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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천·강릉시, 호수에 태양광체험장·생태학습장 등 친환경생태관광지 개발 나서

    강원 춘천시(의암호)와 강릉시(경포호)가 경쟁적으로 호수를 활용한 친환경 생태관광지 개발에 나섰다. 강원도는 16일 강릉시가 저탄소 시범사업의 하나로 경포호수 인근에 생태습지를 만들어 최근 준공한 데 이어 춘천시도 2015년까지 의암호 붕어섬에 태양광체험장을 조성해 탐방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포호 생태습지는 140억원을 들여 다양한 수심의 생태습지를 비롯해 하중도, 탐방로, 탐방데크 등을 설치했다. 습지는 다양한 수심을 확보해 어류의 서식처와 먹이사슬 상위단계에 있는 조류, 포유류 등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핵심구역이 설정돼 사람의 접근을 원칙적으로 배제한 친수공간으로 구성됐다. 이곳은 홍수 예방과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저장·흡수 역할도 하게 된다. 복원사업 중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식물인 가시연꽃이 대량으로 발견되고 멸종위기 1급 포유동물인 수달과 2급인 삵이 경포 습지로 돌아오는 등 백두대간에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 생태축과 생태통로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춘천시도 의암호 붕어섬에 태양광체험장을 조성한다. 지난해 붕어섬 31만㎡에 강원지역 최대 규모의 6000㎾급 태양광 발전소가 가동된 데 이어 내년부터 2015년까지 17억원을 들여 물레길과 접목한 태양광체험장 조성이 추진된다. 붕어섬 안에 들어선 태양광 발전소를 물레길과 접목해 신재생에너지를 알리는 체험공간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섬 면적의 3분의2는 태양광 발전시설로, 나머지는 야생화단지와 태양광 학습장, 생태탐방 전망데크, 선착장 등으로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붕어 모양을 닮은 섬의 끝 부분에는 꼬리지느러미처럼 나무데크로 외형을 완성할 계획이다. 관광객들이 송암동 스포츠타운 쪽에서 카누나 크루즈 등을 타고 섬에 도착, 태양광 체험시설을 관람하고 호숫가와 꽃길 등을 산책하도록 할 방침이다. 체험장이 조성되면 100명 이상이 탑승할 수 있는 크루즈선도 도입될 예정이다. 춘천·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16일 TV하이라이트]

    ■시사기획 창(KBS1 밤 10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무한 경쟁이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을 비롯해 중산층으로 살아남기 경쟁에 모두의 허리가 휜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도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모두가 불행해지는 경쟁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한국 사회에 필요한 패자 부활 시스템은 어떤 것인지 모색해본다. ■초한지(KBS2 밤 12시 30분) 조고는 밀려드는 역적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대신들은 역적을 소탕하기 위해 장한을 장군으로 천거한다. 궁에서의 일들을 전해 들은 장한은 신희 공주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항우는 동군 전투에서 승리해 대장군이 되고 계포도 약속대로 이를 받아들인다. 한편, 유방은 호릉에서 대패해 돌아온다. ■PD수첩(MBC 밤 11시 20분) 최근 들어 자식 때문에 빚을 떠안는 부모가 늘고 있다. 한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금융회사 부채가 있는 만 60세 이상의 가구는 2010년 25.7%에서 2011년 35%로 증가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쉼 없이 일을 해 온 대한민국의 부모들. 노후를 즐길 나이지만 자식의 빚 때문에 다시 생계 현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올해 15살인 명운이는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겨우 초등학생의 키에 걷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명운이는 선천성 정신지체와 뇌병변 장애, 다운증후군 그리고 강직성 심장질환까지 모두 4가지의 중복 장애를 앓고 있다. 4개의 희귀 질환을 앓고 있지만 명운이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한국기행(EBS 밤 9시 30분) 완연한 봄, 이맘때 전북 서남단에 있는 고창은 온통 초록빛 보리밭으로 바뀐다. 청보리밭의 봄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러 풋풋한 향기가 가득하다. 30여만 평의 보리밭이 펼쳐져 있는 공음면 부채울 마을 구릉 밭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뤄 마치 녹색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아름답다. ■가족(OBS 밤 11시 5분) 경남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13가구에 18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섬이다. 이곳에는 어촌계장이자 반장인 이석진씨와 아내 구영자씨가 살고 있다. 23년 전 포르투갈행 원양어선에서 사고를 당한 석진씨. 이에 아내 영자씨는 남편의 고향 추도로 귀향해 병수발은 물론 아픈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 日 6.3 강진… 18년 전 한신 대지진 재현?

