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설화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36
  • 문희상 “일본 참의원 선거 끝나는 이달 말 국회 대표단 일본에 파견”

    문희상 “일본 참의원 선거 끝나는 이달 말 국회 대표단 일본에 파견”

    문희상 국회의장은 12일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일본 참의원 선거 후인 이달 말 국회 대표단을 일본에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일의회외교포럼 명예회장인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각 당 대표나 대표성 있는 사람도 한 사람 끼고 전문가도 같이해 7~8명 안팎으로 방일단을 구성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이 문제는 여야 없이 똑같은 합의선을 가지고 있다”며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19일 이전 (경제보복 철회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이 통과되면 그 결의안을 갖고 일본 참의원 선거와 지방선거가 12년 만에 겹치는 21일을 지나 이달 말쯤 국회 대표단이 간다는 것은 확정적”이라고 밝혔다. 또 문 의장은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해법으로 구상하는 기금조성 방안에 대해 “‘1+1’(한국 기업+일본 기업 참여)안이 정부안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진전된 안은 없다고 어제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문 의장은 국회방북단 추진 계획도 밝혔다. 문 의장은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북미 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도 북미,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은 필수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의장은 국회방북단 추진에 대해 “지난 8일 원내대표 회동에서 이러한 구상을 빠른 시일 안에 구체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정부와도 긴밀히 논의해 공식화하게 되면 북측의 전향적인 답변을 기대한다”고 했다. 또 문 의장은 “현재 제20대 국회 임기 종료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8일 기준 이미 제출된 2만 703건의 법률안 중 1만 4644건의 법률안이 계류 중”이라며 “이대로라면 법안 처리율 꼴찌를 면치 못할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 망언 국회의원들 징계가 더뎌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복원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의장은 “윤리특위 활동 기간이 연장되지 않아 윤리특위가 없어진 상황”이라며 “더욱이 아직도 38건의 징계안이 소관위원회도 없이 방치된 상태로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한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리특위의 활동은 자정노력과 개혁의지의 리트머스가 될 것”이라며 “즉시 윤리특위를 재가동하는 동시에 상설화 복원을 위한 국회법개정 협의에 나서달라”고 밝혔다. 문 의장은 “정당 스스로 자신과의 싸움인 정치개혁에 적극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문 의장은 “진보와 보수의 양 날개는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며 “한쪽이 없어진다면 바람직하지도 희망적이지도 못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보와 보수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은 나쁜 정치”라며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조건 틀렸다는 편견과 상대를 궤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그릇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뮬란’ 실사판 예고 공개, 유역비 화려한 액션 “가문을 빛내드리죠”

    ‘뮬란’ 실사판 예고 공개, 유역비 화려한 액션 “가문을 빛내드리죠”

    디즈니 영화 ‘뮬란’ 실사판 포스터와 공식 예고편이 공개돼 화제다. 영화 ‘뮬란’은 중국의 구국소녀인 목란(木蘭)에 대한 설화를 각색한 작품으로 아버지를 위해 남장을 하고 입영하는 뮬란이 위험으로부터 황제를 구해낸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날 공개된 예고 영상에는 ‘뮬란’ 역을 맡은 배우 유역비가 화려한 액션신을 보이는 모습이 담겼다. 앞서 유역비는 ‘뮬란’ 역 캐스팅에 대해 “디즈니에 대해 감사하다. 최선을 다하겠다”, “뮬란의 용감함과 두려움 없는 정신을 좋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유역비가 보일 ‘뮬란’의 모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실사판 영화 ‘뮬란’은 오는 2020년 3월 27일 개봉될 예정이다.사진=예고 영상 캡처, 디즈니 제공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목포 문인단체, 서산동 시화골목 체계적 관리 시급

    목포에서 활동중인 문인단체들이 지역의 우수한 관광자원인데도 방치되고 있는 ‘서산동 시화골목’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사)한국문인협회 목포지부와 (사) 한국작가회의 목포지회 등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영화 1987의 촬영지인 ‘연희네 슈퍼’와 ‘시화골목’이 있는 서산동 일대는 목포 원도심 관광의 핵심이자 통영의 동피랑을 능가하는 전국적인 관광명소다”며 “하지만 시화골목에 걸려있는 작품들이 사라지고 운영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인문도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시화골목은 목포 시인들이 조금새끼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동네 주민들의 애잔한 삶을 노래한 시 67점과 주민들의 생애시 28점이 목판과 벽화로 걸려 있는 전국 유일의 테마 시화골목이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들은 “이같이 중요한 장소를 책임지고 있는 목포시의 관리·운영체계의 부실로 연희네 슈퍼가 문을 닫고, 시화골목의 목판시화 13점이 분실됐다”며 “그동안 수 차례 시정 요구가 있었음에도 관리부서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문인 단체들은 “도난당한 목판시화 13점을 포함한 시화 전체를 다시 제작해 해당 장소에 전시하는 등 전면적인 개보수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 관리·운영의 체계적인 내실을 기하라”고 촉구했다. 단체들은 또 “연희네 슈퍼 부근에 시설 훼손 및 도난 방지용 폐쇄회로(CC)-TV와 경고 문구를 설치하라”면서 “아름다운 관광명소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실적 위주 마케팅 대신 내실 있는 관광정책에 주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윤조에센스’, 핵심 원료 ‘자음단’이 피부를 균형 있게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윤조에센스’, 핵심 원료 ‘자음단’이 피부를 균형 있게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의 글로벌 스테디셀러 ‘윤조에센스’는 세안 후 가장 첫 단계에 바르는 한방 부스팅 에센스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달 120㎖ 대용량의 윤조에센스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였다. 기존 90㎖ 용량보다 30㎖를 늘리고 5가지 피부 지표(영양·자생·탄력·생기·투명)의 균형과 반짝이는 피부를 ‘별’로 형상화해 황금빛 디자인을 입혔다. 윤조에센스의 핵심 원료는 ‘자음단’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피부 속 불균형이 노화의 근본 문제로 진단하고 음·양의 피부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피부에 부족한 윤을 채워주고 피부 균형을 도와주는 작약, 연꽃, 옥죽, 백합, 지황의 5가지 원료를 엄선해 최적의 비율로 처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헤리티지 성분 자음단은 5가지 피부 지표의 균형을 재설정해 최적의 상태로 끌어올려 준다.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한방과학 연구센터는 여성 피부가 7년을 기점으로 톤·탄력 등에서 변화가 단계적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한방·인삼 소재 연구와 더불어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부흥 기폭제 ‘춘향전’ 멜로 이끈 ‘자유부인’… 장르의 신세계 열었다

