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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바의 헤밍웨이/힐러리 헤밍웨이·칼린 브레넌 지음

    쿠바의 헤밍웨이 혹은 헤밍웨이의 쿠바. 바늘에 실 가듯,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를 이야기할 땐 으레 쿠바를 말하게 된다. 헤밍웨이는 비록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마흔 살이던 1939년 쿠바에 정착해 1960년까지 그곳을 터전삼아 생활하고 글을 썼다. 쿠바의 눈부신 바다는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안겨줬고 바다낚시는 강렬한 도전정신을 내뿜게 만들었다. 청새치를 낚아 올리며 상어와 싸운 경험과 쿠바 어민들의 얼굴에 새겨진 깊은 주름, 그리고 조용한 어촌 마을 코지마는 ‘노인과 바다’라는 위대한 작품을 낳게 한 핵심 동력이 됐다.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는 자신은 ‘쿠바인’으로서 이 상을 받은 것이라며 쿠바에 영광을 돌렸다. 쿠바는 그에게 진정한 고향이었던 셈이다. 헤밍웨이의 조카인 다큐멘터리 작가 힐러리 헤밍웨이와 국제헤밍웨이페스티벌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칼린 브레넌이 함께 쓴 ‘쿠바의 헤밍웨이’(황정아 옮김, 미디어2.0 펴냄)는 20세기 대표적인 소설가 헤밍웨이의 문학적 여정과 삶의 초상을 다룬다. 책은 아바나 항구에서 호텔 암보스 문도스, 산프란시스코 부두, 핀카 비히아 등 헤밍웨이의 삶의 흔적과 문학적 향기가 배어 있는 곳들을 짚어가며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을 작품으로 남겼는가를 살펴본다. 산프란시스코 부두에서 1마일쯤 떨어진 암보스 문도스 호텔은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맨 처음 머물렀던 곳이다. 헤밍웨이는 1932년부터 1939년까지 쿠바를 방문하는 동안 이 호텔에 머물렀다. 많은 이들은 헤밍웨이가 왜 카지노로 명성을 얻은 나시오날 호텔 같은 유명 호텔을 마다하고 이 곳에 묵었는지 의아하게 여긴다. 책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헤밍웨이는 자유로운 사생활을 즐겼고 옛 아바나의 중심부에 머물고 싶어했다. 암보스 문도스가 낚싯배를 정박시킨 부두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이 도시의 붉은 타일 지붕과 예수회가 지은 오래된 성당, 아바나 항의 입구와 등대, 엘모로 요새까지 아우르는 눈부신 전망 때문에도 헤밍웨이는 이 호텔을 즐겨 찾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자취를 좇는 여행의 정점은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지낼 때 살던 핀카 비히아다.‘망루(望樓)농장’이란 뜻을 지닌 이 무어풍의 아름다운 집은 그의 세번째 부인이자 종군기자였던 마사 겔혼과 결혼생활을 한 곳이기도 한다. 이 곳엔 9000권의 책이 꽂힌 헤밍웨이의 개인도서관과 더불어 동물 머리와 피카소의 황소 판화 등 예술작품까지 그대로 벽에 걸려 있다.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었다면 카스트로는 헤밍웨이에게서 혁명의 영감을 얻었다. 쿠바의 혁명가이자 대통령인 카스트로가 유일하게 존경한 미국인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헤밍웨이일 것이다. 카스트로는 1959년 헤밍웨이의 새치 낚시대회에서 단 한번 그를 만났지만, 그 만남은 카스트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카스트로는 이후 헤밍웨이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보인다. 그는 왜 그토록 헤밍웨이에 관심을 쏟았을까. 의문은 1992년 쿠바에 남아 있는 헤밍웨이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헤밍웨이 프로제트’ 발족 기념식 때 카스트로가 한 짧은 연설에서 비로소 풀린다.“그의 작품을 그저 소설이나 픽션으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나는 헤밍웨이를 읽으면서 역사를 배웠습니다.‘무기여 잘 있거라’는 역사입니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역사입니다.”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이 책이 여느 헤밍웨이 관련 책들과 좀 다른 것은 그와 가까웠던 조카 힐러리 헤밍웨이가 직접 자료를 찾고 글을 썼다는 점, 그리고 헤밍웨이 재단과 헤밍웨이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160장에 이르는 진귀한 흑백사진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세피아 톤으로 바랜 이 사진들은 텍스트에는 드러나지 않은 위대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게 한다. 헤밍웨이와 카스트로가 헤밍웨이의 낚시대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 친구 시드니 프랭클린이 지켜보는 가운데 헤밍웨이가 자신이 잡은 새치를 자랑하는 모습, 권투를 좋아한 헤밍웨이가 비미니 사람들에게 권투을 가르쳐 주는 모습, 헤밍웨이가 신성시했던 자신의 침실 창밖 케이폭나무와 책 근처에 놓아뒀던 부두 인형 등 흥미로운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98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한국 천주교 위상 높아졌다

    한국 천주교 위상 높아졌다

    한국에서 37년 만에 추기경이 새로 탄생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75) 대주교다. 이에 따라 한국은 1969년 추기경에 임명된 김수환(84) 추기경을 포함해 두 명의 추기경을 두게 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2일 즉위 이후 처음으로 새 추기경 15명의 명단을 전격 발표했으며 이 가운데 한국의 정진석 대주교가 포함됐다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이날 밝혔다. 새 추기경 후보로 정진석 대주교와 함께 이문희(71·대구대교구장) 대주교와 최창무(70·광주대교구장) 대주교가 거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주교는 올해 말 교구장 정년을 앞두고 있어 상대적으로 연령이 낮은 이문희 대주교와 최창무 대주교가 더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으나 결국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는 정 대주교로 낙착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교황청의 공식발표 후 서울대교구 주교관에 황인성 시민사회수석을 보내 축하 난을 전달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서울 명동성당에 들러 정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을 축하했으며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은 메시지를 발표,“두 번째 한국인 추기경이 임명된 것은 한국 가톨릭에 대한 신망이 두터움을 반영한 것”이라며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1931년 친·외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정 대주교는 천주교계에서 흔히 ‘교회법 학자’‘최연소 주교’로 불린다. 과묵하고 원만한 성격이지만 일처리에선 적극적이어서 ‘정중동(靜中動)’의 표상으로 통하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마르크스 사상을 접한 정 대주교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마르크스 유물론을 놓고 갈등을 겪었으나 이듬해 결국 사제의 길을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집안에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 채 1950년 서울대 공대에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이 터졌고 전란의 와중에 성신대(현 가톨릭대)에 들어갔다. 1961년 사제서품을 받고 1970년엔 39세의 나이로 최연소 주교서품을 받았다. 1996년 어머니가 안구기증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어머니의 두 눈을 꺼내는 수술 현장을 끝까지 지켜 마지막 효심을 다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1998년 김수환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될 때도 로마 교황청이 이같은 덕성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학구파’로도 이름이 높다. 교황청 우르바노대 출신으로 교회법에 정통해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취임한 뒤 ‘교회법해설’ 11권을 포함해 저서 22권, 번역서 13권을 낸 교회법의 최고 권위자다. 정 대주교는 다음달 25일 로마 교황청에서 열리는 추기경회의를 통해 공식 서임되며 80세 미만이기 때문에 교황 서거시 선거권·피선거권을 모두 갖게 된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중국인 출신 첫 추기경

    교황청이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2일 조지프 젠 홍콩 주교를 신임 추기경에 임명함으로써 반세기 이상 유지해 온 교황청과 중국 정부의 ‘반목’이 해소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대주교를 포함해 모두 15명의 추기경을 임명했다. 이중 중국 출신 추기경을 임명한 게 특히 관심을 모은다. 바티칸 교황청이 중국인 출신 첫 추기경을 임명한 배경에는 정치적인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는 중국 가톨릭 신도들이 교황을 인정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을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중국 정부는 공산당이 집권한 지 2년 만인 1951년부터 교황청과의 외교 관계를 완전히 단절해 왔다. 표면적으로는 ‘내정간섭’이 이유였다. 공산당 지도부가 아닌 교황청에 의한 주교 임명은 일종의 간섭으로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자국 영토로 간주되는 타이완과 교황청이 외교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중국의 가톨릭 신도들은 정부의 인가를 받은 성당에서만 제한적으로 미사를 할 수 있다. 또 중국의 주교는 공산당 지도부가 임명한다. 중국 가톨릭 신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교회’에서 활동할 정도다. 이 때문에 교황청도 꾸준히 중국 정부에 교황 승인을 촉구해 왔다. 지난해 10월 교황청은 제11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통해 중국 가톨릭이 교황을 공개적으로 승인하도록 요구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250여명의 주교가 4명의 중국 주교에게 이같은 내용의 문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교황청 안팎에서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중국이 교황청의 주교 지명을 수용한다면 타이완에 대한 외교적 승인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중국 ‘지하교회’의 신도 수를 800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한편 이날 새 추기경은 대륙별로 골고루 나왔다. 아시아(한국·중국·필리핀), 아프리카(가나), 유럽(프랑스·스페인·폴란드·이탈리아), 북미(미국), 남미(베네수엘라)에서 추기경이 추가로 탄생했다.11개국에서 추기경이 나왔고, 미국 출신은 2명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후임으로 교황청 교리부 책임자에 임명된 미국의 윌리엄 레바다 대주교를 신임 추기경단에 합류시켰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클릭 지구촌 이곳!] 파리 독신자 카페

