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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희 아나운서 “4년간 뭐하다 이제”…이동형 “숨어서 뭐하나” 2차 가해 논란(종합2보)

    박지희 아나운서 “4년간 뭐하다 이제”…이동형 “숨어서 뭐하나” 2차 가해 논란(종합2보)

    진중권 “사회적 흉기…마이크 내려놓아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 비서 직원을 향해 방송 진행자들의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tbs교통방송의 박지희 아나운서는 14일 ‘청정구역 팟캐스트’ 202회 1부 방송에서 “(피해자) 본인이 처음에 (박 전 시장의) 서울시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얘기를 했다는데 왜 그 당시에 신고를 하지 못했나, 저는 그것도 좀 묻고 싶다”고 했다. 박지희 tbs 아나운서 “왜 신고 못 했나 묻고 싶다” 그러면서 “4년 동안 그러면 도대체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런 식으로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궁금하다”고 피해자 고소의 순수성을 문제삼는 듯한 발언을 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의 법률대리인이다. 박지희 아나운서는 tbs 시사 프로그램 ‘뉴스공장 외전 - 더 룸’을 노영희 변호사, 박지훈 변호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tbs는 서울시가 설립한 방송이다. 노영희 변호사는 최근 고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반대하는 뜻을 밝히면서 친일 논란에 더해 “6·25 때 우리 민족(북한)에 총을 쏜 분”이라는 논리를 펼쳤다가 비난을 받자 YTN라디오에서 진행하던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이동형 작가 “미투는 신상 드러내고 하는 것” 주장 YTN라디오에서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를 진행하고 있는 이동형 작가도 같은 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동형TV’ 라이브 방송에서 “미투 사건은 과거 있었던 일을 말 못 해서 밝힌다는 취지로 신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향해 “피고소인(박 전 시장)은 인생이 끝이 났는데 숨어서 뭐 하는 것인가”라고 요구했다. 또 “(피해자는) 뒤에 숨어 있으면서 무슨 말만 하면 2차 가해라고 한다”면서 “4년씩 어떻게 참았는지도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게 이상한가”라는 말도 했다. 심지어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다 추행이 되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은 이상하다고 말하면 2차 가해니 말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 진중권 “정권 바뀌었는데 피해자 공격하는 것 똑같다” 이 같은 발언이 논란이 되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고상하고 고결한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려고 한다”며 비판했다.박지희 아나운서에 대해 진중권 전 교수는 “tbs는 방송사가 아니라 지뢰밭”이라고 꼬집었고, 이동형 작가에 대해서는 “이 친구도 마이크 내려놓아야겠다. 사회적 흉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문빠(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 피해자에게 하는 짓은 19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했던 짓과 본질에서는 똑같다”고 평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그때 저들(독재정권)은 권인숙 의원을 향해 ‘성을 혁명의 무기화했다’고 두드려 댔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그(권인숙)를 믿어주고 그의 말을 들어준 사람이 조영래 변호사와 박원순 변호사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참 이상하죠? 정권은 바뀌었는데 펼쳐지는 풍경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서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시청자들 ‘하차 요구’ 빗발…tbs·YTN “입장 없다” 조수진 미래통합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박지희 아나운서를 향해 “친여(與) 아나운서는 ‘서지현 검사는 8년간 뭐하다 성추행 폭로했나’, 이렇게 서지현 검사도 비판해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서지현 검사의 경우 2018년, 8년 전 일을 방송에 나와 폭로했으니까요”라며 “내로남불, 이중잣대, 지긋지긋하다”고 지적했다. 박지희 아나운서와 이동형 작가가 각각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tbs와 YTN 홈페이지에선 이들의 하차를 요구하는 청취자(시청자)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tbs와 YTN 측은 이날 오전까지 “별다른 입장이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박지희 아나운서 “4년간 뭘 하다 이제”…이동형 “숨어서 뭐하나” 2차 가해 논란(종합)

    박지희 아나운서 “4년간 뭘 하다 이제”…이동형 “숨어서 뭐하나” 2차 가해 논란(종합)

    진중권 “사회적 흉기…마이크 내려놓아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 비서 직원을 향해 방송 진행자들의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 tbs교통방송의 박지희 아나운서는 14일 ‘청정구역 팟캐스트’ 202회 1부 방송에서 “(피해자) 본인이 처음에 (박 전 시장의) 서울시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얘기를 했다는데 왜 그 당시에 신고를 하지 못했나, 저는 그것도 좀 묻고 싶다”고 했다. 박지희 tbs 아나운서 “왜 신고 못 했나 묻고 싶다” 그러면서 “4년 동안 그러면 도대체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런 식으로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세상에 나서게 된 건지도 궁금하다”고 피해자 고소의 순수성을 문제삼는 듯한 발언을 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의 법률대리인이다. 박지희 아나운서는 tbs 시사 프로그램 ‘뉴스공장 외전 - 더 룸’을 노영희 변호사, 박지훈 변호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tbs는 서울시가 설립한 방송이다. 노영희 변호사는 최근 고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에 반대하는 뜻을 밝히면서 친일 논란에 더해 “6·25 때 우리 민족(북한)에 총을 쏜 분”이라는 논리를 펼쳤다가 비난을 받자 YTN라디오에서 진행하던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이동형 작가 “미투는 신상 드러내고 하는 것” 주장 YTN라디오에서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를 진행하고 있는 이동형 작가도 같은 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동형TV’ 라이브 방송에서 “미투 사건은 과거 있었던 일을 말 못 해서 밝힌다는 취지로 신상을 드러내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향해 “피고소인(박 전 시장)은 인생이 끝이 났는데 숨어서 뭐 하는 것인가”라고 요구했다. 또 “(피해자는) 뒤에 숨어 있으면서 무슨 말만 하면 2차 가해라고 한다”면서 “4년씩 어떻게 참았는지도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게 이상한가”라는 말도 했다. 심지어 “여자가 추행이라고 주장하면 다 추행이 되는 건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은 이상하다고 말하면 2차 가해니 말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등의 주장을 쏟아냈다. 진중권 “정권 바뀌었는데 피해자 공격하는 것 똑같다” 이 같은 발언이 논란이 되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고상하고 고결한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려고 한다”며 비판했다.박지희 아나운서에 대해 진중권 전 교수는 “tbs는 방송사가 아니라 지뢰밭”이라고 꼬집었고, 이동형 작가에 대해서는 “이 친구도 마이크 내려놓아야겠다. 사회적 흉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문빠(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이 피해자에게 하는 짓은 198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때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했던 짓과 본질에서는 똑같다”고 평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그때 저들(독재정권)은 권인숙 의원을 향해 ‘성을 혁명의 무기화했다’고 두드려 댔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그(권인숙)를 믿어주고 그의 말을 들어준 사람이 조영래 변호사와 박원순 변호사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참 이상하죠? 정권은 바뀌었는데 펼쳐지는 풍경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서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박원순·안희정 더는 안 돼…민주, 당 선출직 상시 감찰 추진

