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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윤환씨

    대한성공회는 25일 서울 정동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전국의회를 열어 의장주교(구 대주교)에 윤환(尹煥) 대전교구 주교를 선임했다. 대한성공회는 이날 회의에서 종전의 대주교란 호칭을 의장주교로 바꾸기로했으며 의장주교는 선임주교가 맡되 임기는 교구장 주교의 임기로 하는 것을골자로 하는 헌장과 법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성공회는 개정된 성공회 법규에서 10년간 봉직한 성직자에게는 1년간의 안식년을 보장해줄 것을 명시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주한미군문제 각계인사 200인 시국선언문

    종교계,여성계,학계,언론계,시민단체 등 각계 인사들은 2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한미군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종교인사 200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주한미군의 역사적 과오와 범죄에 대한 미국의 공개 사과,미군의 양민학살 진상 규명 및 피해배상,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행정협정개정,매향리 사격장 즉각 폐쇄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 정부는 점차 높아가는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어디서 연유하는가를 헤아려 국민들의 투쟁에 함께 하기를 촉구하며,정상회담 이전에 주한미군관련 당면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시국선언문 서명에는 한완상(韓完相) 전통일부총리,강만길(姜萬吉) 고려대명예교수,김승훈(金勝勳)신부,지은희(池銀姬) 여성단체연합 대표,오충일(吳忠一)목사 등이 참여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와히드의 印尼’ 8월 위기설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거듭된 실정으로 오는 8월 대통령직을 중도하차할지도 모른다는 ‘8월 위기설’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수하르토 정권이 반대인사 탄압에 동원했던 반공법을 폐지,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정권 균열에 불을 지폈다.그러자 공동정권내 친이슬람계 정당들이 비판적 입장을 천명하고 나섰다. 특히 지난해 6월 총선에서 1,2위를 기록한 민주투쟁당(PDIP)과 골카르당 출신의 장관 2명을 전격 해임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양대 정당은 와히드 대통령이 사전에 아무런 상의도 없이 자파 인사를 교체한데 대해 크게 반발,공동정부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또한 국민각성당(PKB) 출신의 와히드 대통령이 다른 정파들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데는 최근 무장독립세력인 자유아체운동(GAM)과 체결한 평화협정도 한몫했다.정치권은 와히드 대통령이 의견수렴도 없이 밀실에서 협정체결을 결정한 것을 집중 성토했다.특히 협정체결 뒤 아체에서 보안요원과 반군간 총격전이 격화돼 말루쿠 주도 암본에서 종교분쟁이 발생,15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도 와히드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집권초기 최대 우군이었던 언론들도 가세,최근 와히드 대통령의 친동생이금융구조조정청(IBRA) 요직에 임명된 것을 비판한데 이어 친인척과 측근 인사들의 도덕성 문제까지 제기하고 나섰다.수하르토 일가에 대한 사법처리가답보상태에 있는 것도 와히비 대통령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와히드 대통령의 도중하차설은 경제난 및 유혈분쟁 해결,치안회복,수하르토 일가에 대한 사법처리 등이 오는 8월까지 얼마나 진척되느냐 여부에따라 진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한센병, 국가차원 전문의료진 확보 시급

    ‘병만 있고 대책이 없다’ 흔히 나병으로 불리는 한센병이 해마다 30∼40여명의 신환자가 발생하는 엄연한 법정 전염병인데도 기본 연구체계는 물론 환자관리에 허점을 드러내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특히 전염병은 근절이 힘든 데다 언제든지 재발이 우려되는 데도 정부와 국내 의료계는 단순히 환자 수 감소에만 만족,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어서 자칫대규모 환자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거의 박멸된 것으로 인식됐던 말라리아는 2∼3년전부터 해마다 2,000∼3,000명의 환자가 다시 발생하고 있고 요충환자 발생도 급격히 늘고 있음을 볼 때 한센병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97년 현재 국내 한센병 등록자는 2만명.일본 6,200명,미국 6,500명에비하면 엄청난 수준이다.물론 신규등록환자는 1969년 1,891명에서 97년 34명으로 지난 30년간 22분의1로 감소했다.그러나 인구비례로 볼때 우리 인구 4,600만명중 신환자 34명은 일본 1억2,000만에 20명,미국 2억6,000만명에 175명에 비하면 거의 후진국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정부와 국내 의료계는 수수방관이다.현재 국립소록도병원과 성라자로마을,구라선교회예수의원,여수애양재활병원을 포함해 13곳에서환자들을 치료,혹은 수용하고 있지만 이들 시설에는 전문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대부분이 외래진료나 단순 수용,형식적인 진료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전문의료진에 의한 치료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연구와 지원이 전무하다는 것이다.현재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연구소는 가톨릭의대에 설치된 한센병연구소가 고작.이곳에서 전임강사급 전문가 2∼3명이 전국의 한센병 진단을 도맡고 있다.일본은 ‘아시아의 한센병을 근절하겠다’는 목표아래 국립 13개,민간 7개등 20여개의 전문 연구소가 활동중이며 모두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있다. 의과대학 강의만 보더라도 한센병관련 커리큘럼은 단 한군데도 없고 피부과나 병리학 미생물학에서 부수적인 강의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여기에 나병진단과 치료를 위한 시약도 현재 한센병연구소에서만 만들고 있어최악의 경우 실험용 나균이 바닥날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전문가 확보와 지원이 필요하다고입을 모은다. 대학의 고급인력과 전국 각 지역의 진료 연구단체를 연계해 상설 연구체계를 갖추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지금처럼 국가가 약을 사서 진료·수용시설에 제공,투약하는 수준으론 5∼10년뒤큰 위험을 맞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가톨릭의대 한센병연구소 채규태(蔡奎泰)소장은 “한센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거의 완치에 가까운 효과를 볼 수 있는 데도 많은 한센병 관련 시설이 단순 투약차원에 머물고 있어 환자가 확산될 우려가 있는 만큼 국가지원아래전국적인 차원의 전문가 그룹과 유기적인 진료체계가 시급한 실정”이라면서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김성호기자 kimus@. *성라자로마을은 어떤 곳. 다음달 2일 설립 50주년을 맞는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모락산 기슭의 성라자로마을은 국내 천주교계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나환우(癩患友) 시설.전국어디에서나 나환자가 쉽게 눈에 띄었던 1950년 6월 2일 미국 메리놀회 선교사인 조지 캐롤 안 주교가 천대받는 나환우를 위해 만든 뒤 지난 50년간 나환우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오며 세계적인 복지시설로 자리잡았다. 성라자로마을은 비단 의지할 곳 없는 나환우들을 수용하고 치유하는 데 머물지 않고 치유된 사람들의 사회복귀까지 도와주고 있는 복지시설.현재 나환우 110명과 나병이 치유된 정착민 200여명이 김화태 원장 신부와 6명의 수녀,20여명의 직원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렵게 유지해가던 성라자로마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는 이경재(李庚載·98년 작고) 신부의 공이 크다. 1952년 3월부터 2년간 초대원장을 지내다 미국으로 갔던 이 신부는 성라자로 마을의 운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70년 귀국,세상을 떠날 때까지28년간 헌신하며 성라자로마을을 나환자들의 보금자리로 일구어냈다.그가 결성한 ‘라자로돕기회’는 현재 회원수만 2만명에 달하며 이 모임은 지난 91년부터 자선음악회 ‘그대있음에’를 해마다 열어 그 수익금으로 다른 나환우 복지시설도 돕고있다. 지난 16일에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어김없이 제18회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성라자로마을은 6월3일 마을안 성당 앞에서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가운데 5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이경재 신부 기념관 준공식을 갖고 50주년 연혁 등의 기념문건도 배포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 [유형준의 노화학 교실](1)장수촌의 허상

