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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 행동거지나 말 조심해야”… 송영무 또 설화

    “여성이 행동거지나 말 조심해야”… 송영무 또 설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9일 군내 성폭력 예방 관련 간담회에서 여성들이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송 장관은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서 열린 성고충전문상담관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군내 성폭력 근절 의지를 밝힌 뒤 회식문화 개선 방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성들이 행동거지라든가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아내가 딸에게) 택시를 탈 때라든지 남자하고 데이트할 때라든지 등에 대해서 교육을 구체적이고 자세히 시키더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아내에게 왜 딸을 믿지 못하느냐고 이야기하면 아내는 “여자들 일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많다. 이걸 깨닫게 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송 장관의 발언은 성폭력을 피하려면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돼 파문이 일었다. 그러자 송 장관은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오늘 간담회에서 이야기한 것이 본의 아니게 오해가 된 것이 있다”며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국무위원인 장관으로서 유감을 표한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송 장관은 “‘여자들 일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는데 큰딸 하나를 잃고 딸 하나를 키우는 아내가 노심초사하면서 (딸을) 교육했던 내용을 언급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저는 취임 이후 군내 여성 인력을 우대하고 보다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며 “특히 성평등 문제 개선과 (군내) 여성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했다. 송 장관의 설화(舌禍)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해 경비대대 병영식당에서 장병들과 오찬을 하면서 “원래 식사 자리에서 길게 얘기하면 재미가 없는 건데 식사 전 얘기와 미니스커트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하죠”라고 했다. 당시 자신의 인사말을 짧게 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이었지만,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편 육군은 이날 경기도 모 부대의 A준장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사실을 확인하고 보직해임했다. 육군 관계자는 “여군 B씨가 부대 지휘관인 A준장의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신고했다”며 “A준장이 올 3월쯤 서울의 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한 뒤 차량 안에서 손을 보여 달라 하면서 손을 3~4초간 만졌다”고 밝혔다. 피해자 B씨는 “(A준장이) 평소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손가락 길이를 보면 성 호르몬 관계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을 배워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었다”고 진술했다. A준장은 손을 만진 것은 인정하면서도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육군 관계자는 “아직 피의자로 입건되지는 않았으며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랜선라이프’ 김숙, 뷰티 콘텐츠에 격한 관심 “씬님에 한 수 배우고파”

    ‘랜선라이프’ 김숙, 뷰티 콘텐츠에 격한 관심 “씬님에 한 수 배우고파”

    ‘랜선라이프’ MC 김숙이 뷰티 콘텐츠에 격한 관심과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씬님과의 걸크러시 케미를 보여줄 예정이다. JTBC 새 예능프로그램 ‘랜선라이프’는 핫한 1인 크리에이터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카메라 뒷모습을 파헤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내로라하는 대표 크리에이터 4인방 대도서관, 윰댕, 밴쯔, 씬님의 일상을 속속들이 공개하며 본격 크리에이터들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에 연예계 대표 걸크러시 입담꾼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김숙과 사이다 매력의 직설화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뷰티 크리에이터 씬님의 만남은 MC 이영자와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와의 만남 못지않게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무엇보다 4년차 연예인 크리에이터이기도 한 MC 김숙은 씬님의 과감하고 감각적인 콘텐츠에 흠뻑 매료돼 “한 수 배우고 싶다”며 제작과정에 남다른 호기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앞서 MC 김숙은 인터뷰를 통해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로 뷰티를 꼽으며 “직접 제작을 해볼까”라는 남다른 도전 의지를 드러낸 바, 씬님의 화려한 메이크업 기술뿐만 아니라 140만 구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마주한 김숙이 어떤 반응을 펼칠 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뷰티로 하나된 MC 김숙과 뷰티 크리에이터 씬님의 걸크러시한 만남은 6일 오후 9시 JTBC 새 예능프로그램 ‘랜선라이프-크리에이터가 사는 법’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한국 13번째 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7곳의 역사와 특징

    한국 13번째 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7곳의 역사와 특징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Sansa,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은 모두 천년 넘게 불교문화를 지킨 사찰이다. 각 산사마다 다른 창건 시기와 자연환경, 건물 배치, 눈여겨볼 만한 문화재, 설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양산 통도사삼국유사에 따르면 양산 영축산 통도사(通度寺)는 신라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 사리와 금실을 넣고 짠 베로 만든 가사,대장경을 봉안해 창건했다. 통도사 역사를 정리한 책인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도 비슷한 시기인 646년 자장율사가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웠다고 기록됐다. 통도사는 무엇보다 부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유명하다. 대웅전에 불상을 두지 않고,건물 뒤쪽에 금강계단을 설치해 부처 법신(法身)을 봉안했다. 사찰 명칭은 ‘이곳 산의 모양이 부처가 불법을 설파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혹은 ‘승려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문구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신라시대에는 계율을 지키는 근본도량이었다.조선 초기에는 수위사찰로 지정됐고, 경남 사찰 대본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본사다.대웅전과 금강계단은 국보 제290호이고,보물 18점과 경남유형문화재 50점을 보유한다. ● 영주 부석사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이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극찬한 고려시대 건축물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는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676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처음 지은 절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관련 기록이 있다. 의상대사가 창건 이후 40일간 법회를 연 뒤 대립을 지양하고 마음 통일을 지향하는 화엄사상의 근본 도량이 됐다. 부석사(浮石寺)라는 명칭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이 바위가 아래 바위와 붙지 않고 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 후기인 1376년 중수했다는 묵서가 확인된 무량수전은 13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 중심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다. 누대인 안양루에서 올려다보는 무량수전 풍경은 한국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무량수전은 물론 무량수전 앞 석등과 전각 안에 있는 소조여래좌상,조사당과 조사당 벽화가 모두 국보로 지정됐다. 절이 있는 봉황산은 지세가 봉황을 닮았다는 곳으로,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하나 실제로는 태백산과 이어진다. ● 안동 봉정사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국보 제15호 극락전(極樂殿)이 있다.1972년 건물을 보수할 때 나온 상량문에 따르면 1363년 처음으로 건물을 중수했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미와 품격이 느껴진다. 봉정사(鳳停寺)를 창건한 인물은 기록마다 차이가 있어 명확하지 않지만,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능인대사가 7세기 후반께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능인대사가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에서 수행하던 중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오늘날 사찰 자리에 머물렀다는 설화가 전한다. 천등산은 정상 높이가 574m이고 경사가 완만한 산이다.극락전과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이 한데 모여 있으며, 건물 배치는 전반적으로 일자형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피해를 보지 않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물과 불상, 불화가 잘 보존됐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들르기도 했다. ● 보은 법주사속리산 법주사(法住寺)는 조선시대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 의신조사가 553년 창건했다고 기록됐다. 의신조사가 법을 구하러 여행을 떠났다가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머물렀다는 설화가 사찰 명칭의 유래다. 통일신라시대 승려 진표율사가 미륵보살 계시를 받은 뒤 김제 금산사에서 속리산으로 가다 소달구지를 만났는데, 소가 울자 달구지 주인이 출가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역사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에 길상사(吉祥寺),고려시대에는 속리사(俗離寺)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법주사가 있는 산의 이름이기도 한 속리는 ‘속세에서 떠난다’는 뜻이다. 법상종 중심 사찰이었던 법주사 건물 배치는 화엄사상과 미륵사상 영향을 두루 받았다.가장 유명한 건물은 국내 최고(最古) 오층목탑인 팔상전(捌相殿). 팔상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으나 사명대사가 1624년 복원했으며, 목탑 아래 월대는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알려졌다.팔상전 외에도 쌍사자 석등과 석련지가 국보로 지정됐고, 보물 13건이 있다. ● 공주 마곡사사찰 중심에 계곡이 흐르고 풍경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택리지’와 ‘정감록’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땅으로 기록됐다. 마곡사(麻谷寺) 창건 시기와 과정은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마곡사사적입안’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세웠다고 적었고, ‘마곡사연기략초’에 따르면 보조선사 체칭이 지었다. 자장율사는 7세기,체칭은 9세기에 활동했다. 절은 고려시대에 중흥했다.계곡을 경계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는 건물 배치도 고려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마곡사에 들러 ‘만세에 망하지 않을 땅’이라고 평가했고, 17세기 이후 중창을 거듭했다. 마곡사는 남방화소(南方畵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승려화가를 배출했고, 백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한 일본인 장교를 살해해 옥살이하다 탈옥한 뒤 출가했던 절이기도 하다. 국보는 없지만 오층석탑, 영산전, 대웅보전, 대광보전, 석가모니불괘불탱이 보물로 지정됐다. ● 순천 선암사송광사(松廣寺)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명찰인 선암사(仙巖寺)는 조계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선암사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아도화상이 529년 세웠다는 글이 있고, 도선국사가 875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 승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면서 대찰이 됐으나,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탔고 1759년에도 화재를 겪었다. 이에 따라 건물 배치가 여러 차례 변했는데, 현재 모습은 1824년에 갖춰졌다.중심건물인 대웅전도 같은 해에 재건됐다. 선암사는 절 입구에 사천왕문을 두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사천왕은 법을 지키는 신인데, 조계산 정상이 ‘장군봉’이어서 사천왕을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내에 있는 보물 14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물은 승선교(昇仙橋)다. 화강암을 다듬은 장대석으로 아치인 홍예를 만들었다.이른 봄에 피는 매화인 ‘선암매’는 천연기념물이다. ● 해남 대흥사한반도 남쪽 해남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大興寺)는 창건 시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늦어도 통일신라시대부터 운영됐다. 선암사처럼 아도화상 혹은 도선국사가 창건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사찰도 대둔사로 불린 적이 있다. 두륜산은 높이가 703m로, 계곡과 편백 숲 덕분에 경치가 수려하다.계곡은 대흥사도 지나가는데, 이로 인해 마곡사처럼 건물이 남원과 북원에 나뉘어 배치됐다. 대흥사가 다른 사찰과 구별되는 점은 호국정신이 깃든 도량이라는 사실이다.대흥사에 대해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라고 평가한 서산대사의 충정을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表忠祠)도 있다. 차 문화도 대흥사의 특징이다.대흥사가 배출한 대종사(大宗師) 13명 중 한 명인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재정립한 인물이다. 조계종 22교구 본사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국보 제308호다. 보물 8건과 전남유형문화재 5건도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조선 최대 필화사건 일으킨 소설 ‘설공찬전’ 쓴 채수의 정자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조선 최대 필화사건 일으킨 소설 ‘설공찬전’ 쓴 채수의 정자

