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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북러회담 장소, 극동연방대될 듯…北 식량 등 지원요청”

    日 “북러회담 장소, 극동연방대될 듯…北 식량 등 지원요청”

    북한과 러시아 간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가 유력하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유엔 제재 완화 협력과 식량과 의료품 등 인도적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18일 러시아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회담 장소로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에 있는 극동연방대가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르면 오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극동연방대에서 일부 건물이 폐쇄되는 등 회담을 준비하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극동연방대는 지난해 9월 푸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이 참가한 가운데 제4차 동방경제포럼이 열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도교신문은 “블라디보스토크와 평양 간은 약 700㎞로 비행기로 1시간 반, 열차로 하루 남짓 걸려 북한이 이동조건을 우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문은 “첫 공식 방문 장소로 모스크바도 검토됐지만 평양에서 거리가 약 6400㎞로, 항공편의 경우 옛 소련제인 일류신 62를 개조한 김 위원장의 전용기 성능이 불안시됐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김 위원장이 회담에서 유엔의 제재 완화를 위한 협력, 식량과 의료품 등 인도적 지원, 북한 노동자 수용 연장 등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도쿄신문도 “이번 회담이 실현되면 비핵화의 대가가 될 단계적 제재 완화를 위해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신문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통합을 보여주는데 러시아 입장에서도 블라디보스토크가 적절한 장소가 아니겠냐”는 러시아 연구소 관계자의 예측을 덧붙였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황우석 연구팀, 4만 년 전 망아지 사체서 ‘혈액’ 채취 성공

    [핵잼 사이언스] 황우석 연구팀, 4만 년 전 망아지 사체서 ‘혈액’ 채취 성공

    4만년 넘게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 묻혀 있었던 망아지 사체에서 액체상태의 혈액이 채취됐다. 수암생명공학연구원 황우석 박사가 이끄는 한국과 러시아 공동연구팀은 16일(현지시간) 선사시대 망아지 사체에서 혈액 샘플을 채취했으며 이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피라고 발표했다.황우석 박사팀은 지난해 8월 러시아 극동부 베르호얀스크에 있는 바타가이카 분화구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의 망아지 사체를 발굴했다. 시베리아 ‘지옥의 입’이라고도 불리는 바타가이카 분화구는 1960년대 주변 숲 개간 중 토지가 가라앉으면서 형성되었으며 온난화로 눈이 녹고 홍수가 발생하면서 그 크기는 매년 더 커지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고대 매머드와 사슴의 사체 등을 발견하고 있다.황 박사팀이 발굴한 망아지 사체는 지구상에서 멸종된 말인 렌스카야 종과 유사하며 꼬리와 갈기, 말굽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생후 2주 정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는 100cm가 채 되지 않는다. 러시아의 그리고리예프 박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 말의 사체는 털이 없었기에 이번 발견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또 망아지의 위장에서 죽기 직전 삼킨 것으로 보이는 진흙과 실타래들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지난해 9월 이 망아지 사체에서 근육조직 샘플도 수거했는데, 당시 황우석 박사가 러시아를 방문해 DNA 추출 과정을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액체 상태의 혈액은 지난 2월 28일 채취되었으나 비밀에 부쳐지다 16일 공식 발표로 알려지게 됐다. 시베리아타임즈는 망아지의 액체 혈액 샘플은 심장 혈관에서 채취되었으며,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의 좋은 매장 조건 덕분에 4만년 넘게 액체 상태로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멸종된 렌스카야 종의 복원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연구팀은 망아지의 혈액과 근육조직에서 얻은 DNA를 대리모의 유전자 정보가 제거된 미수정란에 넣어 복제를 시도할 계획이다. 대리모로는 렌스카야 종과 비슷한 암컷 말이 사용된다. 매머드 복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황우석 박사 연구팀은 망아지 복제에 성공하면 이 기법을 활용해 코끼리를 대리모로 한 털복숭이 매머드 복제를 시도한다. 매머드는 1만 500년 전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알래스카 연안의 작은 섬에서 명맥을 유지하다 5600년 전 완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년 전 마리아코프스키 섬에서 2만 8000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 사체가 발굴됐지만 채취된 DNA 샘플이 충분하지 않아 복제에는 실패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글로벌 In&Out] 나선 정벌과 한러 관계의 기원/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나선 정벌과 한러 관계의 기원/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국제 정세의 긴장이 아직 완화되지 않았음에도 한국과 러시아는 관계 개선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소식만 보면 러시아 정교회 한국 선교 재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서울에서 진행한 9개 다리 행동계획 서명식, 광양시와 아스트라한시 간의 우호도시 협약 체결 등이 대표적인 실례이다. 지난 4일 러시아 정교회가 정교 역사상 최초로 대한교구 관할 주교로 러시아 한인인 김 테오파니스를 임명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현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모르면 현재를 바꾸는 것이 힘들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는 한국인들과 러시아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만났고 그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인과 한국인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시기에 대한 의견은 많으나 오늘날 러시아 한국학계에서는 이것이 13세기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주교 프란치스코회 수사 지오반니 카르피니가 13세기에 편찬한 ‘몽골인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묘사하였다. “우리는 몽골 황제의 궁정에서, 귀족 출신으로 러시아의 대공인 야로슬라프, 그루지야 왕과 왕비, 그리고 많은 위대한 술탄들, 또한 솔랑기(고려인)의 수장을 보았는데, 이들은 모두 그들(몽골인들)로부터 격에 맞지 않는 대접을 받았다.” 17세기 후반, 러시아의 특수 병농 일치 신분인 카자크(cossack)들이 동유럽에서 시베리아를 비롯한 동남쪽으로 진출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였고 “고려의 섬(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항해가 가능하다”는 보고까지 보냈다. 이 카자크들은 아무르강의 흐름을 따라 남하하면서 작은 마을과 요새(오스트로그)를 세워 나갔다. 이러한 곳에서 러시아와 조선의 상인들이 물품 교환을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네르친스크라는 요새에서 조선인 상인들이 러시아 상인들과 만나 생사(生絲), 종이 등을 모피로 교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의 진출이 러시아와 청나라 간 국경 분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무장 충돌로 이어졌다. 카자크들과 싸우기 위해서 청나라는 조선으로부터 지원을 요구하였고 효종5년(1654년) 2월 2일 청차(淸差) 한거원(韓巨源)이 귀경해서 효종에게 자문(咨文)을 바쳤다. 그 자문에는 “조선에서 조창(鳥槍※조총)을 잘 쏘는 사람 100명을 선발하여, 회령부(會寧府)를 경유하여 앙방장(?邦章)의 통솔을 받아 가서 나선(羅禪)을 정벌하되, 3월 초 10일에 영고탑(寧古塔)에 도착하시오”라고 하였다. 효종은 “나선은 어떤 나라요”라고까지 물어 나선이라는 낯선 나라에 대해 관심을 보였으나 청나라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였다. 같은 해 함경북도 병마우후인 변급(邊?) 휘하의 포수 100명을 포함한 150여명 규모의 지원군을 파견하였다. 조선 지원군은 청나라의 부대들과 함께 카자크 부대들을 공격했으며 승리를 거둔 후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카자크들은 만주에서 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곧 돌아왔다. 이때 청나라가 다시 카자크를 정벌하기 위해 원병을 요청하였으며 조선은 함경북도 병마우후인 신유(申瀏)를 지휘관으로 하는 260여명의 부대를 파견하였다. 약 2500명 규모의 조청연합군은 스테파노프를 대장으로 하는 500명의 카자크 부대를 공격했다. 열세에서 카자크 부대들은 방어전을 폈으나 보급선이 끊겨 식량과 화약이 떨어져 큰 피해를 입으며 패배했고 스테파노프는 전사하였다. 카자크들은 아무르강에서 진지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1689년 러시아와 청나라는 국경협상을 시작하였고 네르친스크조약을 맺었다. 러시아인과 한국인이 처음 만난 시대적 배경이다.
  • “유럽의 정체성이 불탔다” 세계 곳곳서 탄식과 애도