    장수촌은 있는가? 오래 사는 사람,오래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은 흥미와 의학적 연구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그래서 러시아의 코카사스,서부파키스탄의 카타코담 산중의 훈자(Hunza),안데스 산맥의 빌카밤바 등이 대표적 장수마을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70년 하버드대 의대의 알렉산더 리프교수는 그곳들 중의 하나인 에콰도르의 빌카밤바를 찾았다.주민들은 스페인어를 썼고 가톨릭을 믿고 있었다.가톨릭을 믿는 곳이라 세례와 관련된 기록들이 보관돼 있어 그들의 나이는 정확하리라 믿었다.그곳에서 리프교수는 미구엘 카르피오라는 121세 남자를 만나경이를 느꼈다. 그러나 4년 뒤 1974년 다시 그곳을 방문해 미구엘 카르피오를 재상봉하고는 장수촌 빌카밤바의 나이 매기기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1970년에 121세였던 카르피오가 4년만에 132세로 돼있었던 것이다.4년만에 11세가 늘다니. 리프교수는 미카엘라 쿠에즈다라는 106세 여자도 만났다. 성당의 기록에는1870년생으로 돼 있었다. 1974년에 만났을때 106세라니 약간 차이가있지만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 가족들의 이름과 나이를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겼다.그녀의 사촌 언니의 이름도 미카엘라 쿠에즈다였던 것이다.동일명을 자주 쓰는 그들의 관습에 의해 그녀의 나이는 동명의 사촌 언니의 나이와 혼동돼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단편적인 사실로 생기기 시작한 리프 교수의 의문은 1961년부터시작된 에콰도르 통계청의 조사로 재확인됐다.총 819명의 주민중 9명이 100살이라는 빌카밤바 주민들을 조사한 결과 100세 이상은 한 명도 없었고 미구엘 카르피오도 사망할 당시 93세로 공식 판명되었다.물론 빌카밤바는 60세이상 노인비율이 11.6%로 에콰도르의 다른 전원 지역의 4.5%보다 높지만 빌카밤바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나가 일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별로 비상한 연령 분포는 아니었다. 통계조사에 참여했던 마제스박사와 포먼박사는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었다. ‘빌카밤바에는 장수촌의 허상만이 있다.’ 왜 그렇게 나이를 늘려 말하는 지 여러가지 이유를 대고 있으나 아직은정설이 없다. 유형준 한림대의대부속 한강성심병원 내과학.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오늘 80회 생일

    세계 가톨릭 교계의 수장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8일 80회 생일을 맞는다. 교황의 80회 생일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3,000여명의 사제들이 교황과 함께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며 교황의 모국인 폴란드에서 온 수천명의 순례자들도 미사에 참석,그의 장수를 기원할 예정이다.이번 미사에는특별히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담당한다. 바티칸의 공식 일간지인 ‘오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교황의 생일을 맞아 특별판을 발행하며 바티칸시티 우체국 직원들은 수천통의 축하 우편물 분류를위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교황의 고향인 폴란드의 바도비체에서도 축하 음악회와 종교행사를 마련,벌써부터 한창 들떠있다. 교황과 오랜 친구인 장-마리 뤼스티제 파리 대주교는 “운동선수 출신인 교황이 점점 육신의 포로가 돼 가고 있지만 80세를 맞는 사람으로서는 비범한기억력과 정신적인 강건함,지적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뤼스티제 대주교는 “신이 그에게 부여한 사명을 면해주지 않는 의욕적이며 신실하게 사명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티칸시티·바르샤바 AFP DPA 연합
  • “청소년들 주말엔 명동으로”

    이번 주말부터 이달 말까지 매주 토요일 서울시내 명동거리에서 ‘청소년문화축제마당’이 펼쳐진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서울YMCA,서울가톨릭청년회 등 3개 단체는 13·20·27일 명동 일대에서 다양한 행사와 볼거리,놀거리로 구성되는 청소년 거리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행사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유네스코회관 앞 길거리축제를 시작으로 밤까지 명동일대에서 벼룩시장,패션쇼,마임·연극 등 문화공연,초상화 그려주기,탈춤,풍물패 공연,청소년 밴드,거리방송제 등 다양하게 펼쳐진다. 또 행사기간중 명동거리를 ‘국제청소년의 거리’로 선포해 국내에 있는 외국 청소년들이 한국 청소년들과 함께 어울리는 행사를 마련하고 27일에는 서울시 후원으로 유네스코회관에서 ‘서울청소년교류문화센터’가 개관된다. 이밖에 명동성당 앞 계단에서 강지원 청소년보호위원장과의 만남(13일),김수환 추기경과의 만남(20일),청소년 스타와의 만남(27일) 등 대화의 장도 마련된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외언내언] 북한의 釋誕節

