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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호준의 시간여행] 보리 서리, 그리고 성냥의 추억

    [이호준의 시간여행] 보리 서리, 그리고 성냥의 추억

    천지간에 봄이 깊숙이 들어앉았다. 남도로 가는 길, 황토까지 푸르게 덧칠한 보리들이 우쭐우쭐 키를 재고 있다. 성급한 눈에는 곧 이삭이 패고 누렇게 익어 갈 것 같다. 보리만큼 많은 추억을 품고 있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세월이 흐르니 보릿고개나 보리 서리라는 말조차 정겹다. 풍경을 그려 보는 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채 여물지도 않은 보리를 몰래 잘라다 짚불에 익혀 손으로 비벼 먹던…. 그걸 보리 서리라고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보리 서리는 놀이이기도 했다. 불장난만큼 재미있는 놀이가 있을까. 겨울에 쥐불놀이를 하든, 늦봄에 보리 서리나 밀 서리를 하든 성냥은 필수 도구였다. 성냥이 귀한 시절에도 아이들은 어떻게든 하나쯤 갖고 싶어 했다. 불장난을 하다가 불을 내는 경우도 많았다. 논둑에 놓은 불이 산불이 되기도 했고 심지어 집 한 채를 홀라당 태운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위험을 품고 있었지만, 성냥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했다고는 해도 부싯돌이 어찌 성냥을 따라갈까. 특히 불씨를 보존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이 땅의 여인들에게 성냥의 등장은 복음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성냥은 1827년 영국의 J 워커가 염소산칼륨과 황화안티몬을 발화 연소제로 써서 만든 마찰성냥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880년 개화승(開化僧) 이동인이란 이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져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성냥이 들어왔다고 백성들이 바로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일합병 후 일제가 인천에 ‘조선인촌’(朝鮮燐寸)이라는 성냥 공장을 세우고 대량 생산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제는 수원·군산·부산 등에도 성냥 공장을 세웠는데, 조선인들에게는 제조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렇게 시장을 독점하고 성냥 한 통 값이 쌀 한 되 값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게 팔았다. 아무리 비싸도 편리함에 익숙해진 이상 성냥은 외면할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시골에서는 등잔불을 켜거나 밥을 짓기 위해 성냥이 반드시 필요했다. 담배 역시 성냥이 없으면 피우기 어려웠다. 성냥 공장들은 한때 최고의 호황 산업으로 각광받았다. 지역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게 성냥 공장이었다. 유엔·아리랑·향로·기린표·새표·복표·야자수·대한·비사표·제비표·두꺼비표·토끼표…. 성냥의 종류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하지만 세월의 심술은 성냥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누구도 찾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굳이 성냥의 위상이 추락하게 된 시기를 따지자면 1980년대 후반부터였을 것이다. 궁벽한 곳까지 전기가 들어가고 전기밥솥에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까지 등장하면서 점차 찬밥 신세가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값싼 1회용 라이터가 쏟아져 나오면서 담뱃불을 붙일 때마저 외면받게 되었다. 성냥이 그렇게 생활공간에서 퇴장하면서 이제는 구경조차 어려운 물건이 되었다. 마당에 미루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수백 명의 직원이 일하던 성냥 공장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요즘은 어느 산골 외딴집 쇠죽 쑤는 부뚜막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까. 성냥이 다시 부엌으로 돌아올 날은 영영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냥과 함께했던 기억은 여전히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다. 보리 서리의 추억을 엊그제 일처럼 간직한 세대가 살아 있는 한….
  • [여기는 남미] 어찌 하오리까…5년 째 주차장에 방치된 차

    [여기는 남미] 어찌 하오리까…5년 째 주차장에 방치된 차

    5년째 주차장에 버려져 있는 자동차를 처치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주차장 사장의 사연이 아르헨티나 언론에 소개됐다. 밀린 요금이 이미 수백 만원으로 불어난 가운데 설상가상 차주가 돌연 사망해 자동차를 치워버리는 건 더욱 힘들게 됐다. 아르헨티나 2의 도시 코르도바의 중심부에 있는 주차장에 문제의 차량이 들어온 건 2013년. 푸조 504를 몰고 들어온 건 인근에 사무실이 있어 평소 안면이 있는 한 변호사였다. 변호사는 주차장에 차을 넣은 뒤 발길을 끊었다. 아는 사람이라 처음엔 싫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장은 마주칠 때마다 변호사에게 "요금을 정산하고 차를 좀 빼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차를 빼진 않았다. 그 사이 주차요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자 차주 변호사의 태도가 바뀌었다. 변호사는 "주차요금이 그렇게 많이 밀렸는데 이제와서 차를 빼면 뭐하나, 그냥 차를 가져라"고 했다. 사장은 "명의이전을 해달라"고 했고, 변호사는 흔쾌히 받아들였지만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사장은 변호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까지 밀린 요금은 14만 페소, 우리돈으로 약 750만원에 이른다. 푸조 504는 오래 전 생산이 중단된 차종으로 중고차시세는 3만 페소, 16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자동차를 처분해도 막대한 손해는 불가피한 상황. 그나마 명의이전을 해야 처분이 가능하지만 차주가 사망하면서 일이 복잡해졌다. 사장은 시를 찾아가 상의했지만 공무원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운 게 아니라 견인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차를 빼려면 상속인을 상대로 재판을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란 말을 듣고 사장은 힘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장은 "재판을 해도 비용이 드는 데다 판결이 나기까지 2~3년은 또 훌쩍 지날 것"이라면서 "이젠 아침에 출근해 저 자동차를 보기만 해도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밀린 요금은 포기했다. 차만 치우면 좋겠지만 이젠 애물단지가 된 자동차를 절대 처분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진=5년째 꼼짝하지 않고 있는 문제의 차량 (출처=디아리오우노)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정글의 법칙 in 남극’ 김병만, 남극점 도달..소감은?

    ‘정글의 법칙 in 남극’ 김병만, 남극점 도달..소감은?

    ‘정글의 법칙 in 남극’ 김병만이 남극점에 마침내 도달했다.20일 방송되는 300회 특집 ‘정글의 법칙 in 남극’에서 지리상 지구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남극점에 도달하는 병만 족장의 모습이 공개된다. 지난주 국내 예능 최초로 남극 대륙을 밟는데 성공한 김병만은 그보다 더 극한 환경의 남극점을 찾아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남극점은 남극 대륙에서도 2,835m로 고도가 가장 높고 연평균 기온 영하 50도를 밑도는 지구의 가장 남쪽, 남위 90도에 위치한 지점을 말한다. 남극점에 가기 위해서는 최소 50일전, 외교부의 허가서를 취득해야 할 만큼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다. 남극점에 최초로 도달한 사람은 1911년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이다. 그와 선의의 경쟁을 펼친 영국의 탐험가 로버트 팰컨 스콧은 그보다 한 달 뒤 남극점에 당도했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유해로 발견된 바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산악인은 허영호 대장으로 뒤따라 故박영석 대장이 남극점을 정복한 바 있다. 어렵사리 남극점에 도착한 병만 족장은 GPS로 남위 90도 지점을 정확히 확인했다. 남극점을 밟은 김병만은 체감온도 영하 60도에 육박하는 차디찬 남극점의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세상 끝점의 가장 뾰족한 봉우리 위에 한 발로 이렇게 딱 서 있는 느낌”이라며 황홀감을 드러냈다. 남극점은 병만 족장에게 그만큼 꿈의 장소였던 것. 하지만 남극점은 결코 ‘정글의 법칙’ 팀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남극점의 극한 기온에 카메라 장비마저 꽁꽁 얼어붙어 잠시 촬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은 물론, 점점 심해지는 기상악화로 결국 비행기까지 결항됐다. 생존지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남극점에 발이 꽁꽁 묶이고 만 상황에 설상가상, 병만 족장은 남극점의 높은 고도 탓에 고산병까지 심해져 시름시름 앓았다는 후문. 과연, 김병만이 별 탈 없이 생존지로 복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SBS ‘정글의 법칙 in 남극’은 20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사진=SBS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In&Out] 국민 속 ‘성화’는 꺼지지 않는다/이기흥 대한체육회장