    “유럽의 정체성이 불탔다” 세계 곳곳서 탄식과 애도

    “안 돼. 오, 신이시여…”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인류의 유산,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이 끝내 화염에 무너졌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성당을 바라보던 파리시민과 관광객들의 가슴은 큰 구멍이 났다. 대성당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안타까움의 눈물이 흘렀다. 외신들은 16일 일제히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자사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하며 프랑스 현지 상황을 상세히 전달했다.미국 보도채널 CNN은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마크롱(프랑스 대통령), 우리는 재건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을 걸어놓았다. 실시간 속보에는 ‘연간 1300만명 방문하는 파리의 850년 된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에 그을렸다’란 제목의 글이 내걸렸다. CNN은 “노트르담의 첨탑이 불타는 지붕 위로 무너지자 파리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면서 “그들이 사랑하는 성당을 황폐화시킨 불길은 도시의 가슴에 단검을 꽂은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CNN은 또 노트르담 화재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노트르담은 안 된다, 노트르담은 안 된다”며 안타까워했던 현지 분위기도 전달했다. CNN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전 세계 천주교 신자들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등을 관련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UCLA의 도미니크 토마스 프랑스 담당자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갈등과 혁명의 역사를 담고 있고 프랑스의 정체성일뿐 아니라 유럽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며 조속한 재건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성당은 재건될 것”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자사 홈페이지에 노트르담을 주요 뉴스로 대서특필했다. 또 “파리의 영속적인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가 어디서부터 시작돼 번져 나갔는지 등을 그래픽으로 제시하는 한편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파리시민과 관광객들의 모습을 싣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파리의 아름다움과 역사의 상징인 노트르담 성당이 섬세한 첨탑을 무너지게 하는 광범위한 화재로 인해 흉터가 났고 연기로 파리 하늘을 멍들게 했다”며 “센강을 따라 성당 근처 광장으로 몰려든 수천명의 사람들은 공포로 숨을 허덕이며 입을 가리고 눈물을 닦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장 클로드 갈렛 프랑스 소방장의 말을 인용해 2개의 웅장한 탑은 화를 면했지만 지붕의 3분의 2가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화재 원인이 즉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성당 관계자의 증언을 인용해 성당 목조 보의 내부망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성당에 대해 “12~13세기에 걸쳐 지어진 중세 고딕건축의 보석”이라면서 “중심이 확고하면서 우아하며 파리뿐 아닌 전 세계의 랜드마크”라고 보도했다. 이어 하루에 약 3만명, 일년에 1300만명이 방문하는 노트르담 성당은 수세기 동안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결혼한 뒤 묻혔고 나폴레옹이 1804년 황제로 즉위했던 곳이라고 전했다.영국의 BBC 방송도 노트르담 성당 화재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BBC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 랜드마크가 일부 파괴된 이후 중세 성당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화재가 9시간 만에 진압됐으며 화재 원인으로 대규모 보수 공사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15일(이하 현지시간) 화마가 노트르담 대성당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속절없이 바라보던 파리지앵과 관광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눈물과 탄식을 쏟아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성당 주변의 다리에 진을 친 인파는 이날 오후 7시 50분쯤 대성당의 첨탑의 끝부분이 불길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자 ‘오, 신이시여’라는 비명을 터뜨렸다. 곧이어 첨탑의 나머지 부분이 붕괴하자 현장은 한숨 속에 절망에 휩싸였다.파리에 거주하는 티보 비네트뤼는 CNN에 “첨탑이 무너진 순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면서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냥 너무 놀라 말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아주 오랫동안 거기 있었는데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졌다”면서 “노트르담 없는 파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충격을 표시했다. 시민 피에르 기욤 보네트(45)는 뉴욕타임스에 “가족 중 누군가를 잃은 것과 같다”면서 “내겐 노트르담 대성당에 너무 많은 추억이 담겨 있다”며 비통해했다. 프랑스 경찰은 불길이 크게 번지자 시테 섬을 비롯한 센강의 섬 2곳에서 보행자들을 대피시키려 하고 있으나, 비극적인 현장을 지켜보려는 인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며 주변 정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번 비극이 가톨릭 성주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침통함을 더했다. 성주간은 부활절 직전 일주일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리는 기간이다.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아베 마리아’를 합창하며 대성당의 불길이 잦아들기를 기원하는 한 트위터 영상은 700만 회 이상 조회되며 보는 이들에게 울림을 줬다. 어떤 이들은 고개를 떨구고, 어떤 이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위해 기도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게탄 슐랭제(18)는 AP통신에 “매주 노트르담 대성당에 왔다. 대성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워졌다”면서 “대성당은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이라고 슬퍼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스톤헨지 세운 이들은 BC 4000년 아나톨리아에서 지중해 건너온 농민 후손

    스톤헨지 세운 이들은 BC 4000년 아나톨리아에서 지중해 건너온 농민 후손

    영국 윌트셔의 솔즈베리에서 북쪽으로 13㎞ 떨어진 곳에 세워진 스톤헨지는 기원전(BC) 3100년쯤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DNA 조사 결과 이 거석들을 세운 이들은 BC 4000년쯤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로부터 지중해를 건너 영국에 이른 농민들의 후손으로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톰 부스 박사와 마크 토머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과학잡지 ‘자연 생태계와 진화’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영국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유해에서 나온 DNA와 같은 시대 유럽인들의 것을 대조한 결과 처음에는 이베리아 반도로 향하다 나중에 영국으로 방향을 꺾어 북상한 아나톨리아인들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BBC가 15일(현지시간) 전했다. 사실 영국에는 그보다 무려 3000년 전에 떼를 지어 동물을 쫓아 사냥하고 야생 식물을 채집하고 낚시를 하는 소규모 사냥 무리 집단들이 이주해왔다. 그 뒤 전 유럽에 농업을 전파하며 서진(西進)한 아나톨리아인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다뉴브 강까지 진출해 중부 유럽에 정착한 그룹이 있었고, 지중해를 바로 건너가거나 해안을 빙 돌아 걸어오거나 섬들과 섬들을 계속 건너 뛰며 이베리아(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정착한 그룹이다. 그런데 연구진은 이베리아 농민 DNA와 초기 영국 신석기 농민 DNA 사이에 일치하는 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베리아와 주변에 흩어져 있던 농민들이 프랑스로 북상한 뒤 웨일스 등 남서쪽으로 해서 영국에 들어갔다. 이들은 농업 기술 외에 스톤헨지처럼 거석을 세우는 기념물 전통도 전수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냥 무리 집단도 영국에 들어왔는데 두 그룹은 전혀 섞이지 않다가 스코틀랜드 서부의 한 그룹을 제외하고는 모두 농민 그룹으로 완벽하게 대체됐다. 아마도 농민 그룹의 숫자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스 박사는 “신석기 농민들의 조상이 훨씬 전에 영국에 들어와 서부에 정착한 사냥 무리 집단이란 증거를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며 “그렇다고 그들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지만 다만 그들의 인구 규모가 너무 작아 어떤 종류의 유전적 리거시의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토머스 교수는 “게임 수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신석기 농민들은 유럽 전역을 누비며 여러 기후 여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적응력이 높았고 영국에 이르렀을 때 이미 “도구를 다뤄 (tooled up)” 유럽 북서쪽의 작물 재배에 잘 적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진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가 끝나가던 BC 2450년 초기 농민들의 후손들 역시 유럽 본토에서 이주해온 이른바 벨 비커(종 모양 토기·Bell Beaker)로 불리는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면서 거의 완벽하게 대체된다. 따라서 영국 신석기 농민들은 몇 천년 동안 두 차례나 극단적인 유전자 변형이 이뤄진다. 토머스 교수는 영국이나 전 유럽이나 신석기 인구가 여러 차례 줄어든 끝에 두 번째 유전자 변형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종족끼리 싸움 때문이라고 단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위험하며 풍토에 적응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 같은 경제 요소들이 더 궁극적인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스 박사는 “두 가지 유전적 변형 사이에 어떤 공통점을 지녔는지 알아내긴 어렵다. 왜냐하면 둘이 완전 다른 종류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일정 정도로 인구 붕괴가 있었다고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인구 붕괴를 불러온 이유는 다르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결론을 얘기하면 지금 영국인들은 신석기 농민과 유전적 형질을 그렇게 많이 공유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허망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기억하라 존중하라 그리고… 치유하라

