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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프로배구 삼성화재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 영입

    남자프로배구 삼성화재 김상우 전 우리카드 감독 영입

    김상우(49) 성균관대 감독이 프로농구 삼성화재의 지휘봉을 잡았다.삼성화재는 11일 “김상우 성균관대 감독 겸 KBSN 해설위원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1995년 실업팀 삼성화재 배구단에 입단한 김 신임 감독은 2007년까지 삼성화재에서만 총 9차례회(아마추어 8회, 프로 1회)의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선수 은퇴 후에는 프로 및 대학 배구 감독, 해설위원으로 꾸준히 활동하며 풍부한 경험과 지도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 시즌 최하위에 이어 올 시즌에도 6위에 머문 삼성화재의 ‘명가 재건’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다. 김 신임 감독은 “선수로서 땀 흘렸던 고향 같은 구단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삼성 배구단 명가 재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2005년 프로 출범 후 우승을 밥 먹듯 하던 삼성화재는 2018~19시즌 이후 4년 연속 ‘봄 배구’를 하지 못했다. 2020~21시즌 7위, 2021~22시즌 6위로 하위권을 맴돌았다. 김 감독은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진짜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구단과 협의해 다각도로, 어떻게든 전력을 보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리카드를 3년간 이끌 때 훗날 강팀으로 도약하도록 선수 발굴과 육성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는 김 감독은 “3승33패를 하던 우리카드를 맡았을 때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떠올리며 “당시의 경험이 분명 이번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 김경수 전 지사 떠난 경남도지사실 주인은...민주당, 국민의힘 후보 각 2명 신청

    김경수 전 지사 떠난 경남도지사실 주인은...민주당, 국민의힘 후보 각 2명 신청

    오는 6월 1일 실시되는 경남도지사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신상훈·양문석 예비후보의 경선 승자와 국민의힘 박완수·이주영 예비후보의 경선 승자간 맞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9일 민주당에 따르면 지난 5일 부터 7일까지 실시한 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자 등록 신청 마감결과 경남도지사 후보로 신상훈(32) 경남도의원과 양문석(56) 전 통영시·고성군 지역위원장 등 2명이 신청했다. 민주당은 12·14일 면접을 한 뒤 경선을 거쳐 이달안에 후보자를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보다 앞서 지난 4일 부터 6일 까지 광역단체장 후보자 공천 신청 접수를 진행한 국민의힘은 마감결과 경남도지사 후보로는 박완수(67) 국회의원(창원시 의창구)과 이주영(71)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2명이 신청했다. 국민의힘은 후보 신청자에 대해 8~9일 면접을 하고 경선과정을 거쳐 오는 20일까지 후보 공천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도지사 후보 등록을 신청한 신 도의원은 부산 출신으로 김해고와 인제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김경수 전 도지사가 국회의원이었을 때 비서로 근무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남도의원 비례대표 2번으로 경남도의회에 진출했다. 민주당 전국청년지방의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젊은 정치인이다. 양 전 위원장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진주 대아고와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했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 경남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을 맡았다. 2019년 통영·고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정점식 후보에게 패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위원,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한국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민주당 경남도당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국민의힘은 재선 현역 의원인 박완수 의원과 5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이주영 전 장관이 후보 공천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박 의원은 통영 출신으로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마산수출자유지역 전자회사에서 근로자로 근무하며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경남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남 합천군수와 김해시 부시장을 지냈다. 창원시장 3선을 거쳐 재선 국회으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과 미래통합당에서 사무총장을 지냈다. 박 의원은 앞서 경남도지사 선거에 2차례 도전했으나 홍준표 의원에게 두번 모두 공천 경선에서 패해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이번 3번째 도전에서는 반드시 도시사 꿈을 이루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인다. 이주영 전 장관은 마산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제20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거쳤다. 경남도 정무부지사, 16~20대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경남도지사 선거와 함께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산구 지역구 강기윤 의원이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해 강 의원이 국민의힘 창원시장 후보가 되면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여 대표는 보궐선거가 확정되면 보궐선거에 나갈 것으로 전해졌다. 박완수 의원의 도지사 선거 출마로 박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시 의창구도 국회의원 보궐선거 가능성이 있다. 의창구 보궐선거에 대비해 민주당에서는 김지수 전 경남도의회 의장이 준비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경남경찰청장과 경기경찰청장, 한국인 최초 인터폴총재 등을 지낸 김종양 전 청장이 출마를 준비 하며 움직이고 있다. 올 3월 치러진 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경남 18개 시군 모든 지역에서 득표율이 민주당을 앞섰다. 경남지역 전체 대선 득표율은 민주당이 37.38%, 국민의힘이 58.24% 였다. 2018년 제7회 6·13 지방선거에서는 당시 국회의원이던 민주당 김경수 후보가 의원직을 던지고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드루킹 댓글조작 연루 혐의로 지난해 7월 21일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돼 임기중에 지사직을 잃었다. 이번 경남도지사 선거에 민주당 공천 신청을 한 예비후보 2명이 비교적 정치 신인이어서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 예비 후보간에 대결로 선거가 치러지면 국민의힘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 대학들 대면 수업 재개에 총학 활동 기지개