    지난 13일 새벽 일본 효고현 아와지섬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한 원인 등을 놓고 일본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23명이 부상을 입고 1200여채의 건물 피해가 발생했다. 간사이 지방에서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사망 6434명, 부상 4만 4000여명, 건물 64만여채 손괴 등의 피해를 냈던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처음이다. 지진은 한신 대지진 때와 거의 같은 시간인 새벽 5시쯤 발생했다. 진원지도 비슷하다. 18년 전 한신 대지진 때는 아와지섬 북단이었지만 이번에는 섬 중앙부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이런 이유로 이번 지진이 한신 대지진의 여진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 지진조사위원회는 기상청 등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14일 임시 회의를 연 뒤 이번 지진이 그간 알려지지 않은 활단층(活斷層·현재 활동하고 있거나 활동한 적이 있는 단층)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조사위원회는 여진의 분포 등으로 미뤄 아와지섬 중앙부에 있는 길이 약 10㎞의 알려지지 않은 활단층이 이번 지진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근처에 규모 6.6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센잔 단층대가 있지만 이번 지진과의 연관성은 분명치 않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이번 지진은 한신 대지진을 일으킨 노지마 단층의 남쪽에서 발생했다. 조사위원회 혼쿠라 요시모리 위원장은 “한신 대지진과 얼마간 관계가 있다는 데 위원들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며 이번 지진이 넓은 의미에서 한신 대지진의 여진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 외에도 울진 포구 여기저기에는 60여 호를 헤아리는 크고 작은 염전이 있고 소금 도가 포주인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는 그런 동사 간에도 내왕 없이 지냈기 때문에 해포이웃이라곤 없었다. 천성이 도무지 분잡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울타리 밖의 사정을 모르고 살면서 엉덩이에 두께살이 앉도록 출입이 없었다. 괴팍한 처신 때문에 같은 염호나 소금 도가 포주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송석호는 그런 처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면 남의 밭에 개똥도 줍지 않는 꼬장꼬장한 성품에 내 것이라면 고뿔도 남에게 주지 않을 만큼 인색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차인이나 염간(鹽干) 들에게 새경이나 용채를 후하게 쥐여주어 그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처신이 그처럼 데데하지 않은 것에도 알고 보면 까닭이 있었다. 염전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토호나 벼슬아치들이 질청의 아전이나 관노들을 사주하여 염전을 싼값으로 사들이려 끊임없이 협박과 농간을 자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농간에 송석호는 염부들과 힘을 합쳐 염전을 지키려 했다. 그런 저항에 부딪히면 아전들은 문서에도 없는 염세를 강징하여 그를 괴롭혔다. 삼척, 울진을 비롯하여 통천,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영해, 평해와 같은 고을은 예부터 땅이 매우 척박하고 자갈이 많아 농사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들 고을에서는 고기를 잡고, 미역 따거나 소금 굽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땅은 비록 메말랐어도 부유한 자가 많다고 하지만, 서쪽으로 고개가 너무 높아서 이역과도 같아 한때 유람하기는 좋겠으나 오래 살 곳은 못 되었다. 소금 전매하는 일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오랜 세월 그대로 고치지 못하네 우리나라 법이 크게 엄하여, 해마다 내는 세금 일 년 농사보다 많다네 나도 관동으로 나온 뒤에 해안을 다니며 몸소 독려했다네 백성들 누추한 거처는 오두막집, 쑥 엮어 만든 문에 자리조차 걸 수 없어 늙은이가 자식 손자 데리고, 한 치의 시간도 쉴 수가 없네 혹한에도 바닷물 길어 오기에, 짐 무거워 어깻등이 휠 대로 휘고 열기와 연기 그을음, 끓이는 훈기에 눈썹마저 타버렸네 문 앞의 열 수레나 되는 나무도, 하룻저녁 땔감이 되지 못하네 하루종일 백 말의 물을 끓여도 소금 한 섬 채울 수 없네 만약 기한 내에 대지 못하면 혹독한 관리는 꾸짖고 성내어 운송하는 관리는 소금을 산처럼 쌓아놓고, 전매하여 비단으로 바꾸지 임금은 공신을 중하게 여겨 상을 주는 데 아끼지 않네 한 사람 몸에 입은 옷가지, 만백성 괴로움 깊이 쌓이네 슬프다 저 소금 굽는 사람들이여, 옷은 해어져 등조차 가릴 수 없고 이 괴로움 견디지 못하여 급히 도망하여 자취를 감추네 고려시대 안축이 소금 굽는 일을 보고 충격받아 이렇게 묘사할만치 염한들이 겪는 고초를, 그는 몸소 눈으로 보고 있었다. 평생 염막만을 지키고 앉은 터에 이제 막 육십 줄에 들어섰건만, 구루병 걸린 당나귀처럼 허우대가 찌그러진 행색은 애꾸눈이 보아도 열 살은 더 먹어 보였다. 남들이 그의 인색함을 허물하면 언제나 그는 부자로 살았던 어떤 역관의 얘기를 사례로 들었다. 그 역관은 일찍이 부자 소리를 들었으나 의복은 매우 검소하였다. 찢어진 모자에 칼은 나무로 만들어 썼다. 그러한 연고를 물었더니 역관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가진 물건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면, 힘있는 관리와 선비들이 너도나도 모두 가지고 싶어 침을 삼키게 될 것이다. 그때 선뜻 건네주지 않으면 환심을 잃게 될 것이고 골고루 나누어주자면, 숫자가 모자랄 것이다. 이어서 송석호는 내가 외관이 의젓하고 치장이 화려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필경 화를 부르게 될 것이므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 [열린세상] 평성 25년 경성중학/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평성 25년 경성중학/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널리 회자되는 김춘수 시인의 이 시구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일견 아름다운 상념을 자아내는 이 시구가 정치적으로는 무시무시한 발언이 된다. 알튀세는 ‘호명’이야말로 개인을 이데올로기에 예속시키는 행위로 보았고, 사이드는 ‘명명’을 제국주의가 식민지 타자를 자신의 체계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시인은 살벌한 세상 이치를 아름답게 표현해 냈다.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주인공은 외로운 섬에서 원주민 하인을 얻는다. 분명 제 이름이 있을 이 원주민에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단지 금요일에 데려왔다는 이유로. 로빈슨은 또 이 원주민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명명과 언어 침탈, 개종 등. 사이드는 제국주의 전성기에 형성된 서양 고전 명작들이 이처럼 당시 타자에 대한 서양의 식민화 방식을 은연중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거에 일제는 이러한 서양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여 우리에게 실천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한국어 말살과 일본어 강제 교육,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등이 그것이고 그 후유증과 상흔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명명과 관련된 한 예로 한국의 꽃 이름과 나무 이름들을 보자. 아름답고 토착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우리의 식물 이름과는 별도로 학명에는 상당수가 ‘Nakai’(나카이)를 비롯한 일본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식물학자에 의해 한국의 식물들이 마치 처음 출현한 양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린네의 명명법에 따라 첫 발견자인 일본인 학자의 이름이 한국의 대부분 식물 이름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동양학에서 이러한 현상은 심각하다. 동양학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 제국학문이 만들어 낸 용어이지만 근대 이후 동양은 일본이 대변해 왔고, 일본의 동양학에 의해 동양이 설명되어 왔으며, 특히 서양의 동양학은 일본 동양학의 기초 위에 성립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 동양학의 고전인 라이샤워· 페어뱅크의 공저 ‘동양문화사’에 일본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그대로 실리고 세계의 모든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온 것은 이런 실정을 보여주는 극히 작은 예에 불과하다. 한편 오늘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도리어 과거 일제의 만행을 호도하고 나아가 정당화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태평양전쟁이 동양을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명분 있는 전쟁이었으며, 한국 등에 대한 식민 지배가 오히려 근대화를 위해 기여했다고 강변한다. 그리하여 ‘침략’이 아니라 ‘진출’이며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던 일로 삭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후안무치한 데다가 적반하장 격인 이러한 언동을 효과적으로 징치(懲治)할 수단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 딱하고 울화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최근 서울의 한복판에서 더욱 아연한 일을 겪었다. 며칠 전 우연히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경희궁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곳은 조선의 왕궁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해체되어 일본인 학생들만 다니는 경성중학이 되었고 해방 이후 서울고등학교로 새로 태어났다가 학교가 이전하면서 예전의 왕궁 경희궁으로 복원된 곳이다. 궁 앞의 안내문을 읽다가 어이없는 구절을 발견했다. 경희궁의 연혁에서 ‘한일병합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소유가 넘어가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노라고 쓰여 있지만 ‘한일병합’이란 단어에서 강제 병합의 기미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고(병합이란 말 자체가 일제의 용어), 혹시나 해서 그 밑에 병기한 중국어 설명을 보았더니 실로 가관이었다. ‘한일 양국이 한일합병 조약에 서명하고 이 궁전들은 모두 조선총독부 소유가 되었다’(韓日兩國簽署韓日合倂條約, 這些宮殿都歸朝鮮總督府所有)는 것이다. 한국이 합법적으로 병합되었다고 강변하는 일본 우익의 망언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이 안내문의 작성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그곳은 경희궁이 아니라 여전히 평성(平成) 25년의 경성중학이었다. 한국이 합법적으로 병합되었다고 강변하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경희궁 안내문의 작성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그곳은 여전히 평성(平成) 25년의 경성중학이었다.
  • [씨줄날줄] 박물관 소매치기의 역설/서동철 논설위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소매치기 등쌀에 휴관을 했다는 소식이 화제다. 루브르 박물관의 정기휴관일은 화요일이지만 목요일인 지난 11일 하루 문을 닫았다. 박물관 경비원들이 소매치기 대책을 호소하며 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들이 몰려다니며 ‘작업’에 방해가 되는 경비원들을 협박하는 일이 잦았던 모양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18세 이하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아, 나이 어린 소매치기들은 전시장까지 드나들며 범행을 저지른다. 이들을 현행범으로 붙잡아 경찰에 넘겨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며칠 만에 풀려나니 경비원들은 ‘후환’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파리, 로마, 런던,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처럼 관광객이 많은 유럽 도시는 오래전부터 소매치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 주머니에 있는 지갑도 내 것이 아니다. 관람객 기준으로 세계 10대 박물관 가운데 6개는 파리와 런던에 몰려 있다.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영국 박물관과 테이트 모던 갤러리, 런던 국립 미술관,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오르세 미술관이다. 소매치기는 도버해협을 건너야 하는 런던보다 상대적으로 유럽의 가난한 나라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파리에 더 많은 듯 하다. 루브르의 지난해 관람객은 970만명. 300만~600만명에 그친 다른 박물관을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차지했으니 소매치기도 그만큼 많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은 2011년 기준으로 340만명이 찾아 10대 박물관 가운데 9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럼에도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2005년 용산에 새로 문을 연 직후에는 간혹 소매치기 신고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소매치기 청정지대’에 가깝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용산가족공원, 남쪽으로는 큰길과 아파트, 서쪽으로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둘러싸인 중앙박물관은 섬이나 다름없다. 관람객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소매치기가 달아나기도 쉽지 않다. 통계에 나타난 관람객은 많지만, 지갑이 얇은 학생층이 다수이니 소매치기가 ‘모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지난해 관람객은 261만명이었다. 경복궁 내부에 있는 민속박물관은 벌써부터 이전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상지의 하나가 중앙박물관 동쪽의 가족공원으로, 중앙박물관 보다 훨씬 고립된 지역이다. 국가 대표 박물관이라면 벼르고 별러서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잠깐의 휴식을 위해서라도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곳에 지어져 관람객이 밀려들고 소매치기가 활개치는 바람에 휴관을 고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루브르처럼….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일본지진, 부상 20여명…땅갈라짐에 액상화현상도

