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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굄돌] 상류층 부인들의 인면수심(人面獸心)

    어느 재벌 그룹 회장의 부인이 전·현직 고관 부인들을 상대로 몇천만원씩이나 하는 고가의 옷을 뇌물로 상납하려 했던 사실이 드러나 민심을 들끓게하고 있다.사건의 발단이 거액의 외환유출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 남편의 ‘구명’을 위해 그 부인이 권력 실세들의 부인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려 한 데서 불거졌다니,라스포사라는 그 의상실은 가히 ‘구명복(救命服)’ 전문업체이며 그들이 선물로 주고받은 옷은 성격상 ‘호화 구명복’이라 할만하다. 이번 ‘장관급 인사 부인 고급 옷 로비사건’(언론측 용어) 혹은 ‘장관 부인 호화의상 뇌물 및 갈취사건’(야당측 용어)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사건이 단순히 정경유착의 부정부패 사례나 상류층 부인들의 사치풍조 사례로서만이 아니라,그 근저에는 우리 사회 상류층에 반생명적이고 반문화적인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장관급 부인 호화의상 로비사건에서의 주요 거래물품은 소위 밍크코트로 알려져 있다.밍크는 북극 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족제비과의 짐승이다.족제비같이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제일 싫어할 상류층 여자들이 족제비털가죽만 보면 환장하고 걸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참 이상스럽다.더구나상류층 부인들이야 집안에서나 차안에서나 과잉난방 속에 뜨뜻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도 굳이 한대지방 짐승털을 걸치려 하니 말이다.(일각에는 정치권한파가 언제 불어닥칠지 몰라 추위를 탄다는 설도 있다). 선진국 여류명사들은 자연보호·동물보호에 앞장서서 밍크 포획을 반대하는 운동에 나선다는데,우리나라 상류층 부인들은 희귀동물 털가죽을 자랑스럽게 두르고 사회봉사다 환경보호다 실물경제활성화(?)다 하면서 짐승들처럼떼로 몰려다니며 헷갈리게 하니,정녕 그들의 마음 씀은 짐승만도 못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옷의 문화적 개념과 관련한 것이다.‘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지만,이번 사건은 몸가림과 생명보호라는 본연의 기능을 지닌 옷이 때로는 신분상의 차이와 빈부의 실상을 드러내는 역기능을 갖기도한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사건이다.하지만 ‘추락하는것은 날개가있다’는 말처럼,분수에 맞지 않는 날개를 달고 퍼덕이다가는 언젠가는 추락하고 만다는 경고이기도 하다.의식주(衣食住) 생활의 생태적·문화적 본성을 조롱하는 인면수심의 속물근성이야말로 한 사회를 타락시키고 와해시키는원인이기 때문이다. [임진택 연극연출가·판소리꾼]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27) 崔麟

    1949년 3월 20일 서울지방법원(구 대법원 건물)대법정.법정안은 발디딜 틈도 없이 초만원이었다.오후 1시 정각 검찰관과 재판관이 입장하자 재판이 시작되었다.재판관의 뒤로 법정 정면에는 중앙에 태극기를 두고 한 쪽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위창 오세창(吳世昌)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라는 휘호가 걸려 있고 다른 한 쪽에는 ‘3·1독립선언서’가 걸려 있었다. 피고인석에는 백발에 수척한 모습의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그의 나이 71세,이름은 최린(崔麟)이었다.‘3·1의거’ 당시 오세창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했던 바로 그 최린이었다.그는 반민특위가 활동을 개시한지 5일만인 49년 1월 13일 명륜동 자택에서 체포돼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33인중의 한 사람으로,청장년 시절 항일운동에 몸바쳤던 그가 해방된 조국의 법정에서 민족반역자로 지목돼 심판을 받는 것은 민족의비극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서성달(徐成達) 검찰관이 그의 죄상을 읽어내려갔다.‘▒죄명:반민법 제4조 2항(중추원 참의),3항(칙임관이상의 고관),10항(친일단체의 수뇌간부)위반.▒범죄사실:피고인 최린은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 명치대학 법과를 졸업하여 보성중학교장 및 보성전문 강사를 역임하고,기미독립운동시 33인의 1인으로서 천도교회의 대표로 기독교,기타 종교단체와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추진하였음으로 인하여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고,그 후 천도교 중앙종리원 등 장로로 있었던 자인 바, 1)1934년 이른 봄부터 1937년까지의 약 2년여,1939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시까지의 약 5년여에 도합 7년여간 조선총독부의 유일한 자문기관인 중추원 칙임 참의로서 조선총독의 자문에 의하여 총독정치에 기여하고, 2)…’.이어서 검찰관이 기소장 낭독을 마치자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서순영(徐淳永) 재판장이 경력을 물은 뒤에 “기미독립선언을 주도한 피고가 왜 일제에 협력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그는 “기미년 당시 일제에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뿐이다”며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최린(1878∼?,창씨명 佳山麟)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이다.그의 집안은 중인출신으로 상당한 재산이 있었다고 한다.후에 그가 출세와 신분 상승을 위해권력에 집착한 것은 그의 출신 성분이 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같은중인 출신인 육당 최남선(崔南善)의 변절에 대해서도 이같은 논리를 펴는 견해도 있다. 청년시절 그가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자임은 사실이나 그 무렵그의 민족의식에 대해서는 회의론을 펴는 견해도 만만찮다.1909년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천도교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던 그는 1차대전 종결후 ‘민족자결주의’ 물결과 1919년 2월 도쿄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을 선포하자 이에 고무돼 ‘3·1독립선언’에 가담하였다. ‘3·1의거’ 당시 그의 민족의식이 투철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그가 이 일로 체포돼 재판정에서 행한 발언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그는 “조선이 병합된 것은 러일전쟁의 당연한 결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또 당시 조선의 정치는 지독한 악정이어서도저히 조선의 안녕·행복을 유지·증진하기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병합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피치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1919.7.17 예심조서)고 진술하였다. 또 독립선언서 선포와 관련,“…본래의 의사는 극히 온건한 수단에 의하여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인민을 선동하는 것 같은 문귀 등은피한 것이므로 우리들의 선언서를 본 사람은 그러한 폭동에 가담할 리 없으리라고 생각한다”(일자 미상)고 진술하였다. 첫번째 진술은 일제의 ‘한일합병’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두번째 진술내용은 자신들이 주도한 ‘3·1의거’를 ‘폭동’ 운운하고 있는 그가 과연 ‘민족대표’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또 재판장이 ‘현재의 조선인의 지모와 실력으로 독립국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일본정부의 도움을 얻으면 독립국으로 설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결국 그가 말한 ‘독립국’은 일제의 통치를 사실상 인정한 범위 내에서의 ‘자치국’ 정도에 해당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이는 그가 나중에‘자치운동’에 나서는 것과 무관치 않다. ‘3·1의거’로 의거 당일 일경에 체포된 그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21년 12월 22일 일제당국의 ‘배려’로 가출옥하였다.‘3·1의거’ 이후 새로 부임한 사이토(齋藤實)총독은 그가 표방한 ‘문화정치’의 전위대로 최린을 이용할 작정이었다.그의 가출옥 배경에는 사이토의 정치참모인 아베(阿部充家,‘京城日報’사장 역임)의 공작이 있었다. 그가 가출옥한 직후 아베가 사이토에게 보낸 편지에 ‘…오늘날의 형세로보아 민원식·선우순 따위의 운동으로는 도저히 일대 세력을 이룩하기는 어렵고,간접사격으로…일을 꾸미자면…여기에는 이번에 가출옥한 위인들 중 최린이 안성맞춤의 친구입니다…’(1921년 12월 29일자)라는 귀절이 보인다.‘기미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최린보다 앞서 가출옥(1921.10.19)한 육당 최남선이 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이번에 최린군을비롯하여 제군의 출감을 보면서 백열(柏悅)의 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특히 당사자들도 선생에 대해 깊이 감사드리고있습니다… ’(1921년 12월 25일자,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서 입수) 1926년 9월 그는 일제의 경비지원으로 구미 각처로 여행을 떠났다.당시 파리에 체류중이던 여류화가 나혜석(羅蕙錫)과의 염문이 떠돌던 시기가 바로이 무렵이었다.그 해 10월말 일본에 도착한 그는 다시 아베를 만나 “오늘날 조선의 독립이 불가능하다는데 확신을 하고 있으며 조선의회 설치가 조선민심의 안정을 꾀하는데 가장 긴요하고,나도 민중의 신임만 얻으면 조선의회의 한 사람이 되기를 사양치 않겠다”며 ‘조선자치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처음으로 ‘친일’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1933년말 ‘대동방주의(大東方主義)’를 내걸고 일선융합(日鮮融合)을 외치면서 부터다.이듬해 4월 그는 중추원 칙임참의가 되더니 8월에는 ‘시중회(時中會)’라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동아(東亞) 제(諸)민족은 일본을 맹주로 하여 매진할 것,특히 조선은 일선융합(日鮮融合)·공존공영이 민족갱생의 길’이라고 외쳤다. 37년 다시 그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 해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보도를 적극 독려하였다.이 무렵 그는 총독부의 전시 최고심의기구인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후방지원기구인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에 참여하면서 전쟁지원에 협조하기도 했다. 또 1941년 8월에 결성된 임전대책협의회 위원을 거쳐 10월 이 단체가 윤치호(尹致昊)계열의 흥아보국단과 통합,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탄생하자 단장에 취임하였다.징병제 선전과 학병권유에 앞선 것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일제 패망직전인 45년 6월에는 조선언론보국회라는 친일언론단체를 조직,회장으로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짧은 ‘항일’에 비하면 그의 ‘친일’은 길고 열렬했다.해방후 천도교측은 그의 죄를 물어 은퇴를 권고하였으나 그는 거부하다가 결국은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였다.반민특위에 구속돼 민족반역자로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 49년4월 20일 3회 공판 끝에 병보석으로 석방됐다.재판과정에서 그는 다른 피고인에 비해 비교적 솔직한 참회로 재판부와 방청객들로부터 동정을 샀다.심지어 그는 “민족앞에 죄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고 사죄해 법정안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6·25전쟁 와중에 납북된 이후 그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반민특위 재판과정에서 그는 친일한 동기를 ‘늙은 노모에게 불효를 할 수 없어 망명도,자살도 하지 못하고 일본 군문(軍門)에 항복했다’고 털어놓았다.결국 그는 부모에 대한 효(孝) 위에 나라에 대한 효,즉 충(忠)이 있음을 몰랐던 셈이다. 정운현
  • ‘경색정국 풀기’ 주도 與野 신경전

