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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득 불평등·계급 격차… 우리 시대 ‘잔혹한 민낯’

    소득 불평등·계급 격차… 우리 시대 ‘잔혹한 민낯’

    재미 작가 이창래(49)는 새 장편 ‘만조의 바다 위에서’(On such a full sea)에서 미래의 미국 사회를 재건축했다. 숨 쉴 수 없는 공기와 마실 수 없는 물, 황무지로 시작하는 소설 속 미국은 상중하 계층으로 분리돼 살아가는 계급사회다. 하지만 이야기로 걸어 들어갈수록 소설은 소득 불평등과 계급 격차 등 결국 우리 시대의 잔혹한 민낯을 벗겨낸 신비로운 우화임이 드러난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내며 발표한 다섯 편의 장편으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계 미국 작가다. 특히 지난 1월 이번 소설이 출간된 직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영미권 언론들은 코맥 매카시, 조지 오웰, 올더스 헉슬리 등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이름난 작가 군단에 그의 이름을 추가했다. 소설 속 미래 사회는 엘리트층이 사는 차터, 차터 지역에 댈 먹을거리를 키우고 생산하는 B-모어, 버려진 하층민이 살아가는 ‘자치주’, 이렇게 세 곳으로 나뉜다. 상류층 생활의 집약판을 보여주는 차터에선 전염병으로 사육이 금지된 애완동물 대신 애완인간들을 취미로 키운다. B-모어에선 차터 사람들이 시키는 일만 하며 먹고사는 것에 자위한다. 전기에 하수도 시설마저 열악한 무정부 상태의 판자촌, 자치주는 영화 ‘설국열차’ 속 ‘꼬리칸’을 연상케 하는 비참한 삶이 이어진다. 삶의 질은 극과 극이지만 세 지역 모두 ‘C-질환’에 대한 공포에 짓눌려 있다는 점은 같다. 다만 먼저 죽고 나중에 죽는다는 것뿐이다. 소설은 차터 사람들이 먹을 물고기를 키우는 중국계 잠수부 소녀 판으로부터 출발한다. 헌신적이고 균형감각을 갖춘 인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일인칭 복수 시점인 ‘우리’의 영웅으로 묘사되는 판은 담으로 둘러쳐진 계급사회를 박차고 상하를 모두 오가는 모험에 나선다. 계기는 C-질환에 면역성을 가진 것으로 판명 난 남자 친구 레그의 행방불명. 차터의 제약회사에서 연구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큰 레그를 찾아 자치주와 차터를 오가는 소녀의 대담하고 기묘한 모험이 소설의 골격을 이룬다. 각 사회에서 직면하는 죽음의 위기와 배신, 소중한 인연과의 만남 등으로 짜인 서사는 치밀한 조직감과 사회에 대한 날 선 시선으로 묵직한 울림을 준다. 가상의 미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한쪽에선 무감각해질 정도로 넘치고 한쪽에선 턱없이 부족한 음식, 교육, 의료, 고용 등의 문제는 우리 현실과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았다. ‘미래의 우화’를 이끌어가는 작가의 문체는 추레하고 잔혹한 풍경마저 서정적이라는 착각을 일게 할 정도로 표현이 아름답고 묘사가 생생하다. B-모어 사람들을 총칭하는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특징이다.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설화처럼 쓰려 했다”는 게 작가의 의도다. 최고급 제품과 음식, 서비스가 차고 넘쳐도 무료하고 불행한 차터, 차터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B-모어, 죽음이 일상이 된 자치주. 미래의 공동체는 어느 곳 하나 기댈 곳도 희망을 품을 곳도 없다. 하지만 작가는 오직 ‘사랑’을 찾아 위험의 행로를 감행하는 주인공을 통해,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쓴 ‘줄리어스 시저’의 한 대목으로 우리를 응원한다. ‘인간사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법/밀물을 타면 행운을 붙잡을 수 있지만/놓치면 우리의 인생 항로는 불행의 얕은 여울에 부딪쳐/또 다른 불행을 맞이하게 되겠지/지금 우린 만조의 바다 위에 떠 있소/지금 이 조류를 타지 않으면/우리의 시도는 분명 실패하고 말 거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미래를 창조하는 학과] 한국폴리텍대학 원주캠퍼스 의용공학과

    [미래를 창조하는 학과] 한국폴리텍대학 원주캠퍼스 의용공학과

    한국폴리텍대학 원주캠퍼스 의용공학과는 우리나라 의료전자 직업교육부문 가운데 유일한 학과로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들을 길러내는 특성화 학과로 자리 잡았다. 1년 과정 의료전자(30명)와 의료기기제작(30명) 두 개 과정이 운영되며 배출인력보다 수요가 많아 공급이 달린다. 70~80% 학생들이 기존 2~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이곳 의용공학과를 찾아 실무를 익힌 뒤 배출되다 보니 어학, 인문학, 공학, 간호학, 생물학 등 자신이 전공한 학과에 의용공학 실무까지 익혀 졸업하면서 의료기기제조 관련 기업체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국내 최고대학을 졸업한 학생들도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응용공학을 배우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입학경쟁률도 해마다 2대1이 넘는다. 현재 과정 중에 있는 추설화(26)씨는 간호학과를 졸업해 간호사 자격증이 있지만 단순 간호사 취업보다 의료기기 회사 건립을 꿈꾸며 의용공학과에 재입학해 벌써 국내 굴지의 의료기기회사에 취업이 확정됐다. 추씨는 피부미용장비 제조업체에서 교육부문을 담당한 뒤 기업체 건립 꿈을 향해 한 발씩 나가고 있다. 국내 4년제 최고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한 박모 학생, 4년제 대학에서 중국어와 일어를 전공한 다른 학생들도 자신이 배운 전공에 의료공학을 접목한 뒤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열심이다. 학생 대부분은 과정 동안 사무자동화산업기사, 의용산업기사, 컴퓨터설계 기능사 등 의료공학 관련 각종 자격증을 취득한다. 이곳에서 배우는 수업은 전자계열의 의료전자반과 기계계열의 의료기기제작반으로 나눠 지난해까지 별도의 프로젝트로 진행돼 왔지만 올해부터는 두 개의 직종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이는 의료기기제작 학생들은 의료기기 본체를 설계하고, 의료전자 학생들은 내부에 들어가는 회로 설계와 프로그램을 배워 하나의 완성된 제품을 만들기 위한 협업 체제의 프로젝트 실습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업체에서 중시하는 협업과 의사소통을 미리 학교에서부터 배워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연내에 시범적으로 프로젝트 협업을 진행해 성과를 내면 내년부터 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더 발굴해 소규모로 여러 개의 프로젝트 과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프로젝트 협업은 일주일에 1~2차례 별도로 학생들이 모여 진행사항을 서로 의논하고 협력하며 진행된다. 현재 재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의료용 청소로봇 시스템 제작, 외과 수술용 로봇팔 시스템, 의료서비스 내 개인 이동수단 등이다. 수업 대부분이 실험실습기자재들로 이뤄지다 보니 병원이나 시중에서 운용되는 의료기기들을 직접 분해해 원리를 알고 직접 설계와 제작하는 과정을 배우고 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의료지식이 있어야 하기에 해부생리학, 의학용어, 생체물성학 등 의료관련 수업도 필수과목이다. 전문의 과정의 깊이 있는 과정은 아니지만 기본 이론과 의료용 기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수업과정이 이뤄지고 있다. 1년 과정이지만 수업은 3년 과정의 전문대 과목을 대부분 배우고 배출되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수업은 주 34시간으로 연간 1400시간에 이른다. 특히 이론보다 실무를 많이 배우고 있어 기업체들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과로 자리 잡고 있다. 의료기기산업이 발달한 원주지역에서 80%, 수도권에서 20% 취업하고 있다. 대학 내에 기업전담시스템을 두고 기업체를 수시로 방문하고 수요를 조사하는 등 의료기기업체들과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변화에 대응하고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런 정보들은 커리큘럼에 반영해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활용된다. 나승권 의용공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대부분 의료기기제조업체에 취업하면서 초봉은 4년제 대졸 이상은 3000만원, 2년제 전문대졸 이상은 2200만원 안팎을 받으며 만족도가 높다”면서 “더구나 정부에서 학비와 기숙사비를 무료로 제공하고 생활비와 교통비까지 지원해 주고 있어 알차게 미래를 설계하는 청년들에게 인기학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영화 多樂房] 다큐멘터리 ‘숲의 전설’

    [영화 多樂房] 다큐멘터리 ‘숲의 전설’

