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설화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 장자
    2026-03-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808
  • 통념깬 영국의 청소년대책(사설)

    영국이 마련한 청소년범죄추방계획은 그 강력한 방법이 통념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놀랍다.17세이하 청소년들은 앞으로 밤9시 이후 외출이 금지되고 부모들은 통금령을 지킬 의무를 진다.학교를 무단 결석할 경우 부모는 1백50만원(1천파운드)의 벌금을 내게 된다.뿐만아니라 새 청소년법은 경찰과 사회복지사들에게 부모들의 의무이행을 감독토록 위임하고,법원에는 부모들의 문제자녀통제법 훈련과정 이수를 명할 권한을 부여한다. 문제청소년대책에 부모의 책임을 강조해온 것은 어느나라에서나 낯익은 일이다.그러나 이렇게 과격하게 강화된 요구를 법제화하는 것은 아마도 영국이 처음일 것이다.이점에서 이번 입법예고되는 안은 인상적일뿐 아니라 오늘의 가족구조와 가정의 양식에 근본적 반성의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산업사회에서 가족과 가정은 사실상 해체의 방향으로 진전돼왔다.60년대 후반 핵가족화가 확대됐고 70년대부터는 부모 모두가 직장을 갖는 형식으로 변화됐다.때문에 아이들은 집에 혼자 남아 TV를 친구로 자라났다.이때 아이들은 TV를통해 자신의 사회에 냉소적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다.폭력화·외설화를 통한 TV프로들의 상업적 경쟁이 어느 어른보다 성인사회를 더 잘 아는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이다.80년대 이후에는 더 강력한 매체 컴퓨터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이 등장했다.이들은 TV보다 더 자극적 메시지를 받으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 극단적으로 개별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영국 부모들은 이제 정보사회속에서 제일 먼저 당혹스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매체의 영향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처지에 인간사회의 가장 오래된 가치,가족과 가정의 윤리를 새롭게 책임지게 된 것이다.이율배반적 어려움이라고만 볼수도 없을것 같다.이 격변의 시대에 인간의 진정한 존재양식을 문명적으로 다시 정립하는 새 선택과정이라고 해야겠다.영국의 강경책은 세계에 제기하는 새 질문이다.
  • 인도 산치대탑(세계 문화유산 순례:44)

    ◎왕 향한 여인의 한 불탑으로 우뚝/사랑의 약속 망각 아쇼카왕 속죄불사… 높이 16.4m·지름 36.5m 인도 중부의 호반도시 보팔에서 북동쪽으로 70여㎞ 떨어진 작은 마을 산치.이곳은 부처님의 생애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인도에서 빼놓을수 없는 불교유적지 가운데 하나다.기원전 3세기 아쇼카 왕이 세운 거대한 스투파가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아쇼카 왕이 이곳에 불탑을 세운 것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회한에서 비롯됐다. ○보팔시서 북동쪽 70㎞ 아쇼카 왕은 태자 시절,산치에서 멀지않은 비디샤 지방에 사는 데비라는 처녀를 사랑했다.아쇼카는 왕이 되면 그 처녀와 결혼할 것을 약속하고 그곳을 떠났다.그러나 아쇼카는 왕위에 오른 뒤에도 인도통일 전쟁에 골몰한 나머지 지난날의 약속을 까맣게 잊었다.이 불행한 여인에게는 아쇼카와의 하룻밤 인연으로 얻은 마헨드라라는 아들이 있었다.온갖 수모속에 살던 여인은 인도의 통일전쟁이 끝나갈 무렵 자신의 신표를 아들에게 건네 주며 아쇼카 왕을 만나볼 것을 당부했다.아들은 마침내아쇼카 왕을 만났다.옛 약속을 떠올린 왕은 아들과 함께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 나섰다.하지만 그녀는 이미 유명을 달리한 처지였다.안타까움에 몸부림치던 아쇼카 왕은 아들의 소원대로 어머니의 유해 위에 불사리를 모신 스투파를 세우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한 여인의 한과 신심의 결정체인 산치 불탑은 이런 사연을 안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산치의 유적군을 처음 발견한 것은 1818년 영국 기병대의 테일러 장군이었다.그뒤 1912년 영국의 존 마샬 경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시작됐다.산치의 스투파는 기단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허물어진 상태였다.두 차례의 복원작업 끝에 현재의 모습을 얻게 되었다.스투파(stupa)란 ‘흙을 쌓아 올린 것’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솔탑파로 음역된다.스투파는 원래 부처님 사리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쌓아올려 만든 무덤을 뜻했다.그러나 그것은 차츰 예배의 대상 혹은 공덕을 쌓는 종교적 행위의 하나로 바뀌어 갔다.아쇼카 왕은 인도를 통일한 뒤 인도 전역에 탑을 세워 8등분해 모신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했다.그중의 하나가 바로 산치의 불탑이다. 산치에는 이러한 스투파가 8개나 있었지만 현재 전해지는 것은 3개뿐이다.규모가 가장 큰 제1스투파는 산치의 대표적인 불교유적이자 상징조형물이다.높이가 16.4m,지름이 36.5m로 산치대탑으로 불린다.나직한 언덕 위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그것은 마치 바리때를 엎어 놓은듯 둥그스름했다.탑은 전형적인 고대 스투파의 구조를 띠고 있다.원형의 기단 위에는 반구형의 탑신을 놓았으며 그 위에는 평두라고 불리는 난간 모양의 사각형 울타리를 담장처럼 둘렀다.맨 꼭대기에는 우산 모양의 덮개인 산개와 산간을 세워놓았다.그리고 기단과 탑신이 접하는 중턱에는 빙 둘러 길을 냈다.통로를 돌며 예배를 올릴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또 기단부 아래에는 돌로 만든 울타리와 동서남북 4개의 문을 두었다.토라나(torana)라고 하는 이 탑문에는 양쪽 기둥을 연결하는 세 개의 대들보가 가로질러져 있어 색다른 느낌을 줬다. ○1818년 영 장군이 발견 산치 불탑에서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탑문과 들보 표면에 새겨진 온갖 형상의 부조물이었다.부처님의 일대기와 전생설화인 ‘자타카’,아쇼카 왕의 행적 등을 주로 표현했다.부처님의 전생담을 형상화한 것이 그중에서도 주류를 이뤘다.특히 부처님이 전생에 행한 갖은 인욕행을 새긴 부조는 광대무변한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산치 불탑이 세워질 무렵은 불교미술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무불상시대였다.그런 만큼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됐다.부처님의 모습을 직접 묘사하지 못하고 고도의 상징과 은유로 에둘러 표현한 것은 그 때문이다.연꽃과 흰 코끼리는 부처님의 탄생,보리수는 깨달음,법륜은 출세간의 가르침,불적은 부처님의 임재,그리고 탑은 열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용됐다. 산치의 유적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각각 다른 양식의 조각풍을 엿볼 수 있다.그 한 예로 제1스투파 남문 바깥쪽에 있는 아쇼카 왕의 돌기둥은 당시 유행하던 인도 마우리아 왕조풍의 양식과는 사뭇 다르다.그것은 차라리 이란의 아케미니안 미술 성향에 더 가깝다.북인도를 중심으로 인도 각지에 남아있는 아쇼카 돌기둥은 불교성지의 소재를 나타낼 뿐 아니라 성지 순례객들의 길잡이 구실도 했다.그 아쇼카 돌기둥은 오늘날 인도인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조형물이다.맨 꼭대기의 사자상이 인도의 국장으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단한 상징물인 셈이다.한편 산치대탑의 문위에는 불자를 든 야크샤,곧 야차를 세웠다.이는 부처님 형상을 표현한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초기 마투라 미술에서는 부처님의 형상을 이처럼 야크샤 등의 모습을 빌어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부처님 일대기 부조물 새겨 산치에는 산치대탑 외에 두 개의 탑이 더 있다.1번 스투파에서 북동쪽으로 45m쯤 걸으면 제3스투파가 순례자들을 맞는다.기원전 2세기 경에 세워진 이 스투파는 지름이 15m,높이가 8m 조금 넘는 아담한 탑이다.이 탑은 1851년 부처님의 두 큰 제자인 사리푸트라와 모드갈랴야나의 유골이 발견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이들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스리랑카 스님들은 스투파 바로 옆에 자그마한 사원을 지었다.산치 언덕에서 서쪽으로 500m 밖에는제2스투파가 있다.기원전 2세기에 조성된 이 탑은 다른 스투파에 비해 그 만듦새가 무척이나 원시적이었다.하지만 가지각색의 동물과 꽃,사람의 형상이 어우러진 원형 돋을 새김에서는 옛 인도인들의 충일한 생명력과 상상력이 그대로 묻어 났다.
  • 전신재 교수 ‘원본 김유정 전집’ 보정판 발간

