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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나는 과학이야기] 발바박은 왜 아치형일까?

    [신나는 과학이야기] 발바박은 왜 아치형일까?

    여행 삼아 다녀온 스페인에서 건물, 길, 다리, 수로 등 로마의 흔적이 남겨진 건축물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다. 역사는 변했지만 로마 건축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아치형의 아름다운 건축물의 흔적은 그대로였다.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해 종교적 색채가 묻어 있는 수도원, 대성당은 그 겉모습과 내부가 다양한 아치의 형태와 윤곽을 보여줘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아치는 볼트, 돔과 같이 로마의 건축가들이 빈공간의 주위를 둘러싸는 형태로 거대한 부피의 실내 공간을 확보하고자 했던 건축공학 기술이다. 고딕 건축과 로마네스크 양식인 아치 형태들의 공통점은 개구부(開口部)를 연결하는 독창적인 방법에 있다. 두 기둥 사이를 지나는 하나의 석조 수평부재 대신에 아치는 작은 쐐기 모양 돌들을 곡선으로 개구부에 쌓아 올림으로써 더 먼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아치 모양이 어떻게 힘을 효과적으로 견딜까? 사다리꼴 나무토막의 좁은 쪽을 아래로 한 후 서로 연결하여 만든 아치 구조물을 만들어 보면 아치 구조에 하중이 걸릴 때 중력 방향으로 가해진 힘과 아치 구조 자체의 무게는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이 힘은 다시 아치 구조물 사이를 밀어주는 접합력과 지지대를 향하는 지지력으로 작용하므로 아치구조는 안정적이 된다. 즉 힘의 분산이 효과적으로 일어나면서 안정적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아치 모양의 구조물을 위에서 누르는 힘으로 부수려면 매우 큰 힘이 필요하며, 반대로 안에서는 비교적 쉽게 깰 수 있다. 따라서 아치 구조는 자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데에 비중을 두는 다리, 혹은 건물 입구에 많이 이용된다. 현대의 아치는 철근 콘크리트나 철강을 재료로 하여 아치형을 더욱 크고 멀리 만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아치는?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부분에서 아치형의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동대문과 남대문을 비롯해 방화대교와 성산대교 등 한강다리에서도 볼 수 있는 아치형은 힘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리 위로 수많은 자동차들이 지나가도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경주 불국사의 금문교 역시 아치형 다리로 아랫부분은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또 경주의 석빙고도 전통적인 얼음저장고로 아치 구조의 빙실을 만들어 기둥을 없앰으로써 출입구를 통한 열손실을 막았다. ●발바닥은 왜 아치모양일까? 아치 모양은 사람의 발바닥 뼈, 갈비뼈, 파충류나 날달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체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발바닥은 평면이기보다는 아치형으로 생겨야 몸의 전체 하중을 균형적으로 잘 분산해 견디기 쉽다. 박지성 선수나 이봉주 선수처럼 평발에 가까운 사람은 아치형의 발보다는 이런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걷는 것 자체가 아주 피곤하다. 평발은 그만큼 발이 바닥에 많이 닿기 때문에 몸무게의 분산이 효과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극적인 결과를 얻었기에 두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냄이 마땅하다. 우리 몸을 이루는 뼈 안쪽이 파이프처럼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과 등뼈가 구부러져 있는 것 등도 우리 몸을 효과적으로 지탱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인체도 과학적인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은주 숭인중학교 교사
  • [종교플러스] 8일 ‘생명을 위한 미사’ 봉헌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31 운동본부(위원장 김지석 주교)는 8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생명을 위한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 미사는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이후 지속된 낙태와 생명조작, 사형, 전쟁 등 죽음의 문화를 청산하고 생명에 대한 의식과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범 천주교 캠페인인 ‘생명31’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행사다.
  • 승합차 도보순례단 덮쳐 학생 2명 사망·4명 중상

    30일 오전 10시23분쯤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조산리 앞 도로에서 정모(46·여)씨가 운전하던 렉스턴 승합차가 도보로 국토순례 중이던 학생들을 덮쳐 박모(14)군과 정모(14)군 등 2명이 숨지고 서모(14)군 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10분쯤 조산리 조산초등학교를 출발, 도로변을 따라 300여m를 행진하다 변을 당했다. 목적지인 내가면 고천3리 ‘바다의 별’ 수련원에는 오후 5시쯤 도착할 예정이었다. 도보 순례단에는 경기도 부천시 소사성당 ‘소년봉사단’ 소속 29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경찰은 승합차가 학생들을 뒤따라가며 서행하던 에스코트 차량을 추월하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기고] 순수 학문과 스티브 잡스/황필홍 단국대 교수 명예논설위원