    부흥 기폭제 ‘춘향전’ 멜로 이끈 ‘자유부인’… 장르의 신세계 열었다

    지금까지의 연재를 통해, 1900년대 초입 한국에 처음 영화가 들어온 시점부터 6·25 전쟁이 끝나고 재건을 시작한 1954년 시점까지 약 50년 동안의 영화사를 살펴봤다. 1901년 미국인 여행가 버턴 홈스 일행이 대한제국기 서울의 풍경을 촬영해 왕실에서 상영회를 개최한 것과 1903년 동대문활동사진소에서 표를 사고 입장한 대중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상영한 것이 한국에 영화가 소개된 가장 앞선 기록이었다. 또한 1919년 단성사에서 조선인 신파극단의 제작으로 연극 무대와 영화가 결합한 연쇄극을 상연한 것은 한국영화 100년의 출발로 기록된다. 이후 일제강점하 조선영화계는 무성영화와 발성영화시기를 개척해 가며 조선인 관객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고, 일제 말기에는 국책선전영화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영화 제작을 멈추지 않았던 영화인들의 열정은 1945년 8월 이후 해방 정국과 1950년 6·25 전쟁 시기에도 꾸준히 극영화를 만들고 관객들과 만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는 1950년대 중반 한국영화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이제부터의 연재는 1955년 이후 한국영화계가 어떻게 국가 정책 그리고 제작 자본과 협상하며 ‘한국’ 영화를 만들어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이번 지면은 우선 1950년대 중후반까지의 상황을 알아볼 것이다.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계 전후 한국 사람들의 깊은 상처를 위로한 것은 역시 영화였다. 전쟁 중에도 영화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던 영화인들은 폐허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곧바로 상업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1954년 18편, 1955년 15편을 기록한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1956년 30편, 1957년 37편으로 늘어나더니, 1958년 74편으로 전 해보다 두 배가 증가했고, 1959년에는 111편으로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편대에 진입하게 된다. 한국영화산업이 휴전 후 불과 6년 만에 이 정도의 급성장을 이룩한 배경은 역시 인력이었다. 영화에 대한 한국영화인들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했던 것일까. 가장 대중적인 예술에 참가한다는 개인 창작자로서의 욕망, 자본을 투여한 것 이상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상업영화 셈법의 확고한 인식, 또 직업으로서 계속 영화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영화를 기다리고 지지하는 관객들의 존재가 가장 중요한 동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 매체는 대중과 만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도한 이승만 정부도 이러한 한국영화의 역할을 인식하고 영화계의 의견을 반영해, 1954년 ‘국산영화 입장세 면세조치’, 1959년 ‘국산영화 장려 및 영화오락 순화를 위한 보상특혜실시’라는 과감한 지원책으로 한국영화 진흥을 도모한다.전후 한국영화 부흥의 기폭제가 된 작품은 이규환이 연출하고 배우 조미령과 이민이 주연한 ‘춘향전’(1955)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전 소설 ‘춘향전’은 1923년 한국 최초의 상업영화,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이후 한국영화산업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영화화되었다(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0)까지 모두 17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5년 벽두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이규환의 ‘춘향전’ 역시 몰려드는 관객들로 대성황을 이뤘고, 2주간 상영에 10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들며 제작사에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단 하나의 프린트로 전국 상영을 하던 시절, 서울 상영 이후 지방 각 도시의 상영관에서도 열띤 흥행은 계속되었고, 영화는 2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관객들과 만났다. 춘향 역의 조미령과 이몽룡 역의 이민이 이 영화 한 편으로 일약 스타가 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새롭게 출발한 한국영화계는 이 영화 덕분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영화로는 제작비 회수도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지만, 채산을 맞추는 것을 넘어 큰 수익도 올릴 수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잘 만든 한국영화라면 언제든 뜨거운 지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영화의 효과였다. ‘춘향전’의 성공은 이후 사극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1956년에 제작된 30편 중 무려 16편이 사극 혹은 시대극 장르일 정도로 인기를 구가한다.●사극에서 멜로드라마로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또 다른 축은 바로 현대극 장르였다. 관객들이 시대극 장르에 싫증을 내기도 전에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가 흥행 전선에 나선 것이다. 이 경향을 주도한 것이 바로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1956)이다. 영화는 대학교수와 교수 부인 각각의 연애를 다뤄 전후 한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원작은 작가 정비석이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해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소설로, 연재 당시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며 중공군 50만명과 맞먹는 국가의 적이다”는 격렬한 비난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다. 195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휘몰아치던 계, 댄스, 사치라는 세 가지 바람을 시의성 있게 소설화한 원작이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한형모는 영화로까지 여세를 몰아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한편 영화에 등장한 “뭐든지 최고급품으로 주십시오, 최고급입니까”라는 극 중 백사장(주선태)의 대사는 당시 “최고급”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자유부인’은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이자,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되었다. 이듬해 1957년에는 홍성기의 ‘애원의 고백’, ‘실락원의 별’, 김성민의 ‘처와 애인’, 김기영의 ‘여성전선’, ‘황혼열차’, 이용민의 ‘산유화’, 한형모의 ‘순애보’, 유현목의 ‘잃어버린 청춘’ 등의 멜로드라마가 전후 사회의 정서와 시대상을 반영하며, 여성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주의적 미장센(화면 구도)이 유려한 유현목 감독의 ‘그대와 영원히’(1958), 박종호의 감독 데뷔작이자 배우 김지미의 청초한 매력이 돋보이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1959), 조긍하 감독의 대표작 ‘육체의 길’(1959)도 빼놓을 수 없다. 1950년대 후반의 멜로드라마 지형은 홍성기·김지미 콤비의 영화가 주도하는 가운데,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작품이 경쟁 구도를 그리며, 한국 대중영화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 전자는 ‘별아 내 가슴에’(1958), ‘산 넘어 바다 건너’(1958), ‘별은 창 너머로’(1959), ‘자나깨 나’(1959)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그 여자의 죄가 아니다’(1959) ‘동심초’(1959) ‘자매의 화원’(1959) 등을 들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들의 성공을 발판으로 ‘신필름’을 설립, 1960년대 이후 한국영화계를 주도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양적 증가 넘어 영화 문화·산업 전반으로 성장 195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성장은 제작편수로 대변되는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영화문화와 산업 전반이 확장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전후 사회적, 개인적 악조건 속에서 ‘미망인’(1955)을 연출한 박남옥은 한국영화사의 첫 번째 여성감독으로 기록되며,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1956)은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희극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 되었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중요한 특징은 다양한 장르가 시도된 점이다. 멜로드라마와 스릴러를 혼합한 ‘운명의 손’(1954)의 한형모는, 악극 요소를 가미한 코미디 ‘청춘쌍곡선’(1956), 탐정영화 ‘마인’(1957), 가요를 극 속으로 녹여낸 멜로드라마 ‘나 혼자만이’(1958)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는 야심 찬 행보를 보였다. 노필 감독 역시 극 중 등장인물의 노래 장면이 삽입된 멜로드라마 ‘꿈은 사라지고’(1959), ‘사랑은 흘러가도’(1959) 등을 연출했다. 이 영화들은 미리 녹음한 음악을 촬영현장에서 틀면서 입 모양을 맞추는 ‘플레이백’ 녹음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음악영화들이 시도된 이유는,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기재와 기술력이 부족했던 당시 한국영화계가 절충적 제작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화기술에의 도전과 이를 뒷받침한 물적 기반도 검토해 봐야 한다. 해방기 ‘무궁화동산’(안철영, 1948) ‘여성일기’(홍성기, 1949)에서 도전했던 컬러영화 제작도 다시 시도되었다. ‘선화공주’(1957, 최성관)를 시작으로 ‘사랑의 길’(1958, 장황연), ‘춘향전’(1958, 안종화), ‘콩쥐팥쥐’(1958, 윤봉춘)가 컬러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 한편 홍콩과 합작한 ‘이국정원’(전창근·도광계·와카스기 미쓰오, 1957)은 해외 기술을 빌어 안정적인 컬러 색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한홍 합작영화로 기록되는 ‘이국정원’은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와 홍콩 쇼브라더스사가 공동 제작했고, 김화랑 감독의 ‘천지유정’(1957)이 그 뒤를 이었다. 두 영화는 1958년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2.35:1의 시네마스코프 포맷을 통해 넓고 긴 화면 즉 와이드스크린도 선보였다. 그 첫 번째 작품은 수도영화사 대표 홍찬이 건설한 안양촬영소의 창립작 ‘생명’(이강천, 1958)이다. 영화는 미첼 카메라에 비스타라마 렌즈를 달아 촬영했고, 오프닝 크레디트와 포스터에는 수도영화와 시네마스코프를 합친 ‘수도스코프’라는 명칭을 내세웠다. ●정릉·삼성·안양 등 영화 전문 스튜디오 등장 컬러와 와이드스크린 등 1950년대 후반의 기술 시도는 영화촬영소라는 공간과 연동된 것이었다. 한국영화문화협회의 정릉촬영소, 삼성영화사의 삼성스튜디오, 수도영화사의 안양촬영소 등 본격적인 스튜디오 세 곳이 등장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제작 기반이 되었다. 사실 스튜디오라는 공간은 선진 영화제작 시스템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주먹구구식 수공업적 제작을 벗어나 할리우드식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한국영화인들의 오랜 꿈이었다. 스튜디오 시대의 첫 주자는 1957년 1월 개소한 정릉촬영소였다. 120평의 촬영장과 100평 규모의 현상소에 미국의 민간원조기구 아시아재단이 기증한 미첼 카메라, 휴스턴 자동현상기 등이 설비되었다. 촬영소를 건립한 한국영화문화협회는 아시아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영화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1956년 7월 설립한 단체다. 한편 ‘자유부인’으로 큰 수익을 거둔 삼성영화사는 1957년 7월 군자동에 삼성스튜디오를 만들어 권영순의 ‘오해마세요’(1957), 유현목의 ‘그대와 영원히’, 한형모의 ‘나 혼자만이’(1958)를 제작했다. 규모나 내용에 있어 가장 주목할 곳은, 평화신문사와 수도영화사 사장 홍찬이 이승만 정권의 특혜를 받아 1958년 6월 개소한 안양촬영소이다. 그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본떠 본격적인 프로듀서 시스템을 도입했고 자신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양촬영소는 3만 3500평의 부지에 총건평 1975평으로 9개의 건물이 자리잡은 그야말로 ‘영화공장’이었다. 미첼 카메라 3대, 웨스트렉스 녹음 시설 등 미국의 최신 기재들도 들여왔다.하지만 수도영화사의 홍찬은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생명’과 두 번째 작품 ‘낭만열차’(1959)의 흥행 실패로 수십억원의 부채를 졌고, 결국 촬영소는 1959년 10월 부도 처리되며 산업은행의 관리로 넘어갔다. 1966년 9월 박정희 정권의 지원하에 신필름에 인수될 때까지 애물단지로 방치되었던 안양촬영소는 영화산업의 근대화가 산업 내부의 동력 없이 국가의 정책적 지원만으로 완성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1950년대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1960년대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들어서는 기반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대구시청, 사통팔달 화원읍 이전이 최적… 경제 파급효과 2조”

