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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비오 신부 선종, 추모 미사 거행…“매달 잔고가 0원”

    조비오 신부 선종, 추모 미사 거행…“매달 잔고가 0원”

    “이제 긴 세월 지셨던 십자가 내려놓으시고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 취하시기 바랍니다.” 21일 선종한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 비오 신부 추모미사가 광주 임동 주교좌성당에서 경건하게 거행됐다. 이날 미사에서는 고인이 남긴 세 마디 유언장이 집전을 맡은 옥현진 총대리주교 음성으로 낭독됐다. “책, 기물 등은 소화자매원에 귀속한다. 혹시 남은 재산이 있을 경우 소화자매원에 귀속한다. 장기를 기증한다.” 고인의 뜻이 울려 퍼진 성당 지하강당에는 이내 숙연함이 감돌았다. 200여 천주교 신자와 시민은 성가를 함께 부르고 기도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깊은 뜻을 기렸다. 신자들은 하얀 미사포 아래로 가만히 눈물을 훔치며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짧은 내용이지만 긴 여운을 남긴 고인의 유언에 따라 빈소이기도 한 지하강당 입구에는 조화 대신 쌀 화환이 줄을 잇고 있었다. 고인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옷은 평소 착용하던 장백의, 영대, 띠, 백색 제의로 정해졌다. 고인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추모미사에 참석하며 “통장을 보니 매달 잔고가 0원 처리됐더라. 모든 걸 나눠준 당신은 항상 비우셨고, 나누셨고, 일신을 위해 돌보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의 가난, 사회정의, 나눔 정신이 우리 안에 살아남아 나눔과 정의와 섬김의 삶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민주화 산증인인 조 신부는 이날 오전 3시 20분 췌장암으로 선종했다. 향년 78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부 조비오 신부 타계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부 조비오 신부 타계

    광주 시민사회 대표 원로 인사인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세례명 비오) 신부가 21일 오전 선종했다. 향년 78. 조 신부는 1938년 4월 1일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나 1969년 12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전남 나주·진도, 광주 계림동 등 성당의 주임신부, 광주전남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 5·18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했다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찍혀 신군부로부터 미행을 당하는 등 억압 속에서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맡으며 통일과 민족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다. 2008년 1월 16일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고인은 최근 전신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다. 고인은 오는 23일 전남 담양군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된다.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조화 대신 쌀 화환을 받아 농민과 생활이 어려운 시민을 돕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조비오 신부 선종 …지역 정치권 “민주성지 광주의 큰 별이 졌다”

    조비오 신부 선종 …지역 정치권 “민주성지 광주의 큰 별이 졌다”

    21일 ‘민주화 증인’ 조비오 신부의 선종 소식에 광주 지역 정치권도 비통함에 빠졌다. 정당들은 여야 구분 없이 고인의 선종 소식에 애도를 표했다. 새누리당 광주시당은 이날 논평을 내고 “조 신부는 5·18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으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왔고 소외된 사람, 어려운 시민과 함께하면서 통일과 민족화합에도 노력했다”며 “그분의 뜻이 좋은 결실을 보이도록 정치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도 성명을 내고 “민주성지 광주의 큰 별이 진 것을 시민과 더불어 깊이 애도한다”며 “더민주는 신부께서 못다 이룬 민주와 평화와 통일의 뜻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국민의당 광주시당은 논평에서 “150만 광주시민과 함께 애도의 뜻을 전하면서 헌신의 길을 뒤따를 것을 다짐한다”며 “최근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내 5·18 사적 원상복원 문제도 조속히 해결하다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광주 임동성당에 차려진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발길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후 빈소를 찾을 예정이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도 오는 23일 장례 미사 참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몽골 출장길에 황급히 빈소를 방문해 “조 신부는 지역을 뛰어넘어 남북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헌신한 어르신이자 광주정신을 이어주셨던 분”이라며 “저희가 그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비오 몬시뇰 신부 췌장암으로 선종…“5·18 민주화운동 산 증인”

    조비오 몬시뇰 신부 췌장암으로 선종…“5·18 민주화운동 산 증인”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세례명 비오) 신부가 21일 오전 3시 20분 췌장암으로 선종(善終)했다. 향년 78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참여해 부조리에 맞서다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1989년 열린 5·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서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며 신군부의 잔학한 학살행위를 증언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도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를 맡으며 통일과 민족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다. 2008년 1월 16일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고인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서울 대형병원에서 치료받다가 건강이 호전되지 않아 추석 연휴를 앞두고 퇴원해 광주로 돌아왔다.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중국인 유학생들 ‘제주 성당 피해자’ 추모

    중국인 유학생들 ‘제주 성당 피해자’ 추모

    20일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에서 제주한라대 유학생회가 제주의 한 성당에서 중국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피해자 김모씨를 추모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제주 연합뉴스
  • 제주 성당 피습사건 이후 ‘반중감정·제노포비아’ 우려

