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 대탐험](5)휴먼로봇
“주인님 일어나세요.술 냄새가 아직도 나네요.속은 괜찮으세요?” 아침 6시30분 2개월전에 새로 구입한 최신형 심부름 로봇인 ‘로봇돌이’가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나를 깨운다.나는 로봇돌이가 가져온 커피와 빵을 침대에서받는다.어제 명령한 대로 적당하게 구워진 빵과 반숙이 된 달걀이 오늘 아침식사 메뉴다. 가사로봇 ‘로봇돌이 R2010C’는 2010년 가을모델이다.가격은이전 모델보다 20%나 싸졌지만 새로운 기능들이 많이 추가돼 성능이 놀라울정도로 향상됐다. 신형 인공피부,전자감응 후각센서,입체인식 시각센서,음성인식 기능 등은 기본이다.옵션으로 장착된 계단 등반장치를 사용해 1층에서2층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각 층에 한 대씩 사용했던 구 모델 2대를 반납하고 한 대로 모든 집안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로봇돌이는 집안 청소는 물론이고 식사 후 설거지도 아주 잘한다.최신형 인공 피부가 장착된 두개의 팔과 4개의 손가락이 달린 로봇 손은 힘 조절기능이 향상돼 전과 같이 실수로 달걀을 깨는 일이 없다.인공피부는 물건을 잡는힘 조절 뿐만이 아니라 물체의 온도를 느끼고 미끄러짐도 인식할 수 있어 식사준비 또는 설거지 작업에 특히 유용하다.촉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부드러워 아이들이 로봇돌이와 함께 놀 때 다칠 염려가 없다.
특히 로봇돌이 R2010C에는 감성인식 기능이 첨가돼 음성인식장치와 카메라를 이용,주인의 기분을 살피기까지 한다.오늘의 날씨,나의 얼굴표정과 억양등을 종합해 분위기에 알맞은 음악을 틀어 주기도 하고 조명을 조절해 준다.
앞으로 펼쳐질 서비스 로봇 세계의 한 단면이다.언뜻 영화에서나 볼 장면같아 보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우리에게 익숙해질 모습이다.
수세기 동안 인간은 자신을 닮은 움직이는 물체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움직이는 조상(statue)들을 제작했고,18세기에 이미 유럽에서는 회전하는 드럼 위에 부착된 선별기로부터 캠과 지렛대를 이용한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로봇이란 단어는 1921년에 발표된 체코의 희곡작가 카렐 카펙(KarelKapek)의 작품인 ‘로섬의 만능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 쓰였다.재미있는 것은 이 연극에서 작업자란 뜻의 로봇이 자신의 주인인 인간을죽이고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로봇의 지능이 급격히 발달해 인간과대치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오래 전 부터 걱정되는 부분이었던 모양이다.
로봇이 우리 주변에 점점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함께걱정어린 상상도 하게 됐다.이와 관련,로봇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물리학자 이삭 아시모프(Isaac Asimov)는 1950년에 출판된 그의 책 ‘I Robot’에서 지능을 가진 휴먼로봇을 만들 때의 3가지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는 안되고 둘째,인간의 명령이 첫째 조건을 위배하지 않으면 항상 따라야 하며 셋째,로봇은 위의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할 경우에만 자기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아시모프는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게될 미래사회에서 로봇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도덕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실제로 살상용 전투로봇,섹스로봇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의 로봇의 출현 또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유전자 복제 문제와 더불어 좋은 로봇과 나쁜 로봇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곧 시작되지 않을까? 1962년에 처음으로 자동차 회사인 미국의 GM이 산업용 로봇을 쓰기 시작한이후 로봇은 전자 및 자동차 회사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2000년도에는세계적으로 100만대 이상의 로봇이 생산현장에서 사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21세기에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그 사용 영역을 넓혀 나갈 전망이다.
