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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씨 수사검찰발표

    ◎전씨 뇌물공여자·측근·친인척 등 430명 조사/집권후기 고위직 동원 대선자금 명목 거액 거둬/출처불명 비자금 조성 경위·은닉 재산 계속 추적 ▷수사경위◁ 1.수사착수배경 ○서울지방검찰청은 오늘 전두환전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과한 법상의 뇌물수사 혐의로 공소제기하였음 ○검찰이 12·12사건,5·18사건의 수사와 병행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의 뇌물수수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은 ­동인이 지난 1988년 11월23일 국민여론의 지탄 속에 백담사로 출발하면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사과성명을 통하여 『연희동 집 두채,서초동 땅 2백평,용평콘도(34평)1개,골프회원권 2개,금융자산 23억원 및 여당총재로서 사용하다가 남은 잔액 1백39억원 등 자신의 전재산을 국고에 헌납하고 숨겨진 다른 재산이 있으면 어떠한 책임추궁도 감수하겠다』고 공언하였음에도 ­퇴임후 계속하여 측근들을 관리하는 등 그 씀씀이가 거의 달라지지 않아 「동인이 재직중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였고 퇴직후에도 이를 은닉해 두었을 것」이라는세간의 의혹이 끊어지지 않고 있던 중 ­금융실명제 실시 이래 끊임없이 나돌았던 「정체불명 비자금설」및 「전직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설」이 그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면서,마침내 지난해 10월 「노태우전대통령 부정축재등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두환전대통령의 수뢰혐의와 관련된 구체적 자료들이 입수되었기 때문임. ­검찰은 이 사건 역시 노태우전대통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헌법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임을 직시하고,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 엄정하게 처리함으로써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아울러 정경유착의 폐해를 뿌리뽑아 왜곡되어 온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사명감에서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하게 된 것임. 2.수사경과 ○이에 따라 서울지방검찰청은 ­1995년 12월7일부터 전두환전대통령의 뇌물수수와 관련,뇌물공여자인 기업체 대표 42명등 기업관련자 1백60여명을 조사하였고 ­수수된 자금의 조성 및 관리와 관련하여,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전 은행감독원장 이원조를 비롯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의 측근,친·인척,금융기관 관계자등 2백70여명을 조사하였고 ­압수수색영장에 의하여 1백83개의 시중 금융기관 계좌 및 5백50매의 채권증서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자금추적을 실시함과 아울러 ○전두환전대통령 본인에 대하여도 6회에 걸쳐 심문,조사를 실시하였음. ▷금품수수◁ 1.수수규모 ○전두환전대통령은 검찰이 특별수사부 검사 6명등 수사력을 집중투입하여 추적의 강도를 더해가자 수수금원의 조성경위에 관하여 『재임기간중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포함한 기업체의 대표들로부터 일해재단·새세대육영회 기금,새마을성성금의 모금등과는 별도로 자금 7천억원 상당을 수수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음. ○이에 따라 검찰은 금원 재공자,뇌물성 여부,자금의 행방등을 철저히 수사하였으나 ­범행후 15년 내지 8년 이상이 경과되어 관계자료의 폐기,보유 금융자산의 무기명 내지 가·차명화,관련자의 소재불명,기억소멸등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어 그 정확한 액수와 성격은 계속 추적중에 있고 ­현재까지 증거를 바탕으로 뇌물죄의 성립을 밝혀낸 금액은 기업체 대표 42명으로부터 최고 2백20억원,최저 2억원을 교부받아 조성한 총 2천1백59억5천만원임 *전두환전대통령은 위 7천억원과 별도로 기업인들을 상대로 새마을성금 1천4백95억여원,일해재단 기금 5백98억원,새세대육영회 찬조금 2백23억원,심장재단 기금 1백99억원 등 합계 2천5백15억원의 각종 성금 및 기금등을 조성함으로써,동인이 제5공화국 기간동안 기업인들로부터 거두어들인 금액은 총9천5백억원을 상회함. 2.기업 등으로부터 공여된 자금의 성격과 형태 ○전두환전대통령이 기업인등으로부터 수수한 위 2천1백59억5천만원은 기업체 대표등으로부터 특정사업의 수주나 세금의 감면등 이권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권한 또는 영향력행사에 대한 대가로 제공되었거나 포괄적으로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선처해 달라는 등의 취지에서 제공된 것으로서,모두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하여 수수한 뇌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바 ○동인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각부의 장들을 지휘·감독하여 각종 재정·경제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과정에서 국책사업자 선정,신규사업의 인·허가,금융지원,세무조사 등 기업활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직무와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주로 기업체 대표들을 은밀히 단독으로 만나 특정사안에 대하여 특혜를 부여하거나 해당기업의 현안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였으며,이를 대별하여 보면 첫째,뇌물공여기업측이 공사발주등 특혜를 받은 사안으로 ­1986년 12월께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동아그룹 회장 최원석으로부터 4회에 걸쳐 1백80억원을 수수하였는바,동아그룹은 전두환전대통령 재임중 인천매립지의 정부매수 회피,원자력발전소 건설,댐 건설등 대형 국책공사를 수주하였고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으로부터는 7회에 걸쳐 2백20억원을,전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로부터는 8회에 걸쳐 2백20억원을,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으로부터는 6회에 걸쳐 1백50억원을 각 수수하였는바,이들 기업들 역시 고속도로 건설공사수주,차세대 전투기 사업,반도체 사업,율곡사업등 각종 대형 이권사업에 본격진출한 것으로 나타났음. 둘째,세무조사등 선처명목으로 기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금품이 공여된 사안으로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은 1986년 12월경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70억원을 전두환전대통령에게 공여하고 조사중이던 세무조사와 관련,부과추징되어야 할 세금 2백억원을 감면받은 사실등이 확인되었으며 셋째,한진그룹 회장 조중훈으로부터는 1983년 10월께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그무렵 소련영공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소속 케이이(KE)007 여객기 격추사고에 대한 불이익 방지의 취지로 제공하는 30억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김포공항 여객기 추락사고에 대한 무마등 명목으로 5회에 걸쳐 1백60억원을 수수하였는바,이는 사건·사고에 따른 불이익 방지차원에서 제공된 뇌물이라 할 것이고 넷째,각종 인·허가와 관련하여서도 금품이 제공되었는 바 ­1984년 11월 하순경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국제그룹 회장 양정모로부터 통도골프장 건설 내인가를 해주어 사업승인을 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준 데 대한 대가로 3개월 만기의 10억원권 약속어음 1매를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골프장 설립과 관련하여 애경그룹 회장 장영신 등 4개 기업체의 대표로부터 합계 45억원을 수수한 것이 그 예라 할 것임. 끝으로,기업경영에 수반되는 각종 금융·세제,국책사업 참여등 기업전반의 경영상의 불이익 방지 차원에 선거자금 명목으로 제공된 뇌물의 예로는 ­전두환전대통령은 특히 집권후기에 이르러 안현태전경호실장,안무혁전국가안전기획부장,사공일전재무부장관,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등 고위공직자들을 동원하여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집중적으로 수수한 사실등이 이에 해당됨. *기업체별 뇌물수수내역은 별첨 3.뇌물수수의 방법 ○전두환전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실장 등으로 하여금 기업체 대표들과의 비공식 면담을 주선하게 하여 본인이 직접 뇌물을 수수하거나,국세청장·은행감독원장·안기부장등에게 지시하여 기업인등으로부터 자금을 조성하게 하였는 바 ○현재까지의 수사결과 밝혀진 뇌물수수의 방법중 특이한 경우로는 ­경호실장 안현태가 위와같이면담을 주선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이 수수한 금액은 4백억원,경호실장 장세동의 주선으로 수수한 금액은 2백억원 ­국세청장 성용욱,국가안전기획부장 안무혁등으로 하여금 조성하게 하여 수수한 금액은 1백14억5천만원 ­은행감독원장 이원조의 주선으로 수수한 액수는 30억원으로 밝혀졌음. 4.조성관여자들의 행위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 ­1985년 2월20일부터 1988년 2월25일까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근무하면서,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기업 회장들에게 금원을 제공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거나 전두환전대통령과의 비공식 단독면담을 주선하는 방법으로 ­1985년 7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등 9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4백억원을 제공하게 하였고 ­1986년11월 하순경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으로부터 당시 미원그룹에 대하여 실시하고 있던 국세청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에게 세금감면을 부탁할 수 있도록 면담을 주선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5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하였음. ○성용욱(전국세청장) ­1987년 5월27일부터 1988년 3월5일까지 국세청장으로 근무하면서 기업체 대표들이 자신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하여 ­1987년 10월경 대한전선그룹 회장 설원량으로부터 세무업무와 관련하여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로 제공하는 15억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 11개 중견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합계 54억5천만원의 뇌물을 교부받아 전두환전대통령에게 대선지원금으로 상납하였고,2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60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안무혁(전국가안전기획부장) ­1987년 5월27일부터 1988년 5월7일까지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10월경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세청장인 성용욱으로 하여금 위와같이 11개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합계 54억5천만원의 자금을 조성하게 하였음. ○사공일(전재무부장관) ­1987년 5월26일부터 1988년 12월4일까지 재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8월께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농그룹 회장 박용학등 5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합계 1백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 ­1986년 1월13일부터 1988년 4월15일까지 은행감독원장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8월경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코오롱그룹 회장 이동찬등 2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30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자금관리·사용◁ 1.재직중의 관리 ○전두환전대통령은 재직중 위와 같이 조성한 자금을 본인이 직접 총괄하면서 1985년 2월24일경까지는 경호실장 장세동에게,그 이후는 경호실장 안현태에게 각 관리하도록 지시함과 아울러 당시 총무수석 이재식 및 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으로 하여금 은행,신탁회사 등 금융기관의 입·출금업무를 전담하게 하였음. ○김종상이 관리한 예금계좌에서는 ­한국·대만·국민 등 3개 투자신탁회사와 서울·조흥·제일·신한 등 8개 시중은행 38개 점포에서 「경호실」,「박경호」,「김경호」등 가명을 사용하여 거래하였음이 판명되었다. ­자금의 관리방법으로서 최대한 외부노출을 피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매회 20억원 내지 50억원을 수억원 단위로 나누어 금리가 높은 개발신탁예금,수익증권정축,기업금전신탁,정기예금으로 분산예치하거나 양도성예금증서(CD)또는 무기명채권 등을 매입하면서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경호실」등 기관의 사업자등록번호를 위장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1987년 4월중순경부터 그해 12월말까지 대부분 1천만원권 또는 1억원권 고액수표로 집중 인출되어 무기명채권 구입자금으로 사용되었음. ○한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이재식은 김종상이 관리한 규모 이상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투자신탁회사의 장·단기 공사채 매입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자,1995년 12월14일 검찰이 김종상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자 같은 날 캐나다로 출국,도피하여 동인이 관리해 온 자금 전부를 규명하는 것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전망임. 2·자금의 사용 및 퇴임후 남은 돈의 관리 전두환전대통령은 위 7천억원 상당의 조성자금에 대하여 구체적 사용항목의 진술을 거부하면서 ­퇴임시까지 친·인척 관리자금,정당 창당자금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자금은 약1천6백억원 상당이고 ­그 내역은 한국산업은행 발행 산업금융채권 약9백억원,장기신용은행 발행 장기신용채권 약2백억원,현금 및 예금 약5백억원 등 항시 처분가능하고 유동성 있는 금융자산으로 보유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음. ○검찰은 위와같이 전두환전대통령이 현재 채권과 예금 등 상당액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용처와 보유형태 등에 대하여는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자료제출 요구에 불응하고 있어 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 및 현 보유재산 은닉상황 등을 밝히기 위하여 김종상이 관리한 계좌 및 퇴임전후에 매입한 금융채권 등을 중심으로 계속 추적중에 있음. ▷관련자 조치◁ ○뇌물수수자인 「전두환전대통령」에 대하여 ­1996년 1월1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추가기소하고 ­동인의 현 보유재산 상황을 파악,「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에 따라 몰수·추징의 보전청구를 할 방침임. ○뇌물수수를 방조하거나 수수한 뇌물을 상납한 관련자중 ­그 죄질이 중한 안현태·성용욱은 각 같은 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등으로 구속기소하고 ­안무혁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의 공범으로,사공일·이원조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방조로 각 같은 날 불구속기소하며 ­장세동은 1984년 12월 이전의 범행으로 공소시효 완성되어 불입건 조치하였음. ○뇌물공여 기업체 대표들에 대하여도 공소시효 완성으로 법리상 처벌이 불가능하여 불입건 조치하였음. ▷향후 수사 계획◁ ○검찰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근간을 뿌리채 흔들어 놓은 전직대통령 등의 부정축재와 정경유착 등 비리를 과감히 척결함으로써 흐트러진 국가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역사적 소명의식 아래 최선을 다하여 수사에 주력해 왔음. ○그러나 전두환전대통령이 아직도 모든 진실을 털어놓지 아니하고 있고 자금추적에 어려움이 따르는 등 전체적인 진상확인에는 장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므로 일단 전두환전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자금조성 관여자들을 우선 기소하고 ○앞으로도 계속 수사력을 집중하여 아직까지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한 이 사건 자금의 나머지 조성경위와 자금의 사용처 및 현재의 보유재산 은닉상황 등을 계속 수사해 나갈 것임.
  • 체감경기 2년만에 “최악”/「비자금」여파/도시지역·고소득층 심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비자금 파문등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고,앞으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조사됐다. 11일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2월18일부터 21일까지 전국 주택전화 가입자중 1천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실시한 소비자태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판단지수(기준치 50)는 38.1로 비자금 파문 이전 조사때의 45.1보다 크게 떨어져 지난 93년 2·4분기 이후 최저수준으로 하락했다. 지역별로는 5대도시 소비자들의 경기판단지수가 34.4에 불과,도시지역 경기가 상대적으로 더욱 크게 악화되고 소득수준별로는 연간소득 3천만원 이상 고소득계층의 경기판단지수가 35.9로 그보다 낮은 계층보다 더욱 비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한 소비자들의 예상지수도 비자금파문 이전에 비해 3.4포인트 떨어진 52.6에 불과했고,앞으로 1년간의 경기전망에 대해 「다소 좋아질 것」이란 응답은 36.7%로 비자금파문 이전의 45.5%에 비해 크게 줄었다.
  • 기업윤리헌장 심의위원 송자총장 등 6명을 위촉/전경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1일 송자연세대총장,조향록목사,최우석삼성경제연구소장,송병락서울대교수,유근일조선일보 논설위원,황정현전경련 부회장 등 6명으로 기업윤리헌장 심의위원회를 구성,첫 회의를 열고 초안을 심의했다.심의위는 오는 31일까지 기업윤리헌장 초안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 국악인 김천흥(이세기의 인물탐구:89)