    [클릭 지구촌 이곳!] 파리 독신자 카페

    “냄새가 남녀의 만남과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뇌와 곧바로 연결된 감각이 바로 후각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손목, 목, 옷깃 등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열심히 느낌을 적는다. 그러는 사이 어색한 분위기는 눈 녹듯 사라진다.20세에는 달리는 기차에 뛰어 올라타듯 쉽게 사랑을 시작하지만 30대 중반을 넘기면 그냥 역에 앉아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파리 시내의 유서깊은 생쉴피스 성당 맞은 편에 있는 ‘카페 드 라 메리’는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이곳의 2층은 독신자들에게 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랑의 카페(cafe de l’amour)’로 변한다. 봄을 재촉하듯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20일(현지시간) 저녁. 오후 8시가 가까워지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과 여성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직업과 연령은 다양하지만 ‘독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이들이다. 상당수는 서로 이미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는 듯 반갑게 안부를 묻기도 한다. 절반 정도는 소문을 듣고 처음 찾아 온 사람들이다. 2년째 ‘사랑의 카페’를 진행하고 있는 베네딕트는 능숙한 솜씨로 “지금 들어 오신 남자 분은 저쪽 여자 두분 앞에 앉으시죠.”라며 남자들과 여자들이 적당히 섞어 앉도록 자리를 배정해 준다. 이날 참가자는 남자 15명, 여자 15명 등 30명. 우연히도 이날 모인 남녀의 숫자는 같았다.‘사랑의 카페’는 독신자들을 위한 자리다.7유로(약 9000원)만 내면 누구든 참가할 수 있다. 자주 오는 단골들은 아예 5회짜리 쿠폰을 갖고 있다. 이 경우 참가비는 6유로. 프랑스에는 독신자가 무척 많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가구당 1가구, 파리 시내에서만 2가구당 1가구가 독신자 가구다. 독신자들을 위해 보름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주선한다는 애니(파티 매니저)는 “매년 12만 건이나 되는 이혼이 독신자 수를 더욱 증가시킨다.”면서 “폐쇄되고 개인주의적인 도시생활이 독신자들을 더욱 고립시킨다.”고 말한다. 독신자들은 인터넷의 만남 사이트나 직업적인 소개소를 통해 새로운 이성을 만나 사귄다. 하지만 ‘사랑의 카페’처럼 직접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상대방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주 월요일(13일)에는 60여명이 ‘사랑의 카페’를 찾았다. 절반은 2시간 내내 서 있어야 했을 정도였다. ●토론으로 진행되는 단체 데이트 ‘사랑의 카페’는 남녀가 만나 선을 보는 자리지만 이름, 나이, 직업, 취미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서먹서먹한 우리식의 맞선이나 그룹 미팅과는 거리가 멀다. 단번에 짝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베네딕트의 진행에 따라 자유스럽게 특정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나눈다.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단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서 한때 유행했던 철학카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베네딕트는 “워낙 말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이라 그런지 언제나 토론은 활기를 띤다.”고 말했다. 사랑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성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를 갖는다. 토론의 주제는 블로그(http:///cafedelamour.blogspirit.com)을 통해 미리 알린다. 이날의 주제는 ‘냄새’. 베네딕트는 “냄새가 남녀의 만남과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뇌와 곧바로 연결된 감각이 바로 후각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홍색 종이를 남자들에게, 파란색 종이를 여자들에게 각각 나눠준다. 상대방의 냄새를 맡아보고 첫 느낌을 적으라는 것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손목, 목, 옷깃 등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열심히 느낌을 적는다. 그러는 사이 어색한 분위기는 눈 녹듯 사라진다. 그 다음은 냄새와 얽힌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순서. 발레리(35)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운동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그의 체취가 너무 강해 헤어졌다.”고 말했다. 클로딘(32)은 “냄새에 반해 한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내가 가졌던 이미지와 완전히 딴판이었다.”며 그다지 길지 않았던 연애담을 털어놓았다. 남자들의 냄새에 대한 반응은 여자들보다 덜 민감하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아로마테라피스트 마리는 “냄새는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중요한 도구”라며 “이성에게 호감을 갖는 경우 나쁜 냄새도 참을 만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냄새는 상당히 예민하게 감정을 얽매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열린 마음으로 베네딕트는 “다른 사람의 체취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면서 “우선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순서는 질 로카의 시 낭송. 올해 68세인 이 시인 역시 독신이다. 그는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들으며 즉석에서 시를 지어 참가자들에게 선사한다. 이렇게 2시간 정도 토론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참가자들은 조심스럽게 상대방 관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맘에 드는 이성이 있더라도 당장에 달려가 데이트를 신청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직접 연락번호를 묻기보다는 베네딕트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베네딕트는 당사자에게 조심스럽게 그 뜻을 전하고 ‘오케이(OK)’가 나면 서로에게 상대방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식으로 만남이 이뤄진다. 이렇게 해서 지난 2년동안 수많은 만남이 이뤄졌다. 한 커플은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4개월 전부터 매주 월요일이면 ‘사랑의 카페’를 찾는다는 뤼크(37·부동산업)는 “20세에는 달리는 기차에 뛰어 올라타듯 쉽게 사랑을 시작하지만 30대 중반을 넘기면 그냥 역에 앉아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며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좋은 짝을 찾을 수 있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여자 친구 카미유(43)를 만나 요즘 데이트 중이다.6년 전 이혼하고 현재 혼자 살고 있다는 크리스티앙(49·사업)은 1년째 이 카페의 단골이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성들이 몇몇 있지만 아직까지 데이트를 신청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 월요일에도 ‘사랑의 카페’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파리 함혜리특파원 lotus@seoul.co.kr
  •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 성당건립비 300억 기증

    광주에 본사를 둔 아파트 건설업체인 대주그룹 허재호(사진 왼쪽·63) 회장이 성당을 짓는 데 3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20일 광주 북구 임동 대교구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허 회장이 목포시 산정동 옛 가톨릭병원 부지 9300여평에 1500석 크기로 성 미카엘 성당을 세워 봉헌키로 했다.”고 밝혔다. 광주대교구가 제공한 부지에는 21세기 건축 및 고대 성당 양식을 조화시킨 대성당이 들어서고 주변에 상징타워와 사제관·수녀원 등이 함께 세워진다. 대성당이 들어설 터는 1897년 광주·전남에서 첫 선교지이자 광주교구 첫 본당이 세워진 곳이다.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미스·명지대 이수정(李修姃)양 – 5분 데이트(39)

    미스·명지대 이수정(李修姃)양 – 5분 데이트(39)

    『어머니 쪽보다는 성당에 다니시는 할머니 쪽 친구분들에게서 중매가 자꾸만 들어와요』 양쪽 보조개가 패이는 통통한 사과빛 볼, 꼭 다문 입매가 복성스러워 어른들 눈에 꼭 드는 미인이 「미스·명지대(明知大)」 이수정(李修姃)양. 상학과(商學科) 3학년. 『「선데이 서울」에 나는 「30대 입지전」을 비롯해서 각 나라의 자수성가전은 모조리 읽어가고 있죠』 서울여상을 다닐 때부터여사장을 꿈꾸어 왔단다. 『제일 처음에는 수예점이나 다과점을 해서 돈을 벌 생각으로 집에서 자금을 대줄 것을 약속 받고 있는 중이에요』 1남2녀중 막내 답지않게 먼 장래계획을 착실히 세우고 있는 것하며 의젓함이 믿음직스러운 사장감이라도 과히 그릇되지 않을 성싶다. 여사장이 되면 남편감은 뭘하는 사람이라야 좋겠느냐니까 「완전무결한 남성보다는 내조의 공을 필요로 하는 남성」을 만나 성공의 과정과 기쁨을 함께 즐기면서 사는 것이 정말 삶인 것 같다고 철든 소리를 할줄도 안다. 냉면, 과일을 좋아하는 식성은 제철을 만나 좀더 살이 찔 것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163cm, 54kg이면 전혀 걱정 같은 것 안해도 좋은 극히 정상 몸매. [ 선데이서울 69년 6/29 제2권 26호 통권 제40호 ]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산그룹-류진 회장家