    대학들 대면 수업 재개에 총학 활동 기지개

    대면 수업 재개로 학생들이 캠퍼스로 모여들면서 ‘개점휴업’ 상태였던 총학생회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축제 등 각종 행사를 열거나 학내 이슈와 관련해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학생 자치기구로서의 모습을 되찾는 모양새다. 총학생회 부활의 신호탄을 쏜 것은 서울대다. 서울대는 2019년 이후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았는데 지난 1일 2년 4개월 만에 총학생회장을 뽑았다.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김지은(조선해양공학과 18학번)씨는 6일 “그동안 비대면 수업으로 학생들이 학생회의 역할을 체감하지 못해 투표율이 저조했다”며 “대면 수업으로 전환돼 학생 사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학생회의 필요성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총학생회 또한 무용론에 시달려 왔다. 학생들을 대변할 만큼 논란이 큰 정치적 이슈도 없을 뿐 아니라 학생 자치기구를 이끌 만한 동력 자체도 미약했기 때문이다. 총학생회가 아예 구성되지 않거나 활동 기반인 학생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개교 이래 늘 높은 투표율로 총학생회가 꾸려졌던 이화여대는 지난해와 올해 처음으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아 단과대 대표로 이뤄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됐다. 서강대의 경우 2년 연속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돼 공백 상태였다가 지난해 5월 구성됐고 고려대 역시 2020년과 2021년까지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다가 올해 선출됐다. 배제대는 학생회비가 걷히지 않자 학생의 원주소지로 납부고지서를 보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한국외대는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의 유사학과를 통폐합하겠다는 학교 정책과 관련해 설문을 진행하고 학교 관계자와 간담회를 하는 등 학생들을 적극 대변하고 있다. 5년 만에 총학생회가 구성된 한양대는 기숙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 본부와 함께 현장을 방문하고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노후 시설 문제에 대응 중이다. 학생 자치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코로나 학번’도 총학생회의 행보를 반기고 있다. 윤이준(21) 성균관대 국문과 학생회장은 “2년간 학과 학생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어려웠는데 총학생회가 주도적으로 학생 자치를 선도하면서 학과 학생회의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유선(20)씨는 “지난해에는 학교에 불만이 있어도 소통 창구가 없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만 산발적으로 의견이 공유됐다”며 “총학생회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학생 의견이 적극적으로 모아지고 학교에 전달되는 것을 보며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 대면 수업 재개에 기지개 켜는 학생 자치…‘개점휴업’ 총학생회가 돌아온다

    대면 수업 재개에 기지개 켜는 학생 자치…‘개점휴업’ 총학생회가 돌아온다

    대학가 대면 수업 재개에 총학생회 부활무용론·비대위·투표율 미달 등 위기 컸지만올해 서울대 등 대부분 대학서 총학생회 구성학생 사회 관심 높아지고 학생회 필요성 체감대면 수업 재개로 학생들이 캠퍼스로 모여들면서 ‘개점휴업’ 상태였던 총학생회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축제 등 각종 행사를 열거나 학내 이슈와 관련해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학생 자치기구로서의 모습을 되찾는 모습이다. 총학생회 부활의 신호탄을 쏜 것은 서울대다. 서울대는 2019년 이후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았는데 지난 1일 2년 4개월 만에 총학생회장을 뽑았다.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김지은(조선해양공학과 18학번)씨는 6일 “그동안 비대면 수업으로 학생들이 학생회의 역할을 체감하지 못해 투표율이 저조했다”며 “대면 수업으로 전환돼 학생 사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학생회의 필요성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총학생회 또한 무용론에 시달려왔다. 학생들을 대변할 논란이 큰 정치적 이슈도 없을 뿐 아니라 학생 자치기구를 이끌만한 동력 자체도 미약했기 때문이다. 총학생회가 아예 구성되지 않거나 활동 기반인 학생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개교 이래 늘 높은 투표율로 총학생회가 꾸려졌던 이화여대는 지난해와 올해 처음으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아 단과대 대표로 이뤄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됐다. 서강대의 경우 2년 연속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돼 공백 상태였다가 지난해 5월 당선됐고 고려대 역시 2020년과 2021년까지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다가 올해 선출됐다. 배제대에서는 학생회비가 걷히지 않자 학생의 원주소지로 납부고지서를 보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한국외대는 서울캠퍼스와 글로벌캠퍼스의 유사학과를 통폐합하겠다는 학교 정책과 관련해 설문을 진행하고 학교 관계자와 간담회를 하는 등 학생들을 적극 대변하고 있다. 5년 만에 총학생회가 구성된 한양대는 기숙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 본부와 함께 현장 방문을 하고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노후 시설 문제에 대응 중이다. 학생 자치 문화에 익숙지 않았던 ‘코로나 학번’도 총학생회의 행보를 반기고 있다. 윤이준(21) 성균관대 국문과 학생회장은 “2년간 학과 학생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어려웠는데 총학생회가 주도적으로 학생 자치를 선도하면서 학과 학생회의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한양대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유선(20)씨는 “지난해에는 학교에 불만이 있어도 소통 창구가 없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만 산발적으로 의견이 공유됐다”며 “총학생회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학생 의견이 적극적으로 모아지고 학교에 전달되는 것을 보며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 노화 메커니즘 규명, RNA 백신·치료제 정제… 삼성, 미래기술 육성 과제 27건 선정

    노화 메커니즘 규명, RNA 백신·치료제 정제… 삼성, 미래기술 육성 과제 27건 선정

    노화의 근원적 원인을 규명해 관련 질환 치료법을 개발하고, 가상화 시스템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시대. 삼성이 그리는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과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부터 지원할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연구 과제 27건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올해 선정된 과제는 기초과학 분야 12개, 소재 분야 8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7개 등으로 삼성은 연구비 총 486억 5000만원을 지원한다. 연구 과제로는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과 최고속 트랜지스터 등 미래 신기술뿐만 아니라 노화 메커니즘 규명, 리보핵산(RNA) 백신·치료제 정제 기술 등 전 인류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과제들도 다수 포함됐다. 43세 이하 ‘신진 연구책임자’가 12명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했고, 황준호 서울대 교수, 김희권 성균관대 교수, 최영재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등 30대 연구책임자도 6명 포함됐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국내 기초과학 발전과 산업기술 혁신,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성전자가 1조 5000억원을 출연해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공익 연구 지원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기초과학 분야 251개, 소재 분야 240개, ICT 분야 244개 등 총 735개 연구 과제에 9738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며, 연평균 1000억원의 연구비를 미래기술 육성에 투자해 왔다.이 사업으로 연구 지원을 받은 교수는 총 50여개 대학의 1600여명(참여교수 포함)으로, 과제 참여 연구원까지 포함하면 1만 4000여명에 이른다.
  • “장관 후보자 복수 검토”… 이르면 8일 윤곽