    ◎60주기에 되돌아보는 유정의 문학/영서민요·설화 등 바탕/구비문학적 성격 조명/순박한 인물묘사 특징 “삶의 현장을 그대로 포착해 재현하는 유정 소설의 언어는 유정의 언어라기 보다는 민족심성의 언어다.신들린 무당이 무아의 경지에서 쏟아내는 공수가 무당의 언어가 아니라 신의 언어이듯 신명이 올라 무아의 경지에서 써내려간 유정의 소설은 유정의 언어가 아니라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의 언어이다” 한림대 국문과 전신재 교수(58)가 29살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작가 김유정의 60주기를 맞아 ‘원본 김유정 전집’(강)을 펴냈다.10년전 한림대출판부에서 낸 같은 이름의 책의 보정판이다.원전 출판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김유정 문학의 구비문학적 성격과 구연체에 가까운 소설언어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유정 소설의 목소리는 그것이 푸짐한 욕설이건 발랄한 우스갯소리이건간에 생생하게 우리 귀에 와 닿는다.그 한 예로 유정의 소설을 보면 ‘홍천인가 어디 즈 성님안터로’(‘만무방’)라는 대목이 나온다.국어문법대로 라면 ‘형님한테로’가맞는 말이지만 강원도 지방의 노인들은 지금도 ‘성님안터로’라고 말한다.강원도 춘성에서 태어난 유정은 이처럼 발화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소설속에 재현한다.유정은 말을 살리고,사전은 말을 죽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영서지방의 설화와 민요 등을 낱낱이 살펴 김유정 소설언어의 진실성을 규명한다.‘동백꽃’에 나오는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움새’가 바로 생강냄새임을 아는 독자는 얼마나 될까.동백꽃이 생강나무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면 의문은 쉽게 풀린다.한편 ‘동백꽃’의 점순이나 ‘산골’의 이뿐이가 아끼던 동백꽃은 ‘라 트라비아타’의 마르그리트가 사랑하던 빨간 동백꽃이 아니다.김유정의 동백꽃은 늦봄에 피는 붉은 꽃이 아니라 초봄에 잎이 돋기 전에 먼저 피는 노란 색의 생강나무 꽃이다.〈거지반 집께 다 나려와서 나는 호들기소리를 듣고 발이 딱 멈추었다.산기슭에 늘려있는 굵은 바윗돌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허니 깔리었다〉(‘동백꽃’중에서) 노란 동백꽃은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를 마라 산골의 큰애기 몸골 난다’의 경우처럼 우리나라의 민요,특히 강원도 지방의 아라리에 자주 등장한다는게 전교수의 설명이다. 김유정 소설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특징으로 전교수는 뿌리뽑힌 인간들의 빈궁한 생활상,무기력한 남성과 생활력이 강한 여성,살기 위한 매춘,순박한 인간성,원점회귀의 구성 등을 꼽는다.절박한 한계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매춘할 수 밖에 없는 모티프는 ‘산ㅅ골나그네’ ‘솟’ ‘만무방’ ‘가을’ ‘정조’ 등 많은 작품에서 나타난다. 유정의 소설은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심상의 원형이 그대로 살아있다.일제 강점기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는 ‘동백꽃’이나 ‘봄 봄’ 등의 작품은 그 현저한 예이다.궁핍한 농촌을 무대로 삼고 있지만 어리석을 정도로 순박한 인물묘사는 한국적 해학의 정신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전교수는 “유정의 소설은 폐허위의 꽃처럼 수풀속에 나뒹군 동안의 돌부처의 표정처럼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 트로이의 여인들·암로디 영웅담/세계연극제 화제 2선

    ◎트로이의 여인들­‘절망의 끝’을 보여주는 비극적 오페라/암로디 영웅담­‘아이슬랜드판 햄릿’… 독특한 구성 돋보여 ▷트로이의 여인들◁ 보편적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세계적 실험연극단체인 뉴욕 라마마극단과 서울예전 출신 연극인들로 구성된 드라마센터가 합동으로 제작한 한미 합작품으로 21일까지 서울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지난 74년 미국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여러나라를 돌며 공연해온 라마마극단의 대표적 레퍼토리. 기원전 415년 아테네에서 초연된 ‘트로이의 여인들’은 오늘날 전해지는 그리스비극 20여편 가운데 가장 절망적이며 처절한 작품으로 꼽힌다.인간의 절망의 끝을 보여주는 철저한 비극의 서사적 오페라. 10년동안의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하자 왕비 헤카베를 비롯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노예가 돼 그리스로 끌려간다.헤카베는 자신이 가장 증오했던 사람의 노예로 전락한데다 손자마저 죽임을 당하자 트로이를 태우고 있는 불길에 몸을 던진다.그러나 신들의 방해로 자살에 실패,다른 여인들과 함께 그리스로끌려가 강간등 온갖 치욕을 겪는다.이런 극한의 절망뒤에 찾아오는 평화.그리스인들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트로이 정신을 무기로 트로이의 여인들은 새로운 트로이 문명을 펼쳐 나간다. 23년전 초연때의 연출자인 루마니아 출신 안드레이 세르반이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출연배우는 미국 한국 캐나다 이탈리아 터어키 중국 일본 등의 21명.특히 고 김소희 명창의 딸인 국악인 박윤초씨가 비극의 주인공 헤카베를 맡는다. 평일 하오7시30분,토 7시30분,일·공 3시·6시(15,16일 쉼).문의 752­3229. ▷암로디 영웅담◁ 중세문학에서 주제를 택하고 고대의 연극 원전에서 내용을 택해 이 둘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슬랜드 반다멘극단의 대표적 작품.이번 세계연극제 공식초청작으로 11∼13일 서울 문화일보홀에서 공연한다. ‘암로디 영웅담’은 유럽에 널리 알려진 설화인 암로디 왕자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 일종의 ‘아이슬랜드판 햄릿’. 삼촌이 아버지로부터 왕권을 탈취하고 왕비인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자 암로디 왕자는고뇌속에서 새 왕인 삼촌을 살해한다는 이야기로 햄릿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삼촌을 살해한 암로디 왕자의 삶은 위험에 처하게 되고 생존을 위해 광인의 탈을 쓰게 된다. 유럽 언론으로부터 ‘랩 바이킹’이라는 별명을 얻은 반다멘 극단은 이번 공연에서 이처럼 진지한 주제를 다소 익살스럽고 그로테스크한 표현으로 선보인다.우선 작품의 시대배경이 700여년 전이지만 랩음악 등 젊은 취향의 요소들을 적절히 혼합하고 있다. 구성도 독특하다.내용상의 무거움과는 관계없이 20개의 짤막한 장면으로 구성,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아이슬랜드와 북유럽 여러 나라의 텔레비전과 영화분야에서 60여편의 작품을 연출한 바 있는 스베인 아이나르손이 연출을 맡았다. 11일 하오7시30분,12∼13일 4시30분·7시30분.
  • 소크라테스 최후의 13일/모리모토 데츠로 지음(화제의 책)