    ‘풍산’하면 어떤 회사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소비재를 만들지 않는 회사인 까닭이다. 하지만 풍산은 이미 생활속에 깊이 스며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동전에 무늬를 넣기 이전 상태인 소전(素錢)을 생산한다. 그래서 ‘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들어봤다.’는 사람이 많다. 군대 갔다온 남자들은 ‘총알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방위산업체라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런 것으로 풍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반도체 칩에 전기를 공급하고 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리드프레임 등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이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은 구리 합금기술이다. ●한 손엔 돈, 다른 손에 총알을 2세 경영인 류진(48) 회장이 이끄는 풍산은 ‘동전의 왕국’으로 불린다. 지난 1970년 4월부터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 생산업체로 지정된 풍산의 기술력은 세계적이다. 오는 2008년까지 호주에 1억달러어치의 소전을 공급하기로 최근 계약을 맺었다. 유럽연합(EU) 동전의 소전도 공급하고 있다. 풍산의 소전은 세계 시장의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73년 타이완 수출을 시작으로 세계 60여개국에서 30억여명이 풍산의 소전으로 만든 동전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생산했던 소전을 이어면 지구를 40바퀴 돌 수 있는 분량이다. 소전은 구리를 기본으로 한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용해왔던 케케묵은 소재다. 하지만 동에 니켈 등을 적당히 합금만 하면 되는 그렇고 그런 굴뚝산업이 아니다. 까다로운 제조기술이 요구되는 첨단산업이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73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했다. 소구경 총탄뿐만 아니라 포탄까지 국군이 쓰는 탄약 국산화를 시작했다. 이후 모든 탄약을 국산화했다. 수입대체 효과를 매우 높였다. 지능화와 정밀화 등을 통한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인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창업자 류찬우(1923∼1999) 회장이 ‘방위산업의 대부’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풍산의 출발은 미미했다. 눈에 띄지도 않았다. 풍산은 지난 1968년 10월 창업주 류 회장이 일본에서 번 1000만달러로 출발한 신동(伸銅·구리가공산업)업체다. 창업주 류회장은 기업을 일으키지만 돈을 벌기보다도 당시 허약했던 국가 산업발전에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비철금속소재 가운데서도 구리를 골랐다. 현대문명에서 구리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창업 다음해인 1969년 부평공장 준공과 함께 정부의 5대 핵심업체로 지정되면서 사업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73년 경북 안강공장을 준공하면서 방위산업을 통한 자주국방의 의지를 실현했다. 방위산업 진출에는 조선시대의 명재상인 그의 조상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을 읽고 유비무한 정신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에는 온산신동공장을 세워 한국을 세계적인 신동산업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92년부터 미국 현지공장,2000년 12월 태국 현지법인을 가동하면서 풍산은 연산 46만 5000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다국적 신동기업인 KM유로파 메탈에 이어 세계2위이다. 쉽게 설명하면 비철금속에서 풍산의 위상은 철강에서 포스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첨단업종으로 변신중 구리가공산업이란 한 우물을 파던 풍산은 지난 79년 서울 퇴계로 극동빌딩에 세들어 사무실을 마련한 뒤 지금까지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방위산업체인 까닭에 군관련 인맥 네트워크가 해외까지 탄탄하다. 풍산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지난 97년부터 2세 류진 회장 체제가 구축되면서 풍산은 기업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회장은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는가 하면 첨단 통신사업 등에도 조금씩 발을 담그고 있다. 이문원 풍산 사장은 “정보기술(IT)과 자동차·가전 등 전기가 통하는 곳은 어디나 동 압연재가 필요하다.”며 주력인 신동산업을 통한 사업 다각화 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재 풍산그룹의 계열사는 핵심기업인 ㈜풍산을 중심으로, 풍산마크로텍, 풍산산업 등 16개(해외법인 포함)에 이르고 있다. 특히 류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일본, 미국, 상하이 등지에 법인을 설립했다. 풍산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점차 줄어드는 방위산업을 첨단산업에 어떻게 접목시켜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고민의 중심에 선 류 회장은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타개하는 것과 신사업 진출을 통해 기업변신을 꾀하는 두 가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심사업인 동, 스테인리스, 티타늄 분야에서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 새로운 첨단소재산업 분야로 진출할 도모하고 있다. 또 방위산업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밀 지능탄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탄약 전문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와 함께 항공기와 유도무기에 필수적인 가속도계, 속도 및 고도측정센서 등 정밀 센서류와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등 정밀산업분야에서도 영역을 확대하는 등 첨단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류 창업주의 4남매 가운데 막내인 류 회장은 82년에 풍산에 입사한 지 15년 만인 97년 풍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 4월 회장에 올랐다. 일본에서 아메리칸 고교를 거쳐 서울대 영문학과를 마쳤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수료한 류 회장의 영어 구사력은 재계의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동전의 제왕’ 류 회장은 미국통 류 회장은 ‘미국통’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 대통령의 방미에 단골로 수행하는 경제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특히 지난 2003년 초 출범한 노무현 정부의 대미외교와 관련해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해 4월 W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국내에 초청하는 일을 맡았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의 전초전 성격이 강했기에 큰 관심을 모았다. 공식적으로 부시 전 대통령의 방한은 전경련 초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경련 부회장인 류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7월28일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환송 만찬의 사회를 보는 등 단순히 경제인 차원을 넘어서 민간외교 분야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 앞서 지난 2002년 12월 국내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로 인해 촛불시위가 연일 이어질 당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과 전화를 한 것도 류 회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이런데서 보듯 류 회장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인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지난 92년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풍산의 미국법인 PMX인더스트리의 공장 준공식에서 바버라 부시 여사가 기념 테이프를 자르면서 직접적인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풍산이 방위산업체라 일찍부터 대미관계에 공을 들였고, 미국의 거대 방위산업체 인맥은 물론 정계 인맥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류 회장은 일년 중 반 이상은 미국 등 해외에 머물며 사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약에도 국내에는 풍산이나 류 회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류 회장이 매우 겸소한 성품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 유교적 가풍이 심한 집안에서 차남으로 가업을 이어받은 부담도 한 몫하고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족보상 명문가의 후손인 풍산의 류진가는 재계의 혼맥에서도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풍산 류씨 서애종파의 류 회장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13세손이다. 바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다. 류 창업주는 회사 이름을 풍산 류씨인 자신의 본관을 따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류 창업주는 병산교육재단을 세워 고향인 풍산에 풍산중·고등학교를 세웠다. 이 재단에 서애가 후학을 양성했던 병산서원과 그 일대 땅을 기증하기도 했다. 류 회장이 지난 99년 11월 숙환으로 별세한 뒤 풍산그룹의 경영권은 차남 류진 회장으로 이어졌다. 류 회장은 풍산그룹 계열의 ㈜풍산과 풍산마이크로텍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풍산의 공익법인인 병산교육재단과 93년 설립된 학록장학재단(학록은 류 창업자의 호)와 서애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명실상부하게 풍산가의 대표자 역할을 하고있다. ●대통령가에 닿았던 화려한 혼맥 류 창업주는 부인 배준영(79) 여사와의 사이에서 2남2녀를 두었다. 배씨는 한국여자테니스연맹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1969년 풍산의 첫 공장인 부평공장을 지을 당시 배 여사는 동대문시장에서 장을 봐 부평 공장의 종업원들의 음식 뒷바라지를 할 정도로 창업고생이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이문원 사장은 “모든 직원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이라고 치켜세웠다. 장남이자 류 회장의 형 류청(57)씨는 풍산의 미국 현지법인 PMX인더스트리 사장을 지냈다. 지난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인 박근령(53·당시 이름 박서영)육영재단 이사장과 결혼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 딸과의 결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1년도 못돼 파경을 맞아 더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류청씨는 미국을 오가며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배 여사는 여전히 박씨를 “큰 며느리”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 회장의 큰 누이인 류지(54)씨는 서울 강남에서, 작은 누이 류미(52)씨는 미국 LA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류진 회장은 노신영(77·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전 국무총리의 딸과 혼인했다. 류 회장의 부인인 노혜경(47)씨는 노 전 총리의 딸이다. 노씨는 미국 스탠포퍼드 법대 출신에 두 개의 석사학위와 한 개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들 부부는 성왜(17)양과 성곤(14)군을 두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풍산의 류진가는 노 전 총리와의 통혼을 통해서 재계 혼맥의 중심부에 진입하게 됐다. 노 전 총리의 장남 노경수(53)서울대 교수는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작고)의 딸 숙영(47)씨와 결혼했다. 노 교수는 정몽규(44)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매형이 된다. 류 회장은 노신영가를 통해 현대가와 순환혼맥을 이룬다. 노 전 총리의 둘째아들 노철수(51)씨는 P.Wian&Associate 대표이사 사장. 그의 부인은 홍진기 전 내무장관의 막내 딸인 홍라영(46)씨로 삼성그룹 비서실을 거쳐 레오버넷 코리아 사장을 지내고 삼성리움미술관 부관장이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로써 풍산의 류진가는 이건희 삼성 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과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노 전 총리 셋째아들 노동수(48)는 고려서적 사장을 맡고 있다. chuli@seoul.co.kr ■ ’동전 왕국’ 일군 숨은 일꾼들 신동(구리가공산업)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오늘의 풍산은 창업주 류찬우 회장이나 2세 경영인 류진 회장 못지않게 숨은 공로자들이 많다. 풍산은 대표적으로 정훈보(68) 전 사장, 류민하(78) 전 부사장, 이진우(72) 전 부사장, 김사철(70) 전 감사, 류인한(79) 전 부사장 등을 꼽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농협 중앙회 금융계획과장을 지냈던 정 전사장은 지난 78년 풍산의 전신인 풍산금속공업에 이사로 입사했다. 타고난 기획통으로 사세 확장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지난 80년대 초 중동건설 붐이 일어났을 당시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플랜트를 수출할 때 백동관을 자체 기술로 개발, 공급함으로써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97년 풍산 부회장을 거쳐 99년 한국철도차량 사장을 지냈다.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농협중앙회 자금부장을 지낸 류민하 전 부사장은 지난 73년 풍산금속공업의 상무로 입사, 류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의 회사 기틀을 다졌다. 회사가 해마다 2배씩 성장을 거듭할 70∼80년대 자금과 인사 등 회사의 안살림을 두루 맡았다.80년 부사장을 거쳐 90년 감사를 지냈다. 풍산의 후배들은 학자풍인 그를 ‘선비형 매니저’로 기억하고 있다. 역시 고려대를 거쳐 농협 중앙회 출신인 이진우 전 부사장은 지난 75년 회사에 합류했다. 그는 80년대 초 회사의 경영정보관리시스템(MIS)을 도입, 당시로서는 국내의 어느 회사보다 빨리 선진적인 경영관리시스템을 받아들였다. 특히 90년 노사대립이 한창일 때 헌신적인 대화를 통해 노사관계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노사협력우수기업으로 인정도 받았다. 지난 97년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의 김사철 전 감사의 경우 뛰어난 분석력과 판단력을 가진 타고난 최고재무관리자(CFO)이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감정사 자격을 갖춘 그는 재무부·국세청·총무처 등 정부의 여러 부처를 거쳐 76년 풍산금속에 이사로 들어왔다. 재무업무의 기본 프로세스를 조성했으며 시설·자재·감사 등에서 회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정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도 수상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의 류인한 부사장은 세계 최상급의 품질과 능력을 자랑하는 동제품을 만들기 위해 기계설비와 생산프로세스의 토대를 구축한 산증인으로 전통적인 엔지니어 출신의 임원이다. 지난 73년 부평공장 공무부장으로 입사, 동제품 생산기술과 공정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78년 온산공장 건설본부장으로 온산공장 건설의 총책임을 맡았으며 온산공장장을 지냈다. 풍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데 토대가 됐다. 88년 온산공장 제2공장을 준공해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25만t 생산능력의 신동공장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온산공장 건설경험을 바탕으로 90년대 이후 풍산의 세계화 전략에 따라 건설한 미국 현지법인 PMX사와 태국 공장건설에도 공헌했다. chuli@seoul.co.kr ■ “선조에 누 되는 일 하지 마라” 풍산의 창업주 류찬우 회장은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임진왜란을 넘긴 서애 류성룡의 12세손이다.“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게 류 창업주의 확고한 인생관이다. 이런 정신이 2세 경영인 류진 회장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지난 68년 순수민족자본에 의해 창업, 세계적인 신동기업으로 발전한 풍산은 전통 문화의 계승에 남다르다. 풍산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이라는 방위산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이다. 서애의 가르침이자 영향이다. 풍산의 기틀이 잡힌 지난 76년 12월 류 창업주를 중심으로 서애의 후손들과 학자들이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설립했다. 서애가 징비록에서 남긴 유비무환과 자주국방의 뜻을 계승하고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기념사업회를 세웠다. 또 류 창업자는 지난 80년 4월 사재를 출연, 육군사관학교에 서애관이라는 체육관을 기증했다. 지난 일을 되살려 앞날을 대비하자는 서애의 가르침을 호국 간성에게 일깨우고자 건립된 상무의 도장이다. 지난 91년 5월 서애의 정치·경제사상과 애국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서애전서 전4권을 출간했다. 일본 도쿄대 종합도서관,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소, 러시아 과학대 동방연구소, 중국 베이징대 등 30여개국 50여개 대학과 연구소 등에 흩어져 있었다. 약 10년 동안의 편찬사업 끝에 서애의 저술과 관계자료를 수집, 망라한 것으로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자료를 규합해 완성한데 의미가 깊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2001년 7월 서애전서 국역본을 발행, 일반인들도 쉽게 볼 수 있도록 새롭게 했다. 특히 지난 2003년 임진왜란의 극복 경험과 교훈을 적은 ‘징비록(The Book of Corrections)’ 영역본을 출간, 세계화시켰다. 호남대 최병현 교수가 6년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출간됐다. 기념사업회는 특히 내년 서애 서거 4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 범유림기념사업회에서 당파를 초월해 서애 서거 400주년 기념행사를 계획중이다.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교황 한국 방문·새추기경 임명 긍정적”

    “교황 한국 방문·새추기경 임명 긍정적”