    “대구시청, 사통팔달 화원읍 이전이 최적… 경제 파급효과 2조”

    대구 달성군은 대구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인구도 지난해 1월 25만명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26만명을 돌파해 전국 82개 군 가운데 가장 많다. 달성군은 2017년 2월 인구 22만 7207명을 기록해 울산 울주군을 제친 뒤 계속 1위다. 대구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데 유독 달성군만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와 쾌적한 주거환경, 편리한 생활인프라 등 삼박자를 갖췄기 때문이다. 민선 7기 임기 1년을 앞두고 17일 김문오 달성군수를 만나 군정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대구의 중심… 천혜의 녹지공간도 활용 가능 -지역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대구시청 신청사 유치다. “달성군 화원읍 일대는 신청사 이전 부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부지 면적이 20만㎡인데 최대 35만㎡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지리상으로 대구의 중심이다. 사통팔달 편리한 교통접근성은 최대 장점이다. 대구도시철도1호선 설화명곡역, 중부내륙고속도로, 광주대구고속도로, 국도 5호선, 대구 외곽을 연결하는 순환도로, 테크노폴리스 진입로와 인접해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인 대구 서부지역권과 국가산업단지, 테크노폴리스를 잇는 대구산업선철도가 개통되면 접근성은 더욱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천혜의 녹지공간을 활용하여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숲, 도심공원으로 연계 개발도 가능하다. ” -그동안 달성군의 신청사 유치 활동은. “달성군의회는 지난 4월 10일 임시회를 열고 대구시청 신청사 유치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다음날 달성군 여성문화복지센터에서 ‘대구시 신청사 건립 유치위원회’를 발족했고 100명의 추진위원을 선임해 유치 활동에 나섰다. 8일 뒤인 19일 부군수를 단장으로 하는 지원반을 구성했으며, 24일에는 이전 후보지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3일 신청사 유치 기원 드림콘서트를 열었고, 9일에는 달성기업인협의회가 신청사 화원 유치 홍보에 동참하기로 했다. 지난달 23일 신청사 유치를 위한 UCC 홍보동영상을 제작했다. 지난달 30일 달성군 대구시 신청사 건립 유치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다.” ●예상 부지 비용 800억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신청사 건립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놨다. “시청 신청사 건립 예정지로 확정될 경우 해당 부지를 전액 군비로 확보하는 계획안을 수립했다. 이 부지의 감정가는 800억원 정도이다. 달성군의 경우 한 해 지역개발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1000억~1500억원 정도다. 시급성을 요구하지 않는 예산을 빼면 부지 매입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 -화원에 신청사가 유치되면 파급 효과는. “대구시의 생활권역이 경북 고령, 성주 지역까지 확대된다. 대구산업선철도와 국가산업단지 등과 연계해 대구 서남부권 물류교통의 중심지, 새로운 주거 중심지로 떠오를 것이다. 대구시교육청, 대구시경찰청도 화원으로 이전해올 수 있다. 인근의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와 연계하면 행정복합타운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행정편의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대구시에서 역점 추진하는 대구국가산업단지 내 물산업클러스터 조성, 전기자동차 산업 등도 탄력을 받게 된다.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조 9915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군정 방향과 핵심 공약사업 진척 상황은. “산업물류 수송을 위한 교통망 확충과 첨단산업을 창조하는 대기업 유치에 주력하겠다. 노후 산업단지 재생 사업과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에 앞장서겠다. 근로자 기숙사 임차비 지원, 산학연 협력을 통한 맞춤형 취업 주선, 구직자와 기업이 함께 상생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을 펴나가겠다. 청년몰 운영, 청년 창업지원센터 건립 등 다각적인 취업 지원을 하겠다. 비슬산의 참꽃 케이블카와 한옥마을 등을 연계하는 관광명소화 사업을 본격화하겠다. 송해공원 내 코미디박물관 건립, 사문진 역사체험관 조성 등도 추진하겠다.”●작년 인구 순유입률 1위… 안전도시로 명성 -대구시 1호 관광지인 비슬산에 이어 화원유원지가 2호 관광지로 선정됐다. “화원유원지 일대 21만여㎡를 2023년까지 1·2차로 나눠 다양한 사업을 시행할 방침이다. 먼저 1차 사업으로 시가 추진 중인 3대 문화권 사업의 하나인 ‘낙동가람 수변역사 누림길’ 조성이 추진된다. 이 사업은 역사문화체험관, 고분공원, 상화대공원, 팔각정 등을 조성하는 것이다. 2차 사업으로 13만 7422㎡를 테라피룸·약선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갖춘 ‘힐링형 관광호텔’, 한방의료 등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자연치유원’, 지역 예술가와의 협력을 통해 예술작품을 상시 전시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예술공원’,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텔링형 ‘테마공원’ 등을 건립하겠다. 화원읍 일대에는 대구 근교권 대표 체류·숙박시설을 조성하고 관광 여가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휴양·레저 공간’으로 개발하겠다.” -굵직굵직한 상을 잇달아 받았다. “지난달 21일 열린 제11회 다산목민대상 시상식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았다. ‘부패 Zero, Clean 달성’ 구현을 목표로 공직자, 공공기관 임직원 대상 청렴교육을 생활화하며 올바른 공직가치 함양 및 직업윤리 정립에 힘써온 점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중앙부처 주관 22개 분야, 대구시 주관 10개 분야, 기타 7개 분야에서 수상해 특별시상금 3억 3900여만원을 받았다.” -3선 군수다, 군정 철학을 소개하면. “지자체도 비즈니스 시대, 군수도 행정가 이전에 주식회사 달성군의 최고경영자(CEO)라는 마인드로 군정을 추진한다. 달성의 문화관광은 물론 역사와 경제 등에 남다른 관심을 두면서 미래 100년을 설계했다. 항상 직원들에게 현장에 가봤는지를 묻는 등 ‘현장 행정’을 강조해왔다. 남은 임기 동안 26만 달성군민들의 자긍심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항상 고민할 것이며, 지자체가 나아갈 방향을 선도적으로 제시해 만족도 높은 달성군을 건설하겠다.” -군민에게 당부하거나 하고 싶은 말은. “10년 전만 해도 달성은 인구 18만명 남짓한 대구 변방의 평범한 농촌 도시였다. 하지만 이후 눈부시게 발전했다. 2018년 인구 순유입률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출산율 전국 9위, 신생아 증가 전국 1위,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명성을 쌓았다. 또 전국에서 유일하게 6개의 읍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7월이면 군수로 취임한 지도 10년째다. 올해는 군민 여러분과 더불어 ‘달성, 10년 변혁’을 완성하는 의미 있는 한 해로 만들어가겠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김문오 달성군수는 친박 후보 누르고 당선… 언론인에서 행정가로 3선 3선인 김문오(70) 대구 달성군수는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구MBC 보도국장 뉴스데스크 앵커, 대구MBC 미디컴 대표이사, 한국기자협회 대구경북지회장, 한국언론재단 기금이사 등을 역임했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언론인에서 행정가로 변신했다.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중 지원을 받은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이석원 후보에게 신승을 거두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2012년 11월 새누리당(현 한국당)에 입당한 뒤 2014년 6월 제6회 지방선거에선 무투표로 당선됐으나 지난해 치러진 제7대 지방선거에서는 또다시 당의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인기 있는 군수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군수가 되자’,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죄우명으로 군정을 추진한다. 그의 추진력으로 화원읍을 대구시청 신청사 유력 후보지에 이름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어린이 책]이부자리에 실수한 아이 3대가 발칵 뒤집혔는데…

    [어린이 책]이부자리에 실수한 아이 3대가 발칵 뒤집혔는데…

    오줌싸개 시간표/윤석중 글/권문희 그림/여유당/32쪽/1만 2000원신나는 꿈 속, 불을 끄려고 오줌을 갈겼다. 아뿔싸, 깨보니 바지춤이 흥건하다. 키를 쓰고 소금을 받아 오라는 불호령에 아이는 억울하다. 게다가 할아버지·아버지·엄마·누나 그 누구도 꿈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대책회의 끝 뜻밖에 ‘오줌싸개 시간표’를 만들어 벽에 써붙인다. 전날 밤, 아이의 오줌을 미리 챙겨 뉘지 않은 데서 생긴 일이라는 결론에서 나온 극약 처방이다. ‘퐁당퐁당’, ‘졸업식 노래’ 등의 ‘국민 동요’를 지은 윤석중(1911~2003) 시인의 동화시가 87년 만에 시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오줌싸개 시간표’는 1932년 동아일보에 처음 발표되고 1933년 출간된 우리나라의 첫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에 실린 다섯 편의 동화시 중 하나다. 간밤, 이부자리에 ‘실수’한 아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들의 반응과 아이의 마음을 아이 시점에서 풀어냈다. 생생한 아이의 입말 속에서 삼대가 함께 사는 가족 사이에 흐르는 웅숭깊은 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동요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인의 동심에 그림을 그린 권문희 작가의 상상력이 꽤 알맞게 더해졌다. 제주 설화 ‘설문대할망’을 연상케 하는 첫 장부터 흰 여백으로 끝내는 마지막 장까지 구성이 버라이어티하다. 한지에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다정다감하다. 마치 ‘실수해도 괜찮아’ 하는 것처럼. ‘그래 그 뒤론 여태 한 번두 안 쌌어요. 쉬, 쉬, 오줌 싸는 아이들은 다 자기 전에 쉬-.’(32쪽) 잠들기 직전, 자연스럽게 아이의 오줌을 누이기 직전 읽어주기 좋은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주거트렌드 변화의 시작 ‘천안아산역 더리브’

    주거트렌드 변화의 시작 ‘천안아산역 더리브’

