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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러/연해주서 합작 쌀농사/민간차원 추진

    ◎연 35만섬 생산… 북과 물물교역 한국의 민간단체와 러시아의 기업이 러시아 연해주지방에서 합작투자로 쌀을 재배해 북한에 제공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은 지난 달 26일 연해주를 방문,이 지역에 농지를 소유한 포세트사 대표 발렌틴 박과 「우리나라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하고 러시아가 농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쌀을 재배한다」는 내용의 의향서에 합의했다고 1일 밝혔다. 그는 포세트사가 북한·중국과의 접경지역이며 두만강과 접하는 남핫산의 농지 2만㏊(6천만평)를 제공하고 노동력은 북한과 중국의 연변 조선족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농업개발원은 이를 위해 농기계·농기구·종자 등을 공급하기로 했으며 이에 필요한 자금은 1백만달러 선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포세트사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연간 약 35만섬(5만t)의 쌀을 북한에 제공하고 대가로 북한의 물자를 받는 방안에 대해 북한측과 이미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이번에 의향서를 작성함에 따라 국내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의향을 타진하고 있다』며 『상당수의 기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빠르면 이달 중순까지 기업을 선정해 연해주를 방문,본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우성호 피랍수역은 공해”/국방부

    ◎북한의 영해침범 주장은 억지/나침반 편차생겨 항로이탈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31일 『제86우성호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된 곳은 서해 북방한계선 이북 28.8㎞ 지점으로 국제법상 공해상이며 북한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이지만 북한은 이를 인정치 않고 영해침범에 대한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발효된 신해양법은 12해리(약 22.1㎞)까지를 영해로 인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지난 77년 8월1일 「군사경계수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면서 북한 연안에서 50해리(약 92.5㎞)까지를 「영해」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또 『제86우성호가 나침반 등 항법장치의 고장으로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국방부 관계자가 전한 제86우성호의 피랍 경위. 제86우성호는 억류돼 있던 중국 산동반도 영성항에서 풀려난 29일 하오 3시쯤 수산청 어업무선국에 무선으로 『영성항에서 동쪽방향 10㎞지점에 있다』고 위치를 알리고 『인천항으로 복귀하겠다』고 교신했다.이에 따라 어업무선국은 해양경찰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어 해양경찰청은 당시 서해상에서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던 천안함에 우성호가 중국해역에서 우리해역을 향해 출발했다고 연락했다. 이후 천안함은 30일 새벽 4시30분까지 무선으로 우성호를 유도한 뒤 인천 앞바다에 가까워지자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부근에 있던 해경 소속 253호에 우성호 유도임무를 인계했다. 이때까지는 인천항 복귀가 순조로운 것으로 판단했다.해경 253호가 유도임무를 인계한 뒤 1시간 가량이 지난 새벽 5시25분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우성86호로부터 『섬이 보인다.그런데 주변에 중국배가 많이 보인다』고 연락이 온 것. 우성호는 시속 8∼10노트의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으며 영성항에서 인천항까지의 거리는 2백50∼3백㎞이므로 30일 새벽 4∼5시쯤 인천 앞바다에 도착해야 했다.그러나 『중국배가 많이 보인다』는 것은 이 배가 중국쪽에 위치해 있음을 뜻한 것.즉 우성86호는 산동반도 앞바다에서 동쪽으로 계속 항해해야 하는데도 천안함과 교신하면서 정작 북쪽으로 항해했던 것이다.
  • 대북식량지원/남북협력기금 활용/쌀 재고 감안 물량 신축 결정

    ◎운송은 직항로·판문점 경유… 평양선택 맡겨/정부 9개부처 실무대책회의 정부는 29일 대북 곡물제공을 민족내부거래및 남북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간주,올 연말기준 2천억원 규모에 달하는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해 북한에 곡물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정부는 이날 송영대 통일원차관 주재로 9개부처 관계 실·국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북 곡물제공을 위한 실무대책회의를 열어 이같은 입장을 정리했다. 정부는 또 대북지원 곡물량은 추후 북한의 반응과 약 7백1만섬에 이르는 예상 쌀재고량과 세계무역기구(WTO)협약에 따른 35만섬의 의무수입미를 포함한 우리측 수급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축적으로 결정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곡물의 수송방식으로는 목포∼남포,부산∼원산등 직항로와 판문점을 경유한 육로수송등 가능한 방법 가운데 당국간 절차협의때 북한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에는 통일원을 비롯,청와대 총리실 재정경제원 외무부 농림수산부 건설교통부 공보처 안기부등 9개부처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쌀 1백만섬 북에 제공땐/전주민 21일분 끼니… 시가 1천8백억 우리나라가 쌀 1백만섬을 북한에 제공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며칠동안 먹을 수 있으며 쌀 값은 어느 정도나 될까. 쌀 1백만섬을 무게로 환산하면 약 14만2천8백57t.우리나라 기준으로 볼 때 1인당 쌀 소비량은 연간 1백7.5㎏이다.따라서 1인당 하루 소비량은 2백95g인 셈이다.현재 북한 인구는 약 2천3백만명이므로,21일동안 먹을 수 있는 물량이다.우리나라는 인구가 2배 가까이 되기 때문에 10일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쌀 1백만섬을 모두 94년산 일반 쌀로 제공한다고 할 때 쌀 값은 일반 쌀의 경우 현재 80㎏들이 한가마에 10만4천5백원 선이므로 약 1천8백81억원어치가 된다. 통일벼 쌀(국제 수출가격 수준)로 제공된다면 80㎏들이 한가마에 3만2천5백원 선이므로 5백85억원어치가 된다.
  • 중,반정유인물 작성6명 검거/미 인권단체 밝혀

    ◎반체제10명 왕단 석방 요구 【북경 로이터 AFP 연합】 6월4일의 천안문사태 6주년을 앞두고 반체제인사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검속을 진행중인 중국 공안당국은 지난 27일 중국 남단의 광동성 해남도에서 대정부 비난유인물을 작성중이던 6명을 체포했다고 뉴욕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중국인권」이 29일 밝혔다. 해남도공안당국은 지난 27일 이 섬의 해구시에 살고 있는 육상선수 출신 반체제인사인 황전의 집을 급습,그의 여동생 팡멍·정쉬광부부와 루장타이·가오민·천쉬에원 등을 체포하고 이들이 작성중이던 탄원서 및 기타자료들을 압수했다고 「중국인권」이 전했다. 협서성 서안의 북서대학 공산당서기 출신으로 호요방전당총서기 비서를 역임한 린무(67)가 작성해 반체제인사 10명의 서명작업을 마친 뒤 전인대에 보내진 탄원서는 「중국인권」에 의해 29일 언론사에 공개됐다. 10명의 반체제인사는 탄원서에서 지난 21일 체포돼 현재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왕단의 석방을 촉구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전인대에 보내 왕단과 기타 민주화운동가들을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 사할린 진도 7.5강진/“2천5백명 사망”

    ◎네프테고르스크시 완전 폐허/러 통신 보도/러,즉각 재난지역 선포… 구조반 급파/우리동포 3만명 거주… 큰 피해 우려 【모스크바·유즈노사할린스크·런던 외신 종합】 28일 새벽(한국시간 27일 밤) 사할린섬 북부지역을 강타한 리히터 규모 7·5의 강진으로 최고 2천5백여명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28일 이 지역 민방위본부 책임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이번 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할린 북부 네프테고르스크는 도시 전체가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사할린 주정부 당국은 지진으로 19층의 건물 한채와 20개동의 아파트가 붕괴되면서 70명이 숨지고 2천명 이상이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있다고 밝혔었다. 한편 인테르팍스 통신도 비탈리 고밀레프스키 사할린 부지사의 말을 인용,총인구 3천5백여명의 네프테고르스크에서 즉각 구조된 사람은 5백여명에 불과하며 지진발생 지역이 한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로 덮여 구조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해 나머지 3천여명은 구조가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네프테고르스크를 탈출한 목격자들은 지진이 일어나면서 5층짜리 건물 16개동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으며 아파트 창문이 모조리 깨지고 벽에 금이 가면서 건물 전체가 무너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이날 지진으로 오하시와 네프테고르스크시 근처 모스칼보 마을 등 일부 지역의 통신이 두절됐다.한편 러시아 극동재해대책센터는 지진피해 지역을 즉시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긴급구조반을 현지에 파견했으나 현지의 도로사정이 나빠 현장도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하바로프스크와 모스크바에서도 구조팀이 급조돼 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지진은 지난 1월 일본 고베지역을 강타한 리히터 진도 7.2의 지진보다 더 강력한 것으로 진앙지는 오하시 북쪽 70㎞ 떨어진 엘리자베타곶 인근 바다속인 것으로 관측됐다. ◎총인구는 75만 사할린은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사할린섬과 쿠릴열도 등 섬으로 구성된 행정구역으로 면적은 8만7천1백㎦이며 전체 인구는 75만여명.이 가운데 2,3세를 포함한 우리 동포는 3만5천2백여명(94년 통계)에 이른다. 우리 동포들은 현재 주도인 유주노 사할린스크를 비롯한 사할린 각 지역에 산재해 거주하고 있어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김 대통령 위로전문 김영삼 대통령은 28일 하오 러시아 사할린지방 네프테고르스크시에서 발생한 지진참변과 관련,러시아 옐친대통령에게 위로전문을 보냈다.
  • 북 식량난,민족끼리 풀 과제(사설)