    [In&Out] 국민 속 ‘성화’는 꺼지지 않는다/이기흥 대한체육회장

    17일에 걸쳐 75억 지구촌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긴 평창동계올림픽 열전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열흘에 걸쳐 환하게 밤과 낮을 밝혔던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성화도 사그라졌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을 찾은 인류 최대 스포츠 축제였다. 처음엔 과연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 속에 좀 불안하게 출발을 알렸다.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가 여건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저력은 대단했다. 텅텅 빌 것만 같던 관중석이 설 연휴에도 가득 찼다. 적자 올림픽으로 기록될 것이라던 우려도 말끔히 지울 수 있었다. 첨단 과학과 신화가 어우러진 개회식 행사,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움직임, 매끈한 경기운영 위에 하늘이 도운 듯 기온마저도 최적을 뽐냈다. 더욱이 스포트라이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구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합작 ‘팀 코리아’와 남북 공동입장에서 드러낸 평화의 메시지였다. 30년 전 88 서울올림픽이 당시까지 개최됐던 올림픽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앞서 치러진 1980년 모스크바(옛 소련)올림픽, 1984년 LA(미국)올림픽이 이데올로기 대립 탓에 반쪽 대회로 치러졌다가 동서의 이념갈등을 넘어 지구촌을 하나로 묶었다는 점을 손꼽고 있다. 올림픽의 이상인 평화가 분단의 아픔을 겪는 한반도에서 30년 만에 다시 피어났다는 사실은 성공적인 올림픽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우리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고대 올림픽에서도 올림픽 기간 중엔 ‘에케 케이리라’라 해서 상호 침략을 하지 않고 모든 전쟁을 포함해 분쟁도 멈추자는 약속을 한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유엔은 2017년 11월 20일 제72차 본회의에서 올림픽 휴전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은 굳게 닫혔던 문을 열고 선수단을 파견했다. 뿐만 아니라 응원단과 함께 태권도 시범단을 비롯한 문화예술단을 보내옴으로써 평창 벌판을 화합과 평화의 물결로 출렁이게 만들었다. 올림픽 성공 요소는 대회운영, 시설, 안전, 숙박, 교통, 환경 등 다양하지만 그에 못잖게 중요한 게 개최국의 경기력이다. 대회를 준비하는 국민 관심을 높이고 올림픽 열기를 확산하는 기폭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종합 7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모든 메달이 다 값진 것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특히 아시아 최초, 국내 최초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메달을 양산했고 신세대를 주축으로 한 세대교체와 종목 다변화의 꿈을 이룩한 성과를 일궜다. 빙상에 치우쳤던 메달 획득이 설상과 썰매로 한층 확대됐다. 아울러 국민들에게 ‘영미~’ 신드롬을 만들어 낸 여자부 컬링 ‘팀 킴’의 활약은 이번 대회 성과의 백미로 손꼽을 만하지 않을까. 올림픽은 때론 환호 속에, 때론 아쉬움 속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감동과 감격의 장을 열어 주었다. 짧게만 느껴질 정도로 순간순간 기쁨을 선사했다. 어쩌면 우리 세대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열리기 힘든 동계올림픽 성화는 꺼졌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이제 과거로 바뀌었다. 앞으로를 준비하는 시작에서 우린 새로운 도약과 다짐을 하고 신발 끈을 동여맨다. 이번 평창에서의 열기, 그 커다란 함성이 성화 불길처럼 꺼지지 말고 요원의 불길이 되어 다음, 아니 다다음 올림픽까지 계속해서 우리 선수들, 우리 체육인들의 힘과 용기로 타오르길 바란다.
  • 트럼프 “군사 옵션 많다”… 시리아 무력 응징 시사

    트럼프 “군사 옵션 많다”… 시리아 무력 응징 시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화학무기로 반군을 공격한 시리아 정부군을 무력으로 응징할 것임을 시사했다. 정부군 편인 러시아는 미국이 개입하면 실력행사를 하겠다고 맞섰다.설상가상으로 앙숙인 이스라엘과 이란까지 이번 사태에 연루됐다.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시리아 내전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이스라엘 대 러시아·이란의 대리전으로 다시 확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이번 화학무기 사태와 관련, “시리아 정부군은 강력한 대항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군사적으로 많은 옵션이 있다”면서 “잔혹 행위를 그냥 놔둘 수 없다. 미국의 힘으로,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 최소 1대가 시리아 해안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미 해군의 도널드 쿡 구축함이 지중해 동부 해상에 배치돼 있다. 또 다른 구축함 포터도 며칠 안에 시리아에 도착할 수 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민간인 80여명이 사망한 책임을 물어 지중해에 위치한 구축함에서 시리아 공군 기지를 향해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을 퍼부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날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정면충돌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의 손에는 어린아이들의 피가 묻어 있다”면서 “안보리 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미국은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에 연연하지 않고 독자적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미국이) 날조된 구실로 군사력을 쓴다면 중대한 파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이런 입장을 유의미한 채널을 통해 미국에도 이미 전달했다”면서 “러시아 군대는 정통성 있는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배치돼 있다.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공격은 없었다”고도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도 “(반군 장악 지역인) 동(東)구타 두마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전문가들이 (두마의 실상을 촬영한) 소셜미디어의 사진과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희생자들의 증상이 신경 작용제의 증상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반박했다. 앙숙인 이스라엘과 이란도 시리아에서 충돌했다. 이날 새벽 시리아 중부의 T4 공군기지가 폭격당했다. 이 공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원 등 이란군 4명을 포함해 최소 14명이 숨졌다. 러시아와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주장하고 있다. NBC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습했으며, 공격 전에 미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시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 상태다. CNN은 “이스라엘이 화학무기를 빌미로 시리아 내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T4 공군기지는 현재 이란군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무인기 개발을 겨냥해 공습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 7일 두마에 사린가스, 염소가스 등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40~1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TV 사자” 장사진 친 인파

    [그때의 사회면] “TV 사자” 장사진 친 인파

    1962년 2월 17일 아침 서울 중구 태평로1가에 있던 한국방송문화협회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일찍 움직인 사람들은 새벽 다섯 시부터 줄을 섰다. 텔레비전 수상기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었다(경향신문 1962년 2월 17일자). 3000여명의 사람들을 정리하느라 기마경찰과 ‘백차’까지 동원됐다. ‘웨스팅하우스’, ‘RCA’ 등 미국제와 일본제 도시바 TV 구입 신청을 받았는데 가장 비싼 것은 당시 돈으로 최고 25만 6900환이었다. 당시 작은 TV 한 대가 쌀 70가마 값이었다고 한다. 2차 배급분은 1만 2400대였는데 신청자는 6만 5000여명으로 5대1이 넘는 경쟁률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은 면세에 10개월 할부인 데다 몇달 전 KBS TV 방송국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KBS TV 방송국은 1961년 12월 31일 개국했고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 TV 방송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TV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고 수입된 TV 수상기가 8000대 정도 있을 뿐이었다. TV 없는 TV 방송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외국산 TV 2만대를 긴급히 무관세로 들여와 보급했는데 그 TV를 사려는 인파가 몰려든 것이다. 월부 면세 TV를 받으려고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중복 신청한 사람들도 많았다(동아일보, 1962년 3월 22일자). 1963년 TV방송 운영 임시조치법이 시행되면서 TV를 등록하고 한 대에 100원씩 시청료를 받았는데 처음 등록대수가 3만 2097대였다고 한다(블로그 ‘춘하추동방송’).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은 KBS가 아니고 RCA 한국대리점을 운영하던 황태영이라는 민간인이 세운 HLKZ TV였다. 서울 관철동에서 1956년 5월 12일 방송국이 문을 열었는데 TV방송을 처음 본 사람들은 “활동사진 붙은 라디오가 나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 4번째로 TV 방송을 한 나라로 기록됐다. 그러나 광고가 거의 없어 운영난을 겪다 장기영씨에게 양도되었지만 설상가상으로 1959년 2월 방송국에 불이 나 시설이 전소되고 말았다. 이후 이 방송은 AFKN TV 채널을 통해 명맥을 유지하다 KBS TV 개국 직전인 1961년 10월 15일 방송을 중단했다. KBS TV 개국 후 1964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상업 TV방송인 TBC TV가 개국하고 1969년 8월에는 MBC가 TV 방송을 시작함으로써 3대 TV 방송시대가 시작됐다. TV 방송 본격화와 함께 TV 개발에 뛰어든 금성사는 1966년 국내 최초 흑백TV 수상기 ‘VD191’을 만들어 냈다. 그 후부터 TV는 빠른 속도로 보급됐다. 1968년 11만 8000여대, 1970년 37만 9000여대, 1972년에는 90만 5000여대에 이르렀다. 사진은 TV 수상기 신청 계약서를 쓰고 있는 사람들.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집사부일체’ 양세형 “베트남에서 인기, 이승기보다 많다”

    ‘집사부일체’ 양세형 “베트남에서 인기, 이승기보다 많다”