    ◎사형선고후 독배받기까지 사색 소설화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은뒤 독배를 받고 죽기까지 13일 동안의 사색을 소설적으로 재구성.소크라테스 사상의 기본주제인 ‘혼’‘무지의 지’‘상기설’ 등을 대화·사색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핀다.또한 아테네의 도시풍경과 아고라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생활 등을 상세히 묘사,고대 그리스의 시대상과 아테네라는 폴리스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인간성에 관해 설명한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에 관한 추억’,젊은 날의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다룬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독배를 받던 그 날의 일들을 속속들이 그린 ‘파이돈’ 등을 참고자료로 삼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사색을 거듭했다.“테세우스의 제사가 끝난뒤 델로스 섬에서 배가 귀항하면 나는 죽는다.우연치고는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나의 운명은 신탁이 예언하고 있다.나는 오로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가명하는 대로 행동해왔다” 소크라테스는 운명의 힘은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믿었다.그는 또한 혼의 불멸을 믿으면서도 윤회와 전생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자신의 박약한 사고력을 애석해했다.소크라테스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삶의 연구’’사무라이 마인드’ 등의 저서를 낸 지은이는 소크라테스가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선 최초의 철학자였다는 점,즉 ‘죽음의 현자’였다는데서 그 단서를 찾는다.양억관 옮김 푸른숲 7천800원.
  • 일 침략역사 교과서기술 규제 완화/일‘역사교과서 검정 판결’의미

    ◎양심있는 학자의 32녀 끈질긴 투쟁 결실/종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실 왜곡 여전 일본의 과거사 기술에 대한 문부성의 검정제도를 둘러싸고 32년간 계속된 ‘교과서 소송’이 29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재판부는 교과서 검정이 합헌이라고 인정했지만 양심있는 역사학자의 끈질긴 투쟁은 검정제도와 역사교육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교과서 소송의 역사는 지난 65년 6월부터 시작됐다.이에나가 사부로(가영삼랑·83) 당시 도쿄교육대 교수가 그의 고교 역사교과서 ‘신일본사’내용이 문부성에 의해 변경·삭제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그것이 1차소송이다.그는 66년 그의 교과서가 문부성에 의해 불합격 판정을 받자 67년 제2차 소송을 제기했다.그는 1,2심에서 부분적으로 원고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3심에서는 모두 패소했다. 최고 재판소가 이날 최종판결을 내린 3차 소송은 84년1월 제기됐다.이에 나가 전 교수가 과거 일제가 저지른 ‘침략’전쟁을 문부성이 ‘무력진출’로 기술할 것을 요구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문부성의 이러한 요구는 당시 한국·중국 등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한·일간 교과서 파동’으로 바화됐었다. 재판부는 3차소송 최종심에서 731부대 기술과 관련,“731부대가 생체실험을 하고 다수의 중국인 등을 살해했다는 내용은 검정당시 학계에서 정설화됐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문부성이 731부대 기술의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는 합헌이라고 인정했다.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에 관한 교과서기술을 정부가 검정하는 행위는 합헌으로 최종 판정난 것이다.그러나 이에나가 전 교수의 ‘교과서 소송’은 검정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문부성은 검정제도를 크게 개편했다.문부성은 지난 77년 일방통행식 규제에서 벗어나 교과서 저자의 반론권을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교과서 합격여부 판정권한도 문부성에서 문부장관 자문기관인 ‘교과서 검정 조사심의회’로 넘어갔다. 교과서에는 ‘침략’이라는 표현도 사용되게 됐고 내년도에 사용될 10종류의 모든 고교교과서에는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도 실린다. 그러나 일본교과서는 여전히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문부성이 지난 6월 발표한 고교교과서 검정결과에 따르면 종군위안부 숫자,강제연행 문제,전후보상 등에 관한 기술이 여전히 삭제·수정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우익세력들은 한발 더나아가 전쟁범죄를 교과서에 싣는 것은 ‘자학사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그들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러한 움직임은 최근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양심있는 역사학자의 끈질긴 노력으로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가 바뀌었지만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일본 현실이다.
  • 태양 숭배 오로촌·에벤키족(흑룡강 7천리:3)

    ◎모든 신상에 태양 그려 정성숭배/“황구가 해 삼켜 개기일식” 우리설화와 흡사 흑룡강성 막하현 막하향 북극촌에는 1988년에 세운 중국과학원 지구물리연구소 산하의 막하지자대가 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밀밭 한 가운데 자리한 막하지자대에는 태양 에너지 전지판으로 작동하는 지자감측기가 설치되었다.2층 건물아래 지하에 설치한 지자감측기는 지구 자기마당(자장)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기록하는 기능을 지녔다.이 기록은 유도탄이나 인공위성 발사자료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개기일식 ‘장관’ 그런데 올해 천체관측을 하는 바람에 막하지자대는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지난 3월9일 개기일식을 바로 이 지자대에서 관측했던 것이다.그리고 중국국영 텔레비전인 CCTV ‘막하의 천상기관’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생중계하여 1억2천만명이 동시에 시청했다.여간해서 만나기 어려운 우주쇼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중국은 물론 한국,미국,일본,독일,이탈리아 등지의 천문학자들이 막하로 몰려들었다. 올해 개기일식은 20세기에 나타난 6차례 개기일식중 마지막 일전식이라서 관심이 대단했다.더구나 막하지역은 개기일식을 가장 잘 볼수 있는 최적의 관측지라는 소문이 나 막하는 관광특수까지 누렸던 것이다.이에 따라 하얼빈철도 국제여행사는 관광객을 위해 3편의 전세열차를 운영했다.막하지자대가 위치한 북극촌은 일반인 통제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한 막하시는 시내에 임시관측소까지 세울 정도였다. 그 기개일식은 3월9일 상오8시44분 러시아 비스크 남쪽과 중국 신강성 일타이 북쪽에서 시작되었다.그리고 몽골을 지나 상오 9시8분 막하 상공에 들어선 개기일식은 동시베리아를 거쳐 북빙양에서 끝났다.300∼400㎞에 걸친 일식띠가 지나는 지역은 대부분 산이 아니면 황막한 들판이나 사막이었다.그래서 교통편과 숙박시설 등을 어느정도 갖춘 막하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개기일식은 중국 CCTV가 막하현 북극촌에서 생방송으로 내보냈다.해가 몽땅 자취를 감추어 북극촌 일대에 어둠이 깔린 시간은 정확히 상오9시7분40초대였다.그 순간이 지나자 태양 왼쪽 변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몇개의 점이 나타났다.빛나는 보석을 방불케 한 이들 점은 천문학에서 말하는 벨리구슬이다.몇초가 지나자 벨리구슬이 사라지고 달 그림자에 가린 태양에서 빛안개가 쏟아졌다. ○국영 CCTV서 생중계 중국의 TV와 신문들은 개기일식이 오기 1개월전부터 보도에 열을 올렸다.이는 계몽차원의 보도였는데,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그만큼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 것이다.흑룡강유역의 원주민의 하나인 오로촌족(Orochon·악륜춘족)은 이번 개기일식때도 한 차례 소동을 벌였다.이들은 예부터 일식은 누렁개 황구가 해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태양을 숭배하는 오로촌족은 대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흑룡강성 치치할시 민족사범학교 교원이자 오로촌족인 황대영씨(39)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민족에게 태양은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그래서 신상에는 모두 태양을 그려 넣었습니다.두 사람이 싸움을 하다가도 해를 향해 시시비비를 가려달라 할 정도니까요….지난 3월9일 일식이 있던 날에는 머리에 소래기를 뒤집어 쓰고나수로 두들기고 다녔습니다.태양신을 더럽히지 말고 어서 해를 토하라는 뜻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태양숭배는 에벤키족(Evenki·악온극족)도 마찬가지다.태양이 옥황상제의 딸이라는 설화를 지닌 에벤키족 노인들은 지금도 시간을 태양과 별에 의존하고 있다.날이 밝는 시점부터 새벽,아침,점심,저녁으로 낮을 네 등분하는 관습을 지켰다.또 밤은 삼성이 나타날 때를 기준으로 초저녁,밤중,새벽으로 구분했다.동·서·남·북의 방위 역시 해를 따라 결정한 에벤키족들은 해가 머문 방향을 보고 사냥감을 찾았다.해가 정남에 있을 때는 노루를,해가 솟을 무렵에는 말사슴을 잡는 시간으로 여겼다. 달을 기억하는 방법은 달이 졌다가 조각달로 나타나 다시 만월로 커지는 달모양에 두었다.우리 민족처럼 월력을 따른 이들은 지금도 월력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흑룡강유역의 사람들에게서 우리 민족과 흡사한 심성을 읽었다.조선족 역시 일식은 개가 해를 삼킨다는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혜성을 재성으로 보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월력문화권의 전통도 다 버리지는 않았다.그러고 보면 오로촌족과 에벤키족은 우리 민족이 차츰 잃어가는 상고의 심성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것이다.
  • 도서출판 박이정 ‘광한루기 역주 연구’ 펴내