    북한이 「아무런 전제조건이 없다면」한국곡물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고 우리정부도 전제조건이나 정치적 부대조건 없이 곡물을 북한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은 남북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조건 없는 곡물지원」과 관련,북측에 제공할 곡물의 종류,수량,인도시기,운반수단 등 절차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당국대표회담도 제의했다. 북한당국은 26일 일본에 긴급식량원조를 요청하면서 한국쌀도 공급받을 용의가 있다고 표명하는 한편 이를 위해 일본정부가 중재해줄 것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우리는 북한이 진정으로 한국쌀을 제공받기 원한다면 일본의 중재보다는 우리와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협의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우리정부가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것은 새삼스러운일이 아니다.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3월 독일의 베를린에서 『북한에 곡물을 장기저리로 지원하겠다』고 천명했으며 지난 15일 국제언론인협회(IPI) 서울총회 개최연설에서도 이를 거듭 강조했다.이것은 북한을 공존의 동반자로 돕겠다는 우리정부의 순수한 실천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북한의 식량및 물자부족은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다.특히 식량사정은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북한의 올해 곡물수요량은 6백72만t이지만 94년 생산량이 4백12만t으로 자급률이 61.4%에 그쳐 2백60만t이나 부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때문에 러시아의 북한전문가들은 북한당국이 주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식량폭동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은 84년 남쪽이 수재로 피해를 입었을 때 5만섬의 쌀을 조건없이 보냈고 우리정부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바 있다.남북간에 이런 정신을 살려나간다면 민족화해에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북한당국은 폐쇄적인 체제논리 때문에 주민의 먹는 문제를 더이상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 갈등의 도시 케이프주/(아프리카 기행:13)

    ◎억눌렸떤 흑인들 백인상대 약탈 일삼아/엄청난 부의 불균형에 인종적 반감 겹쳐/4백만 요하네스버그에 경비회사 4백여곳/“세계최고 식물낙원”… 남아 토종식물 2,600종 서식 남아프리카는 인구의 절반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인구밀도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여 서부지역이 1㎦당 13명 정도인데 반해 케이프 주 동쪽의 흑인거주지역은 6백47명으로 나타났다.인구증가율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3분의 1이나 높다.유아사망률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농촌의 흑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매우 높다고 한다. 작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남아프리카에는 다른 어떤 사업보다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업종이 있다.바로 경비회사다.남아프리카는 원래부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토착 흑인들과 백인 이민자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끊이지 않아 막강한 경찰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제 흑인이 대통령이 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흑인들을 마구잡이로 체포,구금할 수 있었던 과거의 악법들이 폐지됨에 따라 과거처럼 경찰력을 함부로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게다가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부의 불균형에 대한 폭발된 반감까지 겹쳐 백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약탈행위가 폭증하고 있다.물론 가난에 찌들어 허기진 흑인들의 본능적인 범죄도 수없이 많다. ○총·장갑차까지 보유 이러한 사회적인 불안 때문에 백인들은 전보다 더욱 안전한 경비시스템을 원하고 있다.요하네스버그만 하더라도 인구 4백만명에 정식으로 등록된 경비회사만도 4백개에 이른다고 한다.남아프리카의 경비회사는 단순한 경비회사의 영역을 넘어서 경비견과 소형 총기류는 물론 장갑차까지도 소유할 수 있다.다만 장갑차에 대형 화기를 탑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이들은 개인주택은 물론 병원·슈퍼마켓·백화점 등에서 경찰을 대신해 경비를 서주는데 기계적인 경비시스템 일체를 설치하는 것보다 이 경비회사에서 제공하는 기본 경비시스템과 여기서 파견해주는 경비원을 쓰는 것이 비용도 덜 든다고 한다.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경비를 맡고 있는 곳에서 경보가 울리면 3분이내에현장으로 출동하는 기동성을 발휘한다고 한다. 수많은 은행·회사·상가 등이 몰려있는 경제도시인 요하네스버그는 특히 경비업체들의 활약이 대단했다.이 업체들은 거의 한달에 한번 꼴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있다.이들은 3개월간의 기초교육과 더불어 특별히 폭발물의 탐지와 분해에 대한 교육까지 이수하고 나서 현장에 투입된다고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서부의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케이프 주에는 그 이름이 유래한 자그마한 반도 「케이프 반도」가 있다.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역사적인 면에서 보자면 다른 어느 도시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이곳은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남북으로 길게 튀어나온 반도인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심장 케이프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3분이내 현장 출동 케이프 반도의 남쪽 끝은 ㅅ자 모양으로 갈라져 있는데 오른쪽 끝은 케이프 포인트라 부르고 왼쪽 끝은 그 유명한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다.케이프 반도와 남아프리카 대륙의 본토 사이의 바다를 「폴스 베이(False Bay)」라 하는데,이 만에 남아프리카의 알카트래스라 부르는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 로벤 아일랜드가 있다(지금의 남아공 대통령 넬슨 만델라도 바로 이곳에 수감되어 있었다).케이프 반도는 그 폭이 가장 넓은 곳도 8㎞ 밖에 되지 않는 반면,남북의 길이는 56㎞에 달한다.영국의 항해가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은 희망봉을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 한다. 사람들은 이 반도의 오른쪽 끝 케이프 포인트는 차가운 대서양의 바닷물과 따뜻한 인도양의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고 믿었다.아마도 대서양에 면하고 있거나 섬으로 자리잡은 프랑스·덴마크·네덜란드·영국보다 인도양의 여러 중동국가나 특히 인도 등의 기후가 따뜻하다는 점 때문에 바닷물조차도 대서양의 바닷물은 인도양의 바닷물보다도 차갑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같다.어쨌든 이곳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반도 서쪽의 대서양보다 반도 동쪽의 폴스 베이의 해수가 더 따뜻하다고 한다. 이 반도는 좁은 곳이지만 높고 낮은 푸른 산들이 바다에 면한 채 줄지어 있어서 가히 세계최고의 식물낙원이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식물이 자라고 있다.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자라나는 토종 식물만도 2천6백가지에 달한다고 한다.1913년에는 의회에 의해 국립 식물원이 이곳에 세워졌다. 케이프 반도에 자리잡은 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테이브마운틴이 있다.이 산은 정상이 뾰족한 보통의 산과는 달리 마치 칼로 싹독 잘라놓은 것처럼 평평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이 산은 수천년의 세월을 거쳐 쌓인 사암과 화강암·혈암 등으로 이루어졌다.여름이면 이 산의 정상 위에는 흰구름이 두껍게 덮이는데 케이프 반도의 수많은 먼지나 더운 공기 등으로 이루어진 이 구름층은 「테이블 클로스(Table Cloth)」라고 부른다.이 구름층에는 「케이프 닥터(Cape Doctor)라는 별명도 붙어 있는데 여름철에 불어오는 남동풍에 의해 이 구름이 멀리 대서양으로 흘러가면서 도시의 온갖 먼지들을 싣고 감으로 해서 케이프 타운의 대기를 맑게 해주고 도시오염을 어느정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북에 줄수있는 쌀 1백만섬/우리정부 보유량 따져보면

    ◎쌀값 조정용 포함 재고 총 1천45만섬/보리 26만섬 여유… 북서 원하지 않을듯 북한이 지난 26일 심각한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곡물제공을 전격 요청해 옴에 따라 우리나라가 어떤 곡물을 얼마나 제공하게 될 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우리가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곡물은 쌀과 보리 정도.국내에서 자급자족하는데다 어느 정도 여유분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보리는 실제 여유분이 그다지 많지 않고 북한의 주요 생산곡물이어서 제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난 94년의 쌀생산량은 모두 3천5백만섬(5백만t).정부가 1천45만섬을 수매해 보유중이고 나머지 2천4백55만섬은 유통상인·농가 등 민간이 보유하고 있다.민간보유분중 지난 6개월동안(수확기 10월기준)우리 국민들은 이미 1천8백만섬(한달평균 3백만섬)을 소비했고 6백55만섬은 민간이 보유중인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북한에 쌀을 제공하려면 민간보유분은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워 정부 보유쌀을 활용해야 한다. 27일 기준으로 정부의 쌀재고량은 정부가 보유중인 6백61만섬과 농협 보유분 3백84만섬을 합쳐 1천45만섬수준이다.이중 연간 1백73만섬이 가공용과 주정용으로 사용되고 있다.1백10만섬이 군·관수(군·관수)용,13만섬이 학교급식용으로 제공되고 있다. 또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에 대해 매년 10월을 기준으로 국민의 식량 2개월(생산이 안돼 수입할 수 있는 기간)분인 6백만섬의 재고량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적정재고량에서 고정적으로 창고에서 빠져나가는 물량이나 시중의 쌀값이 오를때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매하는 곡가조절용과 종자용 등도 고려해야 한다.따라서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쌀의 실제여유분은 대략 1백만섬에 이른다. 1백만섬중 식용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통일벼와 89년,90년산인 고미(고미)가 포함돼 있다.북한에 지원을 한다고해도 그 물량은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하지만 올해부터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35만섬(최소시장접근물량)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재고량부담을 그만큼 줄일 수 있어 여유는 있다. 오는 6월20일쯤부터 전량수매할 예정인 보리의 경우 북한에 제공할 여유분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올해에는 겉보리 29만섬,쌀보리 64만섬 등 모두 93만섬을 수매할 계획이다.그러나 전량수매가 원칙이나 과거처럼 실제 수매에 응하는 것은 생산량의 80%수준이다.따라서 대략 74만섬이 수매될 것으로 추산된다. 74만섬중 식량용 55만섬을 뺀 19만섬에다 작년 말의 재고량 17만섬중 적정재고량(쌀기준)10만섬을 뺀 7만섬을 합치면 여유분은 26만섬정도.그러나 여력도 별로 없는데다 북한이 원할 가능성도 거의 없기 때문에 보리가 제공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 쌀제공 제의 안다”/비난 안해 큰 변화 보여/강석진 특파원 이성록 북 무역위장 전화 회견 일본과 북한간의 「쌀대화」가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다.우리 정부도 조건없이 북측에 쌀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해 놓고 있다. 이번에 북한대표단을 이끌고 일본측과 쌀대화를 이끌고 있는 이성록국제무역촉진위원장을 27일 밤 전화로 만났다. 그는 소속과 성명을 밝히는 기자의 말에 잠시 멈칫했으나 별달리 놀라는 기색없이 여유있게 전화를 받았다.하지만 그는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식의 말로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우선 「일본이 언제쯤 쌀을 제공할 것 같은가」라는 물음에 그는 『모르겠습니다.지금 말할 형편이 아닙니다』라고 응답해 왔다. 다음으로는 「앞으로 일본측과 만날 일정이 확정된 것이 있는가」라고 묻자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현재로서는 이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이어 「28일 귀국할 예정이라는데」라는 질문에 『귀국일정은 더 두고 봐야 할 것같다』고 대답했다.하루종일 그가 묵고 있는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응답이 없어 호텔측에 체크아웃했느냐고 물으니 28일 체크아웃할 예정이라는 설명이었다.아마도 오는 29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와 고노 요헤이 외상이 실무선의 검토결과를 놓고 다시 의견조정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려는지도 모른다. 그는 한국정부가 26일 조건없이 쌀제공의사를 밝힌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처음으로 『안다』고 답했다.그는 『우리도 여기서 신문을 다 보고 있어 안다』고부연설명했다. 한국정부의 제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데 대해 그는 『그만합시다』라고 말문을 자꾸 막았다.한국정부의 처사에 대해 비난조로 나오지 않은 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전화로 묻는 기자의 신분을 믿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해 날이 밝는대로 찾아가 만나도 괜찮겠는가라고 묻자 그는 『수고하쇼』라고 말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 “해외공단개발은 세계화의 지름길”/유완 연세대교수·도시공학