    기억하라 존중하라 그리고… 치유하라

    800여명 나환자 밤에만 걸어 140㎞ 이동… 눈물로 지은 공동체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켜켜이 쌓은 가치… 그 가치 담은 공간●애양원에 대한 무섭고 슬프고 아름다운 단편들 #기억 1. 초등학교 때 아버님을 따라 시골의 할아버지 댁을 두어 번 갔었다. 그곳은 전기도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깡촌’으로 어린 내게도 낯설고 불편한 곳이었다. 그러나 마을 뒷산을 넘으면 바로 바닷가로 내 또래 아이들과 물놀이하는 큰 재미도 있었다. 바다 건너편에 교회가 보이는 녹음 우거진 섬이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친척 아이들이 들려준 얘기는 정말 무서웠다. ‘문둥이’들이 사는 곳이며 그 섬에 헤엄쳐 갔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기억 2. 배정받은 중학교는 성경과목을 가르치는 미션스쿨이었다. 어느 날 담당 목사 선생님이 한 권의 책을 가져와 한 인물을 소개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으로 주인공은 손양원 목사였다.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해 6년간 옥살이를 하다 해방 후 지방 교회의 목회를 맡았다. 공산당의 반란이 일어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총살을 당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아들을 살해한 주범을 용서하고 오히려 양자로 삼는 사랑을 실천했다. 6·25전쟁 때 그 역시 목사라는 이유로 처형을 당했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기억 3. 10년 전, 여수공항 뒤에 있는 한 병원을 방문하게 됐다. 애양원이라는 이곳은 원래 미국 선교사들이 세워 나환자들을 수용해 치료하던 곳이었다. 서울의대를 졸업한 김인권 원장(현 명예원장)은 나환자 섬인 소록도에 공중보건의로 자원 복무했고 제대 후 바로 애양병원에 부임해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는 우리 시대의 의인이었다. 동행했던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을 포함한 일행들은 김 원장의 고귀한 삶에 크게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40여년 전, 어릴 때 단편적 기억들의 무대는 모두 이곳 전남 여수 애양원이었다. 이제는 강같이 좁은 애양원 앞바다 건너편 공단 지역이 아버님 고향마을이 있던 곳이다. 육지에서 돌출한 반도의 끝을 본 것을 섬이라 착각했고 ‘문둥이’라 두려워한 가상의 대상은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이곳 애양교회에 부임해 한센인들을 돌보다 여순반란사건(여수·순천사건)에 휘말려 두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세 부자의 순교묘지와 손양원기념관이 있는 이곳은 개신교의 성지로 많은 신자들의 순례지가 됐다.●나환자들 사회서 격리돼 비참한 삶… 1909년 벽돌가마터에 환자 첫 수용 처음 방문한 애양원 일원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애양원의 역사는 안타깝고 처절한 이야기다. 한국의 개신교는 조선말 개항기에 주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됐다. 초기 선교사들은 의료 기술을 겸비한 이들이 많았는데, 미국 영사관 의사로 와서 제중원을 설립한 알렌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까지 1000여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활동했는데 그들은 기독교 전파뿐만 아니라 현대적 의료시설을 설립하고 교육기관을 정착시켰다. 1909년 봄날, 미국 남장로회에서 파견한 목포선교부의 포사이트 선교사는 광주의 동료 선교사가 위중하다는 소식에 말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 도중 길가에서 여자 나환자를 발견해 광주로 호송했고 광주진료소 인근의 벽돌가마터에 수용해 치료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환자들은 치료는커녕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불가촉천민으로 저주의 대상이었다. 당시 벽돌가마터 여환자의 비참한 모습은 이랬다. “몇 달 몇 년 동안 빗질도 않고, 옷은 더러운 넝마이며, 손발은 짓물렀다. 온몸에서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한 발은 짚신을, 다른 발은 두꺼운 판자조각을 묶어 걸을 때마다 심하게 절뚝거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광주선교부에 한센환자의 집이 설치됐고 2년 후에는 광주나병원이 출범했다. 애양원의 역사는 바로 1909년 4월 7일, 벽돌가마터에 여환자를 수용한 날부터 시작한다. 초대 원장인 윌슨(우일선) 선교사는 체계적인 치료는 물론 나환자들의 자립자생을 위해 목공, 석공, 직조, 의료기술까지 자체 기술자들을 양성했다. 또한 교회를 설립해 신앙을 통한 재활을 시도했다. 이 신앙적 한센공동체는 이후 애양원의 전통이 됐다.일제는 도시 공공위생을 문제 삼아 나병원 이전을 강권했고 1926년 여수 율촌면 신풍리 바닷가로 이전 명령을 내렸다. 800여 나환자와 가족들은 기차도 못 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만 걸어서 무거운 침상과 짐을 들고 140㎞를 이동했다. 이른바 ‘눈물의 이주’ 끝에 애양반도에 한센인의 자치 공동체, 애양원을 건설하게 된다. 반도의 중앙에 병원과 교회를 세우고 그 남쪽에 여환자 숙소를, 북쪽에 남환자 숙소를 각 20여동 지었다. 이외에도 기술학교, 이발소, 창고, 오락실 등 총 110동의 건물을 세웠다. 현지에서 채취한 응회암과 사암들로 돌벽을 쌓고 목조 지붕틀을 올린 간략한 서양식 건물들이었다. 목수, 석공, 토공 등은 모두 훈련된 한센인들로, 자체 인력과 기술로 완성한 공동체 건축이었다. 해방 후에는 한성신학교를 세워 한센인 교역자를 양성했다. 첫 방문 당시, 남환자 숙소는 모두 철거돼 그 터에 한센인 정착지인 도성마을이 자리잡았다. 병은 완치됐지만 신체적 불구로 남은 음성한센인들의 자립갱생을 위한 마을이었다. 여환자 숙소는 폐가인 채로 14동이 남았고 한성신학교는 토플하우스라는 숙소로 개조했다. 원래 병원 건물을 애양병원역사관으로 개조했고 입구 쪽에 새 병원 건물을 크게 세운 상태였다. ●1967년 건축가 조자룡 설계·김종규 전시관 증축 계획… 장장 한 세기 걸친 건축 애양원 설립부터 1950년대까지 건설된 모든 건물들은 선교사들이 계획하고, 한센인들이 건설한 일종의 민간건축이었다. 굳건한 막쌓기 돌벽과 직선적인 서양식 지붕들은 마치 18세기 유럽의 마을에 온 듯 이국적인 경관을 이룬다. 경제적 부족과 기술적 제약으로 건물은 비록 낮고 허술하지만, 소외된 이들의 초보적인 안식처로서 충분한 근원적인 건축들이다.1967년 새로운 병원을 세우게 되는데 설계를 건축가 조자룡(1926~2000)이 맡았다. 해방 직후 하버드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스웨덴 설계회사에서 실무를 쌓은 후 귀국해 1950~60년대를 풍미한 풍운아였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분을 뵙게 돼 1박2일로 말씀을 들었는데, 아마도 설계한 건물이 150개 이상은 되리라 회고했다. 그럼에도 조자룡은 늘 한국의 전통미에 관심을 두었다. 1970년 민학회를 조직했고, 최대의 민화 수집가로서 사설 민속박물관까지 경영했다. 새 애양병원에 도입된 휘어진 처마나 쌍사자석 등을 모티브로 한 현관 기둥도 그가 노력한 전통 계승의 표현이었다.2010년 애양원 방문 때 2년 후 열릴 여수해양엑스포에 대비해 여환자 숙소 잔해들을 철거하고 새롭게 펜션을 지을 계획이라고 들었다. 나는 남겨진 건축적 흔적을 살려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그 설계를 자원해서 맡았다. 기존 건물의 돌벽을 최대한 보존하고, 그 뒤편에 단순하고 무성격한 새 숙소를 부가했다. 원 숙소부는 새 숙소의 안마당이 되고, 원 건물의 정면만이 돋보이도록 설계 전략을 세웠다. 애양원 개척 당시의 소중한 건축유산을 보존하고 새롭게 쾌적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치유의 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 병원이었던 역사관은 외벽의 풍화가 심하고 비좁았다. 함께했던 서 회장이 비용을 쾌척해 기존 역사관을 수리하고 넓은 새 전시관을 증축하게 됐다. 이 설계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창조적 건축가 김종규가 맡았다. 그 역시 기존 건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뒤편에 단순한 형태의 백색 전시관을 덧붙였다. 기존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내부공간의 깊이와 빛의 변화를 담은, 외유내강형의 세련된 건축이다.거의 한 세기에 걸쳐 애양원은 수많은 이들의 건축적 노력을 결집해 왔다. 선교사들과 한센인들, 조자룡, 김봉렬, 김종규 등 전문, 비전문 건축가들은 이국적인 돌집부터 미니멀한 현대적 공간까지 다양한 형태와 공간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과거의 의미를 기억하고, 앞선 건축의 흔적들을 존중하며, 총체적인 환경의 상처와 기억의 아픔들을 치유하려는 소중한 가치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최영주 서울시의원, 서울시 공동주택과 방문…개포동 단독주택지역 주민들 숙원 전달

    최영주 서울시의원, 서울시 공동주택과 방문…개포동 단독주택지역 주민들 숙원 전달

    서울특별시의회 최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 강남3)이 지난 11일 개포동 지역주민들과 함께 서울시청 공동주택과를 방문하여 주민의 숙원 사항을 전달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개포동 660-27번지(언주로 6길)는 개포택지개발지구(공동주택) 내 소규모 단독주택 지역으로 제2종 일반주거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지구단위계획에서 공동주택 중 아파트가 불허용도로 지정된 곳이다. 이에 본 대상지는 개포주공1.2.3.4단지, 시영아파트 등 인근 대부분의 공동주택 단지의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인 상황에서 향후 2~3년 후 인근 단지들(약 1만 2000여 세대)의 재건축이 완료되면 35층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과 같은 형태가 되어 더 이상 단독주거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당 단독주택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오랫동안 규제로 묶여 있는 지구단위계획의 변경을 통해 소규모 정비사업을 추진해 해당 대상지가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강남구청을 찾아가 수차례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관철되지 않자 최 의원과 함께 서울시의 문을 두드렸다. 최 의원은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인근의 철거 및 건축 행위로 인한 분진, 진동, 소음 등에 따른 주거환경 악화로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개원초등학교의 휴교로 해당 대상지의 어린 자녀들이 조정된 통합초교로 통학을 해야 하는 등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하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전달했다. 이어,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는 기간에 해당 대상지도 사업을 추진하여 주거환경을 정비하고, 노후주택을 개량할 수 있도록 해야 재건축 이후 새롭게 입주한 주민들의 또 다른 민원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조속한 사업추진을 위해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울시가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 공동주택과장은 “현재 강남구청에서 해당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을 위한 공람·공고를 하고 있다. 공람 기간 내에 의견서를 제출하여,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다시 한 번 전달될 수 있도록 하라”고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 으뜸이 되는 사당