    지난해 요한 바오로2세 서거후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에 취임한 지 10개월여가 지났지만 로마교황청은 눈에 띌 만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례적으로 행정체제와 교시 등에 있어서 전 교황때의 것을 그대로 유지한 채 추기경을 비롯한 요직 인사도 미루고 있어 세계 천주교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의 고위 인사들은 한국의 천주교를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으며 세계, 특히 아시아권에서 한국 천주교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일시 귀국한 성염(64) 주(駐)로마교황청 대사를 만나 바티칸 분위기와 한국천주교에 대한 로마교황청의 입장을 들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체제의 교황청 분위기와 한국 천주교에 대한 입장변화가 있다면. -예전 같으면 벌써 새 교황의 통치철학이나 기조정책 발표가 나왔어야 한다. 교황이 지난달 25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제목으로 가톨릭의 일반적인 원칙을 담은 첫 회칙을 낸 게 전부일 만큼 전 교황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황이 성탄절 메시지에 “한반도에 대화의 분위기가 지속되길 바란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은 한국과 한국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큼을 보여준 것이다. ▶교황청이 이처럼 한국에 대해 갖는 각별한 관심과 기대는 무엇 때문인가. -우선 신자 수를 볼 때 다종교국가인 한국에서 천주교의 위상은 바티칸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각계각층에서 신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인권 등 사회발전 측면에서 한국천주교가 해온 역할에 특히 주목한다. ▶교황의 한국 방문과 한국에서의 새 추기경 임명이 자주 거론되는데. -세계 30여개국에서 새 교황을 초청해놓고 있지만 금년 상반기 핀란드와 올해말 터키 방문 정도만 확정되었다. 지난해 11월 바티칸에서 열린 각국 주교 대표들의 모임인 주교 시노드 폐막때 노무현 대통령이 친서를 전달, 교황의 한국 방문 요청과 새 추기경 임명에 대한 희망의 뜻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고위 인사들의 우호적인 발언과 관심으로 미루어 볼 때 양쪽 모두 낙관적이다. ▶바티칸에서 대사로 재임하면서 바라본 한국 천주교는 어떤 모습인가. -전통적으로 한국 천주교와 바티칸의 관계는 아주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지난 30∼40년간 한국 천주교가 우리 사회에서 앞장서온 진보적 노력을 바티칸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어 흐뭇하다. 천주교 신자가 전체 인구의 9∼10%를 차지하는 한편 불교·개신교세가 만만치 않게 강한 다종교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종교분쟁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마디로 신기한 나라다. ▶황우석 교수 파문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공식 논평은 없었지만 지난해말 수요알현 때 교황이 광장에 모인 신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배아가 생명으로 발전한다.”고 언급한 것은 바로 황 교수 사태에 대한 윤리적 차원의 발언으로 해석된다. 바티칸은 “과학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에서 풀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고 한국의 과학자들이 자체검증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 퇴조는 일반적인 흐름으로 한국에서도 냉담자가 증가하는 등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국내외 모두 ‘신앙의 사사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성당이나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신앙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과, 평소 정치·경제논리에 지배받지만 신앙은 나름대로 유지하는 이원화의 문제랄 수 있다. 현대의 바쁜 삶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신앙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공동사회의 것이라는 전통의 공동체적 신앙생활을 무시할 수 없다. 바티칸에서도 신앙생활이 삶의 원동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신앙과 삶의 통합 사목을 강조하고 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이슬람 문명과 도시](3)알함브라 궁전을 지닌 스페인 그라나다

    그라나다를 찾아가는 길은 알함브라 궁전을 떠올리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예술. 스페인 땅에 남아 있는 마지막 이슬람 유산. 지상에 마련한 실존의 파라다이스. 어떤 찬사로도 모자라는 알함브라는 그라나다에 있다. 무어(Moor)라 불리는 북아프리카 아랍인들이 800년간이나 이곳에 화려한 이슬람 문화를 남겨 놓았다. 바로 안달루시아 문화다. 기독교와 이슬람 두 문화가 공존할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인류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역사가 도시의 언저리마다 웅크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달루시아 문화의 중심도시가 바로 그라나다다. “그라다나라는 에메랄드에 알함브라라는 빛나는 오리엔트산 진주가 박힌 인류 최고의 보석” 15세기 한 아랍 시인의 표현이다.1492년 1월.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 알함브라 궁전은 조용히 숨을 거둔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궁전의 새 주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결혼에 의해 아르곤과 카스티야 왕국은 통합을 이루고, 이베리아 반도에 이슬람의 지배를 청산하는 거룩한 사명을 천명했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아랍 왕 보아브딜은 자신의 가련한 시민들을 보호해 준다는 조건으로 금화 3만냥과 궁전을 바치고 항복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해야 했다. 예술을 사랑하고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보아브딜은 약자의 비애를 처절하게 되뇌며 정든 알함브라 궁전을 떠나갔다. 겉으로 언뜻 보면 투박함이 어느 아랍 궁성이나 성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언덕을 오르고 첫 번째 문을 들어서는 순간, 비감함과 퇴폐적인 아름다움이 아련하게 전해져 온다. 왕궁이 있던 팔라치오 레알 안으로 들어선다. 분수가 있는 전형적인 아랍식 실내 정원과 천국에서의 휴식을 설계한 시원한 공간 구조, 아라베스크 벽면 장식과 조각 예술의 극치에 나는 한참 동안 적당한 묘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과연 알함브라구나. 네 이름만으로도 이제 충분하구나. 아랍건축의 특징은 외관의 투박함과 내부의 화려함이다. 그리고 많은 문들을 통해 실내로 연결되는데, 문 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화려함과 정교함은 점점 도를 더해간다. 속세와 천국을 건축에 표현하려는 아랍인들의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왕궁 입구로 들어서면 두 벽 사이로 기다란 아라야네스의 안뜰이 이방인을 맞는다. 하얀 대리석 바닥과 벽면의 초록색 모자이크가 기가 막힌 대조를 이루고, 아치를 이루는 조각 기둥이 떠받치는 지붕에는 붉은 아도베 기와를 얹었다. 작은 연못 물위에 비친 맞은편 건물의 아치와 기둥 장식이 수중 도시처럼 느껴진다. 술탄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대사의 방에서는 뚫려 있는 아치 사이로 맞은 편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알바이신 이슬람 마을이다. 역사와 가슴 아픈 사연이 깔려 있는 마을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는 그때, 스페인 병사들은 소수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 주겠다는 항복 조건을 내팽개치고 마을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새로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은 무참히 무릎을 꿇었다. 무슬림들은 끝까지 저항했다.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들은 죽어가면서 처참한 역사를 후세에 남기고자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래서 하얀 집과 벽에는 당시의 학살로 붉게 물든 핏자국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금 그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30여개에 달하던 모스크는 지금 성당이 되어 버렸다. 다만 좁은 골목과 서로의 목소리로 이웃과 통하는 가옥 구조가 전형적인 아랍 마을을 닮아 있다는 것뿐이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인 하얀 집들 사이로 성당의 종소리가 석양을 이고 나직이 깔린다. 가슴 아픈 역사를 잠시 떠올리다가 ‘사자의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내 정원과 마주하고 섰다.12마리의 사자가 떠받치는 중앙 분수와 사자의 입에서는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물은 파놓은 홈을 따라 정원 구석구석을 흐른다. 야릇한 향내를 머금은 앞뜰의 정원수가 작은 그늘을 이루고,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역동적인 종유석 조각을 담은 아치 아래에는 커다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황량한 사막을 뚫고 온 아랍인들이 이곳에 오아시스의 정서를 그대로 옮겨 담은 것 같다. 아니면 코란에서 묘사하는 천국을 설계한 것일까? 사자의 정원을 나오니 아름다운 분수가 바라다 보이는 계단에 한 맹인이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스페인어로 팻말을 세워놓았다.“아름다운 여인이여! 자선하세요. 그라나다에서 맹인이 되는 것보다 더 잔인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스페인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자의 시구다. 아! 동전 한 닢을 놓으면서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서 만난 맹인의 말없는 절규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이슬람의 궁성이 함락되던 1492년 그 해,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모신 제노아의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다. 무적 함대를 자랑하는 스페인의 전성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한편 이슬람의 술탄 보아브딜은 다시 스페인에서 쫓겨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800년 전인 711년, 그의 선조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할 때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이다.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뒤에도 보아브딜은 꿈에도 알함브라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63세를 끝으로 눈을 감았던 그의 초라한 페스 궁전은 너무나도 알함브라 궁전을 닮아 있다. 지금 대성당이 있는 알카이세리아 주변지역은 전형적인 아랍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아랍인들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번 이슬람화 된 세계의 모든 지역이 끝까지 이슬람을 지켰지만,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만은 예외였다. 다시 가톨릭이 점령한 이 땅에서 이교도인 무슬림들과 유태인들이 가혹한 추방과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한 때 문화용광로로서 유럽 르네상스를 일으키게 했던 최고 수준의 지적 산실이었던 안달루시아는 문명과 학문이 소멸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잊혀졌다. 그리고 지금은 관광객들이 이슬람 유산을 보기 위해 다시 안달루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부고]

    ●이종민 세령(KT 솔루션지원센터)씨 부친상 인준서(KT 전략기획실)씨 빙부상 이영재(한국수출입은행 국제협력실장)씨 형님상 1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02)3410-6917●손운익(대구 수성구의회 의원)씨 모친상 대구적십자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16-524-7100●이종순(변호사)종운(사업)종각(〃)씨 모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3010-2238●고웅권(전 평통자문위원)창권(전 동남은행 홍콩법인장)승권(재 뉴질랜드 목사)충형(우영실업 대표)씨 모친상 봉우(주LA영사관)행우(주 MRI대표)동우(월간 말 기자)씨 조모상 13일 경기 성남 분당구 분당동 요한성당, 발인 15일 오전 9시 (031)780-1114
  • CBS 재단이사장에 최기준씨

    CBS는 10일 정기 이사회를 열고 신임 재단이사장에 최기준(71) 현 이사를 2년 임기의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신임 최 이사장은 연세대 사무처장과 재단본부장,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사제회장, 연세유업 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학교법인 유한학원 이사장, 연세대 상임이사, 성공회대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 강남권에 첫 사립초등학교