    속리산에서 흘러내린 이안천이 내려다보이는 경북 상주의 기장리 언덕에는 쾌재정(快哉亭)이 있다. 조선 초기 문장가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가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부인 안동 권씨 고향에 정착해 지은 정자다. 상주와 점촌을 잇는 경북선 철도가 시내를 건너고 있어 급할 것 없이 달려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채수라면 ‘설공찬전’(薛公瓚傳)이라는 소설을 써서 조선 최대의 필화 사건을 일으킨 인물이다. 쾌재정은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자주 찾았다는 중국 쉬저우(徐州)의 정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채수와 쾌재정에 얽힌 이야기는 문장과 글씨에 두루 뛰어났던 남곤(1471∼1527)이 지은 나재 무덤 앞 신도비 비문에 보인다.‘병인년(1506년) 반정 때 공이 공신의 맹약에 참여해 관례에 따라 가정대부로 승진하고 인천군에 봉해졌다. 그런데 동료 벼슬아치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주변에 없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이내 가족을 데리고 남쪽으로 돌아가 아무런 욕심 없이 스스로 즐기며 살았다. 사는 집 남쪽에 뚝 끊긴 산봉우리가 흐르는 물가에 자리잡았는데, 그곳에 작은 정자를 지은 다음 편액을 쾌재(快哉)로 붙여 놓고 날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면서 다시금 세상의 조그만 일도 마음에 두지 않은 채 여유롭게 노닐며 천수를 마쳤다’이렇듯 나재는 중종반정에 가담해 공신의 반열에 올랐지만 곧바로 낙향했다. 야사에는 여기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반정을 주도한 박원종은 “오늘 일은 덕망 높은 선비로 무게 있는 인물이 없어서는 안 될 터이므로 채수를 청해 오라”고 했다. 누군가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박원종은 “오지 않으면 목이라도 취해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채수의 사위 김감은 위협을 감지해 부인으로 하여금 장인을 만취토록 하여 대궐문 앞에 데려갔고, 나재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거사에 이름을 올렸다. 나재는 쾌재정에서 글을 쓰곤 했다. ‘늙은 내 나이 예순일곱인데, 지난 일 생각하니 아득히 멀구나’로 시작하는 한시 ‘쾌재정’도 그렇게 태어났다. 나재가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것도 쾌재정에서 지은 소설 ‘설공찬전’ 때문이다. 귀신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죽은 이의 혼령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 저승 세계의 소식을 전한다는 이야기다.하지만 ‘설공찬전’은 한동안 제목만 남아 있는 소설이었다. 조정의 공론으로 ‘설공찬전’을 모두 거두어 불살랐기 때문이다. 1511년(중종 4년) 사헌부는 “‘설공찬전’은 화복(禍福)이 윤회(輪廻)한다는 논설로, 매우 요망한 것인데 안팎이 현혹되어 문자로 옮기거나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킨다”며 채수를 탄핵했다. ‘언어’는 곧 한글이니 그만큼 인기가 높았다는 뜻이다. 사헌부는 ‘정도(正道)를 어지럽히고 인민을 선동한 율(律)’을 들어 채수를 교수(絞首)에 처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그런데 훗날 영의정을 지낸 만보당 김수동(1457~1512)의 변호가 흥미롭다. 그는 “형벌과 상은 중용을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면서 “이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태평광기’나 ‘전등신화’를 지은 자들도 모조리 베어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태평광기’는 송나라 태종의 명으로 정통 역사책에 실리지 않은 기록과 소설을 500권에 모은 중국 역대 설화집이다. ‘전등신화’는 명나라 구우의 소설로 조선에서도 필독서가 됐다. 매월당 김시습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금오신화’를 쓴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죽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중종의 뜻에 따라 채수는 파직에 그쳤다.‘설공찬전’이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일 것이다. 설공찬이 전하는 저승 소식의 일부다. ‘이승에서 비명에 죽었어도 임금에게 충성하여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면 저승에서도 좋은 벼슬을 하고, 비록 여기서 임금을 했더라도 주전충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 주전충(852~912)은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잔당을 평정해 실력자로 떠오른 뒤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양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중종 임금부터가 가습이 뜨끔했을 것이다. ‘설공찬전’이 다시 햇빛을 본 과정은 이렇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96년 이복규 서경대 교수에게 이문건(1494~1567)이 지은 ‘묵재일기’의 내용을 살피고, 뒷장에 적힌 한글 기록도 검토해 달라고 의뢰한다. 이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일부가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설공찬전’, 그것도 한글본이었기 때문이다.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킨다”는 사헌부의 탄핵 내용 그대로였다. ‘셜공찬이’라는 한글 제목 아래 3472자가 남아 있었다. 필사를 도중에 중단해 전체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렇게 ‘설공찬전’은 허균의 ‘홍길동전’을 제치고 한글로 적힌 최초의 소설이 됐다. 쾌재정은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상주 나들목에서 멀지 않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3번 국도를 타고 문경 방향으로 북상하다 이안교차로에서 왼쪽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을 수 없으니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 230-1’이라는 주소를 이용해 찾아가는 것을 권한다. 지금의 쾌재정은 18세기 중반 중건한 건물이다. 벌판 가운데 솟은 봉우리에 있으니 거칠 것 없는 시야를 자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와 풀에 둘러싸여 주변 풍광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안천 건너에서 바라봐도 지붕의 모습만 어렴픗하다. 채수의 무덤은 쾌재정 남쪽의 공검면 율곡리에 있다.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나재채수신도비’를 치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율곡리 길가에는 최근 것으로 보이는 신도비도 있다. 옛 신도비가 풍우에 시달려 비문을 읽을 수 없게 되자 1996년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셜공찬이’의 발굴이 계기가 됐음을 짐작케 한다. 북쪽 야산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옛 신도비의 비각이 보인다. 비석은 당당한 모습이다. 상주에 남은 신도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인상적인 것은 신도비의 받침돌이다. 대개 거북이 모양인데, 독특하게도 사자다. 커다란 비석을 등에 이고 있는 사자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무덤이다. 채수의 위패를 모신 임호서원은 무덤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너머 동쪽에 있다. 역시 ‘상주시 합창읍 신흥리 377’이라는 주소로 찾아가는 것이 좋다. 서원은 1693년 함창 서쪽 10리 입암산 아래 검암서원으로 출발했다. 1871년 대원군이 훼철한 것을 1988년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웠다. 간소한 데다 연륜도 짧은 만큼 서원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사당에는 경현사(景賢祠)라는 편액이 붙었다. ‘설공찬전’의 배경은 전북 순창이다. 학계는 나재가 순창 설씨 족보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섞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공찬의 증조할아버지로 나오는 설위는 대사성을 지낸 세종시대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설공찬이라는 이름은 족보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중종실록에는 채수에 대한 탄핵 과정에 검토관 황여헌의 “설공찬은 채수의 일가이니, 반드시 믿고 혹하여 지었을 것”이라는 발언이 실려 있다. 설공찬은 채수의 친척인 실존 인물이었고, 소설 또한 체험담에 근거했을 수 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순창군은 순창 설씨 집성촌이 있는 금과면에 ‘설공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잘나가는 亞공항엔 신라·롯데 면세점