    박원순·안희정 더는 안 돼…민주, 당 선출직 상시 감찰 추진

    이해찬, 비공개 회의서 “기강해이 바로잡겠다”‘무관용 원칙’ 천명…‘기강 감시’ 상설기구 설치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이어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줄줄이 여직원에 대해 성범죄 의혹이 불거져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자당 소속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상시 감찰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여론 악화를 의식한듯 “기강해이를 바로잡겠다”며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나섰다. 여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내부 검토를 거쳐 성폭력 등 범죄들을 사전 예방하기 위한 당내에 별도 기구를 만들 예정이다. 전직 비서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 당한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거물급 인물들의 성범죄 연루가 당의 도덕성과 이미지에 직격탄을 입히고 향후 국정 운영이나 대선 가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박 전 시장뿐만 아니라 지방의원들의 사건·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도 ‘시한폭탄’처럼 당에 골칫거리가 되고 있어 근본적으로 관리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15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직자는 평가감사국과 당무감사원에서, 지역위원회는 조직국에서 각각 감찰이 진행되고 있으나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감찰 기능이 당내에 없다”면서 “선출직을 대상으로 기강 해이를 예방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이해찬 “피해호소인의 고통에 깊은 위로”“고인 부재로 당 차원 진상조사 어려워”“피해호소인 뜻에 따라 서울시가 밝혀라” 앞서 이해찬 대표는 지난 13일 고위전략회의에서 기강해이 사건·사고가 계속되는 것에 강한 우려를 표시한 뒤 “이를 바로 잡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전 시장 및 오거돈 전 부산시장 문제와 관련, “우리 당의 광역단체장이 두 분이 사임을 했다”면서 “당 대표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다시 한번 국민에게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께 큰 실망을 드리고 행정 공백이 발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번 통렬한 사과를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또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문제와 관련, “피해자 입장에서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고인의 부재로 당으로서는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면서 “피해 호소인의 뜻에 따라 서울시에서 사건 경위를 철저히 밝혀달라”고 말했다. 또 “피해 호소인을 향한 근거 없는 비난을 멈추고 당사자 고통을 정쟁과 여론몰이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 것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은 당 소속 공직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차단하고 귀감을 세울 특단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당 구성원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강화하도록 당규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당 명예 실추시 무관용 원칙 처리” 공문민주, 8월 전대서 당헌·당규 개정 논의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진행 중인 당헌·당규 개정 논의에 이 문제도 포함할 예정이다. 특위 형식의 임시 기구가 아니라 당 직제 개편을 통해 상설 기구로 만들기 위해서다. 기구는 민주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상시 감찰을 통해 문제가 발견될 경우 윤리심판원에 넘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당 윤리심판원은 현재는 제소나 당 대표 직권명령 등이 있을 때 특정 사안·인사에 대해 심판한다. 민주당이 선출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 기구 설치를 검토하는 것은 기강 해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지자체장 문제 이외에도 당 소속 시의회 의장이 절도 혐의 등으로 기소되고 구의회 의장이 음주사고를 내는 등 지방의회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윤호중 사무총장 명의로 ‘당의 명예를 실추하거나 당론을 위배한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공문을 지방의원 등에 보내기도 했다.권인숙 “1차적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여가부·인권위 참여해 진상조사해야”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다방면에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당사자인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에 출연해 “피해자의 호소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다”면서 “여성가족부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인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냉정하고 정확하게 문제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1차적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면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소인 측의 진상조사위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그런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권 의원은 여권서 연이어 불거진 성추문 파문과 관련해 “권력을 가진 고위층이 주변에 일하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하는 힘이 위력인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실 실감을 잘 못 하고 계신 것 같다”면서 “우리 사회의 위계적인 조직문화에 남성주의적 질서와 오래된 성문화 등이 결합되고, 그런 의식들이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꾸 회피하고 거부하려는 (권력자들의) 마음이 사실은 조직 내에서 굉장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반성해야 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김부겸 “아직 한쪽 당사자만 이야기”“인권위 등 객관적 기관서 진상조사해야” 통합당 특검 필요성에 “정쟁시 사자명예훼손” 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아직 한쪽 당사자의 이야기만 있는데, 객관적인 기관에서 진상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진상조사를 맡아야 할 기관으로 “서울시인권위원회 혹은 인권위원회 정도일 것”이라고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미래통합당에서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및 특임검사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정쟁이나 정치적 거리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그렇게 몰고 가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고소인의 뜻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고소인은 자신이 주장했던 부분들이 객관성을 띠고 있고, 실체적 진실이 있다는 부분을 확인하는 쪽에 있는 것”이라면서 “정쟁이 돼서 다짜고짜 (의혹을) 기정사실화하고, 말을 함부로 하면 자칫 사자명예훼손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고소인 입장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2차 가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면서 “섣부른 예단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박원순 서울시장…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3선 시장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박원순 서울시장…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3선 시장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지난 9일 삶을 마감한 박원순(64)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를 거쳐 서울시 최초로 3선 시장이 된 인물이다. 인권변호사와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인 박 시장이 서울의 수장이 되면서 효율성과 도시개발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서울시 행정도 시민참여와 소통 등 새로운 가치를 입게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 자신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박 시장은 1975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제적된 뒤 단국대에 입학했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가 6개월 만에 변호사로 개업해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다. 1988년에는 진보 성향 법조인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인권변호사 시절 권인숙 성고문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 성범죄 관련 사건도 변호하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우 조교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을 재정의한 사건으로 관련 판례를 바꿨다. 또 미국문화원 사건, 말지 보도지침 사건 등 민주화 운동 관련 변론도 많이 맡았다. 인권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활동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박 시장은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하고 대기업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을 진행했다. 또 부적격 정치인 낙선 운동과 결식 제로 운동 등을 추진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96년에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2002년에는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고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가게도 함께 설립한 뒤 상임이사를 맡아 사회공헌 활동에 전념했다. 2006년에는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보선이 예정되자 출마를 선언했다. 9월 2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박 시장은 지지율 5%로 시작했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양보로 단일화를 이뤄 내 야권 단일후보를 거머쥐었다. 무소속으로 야권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53.4% 대 46.2%로 누르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어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도 당시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을 56.1% 대 43.1%로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는 52.8%를 득표해 상대방인 자유한국당 김문수(23.3%) 후보, 바른미래당 안철수(19.6%) 후보를 가뿐하게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행정, 인사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2011년 10월 취임한 박 시장은 오 전 시장이 반대하던 초등생 무상급식 지원 예산 200억원에 대한 집행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용으로 경찰이 무상으로 사용하던 시유지를 회수했다. 또 반값등록금 운동에 적극 호응해 2012년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전년의 50% 수준으로 낮추고 서울시 주요 보직을 개방형으로 바꿔 시민단체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서울시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다는 평가다. 도시계획과 개발에서는 기존 개발 지상주의를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시장은 2012년 2월 개포지구 재건축 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의 50%를 소형 평형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했던 뉴타운 사업의 경우에도 주민들의 반대가 있을 경우 지구 지정을 해제하며 ‘도시재생사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게 했다. 또 한강변 아파트의 경우 최대 35층 이상으로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기존 한강르네상스 개발과 같은 대규모 토목 사업은 줄이고 서울역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해 ‘서울로 7017’을 만드는 등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서울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2018년 정부가 서울시에 그린벨트를 풀 것을 요구하자 미래세대를 위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은 그의 도시에 대한 철학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미래세대를 위한 그린벨트 지킴이를 자처했던 박 시장이 생을 마감하면서, 앞으로 그린벨트가 계속해서 지켜질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편 지난해에는 여의도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 청사진을 발표하는 등 이전과 다른 도시개발에 대한 모습을 보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도시개발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 서울시장으로 살아 온 박 시장은 2020년 7월 9일 생을 마감했다. 사망 전날 박 시장은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 당했다. 경찰은 현재 사망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인권 변호사·시민운동가… “직업이 서울시장”이라 했던 원순씨