    설 이후에도 정국주도권을 겨냥한 여야간 ‘신경전’이 한창이다.대화정국과 정치안정을 위한 여권의 다짐은 요란하지만 정작 야권은 “지켜볼 일”이라며 냉담한 반응이다. 하지만 金大中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21일),국회정상화(22일)를 거칠경우 정치권에도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란 관측이 적지않다.야권이 정국정상화에 대한 민심을 외면하면서까지 정치적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여권 향후 정국의 ‘풍향계’는 단연 여야 총재회담의 성사 여부다.대치정국이 연장되느냐 또는 대화정국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느냐의갈림길인 까닭이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17일 “한나라당도 정치적 안정을 바라는민심을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출했다.야당쪽에 공을 넘긴 상태에서 여론을 통한 압박전에 돌입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권이 대화정국 복원에 채널을 맞추면서 전국정당화 작업은 당분간 물밑에서 이뤄질 전망이다.‘전국전당화=정계개편’이란 야권의 의구심을 굳이 자극하지 않겠다는 판단때문이다.“인위적이고 무리한 정계개편을 하지 않을것”이란 金대통령의 화해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대화정국의 분수령으로 보인다. 반면 여권의 화두인 정치개혁은 대화정국의 ‘종속변수’다.대치정국이 해소되지 않는 한 “4월내에 정치개혁을 마치겠다”는 여권의 의지는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하지만 아직 정치권이 대화정국의 급류를 타게되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게 국민회의측 주장이다. 국회·정당 제도개선 등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수 있는 사안이다.이에비해 의원들의 정치생명이 걸린 선거제도의 경우 여야간 벼랑끝 대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金元吉정책위의장은 “3월 내에 정치개혁의 큰 가닥을 잡는다는 목표로 여야 협상을 진행하겠다”며 조기매듭에 무게를 뒀다. ▒한나라당 설 연휴 마지막날인 17일 지도부의 기류는 여전히 싸늘했다.한결같이 “달라진 것은 없다”며 여권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정국을 풀긴 풀어야 하는데,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金大中대통령이 오는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정계개편 포기’를 명확하게 약속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여권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총재회담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辛卿植사무총장은 “金대통령이 한나라당을 깨지 않겠다는 약속을 천명해야 한다”고 화해의 조건을 분명히 했다.“야당을 깨기 위해 계속 때리면서 오히려 우리가 피하지 않는다고 딴소리를 하는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辛총장은 “우리로서는 총재회담을 해도 그만,하지 않아도그만,하나도 급할 게 없다”고 전제하고 “정국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부담은 결국 대통령에게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굳이 취임 1주년인 25일에맞추어 총재회담을 추진할 생각도 없다”고 덧붙였다. 河舜鳳총재비서실장은 “여권이 대통령 취임 1주년의 모양새를 갖추겠다는의미 대화라면 응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한마디로 실속없는 ‘들러리’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 지도부는 대여(對與)압박수위를 한껏 높였다.여권이 향후 협상 과정에서 정계개편설을 계속 흘린다면 원내외 병행투쟁의 기조에 따라 장외 규탄집회를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대통령 취임 1주년을 비판하는대토론회도 가질 계획이다.李會昌총재의 기자회견도 준비하고 있다.방송사쪽에 李총재의 ‘국민과의 대화’도 공식 요구했다.
  • 여야 정국정상화 본격 절충