    “장관 후보자 복수 검토”… 이르면 8일 윤곽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한덕수 전 총리를 발표한 가운데 새 정부 조각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윤 당선인 측은 각 부처 장관 후보자를 단수가 아닌 최소 2배에서 최대 5배까지 복수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의 막판 협의와 검증을 거쳐 이르면 8일, 늦어도 다음주 초에는 장관 인사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윤 당선인 측 장제원 비서실장은 5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장관 인사 추천은) 단수로 올라간 부서가 없다”며 “모든 부처에서 3배수, 5배수 때로는 2배수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검증이 다 나온 데가 없다”며 “한 부서 정도 다 나왔을 뿐, 나머지 부서는 검증이 (인사 추천) 개수만큼 온 부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증이 완료돼 다 나와야 낙점이 되지 않겠느냐”며 “검증 보고서가 안 온 상황에서 내정, 확정 이렇게 말하는 건 다 오보”라고 덧붙였다. 우선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이 대선 과정에서 야권후보 단일화를 선언하고 ‘공동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만큼 안 위원장의 의중이 얼마나 반영될지가 관심사다. 실제 안 위원장과 가까운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사회복지문화분과 백경란(성균관대 의대 교수) 인수위원은 질병관리청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거론돼 온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의원의 입각 여부도 관심사다. 낙마하는 장관 후보자가 나오면 지방선거 여론 형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만큼 낙마한 사례가 없는 현역 의원이 고려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현역 의원의 차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어 인수위 내부 고심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는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인 추경호 의원이, 외교부 장관에는 박진·조태용 의원 등이 거론된다. 노동부 장관은 유경준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 삼성이 이끄는 기술의 미래…27개 연구에 486억원 지원

    삼성이 이끄는 기술의 미래…27개 연구에 486억원 지원

    노화의 근원적 원인을 규명해 관련 질환 치료법을 개발하고, 가상화 시스템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시대. 삼성이 그리는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과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부터 지원할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연구 과제 27건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올해 선정된 과제는 기초과학 분야 12개, 소재 분야 8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7개 등으로 삼성은 연구비 총 486억 5000만원을 지원한다. 연구 과제로는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과 최고속 트랜지스터 등 미래 신기술뿐만 아니라 노화 메커니즘 규명, 리보핵산(RNA) 백신·치료제 정제 기술 등 전 인류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과제들도 다수 포함됐다. 43세 이하 ‘신진 연구책임자’가 12명으로 전체의 44%를 차지했고 황준호 서울대 교수, 김희권 성균관대 교수, 최영재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등 30대 연구책임자도 6명 포함됐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국내 기초과학 발전과 산업기술 혁신,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성전자가 1조 5000억원을 출연해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공익 연구 지원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까지 기초과학 분야 251개, 소재 분야 240개, ICT 분야 244개 등 총 735개 연구 과제에 9738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며 연평균 1000억원의 연구비를 미래기술 육성에 투자했다. 이 사업으로 연구 지원을 받은 교수는 총 50여개 대학의 1600여명(참여교수 포함)으로, 과제 참여 연구원까지 포함하면 1만 4000여명에 이른다.
  • “자율규제” 선제조치 내놓은 플랫폼 기업… 인수위 기조에 ‘쐐기’

    “자율규제” 선제조치 내놓은 플랫폼 기업… 인수위 기조에 ‘쐐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 방침이 구체화되는 가운데 플랫폼 기업들도 잇달아 자체적인 자율규제 방안을 내놓으며 적극 호응하고 있다.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제정안, 전자상거래법(전상법) 개정안 등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해 온 주요 플랫폼 규제 법안은 폐기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C2C(소비자 대 소비자)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자율규제의 일환으로 ‘프라이버시 정책 및 이용자보호 위원회’를 새로 출범시켰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외부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선 당근마켓의 프라이버시 정책과 이용자 보호정책 모니터링, 이용자 분쟁 조정, 기타 이용자 민원 심의와 해결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위원장으로 위촉된 김 교수는 “이번 당근마켓의 이용자보호위 출범은 C2C 시장에서 자율규제에 대한 첫 시도이자 선도적 움직임으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당근마켓이 자율규제를 강조한 것은 전상법 개정안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앞서 공정위는 C2C 플랫폼 사업자가 이용자들의 성명, 전화번호, 주소 등 신원 정보를 수집하고, 분쟁이 생기면 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근마켓 등 업계에서 ‘신원정보 수집 의무가 부담된다’고 강하게 반발한 데 이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성명과 주소 수집을 의무화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권고안을 내면서 제동이 걸렸다. 현재까지 개정안은 계류된 상태다. 거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 방안을 담은 온플법 제정안의 타깃인 카카오 역시 자율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골목상권 침탈 논란 등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은 카카오는 올 초 공동체얼라이먼트센터(CAC)를 출범시켜 공동체(계열사) 관리를 강화했다. 조만간 그룹 차원에서의 구체적 상생 방안도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택시 업계와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 온 카카오모빌리티도 지난달부터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상생자문위원회와 모빌리티 투명성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자율규제의 뜻을 피력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날 ‘콜(배차) 몰아주기’ 의혹 해소 차원에서 투명성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인공지능(AI) 배치 시스템 동작 구조를 공개하기도 했다.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쿠팡 등 온플법 적용 대상 플랫폼들도 자율적인 상생 경영에 힘을 주고 있다. 다만 인수위에서 추진하는 플랫폼 자율규제만으로 그간 불거졌던 플랫폼 갑질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플랫폼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입점 업체나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의혹, 네이버·쿠팡·배달의민족 등의 AI 알고리즘 조작 의혹 등의 플랫폼 불공정행위는 결코 개별 기업의 선의에 의존하는 자율규제 수준에서 해결될 수 없다”며 “온플법은 최소한의 규제 수단으로 필요하다”고 짚었다.
  • “나주, 이대로 안된다. 20만 글로벌 강소도시 자신있다”