    애플의 최고경영자이자 억만장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iPhone)이라는 이름의 휴대 전화기를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이폰은 휴대용 전화기로서의 쓰임은 물론이고 그 외에 음악감상, 동영상재생, 인터넷검색, 이메일, 전자지도, 위성위치정보시스템 등의 다기능을 내장하고 있다고 한다. 손바닥 반쪽 크기의 휴대 전화기가 개인용 컴퓨터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니 가히 놀랍다.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엑스포에서 선보이며 “아이폰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호주머니에 갖고 다니는 것으로 디지털기구의 최종으로 보면 좋겠다.”고 했던 잡스의 말이 실감난다. 50대 초반의 스티브 잡스는 남다른 굴곡의 인생을 살아왔다. 대학원생이던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출생 직후 입양되었다. 히피였고 대학은 돈이 달려 중퇴하였다. 일찍이 놀라운 컴퓨터 재능으로 애플컴퓨터 회사를 창립하였으나 이사진과의 경영철학에 대한 마찰로 인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으며 후일 특유의 감각과 열정으로 부활 복귀하였다. 한때 췌장암 판정을 받았으나 거뜬히 극복해냈고 그 후 승승장구 뮤직플레이어 아이포드로 음악시장을 평정하더니 이제는 아이폰으로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려고 벼르고 있다. 소위 성공신화다. 2005년 6월 미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초청연설을 지난여름에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연설에서 인상적인 것은 순수 학문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과 존중이었다. 잡스는 응용 학문을 고집스럽게 거부해온 100년 역사의 리드대학을 다녔다. 처음 1년은 제대로 다니고, 이후 1년 반은 등록하지 않은 채로 청강하면서 지냈다. 이때에 서체학이라는 일종의 예술철학 강의를 들었으며 이를 통해서 무엇이 인쇄체제를 위대하게 만드는지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당시에는 그것이 인생살이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리라는 생각을 못했으나 10년 지나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고스란히 되살아나 빛을 발했다고 술회하고 있다.“(그때 그 공부가 없었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젊은 날의 순수학문의 연찬이 훗날 그에게 응용과학분야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아이폰의 경우도 전문가들이 성공을 예감하며, 기술력과 디자인의 조합이자 수학과 예술의 조화라고 극찬하는 것을 봐도 또 다른 증명이다. 학제간 결합의 위대한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기능만으로도 놀랍기 그지없는데 복잡한 숫자 버튼이나 키보드를 꾹꾹 누르지 않아도 되고 액정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대기만 하면 메뉴를 선택할 수 있게 고안되었다니 더욱 참신하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맞닥뜨리며 도전에 당당히 맞서는, 그리고 이겨내는, 스티브 잡스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자 멋진 승부사다. 재주가 좋은 발군의 경영가 빌 게이츠보다는 부단히 노력하는 디지털 기술의 창조자 스티브 잡스가 어쩐지 우리 자신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 같아서 더 매력적이다. 성당(盛唐)시대의 두 거목 시인 중에서 천재시인 이백보다는 노력시인 두보를 더 좋아하고, 호화로운 삶을 끝없이 누렸던 왕유보다는 세상에서 소외되어 시대를 아파했던 그러나 주옥같은 시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맹호연이 더 좋은 것은 다 그런 맥락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스티브 잡스는 순수 학문에 대해 열정이 있고 또 그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하는 젊은이들에게 학문적 열정에 목마를 것과 주위의 시선에 타협하지 말고 소신껏 자기가 믿는 바를 부단히 추구해나갈 것을 당부하면서 스탠퍼드대 초청연설을 마쳤다. 황필홍 단국대 교수 명예논설위원
  • [부고]

    ●김정기(사업)정준(평화엔지니어링 이사)씨 부친상 이순우(우리은행 부행장)씨 빙부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0 ●신중호(옛 대한보증보험 부사장)씨 별세 문수(재미 사업)종수(재미 회사원)흥수(재미 연구원)씨 부친상 이인희(진성티이씨 감사)씨 빙부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02)3410-6917 ●정경수(한국담배소비자보호협회장)광수 문수 태수씨 부친상 장한경(광림교회 장로)정종두(팔택스코리아 대표)씨 빙부상 27일 순천향대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792-2131 ●이하원(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지원(의정부 효자중 교사)승준(연극 배우)씨 부친상 손요한(외환은행 해외영업본부 차장)씨 빙부상 28일 서울대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2072-2022 ●신난수(전 신림고 교장)연수(사업)기수(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씨 부친상 최인준(한국외대 교수)씨 빙부상 유재희(가천의대 교수)씨 시부상 27일 천주교 목동성당 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8시30분 (02)2645-6649 ●박정호(삼성투신크레딧리서치 선임)씨 별세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3010-2293 ●변규혁(한국수출입은행 리스크관리부장)규용(전 경인방송 기술국 차장)씨 모친상 28일 일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31)932-9168 ●이용우(국민참여1219)씨 모친상 이상윤(GS리테일)김문무(전 문예진흥원 감사)씨 빙모상 28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30일 오전 9시 (02)929-1299 ●명기범(이화여대 교수)씨 부친상 홍성후(전 한국전력)씨 빙모상 27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30분 (02)2650-2745 ●정희진(대림산업 차장)씨 모친상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30분 (02)3010-2240 ●권태호(한국수력원자력 홍보실 기업홍보팀장)씨 별세 2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후 (02)3010-2239 ●김수권(하나은행 을지로지점장)씨 빙부상 2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2)392-0899 ●이석원(대원에프에이 대표)정근(서기관)진숙(인덕약국 대표)순영(정치학 박사)씨 모친상 장병수(한자교육진흥회 전문위원)한상석(한솔공영 사장)씨 빙모상 28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2)392-3299
  • [부고]

    ●이승택(전 제주도지사)씨 별세 종익(외환은행 증권수탁부장)씨 부친상 안광신(대한합성화학 사장)씨 빙부상 25일 제주시 천주교 중앙성당, 발인 27일 오전 10시 (064)753-2271●이인식(전 동서식품 회장)씨 별세 대훈(알카린 부회장)성훈(한양사이버대 교수)동훈(메이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상훈(XBN 대표)씨 부친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02)3010-2295●홍성지(법무법인 천우 사무국장)씨 상배 건기(운수업)병기(국도화학 영업과장)씨 모친상 유성항(와이어리스엔지니어링 영업부장)씨 빙모상 25일 서울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2072-2032●정상범(서울경제신문 산업부 차장)상대(ING생명 강북지점 FC)씨 부친상 김덕정(공무원연금관리공단 부장)이종형(지호건설 이사)김선호(참제약 강원지점장)씨 빙부상 25일 강릉동인종합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33)650-6165●김은진(유하정판 대리)이진(한국웨일즈제약)주진(LG전자 브랜드커뮤니케이션2Gr 부장)씨 모친상 김진배(한일이엔디 대표)씨 빙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3010-2294●이제건(미국 거주)제남(〃)제철(화동양행 사장)씨 부친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9일 오전 6시30분 (02)3410-6916●박연구(자영업)승구(LG전자 홍보실 차장)상구(자영업)부친상 한석현(자영업)정진현(자영업)신재술(운송업)빙부상 25일 경기도립의료원 포천병원, 발인 27일 오전 3시 (031)539-9114●권영환(신세기보험 대표)영원(DCT 〃)영혜(한국국제미협 부회장)씨 모친상 송동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김형태(BAU컨설턴트 전무)씨 빙모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30분 (02)3010-2265●권인오(자영업)오성(KBS교향악단 단원)씨 부친상 신현길(코트라 마케팅지원팀장)씨 빙부상 25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31)787-1511●박진호(JW메리어트호텔 기술부장)주호(교육인적자원부 지식정보정책과장)정호(국세청 납세자보호과)춘호(한미연합사 소위)씨 부친상 25일 전남 광양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8시 (061)761-5500
  • “가해자 역사적 심판 이어져야”