    ‘집사부일체’ 양세형이 베트남에서 굴욕을 당했다.8일 방송되는 SBS ‘집사부일체’에서는 양세형의 베트남 굴욕 에피소드가 공개된다. 이날 방송에서 멤버들은 ‘집사부일체’ 최초 해외에 있는 7번째 사부를 만나러 가기 위해 공항에 모인다. 사부가 있는 곳이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양세형은 “참고로 베트남에 은근히 개그 한류 열풍 있다. 제가 베트남에 가는 거 흘렸나, 안 흘렸나요?”라며 “흘렸으면 저 보디가드 붙여줘야 된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양세형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승기는 “우리가 베트남에 딱 도착했을 때 누가 제일 인기 많은지 한 번 보자”라고 제안했고, 멤버들은 각자 인기 순위를 예상하기 시작했다. 양세형이 “내 예상으로는 성재가 1등, 상윤이 형이 2등, 3등이 나, 4등이 승기”라고 도발하자 이승기는 “한 번 가서 보자”라며 받아들였다. 베트남에 도착하자 멤버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현지 팬들이 몰려들었다. 양세형의 기대와 달리 팬들의 시선은 다른 멤버들에게로 향했다. 설상가상으로 양세형은 인파 속에 묻혀 길을 헤맸다는 후문이다. 한편, SBS ‘집사부일체’는 8일 오후 6시 25분에 방송된다. 사진=SBS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돈 스파이크,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인생 “안면마비+우울증 겪어”

    돈 스파이크,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인생 “안면마비+우울증 겪어”

    먹방으로 뜬 음악인, 돈 스파이크의 인생 이야기가 공개됐다.3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돈 스파이크의 인생 스토리가 전파를 탔다. 돈 스파이크(본명 김민수)는 연세대 작곡과 출신에 김범수를 포함해 많은 뮤지션들이 같이 작업하고 싶은 편곡자이자 작곡가지만 정작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예능 프로그램에서 손으로 뜯어먹는 대형스테이크를 통한 이른바 ‘먹방 요정’ 타이틀 덕분이었다. 대형스테이크는 캠핑과 요리를 즐기는 그가 캠핑 음식을 하다가 개발한 요리다. 유명 작사가이자 여동생인 김민지는 오빠 돈 스파이크가 어렸을 때는 예민하고 여린 소년이었다고 했다. 어린 김민수는 특히 친구와 다투고 뒤돌아서면 미안함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울보였다고. 어머니에 의하면 돈 스파이크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놀라 그 충격으로 입이 돌아갈 정도였고, 이후 살면서 힘든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입이 돌아가 지금까지 5번이나 얼굴 한쪽에 마비가 왔었다. 지금도 그의 얼굴에선 그 후유증이 남아있다. 과거 강남 8학군에 유복하게 살아오던 그가 대학교 2학년, 2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가장이 돼야만 했다. IMF로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가족들이 빚에 허덕였고 설상가상 아버지까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것.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집도 없어 작업실에서 먹고 자야만 했다. 당시 “죽을 만큼 힘들었고, 죽으려고도 했다”는 돈 스파이크. 우울증으로 매일 술도 10-20병씩 마시며 방황했지만 18년째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 아버지의 병원비는 물론 하나뿐인 여동생을 포함해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다. 돈 스파이크가 음악인의 길을 걸으며 민머리를 하고 이름도 돈 스파이크로 정한 것도 자신의 여리고 약한 모습이 싫어서 강하게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자신을 위로해주는 두 가지 취미가 있다. 바로 ‘쇼핑과 여행’이다. 많게는 일주일에 네 번씩도 장을 보러 가는데 상품이 어디 배치돼있는지 위치를 물어보면 로봇처럼 즉각 대답할 정도다. 어머니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사면 끝’, 구매한 물건을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나눠주기 때문이다. 또 빡빡한 스케줄로 아무리 바빠도 여행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훌훌 떠났던 여행이 어느덧 34개국에 이른다고 하는데, 사람이 드문 곳에 혼자 가서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세계를 즐기다 온다. 힘들게 살아왔던 돈 스파이크의 인생 신조는 ‘현재에 충실하자’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람이 좋다’ 돈스파이크, 안면마비+힘들었던 가정사...그의 사연은?

    ‘사람이 좋다’ 돈스파이크, 안면마비+힘들었던 가정사...그의 사연은?

    ‘먹방(먹는 방송)’으로 뜬 음악인 돈스파이크의 인생 이야기가 전파를 탄다.3일 오후 8시 55분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이하 ‘사람이 좋다’)에 음악인 돈스파이크(42·김민수)가 출연한다. 연세대 작곡과 출신인 그는 많은 뮤지션들이 같이 작업하고 싶은 편곡자, 작곡자로 꼽힌다. 하지만 돈스파이크가 크게 주목받은 건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돈스테이크’ 덕분.돈스파이크는 이날 ‘사람이 좋다’에서 손으로 뜯어먹는 거대 스테이크인 ‘돈스테이크’의 탄생 비화와 함께 그간 방송에서 말하지 않았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민머리에 강해보이지만 ‘예민한 소년’ 돈 스파이크. 얼굴 마비가 온 사연은? 유명 작사가이자 여동생인 김민지는 오빠 돈 스파이크가 어렸을 때는 예민하고 여린 소년이었다고 한다.어린 김민수는 특히 친구와 다투고 뒤돌아서면 미안함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울보였다. 그의 어머니에 의하면 돈 스파이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놀라 그 충격으로 입이 돌아갈 정도였고, 이후 살면서 힘든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입이 돌아가 지금까지 5번이나 얼굴 한쪽에 마비가 왔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얼굴에선 그 후유증이 남아있다. ▲18년째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돈 스파이크 강남 8학군에 유복하게 살아오던 그가 대학교 2학년, 21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가장이 돼야만 했다. IMF로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가족들이 빚에 허덕였고, 설상가상 아버지까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것.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집도 없어 작업실에서 먹고 자야만 했다. 당시 “죽을 만큼 힘들었고, 죽으려고도 했다”는 돈 스파이크. 우울증으로 매일 술도 10-20병씩 마시며 방황했지만 18년째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으로 아버지의 병원비는 물론 하나뿐인 여동생을 포함해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다. 돈 스파이크가 음악인의 길을 걸으며 민머리를 하고 이름도 ‘돈 스파이크’로 정한 것도 자신의 여리고 약한 모습이 싫어서 강하게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족을 향한 그의 진심어린 속마음을 들어본다.▲‘현재에 충실하자’ 쇼핑과 여행은 나를 위한 선물 힘들게 살아왔던 돈 스파이크의 인생 신조는? ‘현재에 충실하자’다. 그에겐 자신을 위로해주는 두 가지 취미가 있다. 바로 ‘쇼핑과 여행’이다. 많게는 일주일에 네 번씩도 장을 보러 가는데 상품이 어디 배치돼있는지 위치를 물어보면 로봇처럼 즉각 대답할 정도다. 어머니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사면 끝’. 구매한 물건을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나눠주기 때문이라 한다. 또 빡빡한 스케줄로 아무리 바빠도 여행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훌훌 떠났던 여행이 어느덧 34개국에 이른다고 하는데 사람이 드문 곳에 혼자 가서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세계를 즐기다 온다고 한다. ‘사연 많은 남자’ 돈 스파이크의 이야기는 이날(3일) 오후 8시 55분 MBC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M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낙랑=요동설 vs 낙랑=평양설… 北·中 국가대항전으로 번지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낙랑=요동설 vs 낙랑=평양설… 北·中 국가대항전으로 번지다