    일본지진, 부상 20여명…땅갈라짐에 액상화현상도

    13일 오전 일본에서 일어난 규모 6.0의 지진으로 지금까지 효고 현 등에서 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날 오전 5시 33분께 일본 서부 효고 현 아와지 섬 부근 깊이 10km 지점(진원)에서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했으나 해일 피해는 없었다고 일본 기상청은 발표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간사이지방에서 진도 6 이상의 지진은 지난 1995년 발생한 고베 대지진 이후 처음이다. 고베 대지진은 효고 현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 발생한 지진으로 당시 피해 상황은 사망 및 행방불명자 6400여 명, 부상자 2만 6804명, 이재민은 20만 명에 달했다. 일본 경찰청은 이번 지진으로 오전 10시 25분 현재 부상자는 1~95세 남녀 20명으로, 그 중 7명이 중상이라고 밝혔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효고현 11명, 오사카 5명, 도쿠시마현 2명, 후쿠이, 오카야마의 양현에서 각 1명이다. 하지만 효고현의 집계는 현내 부상자가 14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혀 전체 부상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진원 부근인 아와지 섬에서는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약 40m의 땅 갈라짐 현상이 발생했으며 수도관이 파열되기도 했다. 주택 붕괴 등의 대규모 피해는 없었지만 연안 부근에서는 액상화 현상으로 보이는 피해도 발생했다. 여기서 액상화 현상은 지진 진동으로 지반이 다량의 수분을 머금어 액체와 같은 상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일본 기상청은 “앞으로 일주일은 최대 진도 5 정도의 여진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진=자료사진 인터넷뉴스팀
  • [주말 인사이드] 실패한 기업인들이 찾는다는 그 섬… 4주간 무슨 일이