    간혹 내용과 상관없이 한 장의 강렬한 영화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아 영화관으로 걸음을 인도하는 경우가 있다. 핀란드 청정림의 생태를 담은 ‘숲의 전설’ 포스터는 자연 다큐멘터리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해 왔던 필자까지도 망설임 없이 시사회로 이끌었을 만큼 강렬하다. 옹골찬 새의 눈과 부리를 중심으로 몇몇 출연 동물들이 모자이크된 포스터 이미지는 야생 본연의 카리스마를 내뿜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더위에 지친 도시인의 심신을 치유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개미부터 맹수, 맹금에 이르기까지 생명력으로 가득한 핀란드의 신령한 숲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숲의 전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숲의 탄생 및 각종 생물들에 대한 설화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다큐멘터리다. 때문에 내레이션을 통한 스토리텔링과 편집의 묘(妙)는 보이되, 다큐의 오랜 화두인 조작이나 속임수 따위는 별로 여지가 없을 만큼 동식물의 단편적 이미지들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작품의 진정성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과 신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장장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카메라에 담아낸 대자연의 기록은 웬만한 픽션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다. 또한 장엄한 숲의 사계를 관조하고 있노라면 철학자가 된 듯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충만한 깨달음이 인다. 한시도 멈추지 않는 숲의 분주한 움직임은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며 돌아가듯 생태계를 작동시키고, 이것은 인간계를 포함하는 우주의 질서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즉각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역시 야생 동물들의 클로즈업 샷이다. 이 영화에는 다람쥐, 올빼미, 딱따구리, 사슴, 호랑이, 곰 등 동화 혹은 애니메이션의 단골 캐릭터들이 총출동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낸다. 스크린에 꽉 찬 동물들의 얼굴은 인간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다. 그림으로 만나왔던 동물들의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이 그다지 과장되거나 미화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아기 호랑이 두 마리가 뒹굴며 놀다가 나란히 카메라 방향을 응시하는 장면은 인간의 묘사로는 부족한 뭉클함과 경이로움을 전달한다. 먹고, 자고, 생육하는 것 외에는 여유롭기만 한 그들의 미니멀한 일상에서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진정한 행복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숲의 전설’은 북유럽 신화와 민담을 통해 나무와 동물을 섬겼던 고대인들의 행위가 토테미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고대인들은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집단적 신앙으로 봉인했던 것이다. 숲과 대비되는 문명의 이미지나 환경파괴에 대한 쓴소리는 하나도 없지만, 고대인의 지혜와 단절된 현실이 떠올라 각성할 수밖에 없었다. 짜릿한 여름철 블록버스터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 관객들, 휴가도 못 떠난 바쁜 직장인들과 북유럽의 대자연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힐링 무비다. 24일 개봉. 전체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다시 뛰는 한국경제] 아모레퍼시픽, ‘코리아 뷰티’ 中에 전파… 年 30% 고성장

    [다시 뛰는 한국경제] 아모레퍼시픽, ‘코리아 뷰티’ 中에 전파… 年 30% 고성장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에 맞춰 열린 한·중 경제포럼에서 한국 대표 화장품 기업으로 초청돼 중국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소개해 시선을 끌었다. 화장 인구가 1억명이 넘어서고 연 10%의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에서 아모레퍼시픽은 매년 30% 고성장을 구가 중이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한류 덕이 크긴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서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선제적인 시장 진출에 있다. 1994년 선양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아모레퍼시픽은 선양·창춘·하얼빈 등 동북 3성을 중심으로 ‘마몽드’와 ‘아모레’ 브랜드로 K뷰티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2002년 진출한 ‘라네즈’(LANEIGE) 브랜드는 오늘날 아모레퍼시픽이 거둔 성공의 발판이 됐다. 120개 도시, 329개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라네즈는 지난해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설 정도로 중국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우뚝 섰다. 라네즈는 ‘설화수’, ‘이니스프리’, ‘에뛰드’ 등 아모레퍼시픽 자매 브랜드의 연착륙을 이끌었다. 중국에서의 지속 성장을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오는 10월 상하이에 ‘신생산연구기지’를 착공한다. 중국 내 최고 생산·연구·물류 기능 및 친환경 시설을 갖추고 연간 7500t의 화장품을 생산하게 된다. 이는 현재 중국 내 생산 능력의 16배에 달한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문화 단신] ‘日 설화·신화로 역사 왜곡’ 밝혀

    한·일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신화와 설화로 일본 학자들이 왜곡한 역사의 진실을 밝힌 책이 나왔다. 김화경 영남대 명예교수가 펴낸 ‘재미있는 한·일 고대 설화 비교분석’(지식산업사)이다. 저자는 일본 유학 시절 접한 북한 학자 김석형의 ‘삼한 삼국의 일본 열도 분국설’을 원용해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 학자들의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하는가 하면 설화의 비교 분석을 통해 일본 내 지역을 한반도 지역으로 왜곡하는 ‘일본서기’ 등 잘못된 기록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 ‘명수네떡볶이’ 가사, 귀에 착착 감기는 생활밀접형 가사로 네티즌들 관심 ‘훅’

    ‘명수네떡볶이’ 가사, 귀에 착착 감기는 생활밀접형 가사로 네티즌들 관심 ‘훅’

    명수네떡볶이 가사 명수네떡볶이 가사가 네티즌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 박명수 신곡 ‘명수네 떡볶이’가 푸드송계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개그맨 박명수가 김예림과 부른 신곡 ‘명수네 떡볶이’가 16일 주요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명수네 떡볶이’ 가사는 ‘맵고 달콤한 여기 명수네 떡볶이’, ‘속이 꽉 찬 김말이 바삭바삭 오징어 튀김’ 등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조미료는 절대…… 조금 넣어’, ‘돈이 없는 것은 니 사정 우리 가게도 불경기’ 같은 박명수 특유의 직설화법도 드러나 있다. ’명수네 떡볶이’는 박명수가 직접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곡으로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 김예림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이 곡의 하이라이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백석 詩전집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백석 詩전집