    제주 성당 피습사건 이후 ‘반중감정·제노포비아’ 우려

    제주에서 잇따라 일어난 중국인 강력범죄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국내 반(反)감정과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인 첸모(50)씨가 지난 17일 오전 제주시 모 성당에서 혼자서 기도하는 60대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피해자가 의식을 잃고 병원 치료 도중인 이튿날 오전 숨을 거뒀다. 이에 네티즌들은 중국인 피의자 첸모 씨를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몇몇은 중국인 범죄와 중국인 관광객들의 무질서 등 추태를 언급하며 중국인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인이 제주도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게 한 우리 정부에도 자연히 불똥이 튀었고, 포털사이트인 다음 아고라에 지난 18일 올라온 “제주를 비자입국지역으로 전환하자”는 내용의 청원에는 하루 만에 서명자가 목표치인 1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처럼 중국인에 대한 국내 반감이 커지면서 혹자는 한국인과 중국인의 충돌을 우려하기도 한다. 김모(45)씨는 “중국인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혹시나 주점 등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시비가 붙어 집단 폭행사건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며 “중국인 혐오감정이 폭력사건으로 이어진다면 정말 큰일”이라고 말했다. 도내에서 가장 많은 중국인 유학생이 다니고 있는 제주대학교는 중국 학생들이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을 자제시키는 등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인터뷰 도중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염려 때문이다. 제주대 국제교류본부 관계자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를 구사하기는 하지만 모국어만큼 능통하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터뷰 중 의도가 잘못 전달될 수 있다”며 “학생들이 엉뚱한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를 찾은 외국인은 연말 기준 2011년 104만 5637명, 2012년 168만 1399명, 2013년 181만 2172명, 2014년 285만 9092명, 2015년 262만 426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중 중국인 비율이 2013년 기점으로 급증해 2015년 85.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 역시 중국인이 6792명으로 가장 많고, 무비자로 관광 왔다가 다른 지방으로 무단이탈하는 중국인 노동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가시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가시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군부의 힘과 시민의 힘이 맞서고 있던 1987년 6월 13일 밤이었다. 성당 내부에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건넨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온화한 경고는 결국 가장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가 되어 명동의 신화를 만들게 된다. 결국 경찰은 병력 1500여명을 철수하게 되고 1987년 6월 15일 오전 11시, 시위대는 해산한다. 이로써 6월 10일부터 이어진 명동성당 농성은 6월 항쟁의 신호탄을 명동에서 청와대로 쏘아 올린 기폭제가 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종루(鐘樓)의 역할을 하던 명동성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당 앞뜰과 언덕을 숨 가쁘게 뛰어 오르던 낯빛 붉은, 꽃병(화염병) 쥔 청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DUTY FREE' 로고 한 가득, 흰 비닐가방 서너 개 든 외국인 관광객의 셀카봉에 명동성당 첨탑 십자가는 그윽한 서울의 배경으로 내려 앉았다. 삼일대로와 서울로얄호텔에서 명동성당 앞까지 밀려오던 사복경찰(일명 백골단)들이 즐겨 입던 청재킷은 어느덧 4만9000원 가격표를 달고 매장 앞 옷걸이에 ‘가을 신상’으로 걸려 있다.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중심에서, 2016년 서울 투어의 중심이 되었다. 명동성당이다. ●1898년 5월 29일 축성, 봉헌된 고딕 양식의 성당 2016년 9월, 명동은 24시간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이 지극히도 붐비는 곳이자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다. 바로 이 곳,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2가에 자리 잡은 명동성당(明洞聖堂)은 현재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이자, 한국 최초의 본당 성당이며 고딕 양식의 기독교 교회당이라는 역사적 의미 역시 깊은 곳이다. 성당은 높이가 23m, 종탑의 높이는 46.7m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순수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성당 내부에는 아치형 복도, 스테인드 글라스 등으로 공간의 미를 최대한 살렸다. 이런 종교적, 건축적 의미들로 인해 1977년 11월 22일에 대한민국의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문화 유산이기도 하니 처음부터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이자 중심인 곳이었다. 우선 이곳에 신앙공동체가 처음으로 형성된 시기는 1784년 명례방 종교 집회였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천주교 박해가 풀리고 1883년 조선 교구는 침계 윤정현(梣溪 尹定鉉)의 집과 땅을 사들여 1887년에 성당 건립을 위한 땅다지기 공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성당의 터가 종현(鐘峴·진고개) 지역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있어서 왕궁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저택 역시 고종이 직접 하사한 것이었다. 이에 고종은 작업 중지와 토지권의 포기를 요구하고 결국 후일 금교령까지 내려진다. 하지만 천주교회측은 공사를 강행하여 1898년 5월 29일 작업을 완료하고 성당의 축성식을 연다. 그리고 성당 이름은 지역 명을 따서 종현성당(鐘峴聖堂)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 이 곳에는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 순교한 분들의 일부 유해를 모시게 되었고, 현재까지 지하성당에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일제 침탈 시기인 1930년대의 명동 성당의 역사에는 전시총동원(戰時總動員) 협력이라는 아픈 기록도 분명히 남기고 있다. 중일전쟁 발발 여드레 만인 1937년 8월 15일의 성모승천축일에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국위선양 평화미사’를 거행하는 등의 일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당시 천주교 선교의 도움을 받고자 한 이런 비정치적 행동이 결국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천주교회가 협력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여 지금까지도 명동성당 기억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겨져 있다. 이후 1945년 광복을 맞아 종현성당(鐘峴聖堂)이라는 이름은 명동대성당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1970, 80년대 근현대사 격동기의 중심으로 명동성당이 한국 근현대사 정치의 중심으로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였다. 성당 측은 4·19 학생혁명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자세를 드러내었고 천주교 신자였던 장면에 대한 애정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후 5·16 쿠데타에 의한 장면 정권의 교체는 명동 성당으로서 뼈아픈 일이었다. 이 시기 서울 대교구와 성당측은 적지 않은 재정적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경향신문을 군사정권에 탈취당하는 등 힘겨운 시기를 보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본격적으로 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성당측은 가지게 된다. 드디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는 역량을 키우게 된 것이다. 1980년 6월 25일 김수환 추기경은 시국관련 담화문을 발표한다. 이후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피의자들이 원주교구에 피신을 요청하게 되고, 최기식 신부가 이를 받아들여 구속된다. 이에 김수환 추기경은 1982년 4월 7일 강론을 통해 ‘가톨릭 사제로서 정당하고 합당한 행동’이라고 인정한다. 이제 군부정권은 뜻하지 않게, 조선시대 이후 역사의 ‘산전수전'(?) 다 겪은 명동성당이라는 지독한 상대를 만나는 불운(?)을 겪기 시작한다. 이후 명동성당 본당 사목회 산하 ‘사회정의위원회’가 신설되고, ‘청년연합회’의 활발한 정치적 활동, ‘카톨릭 민속연구회’의 창설 등 민주화 운동을 향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난다. 결국 1987년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이루어진 ‘명동농성’을 통해 시위대, 정의구현사제단과 수녀단, 명동성당의 평신도들의 삼각협력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서 그 빛을 발한다. 당시 시위대의 안전한 귀가와 그 어떤 문책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군부정권으로부터 받아냄으로써 명동성당은 어느 순간 한국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정치참여 활동은 순수한 종교적 구원을 추구하는 일반 신도들에게는 또 다른 불만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 아고라(Agora)의 위상 유지와 순수 가톨릭 정신의 구현이라는 본래의 역할 수행이라는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 1990년대를 맞이한다. 이후 현재까지 명동성당은 한국사회의 변동이라는 상황 속에서 또 다른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의 적절한 역할을 향해 끈임없이 고심중이다. 현재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 속에서 80년대와 다른 표정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명동성당의 풍경은 항상 역사적으로 남아있음은 분명하다. <명동성당에 대한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장소인가? -당연하다. 굳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입장이어도,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방문의 가치는 충분하다. 경건한 종교 시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명동을 방문할 일이 있는 누구에게나. 쇼핑으로 무겁고 힘든 짐을 진 자들부터 성지순례를 원하는 가톨릭 신자까지 누구나 열려 있다. 3. 건축학적인 의미는 어떠한가?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본당 성당으로 전주의 전동성당, 대구의 계산성당의 원형이 되는 곳이다. 4. 시간은 많이 걸리나? -그리 넓지는 않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본당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5. 명동성당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공간은? -성당 내부 곳곳에 있는 성화와 성상, 스테인드 글라스의 유리화. 6.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mdsd.or.kr/ 7. 미사시간은? -평일미사는 오전 6시 30분, 오후 6시, 7시. 주일미사(일요일)는 오전 7시, 9시(영어미사), 10시, 11시, 12시(교중미사), 오후 4시, 5시, 6시, 7시(청년미사), 9시/ 자세한 시간은 홈페이지 참조 8. 성당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을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박물관, 평화화랑-1898 아케이드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은? -지하성당. 엄숙한 종교적 공간이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명동성당은 결코 관광지는 아니지만, 의미있는 여행지임에는 분명하다. 바티칸의 거대함보다 우리 삶의 현장에 있는 명동성당의 가치를 느껴보는 것도 종교를 떠나 가치있는 일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강력범죄부터 경범죄, 추태까지... 제주도는 지금 中 관광객 때문에 몸살