    [주말 인사이드] 실패한 기업인들이 찾는다는 그 섬… 4주간 무슨 일이

    해마다 100만여명이 창업을 하지만 80여만명이 폐업을 한다. 금융위원회와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창업 기업의 생존율은 3년 후 55%, 5년 후 39%, 10년 후 24%에 불과하다. 창업자 10명 중 5명이 3년 내 문을 닫는 셈이다. 창업 기업의 폐업 횟수는 1.3회, 재창업 횟수는 0.8회로 폐업 후 50%는 재기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번 쓰러지면 재기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실패한 기업인은 죄인이 아니지만 일순간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재기를 ‘힐링’으로 접근한 색다른 시도가 남해의 외딴섬, 경남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죽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조차 없이 벼랑 끝에 몰린 19명이 지난 2월 24일 무거운 마음으로 섬을 찾았다. 4주간의 시간,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달 21일 통영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만에 도착한 죽도는 인적이 드문 조용한 섬이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폐교를 리모델링한 죽도연수원에서는 ‘실패 중소기업인 힐링캠프’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1년 11월 첫 캠프를 연 뒤 5회째다. 캠프는 3월과 6월, 11월 등 매년 3차례 진행된다. 연수원으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세워진 표지판이 눈에 띈다. “묵은 마음 비워서 맑고 둥근 마음만 가득 채워 가는 곳…허밀청원.” 섬에 내리기 전까지 ‘외인구단’이나 ‘실미도’를 연상했기에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글귀다. 가쁜 숨을 돌리려 들어간 연수원 식당에서 형광색 점퍼를 입은 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캠프 참가자들이다. 퇴소를 앞두고 그동안 생활했던 텐트와 침낭 등을 정리해 햇볕에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표정이 밝은 그들의 모습에서는 얼마 전까지 ‘인생 실패자’로 자책하며 방황했다는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상하(43) 원장은 “이곳에서 ‘재기’는 재창업이 아니라 잃었던 용기를 되찾고 깨진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라며 “실패한 사람에게는 실패 마인드가 숨어 있는데 치유 없이 정상적인 패자 부활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4주간 무료로 진행되는 힐링캠프는 방목 형태로 진행된다. 주입식 강의나 창업 스킬 등 성공 기법을 전수하는 과정은 없다. 100명이 넘는 재능 기부자 중 컨설턴트는 배제하고 종교인과 심리치료사 등이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철저하게 ‘의도된 불편함’을 극복하며 스스로 마음을 관리하는 시간의 반복이다. 사업 실패로 같은 아픔을 경험했던 설립자와 한 원장의 신념, 그리고 재기 과정에서 간절히 필요했던 것을 녹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캠프는 술과 담배, 휴대전화, 지갑을 수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4주간을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는 취지다. 오전 5시 50분 기상과 함께 편치 않은 산길을 헤치고 명상 바위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취침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식사는 하루 2끼만 제공하고 입소 다음 날부터 퇴소 전날까지 26일간 텐트에서 야영한다. 초기 2주간은 강의장을 제외하고는 대화도 차단된다. 캠프에서는 자급자족을 하기에 농촌 활동도 필수 일과다. 한 원장은 “실패한 기업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환경을 탓하고 남을 원망한다”면서 “신세 한탄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 강당에는 “나는 지금 여기에 왜 와 있는가”, “고난과 좌절은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자기 암시 글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캠프 참가자는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쉽게 말문도 열지 않는다. 실패의 기간이 길수록 이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얼굴은 죽을상이고 의욕은 찾아볼 수 없다. 참가자들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토로하지만 캠프에서는 철저히 무시한다. “나는 잘했는데…”라고 할 때마다 “너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했는가”라는 질문이 되돌아간다. 휴먼 영화를 시청하고 100배 절을 올리고 사이코드라마에 직접 출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 야영은 캠프의 ‘백미’다. 산속에 설치된 텐트 간 거리는 30m가 넘는다. 아무런 간섭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회한, 후회의 뜨거운 눈물을 수없이 흘린다고 한다. 18년간 전자계통사업을 하다 2008년 폐업한 김경곤(59)씨는 “여기 온다고 뭐가 해결될까 하는 고민과 창업자금을 받는 데 유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반신반의했다”면서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면서 몸과 마음이 맑아졌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식품제조유통업을 했던 정영준(51)씨는 위기 탈출을 위해 입소했다. 정씨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 왔지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매우 유용한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실패한 기업인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김경곤씨는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이 싫었고 내 이름이 적힌 우편물을 받는 게 두려웠다”면서 “특히 나 때문에 가족까지 피해를 당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당시 자살하는 사람에게 공감이 갔다”면서 “남을 원망하는 마음만 들고, 내가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면서 술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회고했다. 사업이 망한 이들은 대부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작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신용을 회복해야 하는데 상당수는 빚의 늪에서 헤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후반 남성은 “신용 회복을 하더라도 카드 발급이나 대출이 안 되는 등 재기를 위해 기댈 언덕이 없다”면서 “사업이 잘되면 금융권이 제일 먼저 고개를 숙이며 찾아오지만 반대 상황에서 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 것도 금융권”이라고 성토했다. 캠프를 거쳐 간 68명 중 50%가 재창업(12명)을 하거나 취업에 성공했다. 5년간의 아픔을 딛고 대구에서 재기한 향천의 김영만(47) 대표. 그는 2차례 누룽지 제조 업체를 운영하다 무일푼으로 쫓겨났다. 2008년 이후 신용불량자로 4년간 ‘바닥 인생’을 경험했다. 지난해 3월 2회 캠프에 참가한 후 중소기업청의 재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재기했다. 김 대표는 “항상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린다”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4주간의 일정을 마친 5회 캠프 참가자들이 1명의 낙오자도 없이 섬을 나섰다. 그토록 힘겨워했던 현실 속으로 다시 들어선 것이다. 오늘의 실패를 자산이자 축복으로 되돌리는 항해가 시작됐다. 글 사진 죽도(통영)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그래픽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 [생각나눔] 마라도 관광용 골프카트 운행여부 논란

    [생각나눔] 마라도 관광용 골프카트 운행여부 논란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관광용 골프 카트 영업 재개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주민들이 최근 “마라도에는 어선 접안시설이 없어 어업 소득도 어려운 만큼 주민 생계 수단으로 최소한의 골프 카트 운영을 허용해 달라”고 제주 서귀포시에 청원했기 때문이다. 마라도에서 골프 카트가 처음 운행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마라도는 2005년 2월 청정환경특구로 지정돼 자동차 운행이 제한됐다. 당시 주민들도 천연기념물(423호)인 마라도가 자동차 없는 자연으로 되돌아가면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스스로 20여대의 자동차를 모두 내보냈다. 이후 마라도는 국토 최남단이란 상징성에다 매연 없는 ‘청정 섬’이란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제주 섬의 최고 인기 관광지로 변모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한 주민이 골프 카트 3대를 들여와 영업을 시작했다. 이에 주민들이 너도나도 골프 카트를 들여오기 시작해 2011년에는 80여대로 늘어났다. 결국 지나친 호객행위로 인한 무질서와 혼잡으로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안전사고로 모두 20여명의 관광객이 다치기도 했다. 시는 관광객들의 불만이 잇따르자 2011년 11월 카트 운행을 금지시켰다. 마라리마을회 지한봉 회장은 “30대 정도로 제한하면 주민들이 공동으로 질서 있게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시는 이와 관련, 지난 10일 비공개 대책회의를 가졌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관계자는 “시간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재운행 허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문모(60·대구 동구)씨는 “마라도는 도보로 한 시간이면 넉넉하게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며 “호젓한 분위기를 망치는 골프 카트를 다시 들여온다면 결국 관광객들이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주 K여행사 관계자는 “골프 카트는 노약자와 장애인 등에게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며 “카트 대수를 제한하고 운행 질서를 강화하면 마라도의 또 다른 이색 관광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서울광장] 창조경제가 궁금하면 나오시마(直島)를 보라/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창조경제가 궁금하면 나오시마(直島)를 보라/함혜리 논설위원