    주식회사 탕정테크노파크는 충남 아산신도시 탕정지구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의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는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와 갈산리에 68만6528㎡로 조성되며 산업단지 주변으로 완충녹지와 근린공원, 소공원 등이 에워싸고 있는 친환경 산업단지로 계획됐다. 또 첨단 전자기업 삼성 디스플레이시티 1, 2 산업단지가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아산시가 조성중인 탕정DC2, 아산디지털, 탕정일반, 아산스마트밸리, 인주일반(3공구) 등 10여개 산업단지도 산재하다. 이러한 개발호재가 풍부한 주변 주거 부동산 가격은 그 가치가 높아진다. 조성되는 산업단지의 신규 고용인구가 증가하는 곳은 일자리와 연계되고 해당 지구 뿐만 아니라 관계 협력업체들까지 그 주변으로 이동 한다면 자연스럽게 필수재인 인근 주거용 부동산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은 장벽이 높고 주요 상업지의 접근성은 미약한 편이다. 또 높은 청약경쟁률 및 초기투자비용, 담보대출규제, 전매제한등의 한계를 가진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완화된 주거용 오피스텔이 1,2인 가구 및 신혼부부 맞춤 상품으로서 적격이다. 주변 개발호재로 인한 아파트가격의 상승은 인근의 주거용 오피스텔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조기에 분양이 완료된 아파트 상품이 있다면 인근의 주거용 오피스텔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천안아산역 THE LIV’는 KTX∙SRT 천안아산역 이용이 편리하며 생활편의시설은 이마트 펜타포트점, 이마트 트레이더스, 롯데마트, CGV 천안펜타포트점, 갤러리아백화점 센터시티점, 천안시청등이 있다. 교육환경으로는 연화초, 설화중∙고교가 도보통학이 가능한 거리에 있으며 아주나 유치원, 연화초 병설유치원,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와 나사렛대학교에 인접해 있다. ‘천안아산역 THE LIV’는 지하 4층~지상 45층, 3개 동, 전용면적 77~84㎡ 오피스텔 등 총 593실 규모로 조성된다. 전용면적별는 77㎡A가 230실, 77㎡B 242실, 84㎡ 121실, 총 593실이며 전 호실 남향위주의 조망이 확보되어 있다. ‘천안아산역 THE LIV’의 견본주택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에 위치하며 준공예정일은 2021년 3월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불교 설화’ 꺼낸 황교안 “문 대통령, 손가락만 보지 마라”

    ‘불교 설화’ 꺼낸 황교안 “문 대통령, 손가락만 보지 마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31일 “지혜로운 사람이 달을 보라며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니,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만 볼뿐 정작 달은 쳐다보지 않는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황 대표는 이날 ‘손가락과 달’이라고 제목을 붙인 글에서 한 불교 설화를 거론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어제 국무회의 발언을 떠올리니 문득 불교 설화에 나온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운을 뗐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했는데, 며칠 전 5·18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라고 했던 발언도 함께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은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보는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강효상 의원과 이를 엄호하는 한국당을 국무회의에서 강력히 비판한 데 대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것이다. 황 대표가 글에서 쓴 ‘달’은 한미동맹 균열을, 손가락은 강 의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 의원이 통화내용을 토대로 한미동맹 균열을 지적했더니 그에게 외교기밀 누출 혐의를 씌워 형사고발하고 유출 당사자인 공무원까지 파면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포토] ‘속옷 공개’ 최설화, 머슬퀸의 보디라인

    [포토] ‘속옷 공개’ 최설화, 머슬퀸의 보디라인

    ‘머슬퀸’ 최설화의 속옷 차림 모습이 시선을 끈다. 최설화는 28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검정색 속옷 상하의를 입고 꽃을 든 최설화의 모습이 담겨있다. ‘머슬퀸’ 답게 탄탄한 보디라인을 자랑하는 최설화는 아름다운 매력을 발산했다. 한편 머슬마니아 3관왕 출신인 최설화는 최근 속옷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스포츠서울
  • 400억 대작 ‘아스달 연대기’ 한국 드라마 새 지평 여나

    400억 대작 ‘아스달 연대기’ 한국 드라마 새 지평 여나

    송중기·장동건 등 초호화 캐스팅 상고시대 가상의 역사 다뤄 눈길지금까지 없던 국내 드라마 한 편이 안방 시청자들을 찾아온다. 송중기·장동건 등 호화 캐스팅, 400억원 넘는 제작비 등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은 tvN ‘아스달 연대기’다. 오는 1일 첫 방송되는 ‘아스달 연대기’는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다. 막대한 제작비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드라마 최초로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가상의 대륙 ‘아스’에 사는 여러 부족 사람들이 최초의 도시와 국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한민족의 시원 설화인 단군설화를 재해석하고 판타지 설정을 첨가했다. ‘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을 쓴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이 힘을 합쳤다. 28일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 작가는 “7년 전 기획안을 써서 방송사에 드렸을 때 모두 화들짝 놀라면서 말렸다. 7년이 지나 오픈하게 돼 좋다”며 웃었다. ‘아스달 연대기’는 방대한 스케일과 처음 시도하는 세계관으로 한국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 거란 기대를 모은다. 6부작씩 세 파트, 모두 18부작으로 그중 12부작이 먼저 방송된다. ‘태양의 후예’ 이후 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송중기가 사람족과 뇌안탈의 혼혈로 태어나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은섬 역을 맡았다. 장동건이 대칸부대의 수장 타곤을, 김지원이 예언능력을 갖고 있는 와한족 탄야를, 김옥빈이 해족 수장의 딸 태알하를 연기한다. 예고편 공개 후 고증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작가는 “그 시대에는 20살이 넘으면 이가 7개 이상 없어야 된다. 뽑을 수가 없지 않냐”라고 답해 좌중을 웃겼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단계에서 기록에 없던 부분이 다른 문명에서는 발견되기도 한다”며 “(극의 흐름상 고증이)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발전단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진지한 대답을 보탰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예술가 집안’ 봉준호… 외할아버지는 소설가 박태원

    외조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 유명 부친도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 지내 30일 국내 개봉 앞두고 내일 언론시사회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을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서면서 그의 가계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봉 감독의 외할아버지는 1930~40년대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태원(1910~1986)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1930년대 서울 청계천변 서민들의 생활을 묘사한 ‘천변풍경’은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과 교차편집 등 영화 기법을 소설에 차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역시 창작노트 자체를 소설화하는 실험적인 기법으로 성과를 인정받았다. 봉 감독의 아버지인 봉상균(1932~2017) 전 영남대 미대 교수 역시 옛 문화공보부 산하의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을 지낸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다. 당시 무대미술과 영화 자막 서체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등 초창기 영화계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영화 ‘기생충’은 오는 30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15세부터 관람 가능하다. 개봉에 앞서 28일 열리는 국내 언론시사회에 봉 감독을 비롯한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 주요 배우들이 참석해 영화제 뒷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인형극으로 꿈을 찾는 인형극단 “부천 달(doll)달(達)한 꿈의학교”

    인형극으로 꿈을 찾는 인형극단 “부천 달(doll)달(達)한 꿈의학교”