    인권 변호사·시민운동가… “직업이 서울시장”이라 했던 원순씨

    사상 첫 3선의 최장수(3180일) 서울시장이었던 ‘원순씨’. 진보 경제학자인 우석훈은 박원순(64) 시장을 가리켜 “참여연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한국 시민단체의 상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고 했다. 삶의 궤적을 관통했던 인권변호사와 시민사회운동가, 그리고 2011년 10·26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그는 자신의 꿈을 좇는 일 중독 시장이었다. 박 시장은 지난 6일 자청했던 세 번째 임기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잡자 마자 “임기가 9년이 되다보니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서울시장이 박원순이어서 ‘저 분이 직업이 서울시장인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보냈던 ‘시장의 시간’을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많은 시민들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며 답했다. 누구도 그의 임기가 극단적 비극으로 끝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1994년 참여연대의 산파역을 했고,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시민사회 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95년 사법개혁운동, 1998년 소액주주운동, 2000년 낙천·낙선운동 등 민주주의의 양분이 됐던 시민운동마다 그가 함께 했다.박 시장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고(故) 조영래(1947∼1990) 인권변호사와 활동하며 뒤를 이었다. 1988년 진보 성향 법조인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회원이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에 이어 1990년대 중반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직장 내 성희롱의 개념을 재정의하며 판례를 바꾸기도 했다. 1988년 진보 성향 법조인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회원이었다. 1996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수상, 2002년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가게를 함께 설립한 뒤 상임이사를 맡아 사회공헌 활동에 전념했다. 2006년에는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만들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보선이 예정되자 출마를 선언했다. 9월 21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지지율 5%로 시작했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양보로 단일화를 이뤄 내 야권 단일후보를 거머쥐었다. 무소속으로 야권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이후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53.4% 대 46.2%로 눌렀다. 2011년 10월 27일, 당시 만 55세의 시민운동가 출신의 원순씨는 ‘서울특별시장’으로 2014년 6·4 지방선거, 2018년 6·13 지방선거까지 집권했다.박 시장 취임 후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행정, 인사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박 시장은 1기 첫 해 오 전 시장이 반대하던 초등생 무상급식 지원 예산 200억원에 대한 집행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용으로 경찰이 무상으로 사용하던 시유지를 회수했다. 또 반값등록금 운동에 적극 호응해 2012년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전년의 50% 수준으로 낮췄다. 도시계획과 개발에서는 기존 개발 지상주의를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시장은 2012년 2월 개포지구 재건축 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의 50%를 소형 평형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한강변 아파트의 경우 최대 35층 이상으로 짓지 못하도록 규제했다.기존 한강르네상스 개발과 같은 대규모 토목 사업은 줄이고 서울역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해 ‘서울로 7017’을 만드는 등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서울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2018년 정부가 서울시에 그린벨트를 풀 것을 요구하자 미래세대를 위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은 그의 도시에 대한 철학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임자인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오세훈 시장의 광화문광장 등과 같은 ‘한 방’이 없다는 지적에 박 시장은 항상 “그게 정치적으로 맞는지는 몰라도 나는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내 삶을 바꾸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고 맞서 왔다.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직접 발표한 정책은 지난 8일 ‘서울판 그린뉴딜’이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인권변호사 조영래… 길위의 목사 박형규, 유신에 맞선 지학순… 5·18 재평가 조비오

    인권변호사 조영래… 길위의 목사 박형규, 유신에 맞선 지학순… 5·18 재평가 조비오

    10일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12명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명예회장) 여사는 아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뒤 한 해 전에 만들어진 유가협에 합류해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98∼99년 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 끝에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고 이소선 여사는 1970년 아들인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분신한 뒤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해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1986년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 모임인 유가협을 설립해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 여사는 별세 뒤 9년 만에 훈장을 받았다. 고 박정기 전 이사장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유가협 결성에 동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문 대통령은 “(박종철 열사가 숨진) 2∼3일 후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선생 댁을 찾아가 위로를 드렸다”고 회고한 바 있다. 2018년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아버님의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해 가고, 주름이 깊어지는 날들을 줄곧 보아 왔다”며 “박종철은 민주주의의 영원한 불꽃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주화 열사의 아버지,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자식들을 잃고 그분들이 직접 운동에 뛰어들어 헌신한 데 대한 평가가 담긴 것”이라며 “전태일·박종철·이한열 열사에 대한 예우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설립에 앞장선 고 조영래 변호사는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다양한 공익소송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권익 증진에 기여했다. 검찰이 은폐하려 안간힘을 썼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론으로 유명하며 ‘전태일 평전’ 저자이다. 빈민선교와 인권운동에 앞장서며 ‘길 위의 목사’로 불린 고 박형규 목사, 유신 독재에 맞선 고 지학순 주교, 5·18 민주화운동 재평가에 헌신한 고 조비오(조철현 비오 몬시뇰) 신부, 언론 민주화운동을 펼친 고 성유보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도 훈장을 받았다. 이 밖에 진보 사회학자인 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신학자인 고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 농민운동가 고 권종대 전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1988년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설립한 고 황인철 변호사도 포함됐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윤봉길 손녀’ 윤주경·‘4부자 의원’ 김홍걸·‘수요집회’ 윤미향 당선