    한사군의 중심군현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 한국의 고대사학계는 평양이라고 주장한다. 2017년경에는 이른바 젊은 역사학자들이 여럿 나서서 이런 주장을 되풀이했는데, 한 보수 언론은 이들에게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나아가 이들은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질문에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한국일보’, 2017년 6월 5일)”라고 말했다.●南학계는 일제 학자 주장 비판 없이 수용 이들의 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100년 전 조선총독부에서 ‘낙랑군=평양’이라고 못 박은 이후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논쟁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이라고 한·중 사료에 숱하게 나오는 고려·조선의 북방강역을 함경남도 함흥평야로 조작한 이케우치 히로시의 설을 지금껏 추종하는 것처럼 일체의 논쟁 없이 추종한다는 뜻이다. ‘낙랑군=평양’설에 대한 비판은 숱하게 있었다. ‘후한서’(後漢書)의 ‘광무제본기’ 주석에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在遼東)”라고 말한 것을 비롯해서 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중국 사료가 숱하기 때문이다.●北 고조선 노예제와 왕험·낙랑 규명 논쟁 그럼 북한 학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 학계도 남한처럼 ‘낙랑군=평양’설이 100년 전에 논증이 끝난 문제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남한과 다른 것은 북한 학계가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북한 학계의 고조선사 논쟁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고조선의 사회 성격에 대한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고조선의 강역과 중심지, 즉 왕험성의 위치와 낙랑군의 소재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고조선의 사회 성격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설 중에 어느 단계에 해당하는가의 문제였다. 마르크스는 인류 사회의 생산 관계를 토대로 ‘①원시 공동체 사회→②고대 노예제 사회→③중세 봉건제 사회→④근대 자본주의 사회→⑤공산주의 사회’의 다섯 단계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이중 고조선의 사회 성격이 노예제 사회인지 봉건제 사회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사회경제사학자 김광진(金洸鎭)은 ‘력사과학’ 1955년 8~9호에 발표한 ‘조선에 있어서 봉건 제도의 발생 과정’에서 조선 역사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1935년 철학박사 학위를 딴 고고학자 도유호(都宥浩)가 ‘력사과학’ 1956년 3호에 ‘조선 력사상에는 과연 노예제 사회가 없었는가’를 발표해 김광진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노예제 사회가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김광진이 재반박하면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10여 차례의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 논쟁은 경성제대 출신의 김석형이 ‘력사과학’ 1961년 3호에 ‘조선 고대사 연구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리론상의 문제’를 발표함으로써 정리돼 갔다. 노예제 사회였던 고조선이 봉건제 사회인 고구려·백제·신라로 발전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이론이 북한 학자들의 지지를 얻어가면서 고조선은 노예제 사회로, 삼국은 봉건제 사회로 견해가 정리됐다. 고조선이 노예제 사회라는 것은 나중에 요동반도의 강상 무덤과 누상 무덤에서 대규모 순장(殉葬) 유골이 발굴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낙랑=평양설 北서 中사료 근거로 비판 고조선의 수도인 왕험성과 낙랑군의 위치 문제도 숱한 논쟁을 거쳤다. 도유호를 비롯한 고고학자들도 처음에는 고조선의 도읍과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으로 보았다. 그러자 문헌 사학자들이 중국 사료를 근거로 평양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와중인 1958년 북한은 리지린이란 학자를 북경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보내 고조선사를 연구하게 했다. 와세다대 출신의 리지린은 해방 후 과학원 력사연구소 고대사연구실에서 근무했고, 1959년 ‘력사과학’ 5호에 ‘광개토왕비 발견 경위에 대하여’를 발표했지만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유학생으로 선발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북경대 지도교수가 고사변(古史辨) 학파의 중심이었던 구제강(顧剛·1893~1980)이란 사실은 범상한 대목이 아니었다. 중국의 신문화운동을 이끌었던 고사변 학파는 중국인들이 그간 사실로 받아들였던 숱한 역사적 상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옛것을 의심해서 가짜를 판별한다”(疑古辨僞)라는 말로 상징되는 고사변 학파는 구제강과 첸쉬안퉁(錢玄同·1887~1939), 북경대 총장을 역임한 후스(胡適·1891~1962) 등이 중심이었다. 이중 첸쉬안퉁은 한자(漢字)를 폐지하고 로마자 식의 병음자모로 바꿔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고사변 학파는 중국 고대사의 숱한 문적들은 유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심지어 공자가 쓴 ‘춘추’(春秋)도 공자가 아닌 노(魯)나라 사관들이 집단으로 쓴 것이라고 보았다. 구제강은 ‘첸쉬안퉁 선생과 고대 사서(史書)를 논하다’(與錢玄同先生論古史書)라는 논문 등에서 중국 고대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 속 고대사의 기간이 더욱 길어진다”는 것이다. 주(周)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오래된 전설상의 인물은 우(禹)였는데, 공자 때에는 요순(堯舜)으로 끌어올려졌고, 전국(戰國)시대에는 다시 황제(黃帝)·신농(神農)씨로 끌어올려지고, 진(秦)나라 때 삼황(三皇)이 나오고, 한(漢)나라 이후 반고(盤古)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대가 뒤로 갈수록 전설상 중심인물에 대한 내용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공자 때의 순(舜)임금은 ‘다스리지 않고도 다스려지는(無爲而治)의 성군(聖君)’이었지만 맹자(孟子) 때에는 효자의 모범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1926년 ‘고사변’ 제1권을 출간한 이래 1941년의 7권까지 350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사마천 이래 이른바 ‘중국을 위해 치욕의 역사는 감춘다’는 ‘위한휘치’(爲漢諱恥)의 춘추필법으로 중국의 사가들이 왜곡했던 이(夷)의 역사, 즉 한국 고대사를 새롭게 밝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유학사관 비판 구제강, 중화사관 못 벗어 그러나 고사변 학파의 중심인물인 구제강 자신은 끝내 ‘위한휘치’의 춘추필법을 벗어나지 못한 중화주의 역사가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차지하고, 만주와 몽골을 중국 본토에서 분리시키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을 제창하고, ‘중국본토론’을 내세우자 구제강은 1936년 ‘변강연구회’(邊疆硏究會)를 창립해 이에 맞섰다. 일제의 ‘중국본토론’은 만주·몽골과 조선 등은 중국의 영토가 아니니 중국은 본토에 대해서만 통치권을 가진다는 이론이었다. 곧 일제가 만주·몽골을 차지하겠다는 것인데 구제강은 이에 맞서 만주·몽골 등은 중국사의 강역이란 논리로 맞섰다. 구제강은 1939년 2월 자신이 주간을 맡고 있는 ‘변강주간’(邊疆周刊)에 ‘중화민족은 하나’라는 글을 게재해 여러 민족의 혼합으로 중화민족이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 한족(漢族)과 55개 소수민족이 하나의 ‘중화민족’이란 논리로 소수민족의 강역을 중국 영토라고 우기는 국가 이념의 토대가 됐다. 그는 또 운남(雲南)에서 발행하던 ‘익세보’(益世報)에 “‘중국본부’라는 한 이름은 빨리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평론에서 중국인들이 중화와 이민족을 나누는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을 비판했다. ‘중국본부’라는 용어를 쓰면 일제가 만주와 몽골을 낚아채 갈 것이라는 경고였다. 고사변 학파를 주도할 때는 유학사관이 왜곡한 고대사를 의심하자던 구제강은 막상 한중 고대사에 이르자 중화 사관으로 돌아섰다. 좋게 말하면 애국적 중화 사가(史家)가 된 것이었다. 그는 위만조선의 도읍이 대동강 남쪽에 있었고, 따라서 낙랑군도 평양에 있었다는 ‘낙랑=평양’설을 주장했다. 따라서 북한에서 온 유학생 리지린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리지린은 중국 고대사서에 ‘낙랑=요동’설이 숱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구제강의 학문 지도를 받기 위해서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 단지 학위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지도교수인 구제강과 제자 리지린 사이에 일종의 국가대항전이 전개되는 셈이었다. <계속> 北·中 공동 고고유물 발굴 1964년 강상·누상무덤서 ‘요동도 고조선 강역’ 고증 북한은 중국과 1963년 조·중 고고발굴대를 조직해서 만주 지역의 고고유물 발굴에 나섰다. 1964년 요동(遼東)반도 끝자락 여대시(旅大市·여순과 대련)의 감정자구(甘井子區) 후목성역(後牧城驛)에서 강상(崗上) 무덤과 누상(樓上) 무덤이 발굴되면서 고조선의 강역이 평남에 국한되었다는 조선총독부의 주장과 달리 만주까지 걸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기전 8~7세기쯤의 무덤인 강상 무덤에서는 140명의 순장(殉葬) 무덤이 발견됐고, 누상 무덤에서도 주인을 따라서 죽인 50여명의 순장 무덤이 발견됐다. 고조선이 노예를 순장했던 노예제 사회였다는 사실이 유적·유물로 드러난 것이었다.
  • “한국, 동계 스포츠 강국 넘어 ‘스포츠 선진국’ 초석 놓았다”