    종묘는 사직과 함께 왕조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다. 조선시대 한성에 화재가 나면 종묘가 진화 1순위였다. 군주제에서는 왕이 곧 국가이며 이 왕과 왕의 조상을 모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세운 시조의 조상과 그 후손인 왕들을 모시는 곳이 종묘다. 많은 외국인이 종묘를 파르테논과 비교해 ‘동양의 파르테논’이라는 별칭이 있다. 외국인들이 종묘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았던 것이다.종묘제도는 중국의 주나라 때부터 있었으나 중국은 공산화를 가치며 명맥이 끊기고 우리는 종묘와 종묘제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며 아직도 제례를 올리는 살아있는 정전을 유지하고 있다. 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이 있으며 정전에 19분의 왕의 신주가, 또 영녕전에 16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업적이 있다고 판단한 ‘왕 중의 왕’ 19분을 정전에, 태조 이성계의 4대조와 사도세자를 비롯한 추존왕 9분과 재임기간이 짧고 업적이 미약한 왕 6분과 영친왕이 영녕전에 모셔졌다. 조선의 임금 중 폐위된 광해군과 연산군을 당연히 제외된다. 문화재 이전에 전주이씨의 사당이기에 제례는 전주이씨 종친회에서 주관한다.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나뉘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매장하며 신주를 만들어 혼을 신주에 모신다.종묘는 유학을 통치기반으로 삼은 조선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새왕조가 들어서면 정통성을 위해 종묘를 세우고 전 왕조의 종묘는 패망한 왕조와 운명을 같이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고려의 종묘는 송악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일제가 종묘를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이 위대한 건축물이 남아있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한번 완전히 소실되었다. 일제는 종묘를 파괴하지는 안았지만, 조선왕조의 종묘 앞을 유흥가로 만들어 집창촌이 되도록 하였다. 이 집창촌은 ‘종삼’이라는 이름으로 1968년까지 번성하다가 세운상가 개발과 함께 ‘나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30여년 만에 해체되었다. 종삼 집창촌은 오랫동안 소위 먹물들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욕정을 풀어놓던 곳이었다. 어느 원로시인은 명동의 술과 종삼의 여자는 작가들에게 고향같은 곳이라고 말을 했단다. 세운상가는 군부정권의 상징적 도시개발 사업이었다. 일제는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화마를 끊기 위해 가로세로의 격자 공지를 조성하였는데 이를 소개지라 하였다. 세운상가는 이 소개지에 종로와 청계천을 잇는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이 소개지 덕분에 을지로, 퇴계로 등 지금 강북의 큰 길들이 쉽게 만들어졌다. 당시 군출신의 서울시장 김형옥이 세운상가 개발지 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집창촌의 한 여인이 시장임을 몰라보고 놀다가라고 팔을 잡았고 이에 화가 난 김형옥이 종로구청에 들러 집창촌의 해체를 지시했다고 하는 설과, 세운상가의 개발로 정비가 필요했던 지역에 대한 계획적인 정비였다는 설이 나도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군출신 시장의 추진력 덕분에 종묘 앞의 집창촌은 빠른 시간 내에 해체되었고 지금의 종묘 앞 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 공지로 있었다. 세운상가는 김수근이라는 대한민국 대표건축가의 작품이지만 군부정권의 기형적인 요구로 지어졌기 때문에 김수근 스스로 본인의 대표작품에 넣지 않았다. 종묘 주변은 많은 역사가 있다. 종묘의 한쪽 끝은 창경궁과 이어지는 북신문이 있다. 왕은 비공식적으로 이 문을 통해 종묘를 찾아 선대의 왕들과 많은 마음의 대화를 했었다. 창경궁과 창덕궁, 종묘는 붙어있었지만, 일제가 율곡로를 만들며 단절되었다. 현재 율곡로를 확장해 지하화하고 담장과 문을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빠르면 올해 이 복원된 보행로를 따라서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묘 뒤쪽으로는 익선동과 이어진다. 피맛길이라 하면 종로의 뒷길만 생각하지만 익선동길도 창덕궁 창경궁에 따른 피맛길이다. 종묘의 담장을 따라 순라길이 있었다. 순라군이라 하여 지금의 방범순찰대 역할을 하던 군인들이 육모 방망이를 들고 순찰하던 길이다. 지금도 순라라는 이름은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종묘의 정문 앞에는 임금이 행차시 물을 마시던 어정이 복원되었고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는 누구든 종묘 앞을 지날 때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종묘를 얼마나 신성시 하였는지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종묘를 살펴보자. 종묘의 문은 외대문 이라고 하지만, 원래 창엽문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정면은 세 칸이며 가운데 칸은 신문이다. 왕의 신주를 모실 때만 개방하는 문이니 이 문이 열리기를 바라지 마시라. 궁궐의 문과 달리 세 칸의 높이가 같은 평대문이다. 가운데 신문을 높여 솟을대문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사자의 집이라서 화려함은 없는 단아한 건물들로 축조되었다. 문을 들어서면 박석이 깔린 삼로가 보인다. 삼로중 중앙의 높은 길은 ‘신로’라 하여 산 사람이 딛지 않는 길이고 왼쪽은 ‘어로’라하여 임금의 길이다. 오른쪽은 ‘세자로’다. 신로는 지금도 관람객들에게 밟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다. 어로와 세자로는 지금 주인이 없으니 밟아도 된다. 종묘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신로를 따라 이동하여 정전에 이르는 길이고 하나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재궁과 전사청을 거쳐 정전의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르는 방식이다. 신로를 따라 이동하는 방법은 정전과 영녕전의 남문인 신문이 개방되지 않아 평소 불가능하다.두 번째 길을 따라 이동하며 살펴보면 들어가며 좌우에 연못이 있다. 연못의 주 용도는 소방수로 쓰기위해 만들어지나 때에 따라서 정원의 일부로 보는 연못이 되기도 한다. 오른쪽의 연못은 네모난 연못의 가운데 둥근 섬이 있고 섬에는 소나무가 아닌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죽으면 향기만 남는다는 뜻과 제당에 향이 쓰여서 향나무를 심었다 한다. 실제로 다른 향교나 사당을 가도 다른 장소에 비해 향나무가 많다. 지방의 향교나 서원에는 일제때 일본의 향나무인 가이스카 향나무를 심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아직도 가이스카 향나무가 많이 보인다. 네모난 연못은 천원지방설에 따라 땅을 뜻하며 둥근 섬은 하늘을 나타내니 땅이 하늘을 품은 연못이다. 못 가운데 하늘은 사후의 세계라 향나무를 심었다고도 한다.우측에 향대청과 공민왕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향대청에는 망묘루가 있다. 루라는 글자가 붙은 건물은 오늘날 피로티 구조와 같이 기둥으로 받혀진 떠있는 마루의 구조다. 주로 전망을 하며 쉬거나 연회를 하는 장소다. 경복궁의 경회루가 대표적이고 남원 광한루 진주 촉석루도 많이 알려져 있다. 망묘루는 건물의 형식이나 위계를 보며 정말 왕이 종묘를 보던 공간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향대청은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고 예전에는 근처에 종묘를 지키는 군인들이 머무는 건물도 있었다 한다. 현재 향대청에는 정전안에 모셔진 신위를 재현한 공간과 설명이 있다. 신주는 혼이 머무르는 집과 같다. 밤나무로 만들며 홀을 만들어 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공민왕 신전이 이곳에 있는 것에 대하여 전 왕조에 대한 예로 마지막 왕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일인의 손에 있던 공민왕의 영정이 반납되어 적정한 장소를 찾지 못하다 종묘의 한쪽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 삼로를 따라가다가 길이 갈라진다. 신로는 없이 어로만 있는 길을 따라가면 재궁과 이어지고 신로를 따라가면 정전과 영년전의 정문에 이른다. 재궁은 임금과 세자가 제사전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며 제사를 준비하는 곳이다. 이곳은 세동의 건물로 이루어졌는데 그나마 왕과 세자가 머무르는 공간이라 격을 조금 높였다. 향대청은 막새없이 앍매흙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나 재궁의 건물은 막새기와를 사용하였고 박공의 측면에는 풍판까지 설치되어있다. 세 건물 중 중앙에 있는 건물은 임금이 머무르는 어재실이다. 이곳에는 왕의 밀랍인형과 용교의라는 의자가 놓여있다. 이 밀랍인형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고종이나 순종이다. 이유는 9장복이 아닌 12장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황제는 12장복을 입고 왕은 9장복을 입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임을 선포하였고 최초로 12장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12장복은 9장복에 비하여 화려하며 면류관에 구슬을 꿰어 단 유의 수가 12줄이다. 9장복은 류의 수가 아홉줄이다. 어재실의 한옆에는 무쇠로 된 큰 솥단지같은 것이 있는데 이름이 ‘드무’라하며 소방수를 담아두었던 단지다. 왼쪽에는 어 목욕청 건물이 있는데 목욕재개를 하는 곳이다. 왕이 어떻게 목욕을 하였는지 기록이 없어 욕조를 만들어 전시해놓고 있다. 재궁은 정전의 동측 마당으로 이어지고 그 뒤로 전사청과 제정이 있다. 전사청은 제수 음식을 준비하던 곳으로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로 건물이 앉아있다. 당연히 제기고와 찬간이 갖추어져 있고 생물을 도살하는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제례의 음식은 익히지 않은 생물을 올린다. 고기는 소와 양과 돼지고기를 생것으로 올리는데 전사청까지 살아있는 제수용 동물이 들어와 전사청에서 검사를 한뒤 도살되었다. 전사청 앞에 단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찬막단이라 하여 여러 제수 음식을 검사하는 단이고 하나는 성생위라 하여 살아있는 소 등의 제수용 생물을 검사하던 단이다.왕가에서는 소, 양, 돼지를 올렸고 양가에서는 양과 돼지를 올렸으며 민가에서는 돼지만 올렸다. 요즘 가정의 제사에는 소고기 산적을 올리는데 조상님을 왕의 대우를 하는 것인 셈이다. 전사청 옆에 담장으로 둘러싸이고 문를 통해 통제되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이 제정으로 제사때 쓰는 우물물이니 신성시되고 보호되었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 되었다. 임진 왜란때 종묘의 건물들이 모두 불탔지만, 왕들의 신위는 제일 먼저 왕과 함께 피신되었다. 제사에 쓰이는 제기는 가져갈 수 없어 포장을 해서 이 제정에 숨기고 피난을 갔다고 한다. 배례를 마친 왕과 신하들은 동문을 통해 정전에 이른다. 이 정전 건물이 종묘의 백미다. 동문을 지나면 월대 위로 월랑이 보이고 이 월랑의 기둥 사이로 정전건물 전체가 보인다. 월랑은 정전에 없던 형식을 태종이 만들었는데 마치 학의 날개같이 정전건물은 한층 멋지게 보이게 한다. 월대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장치다.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를 오르면 높은 축위의 공간이 불국이듯 월대는 신의 영역을 상징적으로 구분한다. 월대의 중앙에서 살짝 비켜서 부알판위가 있는데 이는 삼년상을 모시고 신주를 모실 때 정전에 들어가기 전 신주를 임시로 모시는 곳이다. 백미터가 넘는 월대와 정전 건물은 담장 안 어느 곳 에서도 온전히 한눈에 담을 수 없다. 상하월대와 처마, 용마루의 수평선은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킨다. 수평선이 갖는 차분함은 경건함이 절로 우러나게 한다. 열아홉 칸을 구성하는 열주도 수직선이 아니고 수평선의 구성 요소로 보인다. 공간의 구성요소와 규모는 신전으로서 경건함을 갖기에 최적으로 디자인 되었다. 만약 전면의 신문과 담장이 더 물러나서 그곳에서 정전이나 월대가 한눈에 쉽게 들어왔다면 또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원래는 정전이 석실 5간 허실 두 간 합이 7실이었다. 유교의 법식에 4대조를 모시니 태조의 4대조와 이성계를 모시기 위해 다섯 간을 만들도 예비로 두간을 만들었다. 이전의 풍습을 따르면 4대조를 모시니 왕이 한 명 죽게 되면 제일 윗대의 한 분은 신위를 땅에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중국 송대의 별묘기록에 따라 영녕전을 지어 태조의 4대 추존왕을 한 명씩 영년전에 모시고 정조를 정전에 모셨다. 영년전은 4대조가 넘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묘였으며, 정전은 제사를 지내는 제묘였다. 연산군에 이르러 성종이 승하하자 다시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었고 태조를 영년전으로 모셔야 했으나 시조라 하여 불천위로 정전에 계속 모시고 정종을 영년전으로 모시게 된다. 이때부터 공적이 있는 왕은 계속 정전에 모시고 그렇지 못한 왕은 영년전으로 모셨다. 불천위가 있으면 원래는 그 이상의 공적이 있어야 다시 불천위로 모실 수 있었으나 자신의 부친 공적을 높여 불천위로 만드는 왕이 많아졌고 후대에는 그 공적이 미미한 왕조차도 불천위로 정전에 남았다. 명종대에 정전을 11칸으로 증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종묘가 모두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와 광해군때 종묘가 정전 11간에 양 협실 두 간, 영녕전 네 간에 양 협실 세 칸씩으로 복원 되었다. 이후 정전은 동쪽으로 두 차례 네 간씩 증축 되었고 영녕전은 동서 양측으로 증축되어 최종은 현종때 정전 19간 영녕전 16간으로 완성되었다. 증축이 얼마나 정교하게 잘 되었는지 전문가들조차 증축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영녕전은 불천위가 아닌 왕과 추존왕을 모신 곳으로 효심, 또는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별묘다. 원래는 현 왕의 4대조까지만 모시고 나면 인연이 끝났다고 보고 땅에 묻는 것이나 불천위와 이 별묘는 조선왕조의 왕들을 영원히 모시도록 만들었다. 조선왕조가 세계에 유래 없는 긴 시간을 유지한 것에는 이곳 종묘의 공이 크지 않을까 싶다. 5월과 11월의 첫주에는 종묘제례가 시연된다. 이때 연주되는 제례악 역시 세종 때 만들어진 우리 음악으로 서양의 음악인들에게도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이시기를 맞추어 가면 건축물로서 세계문화유산과 무형의 세계문화유산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그때 가 보시길 추천한다. 글 사진: 최세일 한건축 대표
  • 미국 70대 남성, 자신이 기르던 화식조에게 공격받아 숨져