    불기 2544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남한의 전국사찰에서는 각종 불교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특히 올해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법회를비롯해 남북한 불교인 교류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어 어느때보다 석가탄신일의 의미를 더해주는 듯싶다.북한에서도 해마다 불교의 4대명절 가운데 하나인 석가모니 탄신일 석탄절(음력 4월8일)에 법회가 열리고 있다.북한의 석탄절 행사는 지난 88년 묘향산 보현사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광법사 등 북한각지에 있는 60여개 사찰에서 열린다. 묘향산에 위치한 보현사는 북한에서 가장 큰 사찰이며 이 사찰에 설치돼 있는 장경고에는 팔만대장경 목판본이 보존돼 있다.평양에 있는 광림사는 조선불교도연맹 본부가 있는 곳으로 북한 불교의 본산이다.북한은 올 석탄절을앞두고 각지 사찰에 연등을 달고 봉축행사를 준비했다.연등에는 ‘김일성주석 영생기원’을 비롯해 ‘영생’,‘강성대국’,‘결사옹위’등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을 새긴 것이 많다.북한 불교는 승려 2,000여명,신도는 10여만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승려는 대처승으로 머리를 기르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이 펴낸 철학사전에 의하면 ‘종교는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의 수중에 장악되어 인민을 기만하고 착취하기 위한 사상적 도구’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은 정부수립 이후 종교를 사회주의 사상을 마비시키는 아편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탄압하고 말살하는 종교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에 북한에서의 진정한 종교의 자유와 종교행위는 보장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그러나1980년대 들어와서 북한은 전향적 종교정책을 펴게 된다. 1989년 평양에 봉수교회,칠곡교회,장충동성당이 건축됐고 광법사와 보현사가 재건되면서 제한적이고 관제적이지만 공식적으로 종교의식을 허용했다.구약·신약성서와 한글 팔만대장경,반야심경등이 출판되기도 하였다.그리고 북한은 1992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제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종교인들의 해외활동및 남북종교인들의 접촉과교류가 이루어지게 됐다. 북한이 종교의식을 40여년만에 재개하고전향적인 종교정책을 추진하게 된배경은 무엇보다 ‘종교가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다.석가탄신일을 맞아 우리가 기원하는 것은 불교의 자비를 통해 남북 불교신도들이 하나되고 화합하여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하기 바란다.2,000년 동안 민족종교로 자리잡아온불교를 통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의 기틀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張淸洙논설위원 csj@
  • [기고] 최루탄 냄새 없는 거리

    수년전까지 우리는 최루탄가스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 거리가 될수 있는 날을 먼 훗날의 일처럼 생각한 적이 있다.그러나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서울시내에서 한발의 최루탄도 사용치 않았다는 것을 아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작년말 서울역 앞 민중대회의 쇠파이프, 각목이 난무하는 폭력시위가 일어났을 때 무최루탄 진압이 시험대에 올랐었다. 그러나 경찰은 일관되게 다시 최루탄과 화염병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무최루탄원칙’을 지켜왔으나 지난 1일 고대앞 시위에서 화염병이 등장한이후 시민,경찰 나아가 집회 참가자 모두가 정말 앞으로 최루탄 사용없는 평화적 집회가 계속될 수 있을는지 걱정스러워 하고 있어 당일 시위현장에 나갔던 경찰 기동대장으로서 다시는 이러한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몇가지 제언한다. 최근 경찰은 최우선 개혁과제로 신집회 관리대책을 선정,합법적 시위는 보호해줘야 한다는 정신하에 무최루탄 원칙과 여경의 시위현장 투입및 폴리스라인 설치,군중자극을 않기 위한 진압경찰의 비노출 대기,무조건 불허했던행진시 차도 허용과 임시 횡단보도의 설치를 허용하는 등 시민들의 항의가있음에도 시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어 어느 정도 신집회문화가 정착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내 언론은 물론 CNN,홍콩 등 외국언론에서 폭력시위로 얼룩졌던한국의 시위문화를 바꾸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민중집회때도 집회 인원규모에 비해 더 넓은 서울역을 집회장소로 승인하고 도심지의 오후 교통대란을 예상하면서도 명동성당까지의 행진시 차선허용 등 시민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할수 있는 경찰조치는 다 허용해주었다.그러나 평화적 집회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번 5·1집회도 전날부터 종로일대에서 차선 불법검거 등으로 많은 시민에게 불편을 주었다. 경찰이 미리 신고된 집회나 행진코스를 방해하고 먼저 폭력을 행사했는지집회 참가자들에게 묻고 싶다.혹자는 경찰이 먼저 폭력을 행사해 시위자들이이에 대항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위과정은 취재기자들이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보았다.앞으로 이런 대규모 집회시 공권력이먼저폭력을 행사하는지 시민단체 등에서 참가해 엄정히 판단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우리 경찰이 정말 인내하며 잘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특히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젊은 전·의경이 동원되다 보면 일탈하는 자도 있을수 있고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하지만다중의 힘으로 특정건물이나 지역을 검거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데 이를방관할 공권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어느 시대나 정부정책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은 있을수 있다.그리고 집단행동을 통해 알리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또 법에 보장되어 있다.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이다보면 사소한 마찰과 폭력도 일어날수 있다.그러나 이제는쇠파이프, 화염병 등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도로를 수시간 점거하는 행의는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공권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폭력시위만이 시민의 관심을 끌고 집회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폭력시위로 인해 당초의 목적이 변질될 때 얻는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고여론의 호응도 기대할수 없다는 것을 시위대들 모두 잘 알 것이다. 쇠파이프나 화염병을 든 시위자와 진압경찰의 대치 모습이 TV에 비칠 때 우리의 신 집회문화는 달성될 수 없다.다시 매캐한 최루 가스냄새가 거리에 나지 않기 위해 진압경찰도,시위대도 똑같이 인내가 필요하다. 배경환 총경 서울경찰청 1기동대장.
  • [外言內言] KNCC 석탄일 축하 메시지