    ◎「춘앵전」 등 궁중무 재현에 80평생/14세때 아악생으로 입문…악·가·무 두루 갖춰/대한 국악원·민속 예술원 등 설립,후지 양성/오는 3월 미수 앞두고 “전아의 극치” 「춘앵무」공연 준비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노란 관과 붉은 띠,오색 한삼속에 감춘두손을 좌우로 펼쳤다가 이마높이로 들어 모으며 창사를 읊조린다.여섯자 화문석위에서 「평조회상」에 맞춰 추는 「춘앵전」은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넘나들며 노니는듯 노래부르는듯 화사하고 밝은 화전태와 여의풍이 특징이다.이는 궁중정재의 마지막 한끝을 잇는 심소 김천흥이 재현한 춤으로 그는 상영산에서 잔영산에 이르는 원형그대로를 추기도 하지만 느린 가락의 상영산을 생략하고 세영산을 위시한 삼현도드리와 변주곡인 군악의 장단으로 아정한 무작을 짜고 있다. ○꾀꼬리 춤사위 일품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그것은 한낱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명무로 손꼽힌다.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듯 주춤한 정지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노예술가의 연륜을 거론하는 것은 외람되나 약관 14세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아악생으로 입소하여 장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를 어느덧 70여년.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을 경축하는 창덕궁 어전연주에서 무동으로 뽑힌 것이 인연이되어 그는 당대 명인 하규일 함화진으로부터 「악.가.무」일체를 이어받는 예인의 길에 올랐다.그가 재현하여 공연에서 선보인 궁중무만도 「춘앵전」외에 「무고」 「가인전목단」,용알을 가지고 사를 부르며 추는 「포구락」등 48종.궁중명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아악부를 떨치고 나가 교방의 무속악사로 전전한 경험때문에 민속무용과 무속음악에도 일가를 이루어 「꼭두각시」에서 「봉산탈춤」에 이르기까지 그가 추지 않은 춤은 없다.악기도 아악부시절의 전공은 해금이지만 양금 아쟁의 명수이고 곰삭고 결삭은 성대를 구사하여 남녀창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선유가등 12잡가와 사설시조 휘모리시조를 어느 자리에서나 두루 거침없이 노래부른다.그가 춤과 국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개인무용발표회를 가진것은 56년부터 7차례,궁중무용 재현은 10여차례가 넘지만 공연뒤 리셉션을 가진 것은 72년 「무악생활 50년」과 92년 「무악생활 70년기념」공연등 단 두번뿐이다.그만큼 그는남에게 폐스러운 일,번거로운 일을 삼가고 분수에 넘치는 것은 넘보지 않는다.첫번째 공연에서 벌써 「우뚝하고 반듯한 김천흥의 무용」으로 평가되더니「완숙의 미와 멋과 흥」등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만약 충고하는 조언이 있으면 언제라도 주춤거리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순종 오순때 무동으로 「일찍이 없었고 뒤에도 없을 그의 공업은 동료와 제자의 경의와 찬하만으로 모자란다」는 이성천교수(서울대)의 말대로 그는 참으로 많은 업적을남기고 있다.40년대초 이전에서의 국악교육을 필두로 대한국악원 국악사양성소 무용인협회 한국가면극 대한민속예술원 정농악회등 국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으나 그는 이를 굳이 「창단」「결성」으로 강조하기보다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청렴했던 심소는 80평생 살림집과 무용연구소 이사를 다닌 것만도 50여번이 넘는다.살림집은 사글세 전세 전세를 전전하여 40여번,연구소는 지난 55년 낙원동에 김천흥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나서 78년 문을 닫기까지 10여번이상을 옮겨다녔다.무용발표 때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을 가진 것은 68년 잠실주공아파트가 처음이고 그후 다시 수번을 이사한 끝에 2년반전 현재의 서초구임광아파트에 정착했다.그러나 무용연구소 시절 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하나둘 하나둘」 육성박자로 춤을 가르치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그는 연구생들이 내는 월사금외에 별도로 작품료를 받은 적이 없고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냥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만사에 최선을 다하여 대강 넘어가지 않는 그는 60년대초 원각사 공연때는 빈혈로 쓰러지자 아침마다 신당동에 다니며 소피를 먹으면서 무대에 선 적도있고 76년 미독립 2백주년기념 축하행사는 50일간 필라델피아 워싱턴등 11개지역에서 20여회를 공연하는 동안 급작스런 복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빈틈을보이지 않았다.지금도 「국록」을 받는다는 자세로 매일 국악원에 나와 직접후진을 지도한다. ○40여회 전·월세 전전 국악계를 통틀어 『높은 스승일뿐만 아니라 인품이요 덕망,학식이고 예술에서 앞으로 누가 있어 선생을 따를 이가 과연 있을 것 같지않다』는 성경린씨(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지휘 기능보유자)의 말대로 「명확한 운궁법을 통한 정확한 표현력으로 평가되어지는 악기」를 젖혀두고라도 전통무용으로 저문한 그는 당연히 「한국무용사의 산증인」이요 「궁중정재의 대명사」이며 「정재재현의 명장」이 아닐 수 없다.아악부 시절에 만난 성경린과의 총죽지교는 「한 핏줄과도 같은깊고 짙은 우정」으로 일요일마다 「산행의 동반자」이기도 하다.가족은 그를말없이 내조해온 부인 박준주여사는 2년전 타계하고 3남3녀중 5남매는 미국에 체류중.차남 정완씨(회사원)가 극진히 모시고 있다.여전히 가볍고 날렵한 그의 몸놀림은 어느 한구석 비틀거림이나 흐트러짐이 없다.갸냘프리만치 깡마른 체구에도 강단이 세고건강해서 그에게선 「노인」의 티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춤을 출때 그렇다.『남과 다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늙었으니 행복하고후회가 없다』는 그는 『그러나 노장은 무용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무대에 서서 살아있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기원을 기필코지키고 싶어한다.오는 3월 30일 미수를 앞둔 제자들의 축하공연에서 심소는 또한번 「전아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춘앵무」로 우리에게 상서로운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그것은 무용가 최현의 표현대로 「결과 멋과 흥」이 샘물처럼 어우러진 「절예의 경지」 또는 「입신의 경지」 그자체일 것이다. □연보 ▲1909년 서울출생 ▲22∼26년 이왕직 아락부원양성소 졸업(해금·양금·아쟁전공) ▲23년 순종황제탄신 오순경축공연 무동출연 ▲26∼4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아악수장 ▲40∼45년 이화여전 강사 ▲43∼45년 조선음악가협회회원 ▲45∼47년 대한국악원이사 ▲50∼88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대·숙대무용과 출강 ▲51∼95년 국립국악원 예술사,연주원,자문위원,현재 원로사범 ▲55∼78년 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첫번째 무용발표회 이후 75년까지 7차례,창작무극 「처용랑」「만파식적」「흥부전」「봉산탈춤」등 발표 ▲61∼76년 한국국악협회이사,부이사장,상임고문,명예회장 ▲61∼80년 서울시 문화재위원 ▲62∼95년 미주·동남아·유럽지역등 해외공연 21차례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39호 처용무기능보유자지정 ▲73∼93년 대락회 이사장 ▲77∼현재 정농락회 회장,궁중무용발표회 이후 10여차례 ▲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92년 「심소김천흥선생 무락생활 70주년기념」공연(국악원소극장) ▲93년 무악생활 70주년기념 해외순회공연 ▲95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 한국무용의 기본무보(69년) 정악양금보(82) 정악해금보(88) 심소김천흥무악70년(95년) 서울시문화상(60년) 문화재보존공로상(68년) 한국문화대상(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70년) 국민훈장모란장(73년) 한국국악대상(83년)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92년)
  • 물가안정·수지 개선… 경기 “연착륙”/국내 새해 경제 전망