    “가해자 역사적 심판 이어져야”

    “1975년 4월9일,8명의 생명이 스러져간 그날 그곳에 ‘빨갱이’는 없었습니다.‘조작’이라는 단 하나의 진실이 이제서야 겨우 밝혀졌습니다.”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고인이 된 피고인들에게 32년만에 무죄를 선고한 다음날인 24일 서울 군자동 메리놀성당 사제관에서 제임스 시노트(78) 신부를 만났다. 조금 발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에는 채 가시지 않은 선고 당시의 감동이 역력했다.“도예종·서도원·하재완·송상진·우홍선·김용원·이수병·여정남…. 이제 시작입니다. 이들을 올바르게 기억하면서 추악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명운동 펼치다 75년 4월 강제추방 당해 미국인인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조작 사실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인물로, 해외 언론들에 관련 내용을 알리면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된 8명의 구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이 때문에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으로부터 집안까지 감시당해야 했고 결국 1975년 4월말 강제 추방당했다. 하지만 추방된 후에도 미국 정부나 언론사에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해 왔으며,2002년 다시 한국에 영구 귀국했다. 시노트 신부는 32년만의 무죄 선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뒤, 감동과 울분·기쁨과 슬픔·웃음과 눈물이 한꺼번에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거기 그대로 있다가는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종일 지난 30여년을 조용히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죠.” ●“박정희 칭송 얘기 들을때마다 분노 치솟아” 그는 “결코 이번 무죄 판결이 ‘끝맺음’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8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을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노트 신부는 정확한 발음으로 박정희(당시 대통령), 민복기(당시 대법원장), 신직수(당시 중앙정보부장)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이들에 대한 역사의 심판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즘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거나 칭송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분노가 치솟는다.”면서 “젊은이들이 정치·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다가는 암울한 역사가 재연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대통령 자리 꿈꾼다면 가족에 사과해야” 시노트 신부는 때마침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던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새해 연두 기자회견을 보면서 “미국도 부시와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힐 정도로 정치·사회의식이 많이 퇴색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의 부시와 과거의 박정희는 ‘악(evil)’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또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법원에 의해 무죄 판결이 난 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표가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통령 자리를 꿈꾼다면 적어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가슴과 삶에 새겨진 ‘빨갱이’란 말을 지워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씨줄날줄] 피에르 신부/함혜리 논설위원

    1954년 2월1일 정오. 낯선 목소리가 라디오뤽상부르 방송의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형제, 자매 여러분. 방금 한 여인이 얼어 숨졌습니다. 담요 3000장과 대형텐트 300개, 난로 200개가 당장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도와준다면 오늘 밤 아스팔트 위나 강 둑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노숙자 보호를 촉구하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엠마우스 공동체를 세운 아베 피에르(피에르 신부)였다. 나치 독일에서 해방된 지 10년이 가까워 오면서 프랑스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있었지만 절대 빈곤층의 주거난과 생활고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을 때였다. 피에르 신부의 호소는 전 프랑스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엠마우스 본부가 있는 로체스터관의 홀은 순식간에 전국에서 온 구호품으로 넘쳐났다. 보석, 모피코트, 가재 도구, 초콜릿, 통조림 등 가릴 것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정치인, 사업가, 연예인, 예술가, 노동자 등 각계 각층에서 성금이 몰려들어 은행에서는 로체스터관에 창구를 개설했을 정도였다. 하루는 자그마한 체구의 남자가 와서 200만프랑을 현금으로 기부하고 갔다.“이 돈은 드리는 게 아니라 돌려주는 겁니다. 내가 속해 있던 거리의 사람들 것입니다.”찰리 채플린이었다. 이렇게 모아진 구호품은 300t이나 됐고 성금은 5000만 프랑이나 됐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진 성원의 편지도 30만통이나 됐다. 아베 피에르 재단이 만들어졌으며 노숙자 수용시설들이 세워졌다. 정부는 이 일을 계기로 월세를 내지 않는 세입자라도 한겨울에는 집에서 내쫓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 일은 ‘54년 겨울’이라는 영화의 소재로 다뤄지기도 했다. 베레모에 검은 수도사 망토를 걸치고 ‘선의의 반란’을 일으키며 평생을 살아온 피에르 신부가 22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의 장례식은 26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국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새삼 그가 남긴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산다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오늘밤에도 지하도에서 새우잠을 청해야 하는 우리의 노숙자들에게는 누가 사랑을 나눠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신의 아그네스’ 히로인 전예서

    ‘신의 아그네스’ 히로인 전예서

    고전은 진부하지 않다. 재미있는 데다 논란거리까지 안겨준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1983년 국내 초연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기적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고 관객들이 열띤 성원을 보낸다는 점에서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다.15년전의 명콤비 박정자, 손숙이 다시 뭉쳐 화제를 모은 ‘신의 아그네스’에서 아그네스역의 신인 전예서(26)는 관록의 두 중견 배우에 밀리지 않는 열연을 펼치고 있다. “아그네스는 막연히 순수하고 맑을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대본을 보고 아픔이 많은 인물이라 당황하기도 했어요. 불우함을 이겨내고 성인이 되고 싶어하는 아그네스 자체가 기적이 아닐까요.” 전예서는 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아그네스역에 발탁되기 직전,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완벽한 수녀 역할을 해내기 위해 수녀원에서 생활할 생각도 했지만, 일반인이 들어가기는 어려워 대신 성당을 자주 찾았다. 연극 무대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아오리역을 장기공연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남성 관객들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기생 청향역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지고지순한 조선 여인상이 아니라 고관대작에게도 할 말 다하는 똑부러진 기녀였다. 무대에서 전예서는 어린아이같으면서도 상처로 괴로워하는 아그네스의 다면적인 성격을 여러 빛깔의 목소리로 표현해낸다. 박정자의 울림있는 발성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객석 관람객들의 눈동자도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에너지로 빨아들인다. 관록의 두 선배 배우를 보면서 가장 본받고 싶은 것이 체력. 장기공연을 위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신의 아그네스’는 정한용, 정준호 등 배우들이 앞다퉈 찾을 정도로 연기의 교본이 되고 있다. 주부들을 위한 수요일 낮공연, 수녀원의 단체관람도 성황이다. 윤석화, 신애라, 김혜수에 이어 다섯번째로 아그네스역을 맡은 전예서는 그녀만의 ‘오묘한’ 아그네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1) 구 천주교 포천성당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1) 구 천주교 포천성당