    ◎한문본 ‘춘향전’ 알기쉽게 풀이/19세기 조선 식자층 세계관 대변/속본과는 판이한 ‘사실주의 작품’ 〈홍로주를 따른 술잔으로 약속을 하고,녹기금을 연주하며 정을 보낸다〉 조항이라는 19세기의 한 선비가 지었다는 한문본 춘향전 ‘광한루기’의 한 대목이다.그러나 시정넘치는 이런 글줄은 널리 읽히지 못했다.난해한 한문으로 씌어졌기 때문이다.최근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펴낸 ‘광한루기 역주 연구’(성현경 등 지음)는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광한루기’의 원문을 알기 쉽게 풀이한 완역·주석본으로 관심을 모은다.특히 이 작품은 19세기 우리 소설의 창작·비평수준을 가늠하게 해줄뿐 아니라,조선조 식자층의 ‘춘향전’ 또는 ‘춘향가’에 대한 시각을 엿보게 해 자료적 가치를 더해준다. ‘광한루기’는 귀족주의적이고 공식문화적인 세계관을 토대로,한 개인이 창작한 작품이다.그런 점에서 ‘광한루기’는 민중해학적이고 비공식문화적인 세계관 내지 의식에 기반을 둔,창우들에 의해 주로 전승되어온 속본 ‘춘향전’과는 성격을 달리 한다.속본들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광한루기’는 철저하게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다.때문에 이 ‘광한루기’에는 속본 ‘춘향전’에서처럼 물질과 육체의 원리,격하의 원리,유쾌한 상대성의 원리,과장의 원리,다양성의 원리 등이 개입되거나 작용할 여지가 없다. ‘광한루기’는 절대가인 춘향과 풍류재자 이도린간의 사랑이야기다.아름답고 신의있는 사랑을 한 폭의 은근한 춘화도처럼 핍진하게 담아낸다.그러나 천민에 속하는 관비기녀 출신인 춘향이 양반신분의 이도령 또는 이생의 정실이 되는 것은 당시의 제도,곧 공식 문화질서 속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광한루기’는 작자의 동료인 운림초객과 소엄주인이 쓴 산문과 평비,협주 등이 담긴 소설비평론이기도 하다.이들은 광대들이 연행해온 판소리 ‘춘향가’나 그것을 소설화한 소설 ‘춘향전’을 사리에 맞지 않는 형편없는 작품으로 보았다.이와 관련,성현경 교수(서강대 국문과)는 “‘광한루기’의 작자나 평비자가 속본 ‘춘향전’의 구조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못하고 일방적으로 폄하한 것은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 주유소서 농산물 팝니다/LG정유 매장 10곳 설치

    ◎계절별 지역특산물 판매 올 추석에는 주유소에서 농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LG칼텍스정유는 26일 충북도내 국도변의 계열 주유소 10곳에 ‘우리고장 농특산물 판매장’을 설치,운영에 들어갔다.또 연말까지 매장수를 전국 300곳의 계열 주유소로 확대하는 한편 개설시기도 일단 추석과 가을 단풍 행락철로 하되 성과가 좋으면 상설화할 방침이다. 농특산물 판매장은 4∼5평 규모로 해당 지역 특산물을 주로 취급하면서 계절에 따라 수박 포도 배 옥수수 호박 등도 함께 판매할 예정이다.
  • 꽃제비·희망새·멍멍이/북 사회 식량난 빚댄 은어 유행

    ◎꽃제비­먹을것 찾아 떠돌아 다니는 어린이/희망새­가족위해 양식 구하러 떠나는 여성/멍멍이­공장 가동안돼 집안에만 있는 가장 꽃제비·희망새·행복조·멍멍이….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은어들이다.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먹을 거리를 찾아 정처없이 유랑하는 삶의 몸부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같아 듣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꽃제비는 ‘소년 소매치기’를 지칭하는 은어.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유랑하는 어린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적게는 3∼5명,많게는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게 보통이다.그러나 배를 제대로 채울수 없는 꽃제비들은 장마당에서 한푼두푼 모으는 여인들의 좌판을 강탈하거나 국경해관 등에서 조선족 무역일꾼들의 트럭에 실린 약재·고철··밀가루 등을 훔치는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단동에서 만난 조선족 무역일꾼 김모씨(48)는 “통행시간을 넘겨 중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북한 국경해관에서 잘때는 트럭에 실린 약재·고철 등을 훔쳐가져가지못하도록 밤새 지켜야 한다”며 “밤새 지키고 있어도 깜박 조는 틈을 이용해 물건을 훔쳐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마을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교환하거나 상설화된 장마당에 참여하는 이른바 행복조는 쌀과 옥수수,물고기 등을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물건과 맞바꿔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2∼3명이 짝을 이뤄 장마당에서 조그마한 좌판을 벌여놓고 살 사람을 기다리는게 대부분.거래하는 물건은 쌀·옥수수,물고기 등으로 개인 경작하거나 잡은 것들이.중국 접경지대에서는 고철·구리 등 광석을 거래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희망새는 집안식구들을 위해 양식을 구하러 다니는 여성을 가리키는 은어.최근 북한 무산의 친적집을 다녀온 조선족 이모씨(42·여)는 “새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갈수 있기 때문에 북한사회에서는 자기가 가고 싶은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며 양식을 구하러 다니는 여성을 두고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공장·기업소가 가동되지 않은 탓에 집안에 있는 가장들을 일컬어 ‘멍멍이’라고 한다.북한의 여성들은 한톨의 쌀을 얻기 위해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지만 가장들은 대부분 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 입추와 칠석(외언내언)

    ‘칠월이라 맹추되니 입추·처서절기로다.…늦더위 있다한들 절서야 속일소냐.비 밑도 가볍고 바람끝도 다르도다.가지위의 저 매미 무엇으로 배를 불려,공중에 맑은 소리 다투어 자랑는고’ 염천의 맹위가 꺾이고 입추의 바람이 가을을 몰아오고 있음을 농가월령가는 알려준다. 오늘이 입추다.엊그제 양동이로 퍼붓듯이 거셌던 장대비때문인지 새벽엔 선들바람에다 매미소리도 쇠잔해진 기미다.늦더위가 더 남았다고는 하지만 9일은 칠석에다 이젠 누가 뭐래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시기적으로 칠석이 되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데서 견우직녀의 설화가 생겨났다.중국에서는 후한때 만든 효당산 석실의 ‘삼족오도’에 견우·직녀성이 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평양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에 견우직녀성이 그려져 있다. 1년에 한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견우직녀의 만남을 위해 까마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거나 만나고 헤어질때 우는 눈물을 칠석우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대체로 7월이면 비가 잦은 탓에 집안 구석구석에 습기가 차기 마련이다.옷가지며 서책을 습기찬 채로 두었다가 썩거나 곰팡이 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햇빛이 반짝이는 날을 골라 내다 말려야 한다.이를 ‘쇄서포의’라고 해서 농가월령가의 7월령은 ‘장마를 겪었으니 곡식도 거풍하고 의복도 말리라’고 조언한다. 또 칠석날 밤에는 부녀자들이 견우·직녀성을 향해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게 해달라’고 재주를 비는 걸교의 풍습이 있었다.‘천손운금’은 ‘직녀가 짜놓은 구름같은 비단’이란 뜻의 은하수를 지칭한 것이고 천손은 직녀의 다른 이름이다. 가을은 차고 이지적이면서 그속에 분화산같은 정열을 감추고 있다.그리고 그 열정이 이지를 어기고 폭발하거나 차가운 이지의 내면에 싸늘하게 숨어버린다.어제 새벽 KAL기 괌추락사건은 예상치 못했던 불상사였다.상서롭지 못한 잡다한 여름을 씻고 엄숙한 자연의 절후에 옷깃을 여며야겠다.
  • 죽은 김일성의 이적 선전/김용상 연구위원(남풍북풍)

