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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층의 막말] “목 쳐주마” “근로자는 노예”… 힘있는 자들 ‘입의 갑질’

    [지도층의 막말] “목 쳐주마” “근로자는 노예”… 힘있는 자들 ‘입의 갑질’

    #1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다.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박용성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보직교수 20여명에게 보낸 이메일의 일부다. 학과제 폐지를 골자로 한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교내 여론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나열된 단어들을 보면 거의 ‘조직폭력배’ 수준이다. 그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폭력은 계속됐다. 또 다른 이메일에서는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를 여러 차례에 걸쳐 화장실에서 쓰는 ‘비데’(Bidet)와 비교해 ‘Bidet委’(비데위)라고 조롱하고, 교수들을 ‘조두’(鳥頭·새대가리)라고 비아냥댔다. 막말이 공개되자 박 이사장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2 “요새 노예란 말이 없어 그렇지. 노예적 성질이 (여러분들의)근로자성에 다분히 있어요.” 지난해 10월 15일 부산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 이모씨가 밀린 임금을 받아 달라며 진정을 낸 LG유플러스 인터넷 설치기사 8명에게 한 말이다. 이씨는 또 “현재 노동법도 옛날 노예의 어떤 부분을 개선했을 뿐이지 (노동의 본질은 사용자가)돈을 주고 사는 거야”라는 말도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최근 부산고용노동청은 이씨를 직위해제하고 추가 징계를 검토 중이다. 비뚤어진 특권 의식과 그릇된 사고에 매몰된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나 고위 공직자들의 ‘막말’이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의 의식은 향상됐는데 국민을 대하는 이들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발달로 막말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빨라지면서 파문의 강도도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막말을 쏟아내는 배경에는 일차적으로 개인의 일탈적인 사고와 행동이 자리잡고 있다. 권력을 가졌다고 모두 막말을 내뱉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에 걸맞은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설화’(舌禍)에 오르는 것이다. 하지현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지 못하는 개인의 성품 탓”이라면서 “나와 같은 공간 안에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세계’에서 사는 환경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를테면 재벌 2세의 경우 성장기부터 끼리끼리 어울리다 보면 우월감에 젖어 공감 능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홍진표 서울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월감에 취한 재벌 2세들이 보통 사람과 갈등 상황에 놓이면 공감하며 풀어나가기보다 과도한 공격성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수성가형 권력자는 경쟁 의식이 뚜렷하고 자기애적 성향이 강해 타인이 자신을 우러러보지 않으면 쉽게 상처받고, 역으로 공격성을 표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타인에 대한 관용이 줄어든 세태 역시 막말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소한 일에도 힘 있는 사람이 쉽게 불만과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서울 충암고 교감이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에게 “넌 급식비를 안 냈으니 밥 먹지 마라”라고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양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상하질서가 뚜렷해 아랫사람을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경향이 여전히 짙다”면서 “관용과 용서는 힘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특권이지만 습관대로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막말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일련의 막말 파문을 일부 특권층의 일탈로만 치부하는 건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1970~80년대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해 ‘인내심’이 강조됐지만, 생계가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은 인내보단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태 때 박창진 사무장은 피해담을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의 권리 의식이 향상돼 막말을 용납하지 않는 인식이 확산됐다”면서 “SNS 등의 발달로 사적 공간과 개방된 공간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사적으로 생각한 대화가 공적인 의미를 띨 수 있어 파문이 커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62년만에… 서해 5도서 잡은 농어·꽃게 배 여의도 왔다

    62년만에… 서해 5도서 잡은 농어·꽃게 배 여의도 왔다

    한강에 서해5도에서 조업하던 어선이 들어왔다. 62년 만에 한강과 서해를 잇는 뱃길이 열린 것이다. 연평·대청도 어민 11명은 20일 낮 12시 20분쯤 배 3척에 광어, 농어, 꽃게 등의 수산물을 가득 싣고 서울 여의도 임시 선착장에 들어왔다.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 등 국회의원과 시민들의 환송을 받은 뒤 국회 후생관 앞에서 시식·시판회를 열었다. 이들은 당초 연평도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가 예상되자 이틀 전 일단 인천 연안부두로 와 정박한 뒤 이날 8시 30분 여의도로 향했다. 이들이 거친 뱃길은 서해5도~강화해협~아라뱃길~양화진~여의도다. 여기다 마포나루까지 더하면 지난날 유명했던 서해 북단 항로가 된다. 6·25전쟁 전까지 서해5도 등에서 잡히는 수산물을 서울로 실어 나르던 주요 통로였으나 휴전 협정 이후 완전히 끊어졌다. 항로가 북방한계선(NLL)과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연평도 선적 ‘어촌 1호’ 선장 송동만(70)씨는 “62년 만에 배를 타고 한강으로 왔다”면서 “8살 때 생선을 팔러 가던 아버지를 따라 연평도에서 마포나루로 왔던 생각이 나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번 운항은 당국의 승인을 받아 이뤄졌지만 어민들은 항로를 상설화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해5도에서 잡은 수산물을 서울에 직접 공급하면 유통 마진 절감 등으로 수익이 30%나 늘어나고, 수도권 주민에게는 싱싱한 생선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극심해지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해양수산부도 서해5도민을 위해 검암수산물센터(아라뱃길) 건립비 50억원을 지원키로 한 만큼 어민들의 요구에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만 서울의 어느 길목까지 항로를 개방하느냐가 문제다. 검암수산물센터까지의 뱃길 개방은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태원(55) 연평어민회장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관광객이 줄고,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앞이 막막한 상황에서 수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선보여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130㎞의 뱃길을 달려 왔다”고 말했다. 이날 어민들은 국회와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한반도의 화약고인 서해5도에 거주하는 1만여명은 전쟁 위험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가 달린 서해5도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요청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서해5도민이 삶의 터전을 버리지 않도록 수산물 판매 수익을 높이는 방안을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단독] 기내선 아르마니 시계 60만원, 인터넷 13만원… 355% 더 비싸

    [단독] 기내선 아르마니 시계 60만원, 인터넷 13만원… 355% 더 비싸

    면세품과 인터넷 가격 조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기내 면세품 판매책자(3월호)를 통해 공개한 면세품의 원화기준 가격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인터넷 최저가를 각각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 주류는 인터넷 판매가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인터넷 판매가에는 업체별 배송비를 추가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기내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은 시계류로 비교 가능한 12개 품목 중 8개가 인터넷 최저가에 비해 평균 79.8%가량 비쌌다. 향수는 20개 품목 중 15개가 평균 36.1%, 화장품은 119개 중 75개가 평균 22.2%가량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됐다. 그나마 인터넷 최저가와 엇비슷한 가격을 받는 물건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볼펜이나 지갑 등 선물용품류가 주류를 이뤘다. 결과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 면세품에 비해 비교적 싼 가격에 기내면세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봄 세일을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소 두 항공사 간 가격 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인터넷 최저가보다 2배 이상 가격이 비싼 제품이 3개 품목이었다. 가격 차가 30~50%에 이르는 제품은 19.6%(20개), 10~30%는 43.1%(44개)에 달해 역시 70% 이상이 10% 이상 비쌌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에서 살 때 가장 손해를 볼 수 있는 품목은 향수류로 23개 품목 중 16개가 인터넷 최저가보다 37.9%가량 비쌌다. 이어 시계·장신구류는 15개 중 11개가 평균 35.9%, 전자제품 18개 품목 중 9개가 29.7%, 화장품류 106개 중 53개가 평균 19% 이상 비싼 가격을 받았다. 기타 패션잡화류나 어린이용품 등은 기내 면세품이 비교적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행수입품이 많은 시계류는 두 항공사 모두 유독 가격 차가 컸다. 대한항공에서 판매 중인 ‘엠포리오 아르마니 세라믹 남성용 시계(AR1400)’의 기내 판매가는 60만 3000원인 반면 인터넷 최저가는 13만 2500원으로 무려 355%나 비쌌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엠포리오 아르마니 남성용 시계(AR2432)의 기내 판매가는 31만 8000원이었지만 인터넷 최저가는 12만 2000원으로 무려 160%나 비싼 가격을 받았다. 항공사들은 공통적으로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이나 향수를 전면 배치하면서 비싼 가격을 유지했다. 실제 온라인 최저가가 24만 9000원인 ‘라프레리 스킨 캐비아 럭스 크림(50㎖)’의 경우 대한항공의 기내가는 45만 5000원, 아시아나항공은 40만 1500원이었다. 화장품 하나를 사는데 기내면세점이 15만~20만원이 비싼 셈이다. 향수류인 ‘불가리 옴니아 인디안 가넷 오드투알레트(50㎖)’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6만 7000원과 5만 5500원에 판매하는 반면 인터넷 최저가는 4만 68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국산 제품도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중년여성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은 설화수의 경우 ‘섬리안크림(25㎖)’은 기내가격이 27.5~30.7%, 자음생크림(60㎖)은 23.8~26.3%, 자음유액(125㎖)은 22.8~26.2%가량 기내가 비쌌다. 기내 면세점은 입출국 시 시간이 없어 미처 면세품을 구입하지 못한 여행객들에게는 마지막 창구이기도 하다. 이 같은 수요를 잘 아는 국내 항공사들은 기내 방송까지 하며 면세품 판매 등을 독려한다. 면세품 구입 욕구가 높은 국내 소비자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 항공기 안에서는 인터넷 등으로 가격비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막연히 싸겠지 하며 구매를 하게 된다. 기내면세가가 인터넷 최저가보다 저렴하지 않다는 점은 이미 승무원들 사이에도 상식처럼 통한다. 입사 5년차인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회사가 판매를 종용하는 탓에 면세품을 팔고는 있지만 승무원들도 꼼꼼히 따지면 가격경쟁력 면에서는 오히려 뒤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가격 차가 큰 특정 제품들은 팔면서도 미안해질 정도”라고 귀띔했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도 “시간에 쫓겨 선물을 사지 못한 승객들은 선물용 물품을 구입하는 일이 많지만 정작 승무원들은 (기내면세점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면서 “단 고참 승무원은 면세품 판매 액수가 곧 실적과 연결되는 탓에 물건을 파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항공사에게 기내면세품 판매는 알짜사업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기내면세품 판매로 1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체 항공운항 관련 수익의 6%에 해당한다. 공시를 통해 정확한 판매액수를 밝히지 않는 대한항공은 같은 기간 기내 면세품 매출이 2080억원이라고 밝혔다. 유통업계에선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 기내면세품 가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면세품 업계 관계자는 “공항이나 시내 면세점의 경우 비싼 상가 임대료에 점원들의 월급 등 인건비 등을 추가해야 하지만 기내면세품은 운항 중인 항공기 안에서 일하는 승무원을 이용해 판매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구조”라면서 “결국 높은 가격은 항공사 마진과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항공사 측은 면세품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면세품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매가에서 추가로 세금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업체가 제시하는 권장 판매가에 이윤을 붙이는 구조”라면서 “통상 주류는 시중가보다 50%가량, 화장품은 10~15%가량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항공사가 시중가라고 말하는 기준을 얼마로 잡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보통 항공사에서 제시하는 시중가는 백화점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기내 면세품 판매책자에 제시된 국내 시판가도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객들의 입장에서는 비행 중 유일하게 가격비교를 할 수 있는 정보이기도 하지만 항공사들이 제시한 가격은 예외 없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있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터넷 구매대행이나 병행수입 업자들이 늘어나면서 기내 면세품은 물론 일반 면세점 상품보다 더 저렴한 상품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기내면세점 역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가격을 공개하기 때문에 싸다는 생각에 무작정 구입하기보다는 비행기 탑승 전 먼저 가격을 비교해 보고 정말 필요한 물품을 고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원다연 인턴기자 panda@seoul.co.kr
  • [新국토기행] 전북 임실군