    ◎주요연구기관 전망/수출증가율 12%… 성장률 7%선/부동산 안정… 경기 양극화 과제로 새해 경기는 지난 해보다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들이 많다.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물론 지표경기도 그럴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연구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해 보면 지난 해보다는 물가가 안정되고 경상수지도 개선돼 전체 모양새가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다.성장의 그늘에 있는 중소기업과 영세상인들의 불경기가 해소돼야 할 과제이긴 하다. 물가안정과 경상수지 개선,적정 성장….어느 것 하나 새해에도 포기할 수 없는 정책목표들이다. 새해 경기를 가늠해보려면 먼저 세계경제의 풍향을 읽어야 한다.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던 시절 「미국경기가 기침하면 우리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대외 의존적인 우리의 경제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지금도 정도의 차는 있지만 선진국 경기의 영향권에 있는 게 사실이다. 올해 세계경기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선진국의 안정성장과 개도국의 지속성장이 맞물려 세계 경제는 지난 해 3% 정도에서 올해엔 3∼3.5% 성장하리란 전망이 많다. 그러나 세계경기의 회복에도 불구,국내 경기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마무리되면서 지난 해보다 둔화되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경기가 지난 해 3·4분기에 고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진단이 정설이 된지 오래이고 지난 해 4·4분기엔 성장률이 7%대로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민간연구기관이나 관변연구소들이 내놓은 「96년 경제전망」을 보면 올해 성장률이 지난 해보다 그 수치가 모두 낮게 돼있다.물론 7% 성장도 여타국과의 상대 비교나 절대 수치에서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최근의 산업생산과 설비투자 추이로 미루어 올해엔 30개월 이상의 경기확장이 하강국면에 접어들 것이 확실하다.그러나 지난 해 하반기의 높은 설비투자와 수출증가세를 감안하면 상반기 중 경기둔화가 예상 보다 느리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부동산 가격안정이 지속되고 민간소비도 크게 늘지 않아 성장은 연간 7%선에서 움직일 전망이다. 설비투자의 경우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해 18.5%의 높은 증가세에서 올해에는 8.9%에 이르고 건설투자는 미분양 아파트 적체로 7.6% 성장에 그칠 전망」으로 보았다.다른 연구기관도 비슷하다. 수출은 세계경제의 성장지속에 힘입어 12% 내외의 지속증가가 예상된다. 지역별는 대선진국 수출이 유럽연합(EU)의 일반특혜관세 적용중단으로 다소 둔화되고 품목별로는 중화학제품이 수출을 주도할 전망이다.수입은 설비투자 둔화로 수출과 비슷한 수준(11%)이 될 것같다.금액으로는 수출1천4백억달러,수입은 1천4백30억달러가 예상된다.경상수지 적자는 지난 해보다 개선돼 50억∼7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해보다 더 안정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성장둔화에 따른 수요압력 완화와 유통부문의 가격파괴,원자재 값 안정으로 지난 해보다 관리여건이 좋기 때문이다.정부는 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5%이내로 잡고 있다.연구기관들도 적게는 4%에서 많게는 5.2%로 보았다. 이같은 전망대로라면 올 경기는 미끄러지듯 하강국면에 진입하는 연착륙을 기대해 볼만하다.그러나 낙관은 이르다.94년 말에 한국은행과 KDI,산업연구원(KIET),삼성·대우경제연구소가 모두 95년 성장률을 7∼7.6%로 예측했다.그러나 95년 성장은 이같은 예측을 벗어나 9%대를 기록했다. 환율변수와 비자금사건으로 움츠러든 기업의욕,총선,민노총 출범에 따른 산업현장의 불안정,자본시장 개방확대에 따른 금융시장 교란 등의 변수가 경기하강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경기연착륙 외에 중소기업과 대기업,수출과 내수,경공업과 중공업의 경기 양극화를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그래서 새해엔 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되 양극화를 극복하고 경기의 연착륙을 유도할 정책지혜가 더욱 절실하다. ◎산업별 경기 어떻게 될까/전자 “쾌청”­차·조선은 “호조”/전자­가전수출 86억달러/철강­공급 과잉… 내수 둔화/건설­공공부문으로 “지탱” 새해 산업기상도는 지난 해처럼 쾌청하지 않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과 삼성경제연구소,현대경제사회연구원이 밝힌 「96년 산업별 경기전망을 중심」으로 올해 경기기상을 알아본다. ▷자동차◁ 수출은 지난 해의 상승세가 이어지겠지만 엔저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 등으로 신장률은 낮아지고 내수는 저성장 기조를 유지할 것 같다.산업연구원은 수출물량을 1백30만대,삼성과 현대는 1백18만∼1백19만대로 잡았다.현대는 내수판매를 1백55만대,산업연구원은 1백63만대로 봤다. ▷조선◁ 엔화가치 하락 등 환율 변동에 따른 불안한 그림자도 없지 않지만 컨테이너선의 구조개편이 진행되는 데다 낡은 선박의 교체로 전반적으로 호조를 띤다.산업연구원은 6백50만GT,현대는 5백50만∼6백만GT로 보았지만 삼성은 1천만GT로 후하게 전망했다. ▷철강◁ 경기 하강으로 내수증가율은 둔화된다.2개 기관은 국내 공급능력의 증가와 내수 둔화로 수출이 소폭 증가할 것으로 보았지만 현대는 철강의 공급과잉과 환율변동으로 악화될 것으로 봤다. ▷전자◁ 분야별로 약·보합세 전망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효자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전분야는 유통시장개방 등의 악재가 있지만 애틀랜타 올림픽특수로 상쇄돼 성장세가 전년도에 비해 다소 약화되거나 보합세를 보이겠다.산업연구원과 삼성은 수출액이 8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았다. ▷섬유·건설◁ 섬유산업은 내수는 호조를 보이겠으나 수출은 단가하락으로 지난해 보다 둔화될 전망이다.현대와 삼성은 건설의 경우 민간부문은 위축되겠지만 사회간접자본의 투자확대와 선거 등으로 공공부문이 떠 받쳐줘 줄 것으로 보았다. ◎“새해경제 이렇게 본다” 이한구대우경제연 소장/“투자·소비심리 회복이 올 경제 좌우”/과잉 설비투자 부담… 수출로 활로 찾아야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장은 올해 국내 경기가 연착륙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으로 인한 소비와 투자심리의 위축에다 그동안 계속된 설비투자에 따른 매출증가의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국민 총생산의 65% 가량을 차지하는 소비분야의 안정적 유지가 중요합니다.사회 전반에 불안심리가 증폭돼 소비가 위축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실제 지난 해 3·4분기 이후 수치상으로 소비위축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소장은 『선거가 있는 해는 소비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올해엔 이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지난 2년간 기업들의 대규모 설비투자도 연착륙을 압박하는 요인입니다.설비투자 증가율이 94년 23%,95년 20%로 최근 2년간 명목가격으로 60%나 돼 20∼30%의 매출 증가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휴설비가 생길수 밖에 없어요』 이소장은 『이 만큼의 매출증가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내수시장이 불투명해 수출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출은 15%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그러나 세계시장의 가격파괴 등 국제 경기도 썩 좋지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수출증가는 물량공세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돼 채산성이 떨어지는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경영합리화를 위한 비용절감 노력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았다. 『환율의 경우 경제적 요인만 따지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줄고 미국의 적자가 줄면서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 달러당 1백∼1백10엔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래서 환율도 수출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올해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국내 경기에는 도움이 안된다는 설명이다.실제 기업들은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 보다 20% 가량 높게 잡고 있으나 이중 5%만이 국내이며 15%는 해외투자이다. 이소장은 경기 연착륙을 위해 정부의 몫이 크다고 강조했다.그동안 체질개선을 미루고 임시방편의 지원책만 펴왔던 점도 이처럼 국내경기를 복잡하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정부시책을 재정리하는,즉 일관성·정확성·투명성 측면에서 그간 경제정책을 중간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민간자율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피부에 와닿는 규제완화,서비스제공 중심으로의 정부조직 개편,중소기업 도산 등 경기양극화 해소도 당면 과제로 꼽았다.
  • 각계50인이 말하는 통일 해법­전망