    “나주, 이대로 안된다. 20만 글로벌 강소도시 자신있다”

    윤병태 전남도 전 정무부지사(61)가 최근 더불어민주당 나주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가 나주시민들에게 시장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하자 다들 놀랐고 지금은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큰물’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나주 남평 출신인 윤 예비후보는 광주상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6회 행정고시를 거쳐 기획재정부와 청와대에서 일했고 2018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화려한 이력에 예산통으로 이름난 그가 이제는 고향에서 시장이 되겠다고 나섰다. “나주시 발전과 전남의 새로운 100년을 이끌어 갈 성과를 거두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2일 나주 빛가람동에 있는 선거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살아온 이야기와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다짐을 들어본다. -나주시장에 도전하는 이유는. “고향인 나주를 도시와 농촌, 전통과 현재, 미래가 조화된 활기 넘치는 명품도시로 만들어 보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3년 넘게 전남도 정무부지사로 일하면서 나주의 내재된 성장 잠재력과 발전의 기회를 발견했다. 바꿔 말하면 나주 발전 기회와 가능성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를 놓치고 있어서 늘 안타까왔다. 지역발전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를 살려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결국 나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나주시민과 만나 대화하면서 ‘이대로는 안된다’는 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열망을 느꼈다. 발전 기회를 잡고 나주를 성장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뭘까 고민도 했다. 현재 나주시가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또 나주발전을 위해 성공적으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여러 분야에 탄탄한 인맥을 확보해 시장에 당선되는 즉시 곧바로 일할 준비가 돼 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는 기재부 예산실에서 잔뼈가 굵은 예산통이다. 그는 가정이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자치단체도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잘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주 발전을 위해 성공한 일이 무엇인가. “나주시가 필요로 하는 예산을 중앙정부와 전남도로부터 과감하게 확보할 능력이 있다. 전남도 정무부지사 시절에 나주에 한국에너지공대를 유치하는데 이바지했다. 9,000억 원에 이르는 초강력레이저 기반구축사업 타당성 용역비를 따왔다. 사용 후 배터리 리사이클링 산업화센터를 2022년까지 구축하고 무인자동화 농업시범단지 등 나주의 미래와 관련한 많은 국책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나주시 행정의 문제점이라면. “나주의 현 상황은 총체적 위기다. 원인은 불통과 소극적인 행정이다. 인구감소의 불안감은 여전하고 혁신도시는 10여 년째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원도심 침체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 나주시 행정은 ‘예산과 규정, 권한 타령’만 하고 있다. 이런 행정으론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와 청와대를 아우르는 28년 여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불통과 소극 행정을 바로잡고 시민 맞춤형 적극행정으로 나주의 새 시대를 견인하겠다.” -시장이 되면 어떤 시정을 펼치고 싶은가. “고향인 나주를 사랑하니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고, 어떻게든 이뤄내고 싶은 간절함이 생기더라. 현장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주위의 작은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지역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제도다. 나주시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모범적인 지방자치 도시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해 시민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궁극적으로는 시민이 나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모범적인 지방자치 도시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나주발전 구상으로 ‘인구 20만 글로벌 강소도시’를 조성하고 싶다.” 그는 이를 실현할 핵심 전략 7가지를 소개했다. △원도심·영산강 연계 문화 관광 스포츠 활성화 △지속 가능한 농업과 살맛나는 농촌 만들기 △활기차고 살고 싶은 빛가람 혁신도시 조성 △에너지 신산업 선도 미래 첨단과학도시 기반 조성 △교육 명품도시 조성 △모두가 행복한 복지공동체도시 △제대로 일하는 확 바뀐 시청이다. - 공직생활의 신조라면. “살면서 기쁜 일 세 가지가 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이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일, 마라톤 4시간 내 완주한 사실이다. 또 성취감을 크게 느낀 일 세 가지는 1998년 정부개혁에 참여하고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한 일, 한전 에너지공대를 나주에 유치한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꼭 안해도 될 일을 힘들게 했느냐’, ‘어떻게 성취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불경일사 부장일지(不經一事 不長一智), 불광불급(不狂不及)’으로 답하고 싶다. 경험하지 않으면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고 어떤 일을 할 때 미친듯한 열정이 없으면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윤 후보 자신은 그동안 많은 경험을 해서 그만한 지혜를 얻었으며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일하는 타입이라는 거다. 그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역량과 능력, 기쁨이 커진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윤 후보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야간에는 대학을 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은행을 그만두고 7년 동안 고시공부에 매달렸다고 한다. 대단한 끈기다. 당시 부인이 많이 고생했다고 회상했다. 한편 나주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뜻을 밝힌 사람은 현재 윤 후보를 포함해서 17명에 이른다. 이들이 모두 예비후보로 등록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주에서는 이들이 윤 후보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가 가진 경제 분야 전문성과 전라남도 부지사 시절 인정받은 업무 추진력, 중앙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때문이라고 한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번역가는 기술자?… 번역이 없었다면 한국문학도 없었다

