 총리 당선,지방자치 실시,소급입법 반대,야당인사를 포함한 연립내각 구성 등을 적시했다. 김대통령은 그러면서 “고 박순천(朴順天)여사가 지적했듯이 장면정권 출범 한달도 안돼 쿠데타세력이 충무로에서 정권전복을 모의한 사실이 5·16 혁명사에 들어있다”고 전하고 “한달도 안된 상태에서 어떻게 부패와 무능을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또 “무능한 정권이라면 어떻게 지방자치와 나라경제 바로잡기 5개년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당시신문은 장면정권이 부패했다고 보도했으나 재판결과 출장중 헌 냉장고를 받은 장관만 유죄판결을 받고,모두 무죄로 풀려났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장면박사는 위대한 인격과 경륜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건국의공로자”라며 “역사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지도자”라고 말했다.“한국의대통령으로서 훌륭한 지도자가 오랫동안 부당한 평가와 누명을 받던 것을 벗기고 건국의 어른으로 훈장을 수여하게 돼 기쁘다”고 추모사를 맺었다.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장박사를 복자나 성인으로 올리는운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인을 기렸다. 장박사의 아들 장익(張益)주교가 집전한 이날 미사에는 1,000여명의 교인들과 국민회의 김상현(金相賢)·이길재(李吉載),자민련 한영수(韓英洙),한나라당 한승수(韓昇洙)의원 등이 참석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70代할머니 ‘황혼이혼’ 쟁취

    가부장적인 남편에게 억압받으며 40년간 살아온 70대 할머니가 90대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마침내 승소했다. 서울고법 특별8부(재판장 黃仁行부장판사)는 25일 A씨(71·여)가 남편 B씨(91)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피고는 원고와 이혼하라”며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6·25 때 남편을 잃고 외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던 A씨(당시 29세)는 57년북에 가족을 두고 혼자 월남한 B씨(당시 49세)를 만나 새 가정을 꾸렸다.그러나 독선적이고 봉건적인 A씨는 신혼 때부터 B씨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강요했고 사소한 잘못에도 일일이 잔소리를 했다. B씨는 의처증 증세까지 보여 A씨의 외출도 통제했다.지난 92년 남편의 억압과 통제에 지친 A씨가 성당을 찾자 B씨는 “신부와 이상한 관계 아니냐”며성당도 못가게 했다. 지난 94년 B씨는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는 이유로 A씨를 집에서 내쫓았다.A씨는 지난 95년 이혼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파탄에 이를 상황은 아니다”라며 이를 기각했다.그뒤로도 B씨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B씨는 A씨와 상의없이 자신이 쓸 돈만 남기고 지난 97년 한 대학에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부해 버렸다. 참다못한 A씨는 지난해 남편 B씨를 상대로 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심을 깨고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5,000만원과 재산분할로 8억여원을 지급하라”고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32회)-’미친 새’(상)

    ◆ 박양호의 우화소설 '미친 새'(상) 유신통치 시기의 민주화운동은 편의상 긴급조치 1호(1974년 1월8일 선포.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 비판 금지 및 유언비어 금지),4호(4월3일 선포.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관련 활동 금지) 시대를 그 전반기로 구분할 수 있다.1·4호에 의한 구속자들이 대폭 석방된 1975년 2월15일 직후인 5월13일 박정희 전대통령은 긴급조치 9호(유신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개정 및폐기를 주장하거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 일체 금지)를 선포하여 독재권력의 마지막 유지에 매달리고 있었는데,이후를 긴급조치 9호 시기,즉 유신통치 후반기로 볼 수 있다. 이미 독재의 고삐가 풀어져 가던 1976년 3월1일,윤보선·김대중·함석헌·함세웅 등 20명이 명동성당에서 ‘민주구국 선언문’을 전격 발표하여 구속된 것은 그로부터 열흘 뒤인 3월10일이었다.이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세계적 지평으로 떠올라 고조되고 있었다.그러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지식인·언론에 의한 박대통령과 유신통치의 찬양 논조가 늘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명동성당의 3·1구국사건을 “시대착오적인 반국가적 파괴음모”라고 맹비난을퍼부었던 당시의 주요 신문 사설이나, 유신통치를 “민족주체 사상”이라고추켜 세웠던 모모한 어용교수들의 글은 역사의 영원한 반사교훈으로 남을 것이다(자세한 사항은 김삼웅 ‘곡필로 본 해방 50년’ 참고). 