    ‘윤봉길 손녀’ 윤주경·‘4부자 의원’ 김홍걸·‘수요집회’ 윤미향 당선

    미래한국당 경제전문가 윤창현 등 19명 탈북인권가 지성호… 정운천 재선 진기록 시민당, ‘부천 성고문 사건’ 권인숙 등 17명 소수정당 대표·여성계 활동가 대거 입성 정의당 ‘대리게임’ 논란 류호정 등 5명 열린민주당·국민의당 각각 3명 금배지21대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투표 수개표가 16일 완료되면서 47명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득표율 33.84%를 확보하며 19명을 당선시켰다. ‘친일 프레임’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영입한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비례 1번) 전 독립기념관장이 미래한국당의 얼굴로 원내에 진입했다. 윤 당선자는 당초 당선권 밖인 21번으로 밀렸다가 미래한국당의 새 지도부가 1번으로 재배치하면서 21대 국회 입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경제·경영 전문가인 윤창현(비례 2번) 전 한국금융연구원장과 한무경(비례 3번) 전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탈북인권운동가 지성호(비례 12번) 나우 대표도 금배지를 달게 됐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통합당) 당적을 가지고 전북 전주을에서 당선됐던 정운천(비례 16번) 의원은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해 재선에 성공하는 진기록을 갖게 됐다. ‘음주운전’ 논란 등이 있었던 허은아(비례 19번)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장은 미래한국당의 마지막 선수로 국회에 입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후보 순번 11번부터 자당 후보들을 배치하는 배수진을 치면서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33.35%)의 비례 1번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등 17명 당선을 이끌었다. 김홍걸(비례 14번)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도 당선되면서 아버지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형인 김홍일·홍업 전 의원과 함께 ‘국회의원 4부자’ 기록을 세우게 됐다. 매달 전 국민 60만원 기본소득 지급 등을 주장하며 소수정당 몫으로 시민당에 들어온 용혜인(비례 5번) 전 기본소득당 대표, 조정훈(비례 6번) 전 시대전환 대표도 원내에 진입했다. 여성계·시민사회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인사들도 대거 금배지를 달았다. 6월 항쟁의 촉매제가 된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비례 3번) 전 여성정책연구원장, 일본 대사관 앞 수요시위를 이어가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쓴 윤미향(비례 7번)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20년 넘게 환경운동을 하며 기후위기·탈원전에 목소리를 낸 양이원영(비례 9번) 전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도 국회에 입성한다. 정의당에서는 정당득표율 9.67%를 기록하며 ‘대리게임’ 논란을 낳은 류호정(비례 1번) 당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부터 이은주(비례 5번) 전 서울지하철노조 정책실장 등 5명이 당선됐다. 국민의당(6.79%)은 안철수 대표의 대구 봉사활동 인연으로 추천된 비례 1번 최연숙 계명대 동산병원 간호부원장과 안 대표의 측근인 이태규(비례 2번), 권은희(비례 3번) 의원 등 3명이 21대 국회에 들어오게 됐다. 열린민주당(5.42%)은 최강욱(비례 2번)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 3명이 금배지를 달면서 김의겸(비례 4번) 전 대변인은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오월의 어머니 “12·12 오찬 전두환, 이 시대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오월의 어머니 “12·12 오찬 전두환, 이 시대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너무 충격적이네요.” 1979년 12·12 사태를 일으킨 지 40년이 된 지난 12일 전두환씨가 당시 가담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정현애(67)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은 “우리가 아직도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광주 남구에 위치한 오월어머니집에서 정 이사장을 만난 날, ‘치매를 앓고 있다’는 전씨는 서울의 고급 식당에서 오찬을 즐기고 있었다. 전씨 측은 “12·12 사태와 무관한 친목 모임으로 우연히 날짜를 정했다”고 해명했다. 정 이사장은 이에 대해 “쿠데타 주인공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도 하지 않는다면 그 후손들도 불행할 것”이라면서 “전씨는 자신들 가족이나 미래를 위해서도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전씨는 40년 전과 똑같은 것 같다. “지난 3월 전씨가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를 찾았을 때 내심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전씨를 향해 어머니들이 ‘내 아들 살려내라’고 외치는 데도 그냥 가더라. 그 순간이라도 조금만 태도를 달리 했다면 ‘희망적인 세상에 살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을 텐데 정말 실망스러웠다.” -얼마 전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씨가 다녀갔다. 전씨와는 다른 행보다. “노씨 방문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모르겠다. 그날(지난 5일)은 오월어머니집 손님으로 온 거니까 얘기를 들은 거다. 광주에 오는 게 “매우 조심스러웠다”고 여러 번 말하더라. 어떻게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오월어머니집은 5·18 등 민주화 운동 관련 항쟁에서 가족이 희생됐거나 스스로 투쟁 대열에 앞장섰다가 피해를 입은 어머니들의 쉼터로 2006년 문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개방이 된 공간이다 보니 평소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다. 노씨도 사전 연락 없이 지난 5일 이곳을 방문했다. 방명록에는 ‘아픔과 희생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혀주시는 터전을 느낀다’는 노씨의 글이 적혀 있었다. -노씨와는 어떤 대화를 나눴나. “‘진정성이 있으려면 분명히 뭘 잘못했는지 밝혀야 하고 진실 규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씨가 반성의 기미가 없다면 재헌씨처럼 자식들이라도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데 전씨 아들들은 그런 모습조차 없다. 비교된다’고 했다.” -내년이면 5·18 항쟁도 40주년을 맞는다. 더 늦어지기 전에 사과를 해야 할 텐데, 사과의 방법도 중요할 것 같다. “우선 5·18민주묘지에 와서 사과하고, 5·18 관련 단체 등 광주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직접 사과하면서 그 모습을 언론으로 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국민들도 ‘저런 모습이 역사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것 같다.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믿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대통령 의지만 있다면 헌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전문에 5·18 정신이 담긴다면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당사자 명예회복도 본인들 원하는 수준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5·18 정신을 설명해달라. “생명 존중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성한 기본권인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민주정부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방해한 불의의 세력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으로 열흘을 보냈다.” 정 이사장이 말한 ‘열흘’은 1980년 5월 17일 광주 ‘녹두서점’ 주인이자 남편인 김상윤(현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씨가 끌려간 뒤 27일 자신이 계엄군에 의해 체포될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녹두서점은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 ‘금서’를 보급한 헌책방으로 민주인사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던 곳이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서점에 찾아오는 학생, 시민, 민주인사들이 부쩍 늘었고 광주 소식을 묻는 전화도 빗발쳤다. 전남 장성 삼계중학교 교사였던 정 이사장은 시간대별로 이 상황들을 정리하고, 물이나 약품을 사서 현장에 보내거나 허기져서 오는 학생들에게는 주먹밥을 만들어 줬다. 훗날 녹두서점이 5·18 항쟁의 ‘상황실’로 불린 이유다. 지난 5월 ‘녹두서점의 오월’이란 책도 나왔다. 조만간 웹툰으로도 나온다. -남편이 끌려가서 정신이 없었을 법도 한데 오히려 남편의 공백을 메웠다. “5월 19일 학교에 출근했다가 남편이 살아 있지 못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들어 조퇴를 하고 광주로 돌아왔는데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상황이 너무 살벌하다는 것을 느꼈다. 군인들이 시민들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화장실로 옮겨졌다는데, 화장실로 가보니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때는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불의의 폭력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황일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나.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느닷없이 죄 없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민주회보’로 이름 붙였다가 ‘투사회보’로 바꿔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그런데 5월 21일 계엄군이 집단발포를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조치에 일단 흩어지기로 했는데 ‘시민들 옆에서 물이라도 떠줘야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남았다. 죽어도 어쩔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애도를 표시하자는 차원에서 조기를 게양하고 검은 리본을 달라고 했다. 우리 마음이 한마음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지금의 ‘촛불’도 5·18항쟁에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결국 5월 27일 붙잡혔다. “상무대로 끌려갔는데 ‘당신 죄목이 이거요’라면서 A4용지 3~4장을 들이밀더라. 자금·식사·용품 지원, 전화 연락 등 그동안 녹두서점에서 한 모든 행동이 적혀 있었다. 계속해서 저를 감시한 것이다. 그날 저한테 최고 사형, 적게 나와도 징역 10년형을 받을 거라고 했다.” -다행히 유치장에서 풀려났다. “100일 정도 갇혀 있다가 석방됐다. 중학교 교사가 인도적 차원에서 밥해준 걸 내란 음모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역사 교사답게 교과서에 나온 내용대로 답변하면서 꼬투리 안 잡히려고 했다.” -남편도 1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다. “그때는 남편을 사형시킬 것 같아 노심초사했다. 1980년 10월 다시 교단에 선 다음, 낮에는 수업하고 밤에는 탄원서 쓰면서 석방운동했다. 다행히 남편도 이듬해 12월 풀려났는데 지금도 고문 후유증이 심하다.”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성고문 증언도 나오고 있다. “17건 정도 밝혀졌는데 충분치 않다. 차마 말씀을 못하시는 분들까지도 치유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최근 진상규명위 준비단에도 성폭력 조사단원은 이 분야 전문성을 갖춘 연배 있는 여성으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5·18항쟁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당시 여성들이 총만 안 들었지, 정보 수집부터 물품 공급, 시체 염하는 일까지 많은 역할을 했다. 항쟁 이후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구속자 석방운동에 나섰다. ‘내 자식 살려내라’, ‘내 남편 살려내라’고 울부짖는 여성들에게 무서운 게 있었을까.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동력이 어머니들의 피맺힌 절규에서 비롯됐다.” 글 사진 광주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옷 다벗은 뒤 몸 가리자 경찰이…” 홍콩 시위여성 ‘알몸수색’ 논란

    “옷 다벗은 뒤 몸 가리자 경찰이…” 홍콩 시위여성 ‘알몸수색’ 논란

    오는 28일 경찰 성추행 규탄 ‘송환법 반대 미투 집회’ 개최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시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한 여성이 경찰로부터 성추행으로 여겨지는 수치스러운 알몸 수색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홍콩인권단체 등은 오는 28일 여성 시위자에 대한 성추행과 관련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집회를 열기로 했다. 25일 홍콩 입장신문에 따르면 피해여성 A씨와 야당 의원, 변호인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뒤 경찰에게서 겪은 부당한 대우를 소상히 밝혔다. A씨는 체포 과정에서 상처를 입어 며칠 병원에 입원한 뒤 경찰서로 이송됐다. 문제는 경찰서로 이송되자마자 여경 2명이 A씨에게 한 방으로 들어갈 것을 요구하더니 옷을 전부 벗도록 요구했다. 그가 옷을 모두 벗은 후 두 손으로 몸을 가리자 경찰이 펜으로 허벅지를 때리면서 손을 내리라고 했다고 한다. 특히 알몸 수색을 받은 후 방을 나올 때 문 앞에 십여 명의 남자 경찰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다고 A씨는 밝혔다.그의 변호인은 “A씨가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약 소지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해 옷을 벗을 필요가 없었다”면서 “이는 A씨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한 성추행이자 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소셜미디어에는 경찰을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일부 게시글에서는 한국의 ‘부천 성고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천 성고문 사건은 서울대 의류학과에 다니다가 1986년 경기 부천시의 의류공장에 위장 취업했던 권인숙씨가 공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부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성고문을 당한 사건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촉발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홍콩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은 최근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한 여성 시위 참여자의 속옷이 노출되는 등 성추행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며, 28일 오후 7시 30분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송환법 반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집회’를 열고 이를 규탄하기로 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서울대생 내란음모’ 故 조영래 변호사 47년 만에 무죄