인간과 유사한 5감과 판단능력을 갖고 이동하며 작업하는 지능형 로봇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휴먼로봇은 21세기 기계기술이 지향하는 모든 지능형 기계의 원형이다.휴먼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정밀기계,정보전자,컴퓨터,인공지능,지능형 센서,신소재 기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 및 인지과정을 이해하는 뇌과학 등 첨단 기술이 요구된다.휴먼로봇의 연구를 통해 개발된 기술들은 지능을 가진 고효율 산업용 로봇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신해 위험한건설현장,심해,깊은 땅속에서의 어려운 작업을 하거나 화재,재해,방사능 오염 등 극한상황에서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의 개발에 적용된다.
실제 인간과 같이 사고하며 행동하는 휴먼로봇은 21세기 초반에 개발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앞서 인간과 공존하며 인간을 도와주는 의료용,장애자용,가사용 로봇 등이 개발돼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을 선사할 것으로기대된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80년대 초부터 이미 이러한 휴먼로봇 분야에 국가적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1996년에 발표된 혼다(Honda)사의 P2로봇,그리고 1999년의 P3로봇은 이 분야의 많은 과학자들을 흥분시킬 만큼 완성도가높은 로봇들이다.P3로봇은 인간과 같이 걷고 축구공을 차기까지 하는 높은기능을 선보였다.지난 해부터는 혼다로봇을 기반으로 일본 통산성에서 주관하는 두번째 휴먼로봇 프로젝트가 시작돼 좀더 인간생활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휴먼로봇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휴먼로봇 분야 연구활동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지난 1994년부터 수행하고 있는 ‘휴먼로봇 센토’가 있다.지난해 7월 공개된 센토는 네발을 가지고 인간의 상체를 가진 그리스 신화의 센토리우스에서 그 이름을따왔다.국내 로봇 분야의 기술 발전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고 향후 빠르게다가올 로봇시대를 위한 중요한 첫 걸음으로 평가 받고 있다.
◆김문상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책임연구원 ▲43세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 ▲독일 베를린공대 기계공학과 공학박사(로보틱스 전공) ▲미 미시건대 교환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munsang@kist.re.kr).
*휴먼로봇 개발의 핵심…휴먼인터페이스 기술.
휴먼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핵심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휴먼인터페이스(Human Interface)기술이다.휴먼로봇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인간의 말과글, 몸짓,표정,시선 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기술이 바로 휴먼인터페이스의 영역이다.
인간과 각종 기계 사이에 마치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듯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이 이뤄지도록 하는 휴먼인터페이스 기술을 통해서 단순한 기계의 조합이 아닌 ‘인간과 유사한’ 로봇의 기능을 하게 된다.
컴퓨터에서 우리가 명령어를 입력하는 키보드나 마우스가 인터페이스(서로다른 개체 사이의 상호교류 또는 대화를 위한 매체)다.키보드나 마우스를 사용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각 청각 촉각 등 보다 인간적인 접촉방식을명령수단으로 하는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휴먼인터페이스의 시초가 됐다.컴퓨터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에 관한 상호작용의 설계와 구현으로 연구가 집중되면서 HCI(Human & Computer Interaction)이라고도 불린다.이 기술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의 의사나 감정까지 이해할 수 있는 인간중심의 컴퓨터를 실현하고,누구라도 아무런 제약없이 원하는 정보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컴퓨터 등 모든 기계가 사용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휴먼인터페이스 기술은 고부가가치의 핵심기술로 부상하고 있으며,시장규모도 급격한 확장세를보이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화상인식,음성인식·합성,자연어 처리 등 휴먼인터페이스 개별기술 시장이 연간 43조원에 이르고 이를 활용한 시스템까지 포함하면 관련시장은 연간 500조원이 될것으로 분석했다.
쳐다보면 켜지고 채널을 자동으로 알아서 찾아주는 TV,생각만 하면 작동하는 오디오,말로만 지시하면 원하는 것을 검색해 주는 인터넷 등 휴먼인터페이스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실제로 IBM은 음성 인식이가능한 음료 자판기를 개발하고 있다.
휴먼인터페이스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다.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대기업과 MIT 스탠퍼드대 등 유수대학을 중심으로 인지및 추론 분야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8년부터 국가 중점연구개발사업 과제의 하나로 선정하고 삼성종합기술원 HCI연구실을 중심으로 휴먼인터페이스 개발을 본격추진하고 있다.
함혜리기자 lo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