    서울 강남권에 유일하게 사립 초등학교가 문을 열어 앞으로 강남 지역 학부모로부터 관심을 끌 전망이다. 지난 1일 사립인 서울 계성초등학교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6의1에 새 둥지를 틀었다. 오는 11일 이전식을 갖는다. 지난해까지 명동성당 뒤에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 있는 40여개 초등학교는 모두 강북 지역에 위치해 자녀를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려는 강남지역 학부모들은 자녀의 통학문제를 고민했다. 따라서 계성초등학교의 강남 전입은 인근에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학교는 4300여평 부지에 지하1층과 지상 4층의 새 건물에 입주했다. 건물에는 24개 교실 외에 체육관과 6개의 어학실, 공연장, 멀티미디어실 등이 있다. 초등학교로서는 최대 장서인 도서관과 국악실, 음악레슨실도 갖췄다. 운동장은 인조 잔디와 탄성 고무 재질의 육상 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1882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학생이 3학년이 되면 바이올린과 첼로, 트럼펫, 클라리넷 등을 배우는 등 충실한 예능 교육으로 소문나 있다. 올해부터는 최첨단 어학실에서 강화된 외국어 교육이 실시된다. 특히 영어수업은 한 학급이 3등급으로 나눠져 수준별 교육이 이뤄지고 중국어 수업은 전교생을 상대로 진행된다. 지난해 신입생 추첨 때 서울 지역 사립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높은 6.3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입학 희망자가 많은 이 학교는 현재 한 학년당 모두 3개 반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를 앞으로 4개반으로 늘릴 방침이다. 따라서 올해 신입생 모집 인원도 종전 90명에서 120명으로 늘어났다. 이호근 교감은 “올해 2∼4학년에 한해 1개 학급을 증설, 전학생을 받을 예정”이라면서 “형제 자매가 이 학교에 다니면 우선권을 준다.”고 말했다. 한편 학교 이전 이유에 대해서는 “명동성당이 앞으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어 언젠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산하에 있는 이 학교는 자리를 내주어야 하고 현재 시설이 노후화돼 이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프랑스 유머·위트의 참맛

    프랑스 유머·위트의 참맛

    프랑스 뮤지컬이 흥행 연타를 날릴 수 있을까. 중세의 노트르담 성당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 ‘노트르담 드 파리’의 내한 공연에 이어 이번엔 몽마르트 언덕을 무대로 한 ‘벽을 뚫는 남자’가 국내 초연된다. 벽을 맘대로 통과하는 신통력을 지닌 남자 듀티율의 모험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1996년 파리에서 처음 막올라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몰리에르상 최우수 뮤지컬상을 수상한 작품. 프랑스 국민작가 마르셀 에메의 탄탄한 원작,‘쉘부르의 우산’을 작곡한 미셀 르그랑의 주옥같은 음악이 흥행 비결로 꼽힌다. 브로드웨이에선 ‘아모르’란 제목으로 공연돼 2003년 토니상 5개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헤드윅’제작사 쇼노트가 만드는 이번 한국어 공연의 연출은 프랑스 유학파 출신의 연출가 임도완(45). 서울예대 교수로, 극단 대표로 정신없이 바쁜 그를 제작사가 삼고초려해 영입했다. 20대때 배우로 몇번 뮤지컬 무대에 서기는 했지만 연출은 처음이라는 그는 “볼거리에 치중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은 철학과 메시지가 강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마임교육기관인 ‘자크 르콕 국제연극마임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1996년 사다리움직임연구소를 설립해 ‘보이첵’‘휴먼 코메디’ 등 인물의 움직임에 중점을 둔 독창적인 무대를 선보여왔다.‘벚꽃동산’으로 올해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사회현상을 꿰뚫는 통찰력과 뛰어난 상상력’을 들었다. 무사안일한 공무원, 뇌물받는 경찰, 알코올중독자 의사 등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사회 각계각층 구성원들의 행태를 희화화시켜 풍자한다. 어느날 갑자기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갖게 된 소심한 우체국 직원 듀티율은 이처럼 부패한 사회에서 서민들의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노트르담 드 파리’와 마찬가지로 ‘벽을 뚫는 남자’도 대사없이 노래로만 극이 진행된다. 때문에 음악의 리듬감을 최대한 살리는 것과 배우의 표정, 움직임, 동작 등으로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이 관건이다. 단원들과의 집단창작을 중시하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안무가를 따로 두지 않고 배우들 각자가 캐릭터에 맞게 스스로 안무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원작의 묘미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지도 관건. 파스텔톤의 색감으로 재현한 몽마르트 거리와 사선으로 기운 무대 세트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동화적인 분위기를 대변한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듀티율이 벽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진짜 벽을 뚫느냐고요?물론 그럴 수는 없지요. 하지만 관객들이 깜빡 속을 만큼 다양한 장치들을 준비해 뒀습니다.” 듀티율역에 박상원 엄기준이 번갈아 출연하고, 가수 해이와 임수연 등이 참여한다.28∼4월2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4만∼7만원.1588-7890.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gpod@seoul.co.kr
  • [부고] 성공회 김영순 수녀

    대한성공회의 대표적인 수도자인 김영순(다비다) 수녀가 3일 오후 9시50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99세. 고인은 1908년 2월3일 강화 초지에서 태어나 18세의 나이에 대한성공회 성가수녀회에 한국인으로서는 작고한 이부비 수녀에 이어 두 번째로 입회했다.1971년부터 78년까지 제5대 수녀원장을 역임했으며, 대한성공회가 설립한 정신지체장애인학교인 성베드로학교 사감으로도 활동했다.장례미사는 6일 오전 9시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거행되며, 장지는 충북 청원군 가덕면 성가수녀회 산하 ‘보나의 집’ 동산이다.(02)735-7832.
  • ‘생활속 문화공간’ 지하철