    ‘서울대생 내란음모’ 故 조영래 변호사 47년 만에 무죄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박정희 정권에서 겪은 시국사건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재심에서 4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쓴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조 변호사는 한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불린다. 서울고법 형사1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3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 변호사의 재심에서 과거 2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불법 체포돼 고문에 의해 진술했고, 진술 외의 나머지 증거들을 봐도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는 조 변호사의 아내 이옥경씨가 출석해 작고한 남편이 반세기 만에 혐의를 벗는다는 설명을 대신 들었다. 중앙정보부(중정)가 1971년 발표한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은 당시 사법연수생이던 조 변호사와 서울대생이던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이신범 전 의원, 심재권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등 5명이 국가전복을 꾀했다는 내용이다. 중정은 이들이 학생 시위를 일으키고 사제 폭탄으로 정부기관을 폭파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내란을 일으키려 했다며 김근태 전 고문을 수배하고 조 변호사 등 4명을 구속했다.재판에 넘겨진 조 변호사는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유족의 청구로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전체적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신범 전 의원과 심재권 의원 등은 지난해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은 바 있다. 조 변호사는 1984년 망원동 수재민 사건 집단소송, 1986년 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1987년 상봉동 진폐증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노동· 빈민·여성 인권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기록한 전태일 평전을 써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는 1990년 12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여성해방 진두지휘, 6·10만세운동 주도…파란만장했던 ‘최고 미인’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대표적인 인물은 이동휘(대통령장,1995년) 선생이다. 2005년 3·1절에 몽양 여운형(대한민국장) 등 사회주의 계열 54명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는 등 2007년까지 다수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훈장을 받았다. 그중에 주세죽이 있다.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 코뮤니스트. 당대의 ‘얼짱’. 3·1만세운동과 6·10만세운동에 참여한 항일투사. 여성해방운동가.” 주세죽의 일생은 파란만장하고 비극적이다. 주세죽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수년 전 손석춘 작가의 ‘코레예바의 눈물’과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이야기’를 통해 생애가 알려졌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손 작가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여행을 갔다가 발견한 주세죽의 자필 기록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주세죽은 함남 함흥에서 태어났다. 호적상으로는 1901년생이다. 중농 집안에서 태어난 주세죽은 영생여학교 고등과에 다녔고 피아노 실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1919년 3월 3일 함흥 장날, 만세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주세죽도 참가했다가 붙잡혔다. 한 달 동안 입에 담기 어려운 모멸적인 성고문을 받고 출소했다. 풀려난 주세죽은 함흥 시내 병원에서 간호 보조원으로 일했다. 일본인 의사의 성추행에 또다시 진저리를 친 주세죽은 중국 상하이 유학을 결심했다. 그곳에는 한 살 아래 친구 허정숙이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피아노를 공부하러 간 상하이에서 주세죽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허정숙의 소개로 박헌영을 만났다. 박헌영, 김단야 등은 주세죽이 오기 한 달 전인 1921년 3월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했다. 박헌영은 책임비서였고 주세죽도 고려공청에 가입해 기관지 ‘올타’를 편집하는 등 사회주의 활동을 벌였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동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박헌영을 뒤따라 주세죽은 1922년 3월 조국으로 돌아왔다. 조국에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벌이겠다는 의지에 불타 있었다. 먼저 갔던 박헌영과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김단야는 귀국 정보를 알아낸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세 사람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됐다. 주세죽은 여성해방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미인으로 통했다. 박헌영의 친구인 소설가 심훈은 대리석으로 깎은 얼굴이라고 했다. 주세죽을 모델로 ‘동방의 애인’이라는 소설도 썼다. 주세죽, 허정숙, 김단야의 동거녀 고명자를 당시 언론은 여성 트로이카라고 불렀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은 남자 삼총사였다. 주세죽과 허정숙은 반봉건, 여성해방의 뜻으로 단발머리를 했다. 주세죽은 허정숙, 정종명 등과 함께 1924년 5월 서울 천도교회관에서 조선여성동우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조직이었다. 고무공장, 비단공장, 정미소를 찾아다니며 강연회와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 항일운동단체 근우회에도 동참했다. 1925년 5월 조선공산당이 출범했다. 조선공산당을 추동할 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도 창립했다. 박헌영이 고려공청 책임비서를 맡았고 주세죽은 후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우발적인 술자리 사고로 조직이 탄로 났다. 김단야만 피신했고 주세죽, 박헌영, 임원근, 허정숙이 검거됐다. 주세죽은 증거 부족으로 한 달 만에 풀려났다. 순종의 국장일인 1926년 6월 10일,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또 보름 만에 풀려났다. 주세죽은 만세운동을 기획한 공청 중앙위원이었지만, 박헌영이 아니라고 보호했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심한 고문을 받았고 정신이상자가 됐다. 그러나 이는 위장이었다. 박헌영은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주세죽과 박헌영은 요양을 이유로 함흥으로 간 뒤 소련 블라디보스토크로 배를 타고 탈출했다. 임신한 주세죽은 도착하자마자 딸 영(影)을 낳았다. 1928년이었다. 그해 11월 두 사람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김단야가 먼저 가 있었다. 김단야는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조선담당관이었다. 주세죽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박헌영은 국제레닌학교에 입학했다. 박헌영은 주세죽에게 ‘코레예바’라는 러시아식 이름을 지어줬다. 고려의 여성이라는 뜻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두 사람은 1932년 초 딸을 국제유아원에 맡겨놓고 상하이로 갔다. 영에게 ‘비비안나’라는 다른 이름을 지었다. 상하이에서 주세죽은 박헌영과 조선공산당 활동을 지원하고 기관지를 국내로 들여보냈다. 이듬해 7월 박헌영은 체포됐다. 그 사이 주세죽과 김단야는 도망쳤다. 김단야는 박헌영이 고문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주세죽을 연모한 김단야의 거짓말이었다. 그러고는 사랑을 고백했다. 둘은 1934년 1월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박헌영이 죽었다고 믿은 주세죽은 김단야와 결혼했다. 1937년 소련은 일제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워 김단야를 체포했다. 이성태란 사람의 모함이었다. 이듬해 2월 13일 석 달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주세죽도 5년 유배형을 받았다. ‘제1급 범죄자의 아내로서 사회적 위험분자’라는 죄목이었다. 1938년 5월 주세죽은 유배지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 김단야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은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병에 걸려 죽었다. 유배지 크질오르다는 사할린에서 활동하던 홍범도 장군이 강제이주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광복 후 지하에서 활동하던 박헌영은 월북한 뒤 1946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주세죽은 프라우다지에 난 기사를 보고 박헌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당시 18세이던 비비안나에게 아버지임을 알렸다. 박헌영은 주세죽이 유배된 사실을 알고 최대한의 배려를 요청했다. 주세죽은 그다음 날 거주 제한이 풀렸다. 박헌영은 비비안나를 만났다. 그러나 주세죽을 만날 의사는 없었다. 주세죽은 스탈린에게 조선으로 보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스탈린은 거부했다. 주세죽은 딸에게로 가다 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휴전 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 나이 52세 때였다. 두 남자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3년 후 죽임을 당했다. 주세죽의 첫 남편은 미제 스파이, 두 번째 남편은 일제 스파이로 몰려 죽은 것이다. 허정숙은 북한 문화선전상,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을 지내고 1991년 89세로 사망했다. 고명자는 일제의 고문으로 원치 않는 전향을 했다가 친일적인 글을 쓰기도 했고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1989년 소련 당국은 주세죽과 김단야를 사면했다. 1991년 박비비안나는 한국을 방문했다. 박헌영의 고향 충남 예산에서 가져간 흙을 주세죽의 묘비에 뿌려줬다. 비비안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무덤이라도 있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행복한 편입니다.” 비비안나는 무용수와 대학교수로 활동하다 2013년 사망했다.우리 정부는 2007년 주세죽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김단야에게는 독립장을 추서했다. 임원근은 앞서 1993년 애국장을 받았다. 중국 태행산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사망한 윤세주(독립장)와 진광화(애국장)도 건국훈장을 받았다. 님 웨일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산(장지락)에게도 2005년 애국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아직도 복권되지 못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빨갱이’에게 무슨 훈장이냐”는 우파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전쟁과 분단을 겪은 현실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념의 무덤에서 독립유공자를 파내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전문] 文, 5·18기념사 “공권력이 행한 야만적 학살에 깊이 사과”