    UR타결 이후 WTO체제의 출범과 동시에 무한경쟁시대나 세계경제전쟁,그리고 글로버라이제이션 등이 시대를 풍미하는 용어가 되었다.모두가 이제 적자생존의 시대에서 치열한 지구적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열린 세계에서의 무한경쟁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하면 틀린 말일 것이다.그러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는 상황도 인류역사의 미래와 진운을 놓고 본다면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국가간에 경쟁일변도로 진행되면 그것이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간에 강자가 약자를 지배 종속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가 형성될 위험이 있다.따라서 열린세계는 경쟁은 경쟁대로 하면서 국가간 상호협력관계를 증진시킴으로써 공동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세계화며,인류가 공영할 수 있는 세계화 인식에는 경쟁외에 협력이 주요한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나,치열한 경쟁의 끝의 끝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계는바야흐로 만물대 만물의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하여 저마다 생존전략을 마련하는데 여념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때 최근 토지개발공사가 주도하고 있는 해외공단개발사업은 국가간 비교우위요소를 상호투자하여 양국의 공동이익을 증진시키는 점에서 세계화 추진의 최적방안 중의 하나로 평가할 만하다. 해외공단개발사업은 해외직접투자의 한 형태로서 해외의 토지를 구입하여 공단을 개발하고 국내기업을 유치하여 생산활동을 하게된다. 국내기업,특히 독자적으로 해외진출을 잘하고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조직력과 자금,해외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현지의 저렴한 토지,노동력,자원을 이용하여 기업경쟁력을 높이면서 해외수출전진기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상대국은 인프라시설이 완비된 공업단지를 갖게 되며,짧은 기간에 많은 한국기업을 유치할 수 있게 되어 기술이전과 고용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비교우위의 요소를 결합하여 상호보완함으로써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고 기업의 생산성과 상품경쟁력이 향상된다.이것은 결국 양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해외공단건설사업은 상호 평등한 위치에서 기브앤테이크식의 공동이익이 추구될 수 있기에 경쟁과 협력이라는 세계화의 의미에 가장 적합할 뿐만 아니라 경제블록화에 따른 무역장벽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세계경제경쟁시대에서의 국가경쟁력은 곧 바로 기업의 경쟁력을 말한다. 특히 중소기업은 산업생산에서 45.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의 저변을 형성하는 뿌리인 관계로 중소기업이 경제경쟁에서 무너진다면 우리의 산업구조나 국가경쟁력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 근래 해를 거듭할 수록 중소기업 제조업체의 상당수가 원자재 인건비등 국내요소가격의 상승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위스의 국제경영연구소(IMD)와 세계경제포럼이 공동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2년18개 개도국 중 3위에 이르렀던 우리의 경쟁력도 해마다 낮아져 94년에는 7위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쟁력 상실에 대해 기업은 경영혁신이나 생산성 향상이라는 방법을 동원하겠지만,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요소가격이 싼 해외로 진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이나 베트남,러시아,인도,중남미 등 중소기업들이 진출희망하는 국가들은 투자보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고,기반시설도 미비되어 개별 중소기업이 단독진출하는데는 많은 불안요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세계화를 도우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제무대에서 중소기업이 기댈 언덕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섬유,완구,신발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나 한계산업,또 해외에 진출하고 싶어도 정보와 자료부족으로 개별진출에 주저하는 중소기업들이 원하는 지역을 원하는 시기에 나가 국제경쟁에 뒤지지 않는 기업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북돋워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과 경쟁력강화를 돕기 위해서라도 해외공단개발사업은 적극 추진돼야 하며,정부는 중소기업들이 해외공단에 손쉽게 입주하여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고세제나 금융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치열한 경쟁시대에서 해외공단개발사업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상호보완하면서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하겠지만,대기업의 해외공단개발사업은 주로 기업영리와 자기진출 차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공단개발이 시급한 현 상황에서는 공공부문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공단개발사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러시아와의 기본합의체결시 관세특혜제공,전용부두 사용권 확보등의 특혜를 확보한 바도 있었지만 공공부문이 정부를 대리하여 협상함으로써 보다 유리한 조건획득을 기대할 수 있고,공익적 사업추진으로 중소기업들이 안심하고 기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외공단개발사업에서의 공공부문의 주도적 역할은 필리핀 수비크만 자유무역지대에 중소기업전용공단을 조성하고 있는 대만이나 싱가포르와 같이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GNP의 수출의존도가 30%를 넘는다.이는 우리나라가성장과 소득증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출증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정부의 생존전략도 수출경쟁우선에 두고 있다.국제경쟁에서의 수출증진의 길은 경쟁력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길밖에 없다. 특히 중소기업이 세계화에 동참하고 국제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해외공단개발사업이 세계경제교류와 협력관계를 증진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이외에도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중소기업의 해외수출전진기지이기 때문이다.
  • 김일성의 남침 책략(모스크바 새 정언:1)