    ‘나는 북간에 혼자 앓아 누워서/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의원은…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고 한다.’(‘고향’ 중) 아파서 의원을 찾아온 시인에게 의원은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 않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의 병이 고향 상실에서 온 병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향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 푸근한 어머니가 있는 곳, 안식과 회복이 있는 곳이다. 백석이 이 시를 썼던 1930년대는 가난과 징병으로 가족의 해체와 이산이 발발했던 시기다. 일제강점기의 상황에서 고향이란 대체로 떠나온 곳, 잃어버린 곳이다. 원인은 다르지만 백석이 느꼈던 상실감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듯하다. 디지털 유목민이라고도 하는 현대인들은 대부분 고향을 상실한 채 도시 유랑민으로 살고 있다. 현대인은 가족의 해체와 이산을 숱하게 경험하고 있으며, 그것에서 소외와 고향의 결핍을 경험한다. 그래서 고향이 시골이든 도시이든 간에 방황하는 현대인들은 너나없이 고향에서나 맛볼 수 있는 안식과 모성적 위로를 꿈꾸는, 향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인지도 모른다. 시속 화자처럼 말이다. 현대인이 그런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사이버에 몰입하거나 중독에 빠지거나 소외나 폭력 등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처럼 백석은 상실의 헛헛함을 시인의 언어로 매만졌다. 백석은 1988년 북한문인 해금조치 후 재조명이 이루어지며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기도 했고, 토속적인 시 세계와는 달리 결벽증이 심한 멋쟁이였으며 잘생긴 외모의 모던보이였다. 1962년 북한의 문단에서 사라진 이후 1996년 작고할 때까지 농사꾼으로 살다간 백석. 월북한 것도 아니고 다만 만주를 유랑하다 고향 정주에 남았을 뿐인데,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온 것은 20년 조금 넘었고, 분단은 그의 생애와 시 세계를 우리 가까이 두지 못하게 했다. 백석은 주로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자연과 사람을 대상으로 시를 썼는데, 종종 어린 시절로 회귀해 바라보는 원초적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재현했다. 그의 시 한 편 한 편은 사진처럼, 영상처럼 이미지와 이야기가 또렷하게 그려지는 게 특징이다. 특히 평안북도 정주 관서지방의 정서를 환기하는 작품이 많다. 그래서 그곳을 가보지 않은 독자라도 백석의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북방의 어느 움막이나 골짜기에 서성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시에는 농촌공동체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사물, 풍속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결코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합일을 이룬 상태이거나 합일을 기다리며 모여 있는 존재들이다. 이는 시인이 민족적 원형을 시적으로 탐구하여 모국어로 보존하고 복원하는 것이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아내는 시인으로서 할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석은 무너진 시대 안에서 주체적인 정서와 자아를 모국어로 견고히 유지하려 했던 시인이었다. 시인의 시 세계는 시인의 역사전기적인 배경이 영향을 미치는데, 백석의 시도 유년기의 경험과 고향을 떠나 떠돌았던 경험 등이 오롯이 형상화됐다. 여우가 나오는 골짜기에 사는 가족이란 뜻의 ‘여우난골족’에서는 유년기의 경험을 토속적인 분위기로 그려낸다. 명절날 모인 일가친척의 모습을 유년의 화자의 시각으로 작품 전체에 동화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후각, 시각, 미각 등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한편, 평북지방의 방언과 토속적 소재들을 나열함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보존돼 있는 순수한 삶의 모습에 대한 향수를 그려낸다. 얼굴이 약간 얽은 신리 고모, 열여섯 살에 마흔이 넘는 홀아비의 후처로 들어간 토산 고모, 술에 취하면 토방 돌을 뽑겠다고 주정하는 삼촌 등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소박한 인물들이 펼쳐보이는 정경은 삶의 애환마저도 평화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고향 풍물의 회상을 넘어 공동체적 삶에서 건지는 생활의 힘을 드러내며 일제 식민지 속으로 사라지는 우리의 고유한 모습, 친족공동체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노래한 것이다. 백석의 시에는 향토적인 음식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가난한 시대의 굶주림에 대한 반응이며 민족적인 정서를 이끌어 내는 도구다. ‘… 또 인절미 송기떡 콩가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대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여우난골족’ 중)이나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가즈랑집’ 중)에서처럼 음식은 현재 몸에 남아 있는 과거이며 관계하는 대상들에 대한 추억이며 감각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재료다. 백석 시에 나타난 동식물명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족제비’와 ‘복족제비’를 구별하고 조개도 ‘가무락조개’, ‘곱조개’, ‘콩조개’ 등으로 세분화해 사용한다. ‘여우난골’만 보더라도 백석은 ‘어치’라는 새와 벌레 먹은 배인 ‘벌배’와 야생 돌배나무의 열매인 ‘돌배’와 산사열매인 ‘띨배’를 나열하며, ‘배’로 끝나는 말놀이까지 연상시키고 있다. 이러한 언어들은 자연과 합일된 삶을 꿈꾸는 시인의 시선이며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며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소망의 표현이다. 백석은 식민지 시대를 견디는 시인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제목이 편지봉투에 씀직한 것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누군가 외로운 자기에게 편지를 보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며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며 비극적 삶의 토양에서 시련을 견디고 제 모습을 지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떠올린다. 이는 식민지 시대를 사는 시인이 슬프고 모진 운명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다가도 한겨울에 모진 바람과 싸락눈을 꿋꿋이 견뎌내는 갈매나무처럼 자신의 품위를 지켜내기 위한 선언이다. 시인은 부모, 형제, 아내, 집마저 잃고 떠돌아 누가 편지를 보내도 받아볼 수 없었을 것인데, 이 편지를 몇 십년이 지난 우리가 받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문득 백석에게 붙이지 못할 답장이라도 쓰고 싶고, 내 내면을 고스란히 보이는 편지를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어진다. 백석은 유려한 모국어로 자연과 합일된 공동체적인 삶을 과거와 현재로 연결해 시를 썼으며, 그것은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 어루만짐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백석의 시를 읽다 보면 오래전에 잃어버린 전설적인 경이로움이 그득한 설화적 삶 속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 속으로 이끌리게 된다. 그 안에 있는 모국어의 아름다움, 토속적인 북방정서, 향토적인 서정세계, 자연의 마력이 건조하고 팍팍한 우리 삶을 마냥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백석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흰 바람벽이 있어’ 중)라고 자신을 위로하듯 우리가 시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일 것이다.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잃어버린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토속적인 민족 정서를 환기하며 공동체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것은 이 시대가 놓아버린 세계이며 우리가 외면하는 세계이며, 우리에게 안식과 치유를 주는 모성적 고향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은 회복해야 할 삶을 읽으며 고고한 위로를 받는 것이다. 시인은 어느새 우리를 이끌어 간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풍요로운 삶의 비밀과 자기 위로와 회복이 있는 곳으로.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정미홍 망언 “세월호 시위 성황당처럼 노란 리본…김구, 김일성에 부역” 발언 논란

    정미홍 망언 “세월호 시위 성황당처럼 노란 리본…김구, 김일성에 부역” 발언 논란

    ’정미홍 세월호’ ‘정미홍 망언’ ‘정미홍 발언 논란’ 정미홍 세월호 망언 및 정미홍 발언 논란이 또 파문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 23일 한 언론사 주최 워크숍에 초청강사로 강의를 한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대표는 세월호 발언뿐만 아니라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도 “김일성에게 부역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김일성 만세를 외쳤다”는 등의 발언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지방에서 개최된 한 언론사 워크숍에서 정미홍 대표는 약 25분 동안 강연을 했다. 강연 주제는 ‘대한민국 건국사의 진실과 오해’였다. 이날 정미홍 대표는 앞서 지난 5월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논란이 됐던 ‘세월호 추모집회 참가 청소년 알바 동원’에 대한 이야기를 또 꺼냈다. 당시 그는 트위터에 “많은 청소년들이 서울역부터 시청 앞까지 행진을 하면서 ‘정부가 살인마다, 대통령 사퇴하라’고 외쳤다”면서 “내 지인은 자기 아이가 시위에 참가하고 6만원 일당을 받아왔다고 했다, 참 기가 막힌 일”이라고 썼다. 이후 이 글은 ‘근거가 뭐냐’는 반발에 부딪혔다. 그러자 그는 몇 시간 만에 문제의 글을 삭제하고 대신 “어젯밤에 올린 트윗은 지인으로부터 들은 것이었지만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며 “이 엄청난 국가적 슬픔이 마무리될 때까지 절필하고 자중하며 애도의 마음만으로 지내겠다”는 사과의 글을 올렸다. 이 논란으로 경찰은 정미홍 대표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보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한 참석자가 제보한 강연 음성 파일에 의하면 이날 정미홍 대표는 당시 트위터 글을 삭제하고 사과한 이유에 대해 “선거 캠프에 영향을 줄까봐”라고 밝혔다. 당시 그는 6·4지방선거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새누리당 경선 참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 트위터에서는 ‘일당 6만원을 받고 청소년들이 시위에 동원되었다’고 주장하더니 이날 강연에서는 ‘세월호 시위에 나가서 100만원을 받았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내놨다. 정미홍 대표는 강연에서 “시위 나가서 100만 원 받아왔다, 그 얘기를 들었다. 선거캠프에 영향을 줄까봐 얼른 사과를 올리고 말았지만 그 자료를, 인터넷 알바 사이트에다가 시위에 참가하면 일당 준다고 광고하는 거 다 모아놨다. 이를 고소·고발해 조사를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애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책임 회사인)그 청해진(해운)에 가서 데모하지 않는다. (시위대는)대통령 물러나라고 하지 않냐”라면서 “전부 피켓을 들고 나와서 전국을 성황당처럼 노란 리본으로 만들어 놓고, 돌아오라? (죽은 사람이)어떻게 돌아와요? 이성을 찾아야 될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정미홍 대표는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도 망언성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총선거를 설명하면서 김구 선생을 언급했다. 정미홍 대표는 1948년에 실시된 총선거를 ‘1946년에 실시되었다’고 잘못 설명하면서 이 총선거를 백범 김구가 반대했다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지금 김구 선생이 최고의 애국자라고 되어 있지만 그분은 김일성에 부역한 사람이고 좌파 역사학자들이 영웅으로 만들어놓은 사람입니다. 김구는 시골 출신으로 아무것도 모르다가, 조선의 독립운동만 하다가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분단은 안 돼!’, 이래 가지고 이쪽(남쪽)에서 선거를 한다고 하니까 그냥 무단으로 김일성을 만나러 갔어요. 그랬더니 북한은 당시에 남한보다 훨씬 잘 살고 있어 김일성이 세 보이니까 김일성이 뭐라고 하든 무조건 ‘통일을 시키겠네’ 이렇게 묻어버립니다. 그래서 거기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고 했는데…” 정미홍 대표는 이어 1946년 미군정의 식량 정책 실패에 항의하며 쌀을 달라며 시작된 대구 10월항쟁과 1948년 여수·순천사건, 그리고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극히 보수적인 관점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들 사건이 ‘빨치산 공산주의 폭도들에게 경찰과 군인, 그리고 양민이 학살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정부가 공식 사과까지 한 제주 4·3사건에 대해서 정미홍 대표는 매우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제주 4·3사건은 폭도가 유공자 또는 희생자가 되어서 지금 4·3공원에 모셔져 있는데, 그 보고서를 만든 핵심 인물이 박원순입니다, 폭도들이 경찰의 목을 따고 공격했는데”라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정미홍 대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설화 사건을 일으켰다. 지난 2013년 7월에는 남성연대 고 성재기 대표 사망을 언급하면서 뜬금없이 “노무현보다는 10배는 더 당당하고 깨끗한 죽음”이라고 표현해 파문이 일었고, 이후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눈물’ 약속을 깨다