    지난해 9월 27일 경기 부천 소새울역 대합실에서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하는 전래설화를 바탕으로 ‘미호’와 절친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부기와 토리’ 인형극 2편 공연이 펼쳐졌다. 귀여운 인형들에게 소새울역사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눈길이 쏠렸다. 인형을 잡고 열심히 조종하고 있는 어린 단원들 모습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인형 등쪽에 있는 손잡이로 인형을 조종하며 인형극을 펼치는 단원들은 모두 초등학생이며, ‘부천 달달한 꿈의학교’ 참여 학생이었다. 23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는 학교와 마을교육공동체 등 주체들이 지원하는 학교 밖 교육 활동인 ‘경기꿈의학교’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15년부터 도내 학생들이 상상력으로 꿈꾸고 질문하고 스스로 기획하면서 삶의 역량을 기르고 꿈을 실현해 나가도록 하려는 게 행사 목표다. ‘달달한 꿈의학교’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째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학교’로 운영중이다. 자기표현이 서툰 아동들이 인형을 매개체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마을활동을 통해 공동체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다. 또 직접 인형극을 제작하고 지역축제 참여와 인형극 동화책 제작 등 다양한 프로그램 활동을 하고 있다. ‘부천 달달한 꿈의학교’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놀이를 바탕으로 한 교육연극 수업이다. 저학년 1편과 고학년 1편의 인형극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운영한다.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배역에 맞게 인형을 만들고 수정하면서, 대본을 외우고 상대배역과 호흡을 맞춰 나가는 과정을 통해 자기표현능력을 기르고 공동체 의식을 길러 나간다. 지역 축제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이 직접 홍보포스터와 입장권을 제작해 마을 구성원으로 함께 축제를 만들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부천 달달한 꿈의학교’에 참여하는 한 학생은 “친구들과 협동하고 어울려 놀면서 배우는 학교예요. 제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꿈의학교에 참여한 학생의 한 어머니는“꿈의학교에 참여하면서 우리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며, “이전에는 짜증투로 이야기 했는데 친절한 말투로 바뀌었다. 꿈의학교 학부모 수업에 직접 참여해 보니 우리 아이가 많이 배우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동언 ‘달달한 꿈의학교’ 대표는“아이들이 인형극을 하면서 자기 소리를 낮추고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차례도 기다릴 줄 알게 됐다”면서 “아이들이 공동체 일원으로 세상에 나가 당당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꿈의학교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경기꿈의학교’는 ‘학생이 만들어가는 꿈의학교’와 학부모나 비영리단체, 지방자치단체, 개인 등 마을교육공동체 주체들이 학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운영하는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학교’, 학교와 마을 사이의 다양한 교육공동체 구성원이 만든 동아리 성격의 예비 꿈의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금요칼럼] 돌배나무숲과 고분의 공존을 위하여/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돌배나무숲과 고분의 공존을 위하여/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두타산 삼화사라면 강원 동해 무릉계곡에 자리잡은 유서깊은 사찰이다. 창건설화는 절의 역사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전한다. 그런데 안내판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보면 뜻밖의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당초 삼화사가 있던 자리는 1977년 시멘트공장 채석장이 됐고, 그 결과 1979년 절을 지금의 터전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문화재 보존에도 시대정신이 있게 마련이다. 개발시대 시대정신은 안타깝게도 산업화가 문화재 보존에 우선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삼화사가 아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많은 신도를 거느린 대찰(大刹)이자, 삼층석탑과 철조노사나불좌상이 각각 보물로, 수륙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화유산의 보고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국 어디서나 땅을 파기만 하면 나오는 매장 문화유산은 사정이 다르다. 굴착기 삽날에 걸려나오는 과거의 흔적은 공사의 속도를 더디게 하는 원흉일 뿐이다. 한때는 ‘그깟 땅속 문화재의 보존’보다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개발’이 우선이라는 분위기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지금은 21세기다. 적어도 공장을 세운다고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고찰(古刹)을 옮기는 일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수록 매장 문화유산이 여전히 20세기적 위기상황에 머무는 것은 안타깝다. 경북 구미 송삼리 유적도 그렇다. 구미시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관내 무을면 일원 460㏊에 돌배나무를 심고 주변 도로 14㎞에도 돌배나무를 가로수로 심는다는 계획이었다. 올 가을 110㏊를 끝으로 나무를 모두 심으면 내년부터는 돌배의 상품브랜드화를 추진해 주민 소득을 높이고, 꽃이 피는 시기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다. 구미시는 ‘무을 돌배나무 특화숲 조성 사업’이라 이름 붙였다. 문제는 구미시가 기초적인 매장문화재 조사도 하지 않고 사업을 강행해 지하 유적을 대거 파괴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송삼리와 무수리, 무이리 등의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39만 8915㎡ 가운데 7만 4310㎡가 훼손된 만큼 보호조치와 원상복구는 물론 발굴조사를 포함한 구체적인 보존대책을 수립하라고 구미시에 통보했다. 구미시의 대책은 그러나 더 큰 반발을 불러왔다. 영남고고학회는 ‘구미시 발표에는 재발 방지와 파괴된 유적의 보존을 위한 대책 수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데다 봉분에 심어놓은 나무를 보호조치 없이 옮겨심는다면 더 큰 유적 파괴를 불러올 뿐’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저지르는 불법적 문화재 파괴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련 공무원의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사건은 ‘공장을 지으려면 바로 그 땅이 필요하다’는 개발시대 문화유산 파괴 논리와도 양상이 다르다. 돌배나무를 지역 특화 수종으로 만들어 주민 소득을 높이겠다는 사업계획은 나름대로 참신한 문화적 발상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문화를 기존 문화, 그것도 5세기 수장급 고분군(群)을 파괴한 자리에 만들겠다면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돌배나무숲과 고대국가의 옛 무덤군이 조화를 이룬다면 훨씬 더 매력있는 관광자원이 아닐까. 구미시는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부서가 사업을 추진할 때 문화재 부서와 협의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화숲 조성 같은 대형 사업을 하면서 문화재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해당 부서가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최종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구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문화유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중요한 지역 자산이다. 눈앞의 작은 성과에 집착해 이를 파괴하는 정치인이라면 주민들로부터 ‘표의 응징’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나라가 진짜 문화국가 아닌가.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의 구들, 신라의 온기를 전하다 - 하동 칠불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의 구들, 신라의 온기를 전하다 - 하동 칠불사