    중국인 관광객 첸모(50)씨가 지난 17일 제주의 한 성당에서 기도하던 여성을 살해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의 범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주지방경찰청은 도내 중국인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2011년 58건에서 지난해 260건으로 4년 만에 5배 가까이 폭증했다. 올해는 8월까지 279건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 무단횡단 또는 쓰레기 투기, 노상방뇨 등 경범죄도 심각한 수준이다. 외국인 경범죄 적발 건수는 지난해 1267건에서 올해 8월까지 3750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대부분은 중국인이다. 뿐만 아니라 웃통을 벗고 공공장소를 활보하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끄럽게 떠드는 등 추태도 일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민 강모(37·여)씨는 “다른 나라에 와서 관광하려면 적어도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켰으면 좋겠다”면서 “티셔츠를 반쯤 걷어올려 배를 드러낸 채 관광지를 다니거나 아예 웃통을 벗어젖힌 중국인들이 부지기수”라며 불괘해했다. 최근에는 용두암 주변에 자연석을 중국인들이 무단으로 가져가 논란이 일었다. 이경용 제주도의회 의원은 “용을 숭상하는 중국인들이 용두암 자연석을 가져갔다가 적발되는 일이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한 상자 분량의 돌이 적발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 단속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음식점과 주점 등에서도 중국인 추태는 이어진다. 지난 9일 제주시 연동의 한 음식점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50대 여주인을 집단 폭행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다른 일반 음식점에서도 소량의 음식을 시킨 뒤 함께 나온 밑반찬에다 편의점에서 사 온 즉석밥인 ‘햇반’으로 공짜 식사를 때우려는 중국인들로 인해 업주들이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도로를 무단횡단하거나 길거리에 각종 오물을 버리고 공중화장실에서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나와 다른 이용자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일부 중국인들은 신발을 신은 채 양변기 위에 올라가 용변을 보기도 한다. 용두암 등 도내 대표적인 관광지 화장실에는 양변기 사용법에 대한 안내문이 중국어로 붙어 있다. 성추행 등 성범죄도 적지 않다. 지난해 4월에는 40대 중국인 관광객이 공항 검색대 여직원을 성추행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여름철 물놀이하는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다 검거되는 중국인들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은 중국인 관광객의 무질서 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 단속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지난해부터 관광지나 비행기 기내에서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한 자국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지만, 이들의 추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 원조…美 종교재단 파워 담긴 당당함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 원조…美 종교재단 파워 담긴 당당함