    ‘세월호 눈물’ 약속을 깨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국무총리를 새로 지명하는 대신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켰다. 정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61일 만이다. 사의 표명을 했던 총리가 유임되기는 처음이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총리로서 사명감을 갖고 계속 헌신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께 국가 개조를 이루고 국민 안전 시스템을 만든다는 약속을 드렸고, 이를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한 뒤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 총리와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가 중심이 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국정 과제와 국가 개조를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권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사의를 표명한 정 총리가 다시 기용됨으로써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책임을 지는 고위 공직자가 아무도 없게 됐다고 공격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과연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이후 국민이 바라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며 “유임이라는 미봉책을 거둬들이고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새 총리를 지명할 것을 촉구한다”고 논평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적폐를 뜯어고칠 수 있는 총리 후보자를 찾아 국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 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적 쇄신을 통한 새 출발과 ‘국가 대개조’라는 구호도 빛이 바래게 됐다. 청와대는 잇따른 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불거진 인사검증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인재를 두루 발굴하기 위해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윤 홍보수석은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을 둬 철저한 사전 검증과 우수한 인재 발굴을 상설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사수석실은 노무현 정부 당시 존재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된 기구다. 인사수석실이 부활하면 청와대는 3실10수석 체제로 확대 개편된다. 한편 정 총리는 “고사의 뜻을 밝혔으나 중요한 시기에 장기간 국정 중단을 막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가 있어 새로운 각오하에 임하기로 했다”며 “국가 개조에 마지막 힘을 다하고 필요 시 대통령에게 진언하겠다”고 밝혔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정홍원 총리 유임, 이명박 정부가 폐지한 靑 인사수석실 부활

    정홍원 총리 유임, 이명박 정부가 폐지한 靑 인사수석실 부활

    정홍원 총리 유임, 이명박 정부가 폐지한 靑 인사수석실 부활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낸 사의를 60일만에 반려하고, 유임시키기로 전격 결정했다. 사의표명을 했던 총리가 유임조치되기는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춘추관에서 한 브리핑에서 “정홍원 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총리로서 사명감을 갖고 계속 헌신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께 국가개조를 이루고 국민안전시스템을 만든다는 약속을 드렸다. 이를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다”면서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매우 큰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심끝에 오늘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정 총리의 유임을 결정한 것은 안대희-문창극 등 총리 후보자의 잇단 낙마 이후 현실화한 인선난에 따른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더이상 총리 인선에 발목이 잡혀있다가는 국정표류가 장기화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적폐를 뜯어고칠 수 있는 높은 도덕성을 갖춘 인사를 총리 후보자로 찾아 국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 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청와대가 내걸었던 국가대개조 모토도 총리유임으로 빛이 바래게 됐다. 또 윤 수석은 “앞으로 청문회를 통해 새 내각이 구성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 총리와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가 중심이 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비롯한 국정과제와 국가개조를 강력히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총리 후보자의 연쇄 낙마로 불거진 인사검증 실패를 보완하고 유능한 인재를 두루 발굴하기 위해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윤 수석은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을 둬 철저한 사전검증과 우수한 인재발굴을 상설화할 것”이라며 “인사수석이 인재발굴과 검증, 관리를 총괄하고 인사위원회 실무간사를 맡게된다”고 밝혔다. 인사수석실은 노무현 정부 당시 존재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된 기구다. 인사수석실이 부활할 경우 청와대는 3실10수석 체제로 확대 개편된다. 네티즌들은 “정홍원 총리 유임, 개혁한다더니 이게 뭐지”, “정홍원 총리 유임, 결국 내세울 사람이 없는 건가”, “정홍원 총리 유임, 앞으로 잘하면 되지 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이명박 정부가 폐지한 靑 인사수석실 부활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이명박 정부가 폐지한 靑 인사수석실 부활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이명박 정부가 폐지한 靑 인사수석실 부활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낸 사의를 60일만에 반려하고, 유임시키기로 전격 결정했다. 사의표명을 했던 총리가 유임조치되기는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춘추관에서 한 브리핑에서 “정홍원 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총리로서 사명감을 갖고 계속 헌신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국민께 국가개조를 이루고 국민안전시스템을 만든다는 약속을 드렸다. 이를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다”면서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매우 큰 상황인데 이런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심끝에 오늘 정 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정 총리의 유임을 결정한 것은 안대희-문창극 등 총리 후보자의 잇단 낙마 이후 현실화한 인선난에 따른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더이상 총리 인선에 발목이 잡혀있다가는 국정표류가 장기화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적폐를 뜯어고칠 수 있는 높은 도덕성을 갖춘 인사를 총리 후보자로 찾아 국정을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 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청와대가 내걸었던 국가대개조 모토도 총리유임으로 빛이 바래게 됐다. 또 윤 수석은 “앞으로 청문회를 통해 새 내각이 구성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 총리와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가 중심이 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비롯한 국정과제와 국가개조를 강력히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총리 후보자의 연쇄 낙마로 불거진 인사검증 실패를 보완하고 유능한 인재를 두루 발굴하기 위해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기로 했다. 윤 수석은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을 둬 철저한 사전검증과 우수한 인재발굴을 상설화할 것”이라며 “인사수석이 인재발굴과 검증, 관리를 총괄하고 인사위원회 실무간사를 맡게된다”고 밝혔다. 인사수석실은 노무현 정부 당시 존재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된 기구다. 인사수석실이 부활할 경우 청와대는 3실10수석 체제로 확대 개편된다. 네티즌들은 “정홍원 총리 유임, 개혁한다더니 이게 뭐지”, “정홍원 총리 유임, 결국 내세울 사람이 없는 건가”, “정홍원 총리 유임, 앞으로 잘하면 되지 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메콩강 따라 이어온 라오스 사람들의 삶과 문화

    메콩강 따라 이어온 라오스 사람들의 삶과 문화

    중국 티베트에서 발원한 4020㎞의 메콩강이 1500㎞에 걸쳐 남북으로 흐르는 땅 라오스. 메콩강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콘파펭 폭포를 이루고 최남단인 시판돈에서 4000여개의 섬을 만들어낸다. 23~26일 밤 8시 50분 EBS ‘세계테마기행’에서는 메콩강에 기대고 사는 라오스 사람들을 조명한다. 23일 1부(사바이디! 메콩)에서는 콘파펭 폭포에서 자신의 몸을 위험천만한 폭포에 내맡기는 어부를 만난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외줄을 건너가면서 생업을 유지하는 건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다. 국토의 80%가 산악지대로 이뤄진 라오스에는 공식적으로 49개의 종족이 살고 있다. 고도에 따라 크게 3개의 종족으로 구분하는데 저지대의 라오룸, 중간지대의 라오텅, 고지대의 라오쑹이다. 24일 2부에서는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왓 씨엥통에서 이들 부족들의 탄생 설화를 들어본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라오룸족의 성대한 결혼식을 엿본다. 2000명이 넘는 하객들과 화려한 전통의상, 라오스의 큰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전통춤 람봉을 추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식장엔 흥겨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25일 3부(내륙의 에덴동산)에서는 동남아 최대 크기만큼 많은 어획량을 자랑하는 라오스인들의 보물창고, 남늠 호수를 찾아간다. 매일 아침이면 남늠 호수의 상류에 있는 어판장은 시끌벅적하다. 서로 좋은 물고기를 가져가 팔기 위한 상인들의 치열한 삶의 전쟁이 벌어진다. 상인들의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나면 작은 물고기를 담는 상인이 있다. 이 물고기들로 젓갈을 만드는 이다. 젓갈 마을에서 라오스 사람들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젓갈도 만들어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미국내 한인 권익 강화… 풀뿌리 조직 상설화”

    “미국내 한인 권익 강화… 풀뿌리 조직 상설화”

    “미국 내 200만 한인의 정치력 신장과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풀뿌리 활동 조직을 상설화하려고 합니다.” 뉴욕·뉴저지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한인 유권자단체 시민참여센터(KACE) 김동석 상임이사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수십만 명의 회원에 지도부만 1만 5000명이 넘는 미국 내 최대 로비단체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와 유사한 성격의 상설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달 29~31일 워싱턴에서 미 전역 풀뿌리 활동가 300명을 초청해 제1차 ‘풀뿌리 활동 콘퍼런스’를 연다. 이번 행사는 김 이사가 관여했던 2007년 미 하원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7주년에 맞춰 기획됐다. 그는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노력했던 단체들뿐 아니라 각지의 풀뿌리 활동가와 한인단체 관계자, 지역구 연방의원들을 초청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연방의원 20여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한인들의 풀뿌리 정치 참여를 주제로 한 첫 콘퍼런스는 풀뿌리 활동 교육과 한국인 전문직 비자쿼터 개설 법안(HR 1812) 통과를 위한 로비 활동 등으로 이뤄진다. 로버트 메넨데즈(민주) 상원 외교위원장, 에드 로이스(공화) 하원 외교위원장의 기조 연설도 이어진다. 김 이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안호영 주미 한국대사와 성 김 주한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 등도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의 외교적 대립이 확대되면서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이 더욱 긴요해지고 있다. 특히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소수계가 요구하는 어젠다가 반영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행오버’와 술 한류/정기홍 논설위원