    # 천년의 온돌, 아자방(亞字房) 이야기 가득한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來自金官築亞房) ’ 봄 향기 가득 머금은 지리산이다. 동쪽 주능선 산행코스인 명선봉, 형제봉, 덕평봉을 허위허위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얌전한 토끼봉(1,534m)에 닿는다. 바로 이 토끼봉 자락을 잡고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반야봉 남쪽 해발 약 800m 지점에 천년 고찰이 등장한다. 불현듯이. 허투루 볼 절집이 아니다. 천년 세월의 온기(溫氣)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들방이 있는 절이다. 천년 온돌, 아자방(亞字房) 이야기가 전해지는 지리산 칠불사(七佛寺)다.당연히, 유명 사찰에는 회자되는 전설이나 설화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즉 일상의 바쁜 삶에도 ‘불구하고’ 시간 내어 굳이 찾아올 만한 이유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지리산 칠불사는 언제든 얼굴 한 번 내밀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절임은 분명하다. 칠불사의 창건 스토리부터 예사롭지 않다. 삼국 시대 초기 김해 지방에 존재하였던 가야(伽倻) 일명 가락국(駕洛國)의 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모두 성불하였다고 하여 일곱 ‘칠(七)’, 부처 ‘불(佛)’을 써서 이름 지은 절이 칠불사다.<삼국유사, 가락국기>나 <동국여지승람 하동기>에 따르면 서기 42년에 태어난 수로왕이 현재의 인도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5세기부터 있었던 태양왕조 아유다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아들여 10남 2녀를 두었다고 한다. 이 중 큰 아들 거등(巨登)은 왕위를 계승했고 차남과 삼남은 김해 허(許)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 왕자가 이 곳에서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하니 칠불사를 방문한 김해 김씨(金氏), 김해 허씨(許氏) 성을 쓰는 방문객들은 급히 옷깃부터 여민다. 콘텐츠의 힘이다.또한 칠불사는 흔히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라고 알려진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보다 270년 더 빨리 인도에서 배를 타고 불교가 직접 전래했다는 이른바 ‘남방전래설’을 지지하는 가야불교의 시원인 곳이기도 하다. #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 남방전래설,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빗점골여기에 더해 칠불사에는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 시절 구들도사라 불렸던 ‘담공선사’가 직접 축조한 아자방(亞字房)의 흔적이 전해 내려온다. 방의 모양이 ‘아(亞)’자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아자방(亞字房)으로 불리는 데 한 번 불을 지피면 온돌 고래 사이로 열기를 100일 동안 간직하였다고 한다. 칠불사에서는 바로 이곳을 한겨울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는 선방으로 사용한다. 아자방(亞字房)에서 참선공부를 할 때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늘 앉아만 있고 눕지 않는 것), 일종식(一種食, 하루 한 끼만 먹는 것), 묵언(言, 말하지 않는 것)의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현재 이곳은 국가문화재 승격을 위한 중수 공사를 하고 있다.동국제일선원으로 불리는 칠불사 역시 많은 퇴락과 중수를 거듭했다. 특히 6·25전쟁을 거치면서 전소된 사찰을 전 쌍계사 승가대학장인 제월당 통광(1940~2013) 대선사의 힘으로 1978년부터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대웅전, 아자방, 운상선원, 설선당, 보설루, 원음각, 요사, 영지, 일주문 등은 완전 복원 중창하여 신라 시대의 향기 가득한 선원으로 탈바꿈하였다. <지리산 칠불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만약 김해 김씨나 김해 허씨라면, 지리산 토끼봉을 지나는 일이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 3. 가는 방법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길 528- 하동터미널 → 화개터미널 첫차 7:55 막차 20:30 수시 운행. 4. 감탄하는 점은? - 칠불사까지 가는 지리산의 풍광들, 눈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산자락 풍경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지리산 깊은 곳에 있다 보니 방문객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 6. 꼭 봐야 할 장소는? - 아자방(亞字房), 대웅전, 영지 연못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칠불사 올라오기 전에 화개장터에서 가벼이. 산이 깊다보니 사찰 주변에는 상업시설이 없다.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chilbul.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청학동, 최참판댁, 화계장터, 섬진강, 삼성궁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칠불사는 1948년 '여수, 순천 10.19사건' 당시 여순 병력과 군경 토벌대가 최후 충돌한 곳으로 국군의 소개(疏開)처리로 인하여 전소되었다.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 바로 칠불사 위쪽 빗점골이다.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창신동의 재발견’ 편이 지난 11일 창신 1·2·3동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울타리의 삶’ 한울삶에서 투어를 시작했다.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 뒤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에서 ‘봉제의 모든 것’을 관람했다. 가수 김광석이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살았던 집에는 부친 김수영씨의 국가유공자 명패와 김광석의 창신동 시절을 기리는 바닥 동판이 붙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요화’ 배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비석이 남아 있는 대한불교 원효종 총본산 안양암~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1956년에 지어진 석조 고딕양식의 전형 동신교회~순댓국집으로 변한 화가 박수근의 화실 겸 집터~한때 ‘연예인아파트’로 주가를 올렸던 동대문아파트를 2시간 30분 동안 돌았다. 어린 시절을 창신동에서 보낸 고교 역사교사 출신 엄태호 해설사가 창신동 설화를 깊고 차분하게 들려줬다.동대문이 곧 창신동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대문은 동대문 안쪽 마을이 아니라 동대문 밖 마을을 일컫는다. 