    # 사무실 같은 아파트 구도심의 유서 깊은 중심 상업가로인 종로는 세종대로 사거리를 건너면서 새문안로로 이름이 바뀐다. 이전에는 신문로(新門路)라고 불렸는데 아직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인다. 조선 초기에 서대문, 즉 돈의문이 폐쇄되었다가 다시 대대적인 수리 끝에 재사용되는 과정에서 ‘새문’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 그 유래다. 한양 도성의 동서 방향 중심은 지금의 탑골공원 부근이지만,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실제 중심인 세종대로는 이보다 훨씬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 결과 새문안로의 도성 내 구간은 770m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이 구간에는 흥국생명, 포시즌즈 호텔, 대우건설, 금호아시아나 그룹 등 한국의 중요한 대기업과 국제적 호텔 등이 밀집해 있다. 게다가 길의 북쪽에 경희궁과 서울시립역사박물관 등이 자리잡고 있으니 공공적인 성격 또한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매우 인지도가 높은 길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새문, 즉 돈의문 조금 못 미친 곳의 새문안로 남쪽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보인다. 콘크리트에 시멘트 미장을 하고 거기에 페인트를 바른, 사실상 이보다 더 저렴할 수 없는 외부 마감 덕분에 존재감이 더욱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피어선 아파트’라는 건물의 이름을 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어선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며, 사무실처럼 생긴 건물이 아파트라니? 아서 태펀 피어선은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이론가로서 미국 장로교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교회를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박사와의 인연으로 병약한 중에도 1910년 12월 조선에 입국,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그러나 불과 6주 만인 1911년 1월 다시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고, 같은 해 6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라는 유언을 남겨 그 이듬해인 1912년에 현재 평택대학교의 전신인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 설립되었다. 이후 1968년 피어선기념성서신학교로 개명한 후 재단의 자금 마련을 위해 진행한 사업이 바로 피어선 아파트다. 중림동 천주교 약현성당이 성요셉 아파트를 지은 것과 사업의 목적이나 시기 면에서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의하면 피어선 아파트는 1971년 11월 10일에 사용승인을 받았다. 경희궁 터에 있던 서울고등학교가 아직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이었다. 그 당시 교정을 드나들던 학생들에게 길 건너편의 최신식 도심 맨션은 매우 색다른 풍경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위치부터가 독보적이었다. 일단 사대문 안, 그것도 궁궐과 명문 고등학교 바로 맞은편이라는 입지는 이 연재에 자주 등장하는 서대문 바로 너머의 충정로나 홍제동 등 신개발지들이 견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같은 사대문 안이지만 도로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낙원상가나, 태평양 전쟁 후반기에 폭격을 대비한 소개공지대에 들어선 세운상가 등과도 확연히 다르다. 그야말로 구도심의 가장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위치의 하나에 자리잡은 것이다. 미국계 종교 재단의 파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시기의 다른 여러 아파트들이 다 그러했듯이 피어선 아파트도 건립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심지어 ‘서울에도 선진국 도시처럼 도심에 주상복합건축이 들어섰으니 한번 살아 봐야겠다’는 이유로 입주한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1974년 7월 9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를 보면, 도심의 업무지구가 확대되고 한강변에 맨션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 와중에 도심의 업무지구를 중심으로 ‘비원 근처의 가든 타워 아파트, 신문로의 피어선 아파트, 삼익건설(?)이 지은 사직 아파트, 남산에 솟은 외국인 전용 아파트 등 초고급 아파트’ 등이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한마디로 피어선 아파트는 그 당시 가장 앞선 아파트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의 피어선 아파트는 과거의 그런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더 이상 아파트도 아니다. 건축물 관리대장을 보면 분명히 대부분의 층에 아직 아파트라는 용도가 적혀 있고, 심지어 건물 1층에 아직도 ‘피어선 아파트’라는 명패가 남아 있지만 주거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건물 성격의 변화를 잘 알려주는 자료가 하나 있다. 1990년 9월 14일자 대법원 판결문이다. 다름 아닌 상수도 사용료 부과처분에 대한 내용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는 점포 및 사무실로, 4층부터 11층까지는 79세대의 아파트로 건축되어 개인에게 분양된 복합건물인데, 그 후 세대별 아파트의 소유자 및 그로부터 임차한 사람들이 개인사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최근에 이르러서는 79세대 중 75세대가 주거용 아파트가 아닌 회사사무실, 건축사 또는 법률사무소, 치과병원 등 개인사무실 및 영업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 이후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게 건물의 용도가 당초와 완전히 달라졌으므로 상수도 요금 산정을 위한 요율 또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건물을 ‘피어선 아파트’가 아닌 ‘피어선 빌딩’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건물 내에서도 두 가지 이름이 혼재되어 있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오히려 이 건물은 위치적 장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 덕분에 각종 시민단체들이 대거 둥지를 틀고 있는, 이른바 ‘비정부기구(NGO)의 메카’로 더 잘 알려졌다. 1층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면 원조 시민단체의 하나인 소비자시민의모임을 비롯해서 한국투명성기구, 에너지시민연대 등의 이름이 보인다. # 도심 공동 주거의 선구자적 역할 새문안로 맞은편에서 바라본 피어선 아파트는 좌우 대칭의 반듯한 건물이다. 정면 네 칸에 양쪽에 좁은 칸이 하나씩 더 붙어 있다. 대충 나누어 그린 입면 같지만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일단 정면 네 칸의 간격이 다르다. 가운데 두 칸이 넓고 양쪽 두 칸이 다소 좁다. 그래서 건물 가운데가 조금 앞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생긴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보는 이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분명히 정면에서 보면 11층 건물인데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지하 1층 지상 10층으로 되어 있다. 즉 육안상 1층으로 보이는, 가로에 면한 부분이 알고 보면 법적으로 지하 1층이다. 그 이유는 건물 뒤로 돌아가 보면 알 수 있다. 뒷부분이 땅에 묻혀 있는 것이다. 건축법상 지하층 산정 기준에 따른 결과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문 또한 법적인 층수가 아닌 육안상의 층수를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이 글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육안상 층수를 기준으로 한다). 양쪽 측면의 좁은 칸에는 역시 콘크리트로 만든 차양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3층 이하는 없고 그 위부터 꼭대기 층까지는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문에 나오는 것처럼 저층부 3개 층의 사무실과 그 위의 아파트가 나뉘는 부분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두 부분은 층고도 서로 다르다. 이렇게 건물을 ‘읽으면’ 그 연혁과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건축 답사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지하 1층, 즉 가로에 면한 층에는 좌측부터 볼링장, 맥도날드, 하나은행 현금 코너 등이 입주해 있고 차량 통로를 지나 작은 꽃집이 하나 있다. 볼링장은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렇다면 법적 지하 2층이 되는 셈이지만 건축물 관리대장에 언급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그 좌측에는 마치 달아낸 것처럼 아주 작은 김밥집이 있다. 김밥도 맛있고 주인이 재미있는 분이어서 꽤 알려진 집인데 평일에는 오전 11시쯤부터 길게 줄을 선다. 건물 정면에 로비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하나은행 현금 코너를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정작 주출입구는 차량 통로의 중간에 측면으로 나 있다. 가로변 상가와 건물의 출입 동선을 분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가 올 때 차에서 내리거나 차를 탈 때 편리할 것이다. 이 역시 자동차를 중시하는 미국식 사고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뒤로 돌아가면 꽤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등 당시 건물치고는 자동차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쓴 것을 알 수 있다.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주차대수가 0으로 나와 있는데 주차장법 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서 그렇거나, 아니면 주차장이 나중에 추가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피어선 아파트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엘리베이터가 2층부터 있다는 등의 기록이 나온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1층까지 연결되어 있다. 기록이 맞는다면 역시 당초 1층 상가에 출입하는 동선과 그 위 입주자들의 동선을 분리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새문안로가 북쪽에 있으므로 피어선 아파트는 북향 건물이다. 그런데 주차장 쪽으로 가서 남쪽을 보면 드디어 이 건물의 원래 정체가 잘 드러난다. 주거 기능은 상실했지만 아직도 발코니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주거 세대의 용도가 다른 것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하드웨어로서 건축이 갖는 끈질김이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본다. 피어선 아파트가 공동 주거로서의 본래의 기능을 되찾으면 어떨까?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건축물 관리대장에 ‘아파트’가 명기되어 있고 저렇게 발코니까지 남아 있다. 필요하다면, 그리고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그렇게 되는 것에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서울 구도심의 주거 기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요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건물 남쪽의 지형이 높고 (정동은 의외로 지형의 고저차가 심한 곳이다. 그런 이유로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인 정동 1번지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높은 건물이 많아 남쪽으로의 채광과 경관은 사실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피어선 아파트 바로 남쪽의 경향신문사 사옥은 구 문화방송 사옥인데 김수근이 설계하여 1967년에 완공되었다. 전면부와 후면부 모두 상당히 고층인 데다가 피어선 아파트 건립 당시에 이미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피어선 아파트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남쪽이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당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건축으로서의 피어선 아파트의 선구적인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정작 그 자신은 공동 주거 기능을 상실했지만 길 건너 광화문 일대, 특히 세종문화회관 주변 지역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대단지형 주상복합인 경희궁의 아침, 스페이스본 등은 물론이고 거리에 면한 단독 건물 중에서도 주상복합이 많다. 세종 아파트, 신문로 주상복합, 세종로 대우 아파트 등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겉에서 보면 일반 사무용 건물인지 아파트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종로 대우 아파트는 특이하게도 중정형인데, 개인적으로 청년 시절 첫 직장에서 참여했던 프로젝트라서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일반 건물과 주거가 별다른 구별 없이 섞여 있는 것이 주거가 도심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피어선 아파트가 남긴 도시적 유전자다.
  • [사설] 제주도 법질서 의식 싱가포르처럼 높여라