    ‘생활속 문화공간’ 지하철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생활속 문화공간입니다. 하루평균 632만명이 드나들며 재즈에 취하고 명화에 흠뻑 빠집니다. 자치구 현장민원실을 찾으면 인터넷과 책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지요. 이색 결혼식장으로 깜짝 변신하기도 한답니다 30년간 지하철이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휴대전화 벨소리와 통화소리가 끊이질 않고, 의자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자주 만납니다. 내리기도 전에 몸을 밀치며 먼저 타려는 승객들로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습니다. 지하철 마니아들은 우리 지하철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뉴질랜드는 개찰구에서 표를 확인해 번거롭고, 프랑스 파리는 문을 직접 열고 닫아야 해서 내릴 역을 지나치기 쉽답니다. 중국은 덜컹거리고 소음이 심하고요.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지하철, 올해는 문화시민답게 이용해 봅시다. 해질 무렵 한강철교위를 질주하는 열차의 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희망을 읽어 봅니다. 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녹사평역에서 행복한 새출발 이색적인 결혼식을 꿈꾼다면 6호선 녹사평역으로 달려가 보자. 국내 유일의 지하철 결혼식장이 그 곳에 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도수현 부역장은 “교통이 편리하고,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 시설이 완벽해 장애인에게 더없이 좋은 예식장”이라고 자랑했다. 서울시 건축상 동상을 받은 곳이라 볼거리도 다양하다. 녹사평의 특징은 자연광이 지하 5층까지 오롯이 비추는 원통형 구조라는 점이다. 천장이 돔형(지름 12m)이라 은은한 빛이 하루 종일 역사를 감돈다. 지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을 유리로 만들어 바닥까지 반짝인다. 햇빛 만큼이나 화사한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웃음을 머금은 신랑에게 내려가는 길이다. 층마다 매단 청사초롱이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182인치 대형 멀티비전에선 신랑, 신부의 성장 모습이 상영된다. 결혼식장은 에스컬레이터를 가운데로 둔 원형이다. 규모가 1520㎡(460평)라 출장 뷔페를 부르면 식장 반대편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평소엔 갤러리로 활용되는 터라 하객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폐백실, 신랑·신부대기실도 모두 공짜다. 역사를 꾸미는 비용은 이벤트 회사와 따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녹사평의 또다른 볼거리는 이색 벽화다. 작가 최범진·안혜경씨가 색상 유리로 만든 ‘교렴(轎簾)’과 ‘상생(相生)’은 빛과 색을 조화시킨 작품이다. 교렴은 전통적인 조각보의 느낌을 살렸고, 상생은 손을 맞잡아 새로운 화합을 표현했다. 덕분에 영화,TV,CF, 뮤직비디오, 각종 잡지의 단골 촬영장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말아톤’‘와일드키드’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 50여곳선 흥겨운 공연활동 24일 오후 6시, 지하철 7호선 이수역 공연장. 록밴드 ‘아수라’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부르고 있다. 보컬의 목소리가 역사를 뒤흔들고, 연주자는 시린 손을 털어가며 기타와 드럼을 두드린다. 찬 바람이 지하 1층에 자리한 공연장까지 그대로 불어왔다. 퇴근길 시민들이 공연장 앞에 멈췄다. 락밴드의 화려한 음악과 몸짓에 눈길을 빼앗긴 탓이다. 여중생들은 ‘보컬이 꽃미남’이라며 연신 플래시를 터트렸다. 회사원 박영석(35)씨는 “대학 축제 때 이후로 록밴드 공연을 본 적이 없다.”면서 “오랜만이라 신기하고 재밌다.”고 했다. 그러나 이봉학(71) 할아버지는 “시끄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같은 날 오후 1시30분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자신을 ‘산해’라고 소개한 안중신씨가 통기타를 치며 고 김광석씨의 노래 ‘일어나’를 부르고 있다. 하모니카 연주까지 이어지자 탄성이 나왔다. 박수를 친 관객들은 1000원짜리를 꺼내 기타 케이스에 집어넣었다.2004년 10월부터 지하철에서 공연하는 안씨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멈춰서서 감상하는 시민들이 참 고맙다.”면서 “지하철 공연은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문화공간”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에서는 포크송, 남미민속음악, 록밴드, 응원퍼레이드, 섹스폰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매일 펼쳐진다. 주말에는 더욱 다채롭다. 사단법인 서울지하철문화연구원 등이 오디션을 통해 뽑은 예술가들이 지하철 50여곳에서 활동한다. 서울메트로(www.seoulmetro.co.kr)와 도시철도공사(www.seoulmetro.co.kr)에서 공연자와 공연장소·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 곳곳에 미술품 상설전시장 지하철역이 갤러리로 거듭났다. 벽화에 더해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곳곳에 생겼다. 대표적인 곳이 3호선 경복궁역 지하 1층에 자리한 서울메트로미술관.400평 규모로 전시면의 크기는 가로 4m, 세로 2m. 전시관은 1,2관으로 나뉘어 있고, 중간에는 출입문을 설치해 미술품 도난을 방지한다. 24일 찾은 미술관에선 ‘서울체신청 100주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공간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뤄져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장과 측면에 달린 조명이 은은하게 작품을 비췄다.CCTV와 함께 공익근무요원이 전시장 주변을 맴돌며 도난을 방지하고 있었다. 사진을 감상하던 주부 이정녀(49)씨는 “편지를 써놓고 우편 배달부를 애타게 기다리던 옛 생각이 떠오른다.”면서 “전시장 덕분에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짜증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지하철 전시장이 일상생활을 여유롭게 해준다는 얘기다. 딸 이소희(8)양과 함께 방문한 직장인 김인수(여·36)씨도 전시장이 만족스럽다고 했다.“바빠서 아이와 문화생활을 즐기기 쉽지 않는데 지하철 갤러리는 오가며 자주 찾게 된다.”면서 “다양한 미술품이 많이, 자주 전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볼륨을 높인 TV 소리가 아쉬웠다. 서울시내 교통정보를 들으며 미술품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4호선 혜화역에 위치한 혜화전시관은 아기자기하다.1층 대합실에 유리담장으로 구분해 조성한 57평 규모.50여점을 전시할 수 있다. 5호선 마포, 광화문역,6호선 녹사평역,7호선 이수역,8호선 몽촌토성역 등에도 상설전시장이 있다. ■ 지하철에도 지름길 있다 ‘2호선을 타고 한번에 갈까? 중간에 4호선으로 갈아탈까?’ 지하철 노선이 얽혀있다보니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기 전에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고민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좋은 방법은 경험자들로부터 도움말을 듣는 일이다. 이마저도 안된다면 서울메트로(www.seoulmetro.co.kr)와 도시철도공사(www.seoulmetro.co.kr)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면 환승 시간까지 계산해 최단 거리를 알려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경험담이 최고다. 서울의 ‘동서남북’에 살며 시청 인근 도심으로 출근하는 회사원 4명으로부터 생생한 지하철의 지름길을 들어봤다. ●목동에서 시청까지 서울 서쪽 양천구 목동에 사는 조모(38)씨는 갈아타기가 귀찮아 5호선을 이용,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그러나 요즘에는 신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에서 내린다. 직장이 시청 인근이어서 지하철에서 내려 걷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출퇴근 시간이 5∼10분정도 빠른데다 요금도 100원 저렴하다. 목동에서 시청까지 가는 방법은 모두 3가지.(1)목동∼광화문까지 5호선을 타는 방법.(2)목동∼신길(1호선)∼시청 (3)목동∼영등포구청(2호선)∼을지로 입구. 시청을 기준으로 광화문, 시청역은 지하철 맨 앞칸, 을지로역은 맨 뒤칸에 타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노원역에서 시청까지 서울 북쪽 노원구 상계동에서 사는 이모(43)씨.4호선 노원역에서 출근을 시작한다. 그리고 환승노선에 따라 길이 2가지로 갈린다. (1)노원역∼동대문역(1호선)∼시청역과 (2)노원역→동대문운동장역(2호선)→을지로입구역 (1)코스와 (2)코스의 경우 승차시간은 45분 정도로 비슷하다. 다만,(1)코스는 동대문역에서 환승거리가 길다. 게다가 혼잡하다.(2)코스는 동대문운동장의 환승거리가 짧지만 을지로역에서 시청 인근 회사까지 좀 긴 편이다. 전체적으로 (2)코스가 2∼3분 빠르다. 이씨는 4호선 노원역 신문판매대에서 한 칸 뒤쪽에서 탄다. 동대문운동장역에서 내리면 에스컬레이터가 바로 앞에 있다.2호선 동대문운동장역에서는 전철 진행방향 가장 앞쪽에서 타면 을지로입구역 계단과 만난다. ●방배역에서 시청까지 서울 남쪽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회사원 박모(30)씨는 2호선 방배역∼사당역(4호선)∼서울역(1호선)∼시청역으로 다녔다. 시간은 36분.2호선 방배역∼시청역 코스보다 13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동료직원 고모(29)씨에게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리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차한 뒤 역사 밖으로 나오는 거리가 절반 정도로 짧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맞았다. 방배역에선 여섯번째 칸, 첫번째 문에서, 사당역에서 맨 앞 칸에서 타면 갈아탈 때 가장 빠르다. 특히 환승자가 많은 사당역에선 인파의 앞 부분에 서야 편하다. ●오금동에서 시청까지 이모(31)씨가 서울 동쪽 송파구 오금동에서 시청까지 오는 방법은 2가지다.(1)버스∼잠실역(2호선)∼을지로입구역 (2)방이역(5호선)∼광화문역이다. 이씨는 첫 번째 방법을 선호한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잠실역까지는 20여분, 지하철로 잠실역에서 을지로입구역까지는 28분 걸린다. 방이역에서 광화문역까지는 36분 소요된다. 그러나 집에서 방이역까지는 13분, 광화문역에서 시청까지는 10분을 걸어야 한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청까지는 도보로 5분이면 충분하다. 출퇴근시간의 지하철 배차간격도 2호선은 2∼3분인 반면 5호선은 5∼6분이다. 모두 감안하면 첫번째 방법이 두번째보다 5∼10분 정도 덜 걸리는 셈이다. 더구나 5호선이 2호선보다 더 붐빈다. 시청을 향한다면 2호선이나 5호선 모두 앞쪽에 타는 게 좋다. 서울시청팀종합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명당’ 잡으면 10분을 아낀다 지하철에도 ‘베스트 포지션’이 있다.‘아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만 골라탄다. 바로 환승역과 가장 빨리 연결될 수 있는 열차 위치다. 어떤 문으로 내리느냐에 따라 목적지 도착 시간이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10분은 하루를 좌우할 만큼 가치있다. 당신의 황금같은 10분을 위해 서울인이 베스트 포지션을 공개한다. 지하철 1호선이나 3∼8호선을 이용하다가 2호선으로 갈아탄다면 열차 앞쪽이나 끝쪽이 베스트 좌석이다. 시청역에서 1호선 인천·천안행을 탔다가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열차의 첫번째 칸 첫번째 문에서 내리면 좋다.2호선 환승구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반대로 의정부북부행에서 2호선으로 가려면 열차 마지막칸 마지막문 앞에 서면 된다. 지하철 4호선을 이용, 동대문운동장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도 열차의 맨 앞 또는 가장 끝부분이 베스트 좌석이다. 사당행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탈 때는 열차 마지막칸 마지막 문이, 오이도행 4호선에서는 첫번째 열차 첫번째 문이 빠르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승강장 중간쯤에서 탑승해야 한다.1호선 인천행 열차를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바꾸어 타려면 뒤에서 네번째 칸 두번째 문, 의정부북부행에서 갈아타려면 네번째 칸 네번째 문을 이용하면 빠르다. 지하철 3개선이 한꺼번에 있는 종로3가역과 왕십리역은 매우 혼잡하고 환승구간이 길기 때문에 베스트 포지션을 알아두면 특히 유용하다.1호선 종로3가역에서 3호선이나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무조건 여섯번째 칸 첫번째 문앞에 서는 것이 좋다. 반면 3호선 종로3가 역에서 1호선으로 빨리 갈아탈 수 있는 베스트 포지션은 다소 복잡하다.3호선 수서행 열차에서 1호선 인천·병점행 열차로 빨리 갈아타려면 첫번째 열차 첫번째 문을,1호선 청량리행 열차에 타기 위해서는 두번째 열차 두번째 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반대로 3호선 대화행 열차에서 인천·병점행 1호선을 타려면 가장 마지막 열차 마지막 문을,1호선 청량리행에 타려면 아홉번째 열차 두번째 문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다. 지하철 5호선 상일동·마천행 열차를 타고 종로3가역에서 1·3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열차 맨 앞칸에 타는 것이 좋다. 반대로 방화행 열차에서 1·3호선으로 바꾸어 타려면 맨 마지막 열차 마지막 문을 이용하면 가장 빠르다. ■ 1호선 동묘앞역 안전·편리 최우수 지난해 12월21일 개통된 1호선 동묘앞역은 새로운 개념의 역사다. 이용이 편리하면서도 안전하게 설계됐다. 우선 기능실을 지상으로 올려 지하를 말끔히 정리했다. 그래서 6호선까지 환승거리가 45m에 불과하다. 에스컬레이터 16대와 엘리베이터 8대, 장애인 전용 게이트를 만들어 장애우, 노약자가 불편 없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승강장 바로 옆에 화장실을 배치한 것도 작은 배려다. 개찰구도 승강장과 맞붙어 오가기 편하다. 안전시설은 정교하다. 승강장과 대합실을 불연소재를 마감하고, 계단 부근에 제연수막을 설치해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았다. 승객대피 유도등과 더불어 시각장애인 음성안내기를 마련해 비상시를 대비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차단된다. 불이 위층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승강장을 2배로 넓혔다. 종합화상감시시스템을 도입해 역무실에 CCTV 48개를 한꺼번에 보며 승강장을 관리한다. 문철현 역장은 “동묘앞역은 ‘안전하고 편리한 지하철’을 말 그대로 실천한 새로운 역사”라고 강조했다. 역사의 또 다른 변화는 화장실에서 시작된다.4호선 숙대입구역와 삼각지역이 깨끗한 화장실로 명성을 얻자 서울메트로 강경호 사장이 1∼4호선 전 역사의 화장실을 바꾸도록 지시했다. 24일 삼각지 화장실 입구. 무가지와 잡지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자화장실에는 화장대와 아동용변기, 기저귀대, 숙녀용 비데가 마련돼 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대까지 눈에 띈다. 겨울이라 화분은 역무실로 옮겼지만 작은 화분과 시계가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화장실 개선을 주도한 삼각지 영업사업소 황춘자 소장은 “화장실이 깔끔해져 기분까지 상쾌해 졌다는 시민을 자주 만난다.”면서 “작은 변화가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 하루 632만명, 한해 22억명 수송 연간 22억명을 수송하는 서울지하철은 서울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규모면에서 세계 3∼4위를 다툴 정도로 선진 지하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서울메트로(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에서 운영하는 서울지하철은 1974년 8월15일 1호선이 개통한 이래 30여년 동안 양적·질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알고 타면 더 유익한 지하철에는 재미있는 통계가 살아 숨쉬고 있다. 수송인원은 하루평균 632만명을 수송, 연간 22억명에 이른다. 이는 하루 32만명에 불과하던 30년전에 비해 무려 27배가 늘어난 것이다. 서울지하철은 모스크바 33억명과 도쿄 26억명에 이어 세계 3위다. 영업거리는 286.9㎞로 30년전 7.8㎞에 비해 36배나 늘어났다. 이는 런던 415㎞, 뉴욕 368㎞, 도쿄 292㎞에 이어 세계 4위다. 서울지하철 역사는 30년전 9개 역사에서 1∼4호선 117개,5∼8호선 158개 등 모두 265개 역사로 29배 증가했다. 전동차량 수도 60량에서 3505량으로 59배 증가했다.2호선 본선과 1·3·4호선은 편성당 10량이다.5·6·7호선은 8량,8호선은 6량으로 구성돼 있다.2호선 지선인 성수∼신설동 구간은 편성당 4량이며, 신도림∼까치산역 구간은 6량이다. 한량의 길이는 20m로 내구연한 25년이 지나면 폐차시킬 수 있다. 지하철 1량의 탑승정원은 160명이지만 최고 400명까지 탈 수 있다. 최고 운행속도는 1∼4호선이 시속 110㎞이며,5∼8호선은 80㎞다. 가장 깊은 역은 8호선 산성역으로 지하 60m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짧은 역간 길이는 5호선 행당∼왕십리 구간으로 552m이며, 가장 긴 곳은 3호선 삼송∼원당 구간으로 5㎞에 이른다. 전철은 평택∼성환 구간이 9.4㎞다. 지하철역 중 가장 많은 출입구를 가진 역사는 1·3·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 3가역으로 출입구가 16개나 된다. 역무원 수는 4139명이다. 서울메트로 2380명, 도시철도공사 1759명이다. 하루 수익금만도 31억여원에 이른다. 1∼4호선의 전력사용량은 연간 8억 8000㎾, 한달 7360만㎾로 연간 655억원으로 한달 평균 55억원이 전기료로 들어간다. 이는 서울시 전체 전력사용량의 2.7%이며, 인구 14만여명이 거주하는 김포시나 구리시 전체가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규모다. 지하철 1㎞를 운행하는 데 1998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전기료로만 운임수익의 약 10%가 쓰여진다. 지하철 전기는 71%가 전동차 운행, 전동차 내부조명, 에어컨 가동 등에 쓰이며, 나머지는 역사조명과 에스컬레이터, 환기시설 가동 등에 사용된다. 2005년 지하철 1∼4호선의 유실물은 하루평균 74건, 연간 2만 6846건으로 한해 접수된 유실물의 70.2%인 1만 8850건이 본인에게 인계됐다. 유실물 중에는 가방이 전체 28.9%인 777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휴대전화와 MP3 등 전자제품이 12.3%(3305건), 의류 11.1%(2981건) 등의 순이었다. 현금도 7.9%(2145건)로 액수로 따지면 3억원에 달했다.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량은 5∼8호선의 경우 하루 15t에 이르는데 연간 5475t의 쓰레기가 나오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지하로 들어간 구청 민원서비스 지하철 현장민원실의 대민 서비스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강남·서초·노원·동작·양천구청 등 25개 구청에서 운영중인 지하철 현장민원실에서는 각종 민원서류 발급 뿐만 아니라 도서 대여, 인터넷 이용, 휴게실, 공부방, 어학강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서비스는 민원서류 발급. 직장인들이 50여개 역사에 있는 현장민원실이나 무인민원발급기에서 주민등록등초본 등 일선 동사무소에서 발급되는 대부분의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운영시간은 구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양천구청(구청장 추재엽)은 양천구청역과 신정네거리역, 목동역 등 3곳에 민원서비스와 함께 도서대여점을 운영한다. 하루 민원처리 건수는 하루 평균 100∼200건 정도로 이용객의 대부분이 출퇴근 직장인들이다. 역별로 2000여권의 도서를 배치해 무료도 대여해 주고 있다. 특히 차별화된 구청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역사내에 도서방, 문화의집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노원구청(구청장 이기재)은 지하철 7호선 마들역에 ‘문화의집’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어학강의와 문화교실, 어린이 놀이방, 인터넷 이용시설, 휴게실 등을 제공, 구민들이 주말에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하루 평균 100∼120명이 이용한다. 공부방에는 지하철 이용객은 물론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다. 컴퓨터 교실과 노래교실, 서양화교실, 한문교실, 서예교실 등 13개 강좌가 매일 개설돼 운영되고 있다. ■ 지하철 타고 고궁여행 “진분홍 연꽃을 물에 띄우고, 금으로 장식한 배로 봉래궁(蓬萊宮)에 이르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이 경복궁 경회루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지금은 연꽃도, 금으로 장식한 배도, 봉래궁도 없지만 조선시대 왕들이 노닐던 장소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지하철 티켓 한 장이면 그 곳들을 손쉽게 갈 수 있다. 서울시내에서 역사여행을 떠날 수 있는 지하철역 주변의 명소를 소개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풍류 경복궁(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건축한 조선시대 정궁(正宮). 광화문의 해태조각상, 근정전의 기단에 조각된 방위신상, 경회루 다리 및 영제교의 석교에 설치된 석조조각물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조각 미술품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경회루 방지(方池)는 왕과 왕비가 생활하는 침전의 서쪽과 연결됐으며 잔치도 하고 뱃놀이도 즐기며 때로는 외교사절을 영접하던 곳이다. 규모는 남북 113m, 동서 128m에 이른다. 1506년 연산군 시대 기록을 보면, 방지 서쪽에는 만세산(萬歲山)을 만들어 화려한 꽃을 심고 금·은·비단으로 장식한 봉래궁(蓬萊宮), 일궁(日宮), 월궁(月宮) 등 작은 궁궐을 만들었다. 왕은 황용주(黃龍舟)라는 작은 배를 타고 만세산(萬歲山)을 오고 갔으며, 때로는 비단꽃을 물 위에 띄우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워 밤이 낮같이 밝을 정도로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통합요금권 3000원(성인 기준) 한 장이면 경복궁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국립민속박물관·조선 왕실의 유물 4만여점이 전시된 국립고궁박물관도 함께 둘러 볼 수 있다. ●왕이 거닐던 정원 둘러볼까 창덕궁(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은 1405년 태종이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지었다. 경복궁 주요건물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을 골짜기에 안기도록 배치했다.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정자·연못·담장·다리 등을 설치해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창덕궁은 현재 남아 있는 궁궐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돼 있고 자연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언어권별로 정해진 시간에 입장할 수 있기 때문에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일정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들어갈 수 있다. 창덕궁 건너편의 종묘(1·3·5호선 종로3가역 8·11번 출구)는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심 속에 숲으로 둘러싸여 엄숙하면서도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담길 걸으며 문화의 향기 덕수궁(1호선 시청역 3번 출구,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은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는 곳으로 구한말 수많은 시련의 역사를 간직한 궁이다. 아관파천의 장소였던 옛 러시아공사관과 을사조약이 체결된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국중유물전시관과 덕수궁미술관이 있으며, 대한문에서는 월요일을 빼고 매일 수문장 교대의식이 열린다. 덕수궁 돌담길 건너편의 서울시립미술관도 볼거리다. 현재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3월 5일까지)’‘박노수 기증 작품전(2월 19일까지)’‘천경자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는 한국화단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로 남정의 작품세계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풍경 등을 모티브 삼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실험도 선보이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울역사박물관(5호선 서대문역 4번출구·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이 나온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여 보여 주는 대표적인 도시 역사박물관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과학·생활·놀이 문화 등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대구 우방타워랜드 무료개방 전망대 이용료만 받아