    “한국, 동계 스포츠 강국 넘어 ‘스포츠 선진국’ 초석 놓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2월 9~25일)과 평창동계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3월 9~18일)이 크고 작은 우려를 말끔히 씻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대회 전만 해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남북 단일팀, 개회식 추위, 흥행 부진 등을 비롯한 각종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평창을 밝힌 남북한 선수들의 하나 된 모습과 자원봉사자들의 미소는 전 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젠 평창 대회의 레거시(유산)를 발전시키는 과제만 남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서울신문은 지난 2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사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성과와 향후 과제 전문가 대담’을 진행했다. 김주호 평창조직위 기획홍보 부위원장,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박종완 강원도 올림픽운영국 총괄관리과장, 전혜자 대한장애인체육회 사무총장이 2시간 남짓 토론을 벌였다. 송한수 서울신문 체육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평창 대회가 남긴 성과들 사회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박 과장 강원도는 전국 인구의 3%에 불과하다. 적은 인원이 성공적으로 치러내 강원도에 자부심을 느낀다. 외국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니 95%가 친절했다고 답했다. 숙박 시설도 80% 이상이 만족했다. 손님맞이 부분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전 사무총장 한국 선수단은 평창패럴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공동 16위에 올랐다. 비장애인도 설상 종목에서 메달을 따기 어려운데 크로스컨트리스키에서 신의현이 메달(금 1, 동 1)을 캔 것은 큰 성과다. 앞으로 장애인 동계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회 기간 동안 가족 단위 관중이 많이 오셔서 감사하다. 애처로운 눈빛이 아니라 패럴림픽도 스포츠로 봐 줘서 가슴이 뭉클했다. 올림픽에서 나온 문제점이 보완돼서 패럴림픽을 더 잘 치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유 위원 여러 악조건 때문에 1년 전만 해도 잘 치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 리스크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평창선수촌장을 하면서 운영 시설이나 숙박, 음식이 너무 좋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저 또한 IOC 위원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했다. 대회 기간 IOC 내부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는데 문제점이 거의 지적되지 않았다. 평창대회가 우리나라가 강조해 온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초석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적과 상관없이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에 관중들이 박수 쳐 줄 때 감격스러웠다. 구 교수 스포츠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민족주의를 고양시키고 국격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인식됐다면 이젠 시대가 변했다.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그 자체를 즐기게 됐다. 이번에 한국 선수들이 따낸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도 금메달 못지않은 가치가 있었다. 금메달에만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메달을 못 땄다 해도 그게 대수냐는 태도가 보였다. 스포츠의 의미가 재정립된 것 아닌가 싶다. ●‘북한 리스크’ 잠재운 평화올림픽 사회 평화 올림픽으로 불리며 논란도 많았는데. 구 교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단계에서 선수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어려운 환경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운동하거나 꿈을 이루기 위해 멀리 미국에서 온 선수들인데 이들의 감성을 이해하는 게 스포츠 정신이란 것이다. 젊은층에서 남북 단일팀이 불공정하다고 답한 비율이 80~85%나 된다. 올림픽이 정치화됐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 기회에 북한과 지속적으로 교류해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게 과제이자 유의미한 성취였다고 생각한다. 김 부위원장 지난해 말을 돌이켜보면 안전 문제 때문에 몇몇 나라에서 올림픽에 안 오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이 지속되면 10~20개 나라가 못 오겠다 선언할 수 있다. 평창조직위와 정부에서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설득에 나섰다. 그런 와중에 여러 가지 제안을 통해 북한이 평창에 오게 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때 상황을 잊어버렸다. 단일팀 이슈가 터진 것이다. 옛날 같으면 북한이 온다는 것만 해도 굉장히 신기하고 박수 칠 상황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놀랐다. 아마 정치권에서도 당황했을 것이다. 대회 때도 그런 문제로만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면서 서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북한 참여라는 것이 마지막 톱니바퀴로 끼워지면서 전체 올림픽 가치를 실현하는 데 일조했다. 유 위원 단일팀 결성에 급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회를 위해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다. 마음이 무겁고 너무 미안했다. 그렇더라도 이미 결정된 뒤엔 빨리 준비해야 하는데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몰려 걱정이었다. 나중에 단일팀 첫 경기를 현장에서 봤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대회를 통해 지금 (남북 관계가) 진행되는 것들을 보면 놀랍게 빨리 잘되는 것 같다. 올림픽이라는 힘이 주는 사회 변화가 굉장하다고 느꼈다. 박 과장 전 세계에서 분단된 도(道)는 강원도 하나밖에 없다. 이번에 북한 선수들이 평창에 오면서 굉장한 친밀감이 생겼다. 과거 강원도에서 남북 교류가 활발했는데 도민들도 이번 계기로 다시 교류가 이어질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대회 기간 아쉬운 점들 사회 대회를 잘 치렀지만, 빛에는 그림자도 따르기 마련이다.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박 과장 장애인 아이스하키 체코와의 예선 2차전에선 정승환이 연장 시작 13초 만에 서든데스로 골을 성공시키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7000여 관중들이 감격해 경기 후에도 1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거기서 장애인 스포츠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중계가 안 됐다. 전 국민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전 사무총장 다행히 대통령께서 패럴림픽 중계에 대해 지적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하다. 발언 이후 생방송 시간이 바로 많아졌다. 유 위원 대회가 끝나고 재방송이 여러 번 나오면서 여운을 느끼면 좋은데 지금 그렇지 않다. 올림픽을 치른 국민들의 관심도 레거시(유산) 가운데 하나다. 관심이 너무 빨리 식지 않게 도와주면 좋겠다. 김 부위원장 노로바이러스와 수송·숙소 관련 문제가 초반에 조금 심각했다. 기존 보안 요원을 격리시키고 국방부에 요청해 군인들에게 지원을 받았다. 소도시에 인원이 몰리다 보니 길이 막혀서 차량이 늦게 왔다. 좋은 호텔은 임자가 있어 자원봉사자들은 1시간 걸리는 곳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잘 해결됐지만 면밀하게 준비했으면 더 좋았겠다.●‘올림픽 유산’ 발전 과제는 사회 올림픽 레거시를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 박 과장 정부에서 경기장 사후 관리에 대해 국비 보조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굉장히 감사하다. 다만 국고 보조 비율을 높였으면 한다. 경기장 시설에 1조원 들어갔다. 그것을 유지하려면 힘들다. 유 위원 앞으로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선수들은 가장 비슷한 시설을 찾아 전지훈련과 경기를 하고 싶어 한다. 최신 올림픽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평창에서 이를 유치할 절호의 기회다. 아이디어를 잘 짜서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구 교수 대회 기간 드러난 빙상계 비리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정하고 충분하게 조사를 벌여야 한다. 이번 기회에 갑질 없는 체육계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평창 블로그] 인공 눈마저 금세 녹고…소금 뿌려가며 결빙 진땀

    평창패럴림픽 설상 종목을 치르는 평창과 정선의 경기장은 설질 관리에 비상입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이죠. 16일 스노보드 남녀 뱅크드 슬라롬 경기가 열린 강원 정선 알파인스키장엔 밤새 2~3㎝의 적설량을 기록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경기를 앞두고 경기 운영인력들은 쌓인 눈을 치우느라 바빴습니다. ‘스키장에 눈이 폭신하게 쌓이면 눈을 만들 필요도 없고 좋지 않으냐’고 되물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른 눈 위를 달리다 선수들이 넘어질 수 있죠. 경기 중 눈이 녹으면 처음 달리는 게 유리해 형평에 어긋나기도 합니다. 조직위원회는 슬로프에 눈을 1.5m가량 쌓아 두고 물을 뿌리면서 코스를 단단한 얼음처럼 유지합니다. 3월 대회라 높은 기온으로 애써 얼린 눈이 녹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알파인스키 대회전을 치른 지난 14일 정선은 최고기온 21.3도를 찍었습니다. 운영인력들은 경기 전날과 경기 직전, 중간 휴식시간마다 눈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소금은 수분을 흡수하며 열을 내는데, 적설량 몇㎝인 도로와 달리 1m 이상 쌓인 슬로프에서는 열을 조금 내는 반면, 녹은 눈을 순간적으로 다시 뭉쳐 얼리는 역할을 합니다. 조직위는 지난 3일 패럴림픽 공식훈련 시작과 함께 정선 알파인경기장에만 20t을 뿌렸답니다. 15일엔 최고기온 13.9도로 내렸지만 비가 내려 또 애를 태웠습니다. 슬로프의 눈이 물을 머금어 조금 오른 기온에도 쉽게 녹기 때문입니다. 경기 중 물 먹은 눈 위에서 속도를 내면 눈이 쉽게 파여 넘어질 수도 있대요. 그렇다고 비를 맞으며 정설 차량을 운행하거나 소금을 뿌릴 수도 없기에 관계자들은 상황을 파악하느라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16일 다행히 아침 최저 0.1도, 낮 최고 3.4도로 기온이 떨어져 걱정을 덜었죠. 하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비가 눈으로 변하며 운영인력들은 옷장 속 패딩을 꺼내 입고 눈을 치웠습니다. 17일 정선 최고기온이 14도까지 오른다니 다시 소금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선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감사 나눔으로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그게 진정한 사회변혁”

    [인터뷰 플러스] “감사 나눔으로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그게 진정한 사회변혁”