    ‘평화의 섬’ 제주에서 최근 중국인들에 의한 강력 범죄가 잇따라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제주시 한 성당에서 중국인 관광객 첸모(51)씨가 기도를 하던 여성 김모(61)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지난 8일에는 중국인 관광객 8명이 한 음식점에서 외부에서 반입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식당 여주인과 이를 말리던 손님을 폭행했다. 지난 4월에는 중국인 주모(27)씨가 연동 주택가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나는 등 최근 제주에서 외국인, 특히 중국인들에 의한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 말까지 제주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 347명 가운데 69.2%인 240명이 중국인이었다. 살인·강간 등 외국인에 의한 강력 범죄 대부분을 중국인들이 저지르고 있다고 한다. 제주경찰청은 제주시 연동과 노형동을 외사치안안전구역으로 설정했지만, 외국인 범죄는 2011년 121명에서 지난해에는 393명으로 늘었다. 이 기간 제주도의 외국인 불법체류자 수는 280명에서 4353명으로 급증했다. 경찰은 무사증 중국 관광객과 불법 체류자를 합치면 제주도 내 중국인 수는 약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누적 불법 체류자 수도 올 연말이면 1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여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외국인에 의한 범죄 행위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대문과 도둑, 거지가 없는 삼무도라는 제주도는 이제 범죄 소굴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 지경이다. 제주도에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와 외국인이 증가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범죄 증가와 주민들의 불안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제주도는 외국인 범죄를 줄이기 위해 무사증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제주도에서는 사소한 법 위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인상을 심어 줘야 한다. 관광객 몇 명을 유치하겠다는 온정주의 처벌로는 제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싱가포르를 찾는 관광객처럼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도 사소한 위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 줘야 한다. 내국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강력한 조치만이 강력 범죄를 줄이고 주민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 제주 성당서 여성 살인한 중국인 관광객 구속