    [新국토기행] 전북 임실군

    전북 임실군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복받은 땅이다. 면적 597.03㎢, 인구 3만명의 작은 군이지만 어디를 가나 산천이 아름답다. 섬진강 상류로 관광 입지가 좋고 특색 있는 먹거리도 풍성하다. 임실을 에워싼 성수산(해발 876m)과 회문산(775m), 백련산(754m) 자락은 빽빽한 삼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경지가 적어 낙농업과 고랭지 농업이 발달했다. 비옥한 토질, 일조량이 많은 지형, 큰 일교차는 ‘열매가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임실(任實)의 지명에 걸맞게 어떤 작물을 재배해도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고추와 복숭아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특산물이다.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양재박이 의병을 조직해 왜적을 섬멸했다. 이석용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해 항일구국운동을 펼쳤다. 들불 속에서 주인을 구한 충견도 임실군 오수면이 배경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한 임실군 삼계면도 있다. 명당도 많다. 고려 왕건과 조선 이성계가 성수산 상이암에서 기도하고 건국했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다. [볼거리] ●몽환적 아름다움 보여주는 인공호수 ‘옥정호’ 옥정호는 1965년 섬진강다목적댐 건설로 형성된 인공호수다. 임실군 운암면·강진면과 정읍시·순창군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 노령산맥 오봉산과 국사봉이 양팔을 벌려 호수를 감싸 안은 형상을 하고 있다. 저수면적 26.3㎢, 저수량 4억 5000만t으로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때 묻지 않은 빼어난 자연경관이 압권이다. 13㎞의 옥정호 순환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 가운데 우수상에 뽑힐 정도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호수를 끼고 굽이치는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맛이 일품이다. 국사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옥정호는 물안개가 장관이다. 몽환적 풍경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낸다. 붕어섬은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최고의 명소다. 푸른 물, 기암괴석,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옥정호를 가로지르는 운담대교(길이 910m) 경관 조명도 새로운 볼거리다. ●계절별로 색다른 정취 자아낸 ‘사선대’ 관촌면 사선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네 신선과 네 선녀가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관광명소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고 계절별로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봄이면 산개나리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여름에는 느티나무 그늘과 신록, 가을에는 오색 단풍과 낙엽, 겨울에는 설경과 천연 스케이트장으로 유명하다. 호수를 감아 도는 아기자기한 산책로, 조각공원, 시원한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오색분수는 가족단위 나들이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조잔디 축구장, 테니스장, 강수영장, 청소년수련원, 눈썰매장 등 다양한 위락시설도 있다. 전주~남원 간 국도변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아 동호인들의 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다. 사선대를 뒤에서 받쳐 주는 산자락 정상에는 운서정(지방유형문화재 135호)이 자리잡고 있다. 운서정에 이르는 산책로 변에는 천연기념물인 가침박달나무와 산개나리 군락지가 눈길을 잡는다. ●김용택 시인 등 문학인들의 요람 ‘섬진강길’ 섬진강길은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카메라에 담으려는 문학인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연중 맑은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덕치면 진뫼마을, 천담마을, 구담마을은 강촌과 산촌의 풍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섬진강 지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철쭉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요즈음 이곳을 거닐다 보면 따사로운 햇살 아래 ‘고향의 봄’을 만끽할 수 있다. 진뫼마을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고향으로 국내 문학 창작의 요람이다. 마을 사람들이 손수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와 마을 수호신인 커다란 정자나무가 인상적이다. 마을의 모든 집에서 강까지 몇 걸음 되지 않는 전형적인 강촌 마을이다. 검은 바위 위를 유유히 흐르는 강물, 낮게 드리운 집들은 고향의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진뫼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은 산등성이로 병풍을 친 듯한 천담마을에서 고즈넉한 풍경화를 그려 낸다. 이어지는 구담마을은 섬진강다운 섬진강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산과 물이 서로를 비추고 적셔 주며 수더분한 자연의 정수를 보여 준다. 섬진강을 끼고 달리며 빼어난 풍광과 시골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길도 자랑거리다. ●국내유일 체험형 관광지 ‘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읍에 조성된 치즈를 테마로 한 국내 유일의 체험형 관광지다. 목장을 연상케 하는 전원 풍경 속에서 치즈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거리가 있는 놀이문화 공간이다. 축구장 19개 넓이의 드넓은 초원 위에 체험관, 홍보관, 레스토랑, 가공공장, 판매장, 치즈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치즈 만들기, 유럽 정통음식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임실에서 생산된 청정원유로 순수자연주의 치즈 제조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세계의 다양한 치즈 요리와 피자를 만들어 맛볼 수도 있다. 홍보관에서는 한국 치즈의 역사인 임실 치즈가 탄생하기까지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초원을 산책하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치즈캐슬에서는 동화 속 주인공이 돼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필봉농악’ 전수관 임실 강진 필봉농악은 호남좌도농악의 대표적인 마을 풍물 굿이다. 4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노동의 문화 속에서 꽃피운 삶의 소리와 한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다는 평이다. 1962년 필봉농악보존회가 설립됐고 1988년에는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강진면 필봉농악전수관이 있는 곳에는 연간 6만명이 찾아오는 문화촌이 형성돼 있다. 필봉농악보존회는 전통 마을굿 보존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필봉 굿은 앞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 농악에 비해 뒷굿 중심에 치중한다. 전체적으로 힘차고 꿋꿋하며 남성적인 느낌이다.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농악이다. 필봉 문화촌에서는 전통 한옥에 머물며 농악을 배우고 필봉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먹거리] ●맛·영양 둘 다 잡은 임실치즈 임실은 한국 치즈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958년 선교사로 부임한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지역 농민 소득증대를 위해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7년 조그만 산촌인 임실읍 갈마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치즈를 생산했다. 청정 원유로 자연의 건강함을 담는 데 주력했다. 맛과 영양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1990년대 들어 유명 브랜드가 됐다. 임실치즈피자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가 됐다. 임실치즈농협은 50년간 쌓은 가공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소하고 담백한 각종 치즈를 생산하고 있다. 피자용 모차렐라 치즈는 물론 구워 먹는 치즈, 찢어 먹는 치즈, 양파 치즈, 단호박 치즈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임실치즈와 우리밀로 만든 치즈초코파이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2000년대 들어 목장형 치즈 가공업체도 8곳이 생겼다. 젖소 사육 농가에서 직접 치즈를 생산하는 게 특징이다. 임실군은 치즈연구소를 설립해 고품질 치즈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매콤하면서도 단맛 내는 고추 임실 고추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이다. 섬진강 맑은 물과 뜨거운 햇볕이 만든 임실 고추는 전국으뜸농산물한마당대회 품평회에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자연이 키워 낸 고추는 맛, 향, 빛깔 등이 전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실은 다른 지역보다 연간 일조량이 188시간 길고 숙기의 온도가 2.3도 높아 고품질 고추를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큰 일교차는 임실 고추가 알싸하게 매콤하면서도 단맛을 내도록 해 준다. 임실군은 최첨단 고춧가루 생산 공장을 건립해 품질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다. ●국내 최다 박사 배출 마을의 특산품 삼계엿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한 고을 삼계면에서 생산하는 특산품이다. ‘박사골 전통 엿’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부터 쌀엿을 만들어 친지, 이웃과 주고받았던 삼계 지역 미풍양속이 전해 내려와 명품엿이 됐다. 박사골 전통 쌀엿은 지금도 옛날 방식 그대로 농가에서 주문 생산하고 있다. 질 좋은 쌀과 엿기름을 주원료로 하고 콩가루를 첨가해 만든다. 엿기름은 마을에서 직접 만들고 감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공해 식품이다. 더운 방과 차가운 방을 수십 번 오가며 늘인 엿가락은 바람구멍이 많아 바삭하고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당도가 높지만 물리지 않고 식감이 연하며 감칠맛이 일품이다. ●섬진강 민물고기 매운탕과 다슬기탕 섬진강 상류인 임실은 민물고기 매운탕과 다슬기탕이 미식가들을 불러모은다. 매운탕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서 잡은 메기, 동자개, 모래무지, 쏘가리, 새우 등을 무청 시래기와 함께 넣어 끓인다. 민물고기와 새우가 넉넉하게 들어간 매운탕은 임실 고춧가루로 만든 고추장이 깊은 맛을 더한다. 팔팔 끓는 매운탕은 들깻가루와 잔파를 넣어 비린내를 잡고 감칠맛을 더한다. 다슬기탕과 다슬기 수제비도 임실의 유명한 먹거리다. 강진면, 청웅면, 옥정호 주변에 유명 맛집이 즐비하다. 다슬기탕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추, 호박 등 푸른빛 채소와 어우러져 쌉쌀하면서 개운한 맛을 낸다. 맑은 계곡 바위에 붙어 사는 임실 다슬기는 살이 탱탱하면서 풍미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40년 전통 돼지뼈 육수 순대국밥 임실 순대국밥은 40년 전통을 자랑한다. 돼지뼈를 우려낸 육수에 전통 순대로 정성스럽게 만든다. 임실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고춧가루의 매콤한 맛과 진한 육수가 어우러져 얼큰하면서 깊은 맛을 낸다. 순대는 왕소금으로 주물러 하룻밤 물에 담가 놓은 막창에 선지, 양파, 대파, 부추, 깻잎, 마늘 등 속재료를 푸짐하게 넣어 잡내가 나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낸다. 쫄깃한 막창과 찰진 순대가 조화를 이룬다. 순대국밥은 막창순대와 머리 고기, 각종 내장을 섞어 푸짐하면서 구수한 맛을 낸다. 장날이면 줄을 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2년 연속 품질 우수상 받은 임실 복숭아 임실 복숭아는 최근 2년 동안 전국 복숭아 톱프루트 품질 평가회에서 2년 연속 우수상을 받았다. 과실이 크고 과육이 단단해 상품성이 높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알아주는 최상품이다. 농가들은 마도카, 천중도, 미홍, 오수황도 등 고품질 품종을 재배하고 엄격한 품질관리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임실군은 최신 재배기술을 교육하는 복숭아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새끼를 엮어라 하나로 당겨라 갈등은 풀린다