    ◎평양정권 돌발 변수 대비하라/다각적 대화창구 구축 급선무/인적교류 활성화로 동질성 회복부터/「흡수」보다 협상통한 다단계 통합 추구/인권문제 지속적 거론 북한체제 변화 유도/빠르면 2010년께 「우리는 하나」 가능성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을해년이 지나가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병자년새해가 밝았다.이 아침 국토분단의 고통속에 보낸 지난 반세기를 돌이켜보며 새로운 반세기를 향해 통일의 염원을 되새긴다.서울신문사는 새해 아침 각계인사 50명으로부터 통일문제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설문형식으로 이뤄진 이 조사의 문항은 다음과 같다.①한반도의 통일은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는지.②통일의 형태는 어떤 것이 될 것인지.③통일에 대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일은.④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시급히 착수해야 할 일은. ◇구종서(삼성경제연구소 상무·정치학박사)=①늦어도 2000∼2010년.②북한 자체붕괴후 한국이 흡수하는 독일식 통일이 될 것이다.③북한을 흡수한 뒤 신속한 재건과 남북 균형발전을 이룰 준비가 필요하다.④남북교류 확대,북한개방화가 불가피하도록 상황을 유도해야 한다. ◇홍세표(한미은행장)=①10년안.②북한의 체제가 완전 붕괴되거나 또는 현저히 약화된 뒤 독일식 흡수통일.③북한체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통일에 대비한 각종 제도정비와 통일기금 조성 등의 준비가 필요하다.④남북 정책당국자간은 물론 주민들의 사고방식의 차이 및 불신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적 또는 경협차원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박수환(LG상사 사장)=①2000∼2010년쯤.②북한이 붕괴된 뒤 한국 주도하의 독일식 통일.③북한 경제의 재건을 돕기 위한 통일기금을 조성해야 한다.④남북 경제협력 확대 등을 통해 상호이익을 넓혀나가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윤명환(46·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광원)=①북한은 2005년 길어도 2010년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②악화되고 있는 북한 경제사정 때문으로 결국 독일식으로 흡수,통합될 것같다.③피폐해지고 있는 북한경제를 떠맡아야 하므로 경제성장과 국력배양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④민간 기업체나 문화단체들은 상호 교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도록노력한다. ◇정진관(39·인천시 시의원)=①2000년대나 가야.②경제력을 비롯,국력이 월등하게 앞지르고 있기는 하지만 대화나 협상에 의해 평화통일 될 것으로 생각한다.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시켜야 한다.④남북간 경제협력 등을 확대해 신뢰 회복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전대주(전경련 전무)=①2010년.②북한이 붕괴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될 것으로 본다.③남북한을 모두 먹여살리기에 충분할만큼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④한반도 주변 4강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외교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김배옥(39·농어민 후계자 전북 완주군협의회장)=①2010년쯤.②독일식으로 우리가 북한을 흡수해 통일하는 형태가 유력하다고 생각한다.③비뚤어진 이데올로기에 혼을 빼앗긴 북한 동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도록 민족 동질성을 회생시켜야 한다.④경제교류를 활성화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지지기반을 넓히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권오진(54·경북 경산시의회 의원)=①2005년 이후.②북한 내부의 동요가 가속화되고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독일과 같은 흡수통일이다.③남북사회의 크게 다른 제도를 정비해 통일에 대비한다.④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교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박맹우(45·경남도 조직진단 담당관)=①북한체제가 금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자멸할 것이다.②우리가 흡수,통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③통일과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연구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④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비해 국방력·경제력·정치력 등 총체적인 국력을 배양해야 한다. ◇최인훈(소설가·59)=①예측하기가 어렵다.②가급적 빨리,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지기 바란다.③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정치적 부패의 척결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민주화다.④사회 민주화 부문에서 얼마나 뚜렷한 실질적 성과를 거두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본다. ◇박완서(소설가·64)=①6·25체험 세대가 다 사라진 20년이나 30년후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②평화적 협상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③북한경제의 재건을 도와 북한을 우리의 대등한 대화상대로 끌어올리자.④우리가 쌓아올린 부를 공정 분배하는 사회보장제도 등 복지정책이 시급하다. ◇이만익(56·화가)=①지금으로부터 10여년 후.②무력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며 상호 대화를 기초로 하되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이 바람직할 것 같다.③남북한간에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무엇보다 정부당국간 대화채널의 유지가 중요하다. ◇조흥동(54·한국무용협회 이사장)=①4∼5년안.②북한이 붕괴하고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③민족간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④정부당국뿐 아니라 민간차원등 다각적인 교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윤형주(48·가수)=①차기대통령이 선출되고 2년쯤 지난 뒤에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②엄밀히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아니더라도 독자성을 가진 우리 형태의 통일이 될 수도 있다.③남북간의 언어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합동연구가 필요하다.④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협력기구가 설립되어야겠고 양쪽 주민의 의식을 계도해나가는 정부차원의 쌍방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박상희(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미주철강산업 대표이사)=①2000∼2010년쯤.②남북대화,협상에 따른 통일이 될 것이다.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④남북경협 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이재기(공군준장)=①두 체제가 공존하는 방식이 아닌 실질적인 통일은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②북한이 붕괴되고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하고 남북한간 상이한 각종 제도의 정비방안을 연구해야 한다.④남북경협확대,남북당국간 신뢰회복,각 분야의 인적교류 확대가 추진돼야 한다. ◇임영보(63·현대산업개발 여자농구단 감독)=①북한이 자유와 개방으로 나선 뒤에도 상당기간이 흘러야 하므로 2010년 이후.②한국이 국력을 바탕으로 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③경제력뿐 아니라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해야 한다.④북한이 자포자기 하지 않도록 도우면서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허재(30·기아자동차 남자농구단 선수)=①2000년쯤에는 통일에 가까운 평화체제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완전한 통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②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③분단의 장기화에 따른 이질성 극복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④대화의 기회를 가능한한 넓혀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윤길중(38·동아증권탁구팀감독·91년 지바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코치)=①2000∼2010년.②잦은 교류에 따라 북한이 자체 붕괴돼 한국이 주도하는 독일식 통일의 형태를 띨 것이다.③통일기금 마련을 위한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④종교·체육·이산가족등 활발한 민간 교류가 선행돼야 한다. ◇박철순(40·프로야구선수)=①2010년까지.②남북대화와 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이상적으로 보인다.③50년 이상 분단에 따른 국민적 동질성 회복이 시급하며 경제력 부흥이 뒤따라야한다.④남북당국 사이의 신뢰회복과 대화채널이 다양하게 열려야 한다. ◇김정태(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①2010년 이후에 가야.②북한이 붕괴된 뒤 한국의 주도로 독일식 통일이될 것이다.③북한 경제의 재건을 돕기 위한 통일기금 조성부터.④남북경협 확대가 시급하다. ◇김시준(43·어민후계자 제주도협의회장)=①당장 실현되기 어렵고 빨라야 홍콩이 중국에 흡수되는 97년 이후라야 가능할 것 같다.②남·북한 최고책임자간 협상이나 대화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될 것이다.③민족동질성 회복운동에 노력해야 한다.④이산가족 상호 방문이나 종교·학술분야,경제인의 교류 및 협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신정식(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①20 10년이후.②남북대화·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될 것이다.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회복.④남북 경협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김창식(29·신촌 그레이스백화점 기획실 주임)=①2010년 이후 ②경제력에서 앞선 남한이 주도하는 독일식의 흡수통일 ③독일이 「통일비용」으로 쩔쩔매고 있듯 우리도 장담할 수 없다.경제규모를 배가시켜야 한다 ④경제인의 교류부터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김철길(57·서대문구 연희동 실로암약국 주인)=①당장 통일은 어렵다고 본다 ②북한이 붕괴되면서 남한의 체제에 흡수통합될 것으로 본다 ③통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안보교육 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④남북한 당국간의 신뢰회복을 바탕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대화의 채널을 우선 복구해야 한다. ◇강승수(28·서울마포경찰서 조사계장)=①북한의 체제변화에 따라 이번 세기안에 통일될 수도 있다 ②독일식 흡수통일도 좋지만 남북협상에 따른 평화통일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③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④북한주민들에게 자유롭고 개방된 남한 사회를 알려야 할 것이다. ◇권재철(34·전국사무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①금세기안에 통일이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본다 ②협상에 의한 평화적 방식의 통일 ③거리감이 생긴 언어를 통일하는 방안도 생각할 때이다 ④경제인·종교인 등의 교류 뿐만 아니라 노동자단체의 상호교류 또한 하루빨리 성사돼야 한다. ◇이재성(25·서울대 계산통계학과 2년)=①2010년쯤 이뤄질 것으로 본다 ②남쪽의 자본주의 체제와 북쪽의 계획경제가 혼합된 「시장개혁주의」형태가될 것이다 ③민간교류가 활발하게 선행돼야 하며 NGO의 역할이 중요하다 ④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은 정치적 화해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송보경(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①통일은 교역이 활발해질 때 가능하리라고 본다 ②대화와 협상에 따른 평화통일이 바람직스럽다 ③우리 체제가 저쪽보다 인간적이라는 자긍심을 국민들이 갖도록 하는게 필요하다 ④통일 이후의 혼란에 대비,신문과 방송등 언론매체에서 신문보내기운동과 라디오보내기운동을 펼치는게 중요하다. ◇김은영(58·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①2000∼2010년 ②북한붕괴후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회복 ④남북경협 확대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 ◇김주인(전헌정회장)=①2000∼2010년쯤 ②북한붕괴후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바람직하다 ③자유민주주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해야 된다 ④남북 경협확대 등을 통한 상호이익 확대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계륜(국민회의 국회의원)=①북한내부의 변화에 따라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통일은 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②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민족통일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며 남북연합,연방제,완전통일등 3단계 방식이 바람직하다 ③남북간 상이한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 ④이산가족교류등 남북간 왕래가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최한수(건국대교수)=①2000∼2010년 쯤에는 남북통일이 될 것으로 본다 ②북한붕괴뒤 한국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③남북 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이 시급하다 ④남북 당국간 신뢰회복과 대화채널 복구가 중요하다. ◇김문섭(19·서울대 신문학과 1년)①2000∼2010년쯤이나 가능할 것으로 본다 ②「연방제」형태가 될 것이며 흡수통일이 될 가능성은 없다 ③남북간 교류확대로 상호신뢰 회복을 한뒤 정부차원의 협상을 강화해야 한다 ④학술·문화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민간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박갑수(통일원 정보분석실 과장)=①주변국의 개입이 없다는 가정아래 빠르면 2000년대초,늦어도 2010년 안에 ②북한붕괴후 중국·일본의 방해가 없을때 독일식 흡수통일 ③북한주민을 먹여살릴 경제력과 외세의 개입을 막을 군사·외교력을 고루 갖춰야 ④남북간 대화채널을 복구한 뒤 신뢰회복을 위한 장치마련과 경제협력의 동시 추진. ◇이수택(외무부 특수정책과장)=①북한체제의 개방이나 변화에 따라 2000∼2010년쯤 가능 ②남북대화의 진전으로 평화통일도 가능하나 북한붕괴에 따른 독일식 통일에도 대비해야 함 ③자유민주주의체제가 세계사의 대세라는 관점에서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통일교육을 강화 ④남북경협 확대를 통해 상호이익과 신뢰를 축적. ◇김종호(신한국당 정책위의장)=①2000∼2010년 ②북한 붕괴후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 회복 ④남북 경협 확대등을 통한 상호이익 증진.법과 제도의 정비. ◇정상대(신한국당 조직국장)=①2010년 이후 ②북한 붕괴후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 ③남북간 각종 채널을 통한 대화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므로 확실한 힘의 우위 확보가 가장 필요 ④동독인권에 대한 서독의 지속적 관심이 동독변화를 자극했듯이 북한인권 문제를 꾸준히 거론, 국제적 압력 수단으로 활용. ◇김점선(37·주부·강서구 화곡1동)=①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②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하는게 바람직하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④남북 당국간 신뢰를 회복하고 대화채널을 복구해야 한다. ◇신웅식(변호사)=①3년안에 통일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돼 7년안에 이루어질 것이다.②북한이 붕괴되면 한국은 좋든 싫든 통일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③평화적이고 안정된 통일을 원하면 북한을 개방화시키고 남북간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④경제협력과 다방면의 인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정치·군사·외교 문제에서는 일관되고 우월적인 위치를 견지해 나가야 한다. ◇장기욱(민주당 국회의원)=①오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②남북대화에 의한 평화통일이 돼야 하며,될 것으로 믿는다.③남북주민의 정서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한간에 서로 다른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④우리가 먼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통일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게 될 것이다. ◇최상용(고려대교수)=①전적으로 북한의 체제유지능력에 달려있다.체제유지능력이 무너진다면 의외로 빨리 통일이 들이닥칠 수도 있다.②협상이나 전쟁에 의한 통일이 어렵다는 점에서 한국현실에 맞는 「변형된 독일형」의 가능성이 높다.③통일과정중 소요될 경제력의 확충.④「평화공존형 통일」의 전략을 세워 하나하나 가능한 일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철승(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자유민주총연맹 총재)=①20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②북한체제 붕괴로 인한 한국 주도의 독일식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③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주지시키는 통일교육을 보다 강화하고 남북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통일기금 조성등의 사전준비를 해야한다.④이산가족 상봉등 인적교류의 확대와 남북당국간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마련 및 대화채널 복구 등이다. ◇강홍빈(서울시정책기획관)=①2010년 이전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②북한 사회가 붕괴된 뒤 한국 주도의 독일통일방식이 될 것이다.③통일 이후 주택·고용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이들에 대한 재교육기관 양성과 통일기금조성이 시급하다.④남북경협확대와 인적교류가 필요하다. ◇송월주(61·조계종총무원장)=①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것이 대업을 이루는 지혜라 여겨진다.②우리가 주도하는 흡수통일이 바람직하나 이번 세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③자유민주주의 체제속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신심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이해가 앞서는 정치회담보다 비정치적인 인적교류가 필요하다. ◇한성희(41·동대문시장 의류자재상인)=①마음먹고 순리를 따르면 금세기 안에 통일도 가능하다.②서로의 불신을 허물고 서로를 인정하여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이 바람직하다.③경제협력방안들을 다각도로 모색해 경제적으로 북한을 압도해야 한다.④독일의 예처럼 통일자금마련과 제도정비가 필요하다. ◇한경직(93·영락교회 목사)=①종교의 자유가 북녘땅에도 충만하게 될 때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것이다.이는 2010년이 지나야 가능하리라 본다.②꾸준한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③전쟁을 겪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충분히 깨닫게 해야 한다.④분단의 아픔을 가장 크게 느끼는 이산가족의 만남이 우선이다. ◇김상균(대법원 법원행정처 판사)=①북한이 교조주의적으로 굳어가고 있어 언제쯤 통일될 것인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②대화와 협상에 따른 점진적인 방식이 바람직하다.③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④거창한 것보다는 법조계 인사 교류와 같이 각 분야에서 서로를 알기 위한 「작은 걸음의 정책」을 펴야 한다. ◇김문하(중앙대 총장)=①2000년대를 향한 통일의 이정표는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길을 확보하는 데서 찾아야한다.②민족이 주체가 되는 민주적·평화적 통일이 되야 한다.③민족적 신뢰와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한 사회개방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④진정한 의미의 평화통일은 민족의식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 「예수 사랑」 실천… 참인술 한평생/성탄절에 타계한 장기려 박사