    미국 70대 남성, 자신이 기르던 화식조에게 공격받아 숨져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한 남성이 자신이 기르던 새에게 공격을 당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14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호주 북동부 열대림과 뉴기니 섬에만 서식하는 화식조(火食鳥) 한 마리가 지난 12일 플로리다주 게인스빌의 한 농장에서 자신을 기르던 마빈 하조스(75)를 날카롭고 긴 발톱으로 찔러 숨지게 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따르면 키 1.8m, 체중 60㎏으로 몸집이 거대한 화식조는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지만 타조, 에뮤 등과 비슷하게 최고 시속 50㎞의 속력으로 빨리 달릴 수 있다. 화식조가 길이 10㎝의 단검 모양 발톱을 지니고 있으며, 강력한 다리 힘으로 발을 휘두르면 맹수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라고 CNN은 전했다. 화식조는 타조와 달리 성질이 포악해 농장 사육에는 부적합한 조류로 영역을 침범당해 위협을 느낄 경우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특수 제작된 우리 등 엄격한 조건을 갖춘 시설에서만 화식조 사육을 허용하고 있다. 화식조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새’로도 불린다. 화식조는 목 부분에 붉은 살덩이가 붙어있어 마치 불을 먹은 것 같다는 의미로 불리는 이름이다. 게인스빌이 있는 알라추아카운티 경찰은 “먹이를 주려다가 일어난 사고처럼 보이는데 한 남성이 새 서식지에서 넘어졌고 그 직후 공격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해저 121m 에 내려가 환경 보호 외친 대통령

    해저 121m 에 내려가 환경 보호 외친 대통령

    “우리에겐 이제 시간도 없습니다. 행동하지 않을 변명도 없습니다” 대통령이 잠수정을 타고 해저 121m 깊이까지 내려가 ‘해저 생중계 연설’을 통해 환경 보호를 역설했다. 14일(현지시간) 인도양 서부 세이셸 인근 심해. 대니 포르(57) 세이셸 대통령이 잠수정을 타고 해저 121m 깊이까지 내려가 이색적인 ‘해저 생중계 연설’을 했다. 포르 대통령은 “이(해양 환경) 문제는 너무나 커서 다음 세대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수가 없다”며 “세계가 하루빨리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포르 대통령은 “이렇게 깊이 내려와 보니 우리가 보호해야 할 자연의 놀라운 동식물이 있음을, 그리고 수천 년을 이어온 이 거대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오랫동안 일으켜 온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포르 대통령은 수중 연설을 마치고 AP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경험을 계기로 해양 보호를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포르 대통령은 인도양에서 영국 주도로 해양환경 보호를 벌이는 탐사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후변화가 바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세이셸을 비롯해 남태평양 투발루, 마셜제도 등의 섬나라들은 지구 온난화로 초래된 해양 환경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로 꼽힌다. 매년 상승하는 해수면 탓에 이들 나라는 이르면 수십 년 내 전 국토가 수몰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수온 상승으로 섬의 경제 자원인 산호초가 파괴되고, 태풍·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더욱 빈발하고 있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아프리카 난민들 표류 열흘만에 입항

    아프리카 난민들 표류 열흘만에 입항

    난민구조선에 발을 묶인 채 열흘간 지중해를 표류했던 아프리카 난민들이 어렵사리 몰타에 입항했다. 몰타 정부는 13일(현지시간) 독일 비정부기구(NGO)의 난민구조선 ‘알란 쿠르디’에 승선한 난민 수십명과 관련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주도로 이들 난민이 유럽 4개국에 분산 수용되는 합의안이 도출됐다”면서 이들이 몰타에 일단 들어온 뒤 독일과 프랑스,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등 4개국으로 이송될 것이라고 밝혔다. 쿠르디호는 지난 3일 리비아 근해에서 신생아 1명과 어린이 1명이 포함된 난민 64명을 구조했다. 이후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로 향했지만, 이탈리아와 몰타 정부로부터 잇따라 입항을 거부당하자 독일 정부와 EU에 도움을 요청했다. 난민 가운데 건강이 급속히 악화한 임신부 등 2명은 치료를 위해 며칠 전 몰타 발레타로 먼저 후송됐다. 또 쿠르디호 소속 승무원 1명 역시 극심한 피로를 호소해 전날 몰타로 이송됐다. 한편,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관문’ 역할을 하던 이탈리아가 지난해 6월 강경 난민 정책을 밀어붙이는 포퓰리즘 정권 출범 이후 자국 항구를 봉쇄한 이래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들을 태운 NGO의 선박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월에도 독일 NGO ‘씨 워치’가 구조한 난민 47명이 유럽 각국의 거부 속에 지중해를 열흘 넘게 떠돌다가 유럽 7개국이 분산 수용에 합의한 이후에야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두테르테가 돌연 시진핑에 등돌린 까닭은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두테르테가 돌연 시진핑에 등돌린 까닭은