    새끼를 엮어라 하나로 당겨라 갈등은 풀린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줄다리기를 한번 하면 단단하게 하나로 묶이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500여년간 이어온 충남 당진시 기지시줄다리기에 자주 참여한 기지시리 주민 김기정(52)씨는 10일 “줄을 당기다 보면 신이 나고 재미에 흠뻑 빠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구한 세월을 보내며 ‘분열이나 대결보다 화합, 다같이 참여해 나누는 소통, 불안의 시대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져 온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이 줄다리기가 우주선이 여러 행성을 오가고 스마트폰 등 초현대 기기가 넘쳐 나는 첨단시대까지도 유효한 이유일 것이다. 김씨는 “줄다리기를 하다 줄이 끊어져도 주민들은 마냥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한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지시줄다리기가 12일까지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펼쳐진다. 나흘간의 민속축제지만 수천명이 함성을 쏟아 내며 거대한 줄을 당기는,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는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에 있다. 이 줄다리기는 재앙에서 탄생했다. 설화는 조선 중기 아산만에서 해일이 일어나면서 마을을 휩쓸어 민심이 흉흉했다고 전한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한 선비가 ‘줄다리기를 하면 민심이 가라앉고 재앙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때부터 주민들이 윤년 음력 3월 초마다 줄다리기 행사를 벌이자 예언대로 됐다는 것이다. 고대영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정상적인 해가 아닌 윤년에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 그때 이를 달래고 액땜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한 것 같다”면서 “아산만이 특이하고 드물게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바다인데, 그 거센 기운을 눌러 주기 위한 뜻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히 농경문화에 그친 다른 지방의 줄다리기들과 달리 기지시줄다리기는 상업과 연결돼 규모가 점점 커졌다”고 덧붙였다. 언뜻 기지시를 일반시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리 크지 않은 면 소재지 마을이다. 베틀 기(機), 연못 지(池), 시장 시(市) 자가 합쳐진 지명으로 볼 때 옛날에 비단과 삼베 등을 파는 장이 크게 섰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어른들은 한자 지명의 우리말인 ‘틀못’을 변형해 이곳을 ‘틀모시’, ‘틀무시’로 불렀다. 이름대로 이곳은 조선시대 호남의 문물이 인근 아산만의 한진포구를 통해 한양으로 올라갈 때 잠시 묵어가는 요충지였다. 자연히 사람들이 몰렸고, 시장이 형성됐다. 지금의 아산만은 서해 바닷물이 당진과 경기 평택 사이를 강처럼 흐르고 기지시리와 꽤 떨어져 해일이 일어나고 덮칠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줄다리기는 부녀자들이 칡넝쿨을 꼬아 작은 줄을 만들어 당기던 데서 출발했다. 그러던 게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갈수록 커졌고, 상인들이 십시일반 경비를 모을 정도로 몸집이 불어났다. 요즘은 중심 줄인 큰줄 길이가 200m에 이른다. 큰줄 직경은 1m를 넘는다. 큰줄에 곁줄을 붙이고, 곁줄에 손잡이 줄을 매달면 무게가 40t을 웃돈다. 모두 4만 단의 짚이 들어간다. 주민 수십명이 40일 동안 제작한다. 새끼줄 70가닥을 엮어 중간줄 3개를 만든다. 이를 줄틀을 이용해 꼬면 엄청난 굵기의 큰줄이 된다. 기지시줄다리기 기능보유자 구자동(72)옹은 “수많은 사람이 줄다리기에 참여하면서 줄이 자주 끊어지자 한진포구 인근 안섬(내도리)에서 3개 줄을 꼬아 닻줄을 만들던 방식을 도입한 게 지금의 큰줄 제작법”이라고 전했다. 줄틀은 평소에 기지초등학교 앞 ‘틀못’이란 연못에 보관한다. 참나무로 만들어 햇볕을 오래 쬐면 트기 때문이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예전부터 성스럽게 치러졌다. 지금은 장이 서지 않는 예전 장터 동쪽 국수봉에서 당제를 지내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 유교식, 불교식, 무속신앙이 버무러져 종교를 초월한 제사 절차다. 당제에 사용하는 술을 담글 당주쌀도 주민들이 조금씩 보태 모은다. 올해는 스포츠줄다리기대회(11일)가 곁들여진다. 1920년까지 올림픽 종목이었다고 한다. 축제의 대미는 12일 있을 줄다리기다. 줄다리기는 3판 2승제다. 각각 100m 길이의 암줄과 수줄에 비녀장을 꽂아 연결한 뒤 수상(水上) 편과 수하(水下) 편으로 나뉘어 당긴다. 뭍쪽 마을들은 수상, 바닷가 마을들은 수하다. 수상 편이 승리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나라는 태평하고 국민은 편안하다), 수하 편이 이기면 시화연풍(時和年豊·시절이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이란 풍속이 있어 어느 편이 이겨도 좋다.예전에는 송악읍 주민들 축제였으나 요즘은 관광객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농악패가 어우러지고 깃발이 여기저기 나부껴 흥이 난다. 구경꾼만 수만명이 몰린다. 줄다리기 이전 과정도 좋은 구경거리다. 줄고사를 지낸 뒤 줄을 제작한 곳에서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앞마당까지 1.5㎞를 줄다리기 참가자 수천명이 힘을 합쳐 끌고 가는 장면은 장관이다. 이 때부터 낯선 이들도 친구가 된다. 고 학예연구사는 “주로 메고 가는 다른 줄다리기와 달리 관광객 등 누구나 참여하기 편한 이동형태여서 이 과정부터 기지시줄다리기의 소통과 화합 정신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밝혔다. 당진시는 2010년부터 기지시줄다리기를 매년 여는 것으로 바꿨다. 가치와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듬해 4월 줄다리기 행사장에 국내 유일의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도 개관했다. 각종 국내외 줄다리기 자료와 줄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 등 2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2013년 6월에는 경기 파주 임진각에서 통일기원 줄다리기 행사를 열었다. 당진시 관계자는 “통일 정신에 맞게 ‘같이 간다’는 뜻이 강한 행사였으나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정부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지속되지는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11월쯤에 기지시줄다리기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아시아 3개국과 함께 신청한 일이지만 주도는 당진시와 문화재청이 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뿐 아니라 줄다리기 역사와 규모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서기 때문이다. 박영규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제위원장은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남북 국민이 개성공단에서 줄다리기를 하려는 소망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주말은 장고항의 명물인 실치(뱅어)가 제철이고, 가오리도 맛이 좋을 때다. 몸통이 투명한 실치는 이맘때, 산지가 아니면 회로 맛보기 쉽지 않다.가오리는 무침이 최고다. ‘해 뜨고 해 지는’ 왜목마을, 삽교호 함상공원,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솔뫼성지, 소설 ‘상록수’가 탄생한 심훈의 생가 ‘필경사’ 등 관광지도 많다. 박 위원장은 “치열한 경쟁과 경제난, 실업 등 힘든 세상을 살면서 지친 마음을 줄다리기하면서 혼자가 아닌 ‘우리’를 느끼고 ‘의여차! 줄로 하나되는 세상’이란 슬로건처럼 힘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정부·지자체, 찾아가고픈 지역·명품관광지 만들기] 행락철 관광객 잡기 무한경쟁