    “밤 10시쯤 어둡던 하늘이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지면서 2m 직경의 붉은 구름덩어리 3개가 연이어 솟아 올라 평양방면으로 비를 뿌리며 내려 갔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멎으면서 어버이 수령님의 동상 상공에 쌍무지개 영명하게 비꼈으며,밤 10시40분 경에는 또다시 내리던 비가 멈추고 어둠이 가셔지더니 동상 상공에 유난히 밝은 큰별이 솟아 빛을 뿌렸다” “황해남도내 여러 지방에선 맑은 하늘에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울면서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현상이 나타났다.원산시에서는 맑게 개인 하늘에서 갑자기 3분동안 소나기가 쏟아진 후 햇살이 비치면서 어버이 수령님 동상 상공에 12분 동안 쌍무지개가 펼쳐졌다”­북한이 김일성 3주기기간중 조작,최근 관영방송들을 통해 유포시켜 온 허무맹랑한 우상화 설화들이다.이처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들이 마구 지어낸 얘기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요약하자면 죽은 김일성이 금수산궁전에 누워 잇따라 이적을 일으키며 인민들이 잘 살수 있게 돌봐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몇년동안 천재지변으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93년 냉해를 시작으로 94년엔 우박이 쏟아져 농사를 망쳐 놓더니 95,96년엔 수해가 잇따랐고 올핸 ‘왕가뭄’때문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그렇다면 죽은 김일성은 붉은 구름덩어리와 큰 별을 솟게 하고 쌍무지개는 뜨게 할 수 있어도 날씨를 고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인가.죽어서도 자기 동상을 환히 비추는 일이나 하지,굶주리는 주민들의 호구지책 같은 것엔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러나 더욱 답답한 것은 적지 않은 북한 주민들이 그것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눈과 귀와 입이 막혀 있으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물론 사람이 다급한 지경에 처하면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잔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아무리 위급해도 마지막까지 해서는 안될 것도 있고 지켜야할 것도 있다.죽은 김일성이 갖가지 조화를 부린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전자에 속한다.아니,그 정도면 죄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북측에 촉구한다.소도 웃을 가당찮은 거짓말로 동포들을 더이상 속이지 말라.더이상 죄를 짓지 말라.
  • 발해사 재인식(송화강 5천리:31)

    ◎92년 대규모 ‘무덤떼’발굴 연구 본격화/무기류 등 2천여점 출토/중 10대 고고발굴로 평가 중국에서 발해사 연구는 사실상 도외시 되어왔다.그런데 90년대 들어 시각이 바뀌어 발해사연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에 걸쳐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칠색송어장 부근에서 발굴한 발해무덤떼가 그 계기를 이루었다.국가 관계기관으로부터 1995년 중국 10대 고고발굴로 평가된 이 무덤떼는 이른바 칠색송어장무덤군으로 호칭되고 있다. 이들 무덤은 용암언덕 모래땅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돌무덤을 비롯,벽돌무덤,돌과 벽돌을 함께 써서 축조한 무덤 등 형태도 다양했다.4만㎡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서 발굴한 유적은 323기의 무덤과 7기의 제단으로 되어있다.생활용품과 무기류,말갖춤,장신구를 포함한 2천여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덤 323기·제단 7기 그러나 관광객들이 쉽사리 대할수 없는 유물이다.칠색송어장무덤군 출토유물 뿐아니라 중국에서 다른 발해유물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관광객들에게 개방한 유물이있다면 발해진 중앙대가에 자리한 흥륭사 경내의 석조유물 정도가 고작이었다.남대묘라고도 부르는 흥륭사 용암돌담을 돌아 큰 대문옆 쪽문을 들어서면 가지가 휘휘 늘어진 고목이 길손을 맞았다.300년을 자랐다는 고목의 버드나무는 제법 그늘을 드리웠다. 그 나무밑에서 쉬노라니 큰 돌거북 대석구가 첫눈에 들어왔다.지난 1976년 8월12일 발해진 발해소학교 울안 1.2m 땅속에서 나온 유물인데,이 절로 옮겨온 것이다.높이 58㎝,길이 1m의 돌거북은 높이 32㎝,길이 1.36m의 대석에 올라앉았다.돌거북은 희한하게도 용머리와 용발을 했다.그러니까 용두용족의 거북인 것이다.매우 아름다운 조형물인 돌거북이 왜 용머리와 용발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절 맨 뒤쪽에 들어앉은 대웅보전 앞뜰에는 석등탑이 우뚝했다.용암을 쪼아서 만든 석등탑은 높이가 6m에 이르고 있다.기단은 4개의 큰 돌을 이어서 붙여 놓았다.그리고 활짝 핀 연꽃무늬를 새겼다.발해의 제3대 왕인 문왕이 승려를 서천에 보내 불경을 구한 뒤에 세웠다는 석등탑은 애절한 전설도 간직했다.문왕대에 만든 걸작의 대석불도 이 절에 있다.옛 기록을 보면 석불의 높이는 3길이었다.그런데 건륭연간인 960∼963년 사이에 불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다.지금은 복원되어 1963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에 모셔놓았다.이 석불 역시 전설을 안고 있다.경박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하나가 살았다.하루는 고기를 싣고가는 수레에 웬 스님이 올라탔다.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스님이 오간데가 없었다.고기를 내리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사라졌던 지점에 이르렀을때 근엄한 여래석불이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바로 오늘날 흥륭사의 대석불이라는 이야기다.이 절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석불앞에 넙죽 엎드렸다.이는 석불에 얽힌 전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물고기를 내려주고 돌아가던 길에 여래석불을 만났던 어부는 그 자리에 넙죽이 엎드려 소원을 빌어 부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전설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발해유적에서 벽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그러나 길림성 화룡시 정효공주묘와 같은 중요 고분벽화는 감히 들여다 볼 수가 없다.유적보호를 위해 일반에는 절대 공개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이와는 달리 누구라도 아무때나 볼 수 있는 바위그림이 흑룡강성 해림시 임구현 고려정촌에 있다. 고려정촌은 목단강시에서 75㎞가 떨어졌다.본래는 조선족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조선족이 모두 마을을 떠났다.그래서 한족 70가구가 사는 한족 마을이 되었다.조선족과 큰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고려정촌이라 불렀던 마을이다.하지만 조선족들이 모두 떠나고 우물마저 메워버렸으니,고려정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무색하게 되었다. ○흥륭사 대석불 전설 역사는 어차피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옛날의 이야기인지 모른다.그래서 역사를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지만,읽고 가꾸는 기록으로라도 남겨야한다는 집념의 사람들이 있다.흑룡강성 벌리현 향수향 행선촌 최금산선생과 임승환선생이 그들이다.두 분은 3년여에 걸쳐 대하역사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을 합작으로 탈고했다.조사비 등 10여만원의 돈을 들인 이 대하소설은 10부작으로 2백50만자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최선생은 경박호변 남호두가고향이고 임선생은 상경용천부가 고향이니까 모두 발해진 태생이라 할 수 있다.최선생은 대흥구 중학교를 다닐때 학자였던 하숙집 주인때문에 발해와 인연을 맺었다.하숙집 주인으로부터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2년동안이나 들었다.이야기를 들을수록 새로웠다는 최선생은 ‘발해연의’를 100회나 쓴 적이 있다.그리고 임선생은 조선족과 만족,몽골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속에 남아있는 발해설화와 신화 80여편을 수집 정리한데 이어 ‘발해전’120회를 썼다. ○대하소설 합작 탈고 그들은 발해라는 고대왕국을 소재로 이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쉽사리 합작을 약속했다.두 분의 대하소설 ‘해동성국 발해전’은 고왕 대조영이 698년 오늘의 요령성 조양땅인 영주에서 나라를 세워 926년 망하기까지 229년간의 역사를 그렸다.오늘의 중국 동북3성은 물론,러시아의 연해주와 한반도 동북부를 잇는 영토확장을 위해 숨가삐 달린 발해의 영욕이 담겨있다.자그마치 300명 인물이 등장하는 이 대하소설은 발해의 정치,군사,경제,외교,문화 등 여러 분야의 발자취가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 바캉스철/민박 가능하고 한적한 해수욕장을 알아보면