    신라 홍콩 첵랍콕 매장 전면 개장 롯데 베트남 나트랑점 오픈 코앞 두 업체 대만 공항 입찰도 나설듯 인천공항 고배…해외서 활로 찾아 최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 사업장 입찰에서 고배를 마신 ‘면세 공룡’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국제무대에서 전열을 가다듬으며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해외 매장을 새롭게 문여는가 하면 사업권 입찰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 시장의 경쟁이 점차 격화되는데다 후발 주자들이 무서운 기세로 추격해오자 새로운 시장 발굴로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호텔신라는 신라면세점의 홍콩 첵랍콕국제공항점이 지난해 12월 소프트 개장 이후 6개월 동안의 정비를 마치고 28일(현지시간) 전면 개장했다고 밝혔다. 이날 현지 매장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비롯해 한인규 호텔신라 TR부문 사장, 앨리스 우 신라면세점 홍콩 첵랍콕국제공항점 최고 매니저, 프레드 람 홍콩 첵랍콕국제공항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장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에 따라 신라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이어 홍콩 첵랍콕국제공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3대 국제공항 면세점을 모두 운영하게 됐다. 특히 ‘공항면세점의 꽃’이라고 불리는 화장품·향수 매장을 세곳에서 운영해 주력 사업자로 자리잡았다는 평이다. 첵랍콕국제공항점은 임시 개장 직후인 올해 1분기에 매출 942억원, 당기순이익 11억원으로 곧바로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신라면세점의 전체 해외 매출은 7000억원 규모로, 올해는 1조원 달성이 목표다. 첵랍콕국제공항점은 3300㎡(약 1000평) 규모로 ‘설화수’, ‘후’ 등 국산 화장품 브랜드 12개를 포함한 200여개의 화장품, 향수, 패션, 액세서리 브랜드가 입점했다. 롯데면세점은 베트남 나트랑 국제공항 신 터미널점 개장을 앞두고 있다. 당초 이달 초 문열 예정이었으나, 공항 개장 자체가 지연되면서 덩달아 연기돼 수일 내로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나트랑국제공항점은 롯데가 해외에서 여는 7번째 매장이다. 약 1811㎡(약 540평) 규모로 화장품, 향수, 시계, 패션, 주류, 담배 등 전 품목을 취급한다. 롯데 측은 나트랑국제공항점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7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나트랑, 하노이, 호찌민 등 베트남 주요 도시에 시내 면세점 추가 출점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두 업체는 다음달 23일 제안서 접수를 마감하는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 면세점 입찰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타오위안 국제공항 면세점은 C구역(2만 7400㎡)과 D구역(3만4000㎡)으로 나눠 입찰이 진행되며, 사업권 운영 기간은 12년이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단독] ‘선녀와 나무꾼’ 누가 나쁠까… 성평등 교실, 아이들이 달라졌다

    [단독] ‘선녀와 나무꾼’ 누가 나쁠까… 성평등 교실, 아이들이 달라졌다

    나쁜 행동 알려준 사슴이라 답해 한학기 교육에도 아이들 큰 변화 ‘힘센 여자·우는 남자’도 안 놀려 보수단체 신상털기에 속앓이도설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가장 나쁜 행동을 한 인물은 누구일까. 한 학기 동안 성평등 교육을 받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은 바로 ‘사슴’이었다. “나무꾼이 선녀에게 한 나쁜 행동들을 알려 준 게 사슴이기 때문”이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김영선(30·여) 교사는 “선녀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나무꾼’이라는 답이 가장 많이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어른들보다도 앞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짧다면 짧은 한 한기 동안 성평등 교육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 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6년째 초등교사로 재직 중인 김 교사는 올 초부터 다양한 교과목을 통해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조차 성역할의 고정관념이나 여성 혐오, 성 상품화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데서 문제 의식을 느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일본 음란물에 나오는 ‘앙 기모띠’(‘기분이 좋다’는 일본어 ‘기모치 이이’에서 유래)라는 말을 친구나 교사에게 하는 건 예삿일”이라면서 “저학년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를 화장실에 데려가 동전을 주며 “네 소중한 곳을 보여 줘”라고 말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나 정책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올 초 ‘초·중·고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김 교사는 “‘정부는 공교육 내에 체계적인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지난 4개월간 현장의 목소리를 듣거나 실태를 조사하는 기본적인 일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사이 김 교사로부터 성평등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힘센 여자 아이’나 ‘우는 남학생’을 더는 놀리지 않는다. 성별이라는 틀 안에서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서다. 여성 혐오가 담긴 욕설이나 단어도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면 아이들도 이를 이해하고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학부모들 또한 지지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김 교사는 “숙제로 내준 ‘우리 가족 인권선언문’을 작성하던 한 학부모로부터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고정관념들과 우리 가족 개개인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평등 교육을 하는 교사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된다. 지난해 서울의 한 초등교사는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신상이 공개돼 특정 커뮤니티 회원들과 보수 학부모 단체로부터 갖은 욕설과 비방을 들어야 했다. 김 교사가 소속된 초등성평등연구회에 소속된 교사는 20여명이지만 이 중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 교사가 소수인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회 소속 교사들은 지난 1월 ‘이돈명인권상’을 받고도 기념사진조차 남기지 못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천재적 필력에도… 당나라·신라서 모두 소외당한 ‘한문학의 시조’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천재적 필력에도… 당나라·신라서 모두 소외당한 ‘한문학의 시조’

    “오직 세상의 사람들만이 모두 너를 죽여 시체를 늘어놓으려고 생각한 것이 아니요, 땅속의 귀신들까지도 이미 암암리에 너를 처단할 논의를 마쳤느니라.”(不唯天下之人, 皆思顯戮 ; 抑亦地中之鬼, 已議陰誅)이 살벌한 표현은 최치원(崔致遠·857∼?)의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치게 한 ‘격황소서’(檄黃巢書)의 한 구절이다. 흔히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불린다. 그 논조가 얼마나 준엄했는지 황소는 격문을 읽다 이 구절에 이르자 간담이 서늘해져서 저도 모르게 침상에서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글이 실린 출전이 바로 최치원의 문집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이다. 중국 당나라 말에 황소라는 장수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최치원은 토벌대장인 고변의 휘하에서 비서 역할을 하는 종사관이었다. 계원필경은 이 기간에 최치원이 지은 수많은 글을 엄선해 편찬한 문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집 계원필경은 우리나라 천여 년 문학사에서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문집이다. 그런 까닭에 최치원은 흔히 한문학의 비조로 불린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최치원은 문체를 크게 구비하여 우리나라 문학의 시조가 되었다”라고 했다. 신위는 “공이 높은 시조로서 처음으로 개창하였다”라고 말했다. 계원필경의 서문을 쓴 홍석주나 서유구 등도 비슷한 평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최치원의 문학에 대한 평가가 찬양 일변도인 것은 아니다. 이규보는 “최치원은 미개지를 개척한 큰 공이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종주로 여긴다”라고 칭찬했다. 그는 격황소서에 대해서도 “귀신을 울리고 바람을 놀라게 하는 솜씨”라고 극찬하면서도 “그러나 그의 시가 대단히 높지는 않으니 아마도 그가 중국에 들어간 때가 만당 이후에 해당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성현도 “지금 그가 지은 것을 보자면 비록 시구에 능하기는 해도 뜻이 정밀하지 못하며, 비록 사륙문에 재주가 있으나 말이 정제되지 못하였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서거정, 허균 등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바 있다. 계원필경 산문은 대부분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 위주로 돼 있다. 최치원이 모시던 상사인 고변의 ‘변’(騈)과 그가 쓴 글이 사륙 ‘변’(騈)려문으로 같은 한자를 쓰는 일은 한마디로 ‘기이한 인연’이다. 사륙변려문은 글자 수를 4·6자, 4·6자로 배열하거나 아니면 4·4자, 6·6자 등으로 배열하는 등 대구를 철저하게 지키는 정형성이 특징이다. 변려문은 전체를 대구로 구성하는 데다 특히 어려운 고사를 많이 사용해 글이 매우 까다로운 특징이 있다. 그만큼 번역하기가 어려우며 각주도 일반 산문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거정 같은 대학자도 계원필경에 대해 “이해되지 못하는 곳이 많다”면서 “괴상하고 궁벽하여 족히 천하를 움직이기에 충분하지 않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오히려 그만큼 최치원의 학문 수준이 높았음을 방증한다.최치원이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면에는 당을 시대로 구분했을 때 가장 낮게 평가되는 만당(晩唐) 때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후대에 진실성이 모자랐다고 비판받는 변려문에 치우쳤다는 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그러나 후대에도 변려문은 옥책문, 전문, 반교문 등 궁중 의례문에 꾸준히 사용됐다. 또 매우 중요한 실용문인 상량문도 반드시 변려문으로 지어져 그 역할이 지속됐다. 관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이규보와 성현의 견해를 잘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 그에 관한 평가가 반드시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원필경은 최치원의 학문적 역량이나 당시의 시대상 등을 알려 주는 더없이 귀중한 문헌이다.#영원한 이방인,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되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가서 7년 만인 18세의 나이에 유학생을 상대로 한 과거인 빈공과에 합격하고 관직 생활에 들어섰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선주의 율수현위가 되어 하급 지방관을 지냈는데, 이때 지은 작품을 모아 ‘중산복궤집’(中山覆集)이라는 문집을 엮었다. 몇 년 뒤 23세 때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고변의 종사관이 돼 약 4년간 군영에서 수많은 문서를 도맡아 저술하였다. 특히 24세 때 서두에 소개한 ‘격황소서’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28세에 귀국을 결심하고 당나라를 떠나 이듬해 3월 신라로 돌아왔는데, 그의 유학 과정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유명하다. “무협의 겹겹 봉우리 나이에 베옷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은하계 여러 별자리의 나이에 비단옷으로 동국에 돌아오다.”(巫峽重峯之歲, 絲入中原; 銀河列宿之年, 錦還東國) 무협의 봉우리 12개는 유학 갈 때 나이를 나타내며, 하늘의 대표적인 별자리 28개는 중국을 떠날 때 나이를 나타내는 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비단옷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출세하여 금의환향했다는 의미이지만, 신라에서의 삶은 기대에 충족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큰 포부를 펴보려고 의욕을 가졌으나 골품제 한계로 좌절을 겪었다. 몰락해 가는 신라 말 정세 탓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여건도 마땅치 않았다. 10여년 동안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전전하다가 40여세 장년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고 사방을 소요했다. 경주의 남산, 영주의 빙산, 합천 청량사와 해인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의 월영대 등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마침내 은거를 결심하고 해인사에 들어가 머물렀는데,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지막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가야산의 신선이 되었다는 설화가 널리 퍼져 마침내 신화가 되었다. 유학 생활한 당나라에서나 고국인 신라에서나 세상에서 소외된 이방인으로서 그의 내면 정서를 잘 드러내 주는 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추야우중‘(秋夜雨中)이다. 秋風唯苦吟 갈바람 속 고심하며 시만 읊나니 世路少知音 이 세상에 진정한 벗 거의 없어라 窓外三更雨 창 밖에는 한밤중에 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불 앞엔 만 리 먼 곳 그리는 마음 이 시에서 ‘만리심’(萬里心)을 신라에서 당나라를 향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그렇게 한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역만리 당나라에 있을 때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분명한 근거가 없을 때에는 상식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김영봉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계원필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집… 中 회남시에서 지은 글 모음 최치원의 문집으로,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집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모두 20권 4책으로 편찬됐는데, 1∼16권은 회남 절도사인 고변의 막부에서 종사관으로서 고변을 대신해 지은 글이다. 따라서 글의 주인공은 최치원이 아니고 고변으로 돼 있다. 17권 이후가 자신에 대한 글이다. 대부분 산문이고 시는 17권에 30수, 20권에 27제(題) 30수가 실려 있다. 국역본 해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그동안 책 이름 중 ‘계원’의 뜻을 ‘문장가들이 모인 곳’이라거나 ‘한림원’ 등으로 잘못 풀이하고 있기에 이 기회에 분명하게 바로잡는다. 계원은 사전적으로는 몇 가지 뜻이 있으나 계원필경의 ‘계원’은 최치원이 글을 지을 때 머물렀던 회남의 별칭이다. 즉 계원필경집은 ‘계원(회남)에서 문필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지은 글 모음’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중국 회남시에는 ‘계원촌’(桂苑村)이라는 지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또 다른 저술인 중산복궤집의 작명 원리와 똑같다. 여기에서도 ‘중산’은 글을 지은 곳의 지명을 가리킨다. 최치원의 다른 시문집으로 ‘고운선생문집’(孤雲先生文集·고운집)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문선(東文選) 등 여러 문헌에 산재한 작품을 수집해 1926년에 간행한 것이어서 문헌적 가치는 높지 않다.
  • 가천대학교, 성남문화원과 성남학 연구 업무협약