    ◎6·25내막/서울신문 발굴 소문서속 비사/김일성,“해안방어 취약… 소서 지원해달라”/스탈린/“북 해군 창설·전투기 제공 약속”/김일성/“남한군 6만명… 우리가 더 강해”/49년3월5일 대화록/김일성/“전국토 해방 절호의 기회왔다”/스탈린/“미군 남아있어 때를 기다려야”/49년3월7일 대화록/러 국립문서보관소 미공개자료 9백50건으로 엮는 시리즈 서울신문사는 6·25 반발 45주년,해방 50주년의 해를 맞아 현대사 재조명작업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보관중인 미공개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 9백50여건 3천여페이지를 독점 입수했다.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이 그동안의 노력끝에 러시아의 외무부 문서국을 비롯,대통령 문서국·옛소련공산당 중앙위 문서국·국방부 문서국 등에서 입수한 이들 문서들을 앞으로 20여회에 걸친 시리즈로 독자여러분에게 소개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한국전쟁의 준비로부터 전개과정,휴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모든 의혹과 논쟁들이 말끔히 정리되길 기대한다.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인이 6·25를 공동기획하고 이끌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밝혀진 문서들을 통해 이제는 뒤집을 수 없는 사실로 굳어져 있다.그러면 이 3인중 전쟁에 가장 먼저 뜻을 둔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그리고 그 시기는 언제쯤인가.러시아측 문서에 따르면 1945년 해방을 맞은 뒤 48년 북한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창건,그리고 49년말까지 적어도 스탈린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의사를 갖지 않았다.스탈린은 오히려 미국과 남한의 전쟁도발을 크게 우려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마치 2차 세계대전 전 독일에 대해 품었던 것같이 스탈린은 미국과 남한의 전쟁도발을 피하기 위해 급급했고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에 매우 집착했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다음은 이 당시 크렘린의 분위기를 엿보게 하는 문서.(소련군 총참모부 제8국 전문번호 N121973.편집자주=제8국은 소련군 총참모부에서 해외공관과의 비밀통신을 취급하는 부서)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중인 이 비밀전문은 47년 5월 12일 당시 평양주재 소련대표부에 파견된 메레슈코프프장군과 슈티코프장군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긴급요청서였다. 『스탈린동지께.46년 7월 26일 전문번호 N15327로 보낸 우리정부의 결정에 의거,46년 12월 16일 우리는 82명의 소련전문가를 파견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음.이 전문가 파견은 북한에서 산업시설복구와 철도건설작업을 돕기 위한 것임.그러나 지금까지 단 1명의 전문가도 북한에 도착하지 않았음.…중략… 소련을 비롯한 기타 외국전문가들의 도움없이 북한의 산업,철도체계는 가동되지 못함.북한의 붕괴를 막고 또한 남한에서 향후 우리의 입지와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소련 엔지니어,기술자의 파견이 절대 필요함. ○소전문가 보내라 만약 남북한이 통일돼 임시정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소련전문가들이 도착하지 않을 경우 필히 미국 기술자들이 일하러 올 것임.그러면 우리보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임』 이 전문을 보고받은 스탈린은 보고서 위에다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휘갈겨썼다.『소련전문가 5∼8명을 보내줄 것.그들로 하여금 조선인들을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케 하라.우리가 조선에 너무 깊이 개입해서는 안됨』 북한과 소련관계가 이같은 식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김일성은 48년 2월 인민군 창건,그리고 그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이듬해인 49년 1월 17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슈티코프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만났다.슈티코프는 이날의 면담내용을 즉각 본부에 보고했다.(러시아대통령문서소 보관)『김일성은 이전에 언급한 바 있는 소련과의 우호협력협정 체결을 다시 희망했음.이에 대해 본인은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하에서 그런 조약체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음.남한의 반동세력들이 한반도 분단고착화의 기회로 이용하고 미소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수도 있음.이 문제로 김일성과 박헌영은 다소 당혹해 했음.김일성은 강경치는 않지만 조약체결을 고집했고 만약 조약체결이 안되면 소련의 비밀원조협정이라도 맺자고 요구했음.본인의 추가설득을 듣고서 김일성은 일단 지금 우호협력조약체결은 적절치 않다는데 동의했음』 그러나 이 전문보고가 있은 불과 1주일 뒤인 1월27일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 같은 긴급전문을 다시 보냈다.『북조선경찰의 정보보고에 따르면 남한 군부대들이 38선 가까이 이동하고 있고 주 작전방향을 따라 병력이 집중배치되고 있음.남한에 파견됐던 첩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남한에서는 북침설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고 함.남한장교들은 남한이 먼저 공격을 시작해 이니셔티브를 잡자고 말한다고 함.이에 따라 북조선당국은 38선의 수비를 강화하고 경계를 강화하기 위한 필요한 방안을 취하고 있음. 결론=본인은 현단계에서 남한이 공격해올 가능성은 낮다고 봄.국내외 여건이 이같은 공격을 불허함.이들이 병력을 38선을 따라 이동해 주방향에 집결시켰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음.남한은 북쪽의 서울공격을 항상 예상했기 때문에 서울방어를 위해 이같은 병력이동을 했을 수 있음.최근 남한은 북한에 테러부대 파견을 증대시키고 있음.총 80명의 테러범들이 체포됐음.개성에서는 14명이 체포됐는데 이들은 폭약 5통,액체폭발물 6병,휘발유 1통을 소지하고 있었음.이들은 창고,학교를 불태우고 지방지도자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왔음』 ○북침 가능성 낮다 2월에 접어들면서 평양의 소련대사관이 보내는 남측의 도발보고 건수는 점차 그 횟수가 잦아졌다.2월3일 슈티코프대사는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본부의 몰로토프 외상 앞으로 보냈다. 『38도선 상황이 매우 소란함.남한 군경이 매일 38도선을 넘어 북한의 경찰경비초소를 공격함.현재 북한은 경찰 2개 여단으로 38도선을 경비하고 있음.이 여단의 무장은 일본군의 소총뿐임.소총 1정당 탄알은 3∼10발씩뿐임.자동소총은 없음.북한경찰은 남한경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 후퇴하거나 탄약이 떨어져 포로로 잡히기도 함. 소련정부의 결정으로 이들 2개여단 병력에게 소련제 무기가 지급되기로 돼있음.소련국방부 명령에 따라 이들 무기들은 해안군사지구에 공급되기로 돼있음.그러나 본인의 수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무기공급은 아직 실현되지 않고있음.…중략… 그러나 소련정부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북조선은 소총사단 1개,여단 1개를 창설했는데 무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긴급히 이 사태에 손을 써줄 것을 요청함』 ○무기지원 등 요구 슈티코프대사는 하루 뒤인 2월 4일에도 본부에 전문을보내 남한의 대규모 도발을 보고했다.그는 이 공격을 통해 남한군은 38도선 북쪽 2백∼3백m에 위치한 고지 한곳을 점령했고 그옆 38도선 바로 남쪽에 남한군 1개 대대가 배치됐다고 보고했다. 49년 3월 5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모스크바를 극비 방문했다.그는 스탈린과의 면담에서도 38도선의 긴장문제를 제기했다.이날 북조선대표단이 스탈린과 나눈 대화내용은 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돼 있다. 『김=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북조선에 대한 반동세력의 도발이 점점 더 격해지고 있습니다.우리도 육군은 있지만 해안방어가 거의 전무합니다.이 점에 소련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스탈린=미군은 남조선에 몇명이 주둔하고 있습니까. 김=최고 2만명쯤 됩니다. 스탈린=남조선은 군대가 있습니까. 김=있습니다.약 6만명입니다. 스탈린=이 숫자는 경찰을 포함한 것입니까. 김=아닙니다.정규군 숫자입니다. 스탈린=그들이 두렵습니까. 김=그렇지 않습니다.하지만 해군을 갖고 싶습니다. 스탈린=누구 군대가 더 강합니까.당신군인가 아니면 그들인가요. 박헌영=우리 군대가 더 강합니다. 스탈린=해군창설을 지원하겠습니다.군용기도 주겠습니다.남조선군 내부에 당신 사람들이 침투해 있습니까. 박=있습니다.하지만 모두 하위계급들이라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스탈린=잘한 일입니다.지금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됩니다.남조선도 북에 첩자를 보냈을 것입니다.그러니 정신차려야 합니다.요즘 38도선 사정은 어떤가요.남조선군이 침범해 많은 초소들을 뺏겼다가 다시 찾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김=강원도지역 38선에서 충돌이 있었습니다.우리 경찰은 무장이 부실해서 나중에 정규군을 투입해 남조선군을 격퇴했습니다. 스탈린=쫓아냈나요,그들 스스로 물러났나요. 김=우리가 그들을 패배시켰고 그런 다음 그들이 물러났습니다. 스탈린=38도선은 평화로워야 합니다.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기간은 김일성이 인민군창건 뒤 내부적으로 군비증강에 가장 힘을 쏟을 시점이었다.그는 어떻게 하든 남한의 도발위험이 높다는 점을 강조해 소련으로부터 무기지원을 하나라도더 받아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주목할 것은 이날 대화에서 김일성,스탈린 두사람 모두 남침문제는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월 7일 두번째 크렘린회담에서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정식으로 남침승인을 요청했다.모스크바 방문의 진짜 목적을 털어놓은 것이다. ○남침 허가해 달라 힘들게 꺼낸 김일성의 남침허가 요청에 대해 스탈린은 분명하게 반대의사를 밝혔다.러시아대통령문서소에 보관된 49년 3월 7일 스탈린과 북한대표단간의 대화록은 그러나 스탈린 역시 당장의 남침은 불가하지만 때를 기다리며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완곡한 시사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일성=스탈린동지.이제 상황이 무르익어 전국토를 무력으로 해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남조선의 반동세력들은 절대로 평화통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들은 자신들이 북침을 하기에 충분한 힘을 확보할 때까지 분단을 고착화하려고 합니다.이제 우리가 공세를 취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우리의 군대는 강하고 남조선에는 강력한 빨치산부대의 지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탈린=남침은 불가합니다.첫째 북조선인민군은 남조선군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확보치 못하고 있습니다.수적으로도 열세이고,둘째 남조선에는 아직 미군이 있습니다.전쟁이 나면 그들이 개입할 것입니다.셋째 소련과 미국사이에 아직도 38도선 분할협정이 유효함을 기억해야 합니다.이를 우리가 먼저 위반하면 미국의 개입을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김=그렇다면 가까운 장래에 조선통일의 기회는 없다는 말인가요.남조선 인민들은 하루빨리 통일을 해 반동정부와 미제국주의자들의 속박을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스탈린=적들이 만약 침략의도가 있다면 조만간 먼저 공격을 해올 것이오.그러면 절호의 반격기회가 생깁니다.그때는 모든 사람이 동지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원할 것이오』 이렇게 최초의 남침 의도 표명은 결실이 없었다.49년 4월에 접어들면서 크렘린은 남한의 정세변화에 점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 했다.4월 17일 스탈린은 슈티코프대사 앞으로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군사고문단 요청 『본인이 얻은 정보에따르면 5월중 남조선주둔 미군이 일본내 가장 가까운 섬으로 철수할 계획임.철수목적은 남조선군에게 행동의 자유를 더 많이 주기 위해서임.미군철수에 맞춰 유엔감시위원단도 남조선을 떠날 것임. 4·5월중 남조선은 38도선 부근에 병력을 집중시킬 것이 틀림 없음.6월 불시에 북침공격을 감행하고 8월까지 북조선군을 완전 궤멸시킬 목적임.이 정보의 사실여부를 긴급히 확인해 보고하기 바람』(대통령문서보관소) 사흘 뒤인 4월 20일 슈티코프대사는 이 지시사항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다음과 같은 전문을 스탈린앞으로 보냈다. 『북조선인민군의 전투태세는 매우 미흡함. 1,훈련받은 비행사는 8명 뿐임.훈련기인 U­2기 부족과 항공연료 부족으로 추가훈련을 하지 못하는 실정임. 2,소련군사고문단이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음.고문단장 스미르노프는 군사지식이 매우 부족하고 또한 태도가 거칠어 북조선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함. 3,무기·탄약생산을 지원한다는 소련정부의 결정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음. 4,지금까지 해안방위군이 창설되지 않았음』 이어서 5월 2일 슈티코프대사는 미군철수 동향,남한군의 전투태세 등을 보고하라는 4월 17일자 스탈린의 지시에 대해 상세한 답변전문을 보냈다. 『…우리의 첩자가 보내온 정보와 서울의 라디오방송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남조선당국은 남조선 주둔 미군의 철수에 관해 협상하고 있음.…중략…남조선의 북침계획과 관련,남조선당국은 국방군 규모를 계속 증강시키고 있음.국방군은 1949년 1월1일 5만3천6백명에서 3월말 현재 7만명으로 늘었음.특히 기술,특수병력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 이들은 2∼4배까지 늘었음.군내부의 불순사병,장교를 숙청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있음.미국은 남조선에 많은 양의 각종 무기와 탄약을 보급하고 있음.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의 이런 북침관련 보고는 상당기간 계속 됐다.흥미있는 것은 같은 시기 남한측 군책임자들이 우리정부에 올린 보고서들은 북한측의 우려 할만한 동향에 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8월 13일 스탈린은 남북한간 전쟁이 시작될 경우에 대비한 소련군의 행동지침을 슈티코프대사 앞으로 내려보냈다.소련은 절대 이 전쟁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대전제로 한 하달문이었다. 『전쟁이 시작될 경우에 대비해 북조선에 있는 소련 해군기지와 공군부대를 폐쇄할 것.우리가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또한 적을 심리적으로 무장해제시키며 전쟁이 시작될 경우 우리의 개입을 방지하기 위함임』 모스크바와 평양 사이에 북침가능성을 놓고 이렇게 숨막히는 전문이 오가는 가운데 49년 9월에 접어들며 김일성은 또 다시 남침의사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수개월에 걸친 내부 준비기간을 거친 다음이었다.
  • 송재환 청장에 듣는 「열린 병무행정」(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올 2만5천여명 공익근무요원 배치/고위층아들 등 특별관리… 특혜소지 차단/거주지단위 징검으로 국민불편 최소화/면제대상자 대폭 줄여 형평성 제고… 징병검사 과정 공개 병무행정의 생명은 형평성·공평성 확보에 있다.납세와 더불어 국민의 양대 의무 가운데 하나인 병역의무가 국민의 신성한 의무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맑은 병무행정이 전제돼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의 지난 병무행정은 과거의 행태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병무행정=부조리의 온상」으로 치부돼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대표적 행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돈많고 빽있는」 권력층·사회지도층·부유층 자제들의 군입대를 둘러싼 병무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탓이다.또한 과거 군사정권들이 군복무를 징벌의 수단으로 악용,시위에 가담한 학생들을 강제 입대시킨 것도 폄하에 한몫을 했다. ○이동상담소 운영 이처럼 잘못된 인상을 씻어내고 병무행정을 제 위치에 올려놓기 위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송재환병무청장을 만나봤다.70년 병무청 창설이래군고위장성 등 외부인사가 청장으로 「낙하산 임명」되던 관례를 깨고 지난 연말 사상 처음으로 내부에서 승진,병무행정 총사령탑이 된 골수 병무청맨.32년동안 병무행정에 몸담은 만큼 병무행정에 대한 애정도가 높고 부하직원들의 호응이 남달라,병무행정이 빠른 시일안에 구태를 벗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문민정부 들어 3번째 병무청장이다. 『요즘 병무행정에 대한 물의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모든 직원들이 사기가 올라 자발적으로 병무행정 개선을 위한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대상자들이 공평하게 의무를 나눠가질 수 있도록 병무행정의 형평성과 투명성을 높이는게 개혁의 초점이죠.직원들도 이 점을 가슴속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송청장은 11일 후암동 병무청장실에서 가진 대담에서 병무행정 쇄신을 겨냥한 과감한 병무개혁이 진행되고 있음을 힘주어 말하고 주요 과제들을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병무청 사상 첫 내부승진에 의해 발탁됐는데 병무행정 발전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일을 소개해 주시지요. ▲병무행정의 형평성과 투명성을확보하기 위해 전국 대학을 돌아다니며 이동병무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이 자리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을 직접 만나 병무행정에 대한 설명회도 갖고 있습니다.또 징병검사장을 공개해 가족들이 일일이 검사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신체검사 판정기준도 최근 엄정하게 개정,말썽의 소지를 없앴습니다.종전에는 불합격될 대상도 요즘에는 공익근무요원 등으로 모두 편성하고 있지요.장비도 초음파·뇌파탐지기와 병리검사기 등 첨단기기를 갖춰 최대한 정확하게 판정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병무행정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행정입니다.그러나 병무관련 비리 때문에 위상이 실추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특히 오는 6월 4대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강해이로 부조리가 고개를 들 우려도 있는데요. ○신검장비 첨단화 ▲먼저 과거에 병무부조리가 있었던 걸 사과드립니다.그러나 요즘에는 공개행정시대로 부조리는 발을 붙일 수 없읍니다.제 직을 걸고 자신있게 부조리 근절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자녀들을 군에 보내는 국민들은 「이제 병무부조리는 이 땅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개혁의 시대정신에 맞춰 타성에 젖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해주는 직원들에게 항상 고맙게 느끼고 있습니다. ­국민이면 누구나 똑같이 져야 하는게 병역의무입니다.병역의무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체검사 때부터 공정해야 할텐데요. ▲올해초 징병신체검사규칙을 개정,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는 손가락 절단자나 신장·체중초과자 또는 미달자등 종전에는 면제대상이었던 신체결함자들도 전원 보충역으로 판정하고 있습니다.구체적으로 말하면 올 신검대상자 39만명 가운데 중학교중퇴자·생계유지곤란자 등 면제자를 제외하고는 35만명정도가 각종 형태로 병역의무를 이행하게 될 겁니다.과거 신체등급이 낮아 면제처분되던 사람들도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공익근무요원제는 올해 처음 실시돼 아직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또 상근예비역제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십시오. ▲이 제도들은 올해부터 방위병제도가 폐지된데 따라 실시되는 겁니다.먼저 공익근무요원제는 공공봉사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신설됐습니다.공익요원은 행정관서요원,국제협력봉사요원,예술·체육요원으로 나뉩니다.행정관서요원은 종전에 방위병으로 소집되는 보충역처분(신체등급 4등급)을 받은 사람 가운데 지정되며 올해 인원은 2만5천여명입니다.이들은 교통질서 계도와 취·정수장보호에 6천2백명,하천감시나 상수원 보호구역감시에 2천명,산림감시에 1만3천명 등 모두 10개 정부부처에 소속돼 근무하게 됩니다.4주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28개월을 근무합니다.집에서 출퇴근하거나 합숙을 하면서 현역병수준의 봉급외에 교통비·급식비를 지급받게 됩니다.다음으로 국제협력봉사요원은 현역 또는 보충역판정자 가운데 국제협력업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외무부장관의 추천을 거쳐 뽑고 근무기간은 32개월입니다.예술·체육요원은 예술분야의 경우 「병무심의위원회」가 인정하는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2위이상 입상자나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자 등이,체육은 올림픽대회 3위이상·아시아경기대회 1위입상자가 대상입니다.이들은 36개월간 근무합니다.상근예비역은 무기고 관리·예비군중대 근무등 과거 방위병이 맡았던 향토방위업무를 하게 되며 현역 1년근무 뒤 1년4개월동안 방위병처럼 출퇴근하게 됩니다.96년까지는 해마다 1만여명을 선발하고 97년부터는 2만7천여명수준으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공익요원제의 시행으로 지난해 방위병 판정을 받고서도 1년이 넘도록 소집통지서가 오지 않는 바람에 민원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서울 거주자들의 입영이 늦어지고 있습니다.서울은 해당자는 많은데 배정할 곳은 적고,강원·의정부는 사람은 적은데 수요는 많은 실정입니다.하루 빨리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서울에 있는 자원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중입니다.조만간 민원이 해소될 것으로 봅니다. ­공익요원제가 자칫 현역기피의 수단으로 변질,병무부조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데요. ▲현재 고소득층이나 사회지도층의 아들이나 연예·체육인들은 1천9백여명을 골라 병역을 전산화,별도관리하고 있습니다.그러나저명인사들이 아들을 현역기피시키기 위해 공익요원화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형평성을 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병무행정이라하면 뭔가 당사자의 편의는 고려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습니다.해당자들이 스스로 의무를 이행토록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수검일 선택가능 ▲올해부터 국민편의 증진과 「열린 행정」 실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이를 위해 거주지 단위의 징병검사와 병적관리를 시행중입니다.종전에 본적지에 있는 지방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실시하던 것을 읍·면·동 등 거주지로 수검장소를 바꾸고 병적관리도 거주지에서 하는 것이지요.또 징병검사때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도 실시,간염보균자나 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감염여부를 확인하고 「개인별 징병신체검사 결과통보서」를 나눠줌으로써 신체검사를 국민보건진료를 위한 것으로 차원을 높여가려고 합니다.섬에 살고 있는 대상자들은 종전에 지방병무청이 지정한 날짜에 수검토록 돼 있던 것을 본인이 희망하는 날에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병역을 마치지 않은 대학생의 경우 친지방문이나 방학기간중 연수·견학목적에 국한해 해외여행을 허가했으나 여행목적에 관계없이 소속 학교장의 추천만 있으면 연중 2개월동안 해외여행을 허용하고 있습니다.생활보호대상자등 생계유지 곤란사유 해당자들이 면제원서를 접수할 때도 전에는 가사상황서를 시·구·읍·면장으로부터 발급받도록 하던 것을 생략하고 행정기관에서 전산조회를 통해 작성토록 해 불편을 줄였습니다. 또 30세이하 군복무 필자나 면제자가 국외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귀국일로부터 10일이내 읍·면·동이나 지방병무청,공·항만 병무신고소에 신고하도록 돼 있던 것을 조만간 폐지하고 귀국여부를 법무부 전산망을 통해 병무청이 확인하도록 할 예정입니다.앞으로도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규제로 느껴지는 사항들을 믿아내 고쳐나갈 생각입니다.계속 국민의 편에 서는 병무행정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병무 홈 서비스」 어디까지 왔나/ARS·PC로 대부분의 민원 해결/컴퓨터·팩스로 입원원서 수시접수 「안방 병무행정시대」가 열리고 있다. 병무청이 최근 행정관서로서는 처음으로 전화나 팩스·컴퓨터망을 통해 병무관련서류를 처리하거나 문의에 답변해주는 「홈 병무서비스」제를 운영,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신체검사나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사람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일부러 지방병무청을 찾아가 문의할 필요없이 집이나 학교에서 간단히 「민원」을 해결하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전화나 컴퓨터서비스등을 통한 문의가 하루 수백여통씩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병무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첨단통신기기에 의한 서비스는 3가지. 우선 전화를 이용하는 「병무민원 자동안내전화(ARS)가 그 첫번째다. 지난해 도입된 이 서비스는 하루 24시간 징병검사일자와 장소,현역복무여부,지원입영안내,입영부대등 병무행정전반에 관해 알려준다.한 통화는 6분으로 입영일자에 대한 문의는 병무청 일과시간에만 해준다. 지난해 이용건수는 이 서비스가 설치된 서울과 부산·수원·광주지역에서 모두 1백52만건에 이르렀다.이 서비스는 올해 대구·대전·춘천·청주·전주·창원지역까지 확대된다.제주등 나머지 3개 지역은 내년이후 설치된다. 다음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컴퓨터망에 의한 「PC통신 병무민원안내」서비스. 지난해 5월 설치된 이 서비스는 데이콤의 천리안과 한국PC통신의 하이텔을 통해 접근할 수 있고 1백29종의 민원정보와 병무상담 일문일답사례 1백39종이 입력돼 있다. 지난해 이용자수는 23만여명으로 입영일자에 대한 문의가 전체의 47%를 차지,가장 많았다.2위가 각군 지원병모집안내로 10%였으며 다음은 보충역입영,현역병입영,산업기능요원,징병검사에 대한 문의 순이었다. 또한 「팩스 정보서비스」는 궁금한 병역제도는 물론 병무민원서식등 2백75가지의 정보를 입력해놓고 있다. 이 서비스는 특히 병무민원서식 가운데 가장 활용률이 높은 「재학생입영(소집)원서」를 직접 팩스로 보내준다.이 원서를 받은 대상자가 원서의 기재사항을 적어넣은 뒤 다시 팩스로 해당병무청에 보내면 서류접수가 끝난다.이 기능은 컴퓨터망을 통해서도 이용할 수있다. 병무청은 이와 함께 이동병무상담 때 직접 병무청 전산망과 연결된 PC를 상담장에 설치,본인으로 확인될 경우 신상관련자료를 제공해준다. 병무청 관계자는 『이 서비스들은 이용방법 자체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주고 있다』면서 『대학생들은 빠른 시일안에 입대하기 위해 무턱대고 휴학계를 내지 말고 반드시 미리 이 서비스등을 통해 안내를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 쌀 5만t 8∼10월 수입/WTO 의무물량