    ◎가자! 가족과 함께 바다로/동해 옥계­바닷물과 민물 교차하고 송림 울창한 청정해역/울진 라곡­절경의 바위섬·끝없는 은빛모래 ‘제2의 해금강’/통영 비진도­남북의 두섬 모래띠로 이어논 천혜의 해수욕장 수협중앙회는 최근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섬따라 파도따라’라는 어촌 민박안내 책자를 발간했다. 수협에 따르면 전국에 민박이 가능한 어가는 173개 해수욕장에 4천331가구로 모두 1만7천93개의 방을 보유,7만3천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수협은 오는 8월말까지 「어촌민박 특별안내기간’으로 정해 지도부(240­2251,2261,2266,2269)에서 안내문의도 해준다.PC이용자는 인터넷상의 수협 홈페이지 http://www.suhyup.co.kr로 들어가 어촌 안내코너로 접속하면 책자의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천리안 가입자는 “”GO BEACH”로,하이텔은 “”GO ASEAN”의 메뉴를 선택하면 된다. 수협은 민박은 소중한 인간과의 만남으로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라며 민박이용자에게 예의와 품위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아울러 전화예약이 편리하지만 예약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때에는 미리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민박이 가능한 해수욕장 가운데 일반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소개한다. ▷백령도 사곳◁ 57㎞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백사장이 군데군데 널려 있다.특히 이곳에는 세계에서 두개뿐인 천연 비행장이 있다.기암괴석이 수백미터에 달하는 두문진과 심청이의 연꽃설화를 간직한 연봉바위,인당수의 푸른 물결 등 자연의 위대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인천 연안부두∼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3시간50분 걸리며 하루 3차례 왕복 운항한다.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032)836­6000(옹진수협 백령지소) ▷동해 옥계◁ 바다물과 민물이 교차하며 송림이 울창하고 백사장이 넓다.동해안에서는 드물게 가족이 함께 조개를 주울수 있다.서울∼동해 고속버스는 4시간10분,청량리∼동해 새마을은 5시간16분이 걸리며 동해에서 시내버스가 연결된다.(0394)32­2019(동해시수협 지도과) ▷당진 난지도◁ 2㎞가 넘는 백사장과 따뜻한 수온,푸르고 맑은 바닷물이 자랑.주위에 낚시터도 많고 우럭·놀래미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며 5t이상 낚싯배도 빌릴수 있다.이름 그대로 각종 난을 비롯한 약초가 자라고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1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청소년수련마을이 준공돼 30명이상 단체로 이용할 수 있다.서울 남부터미널∼당진,당진∼삼길포 직행버스가 있으며 삼길포∼난지도 여객선이 있다.4시간 걸리는 인천연안부두∼난지도 여객선이 하루 1회 왕복운항한다.(0457)52­2193(난지도 어촌계),50­3428∼9(청소년 수련마을). ▷서천 춘장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앝은데다 바닷물이 맑고 모래사장이 곱다.동백나무 숲에 묻힌 절벽위의 동백정이 절경이다.썰물때는 걸어 갈수 있는 쌍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울창한 아카시아 숲에서 야영도 가능하다.서울∼서천 열차가 3시간30분,서울∼춘장대 고속버스는 4시간 걸린다.서천∼춘장대 일반버스는 30분이 소요된다.(0459)951­1612(서면법인 어촌계). ▷완도군 예송리◁ 6천700여종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호)과 해안을 끼고 1㎞가량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물이 맑다.밤이면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인상적이다.인근에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가 있어 보길도의 멋을 더해준다.직행버스는 서울남부터미널∼완도가 6시간30분,광주∼완도는 2시간.완도∼보길도 여객선은 1시간.(0633)53­6378(예송어촌계). ▷완도군 가사리◁ 백사장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답다.동백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편안하게 쉴수 있으며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은 얼음물보다 차 냉수욕도 일품이다.아직 알려지지 않아 아늑하고 조용하다.광주∼마량 직행버스는 2시간,마량∼약산원동 여객선이 40분 걸리며 여객선은 승용차 도선이 가능하다.(0633)53­8316∼7(약산수협 총무·지도과) ▷고흥군 성천◁ 고흥읍에서 25㎞ 떨어진 외나로도섬에 있는 이 해수욕장은 600m에 이르는 백사장과 1∼2m의 얕은 수심으로 가족단위 휴양지로 안성마춤이다.경사도 완만하고 노송숲이 우거져 있다.최근 나로도까지 다리가 연결돼 자동차 이용이 가능하다.광주∼나로도 직행버스는 3시간,순천∼나로도 직행버스는 1시간40분 걸린다.(0666)33­8101(나로도수협 지도과),33­7229(덕흥어촌계). ▷울진 라곡◁ 해금강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바위섬과 백사장 가운데로 맑은 물이 흘러내려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주변에 덕구온천,성류굴,불영계곡 등 관광지를 끼고 있다.직행버스는 서울 동서울터미널∼죽변이 8시간,강릉∼죽변이 2시간20분 걸리며 죽변에서 시내버스가 연결된다.(0565)82­0575(라곡 어촌계) ▷기장군 임랑◁ 1.5㎞의 백사장에 수심도 1.5m밖에 안돼 가족단위 휴양지로 손꼽힌다.해수욕장과 연결된 임랑강에서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함께 할수 있으며 보트도 30여척이 있어 푸른 바다를 달릴수 있다.부산∼임랑간은 버스로 1시간.(051)727­4580(임랑어촌계). ▷통영 비진도◁ 바닷속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은 바닷물이 남북의 두섬을 기다란 모래띠로 이어 놓은 천혜의 해수욕장이다.1만m가 넘는 해안선이 흡사 「8’자를 길게 늘여 놓은 것 같다.특히 모래의 질이 좋고 해수욕장 뒤쪽에 울창한 수목이 뜨거운 태양을 막아 줘 피서에 적격이다.백사장 전역에서 야영도 할수 있고 민박을하면서 순수한 어촌 생활을 맛볼수 있다.마산∼통영 및 부산∼통영 직행버스가 각각 1시간40분 2시간 걸린다.통영∼비진도 여객선은 1시간.(0557)646­1222(통영수협 지도과)
  • 수호전 저자 시내암의 흥화(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1)