    20여년전,조계종의 한 포교사(선진규씨)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서울의 대표적인 몇몇 교회에 축전을 보낸 일이 있다.그러나 그 축전은 어느 정신나간사람의 잠꼬대로 취급됐다.그 얼마 후,여주 신륵사 주지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주문에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쓴 현수막을 내 걸었다.아무도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는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지 박 모 스님의 객기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객기가 아니라 쾌거였다.그리고 그 쾌거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인천의 한 성당에서 불탄절 날 대문앞에 연등과 함께 ‘축 불탄’을내 걸었고 수유리 한신대학교 학생회는 교문에다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합니다’라고 크게 써 붙였다.그 때마다 이를 규탄하는 극성 신도들의 볼썽 사나운 해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미 빗장은 풀리기 시작했다.교회나 사찰단위의 작은 미담들은 종단이나 교단 차원의 성직자 상호방문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내일 불탄절을 맞아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기구인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기에 이르었다. 8일 김동완(金東完)총무가 발표한 축하 메시지는 “일체중생(一體衆生)에두두물물(頭頭物物)의 불심(佛心)이 깃들어 있다는 말씀처럼 새 천년,새로운세기의 첫번째 석탄일에 부처님의 자비가 온누리에 넘치기를 바란다”로 시작된다.메시지는 이어서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의 가르침이 지구화와 정보화의 흐름으로 인해 불확실성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궁극적인관심이 되고 공동의 선을 이뤄가는 초석이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동서와 남북이 화해와 평화를 만들어내고 정의와 평등을 통한 참 민주주의를 구현해내는 일에 다종교,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종교인들이먼저 화해와 평화를 이뤄 새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당부도 곁들였다. 마음을 열면 이웃집 부모님의 생신을 축하해 주듯 다른 종교의 성스러운 날을 축하해 줄 수 있으련만 지금까지 우리 종교계는 그렇지 못했다.그것은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도 했다.자연인 갑과 을은 친해질 수 있는데 신앙을 이유로 벽을 쌓는다면 또 하나의 분열이기 때문이다.지금도 타종교와 악수하는것을 환부역조(換父易祖)로 여기는 교조주의자들이 있다.그들에 의한 돌출사건이 가끔씩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민족의 큰 일을 앞두고 큰 어른들은 언제나 종파를 초월해 뭉쳤다.3·1운동 때 그랬고 민주화 운동 시절도 그랬다. 종교인들의 열린 마음이 동서화합과 남북화해를 앞당기는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 김재성 논성위원
  • 뉴욕대교구 존 오코너 추기경 사망

    [뉴욕 연합] 가톨릭 뉴욕대교구를 이끌며 보수계 신도들의 정신적 지주가돼온 존 오코너 추기경이 3일(현지시간) 성(聖) 패트릭성당의 숙소에서 사망했다.향년 80세. 오코너 추기경은 작년 8월 뇌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뒤 합병증에 시달려왔으며 최근 병세가 악화되면서 지난 3월초부터 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조지프 즈윌링 뉴욕대교구 대변인은 “그가 임종을 앞두고 신에 대한 큰 믿음을 갖고 기도로 시간을 보냈으며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우평온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발표했다. 1920년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한 그는 45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한국전당시인 52년 해군에 입대해 27년간 지도신부를 맡아 한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근무하며 해군 소장까지 진급한 뒤 79년 교황청에 의해 미군 주교에 서품됐다. 이후 필라델피아 스크랜튼의 주교를 거쳐 84년에 신도 240만명의 뉴욕대교구대주교에 임명됐으며 이듬해에 추기경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최측근 역할을 해온 그는 미국내에서 낙태와 피임,동성애에 반대하는 교황청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하며 가톨릭내 진보세력들과자주 충돌을 해왔다.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보인 그는 90년 낙태를 지지하는 가톨릭 정치인에 대한 파문을 권고해 논란을 초래하기도 했으며,특정 록 음악을듣는 것은 악마를 돕는 것이라고 주장해 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오코너 추기경이 지난 50년간 예사롭지 않은 인내를갖고 미 가톨릭의 필요에 이바지해 왔다”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 부활절 연합예배·미사 열려

    새 천년의 첫 부활절인 23일 서울 장충체육관과 명동성당 등 전국 곳곳에서 연합예배와 미사가 열렸다. 개신교계는 이날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포함한 전국 180여개 지역에서 동시에 예배를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고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교회일치를 기원했다. 천주교계도 이날 낮 12시 명동성당에서 정진석(鄭鎭奭)대주교의 집전으로부활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것을 비롯해 전국 교구별 미사를 갖고 남북 화해와 나눔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44개 교단 1만여명의 신도가 참석한 서울 장충체육관 연합예배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김영진(金泳鎭)국가조찬기도회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한국교회에 부활의 확신과 소망이 넘쳐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부활의 소망을 통해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우리나라는 진정으로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북한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는 남한 목회자 7명이 북한교회관계자들과 함께 분단후 첫 남북 합동예배를 올리기도 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중구 250억 건설사업 본격화