    ◎시장유출 막아 피해 최소화 우리나라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 35만섬(5만1천t)이 오는 8∼10월 두셋차례에 걸쳐 현미(벼껍질만 벗긴 쌀)로 들어온다.지난 80년 극심한 냉해에 따른 대흉작의 여파로 83년 자의로 1백50만섬을 들여온 이후,12년 만에 타의로 쌀 수입의 빗장이 풀린 셈이다. 농림수산부는 9일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올해의 쌀의 최소 시장접근(의무 수입) 물량 5만1천t(국내 수확량의 1%)에 대한 수입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수입계획안에 따르면 수입 쌀은 1년까지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현미로 들여오며,수입 쌀 35만섬은 현미로 환산하면 쌀겨가 남아 있기 때문에 39만섬(5만7천t)으로 추산된다. 수입 시기는 쉽게 변질되고 하역작업의 어려움이 따르는 장마철과 혹서기를 피하고 보관창고의 여력 등을 감안하되,국내 추곡수매가 이뤄지기 전까지 전량 들여올 계획이다.따라서 수입쌀은 6∼8월 쯤 94년 및 95년 산을 대상으로 구매계약을 체결한 뒤 8월부터 국내 추곡수매가 시작되는 10월20일 이전까지 2∼3차례 나눠 수입될 것으로 보인다. 수입 쌀은 당초 우루과이라운드(UR)이행 계획서에 제시된 대로 국영무역 형태로 조달청을 통해 수입되고 국내에 도착하면 농림수산부가 직접 관리한다.그러나 국내 생산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는 하지 않을 방침이다. 농림수산부의 이범섭 식량정책 심의관은 『수입 쌀은 조달청에서 일반 경쟁입찰방식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특정 국가나 품종을 수입하도록 지정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어긋난다』며 『세계 쌀 수급동향을 볼때 국제 쌀 값은 하향 안정세를 보일 전망이어서 쌀값의 동향을 분석,입찰계약 시기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남극보존/19차 남극조약회의 내일 서울서 개막