    [정부·지자체, 찾아가고픈 지역·명품관광지 만들기] 행락철 관광객 잡기 무한경쟁

    지방자치단체들이 역동하는 중화권과 새로운 KTX 열차 노선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출시하며 관광객 잡기 무한 경쟁을 펼치고 나섰다. 강원 춘천시는 국민 애창곡인 ‘소양강 처녀’의 노랫말 주인공을 활용한 스토리텔링과 의암호변 소양강처녀상 주변 관광 명소화 사업을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소양강처녀상 주변에 스카이워크와 수상레저시설을 설치해 관광 명소화한다. 또 노랫말 주인공의 사연과 노랫말을 담은 스토리텔링 영상을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를 통해 홍보하고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소양강 처녀 알리기에 주력할 방침이다. 경남 하동군은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별천지 화개동을 비롯해 6조 혜능 선사의 정상이 모셔진 천년고찰 쌍계사, 소정방의 설화가 서려 있는 악양 동정호 등 중국과 연관성이 있는 관광지에 대한 스토리텔링 개발에 나섰다. 솔잎한우·재첩·참게·산채 등 지역 농·특산물을 이용해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먹거리도 개발한다. 경기관광공사는 중화권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을 활용한 특색 있는 체험형 관광상품 개발에 나섰다. 올 상반기 중 대만 관광객 1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한다. 호남지역 지자체들은 KTX 호남선을 이용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전남 여수시는 3색 체험 기차여행을 운영하고, 전남 순천시도 연령별·계절별·테마별로 순천만정원, 순천만, 낙안읍성 등을 연계하는 관광코스 개발에 나섰다. 광주시는 아예 호남고속철 1량(56석)을 임대해 다음달 2일부터 ‘아트 투어 남행열차’ 상품을 내놓는다. 경북 포항시는 KTX 포항 개통을 계기로 영일만 앞바다를 둘러볼 수 있는 관광유람선 운항사업을 추진한다. 울산시는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해 올해부터 기존의 고래바다여행선(고래 탐사선)에 이어 간절곶에서 대형 요트관광을 시작했다. 부산시는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에 힘입어 명소로 떠오른 국제시장과 중구 광복동, 남포동 일대를 묶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 속 ‘꽃분이네’ 등 국제시장 명소를 지나는 산복도로와 자갈치시장, 용두산공원 등과 연계하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국내외 관광객들을 불러들인다는 계획이다. 인천시도 백령도 성지순례 상품과 강화도 갑곶 성지순례를 비롯해 백령도 물범, 옹진군 저어새, 강화 갯벌 등 종교와 자연 생태를 주제로 한 특색 있는 관광 콘텐츠 개발에 나선다. 지자체 관광개발 담당들은 “행락철을 맞아 지자체마다 변모하는 관광 여건에 맞게 다양한 관광상품을 출시하며 관광객 잡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요우커들이 찾을 기벌포를 아시나요?/ 백낙흥(충남 서천 부군수)

    요우커들이 찾을 기벌포를 아시나요?/ 백낙흥(충남 서천 부군수)

    요우커들이 찾을 기벌포를 아시나요?/ 백낙흥(충남 서천 부군수) 작년 말 기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1420만 명에 이른다. 그중 중국인 관광객 즉 요우커의 수가 613만 명으로 약 43.2%를 차지하니 대단한 비율이다. 그 비율도 비율이거니와 요우커의 숫자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 폭발성에 대하여 관련업계와 자치단체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찾는 곳이 주로 서울과 제주 중심으로 쇼핑과 성형 목적이 대부분이라고 하나 중국인들이 외국을 관광할 때 자기 나라와 역사적으로 관련된 인물과 장소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좋은 예가 중국 인민해방가를 작곡하여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정율성의 광주시에 있는 생가 터에 2013년도에만 2만 5000여 명의 요우커들이 다녀갔다. 역사적으로 충남지역은 숨겨진 마지막 관광 보물 지역이다. 나당 연합군의 주 무대였으며 서해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교류를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기벌포(伎伐浦, 우리말 ‘질구지’, 진땅이라는 의미)는 금강하구에 위치하면서 서해와 금강을 한눈에 조망이 가능하여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역이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가 잘 아는 장항제련소 바로 뒤쪽에는 장암진 성터와 망루 터가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백제의 패망기에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이곳에서 벌어진 최초의 국제 해전이 세 번에 걸쳐 일어났는데 모두 당나라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나라는 중국인들이 그렇게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中華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나라다. 그 주역은 당태종 이세민이다. 이세민과 김춘추가 맺은 나당 동맹에 따라 660년에 기벌포에서 첫 번째 백제군과 해전을 치른다. 이때 당나라의 총대장이 되어 온 이가 바로 소정방이다. 소정방은 중국을 측면에서 끊임없이 괴롭히던 변방족 동․서돌궐을 평정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백제는 이 기벌포에서 당나라 군대를 막지 못하고 뚫리면서 그대로 사비로 진격한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패망하고 만다. 두 번째 전투는 663년, 백제 부흥군과의 전투로 일본으로 가있던 의자왕의 아들 풍이 중심이 되어 나당 연합군과 싸운 소위 백강구 전투다. 일본을 비롯한 네 나라가 참여하였다. 당에서는 당시 웅진도둑으로 와있던 유인궤가 총대장이었다. 그렇게도 고구려를 물리치고 싶었지만 뜻을 펴지 못한 당태종이 키운 유인궤가 나당 연합군이라는 형식을 빌러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어떻든 중국인들의 소원을 이룬 인물로 평가받는다. 세 번째 전투는 670년부터 시작된 신라와 당의 7년 전쟁이다. 평양 이남은 신라가 지배한다는 나당 동맹을 파기하고 당나라는 노골적으로 백제와 신라마저 점령하기 위해 676년, 기벌포에서 설인귀(薛仁貴)가 함대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결국 신라에 의하여 삼국통일이 되는 마지막 전투였지만 설인귀(薛仁貴)는 중국인들에게 영웅(英雄)으로 숭배를 받고 있다.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에 실패해 귀환한 뒤 설인귀에 대해 “용맹한 장수를 얻어 기쁘도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신당서(新唐書)>에 나와 있다. 이렇듯 기벌포는 중국인들에게서 추앙받는 당시를 풍미했던 소정방, 유인궤, 설인귀가 싸웠던 장소이다. 거기에다 내년 상반기에 서산 대산항과 중국 산둥성 롱앤항간 여객선 페리가 운행하게 되면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들이 몰려올 것이다. 물론 산둥성 위해시가 장보고 기념관과 동상 설립을 허용한 것처럼 우리로서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 세 사람을 위한 기념관은 아니더라도 안내 표지판 설치와 중국어 문화해설사 정도는 배치해서 역사에 당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1350년 전의 사건을 교훈삼아 미래를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서천군은 이러한 중국과의 역사성과 군내에 흩어져 있는 천방산 설화 등을 발굴하고 체계화하여 요우커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적극 준비할 계획이다. ======================================= ※‘자정고 발언대’는 필자들이 보내 온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따라서 글의 내용은 서울신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에 대한 권한 및 책임은 서울신문이 아닌, 필자 개인에게 있습니다. 필자의 직업, 학력 등은 서울신문에서 별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보내온 그대로 싣습니다.
  • 서울, 거리 공연 상설화 문화도시로

    노래하며 예술을 꿈꾸는 영화 ‘원스’의 주인공 버스커(거리의 악사)처럼 거리 예술가의 다양한 공연을 서울에서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가 활력 넘치는 도시를 만들고 서울만의 관광자원으로 거리 무료 공연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시는 올해 시내 200곳을 ‘거리예술존’으로 선정, 운영한다고 1일 밝혔다. 또 노래와 악기연주, 마술, 마임, 국악 등 거리예술 공연을 선보일 ‘거리예술단’도 공개오디션으로 선발한다. 거리예술가에게는 문턱 낮은 공연 무대를, 시민들에게는 쉽고 편하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시는 이달 구의취수장에 문을 여는 ‘서울 거리예술창작센터’와 함께 거리예술존과 거리예술단을 운영해 거리예술을 서울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우선 시는 상반기에 거리예술존 100곳을 선정하고 나머지 100곳은 하반기 지정하기로 했다. 서울광장을 비롯한 광장과 공원, 세종대로·청계천로·덕수궁길 같은 보행전용 거리, 망원·통인시장을 비롯한 전통 시장 등이 해당된다. 또 오는 10일까지 공연팀(개인 포함) 지원 신청을 받아 100개 팀을 선정해 거리예술단을 꾸린 뒤 다음달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각 팀은 1회 공연(60분 기준)에 15만원을 지원받으며 최대 연 12회 공연할 수 있다. 이창학 시 문화체육관광 본부장은 “거리예술존은 예술가들에겐 발표 무대, 시민들에겐 다채로운 음악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산업의 발판”이라면서 “거리예술존과 거리예술단을 통해 거리예술을 서울의 대표적 문화상품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서울숲으로 동화속 모험 떠나요~