    ◎차남과 맨손 월남… 옷두벌만 생겨도 남에게/내집 한칸없이 가난한 환자 치료에 온종성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인술을 펴며 살아온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성탄절인 25일 새벽 「사랑과 희생」이라는 값진 가르침을 성탄선물로 남기고 눈을 감아 세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고인은 80세가 넘어서도 하루 40여명에게 무료진료를 베푸는 등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그에게 있어 「사랑」과 「봉사」는 이같은 삶을 걷게 한 밑거름이었다. 지난 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장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청년시절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꿈꿨다. 장박사는 대학졸업후 평양 기독병원에서 일하다 51년 1.4후퇴 때 부인 김봉숙씨와 다섯남매를 고향에 둔 채 둘째 아들 가용씨와 단 둘이서 월남했다. 곧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경과 찬송가책만을 달랑 들고 부산까지 내려온 그는 그해 7월 맨손으로 영도구에 「복음의원」이라는 「천막병원」을 차려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무료 시술을 해주었다.후에 외국인 선교사 말스베리의 도움으로 부산복음병원으로 확장한 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68년 이 지역의 교회집사들과 함께 한국 의료보험조합의 효시인 「부산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 헌신했다. 장박사의 평양시절부터 교회에서 알고 지내다 부산 피난때 재회했다는 방귀자씨는 『피난 때 옷이 두벌만 생겨도 한벌은 남에게 줄 정도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또 동료 의사들은 『부산대 의대 교수시절 학비를 마련 못한 가난한 제자들에게 학비로 쓰라고 월급을 선뜻 내놓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추모했다. 그토록 남의 불행에만 민감하다 보니 월남후 한번도 자기집을 가져본 적이없었다. 평생 병원측이 마련해 준 사택에서 묵었으며 작고하기 전에도 부산복음병원의 후신인 고신의료원 건물 꼭대기층에 마련된 10여평 남짓한 허름한 곳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76년 이 병원 원장직에서 정년퇴직 한 뒤에도 그는 『아직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거제도로 건너가 섬주민들을 위해 인술을 베풀기도했다. 장박사의 이같은 봉사정신은 해외에도 알려져 79년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했다. 외롭게 사는 자신에게 주위에서 재혼을 권유할 때면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못잊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일과 재혼했다』고 재회의 날만을 손꼽아기다렸다. 아들 가용씨는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지난 10월 「주님을 섬기다간 사람」이라고 비문을 새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하고 『아버님의 비범한 삶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개신교·가톨릭·선교단체 성탄행사 다채

    ◎“소외된 이웃과 성탄기쁨 나누자”/환경미화원·장애인·결손가정아동에 선물/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 집전 미사·강론 성탄절을 맞아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선교단체들은 25일 성탄 특별예배를 드리며 가난하고 소외된 불우이웃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위한 성탄 특별 프로그램을 연말까지 계속한다. 서울 중구 저동 영락교회는 24일에 이어 25일에도 환경미화원 7백50여명과 전투경찰들에게 성탄선물을 전달하고 명동일대 노점상 걸인등을 상대로 「사랑의 차 나누기」행사를 갖는다.25일 성탄절 예배의 설교는 임영수목사의 『육신이 되신 예수』라는 주제로 한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새문안교회에서는 『구유에 오신 예수』라는 제목의 성탄 설교가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교회도 25일 상오 7시부터 하오 2시까지 김선도 목사의 집례로 4차례에 걸쳐 음악예배를 보고 환경미화원 3백50명을 초청,저녁식사를 대점하고 선물을 전달한다.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24일밤에 이어 25일 낮에도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성탄미사가 열리고 『이땅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강론이 있다. 구세군은 25일 상오 0시 서울 명동 상업은행앞에서 이성덕 사령관의 집전으로 자선남비 활동 마감 예배를 갖는다. 각 교회와 성당에서는 성탄절 특별 헌금중 상당부분을 연말 연시를 맞아 고아원과 양로원등 사회복지 시설과 청소원들과 소년 소녀가장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선교단체들은 성탄 행사가 대중화되면서 성탄의 의미와 참뜻이 점차 잊혀져가고있는 현실을 감안,장애인·재소자·결손아동·중환자등을 초청하거나 이들을 방문,함께 성탄 예배를 드리며 찬송가부르기·성극공연·다과회·선물증정등 행사를 벌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위원장 김상근목사)는 지난달부터 모금한 재소자 겨울나기 후원사업 후원금 및 물품을 25일 재소자들에게 전달한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 자녀들에게 성탄 선물보내기운동을 펴고있는 기독교세진회(회장 이항수장로)는 1백24명의 재소자를 선정,이들의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학용품,장난감,의류등을 지난주말우체국을 통해 소포로 발송,25일 전후에 받을수 있도록 했다. 세진회는 지난 68년 재소자 교화및 출소자 재활,청소년 선도교화를 돕기위해 설립된 선교단체로 해마다 소포로 선물을 발송하고 있다. 기지촌여성과 혼혈아들의 복음화를 위해 세워진 경기도 동두천시 「다비타의 집」(전우섭 목사)은 30일까지 1주일간 성탄 및 연말행사를 갖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소속 대학생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성탄 파티,미군기지방문및 성경과의 만남,놀이방활동등으로 진행된다. 외국인근로자복음화를 위해 지난 4월 설립된 젠라이트선교회(배인수목사)는 25일 안양시 안양서교회에서 「외국인근로자초청 성탄예배및 위로회」를 갖는다.
  • 전씨 계좌 1백83개 압수수색/검찰

    ◎29개 금융기관 조사… 일해재단 등 명의 개설/5공경호실 경리과장 극비 소환… 자백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15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15개 시중은행,9개 단기금융,5개 증권회사 등 29개 금융기관의 1백개 서울시내 지점내 1백83개 가·차명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검찰은 이를 위해 이날 하오 3시쯤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이와 함께 이 사건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 등은 안양교도소를 방문,전씨를 상대로 비자금을 어디에 은닉했는지를 추궁하면서 비자금의 조성경위및 사용처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이 이날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계좌 가운데 53개 지점의 1백20여개 계좌는 지난 81년부터 88년까지 청와대경호실경리과장으로 재직했던 김종상(49)씨가 자신의 이름 및 가·차명으로 개설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 14일 김씨를 극비리에 소환·조사한 결과,전씨의 비자금 계좌의 내역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47개지점에 개설된 60여개 계좌는 김씨를 비롯해 청와대경호실 재무관,일해재단,새세대심장재단 등의 명의로 개설돼 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6백여장의 양도성예금증서(CD),당좌수표 계좌도 포함돼 있다.
  • 「벼농사의 대부」 황용세(압록강 2천리:17)