    번역가는 기술자?… 번역이 없었다면 한국문학도 없었다

    “세계문학을 읽고 번역하면서 한국문학이 성장했고 번역을 통해 우리 말과 글이 보다 풍성해졌다는,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1895년부터 1960년까지 우리말로 번역된 세계 문학 작품 378편의 서문과 후기를 한데 모은 ‘번역가의 머리말’(소명출판)을 펴낸 박진영(50)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3일 번역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번역도 문학이라는 생각이 부족했고, 번역가가 단순히 언어를 전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우리 문학의 한 주체라는 인식도 없었다”며 학계와 출판계 풍토를 꼬집으면서다. 박 교수는 7~8년 전부터 번역 작품 속에 번역가들이 남긴 ‘머리말’들을 모았다. 전국 대학 도서관이나 헌책방을 뒤지다시피 했는데 1960년대 이후부턴 누가 번역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책들이 허다했다. 그는 “1960~1980년대엔 번역가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도 굉장히 많고 필명이나 유명 작가 이름으로 출간한 책도 많았다”면서 “창작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역을 모방쯤으로 여기는 편견이 강했고 번역가가 우리 문학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나마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까지는 번역가들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지만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리가 안 돼 있었다. 서문을 떼고 개정판을 낸 책도 많아 신문과 잡지, 단행본 등 옛 자료들의 실물을 찾아 일일이 확인해 가며 번역가들의 글을 복원했다. 그렇게 계몽기와 식민지 시기 73편, 해방기 27편, 6·25전쟁 전후 소설 44편을 비롯해 시집 25편, 희곡 25편, 아동문학 44편, 추리소설과 모험소설 31편, 중국문학 44편과 일본문학 24편 등 다양한 시대와 장르에 걸쳐 해외 작품을 우리말로 빚어낸 번역가들의 글을 한 권에 담았다. 잔다르크를 다룬 ‘애국부인전’(1907)을 역술한 장지연은 “슬프다, 우리나라도 약안(잔다르크) 같은 영웅호걸과 애국충의의 여자가 혹 있는가”라고 외치기도 했고, ‘엉클 톰스 캐빈’을 원작으로 한 ‘검둥의 설움’(1913)을 옮긴 이광수는 “대강의 대강을 번역하여 여러 젊은이에게 드리노니 이 굉장한 책이 어떤 것인 줄이나 알고 글의 힘이 얼마나 큰 줄이나 알면 내 소원은 이룸이로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소월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억은 이 책의 한 챕터를 차지할 만큼 프랑스 상징주의와 고전 한시를 넘나드는 많은 머리말을 남기며 정교한 번역론을 펼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우리 문학의 ‘최초’를 쓴 이광수와 최남선 등도 번역을 통해 문학적 출발을 했다는 게 인상적”이라면서 “또 많은 번역가들이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작품에 시대정신을 녹이고 새로운 상상력을 어떻게 우리말로 풀어내 독자들과 잘 만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지 머리말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 속 절반 가까이가 1920년대까지 작품들인데 그만큼 ‘한국 문학’이 자리잡기 전부터 번역이 문학의 자리를 채운 것이라는 의의도 덧붙였다. 다만 박 교수는 “번역문학과 번역가에 대한 인식은 아직 크게 나아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번역가가 제대로 책에 등장한 것도 저작권 개념이 체계화된 1990년대 들어서였고 비교문학이 아닌 번역문학 자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등장한 것도 불과 10여년 전부터다. 그는 특히 “사회과학이나 과학기술 등 우리의 모든 학문 분야도 번역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며 “번역가의 날·번역문학상 제정 등 번역가에 대한 대접이 좋아지고 번역도 더 활발해져야 우리 문학이나 사상, 과학기술도 같이 발전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 3년 만의 대학 축제

    3년 만의 대학 축제

    23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금잔디 광장에서 열린 ‘금잔디 문화제’에서 재학생들이 모처럼 축제를 즐기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만에 열린 이번 ‘금잔디 문화제’는 동아리 공연, 야외 영화 상영, 푸드트럭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틀간 진행된다.
  • [단독] ‘대장동 의혹’ 전·현 성남시의원 최소 4명 연루 추적

    [단독] ‘대장동 의혹’ 전·현 성남시의원 최소 4명 연루 추적

    경찰이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과 관련해 윤창근 성남시의회 의장을 포함, 전·현직 성남시의원 최소 4명에 대해 연루 의혹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23일 파악됐다. 이미 최윤길 전 의장이 구속 기소된 가운데 성남시의회를 향한 수사가 어느 선까지 확대될지 주목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른바 ‘약속클럽’에 15억원 약속 대상으로 언급된 윤 의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소속 A, B 전 시의원, 현직 C시의원이 대장동 사업에 부당하게 관여한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장은 정역학 녹취록과 이미 구속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대장동 업자로부터 금품을 받기로 한 약속클럽에 ‘50억 클럽’ 6명과 함께 이름이 언급(서울신문 3월 23일자 11면)됐다. 약속클럽은 대장동 핵심 피의자들이 주요 로비 대상 등을 묶어 지칭할 때 썼던 표현으로 여기에는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도 700억원 약속받은 것으로 돼있다. 수사당국에선 윤 의장이 2012년 7월 하반기 성남시의회 의장 선거에서 성균관대 동문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의 부탁을 받고 최 전 의장에게 민주당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구속기소된 최 전 의장의 공소장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다만 공소장에도 윤 의장이 청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청탁과 15억원 약속 사이 관련성 여부가 밝혀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윤 의장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앞서 해명했다. A 전 시의원은 수억원을 수수하고 또 거액의 돈을 김씨에게 빌렸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정영학 녹취록에도 김씨가 A 전 시의원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A 전 시의원은 2013년 2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경찰은 또 민주당 소속 B 전 시의원, 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해 온 C 시의원 등에 대해서도 대장동 개발업자에게 부당한 청탁을 받은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은 지난해 11월 말 수사협의체 회의를 통해 대장동 의혹 중 성남시의회 비리는 경찰이 맡도록 했다. 경기남부청은 뇌물을 약속받고 성남도개공 설립 조례안 통과를 주도한 최 전 의장을 지난 1월 구속했다. 하지만 이후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시의회 관련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뤘다.
  • 3년 만의 대학 축제