    문화유산의 멋과 의미는 후대에 가공되지 않은 본래의 모습에서 외려 오롯하게 살아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심하게 훼손된 채, 혹은 아주 작은 부분만 옛 모습대로 남아 있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화려했던 옛날을 들쳐보게 만드는 그리스 곳곳의 폐허화된 유적이며 유물들은 그래서 더 빛이 난다. 옛 것을 지금의 기준으로 다듬어 되살려내는 복원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남겨진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곱씹는 역사의 교훈과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유일한 등록문화재인 구(舊)천주교 포천성당(경기도 포천시 신읍동·등록문화재 제271호).1950년대 중반 군부대에 의해 지어져 역사는 그다지 오래지 않지만 훼손된 뒤 복원의 손길을 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희귀한 문화유산이다. ●붉은 성가정 성당 옆 회색빛 벽체 만나다 포천시내의 신읍동에서 서편 왕방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좁은 길을 오르다보면 산 중턱의 예쁘장한 성가정 성당을 만나게 된다. 현대식 건물의 성당 경내에 들어서면 사제관 앞 언덕을 둔중하게 두른 거대한 축대 위의 흉물스러운(?) 또 다른 건물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쏠린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지붕은 온데간데 없고 벽체만 을씨년스럽게 서있어 그야말로 폐허를 연상케 한다. 바로 이곳이 구 천주교 포천성당이다. 동쪽 종탑 아래에 ‘성가브리엘성당’이라 새겨진 아치형 출입문에서 휑뎅그렁하게 매달린 종을 올려다보며 안으로 들어서면, 안인지 바깥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하늘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부서져 떨어져나간 틈새를 시멘트로 메운 화강암 벽체가 서있기조차도 버거워 보인다. 그럼에도 서쪽 정면의 감실이며 감실 앞에 두켜로 만들어진 제단은 이곳이 한때 간단치 않은 신앙의 중심 공간이었음을 말없이 보여준다. ●대지 기증 받아 공병대대가 5개월간 공사 한국의 성당들은 대부분 신자와 신자들의 신앙공간인 공소를 중심으로 해서 세워지곤 했다. 그런데 이 성당은 거꾸로 성당이 먼저 세워진 뒤 신자들이 모여들고 본당이 설정된 특이한 역사를 갖고 있다.6·25전란의 험한 세상에서도 살아 남은 교회들은 당시 천주교 신자들에게 ‘하느님이 보호하는 굳건한 성’이란 인식을 심기에 충분했다. 그런 때문인지 1950년대엔 유난히 석조건물이 많이 들어섰는데 의정부 제2성당(1953년), 돈암동성당(1955년), 횡성성당(1956년), 홍천성당(1957년), 제기동성당(1957년)이 모두 그런 성당들이다. 특히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석조건물이 적지 않았는데 이 포천성당은 군부대가 직접 세운것 가운데 남아 있는 유일한 성당이다. 6·25전쟁의 포화가 멈춘 1955년 당시 육군 6군단 군단장이었던 이한림 장군이 성당을 지은 주인공. 할머니의 인도로 독실한 신자가 되었던 이 장군은 당시 신앙처가 없던 포천에 성당터를 물색하던 중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곳을 낙점했다고 한다. 폐허의 성당 앞에 서면 지금도 포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포천의 유지로부터 기증받은 1000여평의 대지 위에 5개월간의 공사 끝에 55평짜리 석조성당과 20평의 사제관으로 지었는데 공사는 모두 이 장군의 지시를 받아 공병대대가 맡았다. 종탑 아래 아치형 벽체에 새겨진 ‘성가브리엘성당’의 이름은 이 장군의 세례명을 땄다고 한다. ●사업실패자가 촛불 켜고 잠들어 지붕 소실 1955년 11월말 완공되었을 때의 모습은 나무 마루바닥에, 인근 덕정리에서 날라온 화강암 벽체와 종탑을 세우고 함석지붕을 인 준고딕식 조적조 성당이었다. 나중에 나무바닥을 걷어내고 시멘트와 모래를 섞은 돌 바닥으로 바꾸었으며 지붕도 동판 기와로 교체했다.1990년 사업에 실패한 전직 경찰 출신이 성당안 제의실에서 촛불을 켜놓고 잠을 자다가 불을 내는 바람에 벽체만 남긴 채 지붕이며 제대, 성물이 모두 소실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됐다. 불이 난 뒤 지역 신자들이 건물 붕괴를 우려해 성당을 헐어 새로 짓자고 했지만 문화재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포천성당 신부, 학자들이 고집을 부려 마침내 지난해 등록문화재 목록에 올랐다. 비록 성당안 구조물은 모두 소실됐지만 서쪽 벽에 뚜렷하게 남은 감실과 제의 때 신부들이 감실을 오르내리던 계단은 신자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제대가 놓여 있던 제단이 두개의 층으로 구분된 것도 흥미롭다. 성당이 처음 지어졌을 때 신부들이 신자들에게 등을 돌린 채 미사를 집전하던 제단에 더해 나중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신자들을 바라보고 집전하기 위해 새로 만든 제단이 붙어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지난해 등록문화재 올라 본당이 설정된 것은 성당이 지어진 이듬해인 1956년. 이후 지난 2004년 의정부교구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될 때까지 의정부 지역을 비롯해 송우리성당, 일동성당, 운천성당, 가산성당 등 경기 북부지역의 5개 본당을 관할하는 중심본당으로 성장했다. 구 성당 아래의 본당인 성가정 성당은 지난 1992년 별도의 건물로 새로 지은 것이다. 춘천교구와 성당측은 구 성당의 외벽 등 지금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보수공사를 거쳐 주민들과 미사며 문화행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 구 성당을 문화재에 등재하는데 앞장섰던 단국대 김정신 교수(건축학)는 “군의 원조를 받거나 군이 직접 지은 종교건물 중 유일하게 남은 희귀유산인데다 도시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사의 흔적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보존가치가 크다.”며 “외관을 그대로 보존한 채 전시회나 야외미사, 휴식처 등 소규모의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홍인, 신유박해때 고향 포천서 순교… 지역 천주교 ‘뿌리’ 구 천주교 포천성당이 지어질 때만 해도 이렇다 할 신앙공간이 없었지만 포천 지역은 원래 믿음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이 포천 지역에 천주교 신앙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 바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홍인(레오·1758∼1802)으로, 지금도 천주교사에 굵은 선으로 남아 있다. 한양에서 포천으로 이주해 온 명망있는 집안 출신인 홍인은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운 부친에게서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포천에서 자라난 홍인은 1794년말 중국에서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아 입교했다. 이후 당숙인 홍익만, 황사영 등과 교류하던 중 1801년 신유박해 때 정약종의 책 뭉치가 든 상자를 집안에 숨겨 두었다가 발각돼 44세의 나이에 고향 포천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함께 체포된 부친은 한양으로 압송된 뒤 참수됐다. 그 즈음 홍인과 부친의 순교 소식은 전국에 퍼졌으며 다른 지방의 신자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신앙공동체를 일구기 시작해 1900년대초 포천읍 선단리 해룡마을에 공소가 세워졌다. 이후 1930년대 개성본당,1931∼1935년 행주본당의 관할에 들었으며 1935년부터 덕정리 본당(현 의정부2동 본당) 관할지역에 속했다. 이한림 장군이 포천성당을 세운 이듬해인 1956년 본당이 설정되면서 경기북부와 강원도 일부지역을 관할하는 중심성당으로 우뚝 선 것이다. 신앙심이 유별났던 이한림 장군이 포천지역에 성당을 건립할 뜻을 세운 것도 이같은 포천지역의 신앙 내력을 잘 알았던 때문일 것이다. 성당 건립부지를 선뜻 내놓은 지역 유지도 물론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황진이/송상욱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황진이/송상욱