    ◎지구촌 36국 “묘안찾기” 나선다/환경훼손 배상책임·영향평가 중점 논의/과학활동·부존자원 관리 싸고 격론 예상 제19차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가 8일부터 19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다. 「신비의 대륙」남극은 시베리아와 함께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자원의 보고이다.중국과 인도를 합친 것 만한 1천3백60만㎦의 넓이에 석유,천연가스,구리,철광석,코발트등의 광물자원이 매장량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묻혀있다.고래,물개,크릴,오징어 같은 해양자원도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열강들은 19세기부터 남극탐험에 관심을 기울였고,20세기에 들어와서는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아르헨티나등이 남극을 영토화하려는 시도가 시작되기도 했다.이에 따라 관심국들은 지난 58년 남극의 비군사화와 평화적 이용을 협의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했으며,그 결과로 59년 12개국간에 남극조약이 체결된 것이다.이후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가 구성되고,물개보존협약,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광물자원활동규제협약,남극연구과학위원회,남극국가사업운영자회의등이 잇따라 설립돼 현재의 「남극체제」 성립됐다. 우리나라는 지난 86년 남극조약에 가입,89년 남극문제를 다루는 회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의 지위를 획득했다.88년 2월부터는 킹조지 섬에 4백20평 규모의 세종기지를 설치,남극과학연구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19차 회의에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 26개국과 옵저버로만 참가하는 비협의 당사국 10여개국등에서 2백여명의 대표가 참석한다.남극을 탐험하고 연구하는데는 많은 예산과 고도의 과학기술이 필요하다.따라서 「협의당사국」은 대부분이 선진국이며,협의당사국회의는 그야말로 부자들의 잔치이다.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는 ▲남극의 환경보존 ▲남극에서의 과학활동 ▲남극의 부존자원 관리 등이다. 이 가운데 남극의 환경문제는 지구 전체의 환경에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이에 따라 이번 회의에서는 환경훼손에 대한 배상책임과,환경영향평가가 중요한 의제가 될 예정이다. 환경을 훼손하는 국가를 누가 처벌하고,벌금을 부과할경우 누구에게 납부하고,누가 벌금을 관리하고 하는등의 절차적인 문제가 배상책임과 관련한 논의사항이다.또 환경영향평가의 구체적인 방법도 논의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남극체제를 관리해나갈 상설 사무소의 설치 문제도 논의된다.
  • 세계자본의 메카/월 스트리트(현장 세계경제)

    ◎거대한 변화물결 뉴욕 증권가 강타/달러화 폭락속 다우존스 연일 최고/투기자금 대거 유입… 통화흐름 교란/「증권·은행업 분리법」철폐 눈앞… 금융합병 거세질듯 세계자본주의의 메카이자 국제 금융질서의 중핵인 월 스트리트.세계경제의 커다란 흐름이 여기에서 시작해 여기에서 끝난다.또 정치·사회 변화의 모든 주요한 양상이 여기에서 드러난다.뉴욕 증권시장의 다우 존스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미 달러화의 폭락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현실과 맞물려 월 스트리트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영국 베어링스은행의 파산에서 드러났듯이 세계 금융질서를 혼란으로 빠뜨리는 투기성 자금의 막대한 증가도 월 스트리트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흐름의 한 가운데 자리잡은 월 스트리트는 어떤 곳인가. 뉴욕의 주식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하루 거래량은 보통 4억주에 육박한다(한국은 평균 2천만주).그 중심에 월스트리트가 서 있다.주식거래량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월스트리트의 엄청난 규모도 그러나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시작은 하찮은 것이었다. 월 스트리트라는 명칭은 실제의 장벽(Waii)에서 유래했다.1624년 네덜란드인들이 뉴욕을 건설하면서 미 원주민의 침입을 막고 가축을 보호할 필요가 생겨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은 것에 불과했으나 나중에는 굵은 통나무를 박아 방어벽을 만들었다.이 통나무벽은 맨해튼 섬의 이스트강에서 허드슨강가까지 이어졌다.지금의 월 스트리트는 이렇게 해서 세워졌다. 월스트리트는 얼마 안 가 상업의 중심지로 명성을 얻었지만 월 스트리트라는 상징에 걸맞는 증권시장이 형성된 것은 이보다 한참이 지나서였다.1792년에 처음으로 뉴욕증권거래소가 들어섰다.이 보다 2년 앞서 필라델피아에 주식거래소가 생겼기 때문에 이것이 미국 최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증권 거래가 공식적으로 조직되자 월 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곳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뒤이어 뉴욕 연방준비은행·주요상업은행·투자은행·증권회사·어음교환소 들이 들어찼다.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월 스트리트는 미국 경제의 세계적인 지배력을 반영하여 19세기 영국 런던의 롬바드가가 차지했던 지위를 물려받아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로 뛰어올랐다. 금융시장의 확장과 함께 오늘날 월스트리트는 지리적인 의미가 많이 흐려졌다.과거처럼 특정한 장소를 월 스트리트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이다.그것은 오히려 뉴욕시 언저리에서 금융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을 뜻하는 말 혹은 단순히 「금융거래의 총합」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최근 들어 대규모 금융기관들을 비롯한 중소형 금융기관들은 과거의 월 스트리트 지역을 벗어나 맨해튼의 다른 지역 혹은 맨해튼 외부로 퍼져 나가고 있다.또 몇몇은 아예 땅값이 비싼 뉴욕을 벗어나 뉴저지나 코네티컷으로 옮겨 가고 있다.그런데도 이들을 통틀어 그냥 월 스트리트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증권회사는 모두 7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지난 10여년 사이 사업은 대규모 회사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왔다.최대급 증권회사들은 대부분이 세계 최대의 증권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멤버이다.미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93년의 경우 뉴욕증권거래소에 가입된 3백여개 증권회사들이 미 증권산업 총수입(7백32억달러)에서 차지한 비율은 68%였다.또 미국내 10대회사가 증권산업 총수입에서 차지한 비율은 54%에 이르렀으며,이 산업이 보유한 총자본(5백63억달러)에서는 63%나 차지했다.25대기업까지 합하면 총수입과 총자본의 거의 80%를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가 최근 들어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은 헤지펀드(HedgeFund)회사로 대표되는 투기 전문 회사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은 이 분야의 대표주자이다.헤지펀드업자들은 수백억달러씩의 투기자금을 가지고 채권과 주식은 물론이고 돈만 된다면 금,석유 등의 상품과 외환시장,금융선물 시장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뛰어들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꼽힌다.국제 금융질서를 이끄는 것도 월 스트리트이지만 동시에 이것을 흐트러뜨리는 것도 월 스트리트인 것이다. 월 스트리트에 최근 또 하나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있다.「글래스­스티겔법」의 철폐가 그것이다.증권업과 은행업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는 이 법의 개정을 앞두고 월 스트리트는 부산한 움직임으로 들떠 있다.증권과 은행의 합종연횡을 가져올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는 것이다. ◎메릴린치/세계 최대 증권사 성장 속도도 최고/소매중개 영업 성공… 침체기에도 사업확장/지난해 자본수익률 18%… 총수입 180억 달러 월 스트리트의 상징이 될 만한 회사를 들라면 메릴 린치 증권회사가 단연 첫째로 꼽힌다. 메릴 린치는 월 스트리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증권회사이며 지난 몇 년간 타사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성장했다.지난해 이 회사의 자본수익률은 18.6%에 달했다.총수입은 1백80억달러가 넘었으며 순이익도 10억달러를 초과했다.94년은 월스트리트의 기업들에 비참한 기분이 들 정도로 시련을 주었지만 메릴 린치만은 이런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승승장구를 거듭했다.92년 총자산 1천억달러에서 2년만에 1천6백억달러로 몸체를 늘렸다는 사실은 이 회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메릴 린치가 이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전통적으로 개인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소매중개업에 튼튼히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이유로 메릴 린치는 전반적인 자본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타사와는 달리 사업확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메릴 린치의 회사규모는 미국 최대의 은행인 시티콥과 맞먹는다.전체 종업원수는 4만4천명에 이르며 미국내에 5백여개의 지점이 있다.해외진출도 활발해 우리나라를 포함해 31개국에 50개 지점이 설치돼 있다.이 해외지점의 수입이 이 회사 총수입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데이비드 코맨스키 사장의 말대로 메릴 린치는 이미 전지구적 자본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회사 가운데 하나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메릴 린치가 해외에서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지난 7년간 미국내 증권시장에서 거둔 막대한 증권인수 실적이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그러나 코맨스키 사장은 이것 보다도 오히려 이 회사가 표방하고 있는 몇 가지 소박한 사업원칙을 강조한다. 『고객중심주의,개개인에 대한 존중,협동정신,책임있는 시민정신,진솔한 인간성』월스트리트 본사의 모든 벽면,심지어 엘리베이터 내부에까지 걸려 있는 메릴 린치의 이 다섯가지 기본정신이 이 회사를 성공으로 이끈 동력이라는 것이다.때때로 자사 선전용 거짓문구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코맨스키 사장은 이 5대정신이야말로 자기 회사의 고유한 문화를 말로 표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 대우/북근로자 기술지도 추진/남포공단 가동대비… 월내 5명 파북