    가수 싸이가 그제 발표한 뮤직비디오 ‘행오버’(Hangover)에서 우리의 술 문화를 익살스럽게 풀어내 다시 화제다.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에 이은 3탄 ‘대디’(Daddy)의 예고편으로 ‘숙취’란 타이틀이 암시하듯 폭탄주 문화를 대놓고 까발렸다. 폭탄주 술잔 쓰러뜨리기와 러브샷 대결, 공공장소 소란 등 가히 도발적이다. 강남스타일과 같이 ‘B급 정서’다. 아니나 다를까. ‘유쾌함’과 ‘저질스러움’으로 호불호가 갈린다. 하루 만에 2000만뷰를 기록해 일단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술은 인간이 만든 걸작 중의 하나다. 인간사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술은 잘 마시면 약이지만 잘못 마시면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주신(酒神)은 두 얼굴인 셈이다. 신만이 마실 수 있는 술을 인간이 넘보아 이같이 갈라 놓았다는 속설도 있다. 이런 이유로 ‘천상(天上)의 음식’으로 불린다. 술 일화는 인간 역사와 괘를 같이한다. 고려 때의 문인 이규보는 미관말직이었으나 당시 세도가였던 최충헌 앞에서 술에 취한 채 시 한 수를 지어내 출세길에 올랐다. 주선(酒仙) 이태백은 ‘술잔을 들고 달에 묻는다’며 술 사랑을 표했고, 주성(酒聖)으로 불리는 두보도 조정일을 마치면 으레 주막에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고 한다. 두보는 인생 칠십에 술로 번뇌를 잊으니 즐겁다고 읊었다. ‘인생칠십고래희’란 말이 바로 그의 시 ‘곡강’(曲江)에서 나왔다. 그는 ‘고희’(古稀)를 한참 남긴 59세에 병사했다. 술의 탄생에 얽힌 설화 또한 적지 않다. 그중 특히 설득력이 있는 것은 곡류 등에 천연효소나 미생물이 번식하면서 발효돼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원숭이들이 오목한 곳에 산포도나 머루를 따다 넣어두었다가 한 달쯤 뒤에 와서 먹었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아마존 부족의 처녀들이 사탕수수 줄기로 이를 닦은 뒤 쌀을 씹어 술을 빚었다는 ‘치치술’ 설화도 눈길을 끈다. 음주 스타일도 다양하다. 보드카가 대중주인 러시아는 우리와 제일 가깝다. 오래 앉아 많이 마시고, 큰 잔에다 술을 채워 돌려서 마신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른바 ‘세숫대야주’다. 고량주를 즐기는 중국도 우리처럼 호주가가 많고, 술 잘 마시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에서는 2차 술자리로 옮기는 일이 거의 없고 잔을 권하지도 않는다. 행오버는 강남스타일처럼 정제되지 않은 하위·저항의 문화를 표방한다. 날 것 그대로의 감성 코드로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린다. 그런데 폭탄주에 취해 변기에 구토하고 사우나에서 몸을 푸는 장면을 세계인은 어떻게 볼까. 음식과 가요로 버무린 행오버의 ‘음주 코미디’가 한류 확산에 미칠 영향이 벌써 궁금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사설] 여야 7월 재·보선 앞서 6월국회 돌아보라

    19대 후반기 국회가 이번 주 본격 가동에 들어가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6·4 지방선거는 야당의 ‘세월호 정권 심판론’과 여당의 ‘박근혜 대통령 구하기’가 격돌했지만 민심은 어느 쪽에도 승리나 패배를 안겨주지 않은 절묘한 균형을 선택했다. 여야가 힘을 합쳐 난국을 타개하라는 국민들의 명령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야는 국가가 처한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주요 국정 어젠다 관련 법안을 처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국회는 내일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고, 오는 11~12일에는 후반기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들을 계획이다. 그러나 원구성 협상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정보위원회를 상임위원회화하고, 법안소위원회를 복수화하는 문제와 관련해 여야 간 입장 차이가 여전하다. 여야는 이번만큼은 반드시 예결위 상설화 방안에 합의해야 한다. 지난해 활동을 마친 국회 예산·재정개혁특위는 예결위의 상설화에 잠정 합의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행정부가 수개월간 머리를 싸매며 작업한 나라살림 계획을 연말연시에 졸속 처리하는 폐단은 국회 개혁 차원에서 하루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원구성의 고비를 넘기더라도 난제가 많아 험로가 예상된다. 세월호 국정조사 활동부터 국무총리 및 각료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 일정이 만만찮다. 국가개조 작업이 차질없이 진행되려면 무엇보다 총리 후보자부터 제대로 골라야 한다. 개혁성과 도덕성을 갖춘 ‘흠결없는’ 인물을 발탁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도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위는 모레까지 사전조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진상 규명 작업에 들어간다. 여야는 증인 채택 문제와 관련해 정쟁을 촉발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무엇보다 기관보고를 하기에 앞서 청문회 증인 명단을 국조실시계획서에 명시할지 여부에 대해 신속히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 국회는 ‘세월호 국회’라 할 수 있다. 국정조사 특위 활동 이외에도 처리해야 할 굵직한 현안들이 쌓여 있다. 정부조직개편법, ‘김영란법’, ‘관피아법’, ‘유병언법’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을 폐지하는 내용이 핵심인 정부조직 개편안은 여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당·정·청은 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기 이전 긴밀한 협의를 갖고 최종안을 조율해야 한다. 교육부총리제의 실효성 여부도 세밀하게 따져보고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정부조직 개편 입법예고안에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새누리당은 차기 지도부를 구성할 7·14 전당대회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미니총선’급인 7·30재·보선에는 여야의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출마할 태세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조짐이다. 세월호 쇼크의 여파다. 6·4 지방선거가 ‘무승부’로 끝난 만큼 여야는 재·보선에 정면 승부를 걸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세월호 참사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정조사를 재·보선과 연계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세월호 침몰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제2 세월호 방지 대책을 법제화하는 데 진력하는 것만이 민생을 위한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일 고대 뱃길 통나무배로 고증 나섰다

    한국과 일본 민간인들이 한·일 간 고대 뱃길 고증을 위해 통나무 배를 타고 6일 경남 거제에서 대마도를 향해 출항했다. 일본 시마네현 교사들이 주축이 된 민간역사연구 모임인 가라무시회(대표 모리 유타카)는 이날 오전 3시쯤 거제 지세포항에서 출발해 대한해협 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뱃길 탐사에 나선 통나무배 ‘가라무시 4세호’는 길이 9.7m, 너비 60㎝, 무게 600㎏ 규모다. 고대인들이 탔을 것으로 추정하는 선박을 고증해 만들었다. 시마네현에서 수령이 250년 된 전나무를 어렵게 구해 도끼로 속을 파내는 등 전통 방식으로 제작했다. 탑승 인원은 7명이며 시속은 4.7㎞다. 가라무시회 모임은 35년 전에 설립됐으며 회원은 50여명이다. 이 모임은 ‘대한해협 횡단 프로젝트’를 통해 고대에 대한해협을 오갔던 통나무배의 이동경로와 소요 시간 등을 고증한다. 통나무배로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신라시대(157년)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재현하는 의미도 있다. 이 설화는 연오랑이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고 부인 세오녀도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 철기문화와 베 짜는 기술 등을 전해줬다는 얘기다. 부산외대 명예교수인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고대 문헌에 기록된 사실들을 일본인들이 직접 고증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이번 탐사 프로젝트에는 모임 소속 일본인 6명 외에 한국인 지원인력 등 모두 21명이 참여했다. 요트 2척과 고무보트 1척이 지원 선박으로 동행한다. 통나무배 항해는 일본인 6명과 한국인 5명 등 11명이 맡는다. 15년 전부터 가라무시회 모임과 인연을 이어온 유현웅(52)씨는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일본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면서 “탐사단이 무사히 도착해 한·일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가라무시 4세호는 7일 오후 7시쯤 대마도 인근 해상에 도착한다. 모리 대표는 “준비과정이 쉽지 않았던 만큼 꼭 성공해 고대인들의 뱃길 발자취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한양도성(상)