    칠성당 꽃각시 혼 풀려나간 무지개 끝자락에서 뱀 울음소리가 난다 뱀 울음소리는, 끝에서 독을 풀어낸 전생의 사랑이 끝난 빈 몸에서 빠져나간 영혼의 색깔이 하늘에 묻어 죽어, 꿈속에서도 사랑을 사르는 허공 높이 만장이 뻗친 ‘하늘상여’ 한 채 떠 있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나애심(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나애심(2)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싱잉스타’ 시대를 연 나애심씨가 발표한 노래들은 대부분 오빠인 작곡가 겸 연주인 전오승씨가 만든 곡들이다. 이 ‘전봉수-전봉선’ 남매, 즉 ‘전오승-나애심’ 콤비는 대구 피란시절 취입한 나애심씨의 데뷔곡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언제까지나’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마세요’를 비롯해 60년대 들어서도 ‘맘보는 난 싫어’ ‘해 떨어지기 전에’ ‘아카시아 꽃잎 질 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생활 속에 미국 문화가 급속히 유입되었다. 대중가요 역시 상당수의 노래가 5음계를 탈피해 화성과 선율이 서양화되기 시작한다. 이전 가요에서 찾기 쉽지 않았던 새로운 리듬들이 속속 등장할 무렵 당시 젊은 작곡가 전오승 역시 특히 폴카나 룸바 리듬에 매력을 느낀 듯하다. 계층상승적 욕구와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조류가 유행을 선도했던 그 변화의 중심에 전오승씨가 있었고 그와 콤비를 이루며 새로운 리듬을 따라 인기를 누리던 리더가 나애심씨였다. 이들 남매의 대표곡 중 하나가 ‘과거를 묻지마세요’. 이 노래는 1959년 개봉된 영화주제가로 영화에서의 타이틀 롤은 배우 문정숙씨가 맡아 열연했다. 주제가는 정성수 작사, 전오승 작곡, 나애심 노래로 이들은 모두 이북 출신이다. 이를테면 아픈 역사의 증언이요, 우리 민족의 넋두리인 셈이다. 작사자 정성수씨는 이 노랫말을 통해 ‘38선이란 장벽이 하루 빨리 무너지고 북녘 땅에도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어둡고 괴로웠던 과거를 서로 묻지 말고 앞으로 평화롭게 함께 살자’라는 메시지를 담아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의 희망을 동시에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이 노래의 빅 히트와 더불어 한때 이 ‘과거를 묻지마세요’라는 단어는 남녀관계를 비유하는 말로 비화되어 한동안 유행어로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은막의 스타’로서 나애심씨는 1956년 ‘백치 아다다’에 이어 ‘나는 너를 싫어한다(권영순 감독)’,‘쌀(신상옥 감독)’,‘육체의 고백(조긍하 감독)’,‘감자(김승옥 감독)’등을 비롯해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활동이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처음엔 다큐멘터리 기록영화, 문예영화 등에 주로 출연했어요. 이후 술집마담 같은 역을 맡기도 했는데 어느 날 세 살 난 어린 딸이 젓가락장단을 두드리며 엄마의 영화장면을 흉내내며 놀고 있더군요. 이때 충격을 받아 이후부터는 주어지는 배역들에 지나치게 신경쓰다 보니 연기 폭이 많이 위축되었지요.” 이 회고 속에 등장하는 어린 딸이 바로 가수 김혜림씨.1989년 ‘DDD’라는 노래를 발표해 사랑받았던 가수다. 그렇듯 ‘나애심 가족’은 소문난 ‘스타 패밀리’였다. 오빠인 연주인 겸 작곡가 전오승씨, 그리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1년)’에서 ‘옥희’로 기억되는 아역배우 출신 전영선씨가 바로 전오승씨의 딸. 또 나애심씨의 세 살 아래 동생 전봉옥씨 역시 성악을 전공했던 재원으로 전오승 작곡의 ‘샌프란시스코의 꾸냥(姑娘)’,‘스냅 사진사’ 등을 발표했던 가수. 아울러 나애심씨의 딸인 가수 김혜림씨까지, 말하자면 이들 ‘연예가족’의 이야기는 한동안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애심씨의 큰 키는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줄었다. 아울러 본인 스스로 ‘쿤타킨테 머리’라 부르는, 이른바 머리숱이 많아보이게 하는 파마 헤어스타일로 변신해 지내고 있다는 조크를 던지기도 하는 그는 1983년부터 그 동안의 모든 연예활동을 접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하고 있다. 동시에 ‘세상노래’는 앞으로 입에 올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동안 성가집만을 틈틈이 발표해 왔다. “처음 병원에서 ‘골다공증’ 진단이 나왔을 때는 그게 무슨 용어인지 몰라 ‘골고다의 언덕’이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그만큼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지요. 또한 연예활동 내내 나이를 적게 속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믿으니 거짓말은 더 이상 안 되겠지요?”라며 실제 본인은 ‘30년 말띠 생’이었음을 웃으며 밝히기도 했다. 특히 물자부족과 열악한 시설로 ‘우리나라 최악의 음반 침체기’였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더욱이 음반 제작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전오승-나애심’ 콤비가 남긴 아름다운 노래들은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낚시광’으로도 소문난 작곡가 전오승씨는 현재 딸 전영선씨와 함께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부고]