    가천대학교, 성남문화원과 성남학 연구 업무협약

    가천대학교는 19일 가천관 중회의실에서 성남문화원과 ‘성남학’의 연구와 보급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20일 밝혔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길여 총장을 비롯해 가천대 교무위원, 김대진 원장등 관계자 20 여명이 참석했다. 성남학은 성남의 역사적 전통, 문화적 배경을 기반으로 경제, 사회, 복지 등을 문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민속, 지명유래, 전설, 설화, 인물, 역사 등을 다루는 향토사보다 보다 포괄적이다. 양 기관은 앞으로 보유하고 있는 전문인력, 시설 등을 활용해 성남의 정체성 확립과 성남학 연구를 위한 자료 공유 및 공동연구, 가천대 교양교육과정에 성남학 강좌 개설, 가천대 교직원, 학생들의 성남문화 참여 기회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길여 총장은 체결식에서 “대학과 지역사회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성남의 정체성 연구와 보급을 통해 도시 브랜드가치를 제고하고 성남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진 원장은 “성남은 600년의 역사를 가진 자랑스러운 고장이다”며 “성남을 대표하는 가천대와 협력해 성남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인성교육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역사와 문화 품은 금정산성 오이소

    “푸르게 물든 여름, 금정산성으로 놀러 오세요.” 역사와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2018 금정산성역사문화축제’가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부산 금정산성 다목적광장 등에서 개최된다. 18일 금정문화재단에 따르면 메인 프로그램인 ‘18845 금정산성 4대문 걷기’는 축제 행사장으로 가는 느리고도 아름다운 길을 경험할 수 있다. 참가자는 숲속을 걸으며 금정산성의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금정산성의 4대문을 거치는 4개의 코스로 구성되며 현장접수도 가능하다. 다목적광장 행사장에 들어오면 한여름 더위를 쫓는 시원한 스프링클러, 산성쿨존이 방문객을 맞는다. 다목적광장 입구에 조성된 서문에서 호패를 만들어 차고 성문으로 한발을 디디면 오감으로 느끼는 축제 체험이 시작된다. 풀장 맨손 금어 잡기 체험, 금정 맛집멋집 특별전, 금정구민 마크스(MAKERS) 기획존, 산성마을 막걸리 체험존, 스마일 이 금정존 등이다. 여름밤 시원한 금정산의 바람을 맞으며 즐길 수 있는 풍성한 무대공연도 마련된다. 22일 개막행사에는 가수 김연자와 정해진의 축하무대가, 23일에는 금정명품콘서트 오픈 극장에서 가수 더 원과 부산네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공연이 펼쳐진다. 금정산 금샘 금어설화에서 이름을 딴 ‘산에서 내려온 금어’ 공연프로그램은 23일 열린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푸르게 물든 여름, 금정산성으로 놀러오세요!

    푸르게 물든 여름, 금정산성으로 놀러오세요!

    “푸르게 물든 여름, 금정산성으로 놀러오세요!” ‘2018 금정산성역사문화축제’가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금정산성 다목적광장 등에서 개최된다. 부산 금정구청은 금정산성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금정산성역사문화축제가 22일부터 24일까지 금정산성 다목적광장과 금정구 일원에서 다채롭게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메인 프로그램인 ‘18845 금정산성 4대문 걷기’는 축제 행사장으로 가는 느리고도 아름다운 길을 경험할 수 있다 . 참가자는 숲 속을 타박타박 걸으며 금정산성의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금정산성의 4대문 각각을 거치는 4개의 코스로 구성되며 현장접수도 가능하다. 다목적광장 행사장에 들어오면 한여름 더위를 쫓는 시원한 스프링클러, 산성쿨존이 방문객을 맞는다. 다목적광장 입구에 조성된 서문에서 호패를 만들어 차고 성문으로 한발을 디디면 오감으로 느끼는 축제 체험이 시작된다. 축제행사장에는 풀장 맨손 금어잡기 체험, 금정 맛집멋집 특별전, 금정구민 마크스(MAKERS) 기획존,산성마을 막걸리 체험존, 스마일 e 금정존 등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여름밤 시원한 금정산의 바람을 맞으며 즐길 수 있는 풍성한 무대공연도 마련된다. 22일 개막행사에는 ‘아모르파티’의 가수 김연자와 가수 정해진의 축하무대가 23일 토요일에는 금정명품콘서트 오픈 극장에서 가수 더 원과 부산네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공연이 펼쳐진다. 금정산성 동문 ‘마법의 성’ 부대행사장에서는 야외 무대공연과 함께 아트프리마켓이 열리고 체험부스에서는 타로카드, 캐리커쳐, 헤나 체험 등도 즐길 수 있다. 금정산 금샘 금어설화에서 이름을 딴 ‘산에서 내려온 금어’ 공연프로그램은 23일 토요일 열린다. 청춘의 거리 부산대역 일원에서는 23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G樂펴樂 청소년 끼페스티벌’과 ‘남녀노소 페스티벌 ’거리공연이 열린다. 이밖에 스포원에서는 마술공연, 매직프린지쇼, 아트 매직 프리마켓이 23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운영돼 가족단위 주말프로그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방문객들은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에서 203번 버스를 타거나 도시철도 2호선 화명역에서 금정구1번 마을버스를 타고 공해마을에 하차하면 행사장으로 쉽게 올 수 있다. 금정문화재단은 또 승용차 이용객들을 배려해 다목적광장에서 보현사, 금성초, 오마이랜드 등 인근 주차장으로 마련하고 행사장(금정산성 다목적광장)까지 셔틀버스를 순환 운영할 예정이다. 문의 금정문화재단 051-518-0053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시·도 교육감 후보 공약평가-인천]청념이 화두 “도성훈은 강한 진보성, 고승의는 4차 산업혁명에 초점, 최순자는 영어 교육 강화”