    지난 9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 마카티의 중국 영사관 앞. 필리핀 시위대가 ‘중국은 당장 떠나라’(China out now)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친중(親中) 행보를 보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을 상징하는 별이 찍힌 군화에 입맞춤하는 모습의 합성 사진에 ‘반역자’(traitor)라고 적은 피켓도 보였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제도(필리핀명 칼라얀 군도, 중국명 난사<(南沙>군도)의 티투섬(필리핀명 파가사섬, 중국명 중예다오<中業島>) 주변 해역에 중국 선박들이 공격적으로 항해·정박해 위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필리핀내 반중(反中)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티투섬은 중국이 스프래틀리제도에 미사일을 배치한 3개 인공섬 가운데 하나인 수비암초(필리핀명 자모라, 중국명 저비자오<渚碧礁>)와는 불과 12해리(약 22㎞)쯤 떨어져 있다. 필리핀 당국이 지난해 티투섬의 해변 진입로 유지보수 작업을 시작한데 이어 비행장 활주로 보수 작업을 개시하자 중국이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다. 필리핀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티투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필리핀과 중국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군에 자살 임무수행 명령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데 이어 테오도로 록신 외무장관은 중국을 겨냥해 “미국만이 유일한 동맹”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등 ‘밀월기’를 보내던 필리핀·중국관계에 긴장감이 팽팽해지고 있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4일 “중국은 티투섬에서 손을 떼라”고 강력 경고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티투섬 주변에 집결한 수백 척의 중국 선단에 대해 “중국이 이 섬을 건드리면 군에 자살 임무를 준비하라고 지시할 것”이라며 ‘자살공격 불사’ 방침을 밝혔다. 그는 “티투섬은 우리 영토이며 중국이 이 섬을 점령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애원하거나 구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록신 외무장관도 가세했다. 그는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세계 유일한 강국”이라며 “미국은 우리의 유일한 군사동맹으로 남을 것이며 우리는 다른 어떤 동맹도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중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할 경우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필리핀이 자동 개입할 수 있다고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설명했다. 더군다나 필리핀에서는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3500명의 미군과 7500명의 필리핀 병력이 참가한 미국과의 연례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 2019’를 실시하며 중국의 공세에 맞불을 놨다. 필리핀 의회도 질세라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華爲)의 감시장비 도입 프로젝트를 보류했다. 필리핀 일부 의원들은 화웨이 장비가 들어간 폐쇄회로(CC)TV를 설치할 경우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화웨이 장비가 들어가는 4억 달러(약 4560억원) 규모의 CCTV 설치사업 관련 예산안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랄프 렉토 상원의원은 “중국 장비와 관련해 전 세계가 스파이 문제와 데이터 보안 등을 우려하고 있다”며 감시장비가 꼭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 제품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지난해 11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마닐라를 방문했을 때 1만 2000대 규모의 중국산 CCTV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비는 마닐라는 물론 두테르테 대통령의 고향 다바오에도 설치될 예정이었다. 필리핀은 안면인식 기능까지 갖춘 이 장비를 범죄 예방과 수사 등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필리핀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업 비용의 80%는 중국이 대지만 나머지는 필리핀이 지원할 예정인데 의회 결정으로 묶이게 됐다”며 “ 사업을 진행하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은 2016년 6월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친중(親中) 노선을 걸어왔다. 중국 정부는 그 대가로 두테르테 대통령의 인프라 사업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고 중국인들의 필리핀 관광 규제를 해제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중국의 필리핀에 대한 인프라 투자액은 지난해 150억 달러(약 17조원) 규모이고, 필리핀을 방문한 중국인 수는 126만명에 이른다. 방문 중국인 수는 2015년보다 300% 가까이 늘었다. 여기에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인에게 33만 5800여건의 취업 비자와 특별취업 허가증을 발급하면서 중국인들이 폭증했다. 전체 외국인들에게 발급된 취업 허가의 절반 이상이나 된다. 관광비자로 입국해 필리핀에 눌러앉는 경우도 급증했다. 이에 따라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불법 체류 중국인 노동자들을 추방해야 된다고 말하면서도 정부 당국자들에게는 “이 같은 사건을 취급할 때 주의하라”고 애매하게 말하기도 하고 “그들(중국인 노동자들)을 이곳에서 일하게 하자”며 ‘관용’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대량 유입되면서 필리핀인들 사이에는 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저지른다며 불만이 커졌다. 지난해 5월 발생한 불법 체류 중국인의 필리핀인 웨이트리스 폭행 사건 등 불법 체류자들의 범죄와 관련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필리핀인들의 중국인에 대한 반감은 증폭됐다. 이 때문에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에 저자세로 일관했지만 정작 중국이 약속한 대규모 경제 지원은 제대로 실현된 게 거의 없다’는 따가운 여론에 직면했다. 중국인 대거 유입 문제는 오는 5월 중간선거(총선)를 앞두고 필리핀의 주요 정치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리핀이 티투섬의 해변 진입로 유지보수 작업과 활주로 및 부두 보강시설 공사의 개시하자 중국 선박 수백 척이 섬 주변에 몰려와 ‘공포 분위기’를 연출했다. 필리핀 군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중국 선박 600여 척이 잇따라 티투섬을 돌고 있거나 에워싸고 있다. 군부는 이들 선박이 ‘중국의 해상 민병대’라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저인망 어선 등은 고기잡이를 하지 않고 대부분 섬 주변을 둘러싸거나 그저 정박 상태로만 있어도 필리핀 어선들은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국 어선 출몰 자체는 비군사적 활동이지만 그 배경에는 이 일대 섬 장악을 목적으로 한 ‘양배추 전략’(cabbage strategy)’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양배추 전략이란 상대 국가의 해상 자유를 제약하는 것을 목적으로 분쟁 지역 해상에 자국의 비군사 어선 또는 시설을 포화시키는 전략이다. 중국은 2014년 베트남을 상대로도 이 전략을 써서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중국 정부는 “우리는 티투섬과 인근 해역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으며 중국 선박들이 그곳에서 어로 활동을 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해역에서 중국 어선과 어부들의 활동이 예년과 비교해 올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살바도르 파넬로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중국과의 협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엔총회에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필리핀 정부는 2016년 7월 PCA에서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동안 중국에 판결 이행을 요구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의 움직임은 남중국해 일대에서 필리핀, 베트남 등과 분쟁을 벌이면서 이 일대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미국과의 대립도 다시 확대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티투섬의 필리핀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필리핀과 미국 간의 방위조약이 건재함을 강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춘향이 발그레하듯… 생기 도는 광한루, 몽심재·구룡폭포… 이몽룡 다녀간 듯