    ●김재위(전 국회의원)씨 상배 광탁(금광타워 대표)명탁(옴니콤 〃)정탁(성균관대 신방과 교수)준탁(평화아카데미 원장)씨 모친상 이병학(사업)씨 빙모상 오은희(서울예대 무용과 교수)장혜옥(아이오와대학병원 연구원)최경미(캐나다 거주)씨 시모상 15일 서울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2072-2014●장현준(KAIST 교수)경준(삼일회계법인 부대표)씨 모친상 오영주(상업)최기식(선덕중 교사)씨 빙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5●황희수(대성그룹 본부장)은희씨 모친상 허승훈(속초여중 교사)씨 빙모상 16일 수원 아주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31)219-4120●이태종(롯데캐피탈 상무)건종(자영업)홍종(대원식품 상무)씨 모친상 이종수(재미교포)김권회(자영업)이태우(〃)김형대(〃)씨 빙모상 16일 성남 분당요한성당, 발인 18일 오전 8시 (031)780-1156●한순철(프로농구 원주 동부 사무국장)씨 부친상 15일 경북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53)420-6152●채수봉(닷넷소프트 차장)씨 부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010-2237●황성빈(태학관 대표)금선(사업)주선(〃)씨 모친상 15일 흑석동 중앙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5시 (02)860-3510●김도식(김외과 원장)선우명호(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10시 (02)3010-2294●이창호(삼성전자 과장)씨 부친상 호상모(경남기업 상무)손승학(대한광업진흥공사 선임과장)황용해(아주엔지니어링 부장)씨 빙부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2)3410-6920●전병두(자영업)병문(전 대구 학산중 교장)병천(중소기업진흥공단 마케팅사업처장)숙자(전 경북 안동서부초등학교 교사)영숙(안동서부초등학교 〃)씨 모친상 김성한(전 안동 길주중 교장)씨 빙모상 16일 경북 안동의료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10-7180-6840●엄상용(사업)순용(〃)씨 부친상 16일 수원 효원장례문화센터, 발인 18일 오전 7시 (031)231-8938●안재걸(삼환기업)지완씨 모친상 송영한(현대자동차)씨 빙모상 안용석(대우건설)씨 조모상 16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30분 (031)787-1501
  • “개헌에 도움되면 탈당 고려”

    “개헌에 도움되면 탈당 고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일 전격적인 개헌 제안에 이어 11일 전면에 나서 “야당들이 개헌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온다면 탈당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속카드’로 나돌던 조기 하야설에 대해서는 “임기 단축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가진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정치개혁’이라는 등식 아래 ‘조건부 탈당 가능성’을 열어놨다. 노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는 이날 아침 갑작스럽게 마련됐다. 전날 3부 요인 등과의 오찬에 이어 개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 정당 대표의 오찬 간담회가 한나라당·민주당·민노당·국민중심당 등 야4당이 모두 불참한 채 열린우리당만 참석,‘반쪽 모임’이 된 상황에서 급조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 앞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김한길 원내대표 등 12명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도 “국민적 합의를 모아 가는데 필요하다면, 또 개헌에 도움이 된다면 (탈당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개헌안이 부결된다는 것을 불신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 신임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정략적인 의도’라는 비판을 의식,“개헌안이 설사 부결된다고 해서 대통령이 기 죽을 일도 없고, 헌법상 권한이 소멸될 일도 없다.”면서 “가급적이면 국회의원과 대통령 임기를 동시에 시작해 국정을 안정시키자는 것”이라고 진정성을 강조했다.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추가로 제기할 가능성에 대해 “일정 지역에서 지역적 독점권을 갖고 있는 정당에 결정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억지로 자꾸 하자고 설득할 수 없다.”면서 “설득하더라도 다른 어떤 큰 교환조건이 없는 한 되는 일이 아니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노 대통령의 기자간담회를 통한 직접적인 대국민 설득과는 별도로 청와대 참모들은 종교계를 방문, 개헌 추진에 대해 협조를 당부했다. 참모들은 앞으로 TV나 라디오 등 방송 프로그램에 적극 출연, 개헌의 당위성을 설명할 계획이다. 이정호 시민사회수석은 이날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을 예방, 천주교의 협조를 요청했다. 김병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도 지관스님을 찾아 조계종단의 지원을 부탁했다. 차성수 시민사회비서관은 MBC 100분 토론에 출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노당 등 야당은 일제히 노 대통령의 개헌 추진을 ‘정략’으로 몰면서 사실상 ‘반 개헌 전선’을 형성, 개헌정국의 난기류는 계속될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은 야당의 개헌논의에 대한 동참을 촉구하면서 개헌특위를 구성, 적극적인 개헌 추진에 나서기로 했으나, 여당내 일각에서 임기내 개헌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나오고 있어 개헌 추진이 강한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임기단축 등 정치적 시나리오에 대한 의혹을 차단함으로써 정국의 불투명성을 제거했다.”고 평가,“야당은 개헌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개헌논의에 즉각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일방적으로 개헌논의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이고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대통령제 나라보다 내각제 하는 나라가 부럽다.”고 말했다고 참석했던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갈수록 꼬이는 사찰 문화재관람료