    섬으로의 여행은 제약이 많다. 어떤 복병을 만날지 모른다. 일본 세토 내해에 있는 나오시마(直島) 여행도 그랬다. 주말을 이용한 짧은 여행을 계획하고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오카야마에 내렸다. 비바람을 뚫고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부두에 도착했더니 강풍 때문에 미술관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둘째날 일정을 앞당겨 소화하고 다음 날 아침 나오시마행 페리에 몸을 실었다. 뱃길로 20여분 지나자 항구가 보이고 나오시마의 상징인 붉은 호박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이다. ‘예술의 섬’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나오시마는 해변의 길이가 16㎞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인구는 고작 3300명 수준. 외진 곳이라 가는 길도 불편하다. 이런 곳에 연간 5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온다. 나오시마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세 개의 미술관이 있다. 세계 최초로 미술관과 호텔을 결합시켜 1992년 문을 연 베네세하우스뮤지엄과 세계에서 유일하게 땅속에 모습을 감춘 미술관인 지추(地中) 미술관(2004년 개관), 그리고 2010년 완공된 ‘사유의 공간’ 이우환 미술관이 그것이다. 구조물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에 가까운 건축물들은 결코 튀지 않는다. 나오시마의 자연 환경에 겸허하게 안겨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예술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미술관이 밀집한 베네세아트사이트에는 건축물 내부와 외부는 물론 해안, 연못, 숲 속에도 작품들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마을버스로 15분 정도 떨어진 혼무라지구에서는 사람들이 살다 떠난 폐가와 염전창고 등을 유명 작가의 설치작품 전시장으로 바꾼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를 체험할 수 있다. ‘현대 미술의 천국’, ‘예술의 성지’라더니 명불허전이었다. 나오시마는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산업폐기물과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 곳을 세계적 명소로 탈바꿈시킨 것은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그룹 회장의 창의적 발상이다. 일본 20대 부호의 한 명으로 예술품 수집가인 후쿠다케 회장은 병든 나오시마를 현대 미술로 치유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10억엔을 들여 섬의 절반을 사들였다. 미래 세상은 경제 주도형이 아닌 문화 주도형으로 바뀔 것이라는 후쿠다케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나오시마아트프로젝트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었지만 몇백 곱절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실버산업이 주력인 베네세그룹은 예술과 문화,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기업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세계적인 경기침체기에도 연 7%대의 성장을 기록했다. 나오시마의 주민들도 예술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은 섬에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지역경제는 자연히 되살아났다. 나오시마는 가가와 현의 35개 지자체 중 소득 1위의 마을이 됐고,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인구도 늘었다. 후쿠다케 회장은 나오시마 인근 섬에도 미술관을 조성했고, 7개의 섬에 세계 각국 작가들이 참여하는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개최되기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목표로 내건 창조경제의 개념과 실현 방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창조경제’의 저자 존 호킨스는 “창조경제란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경제적 자본과 상품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서 펴낸 2008년 창조경제보고서는 ‘창조경제는 기술, 지식재산, 관광산업이 상호작용하는 경제적·문화적·사회적 측면을 포함한다’고 했다. 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콘텐츠로 지역의 정체성을 통째로 바꾸고, 경제를 살리며, 섬 사람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 넣은 나오시마야말로 창조경제의 생생한 현장이 아닐까. 창조경제가 정보통신기술에서 나온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창조경제는 어느 분야에서든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발상이다. 경제는 자연히 따라오게 마련이다. lotus@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두고 십이령을 넘나든 이력과 간담을 가진 부상들도 벼랑길에서 실족하여 열 길 계곡 아래로 나동그라져 졸지에 열명길에 들거나, 평생 고질을 얻어 신세를 망친 사례도 허다하였다. 길이 얼마나 험했으면 샛재의 성황사를 비롯해서 고개치마다 성황단을 두고 내왕길의 안녕을 빌기까지 했을까. 울진 포구의 염부들과 내성의 보행객주들이나 포주인들이 정한조 행수 일행을 “소금 장수 행수 상단”으로 부르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의 일이었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반수 권재만과 도감 정한조를 제외한 행중의 수하 원상들 20여 명과 담꾼 40여 명은 모두 삼십대 나이를 크게 넘지 않았다. 심지어 황구의 소년도 둘이나 있었다. 이십대이거나 십대이거나 모두 혈기 방장하고 강단 있는 장한들이어서 흥부 장시나 현동 저자와 내성 장시의 협잡꾼들이 섣불리 덧들이지 못했다. 원상들이 돈독한 결속력을 가지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르는 십이령은 오래전 흥부와 내성의 부상들이 개척한 것이고, 그 쇳덩어리나 다름없는 소금섬을 지고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고개를 넘을 수 있는 근력을 가진 부상들도 이들뿐이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울진 포구 염전에서 거둬들인 소금은 전매품처럼 이들이 독차지해서 내륙의 장시와 거래하게 되었다. 이들이 다른 소소한 병문친구나 횡행하는 무뢰배들과 다른 점은 보기 드물게 부상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금 상단 행중은 십이령에서 실족한 길손을 만나면 지체 없이 구완하고, 보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행려병자를 구급하였다. 샛재를 떠나 숫막이 여럿인 말래의 도방 거리*에서 한숨을 돌린 정한조 일행은 곧장 염호들이 즐비한 수산천 어름의 염막을 찾았다. 그곳에는 육십 줄에 접어든 소금 도가 포주인 송석호가 삽살개 한 마리를 기르며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소싯적부터 염전에 종사하여 반평생을 오직 토염 생산에만 종사한 사람이었다. 염막을 경영하며 적지 않게 화식하여 거관(巨款)을 거두어 부호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오래전 상배를 당했는데도 재취를 하지 않고 홀아비로 늙어 가고 있었다. 수산천이나 흥부 염전에 종사하는 어느 누구도 그가 돈꿰미를 헤아리는 꼴을 엿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색하였다. 적잖이 식산한 것은 틀림없겠는데, 언제 보아도 입성은 하방 천인처럼 꾀죄죄하였고, 한겨울에도 풍창파벽에 군불조차 지피지 않은 냉골에 부들만 깔고 기숙하였다. 방에는 거처하는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털 빠진 개가죽과 구멍 뚫린 부들자리, 휘장도 없고, 이불도 없고, 모포도 없고, 평풍도 없고, 등잔조차 보이지 않았다. 깨진 화로에 불씨도 없었다. 그가 사시사철을 막론하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된추위가 맴도는 냉골에서 떠나지 않고 기거하는 것은 숨겨 둔 엽전 꿰미에 혹여 녹이 슬까 염려하기 때문이란 소문들이 염전 일대에 파다하였다. 그러나 다른 소문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수하에 거느린 염부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놋쇠 대야를 갖다 놓고 숨겨 두었던 엽전 꿰미를 꺼내 엽전 하나하나를 대야에 떨어뜨려서 그 쨍그랑쨍그랑하는 소리를 혼자서 즐긴다는 것이다. *도방 거리:임소나 접소처럼 보부상을 통제하던 기관이 아니다. 각도에 왕래하던 보부상들의 숙박 처소였다. 부상은 부상 도방, 보상은 보상 도방이 있었는데 대개 장시나 포구 주변에 있었다.
  • 손잡은 日·타이완, 센카쿠 공동 어업협정 합의

    일본과 타이완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 해역에서의 어업협정에 합의했다. 양국은 10일 타이베이에서 제17차 어업회담을 열고 센카쿠 근해에서 타이완의 어업권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일·타이완 어업협정에 서명했다. 양국은 공식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에 협정은 타이완 동아시아관계협회와 일본 교류협회가 양측 정부를 대신해 조인했다. 협정에 따르면 북위 27도 이남, 센카쿠 주변 12~24해리 해역을 공동 관리수역으로 정하고 이곳에선 양국 어선의 자유로운 조업이 허용된다. 다만 일본이 영해로 주장하는 센카쿠 12해리 내에 대한 타이완 어선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양측은 또 해양자원 보호 등을 위해 특별 협력수역을 설정하고, 조업 관련 구체적인 조치는 일본·타이완 어업위원회에서 별도 협의하기로 했다. 센카쿠 영토주권 등 양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이번 협상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 입장에서 이번 합의는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된다고 인식하는 센카쿠 해역에서의 어업권을 타이완에 일정 부분 ‘양보’하면서 핵심 영유권 갈등 상대인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타이완은 어업 성수기를 앞두고 자국이 전통 어장이라고 주장하는 센카쿠 근해에서의 조업권을 따내는 실리를 확보했다. 타이완 외교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자국 어민의 조업 범위가 4530㎢가량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엄중하게 우려를 표시한다”며 “일본은 타이완 문제와 관련한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신중하고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앞서 일본과 타이완은 센카쿠 해역에서 각자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까닭에 어업권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일본이 지난해 8월 11일 센카쿠를 국유화하자 타이완은 영토 주권을 침해당했다며 같은 달 25일 경비선과 어선을 센카쿠 해역에 보내 해상 시위를 벌였다. 지난 1월에는 타이완 어선 취안자푸(全家福)호가 센카쿠로 항해하는 과정에서 일본 순시선과 타이완 해안순방서 경비선 간 물대포 충돌도 벌어졌다. 타이완을 동북아시아의 유일한 ‘친일 국가’로 분류해 온 일본으로서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타이완까지 가세한 ‘일본 포위망’ 형성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에 일본은 센카쿠 문제에서 중국과 타이완의 공조를 막기 위해 2009년 2월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던 타이완과의 센카쿠 어업권 협상을 4년 2개월 만에 서둘러 재개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현대의 특출한 정치인 잃어” 눈물 “대처리즘, 그와 함께 묻히길” 축배