    대구의 상징물인 우방타워가 2월1일부터 무료로 개방된다. 1995년 우방타워랜드가 문을 연지 11년 만이다. 우방타워랜드는 우방타워 입장료(성인기준 8500원)를 폐지하는 대신 그동안 입장료를 내면 무료이용이 가능했던 우방타워 전망대 이용료(성인기준 3500원)를 신설했다고 26일 밝혔다. 또 입장객들의 편의를 위해 오는 3월부터 지하철 성당못과 두류역에 우방타워랜드 순환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대구 시티투어 노선에도 우방타워를 포함시켰다.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오스트리아 ‘모차르트의 해’

    오스트리아 ‘모차르트의 해’

    |잘츠부르크·빈(오스트리아) 함혜리특파원|산과 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 지금은 박물관인 이 건물 3층에서 1756년 1월27일 저녁 8시 한 어린아이가 태어났다. 요하네스 크리소토무스 볼프강 테오필루스. 그가 바로 ‘천상의 선물’로 일컬어지는 아름답고 다채로운 음악들을 선사하고 35세에 요절한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모차르트 탄생 250년을 맞아 잘츠부르크와 그가 25세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곡 활동을 했던 빈은 모차르트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지난 20일 모차르트 주간이 시작되면서 가는 곳마다 그의 음악이 울려퍼지고 기념품 가게에는 초콜릿부터 그의 얼굴을 본뜬 인형, 티셔츠, 모자, 골프공 등 기념품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은다. ●“축제 특수로 30만명 더 찾을 것”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게트라이데 거리의 생가에선 미국인 무대 디자이너 로버트 윌슨의 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그의 머리카락 한줌, 코담뱃갑, 어린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작은 바이올린, 여행 중 휘갈겨 쓴 악보 등을 볼 수 있다. 생가에서 만난 제인과 니콜은 호주의 퍼스에서 날아왔다. 이들은 “모차르트 음악을 너무 좋아해 올해 특별히 오스트리아 여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관광 당국은 올해 최소 30만명의 관광객이 모차르트 때문에 이 나라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1891년 제과사 폴 프루스트가 만든 쿠겔른 초콜릿은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명품. 매년 9000만개가 팔린다는 이 초콜릿은 샴페인 모양의 투명한 상자에 담은 신제품을 선보이며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티셔츠, 연필, 편지지, 냅킨, 손목시계, 재떨이, 라이터, 인형 등 모차르트가 새겨진 기념품들도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빈 시내의 모차르트 관광상품 전문점인 ‘모스틀리 모차르트’의 안지 메스너는 “팔 부분을 누르면 소야곡이 나오는 인형이 동양 여성들에게 무척 인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전통적인 기념품 외에도 소시지, 맥주, 포도주, 요구르트 등 다양한 상품들이 모차르트의 해를 기념해 쏟아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음반제작사 브릴리언트 클래식은 모차르트 전곡을 170장의 CD에 담은 ‘인테그럴 모차르트’를 99유로(약 12만원)라는 믿을 수 없는 싼 가격에 출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보통 클래식 CD 한장의 가격은 15∼18유로다. 오스트리아 해외홍보처의 아르투르 오베라셰 대표는 “‘모차르트’의 상표 가치는 무려 54억유로(약 6조 4800억원)에 이른다.”고 자랑했다. ●올 한 해 콘서트만 260회 잘츠부르크와 빈에서는 1년 내내 풍성하고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린다. 하이라이트는 27일 그의 일가가 살았던 노이에 리제덴츠의 박물관에서 친필 악보, 편지, 그림, 피아노 등을 보여주는 ‘비바 모차르트’전시회. 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쓴 빈 시내 중심가의 집이 ‘모차르트하우스’ 박물관으로 복원돼 이날 문을 연다. 그가 태어난 저녁 8시에 맞춰 잘츠부르크 성당의 종이 울리고 나면 게트라이데 거리의 생가에서 국제 모차르테움 재단 주최로 기념식이 마련되고 리카르도 무티 지휘로 빈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이어진다. 잘츠부르크에서는 한 해 동안 종교음악을 연주하는 55회의 미사와 함께 260회의 콘서트가 열린다.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와 체임버 솔로이스츠는 2∼11월 모차르테움 그레이트홀에서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29회의 주말콘서트를 연다.7월21일∼8월31일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모차르트 오페라, 악극 22개 전곡이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호반 가설무대에서는 여름 내내 토요일 밤에 영화 ‘아마데우스’가 상영된다. lotus@seoul.co.kr ■ 모차르트 여행길’ 20개 도시도 축제 |빈 함혜리특파원|모차르트는 36년이 채 못되는 1만 3097일을 살았다. 이 가운데 10년이 넘는 3720일(10년 2개월 8일)을 영국·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체코·독일 등지의 200여 도시를 여행하며 지냈다. 모차르트와 인연이 있는 도시들에서도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최초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던 파리에서는 30일부터 갸르니에궁에서 오페라 ‘돈조반니’를 공연하고 3월14일부터는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한다. 독일의 만하임은 오페라 가수 아로이지아 베버를 만나 첫사랑에 빠지는 등 모차르트에게는 중요한 인생경험을 하게 해준 곳. 그가 4차례나 방문했던 만하임에서는 27일 저녁 만하임 모차르트 오케스트라가 탄생축하 콘서트를 연다. 영국 런던에서는 27일 BBC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바비칸홀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미사곡 C단조를 연주한다. 런던의 대영 도서관에서는 170년 동안 반쪽으로 분리된 채 떠돌던 모차르트의 악보 두쪽을 모두 찾아 전시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유럽 여정과 이들 각 도시에서 열리는 주요 행사들은 ‘모차르트의 여정’(www.mozartway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lotus@seoul.co.kr ■ “‘빈’ 어디서나 모차르트 듣게될것” |빈(오스트리아) 함혜리특파원|“모차르트의 음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가 태어난 후에 이 세상에서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빈, 모차르트의 해 2006’의 피터 마르보(64) 총감독은 “올해 행사는 전 인류가 모차르트 음악에 다시 한번 귀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그의 음악을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는 소감은. -2006년이 ‘모차르트의 해’로 정해지긴 했지만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있는 한 언제나 ‘모차르트의 해’다. ▶올해 행사의 기본 컨셉트는. -우선 모차르트 음악의 진수를 제대로 경험하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컨디션을 제공하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를,20여개 성당에서는 모차르트의 종교음악을 각각 감상할 수 있다. 두번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유명 오페라 가수들이 초등학교를 찾아 오페라 워크숍을 연다. 양로원, 병원, 교도소 등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연주회를 갖는다. ▶예년의 모차르트 행사와 다른 점은. -모차르트 음악 덕분에 인류는 그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여러가지를 변화시켰다. 올해 행사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른 장르의 예술이나 종교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가 여행하고 머물렀던 유럽의 도시들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차르트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는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었다. 음악을 흔히 ‘만국 공용어’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실감하는 것이 바로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lotus@seoul.co.kr
  • [부고]