    [시·도 교육감 후보 공약평가-인천]청념이 화두 “도성훈은 강한 진보성, 고승의는 4차 산업혁명에 초점, 최순자는 영어 교육 강화”

    보수 성향 후보 2명(고승의·최순자)과 진보 후보 1명(도성훈)의 대결로 압축된 인천 교육감 선거의 화두는 ‘청렴’이다. 직선제로 뽑힌 전임 교육감 2명이 인사비리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연이어 실형을 받은 탓이다. 지난 6일 KBS·MBC·SBS·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도성훈 후보(참교육 장학사업회 상임이사)가 15.9%의 지지율로 다소 앞섰고, 고승의 후보(덕신장학회 이사장·10.0%), 최순자 후보(전 인하대 총장·9.5%) 순이었다. 지지 후보가 없거나 모른다는 응답은 64.5%였다.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인천지부장을 지낸 도성훈 후보는 ‘인천교육청렴위원회’를 만들어 투명성을 강화하고, 교육감부터 과잉 의전을 개선하는 등 청렴도를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또, “역량 중심의 인사 정책인 교장 공모제(교장 자격증 유무와 관계없이 15년차 이상 교육자 중 공모 절차를 거쳐 교장을 뽑는 것)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신문의 ‘2018 시·도교육감 선거공약 검증위원회’는 도성훈 후보의 공약에 대해 “초교부터 고교까지 노동인권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하는 등 공약에 강한 진보성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교육감과 시민 대표 등이 함께 인천 교육의 답을 찾는 ‘인천미래교육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공약도 의미있다고 평가 받았다. 다만, 교원 정책이 제한적으로 제시됐다는 점은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고승의 후보도 ‘교육 비리 공무원 원아웃 퇴출제’나 ‘불량식재료 납품업체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등 청렴 정책을 공약하는데 신경썼다. 검증위는 “고 후보는 초·중·고 창의융합(STEAM) 교육 센터 설립과 초·중·고 수업 때 코딩 교육 실시 등 4차 산업혁명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강조한 게 인상적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복지 분야 등 특정 부문에 공약이 몰린 건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순자 후보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을 위해 1인 1외국어가 가능한 국제화 교육 유치원생 영어 교육 의무화 초등생 코딩 및 창의교육, 체육·체험 활동 의무화 등을 약속했다. 검증위의 한 위원은 “교육계 원로로 구성된 원로원탁회의를 상설화해 교육자문기구로 운영하겠다는 공약은 의미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검증위는 “교육감 선거공약으로서의 구체성과 타당성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교육감 공약 검증·평가 어떻게 했나 서울신문은 교육 전문가 11명으로 ‘교육감 선거공약 검증위원회’(위원장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를 꾸려 각 후보자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5대 공약집 내용을 중심으로 공약을 평가했다. 평가 항목은 크게 5개로 ▲학생(학생안전·복지·인권) ▲교육 활동 및 교육의 질(교육과정, 진로교육, 진학 과정 및 지도) ▲교원 정책(교사 전문성 함양, 교원 청렴도, 교원 수급) ▲교육 복지 및 격차 해소(사교육비 경감, 지역 격차 해소, 유아 보육) ▲학교 제도 및 교육행정 체제(학교 자율성, 학부모 참여, 학교 선택)로 나눠 진행했다. 후보자가 내세운 공약들이 얼마나 실현 가능하고 구체적인지, 타당하고 미래지향적이며 참신한지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또 각 후보 캠프에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제출한 일부 후보의 자료들은 평가에 반영했다. 지역별로 위원 3명씩 맡아 주도적으로 평가한 뒤 나머지 위원들과 함께 토론하며 상호 검증 과정을 거쳤다. 각 위원들은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의 교육감 공약은 평가하지 않도록 해 공정성을 확보했다. ☞평가 위원 명단 :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위원장·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 위한국민연합 명예대표), 강소연 연세대 교수(前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회장), 김성열 경남대 교수(前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성균관대 대학혁신과공유센터장), 이성국 대구동부고 교장, 임병욱 서울인창고 교장, 조효완 광운대 교수(입학사정관협회장), 주현준 대구교대 교수, 차성현 전남대 교수, 함승환 한양대 교수
  • [6·13 판세 분석-서울시 기초단체장] “미아리 텍사스 철거는 내 운명…산업+문화 패션클러스터 조성”

    [6·13 판세 분석-서울시 기초단체장] “미아리 텍사스 철거는 내 운명…산업+문화 패션클러스터 조성”

    “중앙 정치에 관심 많은 외지인이 아닌 지역에 대한 연대감과 유대감이 큰 사람이 필요합니다.”민병웅 자유한국당 성북구청장 후보는 5일 자신의 강점으로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성북구에서 나온, ‘52년 성북 토박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성북 지역에 외지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구청장을 중앙 정치 무대로 가는 징검다리 정도로 삼는 것 같다”며 “성북은 내가 사는 곳이고 내 아이가 사는 곳으로, 지역의 현안을 풀어낼 수 있는 원동력은 지역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민 후보는 주요 공약으로 ‘미아리 텍사스 철거’를 내세웠다. “어릴 때는 누군가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면 거리낌 없이 ‘미아리 쪽에 산다’고 이야기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산동네, 미아리 텍사스로 기억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이 자주 가는 빙수 가게가 미아리 텍사스 근처에 있는데, 포주 할머니와 빙수를 기다리며 줄을 선 아이들이 한 공간에 있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철거) 다짐을 하게 됐죠. 서울 한복판에 집창촌이 있다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지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느끼고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유해업소 완전 철거를 위해 전담팀 상설 운영, 주민·업주·종업원 등과의 대화, 민관합동대책회의 상설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성북에 산업과 문화가 어우러진 ‘패션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것도 민 후보의 주요 공약이다. 그는 “성북구 장위동, 석관동에 많은 봉제공장이 있다”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 가먼트 지구처럼 지역 경기 활성화를 통해 청년 유입을 유도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뉴타운 사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공약도 밝혔다. “대규모로 진행됐던 장위뉴타운 사업은 지난 10년 동안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15개 구역 중 다수 구역이 해제됐습니다. 장위전통시장의 경우 절반은 해제되고 절반은 시행되다 보니까 대안이 없는 상태죠. 지역이 조각조각 나뉘다 보니 오히려 난개발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구역은 사업 진행을 촉진하고 해제된 구역은 주민 의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도시계획을 다시 수립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청장은 생업을 이어 가며 살아가는 주민을 대리하는 사람”이라며 “성북 주민의 일원으로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나의 문제로 삼아 해결해 나가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겨우 2000명 병사로… 淸태조 사위 사살·대승 거둔 ‘광교산 대첩’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겨우 2000명 병사로… 淸태조 사위 사살·대승 거둔 ‘광교산 대첩’