    갈수록 꼬이는 사찰 문화재관람료

    지난 1일부터 전격 실시된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와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놓고 전국에서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일반 탐방객들과 전국 사찰에서 마찰을 빚자 문화연대는 국립공원입장료의 졸속 폐지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고 전남 백양사를 중심으로 한 조계종 사찰들은 국립공원에서 사찰 토지를 제외시켜 줄 것을 요구하며 국립공원 지정 해제를 위한 연대 운동에 돌입하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문화재보호법을 적용해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사찰은 모두 68곳. 이 가운데 국립공원 안에 들어 있는 법주사, 월정사,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불국사·석굴암을 비롯한 22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합동 징수해온 이들 사찰은 새해들어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뒤에도 공원 입장료와 상관없이 1200∼1600원 수준의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등산객을 비롯해 사찰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는 이들도 관람료를 내야 한다는 점. 특히 대부분의 사찰들이 종전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던 자리에서 그대로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어 마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루 평균 500∼600명 정도의 탐방객이 찾아드는 오대산 월정사의 경우 매일 5∼6건의 마찰이 생겨 스님들과 직원들이 관광객을 일일이 설득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를 비롯한 해당 사찰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사찰 문화재 유지 보수를 위해 관람료 징수가 불가피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조계종측은 “종전 설치된 국립공원 소유지의 매표소를 사찰 안으로 이전하는데 6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매표소 이전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조계종 측에 따르면 현재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68개 사찰의 문화재 유지관리 비용은 연간 809억원. 이 가운데 문화재관람료를 통해 320억원 정도를 충당하고 있다. 이치범 환경부 장관이 10일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기존의 매표소를 사찰 입구 등으로 옮겨 관람료를 받도록 협의할 계획”이라며 진화작업에 나서 해당 사찰들의 반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 통합징수는 해묵은 문제였으며 지난해 정부의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결정 이후 이같은 마찰을 해소할 대안 마련이 끊임없이 요구되어 왔다. 무엇보다 공원 입장료 폐지에 앞서 공원입구의 매표소 위치를 사찰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사전 조치 없이 무리하게 시행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문화연대가 지난 5일 ‘조삼모사 격의 국립공원입장료 졸속 폐지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성명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운영비 230여억 원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실시된 입장료 폐지가 출발부터 삐거덕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운영비 보조라는 형태의 입장료 폐지는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일부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인상,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주차료 및 시설이용료 인상 등 조삼모사 격의 조치만 낳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백양사가 지난 7일 긴급 임회를 열어 “사찰의 국립공원 지정을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도 예사롭지 않다. 백양사는 “불교계와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정된 사찰 토지와 자연문화유산에 대한 국립공원 지정은 당연히 해제되어야 한다.”며 다른 지역 국립공원내 사찰들과 연대해 국회에 국립공원 지정 해제를 촉구하는 청원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 주목된다. 문제는 매표소 이전이나 사찰의 국립공원 지정 해제와 같은 단편적인 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불교계는 사찰 문화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문화재 보존 유지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지원이 따른다면 굳이 문화재 관람료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불교계 조사에 따르면 중세교회와 성당이 집중돼 있는 유럽의 경우 평균 5000원 이상의 입장료를 받는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문화재를 보유한 종교시설은 어김없이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연대나 시민단체가 지적하듯 문화재관람료와 관련한 사찰측의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연간 얼마나 걷히며 어떻게 쓰이는지 밝혀지지 않은 문화재관람료를 일방적으로 징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문화재를 보수, 유지하기 위해서 문화재관람료는 필수적이며 그 최소한의 비용마저 양보할 수 없다.”는 사찰들의 막연한 주장은 지금처럼 입장료 마찰 같은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 은진미륵의 발가락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 은진미륵의 발가락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는 충남 논산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불교조각 가운데 촌스럽기로 첫손가락에 꼽힙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고려 초기 대작(大作) 불상을 두고 지방색이 강하다느니, 파격적이고 서민적이라느니 점잖게들 설명하지만, 시골 조각가의 서툰 솜씨라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대표적인 미술사학자인 진홍섭 선생 등이 최근 펴낸 ‘한국미술사’를 펼쳐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얼굴의 표현이나 원통형의 불신은 거작을 만들려는 의욕을 작가의 기량이 따르지 못한 예”라고 설명하고 있군요. 얼굴이나 몸통이기에 망정이지, 발가락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조각의 조(彫)자도 모르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혹평이 나왔을 겁니다. 실제로 신체의 일부분을 표현했다기보다 ‘받침대’라는 기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미술사학자들이 은진미륵에 냉정한 시선을 보내는 동안 관촉사를 찾았던 보통사람들의 느낌은 조금 달랐던 듯합니다. 김장철에 더욱 인기를 끄는 ‘강경 젓갈여행’에는 보통 관촉사 방문코스가 들어 있는데, 우연치 않게 마주친 은진미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여행후기가 적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 눈에 익은 은진미륵은 미술사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얼굴이 지나치게 커서 4등신에도 못미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키가 18.2m에 이르는 미륵보살을 실제로 만나보니 뜻밖에도 거역하기 어려운 권위가 서려 있었습니다. 나아가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로서 영험마저 느낄 수 있었다면 지나치게 개인적인 체험담이겠지요. 조각가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은진미륵을 다시 보다’라는 글에서 새로운 평가를 내렸더군요. 요약하면 중앙과 비교하면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표현이 능숙하고, 비례가 경쾌하고 유려하며, 부분적으로는 현대조각 못지않은 모던함마저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당과 수도원에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조각에 ‘조형미 이상의 것’을 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기에 이런 평가도 가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은진미륵은 분명히 통일신라시대 불상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하지만 굳이 불교조각의 최전성기 작품과 비교하기보다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아 주는 것이 우리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은진미륵은 졸작’이라는 책에서 읽은 지식과 실제로 대했을 때 느껴지는 권위 사이의 괴리도 해소될 수 있겠지요. 애정을 가지고 바라봤을 때 은진미륵의 발가락에서도 미숙함이 아닌 조각가의 장난기를 읽으며 미소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화성 ‘공포’