    2010년부터 전국의 기업, 병원, 학교, 부대, 지자체 등을 돌면서 900회 이상 감사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해온 남자가 있다, 그는 2013년부터 짧지만 강렬한 감사 메시지를 작성해 출근 시간에 SNS로 세상 사람들과 공유했다. 이 감사 메시지가 아들의 군 입대를 계기로 2015년부터 60만 장병이 보는 국방일보에도 연재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고령자 어르신들의 짤막한 자서전을 지역신문에 게재하고 후손들이 감사편지로 화답하는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 소장(53)이 ‘감사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정 소장은 10년 전만 해도 언론계에서 ‘싸움꾼 기자’의 1세대로 불리며 필명을 날렸던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월간 말, 오마이뉴스 등에서 활동하며 우리 사회에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논쟁적 기사를 남겼다. 1998년부터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비리 의혹을 추적하며 ‘안티조선 전문기자’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2004년에는 ‘한국판 롤콜’을 표방하며 국회·입법전문지 여의도통신 창간을 주도해 정치권과 언론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널리스트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정 소장이 감사에 주목한 계기는 사회적 좌절 때문이었다. 너무 앞서나간 선택이었는지 2009년 여의도통신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좌절은 이 싸움꾼 기자로 하여금 ‘감사’라는 새로운 희망에 눈뜨게 해주었다. 2009년 12월 당시 손욱 농심 회장과 김용환 감사나눔신문 대표를 만나면서 사단법인 행복나눔125(1주1선행, 1월2독서, 1일5감사) 창립과 감사나눔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했다. 그때부터 정 소장은 스스로 감사를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감사일기와 함께 감사 메시지를 써왔다. 감사 나눔을 통해 공동체가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이 진정한 사회변혁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감사경영연구소 소장과 경희대학교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싸움꾼 기자’가 ‘감사 아이콘’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젊은 시절 시사지 기자로 일하면서 논쟁적인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그때 붙었던 별명이 ‘싸움꾼 기자’였지요. 당시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정작 내면의 풍요와 가족의 행복은 돌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아들이 당시 저를 ‘잠만 자고 가는 하숙생’ 같다고 했을까요. 준비 기간을 포함해 10년 동안 열정을 불태웠던 여의도통신의 폐간이 저에게 안겨준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마저 제게 냉랭하게 대했지요. 그런 절망의 벼랑 끝에서 만난 것이 바로 ‘감사’였습니다. →감사와 만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감사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자로 20년 가까이 살아오다 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마저 못 하면 아예 그만두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도전에 나섰지요. 우선 작은 노트를 마련하고 100일 동안 무조건 하루 100번씩 “감사합니다”라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감사’ 두 글자만 대충 쓰는 등 요령을 피웠지만 나중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다섯 글자를 또박또박 온전하게 썼습니다. 며칠 후부터는 그 밑에다 ‘그 날의 감사한 일’ 세 가지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세 가지가 나중에는 다섯 가지로 자연스럽게 늘어났지요. 이 훈련은 작은 노트 세 권을 채우고서야 100일 만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100일 동안 중요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어떤 변화였습니까? -23일째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로 문안인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51일째 중학교 3학년 아들에게 잠언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64일째 평생 금연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4일째 되던 날 저만 보면 복수 하고 싶다던 아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채소 샐러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98일째 되던 날에는 저를 피하기만 하던 아들에게서 “행복해요”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변화가 참 신기했습니다. 그저 노트에 두 글자, 다섯 글자, 세 가지 감사, 다섯 가지 감사를 적었을 뿐인데, 제2의 인생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이 모두 이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감사일기 쓰기를 일상적 습관으로 만드는 일에 성공하면서 제 삶은 완전히 뒤집어졌지요. 저의 심경 변화는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마저 변하게 했습니다. →SERICEO 동영상 강연 ‘아빠의 감사가 아들의 얼굴을 바꾼다’를 계기로 유명 강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켈트너와 하커 교수는 밀스여대의 1960년도 졸업생 141명을 대상으로 독특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졸업 앨범에서 환한 미소를 지은 사람을 가려낸 다음 30년 동안 이들의 결혼이나 생활 만족도를 추적 조사한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졸업사진에서 환한 미소를 지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성공하고,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를 보고 저는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신청한 아들의 졸업앨범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숙생 아빠’였던 시절 아들은 중학교 앨범에서 ‘우수에 젖은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제가 감사생활을 시작하고 3년이 흐른 뒤에 찍은 고교 앨범에선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대조적인 두 장의 사진을 목격한 순간, 저는 감격 또 감격했습니다. 매일 아침 머리맡에서 잠언을 읽어주고 잠들기 전에 감사일기 쓰는 뒷모습을 보여줬을 뿐인데 엄청난 선물을 받은 셈이었죠. 이 사연이 SERICEO를 통해 알려진 후 여기저기서 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감사 나눔은 결국 가정의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봐야겠군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감사 나눔을 조직문화로 도입한 기업의 직원들과 만날 때마다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밥상이 달라졌어요.” “닭살 부부가 됐어요.” “결혼 16년 차 아내와 손잡고 거리를 다녀요.” “아이가 현관까지 나와서 인사를 해요.” “아이가 먼저 공부하고 싶다며 독서실 티켓을 끊어달라고 하네요.” 이런 말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근할 때 콧노래가 절로 나와요.” “일터에서 반원들과 사이가 좋아졌고 갈등이 해소되었어요.” 실제로 감사 나눔은 가족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가정에서 감사 나눔으로 충전된 행복 에너지가 기업의 소통과 성과 창출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가정의 변화가 회사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군요? -실제로 회식문화에도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포스코ICT의 한 직원은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추진하던 발주업체, 하도급업체 직원들과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서 건배 제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먹고 죽자!’ ‘위하여!’ 그동안 회식 자리에서 흔히 해왔던 건배사였죠. 회사에서 감사경영을 실행하던 분위기에 힘입어 그 직원은 용기를 냈습니다. “한 사람씩 일어나 나머지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선정해 그에게 감사한 일 3가지 이상 말하고 앉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지요. 하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한 사람에게 감사와 칭찬을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쭈뼛거리며 일어나 감사와 칭찬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과 사뭇 다른 회식 분위기에 사람들은 어색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이 다른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서로에게 커피를 권하며 다시 감사를 표시했던 겁니다. 물론 당시 함께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충북의 옥천신문과 손잡고 추진하는 ‘은빛자서전 프로젝트’의 취지는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어르신들의 구술(口述)을 풀어낸 자서전을 신문에 게재하고, 자녀와 손주 등 후손들이 감사편지로 화답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콘텐츠는 해당 어르신이 별세하면 ‘조문보(弔問報)’로 변신해 장례식장에 비치할 예정입니다. ‘풀뿌리 언론개혁의 성지’로 불렸던 옥천에서 ‘감사가 넘치는 건강한 장례문화 조성’이라는 또 하나의 작은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7명을 인터뷰했는데, 인생스토리 하나하나가 다큐영화 ‘워낭소리’를 연상케 했습니다. 후손들이 감사편지를 빠짐없이 보내와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세대 간 대화로서의 감사나눔운동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날 선 비난과 냉소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저변에선 감사와 사랑의 마음도 용암처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 꿈꾸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조성되면 지역 내 어르신은 물론이고 출향한 자녀까지 참여하는 ‘자서전 글쓰기 교실’과 ‘부모님께 감사편지 쓰기운동’도 추진할 구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의 청소년들과 함께 어르신을 찾아뵙는 ´구술 생애사´ 동아리를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기업사회공헌(CSR) 예산이나 독지가의 기부가 이런 곳에 쓰인다면 참 좋겠습니다. 인구 5만의 옥천에서 이 실험이 성공하면 5천만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250여개 지자체로도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 소장은 1965년 경기 여주 출생 현 감사경영연구소 소장 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 1987년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전대협(1기) 의장권한대행 / 1994년 월간 말 기자(2000년 한국잡지협회 ‘올해의 기자상’ 수상), 오마이뉴스 기자 / 2003년 시민의신문 취재부장, 여의도통신 편집국장 / 2010년 감사나눔신문 편집국장, 사단법인 행복나눔125 홍보실장 / 기업, 병원, 학교, 부대, 지자체 등에서 900회 이상 감사 강연, 워크숍 진행 /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동영상 강연 5회 출연(‘아빠의 감사’편 주간베스트 1위) / 한전인재개발원, 새마을금고연수원,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사외강사 / 시사인 ‘싸움꾼 기자, 감사와 나눔의 마력에 빠지다’ 보도 / 월간 아버지 ‘감사를 말하다 삶이 바뀐 가족 이야기’ 보도 / CBS 변상욱의 이야기쇼 ‘이 사람이 사는 법’ 출연 / 국방TV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출연 / 2015년 7월 1일부터 국방일보에 미니칼럼 ‘30초 감사’ 연재 / 인간개발연구원 편집위원, 허임기념사업회 이사,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 / ‘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 레시피’, ‘30초 감사’, ‘감사 365’ 등 저서 10권
  • [평창 블로그] 완판쇼, 노쇼, 만원쇼