    병자년인 1636년 청나라가 침입하자 전국 곳곳에서 근왕병(勤王兵)이 일어났지만 누구도 포위를 뚫고 남한산성에 진입하지는 못했다. 그런 탓에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정 대신들의 무인(武人)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만 하다. 인조실록은 ‘임금이 외로운 성에 두 달이 되도록 포위당하여 군사는 고단하고 양식은 적어 조석을 보전할 수 없었으므로 머리를 들고 발돋움하며 구원병이 이르기만을 날마다 기다렸지만 팔도의 군사를 거느린 신하로 한 사람도 성 밑에서 예봉을 꺾고 죽기를 다투는 이가 없었으니, 군신(君臣)의 분수와 의리가 땅을 쓴 듯 없어졌다’고 적기도 했다.하지만 포위된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왕의 격문이 닿기도 전에 군사는 남한산성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충청도 군은 성남 분당의 동막천, 강원도 군은 하남시와 광주시 사이의 검단산, 경상도 군은 광주시 쌍령동까지 진출했지만 패퇴했을 뿐이다. 물론 전장(戰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만 하던 장수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산성에 피신해 갑론을박만 벌이던 대신들이 패전 책임을 일선에서 싸운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승리한 전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전라병사 김준룡은 1월 4일 2000명 남짓한 병력을 이끌고 광교산에 진을 쳤다. 이들은 다음날 청군 5000명을 격퇴한 데 이어 이튿날에도 화포를 동원한 적의 공격을 받았다. 김준룡은 유격부대를 투입했는데 이 전투에서 적장 양고리(揚古利)를 사살했다. 당대의 대학자 미수 허목은 이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공이 칼을 들고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가운데 필사의 의지를 보이자, 병사들이 모두 죽기로 작정하고 싸웠다.…어떤 오랑캐가 산꼭대기에 큰 깃발을 세운 뒤 갑옷 차림으로 말에 올라 군사를 지휘하자…공이 그 사람을 가리키며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적병이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하고 외치며 전투를 독려하니 군사를 지휘하는 자와 그 좌우 몇 장수가 일시에 탄환을 맞았다.…죽은 장수는 선한(先汗)의 사위 백양고라(白羊高羅)였다.’ 백양고라가 곧 양고리다. ‘선한’이란 청태조 누르하치를 말한다.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의 귀와 코를 씹어먹었다는 인물이다. 이때 나이가 14세였다. 누르하치의 사위가 되었으니, 청태종 홍타이지의 매부다. 누르하치가 ‘전장에서는 몸을 좀 사리라’고 했을 만큼 겁이 없었다는 그는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미수가 적은 대로 김준룡 부대가 ‘오랑캐의 시신이 겹겹이 쌓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승리를 거두자 남한산성의 임금과 대신들은 처음에는 환호했다. 하지만 김준룡 부대는 군량과 화약이 떨어져 수원 남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전공(戰攻)을 세운 김준룡이지만 이때의 철군을 이유로 훗날 파직된 것은 물론 유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중국 쪽 기록인 ‘청사고’(淸史稿)의 분위기는 다르다. 이날의 패전은 충격이었다. 양고리의 시신이 광교산에서 진지로 돌아오자 태종 홍타이지가 직접 제사를 지내며 곡을 했고 임금의 의복을 내려 염하게 했다. 심양에서도 양고리의 상여가 조선에서 도착하자 태종이 교외까지 나가 맞이했고, 누르하치의 무덤인 복릉(福陵)에 배장했다. 홍타이지는 이때도 직접 제사를 주관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조총 탄환을 양고리에게 명중시킨 박의(朴義)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그는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했으니 졸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벼슬은 평안도 직동의 종9품 권관(權管)에 머물렀다. 승진은커녕 변방으로 좌천된 꼴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고려의 김윤후는 몽골의 살례탑을 활로 쏴 죽여 대장군에 제수됐다. 그런데 박의는 직동 만호에 그쳤으니 사람들은 애통해한다’고 자신의 문집인 ‘영재집’에 적었다. 만호는 권관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이다. ‘직동 권관’의 착오일 것이다. 청나라에 항복했으니 청황제의 가까운 인척을 사살한 군관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수는 있다. 김준룡의 승전을 재평가하는 논의는 정조시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1791년(정조 15) 사직 신기경이 ‘병자년 난리 때 김준룡은 오랑캐를 섬멸하여 공을 세웠으니 마땅히 상을 주어 장려해야 한다’고 상소한 것이다. 화성 축조를 앞두고 수원 지역의 현안을 일일이 점검하는 자리였다. 정조는 이듬해 김준룡에게 충양(忠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의정부의 차관급 벼슬인 찬성(贊成)도 추증했다. 오늘은 병자호란의 역사를 바탕으로 광교산으로 간다. 해발 582m의 광교산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과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과 고기동, 의왕시 일부에 걸쳐 있다. 호란 당시 김준룡 부대는 서남쪽 수원에서 광교산으로 접근했다. 청군은 남한산성이 있는 동북쪽에서 몰려왔으니 광교산 전체가 싸움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시루봉 남쪽의 토끼재 아래 해발 400m 지점에는 김준룡 장군의 승전을 알리는 각자(刻字)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김준룡 장군 전승지와 전승비’라고 부르는데 자연암반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충양공 김준룡 장군 전승지’(忠襄公 金俊龍 將軍 戰勝地)라는 큰 글자 좌우에 ‘병자청란 공제호남병 근왕지차 살청삼대장’(丙子淸亂公提湖南兵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 음각했다. ‘김준룡 장군 전승지’가 현대적인 글귀인 데다 ‘병자청란’이라는 표현도 익숙지 않다는 점에서 누군가 당초의 글자를 고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광교산 대첩’을 알리는 유일한 기념물이다. ‘수원군읍지’(水原郡邑誌)에는 ‘화성을 축조하는 데 필요한 석재를 구하러 광교산에 갔던 사람들로부터 김준룡 장군의 전공을 전해들은 좌의정 채제공이 새기게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번암 채제공은 정조 시대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당시 성역총리대신(城役總理大臣)을 맡고 있었다. 화성 건설의 총책임자다. 화성 축조를 전후해 김준룡 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준룡 전승지는 수원에서 광교유원지를 거치거나 용인에서 신봉도시개발지구를 지나 오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수원 쪽 광교산 들머리에는 창성사 터, 용인의 산자락에는 서봉사 터가 있다. 창성사 터와 서봉사 터에는 모두 고려시대 고승인 진각국사 천희의 탑비와 현오국사탑비가 각각 남아 있다. 지금 천희의 탑비는 화성 내부 방화수류정 옆으로 옮겨져 있다.최근의 발굴조사에서 창성사는 신라 말 창건 이후 중창과 폐사를 반복했다는 사실을 출토 유물을 근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17세기 폐사 이후 18세기 후반 중창이 이루어졌다. 17세기 폐사는 병자호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때 서봉사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발굴조사에서도 병장기가 적지 않게 수습됐다. 그러니 두 절터는 전승비와 함께 ‘광교산 대첩’의 중요한 기념물이다.김준룡 장군의 무덤은 경기 시흥시 군자동에 있다. 그는 호란 이후 전라도병마절도사와 영남절도사를 지내고 1642년 세상을 떠난 뒤 고향인 양천 땅에 묻혔다. 지금의 서울 강서구 화곡동으로 1972년 도시화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앞서 소개한 허목의 전투 장면 묘사는 무덤 앞에 세워진 신도비 비문의 일부다. 양고리 유적이 경기 하남시에도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남한산성 북문이 가까운 법화사 터다. 양고리는 ‘법화장군’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전사하자 청태종이 그의 고향 법화둔의 이름을 따 법화사라는 원찰을 세웠다는 것이다. 청나라 장수를 사살한 것에 한 가닥 위안을 삼고자 비극의 현장인 남한산성에 이런 설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도덕성·문장력 최고 외교관… 유일 초강국 원의 ‘고려 편입’ 막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도덕성·문장력 최고 외교관… 유일 초강국 원의 ‘고려 편입’ 막다