    중구(구청장 金東一)는 20일 올 한햇동안 250억여원의 예산을 투입,그동안16대 총선 등으로 늦춰졌던 각종 건설공사를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상사업은 모두 50건으로 이를 내용별로 보면 ▲도시계획 20건 132억2,000만원▲하수 12건 42억5,400만원▲도로정비 9건 66억4,800만원▲도로조명 6건7억3,000만원▲용역 3건 2억원 등이다. 중구는 특히 올해 말까지 금호터널 위에 새로 도로를 만들어 신당3동과 4동의 교통흐름을 이어주고,내년 3월에는 지하철 5·6호선 환승역인 청구역 주변 교차로의 폭을 현재의 15m에서 20∼22m로 넓히는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퇴계로3가에서 명보극장∼을지로3가∼청계천3가로 이어지는 돈화문로와 명보극장∼쌍용빌딩∼남대문세무서로 연결되는 마른내길 등 걷고싶은거리 조성공사도 적극 추진,다음달 공사를 발주할 방침이다. 또한 4대문안 역사·문화탐방로인 ‘명동길’(코스모스백화점∼명동성당)도이달 안에 공사를 발주해 9월 말까지는 마무리할 예정이다. 중구 관계자는 “관광특구 지정 이후 대대적인 도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각종 건설공사를 앞당겨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재순기자 fidelis@
  • 4·13 이후/ 총선연대 활동 功過·과제

    한국 정치사상 최초로 시민단체가 선거 국면에서 벌인 낙천·낙선운동은 ‘시민의 힘이 정치를 바꾼다’는 희망을 우리 사회에 안겨줬다. 총선연대가 3개월 동안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벌였던 낙선운동의성과와 한계를 짚어 본다. ◆성과 시민들이 낡은 정치에 대한 체념을 떨쳐 버리고 선거문화와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선거법 개정,공천반대,공천철회,낙선캠페인 등으로 운동의 고리를 이어온 총선연대는 정치권이 담합해 만든 ‘개악’선거법을 개선하는 데 큰 힘이 됐고 ‘시민 없는 시민 운동’을 극복하는 단초를 제시했다. 총선연대가 선정한 낙선대상자 86명 가운데 59명(68.6%)이 낙선했고 집중낙선대상자 22명 중 15명이 낙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낙선운동이 ‘찻잔속의폭풍’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특히 경합지역 집중 낙선대상자 9명 중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만 빼고 8명이 고배를 마신 것은 낙선운동의 파괴력을 보여줬다. ◆한계 정치개혁의 최대 화두인 지역감정은 총선연대가 넘기에는 너무나 높은벽이었다. 버스투어,농성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역감정에 도전했지만 특정 당파에결과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비춰진 낙선운동은 ‘음모론’,‘정권과의 유착설’을 낳았으며 일부 지역은 더욱 공고하게 지역주의로 뭉치는 결과를 초래했다.특히 영남지역에서는 낙선 대상자 35명 가운데 51%인 18명이 낙선했지만한나라당 낙선대상 후보 18명은 전원 당선됐다. 총선 사상 최저인 57.2%의 투표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개혁의 주체가되어야 할 20∼30대 젊은층의 투표율 저조도 총선연대가 넘지 못한 한계다. ◆과제 낙선운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진정한 정치개혁의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 각 시민 단체는 시민과 함께 하는 시민운동,지역주의 척결,젊은유권자의 정치 참여 유도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이와 관련,박주현(朴珠賢)변호사는 “시민단체가 낙천·낙선운동으로 정치권에 등장한 참신한 정치 세력과 연대,선거법과 정당법,국회법 개정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또“지역감정과 냉전 논리,보수 언론을 극복하는 것도 시민단체의 당면 과제”라고 덧붙였다. ◆총선연대 활동일지. ◆1·12 발족◆1·15 선거법 87조 개정운동 시작◆1·24 현역 국회의원 60명 등 제1차 공천 반대인사 명단 발표◆1·30 제1차 시민행동 국민주권의 날 선언대회◆2·2 원외 인사 등 2차 공천 반대인사 42명 명단 발표◆2·8 민주적 공천 가이드라인 제안◆2·15 검찰,총선연대 간부 등 소환 시작◆2·18 공천철회운동 시작.개정선거법 헌법소원 청구◆2·21 공천 철회대상 62명 명단 발표◆3·1 유권자 독립선언의 날 행사◆3·2∼6 명동 성당에서 ‘정치개혁 국민광장’ 펼침◆3·10 여야 3당 및 의원 45명 상대로 공천무효확인 소장 서울지법 남부지원에 제출◆3·20∼26 ‘유권자 약속 227만표 모으기’,전국 버스 투어 시작◆3·22 전국구 공천 가이드라인 발표◆3·27 탈루의혹 의원 14명 발표◆3·28 여야 4당 비례대표 공천자 20여명 공천철회 촉구◆4·3 낙선운동대상 86명 발표 ◆4·4 ‘맨투맨식’ 집중 낙선운동 돌입◆4·7 후보자 전과 공개◆4·11 수도권 ‘희망의 버스’ 낙선 투어◆4·12 유권자 투표지침 발표◆4·14 낙천·낙선운동 결산 기자회견이창구 이랑기자 window2@
  • 외국인 근로자 행복한 결혼 주선

    페루 출신 라파엘(31)은 경기도 부천의 조그만 박스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불법체류자.한국에 온 지 5개월밖에 안됐다.그의 ‘코리안 드림’은 3년전 한국에 외화벌이온 ‘착하고 예쁜’ 여자친구 지셀라와 결혼하고 행복한삶을 누리는 것. 그녀가 그리워 몸부림을 치다가 무작정 한국에 온 그는 3년의 공백을 메울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외국인 전문 케이블 아리랑TV(채널50)와 만났다.아리랑TV ‘해피 스테이션’팀은 두사람의 행복한 결혼식을 주선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아 16일 밤9시 안방에 전달한다. 해피 스테이션의 결혼식 주선은 출연료 때문에 이루어졌다.당초 제작팀은 ‘Dreams come true’란 코너를 통해 라파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로포즈까지만 방송에 내보내려 했다.이 코너는 외롭게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를 중심으로 그의 친구,직장동료,가족에게 띄우는 사연을 전하는 코너. 라파엘은 종이학을 100개 접고 같은 수의 장미 다발을 케이크 상자에 담아깜짝 프로포즈했다.지셀라는 “나를 찾아 이 먼곳에까지 오다니…”라며감격에 겨워 청혼을 받아들였다.그러나 라파엘의 신분 때문에 출연료를 지급할수 없다는 사실을 제작진은 알고 아예 부천의 한 성당에서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두 사람은 신부의 집에서 생활하며 돈을 많이 벌어 페루로 돌아갈 꿈을 꾸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라파엘은 “외국인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며 한국에 가는 것을 말리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제 많은 페루친구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며 좋아했다. 이 프로는 외국인들의 낯선 한국 체험담을 게임쇼 형식으로 펼치는 본격 버라이어티쇼.에릭(재미교포),마리아(러시아),크리스(페루),거드윈(나이지리아),상아이니(중국) 등 고정 게스트들의 눈을 통해 우리 문화에 담긴 독특한볼거리를 재발견하는 묘미도 있다.당초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삼았다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눈높이를 맞추었다.특히 자신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영상으로 띄우는 편지 형식의 ‘Sealed with a Kiss’에 주한 외국인들의 참여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
  • 총선연대 ‘유권자 호소문’ 발표