    서울숲으로 동화속 모험 떠나요~

    ‘모험과 이야기가 있는 서울숲 남산길’. 서울숲에서 응봉산, 대현산, 금호산, 매봉산을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연장 8.4㎞ 구간의 서울숲 남산길. 한강과 도심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서울의 대표 산책로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에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모험놀이터와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해졌다. 성동구는 서울숲 남산길에 있는 응봉산과 대현산에 12억원을 들여 다른 주제의 놀이시설을 조성했다고 31일 밝혔다. 구는 응봉산에 출렁다리와 챌린지타워, 외줄타기, 그물건너기 등 온 가족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모험의 숲’을 만들었다. 특히 응봉산 입구 산책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샛길에 출렁다리를 만날 수 있다. 인근 암벽공원과의 높이 차를 이용해 20m 길이로 조성됐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듯해 보기엔 아찔하지만 자동차가 다녀도 끄떡없을 만큼 안전하다고 구는 설명했다. 대현산에는 숲속도서관과 초화원, 야외자연교실, 나무이야기길 등 상상과 사색의 공간인 ‘이야기숲’이 들어섰다. 피노키오의 성장 과정을 형상화한 조형물, 설화 ‘호랑이와 곶감’을 형상화한 시설을 체험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벤치에는 동화 속 달, 토끼, 계수나무 등을 새겨 넣었다. 아울러 구는 모험놀이터 등 각종 시설에 정기 및 수시 안전점검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인공암벽 교육, 숲 해설가와 함께하는 자연생태학습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정원오 구청장은 “1일 암벽공원 위 배드민턴장에서 준공식을 갖는다”면서 “산책데크를 설치하면서 생긴 진입로 여유 공간에 주차공간을 확충해 접근성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언제든지 와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하늘과 닿은 우물…지친 삶, 갈증을 달래다

    하늘과 닿은 우물…지친 삶, 갈증을 달래다

    쉰움산(683m)이라 했다. 강원 삼척의 미로면에 솟은 산이다. 이름이 독특하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다. 혹시 오르기 ‘쉬움’의 오기일까? 아니면 신음 소리 내는 산이라는 뜻일까? 쉰 개의 움막이 있다는 뜻일 거라고 추측했다면 꽤 정답에 가까워졌다. 쉰움산은 ‘쉰 우물’에서 나왔다. 산정에 제법 너른 바위가 있는데, 바위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구멍이 50개 정도 뚫려 있다. 여기에 빗물이 고이면 꼭 ‘쉰 개의 우물’과 같다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쉰움산은 삼척의 명산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 사이에 끼어 있다. 그 탓에 그냥 지나쳐도 좋을 봉우리 정도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한데 산정에 펼쳐진 암릉과 예서 굽어보는 풍경만큼은 명산 뺨칠 정도로 빼어나다. 삼척시에서 발행한 관광 안내 책자에는 등반 시간이 1시간 30분(편도)으로 적혀 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오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질 법한 산행 시간이다. 한데 실제 쉰움산 등반은 쉽지 않다. 최소 왕복 3시간 30분 이상 잡아야 한다. 안내 책자에 적힌 대로 정상까지 1시간 30분에 가려면 ‘엄홍길 대장’ 수준의 전문가가 작심하고 등반해야 가능할 듯하다. 설령 그렇게 ‘빛의 속도’로 오른다 한들 가슴에 남는 것도 없지 싶다. 들머리는 천은사다. 쉰움산 초입에 터를 잡은 절집이다. 천은사로 가려면 오십천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오십천은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해 동해에 이르기까지 50여 번을 돌아 흐른다는 하천이다. 개울 옆 시골길엔 푸른 보리가 얼추 무릎 가웃이나 될 만큼 자랐다. 불끈 솟은 두타산을 겨냥해 부지런히 길을 줄이니 곧 천은사 일주문이다. 문턱 너머로는 조붓한 오솔길이 펼쳐져 있다. 천은사 옆 용계(龍溪)를 굽돌아 가던 오솔길은 이방인을 고려의 역사 속으로 이끈다. 천은사 일대는 ‘이승휴 유허지’다. 고려 때의 문신 이승휴가 삼척의 외가로 낙향해 용안당이란 건물을 짓고 ‘제왕운기’를 집필했던 곳이 현재의 천은사다. 당시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승휴의 위패를 모신 사당 동안사(動安祠)만 남아 있다. 동안사에서 왼쪽 산길로 올라붙으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계류를 끼고 가는 등반로 초입은 완만하다. 조근조근 소리 내며 흐르는 계류도 정겹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곧 물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덩달아 등산로도 급한 오르막으로 변한다. 오르막 끝자락에 서면 땀에 젖은 등 뒤로 고래가 뛰노는 동해 바다가 펼쳐진다던데, 시계가 불량해 그런 행운은 없었다. 입에서 단내가 폴폴 날 때쯤 거대한 금강송이 발길을 잡는다. 10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검붉은 수피의 금강송이다. 소나무 옆 샛길로 접어들면 이번엔 거대한 암벽이 가로막는다. 은사암이다. 빛을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 암벽과 반석, 굽은 노송이 매력적인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암벽 아래는 가슴 높이로 뚫린 빈 공간이다. 여기에 돌기둥 하나가 모로 서 있다.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듯하다. 수도처로 삼기 딱 좋은 모양새다. 여기저기 촛농 등 치성을 드린 흔적도 역력하다. 태백산에 버금간다는 기도처라지만 무속신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그저 흉물스러운 풍경일 뿐이다. 샛길을 되짚어 나와 다시 산길을 오르면 은사암 꼭대기다. 거무튀튀한 너럭바위 너머로 강원의 산들이 마루금을 좁히고 서 있다. 그 너머는 동해다. 맑은 날엔 울릉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정상은 너른 바위다. 돌구멍이 여기저기 널렸다. 암반에 뿌리내린 노송 10여 그루는 넓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쉰움산, 이른바 오십정산(五十井山) 표지석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목 빼고 아래를 굽어보니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벼랑 건너편은 거대한 암벽이다. 제아무리 기교 넘치는 화가가 붓질을 한다 해도 저렇게 빼어난 진경산수화는 그리지 못할 듯하다. 국내 내로라하는 동굴인 대금굴과 환선굴이 미로면에 있다. 쉰움산과 묶어 돌아보는 게 좋겠다. 대금굴은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내부 140m까지 들어간다. 동굴 내부가 온통 황금색인 것이 이채롭다. 하루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홈페이지(samcheok.mainticket.c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환선굴은 남한에서 가장 큰 규모다. 총 6.2㎞ 중 1.5㎞ 구간이 개방돼 있다. 금강송 숲이 아름다운 준경묘와 영경묘도 쉰움산과 멀지 않다. 삼척에는 은근히 로맨틱한 관광지가 많다. 신라시대 수로부인 설화를 모티브로 조성한 임해정, 헌화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경국지색의 용모로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시꺼멓게 태웠던 수로 부인이 강릉태수를 제수받은 남편 순정공과 함께 부임지로 향하던 길이었다. 삼척 해안가 어디에선가 수로 부인이 천길단애에 핀 철쭉꽃을 보며 누군가 저 꽃을 꺾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다. 마침 암소를 몰고 지나던 한 노인이 선뜻 나섰고 그가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가 바로 저 유명한 헌화가(獻花歌)다. 임원항 뒤편의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이 헌화가를 모티브로 조성됐다.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 최대 돌조각상이라는 수로부인상이다. 아파트 4층 높이인 10.6m에 무게가 500t에 달한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길이 25m, 높이 5.5m의 거대한 용의 등에 탄 수로 부인의 모습을 조각했다. 12지신상, 산책로, 전망대, 쉼터 등도 갖췄다. 삼척 북부의 증산 해변에 조성된 ‘수로부인공원’은 삼국유사의 해가(海歌) 설화가 모티브다. 수로 부인 일행이 현재의 임해정(臨海亭) 인근에 이르렀을 때 용이 나타나 부인을 바다로 끌고 갔고, 백성들이 노래를 불러 수로 부인을 구해 냈다는 게 이야기의 얼개다. 공원 초입엔 여의주 조형물(드래건볼)이 설치됐다. 오석(烏石)으로 만들어 무게가 4t에 이른다고 한다. 손으로 볼을 돌리면 사랑과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 연인들에게 특히 인기다. 해신당 공원은 다소 노골적이다. 다양한 남근(男根)을 모아 성민속공원으로 꾸몄다. 삼척에서도 풍경 곱기로 소문난 신남마을 언덕에 조성됐다. 글 사진 삼척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강원 033) →가는 길: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삼척까지 간다. 삼척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태백으로 가는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미로역 인근에서 우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천은사까지는 외길이다. 구불구불 강원도 길의 진수를 맛보려면 중부내륙고속도로→감곡 나들목→38번 국도→제천 방향→영월→정선→태백→삼척 순으로 가도 좋겠다. 느릿느릿 달리며 풍경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쉰움산에서 두타산까지는 2시간 정도 더 올라야 한다. 수로 부인 헌화공원을 가려면 임원항을 찾아가야 한다. 값싸고 싱싱한 활어회로 이름난 항구다. 수로 부인 헌화공원은 임원항 뒤편 산자락에 조성됐다. 목재 데크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적어도 20분 이상 올라야 해 다소 버거울 수 있다. 차로 가는 것도 녹록하지는 않다. 길이 좁은 데다 굴곡도 심해 초보 운전자는 위험할 수 있다. 임원항에서 임원1교를 지나 삼척로를 따라가다 작은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곧장 간다. →맛집:천은사 입구의 두타순두부집(572-9484)은 토속적인 맛을 물씬 풍기는 집이다. 순두부와 두부, 토종닭 등을 맛볼 수 있다. 삼척 시내에선 정라항 쪽에 맛집들이 많다. 삼정식당(573-3233)은 생태맑은탕과 해물탕으로 소문난 집이다. 바다횟집(574-3543)은 곰치국, 미진횟집(572-6679)은 싱싱한 해산물, 대복숯불구이(572-3736)는 한우가 맛있다. 삼척의료원 옆의 울릉도 호박집(574-3920)은 장치찜을 잘한다. 장치찜에 곁들여 내는 호박술도 달달하다. 삼척해수욕장 쪽에선 부림해물(576-0789)이 다양한 해산물 요리로 소문났다. →잘 곳:정라항에서 삼척해수욕장까지, 이른바 ‘새천년도로’로 불리는 4㎞ 남짓한 구간에 숙박 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이 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 뜨는 언덕’이라 하는데, 팰리스호텔(575-7000), 퍼시픽모텔(576-0162) 등이 이 언덕 위에 있다. 삼척온천관광호텔(573-9696), 동양레저게스트하우스(573-0874), 삼척온천(573-9696) 등도 깔끔하다. 점점 사라져 가는 너와집과 만나려면 신리 너와마을(552-1659)을 찾으면 된다. 너와집은 강원 산간마을 특유의 주택 형태로, 소나무나 참나무를 널빤지 형태로 잘라 만든 너와를 지붕에 얹은 집이다. 너와마을에서 펜션 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한국 현대건축 평전(박길룡 지음, 공간서가 펴냄) ‘한국 건축계의 석학’으로 불리는 박길룡 국민대 건축대학 명예교수가 2005년 낸 ‘한국현대건축의 유전자’ 개정증보판.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행로를 되밟는 통사’라는 자평대로 2005년 출간 이후 10년간 변화와 함께 지금 시점에서 과거를 다시 다듬었다. 해방 후 재건기록부터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김수근에 이어 1990년대 초반 ‘4·3그룹’을 비롯해 집단체제로 실천을 시도한 건축인까지 담았다. 단순 연대기적 나열을 피해 건축물·건축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한계, 우리 건축사에 남긴 의미를 비판적으로 봤다. 한국건축의 다양한 종파와 변이, 진화상을 온전히 담아낸 흐름이 도드라진다. 책 속 253개 건축 이미지와 한국 근현대사 내용을 4쪽에 걸쳐 펼친 그림으로 앞쪽에 정리했다. ‘한국에게도 모더니즘은 거스를 수 없는 절대가치가 되지만, 개화기 동안 어질러졌던 문화 유전자를 껴안고 다음 시대로 넘어간다’는 표현이 눈에 띈다. 440쪽. 3만 3000원. 단테의 신곡, 에피소드와 함께 읽기(차기태 지음, 필맥 펴냄) 한겨레 기자를 지낸 아시아엔 편집국장이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신곡’의 깊이 읽기를 시도했다. 지옥, 연옥, 천국을 차례로 여행하는 줄거리의 신곡은 중세 기독교 교리와 세계관을 기반으로 저승세계를 생생하게 형상화한 작품.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면서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근대의 개막을 예고한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만큼 신화와 설화, 역사적 사건, 철학·신학적 개념에 익숙해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책은 신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면서 신화와 설화, 철학·신학적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감상과 비평을 곁들여 읽는 이의 이해를 도왔다. 저승세계를 실제로 여행하는 느낌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원작의 지옥, 연옥, 천국 구분을 각각 상·하부로 세분한 게 특징.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신곡 내용을 소재로 그린 삽화작품도 곁들였다. 624쪽. 2만 5000원.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오은경 지음, 시대의창 펴냄) ‘여성 억압’ 문화를 낳은 이슬람 민족주의·가부장제 역사부터 근대화 과정과 페미니즘 운동까지를 살폈다. 전 세계 문제로 떠오른 테러와 이슬람국가(IS)식 범죄 발생의 근본원인을 분석하고 해법도 제시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서구 제국주의가 등장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이슬람 정체성의 유지를 위해 전통문화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런 믿음이 이슬람을 폭력적으로 해석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국가·민족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전쟁·테러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면서 여성을 향한 폭력을 한층 강화시킨다. 이슬람 국가의 여성들은 자국 민족주의와 가부장제 문화, 서구 제국주의 사이에서 이중으로 고통받으며 이중적 타자가 된다. 명예살인, 여성 할례, 베일, 전쟁·테러로 여성이 고스란히 떠안는 메커니즘을 분석해 여성 억압의 다양한 층위를 파헤친 게 특징이다. 308쪽. 1만 6000원. 부자들의 역습(장루이 세르방 슈레베르 지음, 정상필 옮김, 레디셋고 펴냄) 프랑스의 현직 언론인이 다양한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부자’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부의 흐름을 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살펴 ‘부의 팽창’이란 전 지구적 현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접근할지를 귀띔했다. 우선 부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이유가 세 가지로 압축 정리된다. 신흥국 중심의 높은 성장률과 증가하는 금융자본의 지배력, 젊은 백만장자를 양산하는 디지털 혁명이 그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부자는 모든 분야를 점령해 가고 있다. 자본은 물론 정치·미디어에 미치는 영향력도 막강해 부자들의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부자들의 증가가 소비를 활발하게 함으로써 경제에 활기를 주기도 하지만 금력을 이용한 권력 정복을 통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각종 통계와 사례를 삽입해 사회 속 부자들의 위치와 영향력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256쪽. 1만 5000원.
  • 금천구, 역사는 기리고 문화는 살리고