    ●조선시대 도성 축조에 얽힌 두 가지 설화 1392년 조선 건국과 함께 도읍을 송악(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태조 이성계는 “종묘는 조종(祖宗)을 봉안하여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요, 궁궐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政令)을 내는 것이며, 성곽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는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라면서 종묘와 경복궁, 도성(都城)의 축조를 독려했다. 종묘·사직과 경복궁이 완성되자 한양의 얼개인 도성을 짓는 축조도감을 1395년 설치했다. 삼봉 정도전이 성 쌓을 자리를 정했는데 태조가 직접 둘러보았다. 여기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스토리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서울이라는 지명의 유래이고, 두 번째는 성리학과 풍수학의 정면 대결이다. 서울이라는 지명의 탄생과 관련된 속설을 조선 후기 방랑 실학자 청화산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성을 쌓으려고 했으나 둘레의 원근을 결정하지 못하던 중 어느 날 밤 큰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은 눈이 쌓이는데 안쪽은 곧 눈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태조가 이상하게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성 모양이다”라는 기록이다. 나중에 눈이 녹은 지역이 도성 안이 됐다. 눈(雪)이 쌓여 생긴 울(울타리)이라고 하여 도성 안쪽을 ‘설울’이라고 불렀으며 그것이 ‘서울’로 전이됐다는 얘기다. 수도(首都)를 나타내는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인 서울의 유래는 처용가의 첫 구절 ‘새벌’이 서라벌을 거쳐 서울로 변했다는 양주동의 풀이가 정설로 돼 있다. 새벌이 서울의 옛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우용은 삼한시대의 성스러운 곳 소도(蘇塗)의 ‘소’가 새벌의 ‘새’와 같으므로 서울은 ‘솟벌’이나 ‘솟울’에서 온 것으로 보았다. ‘솟은 벌’이나 ‘솟은 울’이 ‘신의 땅’이나 ‘신의 울’이며 한자로 번역하면 신시(神市)라는 주장이다. 김정호가 그린 서울 지도 ‘수선전도’에서 보듯 서울을 ‘으뜸가는 선’인 수선(首善)으로 표기한 것과 같은 이치라는 풀이다. 입으로만 전해진 서울이란 지명은 1896년 4월 7일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 창간호에서 처음 공식 표기됐다. 독립신문 한글판의 제호 아래 ‘조선 서울’이라고 표기하고 있고, 영문판에서는 ‘SEOUL KOREA’라고 발행지를 인쇄했다. 서울이 ‘서울특별시’가 된 유래는 희극적이다. 해방 후에도 서울은 여전히 경기도 경성부였다. 미 군정청은 1946년 ‘서울은 경기도 관할에서 독립, 자유독립시가 된다’라고 발표했다. 영어 원문에는 ‘Seoul established Independent City’(서울독립시의 설치)라고 기록됐다. 하지만 법령 번역을 맡은 군정청 한국인 직원이 서울독립시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고민 끝에 ‘서울특별시’라고 고쳐 표기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또 한 가지는 정도전과 무학대사로 대표되는 유교와 불교의 한판 대결이다. 두 사람은 경복궁 명당이 앉을 자리를 정해 줄 주산(主山)을 백악(북악)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인왕산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차천로는 ‘오산설림’에서 “무학은 ‘인왕산을 진산(주산)으로 삼고, 백악과 목멱산(남산)을 청룡과 백호로 삼으시오’라고 하였으나 정도전이 수용하지 않자 ‘내 말을 듣지 않으면 200년이 지나서 내 말을 생각할 것’이라 하였다”는 설화를 전했다. 무학의 예언은 맞아떨어졌다. 200년 후라는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뜻한다. 태조가 정도전의 손을 들어 주면서 주산은 백악으로 결정됐다. 무학은 굴하지 않고 도성을 쌓을 때 인왕산 선바위를 도성 안에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선바위를 왕성 안에 집어넣어 불교의 중흥을 꾀하려는 몸부림이었으나 또다시 삼봉에 의해 바깥으로 밀려났다. 2전 2패를 당한 무학은 “불교가 망할 것”이라고 개탄했다. 얄궂은 운명인지 스님의 형상을 닮은 선바위 옆에는 일제강점기 남산에 조선 신궁을 짓느라 쫓겨난 국사당이 자리했다. 불교와 무속신앙이 500년이 지나고 나서 한자리에서 해후한 셈이다. 조선 개국의 설계자 정도전이 한양도성 건설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은 물론 관아와 시장의 터를 잡았고 도성 성곽의 윤곽도 결정했다. 서울을 5부(동·서·남·북·중부), 52개 방으로 나누고 경복궁을 비롯해 궁궐 전각의 명칭을 정하는 일도 모두 그의 생각대로 였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서울을 건설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유교 국가의 출범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신라 천 년과 고려 오백 년을 풍미한 불교와 풍수도참설은 시대의 도도한 흐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양도성’ 명명 4년… 안내판에 ‘서울성곽’ 한양도성이란 무엇인가.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한성부, 한성, 한양, 서울을 나타내는 표상이었다. 한양도성이 곧 조선이었다. 더불어 수도, 수선, 도읍, 도성, 왕성, 황성, 궁성, 경조(京兆), 경도, 장안, 사대문 안의 통칭이기도 하다. 서울을 나타내는 모든 용어 중 가장 대표적이고 권위 있는 명칭이었다. 한양은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 중 하나였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가 10만명, 영국 런던이 15만명이었을 때 한양 인구는 20만명에 육박했다. 규모로 보아도 현존하는 세계 수도의 성곽 중 서울을 둘러싼 성곽이 가장 크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우리는 ‘한양도성=서울을 에워싼 18.672㎞의 성곽’이라고 범위를 좁혀 해석하고 있다. 내용물은 다 빼고 도성을 둘러싼 성곽만 내세우는 축소지향의 우를 범하고 있다. 한양도성은 조선 500년 내내 성곽으로 둘러싸인 한성부 전체를 지칭하는 당당한 국가권력의 표상이었다. 도성 밖 10리를 나타내는 성저십리(城底十里)와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쓰인 사대문 안과 같은 권역을 나타내지만, 의미는 훨씬 공식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성곽은 유일무이의 대도시인 한양도성 안을 관리, 운영할 목적에서 세워진 상징 벽이었다. 8개의 크고 작은 문인 흥인지문~광희문~숭례문~소의문(서소문)~돈의문~창의문(자하문)~숙정문~혜화문은 한양도성의 관문이었다. 상경(上京)과 낙향(落鄕)이 구분되는 시대의 경계선이었다. 궁궐을 에워싼 백악~낙타산(낙산)~목멱산~인왕산 등 내사산(內四山)을 잇는 도성은 외적 방어용이 아니라 왕권과 통치의 상징이었다. 외적의 침입과 방비, 농성을 위해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탕춘대성 등 산성을 따로 외곽에 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양도성과 서울성곽은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서울성곽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서울성곽=조선시대의 옛 서울인 한양도성을 둘러싼 성곽’이라고 분명하게 정의해야 한다. 개발연대 몰지각한 권력자와 도시행정가들이 한양도성에서 성곽만 따로 떼 ‘서울성곽’이라고 멋대로 이름 붙인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도성 안 문화재와 유물은 마구잡이로 깔아뭉개면서 일제가 조선 정체성 지우기의 하나로 헐어버린 성곽은 잇는다는 앞뒤 맞지 않은 복원계획이 화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구자춘 서울시장이 1975년 ‘서울성곽 중장기 종합정비계획’을 세웠고, ‘서울성곽복원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한양도성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복권되지 못하고 서울성곽이라는 중성적 이름으로 둔갑한 것이다. 천박한 역사인식과 자가당착이 빚은 비극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문화재위원회가 2011년 사적 제10호 서울성곽의 명칭을 ‘서울 한양도성’으로 바꿨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눈이 어두워 서울성곽을 ‘서울 한양도성 성곽’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고 서울 한양도성이라고 어정쩡하게 명명하는 과욕을 부려 또 다른 오해와 시비를 불러들였다. 차라리 서울성곽이라고 놔두는 편이 나았다. 우리는 도성을 둘러싼 성곽과 8개의 대·소문이 한 몸이란 사실을 가끔 잊곤 한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이 국보 1호, 보물 1호인 줄은 알고 있지만, 이들 문이 한양도성의 출입문이라는 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성곽을 상실한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너무 오랫동안 보아 왔고, 출입이 통제된 숙정문과 차량통행에 방해된다며 철거해 버린 돈의문을 아예 보지 못한 탓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한양도성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고 정식 등재는 시간문제라고 한다. 송인호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장은 ‘한양도성의 유산가치와 진정성’이라는 논문에서 “서울성곽의 영어표기가 ‘Seoul Fortress’인데 반해 한양도성은 문화유산 등재 때 ‘Seoul City Wall’이라고 표기됐다”면서 “Fortress가 방어 요새로서의 역할만을 제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City Wall은 역사도시의 도시성곽으로서 의미를 포괄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용어의 정의부터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한양도성을 둘러싼 전반적인 용어와 개념 정리를 주장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보다 더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 서울성곽을 한양도성이라고 명칭을 바꾼 지 4년째를 맞지만 성곽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여전히 서울성곽이라고 표기돼 있다.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용어나 명칭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식민시기 서울의 조상 산인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엉뚱하게 이름 붙임으로써 정체성이 훼손된 것처럼 용어의 변질은 의미의 변질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한양도성과 서울성곽을 헛갈리고 있다. 묵은 역사인식을 바꾸려면 안내판부터 제때 바꿨어야 했다. 정책을 수립하는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한양도성이라고 하는데 이를 운영하는 자치구는 서울성곽이라고 우기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삼척 임원항 ‘수로부인 조각상’