    ●조한익(전 농어촌개발공사 부총재)씨 별세 용상(경향신문사 사장)성상(전 우리투신운용 〃)근상(아이에프씨 대표)준상(파리크라상 상무)영상(미래아이교육 대표)씨 부친상 최규진(최규진 치과병원장)씨 빙부상 최혜순(경원대 유아교육과 교수)전순영(청주과학대 비서행정과 〃)씨 시부상 2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2)3410-6915●송원영(세계일보 편집국 사진부 기자)씨 모친상 23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5일 오전 10시 (02)590-2575●구자용(한국외대 정책과학대학원장)자현(건국대 의대 교수)씨 모친상 박찬숙(국회의원·한나라당 문화관광위원회)씨 시모상 구경본(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과장)방본(한양대 의공학교실 연구원)수본(YTN 기자)준본(한양대 의대 생화학교실)씨 조모상 길성연(증권업협회 주무)최서희(바이올리니스트)씨 시조모상 2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6912●김성기(선인 과장)우성(광주일보 사회2부장)씨 모친상 홍부칠(목포교도소 교도관)씨 빙모상 23일 광주 서구 봉선동성당, 발인 25일 오전 10시 011-633-0904●최복남(전주관광호텔 대표)복동(한진중공업 상무)복준(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경찰대)씨 부친상 23일 건국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2030-7907●조도현(아주대 생명분자공학부 교수)석용(신양피엔피 이사)씨 모친상 정욱(육군 중위)정환(대학생)씨 조모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10시 (02)3010-2262●이정대(현대자동차 부사장)정현(사업)정경(현대모비스 과장)씨 부친상 유병호(충남대 과장)이병무(안양공고 교사)씨 빙부상 김영미(청양정보고 교사)씨 시부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30분 (02)3010-2295●정병태(삼원건화 회장)씨 상배 택균(사업)문정(삼원케미칼 대표)석윤(삼원건화 〃)씨 모친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3010-2291●김형범(동양시스템즈 상무)씨 빙부상 23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2)590-2660●이병진(사업)창섭(중소기업진흥공단 과장)씨 모친상 이태우(주 나아지리아대사관 참사관)이문석(초원조경 대표)이수철(광주 상무축구단 코치)씨 빙모상 23일 대구 가톨릭대학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53)656-3445
  • “공직후보 경선때 진성당원 확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3일 정당이 지방선거 등 공직선거를 앞두고 당내 후보자 경선과 관련한 단속 및 관리사무의 위탁관리를 의뢰할 경우 투표권을 가진 당원이 진성 당원인지 여부를 직접 확인키로 했다. 선관위측 관계자는 이날 “정당이 경선사무 위탁관리를 의뢰하면 선거인명부상 당원의 진정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키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인류문명의 요람 터키 이스탄불

    [이슬람 문명과 도시] 인류문명의 요람 터키 이스탄불

    가까운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나에게 ‘평생 딱 한 군데를 보고 죽으라면 어디를 추천하겠냐?’고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스탄불을 꼭 가보라고 권한다. 한 도시에서 인류가 이룬 5000년의 결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매력 때문이다. 인류가 문명이란 이름으로 만들어 놓은 온갖 희망과 고뇌가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오리엔트, 그리스, 로마, 비잔틴 그리고 이슬람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인류의 역사가 이스탄불이란 좁은 공간에서 한 점으로 만난다. 그래서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스탄불을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 박물관’으로 불렀다. 유네스코가 이스탄불 역사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뿐이랴. 이스탄불은 이슬람과 기독교가 자연스레 만나 공존과 협력을 가르쳐 준 인류의 큰 스승이다. 자기 것만 내세우고, 자기 가치만 선이라고 믿고 있는 불행한 광신의 시대에 이스탄불은 문명에 대한 겸손은 물론 더불어 함께 사는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90번째로 찾은 이번 방문에서는 유럽연합 가입 문제로 이스탄불 전체가 시끌시끌하다.“유럽연합이 요구하는 32개에 달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다가는 국가를 통째로 내어주게 돼 있어요.” “국민의 99%가 이슬람을 믿고 있는 터키가 어떻게 기독교 공동체인 유럽연합에 통합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자유로운 노동시장 이동과 경제적 이익 때문에 유럽의 일원이 되는 게 옳아요.” 21세기 새로운 변화를 온몸으로 헤쳐 나가려는 터키 사람들에게서 나는 어떤 희망을 읽었다. 습관대로 구시가 유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이스탄불을 음미하면서 항상 그리스정교의 총본산인 6세기 비잔틴 건축물, 성 소피아 성당에서 출발한다. 맞은 편에는 천년이란 시차를 두고 블루 모스크가 6개의 첨탑과 장대한 돔을 뽐내며 서 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오른쪽 광장은 히포드롬이라 불리는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이다. 그리고 성 소피아 뒤편 바닷가에는 고고학 박물관과 500년간 유럽과 세계를 지배했던 오스만 대제국의 왕궁 토프카프가 숨어 있다. 초대 왕궁이었던 이스탄불 대학 정문으로 나오면 베야지트 광장에 벼룩시장이 섰고, 그 옆의 고서점가에서는 희귀 자료를 판다. 운 좋게 신라시대 한반도를 묘사한 고지도 사본을 구해볼 수 있었던 1984년 5월. 그 유학시절의 어느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흥분이 된다. 로마시대 지하 저수궁전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던 대시장 그랜드 바자르가 뜨거운 흥정의 열기를 품어낸다. 터키석도 이곳에서 살 수 있다. 이 엄청난 유산들이 모두 5분 거리의 시야에서 내가 한꺼번에 차지할 수 있는 진정한 보물들이다. 이스탄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 통치자 비자스는 오랜 기도 끝에 ‘눈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았다. 이 의미를 깨닫기 위해 고심하던 비자스는 보스포루스 해안 맞은편 언덕과 마주친 순간 무릎을 쳤다. 그곳에는 보스포루스와 마르마라 해, 에게 해 이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에다 세상의 절경이 숨어 있었다. 그 누구도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했던 언덕에 비자스의 도시 비잔티움이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지상의 낙원이란 비잔티움의 운명이 순탄할 리 없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 1000년 동안은 콘스탄티노플로 당당한 이름을 날리다가 1200년에는 십자군의 침략을 받고 다시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초토화됐다. 결국 1453년 5월29일 오스만제국이 이 도시를 점령함으로써 이스탄불이 됐다. 그리고 인류는 이스탄불과 함께 중세를 마감하고 근세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 모든 역사의 현장이 보스포루스 해협이다. 크루즈를 타고 1200만 대도심 한가운데 두 대륙을 가르며 흐르는 보스포루스에 서보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경치와 오른팔로 아시아를, 왼팔로 유럽을 감아 올린 그 기분, 그 감격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이스탄불이 주는 빼놓을 수 없는 선물은 그곳 사람들의 친절함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한국 사랑이다. 지구촌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일등국민 대접을 받고 형제로 반겨주는 나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해 주고 평가해 주는 참된 친구가 있는 나라가 터키다. 월드컵 이후 그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다짜고짜 우리를 끌어안았다. 터키팀 응원을 위한 서울 시민 서포터스라고 하자, 양볼에 입을 맞추고 반가워한다. 마음이 실려 있는 환영에 우리는 감동한다. 처음 보는 터키의 보통사람들. 아무리 바빠도 차 한잔 대접하겠다며 근처의 찻집으로 안내한다. 터키의 한국 사랑은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알타이 민족으로 먼 옛날 중앙아시아에서 한 핏줄로 살았다는 동류의식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다.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가까이는 한국전쟁 때 1만 5000명의 군대를 보내 3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사실 그들은 지난 50년간 한국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해왔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이스탄불에는 살아 움직이는 삶이 있고, 언제나 반겨주는 이웃과 친구가 있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문화의 향기가 가득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역사의 위대성과 가르침을 배운다. 누군가 역사와 자연, 사람과 음식, 볼 것과 살 것을 모두 갖춘 도시 이스탄불이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갈 보람을 느낀다고 했던가. 그래서 이스탄불을 한번 다녀오기만 하면 모두가 이스탄불 열병을 앓는다. 그러고는 다시 이스탄불을 찾아가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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