    ◎안되면 중 현지공장에 초청훈련/정부,요건갖춰 공식요청땐 허가 대우그룹이 북한 남포공단내에 조성중인 9개 공장의 본격 가동에 대비,기술자 파견 등을 통해 대북 직접 기술지도를 추진중인 것으로알려졌다. 30일 관련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대우측은 남포의 9개 공장중 우선 3개 공장을 5월중 완전가동키로 하고 이달안으로 5명 정도의 기술자를 북한에 보내 현지 북한 근로자들을 훈련시킬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측은 특히 이같은 계획이 북한측 사정으로 차질을 빚을 경우 북한의 고급 기술인력 30명을 대우의 설비를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광주,상해,무석 등의 방직공장으로 초청,훈련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섬유·봉제 등 경공업 분야에서 대북 위탁가공을 하고 있는 국내업체들은 그동안 북한 기술자들에 대한 직접 기술지도가 이뤄지지 않아 품질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대북 위탁가공을 위한 기술자 파견이나 제3국에서의 기술지도는 관련 업체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요건을 갖춰공식 요청해올 경우 허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대우측은 지난 1월초 이경훈 (주)대우 부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투자조사단을 파견,북한당국과 남포공단내 9개 공장의 가동 방안과 시기 등을 협의한 바 있다.
  • 통영/천혜의 해양경관 휴양지로 탈바꿈

    ◎「충무 마리나」 개장… 요트·윈드서핑 즐겨/사천공항서 무료셔틀버스… 한산도까지 보트로 30분 「동양의 나폴리」「남해안의 백진주」 등으로 불리는 항구도시 경남 통영시(종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영시로 통합)가 관광휴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곳은 쪽빛바다와 풋풋한 바다냄새,뱃고동과 갈메기가 어우러져 남해안의 정취가 가득한 한려수도의 중심지인데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을 이룩한 한산섬을 비롯,해수욕장·낚시터 등이 인접해 천혜의 해양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더욱이 지난해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충무마리나」가 올해 콘도 등 각종 부대시설을 잇따라 보강,개장해 수상스키·제트스키·윈드서핑 등 각종 해상레포츠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통영시 도남동 도남항에 위치한 충무마리나 리조트는 경남도 도남관광개발 계획에 따라 (주)금호개발이 오는 97년 완공을 목표로 총 1천4백50억원을 들여 건립하는 12만3천여평규모의 육·해상 레저타운. 지난해 육·해상 계류장과 요트클럽하우스가 개장된 데 이어 지하 1층 지상 15층에 16·27·60평형의 객실 2백72실과 회의실,한·양식당,전자오락실,사우나,노래방 등의 부대시설을 고루 갖춘 콘도미니엄(70% 분양)이 지난 9일 개장됐다.또 오는 97년초 스포츠센터,육·해상 놀이공원,야외 체육시설,충무공 전승기념관,상가 등이 들어서게 돼 해상리조트로서의 제모습을 갖추게 된다. 마리나는 요트를 정박시킬 수 있는 계류시설과 요트클럽하우스,요트수리·급유소 등을 갖춘 요트전용항구.이 곳은 현재 8∼18인승 모터요트 15척과 돛을 단 세일요트 5척 등 20척을 보유하고 있다.비회원이 4가족 18인승 모터요트를 이용할 경우 비용은 40만원선이다. 또 관광유람선 선착장이 이웃한 곳으로 이전해 와 한산도·해금강·매물도 등을 수시로 운행하고 있어 주변 명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도남항에서 모터보트로 30분거리의 한산도는 요즘 만개한 동백꽃으로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이 곳에는 이충무공이 한산대첩의 공훈으로 3도 수군통제사가 된 뒤 지은 제승당(제승당·사적 113호)과 수루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분 거리의 비진도해수욕장은 1백년이상 된 소나무숲이 바다와 잘 어우러져 연간 6만여명이 해수욕을 즐기는 호젓한 해변이다.또한 통영에서 27㎞ 떨어진 소매물도는 경관이 아름다워 해금도라고도 불리어지며 섬의 대부분이 70여m의 아찔한 절벽이다.글씨가 새겨져 있는 강정이란 뜻의 「글씽이강정」과 암수바위가 유명하다. 이밖에 추도·사량도·연화도 등은 낚시터로 유명한데 감성돔·노래미·도미 등이 많이 낚이며 특산물로는 돌미역·멸치·나전칠기·통영갓 등이 있다. 승용차로는 대구∼구마고속도로∼마산∼통영으로 가면되고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진주 사천공항에 도착,충무마리나까지 운행되는 무료셔틀버스를 타면된다.충무마리나(02­758­8764) 도남관광단지 유람선(0557­645­2307)
  • 도쿄 현대미술관/문 열자마자 “구설수”

    ◎“만화” 「머리 리본을 단 소녀」 거액구입 말썽/“현대 아시아미술 무시했다” 비난 드높아 도쿄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도시로 인정받기 위한 야심작으로 최근 개관한 도쿄현대미술관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흔히 세계적인 도시라고 하면 뉴욕 런던 파리를 일컫는다.이들 도시는 문화적으로 뭔가 대단한 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파리하면 루브르박물관,런던은 테이트 미술관,뉴욕은 시립미술박물관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도쿄도 세계적인 도시의 반열에 끼기를 원하지만 문화적으로 이렇다하게 내세울게 별로 없었다.우에노공원에 국립박물관이 있어 귀중한 일본예술품을 보관하고 있지만 초라해 보이고,그 옆에 국립서양미술관이 있으나 전시작품을 다 합해야 루브르박물관의 전시실 한두개를 겨우 채울 정도다.시립미술관이 있지만 전시용으로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장소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지난 63년부터 은밀히 준비하고 87년부터 건물설계에 들어간 끝에 도쿄현대미술관이 지난달 18일 문을 열었다.일본작품 외에도 주요 외국작품 4백80점을 과시하면서. 그러나 몇가지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우선 간판작품으로 삼기 위해 6백만달러(약47억원)를 주고 구입한 미국 대중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머리리본을 단 소녀」를 놓고 『시민들의 돈을 이같은 「만화」하나 구입하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써도 되는냐』하는 반발여론이 제기된 것.6백만달러는 물론 일본이 구입한 단일작품 최고가는 아니다.오사카가 모딜리아니 작품을 1천9백만달러에,아이치현이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1천7백만달러에 구입했고,군마현도 모네작품에 1천1백만달러를 쏟아부었다.사기업이지만 야스다 해상화재보험은 반 고흐 작품인 「해바라기」를 3천9백만달러에 사들였다.그러나 모두 사치가 당연시됐던 80년대 거품경제 시대에 이뤄졌던 일들이다. 두번째로 현대 아시아미술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앤디 워홀,데이비드 호크니,프랭크 스텔라,케네스 놀랜드,마크 로스코 등 서구 기성화가들의 작품을 배면 대부분이 일본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장소 선정문제다.쓰레기 매립지인 「꿈의 섬」과공장지대로 더 잘 알려져 문화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고토구에 위치해 있다.매립지여서 지진에 약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작품까지 합해 4억3천만달러가 투입된 화강암 건물의 도쿄현대미술관은 도쿄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미술관측은 연간 관람객이 70만명 수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몸바사항/“흑인노예 수출항”… 슬픈역사 간직(아프리카 기행:9)