    여야는 설 연휴 이후 다각적인 접촉을 갖고 정국 정상화를 위한 절충점을모색할 방침이다.그러나 정계개편 등 쟁점 사안을 둘러싸고 여야간 이견이뚜렷해 전망은 불투명하다. 국민회의는 조건없는 여야 총재회담을 통한 정국 타개를 꾀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정계개편 포기 선언’을 대화정국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국민회의 鄭均桓·한나라당 辛卿植사무총장은 17일 오전 전화접촉을 통해대화국면 조성을 위한 비공식 총장회담을 18일쯤 갖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여야 3당 총무회담들도 18일 회담을 갖고 22일부터 정상화시키기로 한 제201회 임시국회 의사일정을 협의한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설 연휴동안 대화정국을 바라는 민심을 확인했다”고 전제,“여야간 총재회담 성사와 정치 안정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본격적인 대야(對野)설득작업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 수뇌부 출동 ‘민생탐방’ 대결

    여야가 특히 민족대이동이 이뤄지는 설을 앞두고 민심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전국에 흩어져 있던 친지들이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설을맞아 여론과 민심이 집결되고 또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과 鄭均桓 사무총장,韓和甲 총무,金元吉 정책위의장은 10일 오전 한때 모두 서울에 없었다.趙대행과 당 3역 모두 지방순회에 나섰기 때문이다. 趙대행은 9일 오전에 대구에 도착해 10일 낮 대구를 떠날 때까지 27시간 동안 빠듯할 정도로 강행군의 일정을 이어갔다. 이 지역 언론인들과 대화의 시간을 세 차례나 가졌다.구청장과 군수 등 기초단체장,300여명의 대구시민 대표들과도 만나 거리를 좁히려는 모습을 보여줬다.양로원과 고아원 등 소외된 계층도 예방했다.趙대행은 “대구·경북(TK)의 발전을 위해 당과 정부는 노력하겠다”면서 “대구를 사랑한다”는 말까지 했다. 당 3역도 민심을 잡기 위해 지방을 순회하기는 마찬가지다.韓총무는 10일마산을,金의장은 울산을 각각 돌며 언론인을 만나고 지역 대표들과 대화의시간을 갖고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韓총무와 金의장은 11일에는 부산을함께 방문한다.경부선쪽만 관심을 쏟는 것은 아니다.전북도 지부장인 鄭총장은 10일 전주를 방문했다.영남권쪽만 관심을 쏟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어 텃밭인 호남권 방문도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趙대행의 대구행에는 嚴三鐸부총재(대구시 지부장),權正達 부총재(경북도지부장),柳在乾 부총재,鄭東泳 대변인,崔喜準의원이 동행했다.▒한나라당 李會昌총재는 이날 10일 동해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민생탐방’에 나섰다.장외투쟁 이미지를 ‘순화’시키고 정책야당의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속내다.설 민심(民心)을 다독이려는 의도도 담겼다. 李총재는 이날 속초,강릉,주문진을 돌며 지역어민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한·일어업협정 실무협상 타결로 인한 애로사항을 들었다.정책대안도 내놨다. 李총재는 간담회에서 “정부가 전문가나 어민대표를 참여시키지 않고 졸속으로 협정을 체결하더니 야당 의견까지 묵살,날치기로 처리했다”며 현 정권의 실정(失政)을 비판했다.李총재는 “우리 어민들이 주로 잡는 명태와 오징어는 ㎏당 400∼500원인 데 비해 일본의 복어와 도미는 ㎏당 4만∼5만원인데도 가격비교 없이 동량(同量)기준으로만 실무협상을 체결,어민피해가 늘어났다”며 “최소한 어획량의 하한선은 배려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李총재는 특히 “어민피해 보상·배상절차와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재협상 또는 수정을 추진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어업지원특별법’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어민들은 “한·일어업협정에 따른 오징어 어장상실로 경영수지가 악화되고 연안어장의 소·대형 어선간 생존권 다툼이 치열하다”며 “자금손실 보전이나 도(道)간 어획경계선 해제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앞서 李총재는 속초 인근 주요당직자 500여명과 가진 간담회를 통해 “민생의 고통을 덜고 정상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필요하다”며 여권에 대화정치 복구를 촉구했다.李총재는 이날 동해안 방문에 이어 11일에는 서울 독산동 환경미화원 작업현장과 소년의 집을 방문한다.12일에는 영등포시장을 둘러본다.
  • 여야 총장 오늘 정국정상화 회담

    ‘DJ비자금 폭로조작’증언으로 대치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은 11일 총장회담을 갖기로 해 정국정상화 여부가 주목된다.국민회의 鄭均桓,한나라당 辛卿植사무총장은 회담에서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처리 등을 포함한 국회정상화 및 총재회담 성사문제 등에 대해 현안타결을 시도할 예정이다.여야의 대화기류가 급류를 탈 경우 빠르면 설연휴 직후 총재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金正吉정무수석은 10일 “총무,총장라인을 통한 물밑접촉에서 본격적인 현안타결이 시도되지않겠느냐”면서 “국회정상화와 총재회담이 성사되도록 여건 조성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야 지도부는 설을 앞두고 지방 민심을 잡기 위해 지역나들이를 계속했다. 한나라당 李會昌총재는 속초 강릉지역 민생현장 방문 도중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장내투쟁에서 최선을다해나가겠다”며 대치정국을 해소할 뜻을 시사했다.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대구에서,韓和甲총무와 薛勳기조위원장,趙誠俊의원 등은 마산에서각각 여론주도층과 소외계층을 상대로 홍보전을 폈다.柳敏 rm0609@
  • 與,정계개편 포기선언 거부…총재회담 성사 늦춰질듯

    여권은 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등한나라당의 강경기류와 관계없이 향후 정치일정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또 여권 고위층이 총재회담 성사를 위해 ‘정계개편 포기’선언을 해야한다는 한나라당측 요구가 정치상식을 벗어난 요구라고 판단,받아들이지 않기로했다. 이런 가운데 여야 수뇌부는 각각 설을 앞두고 지방 민심잡기 행보에 나서거나 나설 계획이어서 총재회담의 성사는 좀더 늦춰질 전망이다.
  • 與野 설 앞두고‘장외대결’돌입

    여야가 극적인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는 한 장외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회의는 설을 앞두고 빠르면 3일부터 당지도부와 부총재단을 몇 개 조로 나눠 민생현장을 돌기로 했다.방문단은 지역여론이 흉흉한 영남지방을 집중 순회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鄭東泳대변인은 2일 “설 민심잡기 차원에서 저소득 소외계층을격려 방문하는 한편 수출현장과 실직고통의 현장을 찾아 민심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또 “야당이 장외집회를 통해 민생경제를 파탄시킬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대화정치로 복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朴洪燁부대변인도 이날 “한나라당은 당재정이 바닥 나 당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당직자들을 순환제로 무급휴직시키면서 어디서 돈이 나 장외집회를 계속 하는지 자금출처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여당이 ‘정계개편 포기’를 선언할 때까지 장외집회를 계속 하겠다고 주장했다.설날 전까지 인천을 비롯,1∼2곳에서 옥내외 집회를계획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야당 단독으로 소집한제200회 임시국회가 오는 6일 끝남에 따라 3∼4일 중 임시국회(201회)소집 요구서를 다시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吳豊淵poongynn@
  • 北間島 개척(秘錄 南柯夢:19)