    ◎황무지 수십만평 논으로 개간/중국 장작림 군벌 정부의 수리국장 설득/수로공사 지원받아 혼하물길 끌어들여/장작림 위기때 군량미 500가마 보내 보답 「만주땅 넓은 들에/벼가 자라네 벼가 자라/우리 가는 곳에 벼가 있고/벼 자라는 곳에 우리가 있네/우리가 가진 것 그 무엇이냐/호미 바가지 더 있는가/호미로 파고 바가지로 담아/만주벌 거친 땅에 볍씨 뿌려/우리네 살림 이룩해 보세」 중국 조선족에게 유전되던 1920년대 민요다.이 노랫말처럼 중국 동북땅 어디를 가나 논이 있는 마을을 들어서면 조선족이 살았다.그러니까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의 벼농사 효시는 조선족인 것이다.방죽 만들어놓으면 물고기 생긴다고 물이 있는 황무지에는 으레 조선족이 몰려들어 벼농사를 지었다. 압록강유역의 벼농사도 역사가 꽤 오래되어 거의 한 세기에 이르고 있다.18 95년 요령성 집안 팔왕조촌에서 처음 시작했다.이어 무순일대에서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와 포가둔에 자리잡은 송병주·김만리가 처음 논에 볍씨를 뿌렸다.19 06년에는 평안북도 벽동사람인 김시정이 시작한 이래 19 23년에는 심양일대로 벼농사가 번져 5천ha의 개간답에서 해마다 15만섬의 벼를 거두었다. ○연간 순수익 6∼7만원 오늘날 요령성에서도 벼농사 하면 조선족이 꼽힌다.요령성 안산시의 삼대자조선족진 형양기조선족진에 사는 박행관(37)씨는 소문난 벼농사꾼이다.자그마치 5백무(약 1만5천평)나 되는 논을 빌려 광작을 하고 있는 그는 요령성의 우수한 청년농민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해마다 비료값과 품삯이 뛰어오르고 국가의 수매가격이 보잘 것 없는데도 불구하고 연간 6만∼7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요령성의 조선족 농촌을 도는 동안 새로운 인물 한분을 주목하게 되었다.벼농사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황용세라는 인물이다.해방 이태전에 작고했는데,그의 아들인 수복(수복·63)노인이 심양시 우홍구 조화향의 영수촌에 살고 있다.수복노인은 황용세의 넷째아들이다.맏이와 둘째는 중국에 살다가 고인이 되었고 서울에 살던 셋째는 영수촌을 다녀간 이후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수복노인은 유일하게 남은 황용세의 아들인 셈이다.영수촌에서 처음 만난 수복노인은 거두절미하고 아버지 황용세의 마지막 죽음부터 장황하게 털어놓았다.아버지의 죽음이 원통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마을에서 십여리 떨어진 마전자마을에 수레거(차)자를 쓰는 차씨네가 살았다.그런데 논물을 가지고서리 우리집과 그집이 크게 다툰 적이 있었습네다.마침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일군 헌병대에 근무하는 차씨네 아들이 있어서리 우리를 걸고 넘어졌습네다.우리 아버지가 팔로군이었다는 것이었디요.그래서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 숱한 매를 맞고 석달만에 나왔디만 곧 돌아가셨지 뭡네까.차씨네는 광복이 나자 한국으로 들어갔디요.헌병대에 있던 아들은 한국에서 장관을 지냈다고 기래요』 황용세는 드라마틱한 일생을 살았다.1990년 평북 벽동에서 태어나 한일합병 이듬해 부친을 따라 요령성 홍경헌 홍묘자로 이주했다.이후 봉천(오늘의 심양)교외로 이사했다가 농사를 짓기 위해 아주 눌러앉은 지역이 조화향 영수촌.개간할 황무지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주위 늪지대 물을 끌어올릴 재간은 없었다.그래서 수십리 밖 훈하(혼하)의 물을 끌어오기로 결심했다.그러나 수로를 내는 데 필요한 자금은 막상 한푼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중국 동북지방을 장악한 봉천의 군벌인 장작림(18 73∼1928년)정부 수리국에 「수전개발에 관한 청구서」를 냈다.수리국장은 성공이 불투명한지라 깔아뭉갰다.황용세는 수리국장을 직접 찾아나섰다.보잘 것 없는 조선족 농사꾼을 만나줄 리 만무했다.황용세는 생각다 못해 화려한 마차를 타고 집에서 나서는 수리국장의 출근길을 네활개를 펴고 누워서 막았다. ○수리국장 출근길 막아 그의 생떼질은 주효했다.수리국장은 황용세를 자기 사무실에서 만나준 것이다.수전개발의 타당성을 인정한 수리국장은 그 자리에서 서류를 작성했다.자금은 수리국에서 대고 공사를 실패할 경우 황용세가 죽음까지도 감수한다는 서약서를 붙였다.공사를 착공했을 때 한족지주들이 봇도랑을 낼 땅을 내주지 않는등 방해했으나 장작림 군벌정부에서 군대를 풀어 결국 완공했다.깊이 2m,너비 10m의 봇도랑으로 물이 흘러들어 영수촌일대 황무지는 옥토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1924년 북경의 군벌 오패부(오패부·1872∼1939년)가 3개군단을 풀어 장작림을 치는 사건이 일어났다.황용세는 조선족이 만주에서 살려면 장작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군량미 5백가마를 장작림군벌에 보냈다.중국인 지주와 자본가가 두 군벌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여서 황용세의 군량미 기부는 장작림의 환심을 샀다.감동한 장작림은 『그 고려인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해서 황용세를 불러들였다. 황용세는 회색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차림으로 장작림을 만났다.훤칠한 체구의 황용세는 당당했다.그가 황씨라는 것과 요령성 홍경현 산골에 살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장작림은 더욱 감격하고 말았다.왜냐하면 장작림이 비적 두목시절 다른 패거리에 쫓겨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밭에서 들일을 하던 황용세 부자가 감춰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이후 중국 동북3성 도독이 된 장작림은 홍경현을 참빗질하듯 황씨 부자를 찾았지만 찾아내지 못했다.그런 판에 황용세를 만났으니 장작림의 기쁨이 컸다. 장작림은 황용세에게 소원을 물었다.황용세는 의형제를 맺는 것이라고 했더니 장작림은 껄껄 웃었다. 『내,자네 나이 보다 열여덟이 많으니 아버지뻘이 아니겠는가.내 큰아들 학량과 의형제를 맺도록 하세』 장작림이 아들 학량과 황용세의 결의형제의식은 대단했다.당시 「성경일보」도 이를 크게 실었다.황용세의 세력도 막강해져 동북3성 실력자가 되었다.1928년 장작림이 일본군 소행으로 폭사하고 나서 학량이 동북군 총사령관 자리에 올랐다.그리고 1936년 장개석을 서안에서 감금하는 서안사변을 일으킨 학량은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붙잡혔다.그런 와중에 몰락한 황용세는 친일파 차씨네와의 불화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새옹지마라고나 할까.황용세의 몰락은 공산당이 심양을 해방한 1948년 이전에 가문을 알거지로 만들었다.그래서 성분을 해방전 3년까지 본다는 공산당도 황용세의 아들들을 빈농으로 분류했다.
  • 삼성임원 468명 인사/최대규모 30대 11명­여성 2명 발탁

    삼성그룹이 8일 단행한 부사장급 이하 임원인사는 이사보 2백15명을 포함,4백24명을 승진시키는 등 대상자가 4백68명에 달해 삼성 창업이래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사상 최대규모여서 비자금 파문으로 가라앉았던 그룹 분위기를 일신시킬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3일 사장단 인사후 1개월여만에 이뤄진 이날 임원인사에서 세계 최초로 2백56메가 D램 반도체를 개발한 43세의 진대제 삼성전자 전무가 부사장에 오르고 30대 부장 11명이 대거 임원으로 발탁,승진됐다. 삼성전자의 임형규·박로병 상무는 각각 상무승진 1년만에 전무로 발탁됐다.37세로 나란히 최연소 임원승진자인 전동수 수석연구원과 고영범 부장 등 2명이 모두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등 30대 임원발탁자 11명중 8명이 삼성전자 출신인 것을 비롯,반도체 수출호조에 따른 전자소그룹의 약진이 돋보였다. 삼성데이터시스템의 주혜경 교육개발센터장,삼성화재의 장선희 관악지점장 등 여성 2명이 이사보로 승진했고,이사보 4명을 포함해 모두 9명의 고졸출신 임원에 대한 승진발령이 이뤄지고,장애인인삼성전자의 김영철부장도 이사보 승진자 명단에 포함돼 여성및 학력차별 철폐도 두드러졌다. 비서실 인사·재무·기획·신경영추진팀장이 일제히 승진했고 이의일 그룹 홍보팀 상무,이순동 전자 홍보이사,정진택(자동차)·김지선(항공)홍보부장이 각각 한단계씩 승진했다.삼성전관 소속이었던 비서실 전략홍보팀 김재혁 상무는 금융소그룹 홍보를 총괄하는 삼성생명 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그룹 임원인사 명단 ▷삼성그룹◁ △삼성전자 김순 문병대 송직현 유희동 이승진 진대제 최성래 △삼성중공업 홍순익 △삼성물산 김명한 민재홍 △제일모직 원대연 △삼성건설 서효원 이승한 △삼성전자 강영문 강호문 김진기 박노병 유석열 이우희 이충전 최창호 △삼성전관 현탁남 황규병 △삼성전기 최병수 △삼성데이타시스템 김홍기 △삼성중공업 김징완 조기제 황정열 △삼성석유화학 이해진 △삼성생명 김종환 신은철 △삼성화재 이수창 △삼성증권 홍성일 △삼성자동차 박완혁 박찬욱 △삼성물산 지승임 △삼성건설 김창수노명일 박승 이상대 이상재 △제일기획 오증근 이의일 △삼성문화재단 서효식 ▼전무급 △삼성전자 임형규 △삼성전기 박태석 △삼성생명 박종식 △삼성자동차 전무 신원기 한정빈 △삼성항공 전무 신은선 △삼성카드 전무 이용순 △삼성전관 전무 현탁남 △삼성증권 부사장 이경우 △삼성코닝전무 박수웅 △삼성항공 전무 정방언 △삼성종합화학 전무 이치환 △삼성중공업 부사장 박창선 △삼성중공업 전무 김징완 ▷삼성전자◁ ◇경영임원 강인순 고인수 김영기 김영조 오동진 이기태 이순동 이영재 이현봉 최지성 최진배 홍우현 강병직 강신상 김경수 김운섭 김정호 김주섭 김준식 남궁기운 문상영 박병문 박상기 박상진 박상호 박종원 박종하 배길성 손호인 신동익 심성우 오석하 오세영 유병율 유영목 윤병두 윤석호 윤주화 윤창현 윤홍중 이기순 이상렬 이상석 이성재 이재원 임현문 장병조 전병복 정순정 정의용 정형웅 정 활 조남성 조동석 조원국 최생림 최승철 최외홍 최창수 한양희 한진수 허영호 홍승표◇연구임원 김철동 노형래 박재명 이관수 이화준 한영철 강병창 고영범 김광현 김상수 김영철 김천수 박근환 양홍근 오세용 이영하 이유신 장원기 전동수 정용우 최창식 황인섭 ◇전출 △상무(삼성물산)오정환 △상무(삼성전관)이영재 △이사보(삼성전관) 김홍진호 조병오 ▷삼성전관◁ ◇경영임원 권오기 배철한 장병태 김광하 김기영 서영주 안병무 이동욱 이정화 ◇전출 △상무(삼성생명)김재혁 △이사(삼성전자) 박경원 ▷삼성전기◁ ◇경영임원 문봉모 성영석 배정한 전호본 최종윤 ◇연구임원 박건양 ◇전출 △이사(삼성자동차) 윤용수 ▷삼성코닝◁ ◇경영임원 조재설 홍석준 박헌구 소용주 ◇전출 △상무(삼성전관) 홍석준 ▷SDS◁ ◇경영임원 김여성 유광원 ◇연구임원 윤재철 유창상 이평구 홍석준 ▷삼성중공업◁ ◇경영임원 고주영 김백영 나창근 염태동 이창렬 정화진 한영희 권태진 김수호 김영균 김영식 김의수 김종윤 김현권 남상권 문장석 송광욱 염광수 유호선 윤승욱 임춘근 임호열 전찬동 정천조 진종언 최명준 최종완 ◇전출 △상무(삼성생명) 권오륭 △상무(삼성전관) 손근홍 △이사(삼성자동차) 김학순 △이사(삼성항공) 주화수 ▷삼성항공◁ ◇경영임원 안동삼 오창석 박노진 박재참 이현오 ◇연구임원 한삼수 ◇전문임원 김지선 신유균 ◇전출 △상무(삼성중공업) 배영홍 ▷삼성시계◁ ◇경영임원 이진건 ▷삼성종합화학◁ ◇경영임원 김길윤 남상일 박오규 이석규 이호길 조충연 최창현 ◇전출 △이사보(삼성석유화학) 임정기 ▷삼성석유화학◁ ◇경영임원 이중희 ▷삼성BP화학◁ ◇경영임원 김주만 박재욱 ◇전출 △상무(삼성정밀화학) 김주만 ▷삼성정밀화학◁ ◇경영임원 박범구 장재명 ◇전출 △상무(삼성BP화학) 김동수 △이사보(삼성종합화학) 정종하 ▷삼성생명◁ ◇경영임원 강종태 이신영 이헌관조대원 홍석원 고희수 권상렬 김대영 김동헌 김석남 서병우 안춘호 양숭문 유문종 윤석현 윤형모 이정정 정재영 조재홍 황병호 ◇전출 △이사(삼성카드)문봉우 △이사보(삼성카드)윤석현 △이사보(삼성화재)윤형모 △이사보(삼성카드)이호재 △이사대우(삼성물산)박재용 ▷삼성화재◁ ◇경영임원 석진홍 황태선 박종훈 한규남 황상필 ◇전문임원 장선희 ▷삼성카드◁ ◇경영임원 김기영 김순주 ◇전출 △상무(중앙개발) 김종천 ▷삼성증권◁ ◇경영임원 강홍규 성영목 ▷삼성자동차◁ ◇경영임원 이실 조원효 강병수 김용현 김호 박용립 유형목 ◇연구임원 김중희 최시홍 ◇전문임원 김흥식 정진택 ▷삼성물산◁ ◇경영임원 문대윤 신동성 신현정 원경하 강춘기 강효진 나용구 박승국 박신홍 배문한 백영문 서동묵 심일보 안준호 원세현 유재훈 이재 이진순 이창복 이철우 정홍식 조문성 최병길 허성기 ◇전문임원 조제식 ◇전출 △상무(삼성자동차)이수창 △상무(삼성정밀화학) 황규인 △이사보(호텔신라) 박승국 안준호 △이사보(삼성전자) 최명배 △이사보(한국안전시스템) 허성기 ▷제일모직◁ ◇경영임원 이용근 정기수 김인주 김재하 박종렬 서정국 이진업 임승진 장일상 ▷삼성건설◁ ◇경영임원 김율 서형근 송도헌 이홍재 최승우 고상옥 김강식 김낙진 김원식 서권종 손종수 신종철 윤만근 임홍택 최경렬 ◇전문임원 오흥세 이소원 이태웅 함명남 ◇전출 △상무(삼성전자) 서형근 △이사보(삼성중공업) 정영규 ▷ECL◁ ◇경영임원 채상돈 강호규 김인순 김태인 윤희로 ◇전문임원 김영창 허인혁 ▷중앙개발◁ ◇경영임원 조복래 현만영 ▷호텔신라◁ ◇경영임원 천병헌 최건 ▷제일기획◁ ◇경영임원 이성구 유광준 정선종 ◇전문임원 구연철 ▷한국안전시스템◁ ◇경영임원 고완영 주웅식 ▷삼성문화재단◁ ◇전출 △상무(삼성종합화학) 천영희 △이사대우(삼성전자) 박찬규 ▷삼성의료원◁ ◇경영임원 김재수 ▷삼성영상사업단◁ ◇경영임원 유시양 최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임원 윤순봉 이언오 ▷삼성종합기술원◁ ◇경영임원 강진희 ◇연구임원 이강석
  • 뇌물액·수사대상 “사상 최대” 기록