    [평창 블로그] 완판쇼, 노쇼, 만원쇼

    입장권 판매 대박에도 객석 썰렁 설상 종목 폭우예보로 연기되자 단체 관람 학생에 빙상 관람 허용 완판 컬링·아이스하키 관중 빼곡 환불 사태 우려 막은 조직위 안도 평창패럴림픽조직위원회가 연일 ‘대박 흥행’에 웃음바다입니다. 지난 12일까지 판매된 입장권이 32만장으로, 목표(22만장)의 146%를 찍었습니다. 패럴림픽 사상 최고치입니다. 이런 ‘완판’에도 불구하고 관중석 곳곳에 빈 자리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기도 하죠. 그래서 조직위는 입장권을 구입하고도 경기장을 찾지 않는 ‘노쇼(No-Show)에 민감한 반응인데요. 그런데 15일만큼은 ‘노쇼’를 크게 반겼습니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요. 조직위는 이날 강원 평창과 정선에 폭우 예보로 부랴부랴 알파인스키 여자 회전 경기를 18일로 연기했습니다. 설상 종목은 단 한 경기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미 티켓을 구입한 고객입니다. 18일 관람하면 깔끔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관중도 있겠죠. 이 가운데 학사 일정상 관람일을 바꿀 수 없는 학생 1600명도 포함됐습니다. 조직위는 이날 유일하게 경기하는 강릉하키센터와 컬링센터로 학생들을 800명씩 나눠 입장시켰는데요. 물론 이 경기들도 이미 완판된 터였습니다. 산술적으로 ‘오버 부킹’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럼에도 조직위가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바로 노쇼입니다. 평창패럴림픽 노쇼 비율은 평균 27%이니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론 간당간당했습니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4강전인 한국-캐나다 경기가 열린 강릉하키센터엔 만원 관중으로 꽉 찼어요. 관중석만 보면 패럴림픽인지, 남북한 단일팀 경기를 치르는 올림픽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응원 장비까지 동원해 ‘대~한민국’을 목놓아 외쳤습니다. 한국-영국 경기가 진행된 컬링센터에도 빈 자리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직위 관계자는 “원래 없어야 할 것이지만 15일만큼은 노쇼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인 게 사실”이라며 “큰 문제 없이 만원 관중으로 경기를 치러 천만다행”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관중석도 채우고 환불도 막은, 노쇼가 만든 아이러니입니다. 강릉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날 풀리고 표 풀리니… 관중석도 빼곡

    평창동계패럴림픽이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관중석이 붐비고 있다. 14일 평창패럴림픽조직위에 따르면 패럴림픽 개막 이후 대부분의 경기장이 관중 부족으로 썰렁한 모습이었지만 이날부터 선수·임원 가족석에 대한 입장권 현장 판매를 늘리면서 관중들이 경기장을 다시 찾아 성황을 이루고 있다. 패럴림픽 입장권은 모두 32만 8000장이 팔렸다. 당초 목표보다 10만장 이상 초과한 수치다. 하지만 정작 예약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지 않아 관중석은 썰렁한 모습이 이어져 왔다. 특히 아이스하키와 컬링 등 한국 선수들이 펼치는 일부 인기 종목에는 관중들이 찾았지만 설상 종목인 정선 알파인경기장과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크로스컨트리센터 등에는 관중이 적었다. 예약 관중의 노쇼와 현장 판매가 없어 9일 패럴림픽 개막 이후 지난 13일 현재까지 설상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13만 4190명에 그쳤다. 경기장이 썰렁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조직위는 13일부터 운영 인력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모든 경기장의 무료 관람 및 응원을 허용했다. 14일부터는 하루 947석에 이르는 선수·임원·가족·기자석 일부에 일반인들도 현장에서 표를 구입해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수도권 등 전국에서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위해 단체로 찾는 것도 관중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15일에도 학생 2600여명이 경기장을 찾는다. 최명규 2018 평창조직위 홍보협력차장은 “날씨가 좋아지고 방송사들이 중계 시간을 늘린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1000석에 가까운 선수·임원 가족들의 자리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현장 판매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강릉·평창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낮 최고 16도·비 오고 눈 녹고… 최대 복병 된 날씨

    ‘심술쟁이’ 평창 날씨가 순항하던 평창동계패럴림픽의 최대 복병으로 떠올랐다. 이번 주에 비 예보가 있는데다 기온마저 치솟으면서 대회 일정뿐 아니라 선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평창패럴림픽 기상예보센터는 15~16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일대에 비와 눈이 온다고 13일 밝혔다. 센터 관계자는 “15일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16일 새벽엔 기온이 내려가면서 눈으로 바뀔 것”이라며 “강수량은 20㎜ 이상, 적설량은 2~5㎝”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알파인스키 경기 일정이 급하게 조정됐다. 평창패럴림픽조직위원회는 “각각 17, 18일에 예정된 남녀 대회전 경기 날짜를 앞당겨 모두 14일에 치르고 14일 예정된 남자 회전은 17일, 15일 여자 회전은 18일로 늦춰 경기한다”고 긴급 공지했다. 대회전과 회전 경기 일정을 바꾼 이유는 대회전이 회전보다 코스가 길어 폭우가 올 경우 취소될 수 있어서다. 기온도 갑작스레 올라 변수로 작용한다. 이날 대관령 낮 최고 기온은 13도로 올 들어 가장 따뜻했다. 바이애슬론 남자 12.5㎞ 좌식 경기에선 반팔 차림의 선수도 등장했다. 특히 녹은 눈이 스키대에 쌓이면서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14일엔 낮 최고 기온이 16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보됐다. 설상 경기가 열리는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뿐 아니라 정선 알파인경기장의 설질이 더 나빠지게 됐다. 한 달 전 ‘대관령 칼바람’으로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면서 역대 가장 추운 동계올림픽이란 소리가 나왔던 곳이 이젠 따뜻한 날씨와 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평창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공릉장·문산포 시장은 조선시대 전국 10대 장시”

    “공릉장·문산포 시장은 조선시대 전국 10대 장시”

    조선시대 파주는 교통 요지에 자리잡아 정기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지역이었다.이윤희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은 13일 “조선시대에는 서울 등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상설상점이 없었고 전국 10대 5일장에 두 곳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정기시장이 발달해 있었다”고 설명했다. 1830년 편찬된 서유구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를 보면 당시 파주는 공릉장(‘봉일천장’으로도 불림), 문산포장, 눌노장, 원기장(법원리), 신화리장(금촌), 삽교장(교하 삽다리) 등의 장시(5일장)가 있었다. 그중 개성과 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에 있던 공릉장과 임진강 지류 하동마을에 위치해 상선이 드나들던 문산포장은 전국 대표급 시장이었다. 봉일천장은 조선후기부터 경기 5대 장시로, 문산포장은 전국 10대 장시로 손꼽혔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으로 분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찬가지다. 1938년 서울·경기·개성 일대 102개 재래시장 가운데 연간 거래 규모액 기준으로 볼 때 공릉장이 10위, 문산포장이 11위였다. 공릉장의 연간 거래 규모는 65만 4064원, 문산포장은 55만 4250원이었다. 공릉장의 거래 금액 중 약 87%는 가축 거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로지 상품시장이었던 문산포장이 얼마나 커다란 시장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장은 “당시 파주의 6개 정기시장 중 전국적으로도 유명했던 대시는 공릉장과 문산포장이었다”면서 “공릉장은 소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전국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문산포장은 각종 물화의 집산지로 유명했다”고 강조했다. 현재 파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촌장은 경의선 철도 개통 이후 교통요지인 금촌역 부근에 새로 발생한 시장이다. 1938년 기준 연간 거래 규모는 문산포장의 16분의1이었다. 광탄의 동거리장은 일제강점기 기간 우전도 함께 개설돼 존속됐으나 가까운 공릉장의 우전 장세가 워낙 컸기 때문에 거래 부진으로 3년여간 운영되다가 폐쇄되고 상품시장만 지속되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존속됐던 공릉장, 문산장, 금촌장, 광탄장, 삽교장, 적성 읍내장 등 6개의 5일장 가운데 해방 이후 삽교장만 없어지고 나머지 5개 시장은 아직 남아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열린세상] #미투와 #위드유, 문제는 경제다/송경진 세계경제연구원장