    ◎“간도 개간해 영유권 회복” 은밀히 제의/관직 물러난 심선택,부국강병책으로 진언/고종,“뜻은 거창하나 재정연구뒤 착수” 지시/심,“삼도 어사삼으면 수령출척 충당” 아뢰니 “흉년에 민폐 끼칠라…” 물리치자 없던 일로 두만강 건너 이북의 땅을 북간도(北間島)라 한다. 지금 연변 조선족이 사는 곳이다. 이곳이 고조선과 고구려,그리고 발해의 옛 강역이었던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그토록 귀한 땅이 대륙의 이민족에게 넘어간 것은 고려때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그때 간도땅을 차지한 민족을 만주족,일명 여진족이라 하는데 여진족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워 중원을 정복하는데 성공한 민족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사학자 가운데는 여진족이 이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금과 청의 역사를 중국사에서 떼어내 한국사의 일부로 끌여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만일 계속 간도땅을 영유하고 있었다면 약소국의 설움을 맛보지도 않았을 것이요,일제로부터 침략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렇게 중요한 간도에 고종황제가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어느날 심선택(沈善澤)이 나(정환덕)를 찾아왔다. 이 사람은 전 동부승지 의평(宜平)의 아들이다. 지난해 엄귀인(嚴貴人:엄비)의 여동생에게 장가들어 외척이 되더니 그 인연으로 성주목사(星州牧使)자리를 얻어 나갔다. 그러나 겨우 일년이 지나 어머니 상(喪)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다. 상를 마친 뒤 아무 직업도 없이 있다가 드디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매우 좋은 일이 있소이다. 영감께서 황상께 아뢰어 꼭 성취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요,창업공신과도 맞먹는 일이니 생각이 어떠하십니까”라는 것이었다. 심선택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고 싶은것은 북간도 개척문제였다. 그래서 정환덕은 “순서대로 조용히 말씀해보시오”라고 말했다. “북간도는 원래는 조선 땅으로 사방이 4천리나 됩니다. 남이(南怡) 장군이 당시에 백두산의 북쪽인 중국 동부지역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고 여기가 조선 땅이라는 것을 밝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가보면 그 지역이텅비어 있고 관할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곳에 공사관(公使館)이나 영사관(領事館)을 설치해 중국과 조선이 서로 무역을 하고 버려진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면 부국강병책이 스스로 그 안에 있을 것입니다. 영감께서는 이 사업을 각별히 힘써서 주선해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북간도의 지도 한장과 북간도에 관한 사실을 조사한 서류 한 점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세종때 남이장군이 세웠다는 백두산정계비는 백두산보다 훨씬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하며,목격자도 많은데 일제가 폭파했다는 설이 있다. 그뒤 18세기초에 다시 청나라가 강요하여 정계비를 백두산 남쪽에 새로 세우게 되어 백두산 천지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 문제된 강이 토문강인데 청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 주장하고 우리는 두만강이 아니라 해란강이라고 주장했다. 심선택은 이같이 간도땅의 역사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종에게 건의하여 간도땅을 되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그런데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은 거창한데 재정이 어려워 섣불리 착수할 수가 없다. 아직은 보류하고 재정을 연구한 뒤 착수하기로 하자”고 분부하셨다. 그래서 심선택에게 상감의 교시가 이와같다는 뜻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상감의 교시가 비록 그와같다 해도 좋은 방도가 있으니 상감께서 우리일가 심상훈(沈相薰)을 불러 “북간도의 일을 심선택과 상의하여 보라고 처분을 내리시면 방도가 나올 것이니 다시 그렇게 아뢰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대궐에 들어가 다시 아뢰었더니 상감께서 심상훈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북간도 일은 심선택과 함께 상의해 처리하라”고 교시하시었다. 심상훈은 대한제국의 공신으로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심선택이 심상훈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심선택의 말에 문제가 있었다. 이에 심상훈이 심선택에게 “상감께서 북간도 일을 어른(심선택)과 상의해보라는 교시를 내리셨는데 무슨 방도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감께서 잘 여쭈시어 나를 북쪽 삼도(三島) 어사(御史)로 삼아 옛 식대로 마패(馬牌)를 가지고 현지 수령들을 출척(黜陟)하는 권한을 갖게 해주신다면 일년도 되기 전에 쉽사리 몇천만원은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북간도에 들어가 시설을 하면 재정의 부족은 근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찌 국고(國庫)의 돈으로써 경비를 낭비하는 일이 있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농민들은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는 많이 이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역경을 딛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청나라의 강압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문화와 의복을 지켰다. 청나라의 관리들은 한국농민들에게 머리를 깎고 청나라 옷으로 갈아입으면 토지소유권을 준다고 유혹하였으나 백의민족으로서 긍지를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대한제국 정부는 1902년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범윤(李範允)을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임명,파견하였다. 이 때문에 심상훈과 심선택은 의견충돌이 일어나 각자 화를 내고 헤어졌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심선택은 국가의 일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탄한들 어찌하겠는가. 그 뒤 심상훈이나를 찾아와 “북간도의 일은 다시 여쭈지 말라”고 단단히 요청하였다. 그리고 심상훈이 황상께 입대해서 아뢰기를 “신(臣)이 저의 일가 심선택의 말을 들어보니 북쪽 삼도(三島)백성의 재산을 거두어서 북간도를 개척하자고 하기 때문에 ‘민간의 재정이 고갈돼 있고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한데 이러한 때를 당해 저같은 일을 하고자 한다면 일이 성취되지 않을뿐 아니라 도리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니 서로 관계하고 싶지않다’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니 황송한 마음은 모두 여쭈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알았다”고 하시었다. 이에 심선택이 나에게 찾아와 말하기를 “저 일가 사람 심상훈이 나의 말을 믿지 않고 이와같이 반대하고 있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라고 했다. 내가 대답하기를 “상감께서 처음부터 즐겨하지 않았기 때문이요,심상훈이 반대한 것이 아니니 차차 일의 형편을 보아가며 도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하니 심선택은 물러가고 말았다. 독도는 우리땅이라 했듯간도도 우리땅이었다. 우리 농민들이 개척한 땅이어서 이름을 간도(墾島)라 불렀던 것인데 일제가 ‘사이 간’자로 바꿔 간도(間島)라 명명했고 1909년에 마침내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땅을 중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 6·4 民意/향후 정국 전망