바로 이 어수선한 시절에 작가 박양호는 중앙대 예술대학 강사로 나가는 한편 열심히 창작에 전념하며 지냈다.그는 인간이 생존 조건의 변화에 대하여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심있게 추구하던 중 ‘생각하는 개’란 우화소설을발표한 바 있다.항상 묶여있는 개와 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개의 우화는 인간의 자유 문제로 비약한다. 1977년 여름 밀양 표충사에 한 달 가량 머물면서 박양호는 다른 중편과 함께,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는 자유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소품 ‘미친 새’란 우화소설을 썼다.상경 즉시 그 원고는 ‘현대문학’에넘겨졌고,10월호(통상 9월 하순이면 발매)에 게재되어 독자들의 시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작가는 주변에서 뭔가 이상하게 조여오는 느낌이었다.호적상 본적지로 되어있는 동빙고동에서 약국을 하던 누님의 집 주변부터 형제들,그리고작가가 살고있던 남가좌동 주변과 강의를 나가는 대학에 이르기까지 철저한배후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경찰관을 지냈던 아버지여서 집안의 신원조회는그럭저럭 넘어간 듯 했으나 교우관계부터 여성문제, 돈 등 온갖 사항을 두루파고드는 낌새 속에서 작가는 일말의 불안에 싸였다. 마침 조치원의 한 친구에게 문상 갈 일이 생겨 옷과 돈을 여유있게 챙겨 나간 10월15일 그는 전격경찰에 연행당해 피신을 준비했다고 뜻밖의 추궁을 견뎌야만 했다. 어떤 필화사건도 그 첫 심문은 반국가적인 조직과의 연관 여부에 대한 추궁이다.박양호에게 집요하게 추궁한 것도 ‘미친 새’가 “너의 머리 속에서나온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인물과 접촉하여 이런 이야기를 쓰라고 해서쓴 것이냐”는 질문이었다.작가 나름대로의 진지한 문학론과 상관없이 수사기관에서는 이미 소설보다 더 긴 소설을 써두고 거기에 맞춰 나가는 것이 필화의 상례인데,박양호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절차와 수순에 따라 박양호는 적당히 얻어맞으며 인격적인 모독을 열흘 동안이나 견뎌야 했는데,경찰 유치장 기록에서는 그를 ‘특수절도’죄로 분류하고 있었다.취재진이나 외부인에게 긴급조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조처였다.10월25일 구속영장이 떨어져 서대문 구치소로 옮겨진 박양호는 그 당시로서는 실로 운좋게 한 달만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김삼웅 칼럼] 단군에 관한 무지 또는 편견

    지난 7월초 경기도 일원의 초등학교에 세워놓은 단군(檀君)좌상의 목이 잘려나간 사건을 계기로 ‘단군논쟁’이 학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있다. 단군논쟁의 핵심은 실존인물이냐 신화 또는 설화냐,국조(國祖)냐 특정종교또는 우상이냐,민족사관이냐 식민사관 또는 왜곡이냐를 둘러싸고 끝없는 논쟁이 가능하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세계 어느나라건 건국신화가 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단군신화’는 전통있는 민족국가임을 자부하게 하고 ‘국조단군’은 한겨레 한핏줄의 동포의식을 일깨우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민족이 외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때 단군의 국조론이 제기되면서 민중의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단군이 역사적 실체로 등장한 이래 조선조 청나라 지배시대,한말과 일제치하에서 단군에 관한 연구와 관심이 절정을 이루었다. 민중은 국조 또는건국신화의 단군을 통해 민족적 일체감을 형성하고 국난극복의 구심체로 삼고자 하였다. 일제가 합병후 단군관련 서적을 압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우국지사들은 더욱 은밀하게 책을 출판하면서 ‘단군의 후예’라는 일체감을 심고자 했다. 2년전 한 여론조사는 “국민의 70%가 통일후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구심적 복원에 단군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다종교국가이면서도 그동안 종교 사이에 큰 대립이나 갈등을 빚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단군상 훼손 뿐만 아니라 타종교의 상징물을 훼손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고 있다. 광신도들이 불상을 훼손하고 성당에 방화도서슴지 않았다. 민족문화의 하나인 장승의 수난도 이어졌다. 편협한 신앙이빚은 불미스런 행동이다. 단군을 우상숭배라고 비판하는 것은 종교계의 해묵은 논란거리이지만 자칫하면 이것이 종교간의 불화와 분쟁의 불씨로 번질 소지도 없지 않아 우려된다. 단군의 실체를 ‘신화’로 격하시킨 것은 일본 어용사학자들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22년 훈령 제64호를 통해 조선사편수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우리 역사의 왜곡 날조를 일삼았다. 단군을 신화로 만들고 조선사의 첫머리를 한사군에서 시작함으로써 단군과 단군조선의 역사를 삭제하여 일본의 역사와 대등하게 연조(年條)를 조작했다. 