    춘향이 발그레하듯… 생기 도는 광한루, 몽심재·구룡폭포… 이몽룡 다녀간 듯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 담양/ 꿈에는 가끔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찾아 가기도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해 돋고 달 돋아 남원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 중)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의 신분을 뛰어넘은 로맨스는 전북 남원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사랑 이야기다. 춘향가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으뜸으로 꼽히고, 이들의 사랑을 노래한 명시만도 여러 편이다. 춘향제가 열리는 매년 5월이 다가올 무렵이면 남원은 이팔청춘 춘향이처럼 생기가 돈다. 싱그러운 봄바람이 살랑이던 날 지리산 자락의 맑은 정취, 천년고찰의 운치, 민족의 문학혼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남원을 다녀왔다.●기왓장과 나무로 지어진 옛 서도역 수도권에서 남원으로 향한다면 남원 시내에 이르기 전 시 북동쪽에 자리한 옛 서도역에 먼저 들르는 것이 동선을 짜는 데 좋다. 임실군과의 경계에 위치한 옛 서도역은 전라선 철도에 놓인 기차역으로 일제강점기인 1931년 영업을 시작했다. 2002년 전라선이 정비되면서 도보로 5분 남짓 떨어진 곳에 새 역사가 생겼고 철거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보존을 주장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남원시가 철도청으로부터 역사와 부지를 매입했고, 기왓장과 나무로 지어진 과거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거듭났다.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세월을 거슬러 서 있는 듯한 옛 서도역을 돌러보던 중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들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산책을 나온 생후 1개월 된 강아지가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뛰어다니고 있었다. 젊은 시절 군대에 가기 전 서도역에서 급사로 일했었다는 이길무(76) 할아버지는 지금도 서도역 맞은편에 살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기차가 다니던 시절엔 줄을 서서 표를 끊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며 “그때는 역 앞에 여관도 있었고 하루 한 마리씩 돼지를 잡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역 앞 벚나무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도 컸고 수령 100년은 족히 넘었다고 한다.●소설 속 여러 장면 볼 수 있는 혼불문학관 최근에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 중 한 곳으로 소개되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있다. ‘혼불’은 1930년대 말 전라도의 유서 깊은 문중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 3대를 통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아낸 작품이다. 소설 속 종가집 효원이 마을로 시집을 오는 장면, 주인공 강모가 전주로 전학하는 장면 등에서 서도역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옛 서도역에서 차로 3분가량 떨어진 곳에 혼불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 내부에서는 소꿉놀이, 혼례식, 액막이연 날리기, 명혼식, 장례식 등 소설 속 여러 장면들을 디오라마(입체전시)로 볼 수 있고 각 장면마다 전통 풍속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생전 집필실이 재현돼 있고 자필 원고 등 여러 전시물을 통해 작가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다. 문학관 옆 최명희 가문에서 100여년 전 만들었다는 청호저수지는 둘레로 짧은 산책을 하기 좋다.●몽룡이 춘향이 보고 첫눈에 반한 곳,광한루 혼불문학관을 나서 차로 25분쯤 달려 남원 시내의 광한루원으로 향한다. 광한루에 올라앉아 있던 이도령이 단오날 그네를 뛰는 춘향이를 보고 첫눈에 반한 그곳이다. 보물 281호인 광한루는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인 1419년 남원으로 유배를 오게 된 황희 정승이 지은 누각으로 처음에는 광통루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인지가 이곳의 경치에 취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광한청허부’로 부른 것을 계기로 광한루라는 이름을 얻었다. 1461년에는 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보수하면서 남원 시내를 흐르는 요천의 물을 끌어다 둘레에 연못을 만들었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웠다. 금실 좋은 원앙 한 쌍이 노니는 연못 위로 돌다리 오작교가 가로놓여 있다. 버드나무 가지가 수면에 닿을 듯 드리우고 그 너머 광한루가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여러 차례에 걸친 확장공사로 2만 여평 부지에 조성된 광한루원에는 수중누각 완월정, 춘향 어머니의 집인 월매집, 이도령과 춘향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 춘향전기념관 등이 있어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한편에서는 춘향이 된 듯 커다란 그네를 타고 투호놀이 등도 즐길 수 있다. 춘향의 일편단심을 기리기 위해 1931년에 세워진 영정각에는 김은호 화백이 그린 단아한 모습의 춘향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사당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뤄진다고 하니 광한루원을 찾은 연인이라면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을 떠올리며 소원을 빌어 봐도 좋겠다.●요천 따라 산책로 양옆으로 벚꽃 활짝 광한루원을 나서면 맞은편 도로변에 활짝 핀 벚꽃이 장관이다. 남원 중심부를 흐르는 요천을 따라 숭사교에서 춘향교 부근까지 산책로 양옆으로 벚나무가 빽빽이 심겼다. 사방으로 풍성하게 뻗은 가지마다 핀 벚꽃이 연분홍 장막을 드리운다. 군밤, 솜사탕 등을 파는 노점이 즐비하고, 엿장수의 구성진 입담에 지나가던 어르신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벚꽃으로 물든 요천변과 광한루원 일대는 다음달 8일부터 12일까지 춘향제의 무대로 변신한다. 완월정 무대에서는 개막공연과 춘향선발대회, 춘향국악대전 등 공식행사가 펼쳐진다. 평소 출입이 제한되는 광한루각은 1년에 단 한 번 축제 기간 동안 개방된다. 이 밖에 명인·명창·명무들의 국악 향연과 전국에서 온 버스커들의 거리공연도 풍성하게 열린다.●춘향테마파크 지나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요천 벚꽃길 남쪽의 춘향테마파크를 지나 춘향의 흔적에서 벗어나 본다. 춘향테마파크 남쪽 출구 부근에 옅은 회색의 깔끔한 외관이 인상적인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 서 있다. 지난해 3월 개관한 공립미술관으로 남원 출신 김병종 작가가 남원시에 기증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문을 열었다. 입구로 들어서는 나지막한 오르막길 주위로 계단식 물의 정원이 조성돼 있다. 작품 감상에 앞서 잡념을 씻어 주는 듯하다. 1층에서는 김병종 작가의 상설전이, 2층에서는 기획전이 열린다. 약 2000권의 미술·문학·인문학 서적이 비치된 1층 북카페는 물의 정원을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제격이다.●몽심재, 조선 후기 상류 가정 가옥 형태 그대로 시내를 벗어나 ‘숨은 보석’을 찾아 떠난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15분가량 가다 호곡삼거리를 지나면 몽심재에 다다른다. 내비게이션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면 ‘수지면 내호곡2길 19’로 주소를 입력하면 찾아갈 수 있다. 마을 입구 빨간 하트 모양 표지판이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 몽심재’라고 길을 안내한다. 몽심재는 조선 후기 전북 지방 상류 가정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고스란히 보존한 고택이다. 경사진 지형 위에 뒤로는 대나무숲을 두고 앞으로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자란 낮은 언덕을 마주한다. 잿들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당 앞으로 흘러 연못을 이루고 배산임수의 명당을 완성시킨다. 솟을대문을 높게 세웠는데, 여인네들이 가마를 타고 마당 안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문 오른편으로는 하인들이 기거하는 문간채가 있다. 문간채 앞으로는 거북 모양의 큼직한 바위가 놓여 있어서 사랑채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하인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도록 배려한 조경이라고 한다. 가옥 중심에 있는 사랑채는 정교하게 쌓인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해 고고하고 위엄 있는 인상을 준다. 사랑채 뒤편 안채에는 양편으로 다락이 있다. 다락방의 창을 열면 사랑채 지붕 너머로 집 앞 아미산의 눈썹 같은 능선이 내다보인다.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높낮이를 알맞게 조절해 완성한 배수시설에서는 몽심재의 세심한 건축기법을 엿볼 수 있다. 몽심재를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곳에서 묵어갈 수 있다. 사랑채와 안채 등의 일곱 칸을 묵어가는 방문객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지리산 자락 구룡폭포·회덕마을도 가볼 만 이번에는 남원 동남쪽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간다. 내비게이션에 ‘구룡폭포 주차장’을 찍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경사가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된다. 40분가량 달려 도착한 주차장에서 구룡폭포까지는 400여m. 가까운 거리지만 산길을 타고 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산을 오르다 작고 가파른 계단 400여개를 내려가야 폭포를 만날 수 있다. 4월 초파일에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놀다가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구룡폭포는 굽이쳐 흘러내리는 물살을 보면 그 전설에 왠지 수긍이 간다. 작지만 아찔한 출렁다리에서 폭포를 감상한 뒤 비폭동, 지주대, 유선대, 육모정으로 이어지는 절경을 둘러볼 수도 있다.구룡폭포 주자창에서 멀지 않은 곳에 회덕마을이라는 동네가 있다. 지리산 둘레길 상에 놓인 이 마을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오래된 샛집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시골마을인 회덕마을 경로당 뒤편에 자리잡은 덕치리 초가는 1985년 박창규씨가 지은 것이 시초로, 6·25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51년 재건했다.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은 조선시대 일반가옥 형식을 따르고 있어 지리산 골짜기 마을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느낄 수 있다.●신라 흥덕왕 때 창건한 천년고찰 실상사 마지막 목적지는 경남 함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천년고찰 실상사다. 회덕마을에서 40여분 차를 달리면 닿는다. 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 증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실상사는 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열었을 만큼 유서 깊다. 이곳에는 국보 제10호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제33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 등 1000년 넘는 세월을 견딘 유물이 가득하다. 막상 절 문턱을 넘으면 글로 쓰인 거창한 역사 대신 고즈넉한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지리산 자락 봉우리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한가운데 너른 평지에 자리잡아 부처님 품에 감싸인 듯한 안온한 느낌이 든다. 절 오른편에 조성된 크지 않은 대숲에서는 마음을 툭 내려놓고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글 사진 남원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수첩 전북투어패스를 이용하면 남원을 포함한 전북 여행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다. 광한루원, 춘향테마파크, 지리산허브밸리 등 남원의 유료 관광지를 여러 곳 방문할 계획이라면 전북투어패스를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다. 관광형 카드 기준 1일권 8300원, 2일권 1만 3900원, 3일권 1만 9900원 등이 있다. 전북 14개 시·군의 60여개 주요 관광시설에 해당 기간동안 제한 없이 입장할 수 있다. 교통형 카드 이용 시 시내버스, 공영주차장 무료 이용 등 혜택이 추가된다. 관광안내소 등 40개 판매점과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다.
  • 독도 바로 알리기 위해 전국 누비는 독도재단

    경북도 출연기관인 재단법인 독도재단이 4월 독도교육주간을 맞아 전국에서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친다. 독도재단은 오는 13일 상주도서관, 19∼21일 경기 수원 광고박물관에 독도홍보버스를 보내 독도자료를 전시한다고 11일 밝혔다. 재단이 2015년 제작한 독도홍보버스는 올해 초 버스 내부를 독도가상현실체험기기와 터치스크린을 갖춘 체험형 홍보관으로 바꿨다. 재단은 또 경북도교육청, 영남대독도연구소와 함께 15일부터 5월 3일까지 포항에 있는 도교육청 과학원에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를 주제로 찾아가는 독도자료전을 개최한다. 자료전은 일본 독도 왜곡교육의 부당함을 알리고 독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자료로 구성된다. 재단은 자료전이 끝난 뒤에는 순회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15일에는 경남 창녕중학교를 찾아 전교생을 대상으로 독도 바로 알기 특강을 하고 독도퀴즈대회를 한다. 신순식 독도재단 사무총장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 야욕이 날로 노골화되고 있다”면서 “이에 맞서 독도홍보버스와 독도바로알기 교육, 독도자료전시회를 연중무휴로 하는 만큼 많은 국민의 참여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포토] ‘살 타는 중’ 신재은의 레드비키니

    [포토] ‘살 타는 중’ 신재은의 레드비키니

    모델 신재은의 몸매가 화제다. 신재은은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안녕. 여기는 시밀란 섬. 살이 타고 있는 중”이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그는 태국 푸켓에서 강렬한 붉은색 비키니를 입고 몸매를 뽐내고 있다. 모델다운 매혹적인 눈빛이 인상적이다. 한편 신재은은 회사에 다니며 모델을 겸업해 ‘회사원 모델’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모델로 완전히 전향했으며 인터넷 방송 역시 진행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 필리핀서 6만 7000년전 새 인류 유골 발견