    금천구, 역사는 기리고 문화는 살리고

    서울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에는 기묘하게 생긴 동물석상이 있다. 화재와 재앙을 막아준다고 알려진 해태상이다. 조선의 도읍을 정하면서 관악산의 화기가 걱정돼 주변에 해태상을 세워 그 기운을 눌러 한양의 화재를 막으려고 했다는 설화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형상이 개를 닮은 탓에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천구 관계자는 “지역 곳곳에 문화재가 있지만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없어 많은 주민이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 했다. 금천구는 현장 체험 교육사업과 금천 마을의 역사를 기리는 마을 주민 축제를 수행할 역량있는 단체를 찾는다고 2일 밝혔다. 모집 기간은 이달 9일까지이고, 신청 자격은 현재 지역에 있는 현장 체험 교육이 가능한 비영리단체(법인) 또는 협동조합이다.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4월 중순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지역의 문화재를 소재로 한 사생대회가 진행된다. 또 10월에는 금천 마을의 녹동서원, 단군 전, 강희맹 등 마을의 역사를 기리는 새재미축제가 개최된다. 마지막으로 11월에는 제례문화 탐방을 비롯해 ▲삼성산 낙엽 길 밟기 ▲추억의 보물찾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구 관계자는 “우리 동네에 어떤 문화재가 있고,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지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시 주민참여예산 1500만원으로 운영되는 만큼 구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도둑이던 남자, 그의 운명을 바꾼 연인

    [지구촌 책세상] 도둑이던 남자, 그의 운명을 바꾼 연인

    옥타비오의 여행/미구엘 본포이 지음/리바쥬 출판사/130쪽/15유로(2015년 1월 프랑스 출간) 베네수엘라를 떠올리며 쓴 이야기를 접하기란 드문 일이다. 베네수엘라 출신 프랑스 작가 미구엘 본포이는 단편소설 ‘이카루스’로 2013년 젊은 프랑스 작가상을 거머쥐면서 이미 명성을 누렸다.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옥타비오의 여행’을 만나 보자.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교외가 빈민촌이 되기 전 생 폴 뒤 리몽은 평화로운 마을로 1908년에 활개를 친 끔찍한 페스트를 극복하며 덧없는 긍지를 누렸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 여기고 교회를 세웠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근방의 고급 저택을 대상으로 약탈하는 도적 떼가 교회를 점령하게 된다. 도둑질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조직을 돕던 우둔한 돈 옥타비오는 한창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문맹인 까닭에 말하는 것이 서툴렀다. 그의 친구인 의사 알베르토 페레초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옥타비오가 아름다운 여인 베네수엘라를 만나고 난 뒤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자들의 추근거림에 홀로 있길 좋아하던 베네수엘라는 옥타비오와의 사회적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베네수엘라는 그에게 글 읽는 법과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그동안 잠재돼 있던 그의 세계를 일깨우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 준다. 힘에 억눌려 도적 떼와 도둑질을 하러 가게 된 옥타비오는 강도의 모습으로 베네수엘라와 마주하게 되고 그는 결국 은둔 속에서 보낸 지난날의 삶을 버리고 도망을 택해 이들의 순정적인 사랑은 급작스럽게 끝나게 된다. 그의 긴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옥타비오는 곳곳에서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되는데, 이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의지를 확고하게 하고 성자의 희생정신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러다 옥타비오는 오랜 친구 알베르토 페레초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는 옥타비오에게 도적 떼가 붙잡혔으며 이전의 교회는 극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며 그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부추긴다. 이 소설이 보여 주는 간결함 속에서 단어들은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을 자극하고, 이야기는 우리들 안에 잠들어 있던 원초적이고 아득한 무의식을 깨워 준다. 때로는 서사적이면서 때로는 몽환적인 돈 옥타비오의 긴 여정은 용감한 사람들의 운명이란 우연한 사건들을 마주하여 늘 반복돼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미구엘 본포이는 꼭 필요한 만큼만 시공간의 틀을 줄이고, 고전적인 문체와 간결한 어휘를 사용한다. 근대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설화처럼 그는 자신의 소설에 예로부터 전해지는 오래된 빛깔 같은 이야기를 그려 낸다. 그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옥타비오의 모험을 따라 인간과 언어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래티시아 파브로 주한프랑스문화원 출판진흥담당관
  • [기업이 다시 뛴다] 아모레퍼시픽, 중국 유혹한 ‘5대 화장품’ 이제 세계로 뻗는다