    최근 한달사이 경기도 수원과 화성에서 4명의 여성이 잇따라 실종돼 주민들이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경찰은 실종자 2명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데다 연락이 두절된 지점이 화성 비봉나들목 일대 반경 2㎞이내로 확인됨에 따라 동일범 소행여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10일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4일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박모(37·여)씨가 수원시 권선구 집을 나선 후 귀가하지 않아 가족들이 4일 뒤인 28일 실종신고를 했다. 박씨의 가족은 “경찰에 신고하고 친구찾기 서비스로 위치추적을 한 결과 최종위치는 24일 오전 4시30분 서해안고속도로 비봉IC 인근이었고 이후 휴대전화는 계속 꺼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2월14일 오전 3시55분쯤에는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던 배모(45·여·안양시)씨가 비봉면 자안리 지역에서 동료와 통화를 한 뒤 연락이 두절됐으며 배씨의 딸(22)이 일주일이 지난 21일 경찰에 신고했다. 또 지난달 3일 오후 5시30분쯤 화성시 신남동 모기업 경리담당인 박모(52·여·군포시)씨가 퇴근한 뒤 귀가하지 않아 가족이 이튿날 오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의 휴대전화 위치추적결과 박씨의 휴대전화는 회사에서 10여㎞ 떨어진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에서 전원이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평소 회사에서 마을버스를 이용,5분 거리의 남양동 시외버스터스널로 이동해 좌석버스를 갈아타고 군포시 집으로 퇴근해 왔으며 휴대전화가 꺼진 곳은 퇴근길 중간 정도의 위치다. 지난 7윌 오후 5시30분쯤에는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여대생 연모(20)씨가 성당에 간다며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뒤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 경찰은 이들 실종사건이 별개의 사건으로 판단하면서도 이 중 2명이 노래방 도우미이고, 화성시 비봉면 비봉나들목 인근에서 휴대전화가 끊긴 점 등으로 미뤄 동일범 소행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사착수 20여일이 지나도록 혐의를 둘 용의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등 사건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여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에 사는 주부 강모(41)씨는 “부녀자 실종 얘기를 듣고 밤에는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그렇게 오고 싶던 곳… 가슴 뭉클해요”

    “그렇게 오고 싶던 곳… 가슴 뭉클해요”

    “아무 생각도 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 근데 막상 형님 이름을 보니까 가슴이 막혀서….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막막해져.” 10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서울현충원에 안치된 형을 찾은 권 바오로(76) 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옆을 지키던 부인 이 모니카(69) 할머니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부는 고향인 경북 선산을 떠나 경상도, 인천 등지를 떠돌다가 10년 전 경남 산청군 성심원에 안착했다. 그사이 한번쯤 형이 있는 이곳을 찾을 법도 했건만 그러지 못했다.‘한센병’을 앓은 탓이다. “온 지 20년이나 돼서….”라며 명단을 더듬다가 형의 이름을 발견한 권 할아버지는 “너무 늦게 찾아와 미안해.”라며 입을 다물었다. 이날 권 할아버지처럼 십수년만에 서울을 찾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10명. 모두 한센병력을 가지고 있다. 노인복지시설 성심원은 “죽기 전에 살거나 놀던 곳을 가보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아름다운 동행’을 시작했다. 서울은 8번째로 찾은 곳이다. 서울 종로가 고향인 최 루시아(80) 할머니는 무려 43년만에 서울땅을 밟았다.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천주교 신자인 최 할머니는 “명동성당을 가장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갈 수 있게 됐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연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알려져 딸이나 사위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운 것이다. 병이 옮을까 성심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으로 보낸 3남매는 모두 장성해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위들은 최 할머니가 한센병력을 가진 사실을 모르고 있다. 30년만에 서울을 찾은 박 세레나(70) 할머니도 “건물도 높고 길도 넓고…. 많이 변했네.”라며 좋아하면서도 자식들 얘기에는 “사는 게 어려워서 자주 보지 못해.”라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8살 때 고아원으로 보냈던 딸의 결혼식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자신이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들과 동행한 성심원 임재순 가정사팀장은 “모두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사위나 며느리, 손자, 손녀들에게 아예 죽은 것으로 된 분들도 있다. 요즘 한센병은 독감보다도 못한 것인데 아직까지 편견의 벽에 부딪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날 국립묘지를 들르고, 한강 유람선, 남산 케이블카를 타며 기억과 상상 속에 남아 있는 서울의 모습을 하나하나 바꿔갔다. 저녁에는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가족과 후원 봉사자와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11일에는 청와대와 명동성당, 청계천, 탑골공원 등을 둘러본 뒤 성심원으로 돌아간다. 글 사진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20세기이후 순교자 첫 성인 추대 추진

    가톨릭계가 20세기 이후 순교자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8일 천주교 인천교구(교구장 최기산 주교)에 따르면 6·25전쟁 때 순교한 평신도 선교사 송해붕(세례자 요한)에 대한 ‘시복시성(諡福諡聖) 추진위원회’를 구성,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공식 절차에 돌입했다. 천주교에선 선구자적인 삶을 산 이들에게 성인(聖人) 혹은 복자(福者)라는 명예호칭을 준다. 복자로 추대하는 것을 ‘시복’,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이 ‘시성’이라고 한다. 이미 성인 반열에 오른 103위 성인과 현재 추진 중인 순교자 123위 외에 한국 교회가 병인박해(1866∼1879) 이후 순교자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것은 처음이다. 인천교구는 송해붕 선생에 관한 기초자료 수집 및 검증을 한 뒤 올해 안에 바티칸 교황청에 보고할 방침이다. 교황청에서 수 년에 걸친 엄밀한 조사를 통과하게 되면 교황의 조서를 통해 복자로 인정된다. 복자로 인정받은 뒤에 확실한 기적이 두 가지 이상 있을 때 성인으로 받들어진다. 1926년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난 송해붕 선생은 44년 덕원신학교에 편입, 사제 공부를 하던 중 광복 이후 신학공부를 포기하고 김포 고촌 은행정 마을로 들어가 야학을 운영하며 활발한 전도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천주교를 전파하는 것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마을 주민 밀고로 1950년 10월11일 공산주의자로 몰려 마을 주민들에 의해 총살을 당했으며, 유해는 고촌성당에 안치됐다.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차동엽 신부는 “선생이 남긴 업적이나 순교 사실을 감안하면 성인 반열에 오를 가능성은 90% 이상”이라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사료 부족 탓에 주목받지 못했던 일제강점기나 6·25 때 순교자에 대한 추가 청원의 물꼬가 트여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유양수 前교통부장관

    유양수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 지난 1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84세.1923년 광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5·16쿠데타가 나자 가장 먼저 지지 입장을 취했다. 리핀·오스트리아·사우디·바레인 등 16년간 대사를 거쳐 1979년 교통부 장관과 동력자원부 장관, 석유개발공사 이사장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4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02-730-6611). 유족으로는 부인 김재화(성공회대 명예교수)씨와 2남1녀.(02)2072-2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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