    [전문] 文, 5·18기념사 “공권력이 행한 야만적 학살에 깊이 사과”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인 폭력과 학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기념사를 통해 “진실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을 때 용서와 포용의 자리는 커질 것”이라면서 “진실을 통한 화해만이 진정한 국민통합의 길임을 오늘의 광주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고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광주로부터 뿌려진 민주주의의 씨앗을 함께 가꾸고 키워내는 일은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며 “광주의 자부심은 역사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것이자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념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어김없이 오월이 왔습니다. 떠난 분들이 못내 그리운 오월이 왔습니다. 살아있는 오월이 왔습니다. 슬픔이 용기로 피어나는 오월이 왔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오월 민주 영령들을 기리며 모진 세월을 살아오신 부상자와 유가족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삶으로 증명하고 계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들께 각별한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내년이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그때 그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올해 기념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광주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 너무나 부끄러웠고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광주시민 여러분과 전남도민들께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0년 5월 광주가 피 흘리고 죽어갈 때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그 시대를 살았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 미안합니다. 그때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인 폭력과 학살에 대하여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하여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담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1980년 오월,우리는 광주를 보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광주를 보았고 철저히 고립된 광주를 보았고 외롭게 죽어가는 광주를 보았습니다.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의 마지막 비명과 함께 광주의 오월은 우리에게 깊은 부채의식을 남겼습니다. 오월의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 학살당하는 광주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같은 시대를 살던 우리에게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광주를 함께 겪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든,오월의 광주를 일찍 알았든 늦게 알았든 상관없이광주의 아픔을 함께 겪었습니다. 그 부채의식과 아픔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뿌리가 되었고 광주시민의 외침이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6월 항쟁은 5·18의 전국적 확산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너무나 큰 빚을 졌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같은 시대,같은 아픔을 겪었다면,그리고 민주화의 열망을 함께 품고 살아왔다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5·18의 진실은 보수·진보로 나뉠 수 없습니다. 광주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바로 ‘자유’이고 ‘민주주의’였기 때문입니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 ‘광주사태’로 불리었던 5·18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적으로 규정된 것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였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특별법에 의해 5·18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했고,드디어 1997년 5·18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대법원 역시 신군부의 12·12 군사쿠데타부터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진압 과정을 군사 반란과 내란죄로 판결했고 광주 학살의 주범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이렇게 우리는 이미 20년도 더 전에 광주 5·18의 역사적 의미와 성격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었고 법률적인 정리까지 마쳤습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논란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의미 없는 소모일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광주 5·18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좋은 민주주의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해 서로 경쟁하면서도 통합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한 페이지씩 매듭을 지어가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학살의 책임자,암매장과 성폭력 문제,헬기 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이 여전히 많습니다.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광주가 짊어진 무거운 역사의 짐을 내려놓는 일이며 비극의 오월을 희망의 오월로 바꿔내는 일입니다. 당연히 정치권도 동참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광주의 명예를 지키고 남겨진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5·18 이전,유신 시대와 5공 시대에 머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월이 지켜낸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광주로부터 빚진 마음을 대한민국의 발전으로 갚아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지난해 3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핵심은 진상조사규명위원회를 설치하여 남겨진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위원회가 출범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와 정치권이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 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 정부는 국방부 자체 5·18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해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성폭행과 추행,성고문 등 여성 인권 침해행위를 확인하였고 국방부 장관이 공식 사과했습니다. 정부는 특별법에 의한 진상조사 규명 위원회가 출범하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5·18 광주민주화운동 39년이 된 오늘,광주는 평범한 삶과 평범한 행복을 꿈꿉니다. 그해에 태어나 서른아홉 번의 오월을 보낸 광주의 아들딸들은 중년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결혼하기도 했을 것이고,부모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진실이 상식이 된 세상에서 광주의 아들딸들이 함께 잘 살아가게 되길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는 이제 경제민주주의와 상생을 이끄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노사정 모두가 양보와 나눔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고 ‘광주형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사회통합형 일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모든 지자체가 부러워하며 제2,제3의 ‘광주형 일자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광주형 일자리’ 타결로 국내 완성차 공장이 23년 만에 빛그린 산업단지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산업도 혁신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광주의 노력도 눈부십니다. 미래 먹거리로 수소,데이터,인공지능(AI) 산업 등을 앞장서 육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수소융합에너지 실증센터를 준공한 데 이어 국내 최대규모의 친환경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건설도 추진 중입니다. 도시문제 해결을 위해 지자체와 민간기업이 함께하는 스마트시티 챌린지 공모사업에도 광주가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광주는 국민 안전에도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감염병 대응,국가안전대진단,재해 예방 등을 포함한 재난관리평가에서 광주는올해 17개 광역지자체 중 재난관리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 감소율 전국 1위를 달성하는 성과도 이뤘습니다. 광주시민과 공직자 모두가 전국에서 가장 안전한 광주 만들기에 노력한 결과입니다. 아픔을 겪은 광주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앞장서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부는 광주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항상 함께할 것입니다. 국민들도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광주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오늘부터 228번 시내버스가 오월의 주요 사적지인 주남마을과 전남대병원,옛 도청과 5·18기록관을 운행합니다. 228번은 ‘대구 2·28 민주운동’을 상징하는 번호입니다. 대구에서도 518번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대구 달구벌과 광주 빛고을은 ‘달빛동맹’을 맺었고 정의와 민주주의로 결속했습니다. 광주에 대한 부정과 모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구 권영진 시장님은 광주시민들께 사과의 글을 올렸습니다. 두 도시는 역사 왜곡과 분열의 정치를 반대하고 연대와 상생 협력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용서와 화해의 길입니다. 오월은 더 이상 분노와 슬픔의 오월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오월은 희망의 시작,통합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을 때 용서와 포용의 자리는 커질 것입니다. 진실을 통한 화해만이 진정한 국민통합의 길임을 오늘의 광주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광주에는 용기와 부끄러움, 의로움과 수치스러움, 분노와 용서가 함께 있습니다. 광주가 짊어진 역사의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해 오월,광주를 보고 겪은 온 국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짐입니다. 광주의 자부심은 역사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것이며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광주로부터 뿌려진 민주주의의 씨앗을 함께 가꾸고 키워내는 일은 행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오월이 해마다 빛나고 모든 국민에게 미래로 가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문소영 칼럼] 독재란 무엇인가