    ◎與,선거대승 민심업고 개혁 박차/국민회의 정국주도 강화/야 의원 영입 본격화… 지역연합도 모색/與大野小 이룬뒤 정치개혁 우선 추진 국민회의가 정국 주도권 장악을 서두르고 있다.6·4 지방선거 결과가 金大中 대통령과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이 예고한 정계개편의 동의어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국민회의 지도부는 5일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선대위 집행위 회의를 열어 정국운영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했다.이어 6일 趙대행이 金대통령에게 선거결과와 함께 국민회의의 정국주도 방안도 보고하고 당 총재인 金대통령의 지침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는 정국주도를 위해 무엇보다 정계개편을 필수조건으로 본다.趙대행이 이날 “이번 선거결과는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본격적인 경제회생과 개혁에 나서라는 국민적 당부”라고 전제,“앞으로 정치권에 변화가 있을 것이며 우선 의원들의 개별입당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趙대행을 비롯,鄭均桓 사무총장 韓和甲 총무대행 金相賢 의원 韓光玉 부총재 등 지도부는 이미 국민회의가 석권한 기초단체장 지역의 야당의원을 집중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최우선 대상 지역은 인천이다.이번 선거에서 국민회의가 10명의 기초단체장을 석권한 만큼 이곳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이 설 땅이 없어졌다는 판단이다.沈晶求 李源馥 의원 등 3∼4명이 거론된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신당도 주시하고 있다.한나라당과 달리 대선을 위해 급조된 만큼 영입 가능성도 높다는 판단이다.張乙炳 의원을 비롯한 朴範珍 元裕哲 의원 등이 영입대상 1순위로 꼽힌다.국민회의는 수도권에서 최소 10명의 영입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당의 관계자들은 “정계개편은 단순한 여소야대 파괴가 아니라 경제구조 및 사회 전반의 개혁이 목적”이라며 여권이 원내 다수를 확보하면 곧바로 정치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위해 여권은 국회의장 당적 이탈을 비롯,상임위 중심의 연중국회 운영 등 국회법 개정,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지역주의 조장 및 흑색선전 근절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국민회의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여서야동(與西野東)현상도 정치개혁의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국민회의는 그 한 방법으로 TK 혹은 PK 세력과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동서화합을 위해선 무엇보다 지역간 연합체제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 여야간 대화 강조 韓光玉 부총재(초점인물)

    ◎“야에 설자리를” 정국처방 제시 韓光玉 부총재가 움직인다.그동안 소리없이 서울시장 출마 준비에 몰두했던 韓부총재가 모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2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특강에서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국민의 정부’가 수행할 3대 개혁과업으로 도덕성회복과 지역갈등 해소를 통한 국민통합,계층간 불신 해소를 제시했다.무엇보다 정치권에 새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선 ‘21세기 새정치 국민운동’이 필요한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날 강연에서는 특히 “정책 협의를 위한 여야간의 대화”를 강조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야당에 설 자리를 줘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앞세워 현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자는 논리였다.자민련과의 단일화 협상과 노사정 대타협에서 효력을 발휘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새로운 ‘정국 처방전’인 셈이다. 이날 강연에서는 신정권의 주요 ‘고빗길’을 헤쳐나온 역전의 용사로서의 자신감이 배어있었다.하지만 대중 정치인으로의 성공여부는 아직 미지수라는 지적이 많다.자민련과의 단일화와 노사정 대타협은 근본적으로 소수 대표와의 정치적 협상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국민을 상대로 민심(民心)을 잡아야 하는 서울시장 선거가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정치적 시험대’가 될것이라는 분석이다.
  • “나에게 한표를” 마지막 호소/D­1:유세 현장

    ◎한나라당­“DJ 부산표의 반만 달라” 호소/국민회의­수도권 9곳 돌며 막판 세몰이/국민신당­영남·충청 넘나들며 민심 유도 ‘D-2’-선거를 이틀앞둔 16일 대선후보들은 서울과 수도권,영·호남 등 전략지역에 총공세를 펼쳤다. ○유세기간 첫 광주방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광주를 거쳐 서울과 수도권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선거운동 기간동안 대선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광주를 찾은 이후보는 이날 상오 송정리역에서 지지당원과 시민 등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거리유세를 통해 “대통령은 한 지방의 대변인이나 한을 푸는 사람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전제하고 “광주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가슴아프고 따뜻한 형제자매”라며 ‘한표’를 호소했다.이후보는 “저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으며 김후보가 부산에서 얻는 표의 반만이라도 나에게 달라”고 강조했다.이날 이후보의 광주 유세는 일부 우려와는 달리 별다른 충돌없이 진행됐다. 이어 서울로 직행한 이후보는 지하철 화곡역과신도림역,광명 클리프백화점,관악 로얄웨딩홀앞 광장,어린이 대공원앞 광장,상봉터미널,청량리역 광장 등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거리유세에서 이후보는 “이번 투표는 단순히 인기투표가 아니라 경제난국에 빠진 나라의 미래와 운명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를 판단하는 중대한 결정”이라며 “혼란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표를 줄여 당선될 사람,확실한 후보에게 표를 달라”고 역설했다.이후보의 큰며느리인 이혜영씨도 일부 유세를 지켜봤다. ○경제파탄 책임론 역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성남과 부천,수원,인천 등 수도권 9개 지역을 ‘강행군’하며 막판 세몰이에 나섰다. 김후보는 가는 곳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제2의 김영삼 대통령’으로 몰아세우며 ‘경제파탄 책임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경제를 망친 한나라당이 재집권할 경우 우리 경제는 완전히 거덜이 나게 날 것”이라고 강조한 뒤,“여당이 잘못했으면 야당에게 표를 던져 국민적 심판을 내려야 한다”며정권교체의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초보 운전자론’도 단골 메뉴였다.“이후보가 법관으로 훌륭할지 모르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초보 운전자에 불과하다”며 “아슬아슬한 IMF 벼랑길에선 초보 운전자보다는 경제와 외교를 누구보다 잘아는 내가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강의 기적 다시 한번”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팀은 대구·대전을 중심으로 경남북과 충남북을 넘나드는 대장정을 벌이며 막바지 유세전에 총력을 기울였다.재래시장과 상가·역광장을 순회하면서 지역 정서에 맞는 연설과 공약 등을 통해 민심잡기에 주력했으며 특히 이만섭총재와 박찬종 선대위의장이 지원유세에 나서 무게를 실었다. 이후보는 상오 7시부터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출근길 근로자들과 만나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해 듣고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거리유세를 시작했다.경산으로 옮겨 재래시장을 돌면서 상인들을 만난뒤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의 연설을 폈다.이후보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과 경제파탄의 주역에게 이 나라를 맡길수” 없다고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겨냥한 뒤 “집권하면 제2의 새마을운동을 통해제2의 한강의 기적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역설했다.
  • 국민신당 전의 살리기 나섰다/여론조사 3위 하락에 조바심 역력