    3년 만의 대학 축제

    23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금잔디 광장에서 열린 ‘금잔디 문화제’에서 재학생들이 모처럼 축제를 즐기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만에 열린 이번 ‘금잔디 문화제’는 동아리 공연, 야외 영화 상영, 푸드트럭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틀간 진행된다.
  • [단독] 최윤길 외에 전·현직 의원 4명 연루 의혹…성남시의회 수사 확대되나

    [단독] 최윤길 외에 전·현직 의원 4명 연루 의혹…성남시의회 수사 확대되나

    경찰이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과 관련해 윤창근 성남시 의회 의장을 포함, 전·현직 성남시의원 최소 4명에 대해 연루 의혹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23일 파악됐다. 이미 최윤길 전 의장이 구속기소된 가운데 성남시 의회를 향한 수사가 어느 선까지 확대될지 주목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른바 ‘약속클럽’에 15억원 약속 대상으로 언급된 윤 의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소속 A, B 전 시의원, 현직 C 시의원이 대장동 사업에 부당하게 관여한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장은 정역학 녹취록과 이미 구속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대장동 업자로부터 금품을 받기로 한 약속클럽에 ‘50억 클럽’ 6명과 함께 이름이 언급(서울신문 3월 23일자 11면)됐다. 약속클럽은 대장동 핵심 피의자들이 주요 로비 대상 등을 묶어 지칭할 때 썼던 표현으로 여기에는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도 700억원 약속받은 것으로 돼있다. 수사당국에선 윤 의장이 2012년 7월 하반기 성남시의회 의장 선거에서 성균관대 동문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의 부탁을 받고 최 전 의장에게 민주당 표를 몰아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구속기소된 최 전 의장의 공소장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다만 공소장에도 윤 의장이 청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청탁과 15억원 약속 사이 관련성 여부가 밝혀져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윤 의장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앞서 해명했다.A 전 시의원은 수억원을 수수하고 또 거액의 돈을 김씨에게 빌렸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정영학 녹취록에도 김씨가 A 전 시의원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A 전 시의원은 2013년 2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경찰은 또 민주당 소속 B 전 시의원, 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해온 C 시의원 등에 대해서도 대장동 개발업자에게 부당한 청탁을 받은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은 지난해 11월말 수사협의체 회의를 통해 대장동 의혹 중 성남시의회 비리 부분은 경찰이 맡도록 했다. 경기남부청은 뇌물을 약속받고 성남도개공 설립 조례안 통과를 주도한 최 전 의장을 지난 1월 구속했다. 하지만 이후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시의회 관련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수사를 대선 이후로 미뤘다.
  • [단독] 검찰 “윤창근, 15억 받기로 했다” 진술 확보

    [단독] 검찰 “윤창근, 15억 받기로 했다” 진술 확보

    경기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50억 클럽’ 외에 윤창근 성남시의회 의장도 15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은 지난해 10월 정영학 녹취록 및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핵심 피의자들의 자술서 등을 바탕으로 ‘50억 클럽’ 외에 ‘유동규 700억, 윤창근 15억’ 등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58·구속)씨가 또 다른 ‘약속클럽’을 관리했다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약속클럽은 실제로 대장동 핵심 피의자들이 주요 로비 대상 등을 묶어 지칭할 때 썼던 표현이다. 자술서 등에 기록된 ‘50억 클럽’ 명단은 이미 정치권을 통해 알려진 6명의 명단과 일치한다. 이 중 곽상도 전 의원은 실제로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세금 제외 25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또 유 전 본부장이 대장동 개발 이익에서 700억원(세금 공제 후 428억원)을 받기로 약속한 혐의도 그의 공소장에 그대로 명시됐다. 약속클럽 중 일부는 검찰이 실제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고 이미 재판에 넘긴 것이다. 다만 검찰은 윤 의장이 15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검경 업무 조정에 따라 관련 내용을 경찰에 넘겼으며 이에 따라 경기남부청이 해당 진술의 배경 등을 조사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윤 의장이 15억원을 약속받았다는 의혹은 기존에 제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씨가 “성남시의장(최윤길)에게 30억원, 성남시의원에게 20억원이 전달됐고 실탄은 350억원이다”라고 언급한 사실 정도다. 이 녹취록 발언과 비교해 보면 당시 시의원이었던 윤 의장 등이 성남시의원을 가리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의장은 성균관대 출신으로 김씨의 동문이다. 구속된 최윤길 전 의장의 공소장에는 2012년 성남시의장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였던 윤 의장이 김씨의 청탁에 따라 최 전 의장이 몰표를 받도록 도왔다는 내용(서울신문 3월 22일자 11면)이 적시돼 있다. 공소장에는 윤 의장이 어떤 이유로 김씨의 요청을 받아들였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경찰은 15억원과 의장 선거 사이의 관련성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상황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약속클럽에 대한 수사는 곽 전 의원을 빼면 검경에서 모두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검경은 대선이 끝난 만큼 나머지 인물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의장은 김씨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 15억원을 약속받았다는 의혹 모두 강력하게 부인했다. 김씨와 가까운 사이가 아닐뿐더러 청탁을 받은 적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윤 의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15억원 약속클럽과 관련해)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면서 “16년 동안 의원을 하면서 그런 부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또 “소환 통보라든지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 [단독]檢 “50억 클럽 외 윤창근 15억” 진술 확보…최윤길 의장 만든 대가?