    ◎시씨 집성촌 시가교장에 유채화 만발/뒤집은 팽이모양의 시내암 모역 성지단장 한창/생명걸고 저술한 수호전은 발분저서의 사표로 나처럼 평생 주먹 한번 써보지 못한 샌님에게는 차라리 무송같은 주먹이 부러울 때가 있다.그래선지 「수호전」그 파란만장의 송강취의를 좋아했고,시내암(1296∼1370)이 살고 그의 유택이 된 강소성 흥화현 신타향 시가교장은 관심을 끌던 곳이다.그럼에도 거기 가는 길은 몹시 불편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상해에선 어림 잡아 400㎞쯤이지만 꼬불 꼬불 지방 도로를 몇번인가 갈아타면서 거푸 물어야 겨우 찾을수 있었다.북으로 양자강을 건너 남통과 동대를 거쳐 대풍현 백구진에 이르면 시가교장의 문턱에 닿은 셈이다. 「수호전」의 저자와 저자의 고향과 무덤,그리고 저작 연대에 대한 쟁론은 분분했다.그것은 「수호전」이 비록 북송 말년에서 원말명초에 이르기까지 250여년동안,평화나 희곡의 형식으로 민간에 전래됐던 양산박일대의 관핍민반의 설화를 소설화함으로써 결코 온전한 창작은 아니지만 그를 두고 농민폭동설을비롯 송강투항설·시정 서민의 반란설·충간설·영웅설·악한설등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고향을 두고도 소주·항주·흥화·양주·회안·백구 등의 이설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그의 고향이 소주나 항주·흥화라는 설이 구구하지만 소주는 그의 고향이요 출생지라면 항주는 벼슬하던 곳이다.흥화와 백구는 그가 성장하면서 「수호지」를 완성했던 곳이면서 그가 묻힌 곳이다.다만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흥화현 신타향 시가교장으로 불린다.흥화는 옛날 양주에 속했던 군현의 하나요,회안은 시내암이 죽은 곳,그러니까 그 어느쪽에도 인연이 있고 족적이 닿았다. 「수호전」의 저자를 두고도 말이 없지 않았다.「삼국지」의 저자인 나관중과의 공저설이나 나관중의 편집설,심지어 나관중의 저작설이 있지만 시내암의 단독 저작설은 신중국 건국이래 1958년과 1978년,시씨들의 집성촌인 시가교장 근교에서 출토되거나 발견된 시내암의 잔비를 비롯 시씨 종가의 지권기록·시씨 종친들의 묘갈명·시씨 족보·시씨 선영에서 출토된 부장품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 결과,시가교장의 시씨 선영에 시내암의 무덤이 있고,그 저자 또한 시내암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필자가 근 10시간을 털털이 버스에 시달리다가 백구진 작은 읍내에 내렸을때 몹시 낯 설었다.심지어 으스스한 느낌이었다.글쎄 양산박의 건달로 뵈는 시커먼 청년 서너사람이 일시에 몰려 와서 나를 에워쌌다.내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로 보였던 것이다.그들은 저마다 오토바이를 몰고 와서 호객을 하는 것이다.여기서는 오토바이가 택시나 삼륜차를 대신하는 모양이다.시가교장까지 왕복하기로 차삯을 인민폐 35원으로 흥정했다. 백구진에서 시내암 무덤까지 약 10㎞는 밀밭을 뚫고 가는 흙길이다.마침 유채화가 한창이다.길옆으로 누런 유채꽃,유채꽃 너머 짓푸르게 키가 훌쭉한 전나무,그 전나무가 휘휘 흔들리는 그림자밖으로 끝없이 아득한 밀밭이 너울거리고 있다.그 세가지 원색은 일망무진의 평행선을 긋고,나는 그 시커먼 녀석이 호마처럼 쿨렁거리는 꽁무니에 붙어 요동을 치고 있다.그 녀석 궁둥이에 깔린 비닐 끈을 꾹참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이따금 짝눈으로 뵈는 풍경은 취할만 했었다.그렇게 꼬박 반시간을 달렸다.대영이란 마을에서 우회전,한참 달리다보니 시가교장이라 했다.풍요로운 농가 40,50채가 넘었다.물어보니 지금도 죄다 시가 들만 산다고 했다. 연당이 있고 둥그렇게 시내가 맴을 그리면서 훤칠한 형국을 만들었는데 그중앙에는 시내암의 무덤,그 왼편에는 사당,사당앞에 정각,다시 오른편에는 자료실,자료실뒤로는 칙칙하게 나무들을 심었다.시내암 봉분은 엊그제 묻은듯 밋밋한 흙더미,팽이를 거꾸로 세운듯 했다.그 봉분앞에 우뚝 세운 묘표,「대문학가시내암선생지묘」. 이는 일찍이 1942년과 1957년,흥화현 현청에서 문화유적지로 지정되었던 것을 최근의 발굴과 고증을 거쳐 드디어 그 성역화를 결정,묘역의 확대와 미화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데 올 7월에 준공 예정이라고 한다. 좌우를 둘러 보아도 물론 청룡백호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오직 기름진 평야일 뿐이다.거기다 사통팔달의 물줄기들,농토의 관개용이다.그런데 여기서시내암은 630여년전,흉중의 분개를 안고 문을 걸어 잠근채 「수호전」을 완성했던 것이다.물론 그 분개는 그의 짧은 관로와 원군의 무도한 압박때문이었다.벼슬은 내동댕이 치고 원군을 피해 여기 궁벽한 흥화까지 피란했던 것이다.더구나 주원장의 간곡한 청마저 물리친채 오직 「수호전」 완성에 성명을 건 것은 「발분저서」의 사표가 아닐수 없다.여기서 영웅의 무기는 붓이요 또 그것이 불후하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필자는 다시 밀밭길을 달려서 백구진으로 건너가는 나루터에서 오토바이를 내렸다.나루터를 건너면 행정구역으로 대풍현 백구진.하지만 백구진은 옛날 흥화현에 예속되었다. 나루터를 건너 다시 다리를 건너면,두둥실 두채의 건물,그 왼쪽 이층은 「백구문화원」,그 오른쪽에 「시내암기념관」.시내암의 하얀 입상이 서있는,시내암 연구를 위한 자료전시실이다.주로 신중국 건국이래 이 지역에서 발굴된 자료와 연구실적을 통해 흥화의 시가교장이 시내암의 유택이요 「수호전」의 산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물을 참관하는 동안왠지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이나 뼈다귀를 서로 팔아먹고 있다는 생각이다.흥화현청이 시내암의 묘로 관광수입을 올린다면 백구진은 시내암의 기념관으로 한몫을 보고 있다.이런 일은 「개혁개방」중인 중국 어디서고 보이는 일이다.
  • 향가 설화문학/홍기삼 지음(화제의 책)

    ◎전설적 성격으로 본 「삼국유사」속 향가설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설화에 대한 본격 연구서.지은이는 특히 향가 설화가 지니고 있는 전설적 성격에 주목,그 특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춘다.향가 설화를 전설로 파악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삼국유사」가 정사가 아니라 잡사·잡기·만록 등에 적합한 「유사」라는 데서 찾을수 있다.이 책에서는 향가 관련 설화를 지배하는 전설의 서사적 구조를 문법적으로 꼼꼼히 살핀다.전설의 사실적 부분과 허구적 부분은 문장에서의 주술관계처럼 서로 긴밀하게 조응하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여기서 전설은 허구적 설화이지만 「믿지 못할 허구」로서의 민담과는 달리 「믿을 만한 허구」의 성격을 지닌다. 「삼국유사」는 전통적 무속신앙에서 유·불·선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어우러진 「외불내무」 혹은 「사교융합」의 통합적 세계관을 반영한다.이러한 흐름은 향가 설화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한 예로 「안민가」는 불교계 향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은 유교적 가르침이 반영된 교훈가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이 책에는 「효소대왕 죽지랑」「수로부인」「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월명사 도솔가」 등 모두 12편의 향가 설화가 실렸다.민음사, 2만5천원.
  • 누가 용되고 누가 아무기 되나(박갑천 칼럼)