    지난 3개월 동안 낙천·낙선운동을 벌여온 총선연대는 총선을 하루 앞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의로운 한 표를 행사해 정치개혁을 이룩하자”고 촉구했다. 총선연대는 ‘당신의 한 표로 세상을 바꿀 때입니다’라는 제목의 ‘유권자호소문’을 통해 “행동하는 시민만이 행복한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고,정의로운 사람의 투표는 총탄보다 강하다”며 ‘깐깐한 유권자의 4·13 행동수칙’을 제시했다. 행동수칙은 ▲반드시 투표한다 ▲가족과 함께 투표장에 간다 ▲아침 일찍투표하고 나들이는 투표 후에 한다 ▲투표하는 것을 잊고 나갔을 경우에도오후 6시까지는 투표소에 가서 투표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투표하셨어요”라고 인사한다 등이다. 총선연대는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가 바른 후보인지 알 수 없을 때 올바른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불량후보’ 선별기준도 제시하고 해당 후보들을 엄중하게 표로 심판할 것을 당부했다. 불량후보 기준은 ▲헌정파괴,반인권 행위 가담 ▲부정부패 사건 연루 ▲지역감정 호소 ▲명분없는 당적 변경▲공약 남발 ▲허위학력 기재 등이다. 총선연대는 찍고 싶은 후보가 없을 때는 “전국구 후보 명단이나 정당을 보고 투표에 나서자”고 제안했다.한편 총선연대는 이날 오후 이같은 유권자행동수칙과 투표기준을 시민들에게 제시하며 서울 신촌 일대에서 댄스그룹구피,가수 이지훈,탤런트 김현주씨 등 연예인들과 함께 젊은층의 투표 참여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어 오후 7시부터는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 촛불집회’를 갖고 시민들의 한 표 행사를 당부했다. 이랑기자 ran
  • 총선 전날 대학가 움직임

    ‘이제 바꿔야 한다’-‘선택의 날’을 하루 앞둔 12일 대학가에서는 젊은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호소하는 다양한 행사와 집회가 열렸다. 개혁 성향 후보의 당선을 지지하는 결의대회와 각종 이벤트가 잇따랐고 자체 모의투표나 후보자 설문조사 등을 통한 대학생 총선참여 운동도 활발했다.젊은 층의 당당한 심판으로 유권자의 승리를 일궈내야 한다는 취지다.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일고 있는 투표 기권 조짐을 막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투표일인 13일 대성리·청평 등 유원지를 지나는 경춘선 열차는 예약만원사태로 객차량을 임시로 늘렸는데도 매진사례가 속출하는 실정이다. 고려대,서강대,한국외대,성균관대,이화여대,성신여대,항공대 등 7개 대학총선투쟁본부 소속 학생 500여명은 이날 오후 성균관대에서 진보정치 실현을 위한 청년학생 결의대회를 갖고 “진보성향 후보를 당선시켜 정치개혁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은 대회 직후 대학구내를 돌며 대학생의 투표참여를 호소했다. 총선투쟁본부 소속 대학생 200여명은 이날 저녁 서울 명동성당에서 총선 전야제 성격의 ‘시민·학생 한마당’행사를 가졌다.이들은 노래공연,영상물상영 등을 통해 젊은 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로 유권자 혁명을 실현할 것을당부했다. 연세대와 고려대 총학생회는 지난 10일부터 이틀 동안 소속 학생 788명을상대로 지지정당을 묻는 모의투표를 공동으로 실시,총선 투표 열기를 고조시켰다.연세대 총학생회는 모의투표 결과를 적은 유인물을 이날 학교 정문옆벽에 붙였다가 “선거운동기간중 여론조사 공개는 위법”이라며 철거를 권유하는 선관위 직원과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최정훈(崔庭熏·23·서강대 컴퓨터학과 3년)씨는 “총선시민연대가 낙천·낙선운동 등으로 젊은 층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에 대학생의 70∼80%는 투표를 할 것”이라면서 “이번 총선에서 묵은 정치권을 바꿔보려는 젊은이들의희망이 투표 결과에 조금이나마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택동기자 taecks@
  • 서울 선관위, 총선연대 고발키로

    서울시 선관위는 3일 총선연대의 낙선운동 가두캠페인과 관련,총선연대 최열(崔冽) 상임대표 등을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선관위는 총선연대가 이날 정동이벤트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낙선대상 후보 명단을 발표한 뒤 명동성당까지 가두행진을 함으로써 선거법 제105조(행렬 등의 금지)와 제255조(부정선거운동죄) 등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총선연대측이 선관위의 경고방송도 무시하고 확성기 장착차량을이용,가두연설을 한 것은 물론 ‘총선연대가 선정하는 낙선후보를 찍지 않는다’는 내용의 레드카드를 지닌 채 거리행진을 한 것은 선거법에 정면으로배치된다”고 말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민주 전국구 인선 안팎