    제주 성당에서 기도하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중국인 관광객 첸모(50)씨가 19일 구속됐다. 제주지법은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벌여 사안이 중하고 피의자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첸씨는 지난 17일 오전 성당에서 혼자 기도하던 김모(61)씨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병원 치료 하루 만인 18일 오전 8시 20분쯤 숨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 서부경찰서는 김씨가 병원 치료 중 숨짐에 따라 첸씨의 혐의를 살인미수에서 살인으로 바꿔 18일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의 시신 부검도 이날 진행됐다. 김씨는 1차 부검 결과 오른쪽 가슴과 옆구리, 허벅지 등 3곳에서 흉기에 찔린 상처가 발견됐다. 사인은 과다출혈로 추정됐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제주 성당 살인사건, 같은 범죄라도 한-중 처벌수위 달라

    제주 성당 살인사건, 같은 범죄라도 한-중 처벌수위 달라

    제주의 한 성당에서 기도하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중국관광객 첸모(50)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19일 발부된 가운데, 향후 처벌 수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첸씨는 국내 사법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살인 혐의로 기소되면 형법이 규정하는 대로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1997년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 집행 이후 우리나라에서 19년째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국제적으로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되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첸씨의 사형 집행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 중국에서 한국인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이보다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에서 살인 혐의로 기소되면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형부터 무기징역 또는 사형으로 처벌된다. 국제사면위원회가 2015년 중국에서 최소 1000여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뤄졌다고 발표하는 등, 한국과 달리 중국에선 사형 집행이 흔해 사형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수년 전 중국에서 살인이나 마약 관련 범죄로 기소된 한국인들이 국가 간 통보 과정조차 없이 사형당했다. 첸씨 사건을 계기로 경찰 등 치안 당국의 관대한 외국인 범죄 대응 방식과 함께 사형제도의 실질적인 폐지가 화를 키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 성당 피습사건 범행동기 밝혀야 하는데…中 공조수사 요청은 ‘주저’

    제주 성당 피습사건 범행동기 밝혀야 하는데…中 공조수사 요청은 ‘주저’

    최근 불법체류자들이 증가하는 데다 제주에 온 중국인들의 강력사건으로 불안감이 고조돼 중국과의 공조수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대책 없이 마냥 기다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제주서부경찰서는 지난 17일 제주의 한 성당에서 기도하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첸모(50)씨에 대해 현재까지 중국 측에 자료 요구 등 공조수사 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첸씨는 지난 17일 긴급체포됐을 당시 “성당에 들렀을 때 마침 여성 한 명이 혼자 있는 것을 보자 바람이 나서 도망간 아내 2명이 떠올랐고 이에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첸씨의 진술이 사실인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첸씨가 사는 중국 허베이성 당국에 이혼 등 가족 사항에 대한 문서를 공식 요청해야 한다. 경찰이 중국 당국에 수사협조에 난색을 보이는 것은 자료를 요청해도 이른 시일 내에 받기 어려운 데다 이혼 경력 등의 자료는 제출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제공 여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중국 측에 자료 요청을 하지 않고 검토중이다. 자료를 요청해도 시일이 오래 걸려 경찰 수사단계에서 확보하기 어렵다”며 “중국 행정당국이 경찰의 자료 요청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의무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14일 서귀포시 산간 임야에서 중국인 여성 시신이 발견된 사건 수사에서도 중국은행 계좌 및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록을 확보하는 데 한 달 이상의 시일이 소요돼 경찰이 애를 태웠다. 이 사건은 다행히 피해 여성의 유족과의 통화에서 새로운 금융계좌가 나와 돈을 노린 중국인끼리의 범죄로 드러났다. 지난 4월에는 중국인 저우(26)씨가 제주시 연동의 한 골목길에서 친구의 차량을 몰고 가다 귀가하던 정모(31)씨를 치고 중국으로 달아나자 경찰이 범죄인 인도요청 절차에 착수했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도 무비자 입국자 99%가 중국인