    ◎21일 서울 필두로 권역별 필승대회 국민신당이 18일 월례조회를 갖는다.이인제 후보와 이만섭 총재,장을병 최고위원,박범진 사무총장 등 지도부에서부터 중하위당직자에 이르기까지 중앙당 사무처당직자 전원이 참석한다.지난 4일 창당후 처음이다.시·도별 선거대책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을 겸한 행사라지만 흔들리는 당심을 다잡기 위한 자리다. 실제로 국민신당은 대선구도의 변화조짐에 적이 동요하는 기색이다.겉으로야 물론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의 추월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있다.그러나 속내까지 편치는 않다.안으로는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지나 않을까 초조해하고 있다.하부조직일수록 조바심은 더욱 크다.사무처의 한 당직자는 17일 “신문을 펼치기가 겁난다.우리야 민심만 믿고 뛰는 처지 아니냐”며 뒤숭숭한 당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당의 사기가 저하될 조짐을 보이자 당 지도부는 당심의 동요부터 시급히 차단한다는 방침이다.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당내의 전의를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이후보의 행보도 같은맥락에서 활발하게 준비중이다.17일 최근 입당한 전직 군장성 출신들과 함께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아 ‘남북한 경제협력 방안’을 발표했으며 18일에는 이북 5도민회 임원과의 간담회,재향군인회 강연회 등을 통해 보수층 공략에 주력할 방침이다.이후보는 남북경제협력 정책발표를 통해 대북식량지원 사업을 이산가족에 대한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남북 왕래실현 등과 연계해 추진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5대 통일정책을 제시했다.아울러 ▲남북 군비제한 및 군비축소 ▲정경분리에 기초한 남북 경제협력실시 ▲문산­개성,철원­평강,간성­통천 등 휴전선 인접지역 자매결연 추진 ▲복지기금 조성을 위한 군유휴지 처분 및 전역자 취업알선을 위한 별도 기구 설치 등을 약속했다. 또 21일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경북,부산·울산(22일) 대전·충남북,경남(23일) 인천,강원(24일) 경기(25일) 등 권역별 필승결의대회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킬 계획이다.전체 253개 지구당중 정비되지 않은 136개 지구당에 대한 조직정비도 서두를 방침이다.박범진 사무총장은 “창당지원설과 영입작업 부진 등으로 지지율 역전현상이 빚어졌으나 이는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며 “필승결의대회와 조직정비 등을 통해 이인제바람을 일으킨다면 곧바로 상승세를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대선 D­30/“수성” “역전” 치열한 3각대결

    D­30일.대선을 한달 앞두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지지율 2위 굳히기에 나선 신한국당 이후보측은 이인제 후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려 대선을 김대중 후보와의 양자대결 구도로 몰고가기 위한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반면 부동의 1위를 유지중인 김후보측은 수성전략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며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측은 이회창 후보의 병역문제를 다시 들춰내며 공세를 강화,2위 복귀를 벼르고 있다. ◎신한국/2위 확고… 막바지 대역전극 자신/조 총재와 전국돌며 유권자 접촉/이인제씨 부도덕성 부각에 역점 ‘대역전극’ 시나리오가 차츰차츰 드러나고 있다고 자신한다.17일 문화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28.6%로 이인제 후보보다 1.7%포인트 앞선 2위로 나타나자 “이제 대세는 기울었다”는 분위기다.특히 16,17일 이틀간의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이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양자대결구도 상정시 이후보가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과 ▲세후보중 이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할 것으로 생각하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는 것 ▲그리고 유권자의상당수가 앞으로의 정국변화에 따라 지지후보를 바꾸겠다고 답한 점에 크게 무게를 싣고 있다.물론 이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의 하나다. 따라서 신한국당은 남은 30일동안 총력체제를 구축,대역전극을 반드시 일궈내겠다는 자세다.때맞춰 비주류 인사들이 이날 이후보 지지와 함께 선거운동에 적극 나서기로 하는 등 주변여건도 엄청나게 호전되고 있다. 이후보는 사실상 ‘러닝메이트’인 조순총재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깨끗한 정치와 튼튼한 경제’를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있게 전할 방침이다.이한동 대표 등 당지도부도 득표에 도움되는 곳이면 마다않고 달려가겠다는 계획이다.무엇보다 21일 대전 통합전당대회가 이후보 급상승 커브의 기폭제로 작용,23일 언론사의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이인제 후보를 크게 따돌리고 2위를 확고히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선거기획팀은 후보등록전까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을 10%로 떨어뜨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그래야만 이인제 후보의 사퇴가능성이 커진다는 판단에서다.만약 이후보가 끝까지 가더라도 14대 대선당시 국민당 정주영 후보처럼 이후보의 득표를 5백만표 이하로 묶어 두기 위해선 지지율을 반드시 10%대로 하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이후보에 대한 공세도 치밀하게 준비중이다.그의 부도덕성과 수권능력 부족을 집중 부각시킬때 지지율은 급락할 것으로 분석한다.이를 위해 이후보와 김현철씨간의 커넥션에 포카스를 맞춘다는 복안이다. ◎국민회의/TV합동토론·방송연설로 승부/20∼30대 여성 젊은층 공략 강화/개혁·인간적 이미지 부각에 진력 김대중 총재는 지난 15일 부산에서 시작한 지역별 필승전진대회를 17일 수원,21일 인천,22일 대전·충청에 이어 23일 대구·경북에서 마무리한뒤 선거운동기간에는 TV토론회와 방송연설로 승부를 건다는 방침이다. 김총재는 특히 개정선거법에 따라 3후보가 한자리에 나서는 TV토론회는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는 당 내분으로,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신당을 창당하느라 각각 시간을 보낸 반면 자신은 충분히 준비를 했다는 점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이와 함께 김총재의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20∼30대 젊은층과 여성에 대한 공략을 강화하기로 했다.김총재가 최근 ‘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내가 사랑한 여성’ 등 2권의 가벼운 에세이집을 펴내고,16일에는 교보문고에서 사인회를 가진 것도 젊은층과 여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전략의 하나다. 젊은층은 김총재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박태준 의원의 이른바 ‘DJT연대’에 호감을 느끼기보다는 거부감이 크다.또 여성은 역대 대선에서 남성에 비해 10% 가량이나 적은 지지율을 보여준 김총재의 ‘아킬레스건’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의 보수·강성이미지를 탈색시키고 개혁적·인간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진력한다는 계획이다.당내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21세기 푸른정치 모임’은 이미 금융실명제 존폐문제에 대해 개혁적 목소리를 낸데 이어 이 모임의 서울법대 출신 의원들은 17일 밤 서울대총장을 지낸 이수성 전 신한국당 고문을 한남동 자택으로찾아가 정파를 떠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여성우대’를 실증하기 위해서 각종 대회에서 단상의 자리는 지역의 여성인사들에게 집중 배려하고 있다.또 18일부터는 신낙균 부총재 주도로 원주와 대구,서울,인천,부산에서 ‘지역별 여성전진대회’를 열어 여성지지율을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국민신당/병역공세 재론… 막판 대반격 채비/경제살리기·정책대결로 차별화/개미군단 앞세워 바닥민심 훑기 당분간 국민신당의 화살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에게 겨눠질 것 같다.이인제 후보와 2,3위 혼전양상이 뚜렷해진 만큼 후보등록 전까지 부동의 2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의 양자대결 구도만 구축되면 1,2위 싸움은 오히려 쉽다는 생각이다. 17일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이회창 후보를 견제할 카드로 병역문제가 재론됐다.김학원 대변인은 “이회창 후보 가족 병역문제를 확인중이며 근거를 확보하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국민신당측은 이회창 후보의 공군 법무관시절 병역기간 단축여부를 비롯,큰 아들 정연씨가 근무했던 대외경제연구원 신상기록카드 등 증거자료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신한국당의 이인제 후보 사퇴론에 맞설 대응논리로도 병역문제 외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3김적인 것’의 청산을 이슈화한다는 전략도 세웠다.3김정치를 측근가신,붕당패거리,밀실야합 정치로 규정하고 이회창 후보는 중간보스인 신한국당 김윤환 김덕룡 공동선대위원장에 업힌 후3김시대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공세를 퍼붓겠다는 의도다.국민회의와의 협공도 기대하고 있다. 큰 타격을 입힌 YS지원설에 대해서는 “대다수 민주계가 이회창 지원으로 돌아섰다는 것은 신한국당이 YS본당인 증거”임을 강조한다는 방침이다.그러나 지나친 YS와의 차별화는 부산·경남 표마저 잃을 수 있어 치고 빠지는 작전을 구사하기로 했다. 아울러 포지티브 캠페인도 내세워 국민 대다수가 피부로 느끼는 경제살리기 정책대결로 승부를 낸다는 방침이다.다소 부담은 있지만 금융실명제 폐지나 유보를 천명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이수성 전 고문과 박찬종 고문 서청원 의원 등의 영입도 후보등록 전후로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시·도별 선대위구성이 완료된 만큼 중앙선대위 지도부 구성을 조기에 마치고 국민신당의 상징인 개미군단을 내세워 바닥표 훑기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 신세대문화에 맞는 선거운동을/민용태 고려대교수·스페인문학(시론)

