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 Disease]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장 윤태기 박사
“생활 여건이 변하면서 갈수록 불임여성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의학이 더 이상 그들을 불임이라는 어둠 속에 방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불임의학의 개척자인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장인 윤태기(53) 박사를 연구실에서 만났다.우리나라 최초의 나팔관아기 시술과 민간병원 처음으로 시험관아기 시술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99년에는 불임의학의 최첨단 기술인 유리화 난자동결법을 통해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등 이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쌓아 왔다.그는 “불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씻어내고 환자들의 고통을 크게 덜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불임의학이 거둔 성공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먼저,불임을 정의해 달라.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1년 이내에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통상 정상적인 상태에서 전체의 85%가 임신에 성공하므로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불임은 그 나머지가 될 것이다.임상적으로는 처음부터 임신이 안 되는 일차성 불임,임신 경력은 있으나 이후 임신이 안 되는 이차성 불임으로 나눠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불임 실태는 어떤가.
-결혼해 애를 갖고자 하는 여성의 13.5% 정도가 불임의 고통을 겪고 있다.15∼44세의 가임 여성이 680만명 정도이니 전국적으로 100만명가량 되지 않을까.
불임에도 원인이 있을 텐데.
-너무 다양해 일률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환경 측면에서 보자면,예전과 달리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나이 들어 결혼하는 사람이 는다든가,적령기에 결혼을 한 경우라도 임신을 늦추는 경우와 피임,임신중절,각종 감염이나 비만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물론 타고난 유전적 요인도 작용한다.
●가임여성 13.5% 100만명이 불임 고통
이 대목에서 그는 불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거론했다.“일부에서 불임이 성개방 풍조에 따른 문란한 성관계나 잦은 낙태수술에서 기인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중요한 편견이자 심각한 현실왜곡”이라며 “이처럼 한 사회의 성숙도는 불임 문제를 보는 시각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고 지적했다.그는 무척 감각이 섬세했다.예를 들어 보통 말하는 ‘늦은 결혼’ 대신 ‘나이 들어 하는 결혼’이라는 말을 썼다.늦거나 이름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어서 의사가 이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인에 따라 치료방법도 다양
의학적으로 규명된 불임 원인은.
-가장 흔한 원인이 무월경이나 희발(稀發) 혹은 과다월경,자궁출혈 등의 증상을 보이는 배란 이상인데,전체의 30∼40%가 여기에 해당된다.갑상선질환이나 섭식 장애,지나친 다이어트나 과체중,남성호르몬의 과다분비 등이 원인 질환이다.또 같은 정도의 사람들은 난관이 막히거나 자궁내막증 등 난관과 복막의 문제가 원인이 되며,20% 정도는 자궁경부와 자궁이 원인인 경우다.면역체계에 문제가 있거나 원인이 드러나지 않은 불임도 더러 있다.
치료는 가능한가.
-불임은 원인을 찾아 치료한다.예컨대 나팔관이 막혔다면 그냥 뚫기보다 그게 막힌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된다.그런 특성 때문에 일률적으로 치료의 가능성을 말하기는 어렵다.분명한 것은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치료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시험관아기 시술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처음 성공한 86년 이래 초기에는 1회 성공률이 10%대였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공히 30%대에 이른다.여러번 시도해 성공률을 따지는 누적성공률은 70∼80%나 된다.지금은 불임이 불치가 아닌 시대이다.
치료법의 흐름은 어떤가.
-수술 의존도가 높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시험관아기 시술이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추측건대,머잖아 외과적 수술치료법이 시험관아기 시술로 대체되지 않겠나.난관에 경미한 문제가 있거나 성과에 확신이 있는 경우 수술을 권하지만,시험관아기에 대한 환자들의 선호도는 생각보다 높다.수술은 수술에 성공한 뒤 자연임신을 기대하는 방법인 반면 시험관 시술은 즉시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시험관아기 쌍둥이 출생 축소 연구과제
치료법 선택에도 기준이 있나.
-우선은 임신이 잘되는 방법을 택한다.또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그러면서 환자의 건강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시험관아기 시술에 대한 도덕적 논란은 좀 수그러들었나.또 드러난 문제점은 무엇인가.
-시험관 시술에 대한 비난은 없다.어차피 과학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존재하고 진보하는 것이다.고작 24∼36시간 정도 체외에서 배양하는 시험관 시술이 문제가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시험관아기 시술의 문제는 쌍둥이가 많다는 것이다.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배아 숫자를 늘리기 때문인데,이걸 좀 낮춰야 한다.배란유도제에 의해 배에 물이 차는 등의 부작용도 간혹 있다.또 아직까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약제가 장기적으로 난소에 미치는 영향도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불임치료 기술의 진보에 대해 얘기해 달라.어디까지 와 있는가.
-몇 가지 주목할 치료기술이 선보이고 있다.먼저 미성숙 난자를 채취해 체외수정을 하는 방법이 있고,유리화 난자동결법,착상 전 수정란의 유전적 진단 등이 그것이다.모두 우리 병원에서 가능한 기술이며,지금도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불임치료 보험지원 확대돼야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불임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보험체계를 보완하거나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종족의 증식 본능을 가진 사람이 이 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할 때 절망한다.이런 점에서 그가 몰입하는 불임의학은 그의 설명이 아니라도 가히 ‘인간의 의학’이라 할 만했다.
그래서 ‘완전한 불임 정복’을 말하는 그가 더 커보이는 걸까.
심재억기자 jeshim@
■ 프로필
△연대의대,예일대 수학 △연대의대·경희대의대 교수 역임,현 중문의대 산부인과 교수 겸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장 △한국 최초 나팔관아기 시술 성공(86년) △민간병원 최초로 시험관아기 시술 성공(86년) △미성숙난자 체외 성숙후 체외수정 성공(98년) △난자 유리화 동결후 임신 성공(99년) △세계불임학회 및 미국 불임학회 최우수논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