    강력한 경제개혁 정책인 ‘대처리즘’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눈을 감은 뒤에도 상반된 반응을 얻고 있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영국병’을 치유한 ‘철의 여인’이 서거했다는 소식에 영국은 물론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지만 노동조합 규제, 공기업 민영화 등 대처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거리로 나와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영했다. 런던경찰청은 9일(현지시간) 런던 이스턴, 브릭스턴 등에서 대처 전 총리를 규탄하는 폭력 시위가 발생해 진압하던 경찰 6명이 부상당하고 경찰 차량 한 대가 파손됐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1980년대 국영 탄광 20곳을 폐쇄하고 2만여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대처 정부에 격렬히 맞섰던 영국탄광노조(NUM) 크리스 키친 사무총장은 “우리는 오랫동안 대처의 사망 소식을 기다려 왔기에 그의 죽음에 유감을 표할 수 없다”며 “대처가 땅에 묻힐 때 그녀의 정책도 함께 묻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독립을 주장하며 대처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던 북아일랜드 역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남대서양의 작은 섬인 포클랜드를 두고 영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 온 아르헨티나의 언론은 대처 전 총리에 대한 부정적 내용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대처 전 총리가 냉전 시대에 서방을 돕고 엄격한 경제 정책을 펼쳐 노조를 무너뜨렸다면서 그를 ‘현대 영국의 분열적 창조자’라고 평했다. 한편 가디언은 이날 영국인 9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2명 중 1명은 대처 전 총리의 집권이 영국에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부정적인 반응은 34%였다. 그러나 대처 전 총리가 펼친 노동정책과 민영화, 세제 등 개별 정책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려 그의 정치적 유산에 대한 영국인의 평가도 나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불각시에 들이닥친 병자를 맞이하여 월천댁과 딸아이 구월이가 정주간과 봉놋방을 부지런히 오가며 간병을 하고 있었으나, 병자는 좀처럼 기신을 차리지 못했다. 귀조차 먹었는지 큰 소리로 물어도 도무지 기척이 없었다. 걱정이 태산 같기는 궐자를 업어온 두 사람보다 숫막질하는 월천댁이 더 컸다. 평소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여서 병자 수발을 아낙네에게 맡긴 두 사람은 왔던 길을 황급히 되짚어갔다. 그들을 뒤쫓아오는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처럼 되짚어갔던 행수가 동행들을 이끌고 숫막으로 돌아온 것은 중화 때를 훨씬 넘긴 시각이었다. 분주를 떠느라 모두 파김치가 되어 있었고, 나귀들 또한 지쳐서 회초리를 내려도 고개만 내저을 뿐 고집을 부리며 도무지 발굽을 떼려들지 않았다. “어허… 이 무슨 낭패인가. 혼쭐을 내는데도 짐승들이 도무지 발굽을 떼려 하지 않아. 콧방귀도 안 뀌어.” “콧방귀도 안 뀌는 것은 나귀들뿐만 아니네. 우리가 업어온 행려병자도 전혀 차도가 없어. 아무래도 의원이 가까운 말내 도방까지는 업어가야 할 형편인걸.” “명줄이 붙어 있으면서 말문을 열지 못한다면 그 위인 태생부터 귀머거리가 아닌가.” “글쎄, 말문을 딱 닫아걸고 입도 뻥긋하지 않으니 속내를 알 수가 있어야지.” “어쨌든 환난을 만나 혼백이 떠버린 듯하니 지금 당장 병구완은 잠시 월천댁에 맡기고 우리 상단은 염전까지 당도해서 내성의 여각과 약조한 날짜는 지켜줘야 하겠네. 회정길에 다시 숫막에 들러 차도가 있는가 없는가 알아보는 게 좋겠네.” “본색을 알 수 없는 위인을 숫막에 맡겨두는 것도 내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굴신을 못 하는 사람을 푸대접해서 숫막에서 내쫓으란 말인가. 필경 부질없는 죽음을 당할 것이네. 그런 짓은 명색 환난상구(患難相救)한다는 원상들이 저질러선 안 될 일이지 않은가. 우리 행중도 언제 어디서 그런 횡액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다음 파수에는 또다시 소금섬과 미역짐을 지고 십이령을 넘어야 했다. 그것이 내성에 있는 소금 도가 포주인과 약조된 일이었다. 울진의 흥부포구에는 토염전을 일군 80여 호의 염호(鹽戶)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곳은 삼척 부중의 벼슬아치들이나 질청의 아전들 소유였다. 토염은 청정 해역에서 끌어올린 고포 해안의 곽전(藿田)에서 생산되는 돌곽 미역과 같이 울진 포구의 소문난 토산품으로 손꼽혔다. 염전 한 꼭지는 150평이고 두 꼭지를 한 자리로 불렀는데, 그 한 자리를 가꾸는 데는 염부 두 사람이 종사하였다. 흥부포구의 두 염막에서 소금을 굽는 염부들만 하더라도 90여명을 헤아렸다. 토염은 ‘염전에서 마사토와 함께 응축시킨 뒤 우려내어 굽는 방식인데, 그 소금을 한 번 굽는 데는 얼추 달포가 걸렸다. 날씨가 좋으면 한 자리에서 한 번에 소금 70, 80말을 거두는데, 값어치로 따져 그 소금 한 섬이 30냥이라면, 조 한 섬은 20냥에 거래되었던 시절도 있을 정도였다. 소금은 현동이나 내성장까지만 나가도 쌀 반 섬과 바꿀 수 있었고, 콩이나 잡곡일 경우는 맞바꿀 수 있었다. 비가 잦아 토염 생산이 줄어든 흉년에는 쌀 한 섬이 소금 한 섬이었다. 가마솥을 걸어 솔잎과 장작불을 지펴 소금을 굽는 자염(煮鹽)에 비해서 토염이 그토록 천세나는 것은 고등어에 염장을 지르거나 겨울철 김장을 담글 때 넣으면 그 시원한 맛을 자염이 감히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다 가까이 거주하는 민초들도 소금 먹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바다에서 수백 리 떨어진 내륙의 산골 백성들은 소금 배가 나루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는 소문만 들어도 다투어 곡식과 피륙을 가지고 달려가 빼앗듯 흥정하려 들었다. 그래서 울진 흥부포구의 염호들은 소금만 팔아서 축재한 소문난 부호들이었다. 덩달아 소금장수를 배장수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선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이문이 배가 남는다 해서 지어진 별호였다. 자염이라 하더라도 비가 잦아 소금이 줄어든 흉년에는 쌀값에 버금갈 정도였고, 소금 기근으로 구황염이 필요한 봄철과 비가 잦은 칠팔월에는 그나마 저잣거리에서 손쉽게 소금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오늘의 눈] 서해5도민에게 배워라/김학준 메트로부 차장급