    [열린세상] #미투와 #위드유, 문제는 경제다/송경진 세계경제연구원장

    #미투와 #위드유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6·13 지방선거의 최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미투의 본질과 근본 대책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않으면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한때의 유행으로 묻힐 것이다. #미투의 본질은 권력과 부를 가진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경제력과 지위가 낮은 피해자에게 가하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다. 따라서 #미투와 #위드유 운동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지위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먼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평등한 고용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와 정책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현 정부의 ‘사람 중심의 경제’가 지향해야 할 바다. 여전히 우리의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낮은 수준이다. OECD는 우리 경제활동참가율의 성별 격차가 50%만 줄어도 국내총생산이 9.8%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급격히 하락하는 경제의 성장잠재력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만으로는 저임금에 비정규직과 하위직에 집중된 성차별적 고용과 승진 패턴이 개선되기 어렵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과 리더십 참여를 장려할 목표와 제도의 도입과 이행이 필요하다. 일례로 주요 20개국(G20) 중 대표적 기업들의 이사회에 여성의 비율이 5%가 채 안 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다. G20 국가의 평균인 17%에 한참 못 미친다. 반면 쿼터제를 적용하는 유럽 국가들에서는 그 비율이 33~40%에 이른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는 여성의 고위공무원 비율의 확대(2022년까지 10%)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특히 금녀의 구역이나 다름없었던 재정과 인사를 담당하는 부처의 여성 고위공무원 확대는 효과적일 것이다. 기업과 민간 부문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다음 생에는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자사의 성공 비결이 높은 여성 고위관리자의 비율(37%)이라고 했다. 고위직 여성의 비율이 높은 조직이나 기업의 이미지뿐 아니라 경쟁력과 실적이 더 좋다는 데이터와 연구 결과가 넘쳐나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저출산ㆍ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장 동력으로서 혁신의 중요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직관력, 배려, 공감능력, 의사소통 등 소프트 스킬에 상대적 강점을 가진 여성은 혁신성장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여성의 소프트 스킬이 혁신으로 시현될 수 있도록 혁신 환경에 대한 노출을 확대해야 한다. 미국에서 발명가 백만 명의 특허 기록을 조사한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최근 연구보고서를 주목할 만하다. 조사 결과 전체 발명가 중 여성의 비율은 18%로 성격 차가 두드러졌다. 혁신 환경에 대한 노출의 격차가 그대로 성격 차로 드러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심지어 혁신 환경에 대한 노출을 높여 주는 것이 감세보다 더 효과적인 혁신 자극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리더십 진출과 혁신 환경에 대한 노출 증가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리더십 위치에 있는 사람의 멘토링을 꼽는다. 다만 멘토는 남성, 멘티는 여성인 경우가 많다 보니 당사자들뿐 아니라 불편한 시선도 적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미투 이후 여성 멘토링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남성 관리자가 세 배나 늘었다는 조사도 있다. 심지어 여성 기피 현상인 ‘펜스 룰’조차 확산되고 있다. 칸막이를 허물고 유연해져야 혁신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에 역행하는 성차별주의적 사고의 표현이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핑계에 불과하다. 멘토링을 지정된 공개 장소에서 하면 될 일이지 펜스 룰을 적용할 문제가 아니다. 멘토링과 더불어 네트워킹, 정보교환 등을 통해 ‘이웃효과’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차별과 성폭력에 반대해 시작된 #미투와 #위드유가 성적으로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역사적 발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성의 경제력과 지위 향상이 전제조건이다. 아울러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 추진 계획의 이행에 여성가족부가 활발히 참여해 성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 정봉주 ‘성추행 의혹’에 지지자들 ‘알리바이’ 제시…진실공방 속으로

    정봉주 ‘성추행 의혹’에 지지자들 ‘알리바이’ 제시…진실공방 속으로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던 정봉주 전 의원에게 여대생 시절 성추행을 당했다는 미투(나도 당했다) 폭로가 나온 가운데 정 전 의원 지지자들이 이를 반박하는 ‘알리바이’를 제시했다. 사태가 진실 공방으로 치닫는 모양새다.7일 정 전 의원의 지지자 모임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인터넷 카페에는 피해자 A씨가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날, 정 전 의원의 구체적인 일정을 모은 글이 게시됐다. 해당 글은 이날 오후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정 전 의원의 성추행을 폭로한 A씨는 이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팟캐스트 ‘나는꼼수다(나꼼수)’의 애청자로 2011년 11월 1일 정 전 의원의 연락처를 받은 뒤 친해졌으며 정 전 의원의 요청으로 같은 해 12월 23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미권스’ 회원은 2011년 12월 23일은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취지로 당일 정 전 의원의 행적을 요약해 제시했다.해당 글에 따르면 같은해 12월 22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정 전 의원은 당일 오후 5시까지 입감될 예정이었으나 입감 일정이 연기됐다. 이날 지지자들은 정 전 의원의 집 앞에서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는 촛불 시위를 벌였다. 다음날인 23일 새벽 정 전 의원은 ‘나꼼수’ 녹음을 마쳤다. 정 전 의원은 26일 입감될 예정이었지만 경찰은 23일 오후 3시경 정 전 의원 집 앞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설상가상 이날 오후 정 전 의원의 어머니가 쓰러졌다. 검찰은 정 전 의원에 “집회를 나가면 강제 구금하겠다”고 통보한 상태였다. 게시자는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경찰이 집 앞에 대기하고, 강제 구금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호텔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지자들이 제시한 당일 행적만으로 성추행이 없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피해자인 A씨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정 전 의원이 집요하게 연락하면서 “감옥에 들어가기 전 한 번만 얼굴을 보고 가고 싶다”며 먼저 만남을 제의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어 정 전 의원이 당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만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호텔 카페에 전혀 모르는 이름으로 방을 예약했다는 것이다. A씨는 한시간쯤 기다린 뒤에야 정 전 의원이 “헐레벌떡 들어와 ‘보고 싶었다’고 말했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포옹을 하고 갑자기 키스를 하려 얼굴을 들이 밀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려 했던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돌연 회견을 취소했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 폭로에 대한 입장을 물은 프레시안 측에 “답변할 이유가 없다. 명예훼손 등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평창 완전 정복] 2차 세계대전 ‘목발 스키’가 시초… 절대 강자는 없다

    [평창 완전 정복] 2차 세계대전 ‘목발 스키’가 시초… 절대 강자는 없다

    장애인 알파인스키는 2차 세계대전 무렵 하지 절단 장애인들이 목발을 이용해 활강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첫 대회는 1948년 오스트리아의 바트가슈타인에서 개최됐다. 선수 17명이 참가했다.제1회 동계패럴림픽인 1976 외른셸스비크(스웨덴)대회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에선 1992 티니·알베르빌(프랑스)동계패럴림픽 때 정영훈과 유인식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미국)동계패럴림픽 알파인스키 좌식 회전 종목에선 한상민(39)이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통틀어 설상 첫 입상인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장애인 알파인스키는 활강과 슈퍼대회전, 대회전, 회전, 슈퍼 복합으로 구분된다. 활강은 속도를 겨루는 경기로 정해진 구간을 시속 90~140㎞의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게 특징이다. 슈퍼대회전은 활강의 속도기술과 대회전의 커다란 턴 기술을 복합한 경기다. 대회전에 비해 기문 수가 적고 경기 한 번으로 승부를 낸다. 대회전은 턴 기술과 활강의 속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종목으로 2회 실시한 결과를 합해 우열을 가린다. 회전은 가장 많은 기문을 통과하는 경기여서 턴 기술을 발휘하기 위해 유연성과 순발력,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슈퍼 복합은 회전과 슈퍼대회전의 기록을 합산해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장애 형태에 따라 입식, 좌식, 시각 세 가지로 나뉘고 이를 남녀로도 나눠 5종목이다. 결승선 통과 기록에 선수의 장애등급별 가중치를 곱해 최종 기록을 산출한 뒤 순위를 가린다. 시각장애 선수의 경우 경로를 안내해 주는 가이드와 함께 출발해 경기를 치른다. 비장애인 알파인스키와 비슷하지만 모노스키(절단 선수들을 위한 좌식 스키)와 아웃트리거(장애인 알파인스키용 폴대)라는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 구분된다. 평창패럴림픽 알파인스키에는 무려 30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한국 대표팀에서는 양재림(29), 황민규(22), 이치원(38), 한상민(39) 등 총 4명이 출전한다. 양성철 전 장애인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 코치는 “장애인 알파인스키는 비장애인 경기와 경기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처음 보더라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더군다나 알파인스키는 변수가 많은 종목이다. 슬로프의 상태나 미세한 장비 컨트롤 실수에 따라 성적이 크게 뒤바뀔 수 있다. 관중들이 한국 선수들을 크게 응원하면 깜짝 선전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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