    필리핀서 6만 7000년전 새 인류 유골 발견

    필리핀 북부에서 약 5만~6만 7000여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인류 종(種)의 유골이 발견됐다. 이 신종 인류는 30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유사하며, 인류의 진화가 생각보다 복잡하게 이뤄졌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10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파리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최근 과학 전문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필리핀 루손섬의 칼라오 동굴에서 발굴한 7개의 치아, 2개의 두개골, 그리고 3개의 발뼈, 1개의 허벅지뼈 등 13개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보고서를 통해 “유골은 다른 종에서 발견되는 것과 다른 조합의 특징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가 ‘호모 루조넨시스’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종이 발견됐음을 보증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루조넨시스가 121㎝ 남짓한 작은 키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했다. 또 호모 루조넨시스는 손가락과 발 뼈가 굽어 있는 특징을 가졌으며, 이는 200~3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특징과 매우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원시 인류의 특징을 가진 호모 루조넨시스가 발견되면서 모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부터 전세계로 퍼진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이라는 기존의 진화 시나리오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됐다. 파리 자연사박물관 플로랑 데트루아 박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는 인류진화의 역사가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됐다”면서 “현생 인류로 알려진 호모 사피엔스와 동시에 몇개의 서로 다른 종이 존재했고, 이종교배를 했다가 멸종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상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 크리스 스트링어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4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에 관한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나는 플로레스 섬에서 일어난 인류 진화의 실험이 해당 지역의 다른 많은 섬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날 수있다고 말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런 예측이 플로레스섬으로부터 거의 3000km 떨어진 루손 섬에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UN, 거대 수상도시 계획 공개…1만명 자급자족 거주

    UN, 거대 수상도시 계획 공개…1만명 자급자족 거주

    약 1만 명의 주민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상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이 최근 유엔(UN)의 한 회의에서 발표돼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적 건축그룹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Bjarke Ingels Group)은 4일(현지시간) 유엔 뉴욕 본부에서 열린 제1차 지속가능 수상도시 고위원탁회의에서 이런 수상도시 개념도를 공개했다.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에 따르면, ‘오셔닉스 시티’로 명명된 이 도시는 약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육각형의 섬 6개가 모여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룬다. 이렇게 섬을 붙여나가면 최대 약 1만 명이 살 수 있는 대도시를 만들 수 있다. 건축 자재는 주로 현지에서 수급할 수 있는 성장이 빠른 목재나 대나무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이 도시는 에너지와 물, 식량 그리고 기본적인 생산·소비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특히 이 도시의 모든 구조물은 홍수와 지진해일(쓰나미) 그리고 허리케인 등 다양한 자연재해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됐다. 만일 예측된 재난이 심각한 수준이면 도시 자체를 이동할 수도 있다. 사실 이 회의에서 이런 개념이 발표된 이유는 현재 세계적으로 해수면 상승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대도시의 약 90%는 해변 근처에 있어 해일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이에 따라 회의를 주관한 UN 산하 거주환경개선 기구 유엔해비타트(UN-HABITAT)는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을 비롯해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민간기업 오셔닉스(OCEANIX) 그리고 전문협회 더 익스플로러스 클럽(The Explorers Club)과 협력해 앞으로 이 수상도시의 개념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이에 대해 마이무나 모드 샤르프 유엔해비타트 사무총장은 “기후 변화가 가속하고 더 많은 사람이 도시 빈민가로 몰려들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수상도시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수상도시에 관한 연구에서 나온 많은 기술은 단단한 땅 위의 기존 도시들을 개선하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중에 공개할 프로토타입 모델을 만들어 유엔 본부 옆 이스트강에 정박해둘 예정이다. 사진=비야케 잉겔스 그룹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자급자족, 1만명 거주 가능…UN, 거대 수상도시 계획 공개

    자급자족, 1만명 거주 가능…UN, 거대 수상도시 계획 공개

    약 1만 명의 주민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상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이 최근 유엔(UN)의 한 회의에서 발표돼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적 건축그룹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Bjarke Ingels Group)은 4일(현지시간) 유엔 뉴욕 본부에서 열린 제1차 지속가능 수상도시 고위원탁회의에서 이런 수상도시 개념도를 공개했다.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에 따르면, ‘오셔닉스 시티’로 명명된 이 도시는 약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육각형의 섬 6개가 모여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룬다. 이렇게 섬을 붙여나가면 최대 약 1만 명이 살 수 있는 대도시를 만들 수 있다. 건축 자재는 주로 현지에서 수급할 수 있는 성장이 빠른 목재나 대나무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이 도시는 에너지와 물, 식량 그리고 기본적인 생산·소비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특히 이 도시의 모든 구조물은 홍수와 지진해일(쓰나미) 그리고 허리케인 등 다양한 자연재해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됐다. 만일 예측된 재난이 심각한 수준이면 도시 자체를 이동할 수도 있다. 사실 이 회의에서 이런 개념이 발표된 이유는 현재 세계적으로 해수면 상승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대도시의 약 90%는 해변 근처에 있어 해일 등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이에 따라 회의를 주관한 UN 산하 거주환경개선 기구 유엔해비타트(UN-HABITAT)는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을 비롯해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민간기업 오셔닉스(OCEANIX) 그리고 전문협회 더 익스플로러스 클럽(The Explorers Club)과 협력해 앞으로 이 수상도시의 개념을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이에 대해 마이무나 모드 샤르프 유엔해비타트 사무총장은 “기후 변화가 가속하고 더 많은 사람이 도시 빈민가로 몰려들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수상도시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수상도시에 관한 연구에서 나온 많은 기술은 단단한 땅 위의 기존 도시들을 개선하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중에 공개할 프로토타입 모델을 만들어 유엔 본부 옆 이스트강에 정박해둘 예정이다. 사진=비야케 잉겔스 그룹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영록 전남지사, 섬마을 초등생 소망 편지에 직접 답장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섬마을 초등학생들의 다리를 설치해 달라는 소망 편지에 “하루빨리 만들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직접 답장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8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여수 개도의 화정초등학교 학생들이 여섯 통의 손 편지를 김지사에게 보내왔다. 편지에는 “학교 급식이 참 맛있다”는 자랑부터 “개도 막걸리가 유명하다. 꼭 와서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어있었다. 학생들은 또 “섬 주민들이 겪는 불편을 없애달라”며 “육지와 연결된 다리를 놓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전했다. 이에 김 지사는 정성스럽게 답장을 써 보냈다. 김 지사는 “저도 섬에서 나고 자라, 섬 주민이 겪는 불편과 간절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며 “개도와 화태도, 개도와 제도, 제도와 백야도를 잇는 다리가 2020년 착공해 2028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튼튼하고 멋진 다리가 하루빨리 만들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어린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편지를 보니 너무 흐뭇했다”며 “글씨는 조금 삐뚤지만 안에 담긴 순박하고 반듯한 마음을 보고 학생들에게 작은 용기와 희망이나마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어린이를 비롯한 도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도민 행복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신의 저주다”…호주 섬 원주민들 덮친 미스터리한 질병

    “신의 저주다”…호주 섬 원주민들 덮친 미스터리한 질병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섬마을 원주민들이 집단으로 미스터리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벌써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5분의 1가량이 투병 중이다. 데일리메일은 6일(현지시간)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주의 외딴섬 그루트 아일런드에 희소병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루트아이런드는 네덜란드어로 ‘큰 섬’이라는 뜻으로, 1623년 네덜란드 선박이 발견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최고점 180m의 낮고 평평한 이 섬은 바위가 많아 개발이 어려워 불모지 상태에 있다. 데일리메일은 이 섬의 원주민들이 같은 질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100명 이상이 팔다리가 굳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전신장애를 겪고 있으며 주민 654명 모두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 70대 중반의 여성 가양와 랄라라 역시 오래 전부터 이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가양와의 형제 자매 6명 모두 40대부터 증상이 시작됐으며 아버지도 같은 병을 앓았다. 그녀는 “모두 우리가 저주 받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조카들도 같은 진단을 받았으며 한 명은 지난 2014년 이 병으로 사망했다.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퍼진이 미스터리한 질병의 정체는 ‘마카도 조셉 병’(MJD, Machado-Joseph disease)이라는 희소 질환이다. 마카도 조셉 병은 매우 드문 유전성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영구적인 신체 장애로 발전한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생성된 단백질이 소뇌의 신경세포를 죽여 근육약화와 강직, 통제력 저하 등을 일으킨다. 부모 중 한 명만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유전된다. 이 병은 포르투갈 아소로스 지역의 집안에서 유래됐으며 지금도 그 후손들은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합병증을 동반하며 심할 경우 평균 수명이 35년 정도로 매우 짧다.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경우 정상 수명을 다하기도 한다. 이 병으로 인한 증세를 약화시키는 약물 치료는 가능하지만 완치제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 질병이 세대를 거치면서 더 이른 나이에 발현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리비 매시 MJD재단 연구교육국장은 “마카도 조셉 병을 가진 누군가 아이를 가질 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 병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얼룩말을 이용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병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는 여러 약물을 테스트하고 있다. 매시 국장은 그러나 아직까지 완치제가 없는 병인 만큼 현재로서는 대를 잇는 것에 대한 심각한 고민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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