    ◎검찰 노씨 기소­12·12수사 이모저모/검찰주변 “사건 파장에 비해 성과 미흡” 평가/유학성씨 촬영 거부… 사진기자들과 실랑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된 5일 검찰의 다른 한편에서는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되는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분주한 하루였다. 또 두 전직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와 안양교도소주변도 검찰의 분주한 분위기 만큼 긴장감이 감돌았다. ▷비자금 수사발표◁ ○비리수사 계속 시사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는 정치권이나 검찰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정치권에 흘러간 돈의 내역 및 구체적인 향후 수사계획은 포함되지 않아 정치권 등에서는 안도의 한숨. 그러나 검찰은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비자금 8백억∼9백억원의 사용처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혀 아직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비리수사가 물건너 간 것은 아님을 강조. ○…이날 수사발표를 지켜본 검찰주변에서는 한결 같이 그동안 이 사건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이나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이례적인 사태를 몰고온 사건의 파장에 비춰 수사의 성과가 다소 미진하다는 평. 이는 검찰이 비자금의 조성경위 및 총액·사용처 등 수사의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국민들을 속시원히 해줄 만큼 충실하게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을 종합할 때 돈의 액수,조사대상자의 신분과 숫자,수사진의 규모등 모든 면에서 사상최대의 비리사건으로 기록. 우선 핵심 조사대상자가 전직대통령을 비롯,30대 재벌의 총수,국회의원 금진호·전국회의원 이원조씨등 정재계인사 등 모두 4백여명이라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조사를 받는 진기록을 연출. 또 비리금액의 총 액수가 4천1백89억원이라는 것은 역대 어느 사건도 견줄 수 없는 단연 독보적인 수치. 또 이 사건에 투입된 검찰 수사진도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을 비롯해 수사기획관·중앙수사부 제2과와 3과,검찰 연구관 3명,서울지검 특수3부장과 검사 3명 및 소속직원·국세청과 은행감독원 직원등 총 92명으로 단일 사건으로 건국이후 최대인원으로 기록. ▷12·12사건 수사◁ ○사전모의확증 초점 ○…상오9시50분쯤 이 사건의 재수사 이래 3번째로 검찰에 출두한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는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진기자들의 포즈요청에도 아랑곳 없이 조사실로 가려다 사진기자들의 제지를 받고 곤욕을 치르는 헤프닝을 연출. 회색 바바리코트 차림의 유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답변을 않고 비서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사실로 가려다 사진기자들의 제지속에 청사 현관입구로 두번씩이나 되돌아가 포즈를 취한 뒤 조사실행. ○…이날 하오 성환옥 당시 육본헌병감실 기획과장에 대한 조사에서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헌병대 1개 중대를 이끌고 정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데 참여했는 지를 집중 추궁. 검찰의 한 관계자는 『특히 성씨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정계엄사령관을 연행하러 가기전 전보안사령관으로부터 받은 지시내용을 확인,사전모의에 대한 혐의를 확증하는데 수사의 초점이 모아졌다』고 소개. ○…최환 서울지검장은 이날 상오 김기수검찰총장과의 정례회의에 다녀온 뒤 『전전대통령의 개인비리도 수사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면 수사에 혼선을 가져오는 것 아니냐』며 전날의 설명내용과 다소 달리 답변. 수사 본부장인 이종찬 차장도 이와 관련,『현단계로서는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
  • 「비자금 받아 치부」 여부 초점/노씨 기소­정치권 수사방향

    ◎기업인 협박 돈챙긴 경우도 처벌 방침/사법처리 대상자 늦어도 새달초 윤곽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이라는 핵폭발의 여진이 조만간 정치권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5일 노씨를 기소하면서 『노씨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광범위한 계좌추적 작업을 벌이겠다』며 정치권에 대한 수사의지를 분명히 했다.또 검찰이 전씨의 구속과 함께 전씨가 대통령재임중 조성한 비자금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 검찰은 이를 위해 계좌추적 전문가인 은행감독원 검사 6국의 검사역을 추가로 파견받아 계좌추적반의 인력을 대폭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지난주부터 재정경제원 및 증권감독원과 합동으로 시작된 한국·대한·국민투신 등 3대 투신사에 대한 계좌추적 작업도 전씨의 비자금 조성 및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검찰은 노씨의 비자금 중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8백억∼9백억원 중 상당 부분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또 노씨가 퇴임후 「사후관리」를 위해 2천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남긴 것으로 볼 때 전씨 역시 비슷한 규모의 비자금을 은닉,관리하면서 「식솔」들의 충성에 대한 대가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자금과 관련,검찰의 1차적인 수사방향은 노씨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부분,전씨의 비자금 조성경위 및 사용처,이권 개입 등을 통한 정치인의 금품수수 등 세갈래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 가운데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수혜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곧장 사법처리로는 연결되지 않을 것 같다.이날 검찰의 수사발표에서도 나타났듯이 수사목적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는 데 있는 데다,당시 상황에서 관행으로 통하던 정치자금 수수는 사법처리하지 않는 다는 것이 검찰의 일관된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수한 정치자금을 치부에 사용했거나 기업인에 대한 협박 등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챙겼을 경우에는 노씨와 마찬가지로 부정축재 사범으로 처벌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노씨로부터 20억원을 수수한 사실을 실토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라든가,노씨의 비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이미 확인된 일부 6공 핵심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최종적인 수사방향은 부정축재 여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달 하순쯤부터 정치권에 대한 사정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고해 둔 상태다.정치인 가운데 사법처리 대상자의 윤곽은 늦어도 내년초쯤에는 드러날 것이라는 게 검찰 주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 노씨 비자금 4천1백억 확인/대부분 금융기관 계좌·CD입금/검찰

    ◎노씨 기소후 일부 재벌총수 재소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안강민 검사장)는 2일 지금까지의 계좌추적 결과 노씨가 조성한 비자금 총액 5천억원 가운데 4천1백억원이 확인됐으며 이 돈의 대부분이 금융기관의 예금계좌에 들어있거나 양도성예금증서(CD)의 형태로 입금돼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30대 재벌기업총수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통해 뇌물성이 확인된 비자금 총액은 3천억원 정도로 나머지 돈의 조성경위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검찰은 따라서 노씨 기소후 일부 총수들을 재소환해 노씨에게 건넨 뇌물액수에 대해 다시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또 오는 4일 하오 노씨를 기소하면서 비자금 조성의 구체적인 내역과 돈을 준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등에 관한 수사발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검찰은 이날 『수사발표때 기업인에 대한 사법처리방침도 밝히겠다』고 했으나 그 처리시기에 대해서는 함구,일부 총수들은 노씨 기소 후에 사법처리할 것임을 내비쳤다. 검찰은 또 노씨가조성한 비자금 가운데 일부는 5공에서 넘겨받은 돈임을 확인했으나 5공 비자금의 수사문제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비자금 정치인」 노씨 기소후 본격 수사

    ◎검찰 명단 확보… 사전한파 예고/재벌총수 소환 등 통해 구체혐의 포착/“돈 용처 규명가능” 상당한 자신감 표명 검찰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씨의 돈을 받은 정치인 명단을 확보,이들이 받은 돈의 성격과 규모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일 방침이어서 정치권에 일대 사정한파를 예고하고 있다. 검찰은 또 재벌총수들에 대한 소환조사와 계좌추적 작업을 통해 기업들로부터 정치인및 정당으로 직접 흘러들어간 돈도 상당수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 조사설은 재벌총수들에 대한 소환조사 직후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정치인에 대한 자금제공 여부를 조사받았다』는 얘기가 기업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6공 당시 대형국책사업 소관상임위에 속해 있었거나 고위당직을 맡았던 의원들이 수사선상에 올라있다는 등 구체적인 얘기도 나돌았으나 검찰은 초지일관 『사실무근』으로 일축해왔다. 그러나 여론이 5·18 재수사 문제로 쏠리면서 비자금사건을 한발짝 비켜가자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은 정치권수사방침을 강력히 시사하는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28일 하오 브리핑에서 안중수부장은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인에게 흘러들어간 돈이 드러났는지 여부를 묻자 곧바로 『수사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뒤집어보면 「말할 수는 없지만 수사내용에 포함돼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말이다. 노씨의 돈이 정치인들에게 건네진 사실은 더 이전부터 기정사실화돼 왔다.검찰은 지난주 대선자금 등 노씨 비자금의 사용처 수사와 관련,『계좌추적 결과 일부 진전이 있다』고 말한데 이어 28일에는 『수사결과 발표때 사용처부분도 언급할 수 있다』며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검찰은 이처럼 상당한 혐의사실을 움켜쥐고 있는 상태이지만 노씨를 기소할 때까지는 비자금의 규모및 조성경위 등 공소유지에 우선 필요한 부분을 집중수사할 방침이다.따라서 정치권에 대한 수사는 기소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관계자는 이와 관련,『수사결과 발표로 모든 수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검찰이 과연 어느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수사를 벌여나갈지 주목된다.
  • 마무리 국면 접어든 검찰 「비자금」 수사