길 이름도 동대문 안은 종로고, 문밖은 왕산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은 길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새문안(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운종가(종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종로의 시전, 서소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인 배오개(이현)시장과 이 전통을 이은 광장시장도 성 안에 있었다. 현재의 동대문시장은 동대문 바깥 창신동을 주 무대로 한 신흥 시장이다. 본래 동대문 밖 10리(성저십리)는 서울을 지키는 훈련도감 소속 하급 군인과 가족의 거주지였기에 이들이 재배하는 야채류가 상거래의 중심 물품이었다. 1905년 설립된 광장시장이 최고의 포목상가로 발돋움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창신동 지역의 공간과 취급품목의 변화를 가져왔다.창신동은 도성의 동쪽에서 도성 안으로 진입하는 문밖 동네였다. 성저(城底)란 성 밖 10리에 이르는 지역이지만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의 행정구역 안에 포함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을 이른다. 서울의 좌청룡(左靑龍) 낙산을 따라 형성된 유서 깊은 동네다. 도성~강원도~함경도를 오가는 길목이어서 고려시대 서울이 남경(南京)일 때부터 번성했다. 창신동은 조선시대 인창방의 ‘창’자와 숭신방의 ‘신’자를 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급조된 지명이다. 이웃 숭인동 또한 숭신방의 ‘숭’자와 인창방의 ‘인’자를 따서 만들었다. 창신동은 인창방이고, 숭인동은 숭신방인데 교묘하게 순서만 바꿔치기했을 뿐이다.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려고 장난질을 했지만 지명의 원상회복은 요원하다. 행정구역상 동대문구 창신동이었다가 1975년 종로구에 편입됐다. 낙산 아래에는 종로구 이화동과 동숭동, 성북구 보문동과 삼선동, 동대문구 신설동 등 3개 구청 관할지역이 맞물려 있다.창신동은 예로부터 ‘돌산’ 낙산의 기운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 찾아든 권세가의 별서가 들어선 한가로운 지역이었다. 창신초등학교 남쪽 창신1동 82번지쯤에는 동지(東池)라고 불린 사대문 밖 4개 연못 중 하나가 있어서 정자동이라고 불렸다. 사색붕당이 각축하던 시절 동지의 연꽃이 많이 피면 동인이 득세하고, 천연동 서지 연꽃이 많이 피면 서인이 득세한다고 해 양당이 서로 연꽃을 뭉개거나 연못을 메우던 시절도 있었다. 창신1동 128 창신초등학교는 불교계가 도심포교를 위해 지은 원흥사의 옛 터다. 조계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조선불교의 총본산이었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 부근에 있던 청룡정은 한량들의 활터였다. 창신동 202번지에는 실학자 이수광이 ‘비를 피하면서 청렴하게 살고자’한 비우당이 있다. 창신3동 7번지에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일화가 깃든 자지동천 우물이 있어서 이웃 숭인동의 동망봉, 정업사지, 여인시장과 어울려 순애보를 이루고 있다. 창신2동 옛 궁골 어림은 봉숭아와 앵두 등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아서 홍숫골 또는 홍수동(紅樹洞)이라고 불렸다.낙산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여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됐다. 창신3동 서일국제경영고등학교 근방 당고개(당현) 바로 위 큰 바위에는 마을의 수호신 낙산신령을 모시는 도당(都堂)이 있었다. 조선 말 점술가 200여호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총독부건물 신축용 돌을 떼어가는 바람에 미아리고개로 옮겨 갔다고 한다. 창신동은 2개 사립대학교와 최초의 민간 여학교 창립의 터이기도 했다. 창신초등학교가 있는 원흥사지에는 동국대의 전신 명진학교가 처음 자리잡았고, 1932년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이 창신동에서 학교를 키웠다. 이후 1938년 흑석동에 교사를 신축해 중앙대로 발전시켰다. 창신1동 225번지 현재의 종로구민회관 일대는 1933년 설립된 최초의 민간 설립 여학교 동덕여중고가 방배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교사였다. 1898년 개설된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간 전차가 창신동을 지나가면서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이 틈입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귀국동포, 사대문 안 철거민까지 몰리면서 도심 인접 달동네로 변모했다. 일제강점기 성벽 아래 토막촌이 해방 이후 판잣집과 도시형 한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916년부터 8년 동안 낙산 돌산에서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서울시청) 신축용 석재 채취가 본격화되면서 창신동은 피폐해졌다. 채석장 낙석사고가 빈번했고, 강도와 살인 사건은 물론 화재가 자주 발생해 치안위험지대의 오명을 뒤집어썼다.어쩌다가 창신동에 ‘봉제 DNA’가 깃들게 됐을까. 1958년부터 청계천 상류가 복개되면서 1961년 평화시장이 설립된 게 결정타였다. 동대문의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대화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평화시장 일대 의류생산 공장들이 대거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지대가 형성됐다. 공장과 주거지, 소비시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특이한 공간이 자리잡은 것이다. 무허가 판잣집이 도시형 한옥으로 바뀌고, 채석장 자리에 창신시영아파트 3동이 세워졌다. 1964년부터 1969년 사이에 동대문스케이트장과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상가아파트, 낙산시민아파트가 차례로 건립되면서 면모를 일신했다. 1971년 동대문종합시장, 동화시장이 설립되고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봉제노동력이 주거지로 쏟아지고, 주거지 내 봉제공장이 확산됐으며 창신동에 봉제인력시장이 생긴 것도 역할을 했다. 이처럼 창신동은 1960~70년대 서울의 도시산업화 과정에서 봉제공장 지대화했다. 동양 최대 규모의 패션산업이 동대문 일대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배후지대인 창신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동대문을 밝히는 보석은 골목골목에 숨어 있다. 동대문시장의 원단이 오토바이에 실려 창신동에 도착하면 옷의 본을 만드는 패턴작업장에서 재단·재봉을 거쳐 안감·주머니·단추를 다는 ‘마도메’, 다림질·포장 등 완성과정의 ‘시아게’를 마치면 옷이 완성된다. 3000여개의 작은 공장들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인 양 움직인다. 의류의 기획과 생산, 유통과 판매가 원스톱으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최신 유행의 옷 한 벌이 하루 안에 뚝딱 탄생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완제품은 오토바이를 타고 의류쇼핑의 메카 동대문시장으로 옮겨져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 옷에는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옷의 고향이 창신동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포토] ‘머슬퀸’ 최설화, 속옷 모델로 변신