    [명인·명물을 찾아서] 삼척 임원항 ‘수로부인 조각상’

    동해안 바닷가에서 울릉도를 조망할 수 있는 강원 삼척시 임원항 인근 언덕에 세계 최대 규모인 ‘수로부인 조각상’이 세워졌다. 바다를 낀 도로변 절벽 언덕 헌화공원에 세워진 수로부인상은 높이 10.6m, 길이 25m에 이르는 초대형 대리석 조각으로 동해안 최대 명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조각상 규모도 웅장하지만 용을 타고 앉은 수로부인상의 각 부분이 각각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용의 여의주와 수로부인상의 머리, 얼굴, 치마 등이 모두 붉은색이나 청색, 검은색 등의 오색 대리석으로 조각됐다. 워낙 규모가 큰 조각상을 만들다 보니 대리석 자체를 중국에서 조각해 부분별로 배로 싣고 와 조립했다. 6월 말쯤 일반인 개방을 앞두고 조립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지금도 헌화공원을 찾으면 수로부인상을 볼 수 있다. 수로부인 조각상은 이 지역에 전해져 오는 신라시대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을 따라 아내인 수로부인(水路夫人)이 이곳을 지나갔는데 동해안 바닷가 경치에 반해 잠시 쉬다 벼랑에 핀 철쭉꽃을 보고 갖고 싶어 하자 때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주며 ‘헌화가’를 지어 바쳤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헌화가는 ‘딛배 바회 자온손 암쇼 노시고/나 안디 붓리샤/곶 것가 받오리이다’(붉은 바위 끝에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로 삼국유사 기록에 남아 있다. 수로부인의 설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로부인이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바닷속으로 끌고 갔다. 그때 또 한 노인이 순정공에게 “근처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게 하고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부인이 나올 것”이라고 해 그 말대로 했더니 수로부인이 나왔다고 한다.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어서 산과 바다를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들에게 붙들려 갔다고도 전한다. 삼척 원덕읍 임원리 남화산의 ‘수로부인 현화공원’은 이같이 전해 오는 설화를 바탕으로 조성됐고 공원에 세계 최대의 돌조각상인 수로부인상도 건립됐다. 수로부인상은 높이가 아파트 4층 높이인 10.6m에 이르고 무게도 500t에 달한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길이 25m, 높이 5.5m의 거대한 용의 등을 타고 동해의 푸른 바다에서 나오는 수로부인의 모습을 조각했다. 조각상의 기단은 거북이를 상징하기 위해 6각형으로 만들고 헌화가의 철쭉꽃 형상 문양을 더했다. 기단 중앙은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반구 형태로 만들었다. 특히 수로부인이 타고 있는 용은 실제로 살아 있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조각상으로는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싱가포르의 머라이언 조각상이 있다. 이들 조각상은 모두 가운데에 철근콘크리트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수로부인상은 대리석을 직접 조각해 조립한 것으로 세계 최대의 순수 조각상으로 꼽을 만하다. 수로부인상이 세워진 곳은 수로부인 설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삼척해변 지역 중에서도 동해를 향해 가장 돌출된 곳으로 동해의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공원에는 헌화가의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해 계절별로 다양한 꽃들을 심고 포토존을 조성하는 등 가족 단위 관광객과 연인들을 위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로부인 설화와 관련된 얘기가 전해지는 삼국유사의 ‘해가사’ 내용에 대해서는 수로부인상 주변에 디오라마 기법으로 미니어처를 만들어 놓았다. 다양한 미니어처 조각상들은 1000년 동안 이어져 온 설화의 역사 이야기를 재현했다. 공원 주변에는 산책로와 데크 로드, 전망대, 쉼터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으며 공원 규모만 2만 6870㎡에 이르는 등 대표적인 해맞이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임원항에서 공원 진입로까지 한번에 20명까지 이동이 가능한 높이 51.6m의 승강기 2대를 설치하고 40.3m의 구름다리를 공원으로 연결해 관광객들이 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쉽게 올라 수로부인상과 아름다운 바다 등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남화산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설화 속에 등장할 만큼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 삼척시는 이곳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2006년부터 공원 조성에 나섰다. 앞으로도 수로부인 공원에 수로부인의 남편인 순정공 동상을 설치하고 울릉도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등의 편의시설과 체험시설을 더 만들어 동해안 최대 명물, 명소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이번에 세워지는 수로부인상과 더불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를 고루 갖춘 삼척 관광의 랜드마크와 명소로 자리 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홍금화 삼척시 공보계장은 “삼국유사에 전해져 오는 ‘해가’와 ‘헌화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세계 최대의 수로부인상을 건립했다”면서 “수로부인 조형물과 아울러 주변에 조성한 헌화공원은 삼척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더 높이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에게 삼척만의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꿈속의 짝 찾아 바다 건넌 소녀 평생해로 부부 역사가 된 사랑