    [문소영 칼럼] 독재란 무엇인가

    ‘독재’의 사전적 의미는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행정·입법·사법의 삼권분립을 부인한 채 한 개인이나 그의 측근이 통치하는 전제정치를 말한다. 고대 로마가 내란이나 외침 등 위급한 상황에서 원로원이 집정관에게 법을 초월한 독재권을 행사하도록 한 데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독재에서 시민의 삶은 어떠한가. 한국의 대표적인 독재인 ‘박정희 개발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을 살펴보면 되겠다. 박정희 시대 독재는 ‘긴급조치’로 대변된다. 긴급조치는 유신헌법 제53조항으로, 대통령이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시 정지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의 의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실제 적용은 완전히 달랐다. ‘긴급조치 1호’를 보면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 유신헌법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사람과 긴급조치를 비방한 사람”은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여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했다. 즉 대통령에게 반하는 정치적 소신을 밝힌다는 이유로 대학생과 지식인들을 탄압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날조된 반국가단체 조직 활동으로 엮어 재판하고 사형하는 등 ‘사법살인’이 횡행했다. ‘인혁당 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막걸리에 취한 김에 대통령 욕을 했다고 불잡혀 가던 엄혹한 시절이다. ‘없으면 나라님 욕도 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였다. 전두환 군사독재의 일부는 체험담으로 증언할 수 있다. 12·12 군사반란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5·18 광주시민 학살로 정권의 토대를 잡은 전두환 정부는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을 ‘호헌’으로 응수하며 탄압했다. 자의적으로 거동이 수상하다며 불심검문하고 가방에 혹여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교양서적이 들어 있으면 불온서적 소지죄로 경찰의 “함께 가시죠”에 응해야 했던 시절이다. 1986년 부천경찰서의 문귀동 경사는 여대생을 잡아다가 성고문을 했는가 하면, 1987년 1월에는 ‘턱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뺌한 박종철 물고문 사망사건이, 6월에는 직격탄을 맞고 사망한 이한열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운동권들을 ‘녹화사업’하는 중에 의문사가 늘어나던 시절은 노태우 정권 때로도 이어졌는데, 1989년 이철규 조선대 학생의 의문사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야당의 정치인들이 자유롭게 “독재자”라고 저격하며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면, ‘막걸리 긴급조치’라던 박정희 시대와 비교해 과연 독재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가 넘쳐 흐르다 보니 ‘달창’과 같은 여성 비하적인 혐오 발언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입에서 나오고, ‘태극기 집회’ 등에서 대법원이 부인한 ‘5·18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시민사회를 교란하는 지경이 됐다. 386세대의 대표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이 집회에서 흘러나올 때에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소 부조리해 보이는 이런 풍경 탓에 지난 50~60년 동안 민주주의를 열망한 세력들이 군부독재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바꿔 놓았더니 ‘죽 쑤어서 개 줬다’며 분개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수준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감내할 만하다. 문제는 한국당이 극우인 태극기 집회 세력과 거리를 두지 않고, 이들과 연대하거나 오류적 행태를 방치할 때다. 한국당은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극우들의 준동을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내버려두었다. 대단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독일 나치의 등장은 제도권 정당들이 극우들을 정치권 진입을 어리석게도 막지 못한 탓에 발생했다고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밝히고 있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극단적인 세력을 배제하며 억제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좌파 포퓰리즘에 대해 지적질하면서 한국당이 지지율을 올리려고 극단적 세력과 거리 두기에 실패한다면, 수십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온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 독재정권의 여당이던 공화당·민정당·민자당의 후신인 한국당이 정권만 잡는다면 극우세력이 끼어들어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식의 착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
  • 정경두 국방 “5·18계엄군 성폭행 사죄”

    정경두 국방 “5·18계엄군 성폭행 사죄”

    피해 여성 치유·명예회복에 최선 가해자·소속부대 조사 권고 수용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7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성폭행 사실이 확인된 것과 관련해 “정부와 군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국방부에서 직접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 장관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과하는 것은 지난 2월 당시 송영무 장관이 5·18 때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진 뒤 사과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31일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와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성고문 등 여성 인권침해 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5·18 성폭력’ 사과문 전문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에 관한 정부 조사에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과 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행위가 확인됐습니다. 피해자는 10대에서 30대의 어린 학생과 젊은 여성들이었고,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나섰거나 가족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심지어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여학생, 임산부도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바랐던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참혹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38년 동안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은 물론 여성을 향한 성폭력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절망과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무고한 여성분들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고통을 드린 점에 대해 정부와 군을 대표하여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계엄군 지휘부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무고한 여성시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것을 통렬히 반성합니다. 군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군의 책무이자 도리입니다. 국방부는 앞으로 출범하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군사정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나섰던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통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여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데에 인력과 자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피해 여성들의 명예 회복과 치유에도 적극 나서겠습니다. 가해자 또는 소속부대를 조사하고 5·18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상 진상규명의 범위에 ‘성폭력’을 명시할 것을 제언한 진상조사단의 권고를 엄중히 받아들여 군에 의한 성폭력의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계엄군과 국가권력으로부터 고통을 받으신 모든 시민과 여성들께 거듭 사죄드립니다.
  • 정경두 장관, ‘5·18 계엄군 성폭행’에 “머리 숙여 사죄”

    정경두 장관, ‘5·18 계엄군 성폭행’에 “머리 숙여 사죄”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성폭행한 사실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정 장관은 7일 ‘5·18 계엄군 등 성폭력 조사 결과에 따른 사과문’을 발표하며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에 관한 정부 조사에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과 추행, 성고문 등 여성 인권 침해행위가 확인됐다”고 밝힌 후 머리를 숙였다. 그는 “계엄군 지휘부의 무자비한 진압 작전으로 무고한 여성 시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준 것을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해자 또는 소속부대를 조사하고 5·18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상 진상규명의 범위에 ‘성폭력’을 명시할 것을 제언한 진상조사단의 권고를 엄중히 받아들여 군에 의한 성폭력의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군사정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나섰던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통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여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데에 인력과 자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피해 여성들의 명예회복과 치유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여성가족부·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31일 활동을 종료하면서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와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성고문 등 여성인권침해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 장관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과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 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지자 이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아래는 정 장관의 사과문 전문이다. ‘5.18 계엄군 등 성폭력 조사 결과에 따른 사과문’ ‘5·18 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에 관한 정부 조사에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과 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 침해행위가 확인됐습니다. 피해자는 10대에서 30대의 어린 학생과 젊은 여성들이었고, 민주화를 위한 시위에 나섰거나 가족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심지어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여학생, 임산부도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바랐던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참혹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38년 동안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은 물론 여성을 향한 성폭력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절망과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무고한 여성분들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고통을 드린 점에 대해 정부와 군을 대표하여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계엄군 지휘부의 무자비한 진압 작전으로 무고한 여성시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것을 통렬히 반성합니다. 군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군의 책무이자 도리입니다. 국방부는 앞으로 출범하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입니다. 군사정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나섰던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통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여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데에 인력과 자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피해 여성들의 명예 회복과 치유에도 적극 나서겠습니다. 가해자 또는 소속부대를 조사하고 5·18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상 진상규명의 범위에 ‘성폭력’을 명시할 것을 제언한 진상조사단의 권고를 엄중히 받아들여 군에 의한 성폭력의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계엄군과 국가권력으로부터 고통을 받으신 모든 시민과 여성들께 거듭 사죄드립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김영록 전남지사, “5‘18 진상규명위 즉각 구성” 촉구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1일 5·18 계엄군의 성폭행과 인권유린 등 반인륜적 만행에 대한 신속한 진상 규명을 위해 ‘5·18 진상규명위원회’의 즉각 구성을 강력 촉구했다. 김 지사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오랫동안 어둠에 갇혀 있던 5·18 계엄군의 성폭행과 인권유린 등 반인륜적 만행이 세상에 드러났다”며 “다시는 이 땅에 이 같은 참혹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는 5·18 진상규명위원회를 즉각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이어 “시위 참여자와 일반 시민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 학살과 성폭력의 실상을 국민에게 낱낱이 알려야 한다”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되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대하지 않고서는 잘못을 제대로 반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시는 이 땅에 야만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지사는 “하루 빨리 5·18 학살 책임자 규명과 함께 성폭행, 성고문 등 반인도적 범죄를 포함한 진실이 온전히 밝혀져야 한다”면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 같이 떠오르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사설] 확인된 5·18 성폭행, 한국당 진상조사위 협조해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여성 시위자들을 성폭행하고 성고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어제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공동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계엄군이 자행한 성폭행 사례는 최소 17건이었다. 국가 차원의 조사로 그간의 의혹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무려 38년 동안 진상이 가려졌으니 그날의 상처에는 딱지조차 앉을 수가 없었다. 공동조사단은 5·18 계엄군에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들이 충격적인 증언을 하면서 지난 6월 출범했다. 여고생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일상을 회복하지 못해 승려가 됐고, 음대생이 교생실습 현장에서 계엄사 수사관에게 고문을 받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들이었다. 이후 5개월 동안 조사단이 피해자 접수 및 면담, 관련 자료 분석 등을 거쳐 중복 사례를 제외하고 새롭게 파악한 14건을 합해 성폭행 피해는 최소 17건으로 집계된 셈이다. 시위에 가담하지도 않은 여성 시민들에게 성추행 등 인권침해 행위를 저지른 사례도 다수 확인했다. 성폭행 피해자가 대부분 10~30대였던 데다 총으로 위협받으며 여러 명의 군인에게 유린됐다니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악몽을 떨치지 못해 여전히 정신병원에서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차마 용기가 없어 침묵하는 사례가 얼마나 더 많을지는 알 길이 없다. 가해자에 대한 조사 권한이 없는 공동조사단으로서는 이 정도의 피해 윤곽을 잡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공동조사단은 조사한 자료 일체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시행으로 출범할 진상조사규명위원회(진상조사위)로 넘긴다. 조사 권한이 부여된 진상조사위는 가해자의 이름, 소속 부대 등의 세부 사항을 낱낱이 입증할 수 있어 가해자 처벌이 가능해진다. 무고한 시민의 인격과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국가 폭력의 잔혹함을 비로소 대면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활동 기한이 최대 3년으로 제한된 진상조사위의 발족은 그래서 하루가 급하다.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알토란 같은 시간이 이미 49일이 지났다. 여야 합의로 출범시키기로 해놓고 이제 와서 자유한국당이 할당된 위원 3명을 추천하지 않아 발목이 잡혔다. 국가 권력에 만신창이가 된 인권이 진상 규명을 학수고대하는데 대체 무슨 명분으로 미적거리며 비난을 자초하는가. 상식선에서 납득할 만한 인사를 추천하지 못하겠거든 한국당은 추천권을 차라리 포기하라. 진상조사위를 하루라도 표류하게 하는 것은 역사의 정의를 거스르는 패착이다.
  • “계엄군 총 겨누며 집단 성폭행”…38년간의 악몽