    ◎「킨타쿤테」 떠난 부두에 범선수십척 “장관”/인도양 교역중심지… 11세기 아랍상인에 의해 건설/올드타운 거리 곳곳에 이슬람 정취 물씬 케냐 동쪽 끝에 위치한 몸바사는 탐욕스런 무역상인들에 의해서 아프리카 흑인들의 노예수출 중심 항구로 비정의 역사를 갖고 있다.오늘날에도 동아프리카의 중요한 무역항이다.처음에는 인도양 위에 떠있는 조용한 산호섬이었으나 지금은 섬이었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몸바사로 가는 가장 훌륭한 여행길은 나이로비에서 기차를 타고 대평원을 가로질러 몸바사항에 닿는 노정이다.덴마크 공주 카렌이 그의 연인이 되었던 영국인 수렵가 해턴과의 운명적인 첫 해우를 한것도 바로 몸바사를 떠나 나이로비로 향하던 기차여행중에서였다.이 기차를 타면 아프리카 대평원에 뜨고 지는 태양과 아프리카서민들의 생활과 정한을 눈여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다.그러나 여행일정에 쫓겼고 열차의 발차시각이 한 밤이라서 비행기를 이용하게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케냐 서쪽에 있는 우간다와 르완다는 유럽의 스위스처럼 바다가 없는 나라다.그렇기 때문에 몸바사에서 내륙으로 놓여진 철도가 없었다면 이들 나라는 현대문명사회와 고립되었을 것이다.몸바사에서 이어지는 철도와 도로망은 그들에게 있어 라인강과 같은 젖줄인 셈이다.오만의 몸바사에서 따온 지명인데 케냐의 몸바사는 11세기때 아랍상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인도양 횡단교역에 절대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때 “노예시장” 흥청 149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인 바스코 다가마는 상거래의 중요한 항구로서 몸바사를 점찍었고 그로인해 이곳에는 노예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니그로들을 사냥하듯 잡아 바깥 세계에 노예로 수출한 악명 높은 항구가 바로 몸바사다.1840년 잔지바르(몸바사 아래쪽의 섬)의 성주가 통치권을 행사할 때까지 아랍과 페르시아,포르투갈,투르크(터키의 한 부족)가 패권을 다툰 각축장이기도 하였다. 1895년 영국이 차지하여 1907년 수도가 케냐로 옮겨지기까지 몸바사는 동아프리카 보호령의 수도로서의 역할에 매우 분주하였다.몸바사에는 두개의 항구가 있는데 섬의 동쪽에 있는 구항은 아라비아,페르시아만,인도 등지에서 교역물을 싣고 오는 범선이나 작은 선박들이 이용한다.아침마다 이 항구로 들어 온 많은 해산물들로 시청사 주변을 생선시장으로 바꿔 버린다.우기가 되면 수십대의 다우범선(돛이 세개달린 범선)들이 이 구항으로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한편 영국이 개발한 킬린디니항은 수심이 깊은 항구로 육지로 둘러싸인 정박지에 16척의 화물선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현대적 항만시설을 갖추었다. 몸바사의 중심거리는 음웸베 타야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이곳이 도시의 중심지로 기능하는 이유는 교통 때문이다.교통문제를 책임지는 감독관이 이 거리 망고나무 아래에서 사파리를 떠나기에 앞서 짐꾼들과 운전사들을 집합시키고 점호를 하는 풍경은 이채롭다.토요일마다 여기서 벌어지는 노상 밴드쇼가 유명하고 여러가지 향신료를 섞은 음식물과 야채를 팔고 있는 저자거리도 볼만하다. ○노상 밴드쇼는 명물 그러나 몸바사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들은 누구나 한번쯤당혹감을 느끼게 마련이다.그것은 여행자가 나이로비에서 비행기를 잘못 타서 회교국가인 아랍에 잘못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거리로 나가면 검은 아바이야차림에 얼굴을 차드르로 가린 회교도 여인들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된다.특히 동쪽에 있는 구항에 인접한 올드타운은 좁은 골목길에 조각장식을 곁들인 발코니가 달린 아랍식 주택들과 이슬람사원들이 들어서 있다.좁은 골목은 침입자들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고,고층주택들의 지붕은 지난날 포르투갈 침입자들의 공격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몸바사를 통치하던 역대 총독들은 전통적으로 새로 태어난 아기들에게 포대기용 천을,그리고 결혼하는 신부에게는 가운을 주면서 축복하였다.죽은 자에게는 넉 장의 무명천을 선사해 왔다니 인생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에 통치자들이 꽤나 신경을 쓴 모양이다.통치술 치고는 고차원적이 아니었나 한다.이곳에 살고 있는 회교도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11세기에 몸바사에 상륙하였던 아랍상인들의 후예들이다.그런가하면 수도 나이로비에는 이 나라가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을때 철도부설노동자로 들어왔던 인도인의 후예들이 케냐상권의 대부분을 쥐고 있다. ○인도인 후예 상권 장악 때때로 이런 해묵은 갈등들이 사회문제화 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큰 충돌 없이 지내고 있는듯 하였다.케냐의 원주민들은 수백년동안 이런 종교와 문화적 차이를 큰 적대감 없이 수용하기도 하고 조화시키면서 살고 있었다.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심성의 공간적 넓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항 근처에 있는 부두노동자들의 합숙소 벽면에 나란히 걸려있던 그들의 옷가지와 빨래들을 바라보면서 노예시장은 이제 없어졌지만 아직도 밑바닥 생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정한은 남루한 옷차림들에 그대로 묻어있다는 생각을 하였다.아랍사원중의 하나인 아우디보라 모스크가 있는 절벽 뒤의 황무지에는 방치해 둔 계단입구가 있다.교역물자를 나르던 범선의 노예들이 비밀리에 드나들었던 곳인데 이 계단이 끝나는 막다른 동굴에는 그들 노예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해 주었던 맑은 샘물이 있다. 우리는인도양의 초록빛 바다가 창문 아래까지 밀려와 닿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휴가를 맞은 유럽인들이 몰려와 여름의 태양과 바다를 만끽하고 있는 호텔 앞의 바닷가에는 몇마리의 낙타를 몰고 다니며 손님을 부르고 있는 흑인과 낙타들의 발길이 무척이나 한가로웠다.
  • 제주사태 다룬 대하소설 「한라산」 집필/현길언씨(인터뷰)

    ◎“소년기에 겪은 「4·3사태」 아직도 생생” 『제가 국민학교 2학년인 아홉살 때 제주 4·3사태가 터졌습니다.그후 수없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제 소년기의 체험은 선명하게 되살아났고,급기야 4·3사태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항상 곁에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도 4·3사태를 다룬 대하소설 「한라산」을 집필하고 있는 중견작가 현길언(55·한양대 국문과 교수)씨.4·3사태를 앞뒤로 한 현대사의 격동기를 담은 「한라산」은 모두 5부 9권으로 제주 4·3사태 50주년이 되는 98년 완간될 대작인데 그 1부(1권),2부(2권)가 최근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됐다. 현씨의 고향은 남제주군 남원읍 수망리.당시 1백10여 가구 중 절반 가량이 초토화됐을 정도로 4·3피해의 한복판에 있었다.그런 만큼 작가 자신도 『그 악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토로한다.하지만 이 작품은 그같은 개인체험을 날것인 채로 전달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 진정한 미덕이 있다. 「한라산」은 4·3사태가 발생하기 전 일제말기 상황에서부터 출발한다.1부 「배반의 땅」에서는 2차대전이 끝나기 전 일본이 제주도를 본토사수의 교두보로 설정하고 7만명의 대병력을 섬에 배치하던 시기를,2부 「성조기시대」에서는 미군정 실시 후 47년 소위 「제주 3·1사건」 때까지를 시대배경으로 제주사람들의 일그러진 삶의 흔적을 더듬는다.4·3사태의 전사적인 성격을 띤 이 부분에서 현씨는 사태의 발생원인을 추적하는데 힘을 쏟는다. 『제주섬은 이미 2차대전 끝무렵부터 미군의 일본본토 공략기지로 설정됐고 일본 또한 본토사수를 위한 전략요충지로 여겼기 때문에 양국간 대규모 무력충돌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컨대 4·3의 비극은 미·일 등 외세의 대립에서부터 원초적으로 그 씨가 뿌려졌다는 게 작가의 기본시각이다. 그는 이어 제주도가 갖는 주변부적 성격도 4·3사태의 한 원인이 됐다고 진단한다.중심부 정세에 어두운 변두리 지역 이상주의자나 모험주의자들의 명분론은 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이념의 추종자처럼 만들어버렸으며,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중심부세력의 오판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 현씨는 『나머지 3·4·5부의 집필을 통해 아직도 아물지 않는 4·3의 상흔을 달래고 「한라산」을 4·3문학의 완결편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대입 「농어촌 특별전형」에 허점/부모직업 무관… 거주지만 따져

    ◎「도시속 농촌」거주자 혜택 없어/혜택받으려 위장전입 등 불법 소지 96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도입하기로 한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 제도의 기준이 비현실적이라 형평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운산고교는 당진읍과 서산시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그러나 당진읍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특별 전형제의 혜택을 볼 수 있으나 당진읍에 비해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서산시 오산동 학생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산시 오산동에 사는 농민 이모씨(51)는 『이 제도가 발표된 뒤 아들이 대학 입학 문이 넓어진 것으로 생각했으나 시에 거주하기 때문에 특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부모의 직업을 구분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거주지만 기준으로 정한 것은 탁상행정의 본보기』라고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섬이나 산간벽지에 학교가 없어,인근 시지역에서 하숙이나 자취를 하며 그 곳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역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와는 거꾸로 김포 용인 양주 남양주 광주 양평 등 수도권의 군 또는 읍 소재지등은 서울과 1시간 거리인데다 교육여건이 농어촌보다 훨씬 좋은데도 특례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실제로 이 지역의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요즘 서울에서 집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으며 주민등록지를 옮기는 등 위장전입의 움직임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사는 가정주부 김모씨(42)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위해 서울 근교의 농촌으로 이사하기로 하고 지난 일요일 경기도 양평의 집을 알아봤다』며 『청량리역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여서 남편의 출퇴근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현행 농어촌학생 특별 전형제는 부모의 직업 구분없이 읍·면 지역의 고등학교에 3년간 다닌 학생들을,각 대학이 정원의 2%에서 정원 외로 선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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