    [단독]檢 “50억 클럽 외 윤창근 15억” 진술 확보…최윤길 의장 만든 대가?

    경기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50억 클럽’ 외에 윤창근 성남시의회 의장도 15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은 지난해 10월 정영학 녹취록 및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핵심피의자들의 자술서 등을 바탕으로 ‘50억 클럽’ 외에 ‘유동규 700억, 윤창근 15억’ 등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58·구속)씨가 또 다른 ‘약속클럽’을 관리했다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약속클럽은 실제로 대장동 핵심 피의자들이 주요 로비 대상 등을 묶어 지칭할 때 썼던 표현이다. 자술서 등에 기록된 ‘50억 클럽’ 명단은 이미 정치권을 통해 알려진 6명의 명단과 일치한다. 이 중 곽상도 전 의원은 실제로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세금 제외 25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또 유 전 본부장이 대장동 개발 이익에서 700억원(세금 공제 후 428억원)을 받기로 약속한 혐의도 그의 공소장에 그대로 명시됐다. 약속클럽 중 일부는 검찰이 실제 범죄혐의가 있다고 보고 이미 재판에 넘긴 것이다.다만 검찰은 윤 의장이 15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검·경 업무 조정에 따라 관련 내용을 경찰에 넘겼으며 이에 따라 경기남부청이 해당 진술의 배경 등을 조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윤 의장이 15억원을 약속받았다는 의혹은 기존에 제기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씨가 “성남시의장(최윤길)에게 30억원, 성남시의원에게 20억원이 전달됐고 실탄은 350억원이다”고 언급한 사실 정도다. 이 녹취록 발언과 비교해보면 당시 시의원이었던 윤 의장 등이 성남시 의원을 지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의장은 성균관대 출신으로 김씨의 동문이다. 구속된 최윤길 전 의장의 공소장에는 2012년 성남시의장 선거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였던 윤 의장이 김씨의 청탁에 따라 최 전 의장이 몰표를 받도록 도왔다는 내용(서울신문 3월 22일자 11면)이 적시돼 있다. 공소장에는 윤 의장이 어떤 이유로 김씨의 요청을 받아들였는지는 나와있지 않다.경찰은 15억원과 의장 선거 사이의 관련성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현재 수사중인 상황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약속클럽에 대한 수사는 곽 전 의원 외에 검·경에서 모두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검경은 대선이 끝난 만큼 나머지 약속클럽 인물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윤 의장은 김씨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 15억원을 약속받았다는 의혹 모두 강력하게 부인했다. 김씨와 가까운 사이가 아닐 뿐더러 청탁을 받은 적 자체가 없단 것이다. 윤 의장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15억원 약속 그룹과 관련해)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면서 “16년 동안 의원을 하면서 그런 부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또 “소환 통보라든지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 [단독] “윤창근 성남시의회 의장, 김만배 청탁 응했다”

    [단독] “윤창근 성남시의회 의장, 김만배 청탁 응했다”

    윤창근 경기 성남시의회 의장이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의 청탁에 응했던 사실이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윤 의장은 지난 1월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입장문을 통해 “10년이 지난 최 전 의장의 선출 과정이 호도되고 있다”면서 “전형적인 마타도어”라고 극구 부인했음에도 수사기관에서는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라 판단한 것이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최 전 의장의 공소장에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2012년 6월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의 이권을 위해 윤 의장에게 최 전 의장의 의장 선거 당선을 부탁한 정황이 담겼다. 당시 김씨는 2012년 하반기 성남시의회 의장 선거를 앞두고 성균관대 동문이자 성남시의회 민주통합당 대표인 윤 의장에게 접근했다. 그는 윤 의장에게 “새누리당 자체 경선에서 떨어진 최 전 의장에게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표를 몰아줘 성남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장동 사업을 위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에 협조적인 최 전 의장을 의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김씨가 윤 의장을 상대로 설득에 나선 것이다. 이에 윤 의장이 같은 당 소속 시의원에게 “민주통합당 소속이 아닌 새누리당 소속 의원인 최 전 의장을 뽑아 달라”고 설득했던 것으로 공소장에 기록됐다. 결국 새누리당 소속이던 최 전 의장은 과반인 19표를 받아 당시 같은 당 박권종(13표) 의원을 누르고 성남시의회 의장에 선출됐다. 이후 최 전 의장은 김씨 일당과의 약속에 따라 2013년 2월 새누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남도개공 설립 조례안 통과를 강행했다. 대장동 민간개발업자들은 이렇게 설립된 성남도개공에 자기 사람을 심고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에게 로비를 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공모 조건을 이끌어냈다. 결국 윤 의장은 최 전 의장의 당선을 도움으로써 대장동 민간개발업자가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데 기초공사를 해 준 격이 됐다. 다만 공소장에는 윤 의장이 어떤 이유로 김씨 요청을 받아들여 최 전 의장 당선에 기여했는지는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다. 이에 대장동 사건 중 성남시의회 로비 부분 수사를 맡은 경기남부청이 당시 의장 선거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 의장은 2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당시 의장 선거 이후 의회 운영을 두고 양당 사이 협상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의장 선출에 들어갔고 그에 대한 반발로 최 전 의장이 당선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윤 의장은 “의원님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하라고 얘기했지 최 전 의장을 지목한 바는 없다”면서 “그 일로 김씨에게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 [단독]윤창근 성남시 의장, 대장동 업자 도운 정황…본인 해명에도 檢공소장 적시