    [기업이 다시 뛴다] 아모레퍼시픽, 중국 유혹한 ‘5대 화장품’ 이제 세계로 뻗는다

    아모레퍼시픽은 창립 70주년을 맞는 올해 경영방침을 ‘우리 다 함께’로 정하고 글로벌 확산, 디지털 역량 강화, 소매 역량 강화, 임직원 역량 강화, 질(質) 경영 정착을 중점 추진 전략으로 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및 아시아 지역의 고객 조사와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5대 글로벌 브랜드(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에뛰드, 이니스프리)의 확산에 집중할 계획이다. 판매가 폭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면세점 사업 역량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또 온·오프라인 경계가 사라진 상황에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공해 고객과의 소통에 힘쓸 방침이다. 이를 위해 오프라인 매장, 브랜드 사이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모든 고객 접점에서 아모레퍼시픽을 접할 수 있도록 옴니채널 전략에 집중하기로 했다. 임직원 역량도 강화한다.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글로벌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혜초 프로젝트’를 더욱 발전시켜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하는 인재 확보 및 양성을 지속할 계획이다. 또 지난해부터 전사적으로 강조해 온 질 경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지역의 미래를 묻다]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 “청소년 행복도시 만들기에 최선”

    [지역의 미래를 묻다]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 “청소년 행복도시 만들기에 최선”

    “13만여 송파 청소년이 행복한 도시로 꾸려 가겠습니다.” 박춘희 서울 송파구청장은 지역의 미래성장 동력으로 ‘지역 청소년’을 먼저 꼽았다. 솔직히 선출직 구청장이 ‘표’가 안 되는 청소년을 챙기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지만 박 구청장은 ‘지역 청소년이 행복해야 부모님이 편안해지고 지역이 발전한다’는 철학 때문인지 다양한 청소년 정책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청소년과를 만든 이유도 바로 지역 청소년이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면서 “잠실동의 청소년여가지원센터 건립과 학교 밖 청소년 지원 등 지역 청소년이 학업과 건전한 여가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2017년 잠실 종합운동장 근처에 들어설 여가지원센터는 6층 규모로 음악실과 극장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실과 스튜디오 등 다양한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현재 투자사업 심사와 설계를 준비하고 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떠난 청소년을 위한 지원도 구상 중이다. 박 구청장은 “현재 송파구에는 1160여명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면서 “이들도 우리 지역의 건강한 일꾼으로 자랄 수 있도록 작은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각종 지원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구청장은 ‘관광’ 인프라 구축도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2020년이면 송파구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800만명이 될 것”이라면서 “이들이 송파구에서 먹고 자고 즐길 수 있도록 관광숙박시설 확충과 도심순환형 관광버스 도입 등 관광 인프라를 대폭 확충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송파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90만여명이다. 이런 수치와 비교해 객실 보유율이 34% 수준으로 절대 부족하다. 잠시 들르는 도시가 아닌 머무는 곳으로 거듭나기 위해 숙박업소의 증설이 절실하다. 현재 사업계획이 승인된 호텔은 6곳 920실이다. 또 구청 옆 KT 부지를 포함한 9곳 2100여실이 승인을 준비 중이다. 최근 도시 민박업 객실 수가 증가세에 있는데, 방이동 일반숙박단지의 관광호텔 전환도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 15회를 맞는 ‘한성백제문화제’의 글로벌 축제화와 지역 대표 공연 ‘뮤지컬 온조’의 상설화 등 관광 콘텐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 구청장은 “관광정보센터 운영과 한류 콘텐츠를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세계인이 찾아오는 관광도시 송파구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날개 꺾인 김문수

    날개 꺾인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가 출범 5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보수 혁신’을 기치로 내세우며 야심 차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뒤로 갈수록 동력을 상실해 결국 ‘용두사미’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혁신위 관계자는 15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최 문제로 시끄러웠던 지난 12일 김문수 위원장과 나경원 부위원장이 비공개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김무성 대표에게 혁신위를 마무리한다고 보고했다”며 “혁신위 회의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최선을 다했다”면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혁신안을 잘 논의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하는 북한인권회의 참석차 16일 미국으로 출국해 다음달 4일 귀국한다. 혁신위는 여권의 대선 주자 가운데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김 대표와 김 위원장의 합작품이라는 이유로 큰 기대를 모았다. 김 대표는 김 위원장의 개혁적 이미지를 흡수하고,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이미지에 보수색을 더할 수 있게 됐다는 후한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의원 출판기념회 금지 등 김 위원장이 내놓는 혁신안은 유독 김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로부터 철퇴를 맞으며 점점 힘을 잃었다. 현역 의원들의 회의 참석률은 저조해졌고 외부 위원들의 섭섭함은 쌓여 갔다. 당초 ‘혁신위 상설화’를 구상하기도 했지만 혁신위에 힘이 실리지 않으면서 아예 얘기를 꺼내기조차 힘들 정도가 됐다. 결국 김 위원장은 연초부터 혁신위를 조기에 끝내겠다는 의지를 주변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씨줄날줄] ‘농반진반’과 취재 윤리/정기홍 논설위원

    낮말을 듣는다는 새와 밤말을 듣는 쥐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게 아내다. 여성이 들으면 언짢겠지만 친정에서든, 친구에게든 숨겨 줘야 할 남편의 버릇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끄집어내 수다를 떤다. 남보다 잘난 것 없는 풀 죽은 남편의 행동거지는 아내의 불만 해소의 먹잇감이다. ‘소에게 한 말은 사라져도 아내에게 한 말은 새 나간다’는 속담도 연장선이다. 아내의 경우가 아니라도 말조심을 지적하는 경구(警句)는 수두룩하다. 보통 사람이 하루 1만 8000여 단어를 쓴다는 학자의 주장도 있다. 말이 많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설화(舌禍)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기자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한 말이 구설을 넘어 자리마저 위태로운 처지로 만들었다. 관련 녹음 파일의 일부도 공개됐다. 방송사의 간부에게 전화해 토론자를 뺐고, 평소 형제처럼 지내 온 간부들을 통해 기자의 인사를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언론인을 대학 총장이나 교수로 만들어 줬다는 과시도 했다. 눈에 뭐가 씌었는지 국회 청문을 코앞에 두고 위험천만한 말을 주고받았다. 부동산 투기, 병역 의혹 등으로 ‘불량 완구’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캐도 캐도 미담만 나온다”던 검찰 간부의 혼외 자식이 탄로난 그 짝이다. 어제는 북한까지 나서서 ‘부패 왕초’라고 비난하고 있으니 이런 낭패가 없다. 그는 “농반진반(半眞半)”이었다며 동료 의원들에게 거푸 소명했지만 매정하게도 ‘가재는 게 편’이 아닌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내외적인 자극이 억압된 관념을 일깨우면 말실수가 나온다고 했다. 실수에 우연과 소극이 아닌 적극 행위가 담긴다는 뜻이다. 매사 자신감이 넘치는 이 후보자가 답답한 상황에 속마음을 과시적인 말로 뱉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뒤바꾼 치명적 말실수’의 저자 이경채씨는 “지나친 자신감은 화를 부르고, 유능한 지도자의 말에는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으로 생각한 뒤에 입으로 말하라’에 명답이 있다. 처신의 달인인 그에게도 세 치의 혀는 화근이었다. 혀가 도끼로 변한 것이다. 격식 없는 김치찌개 점심 분위기도 꽉 막힌 그의 마음을 여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역시 침묵은 금()이다. 찜찜한 구석은 달리 있다. 동석한 신문기자가 이 후보자의 말을 녹음해 자료를 통째로 야당에 넘겼다. 보도도 자사에서 하지 못하고 방송사를 통했다. 재상(宰相)의 흠결을 꼼꼼히 봐야 하는 사안의 중대성 말고도 취재 윤리의 문제가 제기된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고 기계·전자 수단을 통해 듣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기자들이 자리를 함께했으니 타인 간의 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파일이 공개돼 명예훼손의 소지는 있어 보인다. 산전수전을 겪은 정치 중진의 입방정과 조무래기 기자의 행위가 우리의 자존심을 내동댕이친 것 같아 마뜩잖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소강체육대상’ 10일 시상식 개최

    재단법인 소강민관식육영재단(이사장 정원식)은 10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제7회 소강체육대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본상 부문 공로상에 박상하 국제정구연맹 회장, 지도자상 김미정 유도 여자 국가대표 코치(용인대 교수), 언론인상 전영희 스포츠동아 스포츠2부 기자, 남자 최우수선수상 박성빈 요트 선수(대천서중), 여자 최우수선수상 정설화 사이클 선수(나주 다시중) 등에게 상금 500만원과 트로피가 수여된다. 일반 부문 남자 특별선수상에는 지체장애 1급인 사격 선수 박진호, 여자 특별선수상에는 지적장애 3급인 스노보딩 선수 이미연이 선정돼 각각 격려금 300만원과 트로피를 받는다. 임병선 전문기자 bsnim@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황순원은 누구