    제주도 무비자 입국자 99%가 중국인

    무비자(무사증) 입국자가 연 5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주에 무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의 99%가 중국인인 것으로 집계됐다. 제주의 한 성당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중국인 여행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사증 입국 허가제 재검토 등 출입국 관리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광덕 새누리당 의원이 19일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무사증 입국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한해 450만 761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에 552만 4120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며 이후 2013년 504만 408명, 2014년 533만 5625명으로 500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7월까지는 274만 6641명이 비자 없이 입국했다. 특히 지난해 무사증 입국 허가 제도를 통해 제주로 입국한 외국인은 62만 9724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중국인이 62만 3561명(99.0%)으로 거의 전부에 가까웠다. 제주 환승관광 무사증 입국자도 전체 19만 8506명 가운데 중국인이 19만 7686명(99.6%)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무비자 입국자 가운데 불법체류자 수는 지난해 1만 9658명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7월까지 2만 558명으로 지난해 숫자를 이미 뛰어 넘었다. 주 의원은 “최근 무사증 입국자의 범죄 행위가 잇따르고 있는데, 무사증입국 허용 제도가 관광활성화의 본래 목적을 벗어나 악용하되고 있다”면서 “법무부는 무사증 입국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제주도민 “강력사건 잇따라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워”

    지난 17일 성당 살인사건 이전에도 제주도 연동 식당 집단폭행과 중국인 여성 암매장 살해사건 등 제주에서 중국인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제주의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중국인 관광객 8명이 제주시 연동 음식점에서 외부 반입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식당 여주인과 이를 말리던 손님을 폭행했다. 뇌출혈과 안와골절 등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천모(37)씨 등 5명이 구속되고 3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몰상식한 관광 행위에 대해 기록관리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중국 당국은 물의를 일으킨 중국인 8명을 ‘여행 비문명행위 기록’(블랙리스트)에 올릴 계획이다. 또 지난 4월에는 중국인 주모(27)씨가 제주시 연동 주택가에서 정모(31)씨를 차로 친 후 본국으로 달아났다. 사고로 정씨는 중상을 입었으나 아직까지 형사처벌은커녕 피해 보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4개월 뒤인 지난 5일 중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이 밖에도 인질강도와 절도, 뺑소니, 집단폭행 등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중국인에 의한 강력범죄가 급증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유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1건이던 외국인에 의한 강간(강제추행) 범죄가 2012년 2건, 2013년 4건, 2014년 5건, 2015년 8건 등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살인사건도 2012년 1건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해마다 1건씩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강도 3건과 마약 2건도 있었다. 신모(29·제주시 일도1동)씨는 “중국인의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사건이 잇따르면서 너무 불안해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울 정도”라면서 “중국인 관광객이나 중국자본 유치보다 지역 주민의 안전한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정부는 잊고 있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경찰 관계자는 “제주도에 중국인이 늘면서 각종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경찰 인력 확대와 순찰 강화 등에 나서고 있지만 늘어나는 범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원희룡 제주지사 “재발방지 대책 찾겠다”

    원희룡 제주지사 “재발방지 대책 찾겠다”

    제주도가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범죄 대책 마련에 나선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18일 언론에 배포한 입장 자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지난 17일 중국인이 저지른 ‘묻지 마 살인 사건’과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유가족에게도 안타까운 애도를 표한다”면서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원 지사는 이날 오후 7시 30분쯤 사건이 발생한 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해 신도들과 함께 고인을 애도했다. 김씨의 장례 미사는 오는 21일 오전 10시 해당 성당장으로 성당에서 진행된다. 제주도는 최근 잇달아 발생한 지역 내 중국인 강력범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검찰과 경찰,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관계기관과의 공조 체제를 강화해 방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중국 제주총영사관에도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50대 중국인 입국 직후 흉기 구입…새벽기도 60대 여성 무참히 살해

    50대 중국인 입국 직후 흉기 구입…새벽기도 60대 여성 무참히 살해

    살해 전 성당 2~3차례 방문 계획 범행 조사… 영장 신청 중국인 관광객의 묻지 마 살인으로 제주의 한 성당에서 기도하던 60대 여성이 숨졌다. 하지만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보기에는 잔혹한 살해 수법 등 의문점이 많아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 제주 서부경찰서는 성당에서 기도 중이던 주부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중국인 첸모(51)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8일 밝혔다. 첸씨는 지난 17일 오전 8시 45분쯤 제주시 한 성당 안에서 혼자 기도하던 김모(61)씨의 가슴과 배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경찰은 첸씨가 범행 후 버리고 간 흉기, 옷가지 등과 성당 및 인근 지역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첸씨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이후 관계 당국에 첸씨의 인적 사항 등이 담긴 수사용 전단을 배포해 수사를 벌이던 중 제주도 CCTV 관제센터로부터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첸씨와 비슷한 사람이 배회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제보를 받고 사건 발생 7시간 만에 첸씨를 검거했다. 경찰 조사에서 첸씨는 “성당에 참회하려고 방문했는데 기도를 하는 여성이 보이자 바람을 피우고 도망 간 이혼한 아내들이 떠올라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여성 혐오가 있다는 첸씨가 지난 13일 제주 입국 직후 흉기를 샀고, 성당에서 500m 인근 숙소에 머물며 범행 전에도 성당에 2~3차례 방문한 점, 성당에 들어가 범행 뒤 도주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은 점 등에 미뤄 계획적으로 여성을 살해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조사하고 있다. 또 중국 공안을 통해 첸씨의 중국 내 행적을 대조하며 첸씨 진술의 진위를 파악 중이다. 현장검증은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종교 시설 안이기 때문에 해당 성당과 충분히 협의해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흉기를 들고 회개하려고 성당에 갔다는 점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이 많아 정확한 범행 동기에 대해 추가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 “피해자가 치료 중 숨져 이와 관련된 후속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중국인 범죄 급증 ‘불안한 제주’