심지어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단군신화가 불가의 승려나 무격참위가(巫覡讖緯家)들이 날조한 이야기라면서 신화가 아닌 전설이라고 격하시켰다. 그는 ‘삼국유사’ 정덕본을 영인하면서 ‘단군고기(檀君古記)’에 나오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바꿔서 출간했다.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다”는 내용을 ‘환인’으로 바꿔서,고조선의 존재를없애고 환인과 환웅을 신화적·전설적 존재로 둔갑시킨 것이다. 단군의 실체(또는 신화)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유사한 ‘물적 자료’가 남아 있어서 전문가들을 놀라게 한다.중국 산동성가상현의 자운산에 위치한 무씨사(武氏詞) 석실의 화상석(畵像石)이 단군신화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화상석의 그림은 구름을 사이에 두고 하늘 위의 날개 달린 인물들이 땅위에 하강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천부인(天符印)이나 삼위태백(三危太伯) 등은 중국판 단군신화라는 것이다. 일본 구주대학 나카노 하다모시 박사는 ‘단군신화와 일본고대종교’란 논문에서 “일본 고대신앙의 구석구석에서 단군신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면서 “일본의 민속 신도(神道)인 수험도(修驗道)에는 현재까지도 단군신화의 요소가 상당히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카노는 수험도의 문헌에 나오는 ‘환웅’‘백산(白山)’ 등의 표현을 예로 들었다. 단군에 대한 역사적 연구나 평가와 ‘단군신앙’은 별개의 문제다. 10월 3일을 개천의 국경일로 삼고 기리는 나라에서 일부 종교인들이 단군을 우상숭배라고 배척하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무지이거나 편견이다.국가가 위난일 때이면 국조로서 받들어지고 평시에는 고대의 역사로 탐구되어온 ‘단군’을일부 종교인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여 다른 종교인들이 이를 배척한다면 다종교 국가의 평화공존을 깨뜨리는 것은 물론 민족적 구심체를 훼손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 도쿄납치 생환 26주년 기념미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3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도쿄납치 생환 26주년기념미사를 가졌다.미사에는 직계가족과 미사를 집전한 안병철신부만이 참석했다.지난해 생환 25주년 행사 때 청와대 인근 성당에서 많은 지인(知人)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미사를 갖고 동교동 기자회견 등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전 등이 개최됐던 것에 비하면 무척 조촐했다. 김대통령은 자신과 관계된 많은 날 가운데 이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있다.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왔다는 ‘기적’의 측면도 있지만,40대 이후 점철된 반독재 투쟁의 신호이자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올해 도쿄납치 당시 집권자였던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과 화해했다.그의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을 지원할 뜻도 밝혔다.용서와화해의 정신으로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려는 김대통령의 구상도 이날 생환행사를 가족과 함께 조촐하게 가진 이유중 하나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石致淳 前위원장 실형-서울지하철 파업주도 혐의

    서울지법 형사12단독 이민걸(李敏杰) 판사는 13일 서울 지하철 노조의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을 구형받은 서울지하철노조 전 위원장 석치순(石致淳·42) 피고인과 전 역무지부장 박정규 피고인에게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전 부위원장 구덕회 피고인 등 노조간부 9명에 대해서는 각각징역 10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시민의 발인 지하철의 파업을 주도해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그러나 경제한파 속의 국가적인 구조조정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지하철 노조의대표로서 파업한 점을 감안해 가급적 선처했다”고 밝혔다. 석 피고인 등은 지난 4월19일부터 8일간 서울 지하철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체포영장이 발부됐으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40여일간 농성을 벌이다 지난 6월 경찰에 자진출두,구속기소됐다. 이상록기자 myzo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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