    [단독]윤창근 성남시 의장, 대장동 업자 도운 정황…본인 해명에도 檢공소장 적시

    윤창근 성남시의회 의장이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의 청탁에 응했던 사실이 최윤길 전 성남시의장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윤 의장은 지난 1월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입장문을 통해 “10년이 지난 최 전 의장의 선출 과정이 호도되고 있다”면서 “전형적인 마타도어”라고 극구 부인했음에도 수사기관에서는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라 판단한 것이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최 전 의장의 공소장에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2012년 6월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의 이권을 위해 윤 의장에게 최 전 의장의 의장 선거 당선을 부탁한 정황이 담겼다. 당시 김씨는 2012년 하반기 성남시의회 의장 선거를 앞두고 성균관대 동문이자 성남시의회 민주통합당 대표인 윤 의장에게 접근했다. 그는 윤 의장에게 “새누리당 자체 경선에서 떨어진 최 전 의장에게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표를 몰아줘 성남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대장동 사업을 위한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에 협조적인 최 전 의장을 의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김씨가 윤 의장을 상대로 설득에 나선 것이다. 이에 윤 의장이 같은 당 소속 시의원에게 “민주통합당 소속이 아닌 새누리당 소속 의원인 최 전 의장을 뽑아달라”고 설득했던 것으로 공소장에 기록됐다. 결국 새누리당 소속이던 최 전 의장은 과반을 넘긴 19표를 받아 같은 당 박권종(13표) 당시 의원을 누르고 성남시의회 의장에 선출됐다. 이후 최 전 의장은 김씨 일당과의 약속에 따라 2013년 2월 새누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남도개공 설립 조례안 통과를 강행했다. 대장동 민간개발업자들은 이렇게 설립된 성남도개공에 자기 사람을 심고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에게 로비를 하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공모 조건을 이끌어냈다. 결국 윤 의장은 최 전 의장의 당선을 도움으로써 대장동 민간개발업자가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데 기초공사를 해준 격이 됐다. 다만 공소장에는 윤 의장이 어떤 이유로 김씨 요청을 받아들여 최 전 의장 당선에 기여했는지는 상세하게 나와있지 않다. 이에 대장동 사건 중 성남시의회 로비 부분 수사를 맡은 경기남부청이 당시 의장 선거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 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윤 의장은 21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당시 의장 선거 이후 의회 운영을 두고 양당 사이 협상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의장 선출에 들어갔고 그에 대한 반발로 최 전 의장이 당선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윤 의장은 “의원님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하라고 얘기했지 최 전 의장을 지목한 바는 없다”면서 “그 일로 김씨에게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윤 의장은 김씨와 관계에 대해서 “학교를 같이 다닌 적도 없고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다”면서 “다만 김씨가 의회에 취재차 와서 한두 번 본 것은 맞는데 친분관계가 좋은 사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와 만나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해선 “그냥 인사차 왔다는 것이고 시에 관련된 취재였지 의회와 관련된 취재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윤 의장은 성남도개공 설립 조례안 로비와 관련해선 “그건 내가 아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공소장에 내용은 최 전 의장 본인이 있는대로 처벌받든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윤석열 인수위’ 당선 8일만의 속전속결 출범…인수위 면면 살펴보니

    ‘윤석열 인수위’ 당선 8일만의 속전속결 출범…인수위 면면 살펴보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8일 현판식을 열고 공식적으로 닻을 올렸다. 지난 10일 윤 당선인의 당선이 확정된 지 8일 만이자,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발탁된 지 5일 만이다.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진행했다. 이날 현판식에는 안 위원장과 권영세 부위원장,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 등을 포함해 약 40명 정도가 참석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도 이날 현판식에 함께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출범 후 첫 회의를 주재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인수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코로나19”라면서 “하루 수십만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인수위 회의는 수시로 당선인이 주재하면서 함께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운영 상황을 돌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인수위는 당선 후 8일 만에 속전속결로 꾸려졌다. 2012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가 당선 후 현판식까지 16일이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됐다. 당선 후 7일 만에 출범한 2007년 이명박 인수위 때와 비슷하다. 노무현 인수위는 12일이 걸렸다. 인수위 인적 구성은 법에 따라 위원장 1명, 부위원장 1명, 위원 24명 이내를 포함해 200명 안팎으로 이뤄진다. 이명박 인수위는 약 180명, 박근혜 인수위는 약 150명이었다. 이번 윤 당선인 인수위는 약 200명 규모다. 전날 인선을 완료한 윤 당선인의 인수위는 7개분과로 구성됐다. ▲기획조정 ▲외교안보 ▲정무사법행정 ▲경제1(경제정책·거시경제·금융) ▲경제2(산업·일자리) ▲과학기술교육 ▲사회복지문화 분과로 구분된다. 분과별 인원은 경제2분과와 사회복지문화 분과는 4명, 나머지 5개분과는 3명씩 배정됐다. 별도로 당선인 비서실과 국민통합위, 지역균형발전특위, 코로나비상대응특위 등의 조직을 꾸렸다. 인수위 구성은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을 주축으로 이뤄졌다. 24명의 인수위원 가운데 13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여성 인수위원은 사회복지문화분과의 임이자 의원과 백경란 성균관대 의대 교수, 대변인을 맡은 신용현 전 의원, 정무사법행정분과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 4명이었다. 윤 당선인이 안 위원장과의 ‘공동정부’를 약속한 만큼 인수위 구성에서의 균형감 있는 안배도 포착된다. 안 위원장계 인사는 3분의 1 정도 배치됐다. 안 위원장 측 인사인 신용현 전 의원이 대변인을 맡고, 윤 당선인을 도와 온 원일희 전 SBS논설위원과 최지현 변호사가 부대변인을 맡는 식으로 안배했다. 인수위는 이날부터 집권 후 첫 100일 과제 선정을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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