    민주당이 28일 발표한 비례대표후보 인선은 직능과 지역의 적절한 조화속에30% 여성할당제의 반영과 당료출신 배려를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직능별 대표를 순번에 골고루 포진시킨 것이나 당선가능권인 20번 이내에영남출신을 9명이나 포함시킨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전국정당화를 위한 실천적 의지를 담았다는 해석이다.나아가 당선가능권에 호남출신을 한명도 배치하지 않은 한나라당과 비교된다.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전국구 인선과정에서 여성,직능,지역을 3대 핵심요소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정 대변인이 한나라당의 전국구 공천파동을 겨냥해 공세를 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성할당제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은 최상위 순번인 5번 이내에 최영희(崔榮熙)전 여성단체협의회장과 한명숙(韓明淑)전 여성단체연합대표가 배치됐다는점이다.여성계의 두 축인 여협과 여연의 대표성을 감안했다는 풀이다. 예상을 깨고 비교적 앞순위를 받은 김방림(金芳林)당연수원 부원장은 30여년간 야당 외길을 걸어온 여성당료란 점이 고려됐다. 당료 배려도 눈에띈다.당선안정권에 김방림 부원장과 조재환(趙在煥)사무부총장 2명이 배치된데 이어 모두 12명의 당료출신이 명단에 올랐다.민주당창당과정에서 영입인사들에게 밀려 소외되고,지역구 공천에서도 배려가 없었던데 대한 사기진작 조치로 이해된다.후보인선은 이날 아침 청와대 최종 재가과정에서 예비후보들의 전과와 납세,병역 등 후보자등록 신고사항을 검증한데 이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직접 순번을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남이 6명씩으로 가장 많고,전북 5명,강원·충남·전남 각 4명,경기·대구·이북5도 각 3명,충북·경북 각 2명,부산·광주·대전·제주 각 1명 등 고른 분포를 보였다.연령별로도 30대 4명,40대 11명,50대 17명,60대 12명,70대 1명,80대 1명 등으로 노·장·청 조화를 꾀했다.다만 의료계나 국제정치 및 외교분야 인사,민주당 창당과정에서 ‘α세력’으로 통했던 재야인사들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는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한종태기자 jthan@
  • 안중근의사 순국 90주기/ 安의사 의거와 ‘대한매일신보’