    ‘도덕의 으뜸(道德之首), 문학의 종장(文章之宗).’ 고려 말 문신이었던 이색이 지은 이제현의 묘지명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 겨루기에 대한민국은 위태위태하다. ‘한반도의 봄’에도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강대국들을 이용하는 노련한 외교관이 필요하다. 고려 후기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 선생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나를 돌아보니… 홀로 공부하여 고루하였으니 도를 들은 것이 자연 늦었도다 불행은 모두 자신이 만든 것 어찌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랴 백성에게 무슨 덕을 베풀었다고 네 번이나 재상이 되었단 말인가 요행으로 그렇게 된 일이기에 온갖 비난을 불러들였구나 못나고 보잘것없는 내 모습 그려서 또 무엇에 쓰겠는가만 나의 후손에게 고하여 주노니 한 번 쳐다보고 세 번 생각하여 그런 불행 있을까 경계하며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노력하라 만일 그런 요행 바라지 않는다면 불행을 면하게 될 것을 알리라 -익재난고(益齋亂藁) 제9권 ‘익재진자찬’ 중 선생이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쓴 글이다. 80세가 넘게 살며 여섯 왕을 섬기고 네 차례나 재상을 지내는 등 영화를 누렸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했다. 실은 이것이 진심일지도 모른다. 15세에 과거에 장원급제하자 선생은 ‘과거는 작은 재주이니, 이것으로 나의 덕을 크게 기르기에는 부족하다’고 했다. 학문 성취가 목표였던 선생에게는 평생의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대제국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의 신하로, 두 나라를 수없이 오가며 줄타기하듯 외교술을 펼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문화의 힘으로 선생은 원나라를 통해 성리학을 받아들였고 원나라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충선왕이 원나라 수도 연경에 만권당을 지어 놓고 선생을 불러들여 조맹부 등 천하의 명사들과 어울리게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충선왕이 “닭 울음소리가 마치 문 앞의 버들가지 같도다” 하고 읊었다. 자리에 모인 중국의 문사들이 그 말의 출처를 물었다. 충선왕이 대답을 못하고 난처해하자 익재 선생이 “우리나라 시에 ‘해가 뜨자 지붕 위의 닭이 우니,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길구나’라는 구절이 있으며 한퇴지의 시에도 이와 비슷한 시구가 있소” 하니 좌중이 다 칭찬하였다. -청장관전서 제32권 ‘청비록 계성사류’ 중 해박한 지식으로 위기에 빠진 충선왕의 체면을 살리면서 동시에 종주국에 맞서 우리 문화의 위상을 드높인 유명한 일화다. 한시를 읊으며 상대국 대표를 위압하던 모습이 겹쳐진다. #할 말은 하자 충숙왕 때 고려의 간신들이 고려를 폐하고 원나라에 편입시키려 한 일이 있었다. 원나라 황제도 이를 받아들여 고려에 정동성을 설치하려 했다. 이때 선생이 원나라에 있으면서 도당에 글을 올렸다. 중용에 이르기를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 아홉 가지 떳떳한 법이 있으니, 이를 시행해 가는 방법은 한 가지이다. 끊어진 세대를 이어 주고 망하는 나라를 일으켜 주며, 혼란을 다스려 주고 위기를 돌보아 주며, 주는 것을 후하게 하고 받는 것을 박하게 함은 제후들을 감싸주는 일이다’ 하였습니다.…(중략)…패자(覇者)도 오히려 이것에 힘쓸 줄 알았는데, 더구나 큰 중국을 차지하여 사해를 한 집안으로 삼는 자이겠습니까? -익재난고 제6권 ‘원(元)나라 서울에서 중서도당에 올린 글’ 원나라는 천하의 대국이니 경전의 말씀대로 남의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선생은 과거 원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고려가 도왔던 일들을 열거한 뒤 원나라가 고려왕을 부마로 삼은 은혜와 의리를 부각시킨다. 또 고려에는 쓸모없는 땅이 많으니 재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왜인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크게 경계할 것이니 경제적, 외교적으로 조금도 실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삼가 바라건대, 집사 각하께서는 역대 황제들께서 고려의 공로를 생각하시던 의리를 본받으시고, 세상을 가르친 중용의 말씀을 명심하시어, 그 나라는 그 나라에 맡기시고 그 나라의 백성은 그곳 백성끼리 살게 하십시오. 자기들의 정사(政事)는 자기들 스스로 닦도록 직책을 부여하여 번방으로 삼으시며, 우리의 끝없는 아름다움을 누리게 하신다면 어찌 삼한의 백성들만 집집마다 서로 경하하여 천자의 성덕을 노래할 뿐이겠습니까. 종묘사직의 영령들도 모두 감격하여 지하에서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선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 주고 이어 과거 은혜와 의리를 거론한 뒤 실리적인 측면에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강대국에 부탁하는 글이지만, 이 정도라면 오히려 당당한 요구에 가깝다. 선생의 글 덕택인지 원나라의 이 시도는 곧 중지됐다. #문인 이제현 선생은 수많은 역사서를 저술하는 한편 문학 부문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조선 말기 학자 김택영은 선생의 문학을 두고 ‘조선 3천년에 제일의 대가(大家)’라고 극찬한 바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종이 이불 썰렁하고 등불 침침한데 어린 중은 밤새도록 종을 치지 않는구나 자던 길손 일찍 문 연다 꾸짖겠지만 암자 앞의 눈 쌓인 소나무 보려 한다네 -익재난고 제3권 ‘산중설야’ 겨울밤 눈이 내린 산사의 풍경과 나그네의 심경이 선명하다. 눈 온 새벽의 한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다. 이 외에도 선생은 역사와 문학을 결합시킨 영사시도 많이 지었고, 패관문학의 대표작인 ‘역옹패설’을 남기기도 했다. 역옹패설은 일종의 수필 문학으로, 딱딱하고 골치 아픈 관직 생활과 정통 성리학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대한 선생 자신의 설명이다. “무료하고 답답함을 달래기 위하여 붓 가는 대로 기록한 것이니 실없는 이야기가 있은들 뭐 괴이할 것이 있겠는가. 공자도 ‘박혁(쌍륙과 바둑)놀음이 아무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하였으니, 장구(章句)를 다듬어 꾸미는 것이 박혁놀음보다는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 -역옹패설 중 또 익재난고 제4권 ‘소악부’에는 고려가요를 배경 설화와 함께 한역한 작품들이 수록됐다. 오늘날 고려가요 연구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다. 옛날 신라의 처용 늙은이 바닷속에서 왔노라 말을 하더니 자개 이빨 붉은 입술로 달밤에 노래하고 솔개 어깨 자줏빛 소매로 봄바람에 춤추었네 -처용가 바윗돌에 구슬이 떨어져 깨지긴 해도 구슬 꿴 실만은 끊어지지 않으리라 낭군과 천추의 이별을 하였지만 한 점 붉은 마음이야 어찌 변하리 -서경별곡 뛰어난 문장가이자 정치가로서 원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선생의 삶은 오늘날 강대국 사이에 처한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수백 년 전의 지혜가 지금 소중한 이유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익재난고는 10권 3책의 이제현 문집 조선시대 여러 차례 重刊 1363년(공민왕 12년)에 처음 간행된 이래 조선조에 들어서도 세종, 선조, 순조 때 등 여러 차례 중간했다. 모두 10권 3책으로 됐으며 권1~4에는 시(詩), 권5에는 서(序), 권6에는 서(書)·기(記)·비문(碑文)이 실려 있다. 권7에는 비명(碑銘), 권8에는 표(表)·전()이 실렸다. 권9는 상·하 2편으로 이루어졌으며 상권은 고종의 세가이다. 하권에는 사찬(史贊)·사전서(史傳序)·책문(策問)·논(論)·송(訟)·명(銘)·찬(讚)·잠(箴)이 실려 있다. 권10에는 장단구(長短句)가 들었다. 이어 이색이 지은 선생의 묘지명과 중간할 때 추록한 습유가 실려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익재난고’와 ‘역옹패설’ 전·후집을 합해 ‘익재집’(益齋集)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서를 출간했다. 한국고전종합 데이터베이스(DB)에는 원문과 번역문을 모두 구축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아모레퍼시픽, 한방 과학·자연주의로 빚어낸 ‘K뷰티’

    아모레퍼시픽, 한방 과학·자연주의로 빚어낸 ‘K뷰티’

    글로벌 뷰티 기업으로 발돋움한 아모레퍼시픽은 차기 브랜드 육성 등 세계시장 강화에 힘쓰고 있다.2010년 뉴욕 최고급 백화점 버그도프굿맨에 입점한 ‘설화수’ 브랜드는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며 현지 업계의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전통 한방 과학으로 미의 가치를 빚어낸 설화수는 미국을 넘어 유럽까지 아우르는 ‘K뷰티’ 대표주자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주의 화장품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9월 뉴욕에 플래그십 매장을 열고 미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자연주의 소비 성향에 합리적인 가격대를 찾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K뷰티의 근거지인 아시아에서 아모레퍼시픽은 홍콩, 중국을 기반으로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소비자들에게까지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10일 싱가포르 타카시마야백화점에 ‘헤라’ 단독 매장을 열며 현지에 진출했다. 아모레퍼시픽은 헤라 브랜드의 2016년 중국 진출에 이어 올해 동남아시아 전체로 영역을 늘리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향수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2011년 8월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급 향수 브랜드 ‘아닉구딸’을 인수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 뷰티 브랜드를 인수한 것은 처음으로, 회사가 화장품의 본고장인 유럽까지 접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1200년前 최치원이 지리산 바위에 새긴 ‘완폭대’ 발견

    1200년前 최치원이 지리산 바위에 새긴 ‘완폭대’ 발견

    1200년 전 고운 최치원(857~?)이 바위에 새긴 ‘완폭대’(翫瀑臺) 석각이 경남 하동군 지리산에서 발견됐다.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10일 역사문화자원 조사를 하다 지리산 남부 능선의 불일암 아래 바위에서 이 석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글자는 폭 150㎝, 높이 140㎝ 암석에 음각돼 있었다. 세 글자 가운데 ‘폭’ 자는 심하게 마모돼 있었다. 최석기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는 “설화와 문헌으로만 전해진 완폭대 석각이 발견됨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수 있게 됐다”며 “이 석각은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쌍계석문’(雙磎石門)과 ‘세이암’(洗耳巖) 등의 석각과 함께 선인들의 정신문화가 담긴 가치 있는 역사유적”이라고 설명했다. 완폭대는 불일폭포를 즐기고 감상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불일암 앞에 있었다. 최치원이 이 바위 위에서 시를 읊고 푸른 학을 부르며 노닐었다는 청학동 설화가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불일암폭포 그림에도 절벽에 위태롭게 돌출된 완폭대 바위가 묘사돼 있다. 선비들의 유람록 10여편에도 완폭대 석각이 기록돼 있다. 남주헌이 함양군수를 지내면서 1807년에 쓴 ‘지리 산행기’부터 완폭대 기록이 없다. 이 시기 전후로 불일암이 쇠락하거나 지형이 바뀌어 완폭대 석각도 흙에 묻히거나 수풀에 가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완폭대 바위는 무너져 현재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신용석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지리산에 남은 역사 흔적을 발굴해 민족 문화자산으로 보전하겠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설화·문헌에 나오는 최치원 완폭대 석각 바위 지리산에서 발견