    “계엄군 총 겨누며 집단 성폭행”…38년간의 악몽

    여고생·주부… 10~30대 여성 짓밟아 피해자 “얼룩무늬 보면 울렁” 호소 임산부 성추행·속옷차림 성고문도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10~30대 여성을 총으로 위협해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임산부 성추행과 성고문도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38년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다. 31일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가 합동으로 꾸린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은 모두 17건이며, 성추행과 성고문, 목격담 등이 다수 발견됐다. 대다수의 피해자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2인 이상의 군인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은 주로 민주화운동 초반(5월 19~21일) 발생했다. 장소는 초기 광주 시내(금남로, 장동, 황금동 등)에서 중·후반엔 광주 외곽지역(광주교도소 인근, 상무대 인근)으로 바뀌었다. 공동조사단은 “범행 장소가 당시 계엄군의 상황일지 속 병력 배치와 부대이동 경로와 유사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면서 “특히 피해자 진술과 당시 작전 상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일부 피해 사례는 가해자나 가해자 소속 부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당시 성폭행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호소했으며, 다른 피해자는 “육체적 고통보다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당시 성폭행을 당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췄다”며 줄곧 제대로 된 치료 없이 고통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대부분은 과거에 심리치료 등을 받은 이력이 있으며, 지금까지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치료가 필요한 2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심리치료센터로 연계해 추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로 특정되진 않았지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진술도 나왔다. 한 목격자는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태워져 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으며, 사망한 여성의 유방과 성기가 훼손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봤다는 진술도 확인됐다. 교도소나 상무대(군부대) 등으로 연행된 여성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서 속옷 차림으로 성고문 등에 노출됐다. 일부 여성 피해자들은 대검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지난 5월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문을 받다가 석방 전날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모씨도 성폭행 피해 사례로 인정받았다. 당시 김씨의 증언은 공동조사단이 출범한 계기가 됐다. 공동조사단에 직접 접수된 피해 사례는 모두 12건이었다. 이 중 상담 종결된 2건을 제외한 10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다. 7건이 성폭행이었으며, 1건 성추행, 2건은 관련 목격 진술이었다. 광주시 보상심의자료에서는 성폭행 12건, 여성 인권침해 행위 33건이 발견됐다. 그 외 5·18민주화운동 자료총서(61권)와 광주오월민주항쟁사료전집(500명 구술 채록), 광주지검 검시조서 등에서 성폭행 4건, 유방과 성기 등에 자창(찌른 상처) 3건, 고문 2건, 구타와 성적 위협 2건을 비롯한 다수의 목격 증언이 확인됐다.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 대표는 “5·18 당시 성폭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고, ‘광주 청문회’ 때도 증언했지만 한 번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조사를 계기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들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조사 결과를 추후 출범할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인계할 방침이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5·18 특별법에 조사 범위를 성폭력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진상규명조사위에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스무살 그 꽃다운 나이에 내 인생은 멈췄다”

    “스무살 그 꽃다운 나이에 내 인생은 멈췄다”

    여고생·주부… 10~30대 여성 짓밟아 피해자 “얼룩무늬 보면 울렁” 호소 임산부 성추행·속옷차림 성고문도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10~30대 여성을 총으로 위협해 집단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임산부 성추행과 성고문도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38년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에 시달렸다.31일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가 합동으로 꾸린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은 모두 17건이며, 성추행과 성고문, 목격담 등이 다수 발견됐다. 대다수의 피해자는 총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2인 이상의 군인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은 주로 민주화운동 초반(5월 19~21일) 발생했다. 장소는 초기 광주 시내(금남로, 장동, 황금동 등)에서 중·후반엔 광주 외곽지역(광주교도소 인근, 상무대 인근)으로 바뀌었다. 공동조사단은 “범행 장소가 당시 계엄군의 상황일지 속 병력 배치와 부대이동 경로와 유사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면서 “특히 피해자 진술과 당시 작전 상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일부 피해 사례는 가해자나 가해자 소속 부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당시 성폭행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호소했으며, 다른 피해자는 “육체적 고통보다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당시 성폭행을 당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췄다”며 줄곧 제대로 된 치료 없이 고통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대부분은 과거에 심리치료 등을 받은 이력이 있으며, 지금까지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치료가 필요한 2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심리치료센터로 연계해 추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로 특정되진 않았지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진술도 나왔다. 한 목격자는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태워져 가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으며, 사망한 여성의 유방과 성기가 훼손된 모습으로 있는 것을 봤다는 진술도 확인됐다. 교도소나 상무대(군부대) 등으로 연행된 여성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서 속옷 차림으로 성고문 등에 노출됐다. 일부 여성 피해자들은 대검에 찔린 상처도 있었다. 지난 5월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에서 용기를 얻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문을 받다가 석방 전날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김모씨도 성폭행 피해 사례로 인정받았다. 당시 김씨의 증언은 공동조사단이 출범한 계기가 됐다. 공동조사단에 직접 접수된 피해 사례는 모두 12건이었다. 이 중 상담 종결된 2건을 제외한 10건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다. 7건이 성폭행이었으며, 1건 성추행, 2건은 관련 목격 진술이었다. 광주시 보상심의자료에서는 성폭행 12건, 여성 인권침해 행위 33건이 발견됐다. 그 외 5·18민주화운동 자료총서(61권)와 광주오월민주항쟁사료전집(500명 구술 채록), 광주지검 검시조서 등에서 성폭행 4건, 유방과 성기 등에 자창(찌른 상처) 3건, 고문 2건, 구타와 성적 위협 2건을 비롯한 다수의 목격 증언이 확인됐다. 집계된 성폭행 23건 가운데 6건이 중복이었다.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 대표는 “5·18 당시 성폭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고, ‘광주 청문회’ 때도 증언했지만 한 번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조사를 계기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성폭력 사례들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조사 결과를 추후 출범할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인계할 방침이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가해자 조사권이 없는 데다 활동 기간도 짧아 모든 사례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면서 “5·18 특별법에 조사 범위를 성폭력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진상규명조사위에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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