    구한말 구국항일지 ‘대한매일신보’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 다음날부터 관련기사를 대서특필,민족지로서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특히 안 의사의 사형언도일인 1910년 2월 14일을 전후해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공판내용을 보도했다.또 안 의사의 옥중소식이나 가족근황 등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보도한 것으로 나와 있다. 안 의사 의거 다음날인 10월 27일자 대한매일신보(한글판)는 하얼빈발 26일자 전보를 인용,이토가 하얼빈역에서 ‘한국사람’에게 총을 맞은 사실을 보도하였다.같은 날짜 ‘잡보’에서는 ‘조선일일신문’의 호외보도를 인용,이등박문이 26일 아침 암살당하였다고 보도하였다.11월 21일자에서는 일본 ‘대판조일(大阪朝日)신문’의 보도를 인용,안 의사가 예심에서 밝힌 이토를처단한 이유 15항을 실었는데 그 내용은 1.명성황후 살해 2.을사조약 체결,… 5.군대해산 등이다.이 해 12월 5일부터는 뤼순감옥에 수감중이던 안 의사의 동정을 변호인 등 면회자들의 입을 통해 ‘뤼순통신’이란 제목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1월 29일자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기사에서는 안 의사의 어머니 조(趙)마리아 여사가 “중근은 러일전쟁 이후로 줄곧 위국헌신 사상을 가지고있었으며 국채보상금 모집때도 아내의 패물을 기꺼이 내놓았다”며 아들을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두고 조 여사의 인간됨이 한국에서 드문 인물이라고보도하였다. 한편 안의사에 대한 재판이 본격 시작된 이듬해 2월부터는 공판내용을 연일지면의 절반 가량을 할애해 보도하기 시작했다.안 의사에게 ‘살인죄’로 사형이 언도된 14일을 전후해 12일자부터 대한매일신보는 10회에 걸쳐 이를 보도하였다.15일자에서는 안 의사가 최후변론에서 “나는 일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의군(義軍)의 참모중장으로 이 거사를 한 즉 의전(義戰)의 포로이니 보통 형사피고인으로 처리함은 불가하다”고 진술한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순국 하루전인 3월 25일자에는 안의사가 변호인을 통해 한국동포에게 보내는 유언을 실었다.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3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그 목적을달성치 못하고 여기서 죽노니 2천만 형제자매들은 분발하여 학문을 면려하고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나는 아무런유감이 없다” 이밖에도 대한매일신보는 안 의사가 옥중에서 작성한 편지 6통을 남긴 사실도 보도하였다.이 편지들은 안 의사가 사형언도 당일 어머니와 부인 앞으로쓴 2통과,홍(洪)신부,아우 명근(明根),민(閔)주교,숙부 등 4명 앞으로 쓴 4통 등 모두 6통이다.천주교 신자인 안 의사의 편지 첫머리는 모두 ‘야소(耶蘇,예수)를 찬미합니다’,‘아멘’ 등으로 시작하고 있다.특히 부인 앞으로보낸 편지에서 안 의사는 “이슬과도 같은 허망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배필이 되고 다시 주(主)의 명(命)으로 이에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멀지 않아 주의 은혜로 천당영복의 땅에서 영원(靈源)에 모이려 하오…장남 분도는신부가 되게 하려고 마음에 결정하였으니 잊지말고 천주께 바쳐 신부가 되게하시오”라고 부탁하였다. 한편 대한매일신보는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당일 이를호외로 보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실물은 전하지 않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安의사 유해발굴 70년대부터 추진. 우리 정부는 지난 77년부터 안의사의 유해 발굴작업을 추진해 왔으나 아직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중국과 수교 이전에는 현장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데다 그 이후도 중국이 북한을 의식,적극적인 협조를 보이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 유해발굴작업은 80년대 중반부터 정부차원에서 본격 추진됐다.86년12월 정부는 외무부(현 외교통상부)·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중국 당국에 협조요청을 한 바 있으며,88년에는 중국을 방문한 학자들을 통해 조사를 의뢰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89년 안의사 의거 80주년 기념 학술회의 참가차 당시보훈처 관계관이 뤼순감옥을 처음 답사했으나 묘소위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2년 뒤인 91년 중국지역 독립운동관련 사적지 답사차 방중한 학자 및 관계공무원 일행은 뤼순감옥 뒷편의 공동묘지가 모두 발굴된 후 일반건물이 들어섰으며,안 의사 묘소의 이장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특히 이들은 북한측에서도 수 차례 안 의사 묘소를 방문,조사를 벌였으나 묘소위치 확인에 실패하였다는 사실을 들었다. 92년 안 의사 유가족과 안의사숭모회 관계자 등이 현지 방문조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93년 8월 한중외무차관 회의시 우리정부는다시 협조요청을 하였으나 중국측은 묘소확인의 어려움과 안 의사가 북한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이 해 11월 정부는 광복50주년행사의 일환으로 범국민적 차원에서 일본내자료수집과 관련자 면담 등 다각적인 노력을 벌였으나 이 역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94년 방한한 중국 문화부 장관은 조사결과 근거자료가 없어 묘소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우리정부에 공식 전달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70년대 중반 김일성 주석의 특별지시와 중국당국의 특별협조를 얻어 뤼순감옥 기록 등을 검토하고 감옥 주변을 조사했으나 유해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의사 90주기 행사 참석을 위해 최근 방한한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손자인 안웅호(安雄浩·67·재미)씨는 방한기간중 안 의사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굴될 경우 안 의사 유해 진위확인에 필요한 DNA검사 등을 위한 혈액·머리카락 등의 채취에 참여할 계획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최근 도쿄에서 공개된 자료를 입수,검토하여 유익한 자료로 판단될 경우 정부차원에서도 묘소발굴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특별제언/ 安의사 유해 찾아 판문점에 모시자. 그날 중국 뤼순(旅順)은 흐린 날씨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찌 하늘인들천하 대장부, 만대 의사가 가는 길에 무심하겠는가. 안중근의사는 모친이 새로 지어 보낸 한복(상의는 백무지, 하의는 흑색)으로 갈아입고 얼굴에 희색을 띠며 형장으로 향했다.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달리 유언할 아무것도 없지만 원래 나의 거사는 오로지 동양평화를 위한성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바라건데 오늘 임검한 일본관헌도 행여 나의뜻을 양지한다면 피아의 구별없이 합심협력하여 동양평화를 기도하기를 절망(切望)할 뿐이다. 덧붙여 내 요망은 죽음을 앞두고 동양평화만세를 삼창하고싶다”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그의 마지막 소원도 거부하고 형을 집행했다. 교수형이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15분, 당시 안의사는 32세, 국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지 5개월 되는 날로서 생을 접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였다. 집행전날 면회온 두 동생이 슬퍼하자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꼭 죽는 법, 죽음을두려워할 내가 아니다. 삶은 꿈과 같고 죽음은 영면하는 것, 조금도 어려운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동생들을 달랬다. 사마천은 일찍이 사람은 한번 죽지만 그 의의는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고기러기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고 했다. 정의를 위한 죽음은 태산보다 중하지만 불의한 장수는 기러기털보다 가벼운 것, 안의사의 속령 32세를 어찌 짧다고 하겠는가. 안의사의 순국을 청국의 원세개(袁世凱)는 이렇게 찬양했다.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圖生非丈夫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 평생 벼르던 일 이제야 끝냈구나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아니고 몸은 한국출신이지만 이름 만방떨치니 백년못사는 인생 죽어 천년을 가리. 순국 5분후 안의사의 관은 백포(白布)에 쌓여 뤼순감옥 성당에 안치되어 우덕순·정도광·유동하 3동지에게만 마지막 예배를 시키고 오후1시 감옥묘지에 매장되었다. 안의사는 동생들에게 “유골은 하르빈공원묘지에 묻었다가국권회복 후 고국으로 반장하라”고 일렀다. 기록마다 ‘고국’또는 ‘고향’으로 표기가 다르다. 백암 박은식은 거사 후에 쓴 ‘안중근전’에서 ‘국권회복이 반장고토(國權回復而返葬故土)’라 하여 ‘고토’라고 표시했다. 안의사의 고향이 황해도신천인 관계로 북한이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어 유언의 내용은 중요한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디로’모시느냐가 아니라 유해를 찾는 작업이 급선무다. 유해를 찾게되면 판문점이나 휴전선에 남북함께 안의사기념관을 짓고 그곳에 봉안했다가 통일후 고향에 안장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건국이래 처음으로 안의사의 유해발굴문제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때마침 안의사 유골발굴위원회 도교(東京)사무국에서유해 매장장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어유해발굴 가능성을 높이고있다. 안의사 순국 90주년, ‘국권회복’55년만에 이제야 의사의 유해발굴에 나선것은 남북한 7천만 동포의 부끄러운 일이지만, 새천년 벽두에 남북이 함께참여하여 유해발굴이 성사된 다면 민족적 경사가 될것이다. 안의사는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형집행으로 완성하지 못하고 서론 부분만 집필했지만 그의 사상과 활동의 연관성을 어느정도 보여준다. 그는 동양평화를 실현하고 일본이 자존(自存)하는 길은 한국의 국권을 되돌려 주고 만주와 청나라에 대한 야욕을 버린 뒤 서로 독립한 3국이 동맹하여서양 세력의 침략을 막고 나아가 개화의 역(域)으로 진보하여 구주와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했다. 90년전 안의사의 주장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동양 3국은 ‘구주와 세계각국’과 더불어 세계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할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 통일되어 한·중·일의 ‘독립한 3국’이 정립하여 아시아 평화와공존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안의사 순국 90주년의 의미이며 그의 유지(遺志)이기도 하겠다. 김삼웅 주필 kim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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