    설화·문헌에 나오는 최치원 완폭대 석각 바위 지리산에서 발견

    1200년전 고운 최치원(857~?) 선생이 바위에 새긴 ‘翫瀑臺’(완폭대) 석각이 경남 하동군 지리산에서 발견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10일 역사문화자원 조사를 하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남부 능선에 있는 불일암 아래 바위에 한자로 翫瀑臺(완폭대))라고 새겨진 석각(石刻)을 발견했다고 밝혔다.완폭대 석각은 폭 150cm, 높이 140cm 암석에 음각돼 있다. 翫자와 臺자는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고 가운데 瀑자는 심하게 마모돼 있는 상태다.최석기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완폭대 석각은 그동안 설화와 문헌으로만 전해져 오다 이번에 실물이 발견됨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완폭대 석각은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雙磎石門’(쌍계석문)과 ‘洗耳巖’(세이암) 등의 석각과 함께 선인들의 정신문화가 담겨 있는 가치 있는 역사유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쌍계석문은 쌍계사 입구 바위에, 세이암은 화개면 범왕리 신흥마을 앞 화개천 수중암반에 각각 새겨져 있다. 완폭대는 불일폭포를 즐기고 감상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불일암 앞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치원이 이 바위 위에서 시를 읊고 푸른 학을 부르며 노닐었다는 청학동 설화가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불일암폭포 그림에도 절벽에 위태롭게 돌출된 완폭대 바위가 묘사돼 있다. 1611년 유학자 유몽인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유두류산록’을 비롯해 불일암과 불일폭포를 답사한 여러 선비들의 유람록 10여 편에 완폭대 석각이 실존한다고 기록돼 있다. 남주헌이 함양군수를 지내면서 1807년에 쓴 ‘지리 산행기’부터 완폭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시기를 전후로 불일암이 쇠락하거나 지형이 바뀌어 완폭대 석각도 흙에 묻히거나 수풀에 가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200여년만에 완폭대 석각이 발견된 것이다. 불일암 앞에 돌출된 완폭대 바위는 무너져내려 현재는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는 지리산 일대에 묻혀 있는 유적·유물 등 역사문화 자원을 찾는 작업을 올해 부터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측은 앞으로 하동군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해 완폭대 석각 보전방안 등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신용석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은 “완폭대 석각은 불일폭포 일원 청학동 설화가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물”이라며 “지리산에 남아있는 역사 흔적을 발굴해 민족 문화자산으로 온전하게 보전하겠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문채원, ‘계룡선녀전’ 여주인공 확정..날개옷 잃어버려 바리스타로 정착

    문채원, ‘계룡선녀전’ 여주인공 확정..날개옷 잃어버려 바리스타로 정착

    배우 문채원이 ‘계룡선녀전’을 통해 아름답고 신비한 설화 속 선녀로 돌아온다.네이버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한 사전 제작 드라마 ‘계룡선녀전’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바리스타가 된 699세 계룡산 선녀 선옥남이 현실을 살고 있는 두 명의 남편 후보 정이현과 김금을 만나면서 비밀을 밝혀내는 코믹판타지 드라마다. 극 중 문채원은 선녀폭포에서 날개옷을 잃어버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채 699년 동안 남편이 환생할 날만을 기다리는 계룡산 ‘선녀다방’의 바리스타 선녀 선옥남 역으로 분한다. 그녀가 맡은 선옥남은 느긋하고 따스한 성품과 엉뚱한 성격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사랑 받는 인물. 또한 수 백 년의 시간동안 오매불망 남편만을 기다리며 계룡산 산자락에서 커피를 내리던 그녀 앞에 남편으로 짐작되는 남자가 나타나면서 처음으로 산을 떠나게 된다.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문명사회에 진입한 선옥남의 좌충우돌 서울살이 적응기가 파란만장하게 전개되며 시청자들의 웃음 코드를 저격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선옥남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푸근한 외모의 할머니이지만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선녀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선녀 선옥남의 비밀은 극에 신선한 재미를 배가하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에 문채원이 그려낼 선녀 선옥남에 대한 궁금증이 고조되고 있다. 그간 드라마 ‘바람의 화원’, ‘공주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굿 닥터’ 영화 ‘최종병기 활’, ‘오늘의 연애’, ‘그날의 분위기’ 등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캐릭터를 보여줬던 그녀이기에 선옥남에게 어떤 색깔을 덧입혀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특히 정통 사극에서부터 현대극 등 장르를 불문, 탁월한 작품 소화력을 보여줬던 문채원은 이번 작품에서도 선옥남과 쏙 빼닮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안방극장에 ‘선옥남’ 홀릭을 예고하고 있다. 더불어 선옥남이 환생한 남편이라고 믿고 있는 남편 후보 정이현 역을 맡은 윤현민과 빚어낼 알콩달콩한 케미 역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처럼 아리따운 선녀의 모습 뒤 남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물론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춘 캐릭터 선옥남은 벌써부터 문채원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작품의 기대치를 한층 더 상승 시키고 있다. 한편 ‘계룡선녀전’은 제작에 박차를 가하며 시청자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국민이 정책 제안… 공론장 ‘열린소통 포럼’ 상설화

    국민이 정책 제안… 공론장 ‘열린소통 포럼’ 상설화

    내일 정부서울청사서 처음 열려 온오프 플랫폼 광화문1번가 계승 정책 공론화하고 핵심과제 발굴 국민·전문가·공무원 기획단 구성국민이 정책을 제안하고 전문가, 정부 담당자와 사회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는 ‘민주주의 공론장’이 마련된다. 행정안전부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 ‘광화문1번가 열린소통포럼’을 연다고 2일 밝혔다. 열린소통포럼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국민들 목소리를 듣고자 설치했던 온·오프라인 플랫폼 ‘광화문1번가’를 상설화한 것이다. ‘광화문1번가’ 정신을 이어받아 정책토론 기능에 집중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행안부는 설명했다. 열린소통포럼은 정부가 올해 3월 발표한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 가운데 하나다. 행안부는 포럼 활성화를 위해 일반 국민과 분야별 전문가, 관련부처 공무원으로 이뤄진 ‘국민참여기획단’을 꾸린다. 국민 의견을 반영해 상향식으로 정책을 공론화하고 핵심과제를 발굴하는 공론장으로 이 포럼을 운영한다. 앞으로 구축될 온라인 국민참여플랫폼과 연계해 토론 결과도 공유한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책 토론은 한 달에 두 차례가량 열린다. 토론 날짜와 주제는 온라인 국민참여포털이나 열린소통포럼 홈페이지(gwanghwamoon1st.go.kr)에 공지된다. 열린소통포럼의 모태는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선보인 정책쇼핑몰 ‘문재인 1번가’다. 이 사이트는 쇼핑몰 형식을 빌려 당시 문 후보의 공약을 상품처럼 나열한 뒤 해당 공약을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눌러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인기를 얻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미세먼지 저감과 도시재생 등 네티즌이 선택한 상위 10개 공약을 발표했다. 대선 뒤인 지난해 5월 25일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산하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온·오프라인 정책 제안 플랫폼 ‘광화문1번가’를 개설했다. ‘문재인 1번가’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에게 정책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광화문 1번가’는 이와 반대로 국민이 문 대통령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공론화하는 사이트다. 모두 18만 705건의 정책제안이 접수돼 ‘국민경청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청와대에 전달됐다. 이 가운데 1718건의 제안이 채택됐고, 99건은 국정과제에 반영됐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은 “‘열린소통포럼’은 정부가 열린 자세로 국민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면서 “그간 ‘내가 제안한 내용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되겠느냐’는 국민의 냉소적 반응을 자주 접했다. 이번 포럼을 통해 나의 참여가 정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홍준표 선거전략에 ‘반기’ 드는 후보들

    남경필 “민심 괴리 슬로건 바꿔야” ‘회담 공세’ 중도 표심 악영향 우려 김태호 무상급식 공약 당기조 역행 洪대표 “창원에 빨갱이 있다” 설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대여 공세와 거리를 두던 한국당 소속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선거전략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방선거에서 ‘정상회담 역풍’을 우려하는 후보들과 지지층 결집에 주력하고 있는 홍준표 대표의 선거 전략이 충돌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재선에 도전하는 남경필 현 지사는 2일 페이스북에 이번 지방선거의 당 선거 슬로건인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남 지사는 ‘자유한국당 선거 슬로건을 다시 만듭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슬로건은 그 함의를 떠나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국민은 과연 보수가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통해 균형 잡힌 시대정신을 구현할 능력이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면서 “보수는 여기에 분명히 답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홍 대표의 원색적 비판에 이의를 제기했던 남 지사는 이번에도 ‘건설적 대안’을 주문했다. 그는 “평화의 길이 열린 남북 관계의 더 큰 진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답을 찾고 실천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뿐만 아니라 인천시장 재선에 나선 유정복 시장 등이 홍 대표의 정상회담 공세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은 중도·무당층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 지사 측 관계자는 “현재 여론은 정권심판론과 같은 메시지가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지방선거 공약에서도 당의 기조와 다른 움직임이 감지된다. 김태호 경남지사 예비후보는 지역 초·중·고교 전면 무상급식 확대 시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홍 대표가 전임 경남도지사 시절인 2014년 11월 동(洞) 단위 고교 등에 대한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는 선별적 복지정책을 펼쳤는데 현 당 대표이자 자당 소속 전임 지사의 과거 정책을 뒤집겠다는 것이다. 당시 무상급식 철회는 학부모 사이에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당 관계자는 “지금은 경제나 민생 이슈를 제기해도 효과가 없다”면서 “지방선거 공천자 연수 등에서 당의 향후 전략을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홍 대표는 이날 경남 창원 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장에서 자신을 규탄하는 민중당 피켓 시위대를 향해 “창원에 여기 빨갱이가 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설화를 일으켰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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