    [포토] ‘머슬퀸’ 최설화, 속옷 모델로 변신

    피트니스 모델 최설화가 지난 12일 SNS를 통해 속옷 화보를 공개했다. 이날 최설화는 “난 속옷모델이다”라며 “기분 좋다. 앞으로 모델로써 몸매 관리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전처럼 근육 많이 생기도록 안 하고 어느 정도의 지방과 탄력으로 관리를 해볼 것”이이라고 설명했다. 최설화는 그러면서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고 그냥 멋있게 봐 달라. 보디도 노력으로 만들고 있고 이런 모델이 되기까지의 노력도 있으니 예쁜 마음으로 봐달라”라며 “노력의 결과물들이라서 내게는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설화는 머슬마니아 3관왕 출신으로 이름을 알렸다. 사진=최설화 SNS
  • 허석 순천시장, ‘新 우리는 일꾼’ 출간

    허석 순천시장, ‘新 우리는 일꾼’ 출간

    공무원이든 민간인이든 우리 사회의 모든 조직에는 중심 역할을 하는 간부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사고방식과 판단력, 추진력에 따라 그 집단의 성공 여부는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시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간부들이다면 그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허석 순천시장이 최근 이같은 간부들의 중요성을 다룬 책을 발간해 관심을 끌고 있다. 21세기 간부 혁신을 위한 제언인 ‘新 우리는 일꾼’. A4용지 크기에 227쪽 분량이다. 허 시장이 1994년 노동단체와 학생회 집행부를 대상으로 썼던 ‘우리는 일꾼’이라는 책을 25년의 변화를 담아 모든 조직의 간부들에게 맞게 새롭게 펴냈다. ‘우리는 일꾼’은 그 당시 한총련과 노동조합 간부들의 필독서였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허 시장은 “사회가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만큼 간부에게 요구되는 자세도 예전과는 다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간부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며 “크고 작은 조직의 간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출판 배경을 설명했다. 간부의 관점, 조직관리, 자세 등 3개 장에 36가지 소주제를 다뤘다. 행정관료를 독자층으로 삼은 느낌이어서 딱딱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공장 근로자의 애환을 겪은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을 글로 녹여내 오히려 따뜻한 마음이 와닿게 한다. 2015년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언론발전) 대상을 받고, ‘문학광장’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하는 등 10여권의 책을 출판한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논리와 감성이 적절하게 섞여있어 술술 읽힌다. 그는 우선 ‘혁신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간부는 먼저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살아진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수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살아지는 것이고, 능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는 사람은 적극적인 변화의 의지를 갖게되고, 변화의 의지가 쇠퇴한 사람들은 주변은 물론 자신마저 사라지고 만다. 나는 지금 살아가는 것인가 살아지는 것인가‘ 그는 또 간부가 갖춰야 할 자세로 자기중심적 사고 배제, 창조적 파괴, 인내심, 헌신성, 실천, 나눔의 미학 등을 강조한다. 허 시장은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조직에 충실하는 것이고, 자신의 생활을 혁신하는 것이 조직을 혁신하는 출발점이라는 명제를 새삼 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책은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간부가 개인주의에 대처하지 못하면 큰 폐해가 온다”며 “한 번 흐트러진 조직을 다시 복원하기란 쉽지 않은 만큼 조직 활성화를 위해 스스로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허 시장은 “지난 1월에 전남의 설화와 인물을 펴낸 데 이어 다시 책을 내니까 바쁜 와중에 언제 책을 썼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선거 전에 써두었던 책들이다”고 미소를 지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나경원 이번엔 “문빠” “달창”… 또 설화

    나경원 이번엔 “문빠” “달창”… 또 설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저급하게 비하하는 단어인 ‘달창’을 언급해 비판이 일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 3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가 국론을 분열했다”고 발언해 설화를 일으킨 바 있다. 나 원내대표는 대구에서 열린 한국당 장외집회 연설에서 9일 있었던 문 대통령의 방송 인터뷰를 언급하며 “KBS 기자가 (독재에 대해) 물었더니 ‘문빠’, ‘달창’ 이런 사람들한테 공격당하는 것 아시죠. 대통령한테 독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지도 못합니까”라고 했다. ‘달창’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자칭하는 ‘달빛 기사단’이라는 단어를 극우성향 사이트에서 ‘달빛 창녀단’이라고 비꼬는 혐오 표현이다. 논란이 일자 나 원내대표는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썼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2일 “의미를 모르고 썼다면 사리분별력이 없는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체한 것이면 교활하기 그지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도 페이스북에 “(의미를) 모르고 쓴 게 더 한심한 일”이라고 힐난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