    꿈속의 짝 찾아 바다 건넌 소녀 평생해로 부부 역사가 된 사랑

    얼추 2000년 전쯤이다. 인도 아유타국(아요디아)의 공주가 극동의 작은 나라 가락국을 찾아 긴 항해를 시작한다. 하늘이 정해준 피앙세, 김수로왕을 찾아 나선 길이다. 공주의 이름은 허황옥. 16세(추정) 가녀린 소녀가 벌인 대항해의 여정은 삼국유사 ‘가락국기’편을 통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소녀의 여정이 이제 테마길로 태어날 예정이다.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알알이 맺힌 ‘허황옥 신행길’이다. 부산과 경남 창원(옛 진해)을 거쳐 김해에 닿은 소녀의 여정을 따라가 봤다.  옛 가락국의 수도, 김해에 들면 물고기 조각상이 종종 눈에 띈다. 이른바 신어(神魚) 신앙을 상징하는 조각들이다. 수로왕릉 정문의 문설주에도 두 마리 신어가 조각돼 있다. 물고기는 인도 드라비다어로 ‘가야’, ‘가라’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500년 동안이나 실재했으나 역사 속에선 완벽하게 사라진 나라 가야의 국호 또한 이 단어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 신어 신앙의 중심에 허황옥이 있다. 우리나라 첫 국제결혼·연상연하 커플  허황옥의 고향은 인도 갠지스강 중류의 아유타국이란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아유타에선 쌍어문장(雙魚紋章)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경찰 계급장, 택시 번호판 등에도 쌍어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이 신어 사상이 허황옥을 통해 가락국에 전파됐다는 것이다.  먼저 김수로와 허황옥 사랑이야기의 얼개를 살피자.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이니 이야깃거리도 많을 터. 그 내용이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허황옥의 아버지, 그러니까 인도 아유타국의 왕이 꿈을 꾼다. 천제가 나타나 배를 타고 동쪽 끝까지 올라가 닿는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고 알려준다. 왕은 곧바로 허황옥을 배에 태워 보낸다. 서기 48년께 일이다. 이때 동행하는 인물이 오라버니 장유화상이다. 현 김해 장유신도시 명칭도 장유화상 이름에서 따왔다.  이때부터 16세 소녀의 대항해가 시작된다. 허황옥은 ‘돌배’ 위에 파도를 잠재운다는 ‘파사석’을 싣고 가락국으로 향한다. 같은 시기, 가락국의 왕 김수로도 비슷한 꿈을 꾼다. 수로왕은 꿈에서 자신의 배필이 멀리서 배를 타고 올 것이라는 천제의 가르침을 듣는다. 수로왕은 신하 유천간을 망산도로 보내 피앙세를 맞는 한편, 자신은 명월사 인근에 행궁을 차리고 허황옥 일행을 기다린다. 그 명월사가 있던 곳이 현 명월산 자락의 흥국사(명월사 터가 따로 있다는 주장도 있다)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이곳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이때 수로왕의 나이 6세. 무려 2000년 가까이 앞서 요즘 ‘대세’라는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탄생한 셈이다.  수로왕과 허황옥은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는다. 이 가운데 첫째 아들은 2대 거등왕에 오르고, 둘째와 셋째는 허왕후의 요청에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된다. 여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결혼을 하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나머지 7명의 아들은 장유화상을 따라 승려가 된다. 그곳이 바로 경남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 있는 칠불사다. 두 딸 중 첫째는 신라 석씨 왕의 시조가 되고, 둘째 딸은 일본국 초대 천황의 모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둘의 러브 스토리는 여기서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제 그들의 실제 흔적을 좇을 차례다. 들머리는 망산도다. 허황옥 일행이 첫발을 디뎠다는 섬이다. 망산도는 경남 창원과 부산의 경계에 걸쳐 있다. 현재 대부분의 검색 사이트에서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는 부산 강서구 송정동에 속한다. 그러니까 망산도를 둘러싼 땅은 창원, 망산도와 주변 바다는 부산으로 보면 틀림없겠다.  망산도는 작은 섬이다. 주변 땅이 간척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신화의 시대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이었을 게다. 망산도는 흘낏 봐선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섬 안에 들어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바다 쪽에서 보는 망산도의 바위들은 정말 독특하다. 하나같이 거북의 등껍질처럼 쫙쫙 갈라졌다. 필경 풍화작용이 진행 중일 터. 돌로 태어나 2000년 전 신화 시대의 아득한 이야기를 후세에 전한 뒤, 먼지가 되어 홀연히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유주암, 유주비각 등 설화와 관련된 유적들도 망산도 주변에 산재해 있다.  망산도 앞의 정자 유주정에 앉아 있자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곧잘 눈에 띈다. 결혼 이민으로 꾸려진 다문화 가정 또한 부산 서쪽과 김해 일대에 펵 많다고 한다. 이 지역은 2000년 전에도 ‘국제적 항구’였으니 허황후 이야기는 결국 ‘오래된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허황옥이 실제 인도 아유타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유주비각에 새겨진 ‘보주태후(普州太后) 허황옥’이란 문구는 이 같은 의구심을 부채질했다. 이와 관련해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의 해석이 명쾌하다. 김 교수는 저서 ‘허황옥 루트’를 통해 허황옥이 몰락한 아유타 왕국의 후손이고, 그들이 정착한 곳이 중국 보주, 현 쓰촨성 안웨현(安岳縣)이란 견해를 편다. 보주는 신어신앙을 가진 소수민족이 살던 곳으로 전해진다. 당시 허황옥의 선조들이 다스렸던 아유타 왕국이 정정불안으로 붕괴됐고, 유민으로 전락한 지배층이 보주 지역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이라면 허황옥의 인도 공주설과 중국 출신설 등 상충되는 두 난제가 자연스레 해소된다. 첫날밤 보낸 명월사의 후신 흥국사  긴 항해 끝에 뭍에 닿은 소녀는 하늘이 점지한 피앙세를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 산 넘고 물 건넌 허황옥은 이윽고 부산 지사동의 명월산에 닿는다. 허황옥은 자신의 옛것을 버린다는 뜻에서 입고 있던 바지를 벗고 산신령께 폐백을 올린 뒤 수로왕과 첫날밤을 보낸다. 수로왕은 허황옥의 빼어난 자태를 달에 비유해 산 이름을 명월산이라 짓고, 첫날밤을 보낸 자리에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명월사도 짓는다. 그 명월사의 후신으로 추정되는 곳이 바로 흥국사다.  흥국사 극락전엔 명월사 석탑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단 면석이 남아 있다. 부산박물관에서 펴낸 ‘명월사지(현 흥국사) 현장조사 보고서’는 “석탑 기단 면석에 조각된 보살상 옆으로 천의(天衣)자락이 위로 날고 있는 모습으로 미뤄볼 때 9세기대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기단 면석이 허황옥의 인도 도래설을 뒷받침하는 인도 남부의 사왕석(蛇王石) 문화라는 일부의 주장을 부정하는 결과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명월사가 실재했다는 근거로도 인식된다. 가락국 태평성대 이룬 봉황대  이튿날, 수로왕과 허황옥은 현 김해 응달동 태정마을을 거쳐 가락국의 수도 김해로 환궁한다. 현재의 봉황대로 추정되는 곳에 정착한 이들은 평생 해로하며 가락국을 태평성대로 이끈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근거지로 삼은 곳이었던 만큼, 김해엔 강력한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글로벌 국가 가야’의 위상을 새길 만한 유적지가 많다. 수로왕릉(사적 제73호)과 수로왕비릉(사적 제74호)이 첫손 꼽힌다. 특히 수로왕비릉이 인상적이다. 수로왕릉에 견줘 규모는 작지만 무게감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도 허왕후릉 바로 앞에 전시돼 있다.  수로왕비릉 옆은 구지봉이다. 6개의 알에서 태어난 가야의 왕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김수로왕의 건국신화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라는 고대가요 ‘구지가’가 불리워진 역사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 ‘달마야 놀자’의 주무대였던 은하사도 볼만하다. 장유화상이 세웠다는 절집으로, 대웅전 수미단에 쌍어문양이 남아 있다. 아울러 가락국 외부를 둘러쳤던 분산성과 성벽 안쪽의 해은사, 가락국 2대 거등왕이 신선을 초대해 국정을 논했다는 초선대, 가락국 왕자들의 탯줄을 묻었다는 태정마을 등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소들이다. 글 사진 부산·창원·김해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남해고속도로 서김해으로 나와 금관대로, 분성로를 따라 가면 김해 민속박물관이다. 박물관 주변에 구지봉과 수로왕비릉 등이 몰려 있다. 김수로왕릉과 봉황대 등은 예서 각각 한 블록씩 떨어져 있다. 경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다. 망산도를 먼저 보려면 남해고속도로 가락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부산 신항 방면으로 가다 창원의 용원버스정류장을 찾아가면 된다. 서울에서 하루 세 차례 고속버스도 오간다. 흥국사는 망산도에서 12㎞ 정도 떨어져 있다. 산속에 있어 걷거나 승용차로 가야 한다. 맛집: 김해 구산동 쪽에 보리밥집 골목이 있다. 김해 문화의 전당 옆 내외동 먹자골목에선 돼지뒷고기를 맛볼 수 있다. 동상동 전통시장 음식단지엔 칼국수로 이름을 날리는 집들이 여럿 늘어서 있다. 수로왕릉 옆 김해 한옥체험관에서 맛보는 한정식도 좋다.
  • [씨줄날줄] 설화(舌禍)/정기홍 논설위원

    위·촉·오의 삼국시대 때 위나라의 기틀을 다진 조조는 언제나 암살당할 걱정을 지니고 살았다. 급기야 ‘자신은 꿈을 꾸다가 사람을 죽이는 버릇이 있다’는 꾀를 낸다. 조조가 낮잠을 자던 어느 날, 시종이 이불이 흘러내린 것을 보고 다가섰다가 죽임을 당한다. 조조는 “나의 실수였다”며 통곡을 했지만 조조의 모사(謀士) 양수는 이를 간파한 뒤 발설해 미움을 사게 된다. 재능이 특출한 양수가 ‘입방정’으로 조조의 눈 밖에 난 사례는 말의 중요함을 논할 때 더러 인용된다. 양수의 ‘말 실수’는 이 말고도 더 있다. 조조가 진상품으로 들어온 양의 가공 젖을 한 모금 맛본 뒤 단지 뚜껑에 ‘일합’(一合)이라 써놓고 자리를 떴다. 이를 본 양수는 “일합(一合)은 일인일구(一人一口·한 사람에 한 입)이니 갈라 먹으라는 승상의 뜻”이라며 한 숟가락씩을 나눠 먹었다. 조조는 겉으로 웃어 넘겼지만 속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은 불문가지다. 양수는 결국 ‘계륵’(鷄肋·닭의 갈비) 사건이 빌미가 돼 참수된다. 덕이 부족한 탓에 조조가 자기를 시기하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삼국지연의에는 ‘총명한 양수여, 입을 열면 사방이 놀랐고, 영웅들의 으뜸이 됐네…. 참수를 당한 것은 재주 때문’이라 적고 있다. 역사가들은 그를 재능만 믿고 말을 떠벌리다가 주군의 손에 죽는 불우한 천재로 묘사한다. 비슷한 설화 사례는 자고이래로 많다. 19세기 초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 날에 시위를 일으킨 주동자 콘드라티 릴레예프는 사형대 밧줄에 목이 매였으나 줄이 끊어지면서 살았다. 그는 “러시아는 밧줄 하나 못 만든다”며 조롱하다가 다시 형장에 선 채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교수형 집행 과정에서 살아난 사람은 ‘하늘의 뜻’이라며 살려주는 게 관례였다. 18대 대선 때 정동영 후보의 ‘노인 비하’사례도 있고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철없는 10대 아들의 ‘미개한 국민’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다. 일본 총선 때에는 아소 다로 자민당 후보가 ‘돈 없으면 결혼도 하지 마라’고 말해 50년을 이어온 자민당이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적도 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최근 비공식 자리에서 ‘세월호 민간잠수사의 일당’을 언급해 구설에 오르고 있다. 그는 “시신을 빨리 수습하려면 구조활동비를 올려야 한다는 취지의 개인적인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잘못된 말이다. 그의 ‘말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했다지만 ‘장관의 라면 계란’ 등의 실언이 잇따랐다. 청와대 ‘입’의 감각 문제다.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양수의 잦은 나섬과 말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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