    용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후한 의학자 왕부의 구사설에서 보자면 이렇다.머리는 낙타,뿔은 사슴,눈은 토끼,귀는소,목은뱀,배는 이무기,비늘은 잉어,발톱은 매(응),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는 것이다.어휴,그꼴은 비빔밥이네그려. 이건 공상으로 이루어진 상상의동물.하지만 실존했다는 생각도 적지않다.중국에는 약용으로도 중시하는 용뼈(용골)란게 있다. 동양쪽에서의 용은 흔히 제왕을 상징한다.한고조 유방의 탄생설화가 용에 얽히는 것도 그때문이다.어느날 그어머니가 연못가에 나갔을때 천지가 깜깜해지면서 천둥번개가 친다.그아버지가 가봤더니 교룡이 올라타고 있었다.그뒤 태기가있어 낳은아들이 유방이다.그래서 우리「용비어천가」도 제1장이 『해동육용이 ㄴㄹ샤 일마다 천복이시니…』다.여기서는 목조부터 태종까지를 용이라 이르고있다.제왕뿐 아니라 훌륭한 사람도 비유한다.「장자」(천운편)에 쓰인바 공자가 노담을 만나고와서『나는 이제야 용을 보았다』고한 탄식에서 볼수있듯이. 천금의 구슬은 아홉겹 연못속 여룡의 턱밑에 있다고 했다.가로세로가 한자인 비늘에 덮였는데 그걸 얻으려 하다가는 성난 용한테 죽는다.역린이란 말이 거기서 나온다.아홉겹 연못속이라는 말그대로 용과물은 관계가 깊다.그점에서 용을 이르는 우리 토박이말 「미르­밀」은 그럴싸하다.「믈­물」과 소리가 비슷하니 말이다. 「믈­물」인 비가 내리지않고 가물면 「미르­밀」한테 빌었던게 그때문인가.그기우제 풍습이 「용재총화」(7권)에 보인다.동쪽교외에는 청룡,남쪽에는 적룡,서쪽에 백룡,북쪽에 흑룡,중앙종루에는 황룡을 만들어놓고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다. 대임지망자들을 가리켜 용이라고들 표현한다.아직 용은 아닌 것을.하늘로 못오르면 이무기신세로 연못속에 살아야 한다.그나저나 용되려는 걸쌈스런 안간힘들 안타까워 뵈더라만.〈칼럼니스트〉
  • 서울대 박희병 교수 펴낸 「한국전기소설의 미학」

    ◎“한국소설의 발생기점은 「최치원」/“설화와 구분되는 장르적 면모 보인 전기소설”/독특한 서사문법 통한 고유한 미적원리 지녀 『우리나라의 전기소설은 서사문학이 설화에서 소설로 발전해 간 시기에 형성된 최초의 소설양식으로 나말여초에 발생해 17세기 전반기를 전후해 크게 발달했습니다.이 전기양식은 17세기 후반 이후 국문 장편소설과 야담계 단편소설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고전소설사에서 주류적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서울대 박희병 교수(42·국문과)가 한국 전기소설의 이론과 역사를 체계화한 연구서 『한국 전기소설의 미학』(돌베개)을 펴냈다. 전기소설이란 현실의 인간생활을 떠나 천상·명부·용궁 등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다룬 이야기,혹은 비현실적인 무용담이나 연애담의 요소를 지닌 소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 박교수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 「금오신화=한국 소설의 발생」이라는 기존의 통설에서 탈피,한국 소설의 발생 기점이 나말여초의 전기소설인 「최치원」임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주목된다.『「최치원」이 비록 설화적 요소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고 소설로서도 썩 발전된 형태를 띠고있는 것은 아니지만,전체적으로 이미 설화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장르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게 박교수의 견해.나아가 그는 「금오신화」의 성립을 이기철학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 자세를 취한다.이기철학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전기소설이 독자적 장르로 존재해 왔으며,그 장르관습이 「금오신화」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그같은 견해는 이론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전기소설은 고유한 미적 원리를 지니고 있다.그것은 전기적 인간의 미적 특질과 독특한 서사문법을 통해 구체화한다.이 책은 나려시대 전기소설의 연장선상에서 「금오신화」의 미학을 밝힌다.「금오신화」의 작자 김시습은 15세기 후반의 지성사에서 가장 고독한 인물이었다.우리는 그의 문집인 「매월당집」 곳곳에서 그가 느낀 고독감을 추체험할 수 있다.김시습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고독감과 그것에 늘 붙어 다니는 궁수를 떨쳐 버리기 위해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금오신화」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박교수는 동일한 맥락에서 「금오신화」의 예술적 특성을 「고독과 초월의 형식화」란 말로 요약한다. 그는 끝으로 전기소설과 야담 그리고 전의 미학적 특성과 관련,『야담에서는 민중적 낙천성과 인정물태에 사로잡히게 되고,전에서는 엄숙함을 배우게 되며,전기소설에서는 섬세함과 내면성을 감수하게 된다』고 말한다.
  • 소리·굿·놀이·풍물/전통 「마당굿」 한판

    ◎서도소리·평산 소놀음굿·대감놀이 등/한굿서도소리연구회,새달 2∼3일 공연 소리와 굿,놀이,풍물 등 우리 전통문화의 여러 갈래를 한자리에 집합시킨 굿잔치가 5월초 공연무대를 이채롭게 장식한다. 한국서도소리연구회가 오는 5월2일과 3일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마당굿 「굿·굿·굿」.서도소리와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강신무들에 의한 장군굿,대감놀이 등 정통국악과 일반무속(굿)의 요소들을 예술적으로 결합시켜 다양한 들을거리·볼거리를 제공한다. 제1부에서는 평북 영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삼아 인간의 정을 구성지게 뽑아내는 영변가를 비롯해 수심가,난봉가,방아타령 등 서도의 대표적 소리 20여곡을 박정욱과 그의 문하생들이 열창한다. 제2부는 중요 무형문화재 90호로 지정된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마당에서 판이 벌어져 마당놀이로 질펀하게 엮어진다.여기에 장군굿과 대감놀이로 신명을 부추긴다. 소놀음굿은 원래 경기도와 황해도에서 주로 행해지는 굿거리로 일반적인 우환굿과는 달리 재수굿,놀이굿이어서 해학적 성격이 강하다.큰 부잣집에서 농토를 새로 장만하거나 큰 경사스러움이 있을 때 이를 신께 고해 복과 명을 빌기위해 행해온 것으로 연원에서도 알 수 있듯 무속에서 점차 연희와 예술의 형태로 발전해왔다. 이번 평산 소놀음굿의 내용은 조선국 개국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명과 복을 바라는 마음을 굿의 형태에 담은 것으로서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칠성신과 그의 나졸들이 조선에 내려와 인간들과의 사이에서 겪는 일들을 소리와 춤,재담으로 엮고있다. 서도소리연구회의 이번 「굿·굿·굿」은 전통적 마당극의 원형에 가깝기는 하지만 서도소리와 황해도 무가를 주로 사용함으로써 판소리로 꾸며지는 창극과 해학적인 마당놀이의 중간적 형태를 띠고 있는게 특징이다. 이번이 9번째 공연이며 주최측은 특히 올해 신세대 관객들의 호응과 전통문화의 실용적 발전을 목표로 의상과 소품,무대장식 등의 현대화에 신경을 많이 썼다.745­5745.
  • 첫 한글소설(외언내언)

    소설의 기원으로는 설화가 꼽힌다.신화·전설·옛이야기 등이 구전돼 오다가 문자로 정착한것이 설화문학.단군신화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전설이 수록된 「삼국유사」는 바로 설화문학의 효시인 셈이다. 설화문학은 임금을 위해 거리의 소문을 모아 기록하던 벼슬아치인 패관들에 의한 패관문학으로 이어지고 패관문학은 다시 귀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전기소설로 이어진다.한국 최초의 소설로 꼽히는 「금오신화」가 바로 한문으로 쓰여진 전기소설이다. 전기소설에서 한걸음 발전한 것이 영웅소설인데 그동안 최초의 한글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은 이 범주에 속한다. 「홍길동전」보다 1백년 앞선 한글소설 「설공찬전」이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조선조 중종때 채수(1449∼1515)가 썼다는 이 소설은 전기소설로 분류된다.설공찬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죽은후 그 혼령이 친척의 몸속으로 들어가 저승이야기를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귀신 이야기이면서도 「홍길동전」과 같은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설공찬전」은 당시 정치적 인물들에 대한 염라대왕의 평가를 전하는 형식으로 사회비판을 하고 있고 바로 그 때문에 왕명으로 불태워졌던 것으로 전한다. 갈등구조나 짜임새 등 소설적 완성도는 「홍길동전」보다 떨어진다지만 여성에 대한 인식은 당시의 한계를 넘어서는 획기적인 측면도 보여주어 눈길을 끈다.『이승에서 비록 여편네 몸이었어도 약간이라도 글을 잘하면 저승에서 소임을 맡아 잘 지낸다』며 저승에서는 남존여비가 없음을 전하고 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홍길동전」이나 「설공찬전」이 지닌 앞선 사회의식이 우리 소설문학의 전통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