    ◎“율곡수사 없인 전모파악 불가” 판단/이원조씨 「마라톤 조사」 불구 별소득없어/대기업 자금담당 임원 등 추가 소환할듯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수사가 노씨에 대한 구속기소를 일주일 남짓 남기고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노씨의 구속만기일은 다음달 5일이나 하루전인 4일쯤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대검중수부에서는 『사실상 수사가 끝났다』는 분위기마저 엿보인다. 그러나 정리단계에 들어선 검찰의 보강수사가 그리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30대 재벌총수,부동산·해외은닉재산및 노씨의 핵심측근 등에 대해 근 40일 동안 다방면에 걸쳐 수사를 해왔으나 아직도 답보상태에 머무른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이를 보강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도 1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핵심 현안은 노씨가 밝힌 5천억원의 비자금총액과 조성경위 규명.검찰은 계좌추적 작업을 통해 3천5백억∼3천6백억원의 비자금을 밝혀냈지만 재벌총수에 대한 소환조사에서 검증해 낸 금액은 2천4백억원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대기업 총수들에 이어 자금담당임원등 실무자들을 잇따라 소환조사하고 일부 금융기관과 공기업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해 선뜻 수사의지를 표명하지 않았던 증권·보험등 금융계 인사들에 대한 대거 소환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그럼에도 『과연 어느 정도에까지 근접할 수 있느냐가 남은 과제』라는 검찰관계자의 말처럼 총액규명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검찰이 수사마무리 단계에서 율곡사업 비리수사에 전격 착수하게 된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율곡사업을 건드리지 않고는 총액규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검찰은 차세대전투기(KFP),대잠수함초계기(P­3C) 등 외국의 신형무기도입 과정에서의 뒷거래를 밝히기 위해 감사원의 율곡사업 감사결과보고서와 93년 당시의 검찰수사자료 등을 수집,정밀검토 작업에 들어갔다.27일부터는 6공 때 율곡사업에 관여했던 군수뇌부등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이종구 전국방부장관과 정용후·한주석 전공군참모총장 등이 1차 소환대상으로 유력시 된다.25일 괌으로출국한 이상훈 전국방부장관도 귀국하는대로 소환하겠다는 방침이다. 14대 대통령선거자금에 대한 수사도 아직까지 노씨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탓에 별 진전이 없다.더구나 이를 규명하는데 열쇠를 쥔 것으로 알려진 이원조 전의원을 소환조사 39시간만에 별다른 성과 없이 귀가시켜야만 했다. 따라서 부동산 수사에서 노씨의 호화빌라를 새로 밝혀내는등 일부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해외은닉재산,대선자금 등 정치권 유입여부,5공 비자금 유입여부 등에 대한 수사는 노씨의 구속기소 이후에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검찰은 이에 따라 노씨 기소와 수사발표전까지 이원조·금진호·김종인씨등 비자금 조성 「3인방」과 재벌총수들에 대한 물증확보와 사법처리의 기준및 폭을 정하는데 우선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 “「노씨 돈」관련 정치인 조사 비자금 사용내역 밝혀질것”/안법무

    ◎“전 전대통령 조사계획 없다” 【제주=김영주 기자】 안우만 법무부장관은 22일 검찰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와 관련,『비자금 조성 및 사용 내역을 수사과정에서 관련된 정치인이 드러나면 그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취임 후 제주지검을 처음 방문한 안장관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노씨가 대선자금 지원내용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비자금의 전체적인 규모와 조성경위는 물론 구체적인 사용내역도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안장관은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조사할 계획은 아직 없으며,5공의 정치자금이 노씨에게 일부 넘어갔다는 일부 보도 내용은 전혀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 「대선자금」수사까진 안갈듯/검찰,「비자금사건」어떻게 마무리 할까

    ◎“노태우씨 부정축재에 초점” 거듭 강조/정치자금은 정치권 스스로 해결 기대 검찰은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여부에 대한 수사방향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표명을 계속 미루고 있다.이를 둘러싼 여야간의 치열한 공방은 정치권의 문제일 뿐이라는 투다.불법사실이 드러나면 수사해 보겠다는 원칙론에서 요지부동 상태다. 그러나 정치권의 공방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민자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노태우 전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 말고도 추가로 더 받았으며 이에 대한 물증도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검찰은 물론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그때 그때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응했다가는 검찰 수사가 정치권에 의해 좌우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씨 비자금 사건의 처리 방향에 대해서는 검찰과 정부가 이미 의견을 모았다는 점이다.그 방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번 사건을 「노씨 개인의 부정축재 사건」차원에서 처리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검찰의수사는 이러한 기조 위에서 마무리되고있는 듯한 분위기다. 검찰은 그동안 『이번 수사의 초점은 노씨 비자금의 조성 경위 및 액수』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이를 달리 표현하면 기업인들이 노씨에게 건넨 뇌물만을 중점적으로 규명하겠다는 것이다.따라서 기업인들이 지난 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진영에 건넨 대선자금은 물론 정치인에게 준 정치자금은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봐야할 것 같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주 안에 소환될 이원조 전의원과 금진호 민자당의원이 현 문민정부의 탄생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설 등을 근거로 대선자금 등 정치자금 전반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그러나 검찰은 이들에 대해서도 노씨 비자금 조성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와 그 과정에 얼마만큼의 「떡고물」을 챙겼는지를 중점 조사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노씨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국민의 의혹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조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대선자금이다.특히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은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20억원 이외에 더 받은 것이 있느냐는 데 쏠려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아무도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설혹 검찰이 추가분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표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이는 법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고도의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총재가 노씨로부터 20억원을 더 받았다 하더라도 김총재를 사법처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정치자금법 위반죄의 공소시효가 3년인만큼,92년 12월18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기 한달 전에 돈을 받았다면 사법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은 노씨 비자금이 대선 자금에 얼마나 흘러들어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좌추적을 계속하고 있다.그러나 계좌추적은 기술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설사 찾는다 해도 그 규모가 몇십억 규모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딜레마가 있다.그래서 대선 및 정치자금 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검찰 조사에 협조해 관련자료를 제출하거나 자진공개 등 정치권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검찰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안강민 대검중수부장 문답/재계 뇌물액수 틀린 부분도 있다/비자금 일반적 사용처만 수사중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은 22일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의 내역과 조성경위의 규명에 열쇠를 쥔 사실상의 마지막 「대어」 이원조 전의원과 조기현 전청우종합건설회장을 23일 소환할 방침임을 밝혔다. 다음은 안중수부장과 기자들의 일문일답. ­이원조씨는 왜 소환하나. ▲수사기밀이다. ­이씨와 조기현씨를 동시에 부르는 이유는. ▲서로 다른 이유로 불렀다. ­이씨가 관리하는 비자금계좌가 발견됐다는데. ▲모르는 이야기다. ­이씨는 참고인 자격인가. ▲그렇다. ­이씨를 상대로 5공에서 6공으로 넘어온 자금도 조사하나. ▲조사해봐야 안다. ­금진호의원은 다시 안부르나. ▲내가 발표하는 사람 이외에는 말할수 없다. ­김종인씨는 혐의를 발견하지 못해서 돌려보낸 것인가. ▲어제 할 조사는 일단 끝냈기 때문에 보냈다. ­김씨가 3∼4개 업체로부터돈을 받아 노씨에게 전달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나. ▲말할 수 없다. ­5공자금 본격 수사설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해달라. ▲수사기밀이다.어제 대답했다.아직 수사팀으로부터 보고받은 바 없다. ­노씨에 대한 서울구치소 2차방문조사는 언제 하나. ▲수사하다가 필요하면 한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드러난 비자금 전체액수는. ▲수사 끝나고 발표하겠다. ­3천6백억에서 더 늘었나. ▲아직 그 상태다. ­홍승환 투금협회장을 불러 무엇을 조사했나. ▲입금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불렀다는 보고를 받았다.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노씨에게서 받았다고 한 20억원은 계좌추적을 통해 확인됐나. ▲설사 확인했다고 해도 내가 말할 수 있겠는가. ­언론에 보도된 기업체 공여 뇌물액수 가운데 틀린 것이 있나. ▲대체로 맞지만 틀린 부분도 있다. ­드러난 뇌물액수가 현대·삼성보다 적은 대우와 동아를 영장에 대표적으로 기재한 이유는. ▲최종수사결과 발표때 보면 알 것이다. ­대선자금유입부분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고 있나. ▲전에 답변한 것과 같다.일반적인 비자금사용처에 대해서 수사하고 있다. ­재벌들에 대한 사법처리기준은 정해졌나. ▲조사가 끝나봐야 안다.
  • 비자금 수사 함승희씨 대우 고문변호사 위촉(조약돌)

    ○…6공당시 권부의 비자금 조성경위 및 자금이동경로 등을 추적 수사해온 것으로 알려진 함승희 변호사가 올초 대우그룹 고문변호사로 위촉된 사실이 밝혀져 화제. 대우그룹측은 21일 함변호사가 지난 93년 10월 대전지검 서산지청장을 끝으로 퇴직한뒤 올초에 그룹 고문변호사로 위촉됐다고 설명. 재계일각에서는 최근 함변호사가 출국한 것은 비자금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우중 회장과 해외의 모처에서 회동,대응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이 나오기도. 이에대해 대우그룹의 관계자는 『함변호사의 출국은 개인적인 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정치권에 흘러간 비자금 규모 추궁/노씨 구류신문 내용 뭘까

    ◎추가로 찾아낸 수백억원 조성경위 조사/법정서 수뢰입증할 완벽증거 확보 주력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구속된 지 닷새만인 20일 서울구치소에서 문영호 중수2과장과 김진태 검사로부터 첫 「구류조사」를 받았다.노씨는 구속되기 전 1∼2차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조사에서도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여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사했는지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발표및 움직임과 그동안의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노씨에 대한 이날 조사는 크게 세가지로 방향으로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비자금의 총규모다. 검찰은 지난 15일 노씨를 구속하기까지 은행계좌추적및 재벌총수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입금액기준으로 3천5백억원수준의 비자금조성 사실을 밝혀냈다.이는 노씨가 밝힌 5천억원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수사대상을 석유개발기지공사 등 각종 국책사업과 군 관련사업에까지 확대,상당한 액수의 추가비자금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고 있지만 추가로 확인된 비자금의 규모는 수백억원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검찰은 이에 대한 자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노씨에게 확인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금진호 의원에 대한 조사내용도 주요자료가 됐다는 전문이다. 이씨는 그동안의 검찰조사에서 보령화력발전소 3∼6호기 건설공사와 관련,특정업체대표를 노씨에게 소개해주는 등의 대가로 20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또한 금의원은 각종 국책사업과 관련해 기업체로부터 수백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노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번째는 노씨의 뇌물수수죄에 대한 증거보완작업이다. 검찰은 노씨를 30개 업체로부터 2천3백50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그러나 이 액수는 뇌물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해석,집계한 것이다.검찰은 당시 몇개 업체가 노씨에게 준 돈은 명백한 뇌물로 규정했지만 다른 업체가 건넨 돈은 「뇌물성」이라고만 밝혔다. 따라서 검찰은 기왕의 「뇌물성」 자금은 물론 노씨구속이후 재벌및 금진호의원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새로 밝혀진 자금이 뇌물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노씨를 추궁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비자금의 사용처다. 현재 노씨가 조성한 총액 5천억원 가운데 잔액으로 확인된 금액은 부동산에 유입된 부분을 포함,2천3백여억원이다.나머지 2천7백억여원의 구체적인 사용처는 밝혀지지 않았다. 노씨는 그러나 금진호 의원·이현우 전 경호실장과 일부 재벌총수가 진술한 부분에 대해서만 『그런 것 같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노씨의 진술을 통해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여부를 규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전망이다.그렇다고 은행계좌추적에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그러나 안강민대검중수부장은 이날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이와 관련,검찰은 여야 정당의 자발적인 자료제출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선거자금내역 등에 대한 자료를 입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노씨의 기소시한인 다음달 5일까지 3∼4차례 더 구치소방문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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