    중국인 범죄 급증 ‘불안한 제주’

    “무사증 입국제도 손질” 목소리 성당에서 기도 중이던 60대 여성이 중국인 관광객에게 ‘묻지 마 살인’을 당하는 등 제주도에 살인과 강도, 폭행 등 중국인의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도내에서 발생한 외국인 범죄 10건 중 7건이 중국인의 범행이었다. ‘무사증(무비자) 입국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민과 누리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7월 외국인 범죄자 347명 가운데 중국인이 240명으로 69.2%였다. 중국인 범죄가 늘면서 전체 외국인 범죄자도 2009년 90명, 2010년 112명, 2011년 121명, 2012년 164명, 2013년 299명, 2014년 333명, 지난해 393명으로 급증했다. 또 제주도에 불법 체류자도 늘고 있다. 2011년 280명이던 불법 체류자는 2014년 1450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4353명에 달했다. 제주도의 누적 불법 체류자는 8000여명에 이르며 연말에는 1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법 체류자들은 대부분 무사증으로 제주로 입국한 뒤 불법 취업한 이들이다.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신모(29·제주시 일도1동)씨는 “중국인의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사건이 잇따르면서 불안해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울 정도”라면서 “중국인 관광객이나 중국자본 유치보다 지역 주민의 안전한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정부가 잊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제주 무사증 입국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은 제주특별법에 따라 무사증으로 제주도에 입국, 30일간 체류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를 저지르면 추적이 어려운 중국인 개별 관광객이 빠르게 늘고 있다”면서 “단체 관광객을 빼더라도 외국인 개별 관광객에 한해서 무사증 입국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원희룡 지사, 제주 성당 피습 관련 “대책 마련하겠다”

    원희룡 지사, 제주 성당 피습 관련 “대책 마련하겠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18일 성당에서 발생한 중국인 흉기습격 사건과 관련 ”매우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가지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유가족에게도 안타까운 애도를 표한다“며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원 지사는 이날 오후 7시 30분쯤 사건이 발생한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해 신도들과 함께 고인을 명복을 빌 예정이다. 제주도는 검찰, 경찰,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관계기관과 공조체제를 강화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도는 중국 제주총영사관에도 현재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지난 17일 오전 8시 45∼48분쯤 제주시 모 성당에서 홀로 기도 중이던 김모(61·여)씨가 중국인 관광객 첸모(50)씨에게 흉기 공격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루 만에 숨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 성당 피습 피해자 사망…신도들 애도(종합)

    제주 성당 피습 피해자 사망…신도들 애도(종합)

    중국인 피의자 첸모(50)씨에게습격당해 숨진 김모(61·여)씨의 남편(64)은 18일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17일 오전 흉기피습 이후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병원 치료를 받던 김씨는 하루 만인 이날 오전 8시 30분쯤 끝내 숨을 거뒀다. 김씨의 남편은 큰 충격을 받고 쓰러져 119구급대가 급히 출동하기도 했다. 김씨가 다니던 성당에서 장례 준비가 진행되자 동료 신도 수십여 명이 모여들어 흐느끼며 같이 슬퍼했다. 한 여성 동료 신도는 “김씨는 성당의 궂은일을 도맡아 묵묵히 해왔다”며 “새벽 미사가 끝날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성당 안을 정리하고 마지막까지 남아 차분히 십자가의 길이라는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다른 신도는 “이 사건은 그냥 묻혀서는 안 될 중요한 사회 문제”라며 “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사건도 많아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가 다녔던 성당에는 이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성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미사가 열렸다. 미사에 참가한 신도들은 대부분 전날 사건을 전해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시종 침통한 분위기였다. 미사에서 주임 신부는 “김씨가 끝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며 울먹였다. 그는 “이번 사건은 가족만이 아닌 성당의 아픔으로 삼아 기도해야 한다”며 이날 저녁 미사부터 9일간 성당에서 김씨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미사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저녁 7시 30분쯤 예배 형식으로 진행되는 저녁 미사에서는 ‘희생된 고인을 위해 추모하자’는 내용으로 참가자 전원이 기도를 올리며 고인을 기린다. 이 성당은 김씨의 장례 일정에 맞춰 20∼22일 장례미사도 별도로 진행할 예정이다. 김씨는 흉부에 찔린 상처가 깊어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사인은 장기 파열로 추정된다. 김씨는 17일 새벽 미사를 마친 뒤 오전 8시 45∼48분쯤 혼자서 남아 기도를 하던 중 성당 안으로 들어온 첸씨가 휘두른 흉기에 흉부와 복부를 4차례 찔렸다. 첸씨는 “이혼한 전 아내들에 대한 원한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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