    15대 대통령선거를 100여일 남겨놓고 이번 여름 우리사회는 ‘임금님’선거 열기에 휩싸여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이 와중에 돈 안드는 선거를 위한 정치개혁이 여야간에 특위가 구성돼 법개정을 놓고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걱정하는 문제가 바로 선거에 설치는 돈 바람을 어떻게 막아내느냐 하는 것이다.우리 모두가 원하는게 돈이고,‘돈 안드는 선거’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싫다고 하면,이 사회에 살 권리가 없다.그렇다고 돈으로 민심과 표를 사려고 들면 용서할 수 없다.선거에는 직간접적인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게 마련이다.조직이 없는 후보가 선거에 성공할 수 없듯이,돈 없는 후보는 아예 정치를 생각할 수 없다.그러니까,‘돈 안드는 선거’를 갈망하는 우리는 선거에서 낙선을 갈망하는 우리라는 말이 된다. ○‘저비용 선거=낙선’의 역설 이런 역설적이고 갈등스러운 과제를 우리 사회는 캠페인이나 ‘부정선거방지운동’으로 대응하고 있다.예를 들어 ‘뇌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선거자금 안받고 안 주기 운동’을 펼친다고 할 때,과연 이런 운동이 이 사회의 돈에 관한 이런 역설적 현실을 얼마나 막아낼수 있을까.이런 운동자체가 또다른 형태의 정치세력 형성을 위한 움직임이 되지는 않을까.이런 운동 또한 돈과 조직이 없으면 팸플릿 하나도 배포할 수 없으니,그냥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TV를 통한 선거운동으로 제한하고,대중집회를 줄이는 방안이 이야기되었던 걸로 안다.유권자를 만나고 모이게 하는 데 돈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많이 보아온 우리이기 때문이다.어떻든 이런 ‘돈 안드는 선거’에 대한 입법은 시급하다.“법은 어기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고는 하나 법이 만들어지면,우선 국가경제와 입후보자들의 부담을 줄일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무차별한 경쟁심리에서 무한정하게 들어가는 돈은 나라를 위해서는 물론 어느 후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따라서 모든 정치인들,후보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서로 돈 안드는 방향으로 선거를 치를 궁리를 모색해야 한다. ○∼말자식 캠페인 안먹혀 그러나 여기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 정치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는 것이다.그것은 “부정선거를 하지 말자!” “돈 선거를 하지 말자!”는 식의 지금까지의 ‘사회 바로잡기’식의 동의가 아니라,변화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읽을줄 아는,당장 효과적인 선거운동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제의이다.선거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돈을 받지 말라”고 명령해서는 안된다.또한 당선에 혈안이 되어 있는 후보들에게 표를 얻을 수단을 전부 포기하라고도 할 수 없다.그러나 돈을 받고도 그 후보에게 안찍는 사람이 많아가고,대중집회나 대세몰이 같은 어수선한 바람에도 바람을 타지 않는 국민들이 많아질 때,정치가는 그 생각과 선거전략을 바꿀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 유권자들의 의식은 세대에 따라서 커다란 차이가 난다고 보여진다.크게 나누어서 40대 중반 이후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의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대부분의 여성유권자와 젊은 세대의 정치나 선거에 대한 관심도는 기성세대보다 낮고,그 평가 기준도 현저하게 다르다.이들은 이성보다 감성에 더욱 예민하며,집단적 분위기보다 개인적인 취향을 존중하는 성격이 있다. 우리의 기성세대는 대가집 잔칫집에 가서 한데 어울리고 선거판에서 막걸리에 취하던 기억을 산다.마을에 라디오 한 대가 있으면 온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듣던 세대이다.그 뒤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동네에 활동사진을 집안에서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기계가 들어왔으니,저녁 먹으면 너도 나도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모여 들었던 세대들이다.따라서 당시의 구호처럼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는 의식이 이들에게 있다. 그 뒤 이런 의식은 학생운동이나 노조운동으로 스며들어 명맥을 유지해왔으나,거기에는 이미 정치수업이나 집단 이기주의적 성향이 스며든다.말하자면 개인의 영웅주의적 의식이나 우리 모두에게 이익되는 일을 하자는 개인주의적 사고가 합치된 것이다.젊은 세대는 이미 혼자 라디오를 듣고 집안에도 텔레비전이 두서너 개 필요한 세대이다.선거에 임하는 태도도 대세에 연연한다기 보다는 개인 선택에 익숙한 편이다. ○세대별 감성파악이 관건 지금 치러지는 선거는 이런 의식을 가진 신세대와 여성 인구가 과반수를 훨씬 넘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런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돈 많이 드는 대중집회나 동창회 따위의 ‘집단 마음 사기’보다는,매스컴이나 텔레비전에서의 이미지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된다.오늘 선거는 조직과 돈도 중요하겠지만,새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문화수업이 크게 승패를 좌우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 “왜 안뜰까” 고민하는 박찬종/신선도·패기 이인제씨에 추월 당해