    [오늘의 눈] 서해5도민에게 배워라/김학준 메트로부 차장급

    북한의 도발로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나라 최북단 백령도나 연평도를 찾는 보도진들이 접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다. 자신들은 불안해하지도 않고, 불안하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도 막상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는 기자를 믿지 못할 존재처럼 여기는 정서가 형성돼 있다. 부당한 취급이라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 자업자득이다. 기자들이 “분위기가 평상시 같으면 기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 실정을 과장 보도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뻔한 얘기는 의미가 없다”는 데스크의 종용을 의식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서해5도발 기사는 실제 사정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10년이 넘게 되풀이돼 온 일이다. 이런 원죄(?)가 있어서인지 백령·연평도에서 주민들을 인터뷰하기란 쉽지 않다. 운 좋게 한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는 주민을 만나면 다른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도 한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 대신 ‘평소와 다름없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제1, 2연평해전, 대청해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연평도 피격 당시에는 주민들이 많이 놀라기는 했지만 전원이 다시 돌아와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들은 알고 있다. 현재 북한이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섬 주민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생계와 자식 학비를 대는 일이다. 한 주민은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불안·초조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처하는 당국의 태도가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북한이 위협의 강도를 높일 때마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말폭탄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죽하면 ‘치킨게임’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거친 말이 연쇄 반응하면서 오가다 보면 행동으로 옮겨질 수도 있다. 말에는 최면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압박하는 상대에게 일일이 대꾸하는 것은 또 다른 억지의 빌미가 된다. 때로는 무시하는 게 오히려 상대의 처신을 어렵게 한다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체제 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처해 손해를 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북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약자로 비춰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국방력은 약하지 않고 국제정세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돼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계속되는 전쟁 위협에도 주말 나들이객이 줄을 잇고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는 등 국민 대다수가 동요하지 않는 것을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평소 무책임하게 ‘전쟁 불사론’을 외쳐온 보수주의자들의 궤변이다. 6·25전쟁에서 활약한 백선엽 장군은 “실제 전쟁터에서 용감한 병사는 평소 용감한 척 떠들어대던 병사가 아니라 말 없던 병사들이었다”고 말했다. 당국자들에게 권한다. 서해5도민을 위로한답시고 가서 말의 성찬을 늘어놓고 사진이나 찍지 말고 그들의 배짱부터 배워라. kimhj@seoul.co.kr
  • 제주 ‘교통문화 꼴찌 탈출’ 범도민 캠페인

    제주 ‘교통문화 꼴찌 탈출’ 범도민 캠페인

    “불쑥불쑥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주서 운전하기가 겁나요.”, “안전띠를 맨 운전자도 별로 없고 아무 곳에서나 유턴하고 중앙선 침범을 밥 먹듯이 해요.” 이는 제주에 여행 와 렌터카를 직접 몰아본 관광객들의 불만의 목소리다. 한 해 1000여만명이 찾는 관광의 섬 제주의 교통문화지수가 전국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의 ‘2012년도 교통문화지수’ 평가에서 제주는 69.08점으로 전국 평균 75.20점을 밑돌며 2011년에 이어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제주지역 렌터카 교통사고도 2010년 233건(사망 6명·부상 449명), 2011년 237건(사망 9명·부상 418명), 지난해 332건(사망 9명·부상 560명) 등 매년 증가 추세다. 이에 따라 제주도와 제주경찰청은 교통문화 개선을 위해 렌터카 속도 제한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는 등 범도민적인 교통문화 개선 캠페인을 전개 중이다. 도는 우선 안전한 제주 여행을 위해 렌터카와 관광 전세버스의 운행속도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렌터카와 관광버스가 시속 90㎞를 넘으면 운행할 수 없는 속도제한장치를 달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내외버스와 전세버스, 법인·개인택시, 화물차 등 1만여대에는 디지털 운행기록계를 장착하기로 했다. 운행기록계는 속도,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사용 등 운전자의 운행 특성을 기록해 과속 및 급가감속과 같은 난폭운전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장치다. 또 제주경찰은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음주운전 신고 보상제를 도입했다. 음주운전차량 신고자에게 10만~30만원의 보상금을 주는 제도로 그동안 45명이 신고해 1000여만원 상당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대구 서구 섬유산업, 관광 옷 입다

    대구 서구 섬유산업, 관광 옷 입다

    섬유산업에 관광을 입히니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 대구 서구는 지역 대표산업인 섬유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관광산업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호응에 강성호 서구청장은 아예 섬유관광을 대구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대구 성서중학교 동아리인 ‘우리 지역 탐사반’ 30여명은 8일 서구의 섬유산업관광에 나섰다. 이들은 서구 중리동의 한국섬유개발연구원 본관 1층 첨단섬유전시관에서 15종의 첨단 기능성 섬유를 관람하고 시연하며 관광을 시작했다. 신제품개발센터에서는 섬유원료를 녹여서 원사 제조하는 공정을 견학했다. 이어 ㈜진영P&T 등 섬유회사에서 염색, 날염 등의 원단 가공 전 공정과 이불, 방석, 쿠션, 손수건 등 완제품 생산 과정을 둘러봤다. 아웃렛 매장이 몰린 퀸스로드에서 의류는 물론 지역 공예품과 화장품 등을 관람하고 천연염색과 한지공예를 체험했다. 섬유산업관광은 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서구가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3시간 코스로 지금까지 모두 820명이 참가했다. 학생들은 물론 일반 관광객이 621명이나 됐다. 중국 공무원과 대구대 한국어교육센터에 다니는 유학생 등 외국인도 50명에 이른다. 서구는 제대로 홍보도 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성과가 나온 것에 반색, 관광상품화하기로 한 것이다. 서구는 또 이 관광코스가 학생 교육용으로 적합하다고 보고 시와 시교육청에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에 반영하도록 요청했다. 학생들이 “원단 제작과 염색과정 등을 보면서 섬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섬유가 첨단 분야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아서다. 서구는 홈페이지에 섬유산업관광 안내시스템을 마련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지역 섬유산업 현황과 역사, 생산 공정, 주변 명소, 음식 골목 등을 담은 홍보물도 제작해 여행사 등에 배포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잘하는 결혼 이주여성 10여명을 선발해 섬유해설전문가로 육성할 계획이다. 서구는 섬유산업관광과 연계한 상품도 개발키로 했다. 중국 관광객이 선호하는 화장품과 넥타이, 장갑을 선보인다. 대구 무형문화재 2호인 ‘날뫼북춤’, 서구의 정월 대보름 행사인 ‘천왕메기’ 등을 활용한 제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팔공산 동화사와 방짜유기박물관,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등과 연계해 머무는 관광으로 활용한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10명 이상 단체면 코스관광 예약(053-663-2163)이 가능하다. 강성호 서구청장은 “지역 대표산업인 섬유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시작했는데 학생들은 물론 일반 관광객에게 인기가 좋다. 특히 외국인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섬유 제조 과정을 둘러보면서 대구의 대표적인 산업을 직접 확인하는 장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 학교 체험학습과 수학여행단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유치해 대구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마가렛 대처 사망… “투사 잃었다””대처리즘 함께 묻히길” 상반된 반응