    한국인으로서 황순원(1915~2000)의 단편 ‘소나기’를 읽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올 뿐 아니라 가슴 뭉클한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순수한 사랑과 비극적 결말에 관한 이야기는 수많은 동화와 소설, 드라마와 영화, 연극, 뮤지컬, 노래 등의 소재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순원이 김동리, 박경리와 함께 문학 분야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로 꼽히는 또 다른 이유는 아름다운 문체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단편은 주로 현재형 문장이고, 직접적 대화보다는 감각적 묘사와 서술적 진술이 주를 이룬다. 평단에서는 그가 단편을 시의 연장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 때문에 그의 소설은 ‘시적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그는 옛날이야기나 전설을 현재의 사건과 융합시키는 환상적인 수법을 통해 소설에 설화적 분위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교사인 아버지 아래서 태어난 황순원은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는 등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한 것은 1929년 남강 이승훈이 교장을 지냈던 오산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이듬해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했고, 1931년 7월 ‘동광’(東光)에 실린 ‘나의 꿈’이 등단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숭실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중학 시절 거듭 시를 발표하다가 1934년 졸업 뒤에는 일본 도쿄로 건너가 와세다 제2고등학원에 입학한다. 1936년 고교를 졸업한 뒤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영문과에 들어간다. 그해 5월 이후에는 시를 더 이상 쓰지 않고 소설 창작에 집중했다. 1942년 이후에는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고향에 숨어 지냈다. 광복 이후 황순원은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지주 계급으로 몰리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이듬해 월남했다. 월남 후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있던 황순원은 지속적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이후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생활이 안정되면서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더 많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또 1970년에는 이형표 감독의 영화 ‘시집은 가야죠’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10)절대빈곤층의 미용 관리-7000원 아끼려 짧게 커트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貧’] (10)절대빈곤층의 미용 관리-7000원 아끼려 짧게 커트

    “화장품요? 저는 소주로 만든 스킨 쓰는 게 전부예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간호조무사 A씨의 유일한 화장품은 ‘소주 스킨’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간단한 색조 화장은커녕 로션도 바르지 않는다. 소주와 레몬 조각, 글리세린을 섞어서 가제로 덮고 냉장고에 2~3개월 정도 숙성시켜서 쓴다. 인터넷상에서는 천연 화장품 비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A씨가 ‘소주 스킨’을 만들어 쓰는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다. 글리세린은 병원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얻어 쓰기 때문에 1200원 하는 소주값과 레몬값까지 하면 2000원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넷(고등학생과 초등학생 딸 두 명,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 2명)을 키우면서 월 135만원을 버는 A씨에게 화장품이란 구매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쓰는 것이다. 그나마 주변에서 얻은 화장품 샘플들은 아이들 몫으로 돌아간다. 절대빈곤층에게 화장품은 ‘사치품’일 뿐이다. 먹는 것을 사기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절대빈곤층의 대부분은 아예 화장품을 사지도 바르지도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31세 싱글맘 B씨는 5년 전 아이를 낳은 뒤부터 지금까지 스킨, 로션을 한번도 발라 본 적이 없다. B씨는 “딸 아이는 베이비로션을 발라 준다”면서 “나도 베이비로션이라도 같이 쓸 수 있지만 아끼려고 안 썼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처녀 때랑 다르게 주름이 많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39살 싱글맘 C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녀 3명(12세 아들과 2세와 8개월 된 두 딸)명을 키우는 C씨는 과거에는 명동의 화장품 매대에서 화장품을 사기도 했지만 3년 전부터 기초 화장품조차 바르는 것을 포기했다. 어쩌다가 결혼식 등 신경을 쓰고 가야 할 자리가 있을 때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르는 정도다.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C씨는 “왜 없겠어요. 여자는 나이가 적건 많건 꾸미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당연하죠”라면서 “그런데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니 나 자신한테 쓸 돈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C씨의 얼굴은 화장기 하나 없이 창백해 보였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D(82)씨도 20년간 로션 같은 것을 사 본 적이 없다. D씨는 “이제 나이를 먹으니 화장품을 바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서 “밖에도 잘 나가지 않는데 바를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절대빈곤층에게 귀한 화장품은 바로 ‘샘플’이다.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E씨는 지인들로부터 샘플을 얻어 쓰고 있다. 특히 고급 화장품으로 알려진 S브랜드의 샘플을 얻는 날은 ‘운수대통’이다. 딸 셋(초등학교 6학년, 4학년, 5세)을 키우고 있는 기초수급자 싱글맘 F(33)씨는 시장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가서 ‘샘플 동냥’을 한다. 운이 좋으면 샘플 몇 개를 얻어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몇 년 전 동네 복지관 행사에서 색조 화장을 받아 본 게 F씨가 ‘제대로’ 화장이라는 것을 해 본 전부다. F씨는 “화장한 나를 보고 복지관 선생님이 ‘못 알아보겠다. 너무 예쁘니 매일 화장하라’고 하는 말에 웃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화장이야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F씨지만 학부모 총회나 공개수업처럼 아이들 학교 행사 때만큼은 초라한 자신이 신경 쓰인다. “다른 엄마들은 다 화장하고 예쁘게 하고 오는데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마음이 아프죠.” 샘플은 본래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빈곤층이 밀집해 사는 주변 상가에는 묶음으로 판매하는 곳이 꽤 있었다. 지난달 22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개미마을 인근 시장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는 설화수 샘플 2~3개를 2000~3000원에 팔고 있었다. 경기도 광명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G씨는 “샘플 한 개당 100원에 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1000원어치씩 팔기도 한다”고 했다. G씨는 “화장품 샘플을 달라고 무턱대고 가게에 오는 할머니들도 일주일에 한 명은 있다. 며칠 전에 화장품을 샀는데 샘플을 못 받았다는 식”이라면서 “그런 분들에게는 그냥 샘플 두어 개를 준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판매되는 ‘정품’도 대부분 5000원을 넘지 않는다. G씨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그나마 많이 사는 게 4000원짜리 H 보디워시(900㎖)와 3000원짜리 B 로션(450㎖)”이라면서 “3000원짜리 로션도 바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3000원이라는 소리에 놀라서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절대빈곤층한테 화장품 중 ‘사치품’은 핸드크림이라고 한다. 겨울에 막노동 등 험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손이 트는 경우가 많지만 꼭 필요한 화장품은 아니라는 인식에서 핸드크림을 구입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진다는 얘기다. 1000원짜리 D 핸드크림을 종종 사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H씨는 “여기서는 중간 가격대의 브랜드 화장품도 사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서 “저가 브랜드 중 M이나 C는 그래도 1만원 남짓이면 살 수 있으니 사 가는 사람들이 좀 있다”고 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 I씨는 1년에 1만원 내외의 제품 2개 정도를 구매한다. 여름철에는 바르지 않고 겨울에만 조금씩 아껴서 바른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달동네 개미마을에 사는 50대 J씨는 “아는 사람들 중 S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기초제품만 해도 2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화장품 하나 사면 한 석 달밖에 쓰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J씨는 손녀와 1만 5000원짜리 베이비로션을 같이 쓴다. 절대빈곤층이 미용에 신경을 쓰는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머리다. 화장품은 바르지 않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머리는 겉모습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달리 한번 돈을 들이면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앞서 소개된 싱글맘 H씨도 1년에 3번 정도는 머리를 자른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 K(81)씨는 “화장품은 못 발라도 파마는 해야 한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한다”면서 “그래도 여기가 물가가 싸니 2만원이면 파마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개미마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L씨는 “대부분 기본적인 파마만 하고 가기 때문에 2만원 선을 넘지 않는다”면서 “할머니들은 1년에 한두 번 오시기 때문에 돈을 많이 받을 수 없다. 1000원이라도 올리면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나마 올해 가격을 1000원씩 올려 커트 8000원, 학생은 6000원, 염색은 1만 8000원이다. 복지관이나 봉사단체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개미마을 근처의 한 교회에서는 1년에 두 번 무료 봉사로 머리를 잘라 준다. 앞서 소개된 E씨는 7살 딸 아이와 14살 아이의 머리를 직접 잘라 주고는 한다. 남성의 경우는 스타일을 따지기보다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게 ‘답’이다. 서울 중구 중림동 쪽방촌 주변 미용실을 이용하는 30~40대 남자들은 짧은 머리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한다. 짧을수록 깔끔하고 머리를 더 자주 자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쪽방촌 근처 한 미용실은 커트 7000원에 머리를 감으면 1만원인데 열이면 열 모두 머리만 자르고 감지 않은 채 간다고 한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M(26)씨도 되도록이면 머리를 짧게 자른다. 집안 사정이 괜찮았을 때는 3주에 한번씩 미용실에 갈 정도로 헤어스타일에 특히 공을 들였지만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한 이후에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주기가 길어졌다. ‘멋’에 대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남자 연예인들이 많이 선보이면서 유행하고 있는 헤어스타일인 포마드 머리(2:8 가르마를 연출해 머리를 빗어 넘기는 형태)를 시도해 보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커트만 해도 일반 커트 가격에 3배일 뿐만 아니라 스타일 연출을 위해 필요한 전용 기름이 3㎖에 4만원 정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남성들이 많이 하는 파마도 꿈꾸지 못한다. 6000원짜리 왁스로 반년을 버틴다. M씨는 “향수와 스킨, 로션에 수십만원씩 쓰고 외모에도 투자를 많이 하는 친구를 보면 놀라기도 한다”면서 “화장품은 아껴 써도 두 달 정도밖에 못 쓰니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여자를 만날 때도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M씨는 “어떻게 꾸미냐에 따라서 외모도 큰 차이가 나겠지만 중요한 건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내 스스로가 이성 앞에서 위축되다 보니 만날 때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송수연 이두걸 유대근 기자 songs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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