    ◎지지도 만회 노려 3인연대에 총력 「이인제가 밉다」.신한국당 박찬종 고문의 경선 상황판에 적신호가 켜졌다.최근 여론조사에서 뒷심부족이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다.각종 여론기관이 조사한 대의원들의 여론조사에서는 4∼5위권에 머물러 있고,선두를 다퉜던 대중지지도마저 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이럴까.박고문측은 하향세의 주범으로 이인제 경기지사를 꼽는다.젊은 이지사의 패기와 신선도가 박고문의 상품성을 퇴색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4년여전 내걸었던 세대교체론은 이지사의 몫이 됐다.지프를 타고 전국을 누비지만 이지사는 택시로 달린다.5년전 젊음의 상징으로 입었던 「바바리 코트」를 다시 꺼내 거리에 설 수도 없다.그렇다고 경륜과 안정을 내세울 이미지도 아니다.색깔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측근은 『신한국당 입당후 책임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얻었지만 민심과는 다소 괴리된 측면이 있다』고 자평했다.당심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판단이다. 박고문측은 최근 하향세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우선 3인연대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이한동 고문 및 김덕룡 의원과의 후보단일화가 급선무라는 생각이다.
  • 반이진영 입장/「이 대표 대리언급」에 찜찜한 반응

    ◎“갑자기 총대 왜맸나” 밀약가능성 제기/김심지원 업고 대세론 확산될까 경계 신한국당 반이회창 진영의 대선예비주자들은 이대표가 김영삼 대통령을 대리해 대선자금문제를 언급한 것이 향후 경선가도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물론 김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는 것보다 이대표의 입을 빌린 해법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그러나 당론과는 달리 「고백론」을 제기,김대통령을 몰아세우는듯 했던 이대표가 이처럼 「총대」를 맨데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주장한다. 설령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에 의해 이대표의 언급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이 김심의 이대표 지원과 이대표의 「대세론」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특히 이런 분위기가 자신들이 줄곧 주장해온 대표직 사퇴문제에 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오는 29일 대선주자들의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생각도 가다듬고 있다. 이한동 고문은 『이제는 국민의혹 해소차원에서 국회 국정조사특위를 구성,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한 측근은 『지난 18일 반이 5인회동에서 밝힌 입장과 다른 것이 없다』고 의미를 축소하면서 『이대표가 고백론을 주장하다가 갑자기 선회한 배경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밀약 가능성을 제기했다. 박찬종고문은 『대선자금은 신한국당 당직자와 당원이 공동연대책임을 져야할 사안으로 김대통령에게만 떠넘길수 없다』고 공동책임론을 재차 강조하고 『그러나 이번 일과 대표직 사퇴는 엄격히 별개의 사안』이라고 못박았다.이홍구 고문도 『적절한 시기에 여야영수회담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토록 해야할 것』이라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김덕룡 의원은 『이대표가 고백론을 철회하고 이제라도 당론에 따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내용을 보면 이미 당내에서 제기된 해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평가절하했다.
  • 북에 6∼7월 남침설 팽배/WP지 보도

    북한군이 오는 6·7월쯤 남한을 공격한다는 루머가 북한사회에 팽배해 있다고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여행객의 말을 인용,워싱턴포스트가 9일 보도했다. 포스트는 이날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 사는 북한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다룬 특집기사에서 『북한에는 오는 6·7월 남한과의 전쟁 루머들이 나돌고 있으며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 전쟁을 대비한 땅굴파기와 은신처 마련을 독촉하고 있다』고 기차편으로 최근 평양을 다녀온 익명의 북한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그러나 이 여행객은 북한이 주민들을 전쟁준비에 몰아 세우는 것이 진짜 전쟁준비를 위한 것인지,아니면 기아로 흉흉해진 민심을 다루기 위한 전술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여당은 위기극복의 주체(사설)

    신한국당이 지난 27·28일 이틀동안 소속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개최한 연찬회는 내부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상황이 어려운 시점이어서 국민들의 적지않은 관심을 끌었다.난상토론을 통해 심기일전의 결의를 다지고 세비 10%반납,해외여행시 좌석등급 낮추기 등 근검절약에 앞장 설 것을 밝힌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시국에 대한 위기의식이 표출되고 야당 못지않은 강경한 주장까지 나오는 등 고민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위기수습과 국정운영의 주체로서 철저한 자성과 실천적방안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논의내용을 보면 어떻게하면 국민의 고통과 나라의 어려움을 해결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하면 당의 어려움을 피하고 당의 위상과 주도권을 강화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진 인상이다.피해자나 국외자처럼 위로만 책임을 돌리지 않고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고 적극적인 국민설득과 헌신봉사에 나서는 자세에서 위기수습 때까지 대권논의를 자제하고 대통령의 주도력을 단합과 결속으로 뒷받침한다는 결의를내놓았다면 국민들에게 안도와 희망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민심회복을 위해서는 야당 못지않은 인기영합전술을 쓰고 싶겠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누워서 침뱉기식의 내분이 아니라 책임과 단합이라는 여당성을 발휘해야 한다.여당에서는 흔히 대통령이 당과 내각에 권한을 위임하거나 대통령을 딛고 가야 정권재창출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동안의 경험을 보면 오히려 국정의 혼란과 위기상황을 가져올 위험이 대단히 크다. 임기말에는 대통령의 구심력 약화로 여권의 분열과 기강해이,그리고 정치적 불안이 나타나기 때문에 여당이 대통령한테 힘을 실어주어 무력화를 막아야 정치안정과 여당입지의 확대가 가능한 것이다.대권경쟁에 따르는 당의 분파작용을 자제하고 대승적인 협력과 결속이 긴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여당은 위기극복의 주체적 책임을 다함으로써만 민심을 돌릴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 청와대 총재회담 가능성/야,대여공세 자제… 시국해결 대화 모색

    한보사태와 김현철씨 문제 등 최근의 시국문제 해결을 위한 초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국민회의가 무차별 대여 공격을 자제할 뜻을 밝혀 여야 정당총재간 청와대회담으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관련기사 6면〉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25일 『여야 모두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검찰수사나 국회청문회와는 별도로 다른 방향에서 국가장래를 생각하는 방안을 생각해볼수 있다』고 김영삼 대통령과 야당총재간 청와대회담 추진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도 이날 『한보사건,현철씨,검찰,박태중씨 등 대여 공격자료는 많으나 공세적 논평이나 성명은 내지 않겠다』고 밝히고 『민생안정,민심안정,경제심리적 공황상태 안정을 위해 야당이 할 일을 찾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국당 이윤성 대변인은 국민회의가 정쟁을 자제할 뜻을 밝힌데 대해 『설만을 주장하는 폭로전을 지양하고 뒤늦게나마 국정과 민심안정에 공당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일단 평가한다』고 환영논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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