    마가렛 대처 사망… “투사 잃었다””대처리즘 함께 묻히길” 상반된 반응

     강력한 경제개혁 정책인 ‘대처리즘’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눈을 감은 뒤에도 상반된 반응을 얻고 있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영국병’을 치유한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의 서거 소식에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조합 규제, 공기업 민영화 등 마가렛 대처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오히려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하는 이들은 거리로 나와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8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1980년대 국영탄광 20곳을 폐쇄하고 2만여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마가렛 대처 정부에 격렬히 맞섰던 영국탄광노조(NUM)의 크리스 키친 사무총장은 “우리는 오랫동안 대처의 사망 소식을 기다려왔기에 그의 죽음에 유감을 표할 수 없다”면서 “대처가 땅에 묻힐 때 그녀의 정책도 함께 묻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독립을 주장하며 대처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던 북아일랜드 역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1981년 수감중이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단식투쟁을 벌여 10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대처 전 총리는 협상을 거부하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 때문에 1984년 보수당 연례회의에서 IRA의 폭탄 테러공격을 받았다. 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의 대표 게리 아담스는 대처를 위선자라고 비난하면서 “은밀한 작전으로 시민을 검열하고 사살한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남대서양의 작은 섬인 포클랜드를 두고 19세기부터 영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아르헨티나 정부는 대처 전 총리의 사망 소식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대처 전 총리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트위터 등에선 그의 과거를 비난하는 글들이 잇따라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 지를 드러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그때와 지금

    그때는 탄수화물이 문제였고, 그래서 충치보다 잇몸질환이 더 심각했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 마을에는 가게가 없었던 탓에 과자 등 먹거리를 사 먹어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못 하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끼니를 배불리 먹어 다른 먹거리에 관심이 없는 때도 아니어서 항상 뱃골은 푸욱! 꺼져 있었고, 그럴 때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자연 속에서 주전부리거리를 찾곤 했지요. 보릿고개 넘을 때면 밭두렁에 말똥구리처럼 들러붙어 ‘삐비’를 뽑아 먹었고, 찔레나 유채 순도 꺾어 먹었습니다. 진달래꽃과 장다리 순도 숱하게 따 먹었지요. 한여름 원두 열무는 매워서 손을 덜 탔지만 가을 무청은 뎅겅 분질러 먹을 만했고, 고구마는 없으면 못 사는 구황의 알뿌리였습니다. 그런 걸로 주린 배를 채웠으니 요새처럼 설탕에 절어 이가 상할 일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탄수화물이 문제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먹어댄 탄수화물이 침 속의 효소와 섞여 만들어진 덱스트린이나 맥아당 때문에 치아가 상하는 것까지는 막을 도리가 없었던 거지요. 하기야 그때는 탄수화물류를 그렇게 먹었으면서도 양질의 섬유소를 같이 섭취했다는 게 요즘과는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듬뿍듬뿍 먹어댄 식이섬유가 탄수화물 부산물을 상당 부분 씻어내 주었으니까요. 세상이 변해 이제는 탄수화물을 한사코 피하는 세상입니다. 비만 때문입니다. 1년에 쌀 한섬 못 먹는 가정이 많습니다. 양치질도 그렇습니다. 좋은 칫솔, 치약 덕분에 구강 위생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개선됐지만 오히려 치과질환은 늘어납니다. 문제는 칫솔질이 치아 건강에 필요한 전부라고 믿는 데 있습니다. 사실 칫솔질은 구강질환의 기본일 뿐 충분한 조건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루에 몇번씩 치간칫솔이나 치실로 이를 닦는 일은 어디 쉽습니까. 달고 진득한 패스트푸드와 음료를 달고 살면서도 이런 음식이 치아에는 어떨까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치과라도 자주 찾으면 좋겠지만 그것마저 귀찮으니 한창 때부터 이가 무너지는 것이지요. 어디 치아에만 닿는 말이겠습니까. ‘세상만사가 불여튼튼’이라는 경고가. jeshim@seoul.co.kr
  • 환갑 맞은 SK그룹 ‘조용한 기념식’

    환갑 맞은 SK그룹 ‘조용한 기념식’

    수출 600억 달러, 고용 8만명의 재계 3위 기업. 8일 환갑을 맞는 SK그룹의 현재 위상이다. 섬유, 석유화학, 이동통신 등을 주력 사업으로 키워 국내 산업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 왔기에 성대한 ‘환갑잔치’가 당연시되지만 축하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구속 중인 최태원 SK㈜ 회장과 최재원 SK㈜ 부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이날 오전 경기 용인 SK아카데미에서 조용한 기념식을 연다. 비공개 행사로, 오후 공판에 출석하는 최 부회장을 비롯해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최신원 SKC 회장 등 고위 관계자와 원로들이 참석한다. SK의 역사는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이 1953년 4월 8일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원시 권선구 평동 4번지 일대를 매입해 선경직물을 세우고 16대의 직기를 돌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최종현 회장이 1973년 선경석유를 설립한 뒤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해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4271억원에 인수해 그룹 사업의 3대축을 세웠다. 1976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SK는 국내 성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최태원 회장 주도로 글로벌 공략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2004년 수출 100억 달러, 2005년 200억 달러를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수출 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SK 관계자는 “한 갑자(甲子)를 돌았다는 것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는 것”이라며 “따로 또 같이 3.0의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SK그룹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김창근 의장은 창립 60주년에 맞춰 발간된 사사(社史)를 통해 “지난 60년은 국민의 의(衣)생활을 바꾸고 산업화시대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낸 에너지를 만들어 왔다”면서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기술(IT) 강국을 선도해 왔다”고 회고했다. 이어 “앞으로의 명제는 행복과 국제화에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도 60년사 기념사에서 “SK의 도전·열정의 원천과 목적은 행복에 있다”며 “구성원 모두가 언제나 사회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기업시민으로서 해 나갈 역할을 찾기 위해 힘쓰자”고 당부했다. 한편 최 회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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